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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일정안내 � 신년감사예배, 성찬식, 세례식 1.6 (주일) � 사역자 수련회 1.6~9 (주일~수) 참된 교회를 추구하는 사역자들의 모임 1.14~15 (월,화)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는 진의 시황제가 불 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여러 곳에 파견했다 는 얘기를 들으면서 죽지 않기 위해 어리석은 행동 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도 유전자 조작으로 죽음을 피할 가능성에 관한 연 구는 진행 중이다. 반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은 영생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답을 말씀하신다. 일반적으 로 영원히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죽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죽은 후에 내세에서 영혼이 영 원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대답 모두를 부정하신다. 성경에서 말 하는 죽음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 육체적 죽음, 영 적 죽음, 그리고 둘째 사망이다. 육체적 죽음은 영 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육체가 더는 살아있지 못하 는 것을 말하고, 영적 죽음은 하나님에 대해서 반 응할 수 없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있는 상태를 말 하는 것이며, 둘째 사망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 있 을 영원한 형벌을 말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육체적 죽음밖에 없어 보인다. 영적 으로 죽었다 해도, 사람들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없다 뿐이지 예수 안 믿어도 사는 데는 어 려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죽음도 분명 히 가시적으로 죽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혼 과 육체의 분리이므로 자아를 가진 영혼은 존재한 다. 둘째 사망도 지옥에서 죄인들이 불타서 사라지 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가운데서 형벌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도 사람들은 죽지 않고 지옥에서도 사람들은 죽지 않는데, 왜 구원받 은 자들의 삶은 영생이라고 말하고 지옥에 있는 자 들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지옥에 있는 자들 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서일까? 그것은 생명의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않기 때 문이다. 사망의 세 종류에서 ‘영적인 죽음’이 죽 음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 이다. 시체에 아무리 따뜻한 햇살이 비쳐도 따스함 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 나님에 대한 지식도 죽어있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도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그것이 죽음이다. 이 땅을 살아갈 동안에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곳에는 오직 영원한 버 려짐과 고통뿐이다. 영생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병장수가 아니라 하 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 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 의 시작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이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해 도 못 알아듣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삼위일체, 하 나님의 전능하심,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말하 면 그런 것은 신학생들이나 배우는 것으로 치부하 고, 하나님의 섭리, 작정, 거듭남, 죄와 은혜를 말 해도 감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생은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위에 나오는 내용들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한해가 시작되었다.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영 생, 곧 하나님과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 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은혜가 2013년에도 우리 안 에 더욱 가득하길 소망한다. 2013년을 맞이하며...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하늘영광교회 영생은 추천도서 개혁주의 예배론 마이클 호튼 저 / 부흥과 개혁사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의 목적에 관해 대체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기독교 안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 다. 우리는 틀에 박힌 단조로운 예배 순서에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배를 부단히 혁신해야 하는가? 예배를 통찰력 있게 고찰하는 이 책에서, 마이클 호튼은 더 나은 길이 있음을 논증한다. 호튼은 오늘날 벌어지는 예배 전쟁의 이면을 파헤치 고, 예배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성경적 토대와 신학적 토대를 재발견하도록 우리에게 당부한다. 호튼은 그렇게 한 다음에야 우리가 예 수 그리스도를 다시 무대의 중앙으로 되돌리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분이 목회자이든, 예배 인도자이든, 자기 믿음을 심화하기 갈망하는 일반 신자이든 간에, 이 책은 여러분의 창조 목적인 감격스럽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예배를 보임으로써,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제자 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 www.GloryofGod.or.kr) 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하늘영광 칼럼 교회소식 하늘영광교회 무료카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오픈 : 화~금(매주) 시간 : 오전10시~오후4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캠퍼스전도 토요일 오후 1시 (청년부 게시판 참조) � 차 전 도 토요일 오후 2시 (1층 카페) � 병원전도 / 지역전도 화요일 오전 10:30 (2층 유초등부실) 하늘영광 2013. 1 . 통권 158호

하늘영광교회 13년 01월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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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영광교회 13년 01월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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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하늘영광교회 13년 01월 158호

� 찾아오시는 길

� 교회소식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 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 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

도와 영적 대각성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

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에 대한 사

역의 부담을 가지고 귀국하여 “하늘영광교회”를 개척, 담

임하고 있다.

� 담임목사 Profile

2013년 1월 일정안내

� 신년감사예배, 성찬식, 세례식

1.6 (주일)

� 사역자 수련회

1.6~9 (주일~수)

� 참된 교회를 추구하는 사역자들의 모임

1.14~15 (월,화)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 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

발행일 2013년 1월 1일 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134-856

☎ 2296-1586(교회) / 070-7548-1586(사역자실)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는 진의 시황제가 불

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여러 곳에 파견했다

는 얘기를 들으면서 죽지 않기 위해 어리석은 행동

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도 유전자 조작으로 죽음을 피할 가능성에 관한 연

구는 진행 중이다.

반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은 영생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답을 말씀하신다. 일반적으

로 영원히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죽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죽은 후에 내세에서 영혼이 영

원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대답 모두를 부정하신다. 성경에서 말

하는 죽음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 육체적 죽음, 영

적 죽음, 그리고 둘째 사망이다. 육체적 죽음은 영

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육체가 더는 살아있지 못하

는 것을 말하고, 영적 죽음은 하나님에 대해서 반

응할 수 없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있는 상태를 말

하는 것이며, 둘째 사망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 있

을 영원한 형벌을 말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육체적 죽음밖에 없어 보인다. 영적

으로 죽었다 해도, 사람들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없다 뿐이지 예수 안 믿어도 사는 데는 어

려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죽음도 분명

히 가시적으로 죽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혼

과 육체의 분리이므로 자아를 가진 영혼은 존재한

다. 둘째 사망도 지옥에서 죄인들이 불타서 사라지

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가운데서 형벌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도 사람들은 죽지

않고 지옥에서도 사람들은 죽지 않는데, 왜 구원받

은 자들의 삶은 영생이라고 말하고 지옥에 있는 자

들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지옥에 있는 자들

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서일까?

그것은 생명의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않기 때

문이다. 사망의 세 종류에서 ‘영적인 죽음’이 죽

음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

이다. 시체에 아무리 따뜻한 햇살이 비쳐도 따스함

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

나님에 대한 지식도 죽어있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도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그것이 죽음이다. 이 땅을 살아갈 동안에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곳에는 오직 영원한 버

려짐과 고통뿐이다.

