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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논문집 철학논집 212010. 05. (神話) - - ( ) 요약 , . . . . , ' ', . . 주제분류: 근대철학, 근대독일철학 핵 심 어: 유한자, 무한자, 인간, , 초인간, 수난사

신화의 서사시_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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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신화의 서사시_강유원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논문집

철학논집 제21집 2010. 05.

신화(神話)의 서사시

- 정신현상학의 한 독법을 위한 서설 -

강유원 (동국대학교)

요약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 인간과 신의 통일은 헤겔 사변 철학의 핵심

주제이며 이에 대한 탐구는 정신현상학 읽기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신은 참다운 사랑이므로 이는 실정성을 띤 제도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신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말은 청년헤겔의

확신이기도 하다. 정신현상학은 헤겔 청년기 저작의 귀결이며 이어지는

후기 저작들의 원천이거니와 이것은 세 차원의 변증법에서 드러난다.

정신현상학은 단테의 신곡, 천국 편의 주요 모티프인 '초인간', 신과의

합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정신현상학은 수난사의 사변적 재구성이다.

주제분류: 근대철학, 근대독일철학

핵 심 어: 유한자, 무한자, 인간, 신, 초인간,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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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은 헤겔 사변철학의 핵심 주제이다. 주지하

듯이 정신현상학 최후 단계의 절대적 지, 철학적 재학집성(哲學的

諸學集成, 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im

Grudrisse)최후 단계의 절대적 정신은 외따로 존재하는 무한자가 아

니라 유한자의 운동의 성과이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것’, ‘절대적

지’, ‘절대적 정신’은 유한자의 변화를 통해서 발전하는 무한자요, 그

런 까닭에 유한자의 변화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것이다. 기존의

철학사상에 있어 절대적인 것인 무한자는 대체로 유한자와 대립되는

것이었다면, 이처럼 유한자를 매개로 함으로써 비로소 성립하는 무한

자는 헤겔 철학 특유의 것이다.

유한자를 매개로 하여 전개되는,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에 이르는 참다운 무한자[眞無限]라는 개념은 여러 가

지 방식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무한자가 유한자를 계기로 운동

한다는 것, 이는 절대적인 것이 시간 속에 놓여있다는 것, 즉 절대적

인 것의 역사성을 의미한다. 역사는 시간 속의 모든 유한자들의 단순

한 집적이 아니라, 선행하는 것이 후행 하는 것의 필연적 계기로 포섭

되면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요, 시초부터 종국에 이르기까지의 전 역사

는 진리 전체인 것이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정신을 헤

겔은 '세계정신'이라 부르며, 그것을 객관적 정신론의 마지막 부분인

역사철학에서 논의한다. 다른 한편으로 무한자를 신, 유한자를 인간으

로 본다면 유한자와 무한자의 진정한 통일은 인간과 신, 신과 인간의

통일을 뜻할 수도 있겠으며, 이는 헤겔 철학에서 신학적인 부분을 이

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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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헤겔에 있어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 또는 인간과

신의 통일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이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사유인가를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의미를 짐작해봄으로

써 정신현상학 읽기에 관한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헤겔이 튀빙겐 신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사실, 그의 사상에 기독교

신학이 전제되어 있음은 종종 간과되곤 한다. 그는 튀빙겐 신학교를

마친 1792년 이후 7, 8년 동안 스위스 베른과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글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신학과 관련된 것들은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으로 묶였다.

1 여기에 실린 글들은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신학적인

것이라기보다 예수의 생애, 기독교의 현실적 위력 등에 관한 것으로

일종의 종교 비판에 해당하는 것이다.2

1. 청년헤겔에 대한 관심은 딜타이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청년기 헤겔을 강의하고

1905년에 청년 헤겔의 역사(Die Jugendgeschichte Hegels)를 출간하였다.

그의 강의에 자극을 받은 제자 헤르만 놀은 헤겔의 신학적 단편들을 모아

1907년에 헤겔 청년기 신학논문집(Hegels theologische Jugendschriften)을 간행하였다. 대개 '청년 헤겔의 신학논문'이라 하면 이 책을 가리키며, 이

책으로 인해 청년 헤겔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은 놀의 책에 몇 편의 논문을

더한 것인데, 핵심적인 논문들, 즉 <민중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 <예수

의 생애>, <기독교의 실정성>,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이 포함되어 있다

는 점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2. 헤겔 청년기의 사상과 성숙기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성숙기의 사상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신비주의 사상과 비교하는 논의도 있다.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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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3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은 기독교가 공동체 종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기복 신앙에 머물러 있음을 논하면서 이처럼

화석화된 기독교가 진정한 공동체 종교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

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I. 그 교설은 보편적 이성에 근거해 있

어야 한다. II. 환상, 마음, 그리고 감성이 공허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III. 민중종교는 삶의 모든 욕구, 공적인 국가 행위가 이 종교와 연결

