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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h Global Indigo Mov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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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기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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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생명 누리에서, 가족들에게 – ‘사’페이지

둘,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 ‘육’페이지

생명가족 – ‘육’페이지

누리가족 - ‘십삼’페이지

셋, 나의 여행 이야기 – ‘십구’페이지

형,누나,언니,오빠 그리고 내 동생의 이야기. 생명가족 – ‘십구’페이지

누리가족 - ‘오십팔’페이지

넷, 여행이 끝나고 난 뒤! – ‘팔십육’페이지

다섯, 가족의 탄생! – ‘구십팔’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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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NGO 생명누리 대표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

교장 권술용

최고의 유산

2013년 1월 7일부터 2월 15일까지 장장 40일 간에 걸쳐 긴 험난한 길을 무사히 다녀온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 12기>에게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인도 대륙과 네팔의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오면서 평생에 잊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들 생에 내내 만나기 어려운 기회와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바로 ‘어릴 때의 여행 경험’ 입니다. 어릴 때의 여행 경험이야말로 ‘미래의 인간’ 을 창출하는 통로입니다. 온실에서 과보호되는 우리의 자녀가 아닌, 험난한 여행 길을 통해 실컷 깨지고 고생하며 우리의 자녀들은 그렇게 자라날 것입니다. ‘미래의 인간’ 이 되기를 바라며 세상으로 밀어 낸 부모님들의 담력과 청소년들의 도전 정신이 이번 여행학교에도 담겨 있어 성취되었다고 여깁니다. 앞으로도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의 진행은 계속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이 보고집을 위해서 힘겨운 노력과 무대에서의 열정을 쏟아낸 교사와 학생들,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않으셨던 부모님! 보고집을 통해 평생에 쉽지 않은 여행의 소중함을 돌아보고 함께 즐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3. 3. 2 권술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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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생명누리 대표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

교감 정호진 40일간의 인도, 네팔의 장쾌한 여행을 하고 돌아온 우리 인디고 여행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사랑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행학교를 떠나기 전 여행학교의 합숙훈련을 거치면서 여행학교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나름대로 감을 잡긴 했겠지만 실제로 여행을 다니며 여행학교에 참여해 보기 전에는 여행학교에 대해 분명히 알기가 어려웠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실제로 여행학교를 체험한 후 나름대로 생각의 가닥이 잡혀졌을 것입니다. 이번 여행학교를 통해 여러분의 삶에 작은 변화가 있기를 바라며 작은 생각을 보태봅니다. 1. 기억에 남는 여행 이번 여행이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기억에 남는 여행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때를 만나거나 인생에 힘들고 지칠 때에 다시금 여러분의 삶에 활력을 주는 기억이 되어 여행학교에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찾아나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삶에 기준점이 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 될 것입니다. 2. 자신의 꿈을 새롭게 찾고 다지는 여행 여행학교를 마친 여러분의 가슴에 아마 작은 꿈들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세계 속에는 우리들 외에도 많은 나라들이 있고 따뜻한 가슴과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사람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고, 더 많은 나라들을 다니며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을 만나기를 원하는 마음도 생겼겠지요. 아무튼 여러분 가슴에 작은 꿈이 싹트고 자라는 여행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3. 좋은 친구와 선후배가 되고 선생님을 만나는 여행 이번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과 선후배를 만나셨는지요? 일생을 만나갈 좋은 관계가 만들어졌기를 바랍니다. 한솥밥을 먹으며 기쁨과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겪어낸 친구들이 있고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오르지 않나요? 계속해서 만나가며 더 많은 이야기를 엮어 낼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4. 소중함이 깃든 여행 스스로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웃의 존재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던 여행이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아는 것은 남들에게 내가 쓰임받는 존재가 될 때입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을 때 나도 세상에서 무익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한 존재로구나 하는 생각을 얻게 됩니다. 내 삶이 이 땅에 사는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려고 결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2013. 3. 2 정 호 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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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한(18) 강한 이름과는 다른 반전 매력의 소유자. 남 웃기는 것을 즐기는 천성은 개그맨? 퍼니한 스트롱 맨.

김찬중 (19)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언니의 본능. 남성적 매력과 여성적 매력을 동시에 지닌 든든한 원희의 아빠. 여행중 팔키로 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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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주(14) 팀의 막내. 동선중의 자랑스런 새내기. 배탈이 나도 맛있는 건 참을 수 없어! 귀요미 먹보.

전양진(16)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인도 아주머니들의 귀여움 독차지. 남다른 개그 감각으로 생명팀을 사로잡은 엉뚱남.

신 실 (17) 완벽한 부산 싸나이. 그러나 여행 마지막 날, 모두의 손과 발을 다 사라지게 만든 “사랑합니다!” 고백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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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하(15) 칼루르 마을 아이들에게 인기폭팔! 빡빡이. 본의 아니게 갖게된 군인 정신으로 무장된 팀의 든든한 남자 막내.

홍건화(16) 540도 돌려차기까지 완벽한 태권 소년! 그러나 속은 부실한 약한 남자.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남다른 약 사랑의 소유자.

김주혜 (15) 귀엽고 착한 심성과는 달리 엄청난 힘을 지닌 만화 닥터 슬럼프의 아리와 100% 완벽 일치.오빠들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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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종(15) 히말라야 트레킹 때를 제외하고 하루 24시간 방긋방긋. 좋은 카메라를 들고왔으나 나중엔 메고만 다닌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

지호근(17) 가인을 닮은 시크남. 다리라인이 선명히 보이는 시스루 노란색 알라딘 바지도 소화하는 남다른 패션감각의 소유자.

이현진(18) 셀카를 찍을 때 빛나는 특유의 눈웃음. 경험이 풍부한 맏언니 누나답게, 다른 이들보다 이번 여행이 더욱 더 특별했을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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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 (19) 남다른 기럭지의 소유자. 뒷 모습만 보면 완벽한 길잡이 교사. 밤이 되면 동생들 빠져들게 하는 언어의 마술사.

곽다인 (18) 낙타 위에서도 잘 수 있는 용기. 아무데서나 머리 대면 자는 굳은 심지! 사랑스런 잠만보.흐흐흐~ 다인이가 웃으면 웃음 전염!

유희상 (16) 해리포터를 닮은 외모. 외모에 걸맞게 풍부한 지식과 다방면의 경험. 희상이가 말하면 일단 믿게 되지만, 때론 2프로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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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16) 저는요. 나는요. 끝이에요.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특별한 말투. 사막에서 일출을 즐기며, 특히나 다방을 좋아함.

임재영(20) 어쩌면 팀에서 병아리 선생. 10대 동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제 곧 20대. 그러나 나는 학생이다!

김성주(19?) 생명팀의 든든한 대표 길잡이 선생님. 익스펜시이브으~ 깍기 신공 대표주자. 눈 앞에 없으면 불안한 미친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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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호(?) 추노. 짧게 할께요~로 시작해 길게 깊고 좋은 얘기해주시는 든든한 우리 띠챠르.

이미주(옹호호?) 최강 동안의 소유자. 자칭 비율이 굳!이라고 세뇌시키는 쿨한 성격의 티쳐.

정유진(피프틴) 생명팀 17번째 학생이자 선생님.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최강 친화력!! 선생님의 영어실력 덕분에 편한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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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16) 새로운 헤나 아티스트의 탄생! 하지만 현실은 약품 담당! ㅋㅋ

김동오 (19) 내 앞에서 시를 논하지 말라. 뛰어난 감성시인 김동오! 다들 미리 싸인 받아 놓으삼!

김준용 (17) 으흐허허헤헤흐흐헤허허헤흐흥으응 준용이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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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근 (18)

살아있네~!

우태욱 (16) 아 하민쌤 진짜 너무 좋아요~♡

우희훈 (17) 뚜어조 최강 꽃미남 ! 속옷 좀 갈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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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레 (20) 든든한 맏언니 ! 이겨레 !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소유자 !

이기준 (14) 누리팀 귀염둥이 막내 힘들었던 40일 잘 버텨준 기준이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산(19) 까시녀 (까칠한 시골 여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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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17) 아이팟 남

이정빈 (18) 누리팀 공식 댄싱머신! 근데 춤은 왜 안춤?

이채원(20) 살아있는 현대판 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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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민 (16) 우리 보민이 보민이 ^^

황지민(14) 개한테 물려도 난 끄떡없다!

황하민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시대 최고의 꽃 상남자!! Kingdom of hamin fore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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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ju 인도 짐승남… 출산 2개월을 앞둔 예비아빠! 그 동안 고마웠어요!

