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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건축 강의자료 제8주 : 포스트모던의 사례-1

포스트모던 건축 제8주contents.kocw.net/.../document/2015/chungbuk/leejunpyo/8.pdf · 2016-09-09 · Leon Krier Leon Krier는 논객으로서 매우 확고한 명성을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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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건축 강의자료

제8주 :

포스트모던의 사례-1

포스트모던의 주요 건축가와 작품 사례

포스트모던 건축은 주로 신도시에서 발전되었다. 그러한 신

도시들은 모던의 말기인 1960년대 후반에 생겨났다. 그런데 이

도시들은 포스트모던의 여명기인 1970년대 초에 포스트모던운동

의 분출구 역할을 하였다. 즉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의 이행을

인상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신도시들은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광대한 도로 및 철

도망 위에 건설되어졌으며, 건축가들이 설계한 주거 및 제 시설들

이 그 내부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신도시들은 결함이 있었다.

즉 그러한 도시들은 실질적으로 자율적이 되기에는 그 규모가 너

무 작고 또 기존의 도심지와 너무 가까웠으며, 기존 도시의 단순

한 확장을 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크고 기존의 도심지에서 너무

멀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도시들은 대담하고 지적인 도시

계획 팀 덕분에 현대건축의 각별한 실험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신

도시 이외에도 포스트모던 건축은 또한 구도시와 시골에서도 자리

를 잡아갔다.

이처럼 포스트모던 건축은 매우 다른 환경 속에서 완전히 동

화되었는데, 도시로의 회귀, 도시조직 및 건축형태의 회복 그리고

기념적인 것과 장식의 회복이 그러한 동화를 용이하게 하였던 것

이다. 이제 비록 충분치는 않지만 포스트모던의 주요 건축가들의

건축적 사고와 그 작품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포스트모던 건축가들

의 작품 경향을 부분적으로나마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1. Leon Krier

Leon Krier는 논객으로서 매우 확고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그러한 명성을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있으

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모든 그의 역량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의 도시와 도시의 역사에 관심을 갖

는 그의 형 Rob Krier 및 여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모더니즘에 뿌리를 둔 건축과 도시의 독단적인 교리가 도시조직과

도시의 전통을 위험에 빠지게 하였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Leon Krier는 이러한 위험을 20세기의 거대한 정치적 및 경제적

집합체의 발달과 ‘도시개혁'이라고 하는 언제나 더 큰 야심찬 도시

프로그람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요약하고 있다 :

“나는 역사적 필연을 기술하고자 함이 아니라, 도시의 사회적 및

문화적 복잡성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물리적 구조와 밀도와 결부된

다는 가설을 세우고자 함이다... 요컨대 도시계획에 관하여, 빌딩

블럭의 길이와 폭은 유형학적으로 존재 가능한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과 이러한 빌딩블럭은 수평적이고 다방향적인 도시공간

의 망인 가로와 광장을 가능한 한 많이 생기게 해야만 한다”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가설을 억척스럽게 방어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의도

의 정당성을 많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에게 설득하는데 성공하

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영국의 Charles 왕세자의 대변인 같은

특별대우를 받아 더욱 더 그의 생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과거 그는 건축가로서의 자신의 예술에 위협적인 것으로 여

겨졌던 시장성(市場性)에 대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이러한 경제적 구속조건에

맞서 매우 명쾌하게 그의 생각들을 손상시킴이 없이 해나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림 9-1> 신도시 아틀란티스의 아고라 계획

(건축가 : 레온 크리에)

<그림 9-2> 건물개조계획, 베를린 (건축가 : 레온 크리에)

<그림 9-3> 라인휄덴 도심지 광장계획안, 독일

(건축가 : 레온 크리에)

