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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지털사회의 문화 통섭 * . 머리말 . 디지털사회의 문화 . 문화의 변동 . 서양문화의 본질 : 철학과 종교와 법 . 과학의 발달과 문화지식의 중요성 . 결 어 1) I. 머리말 최근의 과학발전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할뿐더러 당혹스럽게까지 하고 있다. 세계의 아무리 구석진 곳에서 발생한 일이라도 전 지구인이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 , 인간이 만든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앞에 스스로 멸망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미국과 러시아만이 가능했던 우주개발사업에 많은 나라가 참여하여 크게 확산되고 있 , 우리나라도 2008년 내에 우주선 발사기지를 완공할 전망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정보의 바다속에서 살고 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 은 인간 두뇌의 한계를 느끼게 할 정도이다. 수많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매일 전달되고 있어, 알고 싶은 정보는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충분히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디지털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신()이 지배하던 인간의 운명을 이제는 과학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 모든 사람들이 과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과학의 힘을 크게 믿는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없고 과학적 사유 없이는 인간의 이해 *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제법무대학원 인터넷법무학과 주임교수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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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지털사회의 문화 통섭

정 완*

. 머리말

. 디지털사회의 문화

. 문화의 변동. 서양문화의 본질 : 철학과 종교와 법. 과학의 발달과 문화지식의 중요성. 결 어

1)

I. 머리말최근의 과학발전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할뿐더러 당혹스럽게까지 하고 있다. 세계의

아무리 구석진 곳에서 발생한 일이라도 전 지구인이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고, 인간이 만든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앞에 스스로 멸망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미국과 러시아만이 가능했던 우주개발사업에 많은 나라가 참여하여 크게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08년 내에 우주선 발사기지를 완공할 전망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은 인간 두뇌의 한계를 느끼게 할 정도이다. 수많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매일 전달되고 있어, 알고 싶은 정보는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충분히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디지털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신(神)이 지배하던 인간의 운명을 이제는 과학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과학의 힘을 크게 믿는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없고 과학적 사유 없이는 인간의 이해

*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제법무대학원 인터넷법무학과 주임교수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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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어렵다. 사람들은 이제 신(神)보다 컴퓨터를 더 믿고 있고, 과학적 탐구야말로 모든 분야의 연구에 우선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과학시대, 디지털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문화의 본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문화의 원류는 철학과 종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시대, 디지털사회에서 ‘철학’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종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아울러 우리 사회의 규범을 대표하는 ‘법’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들 정신문화가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정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1)

. 디지털사회의 문화

1. 디지털사회의 문화와 통섭현대사회는 ‘정보사회’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수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인간의 지식은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창출된 정보와 지식의 바다에 오히려 인간이 익사할지도 모를 정도이다. 물론 인간의 두뇌는 이러한 엄청난 정보를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조합하여 사용하도록 진화하였다. 이제 머릿속에 외우는 ‘암기’의 시대는 지나고,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엮어 전혀 새로운 결과를 창출하는 능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인간의 지식은 그 깊이가 얕아지고, 인류의 문화 자체도 경박해져가는 그야말로 ‘위기의 시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패러다임이 바뀐다 해도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인류문화의 기초가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와 ‘철학’이다. 문화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양한 문화권이 함께 공존하는 이른바 ‘글로벌시대’가 되면서 다른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 때문에 생기는 문명의 충돌과 민족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2) 따라서 이러한 문명충돌과 이민족 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의 1) 이 글은 필자의 ‘디지털사회의 문화’ 강의내용 중 일부를 논문으로 정리한 것이다. 2)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9.11’테러사건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은 수많은 테러와 전쟁으

로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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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 대한 서로 간의 이해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철학은 “무엇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물론, 현대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자세 및 사고방식을 반추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철학은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대를 이끄는 지식의 산실이자 삶의 지혜이다. 앞으로도 철학의 역할은 기술과학과 더불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또한 세계가 글로벌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세계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서구문명과 경쟁하려면, 그들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종교 또한 철학과 더불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서 우리 생명의 근원과 행복의 조건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인간 최고의 정신문화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현대사회에서 사회규범을 대표하는. ‘법’에 대한 고찰도 정신문화 탐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이다.

이들 정신문화가 오늘날 디지털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할 것임은 물론이다. 이하에서는 철학과 종교, 그리고 법의 주요내용을 살펴보고 그 통섭3)적 결과를 이끌어냄으로써 미래사회를 대비한 우리의 정신문화의 발전가능성을 탐구해보기로 한다.

2. 문화의 개념과 요소

문화(文化)4)란 ‘한 민족이나 사회의 전반적 삶의 모습’을 말한다. 문화, 즉 ‘culture’는 원래 ‘농사’ 또는 ‘육체와 정신의 돌봄’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후자의 뜻에서 점차 ‘한 민족이나 사회의 정신적 · 예술적 표현의 총체’라는 의미로 형성되어 왔다.5)

인간은 문화를 지닌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가장 현저하게 구분된다. 이러한 문화의 개념에 대하여는 많은 정의가 내려져 왔는데, 19세기 후반 영국의

3) 통섭(統攝, 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으로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통섭’이란 말은 2005년 서울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식의 대통합’을 의미하는 통섭은 최근 학계를 넘어 정 재계 등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4) ‘문화’라는 말은 영어의 ‘culture’나 독일어의 ‘Kultur’ 등을 번역한 말로, 이들은 라틴어 ‘cultura’에서 유래하여 17세기 이래 유럽에서 사용되어 왔다.

5) 문화는 오늘날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일반적 개념으로 ‘교양 있고 세련되고 예술적인 것’을 가리키는바, 교양 있고 세련된 사람을 ‘문화인’이라 부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하나는 이보다 훨씬 넓은 뜻으로 ‘인간에 의하여 이룩된 모든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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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타일러6)(Edward Burnett Tylor, 1832 ~ 1917)는 문화를 “지식 · 신앙 · 법률 · 도덕· 관습 및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하여 얻어진 모든 능력이나 습성의 복합적 총체”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가장 포괄적인 정의로 인용되고 있다.7)

문화를 총체론적 관점에서 비교 · 연구하는 소위 ‘문화인류학’은 인류의 진화, 문화의 발달, 혼인과 가족, 친족, 사회조직, 경제체계, 정치, 법, 종교, 인성(人性), 언어, 예술, 환경, 보건 및 의료, 의식주, 물질문화, 개발 및 도시와 농촌 문제 등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이들 문화의 요소는 각각 하나의 문화로 불리는데, 경제문화·정치문화·종교문화·도시문화·음식문화 등이 그것이다. 한 사회집단의 특수한 분야 내지 영역에서 이처럼 다른 것과 구분되어 나타나는 생활양식을 ‘하위문화’라고 한다. 이들 부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 문화를 살피고 그 하위문화가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기능을 살피는 구조적 인식이 중요하다. 그러나 특정 문화의 모든 관습이나 측면을 다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화의 요소가 매우 많거니와 하위문화도 무수히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뉴턴8)(lsaac Newton, 1642~1727)의 기계론적 우주관에 의하여 모든 사물을 부품으로 보고 안목과 지식을 분화 내지 전문화시켜 온 데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러 형성된 유럽의 문화를 ‘문화’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문화를 문명과 동일시하는 동시에 서구문명만을 문화로 파악하는 ‘서구우월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비판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서 모든 인류의 문화를 내재적 시각으로 연구하려는 소위 ‘문화상대주의’가 시작되었다.9)

6) 에드워드 타일러는 영국의 인류학자로 문화인류학의 창시자이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이론에 영향을 받았으며, ‘원시문화’(Primitive Culture)(1871)에서 원시문화와 현대문화 사이의 진화적 · 점진적 관계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1871년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고, 1875년 옥스퍼드대에서 민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83년 옥스퍼드대 박물관장이 되었고 1896년 최초의 인류학교수가 되었다. 저서로 ‘인류학, 인류 및 문명에 대한 입문서’(1881)가 있다.

7) 문화를 ‘한 인간집단의 생활양식의 총체’로 보는 관점을 총체론적 관점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관념론적 관점’은 실제 소통되는 말과 그것을 지배하는 규칙 내지 원리를 구별하고, 문화를 그 규칙 내지 원리에 한정시킨다. 이에 따르면 문화는 구체적으로 관찰되는 행동 그 자체가 아니고, 그 행위에 관한 규칙의 체계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문화가 좁은 의미로 이해된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원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 관점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한 사회집단의 문화현상이 생겨나는 과정과 그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알기 위해서는 총체론적 접근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집단의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는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원주민사회의 것도 그러하지만, 역사가 오래된 사회와 민족의 문화는 더욱 그러하다.