김순영 깐따삐아! 항상 앞니에 자일리톨을 지니고 다니는 우리 깜찍이 순영쌤^^

성연호 아 연호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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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팀 여행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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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다인 오늘은 그렇게도 먹고 싶던 라씨를 먹었다. (포도라씨랑 망고라씨가 가장 맛있었다!) 인도 사람들을 되게 눈도 크고, 눈썹도 짙고, 코도 높고, 쌍커풀도 진하고, 속눈썹도 길고 참 예쁘고 멋있었다. 그래서 인지 처음엔 매우 강렬한 인상 때문에, 우릴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Hi~" 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고 반대로 우리가 인사를 건네면 방긋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니, 나중에는 그러한 ‘반!전!매!력!’에 맛들려 보는 이마다 인사를 건네었다. (놀라운 것은 이제 여행학교 2일차라는 거..Wow!!!! 아직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빨리 외워서 음...어 놀러가야겠다.) 또 숙소로 돌아오니 눈에 바둑알을 집어넣은 것 같은 아가들이 먼저 다가와서 ‘티쳐, 티쳐”라며 말을 건네는데, 참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하고 아이러니한 기분이었다. 한편으로 이 애기들을 외국인한테 영어로 당당하게 말을 건넬 줄 알고 그걸 즐기는데, 반대로 나는 두려워하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애기들 좋다, 귀엽다. 기숙사 생활 때문인지 숙소가 더러워도 딱히 별 생각이 없고 집 생활 때문인지 벌레도 생각보다 별로 안 두렵고 뭔가 좋았다...흐..... 땡큐 기숙사! 마이 하우스! 이럴 때는 엄마가 했던 말도 떠올라서... 괜히 집 가고 싶다 ㅠ.ㅠ 내일부터는 방과 후 활동을 시작하니까 매우 매우 매우 기대 된다. 1월8일 꽉

김주혜 오늘은 ‘힌두푸르 시장’에 다녀왔다. 맨 처음에 오토릭샤를 타고 갔는데 처음엔 엉덩이가 아팠지만 재미있었다. 시장에 가서 라씨를 먹었다. 망고라씨와 포도라씨를 먹어 봤는데 맛있었다. 인도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 뭐라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었을 땐 마치 ‘인기 스타’가 된 기분이여서 좋았다.^^반대로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Hi~'하고 인사를 했었는데 부끄러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을 때는 슬펐다ㅠㅠ

소규모 시장이라 그런지 있을 것만 있고, 나를 포함해 우리 조원 모두가 정작 사고 싶었던 알라딘 바지는 못 사서 아쉬워했다. (참고로 우리팀은 나, 유진쌤, 태종이, 호근이 오빠, 조장인 형석오빠) 그리고 시장에 가기 전에는 처음으로 밥을 손으로 먹어 봤다. 처음엔 꺼림칙했는데 먹다보니 꽤 익숙해진 것 같아서 새로웠다. (아침=도사, 점심=쌈바, 저녁=짜파티) 40일동안 새로운 일을 겪으면서 모두 다같이 재미있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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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한 인도의 힌두푸르에 도착해서 적는 감상문. 어제 처음 인도에 왔기에 적을 내용이 크게 많지 않아서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적겠다. 어제 그러니까 1월 7일은 정말 한 게 비행기 타는 것 밖에 없어서 적을 건 비행기를 정말 오랫동안 탔고, 비행기 환승이라는 것도 처음 해봤다. 오늘은 아침에 처음으로 밥을 손으로 먹어 봤는데 그닥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불편하지도 않았다. 시내에 가기 위해 오토릭샤도 타봤고, 시내에서 향신료 냄새, 매연, 먼지, 똥냄새도 많이 맡았다. 인도의 시장은 종류가 다양하지 못한 것 빼곤 한국이랑 비슷하다. 원숭이를 동물원 우리 밖에서 보긴 처음이다. 앞으로의 인도여행에서 우선 내가 바라는 것은 제발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여행 가족이 배탈 안 나고 물갈이를 안 했으면 정말 좋겠고, 별 탈 없이 여행을 마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 마음 편히 씻을 수 있는 공간과 휴지를 사용해도 되는 화장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물건 잘 챙겨서 하나도, 특히 핸드폰 안 잃어 버렸으면 좋겠고, 물론 내가 안 잃어버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인도에 대해서 잘 알고 가기를 바라고, 마지막 날에 집으로 돌아올 때 많은 것을 얻고 가기를 바란다. 이 여행에서 내가 많은 것을 얻고 가기를 바라는 것은 맞지만, 솔직히 내가 어떤 것을 얻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얻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여행을 즐길 것이다. 복잡한 생각도 좋지만, 별 생각이 안 나므로 이 상태 그대로 별 생각 없이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혹시 여행을 즐기다가 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집에 돌아갈 땐 전보다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자. 오랜만에 글 쓰니까 오글거리네. 전양진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손으로 하는 것이 어설펐는데 지금은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점심을 먹고 오토 릭샤를 타고 시장을 갔다. 시장에는 원숭이, 소, 돼지 등이 있었다. 바닥에 똥도 있고 오토바이 매연으로 공기가 매우 안 좋았다. 그리고 덥기까지 해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라씨를 먹을 땐 더위가 사라졌다. 그리고 열심히 구경을 하고 오토릭샤를 타고 다시 이곳으로 왔다. 저녁이 되면 하늘에 별이 많이 보여 신기했다. 아빠 엄마 생각도 났다. 슬프진 않았다. 처음 1박2일로 만났을 땐 친한 사람이 없었고 어색하였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는 것이 편하고 좋다. 이대로 쭉~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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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상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 11시 비행기였기에 한 번 갈아탄다고 해서 인도시간으로 저녁4시쯤 도착할 줄 알았는데 태국의 수도인 방콕까지 가는 도중에 홍콩에서 한번 내리고 방콕에서 많이 기다렸기에 인도에 도착했을 때 매우 지쳐있었다. 그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인도에 도착해도 정신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비행기에서 잤지만 지프를 타고 센터로 오는 동안에도 줄곧 졸려서 자게 되었다. 지금 현지에서 가장 불편한건 씻기는 것이다. 예상은 했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자는 곳에서 야외로 나와 모래를 약 50발자국 정도 걸으면 탈의실 크기의 샤워실 2개가 있다. 쉽게 생각해서 서울의 간의 화장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샤워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도 물이 깨끗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감히 샤워를 할 엄두가 안 났다. 그래도 샤워 외엔 다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 외엔 음식과 사람들 같이온 친구, 형 누나, 동생들 모두 좋다. 제발 물갈이 하지 말고 큰병 걸리지 않고 모두 다 신나게 잘 지내다 갔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낙타 사파리보다 레프팅을 더 하고 싶었다. 팀을 고를 수 있었다는데 우리 가족은 그걸 모르고 그냥 난 무작위로 생명팀에 배정 된 것 같다. 생명팀은 낙타 사파리를 누리팀은 레프팅을 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팀에 상관 없이 레프팅이 하고 싶다... 지호근 -인도와서 첫 느낌- 인도 처음와서 타지 사람들을 접할 때 사람들이 신기하게 다들 쳐다보는걸 보고 아 여기선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느꼈고 대도시에서 시골로 오니까 도로 한가운데 소똥 있고 소, 개, 원숭이, 돼지가 거리를 점령하고 있고 사람들의 허술하고 불쌍해 보이는 생활을 보고 평생시 내 생활이 정말 고마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인도에서 보고 싶고 얻어가고 싶은 것- 앞으로 38일의 일정이 남았는데 여기서 쫌 더 인도 문화를 체험하고 쫌 더 많은 체험을 하고 많이 보고 가고 싶다.

조원희 첫 해외여행이라 설렜다. 그리고 인도 가서 정말 손으로 먹는지 정말 궁금했다. 인도에 도착하여 편의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실망했다. 지프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여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그냥 외국 같지 않고 시골에 온 느낌이라서 좋았다. 아 침밥을 먹을 때 정말 손으로 먹어서 충격적이었다. 인도에 있을 때 항상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된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호근이 형과 종호 쌤을 ·만나서 정말 축복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38일 동안 건강하게 한국에 살아서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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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영 첫 느낌은 어떤 경험을 하던 어떤 지역을 가든 모두 설렐 것으로 예상 했었다. 그렇지만 이곳의 첫 느낌은 오래된 일기장에서 꺼내보는 반가움이나 그림과 같은 종류였다. 어디선가 맡아본 습기 찬 냄새와 짜이의 맛들이 그랬다. 그것이 공항에서 나왔을 당시의 첫 느낌이었다. 이 곳 숙소는 처음 들어왔을 때는 조금 더러웠다. 대신 이 넓은 곳에서 같이 자고 먹고 이야기 할 수 있기에 나는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다. 대신 화장실이 불편한 점과 샤워하기 힘든게 너무 찝찝하고 빨리 큰 도시로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오늘 기상시각은 9시30분. 그렇지만 8시부터 깨어난 아이들 소리에 잠에서 깨버렸다. 일어나고서는 이불 개고, 밥부터 먹었는데 다들 꾸역꾸역 넘기는 모습이었다. 자유 시간을 가지다가 힌두푸르 지부장님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바로 먹은 점심이 넘어 가는 건 정말 의아했다. 게다가 손으로 먹어야 하는 건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점심을 먹고 어떤 인도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갑자기 내 눈앞에서 나무를 타더니 이상한 열매를 던지고 먹어보라고 했다. 이상한 맛, 심지어 어떤 것은 떫은 맛이었다. 그리고선 내려와 말을 하는데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가운데, 내가 이해한 것은 열매를 주었으니 펜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구걸의 방법인가라는 생각이들어서 좀 찝찝했다.

