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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이 성 백 요약문 들뢰즈는 그에 의해 독창적으로 해석된 니체 철학을 통해 좌파의 철학 적 패러다임의 지위를 누려온 헤겔의 변증법을 전복하고자 시도한다. 90년 대에 들어서서 한국의 좌파 철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주의 철학이 좌파 철학을 대표하였으나, 현실 변 화에 불감증이 걸려 있지 않다면 이제 더 이상 변증법이나 역사유물론이 현 실을 충분하게 해석해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운 좌파의 철학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들뢰즈는 대립,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부정의 부정 등 변증법의 핵심 개념들을 해부해 들어가면서, 변증법의 근본적인 한계들을 비판하고 있다. (1) 대립이 아니라, 차이가 사물의 근원적인 존재방식이며, 대립은 차 이로부터 파생된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대립을 근본으로 삼아온 변증법은 차이를 사유하는 데에 무능하다. 변증법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부정적인 관계로만 파악하고 있다. 차이의 긍정이 사물들 사이의 긍 정적인 관계를 개념화한다. (2)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노예해방의 원리를 충분히 개념화 하고 있지 못하다. 주노 변증법의 상호인정은 인격들 간의 대등한 상호존중 이성백서울시립대학교 시대와 철학 2007 제18권 1호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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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이 성 백 55)

요약문

들뢰즈는 그에 의해 독창 으로 해석된 니체 철학을 통해 좌 의 철학

패러다임의 지 를 려온 헤겔의 변증법을 복하고자 시도한다. 90년

에 들어서서 한국의 좌 철학은 기에 처해 있다. 70년 와 80년 에

걸쳐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주의 철학이 좌 철학을 표하 으나, 실 변

화에 불감증이 걸려 있지 않다면 이제 더 이상 변증법이나 역사유물론이

실을 충분하게 해석해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운 좌 의 철학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들뢰즈는 립, 주인과 노 의 변증법, 부정의 부정 등 변증법의 핵심

개념들을 해부해 들어가면서, 변증법의 근본 인 한계들을 비 하고 있다.

(1) 립이 아니라, 차이가 사물의 근원 인 존재방식이며, 립은 차

이로부터 생된 추상 이고 사변 인 개념에 불과하다. 립을 근본으로

삼아온 변증법은 차이를 사유하는 데에 무능하다. 변증법은 사물들 사이의

계를 부정 인 계로만 악하고 있다. 차이의 정이 사물들 사이의

정 인 계를 개념화한다.

(2) 헤겔의 주인과 노 의 변증법은 노 해방의 원리를 충분히 개념화

하고 있지 못하다. 주노 변증법의 상호인정은 인격들 간의 등한 상호존

▪이성백|서울시립 학교

시대와 철학 2007 제18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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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논하고 있으나, 이는 단지 반응 힘의 보편화에 불과하다. 진정한 노

해방은 인격들 간의 추상 이고 형식 인 상호 등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 개인들의 극 힘이 최 한 발휘될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극

인정이어야 한다.

(3) 변증법의 부정의 부정은 존의 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허

정에 불과하다. 변증법은 존을 비하하는 허무주의의 화신이다.

참된 정은 오로지 존을 정하는 것, 존의 결백을 믿는 것뿐이다.

들뢰즈의 변증법 비 은 매우 통렬하며, 한 변증법의 여러 한계를

하게 짚어내고 있다. 들뢰즈의 비 이후 변증법이 어떤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변증법의 과제가 된다.

주 제: 사회철학, 문화철학, 유럽현대철학

검색어: 변증법, 니체 철학, 차이, 허무주의, 대립, 모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부정의 부정,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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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니체 작 체가 ‘ 구에 반 해서’ 주요 개념

들을 이끌어나가고 있는지 보지 못한다면, 그의

작 부를 잘못 이해하게 된다. 헤겔의 테마들

이 니체 작 속에서 그것이 투쟁하는 으로서

존재한다.”1)

1. 들뢰즈의 철학: 니체를 끌어들여 헤겔 살해하기

미셸 푸코는 “아마도 언젠가 이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들뢰즈의 사상을 높이 평가하 다.2) 이런 푸코의 언이

거짓된 것이 아니었다. 21세기를 맞이한 오늘날 들뢰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세상을 떠난 1995년 이후 들뢰즈는

“ 철학의 심 거 ”3)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 10년

간 서구철학계에서 그의 사상에 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학계에서도 랑스 포스트구조주의 내지 포스트모

더니즘에 한 이론 심이 푸코, 데리다 등을 경유하면서 이제 들

뢰즈로 모아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들뢰즈의 사상은 네그리

의 사상과 더불어 헤겔주의 맑스주의에 의거한 통 인 좌 이론

의 신과 확장으로, 지구 자본주의 시 에 요구되는 좌 의 새

로운 이론 근거로 반향을 얻고 있다.

니체와 철학 에서의 들뢰즈의 니체 해석은 니체 철학에 한 독

* 이 논문은 2004년도 서울시립 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1)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 284 쪽

2) 미셀 푸코, 철학 극장 (Theatrum Philosophicum), 1977, p.165. 스티 베스트,

더 라스 , 탈 의 사회이론 , 1995, p.108에서 재인용.

3) 슬라보이 지젝, 신체없는 기 -들뢰즈와 결과들 , 2006,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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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창 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의 니체 해석은 20세기 후반기 니

체철학이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 다. 본 연구는 들

뢰즈가 니체철학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을 주제

로 한다. 니체철학을 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본 연구가 표면상으

로는 니체 연구의 범 에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본

연구의 의도는 니체 해석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 들뢰즈의 철학을 해

석해 보려는 데에 있다. 들뢰즈의 니체 해석에서 니체는 단지 거울의

역할을 담당할 뿐이며, 그 속에 비추이는 것은 다름 아니라 들뢰즈

자신의 얼굴이다. 따라서 본 연구가 들뢰즈의 니체 해석을 들여다보

려는 것은 니체란 거울을 통해 드러내려고 한 들뢰즈 자신의 철학

주장이다. 들뢰즈는 가타리와 함께 쓴 철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철

학을 재와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에 기여하는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하는 실험으로 정의한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철학은 개념 속에서

의 정치이다. 새로운 개념들의 창조는 새로운 세계의 생성을 한 새

로운 사회 실천을 추동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니체 해석을 통해

재를 복할 어떤 새로운 철학 개념을 창조하는 있는가? 바로 이

물음이 본 연구가 그의 니체 해석에서 고찰하려는 주제이다.