영생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병장수가 아니라 하

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

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

의 시작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이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해

도 못 알아듣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삼위일체, 하

나님의 전능하심,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말하

면 그런 것은 신학생들이나 배우는 것으로 치부하

고, 하나님의 섭리, 작정, 거듭남, 죄와 은혜를 말

해도 감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생은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위에 나오는

내용들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한해가 시작되었다.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영

생, 곧 하나님과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

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은혜가 2013년에도 우리 안

에 더욱 가득하길 소망한다.

“2013년을 맞이하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하늘영광교회

주일예배 오전 11:00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 오후 8:00

새벽기도(월~금) 오전 6:00

유 치 부 오전 9:00 오후 2:00

교회학교 유·초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중·고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집 회 청년부(토) 오후 5:00

� 예배시간 안내 (모임/집회)

● 교인동정

이사 : 김미노 (둔촌동-세종시)

장성우, 이슬아 (안산-암사동)

● 선교사를 위한 기도

일본 토가네 은총그리스도교회와 남택수 선교사 그리고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대중교통

지하철 천호역(5호선 3번 출구), 암사역(8호선 1번 출구)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하여 양지종합시장앞 하차

04 Confession Glory of God

영생은

추천도서 개혁주의 예배론마이클 호튼 저 / 부흥과 개혁사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의 목적에 관해 대체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기독교 안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

다. 우리는 틀에 박힌 단조로운 예배 순서에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배를 부단히 혁신해야 하는가?

예배를 통찰력 있게 고찰하는 이 책에서, 마이클 호튼은 더 나은 길이 있음을 논증한다. 호튼은 오늘날 벌어지는 예배 전쟁의 이면을 파헤치

고, 예배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성경적 토대와 신학적 토대를 재발견하도록 우리에게 당부한다. 호튼은 그렇게 한 다음에야 우리가 예

수 그리스도를 다시 무대의 중앙으로 되돌리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분이 목회자이든, 예배 인도자이든, 자기 믿음을 심화하기 갈망하는 일반 신자이든 간에, 이 책은 여러분의 창조 목적인 감격스럽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예배를 보임으로써,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제자 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www.GloryofGod.or.kr)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하늘영광 칼럼 교회소식

하늘영광교회 무료카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오픈 : 화~금(매주)

시간 : 오전10시~오후4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캠퍼스전도

토요일 오후 1시 (청년부 게시판 참조)

� 차 전 도

토요일 오후 2시 (1층 카페)

� 병원전도 / 지역전도

화요일 오전 10:30 (2층 유초등부실)

하늘영광고백의 글

한 해를 보내며,한 해를 맞으며 장선경_3여선교

다사다난했던, 그리고 나에게 조금 더 특별했던(매년 나에게는 더 특별했다고 고백하지

만..) 2012년을 보내면서 작년의 송구영신예배와 신년 첫 예배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어떻

게 그것을 적용하며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2011년 마지막 날 송구영신예배에서, 우리에게 눈을 떼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삶에 철저히

관여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이러하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감사함과

기뻐함으로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며 회개했고, 또 그렇게 살기를 소망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첫 예배의 말씀을 통해 내 평생에 구할 것은 ‘하나님의 붙드심’이며 어느 순간에나

구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아니하면 신자로서 살 수 없다는 말씀을 깨달았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로 한 해를 시작하며 실제로 온전히 그리할 수 있기를 다짐도 해보고 간구하며 지냈습

니다. 또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면서 그 기도했던 바를 적용하며 큰 감

사함과 기쁨도 누리면서 살아가게 해주셨습니다. 영혼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 교회와 공동체

를 향한 관심과 애정, 또 여러 가지 섬김의 마음을 부어주시는 것을 느끼면서 이것이 하나님

을 사랑함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신자의 모습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였고 저를 큰 좌절에 빠뜨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

직은 젊은 나이인데 그저 무시하고 넘겼던 몸의 여러 약함들이 병이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닥

쳤습니다. 그로 인해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쓰러지고, 기운이 없을 정도로 체중이 감소하고

밥을 넘기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생전 먹어보지 않았던 약들을 매일 먹게 됐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참 나를 어색하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는

데도 나 스스로 미안하고 민망하여 숨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저를 더욱 좌절감에 빠져들게

한 것은 공예배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경험을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저는 예배의 자리, 그 은혜

의 현장을 좋아합니다. 그 현장에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지식을 거쳐

내 마음까지 수긍이 될 때의 그 생동감은 짜릿하기까지 했던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에 큰

일이 없는 한 예배를 빠지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내게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예배

의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때가 왔구나 생각했을 때는 나의 모든 힘이 풀릴 정도로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그로 인해 구토도 심해 예배를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

습니다. 남편은 그날따라 회사일로 늦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 둘

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교회에 왔습니다. 이렇게라도 나오면 은혜를 주시겠지 기대를 하며

무리를 하며 나왔는데 제 기대와는 다르게 말씀의 1/10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 당

황하고 실망해 말씀이 끝나고 아픈 몸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은혜받기를 구하며

이 자리를 사모하면서 나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건 너무하시지 않느냐고, 영혼들

을 섬기고 싶은 마음도 건강으로 인해 좌절되게 하시더니 예배마저도 은혜를 안 주신다며 울

면서 원망 섞인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하루 이틀 시간을 보냈는데, 하나님

은 금요예배의 민수기 말씀을 통해서 답을 주셨습니다. 여전히 제 믿음은 저 중심적인 것이

많다는 것. 은혜를 받고 누리는 것도 내 중심적이며, 예배에 나와서 구하는 것도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누리기를 구하기 보다는, 그저 삶의 답답하고 어려운 부분들을 하나님을 믿는 믿

음으로 잘 이길 수 있기를, 또 죄로 강퍅케 됨을 면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구하는 게 대다수

였습니다. 그날 예배에 은혜를 받지 못했다며 울며 기도하던 나는, 나의 곤란을 없애주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그런 기도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너무 서글

펐습니다. 나의 형편과 상황 때문에 슬펐던 게 아니라, 하나님 그 분만을 구하며 이 삶을 감

당하고 영혼들을 섬기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가... 내 삶에 철저하게 관여하시며 눈을 떼지 않

으시는 하나님을 아직도 신뢰하지 못하는가...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이때,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묵상하며 기도합니

다.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하고 견고한 신뢰를 주시길, 예배 가운데서 나의 어

떠함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그 분을 구하며 누릴 수 있게 되는 ‘생동감’을 주시길, 예

배드리지 못할 때와 섬기지 못할 때가 분명 오는 것을 알고 시간이 주어졌을 때 모든 상황에

서 하나님께 아뢰며 감당하길, 내가 병으로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상황이 되더라도 하

나님 나라와 그곳에서 누리게 될 완전하신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

음과 사랑을 잊지 않고 내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기도로 죽어지는 진정한 섬김의 정신으로 살

아가기를 말입니다.