되게 하는 특성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헤겔은 종교가 삶의 모든 욕

구와 연관되어야 하고, 국가와도 관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계몽

주의 시민종교의 맥을 이은 듯하지만, 그가 “감성”과 “욕구”를 강조한

것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시민종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민중 종교는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라는 항목 아래 서술하는 것들

을 보아도 분명하다: “물신신앙을 피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계

몽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음으로써 이성의 요구에 부응했다고 믿

는 것, 교조적인 교설에 붙들려 영원히 서로 으르렁거림으로써 자신도

타자도 개선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말 많은 우리 시대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4 헤겔이 공동체 종교에게 요구하는 것은 개인이

테면 이부현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라는 책 역자 후기에서 에크하르트의 사

상을 1)창조 이전의 아버지와 아들 및 사물의 원상들의 관계(내재적 삼위일

체)를 바탕으로 하는 신론, 2)피조물의 본성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론, 3)신과

인간의 역동적 관계로 집약하고, Hegel의 철학체계를 1)창조 이전의 신의 영

원한 자기 운동을 서술하는 논리학, 2)신의 피조물인 자연에 대한 고찰은 자

연철학, 3)신과 인간의 역동적 관계를 서술하는 정신철학으로 구획하여 비교

하고 있다.

3. 이 말은 ‘Volksreligion’을 번역한 것인데, ‘민족’이나 ‘민중’으로 번역되는 독

일어 Volk가 과연 한국어와 정확한 의미대응 관계에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이 술어는 희랍어 polis의 독역으로 보아 '공동체'라 옮기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4.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 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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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가지고 생생하게 참여할 수 있는 주관적 종교임을 알 수 있으

며, 이는 객관적인 제도적 장치로서의 종교를 철저하게 배격하는 것이

다.

객관적인 제도적 장치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의 실정

성> 논문의 핵심이다. ‘실정성(Positivität)’은 본래 주관이 객관 세계

에 정립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그것을 정립한 주체

를 억압하는 상황이 되면 단순히 정립된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

나의 자립적 실체로서 주관의 도덕적 자율과 대립된다. 헤겔이 보기에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정치. 문화 등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

하는 제도적 장치인데, 이는 본래 예수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예

수는 자기의 종교에 대한 가르침을 자기만의 고유한 관례를 가진 종

파로 고양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이 종파로 고양된 이유는 그의 동

료들의 열성 때문이고, 그들이 그 가르침에 덧붙인 주장들 때문이며,

그 주장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이유들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정적 종파로 만드는 데 있어서 한편으로는 예수의

제자들의 성격과 재능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과 그들의 선생의 관계

방식이 그것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가 질문되어야 한다.”5 예수에게 그

러한 의도가 없었다 해도 기독교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실정적

위력을 가진 제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의 가르침은 최초에 모든

참된 종교와 기독교의 정수로 간주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또한 인간

의 의무와 그 동기를 순수하게 정립하고 지고의 선의 가능성을 신의

이념을 통해 제시할 수 있을 규정으로부터 점점 동떨어져 나가게 되

었다.” 이는 예수의 종교가 배척하였던 유태의 종교로 되돌아간 것이

라 할 수도 있다. “예수의 영혼은 자유로웠고, 우연적인 것에 의존해

5. 위의 책,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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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았다. 그에게 유일하게 필연적인 것은 신과 신처럼 성스러운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 그러나 우리는 그의 계승자들이 … 유태

의 정신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들은 예수의 말에서, 예수

가 보여주었던 것에서 곧바로 규칙과 의무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들의 스승에 대한 자유로운 모방행각이 곧이어 그들의 주인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으로 전이되었다.”6 예수는 참다운 사랑을 설파하였을

뿐 제도화된 종교를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의 제자들은 그의 말과 행

위로부터 규칙과 의무율, 즉 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이 제도가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있다는 것이 헤겔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청년 헤겔이 파악한 예수와 기독교의 진면목은 무엇이었

는가? 복음서를 시대 순으로 배열함으로써 예수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는 <예수의 생애>는 예수를 실천이성의 구현자로서, 기독교를 이성

종교로서 제시한다.

<민중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단편>, <기독교의 실정성>, <예수의

생애>는 일관성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도덕적 종교로서의 기독교,

개인의 주관에 호소하는 종교로서의 기독교, 현실적인 제도로서의 기

독교의 부정, 도덕 교사로서의 예수가 그것이다.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은 칸트적 도덕성에 의존했던 이전 논문들과는 달리 이제 그것

만으로는 실정성을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도 여전히 주제

는 ‘실정성 극복’이요,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총체성으로서의

6. 위의 책, p.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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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삶에 이르지 못한 채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

다.