2. Robert A. M. Stern

Robert Stern은 언제나 분명하게 모더니티의 교리를 거부하

였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의 건축적 표현은 여기서 표명했던 것보

다 훨씬 이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거부의 선언은 관련적,

컨텍스트적, 장식적, 역사주의적, 교류적인 건축의 가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문화에 대한 거부이지 자신의 거부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Stern은 함께했던 다른 건축가들이 명확하

게 정의하지 못했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건축잡지

Architectural Design을 위해 썼던 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중

성>에서 Stern은 한 걸음 더 나가고 있다 :

“우리가 근대시기라고 부르는 것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출

현과 함께 15세기 초부터 시작된다. 1920-1960년간의 ‘국제주의

양식’은 종종 그것이 특정한 시기의 한 양식으로 여겨질지라도 근

대적 가치라고 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역시 근대적이다. 그 이유

는 간단히 말해 모더니즘은 새로울 뿐만 아니라 또한 과거의 생산

과는 전혀 무관한 우월한 가치를 독단적으로 심지어는 도덕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던과 관련하여 거리를 두었던 다른 건축가들과는 달리

Stern은 배타적인 충동으로 최근의 그의 모든 토속적 작품생산을

설득력 있게 하였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현학적 영감이라고 하는

특별히 미국적 산물을 보게 하였다. 역사적 참조에 대한 그의 취

향은 그의 처음의 선언 이후 깊어진 듯하다. 그것은 비판적 입장

은 해석의 다양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

다. 고전적 또는 전통적 방식을 따르는 여타의 사람들처럼 Stern

은 세심한 연구로 자신의 관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그리하

여 역사에 대한 그의 대단한 사랑은 점증되는 진실성과 함께 나타

나고 있다.

<그림 9-4> 멕스 본사, 네델란드 (건축가 : 로버트 에이 엠 스턴)

재료, 스타일, 그리고 물에 비친 그림자간의 강한 대조를 끌어내면서

주목할 만한 형태의 작용을 창조했다.

3. Rob Krier

Rob Krier의 견해는 도시의 총체성을 포함한다. 거대한 하나

의 건물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건축가들은 다른 건물과 연결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확신한 그는 사라져가고 있는 도시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유형론에 전념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다수의 유럽도시들은 재건되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이 시기는 건축에서의 모던운동이 극도로 예찬된 시기

와 일치하는 데, 모던운동을 옹호하는 자들은 도시적 환경을 매우

싫어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혐오의 결과는 Rob Krier의 작업이 더

욱 더 적절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도시에 대한 그의 연구는

그가 말하는 원형적 목록에 속하는 ‘구성적 요소’의 인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요소의 분석이 건축연구의 프로그램에서 배제

되었다는 것을 그는 지적한다. 도시의 논의에 있어 그의 업적은

Camillo Sitte의 연구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과거도시의 복잡성을 재창조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획

일적인 국제주의 양식을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

다.

<그림 9-5> 가로 및 광장계획안 (건축가 : 롭 크리에)

4. Robert Adam

영국의 신문은 Robert Adam을 “고전주의의 자유기고가”로

다루고 있다. 이는 다원주의적 풍토가 지배적인 오늘날에 있어 고

전적 건축가들이 그 어떤 대중적 호의를 얻기 시작했다라는 것뿐

만 아니라 Adam이 이러한 학파의 내부에서 매우 특별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고대건축의 구조체계와 어휘의 순

수한 그리고 단순한 번역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Adam은 절대적인 모델의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고전의

번역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의심한다. 비록 신뢰할만한 것으로

생각되는 모델에 근거했을지라도 계속된 고전적 부활은, 실제로는

각 시기의 특정한 과거의 비젼에 근거한 해석의 노력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는 것을 그는 주목한다. 그의 이러한 우상파괴주의적 역

할은 신고전의 “건조체계의 완전보전”을 근대운동에 대한 무익한

반발로 여기고 있다. 그는 오히려 근대기술의 탐구결과의 再考를

찬양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어 tekhne는 匠人을 의미하고 그리

고 고전적인 것은 언제나 그것의 건조물 내에서의 혁신을 합병하

였기 때문이다 :

“기술은 조립기법의 형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 사회의 기술적 변천은 그러한 대상물의 운용,

사용 또는 생산에 관련된 모든 방식의 기능이다.”