2013. 1. 통권 158호

Page 2: 하늘영광교회 13년 01월 158호

들어가는 말

이번 호에서는, 이미 예수님을 알고 그의 사랑을 받은

자도 계속해서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을 살피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지속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

는데, 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마르다’를 통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마르다가 어떤 사람인지를

간단히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그를 어떻게 고치시는지 살

펴보도록 합시다.

활동적인 봉사의 사람, 마르다

마르다에 관한 기록 속에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핵심적인 말씀은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데, 40절에

서 그녀는 예수님을 초대한 후 대접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여기 마음이 분주하다는 말은 ‘마음이 부담되

다. 마음이 다른 데로 끌려가다. 다른 데 몰두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마르다는 이 상황 속에서 마음에 부담을 가

지고 일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그녀의 형제인 나사로가 병들자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게 되고, 나사로가 죽은 뒤에 예수님이 오신다

는 소식을 듣자 곧 달려 나갔습니다. 유대 전통과 종교적

관습을 생각하면 초상 당한 여자가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통례일 텐데, 요한복음 11장 30절을 보면 그녀는 마을 입

구까지 달려가는 아주 활동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녀의 특징을 말해주는 내용이 요한복음 12

장 2절에 기록돼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

다시 베다니로 오시자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배설된 때입

니다. 요한복음 12장 전반부에 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있

는데,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 자 중에 있었고, 마리

아는 값비싼 향유를 부어서 예수님의 발을 그의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마르다는 일을 보고’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르다는 다른 묘

사가 아니라 일과 관련돼서 묘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

론 마르다의 묘사에서 마지막으로 일하는 모습은 누가복음

10장에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만,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마

르다에 대한 묘사를 일과 관련해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

니다. 결국, 마르다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낸 주

된 모습이 일하는 것, 봉사하는 것임을 보게 될 때 이것이

마르다의 특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봉사 자체에 몰두하여 목적을 상실한 마르다

주님을 위해서 분주하게 봉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성령이 임하고

난 뒤 성도들이 굉장히 분주하게 봉사했습니다. 그것은 정

상적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서 무엇인가를 많이, 또 열심히 하느라 마음이 나뉜 나머

지 정작 중요한 것,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

과 더욱 교제하는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자기를 홀로 놔두고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

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서 주님께 불만을 토로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명하사 나

를 도와주라 하소서.”

실제로 우리들의 현실 속에 이런 모습들이 있습니다. 교

회 내에 보면 처음에는 주님과 교회를 위해 열심히 하다가

우선적인 것을 상실하고 자신들의 봉사 자체에 마음이 몰

입됩니다. 그러면서 남들과 비교하고 불평하면서 교회를

상하게 하고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런 일들로

주님께 대한 열심이 식어버려 다시는 교회에 봉사하지 않

겠다고도 말합니다. 그런 마음과 태도로 예수님을 믿는 것

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쳐져야 합니다. 그 상

태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들으며 봉사하라

여기 첫 장면에서 주님은 봉사 때문에 마음이 분주한 마

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중요한 것은 놓치고 불만까지

터뜨리고 있는 마르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님을 위한 열심

은 있지만 목적을 상실한 봉사를 하는 마르다와 같은 사람

들, 어떤 면에서는 행동주의적인 신자들을 고치시는 말씀

을 하시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으로 고치시고 있습니까?

주님은 누가복음 10장 41절과 42절에서 봉사에 마음을 빼

앗겨서 감정이 동요하고 있는 그녀 자신을 먼저 보게 하시

고, 이어서 그녀가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말씀

하심으로써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

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먼저 마르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보게 하셨

습니다. 그녀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많은 일과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주 거친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주

님은 먼저 그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러는 가운데서 한 가지 족한 것, 곧 그녀가

놓치고 있는 더욱 중요한 것을 깨닫고 소유하도록 말씀하

십니다. 그 한 가지 족한 것은 바로 마리아가 택한 것, 곧

예수님의 발 밑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있음을 드러내

기 위해서 주로 마음을 쏟는 것이 뭐냐면 열심히 일하고 봉

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데 있어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봉사가 아니고 주님

의 발 밑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많

이 봉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측정하고 자신의 역량

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

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한 가지 족한 것이

많은 봉사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하면 자신

의 의가 드러나게 되고 그리스도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해 놓고도 결국 자기

자랑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주 중요

한 것을 초기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기서 넘

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현실적으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은 봉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봉

사하되 그것에 마음이 빼앗기거나 그것으로 마음이 나뉘어

서 주님의 말씀 듣는 것을 경홀히 여기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마

르다는 그렇게 고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계속되는 변화로 이끄시는 예수님

주님은 요한복음 11장의 두 번째 장면 속에서 마르다의

계속적인 변화를 다루십니다. 그녀의 오라비가 병들어 죽

게 됐을 때, 그녀의 부족한 믿음과 드러난 문제를 고치시

는 것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병들었

을 때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오라비가 죽고 난 다음에 도착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비록

나사로는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에 대해 여전히

반가운 마음이 있어서 마을 입구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예

수님을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이렇게 주님께 말하고 있습

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

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

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의 말은 빈정대는 말이 아니라 소망에 근거한 말

입니다. 마르다가 11장 초반에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을

때, 예수님께서 그 보냄 받은 사람에게 4절에서 하셨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

나님의 아들로 이 일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신 이 메시지로 마리아와 마르다는 한 가닥 소망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뒤의 내용을 보게 될 때, 그 믿음

이 죽은 나사로가 현실적으로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무언가 하실 것이라고 하는 막

연한 기대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신앙상태는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실제성을 다루시는 예수님

그래서 주님은 여기서 마르다를 고치시는 말씀을 하시는

데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주

님의 말씀에 마르다가 보인 반응은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며 사람이 죽은 후에

나중에 다시 살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마르다를 고치십니다. 자신이 생명의 주이신 것을

실제로 믿도록 다루십니다. 바로 믿음의 실제성을 다루시

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

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놀라운 말씀이 바로 마르다를 고치시는 중에 하신 말

씀입니다. 마르다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많은 봉사보다 그

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했고,

자기 오라비가 죽는 것과 같은 비탄스러운 상황이 있다 해

도 주님은 인간의 최대의 적인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하

실 수 있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실제적으로 믿어야

했습니다. 예수가 구원자라는 의미는 먼 훗날 종말과 관련

해서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그가 바로 생명을 주시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 막연

하게 내게 결국 좋은 일을 해주고 조금 능력을 행해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믿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말로써만 고백하는 생명의 주

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교리적으로 곧 지식적으로 알면 되

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삶 가운데 계신 생명의 주요, 우

리의 경험 속에 역사하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은 그렇게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내가 큰 위기 앞에 섰을

때도, 내 형제나 내 가정에 큰 위기가 왔을 때도, 죽음이

오가는 그 상황 속에서도 그가 나의 생명의 주권자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 말씀을 듣고 마르다가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

님의 아들이신 것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가 이렇게 고

백했다는 것은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에 의해서 고침 받았

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믿음이 아직도 온전치는 못하지

만,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그런 모습을

통해서 그 믿음이 다뤄지고 고침 받아 성숙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어지는 본문에서 자신의 고

백이 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의 실제적인 의

미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내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돌문을 옮기라고 하시자 그녀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납니다.”