쌤들끼리 회의가 끝나고 곧 오토릭샤를 타고 시장으로 갔다. 마을 아이들이 인사하는데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떤 소리를 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쉽다.오토 릭샤를 타고 내려가면서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해주거나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먼저 인사를 하면 다들 웃거나 손을 흔들어주며 순수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시장에서는 짜이만 계속 먹었는데 너무 달고 나한텐 별로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릴 보며 인사하는 게 옛날 외국인이 별로 없었을 때 내 반응과 똑같아 재미있었다. 아까 전에 만났던 한 아이도 굉장히 키가 작고 어려 보였는데 나이를 물으니까 열여덟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장에서 말을 걸었던 아이도 키가 작아 초등학생 같았는데 열여덟 살이라고 해서 정말 어려 보이는 건지 아니면 이 나라의 나이 개념이 다른 건지 의아했다. 저녁은 짜파티와 반찬들. 낮에는 큰 도전이었던 손으로 밥 먹기가 벌써 익숙해졌다. 오며가며 내일 방과 후 교실을 같이 할 아이들, 유치원정도 되는 아이들이보였는데 영어 공부하는 게 귀여웠다. 몇몇 인디고 친구들은 36일이나 버텨야 된다고 말하는데 나에겐 벌써 이틀이 지나간 느낌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의 아쉬움이 벌써 느껴진다. 앞으로의 일정도 별 탈 없이 지나갔으면 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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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중 내가 태어나서 제일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인도에 왔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재미있었고 인도라는 나라가 되게 못사는 나라인지 알았는데 도착을 하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인도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브랜드인 현대 자동차를 볼 수 있었고 제일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 돈을 지불하고 화장실 사용하는 것이 제일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별도 생각보다 매우 많이 있었다. 또 잠을 자고 아침밥을 먹는데 손으로 먹는 것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까지도 손으로 밥을 먹어서 매우 불편했다. 오늘은 특별히 점심을 먹고 시장에 갔는데 이동수단을 오토 릭샤를 타서 엉덩이에 땀이 찼지만 인도 사람(어린이)인사 덕분에 불편한지도 모르고 재미있었다. 시장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시장을 보고 저녁 먹고 씻고 지붕에서 별도 보고 지금까지는 아직 재미있는데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좋은 도시 가서 좋은 것을 구경했으면 좋겠고 내가 땀이 많아서 장 시간 안 걸었으면 좋겠다. 이현진 항상 여행의 첫 날은 설렌다. 오늘은 인도에서의 첫 날. 나는 설레임을 안고 아침을 맞이 했다. 하지만 그 설레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침 밥이 늦게 왔을뿐더러 너무 기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들린 힌두푸르 시장은 작은 시장답게 시끄럽고 정신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최악의 날이 될 뻔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외국인인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던 인도 아이들을 보면서 이곳은 정신없고 시끄러워도 냄새가 나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 주신 나가빠 아저씨와 락시미 아줌마를 보면서 인도에 대한 안 좋은 편견까지 씻겨 내려갔다. 아직은 화장실 등 이 곳 문화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문화라도 사람이살아가면서 만들어 낸 문화이기 때문이다.

윤태종 외국에 처음 도착을 했는데 공항에서 올 때 살짝 흔들리고, 이런 것이 좀 짜증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인도 잠자리와, 오늘 와 본 잠자리를 알기에는 생각보다 꽤 좋았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밤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평원, 개들의 천국, 열대나무까지, 내가 못 본 것들의 천국이었다. 지난 기수에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영어로 내 이름 같은 것을 물어보아서 좋았다. 온도와 날씨도 잘 적응이 됐고, 이 시간 때의 시차도 적응이 됐다. 오늘 맘에 든 것은 인도 아이들이 친절하게 대하고, 귀엽고, 친하게 대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오토릭샤를 타보니까 덜컹거리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다. 시장에서 새로운 먹을 거리에 도전한다는 것이 좋았지만, 교통체증, 먼지 등등이 조금 안 좋았다. 작은 시장이어서 그랬던 것 같고 새로운 도시가 기대가 된다. 아침, 점심으로 먹은 빵, (쌈바, 감자)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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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 1월 8일 감상문 사실 제목에 따르면 오늘 내용을 적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착일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1월 7일 부분도 포함하였다. 출국일 내지 도착일은 굉장히 굉장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걱정이 밀려왔다. 사실 2번의 경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매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었다. 아직까지는 팀 구성원들과 어색했고 정신이 없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오늘 이 글을 작성한 8일이 되었다. 아침 햇살과 함께 눈을 뜨고 정기를 받으며 시작한 오늘은 기분이 상쾌했다. 일찍 일어나 작으나 넓게 느껴진 공터를 돌며 앞으로 나의 다짐을 다졌다. 처음으로 손을 사용해 음식을 먹었으며 처음으로 오토릭샤를 타고 인도인의 무한한 관심과 애정 및 경계를 느꼈으며 오랜만에 단체 생활이 무엇인지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물론 다 좋진 않았다. 뜨겁고 따가운 햇살을 한 몸에 다 받아서 너무 더웠으며 다양하지 못한 시장의 구성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조를 4개로 나눠서 다니게 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조를 나누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과 또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반면에 위험에 부담이 증가했다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경험자로 뭉친 우리 조는 대체적으로 순조로웠으나 사실 위험했다고 생각한다. 요점은, 조를 나누는 것은 좋지만 그 조의 구성원 및 모든 팀원에게 '분할'의 의미를 알려주고 스케쥴을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윤하 인도를 도착하면서 느낀 점 인도라는 상상이상으로 매우 더럽고 매우 가난하고 카스트 제도 때문에 사람들이 매우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하여 나름대로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 인상과는 다르게 매우 친절하고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수드라들의 집이 매우 작아보이고 초라하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오토릭샤는 뒤에 트렁크 자리에 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서 그 뒤에 타봤는데 스릴감이 재미있었다.

신실 인도라는 나라의 음식, 문화 등 모든게 한국과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도 목에 잘 안 넘어가고 인도의 눅눅한 느낌도 싫다. 방학동안 공부 걱정 안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여행을 승낙해버린 내가 싫어진다. 이왕 온 것 즐기다 가자는 생각이 있는데 열심히 노력해 봐야지. 오늘 처음 인도 시내로 나갔을 땐 매우 신기 하였다. 여러 종류의 물건들, 동물들과 공존하는 문화, "아, 이게 인도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라씨라는 음료를 마시면서 계속 한 곳에 머무니까, 신기한 경험을 위해서 온 목적이 없어진는 것 같다. 앞으로 대도시,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할 생각을 하면서 꿋꿋이 지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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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주 나는 오늘 정말 신기했다. 왜냐하면 오늘 이틀째인데 드디어 '아...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인도라는 다른 나라구나!'라는 것이 내 머리 속에 인식이 되었고 다른 것을 많이 경험해서 좋았다. 먼저 센터 한가운데에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정자와 같은 건축물(?)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이 매우 아늑해 보였고, 오토릭샤 라는 인도의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것이 매우 새로웠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듯한 오토릭샤는 앞자리, 중간자리, 뒷자리가 있는데 자리에 따라 승차감이 다르기 때문에. 힌두푸르 시장이 우리나라의 시장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물건을 사고 파는 모습이나 거리에 가게들이 줄줄이 서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신기했다. 우리는 오늘 힌두푸르 시장에 오토릭샤를 타고 갔다가 포도 라씨를 먹고 많이 돌아다니다가 다시 라씨 집으로 들어가서 느글거리게 매우매우 달콤한 포토라씨를 한잔 더 먹고, 느글거리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길거리의 원숭이를 구경하다가 성주쌤을 만나 음식을 사고 다시 쉬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짜~안! 되게 간단하다. 사실 말처럼 이렇게 간단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힘든 일정을 마치고 오토릭샤를 타고,,, (이번에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정말 정말 아늑하고 좋았다.가 아니라 엉덩이는 매우 아팠지만 익사이팅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하다고 느꼈던 것은 인도인들이 다 똑같이 생겼다는 것ㅋㅋㅋ 인도인들 죄송.