반대로, 엘리트적 또는 배타적 입장을 취하는 모더니즘은 그

것이 표현하고자 했던 기술적 통합을 억제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

다. Adam은 고전적 방식은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창의성, 혁신

및 기술에 개방적이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가치를 반영한

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림 9-6> 다그머스휠드 공원의 개선문, 햄프셔, 영국

(건축가 : 로버트 아담)

5. Quinlan Terry

어떤 사람들은 고상한 논조를 사용하여 전통주의적 주장을

지지하고, 서로 다투어 아리스토텔레스, 비트루비우스 또는 페트라

르카를 인용한다. 그러나 Quinlan Terry는 근대건축물에 대한 대

중의 불만을 부각시키면서 그의 반대자들의 목덜미를 잡는다.

그는 단번에 주제의 핵심에 들어가, 어찌하여 “과거의 재료

는 수세기 동안 견디는데 반하여 새로운 재료는 그러지 못하는

가” 또 “왜 과거의 건물은 우리의 눈에 그렇게도 유쾌한데 반하여

근대건물은 그렇지 못하는 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있어 대

답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이제부터 우리는 “우주선의 기막힌 구

조가 우리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더미만

을 남기는 일회용품 사회의 변덕”과 전통의 기술과 재료 사이에서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매우 종종 Terry는 이러한 재료

는 더 생태학적이고 동시에 더 우리의 감성에 가깝다는 것을 덧붙

여 말한다.

그의 건물들이 그의 논조보다 더 확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그래서 그의 건축이 모든 사람들의 취향은 아니더라도,

그것은 놀라움과 연출을 포함하여 그의 예술의 모든 면에서 인상

적인 능란한 솜씨를 나타낸다.

<그림 9-7> 다우닝 대학의 호와드 빌딩, 캠브리지, 영국

(건축가 : 퀸란 테리)

6. Demetri Porphyrios

Demetri Porphyrios의 귀중한 연구테마 중에는 고급의상이

나 베스트셀러와 비교될만한 건축을 옹호하는 자들을 특히 성가시

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고전주의는 양식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다수의 문학적 및 역사적 원전에 의거하면서,

Porphyrios는 박공이나 기둥 같은 단순한 요소들이 문화적으로

결정된 지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고전 어휘는 건축술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테마는 종종 모방이라고 번역되는 신비스런 단어인

‘mimesis’이다. 그에 있어 이것은 복제가 아니라 해석을 의미하는

것으로 따라서 자연세계의 변모를 의미한다. Porphyrios로서는,

건축을 포함하여 모든 예술의 원리들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고 그리고 그 모든 규칙들 역시 언제나 거기에서 다시 발견되

기에,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여야만 한다는 다소 환원적인 금언에

만족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모방은 자연세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거기에 존재하는 건물에 대한 비판적 강론이 요구된

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Porphyrios는 모든 세대는 ‘천박한 복제주

의자’가 되기보다는 고전적 인습의 유효성을 재발견하여야만 한다

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의 작품의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테마는 건축과 예술을 결

합하는 연결의 특성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습과 변형간의 갈등은

더 이상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적 선택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적절함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림 9-8> 빌라주택, 런던 (건축가 : 드메트리 포피리오스)

7. Aldo Rossi

Aldo Rossi만큼 유럽도시의 전통적인 컨텍스트의 파괴를 막

기 위한 뚜렷한 의견을 내세운 건축가는 거의 없다. 그는 그의 저

서 <도시의 건축>에서, 도시조직의 재건에 있어 유형론의 주된 역

할을 포함하여 문제의 모든 면을 검토하고 있다. 유형을 ‘항구적이

며 동시에 복잡한 그 어떤 것, 형태 이전의 논리적 원리, 그리고

형태를 이루는 것’으로 정의한 Rossi는, 유형은 무수히 복제되는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건축의 축조원리라는 것을 주목하면서 이러

