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 web: www.svkem.org | twitter: @sfsvkem | contact: [email protected] December 9, 2012 Vol. I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은... 열림의 대화, 나눔의 영성, 자유의 복음을 지향합니다. 주일 기도 모임: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목요 대화 카페: 매주 목요일 오후 7시~9시 Chromatic Coffee, Lawrence & Stevens Creek, Santa Clara 요 카페 풍경 오늘도 많은 대화가 오간 목 요 카페였습니다. 종교와 신 앙에 관한 기초적이고 근본적 인 질문에서 시작하여, 자신 의 신앙 내력과 나이가 들면 서 얻게 되는 새로운 변화와 마음가짐에 관해 편안하게 나 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막바지에는 자리를 정치와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과 책임에 관 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불교 신자이면서도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카페를 다시 찾으신 한 분은 종교(자신이 속한 불교) 안에 서 사람들이 구도의 길을 걷기보다는 몇몇 종교인 과 종교지도자의 손가락만을 보면서, 정작 달을 바 라다보지 않는 것 같다고 염려합니다. 이게 어디 불교만의 문제일까요? 어느 종교든 그 목적은 ‘초월’입니다. 초월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 지요. 그것은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희망과 의 지입니다. 자기 울타리 밖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미 지의 공간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은 아직 자기 울타리 안에 있지만, 달은 그 너머에 있 지요. 그 너머를 향한 태도와 노력이 매우 중요합 니다. 이 목요 대화 카페에 머물러 기다리는 이가 성공회 신부인지라, 성공회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오시는 군요. 이 카페에서 성공회 신부를 만난 뒤에야 이 웃에 퍼져있는 미국의 성공회 Episcopal Church여럿, 눈에 보이게 되었노라는 이야기도 전해주십 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요. 이제 환갑을 넘으신 손님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패 기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대신에, 삶에서 누리고 즐겨야 할 작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작은 것 들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선에 대하여, 그리고 체험 을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얼마나 즐거운지 전해 주 십니다. 우리는 사랑 이야기도 나눕니다. 부부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과 우정 등도요. 부부생활은 참 어 렵지만, 나이들 수록 축복인 것을 깨닫는다는 고백 도 나옵니다. 가족은 늘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과 도한 기대를 접고 서로 닮아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요. (뒷면에 계속)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209

  • Upload
    sv-kem

  • View
    223

  • Download
    2

Embed Size (px)

DESCRIPTION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209

Citation preview

Page 1: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209

1

web: www.svkem.org | twitter: @sfsvkem | contact: [email protected] December 9, 2012 Vol. I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은... 열림의 대화, 나눔의 영성, 자유의 복음을 지향합니다.주일 기도 모임: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목요 대화 카페: 매주 목요일 오후 7시~9시 Chromatic Coffee, Lawrence & Stevens Creek, Santa Clara

목요 카페 풍경

오늘도 많은 화가 오간 목요 카페였습니다. 종교와 신앙에 관한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신앙 내력과 나이가 들면서 얻게 되는 새로운 변화와 마음가짐에 관해 편안하게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막바지에는 자리를 정치와 사회에 한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불교 신자이면서도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카페를 다시 찾으신 한 분은 종교(자신이 속한 불교) 안에서 사람들이 구도의 길을 걷기보다는 몇몇 종교인과 종교지도자의 손가락만을 보면서, 정작 달을 바라다보지 않는 것 같다고 염려합니다.

이게 어디 불교만의 문제일까요? 어느 종교든 그 목적은 ‘초월’입니다. 초월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희망과 의지입니다. 자기 울타리 밖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미지의 공간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은

아직 자기 울타리 안에 있지만, 달은 그 너머에 있지요. 그 너머를 향한 태도와 노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목요 화 카페에 머물러 기다리는 이가 성공회 신부인지라, 성공회에 한 궁금증을 물어오시는군요. 이 카페에서 성공회 신부를 만난 뒤에야 이웃에 퍼져있는 미국의 성공회 Episcopal Church가 여럿, 눈에 보이게 되었노라는 이야기도 전해주십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요.

이제 환갑을 넘으신 손님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패기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신에, 삶에서 누리고 즐겨야 할 작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작은 것들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선에 하여, 그리고 체험을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얼마나 즐거운지 전해 주십니다.

우리는 사랑 이야기도 나눕니다. 부부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과 우정 등도요. 부부생활은 참 어렵지만, 나이들 수록 축복인 것을 깨닫는다는 고백도 나옵니다. 가족은 늘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과도한 기 를 접고 서로 닮아가는 일이 필요하다고요. (뒷면에 계속)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Page 2: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209

2

현존 - 자유 - 의식 현존 - 이 시간 잠시 멈춰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과 은총을 생각합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모습 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그분의 성전으로 만들어 주셨음을 생각합니다.

