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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3 vol. 01 제작 남소라 1st Issue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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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출판예비학교 마케터반 '갈피'조에서 웹진이 나왔습니다. 창간호 특집으로 우리가 잊었던,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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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July 2013

vol. 01제작 남소라

1stIssue

Page 2: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Contents7월 특집 ; 프랑스 혁명

Intro프랑스 혁명의 현대적 의미

Feature루소의 사회계약론

lecture Interview역사학자 이덕일 <왕과 나> 저자강연회

Review<혁병의 배반 저항의 기억 : 프랑스 혁명의 문화사>

Culture Report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공연

Trend Interview소프트 인문학 -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다> 저자 김무영

New주목해야 할 신간

편집후기

Page 3: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Intro;프랑스 혁명의 현대적 의미editor 김진겸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의 고전적인 예로 취급되나 그것은 그 중 가장 현란하며 특권층

의 양보의 거부와 그것에 인민대중이 격렬히 맞선 사건이며 봉건제에서 자본제로의 "참으로 혁명적인 길"을 열었고 게다가 불가분의 통일체로서의 국민을 만들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부르주아적 질서가 아닌 새로운 사회질서에 관한 사상을 탄생시켰다.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며 중심인 민중의 봉건제에 대한 증오와 시기심은 그들이 평등을 전면의 문제로 드러내게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은 단적으로 자본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근대사회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전제 군주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자 한 여러 민족들에게 불씨를 던진 것이었다.

현 대한민국은 불합리와 차별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기득권 세력의 욕심 때문에 서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노예처럼 일하는 시민들,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혁명가들의 희생, 그리고 혁명가들에게 동조하지만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수많은 일반 사람들을 보면 현재 한국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사기치고 패자에게 두 번 다시 기회를 안 주려는 프랑스 혁명은 현재 한국과 유사하다. 사람보다 법과 원칙을 최우선시 하는 세력 역시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상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람과 약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목소리를 내는 것에 스스럼 없는 용기 있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먹고 산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꿈꾸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이 땅에서 늘어난 걸까? 꿈과 희망이 줄어들고 절망이 늘어가는 사회는 죽어가는 것이다. 현재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로 혁명을 이룰 수 있다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고 너무 길다. 우리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2013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기득권 세력들에게 이용당하고 숨죽여 사는 서민들. 누군가는 그건 각자 스스로의 탓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 차별, 불공정 때문에 노력한 만큼에 결실을 얻지 못하며 국민소득은 증가하지만 부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고 부의 재분배는 이뤄지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는지. 오히려 국민소득과 국민행복지수는 반비례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기득권을 위해 일하는 개미나 노예 역할에 지나지지 않는다.

이제 혁명을 부르짖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혁명이란 우리 세대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후손들에게 더 공정한, 더 따뜻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설사 어른들의 희생을 잊어버리더라도. 현 세대 역시 이름도 모를 과거 세대들의 희생 덕분에 이 정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온전히 우리의 차지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세대에게 물려받은 유산도 있지만 미래 세대에게 물려준 유산 역시 준비해야 한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고 할까? 그렇게 역사의 수레바퀴는 조금씩 돌아가며 진보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 노예제도가 없지만 과연 우리가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곰곰히 생각해볼만한 화두이다. 절망의 시대라도 꿈과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그것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망의 시대이기 때문에 꿈과 희망은 더욱 더 가치 있고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더불어 혁명을 꿈꾸는 것도.

Page 4: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Feature;루소의 사회계약론editor 함연경

1. 프랑스혁명과 사회계약론

프랑스혁명은 대표적인 시민혁명이다. 혁명 이전의 시민은 국왕의 백성에 불과했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국가는 왕의 것이고 왕의 말은 법이었다. 왕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은 신이 그에게 준 축복이었다. 그렇기에 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이른바 왕권신수설이다. 지금으로선 얼토당토않은 이 생각이 당시의 이데올로기였다. 이런 주류사상에 반기를 든 것이 사회계약론이다. 사회계약론은 국가가 신이 왕에게 내린 선물이 아니라, 시민의 합의로 구성된 공동체라는 생각이다.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대표적 사상가는 홉스, 로크, 루소 등인데, 그 중에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됐다.