재와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에 기여하는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하려는 들뢰즈의 이론 작업은 이 인 에서 이해될 수 있

다. 하나는 말 그 로 보수 실을 비 으로 해부하는 새로운 진

보 인 개념과 이론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 실을 변

하려는 진보 이론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 에서 들뢰즈의 이론

작업은 기존의 진보 이론을 확장하거나 신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이다. 이 두 번째 에서 볼 때 과연

들뢰즈는 기존의 진보 이론에 무엇을 문제 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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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어떤 새로운 개념과 이론을 안으로 제시하고 있는가? 진보 이론

의 신이라는 이 두 번째 이 들뢰즈의 이론을 고찰하는 데에 있

어서 일차 으로 심을 끄는 목이라 할 수 있으며, 바로 본 연구

가 들뢰즈의 니체 해석을 고찰하려는 직 이고 동기이다.

들뢰즈는 그에 의해 독창 으로 해석된 니체 철학을 통해 기존의

좌 철학의 자리를 차지해온 헤겔의 변증법을 복하고자 시도한다.

변증법을 계보학으로 체하려는 들뢰즈의 시도는 기존 좌 철학의

자기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서구의 헤겔주의 맑스주의의

표자격인 게오르그 루카치는 이성의 괴 에서 니체를 “제국주의

시기의 비합리주의의 정 자”로, 시즘 철학의 변자로 규정하

고, 이후 이는 변증법 통 속에서 거의 공리로 간주되어 왔다. 그

런 극우의 철학을 들뢰즈는 좌 의 철학으로 만들려하고 있는 것이

다. 도 체 니체 철학 속에 무엇이 있기에 들뢰즈는 그의 철학을 좌

철학으로 해석해내는 담하고도 아슬아슬한 작업을 감행하고 있

는 것인가?

90년 에 들어서서 한국의 좌 철학은 기에 처해 있다. 70년

와 80년 에 걸쳐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주의 철학이 좌 철학을

표하 으나, 실 변화에 불감증이 걸려 있지 않다면 이제 더 이상

변증법이나 역사유물론이 실을 충분하게 해석해낸다고 보기는 어

렵다. 새로운 좌 의 철학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니체를 끌어들여 헤겔을 살해하여 만들어낸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은

재와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내는 데에 성공

하 는가? 그의 주장 로 이제 우리도 변증법을 살해하는 데에 동참

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들뢰즈의 비 을 귀담아 들으면서 변증법을

다른 방식으로 살려내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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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2. 절대적인 반변증법으로서의 니체 철학

들뢰즈는 니체 철학을 헤겔의 변증법에 한 면 인 비 으로

해석한다. “반헤겔주의가 공격의 날처럼 니체 작을 가로지르고 있

다.” 그래서 니체 철학이 헤겔 철학을 반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니체 철학 체를 제 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니체 철학은 “변증법

의 가장 잔인한 이자 유일하게 심오한 ”이다.4) 이제 “ 인

반변증법”인 니체 철학을 통해 들뢰즈가 변증법을 어떤 식으로 비

해 나가고 있는지를 고찰해 보자.

1) 다원주의와 변증법

들뢰즈는 변증법을 비 하는 첫 실마리를 다원주의(pluralism)

를 변증법과 구별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얼핏 외견상 변증법은

다원주의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변증법은 사물들을 계

속에서 악한다. 사물들이 계 속에서 악되어야 하는 한, 근본

으로 사물들이 다원 으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변증법은 사

물들의 다원성을 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물들

의 다원성은 변증법에 있어서는 지양되고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상정

되고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들뢰즈에 따르면 “헤겔은 ‘이것, 것, 여

기, 지 ’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할 지 모를 소박한 의식과 다원주

의를 동일시하면서, 다원주의를 조롱하고 싶어했다.”5) 이 듯 다원

4) 들뢰즈, 니체와 철학 , 29-30 쪽.

5) 앞의 , 22 쪽. 들뢰즈의 이 지 은 헤겔의 정신 상학 의 제1 , 「감각

확신, ‘이것’과 ‘사념’」을 의미하고 있다. 헤겔은 여기에서 감각 으로 악

되는 개별자를 직 으로 존하는 것으로 악하는 감각 확신, 즉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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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주의를 조롱하는 변증법에 반해, 들뢰즈는 다원주의(달리 부르자면

경험주의)를 “철학의 가장 고귀한 쟁취”로 천명하며, 이 다원주의가

니체 철학의 본질임을 확인한다. “하나의 사물이 여러 의미를 가진다

는 다원주의의 이념 속에서 …… 우리는 철학의 가장 고귀한 쟁취,

참된 개념의 쟁취, 그것의 성숙을 본다.”6)

외견상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변증법은 본질 으로

는 “차이 자체에 한 원한 오해”7)인 것이다. 다원주의를 니체 철

학의 본질로 상정하면서 들뢰즈가 다원주의를 변증법 비 에 있어서

첫 번째 문제로 제기한 것은 들뢰즈가 변증법과 니체 철학을 가르는

근본 인 구분선을 립과 차이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

즈가 변증법에 해 여러 측면에 걸쳐 다양한 비 을 하고 있지만,

그의 비 의 핵심은 립(모순, 동일성)과 차이에 있다.8) 변증법이

립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데, 이를 비 하면서 들뢰즈는 립보다

차이가 더 근원 임을 설 하려한다.

들뢰즈는 변증법의 근본이 립에 있다고 본다. 이는 들뢰즈만의

개인 인 견해가 아니다. 이미 헤겔 철학에 있어서 립, 모순은 변

증법의 핵심이다. 모든 사물들은 다른 사물들과 립 계에 있고,

이때 립 계는 우연히 발생한 계가 아니라, 사물들의 근원 이

험주의의 입장을 인식에 있어서 가장 보 인 것으로 자리매김하 다. 헤

겔에 따르면 모든 개별자는 보편을 통해 매개되어 있다. 감각 확신은 개

별자가 보편 으로 매개된 개별자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6) 앞의 , 22 쪽.