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처럼 그녀가 믿는 예수님이 “그리

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죽은 자라도 현재시제

로 살리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믿지 못했습

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현실

적으로 인정치 않는 이런 모습들을 주님은 지금도 이와 같

은 말씀으로 다루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이 죽음을 넘어선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

시고, 그것을 믿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

음이 크다고 해도 죽음 문제에서 흔들리고 그 문제 앞에서

는 자신이 믿는 예수님도 무용한 듯이 생각하는 신앙태도

는 고침 받아야 합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주님은 마르다를 고치기 위해서 40절에서 어떻게 말씀

하셨습니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

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믿는다고 한다면, 그 살아

있는 믿음은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이 내 삶 속에서 역동적

으로 역사하게 하고, 그래서 증거가 드러나고 그 증거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런 실제적인 믿음이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부활과 생

명으로서 우리를 실제로 살리시고 영생을 주시며, 심지어

다른 사람을 살리기도 하시는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생하게 믿는 자이어야 합니다. 마르다의 그 성급

한 모습을 주님은 이렇게 계속 고치시고 다루셔서 변화시

키고 있습니다.

온전한 봉사의 사람 마르다

이제 마르다의 마지막 장면이 12장 2절인데, 그녀는 예

수님을 위해 베푼 자리에서 일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다

시 말해서 봉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복음 10

장과 같은 봉사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봉사하는 것이고, 이전처럼 감정의 동요

가 일어나지 않은 채 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주님

의 발 앞에 붓는 것을 보고 있지만, 그녀는 자기 자리에서

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12장 전반부가 세 사

람을 다 묘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봉사라는 것은 그녀

가 해야 할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항상 그 사람의

성향이고 그 마음의 소원함이고 기꺼움인 것 같습니다. 그

러나 거기에 변화가 왔습니다. 봉사 자체가 나쁜 것이 아

닙니다. 오히려 바른 태도와 바른 위치에서 하게 되면 그

것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르다는 그 자

리에 돌아온 것입니다. 동요 없이,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

리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곁에서 섬기고 있습니

다. 그것이 예수를 만나서 그녀가 바뀌게 된 모습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생명이신 것을 믿으며, 그분을 의지하는 가운

데서 제 위치에서 봉사하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

이 서야 할 자리에서 기꺼움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마르다

를 고치신 것입니다.

맺음말

우리가 주님을 어떤 모습으로 섬기고 있는지, 자신의 삶

속에서 주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지, 진실로 현실에서

부터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지, 그래서 감정 폭

발 없이 주님을 사랑하여 봉사할 수 있는지, 그런 모든 주

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앙에 근거해서 제 위치에서 봉사

할 수 있는지 여러분 자신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이렇게 고치시는데,

우리 자신들도 이 말씀을 통해서 다룸 받고 계속적으로 주

님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르다

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주님의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도 갖

고 주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공동체 안에

서 이렇게 변화된 모습이 있기를 원합니다.

전문의 1/3분량으로 축소 편집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도 변화가 필요하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바뀐다 9

박순용 담임목사

Glory of God 03Confession02 Preaching Glory of God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

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

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

몇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

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0:38-42, 요 11:17-44)

김혁출_1남선교

5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지난 5월 어느 날. 저의 인생시계가 멈춰 섰습

니다. 좀 쑥스럽습니다만, “체육정책 최고전문가, 우리나라 생활체육정책

의 살아있는 역사, 임원승진 대상 영순위”등의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는,

흔히 말하는 세상에서 잘 나가던 저에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

니다. 회사의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게임의 일종인 외

부인사 영입으로 임원승진에서 탈락되고 25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접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주변은 술렁거리기 시

작하고 자칫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는 상황.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 정리를 위해 일주일간의 휴가기간을 할애 받아 담담하게 주님께 여쭸

습니다. “주님! 이것이 진정 주님의 뜻입니까? 주님의 뜻이라면 이 시점에

서 그만 두겠습니다. 응답해 주소서.”.........

고난 가운데 느낀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

죄와 싸우는 광야와 같은 삶이 우리 인생사. 광야의 여정은 하나님만이

아시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일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상의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기를 일

주일을 매달렸습니다. 제가 걱정한 것은 사실 가족들의 충격이었습니다만,

아내는 너무나 담담하게 “여보, 나는 이 상황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요.

당신은 25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했으니 이제 쉴 때가 되었어요. 정말 수

고했어요. 언제 날 잡아 은퇴 축하 파티 열어요. 너무 지친 당신을 보니 쓰

러질까 걱정이 됐어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을 멈춰 서게 하신 뜻을 알

게 해 주실 거에요.”, “아빠 이제 좀 쉬어도 돼요. 아빠는 평생 일밖에 모르

면서 사셨잖아요. 당분간 경제적으로 좀 불편할 뿐이니 이 기회에 좀 쉬었

다가.....” 예상 밖의 가족들을 통한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느끼면

서 누적되었던 피곤이 눈이 녹듯이 녹아 내렸고, 이어서 이상하리만큼 마음

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에게 합당한 말

씀을 주소서.”

세상을 사랑치 말라 하시는 하나님의 뜻

성경공부 교재인 요한일서 강해를 읽으면서 본문 2장 15절에서 17절에

나오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유독 저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여기서 세상이

란 하나님 없는 가치관, 하나님 없는 삶, 그 대신 사람을 중심에 놓은 하나

님 없는 사고방식과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삶, 이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세상’이라는 단어의 뜻이었습니다. 그 동안 나의 삶은 하나님 면전에서 온

전했는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그 답은 “온전하지 못했다”였습니다. 하나

님께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는데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

신앙생활은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제대로 두지 못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즉

매일같이 “내일은, 내일은...”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믿음 생활, 목요일

아침회의가 걱정되어 수요예배를 생략하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하나님

께 의지하기보다는 세상적인 관례나 사람들의 의견에 의지하는 등, 하나님

을 의식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실시간으로 즐기지 못하고 종국에는 하

나님의 뜻이 선택사항으로 변질되고, 세상적인 일과 사람중심의 문제 해결

사고방식으로 귀결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것들

이었습니다. 지난 세월의 하나님의 비위를 상하게 한 모든 상황들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명령하