홍건화 인도 오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이 벌레와 씻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도에 도착했더니 역시나 걱정했던 문제들이 발생했다. 잠자리를 기어다니는 각 종 벌레와 깨끗하지 못한 샤워실과 화장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벌레에 대해 적응한다는 것은, 내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앞으로 40일 동안 엄청 힘들것 같다. 여기는 작고 초라한 시골이라서 씻는 것이 불편하다. 얼른 이 작은 시골 마을을 벗어나서 큰 도시로 깨끗하게 샤워하고 싶다. 앞으로 걱정하는 건 벌레, 화장실 위생, 샤워실 위생, 소매치기, 똥 밣기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다. 아 하나 더 물갈이도 안했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 시장에 갔다왔는데 인도는 위생이 정말 말도 안되고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정도로 더럽다. 위생이 좋으면 앞으로 여행이 즐거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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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2일자 생활 나눔

저녁식사(홈스테이?) 가정 방문 후 소감. 태종_저희는 일단 두 명이 가서 심심했어요. 집에 영어를 알아 듣는 사람이 없어서 옆집 아줌마가 도와주었고 그래서 옆집에도 놀러가서 좋았고 티비도 봐서 좋았어요. 끝이에요. 미주쌤_저는 태종이랑 같이 둘이서 같은 집에 갔는데. 다_오~~ 미주쌤_그래서 좋았고 원래 찾아갔던 집이 영어를 못 하시기 때문에 이웃집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 분이 22살이고 이제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에요. 갑자기 그 집에 오라고 그래서 그 집에서 음악 완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있었는데 그 집 안에 자기 남편의 오빠가 옆집에 사는데 바로 옆에 천 하나 두고 사는데 둘 다 다 티비 완전 크게 틀어놓고도 잘 지내는 거 보고 놀랐고. 인도 사람들이 참 예의가 바르고. 손님들에게 잘 대해 준다고 많이 느꼈어요. 특히 태종이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채널도 딱 축구도 틀어 주고 되게 좋았어요.

실_일단 딱 집에 들어갔는데 집이 너무 작았어요. 대 여섯 평 정도였는데 저희 세명이랑 애들 세명이랑 여자 두 명 남편 분 오셨는데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아 밥이 되게 맛있었고. 크리켓 계속 봤는데. 남자들끼리만 가서 할 말아 많아 없었는데 어머니가 계속 이야기 하셔서 눈치만 보다가 온 것 같아요. 양진_저느으은 처음 갔을 때 티비가 있어서 오 부자구나 생각했는데. 티비는 다른 집들도 다 있고. 병아리도 여섯 마리나 있어서 오와 가축도 키우는 구나 했는데 다른 집에는 소 두 마리 염소 네 마리 있고. 저희는 너무 갔다가 빨리 돌아와서 아쉬웠어요. 윤하_여섯시 반이 아니야 한 다섯시? 여기서 계속 기다렸어. 원희_먹는거는 맛있었는데? 미주쌤_짜파티 몇 장 먹었어요? 원희_몰라요. 막 찢어서 줬는데. 많이 먹었어요. 찬중_일단 저희는 밥이랑 짜이랑 다 맛있었고요. 애기가 선반에 올라갔는데 떨어졌어요. 양진윤하_ 맞아.. 그래서 바늘 있냐고 물어봤어요. 찬중_엄마한테 혼나고 울던데. 이야기는 많이 못했어요. 호근_가서 티비 볼려구 했는데 갔을 때 딱 정전이라서 못 본대요. 좀 있다가 불 들어왔는데. 밥 먹다 보니 또 정전이래요. 아 그래서 되게 불편하게 사는구나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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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화_ 아저는. 안에 집에 도마뱀이 세 마리 붙어있었는데. 윤하_집안에?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아? 건화_어 집안에. 아 근데 그게 집이 좀 안 쪽에 있었는데. 안 쪽 뒤 쪽 모든 집이 다 이모고 사촌이고 다 엄청나게 큰 가족이어서 놀랐고. 음식이 맛있어서 좋았고. 그런데 음식이 일곱시 반에 나와서. 늦게 돌아왔어요. 진주_저희는요. 되게 골목골목 들어갔어요. 그런데 건화오빠네 뒤집인가 앞집인가 그래서 같이 갔는데요. 집에 너무 어두워서요. 계속 먹을 걸 줘요. 맨 처음에 요만한거 짭짤한 거 좋았는데 맛이 별로 였어요. 그 다음에 짜이랑 비스킷 많이 나와서 호근_비스킷을 줘? 진주_비스킷 짜이에다가 찍어서 많이 먹었구요.그 다음에 밥으로 짜파티 나왔는데 고기에다가 싸먹었는데 계속 싸서 먹여주더라구요. 계속 제가 쪼금쪼금 먹겠다고 하니깐. 그래서 많은 걸 주고 많은 걸 받아서 왔어요. 유진_저는 가까운데 가는 줄 알았는데 계속 안 쪽으로 들어가서.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원바이 원 이래서 봤더니 구덩이가 이만한게 엄청나게 크고 깊은 게 있어서 놀랐는데.

진주_맞아요. 정말 엄청 컸어요. 유진_봤지? 그런데도 계속 들어가는데요. 태종_구덩이를 왜 파놨지? 물이 차있었나? 유진_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넝쿨막 있고 그래서. 건화_그냥 동굴 같았어, 동굴. 유진_동굴 같았어요. 땅 밑으로. 들어갔는데 여기 앞만 마을인 줄 알았는데 깊이 들어갔더니 또 다른 큰 마을이 있더라구요. 다들 사촌들이고. 염소 떼를 몰고 어떤 분이 막 지나가시는데 갑자기 우리 할아버지라고 해서 나마스떼하고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 분이 나타나셨는데 우리 이모라고 해서 또 다같이 나마스떼하고 인사했어요. 그런데 또 얼마 못가서 자기 할머니라고 학생이 소개시켜줘서 또 나마스떼하고 인사하고 인사하면서 집에 찾아갔어요. 그 집에 아이들이 있었어요. 쁘라나비랑 쁘라나비 오빠랑 사촌동생이랑 엄마랑 이모 이렇게 있었어요. 엄마랑 이모분이 밥 맛있게 해주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다들 두장 씩 받아서 먹고 시간이 늦어서 빨리 돌아가려고. 저희 조에 건화가 정전이 되니까 막 무서워하더라구요. 선생님 저희 어떻게 돌아가냐구. 다_에이~아~ 건화_아 진짜 깜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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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2일자 생활 나눔

저녁식사(홈스테이?) 가정 방문 후 소감. 유진_그래서 내 후레시 하면서 후레시 안 갖고 온 거 후회하면서 빨리 먹었는데. 형석이도 막 빨리 먹고 저도 건화도 빨리 먹고 더 늦기전에 갈려고 막 먹었는데, 갑자기 접시가 비어가니깐 짜파티를 더 주시는거에요. 우리가 분명이 꼰쫌꼰쫌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한 접시 씩 더 나오니깐. 형석이가 우리 남기면 안될것 같아요. 해서 맛있게 바군디 바군디 하면서 먹고 있는데 갑자기 건화가.. 선생님 저 도저히 못 먹겠어요. 어떻게 표현해야되요? 하더니 건화가 딜리셔스 벗 아임 풀.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쁘라나비가 별로 표정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형석이가 그 모습을 보고 아이고 그냥 다 먹어야겠다.하면서 다 꾸역꾸역 먹고. 딱 나오는데 쁘라나비랑 쁘라나비 오빠 무르디랑 아이들이 저희 칼루르 센터까지 같이 데려다 줬는데 아이들이 다 울려고 하더라구요. 본지는 하루이틀 삼일 밖에 안됬는데 저희들 왔다고 아이가 집에서 앉아있지 못하는거에요. 계속 뭐 가져다 주고, 티비 틀어주고 뭐해 주고 괜찮다고 해주고 램프 틀어주고. 어떻게든 잘해주려고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오히려 더 잘해주고 더 주고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고 너무 고마웠어요. 현진_저도 처음에 계속 정글 깊이 들어갔는데 아 좀 부족한 아이구나. 아 그리고 애가 엄마 음식이 되게 맵다는거에요. 그리고 심지어 불을 안켜놔서 굉장히 깜깜해서 집안 형편이 별로 좋지 않은 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불이 딱 들어왔는데 아주 그냥. 넓고. 여기 집이 제일 부자라고 하더라구요. 밀크밀크 이래서 팩 우유 주는 줄 알았는데 바로 직접 짜서 데워서 짜이 만들어줬는데 너무 맛있었고.