2. 루소의 사회계약론

사회계약론의 창시자는 홉스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고, 자연 상태를 벗어나 계약을 맺는 이유를 인간의 이기심에서 찾았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라 전제한 홉스는 개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 최초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했고, 한번 계약을 맺은 이상 그것을 번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왕권에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다.한편 루소는 인간본성을 긍정적으로 봤고 사회의 존재에 도덕성을 요구했다. 그가 생각한 사회계약의 이유는 공공선의 실현이다. 그렇기에 국가가 소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시민에겐 혁명으로 계약을 파기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시민이 부패한 구체제에 맞서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3. 직접민주주의

혁명의 권리는 직접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다. 그는 의회가 인민의 대표자가 아니라 대리자에 불과하다고 봤다. 이것은 행위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다. 대표자가 국가의 행위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것과 달리, 대리자는 인민의 뜻을 단지 대리할 뿐이다. 루소, 그리고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직접민주주의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터넷 등 정보통신이 발달한 오늘날 우리는 때때로 직접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런 의미에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고 또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재고해야 할 유의미한 사상이다.

Page 5: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4. 루소의 저서

(1)인간불평등 기원론

역사를 진보가 아닌 타락과 퇴보의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원시적 자연 상태에서 평등한 삶

을 누렸던 인간이 어떻게 불평등하게 되었는

지를 가족, 사회, 국가, 계급의 형성과정을 통

해 면밀히 분석한다. 주경복 교수가 해제를 달

았다.

(알라딘 제공)

(2)에밀

루소는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교육가였다. 그는

교육의 본질이 교사나 문명의 지배와 간섭을

최소화하여 모든 억압과 예속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지키고 정신적 자유를 증진시키는 방

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

에서 이 책은 새로운 인간 이념의 구축과 더불

어 참된 인간 형성이라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

를 되새겨보게 한다.

(알라딘 제공)

Page 6: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Lecture Interview;역사학자 이덕일 <왕과 나> 저자강연회혁명의 시대를 이끈 왕, 그들의 곁에는 참모가 있었다

editor 정우경

집호 웹진의 주제인 프랑스 혁명의 경우에 정통주의 사관과 수정주의 사관의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연구자들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정통주의 사관 대신 수정주의 사관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그러니 동일한 사관을 견지하면서도 상이한 기준에 의거하여 여러 주장을 제기하는 일은 예사이지요. 어쨌든 이덕일 소장의 경우 작금의 우리 역사관은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패권주의사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우리역사의 수수께끼1,2,3권>, <교양 한국사1,2,3권>,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등의 저서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 이덕일 소장은 ‘미래를 향한 현재적 가치를 탐구’하는 역사학자로써, 과거의 시대상과

인물을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 <조선왕을 말하다1,2>,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등 조선사 관련 저술은 조선사에 대한 시각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50여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은 국내 역사 해석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고자 하는 이덕일 소장의 조용한 투쟁의 산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3일, 정독도서관에서는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님의 신간 <왕과 나> 출간기념 저자강연회가 있었습니다. 강의는 책의 내용 중 2가지 꼭지를 갖고 진행되었습니다. <왕과 나>에는 총 14명의 ‘왕을 만든’ 인물이 등장합니다. 김유신, 신숭겸·배현경·복지겸·홍유, 소서노, 정도전, 황희, 김육, 천추태후, 강홍립, 박자청, 인수대비, 홍국영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등 인물들 중에서 김유신, 정도전에 관해 그들이 왕의 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란 글자 그대로 이미 지나간 일이며, 지금은 사라져 없으니 대화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남겨진 흔적인 사료뿐인데, 그것을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하고, 답으로 알고자 하는 사실들과 그 연관을 끌어내야 합니다. 이처럼 사료를 통해 묻고 답하는 사람들이 바로 역사학자입니다.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역사학자 중에서도 엄정한 1차 사료 검증으로 역사 이면의 드러나지 않은 맥을 짚어내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기존 사학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소위 ‘비주류’ 역사학자로 불리고 있습

니다. 정조는 독살 당했고 십만양병설은 지어낸 이야기이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 국가라는 등의 주장으로 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고요하기만 할 것 같은 역사학계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보통 역사를 해석하는 일은 다양한 사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번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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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참모를 재조명하다

생각의 힘으로 세상을 뒤집다 : 정도전

이덕일 소장은 참모사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서술해보려고 생각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 <초한지楚漢志>를 보면 참모의 역할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항우와 한고조 유방의 대결입니다. 항우는 개인적 역량과 집안 배경, 군사적인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유방보다 앞섰습니다. 항우의 군사가 40만 명일 때 유방의 군사는 1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바로 그 때 범증은 유방을 제거해야 한다고 진언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때 유방은 항우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방의 참모인 장량이 항우의 숙부인 항백을 끌어들임으로써 항우는 유방을

죽이는 데 실패하고 맙니다. 결국 목숨을 부지한 유방은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갈라놓았으며 결국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채로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건만...... 우虞여! 우여! 그대를 어찌할 것인가!”라는 유명한 시를 읊으며 죽게 됩니다. 장량의 참모적 기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이 대결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국사를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드물기는 하나 참모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선 참모의 영역을 살펴볼까요? 민생을 안정시키거나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때론 국가의 흥망을 걸고 좋은 정책으로 왕을 도운 사람들, 실력과 노력으로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 등은 참모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한국사의 대표적인 참모를 꼽아보자면 정도전을 꼽을 수 있지요. 그는 이성계를 천명 받은 존재로 만들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그 자신이 아니라 이성계를 개국 군주로 세우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정확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성계와 정