자유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도전의 메시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도전에 우리 자신을 여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의식 - 지난 몇 달간 우리 삶의 어느 부분에서 희망과 격려와 성장을 느낄 수 있었는지 돌아봅시다. 우리 삶에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왔던 활동과 일들을 살펴봅시다.

주일 기도 모임

주일 기도 모임은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과 사회 속에서, 속도와 소음이 넘쳐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잠시 비켜나게 하여, 침묵과 오랜 전통의 이야기, 그리고 삶의 솔직한 나눔, 그리고 다른 이를 향한 시선을 훈련합니다(현존-자유-의식).

성서의 말씀을 듣고 되새기며 성찬을 나누는 것은, 죽음의 잔과 고난의 세례를 감당하면서 창조세계와 이웃을 섬기셨던 예수의 실천을 따르기 위한 작은 훈련입니다. 우리의 몸을 작은 떡과 한 모금의 잔으로 남에게 건네 서로 먹여주는 연습입니다. 우리는 주일 오후 5시에 모입니다.

이야기는 흘러서 종교 간 화의 문제로도 옮아갑니다. 서로 다른 종교가 주장하는 진리가, 결국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 다른 종교 안에서 자기 종교의 논리와 언어를 발견할 때 얻는 느낌과 새로운 도전에 관한 질문과 자신의 체험이 오갑니다.

우리는 어느 종교든지 ‘진리’를 주장할 수 있을지언정, 진리를 움켜쥐거나 소유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전체 진리의 파편, 즉 ‘일리’만을 저마다 가지고서 다른 이들의 지닌 ‘일리’와 서로 나눌 뿐이지요.

종교 간 화를 할 때는 너무 쉽게 “모든 종교는 하나다”라고 외쳐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각 종교는 저마다 생겨나고 발전한 맥락과 그 신앙을 지켜온 서로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요. 우선 그 맥락에서 나온 전통과 논리를 유심히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이는 커피숍이 끝나도록 화가 좀 아쉬워서, 옆 맥줏집으로 옮겼습니다. 분위기 때문일까요? 거기서는 존 레넌의 노래에 담긴 삶의 진실, 돈 맥클린의 빈센트 반 고흐 노래, 그리고 고흐의 삶과 예술에서 느낀 경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예술 관련 화에 맥주가 잘 어울리네요.

오늘 ‘중년들’(?!)의 모임이 만들어낸 풍요로운 화를 다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 정치사를 겪으면서 얻은 고민과 통찰, 분노와 희망을 나눈 시간은 꽤 심각했습니다. 지금

선 투표가 진행되고 있지요. 왜곡된 역사의 사슬을 끊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요.

오늘도 솔직한 화 카페를 열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합장.

Page 3: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209

3

성서 독서

"로마 황제 티베리오가 다스린 지 십오 년째 되던 해에… 총독, 영주… 그리고 당시의 사제는 안나스와 가야파였다. 바로 그 무렵에 즈가리야의 아들 요한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성서 대화 길잡이

루가복음 기자는 어째서 오늘 복음의 시작을 정치 권력자들과 종교 권력자들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상황에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등장합니다. 진리를 향한 예언자의 외침은 사회 종교 정치적 상황과 긴 하게 연결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정치 권력자들과 종교 권력자들이 앉은 거 한 총독부 건물, 그리고 성전과는 조적으로, 세례자 요한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아니 헐벗은 모습으로 광야에서 등장합니다. 그 조가 뚜렷합니다. 그는 광야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표합니다.

루가가 전하는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의 목소리와 겹칩니다. 그의 선교는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요?

“높은 산을 쳐서 골짜기를 메우는 일” – 바로 잘못된 차별과 위계, 불평등과 불의를 펴서 곧고 평등하게 바로 잡는 것이지요.