지금 이 머리도. 가는 길에 끈 예쁘다고 하니까 직접 머리도 따줬어요. 점도 이렇게 찍어줬는데 매니큐어 같은 걸롤 찍어줬고. 팔찌도 주고. 너무 퍼줘서 받는게 미안했고. 그래서 터키 석이 있었고 끈 팔지랑 여러개 있었는데 아이가 터키석 골라서 주고. 다인_ 아 저희집은. 다른 분들 이야기 들어보니깐 저희 집이 제일 뛰어난 건 아니였네요. 나는 저희 집이 제일 좋은 줄 알고 있었어요. 우리 집은 세명이 있었는데 세명이다 여기 방과후 교실 들었는데 셋째가 유일하게 남자애인데. 아까 유진쌤이랑 장난 치던 남자앤데 락끼라고 되게 귀여운 애가 있어요. 걔네 집인거에요. 그래서 얘랑 나랑은 뭔가 있다라고 생각해서. 계속 대쉬를 했어요. 들이댔어요. 근데 인도 사람들이 인심이 좋다고 느낀게. 옆집에 사는 인도 아이가 놀러왔는데 되게 개구진거에요. 락끼한테 막 헤드락 걸고. 락끼 엄마도 터지 안하고 나가라고 내 좇지도 않고. 짜파티 나왔는데 저희도 정말 배불러 죽는 줄 알았어요. 토할 각오를 하고 먹었는데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했더니 이해를 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즉석사진 찍고 왔는데. 사진기 가져간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주혜_저도 다인언니랑 같은데갔는데 전통옷 만드는 기계있어서 커서 신기했고. 언니 덕에 사진도 찍고. 성주 샘 덕에 통역도 많이 되고 그래서 편하게 있다 온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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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호쌤_저는 딱 두가지. 거기 갔는데 아버님이 저랑 동갑이었어요. 일동_하하하하하하하... 또르또르.. 종호샘_깜짝 놀랐어요. 프렌드 프렌드하면서, 거기 네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리고 밥을 먹었는데 처음엔 정말 맛있었는데 먹다 보니 배부르더라구요. 추가로 주는 거 예의상 제가 남자니까 먹어야겠다하고 먹었는데 진주가 남겼어요, 그거를 저를 쳐다보고 그래서. 남는 것까지 다 먹고. 짜파티를 여섯 개를 스트레이트로 먹고. 그래서 속이 조금 더부륵한데. 너무 분위기가 좋아서. 내일 또 오라고 하셨는데 저희 일정상 못가서 아쉽고. 오랜 만에 시골 같은 인심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윤하_저는 가면서 느낀건데 저희 집이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저희 집이 제일 안 좋더라구요. 그리고 거기서 음식을 먹는데 찬중이 형이랑 양진이 형이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는데 저희는 들어가자마자 바로 일분만에 음식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먹었죠. 그래서 계속 주시더라구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시간도 십분 이십분 밖에 안 지났는데. 꼬마아이가 눈치를 주더라구요, 그래서 나왔죠.

그래서 가다가 어떤 남자애가 싸이먼 애를 만나서 걔네 집에 또 갔어요. 가는동안 그 아이 친구들이랑 인사도 하고 어머니랑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사진을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좋았고. 그리고 저희가 너무 불필요 이상으로 빨리 돌아왔더라구요. 그리고 정전이 일어났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플래시 키고 계속 와서 정전도 못느끼고, 양진이 형이 무섭다고 해서 저것도 키는데 꽤 오래 걸리더라구요. 정선 끊긴 거 맞추는게 힘들더라구요. 여기와서 한 시간 놀았어요. 희상_저는 따른 사람들이랑 방향이 다 달라가지구, 방향 딱 도니깐 닭이 날아다니고 똥이 너무 많아서 못 사나 보다 했는데 염소가 되게 많아서 염소 구경도 하고 버팔로 구경도 했는데 밥이 아직 안되서. 원희가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들판에 한 번 갔다가. 밥을 받아서 한 사람당 두세장 먹었는데 충분히 잘 먹었고. 크리켓 보다가 정전되가지구 깜짝 놀랐는데 다시 불켜져서 보다가 왔어요. 아 그리고 모기 물렸다고 하니깐 옥수수 마른 것 태워서 연기 피워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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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_저는요 호근이하고 강한이하고 찌띠라고 하는 애 여자애 집에 갔어요. 가니깐 우리 소식 들었는지 굉장히 많이 와있더라구요. 삼촌도 있고 엄마도 있고. 가방을 놔두고 앉으래요. 저녁 덜 되었다고 그래서 애들이랑 사진도 찍고 이야기 하다가 크리켓 보고. 뺨 때리는 거 그거 재밌는 만화 드라마? 그거 보고 밥이 나와서 밥 먹고. 저희 엄마 아빠 한국 사진 보여주니까 되게 좋아했어요. 애들이 저희 사진도 찍어주고. 짜이를 달라고 하니까 짜이도 마늘어주시고 애들이 데려다주고. 형석_저는 그냥 다 좋았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고 만족했어요. 애기들도 다 착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거를 되게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해야 하나? 굉장히 잘 대접해주어서 그 모습을 보고 또 많이 배웠구요. 많이 받기만 해서 아쉬운 점이 있었고 정말 아쉬웠던 점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정말 홈스테이를 더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고 오는?

강한_ 저는 집에 갔는데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다가 어떤 키가 큰 형 같은 사람이 와서 서있는거에요. 근데 주머니에 스마트 폰이 있는 거에요. 다들_ 오! 강한_ 그런데 삼성꺼라서 자부시을 느꼈고.그리고 밥을 먹을 때 계속 물을 마시라고 하는 거에요. 안 마실려고 했는데.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돼서. 딱 다행이었어요. 다들_완전 굿 타이밍. 성주 샘_저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이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한 게. 예전에 같이 왔었던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4년전 사람들도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기 사람들은 정말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구나라는 것 다시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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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21일자 생활 나눔

자이뿌르 행 20시간 기차에서 - 발제자 양진

양진_ 뭐 훔쳐가고 그럴줄 알았는데 엄청 착하고 먹을 것도 같이 나눠먹고 착한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끝입니다. 그리고 순서는 미주쌤 시계 반대 방향. 미주쌤_첫번째로 그 동안에는 인도 사람들이 뻔뻔하게 우리 자리에 앉아 있고 이랬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자리가 없었으니까 함께 자리에 앉게 돼서 오히려 원래 자리의 주인인 인도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20시간 동안 자리 없이 오는데도 다들 큰 불평 불만 없이 잘 참아줘서 대견스럽고 감사했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원희_ 20시간 동안 잘 참은 것 같아요. 잘 참았고요. 할말이 없네요. 미주_뭐했어요 기차 안에서 원희_잤죠. 계속.. 끝이에요. 박수치라능 찬중_저는 기차 타면서 원희를 챙기는데 더 신경 쓴거 같고, 침낭 다주고 하다가 뒤늦게 추운 걸 알아서 바람막이 두 개 입고 문앞에서 쭈구려 자다가 인도 사람이 삼층 비었다고 누워서 자라고 해서 이런 인도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재영_자는 시간 보다 자리 찾고 움직이고 멍때리는 시간이 많았어요. 추워서 쭈구려 자기가 불편했고, 입 안돌아간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인도 사람들 되게 착하더라구요. 자리도 비워주고.이상입니다

태종_먹을 것도 많이 주고 침대도 빌려주고 해서 좋았고요. 잘 때 인도 사람이 아빠처럼 같이 껴안고 자서 따뜻했어요. 좋았어요. 건화_저는 원래 인도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으면 ‘이사람 뭐지’하고 기분 나빴었는데, 막상 우리가자리없고 바닥에 앉아서 갈 상황이 되니깐 인도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준게 정말 고마웠고, 인도에도 겨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호근_저는 물갈이 하느라 속이 너무 안 좋았는데 춥기까지 하고 자리까지 없어가지고 정말정말 힘들었어요.