8) 아이삭 뉴턴은 영국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다. 17C 과학혁명의 상징적 인물로, 광학· 역학 · 수학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는 근대과학사상 매우 중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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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서 문화의 교류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구별하기 위한 표현으로, East와 West, Occident와

Orient, Europe과 Asia 등의 표현이 사용되어 왔는데, 대체로 이들 용어는 서양인의 시각에서 탄생된 용어들이다. 따라서 역사적 의미의 동양이란 서양인의 시각으로 볼 때 지중해 동쪽지역, 즉 터키, 팔레스타인, 아라비아, 페르시아, 혹은 넓게 보아 인도까지를 포함하는 말이었고 한, 중, 일 등 극동아시아는 포함되지 않은 개념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중시되는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세계문화 역사 속에서는 적어도 18C까지는 빠져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과 서양문화권의 본격적 교류는 18C까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록 중세 이후 중국에서 인도 쪽으로 연결된 비단길을 통하여 서양문물을 일부나마 중국이 접하게 됨으로써 동서문화 교류의 창구 역할을 하기는 하였으나, 본격적으로 문화교류가 시작된 것은 19세 중반 이후 서구열강의 식민지 개척사업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중국은 영국과의 1840년 아편전쟁과 그로 인한 1842년 난징조약이 있었으나 서양문화와의 교류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였고, 한국은 프랑스와의 1866년 병인양요, 미국과의 1871년 신미양요 등에 의한 분쟁이 있었으나 이후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문화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의 개항요구에 굴복한 이후 적극적으로 문화교류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유럽과 미주대륙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여 문화와 문물을 대거 수입하여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다는 점에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던 중국이나 한국과는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즉 서구식 정치체제를 도입한 이른바 1868년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크게 근대화된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하여 실질적 지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후 중국도 침략하는 등 식민지 개척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아울러 유럽 등 서양문화에 대한 연구를 가장 앞장서 행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서구문화 용어의 상당부분을 일본인들이 번역,

창작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9) 문화는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분류된다. 예컨대 종교적으로는 이슬람문화, 기독교문화, 불교문화, 힌두교문화 등으로, 언어적으로는 영어문화, 프랑스어문화, 스페인어문화, 아랍어문화, 한자문화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지역적으로는 동아시아문화, 중동문화, 유럽문화 등으로 분류하나, 크게는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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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변동

1. 문화와 문명독일인은 흔히 문화와 문명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철학, 종교, 예술 등의 정

신적 생활의 발달을 말할 때에는 문화, 곧 Kultur 라는 말을 많이 쓰고, 기술적, 물질적 발달을 말할 때에는 문명, 곧 Zivilization 을 많이 쓴다. 이는 독일에서는 자연의 혜택이 적고 경제적 지반이 약하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정신적인 것의 개화를 구하여, 그 결과 현실에서 유리된 관념적인 사고방식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에서는 문화, 즉 Culture와 문명, 즉 Civilization을 그다지 구별하지 않는다. 가령 그들이 문명이라 할 때에는 물질적인 것을 보다 많이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지식, 과학 및 예술 등의 광범한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영국인, 프랑스인의 생활에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이 잘 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적 생활을 의미하는 문화나 물질적 생활을 의미하는 문명이나 인간의 자기 완성에의 노력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본 데 지나지 않는 것으로, 양자가 모두 인간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10)

문화와 문명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혹자는 문화는 ‘정신적인 것’으로 문명은 ‘물질적인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나 문화는 문명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문명은 문화에 의하여 뒷받침되므로, 그렇게 구분할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문화와 문명을 특별히 개념구분하지 않고 혼용하고 있고 문명을 정신문화의 취지로 사용하기도 한다. 후술하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 그리고 재레미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 말하는 문명이란 문화의 개념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 문화(문명)의 충돌과 공존, 붕괴1) 문명의 충돌‘문명의 충돌’의 작가 새뮤얼 헌팅턴11)(Huntington, Samuel, 1927~ )은 그의 책에서

10) 조좌호, 세계문화사(전정초판)(박영사, 1980) 25쪽 참조.11) 새뮤얼 헌팅턴은 미국의 정치학자. 미국에서 태어나, 1946년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뒤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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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이념, 정치, 경제가 아니라 문명이라고 하였다.12) 그리고 문명의 핵심은 종교이며, 세계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는바, 탈냉전 세계는 7~8 개의 주요 문명, 예컨대 서구기독교 문명, 동방정교 문명, 이슬람 문명, 아프리카 문명, 인도의 힌두 문명, 일본 문명,

유교 문명 등으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냉전시대’의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과 동맹국, 위성국, 종속국, 중립국, 비동맹국으로 관계를 맺었으나, ‘탈냉전시대’의 국가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문화적 중심국을 중심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서구문명의 중심국가는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이며, 유교문명의 중심국가는 중국이다. 그러나 이슬람,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문명은 특별한 중심국이 없다. 문명의 중심국들은 문명 내부에 존재하는 질서의 원천이자 문명 간에 성립하는 질서의 원천이다. 중심국이 질서부여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소속국들이 그와 문화적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명의 중심국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문명 내부의 질서를 세우거나 다른 문명과 질서를 구축하는 절충은 매우 어렵다. 이슬람 문명은 여러 국가들이 중심국 지위를 얻으려고 각축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탈냉전 시대의 국제 분쟁은 이러한 문명들 사이에서 일어나며, 그 중 가장 위험한 분쟁은 문명과 문명의 단층선에서 발생한다. 단층선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인접국 간 또는 한 국가 안의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오늘날 이슬람 문명과 비이슬람 문명 간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나아가 인도와 중국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문명적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며, 그것은 서구문명에 가장 위협적 존재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탈냉전 시대의 국제 정세를 예견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패러다임’이다. 문명은 충돌하기 시작했고, 충돌하고 있으며, 충돌할 것이다. 헌팅턴에 의하면, 이러한 문명충돌로 인한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중심국들이 ‘자제의 원칙’, ‘공동중재’의 원칙, ‘동질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자제의 원칙’은 중심국들이 다른 문명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다문명화, 다극화 세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기본 전제조건이다. ‘중재의 원칙’은 핵심국간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 간의 단층선 전쟁을 억제하거나 종식시키기 위해 타협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미국정치론’, ‘쉽지 않은 선택-개발도상국에서의 정치참여’, ‘문명의 충돌’(1996) 등이 있다.

12)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 )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냉전 이데올로기의 종식으로 인류의 이념적 진화가 종착점에 이르렀고,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가 보편화되었다고 주장하였지만, 새뮤얼 헌팅턴은 이를 변증법적 조화의 환상에 사로잡힌 생각이라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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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성의 원칙’은 어떤 문명에 속한 인간은 다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관, 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그 방안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으로, 다극화 다문명화 세계에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쌓이면 문명의 충돌 가능성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단일 문명의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단일문명(보편문명)은 수준 높은 윤리, 종교, 학문, 예술, 철학, 기술, 물질생활이 복합적으로 섞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 되며, 단일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만이 세계 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 문명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13)

2) 문명의 공존하랄트 뮐러14)(Harald Müller, 1949~ )는 그의 저서 ‘문명의 공존’에서 새뮤얼 헌팅턴

의 ‘문명의 충돌’에 대하여 비판한다. 뮐러에 의하면, 현재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 갈등은 국경분쟁, 영토분쟁, 자원에 대한 권리를 둘러싼 경쟁, 인종갈등 등 전통적 갈등의 원인이 지배적이다. 순수하게 ‘문명적’인 갈등은 없다. 다만 문명의 차이가 기존의 전통적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분쟁이나 갈등의 근원은 소통의 단절로 인한 불안이므로 필요한 것은 개방이며,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과제는 여러 문명들의 사상체계와 가치체계들 간의 공통점과 근본적 차이점을 탐구하는 것이다. 문명의 공존은 낯선 상대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서로가 대화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할 때 상대에 대한 경계를 풀고 분쟁을 막을 수 있다. 낯선 상대는 불안을 조장하는 무서운 위협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명의 이질성이 세계 질서나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뿐이다.

하랄트 뮐러에 의하면, ‘문명의 충돌’은 ‘역사의 자연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13)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탈냉전 시대의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해석 틀을 제시한다. 1993년 ‘Foreign Affairs’지에 실려 세계적 논란을 야기한 논문에 살을 붙여 1996년 출간한 ‘문명의 충돌’은 21세기는 이념이나 경제 대신 종교를 구심점으로 한 ‘문명’이 국제 분쟁을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헌팅턴에 따르면, 탈냉전 시대는 문명의 차이가 국제 분쟁의 주 원인이 될 것이며, 각 문명권은 중심국과의 문화적 동질성으로 통합되지만 다른 문명권과는 분열하고 반목할 것이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과도한 서구중심주의나 논리의 단순함으로 인하여 무수한 비판을 받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새뮤얼 헌팅턴 저, 이희재 역, 문명의 충돌(김영사, 1997) 참조.

14) 하랄트 뮐러는 독일의 정치학자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대응해 ‘문명의 공존’(1998)을 발표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 질서를 살펴보아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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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특징짓지도 않으며, 피할 수 없는 미래의 운명도 아니다. 만약 그런 결과가 온다면 그것은 파국적인 국가운영의 실책 때문이다. 동맹을 맺고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것, 비정부 부문을 강화하고, 인권의식을 높이는 것, 그리고 상대에 대하여 관용을 베푸는 것 등이야말로 ‘문명충돌’을 ‘문명공존’으로 바꾸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한다.

본질적으로 문화적 선택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이다. 상이한 두 문화가 적절히 타협하거나 조화하는 경우는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종교와 같은 정신문화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문화적 정체성은 타자(他者) 곧, 다른 개인, 민족, 국가, 문명과의 차이를 통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적 범주에서의 변증법적 종합 즉, ‘조화’는 어느 한쪽의 승리와 다른 한쪽의 패배, 또는 둘 모두의 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 또는 문명 조화의 딜레마이며 아이러니이다. 상이한 문화적 현상을 조화시킨다는 것은 어느 하나를 부정 내지 파괴한다는 것이거나, 조화의 대상이 되는 상이한 문화적 정체성 모두를 파괴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문화의 속성 때문에 문화 현상에서의 ‘조화’는 곧 문화적 주도권 싸움을 야기한다. 이러한 경향은 문화의 범주가 클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문명적 차원에서의 ‘조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오직 이기느냐 지느냐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친척, 직업, 문화, 제도, 영토, 교육, 당파, 이념 등의 차원에서 때로는 반목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복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회 속의 개인,

민족, 국가는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을 점점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 강화는 경제적 발전과 정비례하여 나타난다. 문화적 동질성이 결속과 응집을 낳고, 문화적 이질성이 반목과 갈등을 야기하는 것을 생각하면, 갈수록 문화적 충돌은 빈번해지고 그 정도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충돌의 가능성은 문화현상을 ‘조화’하려는 정도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다.15)

3) 문명의 붕괴재레드 다이아몬드16)(Jared Diamond, 1937~ )는 그의 저서 ‘문명의 붕괴’(Collapse)에

15)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은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한 마디로 헌팅턴의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한 잣대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뮐러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세계를 ‘우리와 그들’로 양분하여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여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문명은 정치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정치무대에서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동시에 분쟁의 원인은 단일요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합요소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랄트 뮐러 저, 이영희 역, 문명의 공존(푸른숲, 2000) 참조.