삶은 전체이다. ‘삶은 전체’라는 입장에서 보면 초월적 신은 분리의

정신이 산출한 추상일 뿐이다. 계시된 신에 대한 믿음은 추상적인 것

이요, 우리는 그것을 앎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것으로 삼을 때에

야 비로소 그 믿음은 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초월적 신의 내재화 또

는 인간화, 더 나아가 인간의 신화(神化, deification)가 삶의 총체성의

완전한 복원이다. 참다운 의미의 종교는 삶의 총체성에 이른다. 사실

예수의 가르침은 그것에 이르는 출발점이었다. “요한복음에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종교적인 내용에 대해, 그와 신과의 관계에 대해,

그의 공동체에 대해, 그의 아버지와의 통일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그

의 추종자들이 그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강조한다.”7

예수는 하나가 되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하나가 되는 것은 여러

단계를 거쳐 간다. 앞의 세 논문들에서 일관성 있게 강조되었던 것은

도덕적 실천이 실정성을 지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실정성 극복에는 한계가 있다. 사랑이 더해져야 한다. 그러나 사랑으

로도 삶의 총체성에 이를 수 없다. 이제 참다운 종교가 요구된다. 기

독교는 아직 그러한 종교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여기서 헤겔은 기독

교가 어떠한 종교가 되어야 하는지, 삶의 총체성으로서의 종교는 어떠

한지를 예수의 말과 행위를 통해 상세히 서술하고 마지막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당시에 기독교가 처해 있던 운명을 재서술한다.

예수는 인간의 “충동,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예수가 속해있던

유태민족에 대한 직접적인 반란의 형식을 띤다. “주인에 대한 단순한

복종만을 강요한 명령들, 기쁨도 즐거움도 사랑도 없는 직접적인 노예

7. 위의 책, p.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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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복종의 사태, 즉 신에 대한 예배만을 강요하는 무의미한 명령들,

바로 이러한 유태의 정신에 대항하여서 예수는 그것과 정확하게 대립

되는 것, 즉 인간의 충동, 욕구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 충동과 욕구

는, “그러한 욕구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느껴지고 보존되기 때문”에

“현실에 더 이상 대립되지 않은 완벽한 통일체를 이상(理想) 속에서

서술하고자”8하는 종교적 행위로까지 전개될 수 있다.

이상의 성취는 욕구를 억압하는 실정적인 것의 제거를 필요로 한

다. 예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서 먹음으로써 유태의

율법을 공격했다.”9 예수는 “성스러운 시간[안식일]과 인간을 비교하

여 전자가 인간 욕구의 사소한 만족보다 열등하다고 천명한다.” 즉

“예수는 그들의 눈에서조차 안식일의 성스러움이 반드시 절대적일 수

없으며, 이 명령을 준수하는 것 이상으로 더 위대한 것이 있다는 사실

을 스스로 알도록 그들에게 증명해 주었다.”10 예수는 빵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유태의 관습을 부인하기도 한다. (마태, 15:2) 그것

에 구속되는 대신 그는 “인간의 총체적 주관성”을 내세운다. 이것으로

써 충동과 욕구가 재정의 된다. 그는 “유태인들의 실정성에 인간을 대

립시켰다. 그는 법과 의무 대신에 도덕을 내세웠으며, 이 속에서 실정

적 인간의 비도덕성이 극복된다.”11 그러나 도덕은 또 다른 배제를 만

들어낼 뿐이며, 인간의 삶의 총체적 국면을 드러내지 못한다.

헤겔은 도덕을 넘어선 단계를 사랑이라 본다. “사랑 속에서의 화해

는 유태인들이 하듯이 복종에로의 회귀가 아니라 해방이며, 지배를 재

차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적인 유대관계, 즉 사랑의 정신과 상호

8. 위의 책, pp. 524-525.

9. 위의 책, p. 526.

10. 위의 책, p. 527

11. 위의 책, p.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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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의 서사시 203

적인 믿음을 재산출하는 가운데 그런 지배를 철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신은 … 최고의 자유이다. 이러한 상태는 유태인의 정신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즉 유태인의 정신과 대척점에 있는 상태이다.”12 이러

한 사랑은 인간과 신의 관계까지도 재규정한다. 이제 예수는 최고의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념을 거침없이 펼친다. “유태인들은 신을 그

들의 주인으로, 그들에 대한 지배자로 생각했다. 이에 반해 예수는 이

러한 이념 대신에 신과 인간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대치

했다.”13 이 관계는 “살아있는 자들의 살아있는 관계이자 그 자체 삶이

다. … 따라서 신의 아들도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다.”14

더 나아가 “예수는 자신을 신의 아들(Sohn Gottes)이라고 부를 뿐

만 아니라 사람의 아들(人子, Sohn des Mensche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호칭에서 인간과 신은 하나가 된다. 즉 예수는 '신이 된