시고,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는 저의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저

를 살리시고 자녀 삼으시려고 멈춤의 기회를 주셨음을 믿습니다. 육신의 정

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치우친 발걸음을 멈추고 지금부터라도 하

나님과 참된 교제를 체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

을 느끼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걷게도 하시고 멈춰 서게도 하시는 주님!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

고 새로운 힘과 능력으로 다시 걷게 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멈춰서게 하신하나님의 뜻

인간은 복음을 싫어합니다. 인정하기 힘들지만 제 안에도 그런 면이 있음

을 발견하게 됩니다. “옛 복음으로 돌아가라”며 읽기 시작한 「요한1서 강

해Ⅰ」은 처음부터 제겐 진부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 안에서 객관적인 진

리를 얘기하기보단 자기 경험을 털어놓길 좋아하는 시대라고 목사님이 지

적하시는 내용들을 읽으며 목사님이 저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 같아 책을 읽

어나가기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가 얼마나

확고한 진리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인지 강조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확

신과 평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묵상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교회

안에서 공유하게 되는 공통된 삶과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이 사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교제는 그리

스도의 피로 가능하게 된 것이고 다른 사귐과 다르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한

지체로서 저의 역할에 대해서 제가 얼마만큼 성실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

는지 반성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의 사귐이란 하나님과

의 긴밀한 교통을 통해 먼저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죄가 있음을 저는 기억해야

했습니다. 이 죄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기 이전에 거룩의 하나님으

로 먼저 인식할 때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습니다. 하

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마땅히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만 그런 모습이 없

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항상 좌절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빛 가운

데로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

할 때, 또한 죄를 고백하는 것이 비록 힘들지만 죄의 고백을 통해 사유하심

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의 증거를 더욱 깊이 누릴 수 있다는 사

실을 생각할 때 저는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권세일_청년부

「요한1서 강해1」 소감문

고백의 글

Page 3: 하늘영광교회 13년 01월 158호

들어가는 말

이번 호에서는, 이미 예수님을 알고 그의 사랑을 받은

자도 계속해서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을 살피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지속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

는데, 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마르다’를 통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마르다가 어떤 사람인지를

간단히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그를 어떻게 고치시는지 살

펴보도록 합시다.

활동적인 봉사의 사람, 마르다

마르다에 관한 기록 속에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핵심적인 말씀은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데, 40절에

서 그녀는 예수님을 초대한 후 대접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여기 마음이 분주하다는 말은 ‘마음이 부담되

다. 마음이 다른 데로 끌려가다. 다른 데 몰두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마르다는 이 상황 속에서 마음에 부담을 가

지고 일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그녀의 형제인 나사로가 병들자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게 되고, 나사로가 죽은 뒤에 예수님이 오신다

는 소식을 듣자 곧 달려 나갔습니다. 유대 전통과 종교적

관습을 생각하면 초상 당한 여자가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통례일 텐데, 요한복음 11장 30절을 보면 그녀는 마을 입

구까지 달려가는 아주 활동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녀의 특징을 말해주는 내용이 요한복음 12

장 2절에 기록돼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

다시 베다니로 오시자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배설된 때입

니다. 요한복음 12장 전반부에 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있

는데,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 자 중에 있었고, 마리

아는 값비싼 향유를 부어서 예수님의 발을 그의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마르다는 일을 보고’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르다는 다른 묘

사가 아니라 일과 관련돼서 묘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

론 마르다의 묘사에서 마지막으로 일하는 모습은 누가복음

10장에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만,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마

르다에 대한 묘사를 일과 관련해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

니다. 결국, 마르다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낸 주

된 모습이 일하는 것, 봉사하는 것임을 보게 될 때 이것이

마르다의 특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봉사 자체에 몰두하여 목적을 상실한 마르다

주님을 위해서 분주하게 봉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성령이 임하고

난 뒤 성도들이 굉장히 분주하게 봉사했습니다. 그것은 정

상적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서 무엇인가를 많이, 또 열심히 하느라 마음이 나뉜 나머

지 정작 중요한 것,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

과 더욱 교제하는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자기를 홀로 놔두고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

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서 주님께 불만을 토로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명하사 나

를 도와주라 하소서.”

실제로 우리들의 현실 속에 이런 모습들이 있습니다. 교

회 내에 보면 처음에는 주님과 교회를 위해 열심히 하다가

우선적인 것을 상실하고 자신들의 봉사 자체에 마음이 몰

입됩니다. 그러면서 남들과 비교하고 불평하면서 교회를

상하게 하고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런 일들로

주님께 대한 열심이 식어버려 다시는 교회에 봉사하지 않

겠다고도 말합니다. 그런 마음과 태도로 예수님을 믿는 것

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쳐져야 합니다. 그 상

태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들으며 봉사하라

여기 첫 장면에서 주님은 봉사 때문에 마음이 분주한 마

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중요한 것은 놓치고 불만까지

터뜨리고 있는 마르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님을 위한 열심

은 있지만 목적을 상실한 봉사를 하는 마르다와 같은 사람

들, 어떤 면에서는 행동주의적인 신자들을 고치시는 말씀

을 하시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으로 고치시고 있습니까?

주님은 누가복음 10장 41절과 42절에서 봉사에 마음을 빼

앗겨서 감정이 동요하고 있는 그녀 자신을 먼저 보게 하시

고, 이어서 그녀가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말씀

하심으로써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

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먼저 마르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보게 하셨

습니다. 그녀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많은 일과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주 거친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주

님은 먼저 그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러는 가운데서 한 가지 족한 것, 곧 그녀가

놓치고 있는 더욱 중요한 것을 깨닫고 소유하도록 말씀하

십니다. 그 한 가지 족한 것은 바로 마리아가 택한 것, 곧

예수님의 발 밑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있음을 드러내

기 위해서 주로 마음을 쏟는 것이 뭐냐면 열심히 일하고 봉

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데 있어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봉사가 아니고 주님

의 발 밑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많

이 봉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측정하고 자신의 역량

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

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한 가지 족한 것이

많은 봉사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하면 자신

의 의가 드러나게 되고 그리스도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해 놓고도 결국 자기

자랑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주 중요

한 것을 초기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기서 넘

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현실적으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은 봉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봉

사하되 그것에 마음이 빼앗기거나 그것으로 마음이 나뉘어

서 주님의 말씀 듣는 것을 경홀히 여기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마

르다는 그렇게 고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계속되는 변화로 이끄시는 예수님

주님은 요한복음 11장의 두 번째 장면 속에서 마르다의

계속적인 변화를 다루십니다. 그녀의 오라비가 병들어 죽

게 됐을 때, 그녀의 부족한 믿음과 드러난 문제를 고치시

는 것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병들었

을 때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오라비가 죽고 난 다음에 도착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비록