유방이 항우보다 뛰어났던 것은 참모 영입과 그 활용 능력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하나의

차이가 천하의 패자가 뒤바뀌는 결과를 낳았다. 그만큼 참모의 역할을 절대적이다. (중략) 한국사와 중국사의 다

른 점 하나는 참모사와 군주사다. 중국사는 참모사인데 비해 한국사는 장사(長史), 즉 군주사라는 말이다.

도전은 한국사에서 그리 흔치 않게 보이는 군주와 참모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덕일 소장은 강연을 통해 정도전을 우리 역사 속 드물게 있는 정치적 이념을 가진 왕사王師로 평가했습니다. 비록 유랑객의 신분이었지만 한 사람의 유능한 정치적 사상가로써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 왕조를 개창하는 대업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이덕일 소장은 덧붙여, 지금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같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우리 사회 내부에서부터 순리대로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면, 똑같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개인적으로 옛날부터 갖고 있던 의문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되었습니다. 바로 늘 외세에 의한 침략으로 국가 내부의 위기

도담삼봉에 있는 정도전 동상

Page 8: 갈피 웹진 창간호 -프랑스 혁명 특집

가 발생한다고 가르치는 우리 국사 교육이 과면 올바른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한 사회가 문제를 내부로부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사회의 붕괴가 일어난다는 점 아닐까요. 사회 쇠망의 원인을 외부의 영향으로만 판단하려 할 때, 내부로부터의 개혁의지가 사그러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비주류, 주류사회를 바꾸다 : 김유신

김유신은 본래 정통 진골 출신이 아니란 이유로 신라사회에서 배척당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김유신의 골품은 2류 진골이었는데, 이는 김유신 부모의 혼인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의 부친 김서현과 모친의 혼인을 ‘야합野合’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로 혼인한 것입니다. 만약 김서현 가문이 신라의 정통 진골이라면 허락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17세의 김유신은 신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가진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면서 2류 진골이라는 자신의 출신 때문에 진정한 주류 사회로 편입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경주 진골들은 가야 왕족의 후예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데 관심이 있을 뿐, 신라사회의 진정한 주류로 편입시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존의 주류사회에 편입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야망을 갖고 비주류 인물이었던 김춘추를 왕으로 만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김춘추는 비록 왕족 혈통이었으나, 조부 진지왕이 나라 사람들에게 폐위된 임금이라는 하자가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김유신은 이런 이유로 김춘추

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자가 있는 왕족을 내세워 주류로 발돋움하는 것입니다.

김유신이 김춘추를 자신의 야망을 위해 끌어들이는 과정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언니 보희에게서 “서라벌을 오줌으로 가득 채우는 꿈”을 비단 한 필을 주고 산 문희는 결국 김춘추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요. 이를 외면한 김춘추에게 보여주고자 ‘누이 화형식’을 거행한 이야기는 더욱 유명합니다.

선덕여왕 때의 남성 귀족들은 직접 갑옷을 입고 전선에 나서지 못하는 선덕여왕에게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선덕여왕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춘추와 김유신은 다른 남성 귀족들과 달랐습니다. 남성 귀족들 사이에서도 출신의 벽에 가로막혀 비주류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요직에 등용합니다.