인간'인 것이다. “신의 아들은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다. 신적

인 것이 특수한 형상을 입고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신과 인

간의 합치를 알지 못하는, 총체성으로의 “삶을 분열시키는 반성은 삶

을 무한자와 유한자로 구별한다.” 이러한 오성적 반성의 입장에 서서

“유한자를 그 자체로서만 고찰하게 되면 인간 개념은 신적인 것에 대

립하게 된다.”15 이는 바로 유태인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들은,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

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 14:9-12)는 예수의 말

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하였다. “그가 분명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

구하고 스스로 하느님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16 그들은 신이 된 인

12. 위의 책, p. 567

13. 위의 책, p. 582

14. 위의 책, p. 589

15. 위의 책, p. 592

16. 위의 책, pp. 59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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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예수는 객체로서의 신, 무한자를 자신 안에 들여온다. “신적인 것에

대한 믿음은 믿는 자 안에도 신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그가

발견한 것이 자신의 고유한 본성임을 의식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는 자신이 믿고 있는 대상 속에서 자기 자신의 본성을 재발견한다. 왜

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빛과 삶이 있고, 그는 빛을 소유하고 있기 때

문이다.”17이 빛은 스스로 빛나면서 삶과 통일된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믿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삶으로 된 사람들, 즉 신적인 것

을 간직한 사람들은 그 본질에 있어서 예수와 어떠한 차이도 없어야

한다.”18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신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개별자 예수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 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다. 그러고 나서 그들 자신의 정신, 또는 신적인 정신이 그들

속에 살게 된다.”19이는 예수가 예견했던 바이기도 하다.

20 이로써 예수

와 그의 제자들은 신성한 영혼, 즉 성령 속에서 신과 하나가 되었다.

“믿음의 완성, 즉 인간이 태어났던 신에로의 복귀와 더불어 인간 발전

의 순환은 끝난다. 모든 것은 신 안에서 살며, 삶이 있는 모든 것은 신

의 자녀이다.”21 그들은 “자기의 본질이 신적인 정신으로 가득 찬 사람

들, 신적인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 그 본질이 자기 속에 충만한 신적

인 것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22이다. 그에 따라 “인간들 속에 신적인

것이 지배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신의 피조물로서 신에게 복종

17. 위의 책, p. 597.

18. 위의 책, p. 600.

19. 위의 책, p. 605.

20.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께서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요한, 16:7)

21. 앞의 책, p. 606.

22. 위의 책, p.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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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의 서사시 205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됨으로써 맺게

되는 관계는 그들이 신의 아들이 된다는 말”23이고, 이는 그들이 또 다

른 예수가 된다는 것, 무한자와 유한자의 통일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

들이 모인 공동체는 바로 “신의 왕국”24이다.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신을 숭배하

는 제도로 귀착된 기독교는 이러한 “신의 왕국”을 이루어내지 못하였

다.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신과 세계,

신적인 것과 삶과의 대립에서 발생하는 극단들 사이에서 …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못 잡았다. … 그리고 교회와 국가, 예배와 삶, 경건

함과 덕, 정신적 행위와 세속적 행위가 결코 하나로 용해될 수 없다는

사실이 기독교의 운명”25으로 고착된 것이다.

기독교의 분열적 운명을 극복하여 총체성의 삶에 이르고 그에 따라

유한자와 무한자의 진정한 통일, 즉 인간의 신화를 성취하는 것이 바

로 청년 헤겔에 있어 철학의 과제이거니와, 1807년에 출간된 청년기

의 마지막 저작 정신현상학은 이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주지하듯이 정신현상학은 “(A.)의식”, “(B.)자기의식”, “(C.)이

성”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C.)이성”은 다시 “(AA.)이성”,

“(BB.)정신”, “(CC.)종교”, “(DD.)절대적 지”로 세분된다. 의식과 자

기의식은 주관-객관의 문제를 주제화한다. 여기서 헤겔은 의식이 타

23. 위의 책, p. 611.

24. 위의 책, p. 612.

25. 위의 책, p.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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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재가 되는 것을 전제하며, 그러한 타자는 의식 자신의 외화의 산

물이므로 결국 자기로 귀환한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세계는 정신의 산

물이 된다. 이러한 논의는 건전한 상식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따

라서 우리는 이것을 정신의 적극적 힘에 관한 강조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정신은 자연의 제약에서 벗어난, 다시 말해서 자연과학적 인

식론의 범주에서 다룰 수 없는, 자유라는 별개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함을 함의하는 것이다.