7) 니체와 철학 , 277 쪽.

8) 립(동일성)과 차이의 문제에 해서는 이미 다른 에서 다루었기 때문

에, 이 에서는 간단히 언 하도록 한다. 졸고, 「동일성 비 을 통해서 본

포스트구조주의의 사회 비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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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고 본질 인 존재방식이다. 나아가 사물들 사이의 계만이 아니라

변증법은 사물 자체도 내 으로도 립 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사물들은 내부 으로 정과 부정의

두 측면으로 립되어 있다. 즉 사물들은 “ 립물의 통일”, 모순이다.

이 모순을 헤겔은 사물들의 본질로 고정시키고 있다. “모든 사물들은

그 자체에 있어서 모순 이다.”9) 헤겔 변증법의 본질, 맑스의 표 을

빌자면, 변증법의 합리 핵심은 바로 모순에 있다.

이 립과 모순 개념을 들뢰즈는 실에 부합되지 않는 추상 이

고, 사변 인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비 한다. 이것이 사물의 근원

인 존재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변증법-필자 첨가)은 힘들,

이것들의 성질들, 이것들의 계들이 유래하는 실 요소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은 그 요소로부터 추상 으로 다루어진 징후들

속에 반 되어 있는 뒤집힌 이미지만을 인식한다. 립은 추상 산

물들 사이의 계의 법칙일 수 있지만, 차이는 립을 단순한 외 으

로서 생산하는 생성이나 생산의 유일한 원리 자체이다. 변증법은

립으로 살아간다.”10) 립과 모순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생 인

것에 불과하다. 사물의 본질은 차이이며, 립은 차이로부터 생된

외 에 불과한 것이다. 사물이 립으로 보이는 것은 차이라는 실

요소가 불식된 채 이 실 요소로부터 유리된 추상 인 계 속

에서 사물들에 한 이미지가 뒤집어져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들뢰즈

에게는 태 에 차이가 있었다. 존재는 차이다. 그리고 립 내지 모

순은 이로부터 생된 것이다. “ 립을 가정하는 것이 차이가 아니라

차이를 가정하는 것이 립이다. 그리고 립은 차이를 해소하기는커

9)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Bd. Ⅱ, 74쪽.

10) 니체와 철학 , 27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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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녕, 다시 말해서 근거로까지 끌고 가기는커녕, 차이를 왜곡하고 변질

시킨다.”11) 이에 따라 들뢰즈는 립과 모순 개념을 기각하고, 차이

를 사물의 본질로, 사물의 본질 인 존재방식으로 제시한다. “니체는

부정, 립, 모순의 사변 요소를 정의 상이자 향유의 상인

차이라는 실제 요소로 체한다.”12)

변증법이 사물들 사이의 립 계를 말하기 때문에 외견상 다원

주의로 보이지만, 들뢰즈에 의하면 변증법은 도리어 본질 으로 차이

를 배제하는 동일성의 논리이다. 변증법이 사물들 사이의 계를, 다

른 식으로 표 해서 주체와 타자로서의 객체 사이의 계를 립 계

로 설정하고 있지만, 이 립이 주체와 타자 사이의 넘어설 수 없는

차이, 혹은 주체와 같아질 수 없는 타자의 고유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 로 주체는 타자가 자신의 외화임을 자각하고, 이를

통해서 양자 간의 립이 주체의 자기 동일성으로 해소된다. 따라서

변증법에 있어서 립은 동일성과 동 의 양면에 불과하다. “동일자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차이는 립이나 모순에까지 이르지 않는다.”13)

립이 설정되고 있지만, 이 립은 이어 주체의 동일성으로 지양된

다. 그리고 립이 주체의 동일성으로 지양되는 과정에서 타자의 차

이가 배제된다. 동일성을 제로 하기 때문에, 주체와 객체간의 차이

가 립으로 비추어지는 왜곡이 발생하고, 차이의 배제와 억압이 결

과된다.

그런데 왜 변증법은 사물들 사이의 계를 립으로 보게 되었을

까? 그리고 들뢰즈는 왜 사물들의 계를 차이로 보려고 할까? 들뢰

11) 차이와 반복 , 134쪽.

12) 니체와 철학 , 30쪽.

13) 차이와 반복 ,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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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즈는 계를 립으로 보려는 것과 차이로 보려는 것 사이에 한

시각의 차이가 있음을 지 한다. 변증법은 계를 말한다. 그 기 때

문에 계를 말하는 이상, 그것은 변증법을 말하는 것이고, 변증법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존재

자와 타자의 모든 계가 변증법을 형성할 정도로 충분한 것이 아니

다. 모든 것이 이 계 속에서는 부정의 역할에 의존한다.”14) 들뢰즈

는 계를 구별한다. 변증법은 계의 부가 아니라, 특정한 한 방

식일 뿐이다. 변증법은 계를 부정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부정

계의 방식이고, 이에 해 들뢰즈는 ‘ 정 계’라는 다른 계의

방식을 제시한다.15) 이 정 계가 들뢰즈가 주장하는 다원주의

와 차이의 계이다. 립의 계가 사물들이 상 와 부정 으로

계하는 방식이라면, 차이의 계는 정 으로 계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사물 A가 다른 사물 B와 마주치게 되었다고 하자. 이때

A는 자기 앞에 마주 서 있는 B를 어떤 상 로 받아들일까? 처음 본

B라는 상 는 A에게 낯설고 자신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A는 B

의 다른 , 차이를 감과 으로 느끼고, 자신의 존립을 해

서 B의 존립을 부정해야 하는 것으로 계를 악한다. 이 게 자신

의 존립을 해 상 를 부정하려는 부정 계가 변증법 립의

배후이다. 이런 부정 인 계에 해 들뢰즈는 정 인 계를 말

한다. A와 B는 다르다. 그러나 A와 B는 서로에게 해 감이 아

니라 친근감을 갖는다. A와 B는 자신의 존립을 해 상 를 배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상호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한다. A와 B

14) 니체와 철학 , 29쪽. 강조는 필자

15) 들뢰즈는 명시 으로 ‘ 정 계’라는 표 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들뢰