남산의 김유신 장군상.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14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추앙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선덕-진덕왕 시대를 지나면서 신라사회의 신주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삼국통일 어젠다를 제시하면서 결국 김춘추를 국왕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김춘추는 비록 백제 멸망 이듬해 사망했으나, 삼국통일이란 그의 어젠다는 문무왕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덕일 소장은 이에 덧붙여 우리 역사상 2번의 통일로 삼국 통일과 후삼국 통일을 들었습니다. 이 2가지 통일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신라의 삼국통일은 백제, 고구려를 무력으로 통일했다는 것이고 고려는 신라의 자발적 투항을 받아냄으로써 후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덕일 소장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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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한다면, 고려식 통일이 해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전해 주셨습니다. 물론 역사 해석에 있어 당대성, 즉 그 시대의 한계를 고려해야 하는 등의 해석의 문제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사관을 계승해야 하는 것, 그리고 단절시켜야 할 것을 나누어 보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이것을 겸허하게 성찰해야만 지나간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 인터뷰Q:한국 주류사학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대학원 다니던 무렵이었죠. 역사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은 상대적 가치를 지니는 법이거든요. 절대적 가치라는 것은 종교의 영역이지 학문의 영역이 아닌데 우리나라에는 특이하게도 정설이란 게 있어요. 정설은 이미 하나로 확실하게 정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현 주류학계는 정설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단이나 재야로 내모는데, 문제는 그 정설의 뿌리가 일제 강점기 식민사관이고 조선 후기 노론 사학이란 거예요. 일제가 식민사관을 왜 만들었겠습니까? 점령하고 보니 한국인들이 일본인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의 뿌리가 역사에 있단 말이죠. 그러니 자꾸 비하할 밖에요. 그 비하의 핵심은 우리 역사의 시공간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보통 반만년 역사로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외국 나가서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외국 서적에는 한국 역사가 1500년이라고 돼 있더군요. 전 세계가 그렇게 알고 있어요. 식민사학이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도 가짜라고 해서 삼국의 역사도 4~5세기에 시작됐다고 하거든요. 그게 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생긴 건데 한국 고대사의 정설이 되었어요.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고 대한민국의 외형도 이렇게 성장했는데 아직도 정신세계는 일본이 우릴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 만든 역사관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주류사학자들은 그걸 하나의 신앙으로 만들어놨거든요. 재야사학자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소위 말하는 주류 역사관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대부분 역사학을 전공한 분들이 아니고 다른 일을 하다가 역사를 접하다 보니 문제를 느껴 역사공부를 깊게 한 사람들이거든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란 뜻으로 일종의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고요.

그러나 저 같은 경우는 학사, 석사, 박사 다 역사학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단지 자신들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야사학의 범주에 놓는 거예요. 심지어는 단국대 윤내현 교수 같은 경우는 하버드에서 학위를 따신 분인데 ‘강단의 재야사학자’라고 규정하거든요. 규정 자체가 파시즘인 거죠.

모든 학문 이론에는 상대성이 있다고 말했듯이, 일제 식민사학이라고 해서 1부터 100까지 다 틀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한 두어 개 정도 맞는 게 있다면 그만한 가치를 부여하면 되는 건데 일제 식민 체계를 절대화하고 신앙처럼 정설로 만들어놓고 동의하지 않으면 재야사학자로 내몰고 있어요. 그런데 역사 전공을 모두 마친 사람이 문제 제기를 하니까 그 진상을 아는 분들 사이에서는 주류사학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평가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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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과연 프랑스 혁명은앙시앵 레짐을 모두 청산했는가<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 프랑스 혁명의 문화사>육영수 저, 돌베개

editor 정우경

해서 과도한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결국 계급 간 경제적 불평등은 점차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가난한 농민은 물론이요, 상공업자들 까지도 무거운 세금과 사회적 의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특권층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시골 신부나 가난한 귀족의 경우 일반 상공업자나 농민에 가까운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구시대의 경우 어쨌거나 문벌이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를 결정했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당시 프랑스의 구조적 차별은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굶주린 파리 시민들뿐만 아니라 구조적 차별에 분노하던 가난한 특권층까지 합세한 민중의 무리가 앙시엥 레짐의 불평등 타파를 부르짖으며 스스로 혁명의 주체가 되기 시작한다. 즉 1789년 7월 이전까지의 차별과 불합리함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일련의 성공을 거둔 가공할 이 혁명은 유럽과 세계 역사에서 정치권력이 소수 왕족과 귀족, 성직자에서 일반 시민에게 옮겨지는 시민사회로의 전환점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소신과 이를 지키기 위한 피나는 투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바라보는 정통주의적 시선이었다면,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에서는 학계의 지배적 이론이었던 정통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수정주의적 해석에 기반을 두고 논의를 펼쳐나간다. “여성에게도 과연 르네상스가 있었는가?”라는 조안 켈리의 물음을 통해 ‘프랑스혁명은 여성에게도 진짜 혁명적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더불어 ‘프랑스혁명이 노동자, 유색인에게도 혁명이었는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역사학자마다 다른 사관(史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 혁명의 근원이라고도 불리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정통주의와 수정주의