한 명제를 지속적으로 다듬어가고 있다. 즉, 유형론은 건축과 도시

의 나눌 수 없는 그리고 줄일 수 없는 요소의 유형에 대한 연구라

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그가 말하는 도시형태의 원동력이 되는 요소와

병적인 요소간의 구분을 하기에 앞서 Poete와 Lavadant의 ‘영속

성’과 ‘저항성’을 인용하면서,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념물의

역할을 분석한다. 그리하여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의 정원은

병적이고 재생력이 없는 요소임에 반하여, 이슬람의 주된 기념물

중의 하나가 된 다마스의 쥬피터 로마신전은 도시의 원동력이 되

는 것으로 고려될 수 있음을 주목한다.

냉혹한 변화의 힘을 고려할 때, 후기산업도시는 이전과는 전

혀 다른 변화의 압박을 겪게 된다는 것을 Rossi는 인식한다. 그리

하여 Rossi는 원동력이 되는 요소의 재생력을 강조하면서, 도시의

상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념물의 보전에 전념할 것을

권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도시의 기념물들은 완전히 버려지게 됨

으로써, 그 존재방식이 영원히 상실된 박물관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림 9-9> 행정센타건물, 이탈리아 (건축가 : 알도 로시)

8. Christian de Portzamparc

Portzamparc는 보자르(Beaux-Arts)의 낡은 체계에 대한 반

발에서부터 국제주의적 건축에 대한 문제인식에 이르기까지 그의

세대가 건축적 논의에 재도입한 모든 문제에 대해 과감히 맞서왔

다. 그가 다룬 것은 우선 도시문제였다.

1978년 파리 제13구에 설계한 주거구역 <haute forme>는

도시로의 복귀라는 포스트모던의 특징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도시 내의 도시(The city within the city)’의 개념으로 건

물들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설계함에 있어 불규칙한

도로, 뜻밖에 나타나는 광장, 덮힌 통로와 같은 것을 도입함으로

써, 중세 또는 르네상스 도시에서 착상을 얻었다. 길을 따라 설치

된 몇 개의 아케이드 그리고 여러 개의 창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커다란 개구부의 설계를 통하여 교묘하게 기념성이 살아나게 하였

다. 개구부의 위계는 모든 고전건축에서의 위계가 생각나게끔 층

별로 창이 전혀 같지 않게 처리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기억으로 회귀한다. 그는 근대성과 역사 간

의 단절의 벽을 없애는 것을 찬양하고, 모든 역사적 유산을 취하

고자 한 최초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작품을 하는 기간 내내 개인적이고 창조적인 어휘를 풍부하게 하

였다. 라 빌레뜨에 설계한 <cite de la musique>에서의 도시적

화싸드는 조각난 구성의 서곡이다. 여기서 시대의 정당성과 예술

가의 주관성 간의 정당한 길의 추구 속에서 터득한 자유가 표현되

고 있다. 보르도 현대미술관 관장인 Jean Louis Froment과의 대

화에서 Portzamparc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 자유로운

설계는 antithesis, 호흡처럼, 건축가로서의 나의 작업의 뚜렷한

흔적이다. 이후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는 점차 실제 건축으로 퍼져

나갔는데, ... 그것은 아마도 형식주의와 기능주의 간의 논의를

벗어나게 하고, 형태의 문제를 다르게 제기하게 하는 내 안에 있

는 화가적 소양에 기인하는 것 같다. 나의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기능을 위한 유일한 형태는 결코 없다는 것이

며, 그리고 역으로 그 어떤 장소와 형태도 오로지 하나의 용도와

의미를 지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림 9-10> 공동주거, 파리, 프랑스

(건축가 : 크리스티아 드 포참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