16) 제래드 다이아몬드는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의과대학 생리학교수로, 1964년부터 뉴기니를 무대로 조류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는 조류학자이리도 하다. 과학 월간지 네이처(Nature),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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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헌팅턴이나 뮐러와 다른 시각에서, 문명의 붕괴과정을 통해 지구문명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환경훼손, 무분별한 개발, 약탈, 전쟁은 우리의 지구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 자체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그는 과거 위대한 문명의 붕괴과정과 현대사회의 위기를 분석하여 현대문명이 몰락할 것인지,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이아몬드는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폴리네시아문화에서 시작해 아나사지(anasazi)와 마야에서 꽃피웠던 아메리카 원주민문화, 그린란드에서 식민지를 개척한 바이킹의 역사를 통해 ‘문명붕괴’의 뿌리를 찾아낸다. 그는 이러한 문명이 몰락한 이유를 환경파괴,

기후변화, 이웃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우방의 협력감소, 사회문제에 대한 구성원의 위기대처 능력저하 등 다섯 가지로 판단하고 있다. 마야문명의 붕괴이유에 대해서도 다이아몬드의 생각은 분명하다. 환경파괴와 과잉인구로 인한 분쟁이 이들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의 붕괴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원주민 이누이트족과의 적대적 관계, 그린란드의 정치 경제적 토양의 취약함, 노르웨이의 지원중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다이아몬드의 발길은 현대 세계로 이어진다. 그는 초고속 외형 성장 속에서 세계의 폐기물 창고로 전락하고 있는 중국과 엄청난 양의 천연자원을 채굴해 결국 환경 위기를 맞고 있는 호주가 이스터섬의 불행한 운명을 재현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중국의 미래에 대한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예측은 우리에게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중국의 경작지 감소, 사막화, 빈발하는 인재(人災), 수질 대기 오염 등 각종 환경문제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문명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몰아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과거의 문명 붕괴과정 뿐 아니라 가혹한 환경문제를 극복한 아이슬란드와 뉴기니의 고원지대, 산림파괴로 인한 위기를 극복한 일본의 성공사례 등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간이 자멸을 피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17)

3. 서양문화의 중심사상1) 헬레니즘서양문명은 지중해 동쪽 ‘크레타’ 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상인들이 대부분

이던 크레타 섬 사람들은 배를 타고 오리엔트 지방을 돌아다니며 당시에 이미 발달되스커버(discover) 등에 고정 기고하고 있고, 저서로 ‘총, 균, 쇠’, ‘제3의 침팬지’, ‘섹스의 진화’, ‘문명의 붕괴’ 등이 있다.

17) 상세한 내용은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 강주헌 역, 문명의 붕괴(김영사, 200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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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있던 ‘오리엔트문명’을 받아들여 이를 희랍(Hellas)인들에게 전함으로써 ‘미케네문명’과 ‘에게문명’의 발달을 촉진하게 되었다.

희랍인들은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 나름의 문명을 발전시켜 오리엔트와는 아주 성격이 다른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켰는바, 이로써 오리엔트문명에 뿌리를 둔 서양문명은 그 몸통을 희랍에 두게 된 것이다.

당시 오리엔트에서나 희랍에서나 모두 신(神)을 섬겼지만 태양, 신비한 동물 등 사람의 모습을 갖지 않은 오리엔트의 신에 비하여, 희랍의 신들은 모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가장 성스럽고 위대한 신의 모습을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모든 것의 근본은 바로 사람이다”라는 사람중심의 생각을 하였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제우스나 아폴론 등 희랍의 12신은 모두 사람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처럼 웃고 울며 싸우고 시기하는 등 신에게 사람의 성격을 불어넣은 사람중심의 생각을 희랍에서 꽃피우게 되었는데 이를 ‘헬레니즘’이라 한다. 헬레니즘(Hellenism)이란 희랍 땅에 사는 민족의 이름이 헬라(Hellas) 족이었으므로 이들 헬라족의 생각하는 방식과 그 문화를 일컫는 말로 오늘날 서양문화의 바탕이 된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생각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헬레니즘은 ‘모든 것은 사람에서 시작 된다’는 생각이므로 모든 것의 바탕인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 즉 ‘개인’을 존중하게 되었고 이러한 개인 즉 ‘나’가 모든 것의 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서양 사람들의 머리에 완전히 뿌리박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헬레니즘은 희랍의 뒤를 이은 로마인들에게 전해졌고 세계를 정복하여 커다란 로마제국을 건설한 로마인들에 의하여 모든 서양에 퍼지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희랍의 문명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희랍인들이 믿던 12신마저도 유피테르, 아폴로 등으로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믿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는 이미 희랍시대 때부터 서양인들 생각에 뿌리를 박게 된 것이다.

2) 헤브라이즘모든 것을 사람중심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휴머니즘’은 오늘날에도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의 큰 주류가 되었지만 이 휴머니즘은 로마제국의 부패와 함께 큰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정복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풍부한 물건들이 로마인들의 정신을 썩어들게 만드는 반면, 그들 밑에서 힘들게 살아야 했던 피정복민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게 되었고 이 때 바람처럼 나타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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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희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당시 로마를 비롯한 대부분의 민족들은 다신교를 믿었지만 유대인은 예외적으로 유일신인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고 이들은 이른바 ‘선민사상’으로 거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터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의 평등을 강조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구원사상을 퍼뜨리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에 의해 예수는 처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은 로마를 비롯한 유럽에 불길처럼 번져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유럽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는 이때까지 희랍과 로마시대의 사람의 성격을 가진 신들이 물러가고 전지전능하신 단 하나의 하나님이 유럽에 등장함으로써 모든 것을 사람중심으로 생각하는 ‘헬레니즘’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헤브라이즘’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헤브라이즘은 유대인, 즉 ‘히브리인’들의 유일신 사상에서 출발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 헤브라이즘의 근간은 유일신 사상으로 사람은 사사로운 욕심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 하며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데 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독교가 유럽에 뿌리를 내리면서 교회와 일부 성직자들이 엄청난 힘을 갖게 되고 정치나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모든 생활이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사람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여겼던 희랍과 로마의 헬레니즘과는 정반대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역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역사이고, 이 두 사상이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역사이므로 희랍, 로마신화와 기독교의 성경을 모르면 유럽문화는 보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서양인들 정신의 두 기둥으로 ‘헬레니즘’

과 ‘헤브라이즘’이 자리 잡게 되었고 모든 학문, 문화, 예술 등 서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바로 이 두 사상의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세 천년 동안 헤브라이즘의 극치를 경험한 인류는 ‘르네상스’를 통하여 다시 헬레니즘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하게 되었고, 인간중심의 지나친 표현에 다신 반발하여 바로크와 로코코 등 헤브라이즘이 강조되는 시대를 거친 후, 또다시 프랑스대혁명 등 사건을 통하여 다시 인권을 강조하는 근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서양문화의 두 기둥으로 철저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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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문화의 본질 : 철학과 종교와 법

1. 철 학

1) 철학의 어원철학(哲學)이라는 용어는 원래 희랍어로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뜻한다. 필로소피

아는 필로스(philos, 사랑함)와 소피아(sophia, 지혜)라는 두 말을 합성한 것이다. 필로소피아라는 말을 직역하면, ‘지혜에 대한 사랑’ 또는 ‘애지(愛智)’를 뜻한다.18)

희랍의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이 활동하던 당시는 아직 철학이라는 말과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철학자라기보다는 현자로 불렸고, 자신들의 활동을 철학이 아니라 역사(historie)로 규정하였다.19)

명사형으로서의 ‘철학’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전인 기원전 5세기 중반 아테네의 폴리스 공동체에서는 시민의 ‘정치적 덕’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적 활동 및 지적 교육에 종사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지혜 혹은 지식을 사랑하다”(philosophieren)라는 뜻의 ‘철학하다’라는 동사형 및 ‘지식을 사랑하는’이라는 뜻의 ‘철학적’이라는 형용사가 이미 통용되고 있었다. 이후 명사형으로서의 ‘철학’은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등에 의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인 크세노폰 이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글에서도 이러한 용례가 발견된다. 초기의 철학이라는 용어는 폴리스 시민의 ‘교육’

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소피스트들이 상품처럼 지식을 돈을 받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행위도 일종의 철학적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및 플라톤은 철학을 단순한 ‘지식의 전달’ 내지 ‘지식의 과시’로 보는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철학을 참다운 앎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지식의 과시’보다는 ‘참다운 지식’을 얻기 위해 대

18) 동양에서 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세기 말로 일본학자 니시아마네(西周, 1829~1897)가 필로소피아를 철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원래 니시아마네가 사용한 용어는 希哲學이다. 현명함(지혜로움)을 바라는 학문이라는 뜻이었는데 나중에 희(希)자가 떨어져 나가 철학이라는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오늘날 과학, 학술, 기술 등 많은 용어를 니시아마네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동양에서 가장 먼저 개화한 나라가 일본(메이지유신, 1868년)이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모두 자기식으로 명칭을 붙인 것이다. 참고로 Car를 일본식으로 한 것이 자동차인데 중국에서는 기차(汽車)라고 한다.