이론이성(“A. 관찰하는 이성”), 실천이성(“B. 자기 자신을 통한 이

성적 자기의식의 실현”), 사회적 이성(“C. 그 자체 즉자대자적으로 실

재적인 개체성”)을 세부 항목으로 가지는 “(AA.)이성”과 “(BB.)정신”,

“(CC.)종교”는 객관적 역사적 세계에서의 정신의 전개를 논의한다.

선행하는 논의에서 헤겔은 정신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

을 언명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창조가 자연과학적 물질의 창조

가 아닌 인간의 활동을 통한 역사 세계의 창조임을 확인하였다. 여기

서 인간은 공동체의 삶과 그것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

성을 자각하는 존재로 파악되거니와, 이 때 인간의 이성은 그저 객관

을 파악하기만 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를 역사적인 시간 속에서

반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역사 또한 인간의 이성

성에 부합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이성에 부합하

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초역사적 이성과도 합치한다. 역사는 이

성적인 것이요, 동시에 이성은 역사적인 것이다.26 역사적 세계와 연속

되어 있으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것의 영역에서 성립하는, 다

26. 널리 알려진 법철학 서문의 ‘이성의 역사성, 역사의 이성성’ 명제, 즉 “이성

적인 것은 현실적이다.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의 의미가 이것이다. 이에

관한 개괄적 논의는 Krasnoff, L.,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An

Introduction, pp. 10-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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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의 서사시 207

시 말해서 (넓은 의미의) 이성은 객관적 역사적 세계와 절대적인 것의

세계 모두에 관철되는 것이다.27 이는 인간의 이성이 두 차원 모두에

걸쳐 있음을,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함축한

다 하겠다. 정신현상학 세 번째 부분이라 할 “(DD.)절대적 지”는 절

대적인 것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이 제시되거

니와, 이는 앞서 청년기 신학논문에서 주제적으로 논의되었던 것이기

도 하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은 신이 되어야만 절대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으며, 이로써 근대 계몽주의의 기획에서 시작된 자유 구축의 프

로젝트가 완성될 수 있다. 즉 이 프로젝트는 헤겔에 이르러 신화된 인

간의 절대적 자유라는 전환을 이룩하게 된다.

정신현상학은 이처럼 서로 다른 차원의 변증법, 즉 주객변증법,

역사변증법, 절대변증법을 아우르고 있는데, 이들 각각은 인간의 총체

성을 구성하는 세 차원을 표상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정신현상학은 감각적 확실성에서 시작하여 절대적 지에 이르는 인간의

의식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결코 느긋한 도정이 아닌 '절망과

회의의 도정'이다. 그렇다면 청년기 신학 논문에서는 절대변증법의

단계만을 이야기하였던 헤겔이 인간의 이러한 노고의 도정 전체를 상

술하려는 구상은 어디에서 착상된 것일까? 우리는 그가 1802년에

<비판적 철학 잡지>에 발표한 논문인 믿음과 지식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해 볼 수 있다.

그는 여기서 “도덕적 명령이나 형식적 추상의 개념이었던 것에 철

학적인 실존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거니와, 이러한 철학적

실존을 우리는 정신현상학의 서술로 드러난 인간 의식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서술은 “절대적 자유

27. 이 점은 “(AA.)이성”, “(BB.)정신”, “(CC.)종교”, “(DD.)절대적 지”가 “(C.)

이성”의 하위범주라는 것에서 구조적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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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철학논집 21집

의 이념과 더불어 절대적 수난을 회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

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그리스도의 수난의 날 대신에 사변적인 그리

스도의 수난의 날을 재건하고, 그리스도 수난의 날 자체를 전체의 진

리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가혹함 속에서 사변적으로

복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구의 과정은 “가장 깊은 바닥에서부터 동

시에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자기 형태의 가장 명랑한 자유로 상승하

면서 부활”28하는 과정이다.

정신현상학은 “가장 깊은 바닥에서부터 …… 가장 명랑한 자유로

상승”하는 과정을 “사변적인 그리스도 수난의 날을 재건”하는 방식으

로 서술한다. 철학집성 ‘정신철학’의 ‘주관적 정신’, ‘객관적 정신’,

‘절대적 정신’은 정신현상학의 세 변증법과 상응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철학’의 목적은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에서 제시했던 신과

인간의 합치에 관한 논의를 체계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기독교가 비

로소 신의 인간됨[화육(化肉)]에 관한 교리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

령의 현존에 관한 교리를 통해 무한한 것에 관한 완전히 자유로운 연

관을 인간 의식에게 부여했으며, 이를 통해서 정신을 그 절대적 무한

성에 있어서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이제 그러한 파악만

이 철학적 고찰이라는 이름을 갖는다.”29철학의 과제는 정신의 파악,

인간과 신의 합치에 관한 개념적 고찰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신과 인

간의 통일 및 그러한 인간의 공동체, 즉 “신의 왕국”에서 현전한다.