나사로는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에 대해 여전히

반가운 마음이 있어서 마을 입구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예

수님을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이렇게 주님께 말하고 있습

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

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

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의 말은 빈정대는 말이 아니라 소망에 근거한 말

입니다. 마르다가 11장 초반에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을

때, 예수님께서 그 보냄 받은 사람에게 4절에서 하셨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

나님의 아들로 이 일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신 이 메시지로 마리아와 마르다는 한 가닥 소망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뒤의 내용을 보게 될 때, 그 믿음

이 죽은 나사로가 현실적으로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무언가 하실 것이라고 하는 막

연한 기대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신앙상태는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실제성을 다루시는 예수님

그래서 주님은 여기서 마르다를 고치시는 말씀을 하시는

데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주

님의 말씀에 마르다가 보인 반응은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며 사람이 죽은 후에

나중에 다시 살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마르다를 고치십니다. 자신이 생명의 주이신 것을

실제로 믿도록 다루십니다. 바로 믿음의 실제성을 다루시

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

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놀라운 말씀이 바로 마르다를 고치시는 중에 하신 말

씀입니다. 마르다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많은 봉사보다 그

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했고,

자기 오라비가 죽는 것과 같은 비탄스러운 상황이 있다 해

도 주님은 인간의 최대의 적인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하

실 수 있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실제적으로 믿어야

했습니다. 예수가 구원자라는 의미는 먼 훗날 종말과 관련

해서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그가 바로 생명을 주시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 막연

하게 내게 결국 좋은 일을 해주고 조금 능력을 행해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믿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말로써만 고백하는 생명의 주

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교리적으로 곧 지식적으로 알면 되

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삶 가운데 계신 생명의 주요, 우

리의 경험 속에 역사하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은 그렇게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내가 큰 위기 앞에 섰을

때도, 내 형제나 내 가정에 큰 위기가 왔을 때도, 죽음이

오가는 그 상황 속에서도 그가 나의 생명의 주권자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 말씀을 듣고 마르다가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

님의 아들이신 것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가 이렇게 고

백했다는 것은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에 의해서 고침 받았

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믿음이 아직도 온전치는 못하지

만,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그런 모습을

통해서 그 믿음이 다뤄지고 고침 받아 성숙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어지는 본문에서 자신의 고

백이 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의 실제적인 의

미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내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돌문을 옮기라고 하시자 그녀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납니다.”

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처럼 그녀가 믿는 예수님이 “그리

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죽은 자라도 현재시제

로 살리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믿지 못했습

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현실

적으로 인정치 않는 이런 모습들을 주님은 지금도 이와 같

은 말씀으로 다루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이 죽음을 넘어선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

시고, 그것을 믿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

음이 크다고 해도 죽음 문제에서 흔들리고 그 문제 앞에서

는 자신이 믿는 예수님도 무용한 듯이 생각하는 신앙태도

는 고침 받아야 합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주님은 마르다를 고치기 위해서 40절에서 어떻게 말씀

하셨습니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

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믿는다고 한다면, 그 살아

있는 믿음은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이 내 삶 속에서 역동적

으로 역사하게 하고, 그래서 증거가 드러나고 그 증거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런 실제적인 믿음이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부활과 생

명으로서 우리를 실제로 살리시고 영생을 주시며, 심지어

다른 사람을 살리기도 하시는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생하게 믿는 자이어야 합니다. 마르다의 그 성급

한 모습을 주님은 이렇게 계속 고치시고 다루셔서 변화시

키고 있습니다.

온전한 봉사의 사람 마르다

이제 마르다의 마지막 장면이 12장 2절인데, 그녀는 예

수님을 위해 베푼 자리에서 일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다

시 말해서 봉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복음 10

장과 같은 봉사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봉사하는 것이고, 이전처럼 감정의 동요

가 일어나지 않은 채 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주님

의 발 앞에 붓는 것을 보고 있지만, 그녀는 자기 자리에서

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12장 전반부가 세 사

람을 다 묘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봉사라는 것은 그녀

가 해야 할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항상 그 사람의

성향이고 그 마음의 소원함이고 기꺼움인 것 같습니다. 그

러나 거기에 변화가 왔습니다. 봉사 자체가 나쁜 것이 아

닙니다. 오히려 바른 태도와 바른 위치에서 하게 되면 그

것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르다는 그 자

리에 돌아온 것입니다. 동요 없이,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

리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곁에서 섬기고 있습니

다. 그것이 예수를 만나서 그녀가 바뀌게 된 모습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생명이신 것을 믿으며, 그분을 의지하는 가운

데서 제 위치에서 봉사하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

이 서야 할 자리에서 기꺼움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마르다

를 고치신 것입니다.

맺음말

우리가 주님을 어떤 모습으로 섬기고 있는지, 자신의 삶

속에서 주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지, 진실로 현실에서

부터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지, 그래서 감정 폭

발 없이 주님을 사랑하여 봉사할 수 있는지, 그런 모든 주

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앙에 근거해서 제 위치에서 봉사

할 수 있는지 여러분 자신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이렇게 고치시는데,

우리 자신들도 이 말씀을 통해서 다룸 받고 계속적으로 주

님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르다

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주님의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도 갖

고 주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공동체 안에

서 이렇게 변화된 모습이 있기를 원합니다.

전문의 1/3분량으로 축소 편집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도 변화가 필요하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바뀐다 9

박순용 담임목사

Glory of God 03Confession02 Preaching Glory of God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

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

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

몇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

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0:38-42, 요 11:17-44)

김혁출_1남선교

5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지난 5월 어느 날. 저의 인생시계가 멈춰 섰습

니다. 좀 쑥스럽습니다만, “체육정책 최고전문가, 우리나라 생활체육정책

의 살아있는 역사, 임원승진 대상 영순위”등의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는,

흔히 말하는 세상에서 잘 나가던 저에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

니다. 회사의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게임의 일종인 외

부인사 영입으로 임원승진에서 탈락되고 25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접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주변은 술렁거리기 시

작하고 자칫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는 상황.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 정리를 위해 일주일간의 휴가기간을 할애 받아 담담하게 주님께 여쭸

습니다. “주님! 이것이 진정 주님의 뜻입니까? 주님의 뜻이라면 이 시점에

서 그만 두겠습니다. 응답해 주소서.”.........