즈의 취지를 살려 필자가 사용한 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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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는 서로를 정한다. 이러한 정 계, 차이의 정이 들뢰즈가

보기에 모든 사물들이 자신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존재방식이다. “니

체의 작 속에서 한 힘과 다른 힘의 본질 인 계는 결코 본질 속

의 부정 인 요소로 간주되지 않는다. 타자와의 계 속에서 스스로

복종하는 힘은 다른 힘이나 자신이 아닌 바를 부인하지 않으며, 자신

의 고유한 차이를 정의 상으로 만든다. 그것은 자신의 차이를

정하고 이 차이를 향유한다.”16) 부정 인 계로만 볼 아는 변증

법은 들뢰즈가 보기에 더 근원 이고 궁극 인 정 계를 담아내

지 못하고, 도리어 이 정 계를 왜곡하고 은폐할 뿐이다. 바로

여기에서 궁극 인 존재의 방식을 해명하지 못하는 변증법의 한계가

드러난다.

2)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니체는 주인과 노 의 계에 해서 논한다. 그런데 들뢰즈가 공

격 상으로 삼고 있는 헤겔이 이미 그 유명한 “주인과 노 의 변증법”

에서 주인과 노 의 계에 해 논했다. 니체가 헤겔의 “주노 변증

법”을 염두에 두고 주인과 노 의 계의 문제를 거론한 것인지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니체의 주노 계를 해석할 때 들뢰즈는 직 으로

헤겔의 “주노 변증법”을 겨냥하고 있다.

들뢰즈가 니체의 주인과 노 의 계를 해석하고 헤겔의 주노 변

증법을 비 해 나갈 때 우선 확인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들뢰즈가

이 계를 다루면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인과 노 의 계를

철폐하고 노 가 해방되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주인과 노

16) 앞의 , 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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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의 계의 철폐에 반 하려는 것인가? 우선 이 물음에 있어서 헤겔

은 자이고, 니체는 후자이다. 그 다면 니체의 입장에서 헤겔의 주

인과 노 의 변증법을 비 하는 들뢰즈도 후자의 입장이지 않겠는

가? 그 지만 들뢰즈가 추구하는 것이 후자일 수는 없다. 이는 좌

노선이 아니라 보수반동주의 노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들뢰

즈에게는 헤겔의 주인과 노 의 변증법을 비 하기에 앞서, 우선 주

노 계의 철폐를 반 하는 니체 철학을 노 해방의 논리로 뒤집어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들뢰즈의 니체 해석은 바로 이 에서 니체

인 니체 해석이 아니라, 니체를 복하는 니체 해석이고, 망치로

니체의 보수반동주의 요소를 때려 부순 해석이다. 맑스의 유물론

변증법이 거꾸로 서있는 헤겔의 념론 변증법을 바로 세우는 도

해석이었듯이, 들뢰즈의 니체 해석도 니체를 뒤집어 놓은 복

해석이며, 반니체주의 인 니체 해석이다.17)

니체는 힘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생명체를 발견하는 곳에서 나

는 힘에의 의지를 발견했다.”18) 모든 것은 힘이다. 힘들은 스스로를

유지하고 나아가 더욱 강화하려고 한다. 자신을 더 강화하려는 힘들

은 서로 투쟁한다. 투쟁의 결과로 지배하는 힘, 강자, 주인과 지배받

는 힘, 약자, 노 의 계가 형성된다. 이 주인과 노 의 계를 니체

17) 그동안 들뢰즈의 니체 해석의 이론 성격, 들뢰즈의 니체 해석이 니체철

학의 복 해석이란 것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 다. 들뢰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들뢰즈의 니체 해석을 니체 철학의 계승 해석으로 여겨 아

니체를 맑스를 넘어 새로운 좌 의 철학 이념을 제시한 ‘좌 ’ 철학자로

간주한다. 맑스는 좌 이나 헤겔은 좌 가 아니듯, 들뢰즈는 좌 이나, 니

체는 우 다. 다른 한편 성의 철학 담론 에서 하버마스는 푸코 등

포스트모더니즘을 니체 철학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만 고찰함으로써, 포스

트모더니즘이 열어놓은 해방 사유의 새로운 요소들을 악하지 못했다.

18)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 게 말했다 ,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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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는 다아 의 자생존의 원리에 의거하여 자연스런 삶의 원칙으로

정한다. 삶은 만인에 한 만인의 투쟁이고, 이 투쟁에서 이긴 강자

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 “강자의 우월권”19)이 자연 인 원리라는 것

이다. 주인과 노 의 계를 니체는 철폐될 것이 아니라 견지되어야

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주인과 노 의 계를 철폐하려는 것을 도

리어 니체는 반자연 인 도덕으로 거부한다.

니체의 주인과 노 의 계에 한 견해는 직설법인가 아니면 은

유 인가? 이 견해 자체는 니체에게 있어서도 직설법 이기도 하고,

은유 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견해가 니체에게 있어서 기독교를 비

하고, 정치 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비 하는 데에 그 이론

근거로 동원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탁월한 개인들, 창조

인 인간은 그들의 능력을 정 으로 발휘하여 술과 문화를 발 시

켜야 한다. 이를 해 노 들은 희생해야 한다. “ 술을 발 시키는 넓

고 깊고 효과 인 기반을 마련하기 해서 다수는 소수를 해 개인

인 욕망의 포기를 넘어, 삶의 곤궁을 노 처럼 감내해야 한다.”20) 기

독교는 노 들의 종교이다. 노 들은 강자들의 지배에 항하려 한다.

기독교는 이웃 사랑, 겸손, 복종을 강조한다. 이는 노 들이 주인의 강

한 본성을 제한하려는 노 도덕이다. 기독교의 약자에 한 배려와 균

형의 도덕은 창조 인 인간들이 더 높은 문화를 발 시키는 것을 해

한다. 사회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기독교 인 노

도덕의 연장이다. 민주주의는 우둔한 군 들이 다수의 힘을 이

용하여 주인과 노 의 계를 철폐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에게 있

어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최종 형태이다. “사회주의는-가

19) Nietzsche, Unzeitgemäße Betrachtungen, KSA I, 194쪽.