기차에서 무척 친절했던 고마웠던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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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상_저도 제 자리에 앉으며 뭐라하고 내쫓고 이랬는데, 저보고 뭐라하지 않아서 너무 고마웠구요.막 라면이고 뭐고 매운 걸 먹어서 속이 안 좋았고, 잠잘 때도 쑤그리려고 하니까 굉장히 안좋더라구요. 그래도 종호샘이랑 올라가서 잘 수 있게 돼서 고마웠고, 짐 지켜준 윤하와 형석이 형이랑 반대쪽 찬중이랑 원희 감사했어요. 실_맨 처음 인도에서 기차를 탔을 때 내가 영화에서 본 해리포터처럼 수증기 막 나고 그런 기차를 타는 것 같았는데. 막상 타보니까 이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탈 때도 힘들었고 차차 적응하니까 인도 사람들 다 착하고, 앞으로도 기차 여행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종호_21시간의 자리가 없는 기차 여행이 끝났어요. 너무 좋아요. 정말 고생들 많았고, 한국돌아가도 이 기억은 평생 가슴에 담고 한국에서 힘든일이 있을 때마다 이 순간을 생각하면서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유진_저도 되게 저희가 역지 사지를 경험하지 않았나. 항상 저희 자리이기 때문에 몰아내고 이랬는데 저희가 이제는 뻔뻔하게 인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개인사,연애사,저희사진도 다 보여주고. 처음엔 그냥 옆에 아주머니랑 친해져야지 우리가 오래 앉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는데. 되게 여러 이야기들을 많이하면서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고.만약에 우리가 빠른 비행기를 탔거나 기차보다 사람이 적은 버스를 탔으면, 많은 외국인과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먹을 것을 나눠먹는 시간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남은 기차 여행은 이제 껌이죠. 뭐. 앞으로는 더 재밌게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인_저는 학교가 강화다 보니까 되게 추워요. 겨울에. 눈오면 더 추운데. 그건 추위가 아니었더라구요. 느껴보니까. 밤에 침낭하나로 현진이랑 서로 반대편에서 잤는데 자다가 엄청 많이 깼어요. 세상에서 처음으로 많이 깬 것 같아요. 추워가지고. 근데 무슨 말 하려고 했지? 다음 기차여행부터는 자리가 있으니까 편할 것 같아요. 주혜_저는 형석이 오빠가 삼층 어떤 인도 사람이 비켜준다고 해서 가서 자라고 해서, 저한테

자리 비켜준 것도 고맙고 오빠도 추운데 문앞에서 잔것도 미안하게 생각하구요. 어. 그랬습니다. 진주_저는 하도 많이 자서 일단 다른 사람보다 스무시간이 짧게 느껴진 것 같애요. 근데 일단은 인도 겨울은 안 추울거라고 생각해서 바람막이랑 래깅스만 입었는데 은근 춥더라구요. 배고프다.배아프다.춥다.졸리다. 이런 생각이 가장 든 것 같아요. 강한_저는 처음에 스무시간 동안 서서 어떻게 가나 했는데. 그래도 다 어떻게 어떻게 가게 되더라구요. 자리 내어준 인도 사람들에게 고맙고, 재밌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만한 기차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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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석_아 저는, 일단 혼자 서있었는데 윤하가 와줘서 진짜 고마웠고. 초반부에 재영이형이 주무시고 계셨는데 진주랑 주혜 때문에 깨운 거 죄송하고, 저녁에 호근이가 밥 들고 올 때 기뻤고 무엇보다 장시간 기차 안에 있다보니까 아무래도 개인적인 시간을 갖게 된 것도 좋았고, 인도 사람들이랑도 처음으로 이야기 해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윤하_저는 일단 형석이 형이 저랑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계속 가다가 화장실 쪽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문앞에서 계속 막고 있어서 귀찮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인도 사람들이 저녁 되니까 많이 안와서 괜찮더라구요. 밥도 오고 밥먹으면서 기운도 차리고 미주샘이 바꾸자 그럴 때 형석이 형이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제가 계속 서자 해서 같이 서있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좀 미안했어요. 그러다가 짐 지키는 것 바꿀 때 제가 되게 추워서 가만히 있다가 종호샘한테 침낭을 빌렸는데 나중에 기차 끝날 때 침낭 반납 할 때 종호샘 너무 춥게 지내셨을 것 같아서 미안하구요. 형석이 형이 바닥에서 자구 있을 때 제가 깔고 잤거든요. 그러다가 형석이 형이 자리 찾았을 때 저도 같이 올라가서 자서 형석이 형한테 미안한 점이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현진_저는 상상했던 스무시간보다는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고. 한국 사람들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있듯이 인도 사람들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 있다는 것을 느꼈고, 다인이 혼자서 침낭 덮기도 바빴을 텐데 같이 나눠줘서 고마웠고, 그러면서 더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저 큐브 한 면 맞추는 거 드디어 성공했어요! 어제 기차에서 열심히 해서 성주_이 스무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쪼금 덜 고생할 수 있을텐데 더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새벽에 한사람한사람 재우면서 이제 돌아다니면서 봤는데 너무 춥게 자고 평소에 경험하지 않았던 힘듬을 안겨 준 것 같아서 앞으로 더 잘 인솔하고 안전하게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나 다 고마웠는데 형석이 윤하 투정 거리거나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데 짐 지켜주고 추운데서 옆에서 응원해주면서 같이 있어준 것 고맙고, 반대 편에서 원희랑 찬중이도 아무말 없이 자리 바꿔달라 할 수 있는데 맨 바닥에서 자기 혼자 팔베고 찬중이 자고있는데 자리가 있었으면 따뜻하게 자지못한 거 미안하고. 앞으로 더 힘든 기차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남인도가 따뜻해서 기차가 춥다는 거를 미리 말해주지 못한 점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앞으로 힘든 건 없지 않을까.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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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온지 20일이 지났다. 빠르기도 하지만 느리기도 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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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함피에서 인도와서 처음으로 아프게 되었다. 아마 망고트리라는 음식점에서 먹은 스파게티가 문제인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아파서 집 생각만이 가득하였다. 다행히 지금은 몸이 다 나은 상태이다. 세바그람에서는 간디에 대해서 설명을 들어서 간디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 후에 세바그람에서 자이뿌르까지 기차로 자리없이 20시간 넘게 간 것 같다. 자이뿌르에서 조별로 저녁을 먹는데 우리조가 먹은 레스토랑이 특히 맛이 있어서 뿌듯하고 좋았다. 자이살메르에서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서 좋았다. 그리고 낙타사파리 할 때 처음이 특히 좋았다. 사막에 도착하여 사막에서 사구를 봤는데 정말 영화처럼 멋있었다. 사막에서 자고 그 다음날에 일출을 보는데 너무 멋있어서 좋았다. 올 때 낙타가 뛰어서 가랑이 사이와 엉덩이가 아파서 지금까지도 근육통으로 고생중이다.

이윤하 오늘은 우리가 여행을 반쯤 정도를 한 날이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함피에서는 유적지들을 돌고 시장 구경도 많이 하여서 정말 신이 났다. 하지만 이때는 성주쌤이 리드를 하여서 그런지 패키지처럼 편했다. 그러다가 함피에서 속이 안 좋아서 하루 종일 누워서 아팠던 것이 좀 그랬다. 하지만 쾌차를 하고 난 다음부터는 음식도 많이 먹고 하이데라바드 역에서 쉬고 나니 정말 좋았다. 하지만 사진을 모두 전체 삭제를 눌러서 좀 아쉬웠다. 그렇지만 세바그람에서 나름대로 간디에 대해서도 알고 간디가 살았던 곳, 사용한 물건들을 보고나니 나름 여행하는 맛을 좀 알게 되었다. 자이뿌르에서부터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다니다 보니까 여행을 하는 것은 쉬워도 계획을 세우면서 여행하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정보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원래 세웠던 경비보다 150루피를 더 썼는데 그 이유가 유적지가 관광비를 받게 되어서 우리가 용돈으로 때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종호쌤이 나중에 돈을 주신다고 하여서 안심하고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라씨왈라라고 하는 곳에서 라씨를 먹었는데 정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의 라씨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자이살메르에서는 낙타 사파리가 최고였던 것 같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완벽한 사막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하였다. 그래도 색다른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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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혜 1월 26일(성주T의 생일) 1월 7일날 인도에 도착해 벌써 20일이나 지났다. 1월 7일 뱅갈로르에 도착해 차 타고 힌두푸르에 도착했다. 힌두푸르의 칼로루 마을에 도착해 칼로루 센터에서 5일동안 지냈다. 5일동안 같은 방에서 생명팀 20명이 같이 지냄으로써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다. 칼루르 마을 아이들과 함께 운동회도 하고 춤도 추고 태권도도 하면서 친해지고 친구들의 집에 가서 저녁 밥을 먹으며 더욱 정이 들었다. 막상 친해지고 헤어지려고 하니 순간 눈물이 울컥했다. 그래도 칼로루 마을의 아이들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월 12일 힌두푸르를 떠나 함피에 도착했다. 힌두푸르에서 함피로 갈 때 처음으로 인도기차를 탔다. 누워갈 수 있도록 침대가 있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처음에 기차를 탈 때 기차를 잘못타서 함피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뻔했다. 하지만 원래 타려던 기차가 연착되어 다행히 그 다음 역에서 우리가 원래 타려고 했던 기차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원래 타려고 했던 역에서 타지 못해 우리 자리였던 곳이 waiting list에 있던 사람들에게 넘어가서 7자리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ㅠ_ㅠ 한 명 한 명 껴 탔는데 3층에 앉아서 갈 때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 함피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데 풍경이 정말 예뻤다. 점심을 먹고 숙소에 짐을 두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랑 얘기하는데 순간 울컥해서 울 뻔했다.ㅠㅠ (울지 않음.) 그리고 그 다음 날!! 함피에서 유적지를 돌아 다녔다. 마지막에 마팅가힐에 가서 sun set을 봤다. 해가 질 때 점프샷을 찍어준 윤태종이에게 고맙다. ㅎ 함피에서 세바그람까지 갔다. 세바그람에 있는 간디 아쉬람에 가서 4일동안 ‘힐링’을 하며 새벽기도도 가고 재밌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문제였다. 세바그람에서 자이뿌르로 넘어가는데 20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했다. 그런데 가기 직전에 waiting풀리지 않아서 서서 가야했다. 그래도 중간 중간에 내리는 인도 사람들 덕에 자리가 남아서 조금이라도 잤다. 형석이 오빠가 짐을 지키느라고 문 앞에서 너무 춥게 자서 미안했다. 자이뿌르에서 첫째날!! 맥도날들에 가서 햄버거를 먹고 ‘다방’이라는 영화를 보고 탄두리 치킨을 먹었다. 햄버거에서 인도 맛이 나서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둘째날. 인도에서 와서 처음으로 조별활동을 시작했다. 인디언 커피 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쇼핑을 하고 헤나도 한 후 하와마할 잔타르만타르를 릭샤 운전사인 ‘알리’를 만나 water palace와 코끼리 구경, 스카프 같은 것을 만드는 공장 및 가게에 가서 돌아다녔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지금 있는 자이살메르에서 한국음식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낙타사파리를 했다. 사막에 처음갔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닭고기를 먹고 고구마를 먹고 감자도 먹었는데 맛있었다. 하지만 오늘 자이살메르를 떠난다. 다음에 할 일정이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재미있는 여행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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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한 칼루르 마을에서 있었던 일은 오래되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크게 기억이 남는 일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함피에서는 몇몇 기억이 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코끼리를 봤고, 소한테 죽을 뻔 하기도 했었다. 함피에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많은 유적을 봤고, 마팅가 힐에서는 끝내주는 일몰도 보았다. 소한테 당한 다음날은 오전에 열이 나면서 아팠고, 그날 정오 쯤에 지금 입고 있는 알라딘 바지를 샀다. 함피에서 나와서 하이데라바드를 갈 때 하이데라바드가 위험해서 세컨데라바드로 간 기억도 나고, 세바그람에서도 기억남는 일이 많다. 우선 세바그람 둘째날 엄청 아팠다. 아마 내 여행 중 가장 아팠을 것이다. 그래도 그날 여행가족들이 간호해주고, 걱정해줘서 그 다음날 바로 나을 수 있었다.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함피에서 소랑 싸웠다면 세바그람에선 미키마우스라고 이름 지어준 쥐랑 싸웠다. 내 주먹 만했던 것 같다. 새벽에 기도회는 정말 춥고 재미없었다. 강남스타일 연습도 많이 했고, 세바그람에선 대체로 쉬어가는 일정이었다. 간디가 살았던 마을이라 그런지 간디 삘 나는 할아버지 현지인들이 많고, 한국이나 외국 관광객도 많이 마을을 찾아왔다. 그 다음 세바그람에서 자이푸르가는 일정은 정말 힘들었다. 20시간동안 기차만 타니까 내가 여행을 온건지 기차를 타러 온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자이푸르에선 일단 숙소가 추웠고, 자이푸르 자체가 추웠다. 북인도랑 남