고난 가운데 느낀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

죄와 싸우는 광야와 같은 삶이 우리 인생사. 광야의 여정은 하나님만이

아시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일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상의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기를 일

주일을 매달렸습니다. 제가 걱정한 것은 사실 가족들의 충격이었습니다만,

아내는 너무나 담담하게 “여보, 나는 이 상황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요.

당신은 25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했으니 이제 쉴 때가 되었어요. 정말 수

고했어요. 언제 날 잡아 은퇴 축하 파티 열어요. 너무 지친 당신을 보니 쓰

러질까 걱정이 됐어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을 멈춰 서게 하신 뜻을 알

게 해 주실 거에요.”, “아빠 이제 좀 쉬어도 돼요. 아빠는 평생 일밖에 모르

면서 사셨잖아요. 당분간 경제적으로 좀 불편할 뿐이니 이 기회에 좀 쉬었

다가.....” 예상 밖의 가족들을 통한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느끼면

서 누적되었던 피곤이 눈이 녹듯이 녹아 내렸고, 이어서 이상하리만큼 마음

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에게 합당한 말

씀을 주소서.”

세상을 사랑치 말라 하시는 하나님의 뜻

성경공부 교재인 요한일서 강해를 읽으면서 본문 2장 15절에서 17절에

나오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유독 저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여기서 세상이

란 하나님 없는 가치관, 하나님 없는 삶, 그 대신 사람을 중심에 놓은 하나

님 없는 사고방식과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삶, 이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세상’이라는 단어의 뜻이었습니다. 그 동안 나의 삶은 하나님 면전에서 온

전했는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그 답은 “온전하지 못했다”였습니다. 하나

님께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는데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

신앙생활은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제대로 두지 못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즉

매일같이 “내일은, 내일은...”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믿음 생활, 목요일

아침회의가 걱정되어 수요예배를 생략하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하나님

께 의지하기보다는 세상적인 관례나 사람들의 의견에 의지하는 등, 하나님

을 의식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실시간으로 즐기지 못하고 종국에는 하

나님의 뜻이 선택사항으로 변질되고, 세상적인 일과 사람중심의 문제 해결

사고방식으로 귀결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것들

이었습니다. 지난 세월의 하나님의 비위를 상하게 한 모든 상황들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명령하

시고,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는 저의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저

를 살리시고 자녀 삼으시려고 멈춤의 기회를 주셨음을 믿습니다. 육신의 정

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치우친 발걸음을 멈추고 지금부터라도 하

나님과 참된 교제를 체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

을 느끼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걷게도 하시고 멈춰 서게도 하시는 주님!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

고 새로운 힘과 능력으로 다시 걷게 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멈춰서게 하신하나님의 뜻

인간은 복음을 싫어합니다. 인정하기 힘들지만 제 안에도 그런 면이 있음

을 발견하게 됩니다. “옛 복음으로 돌아가라”며 읽기 시작한 「요한1서 강

해Ⅰ」은 처음부터 제겐 진부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 안에서 객관적인 진

리를 얘기하기보단 자기 경험을 털어놓길 좋아하는 시대라고 목사님이 지

적하시는 내용들을 읽으며 목사님이 저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 같아 책을 읽

어나가기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가 얼마나

확고한 진리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인지 강조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확

신과 평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묵상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교회

안에서 공유하게 되는 공통된 삶과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이 사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교제는 그리

스도의 피로 가능하게 된 것이고 다른 사귐과 다르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한

지체로서 저의 역할에 대해서 제가 얼마만큼 성실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

는지 반성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의 사귐이란 하나님과

의 긴밀한 교통을 통해 먼저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죄가 있음을 저는 기억해야

했습니다. 이 죄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기 이전에 거룩의 하나님으

로 먼저 인식할 때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습니다. 하

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마땅히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만 그런 모습이 없

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항상 좌절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빛 가운

데로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

할 때, 또한 죄를 고백하는 것이 비록 힘들지만 죄의 고백을 통해 사유하심

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의 증거를 더욱 깊이 누릴 수 있다는 사

실을 생각할 때 저는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권세일_청년부

「요한1서 강해1」 소감문

고백의 글

Page 4: 하늘영광교회 13년 01월 158호

� 찾아오시는 길

� 교회소식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 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 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

도와 영적 대각성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

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에 대한 사

역의 부담을 가지고 귀국하여 “하늘영광교회”를 개척, 담

임하고 있다.

� 담임목사 Profile

2013년 1월 일정안내

� 신년감사예배, 성찬식, 세례식

1.6 (주일)

� 사역자 수련회

1.6~9 (주일~수)

� 참된 교회를 추구하는 사역자들의 모임

1.14~15 (월,화)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 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

발행일 2013년 1월 1일 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134-856

☎ 2296-1586(교회) / 070-7548-1586(사역자실)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는 진의 시황제가 불

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여러 곳에 파견했다

는 얘기를 들으면서 죽지 않기 위해 어리석은 행동

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도 유전자 조작으로 죽음을 피할 가능성에 관한 연

구는 진행 중이다.

반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은 영생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답을 말씀하신다. 일반적으

로 영원히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죽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죽은 후에 내세에서 영혼이 영

원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대답 모두를 부정하신다. 성경에서 말

하는 죽음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 육체적 죽음, 영

적 죽음, 그리고 둘째 사망이다. 육체적 죽음은 영

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육체가 더는 살아있지 못하

는 것을 말하고, 영적 죽음은 하나님에 대해서 반

응할 수 없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있는 상태를 말

하는 것이며, 둘째 사망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 있

을 영원한 형벌을 말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육체적 죽음밖에 없어 보인다. 영적

으로 죽었다 해도, 사람들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없다 뿐이지 예수 안 믿어도 사는 데는 어

려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죽음도 분명

히 가시적으로 죽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혼

과 육체의 분리이므로 자아를 가진 영혼은 존재한

다. 둘째 사망도 지옥에서 죄인들이 불타서 사라지

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가운데서 형벌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도 사람들은 죽지

않고 지옥에서도 사람들은 죽지 않는데, 왜 구원받

은 자들의 삶은 영생이라고 말하고 지옥에 있는 자

들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지옥에 있는 자들

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서일까?

그것은 생명의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않기 때

문이다. 사망의 세 종류에서 ‘영적인 죽음’이 죽

음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

이다. 시체에 아무리 따뜻한 햇살이 비쳐도 따스함

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

나님에 대한 지식도 죽어있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도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그것이 죽음이다. 이 땅을 살아갈 동안에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곳에는 오직 영원한 버

려짐과 고통뿐이다.

영생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병장수가 아니라 하

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

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

의 시작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이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해

도 못 알아듣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삼위일체, 하

나님의 전능하심,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말하

면 그런 것은 신학생들이나 배우는 것으로 치부하

고, 하나님의 섭리, 작정, 거듭남, 죄와 은혜를 말

해도 감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생은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위에 나오는

내용들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한해가 시작되었다.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영

생, 곧 하나님과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

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은혜가 2013년에도 우리 안

에 더욱 가득하길 소망한다.