19) 후대의 가필로 여겨지지만, 자신을 철학자(philosophus)라고 처음 소개한 사람은 ‘피타고라스’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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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통한 검토와 반박의 과정을 중요시했다. 대화를 통한 검토와 반박의 과정에 의해서 참다운 앎을 획득해 가는 자기 비판적 탐구정신은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이미 삶의 태도와 관련되고 있었다. 대화를 통해서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자기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해서 나온 참다운 앎에 따른 행위가 바로 자율적이고 이성에 근거한 윤리로 정초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참다운 ‘지에 대한 사랑’, 즉 철학은 ‘이론적 지식’ 뿐만 아니라 선악의 인식을 내용으로 삼으며, 비판적 자기 검토를 통해 올바른 실천적 행위를 목표로 하는 ‘실천적 지식’을 뜻한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지행합일’의 성격을 띠게 된다.

앎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출발했던 ‘철학’이라는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인간 바깥의 자연세계 및 우주에 대한 이론적 앎, 그리고 인간의 올바른 행위를 다루는 실천적 앎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도 이론적 앎과 실천적 앎은 서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은 아니어서 이 양자는 철학이라는 용어로 통합되었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초창기에 “지혜에 대한 사랑 내지 추구”로부터 시작해서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자기비판을 통한 참다운 앎의 추구와 그 앎에 따른 실천적 행위로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철학의 개념철학이란 용어는 오늘날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어 철학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한 가지 개념으로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철학의 개념을 물을 경우 결론부터 말하면 “철학은 정의가 불가능하다”(Philosophy is

indefinable)고 해야 한다. 모든 철학의 정의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사람의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을 규정하고 있는 사회적 요구와 문화적 형태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20) 철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갖는 포괄성과 다의성 때문에 철학 앞에는 관념론적 철학·경험론적 철학·실존론적 철학·과학철학 내지 언어철학 등 각 철학의 주제와 특징에 따른 수식어가 항상 붙어 있다. 또 지역적으로는 서양철학·동양철학 및 한국철학이라는 명칭이 함께 쓰이기도 한다.

철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문이 이와 같이 다양한 주제와 광범위한 영역을 갖게 된 것은 이 학문이 오랜 역사를 통해 발달해 온데다가, 철학을 행하는 방식이 철학의 개념을 규정해 왔기 때문이다.

철학이 다루는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지만, 실상은 매우 보편적인 의문을 해명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철학이 밝히고자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의문점은 예20) 김용옥, 논술과 철학강의 2(통나무, 2006) 12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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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대, 존재란 무엇인가, 지식의 본질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등이며, 이에 대한 대답은 천태만상일 수 있고 답을 찾는 방법만 해도 연역적 방법, 귀납적 방법 등 다양하며, 찾아낸 답이라 하더라도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해석과 주관에 따라 달라지기도 발전하기도 한다. 대체로 철학이 다루는 주제는 크게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철학, 과학철학, 논리학 등이라 할 수 있다.21)

철학은 ‘개별 학문’이 추구하는 현실의 한 영역이나 단면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전체성과 근원성을 문제로 삼는다. 또한 무전제성에서 출발한다는 근본적 특성이 있다. 그러기에 철학의 방법과 대상은 미리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3) 철학의 역사각 시대마다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전체적이고도 근원적으로 파악함으로

써 철학의 방법과 대상을 새롭게 규정하며, 그 시대가 제기한 근원적 과제에 답하였다.

철학사(哲學史)는 각 철학자들이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철학함을 보여 주는 장이기 때문에,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철학사는 대체로 고대사회의 희랍철학, 헬레니즘철학, 중세사회의 교부철학, 스콜라 철학, 근대사회의 계몽철학, 합리주의 철학, 경험철학, 비판철학, 헤겔철학, 현대사회의 생철학, 실존철학, 과학철학, 분석철학,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그 흐름을 지적할 수 있다.22)

먼저 고대 희랍철학은 보통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탈레스가 활약한 BC 6C로부터 소크라테스 이전까지의 자연철학시대,23)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속했던 철학의 절정기인 아테네철학 시기, 그리고 그 후부터 AD 529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폐쇄시킬 때까지의 세 시기가 고대 희랍철학이라고 불리며, 1천여 년 이상 지속된 서양 21) 철학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 어려운 학문으로 인식되어 있어 읽어보라고 권유하기가 쉽지

않다. 철학책을 교양서적으로 읽는 사람을 보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필자가 이 책을 구상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엮은 책을 철학공부의 시작으로 추천하고 싶다. 예컨대, 이원복, 신의 나라 인간 나라(철학의 세계 편)(두산동아, 2007) 참조.

22) 이하의 내용을 작성함에 있어서는 조영식, 오토피아(경희대 출판국, 1996); 박해용, 서양철학사(두리미디어, 2004); 이원복, 신의 나라 인간 나라(철학의 세계 편)(두산동아, 2007); 김용옥, 논술과 철학강의 1,2(통나무, 2006); 교양교재 편찬위원회, 대학철학(건국대학교 출판부, 1983); 現代哲學の根本問題 第1卷~第12卷(晃洋書房, 1980); 西洋思想大事典 1~5, 平凡社, 1990; Encyclopedia of Applied Ethics 1~4(Academic Press, 1998) 및 엠파스, 네이버, 구글 등 인터넷검색정보 등을 참조하였음.

23) 이들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란 뜻으로 Pre-Socratics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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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명의 기초가 되었던 희랍철학은 이후 신학의 일부로 편입되어 중세 신학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중세철학의 특징은 기독교와 철학의 결합에 있다. 중세철학의 시작은 플라톤의 아카데미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폐교된 529년으로 잡는다. 초창기 중세철학을 지배했던 기본적 주제는 ‘믿음’과 ‘앎’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기독교를 그리스철학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중세 기독교철학에 있어서 ‘믿음’과 ‘앎’의 관계는 필연적인 문제였다.

철학은 교회의 신앙과 서로 대립하여 논란을 거듭하다가 서서히 교리의 체계화와 변신론의 필요를 위해 기독교 안으로 수용되어 갔다. 4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황제에 의해 라노칙령으로 공인되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론, 그리스도의 신인론 및 원죄론이 공식적인 교리로서 결정되기에 이른다.

교부철학의 대표자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그리스도교 철학에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인간의 ‘믿음’은 자신의 인식 가능성을 전개시킬 수 있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명제화했다. “인식하기 위해 믿으라. 그리고 믿기 위해 인식하라.”(Crede ut intelligas, intellige ut credas). 그는 원죄설로써 기독교 교리를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는 악이란 선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결핍(privatio substantiae)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은 신과 성질이 같기는 해도, 그것은 없음으로부터 생긴(creatio ex nihilo)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며 잘 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지에 의해서 신의 주권과 권능에 반대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에 의해서 신의 주권과 권능에 반대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에 의한 신의 뜻을 거역하였으므로, 인간이 그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인간의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원죄를 범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구원을 요구할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신의 뜻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는 교부시대를 거치면서 대략 정비되었고, 그 뒤 철학의 역할은 그 교리를 좀더 체계적으로 설명, 논증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역할은 대개 교회 소속 학교(schola)나 수도회 소속 학원(schola)에서 신학과 철학을 연구, 강론한 학자나 교사들에 의해서 수행되었고 이에 스콜라철학이 정립되었다.

스콜라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24)(Thomas Aquinas, 1225~1274)에 이르러 집대성되었

24)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입각해서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을 집대성한 중세이탈리아의 최대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이다. 성부신을 정점으로 하여 영구법·신법·자연법·인정법(만민법과 시민법)으로 구별하고 시민법의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 사상은 공통선을 강조함으로써 군주의 권력의 자의 적인 행사를 억제하는 기능을 이룩하는 한편 계층적인 신분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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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는 철학의 영역은 이성에 속하고 신학은 신의 계시에 근거한다고 하여 이성과 신앙의 영역을 엄 히 구별하였다. 그러나 철학과 신학은 다 같이 진리로서의 신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보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 입장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이른바 신의 존재에 대한 우주론적 증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세계의 궁극적인 존재 원인은 ‘부동의 원동자’로서의 신이며, 모든 사물의 본성은 그것의 존재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질서의 계열이라고 하면서, 만물이 갖고 있는 상대적 완전성의 차이는 단계적으로 올라가서 최고의 완전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필연적 존재로서 논증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이성적이고도 보편적인 것으로 나아가며, ‘자연의 빛’인 이성을 통해서 사물의 본성을 규명하고 지식을 획득하는데 반해서 삼위일체(三位一體)나 신의 육화(肉化)와 같은 신앙의 오묘성은 신의 ‘은총의 빛’에 의해서만 파악된다. 그는 경험적인 자연과 그것을 넘어선 초자연의 독자성을 구분하면서도 “은총은 자연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완성시킨다.”는 관점에서 큰 조화를 도모하였다.

근대 초기에 유럽사회는 ‘화약’, ‘나침반’, ‘인쇄술’25)의 발달로 문화사적 격변을 겪는다. 화약은 전쟁기술의 변화를 초래해서 기사 신분의 위상을 변화시켰다. 나침반에 의한 항해술의 발달은 유럽에 국한되어 있던 시야를 밖으로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26)

인쇄술의 발달은 소수에 국한되어 있었던 지식과 글을 널리 빠르게 전파함으로써 지식층을 확대시켰다. 이제 폐쇄적이고도 배타적인 중세 교회의 지배로부터 역동적인 사회로의 진입이 시작되었고, 유럽의 학문에 있어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인문주의자들에 의한 개인주의적 ‘인간의 재발견’이 강조되고,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에 의해 근대 자연과학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철학 역시 근대로 접어들면서 교회의 독단적 진리나 어떠한 외부적 권위에 의존하지

서를 정당화함으로써 보수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가톨릭교회를 통하여 뿌리 깊은 사상적 지배력을 지니고 있으며 신토마스주의의 법철학은 현대자연 법론의 유력한 일파를 형성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l)이 있다.