20) Nietzsche, Fünf Vorreden zu fünf ungeschriebenen Büchern, KSA I, 7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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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이 성 백

장 미천하고 우둔한 골통들의 최종 인 독재로서 ……-실제로

이념들과 이 이념들의 잠재 인 무정부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다.”21)

헤겔의 주인과 노 의 변증법은 인간 평등을 추구하는 노 해방

의 철학 논리이다. 주인과 노 의 지배 계가 폐지되고, 노 가

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를 개념화하고 있다. 인정투쟁의

결과 “독자성을 본질로 하는 자립 인 의식”으로서의 주인과 “타자에

한 존재를 본질로 하는 비자립 인 의식”으로서의 노 의 계가

성립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주인과 노 의 계는 헤겔에게는 지

양되어야 할 계이다. 자립성을 갖지 못한 노 는 당연히 이 계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고, 다시 자기 자신에 한 인정을 추구하게 된

다. 노 는 다른 사람의 자립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인정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립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자립성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자립성을 인정받는 상호인정을

추구한다. 이 게 해서 주인과 노 의 계가 지양되고, 상호인정의

상태에 도달한다. 상호인정은 기독교의 이웃사랑, 타자를 목 으로

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법, 그리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만인평등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헤겔의 주인과 노 의 변증법이 무엇이 문제이기에, 들뢰즈는 니

체를 끌어들여 비 하려 하는 것인가? 들뢰즈에게 있어 헤겔의 주노

변증법은 노 의 해방을 충분히 개념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여

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 의 논리이지, 노 의 해방의 논리

가 아니다. 주노 변증법에서 포착되지 못한 노 해방의 논리를 개념

화하기 해서 들뢰즈는 니체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

했듯, 니체의 주인과 노 에 한 견해는 들뢰즈에게서는 직설법이

21) Nachgelassene Fragmente 1884-1885, KSA 11, 5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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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아니고, 은유로 해석된다. 주인과 노 는 더 이상 인간들 사이에서의

계가 아니라, 개인들 내부에서의 두 활동 방식 내지 측면을 표 하

는 은유 개념으로 환된다. “니체가 우아함, 고귀함,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때로는 능동 힘이고 때로는 정 의지이다. 그가

속함, 비루함, 노 라고 부르는 것은 때로는 반응 힘이고, 때로는

부정 의지이다.”22) 이 게 니체에 있어서의 주인과 노 의 계가

능동성과 반응성이라는 개인들 내부에서의 두 활동 방식으로 해석되

고, 이제 이는 노 해방의 두 가지 길로 제시된다. 극 인 힘은 개

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끝까지 가는 힘이며, 자신의 차이를

정하고, 그것을 향유와 정의 상으로 만드는 힘”이다. 이에 해

반응 힘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서 분리된 힘”, “ 극 힘을

부정하는 힘”이다.23)

이 두 가지 길 에서 변증법은 “기독교 이데올로기”이자, 노

의 이데올로기로서 극 힘이 승리하지 못하고 반응 힘이 승리한

것이다. 그것은 “노 이길 그만두지 않는 노 에 의해서 주인을 체

하면서, 를 차지하고 능동 힘을 함정 속으로 유인하는 반응 힘

들의 상태”이다.24) 상호인정의 원리에 입각한 헤겔의 주인과 노 의

변증법은 단지 반응 힘의 보편화에 불과하다. 변증법에서의 상호인

정은 반응 힘들 사이의 상호인정에 불과하다. 이 반응 힘들 사이

의 상호인정은 실제에 있어서는 힘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

라, 자신의 능동성을 서로 제한하는 것이다. 노 가 여 히 노 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헤겔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주인의 상

22) 니체와 철학 , 110쪽.

23) 앞의 , 121쪽.

24) 앞의 ,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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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이 성 백

이 처음부터 노 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 어도 노 가 스스로 꿈

꾸는 것과 같은 노 를 표 하는 상, 즉 기껏해야 출세한 노 라는

이유에서이다. 주인의 헤겔 이미지 아래서 간 되는 것은 항상 바

로 노 이다.”25)

이 게 주노 변증법은 노 해방의 논리로서 불충분한 것이며, 노

의 진정한 해방은 주인의 자리를 획득하는 것, 다시 말해 능동

힘의 보편화에 있어야 한다. 그 다면 이제 능동 힘의 보편화란 어

떤 것인가? 여기에서 앞에서 논했던 차이와 정 계를 다시 언

해야 한다. A는 B와 다르다. B와 다른 A의 차이를 불식한 채 만일

A가 B를 부러워한다면, 그래서 B를 A의 본질로 삼는다면, 이는 A

가 여 히 속되어 있는 것이요, A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다. B와의 계 속에서 B와 다른 A의 차이를 정하고, A 식으로

사는 것, 이것이 B에게 의존해 있지 않고, B에 해 반응 인 것이

아니라, 능동 인 것이다. “다른 것과의 본질 인 계 속에서 의지는

자신의 차이를 정의 상으로 만든다.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

하는 기쁨’, 즉 차이의 향유.”26)

노 의 진정한 해방은 이 게 해서 들뢰즈에게 있어서는 차이의

정과 향유로 제시된다. 주노 변증법은 노 의 해방을 이제 주인과

노 의 격차를 폐지하고, 인간들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의 인정으로

개념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인정은 아직 노 해방을 충분히 개

념화하고 있지 못하다. 진정한 노 의 해방은 자신의 차이, 즉 특이

성(singularity)이 극 으로 인정되고, 향유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들뢰즈는 주노 변증법에서의 상호인정 속에서 충분히 개념화되

25) 앞의 , 33쪽.

26) 앞의 , 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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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지 못한 차이의 인정을 개념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들뢰즈는 노

해방의 철학 원리를 새로운 수 으로 올려놓고 있다.

3) 긍정의 상이한 두 방식: 디오니소스적 긍정 대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긍정

들뢰즈가 변증법을 공격하는 하나의 지 은 ‘ 존’(Existenz)

과 연 된 정과 부정이다. 변증법이나 니체의 계보학이나 결국 추

구하는 것은 정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정에 도달하기 해 ‘부정

의 부정’이란 우회 경로를 거친다. 니체는 이 부정의 부정을 허

정으로 폭로하고 직 인 정, 디오니소스 정을 참된 정으로

설 한다. 과연 변증법과 니체의 계보학 어느 것이 진정으로 정

의 철학인가? 니체의 비 데로 변증법은 허 정에 불과하고 이제

디오니소스 정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아니면 니체

정이야말로 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떻게든 정을 찾아보려는

허무주의의 마지막 규에 불과한 것인가?