“기독교에서는 신이 자신의 외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났다고

말한다. … [이] 명제는 참으로 신의 본성이 아들을 갖는다는 데 있음

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신은 자기를 구별하여 유한자가 되지만, 자

신의 구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곁에 있으며, 아들에게서 자기 자신

28. 믿음과 지식, pp. 268-269.

29. <정신철학>, §377, Zusatz,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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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의 서사시 209

을 직관하고 드러내며, 아들과의 이러한 통일로써, 즉 이러한 타자에

있어서의 대자존재로써 절대적 정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들은 드러남의 한갓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드러남의 내용이

다.”30 신은 아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 자체로

서 이미 신이다. 따라서 아들과 신은 하나이다. 이제 철학은 이것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철학은 표상의 방식으로 주어져 있는 이

러한 내용을 개념 혹은 절대적 지의 형식으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절대적 지는 그러한 내용에 대한 최고의 드러냄

이다.”31 이렇게 본다면 정신현상학은 헤겔 청년기 저작의 귀결이면

30. <정신철학>, §383, Zusatz, p. 35

31. <정신철학>, §384, Zusatz, pp. 39-40. 우리는 Hegel이 '정신철학'의 마지막

이자 동시에 철학집성의 마지막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2권 7

장 (1072b 18-30)을 인용함으로써 끝마치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인용

은 그에 대한 헤겔의 완전한 동의를 뜻할 것이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하

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유는 사유 대상, 즉 본질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것을 가짐으로써 발휘/실현된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

유 대상의) 소유가 (잠재/가능 상태의) 힘보다 더 ‘사유가 가지는 듯한 신적

인 것’이며, 이론적인 활동이 (무엇보다) 가장 즐겁고 가장 좋은 것이다. 그

런데 우리가 한때 있는 그런 좋은 상태에 신은 늘 있다면, 이는 굉장한 일이

며, 게다가 신이 놓인 상태가 (우리의 것보다) 더 좋다면, 이는 더욱더 굉장

한 일이다. 신은 그런 더 좋은 상태에 (늘) 있다. 그리고 그는 생명을 또한 가

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정신은 가능 상태에서 현실적인 사유로 이

행함으로써 사유를 하기 때문에 그의 사유는 영원할 수 없으나 신적인 정신

은 언제나 사유 활동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을 참조할

수 있다: “‘인간이니 인간적인 것을 생각하라’, 혹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이니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들이 불사불멸의 존재가 되도록, 또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에 따라 살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 최고의 것이 크기에서는 작다 할지라도, 그 능력과 영예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다.”(1177b 33-1178a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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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철학논집 21집

서 동시에 이어지는 후기 저작들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정신현상학은 과거의 사상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회상하면서 그것

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내비친다. “예전에는 사상과 형상의 풍부함으

로써 천계(天界)를 장식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의미는 [존재

하는 것이] 그것을 천계에 연결시켜주는 빛의 실 가운데 놓여있다.”

이 빛의 실을 따라가는 것은 인간의 “노고”이다. 이 노고는 “인간을

감성적인 것, 조야한 것, 개별적인 것의 탐색으로부터 구출하고, 그의

시선을 별들로 향하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이 신적인 것을 전혀 잊어

버리고, 벌레처럼, 먼지와 [더러운] 물로 순간순간을 만족하며 연명하

기라도 한 것처럼.” 헤겔은 이 “시선이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이 실을

타고 신적 존재에로, 다시 말해 피안의 현재”32로 올라간다고 말한다.

믿음과 지식이 “가장 깊은 바닥”과 “가장 명랑한 자유”를 대비시켰

다면, 정신현상학은 “벌레”와 “신적인 것”을 대비시킨다. 인간이 벌

레에서 신적인 것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그의 “시선을 별들로 향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단테 신곡의 메타포를 발견한다.33 주지하

듯이 신곡의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마지막 행은 모두 “별”이라

는 단어로 끝을 맺는다. 서사시의 주인공 단테34는 지옥 편 마지막에서

32. Phänomenologie des Geistes, S. 14.

33. 정신현상학과 신곡의 비교에 관해서는 Harris, H. S., Hegel's Ladder,

Vol.1, p. 29,endnote, 91 참조. 또한 우리는 셸링이 1803년 <비판적 철학

잡지>에 기고하였던 논문, “Über Dante in philosophischer Beziehung”을

고려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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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의 서사시 211

그의 시선을 별들로 향하며, 연옥 편 마지막에서는 별들에 오를 준비

가 되어 있음을 천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천국 편에서는 태양과 별을

움직이는 신과 하나가 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러면 신곡에서 인간과

신의 합치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성취되는가? 단테가 신과 하나가 되

는 과정은 지옥과 연옥이라는 “벌레”의 단계를 거쳐 온 천국 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단테는 우선 신의 빛으로 들어 올려 진다. 이

메타포가 처음 등장하는 천국 편 1곡 64-75행35은 다음과 같다.36

베아트리체는 그녀의 눈을

영원한 바퀴들에 고정시키고 있었고, 나는 고정시켰다,

66 나의 눈을 그녀에게, 태양에서 거둬들인.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내면에서 변화되었다.