25) 중세 기사계급을 무너뜨린 화약, 항해술의 발달과 지리상의 발견을 촉진한 나침반, 기독교 성서 및 각종 인문서적 보급을 가능케 하여 계몽시대에 접어들게 한 인쇄술 등 세 가지 발명품을 르네상스시대의 3대 발명품이라고 부른다.

26) 이러한 시대적 환경 하에서 콜럼버스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신대륙 발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배만 타고 나가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폄하하자, 콜럼버스는 사람들에게 식탁위에 있는 달걀을 세워보라고 주문하였고 아무도 세우지 못하자, 달걀 한 쪽을 깨서 세워 보였고, 이 또한 사람들이 비난하자, 이렇듯 무슨 일이든 처음 하기가 어려운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교훈으로 흔히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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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자신의 힘으로 안 것만을 진리로 믿는 경향을 띠게 된다. 경험 또는 이성을 통한 지식과 사상만이 참다운 진리로 간주되었다. 근대철학은 프랑스 · 네덜란드 및 뒤늦게 발달한 독일 등 유럽대륙에서 발전한 합리론(合理論, rationalism)과 영국에서 발전한 경험론으로 대표된다.

중세로부터 근세에로의 이행은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십자군원정의 실패는 법왕권의 쇠퇴를 가져왔고, 나아가 기사계급의 몰락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중세봉건사회를 그 밑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 결과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공인 계층의 시민계급이 형성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시민계급의 정치적 의식이 향상되었으며 정치사상과 법률사상이 새롭게 나타났다. 교권에 대한 왕권의 정립이라는 정치권력상의 새로운 역학관계가 정립되고, 민족국가의 형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철학도 이러한 시대사조에 부응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포기하고 인간과 자연을 그 근원에서부터 새롭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적 세계관에 반대한다는 근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적인 신앙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장구한 전통을 지닌 신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이 일시에 소멸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초월적이었던 신을 새로운 세계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신을 세계 내적인 존재로 전환시킨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에 꼽힌다. 그는 특히 역사철학에서 큰 업적을 남겼는데, 인간의 정신이 어떠한 과정을 지나 절대정신으로 완성되어 가는가를 변증법으로 설명하였다. 어린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장과정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던 인간정신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절대정신에 이르게 되는데, ‘절대정신’이란 자연과 정신,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의 원리를 꿰뚫는 완성된 정신을 뜻하며, 이 성정과정은 변증법적으로 거듭 반복된다고 하였다. 헤겔은 역사의 발전과정을 변증법으로 해석하였다. 고대 희랍과 로마 사회는 귀족과 노예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세에 들어 봉건사회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역사를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라고 헤겔은 보았다. 그리고 그 자유가 촉진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며 그 이성이 절대적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 국가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역사는 소수가 행복하고 절대다수가 불행한 귀족 군주국가에서 모두가 행복한 민주주의국가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변증법으로 설명하였다.27)

27) 헤겔이 완성한 변증법 논리전개 방법은 곧 칼 마르크스가 이어받아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정립하게 되지만, 모두가 행복한 민주국가 건설에 ‘노동자 독재’라는 변증법적 오류를 범하였다. 어린이가 자라 어른이 되듯, 정신도 성장을 거듭하여 절대정신에 이른다는 헤겔의 철학은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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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절대자를 이성활동으로서의 로고스(Logos) 혹은 이념이라 하고, 세계를 이 이념의 발전으로 보았다. 그는 이념은 스스로 발전하는 이성적 ·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세계이성(世界理性) 또는 절대정신이라고 불렀다. 헤겔에 의하면, 정신은 처음에 자연 속에서 소외되어 부자유한 상태에 있다가 역사를 거치면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유를 되찾는다. 헤겔에 의하면 역사는 이러한 정신의 발전에 따라 진행되며, 역사는 ‘일인의 자유’로부터 ‘만인의 자유’로 향한 필연적 발전을 한다. 헤겔이 역사철학을 통해 입증하고자 한 이성의 자기실현은 자연적 폭력과 낡고 불합리한 정치체제로부터 인간의 해방과 자유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헤겔에게 있어 철학이란 역사와 자연 속에서 이성의 필연성을 통찰하는 것이었다.

헤겔의 죽음(1831)은 한 철학자의 개인적 삶의 완성이며 종말인 동시에 철학을 확실한 토대 위에 거대한 체계를 갖춘 구조물로 종합적으로 구축하려고 한 근대철학의 완성이자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콜라 정신에 의해 그 자체의 확실한 토대를 상실하고 말았던 철학은 데카르트와 칸트를 거쳐 헤겔로 이르면서 자기완결적 체계의 구축이라는 근대철학의 시대정신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특히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은 그야말로 철학 전체를 완벽한 체계 속에서 전체화시키고 종합화시키는 작업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절대이성의 관념론으로 체계를 완성하려는 근대인들의 열망의 이면에는 경험의 풍만성과 현실의 구체성 그리고 부분들의 다양성을 논리적으로 사상(捨象)해버리는 방법론적 이데올로기가 은폐되어 있다. 절대이성의 주도권이 지배하는 헤겔의 관념론적 패권주의는 그 외양의 장엄함과 달리 그 내부로부터 이미 해체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헤겔의 철학 속에 갇혀 있던 철학의 생생한 문제들이 그의 죽음을 기다리기나 한 듯이 그의 죽음과 함께 여러 방향으로 봇물 터지듯이 분출하기 시작하였다.28)

현대철학은 대체로 19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개되고 있는 여러 갈래의 철학을 통칭한다. 19세기 철학은 한편으로는 헤겔의 거대한 사변적 체계에 대한 반발의 양상을 띠며, 다른 한편으로 다윈의 ‘진화론’과 ‘산업혁명’의 폭발적 발전에 자극과 도전을 받는다. 19세기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주요한 철학들로는 변증법적 유물론, 생철학,

실존철학, 현상학과 해석학, 실용주의, 분석철학, 비판이론 등이 있다.29)

렬한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28) 그러므로 우리가 헤겔 이후의 철학을 ‘현대철학’이라는 용어로 포괄적으로 지칭한다면, 현대

철학의 얼굴을 단적으로 읽어내기를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현대철학은 폐쇄적인 체계를 갖추기를 거부하고 그때그때 생생한 문제들을 여러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풍부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29) 철학의 흐름과 역사에 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정 완, 디지털사회의 문화(경희대출판국, 20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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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 교1) 종교의 개념우리는 종교에 대하여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과연 종교가 무엇인가에 대

하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종교에 대하여 갖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30)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라는 단어가 나오면 으레 따분하다는 표정만 지을 뿐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종교란 그저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아무나 믿고 천당이나 극락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탄생 이래 종교 없는 사회는 없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외면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질문에 일생을 걸고 사투를 벌였다는 사실에 대하여도 작은 호기심조차 갖지 않는다. 매일 먹고 사는 것도 바쁜 세상에 무슨 내세를 이야기하고 신을 이야기하느냐는 식이다.

반대로,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 중 특히 기독교와 같은 유신론을 믿는 사람들은 종교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더구나 그들은 종교를 잘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진리’라고 쉽게 확신한다. 가령 기독교에서는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사람으로 태어나 수십 년을 살았으며 종국에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억울하게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진리라고 믿는 신자들이 많다. 그리고 이 역사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주장을 강하게 확신한다.

도대체 종교란 무엇이기에 사람을 죽음 앞에서조차 초연하게 만드는 것일까? 로마시대 때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사자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며 기쁨 속에서 죽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초인간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할까? 진리를 찾기 위하여 신라의 혜초 스님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스님들이 그 험한 ‘인도로 가는 길’로 떠났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인도로 가는 길은 먼저 간 수행자들의 해골을 이정표 삼아 찾아가는 죽음과 삶의 중간 길인데,

그들은 왜 굳이 안 가도 되는 그 어려운 길을 가야만 했을까? 종교의 영역에서는 이렇듯 정치나 경제의 일상적 삶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무수히 발견된다.

따라서 종교에 관해서는 수많은 질문과 방담이 생겨나게 된다.31) 그러한 오묘한 종

30) 최준식, 종교를 넘어선 종교(사계절, 2007) 15쪽 이하 참조.31) 가장 중심이 되는 질문은 ‘신의 존재’에 관한 것일 것이다. ‘신이 없다’는 논리의 하나로, 우리

가 신을 우주 바깥에 있다고 가정해 볼 때, 존재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속성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는 증명이 있다. 최준식, 종교를 넘어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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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종교를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32)

2) 종교의 어원과 요소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 모든

민족에게서 보이는 ‘문화현상’이다. 종교는 정치 · 경제 · 사상 · 예술 · 과학 등 사회의 전 영역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가치체계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종교는 절대성·궁극성이라는 자기주장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발전단계를 반영하고 있는 구체적인 문화현상이다.33)

종교란 고대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성립과 함께 교의(敎義)와 의례의 체계를 갖춘 종교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고, 중세에는 비세속적인 수도원 생활까지도 이 개념으로 불렀다. 현재 ‘religion’의 번역어로서의 ‘종교’는 불교 · 기독교 · 이슬람교 · 유교 등 개별종교들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식적으로 종교는 신이나 부처 등 초자연적 존재에 관한 신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종교의 기본요소는 신 · 부처 · 영(靈) · 법 · 원리 · 도 등으로 불리는 초월적·절대적 존재에 대한 체험이다. 종교는 이러한 종교경험을 핵으로 하여 그러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일정한 공동체(종교집단)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 도달하기 위한 혹은 그런 절대경험을 서술하기 위한 교리적 · 이론적 체계를 갖는다. 또한 기도, 예배, 수양 등 궁극적 실재와 만나거나 합일(合一)하기 위한 실천 체계를 갖는다.