그런데 변증법의 부정의 부정이나 니체의 정에서 도 체 무엇

이 부정되거나 정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존이다. 존이란 태

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세 삶을 의미한다. 유 교와 기독교, 소크

라테스와 라톤에서 의 변증법에 이르기까지의 서구철학은 니

체에 따르면 하나의 일 된 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존의 부정

이다. 존이 고통, 죄, 결여, 유한으로 비하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

하된 존만으로 살아나갈 수 없기에 본질을 찾는다. 신, 이데아, 정

신과 같은 본질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고통스런 존

으로부터 벗어나 구원과 로를 얻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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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내 죄로소이다. 내 죄로소이다.” 언젠가 친구 결혼식 때문에 성당

에 갔더니 결혼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이 고백하던 말이다. 한편으로

어처구니없다고 내심 실소를 치 못하면서 이게 바로 기독교 존

의 부정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이미 죄인이다. 존한다는 것 자체가 죄다. 그러나 죄의 상태

에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신에게서 죄사함을 받고 죽고 난 뒤 가게

될 내세를 믿으며, 존의 고통스런 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

다. 비단 기독교만이 아니라 서구의 역사가 존을 부정하고 비하하

는 허무주의의 역사 다. 니체에게는 더욱이 자신이 살고 있던

의 서구도 여 히 허무주의 다. 칸트의 욕주의와 헤겔의 변증법은

허무주의의 화신이다. 변증법은 “삶을 부정의 노동에 종속시

키고, 삶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 삶의 사지를 자르고, 삶을

부정한다.”27)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변증법은 존의 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헤겔 스스로가 확인하고 있듯이 변증법의 진리는 부정성에

있다. “부정성이 참된 변증법을 형성한다.”28) 변증법이 부정성을 진

리로 하는 까닭은 실, 즉 존 자체가 근본 으로 부정 이기 때문

이다. 모든 것은 그것의 진리, 즉 그것이 존재해야 할 참된 상태, 완

하고 이상 인 상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부정 인 존의

상태로 그 로 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존을 부정하고, 참된 상

태, 즉 본질의 실 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부정의 부정) 존하는

것은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을 즐길 겨를이 없다. 그것은 본

질이 실 되는 미래를 해 부단히 재를 부정하는 노동을 해야 한

다.(부정의 노동)

27) 앞의 , 317쪽.

28)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Bd. I,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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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기독교에서부터 그것의 인 변증법까지 모두 허무주의 속에

서 운동하고 있다. 존으로서의 삶을 비하하고, 유죄로 만들고, 부

정하고 있다. 니체는 존의 삶을 비하하는 이런 허무주의로부터

존을 구원하려 한다. “‘새로운 사유 방식’은 정 인 사유, 삶과 삶

속에서의 의지를 정하는 사유, 결국 모든 부정 인 것을 추방하는

사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미래와 과거의 결백을 믿는 것, 원회귀를

믿는 것이다. 존은 유죄로 간주되지 않으며, 의지 자체도 존의

죄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즉 그것은 니체가 즐거운 소식이라고 부

르는 것이다.”29) 변증법의 부정의 부정은 존의 부정에 근거하고 있

기 때문에 허 정이다. 참된 정은 오로지 존을 정하는 것뿐

이요, 존의 결백을 믿는 것뿐이다.

존을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정할 것인가? 이 존의 문제가

니체의 철학 사유 속에서 근본문제이다. 들뢰즈도 니체의 철학

사유의 모든 노력이 바로 이 존의 문제를 헤치려는 데에 있었음

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니체에 의하면 ‘ 존이 의미가 있는가?’가

철학의 가장 고귀한 물음이다.”30)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존, 이

존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런데 존하는 시간동안 이 존

을 부정하면서 산다면, 이는 정말 허망한 일 아닌가? 그래서 존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존의 문제가 “철

학의 가장 고귀한 물음”이란 니체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니체는 존

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로부터 존을 구원하려하며, 존을 정하라

는 즐거운 소식을 우리에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정하라

는 것인가? 만일 그 어느 군가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을

29) 니체와 철학 , 80쪽.

30) 앞의 ,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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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수밖에 없을 때, 이때에도 존을 정할 수 있는가? 이집트에 끌려

간 히 리 노 들, 노 신분이란 사회 속 뿐만 아니라 평생 동

안 육체 노동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는 이들도 존을 정할

수 있는가? 바로 이들이 기독교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들이며, 허무주

의의 조상이다. 니체의 답은 이 물음에 해서도 존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는 어떤 끔 한 고통이라도 정당화될 만큼 충분

히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비극 인간은 가장 가혹한 고통조

차 정한다.”31)

만약 짜라투스투라가 히 리 노 들 앞에 나타나 아무리 가혹한

고통이라도 정하라고 설교한다면, 이때 이 설교가 히 리 노 들에

게 ‘즐거운 소식’으로 들릴까? 이 물음을 일반화해서 만일 존이 고

통일 때에, 이 고통스런 존도 정해야 하는가? 구나 가능한 한

존을 정하고 싶어한다. 자기의 존을 고통이나 유죄로 생각하며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과 환희 속에서 존을 향유하고 싶어한

다. 그러나 고통스런 존도 정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

지 않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당연히 고통스럽지 않은 존이다.

존 상황이 객 으로 고통인데 이를 정하라고 한다면 이것

한 허 정이 아닌가? 그 다면 이제 니체도 자신이 제기한 존의

문제를 성공 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들뢰즈는 기독교와

그리고 변증법이 존의 부정에 근거하고 있는 허 정이라는 니체

의 발견에 감탄하고, 존을 정하고 향유하자는 니체의 외침에 환

호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니체가 존의 문제의 해결에 성공하지 못

하 다면, 들뢰즈도 한 그러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니체와 그리고

들뢰즈가 존의 문제에 만족스런 답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제

31) Der Wille zur Macht, 1052.