인도 날씨를 같은 취급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핑크시티라 불리는 곳을 갔는데, 아 그 전에 점심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영화도 봤는데 잠만 자서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 다시 핑크시티에서 잔타르 만타르와 하와마할 등을 갔는데 우리나라 유적이 훨씬 멋있었다. 핑크시티에서 돌아다니는데 다리가 정말 아팠다. 나하르가르 성을 올라갈 땐 예비트래깅을 하는 것처럼 힘들고 지쳤다. 저녁에 탄두리 치킨 먹은 것은 정말 맛있었다. 자이살메르에 와서는 처음으로 한국 음악이 흘러나오는 숙소에서 잠을 잤다. 숙소 위에는 한국 음식을 하는 식당도 있었는데 꽤 괜찮은 맛이었다. 자이살메르하면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낙타사파리이다. 낙타를 처음 탈 때는 무섭고 설렜는데 한 10분 정도 타니 엉덩이만 아프고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생각보다 햇빛이 강하지 않았고 사막도 내가 생각한 리얼 사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캠프파이어에서 먹은 닭과 고구마는 잊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셋째 날 저녁에 디저트로 먹은 초코아이스크림은 이탈리아 젤라또 같은 맛으로 엄청 맛있었다. 한국식당인 타이타닉에서 먹은 것도 맛있었고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돼서 카톡으로 친구들, 엄마, 아빠와 연락을 한 것도 좋았다. 앞으로 델리, 아그라 등등 일정이 남았는데 남은 시간동안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보낼 것이다.

김찬중 함피에서는 망고트리에서 크림스파게티를 먹고 아파서 제일 생각나고 세바그람에서는 간디 마을에서 채식만 먹어서 생각나고 자이뿌르에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먹고 탄두리치킨을 먹어서 생각나고 그리고 영화 다방도 재미있었다. 자이살메르는 한국음식을 먹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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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화 인도에 온지 20일이 지났다. 어떻게 보면 빠르고 어떻게 보면 느린 시간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밖에 안 지났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벌써 20일? 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생명팀하고 더 오래 있고 싶은데 벌써 20일이나 지났고 앞으로 18일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조금 슬프다. 힌두푸르 칼루르 마을은 더럽고 조금 못 사는 동네여서 모든 인도가 그렇다 생각했는데 다음 도시인 함피를 가보고는 생각이 180도, 아니 그 이상으로 바뀌었다. 게스트하우스도 생각 이상으로 깨끗하고 인도 사람도 친절하고 음식도 맛이 있다. 그 다음 도시인 세바그람에서는 숙소에서 쥐가 나와서 별로였다. 세바그람 이후로 나는 게스트 하우스를 좋아한다. 자이뿌르도 갔는데 자이뿌르는 도시가 커서 싫었다. 너무 복잡하고 교통이 어지러우면서 소음도 많았다. 내가 도시를 보는 눈이 함피를 보면서 높아진 탓이다. 인도 3대 라씨 집인 라씨왈라에서 라씨를 먹어서 좋았고 하와마할과 나하르가르성도 굉장히 멋졌다. 지금은 자이살메르에 있다. 여기는 도시가 미로 같아서 정말 싫다. 하지만 여기서 많은 한국 음식과 한국인, 한국어를 보았기에 나는 만족한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이 “아, 안녕하세요.” 등 기본적인 한국어를 해서 기분이 좀 샜다.

낙타 사파리는 사막이 아닌 황무지라 조금 실망했지만 진짜 사막도 조금 봤고 거기서 놀았고 낙타도 타봐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델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델리에서 성폭행, 성추행이 들끓고 있다고 들었기에 나는 조금 조심하고 안전하게 여행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부모님들도 우리를 걱정하고 있겠지만 특히 여자의 부모님들은 더욱, 우리 팀이 서로를 잘 챙겨주고 사이가 좋기 때문에 델리에서도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지호근 인도에 와서 1주일 정도 물갈이를 했는데 정말 포크랑 나이프로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 물갈이를 하는 1주일을 빼고 나머지 인도 여행은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고 특히 낙타사파리를 하고 사막에서 잘 때는 평생 못 잊을 좋은 추억이었다고 생각한다. 함피에 있을 때나 세바그람에 있을때 모두 기억에 남고 인도여행을 하면서 쓴 일기는 앞으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남은 18일도 유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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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주 지금까지 여행 반정도의 일정을 끝냈다. 너무 힘들었다... 지난 7일간 설사하고, 토하고, 열도 났는데 너무 고통스러웠고 일기는 계속 밀려서 죄책감이 들었다. 아... 한국의 음식들이 너무너무 보고, 먹고 싶다! 그래도 데저트뷰(?) 호텔에서 한국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낙타 사파리에서 낙타를 타본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내 친구들은 한본도 해보지 못했는데 나만 해보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를 자부심이 ㅋㅋㅋ 헤나를 너무 좋아해서 세 번이나 하고, 헤나 약품도 사 보았다. 헤나 가격이 비싼데 대체로 150루피가 적당한 것 같다. 깔루르에서는 평온해서 마냥 좋았고, 함피에서는 뭔가 밝은 느낌이 들면서 좋았는데 자이뿌르에서는 상인들이 너무 억세었다. 막 가격을 깎으려고 해도 눈을 부릅뜨고 뭐라 하고 그냥 가려고 하면 손을 잡고 늘어진다. 정말 무서운 곳! 왠지 가고 싶지 않았다. ToT 하지만 조별로 먹을 때 들린 어느 채식 레스토랑은 스위츠라는 설탕에 절인 후식이 정말 환상이다 환상! 그리고 가장 최근에 들린 자이살메르는 낙타사파리를 해서 너무 좋았고 데저트뷰 한국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eight July(?) 레스토랑도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리틀 이탈리는 크림스파게티가 정말 느끼하다. 그래서 시켜놓고 조금밖에 안먹고 형석오빠 것을 다 뺏어먹고 또 주혜언니 스파게티도 먹었다. 그리고 성주티쳐 생일 선물 준비와 깜짝파티 준비도 만족스러웠다!!! 데저트뷰 호텔에 나의 부주의로 레깅스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이고오 나의 나쁜 기억력!!! 그래도 지금까지 꽤 괜찮고 편안한 여행이었다. 기차여행도 힘들지만 나름대로 편안한 여행!!