여기서 종교는 “인간이나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에 대한 경험에 기반을 둔 교의· 의례 · 시설 · 조직을 갖춘 사회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다. 현상으로서의 종교는 역사의 발전단계나 민족적 · 문화적 전통의 차이에 따라 현저한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논자의 관점과 대상에 따라 종교에 대한 많은 정의가 시도되고 있다.34)

(사계절, 2007) 74쪽 참조. 그러나 종교는 논리로 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의 속성상 신의 존재가 인간의 머리로 증명할 수 없다면 이를 ‘믿음’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32) 종교에 관한 많은 서적을 읽기 위해서 우리는 참고 읽을 수밖에 없다는 어려운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꽤 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엮은 책도 있어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흥미를 유발한다. 이원복, 신의 나라 인간 나라(세계의 종교 편)(두산동아, 2007) 참조.

33) 종교라는 말은 원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어였다. 그런데 그 말이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에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의례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 엠파스 백과사전 참조.

34) 종교에 대한 많은 정의 가운데 어느 것이 옳다고 판단내리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삶의 영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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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원시시대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발전과 함께 그 사회적·문화적 기능을 달리하면서 전개되어 왔다.35) 현상적으로만 보면, 문화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관여했던 봉건사회 이전에 비해, 현대사회의 종교는 그 활동범위가 오히려 좁아졌고, 종교 본래의 영역에 한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 바울과 달마의 전도여행오늘날 기독교는 사도 바울36)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원래 사울

이라는 이름이었고 독실한 유대교 신자이며 조세관리로 근무하며 예수 사후에 예수의 추종자들을 징벌하는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바울은 예수를 전혀 본 적이 없었으나, 다마섹(다마스커스)으로 가던 도중 예수의 현현을 경험하고 이른바 ‘회심’(回心)을 한 후 스스로 예수의 사도임을 자처하며 예수의 사상을 펼치기 위하여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행한 그의 전도여행으로 인하여 오늘날의 기독교가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총 3차례의 전도여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로마에 가서 전도하면서 스토아학파 및 에피쿠로스학파의 학자들과 담론을 벌이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37) 바울의 전도는 특히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성경 속의 이방인, 즉 비유대인을 대상으로 행해졌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으며 이로써 기독교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한편 동양에서는 불교가 각지로 확산되어 가던 무렵 보리달마38)(菩提達磨, ?~536)가 서 종교를 파악하는 견해가 좀더 포용적인 정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종교의 역사적 소임, 이데올로기적 특징 등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는 과거 불교나 유교는 이름의 전통만 있었을 뿐이고 현대적 의미의 종교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준식, 종교를 넘어선 종교(사계절, 2007) 23~25쪽 참조.

35) 세계종교의 역사에 대하여 상세한 내용을 지도와 곁들여 쉽게 설명하여 이른바 ‘종교의 역사적 지리학’을 확립한 책으로 프랭크웨일링 외, 김한영 역, 지도로 본 세계종교의 역사(갑인공방, 2004) 참조.

36) 바울(파울로스, Παυλος)은 초기 기독교 선교와 신학에 주춧돌을 놓은 사도이다. 바울은 초대교회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려는 열정 하나로 아프리카(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도시를 돌아다녔다.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여행과, 신약성서 27개의 문서 중 13편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들은, 초대 교회사에 기념비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선교여행 중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되었다는 것이다(고린도후서 11:23~28 참조). 그렇게 그는 그리스도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37) 사도행전 17장 17~1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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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 불교의 중심 교리인 선종(禪宗)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보리달마는 남인도 마드라스 근처 칸치푸람 출신으로 520

년 중국 광저우(廣州)에 도착했다. 그해 10월 선행으로 이름 높던 양(梁)나라 무제(武帝)

와 만났는데, 선행을 칭찬받으려던 무제의 물음에 대하여 보리달마는 “선한 행위를 쌓는 것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고 말하여 황제를 당혹케 했다고 한다. 그 뒤 보리달마는 뤄양으로 가 소림사(少林寺) 동굴에서 매일 벽을 향해 앉아 9년 동안이나 좌선을 했다고 한다.39)

우리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생각하면서 불교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고 특히 선종이 어떠한 계기로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으며, ‘바울이 서쪽으로 간 까닭’을 고찰하면서는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신약성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바울의 서신이 어떻게 작성되었는가, 그리고 기독교가 유대인의 종교에서 떨어져 나와 전 세계인의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진정한 계기가 무엇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4) 종교와 전쟁종교는 본질적으로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고 종국적으로는 죽어서 천

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담보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종교, 특히 기독교에 의하여 너무나 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이러한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아이러니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과연 종교와 전쟁은 불가피한 관계에 있는 것인가 ?

이른바 ‘종교전쟁’(宗敎戰爭, Wars of Religion)은 넓은 의미로 “종교에 관계되어 일어난 모든 전란”을 지칭한다. 하지만, 서양 유럽의 역사에서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에 걸친 종교개혁을 계기로 신 · 구교의 대립이 원인이 되어 국제적 규모로 진전된 일련의 전쟁”을 가리킨다.40)

종교전쟁을 넓게 보면, 13세기 초 남프랑스의 알비 · 툴루즈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38) 보리달마(菩提達磨, ?~536)는 달마(達磨)라고도 하며, 6세기경 활동한 인도 출신의 승려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開祖)로 일컬어진다.

39) 이에 대해 학자들은 오랜 기간 깊은 선정을 닦았음을 말해주는 설화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리달마는 부처로부터는 28번째 조사(祖師)로 여겨지고, 중국 선종(禪宗)에서는 초조(初祖)로 간주된다. 보리달마는 부처의 심적 가르침에 돌아가는 방법으로 선(禪)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일파를 선종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한 자료 중 가장 신뢰할 수 있고 가장 오래된 자료는 제자 담림(曇林)이 기술한 ‘약변대승입도사행론서’(略弁大乘入道四行論序)이다.

40) 네이버 백과사전 ‘종교전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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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알비즈와파에 대한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응징요구를 받고 이를 진압한 ‘알비즈와 십자군 전쟁’, 후스의 처형 후 그의 교시를 받던 보헤미아인들이 박해에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켜 교황의 요청에 따라 1420년부터 약 10년간 십자군이 일으킨 ‘후스전쟁’, 루터의 종교개혁 후 1522년 지킹겐, 후텐 등을 지도자로 하는 독일의 기사들이 트리엘 대주교령을 습격한 뒤 반격을 받아 무너진 ‘기사전쟁’, 츠빙글리가 스위스에서 시작한 종교개혁에 즈음하여 1531년 카펠의 싸움에서 츠빙글리 자신도 전사하게 된 ‘신 · 구교 전쟁’, 1530년 독일 신교파의 제후와 도시가 카를 5세의 탄압정책에 항거하고 슈말칼덴 동맹을 결성하여 1546 1547년 황제측 제후군과 싸운 ‘슈말칼덴 전쟁’ 등도 종교전쟁에 포함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종교전쟁은 ‘내란’을 포함하지 않으며, 다만 내란으로 시작했더라도 여러 외국의 간섭을 초래하여 국제전쟁으로 발전한 경우는 포함한다. 예컨대,

11~13세기의 ‘십자군 전쟁’, 16세기 후반 프랑스에서의 ‘위그노 전쟁’,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후반에 걸친 ‘네덜란드 독립전쟁’, 17세기 전반 독일에서의 ‘30년 전쟁’ 등을 들 수 있다. 또 16세기 후반 영국과 에스파냐의 항쟁도 포함된다.41) 이러한 전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종교전쟁이라 하더라도 결코 순수한 종교문제로만 일어난 것이 아니며 정치적 · 영토적 야심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는 점인데, 30년 전쟁을 끝으로 ‘종교’를 내세운 구실은 없어지고, 정치적 야망만이 드러나게 되었다.42)

3. 법1) 사회규범사회규범(社會規範)이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생활을 바람직하게 이끄는 여

러 규범”을 말하며, 예컨대 법률, 도덕, 종교, 관습 등이 해당된다.43)

사회규범은 대체로 그 사회의 일반적 가치관 위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사고나 행동의

41) 이 전쟁은 메리 1세의 남편으로서 영국에 구교의 부활을 기도한 펠리프 2세에 대해 엘리자베스 1세가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출병(出兵)해서 신교도의 독립군을 원조하고, 다시 펠리프 2세가 스코틀랜드 여왕 M.스튜어트를 영국 여왕으로 추대하여 영국에 구교를 뿌리박으려 하였기 때문에 영국국민이 이에 반항하여 무적함대를 격파해 그 의도를 분쇄한 것이다.

42) 심한 경우에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마저도 종교전쟁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고 보아야 한다. 종교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정 완, 디지털사회의 문화(경희대출판국, 2008) 참조.

43) 가장 넓게 말하면 “한 인간이 타인 · 집단 · 공동체, 나아가서 민족이나 국가와 관계를 맺어갈 때 요구되는 사고와 행위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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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적 척도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사회구성원 대부분에게 공통적 행위양식이 된 사회규범은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며, 삶의 의미를 역동적으로 규명하는 힘을 가진다. 이런 성격에 따라 사회규범은 인간행동을 긍정이나 부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판단기준의 평균치로서, 사회집단의 구성원들을 결속시키거나 어느 정도 지도와 통제의 기능을 가진다.

사회규범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주관적 내적 세계에 머무르면서 인간의 행위와 사고를 규제하는 차원이고 또 하나는 객관적 · 외부 세계에 독립되어 존재하며 인간을 통제하는 차원이 그것이다. 관행 · 도덕 · 윤리 · 예의 등은 주관적 가치임과 동시에 인간 내면의 문제로서, 이를 위반할 때는 냉대와 소외 등 사회적 제약을 받게 된다.