글라우코스가 풀을 맛본 것처럼

69 그를 바다의 다른 신들과 동료로 만들어준.

인간을 넘어서는 것(trasumanar)을 말로

34. 작품 신곡의 주인공은 작품 신곡의 저자인 단테이며, 서사시 안에서 그는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두스라는 인도자들을 따라 지옥에서 천

국을 편력한다. 이는 자신의 여행을 자신이 서술하는 형식을 띠고 있으며, 안

내자들도 단테의 또 다른 자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신곡에는 단테의 분열된 자아들이 펼쳐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고난의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신 안에서 하나가 되는 서사적 자아라 하겠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는 종국을 알지 못한 채 전진하면서 모든 국면을 경험

하는 의식이 있으며, 이를 관조하는 철학자(Für Uns)가 있다. 그러나 더 세

밀하게 따져보면 그러한 경험을 편력하는 의식과 철학자 외에도 의식의 경험

의 학인 정신현상학을 상술하는 헤겔이라는 저자도 있다. 그런 까닭에 우

리는 정신현상학의 주인공인 의식, 의식을 인도하는 철학자, 정신현상학의 필자인 헤겔 모두가 신 안에서 하나가 되는 서사적 자아라고 할 수 있다.

35. 신곡 텍스트는 Robert & Jean Hollander의 伊英 대역본에 근거한다.

36. 행을 식별하기 위해 번역 문장의 어색함을 무릅썼다.

Page 18: 신화의 서사시_강유원

212 철학논집 21집

표현할 수 없겠지만 하나의 사례면 충분하리라.

72 은총이 이러한 경험을 허락하는 이에게는.

내가, 당신이 마지막에 창조하신 것 안에 있었는지는

당신만이 아십니다, 사랑이여, 하늘을 다

75 다스리는, 당신의 빛으로 나를 들어 올리셨으니.

64-66행에서 단테는 영원한 것을 보고 있는 베아트리체를 본다.

이로써 그는 자연스럽게 영원한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영원한 것에

대한 단테의 첫 번째 시선이다. 67-69행에 등장하는 글라우코스의 변

신은 단테 자신의 신화를 암시한다. 70행의 “인간을 넘어서는 것

(trasumanar)”은 단테가 신의 권역에 들어섬으로써 정상적 인간의 한

계를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

말이 천국 편 1곡에서 나왔다는 것은 단테가 천국에서 겪어야 할 기

나긴, 몹시 힘든 교육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단테는 천국의 과정을 겪을 준비가 된 것뿐이요, 33곡에서의

신과의 접촉을 통해서야 비로소 trasumanar의 변형이 완성되는 것이

다. 즉 단테의 trasumanar는 베아트리체를 만난 순간 일어나지만 단

테의 진정한 신화는, 그를 마지막에 준비시키고 신의 봄(vision)을 실

현시키는 베르나르두스를 거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37

천국 편 마지막에서 단테의 신화가 일어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42 여기서 나의 고귀한 봄은 그 힘을 잃었으나

이제 나의 의지와 나의 열망은, 동일한 움직임으로

돌아가는 바퀴처럼, 그것과 함께 돌고 있었으니

그것은 태양과 모든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37. cf. Botterill, S., Dante and the Mystical Tradition: Bernard of Clairvaux

in the commedia, pp. 23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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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의 서사시 213

단테는 마지막 여행 직전에 초월적인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그것도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여기서 신

의 사랑은 단테의 의지와 열망에 작용하고 이로써 단테는 신의 사랑

과 “함께” 돌게 된다. 이로써 신화는 완성된다. 단테의 신화, 신과의

합치는 불현듯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옥이라는 “가장 깊

은 바닥”에서부터 스승의 안내를 따라 스스로를 연마해온 도정의 최

종 성과이다. 그 성과는 “가장 명랑한 자유”이다. 그것은 유한자의 수

난의 역사38를 매개로 하여 성립한 무한자와의 합치이다.

이제 정신현상학 마지막 부분을 보기로 하자.