“2013년을 맞이하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하늘영광교회

주일예배 오전 11:00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 오후 8:00

새벽기도(월~금) 오전 6:00

유 치 부 오전 9:00 오후 2:00

교회학교 유·초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중·고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집 회 청년부(토) 오후 5:00

� 예배시간 안내 (모임/집회)

● 교인동정

이사 : 김미노 (둔촌동-세종시)

장성우, 이슬아 (안산-암사동)

● 선교사를 위한 기도

일본 토가네 은총그리스도교회와 남택수 선교사 그리고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대중교통

지하철 천호역(5호선 3번 출구), 암사역(8호선 1번 출구)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하여 양지종합시장앞 하차

04 Confession Glory of God

영생은

추천도서 개혁주의 예배론마이클 호튼 저 / 부흥과 개혁사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의 목적에 관해 대체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기독교 안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

다. 우리는 틀에 박힌 단조로운 예배 순서에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배를 부단히 혁신해야 하는가?

예배를 통찰력 있게 고찰하는 이 책에서, 마이클 호튼은 더 나은 길이 있음을 논증한다. 호튼은 오늘날 벌어지는 예배 전쟁의 이면을 파헤치

고, 예배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성경적 토대와 신학적 토대를 재발견하도록 우리에게 당부한다. 호튼은 그렇게 한 다음에야 우리가 예

수 그리스도를 다시 무대의 중앙으로 되돌리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분이 목회자이든, 예배 인도자이든, 자기 믿음을 심화하기 갈망하는 일반 신자이든 간에, 이 책은 여러분의 창조 목적인 감격스럽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예배를 보임으로써,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제자 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www.GloryofGod.or.kr)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하늘영광 칼럼 교회소식

하늘영광교회 무료카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오픈 : 화~금(매주)

시간 : 오전10시~오후4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캠퍼스전도

토요일 오후 1시 (청년부 게시판 참조)

� 차 전 도

토요일 오후 2시 (1층 카페)

� 병원전도 / 지역전도

화요일 오전 10:30 (2층 유초등부실)

하늘영광고백의 글

한 해를 보내며,한 해를 맞으며 장선경_3여선교

다사다난했던, 그리고 나에게 조금 더 특별했던(매년 나에게는 더 특별했다고 고백하지

만..) 2012년을 보내면서 작년의 송구영신예배와 신년 첫 예배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어떻

게 그것을 적용하며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2011년 마지막 날 송구영신예배에서, 우리에게 눈을 떼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삶에 철저히

관여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이러하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감사함과

기뻐함으로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며 회개했고, 또 그렇게 살기를 소망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첫 예배의 말씀을 통해 내 평생에 구할 것은 ‘하나님의 붙드심’이며 어느 순간에나

구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아니하면 신자로서 살 수 없다는 말씀을 깨달았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로 한 해를 시작하며 실제로 온전히 그리할 수 있기를 다짐도 해보고 간구하며 지냈습

니다. 또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면서 그 기도했던 바를 적용하며 큰 감

사함과 기쁨도 누리면서 살아가게 해주셨습니다. 영혼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 교회와 공동체

를 향한 관심과 애정, 또 여러 가지 섬김의 마음을 부어주시는 것을 느끼면서 이것이 하나님

을 사랑함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신자의 모습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였고 저를 큰 좌절에 빠뜨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

직은 젊은 나이인데 그저 무시하고 넘겼던 몸의 여러 약함들이 병이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닥

쳤습니다. 그로 인해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쓰러지고, 기운이 없을 정도로 체중이 감소하고

밥을 넘기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생전 먹어보지 않았던 약들을 매일 먹게 됐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참 나를 어색하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는

데도 나 스스로 미안하고 민망하여 숨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저를 더욱 좌절감에 빠져들게

한 것은 공예배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경험을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저는 예배의 자리, 그 은혜

의 현장을 좋아합니다. 그 현장에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지식을 거쳐

내 마음까지 수긍이 될 때의 그 생동감은 짜릿하기까지 했던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에 큰

일이 없는 한 예배를 빠지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내게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예배

의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때가 왔구나 생각했을 때는 나의 모든 힘이 풀릴 정도로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그로 인해 구토도 심해 예배를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

습니다. 남편은 그날따라 회사일로 늦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 둘

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교회에 왔습니다. 이렇게라도 나오면 은혜를 주시겠지 기대를 하며

무리를 하며 나왔는데 제 기대와는 다르게 말씀의 1/10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 당

황하고 실망해 말씀이 끝나고 아픈 몸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은혜받기를 구하며

이 자리를 사모하면서 나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건 너무하시지 않느냐고, 영혼들

을 섬기고 싶은 마음도 건강으로 인해 좌절되게 하시더니 예배마저도 은혜를 안 주신다며 울

면서 원망 섞인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하루 이틀 시간을 보냈는데, 하나님

은 금요예배의 민수기 말씀을 통해서 답을 주셨습니다. 여전히 제 믿음은 저 중심적인 것이

많다는 것. 은혜를 받고 누리는 것도 내 중심적이며, 예배에 나와서 구하는 것도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누리기를 구하기 보다는, 그저 삶의 답답하고 어려운 부분들을 하나님을 믿는 믿

음으로 잘 이길 수 있기를, 또 죄로 강퍅케 됨을 면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구하는 게 대다수

였습니다. 그날 예배에 은혜를 받지 못했다며 울며 기도하던 나는, 나의 곤란을 없애주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그런 기도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너무 서글

펐습니다. 나의 형편과 상황 때문에 슬펐던 게 아니라, 하나님 그 분만을 구하며 이 삶을 감

당하고 영혼들을 섬기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가... 내 삶에 철저하게 관여하시며 눈을 떼지 않

으시는 하나님을 아직도 신뢰하지 못하는가...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이때,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묵상하며 기도합니

다.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하고 견고한 신뢰를 주시길, 예배 가운데서 나의 어

떠함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그 분을 구하며 누릴 수 있게 되는 ‘생동감’을 주시길, 예

배드리지 못할 때와 섬기지 못할 때가 분명 오는 것을 알고 시간이 주어졌을 때 모든 상황에

서 하나님께 아뢰며 감당하길, 내가 병으로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상황이 되더라도 하

나님 나라와 그곳에서 누리게 될 완전하신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

음과 사랑을 잊지 않고 내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기도로 죽어지는 진정한 섬김의 정신으로 살

아가기를 말입니다.

2013. 1. 통권 1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