Page 21: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287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존을 궁극 으로 정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결론지어야 하는 것

인가,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할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3. 니체로부터 현존의 고통을 덜어주기

지 까지 들뢰즈의 변증법 비 을 세 가지 핵심 인 측면에서 고

찰해 보았다. 특히 그의 변증법 비 으로부터 어떤 논의들이 좌 철

학의 신에 새로운 시사 을 던져 주고 있는지를 찾아보려는 데에

주력하 다. 그의 변증법 비 은 변증법에 내재해 있는 여러 한계들

을 하게 짚어내었다. 물론 본 연구에서 변증법에 가해진 비 만

이 주로 고찰되고, 한 비 이 설득력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하 으

나, 그 다고 해서 이제 변증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들뢰즈의 반변증

법을 결론 으로 수용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들뢰즈의 비 에

한 변증법 측에서의 반론의 가능성, 들뢰즈 비 이후 변증법의 신

재구성의 가능성은 아직 으로 열려있는 문제이며, 이는 차후

다른 자리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고찰된 들뢰즈의 변

증법 비 에서 드러난 정 인 논의 몇 가지를 간단하게 정리하고,

존의 문제에 한 니체와 들뢰즈의 견해에 몇 가지 문제 을 고찰

함으로써 본 연구를 마무리짓도록 한다.

(1) 들뢰즈는 차이의 개념을 통해서 사물의 근원 인 존재방식을

악하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을 열어 놓았다. 립과 모순을 사

물의 근원 인 존재방식으로 이해하면서 변증법이 차이를 극 으

로 사유하지 못했다는 에서 변증법의 한계를 하게 지 하 다.

모순이 아니라 차이가 사물의 근원 인 존재 방식이고, 모순은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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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이 성 백

로부터 생된 개념이다. 변증법은 모순을 사물의 근원 인 존재 방

식으로 고정시킴으로써, 차이를 제 로 사유할 수 없었다. 사물들 사

이의 계를 모순으로만 으로써, 변증법은 계를 부정 계로만

악할 수밖에 없었다. 차이의 정은 사물들 간의 계를 정

계로 개념화할 수 있는 사유의 길을 열었다. 변증법의 확장 속에서

다루어질 수 있던지, 아니면 변증법 바깥에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던

간에 차이는 앞으로 철학 사유가 극 으로 해명해 나가야 할 개

념이다. 차이는 이 에 해방 사유 속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으

며, 차이는 해방 사유가 앞으로 개념화해 들어가야 할 새로운 공간

을 열어 놓았다.

(2) 헤겔의 주인과 노 의 변증법은 인간 평등을 추구하는 노

해방의 철학 원리이다. 들뢰즈는 주노변증법이 노 해방의 원리를

충분히 개념화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 한다. 주노 변증법의 상호인정

은 인격들 간의 등한 상호존 을 논하고 있으나, 이는 단지 반응

힘의 보편화에 불과하다. 진정한 노 해방은 인격들간의 추상 이고

형식 인 상호 등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 개인들의 극

힘이 최 한 발휘될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극 인정이어야 한

다. 좀 더 구체 인 수 으로 나아가 맑스의 사회주의론에서도 계

해방은 계 철폐란 소극 이고 형식 인 해방만이 주로 사유되었지,

계 철폐 다음으로 계 지배로부터 해방된 개인들의 극 인 능동

힘의 실 이 제 로 사유되지 않았다. 형식 평등주의에 머물러

있었지, 이 형식 평등주의의 기반 에서 개인들의 극 자기 실

의 실질 평등주의가 사유되지 못했다. 이런 에서 볼 때, 차이

의 인정은 기존의 형식 평등 개념으로부터 평등 개념을 한 단계 더

진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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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그런데 들뢰즈가 헤겔의 주노 변증법을 비 한다고 해서 그것의

결론인 상호인정론 자체가 기각되는 것은 아니다. 들뢰즈가 변증법에

한 ‘지나친 원한감정’ 때문에 주노 변증법과 상호인정론 자체를 폐

기하려 한다고 해도, 그의 차이의 인정은 주노 변증법과의 단 이 아

니라, 계승 이고 연장 인 발 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들뢰즈의

차이의 인정도 상호인정의 새로운 내용 규정이지, 상호인정을 반 하

는 인정론일 수 없다. 더욱이 차이의 인정은 헤겔의 상호인정론의 형

식 평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질 평등은 형식 평등을 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의 주노 변증법에 한 비 에 있어서는

들뢰즈의 차이의 인정론은 변증법과 립 인 계로 악될 수 없

고, 상호인정론의 개념 심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3) “철학의 가장 고귀한 물음”인 존의 문제에 해 니체는 만

족할만한 해답을 찾았는가? 니체는 존을 비하하는 서구 형이상학

의 역사를 계보학 으로 아주 미세하고도 통렬하게 해부하고 있다.

니체는 존을 비하하는 방식을 원한감정, 가책, 욕 이상으로 유

형화하고 이에 따라 허무주의의 형태들을 구분한다. 유 교, 기독교,

소크라테스, 칸트, 변증법, 민주주의, 사회주의, 불교 등이 허무주의

라고 해서 다 같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이 다양한 허무주의의 사상들

이 각각 존을 어떤 식으로 비하하고 있는지가 미세하게 분석된다.

존을 비하하는 방식들은 미세하게 계보학 으로 해부되고 있다. 그

다면 존을 비하하는 방식들 이 에 존 자체는 계보학 으로 해

부될 상이 아닌가?

니체에게 있어서 존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세 삶을 의

미한다. 그리고 이 존은 니체에게 항상 고통이었다. 고통으로서의

존, 이것이 니체에게 있어서 존의 의미의 부다. 그에게서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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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백

의 다른 의미는 찾을 수 없다. 고통으로서의 존의 의미를 고정시켜

놓고 니체는 이 존을 비하하는 방식들에만 을 돌렸다. 그러나

존을 비하하는 방식들 이 에 존이 구체 인 상황에 따라 다르다.