18세기 프랑스의 모든 권력은 귀족과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특권계층에게 집중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법적으로 성직자, 귀족, 제3신분의 3개의 신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중세 이래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신분은 여전히 특권층과 비 특권층으로 크게 양분화 되어 있었다. 전체 2700만 인구 중에서 50만이 채 안 되는 성직자와 귀족, 즉 특권층은 전체 토지의 3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세금도 부담하지 않았다. 반면 특권계층은 그들의 향락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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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프랑스 혁명에 관해서만큼은 정통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간단히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통주의적 해석과 수정주의적 해석을 정리해 보자면, 정통 해석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특권 계급이 우위를 차지하던 구체제 아래서 성장한 부루주아지가 정치권력 싸움에서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 민중과 결합, 봉건제를 완전히 파괴한 부루주아지가 선도한 반봉건 사회혁명’으로 프랑스 혁명을 파악한다. 반면 수정 해석은 이에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우선 프랑스 혁명의 반봉건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토지 소유에 입각한 통치 체제로서의 봉건제도는 프랑스 혁명 때 없어진 것이 아니고,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사라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시민 혁명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기존의 귀족과 혁명 주체인 부르주아지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결국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 유산 계급의 혁명이며, 계급 혁명이 아닌 정치 혁명에 불과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영미계 학자들의 수정주의 해석이 받아들여지기까지 격렬한 논의가 상단 기간 이어졌으나, 결과적으로는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세대의 프랑스 역사가들이 등장하면서 정통 해석을 비판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정치사적 측면을 더 부각시키는, 즉 프랑스 혁명을 정치적 문화혁명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가 되었다. 저자 육영수 교수는 이러한 현대 프랑스 역사가들의 새로운 수정주의 해석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은 그가 1997~2013년 사이에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새로이 조망하는 글이지만, 목적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혁명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성찰하는 것이다. 저자의 프랑스 혁명과 현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돋보이는 책이다.

간추려 읽기

1부 :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 혁명은 없다

여성을 위한 프랑스 혁명은 없다?

프랑스 혁명 초기 부르주아 여성들은 청원과 제안 등의 역할 뿐만 아니라 혁명의 대중적 동력을 일으키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부르주아 여성들은 빵을 요구하는 하층계급의 여성들과 함께 대중적인 시위에 앞장서며 혁명의 중요한 대중적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베르사이유 행진 등의 선봉은 여성들이었고 그들을 이끌었던 것은 부르주아 여성들이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이 ‘여성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평등과 우애를 향상’시켰다는 정통의 평가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반박하는 수정주의적 견해가 등장한다. 혁명 전에도 살롱 문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만의 권력을 행사하던 엘리트 여성들을 제어하기 위해 자코뱅 혁명정부가 여성의 집회를 금지시켰고, 또한 남성 혁명주의자들은 ‘젠더에 바탕을 둔 예의범절 코드’를 주조함으로써 여성은 가사에 전념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처치는 모두 혁명의 미완성을 이러한 경계를 넘는 여성들의 탓으로 돌리기 위한 남성 혁명가들의 음모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여성들이 남성 혁명가들에 의해 반혁명 분자라는 오명을 쓴 것과, 나아가 ‘서양의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도 더 선구적이며 희생적으로 여권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프랑스 여성들에게 가장 늦게 참정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프랑스 혁명의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도록 해 준다. 이 장에서 저자는 프랑스 혁명 속의 여성뿐만 아니라 인권선언과 아이티 혁명 사례에 초점을 맞춰 혁명 속 노동과 복지, 유색인에 대해서도 서구 중심주의적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수정주의적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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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영상으로 서술한 프랑스 혁명

세 편의 극영화 <메리쿠르>, <슈앙>, <나폴레옹>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새로운 얼굴을 묘사한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 일어난 이후 끊임없이 예술가들의 단골 주제가 되어 왔다. 최근의 영화 ‘레미제라블’ 역시도 프랑스 혁명 시기를 묘사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장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문자로 쓴 역사’와 ‘영상으로 쓴 역사’를 어떻게 달리 해석하는지 사학사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3부 :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전환

프랑스혁명을 ‘문화적 사건’으로 재조명해보려는 글들을 담았다. 프랑스혁명은 봉건귀족에 대한 부르주아지 계급의 승리라는 거대담론일 뿐만 아니라 혁명가요와 혁명축제가 꽃피었으며 민중문화와 엘리트문화가 충돌하고 교류했던 정치문화의 일상무대였음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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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Reporteditor 김진겸

두 도시 이야기 뮤지컬 | 만 7세이상 | 170분

2013.06.18 ~ 2013.08.11 / 샤롯데씨어터출연 / 류정한, 윤형렬, 서범석, 카이, 최수형, 최현주, 임혜영, 신영숙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가난한 이들의 삶과 귀족의 폭압, 복수의 광기 등의 생생한 묘사와 한 남자의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두 도시 이야기.

겉은 차갑지만 가슴 한 편에 아련한 사랑을 품고 사는 남자 시드니 칼튼 역은 최고의 뮤지컬 배우 류정한과 관록의 배우 서범석이 맡아 공연의 무게감을 더한다.

또 칼튼의 연적이자 다정하고 인간적인 프랑스 귀족 찰스 다네이 역은 팝페라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카이와 선 굵은 연기와 시원한 성량의 최수형이,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름다운 여인 루시 마네뜨는 고운 음색과 청초한 이미지의 배우 최현주와 임혜영이 맡아 열연을 펼치게 된다.