목표, 즉 절대적 지, 또는 스스로를 정신으로 아는 정신은 그것

들 각각에 있어서, 그리고 정신의 왕국의 구축을 성취해온 정신의

기억을 자신의 도정으로 삼는다. 그것의 기억의 보존은 우연성의

형식에서 나타나는 자유로운 현존의 측면에서 보면 (자유로운 정

신의) 역사이지만, 개념의 체계의 측면에서 보면 현상하는 지의

학이다. 둘을 결합한, 개념적으로 파악된 역사는 절대적 정신의

기억과 골고다의 언덕, 현실성, 진리, (절대적 정신의) 왕좌에 대

한 확신을 이루거니와, 그것이 없다면 절대적 정신은 생기 없는

고독이 될 것이다. 오로지 ---

이러한 정신의 왕국의 술잔으로부터

그에게는 그의 무한성이 부풀어 오른다.39

38. 우리는 신곡에서 주인공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을 편력하는 기간이 그리

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시기와 같은 기간임을 상기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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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철학논집 21집

정신의 전개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정신임을 아는 절대적 정신이

다. 이러한 목표에 이르는 동안 정신은 자신의 왕국을 구축할 뿐만 아

니라 그러한 구축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스스로 운동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그러한 운동을 상세히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

의 전개과정, 즉 역사이다. 그러나 신적 정신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절대적 정신의 드러난 형성태들이다. 이 둘의 결합, 즉 유한한 정신과

신적 정신의 통일은 ‘개념적으로 파악된 역사’, ‘신적 필연성과 결합된

역사’이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는 느긋한 도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골고다의 언덕”40을 거쳐 온 역사이다. 절대적 정신이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결하고 있다면 참다운 무한자가 아니다. 그것은 “생기 없는 고

독”일 뿐이요, 악무한(惡無限)이다. “이러한 역사는 … 절대정신으로

부터 유리된 그 무엇, 신 자체에는 관심 없는 신에로의 여정”41이 아니

라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의 새

로운 종교이며 철학이다.

39. Phänomenologie des Geistes, S. 564.

40. 이는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믿음과 지식 마지막 부분의

청사진을 상기케 한다.

41. 이뽈리트, 헤겔의 정신현상학, II, p. 349. 그런데 그는 “지에 다가서는 개

별적 의식에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정신과 그 역사적 전개에 관련해서, 그리

고 종교에 관련해서 이 새로운 형태가 지니는 의미란 무엇인가?”를 묻고 다

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확실히 그것은 정신현상학에 있어서 가장 애매

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절대지에 관한 매우 압축적이고 추상적인 구절들

도 이 점을 별로 밝혀주지 못함을 우리는 솔직히 시인하여야 한다.”(I, p.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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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의 서사시 215

참고문헌

헤겔,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 정대성(옮김), 인간사랑, 2005. , 믿음과 지식, 황설중(옮김), 아카넷, 2003. , 정신철학, 박구용, 박병기(옮김), 울산대출판부, 2000. ,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rsg. von, J. Hoffmeister, Hamburg, 1952.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김진성(옮김), 이제이북스, 2007. , 니코마코스 윤리학, 강상진 외(옮김), 이제이북스, 2006.장 이뽈리트, 헤겔의 정신현상학 1, 2, 이종철(옮김), 문예출판사, 1989.Dante Alighieri, Paradiso, translated by Robert Hollander, Jean Hollander, Anchor

Books, 2008.Botterill, S., Dante and the Mystical Tradition: Bernardo f Clairvaux in the

Commed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Harris, H. S., Hegel's Ladder vols 1, 2: The Pilgrimage of Reason and The

Odyssey of Spirit, Hackett, 1997.Krasnoff, L.,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An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 이 논문은 2010년 3월 31일 접수되고

2010년 5월 2일 심사 완료되어

2010년 5월 10일 게재가 확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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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철학논집 21집

Zusammenfassung

Epik der Deifikation - Vorspiel für die Auslegung der Phänomenologie des Geistes -

Kang, Yu-Won (Dongguk Univ.)

Die Einheit vom Endlichen und dem Unendlichen, die Einheit von Gott und Menschen sind die Hauptthemen der Hegels spekulativen Philisophie und die Untersuchung darüber gibt uns einen Anhaltspunkt für die Auslegung von "Phänomenoligie des Geistes". Gott ist eine wahre Liebe und dies soll nicht verkleinert werden als eine Verfassung mit einer Positivität. Das Wort von Jesus "Mensch ist Gottessohn und Menschensohn" ist eine Überzeugung vom jungen Hegel. Die Phänomenologie des Geistes stellt den Höhepunkt von Werken vom jungen Hegel und eine Quelle von seinen späten Werken dar, und das ist in der Dialektik von 3 Dimensionen zu sehen. Die Phänomenologie des Geistes enthält Hauptmotiven von 'Paradiso', Dante, Die GöttlicheKomödie, wie "trasumanar" und Einheit mit Göttern. Die Phänomenologie des Geistes ist eine spekulative Rekonstruktion der Passiongeschichte.

Key words: the finite, the infinite, human being, God, the superhu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