구체 인 상황을 배제하고 존을 논하는 것은 추상 이고 사변 이

다. 히 리 노 들의 존 상황, 기독교인들의 존 상황,

소크라테스,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의 존 상황이 다 달랐다. 그

리고 존 상황의 차이가 존을 비하하는 방식들을 다르게 나타나

게 했다. 존 상황의 계보학 분석의 부재가 존의 문제에 해

만족스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게 하 다.

니체의 존 상황은 고통이었다. 그는 고통 아닌 존을 체험하

지 못했다. 그의 고통스런 존 상황이 그에게 있어서 ‘ 존=고통’

이란 존의 의미로 고정되었다. 허무주의가 존을 부정하려 한 근

본 인 동기도 바로 존이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존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에서 허무주의와 니체는 일치한다. 고통스런

존을 어떻게 극복할 지에 있어서 니체는 허무주의와 다른 길로 나아

가려 했다. 허무주의는 존을 부정하는 길을 택했다. 니체는 존을

정함으로써 허무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그런데 그 허무주의의 극복

이란 고통이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낑낑거리면서, ‘어, 나 하나도

안 무거워.’하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통스런 존을 감내하는

것이 존의 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결국 니체 정도 허

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니체 정은 존의 고통을 어떻게든 감

내해 보려는 처 한 규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니체에게 있어서

존이 고통인 한, 그가 자신이 극복하려고 했던 허무주의와 무 가까

이 있다.

허무주의도 아니고, 니체 정도 아니라면 존의 문제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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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히 해결될 수 없는 것인가? 존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다른 길은 존

의 의미 자체를 달리 모색하는 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고통 말고

존의 다른 의미는 없는 것인가? 존이 즐거움과 환희일 수는 없는

가? 존이 즐거움이고, 그래서 존을 정할 수 있다면, 이것만이

존의 참된 정이다. 니체가 그러했듯이, 그리고 니체가 본 허무주

의의 형태들이 그러했듯이 고통스런 존이 존한다. 그러나 니체가

체험하지 못한 즐거움으로서의 존 한 존한다. 존 안에는 고

통스런 존도 있지만 즐거운 존도 포함되어 있다. 포이어바하에게

는 존이 즐거움이었다. 그의 유물론 속에서 기독교 환상으로부터

해방된 육체는 존의 정이었고, 자연은 육체가 향유할 상이었

다. 포이어바하가 월 무한성을 인간의 내재 무한성으로 불러

들 을 때, 그것은 존에 즐거움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즐거

움으로서의 존으로부터 존의 문제를 새로이 풀어나가는 일은 다

른 자리에서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언 해 둘

수밖에 없다. 즐거움으로서의 존의 얘기를 꺼낸 것은 니체 정

이 참된 정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리고 니체가 실패한 존

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두기

해서이다. 고통스런 존도 정해야 한다는 니체 정은 존의

부정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에서 “철학의 가장 고귀한 물음”인

존의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명하지 못하 다.

Page 26: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292

이 성 백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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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투고일 2007년 3월 10일 / 심사일 3월 12일 / 심사완료일 3월 20일

Page 28: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294

이 성 백

Kritik der Dialektik:

Nietzsche Interpretation von Deleuze

Lee, Seong-Paik

Deleuze unternimmt, durch seine originelle Interpretation

von Nietzsche die Hegelsche Dialektik umzuwerfen, die

bisher als philosophisches Paradigma der Linke galt. In

der neunzigen Jahren befand sich die koreanische linke

Philosophie in der Krise. In der siebzigen und achtzigen

Jahre spielten die Hegelsche Dialektik und die marxistische

Philosophie die represetative Rolle in der linken philo-

sophischen Szene. Aber niemand wird nicht mehr behaupten,

dass die Dialektik oder der historosche Materialismus die

Wirklichkeit noch ausreichend interpretiert, wenn man für

die Veränderung der Wirkllichkeit nicht unempfindlich ist.

Es ist nicht mehr zu leugnen, dass die linke Philosophie

neue Konzeptionen braucht.

Deleuze kritisiert die grundlegenden Grenzen der Dia-

lektik, indem er die Kernbegriffe der Dailektik, Gegensatz,

Dialektik von Herr und Knecht, und Negation der Negation

erörtert.

(1) Nicht der Gegensatz, sondern die Differenz ist die

grundlegende Seinsweise der Dinge, und der Gegensazt 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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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nichts mehr als ein von der Differenz abgeleiteter, abs-

trakter und spekulativer Begriff. Die Dialektik, für die der

Gegensatz als Basis des Denkens gilt, ist nicht imstande,

die Differenz zu denken. Sie betrachtet die Beziehung der

Dingen nur unter dem Standpunkt der negativen Beziehung.

Dagegen kann ihre positive Beziehung nur durch den Begriff

der Differenz konzipiert werden.

(2) Die Dialektik von Herr und Knecht konzipiert das

Prinzip der Emanzipation des Knechts nicht genügend. Die

gegenseitige Anerkennung von der Herr-Knecht-Dialektik

redet von der gleichen Achtung zwischen den Personen, aber

diese ist bloß die Verallgemeinerung der reaktiven Kräfte.

Die wahre Emanzipation des Knechts darf nicht an der

abstakten und formellen Gleichheit stehenbleiben, sondern

muß die positive Anerkennung zum Ausdruck bringen, in

der sich die aktiven Kräfte der Individuen voll entfalten

können.

(3) Die Negation der Negation ist nichts anderes als

eine Pseudo­position, weil sie auf der Negation der Exitenz

beruht. Die Dialektik ist die moderne Verkörperung des

Nihilismus, der die Existenz erniedrigt. Die wahre Position

kann nur darin bestehen, die Existenz zu affirmieren, an

der Unschuld der Existenz zu glauben.

Die Kritik an der Dialektik von Deleuze ist erfolgreich,

die verschieden Grenze der Hegelschen Dialektik dar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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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이 성 백

stellen. Nach der Kritik von Deleuze steht die Dialektik

vor der Aufgabe, in welche Form sie rekonstruiert werden

kann.

Subject Sphere: Sozialphilosophie, Kultur Philosophie, Moderne europäische

Philosophie

Key Words: Dialektik, Nietzsche Philosophie, Differenz, Nihilismus, Ge-

gensatz, Widerspruch, Die Dialektik von Herr und Knecht,

Negation der Negation, Existe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