스칼렛 핌퍼넬 뮤지컬 | 만 7세이상 | 155분 |

2013.07.02 ~ 2013.09.08 / LG 아트센터출연 /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 김선영, 바다, 양준모, 에녹, 최종선, 정재성

<스칼렛 핌퍼넬(The Scarlet Pimpernel)>1997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일본, 독일, 스웨덴, 멕시코 등 전 세계 18개국 무대에 올라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온 작품.

낮에는 ‘퍼시’라는 이름의 한량 귀족으로 지내다 밤이 되면 프랑스 공포정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는 영웅 ‘스칼렛 핌퍼넬’로 활동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칼렛 핌퍼넬>은 지난 7월 2일부터 5일까지 프리뷰 공연을 가진 뒤 7월 6일 정식 개막했으며 오는 9월 8일(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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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terview ; 소프트 인문학<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다> 저자 김무영 인터뷰

editor 남소라/함연경

인문학의 위기라는 선언을 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인문학이 트렌드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열광하는 인문학이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이 시대의 인문학은 사고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부속품으로서 필요한 인문학 붐이 아닐까?

어찌 됐든 다양한 사람들이 인문학을 찾는다. 그래서 인문학 입문서의 속성을 띈 소프트 인문학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사람들은 그 중에서 유명한 저자의 책 만을 찾는다. 진정으로 인문학을 배우고자 한다면 저자는 크게 상관있는 것이 아닐진대, 우리는 ‘있어 보이는'것을 위해 인문학을 선택하는 것은 아닐런지.

인스턴트같은 인문학의 홍수 속에서, 인문학이 가진 권위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독자들에게 접근하려는 책이 있다. 김무영의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다'. 저자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 아직 젊으신데 어떤 일을 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A : 저는 부산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을 복수전공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7살 때 저

던지며 반대하셨죠. 타협한 결과로 한문학과에 간거에요. 학교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인턴으로 사서 일을 하면서 습작을 계속 했어요. 그때 지금 아내와 연애를 했습니다. 장모님께서 ‘난 너와 눈 마주칠 일 없다’며 취직하고 다시 오면 결혼시켜주겠다 했어요. 그래서 일단 취직을 했고 중간에 신학대학원에서 2년간 공부했어요. 신영복 선생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었고, 한홍구 선생님 등 글 쓰시는 분들을 쫓아다니면서 습작을 많이 했어요. 대학원 다니면서 청탁 들어온 대필이나 윤문작업을 했는데, 어쨌든 글 쓰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고 싶었어요. Q : 외국에서는 대필도 하나의 분야로 인정받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잖아요. 힘들지 않으셨나요? A : 우리나라에서 대필 작가는 유령 작가에요.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고,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다지기 힘든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대필 일을 하면서 배울 기회가 많았습니다. 습작이라 생각했어요. 대필 일을 출판계나 시장의 흐름을 배우는 기회로 받아들인 거죠. 소위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이 팔릴만한 글

의 첫 소설 ‘곰돌이 푸의 우주대모험’을 썼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아킬레스건 수술을 해서 오랫동안 입원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어요. 책을 많이 읽을 기회였죠. 읽은 책의 절반은 아마 그 때 읽은 거에요. 지금까지 글쓰기의 바탕이 됐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국문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아들이 소설 쓰다 굶어죽을 거라 생각한 아버지가 재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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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를 많이 고민해요. 쓰고 싶은 글과 팔릴만한 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균형을 잡기 힘들기 때문이죠. 저는 그런 부분을 냉정하게 볼 수 있게 됐어요.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다>는 대표님이 먼저 힌트를 줬습니다. 저는 이렇게 시장에서 제의를 받는 것이 옳은 순서라 생각해요. 돈을 떠나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시장의 흐름을 타야 작가도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글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시장의 요구를 모르거나 외면할 때 작가는 외로워져요. 그렇게 대필 작가 생활은 다리를 다쳤을 때 다음으로 제게 큰 계기가 됐어요. Q : 어린 시절 얘기를 들었을 땐 문학 등 창작 활동을 꿈꿨던 것 같은데, 최근에 나온 첫 책은 비문학 책이에요. 여기에서 갈등은 없었나요? A :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글을 쓰는 건 빵 굽는 거랑 비슷해요. 빵이 구워지는 온도가 있잖아요. 어느 정도 부풀어 올랐을 때 불을 꺼야 노릇노릇한 빵이 나오듯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이나 생각, 고민이 이 책을 만들기 적당한 시기였어요. 그래서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았어요. 다음 책으로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이것도 말하자면 노릇 노릇 굽고 있는 거죠. 첫 책을 내면서 좀 더 문장이 완성됐으면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계속해서 인문학적인 고민을 가지고 가되 이번에는 문장의 완결을 높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고 써도 되겠단 피드백이 왔어요. 그래서 에세이를 쓰기로 했어요. 이것을 쓰고 나면 소설도 써도 되지 않을까 해요. 빵 굽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처럼 저도 기다리고 있어요. 쓰고