사회규범이 객관화되어 있는 대표적 사례로는 법을 들 수 있다. 법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인간을 재판, 구금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게 된다. 관행 · 도덕 · 윤리 · 예의 등으로 이루어지는 사회규범은 집단이나 지역사회 내지는 민족단위 안에서 오랜 기간 형성되고 변화되어가는 가치관이며 행위양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한 사회가 습득하고 계승해오는 상징들이 실제로 공동체 지향적 형태로 실생활에 나타날 때 이를 규범적 생활양식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회구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규범은 정치 · 경제 · 종교 · 교육 · 신분 등을 포함한 여러 제도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2) 사회규범으로서의 법(규범)

인간은 혼자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이 서로 받쳐주고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 ‘인(人)’이라는 글자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로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결합하여 형성하는 집단을 ‘사회’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44) 사회의 실체는 타인을 통한 생활과 타인을 위한 생활의 종합이며, 상호의존적 공동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통일적인 사회질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 속에서 각자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달성

44) 인간을 ‘사회적 동물’(Aristoteles, BC 384~322)이라고 하거나,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에 있다”고 하거나(Otto V. Gierke, 1841~1921), “인간의 존재는 타인과의 공존에 있다”(Martin Heidegger, 1889~1936)고 하는 말들은 모두 이러한 이유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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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정당하게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다른 사람에게는 부당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한다면 거기에는 필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Thomas Hobbes, 1588~1679)가 출현하여 혼란과 공포에 둘러싸인 ‘야성의 왕국’으로 변하게 됨은 필연적일 것이다. 이래서는 도저히 공동의 사회생활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국가사회에서는 사람의 행동방향을 제시하여 단체생활에 통일과 질서를 부여할 규율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을 ‘사회규범’(social norm)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규범에는 도덕 · 관습 · 종교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가장 강제성이 강하고 중요한 것은 법규범이다. 인류의 사회생활은 이 법규범적 질서에 의하여 유지 · 발전되어 왔다.45)

이와 같이, 법은 우리들의 사회생활을 규율하면서 우리들의 사회생활 속에 살아 있고, 또 우리들은 법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46)

3) 법의 개념“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법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서 옛날부터 많

은 학자들에 의하여 그의 해명이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법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견해가 일치하고 있지 않다.47)

역사적으로 보면, 법은 처음에는 ‘신의 의사’로, 다음에는 ‘군주의 의사 또는 명령’으로, 그 후에는 ‘시민의 의사’로 관념되어 왔다. 마침내는 ‘시민상호간의 계약’이라고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법이 타주적 방향에서 자주적 방향으로 또 의무본위에서 권리본위로 발달하고 변화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법의 개념을 밝히기 위하여서는 발달·변천하는 사회제도와 병행하여 그 속에서 구체적인 법률현상을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개념에 관하여 정확하고도 보편적인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특성을 파악하여 법의 형식적 정의를 일응 내린다면 “법이란 사람의 사회공동생활의 행위준칙으로서 국가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45) 법을 ‘사회생활의 조건’이라고 하는 말(Rudolf von Jhering, 1818~1892)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46)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는 법언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47)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말처럼 “법학자들은 아직도 법의 개념에 관한 정의를 탐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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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의 이념‘법이란 무엇인가’ 등 법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풀기 위하여 유력한 방법은 “법이 실

현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이념 또는 가치를 고찰하는 것”이다. 법의 개념이 다른 사회규범과의 구별을 통해 법의 본질을 밝히려는 방법이라면, 법의 이념은 법의 개념에 내재하는 보다 근원적인 것을 통해 법의 본질을 밝히려는 방법이다.

법에는 목적이 있다. 법은 사회구성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그 구성원이 법을 통해 이룩하려는 목적이 바로 법의 목적이다. 법의 목적은 다음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개별·구체적 법을 제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입법자가 달성하려 한 실제적 목적을 고찰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목적은 법조문에 선언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컨대, 소년법 제1조는 “본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에 대하여 그 환경과 성행의 교정에 관한 보호처분을 행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행함으로써 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1조는 “본법은 집단적·상습적 또는 야간에 폭력행위 등을 자행하는 자 등을 처벌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근 입법에는 그 첫머리에 입법의 목적을 명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법령에 이러한 목적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개별 법령은 반드시 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예컨대, 형법은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고 불법한 침해로부터 법익을 보호하는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목적 없는 법은 없다. 법은 규범적 준칙이고 목적에 대한 수단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법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반적 가치 내지 보편적 이념을 규명하는 방법이다. 개별 법령이 모여 사회전체의 질서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법의 목적은 보통 이를 의미하며, ‘법이념’ 또는 ‘법가치’라고도 한다. 코잉48)(Helmut Coing)이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법의 목적은 법의 형성 · 실현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법의 옳음과 그릇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법의 목적 또는 이념의 문제는 법철학의 사명이며, 현대법학의 과제로서 오래 전부터 많은 법학자들에 의하여 논의되어 왔으나,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법 이념론을 총체적으로 서술한 학자는 독일의 라드부르흐49)(G. Radbruch)이다. 그는

48) 헬무트 코잉은 독일의 법학자로, 법의 기본원리인 윤리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자연법론의 새로운 구축을 시도하였다. 저서로 ‘법의 최고원리’, ‘법철학강요’ 등이 있다.

49)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독일의 법률가이자 법철학자로, 법상대주의와 법실증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독일에서 나치를 경험하고 그의 생각은 크게 바뀌어, 상대주의를 포기하고 법과 정의에 내재된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을 인정하는 자연법철학에 귀의했다. 저서로 ‘법학개론’(1910), ‘법철학개요’(1914), ‘법철학입문’(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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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이념이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 등 세 개의 기본가치가 집중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5) 정의(正義)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법과 정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50)

로마에서도 법(jus)은 정의(justitia)에서 유래한 것으로 법을 정의의 표현으로 보았다. 학문은 진(眞), 도덕은 선(善), 예술은 미(美)에 적합해야 하듯 법은 정의(正義)에 적합해야 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시대에 따라 견해가 다양하다.

희랍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500)는 정의는 ‘제곱수의 기본형태로서의 4’

라고 하였다. 4는 균분 · 평등 · 공평을 의미하고 기하학상 도형으로 정방형이 된다. 균분 ·

평등 · 공평을 옳다고 하는 사상의 표현이다. 균분과 공평을 정의라고 보는 사상은 형법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이라고 하는 동해보복으로서의 복수의 관념을 낳았다.51)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는 ‘강자의 이익’을 정의로 보고 정의와 권력을 동일시하였다.

이상주의철학자 플라톤(Platon)은 정의를 인간의 이성에서 발견하려 하였다. 그는 이성에 의해 의지와 욕망을 통제하여 지혜 · 용기 · 절제의 기본적 덕목이 조화될 때 정의가 실현되는데, 이성을 가진 통치자는 지혜를, 의지를 가진 무인은 용기를, 욕망을 가진 생산자는 절제를 각각 발휘하는 철인정치 하에서 ‘이상국’이 실현되며, 거기에서 정의도 실현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정의란 ‘균분적 정의’가 아니라 “각인이 그 능력에 따라 서로 조화된 사회적 평등생활을 이루는 상태가 옳다”고 주장하였다. 정의의 본질은 공동생활에서 분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정의는 각 계층 간의 정당한 관계이며 이를 지킴으로써 이성이 지배하여 각자의 직분을 다하고 하층계급도 이성의 지휘를 따르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정의를 최고의 덕으로 보고 “자기 자신의 것을 행하라”는 명제를 제시하였다.

정의개념을 이론화한 사람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윤리학의 견지에서 고찰하여 정의를 “사람이 이행해야 할 최고의 덕”이라고 함과 동시에 단순한 개인의 도덕이 아니고 각자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현하여야 할 사회적 도덕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광의와 협의로 나누었다. 광의의 정의는 일반적 정

50) 그러나 동양에서는 의(義)를 내세워 법치보다는 예치 또는 덕치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51) 이러한 응보사상은 먼저 복수의 정의에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다음에는 범죄와 형벌을 균등하

게 하고, 다시 민사상에서는 지급과 반대지급의 형평을 구하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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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서, “인간의 심정 및 행동을 공동생활의 일반원칙에 적합하게 하는 것, 즉 아테네의 법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반면 협의의 정의는 특수적 정의로서 “법의 구체적인 원리에 따라 각인의 물질상 및 정신상 이해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협의의 정의를 다시 둘로 구분하여 각인이 그 능력에 따라 명예와 대우를 받는 것을 ‘배분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라 하고, 응보·교환·배상 등 이해득실의 평균을 기하는 것을 ‘평균적 정의’(rectificatory justice)라고 하여 전자의 균등은 기하학적 비례에 따르며, 후자의 그것은 산술적 비례에 따른다고 하였다.

로마의 키케로(Cicero, BC106~43)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배분적 정의를 계승하여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것을 배분하는 것(suum cuique tribuere)’이라 했고, 울피아누스(Ulpianus, 170~228)는 이를 보충하여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권리를 배분하려는 항구부단의 의지”라고 하였다.

중세 법철학은 가톨릭신학의 일부로서 발전하였다. 교부철학의 대표자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국가에 대한 교회의 근본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국가에 대하여는 인간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는 정의를 ‘사랑’으로 보고 유일신을 신봉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였다. 스콜라철학의 최대 이론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독교적 견지에서 새로 해석하였다. 아퀴나스는 지혜 · 용기 · 절제 · 정의를 4대 덕목으로 들고, 정의를 일반적 정의와 특수적 정의로 나누었다. 그리고 일반적 정의는 지상의 모든 덕망을 포괄함에 반하여 특수적 정의는 배분적 정의와 평균적 정의로 나누어진다고 하였다.