이것은 루가복음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선포가 보여주듯이, 예수의

오심은 기존 질서가 뒤바뀌는 일, 즉 기존 질서가 전복되는 일과 관련됩니다. 마태오복음이 ‘산상’ 설교를 말하고 있다면, 루가복음은 그 똑같은 내용을 ‘평지’ 설교로 보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루가에게는 높낮이가 없는 관계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한편, 우리는 광야와 곧은 길, 그리고 산이 꺾어져 골짜기를 메운다는 표상을 우리 삶에도 비추어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복음은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을 향한 근본적인 도전을 요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만의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아니, 그 광야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안에 있는 거짓 신의 힘을 부서뜨리기 위해서라도 이런 광야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걸어야 할 광야는 우리 자신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리 내면의 악마와 면하고, 그것을 넘어서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죠. 이러한 광야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 하느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왜곡되고 비뚤어진 우리의 의식, 선입견, 신앙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관하여 가진 편견과 고집을 바로 잡을 때라야, 나약한 아기로 오시는 메시아의 역설을 받아들이고, 십자가 위에서 힘없이 죽는 구원자를 믿을 수 있습니다. (뒷면에 계속)

Page 4: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209

4

본회퍼와 함께 걷는 연말 40일 여정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은 매일 본회퍼의 짧은 글을 읽으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올해 연말까지 40일 여정을 경계 위에서 본회퍼와 함께 걷지 않으시렵니까? 그의 글과 지침을 이메일로 제공합니다. 받아보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 [email protected] 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마지막 페이지와 웹페이지를 참조 하세요.

“만일 어떤 미친 운전자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내 임무는 그 사고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타서 그 미친 운전자에게서 운전 를 빼앗아야 합니다.”

-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높은 산이 눕혀지고 골짜기기 메워진다는 비전은 우리 인간관계에도 해당합니다. 사회적 관계의 불평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웃과 친구와 가족과 맺는 관계에 마련한 골짜기들을 메워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 고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이렇게 사회의 여러 관계, 인간 내면의 여러 관계가 제 길을 찾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내리시는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경계에 선 파수꾼, 세례자 요한의 선포입니다.

(이글의 Sound Bite 는 여기서 들을 수 있습니다.)

“본회퍼와 함께 걷는 40일 여정” 발췌

23일.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형제에 한 경험이 아니라, 형제애에 한 튼튼하고 확실한 믿음입니다."

24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모든 기 와 소망은 공동체를 훼방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깨져야 합니다”

25일. “도움은 밖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26일. "공동체 안에 있을 때만이 우리는 홀로 설 수 있고,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공동체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둘을 결코 분리할 수 없습니다."

27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하듯이,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도 형제자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배우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28일. “공동체가 있는 것은 어디에나 도와주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가장 사소한 섬김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악의 얼굴 앞에서 침묵하는 것 자체가 악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말하지 않는 것도 말하는 것이며, 행동하지 않는 것도 행동하는 것입니다." - 디트리히 본회퍼

Page 5: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209

5

후원 안내

열린 신앙 공동체의 싹을 틔우려는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후원해 주세요. 고맙게도 몇몇 분이 저희 모임 진행을 위해 헌금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공회 캘리포니아 교구 아시아 사목 회의에서도 워크숍 및 웹페이지 제작 등을 위해 후원해 주었습니다

헌금이나 후원을 원하시는 분들은 주일 모임이나 다른 방법으로 홍승환 목사님, 최종훈님께 직접 주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http://www.svkem.org/support/ 에 방문하여 Paypal 로 보내

실 수도 있습니다. 헌금과 후원은 비영리기관으로 등록되는 로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재정의 운용과 후원방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들은 홍승환 목사님, 최종훈님께 알려주세요. 고맙습니다.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web www.svkem.org | twitter @sfsvkem |contact [email protected]

편집자 주: 아침마다 이메일로 보내드리는 본회퍼 글에 이미애님이 매번 자신의 영성일지 부분을 보내주십니다. 그 내용 하루 치를 이곳에 옮깁니다. 이미애님 고맙습니다.

섬김 vs. 함께함

신부님께도 평안한 주일이셨지요?

오늘 주신 본회퍼의 글에서 "섬김"에 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저게는 다른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그 표현이 아직 낯설기만 합니다.

저는 아직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 마음과 자세가 되어있지 않기에

제가 하는 행동들을 감히 섬긴다고 표현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단지,' 함께한다'라는 표현이 더 좋습니다.

'이웃을 섬긴다'를'이웃과 함께한다'로 바꾸면 편안해지는 것은

저에게 아직도 더 많은 훈련의 과정이 필요함을 압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웃은 남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제껏 살면서 물질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남편이겠지요. 그래서 그 곁에서 조용히 함께함으로써 힘든 마음의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또, 내 주위에서 나의 힘이

필요한 이웃이 있다면, 그저 그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

내 힘이 닿는 로 도움을 주는 것, 나를 이웃으로 삼는 것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

매일 나누는 말씀 안에서 주시는 지혜 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내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넘쳐흘러서,

내 곁에 있는 이웃이 같이 평안해지는 것을 바라면서,

'지금'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함께할 이웃이 있기에 저는 복된 사람입니다.

이미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