싶은 글의 종류가 많아요. 연애담, 여행기, 아이들이 자라면 육아 일기도 써보고 싶어요. Q :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놀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 어른들은 고정관념이 있어서 뻔한 질문을 해요. 커서 뭐 될래? 오늘은 어떤 칭찬 받았어? 무슨 과목이 제일 좋아?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데 아이는 다르게 대답해요. “쉬는 시간.” “왜?” “놀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오히려 되물어요. “왜 공부 시간은 길고 쉬는 시간을 짧아?” 그러면 저는 “듣고 보니 그렇네. 왜 그렇지? 아빠가 학교를 만들면 공부 시간이랑 쉬는 시간이랑 똑같은 학교를 만들게.”라며 얘기해요. 여기서 인문학적인 순간은 아이가 아이 답게 이야기 할 때 그냥 들어 주는 것, 아이의 아이다움을 받아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나의 고정관념을 확인하면 인문학 놀이를 한판 하는 거죠. 인문학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지금 인문학 책이 이만큼 있는 것은 생각의 결과물이에요. 그런데 순서가 바뀌었어요. 사람들은 생각은 안하고 책만 읽어요. 책이 하나의 암기과목이고 강요가 되면 악순환이죠. 인문학놀이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주고자 해요. 맨 처음에 이런 책들이 없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어떻게 살았을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핵심과 포인트를 집어 낼 수 있는 작업이 인문학 놀이에요. 그것을 통해 내가 비록 대필 작가지만, 비록 돈을 얼마 못 벌지만, 무너지지 않고 내 삶이 참 행복하다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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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무영의 아버지는 저자가 글을 쓰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의 책이 나오자 자신의 회사에서 그 책으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저자의 아버지가 제안한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이 제안한 것이었다. 딱딱하고 지루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고 즐겁게 ‘놀이’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놀이 하듯 책은 술술 읽히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인문학'이 일상 깊이 녹아든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똑똑하지 않아도,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인문학 놀이'가 가능한 것이다. 아니 '놀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문학'을 '놀이'하듯 자유자재로 다루는 저자의 글솜씨에서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누가 이랬다더라, 쟤는 저랬다더라 하는 책 말고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인문학이야말로 제 기능을 다 하는 인문학이 아닐까? 인스턴트 인문학의 범람 사이에서 단비같은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Q : 어떤 사람은 너무 쉽게 자기 책을 내고, 어떤 사람은 바라고 노력하는데도 그 기회가 늦게 찾아와요. 첫 책을 내기 전에 너무 쉽게 나온 책들을 봤을 때 속상하진 않았나요? A : 빵을 구울 땐 반죽도 해야 하고 누룩도 넣어야 하고 불도 펴야 해요. 조건이 맞아야 빵이 완성돼 나오죠. 그것처럼 독자의 니즈, 시장의 흐름, 작가 개인의 삶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책이 나오기 어려워요. 출판시장을 보면서 깨닫게 된 건, 작가가 아무리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기막히게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요. 저도 누구 못지않게 제 책을 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책을 만드는 일이 협업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는 내게도 타이밍이 오겠지 하며 기다렸어요. 출판이란 것은 협업이고 하모니입니다. 협업이 아니면 작가가 자비로 출판한다 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자기만족이거나 폭력인거죠. 말하자면 대기업회장이 자기 돈으로 자서전 써서 몇 만 부를 뿌린다면 폭력이에요. 한편 무명작가가 자비로 출간해서 만족한다면 그건 그냥 자기만족이죠. 저는 두 경우 다 책으로써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껴요. 그 잘못된 지점이 바로 협업과 조화의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협업을 잘하려면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들어야 합니다. 제게는 대필하고 습작하는 것이 듣는 시간이었어요. 엠디, 마케터, 편집자분들이 작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소중한 분들이란 걸 피부로 느껴요. 책 한 권은 아이를 한 명 낳는 것 같은데, 이 아이는 함께 만드는 아이에요. 비록 저자의 이름이 박혀있지만 그 이름이 그 책을 대표할 수는 없어요. 책의 일부분일 뿐 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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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주목해야 할 신간editor 남소라