오늘날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 따라 ‘평등’으로 그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정의론의 지주를 이루고 있다. 평균적 정의는 상품과 가격, 손해와 배상, 범죄와 형벌, 즉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의 등가관계를 요구하는 교환적·보상적·산술적 정의이다. 이러한 평균적 정의는 개인 사이의 횡적 질서관계에 타당하며, 사법(私法)의 정의이다. 배분적 정의는 단체(사회)가 재화나 명예 또는 공직을 여러 사람에게 분배할 경우 각자의 능력 및 공적에 따라 공정하게 그 몫을 인정하는 기하학적 정의이다. 이는 사람의 가치·능력에 따르는 개인차를 인정하고 그 개인차는 국가사회에 공헌하는 비율에 따라 결정하여 구체적으로 판단되는 것으로 결국 실질적·비율적 평등을 추구한다. 배분적 정의는 분배하는 자와 분배받는 자의 관계, 즉 종적 상하질서관계에 타당하며, 공법 또는 사회법의 정의이다.52)

52) 예컨대, 상품 매매에 있어서 매도인의 물건 인도와 매수인의 대금지급은 양인의 개인적 능력차와 관계없이 균등하게 이루어 질 것이 요구되는 바, 이것이 평균적 정의이고 과세에 있어서 부자에게는 세율을 높일 것이 요구되는 바, 이것이 배분적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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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전자를 강조하면 실질적 불평등이 되기 쉽고 후자를 강조하면 개인 대 개인 간의 균형이 깨어지게 쉽다. 따라서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의 대립을 적절히 조화하여 양자를 균형 있게 실현할 것이 요구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와 중세의 신분제사회는 인간의 추상적 인격성을 간과하고 오직 능력과 공적을 중시한 나머지 지배계급에게는 과대한 특권을 주고 피지배계급에게는 작은 은혜와 과중한 의무를 각각 분배함으로써 주로 배분적 정의만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근대 시민혁명을 통하여 인간의 인격적 평등을 인식하면서 주로 평균적 정의의 구현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경험한 현대에 와서는 인간이 구체적 생활인임을 중시하여 실질적 평등의 구현을 위한 배분적 정의를 다시 강조하게 되었다. “시민법에서 사회법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요컨대,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그의 것을 준다는 것은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를 아울러 실현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그의 것’은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의 적정한 조화에 의해 장차 해결될 문제이다. 그러나 정의는 추상적 가치이기 때문에 법의 형식만을 규정할 뿐 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못한다. 정의실현에 봉사하는 현실로서의 법의 구체적 내용은 법의 목적에 의해 부여된다. 그런데 법의 본질적 부분은 국가의 의사이고, 국가의 본질적 부분은 법적 제도를 의미하므로 법의 목적은 국가의 목적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법은 그 국가와 법의 목적에 맞추어 형성되고 운용될 것이 요구되는바, 그것이 바로 ‘합목적성’의 이념이다.53)

. 과학의 발달과 문화지식의 중요성인류가 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350만 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동물

과 전혀 다름없는 생활로 계속해 오다가 겨우 10만 년 전쯤에서야 비로소 동물과 다른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후 인류의 발전은 크게 빨라져 8천 년 전쯤에는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었고 5~6천년 전에는 인류의 4대 문명이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본격적인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54)

53) 법문화의 주요내용에 대하여는 정 완, 디지털사회의 문화(경희대출판국, 2008) 참조.54) 도구와 불의 사용 이후 인류최초의 혁명은 농사를 짓게 된 농업혁명이었을 것이다. 농경문화

의 시작은 과거 서양문명 원류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 9천년쯤 전에 시작되었다고 역사는 가르쳐왔으나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하면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최초의 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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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본격적인 역사의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 눈부신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발전은 지금 보아도 감탄을 그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찬란한 수준을 유지했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3천 년 전쯤에 비롯된 희랍문명,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로마문명을 되돌아보면 모든 제도나 학문의 기초는 이미 거의 완벽하게 다져졌고 그 뒤의 2천 년 역사는 이를 거듭 반복하고 응용한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또 다시 놀라게 된다. 인류가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 빨리 이동하게 된 것이 기관차의 발명 때문인데 그것이 불과 2백여 년 전의 일인 것이다. 그 이후 인류는 소리보다 빠르게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고, 우주 공간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며 달에도 착륙하는 등 과학문명의 발달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어 이에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과학문명과 인간의 지혜는 끝없는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한 가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은 끝없는 인간의 욕망과 그리고 이기심이었다. 인류가 그토록 눈부신 과학기술과 학문을 쌓고 역사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다면 오늘의 세계는 평화와 풍요로 가득 차 있어야 할 터인데, 과거 희랍, 로마 시대처럼 모든 어려운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던 시대와 과연 달라진 점이 무엇일까.

모든 인류가 고대하는 평화 대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모든 인류가 먹고 남을 만한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한 쪽에선 팔리지 않은 식품이 썩어 나가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선 하루에도 수만 명씩 굶어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 그리고 더욱더 많은 것을 지니려 하는 끝없는 욕망 때문인데 바로 이 점은 동물보다 못한 사람의 약점이라 할 것이다. 인간들의 이러한 욕망은 끝내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까지 일으켰고 남은 물론 자신마저도 상처투성이로 만든 쓰라린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과거엔 ‘남의 것’을, ‘다른 민족’의 것을 노리던 눈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자신의 것, 자기 민족의 것 안에서 ‘내 몫 더 차지하기’로 바뀌어 버렸다.

그 이후 같은 민족, 같은 나라 안의 서로 다른 민족끼리의 분쟁은 도무지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데, 현재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라져 아직도 통일의 날이 요원한 우리나라도 예외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역사를 통한 ‘지혜’를 지닌 인간들이라면 모든 문제를 대화나 타협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법한데, 세계 도처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저질러지는 폭력사태를

은 동남아에서 시작하였고 그것은 메소포타미아보다 약 3천년이나 빠르다고 한다.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1986) 17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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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같은 민족을 총칼로 살육하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폭탄을 던지며 자기 민족의 이익이라면 전쟁까지도 두려워 않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인간들은 거듭하고 있다.

과연 인간들은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운 것일까.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역사를 죽은 지식으로 심심풀이 삼아 들춰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류는 아직도 동물의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보다 인간다우려면 역사의 교훈을 거울삼아 폭력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만 할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 지식을 쌓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고 우리의 지식을 형성하고 있는 철학과 종교 그리고 법사상에 대한 ‘참된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 결 어오늘날 디지털사회는 삶의 질 향상과 여가에 대한 관심 증가로 문화의 개념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초기의 문화 개념은 예술에 한정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문화가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분야에까지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전통적 개념의 문화는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및 생활양식의 과정에서 창조되는 대상으로서의 예술에 초점을 두었으나, 발전된 문화의 개념은 다양한 사회현상 및 사상과 결합하여 문화산업, 문화콘텐츠, 문화제국주의, 문화상대주의 등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사회는 경제발전을 통한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풍요가 중요시되어 문화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어, 주5일 근무제 확산 등으로 인하여 여가와 문화 활동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증가되었다.

문화의 힘과 중요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경제력, 군사력뿐 아니라 문화적 우수성도 보유했으며, 국민도 높은 문화적 자긍심을 보유하였다.

예컨대, 로마제국은 유럽대륙을 군대, 법, 문화를 통해 3번이나 지배하였다고 평가되고 있고, ‘중화사상’(中華思想)은 중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나타내며 원(元), 청(淸) 등 이민족이 세운 국가들도 한족(漢族)의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영화 등 문화산업의 전략적 육성과 전파를 통해 세계 각국에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바, 21세기에도 세계 각국들은 자국 문화전파를 위한 초석으로 문화산업 활성화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물질적 풍요에 의한 정신적 피폐현상의 심화는 오히려 우리에게 철학적, 종교적 사변의 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철학이나 종교나 각자의 길을 가기는 힘들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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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현대 철학이 종교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내용 속에서 종교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종교의 수용과 이해에 있어서도 인간인 이상 이성이라는 그 속성으로 인하여 종교의 철학적 분석과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55) 따라서 철학과 종교는 경우에 따라서는 별도의 이론체계로 발전되어 가기도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뒷받침하며 이론을 발전시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와 아울러 세련된 사회규범으로서의 법문화 발달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문화는 한층 수준이 제고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55) 이 분야는 ‘종교철학’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 종교철학이란 “종교적인 믿음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시도”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바 철학과 종교의 관계 분석에 필수적인 학문으로 판단된다. 마이클 피터슨 외, 하종호 역, 종교의 철학적 의미(이화여대 출판부, 2006) 22~2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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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디지털사회, 문화, 통섭, 문명, 철학, 종교, 법 Digital Society, Culture, Consilience, Civilization, Philosophy,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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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al Consilience in the Digital Society

Choung, Wan*

56)

We are now living in the digital society, owe to development of computer and internet.

And we are about to go to the ubiquitous society, that all electronic products are controlled

by operating the button of cellular phone.

But how would our cultural mind be in the digital society ? Would any change of culture

be there?

Traditionally we make a difference between culture and civilization. People think that

culture is of mind and civilization is of material. but I don't think it is correct. As we read

the famous books like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by

Samuel Huntington) or 'The Coexistence of Civilizations'(by Harald Muller) or 'Collapse :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by Jared Diamond) etc, we can realize that the two

word, culture and civilization, is used in similar meaning. That is to say, we don't need to

make a difference between culture and civilization today.

There are many kinds of elements like science, art, construction, philosophy, religion, law

etc in culture. I think the philosophy and religion are the most important elements in culture.

Because the thought of those has ruled our mind and body and spirit etc. In addition, the law

is the most important norm in our society, and so I would like to study about philosophy,

religion and law as the representative of the spiritual culture.

The contents of this article are as follows;

Chap.1 Forward

Chap.2 The Culture in the Digital Society

Chap.3 Cultural Changes

Chap.4 Nature of the Western Culture

Chap.5 Development of Science and Importance of Cultural Knowledge

Chap.6 Conclusion

* professor, Law Department, Kyunghee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