여덟 단어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15,000원

광고인 박웅현이 말하는 인생을 두고 생각해야 할 여덟가지 단어.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의 주제를 다루며 저자는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믿고 걸어가라고 말한다. 그 어떤 선택일지라도 정답과 오답은 공존하게 마련이므로 자신의 선택을 묵묵히 믿으며 스스로 깨닫고 천천히 나아가라고 이야기하는 책.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에스터.M.스턴버그 지음, 더퀘스트, 17,000원

저자이자 미국 국립 보건원 연구원인 스턴버그는 주변환경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통념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공간에 대한 심리학적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공간이 우리의 정서, 기억,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쓴 책. 스트레스를 감소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건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어제까지의 세계재래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영사, 29,000원

총균쇠 저자의 3부작 중 그 완결편.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말하는 세계의 희망과 생존의 해법. 한정된 가치를 차지하려 싸우기 보다는 새로운, 지속가능한 가치를 위해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에 대한 답을 내어주는 책이다. 이러한 답은 우리의 전통사회로부터 찾을 수 있고, 전통사회로 하여금 현대인들에게 당황스러울정도의 답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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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대가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열린책들, 25,000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신간. 불평등을 키워드로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파헤친다. 현대 미국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의 현실과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성장의 저하와 비효율적인 세태를 언급한다. 시장은 도덕성을 갖고있지 않지만, 불평등이 가져다주는 문제점을 풀어 쓴 책.

시폐비변사 지음, 아카넷, 22,000원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중 그 네번째 책. 시폐는 조선의 상인들이 제출한 소장의 내용과 그 판결문을 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책의 발간이 전무후무하며, 이 책의 발간으로 하여금 조선 후기의 상업사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경제 실상이 잘 드러난 시폐는 상인조직간의 분쟁, 상인과 비상인의 분쟁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홍미숙 지음, 문예춘추사, 22,000원

왕릉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왕을 낳은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은 왕비릉 답사를 통해 조선의 왕을 낳은 여인들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왕 곁에 잠든 왕비와 그렇지 못한 왕비, 그럴 수 없었던 후궁들에 대한 정사와 야사가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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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r i b u t o r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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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오래 전 일은 아니다. 동기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대학을 졸업한 나는 88만원 세대라느니 삼포 세대라느니 하는 내키지 않는 이름을 떠안은 채로 교문을 나섰다. 학교 밖의 세상은 나에겐 숨 막히도록 낯설었다. 환상은 깨졌다. 무엇보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세상의 무관심이었다. 날 좀 봐줘, 날 좀 알아줘. 눈먼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고민 끝에 출판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정말로 사람들이 뭔가를 읽어주길 바라며 출판학교에 들어왔다. 젊음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다. 더운 것 보다는 뜨거운 것에 가까웠던 여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도 산더미 같은 책과 씨름했던 여름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의 불안인지 불만인지 모를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변화를 원했지만 의지를 갖진 못했고, 갈급함은 생활 속에 무뎌지곤 했다. 그 때 문득 신성한 혁명으로 역사를 바꾸었던 사람들을 떠올렸고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여기, 그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인문학의 갈피(프랑스 혁명 특집)> 웹진을 바친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고 많은 오류 속에 부딪혀 공허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 때,아직 가보지 못한, 누구도 간 적이 없는, 그러나 별로 다르지도 않을 그 날을 바랄 때,나는 혁명을 가슴 속에 품는다.열세 자리의 숫자 속에 사라져버린 이름들.가늠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많은 것을 지켜내려 했던 얼굴들.그들을 기억하는 시간 속에서 이번 호를 마친다.

editor 김진겸

editor 정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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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r i b u t o r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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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ditor 남소라

editor 함연경

웹진을 기획한 것은 7월이었습니다. 저희는 무엇을 다룰까 고민하다가 1789년 7월에 프랑스혁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 외국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그 사건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이슈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자유, 평등, 박애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혁명을 주제로 삼은 웹진은 그 혁명을 새롭게 환기하고 공유하는데 취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7월이라는 달에서 한참 멀어졌고, 그사이에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자유, 평등, 박애는 일시적인 이슈가 아니기에 1년 중 어느 때 이야기해도 부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통해서, 또 책을 통해서, 인문학의 갈피를 잡는 몇 장의 페이지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책밥 먹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뭉친 네 명은 책 속에서 내가 걷던 길을 알려주는 책갈피처럼 삶의 갈피를 찾기 위해 모였습니다. 뜨거운 태양 볕이 교실을 가득 채웠던 7월, 우리는 '인문학의 갈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개인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을 바꾼 이야기와 만났습니다.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직접 만든 이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정처 없이 부유하고 있을 때, 확고한 목표 하나를 좇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무명의 혁명가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부유하는 대신 비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더불어 마음속에 항상 맴돌 의문을 담아갑니다. 그 때 그들이 원했던 것과 지금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프랑스 혁명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