이형석 벌써 여정의 절반이 지나갔다. 아주 아쉽다. 40일이라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처음에 막연했지만 너무 빨리 지나갔다. 사실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르겠다. 그래도 쓰겠다. 사실 이 여행을 ‘하이라이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낙타사파리’가 막을 내렸다. 맥이 빠진다. 인도사람들과 이들의 문화가 익숙해지면서 팽팽했던 긴장도 익숙해져 살짝 느슨해진 느낌이다. 인도를 알아갈 만큼 우리 팀원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추운 사막의 밤 중 뜨거운 이야기를 나눠 서로를 더욱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 같은 경우, 다수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기를 쓰지 않았다. 살짝 후회가 되지만 이런 보고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경험했던 모든 것이 머릿속을 스친다. 단 한 번도 깊은 잠에 빠지지도, 미칠 정도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지도, 못했지만 이런 여행에 보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국에 도착하면 이미 학기가 시작해서 한발 늦게 시작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 같아 더욱 실감나지 않게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정신 좀 차려야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공백을 채워보겠다. 호근이 말대로 온 몸을 한 장의 도화지 삼아 제대로 채워보고 싶은 것과 용돈 좀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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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처음 여행일기를 쓸 때는 언제 절반 가나 했는데 벌써 여행의 절반이나 와 버렸다. 곧 올 이 여행의 마지막을 생각하니 아쉽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여행의 끝을 본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아직은 절반이나 남았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생각하겠다. 처음에 인도사람이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깔루르에서 좋은 사람들만 봐서 그런지 큰 도시로 나갈 때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의 큰 도시는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었다. 사람도 무섭고 오토바이도 무섭고...... 조금은 긴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일정이 그렇게 위험한 델리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긴장하고 조심하려고 노력중이다. 깔루르라는 작은 마을을 나와 큰 도시로 처음 나왔을 땐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생각한 인도는 조용하고 느린 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도시는 우리나라보다도 더 복잡했다. 인도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20일째가 되니 드디어 한국 사람들이 그립다. 엄마아빠도 너무너무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가 그립다. 한국음식, 한국에서의 생활들이 그립다. 물론 자이살메르에서 한국음식을 먹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에 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그리워지기만 한다.

윤태종 함피 13~15 함피에서 가장 생각이 나는 2가지는 바위들로 이루어진 산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처음으로 인도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먹었다는 것이다. 하이데라바드 16 이곳에선 경유를 했기 때문에 지하철밖에 생각이 안 난다. 세바그람 17-20 간디아쉬람에서 명상 시간을 가진 것도 좋았고 채식이 맛있어서 좋았다. 세바그람에서 자이뿌르까지 21시간동안 기차에서 서서 간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자이뿌르에서는 여러 가지 관광지와 인도 영화 그리고 햄버거를 먹은 것이 기억난다. 자이살메르에서는 낙타사파리와 사막, 내가 아픈 것이 기억난다. 류희상 인도여행을 하면 음식 때문에 한번은 꼭 아프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기차 안에서 파는 커리를 먹고 설사를 3일간 했다. 또 낙타 사파리 때 너무 추웠는지 오늘 목감기를 앓고 있다. 인도 음식은 너무 맛있지만 설사한 기억 때문에 매운건 먹기가 꺼려진다. 또 간디가 생활했던 세바그람에서는 채식을 했는데 그때 채식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 지 알게 되어 요즘 점심 저녁에 샐러드를 많이 먹는다. 실제로 조끼리 계획을 짜고 실천하면서 계획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내가 짠 계획이라 더 끝까지 계획대로 여행하고 싶은 오기도 생겼다. 계획이 언제나 짠 대로 되진 않지만 그래도 딱딱 맞춰 여행하는 게 더 좋았다. 씻는 건 잘 못하지만 숙소는 매우 좋고 조끼리의 방에서 청소 담당은 나다. 여행을 하면서 밤마다 팀원이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생활 나눔이라고 한다. 보통 주제는 기차 여행에서의 느낀점, 낙타사파리, 가족 등으로 가지각각인데 나는 꼭 할말을 생각해 놓았다가도 막상 차례가 오면 다 까먹어서 말을 마친 뒤 후회하곤 한다. 이번에 여행이 끝나갈 때쯤엔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말하다가 더 덧붙여 훌륭한 생활 나눔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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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다인 첫 번째 보고서 때와는 달라진 점이 3가지가 있다. 일단 첫 번째. 애들의 이름을 다 외웠다! 게다가 성격도 대충 파악하게 되어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던 아이들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처음에 매우 걱정했던 조별활동도 익숙해져서(정말 지겹도록 조별활동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오히려 지금은 조별로 활동을 안하는 게 불편할 때도 있다. 두 번째는 인도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는 흑인들에 대한 악감정까진 아니어도 불안감? 무서움? 같은 감정이 있어 친해질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칼루르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함피에서 안자와 같은 좋은 릭샤꾼도 만나고 20시간 동안의 열차 속에서 푸자와 같은 우리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면서 이제는 내가 먼저 나서서 말 걸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직 인도 남자들에겐 먼저 못 다가가겠다... 그들이 눈및이 무섭다ㅠ_ㅠ 마지막으로는 여행 초기와는 다른 걱정 하나가 생겼다. 벌써부터 여행의 마지막 날을 걱정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하다. 내가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보내 달라 조른 여행이고 무엇보다 이렇게 한 달 동안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해외 곳곳을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다! 그렇게 조금 더 애착(?) 가는 것이 있다. 나는 항상 헤어질 것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남차 친구를 못 만드나?ㅋㅋㅋ 여하튼 이런 성격 때문에 가끔 우리 생명팀의 마지막 날을 상상하곤 한다. 아직 미래는 잘 모르는 거겠지만 이번 여행은 끝나도 가끔이라도 연락하고 서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내 작은 바람이다.

임재영 20일이 몇 달처럼 또는 몇 시간처럼 지나가 버렸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힌두푸르에서는 아이들과 뛰놀았다가 영화도 보고 라시도 먹고 기차도 잘못 타서는 어딘가의 남는 자리에 누워 새우잠도 자봤다. 함피에서는 더 많른 인도인들의 관심에 놀라고 비싼 물가에 아무것도 못 샀다가 유적지에서 즉흥 공연도 했다. 세바그람의 간디 아쉬람에서는 또다시 여유로운 일정에 나른해지고 춤도 추고 우리끼리 여행일정도 만들어 봤다. 자이푸르로 올 때는 20시간 기차가 웨이팅이 안 풀려서 복도에서 거의 뜬 눈으로 시간을 때웠고 기차안의 심한 추위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자이푸르에서 인도의 맥도날드도 가보고 큰 영화관에서 영화도 봤다. 그리고 새벽의 추위와 함께 대도시에 온 기분도 느꼈다. 우리가 만든 계획으로 자이푸르 곳곳을 다니면서 여행 왔다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대학 소식에 두근거리기도 했다. 자이살메르에 와서는 정말 반가웠던 한국 음식과, 다른 여행을 할 땐 한국인 없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마음과, 낙타사파리를 했다. 덕분에 버킷리스트 중 하나도 지울 수 있었다. 은하수를 이불 삼아 잘 수는 없었지만, 모두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며 본 모닥불도 좋았다. 앞으로는 델리, 아그라, 바라나시, 네팔이 남았는데 생각했던 일정들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버렸다. 남은 20일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못할 경험을 쌓고 싶다. 지금 걱정되는 게 있다면, 앞으로는 인생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재수를 해서 1년을 보낼지, 호주로 가서 1년을 보낼지 고민 중인데, 앞으로의 시간 중에 고민이 해결됐으면 좋겠다.

세바그람에서 자유여행 계획 짜는 중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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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진 인도에 온지 20일이 지났다. 빠르기도 하지만 느리기도 한 여행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언제 집에 가나 이런 생각 밖에 없었는데, 막상 20일이 되니 좋은 친구들, 형들을 사귀고 즐거운 여행을 하니 시간이 벌써 반이나 흘러가 있었다. 이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보단 아쉬운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칼루르에서 보았던 아이들도 생각나고 나가빠 삼촌이 해준 음식도 생각난다. 자이뿌르에서 보았던 유치하지만 재미있었던 영화도 생각나고 자이뿌르의 아름다운 경치도 생각이 난다. 친구들이 나의 생일이라고 몰래 카메라도 준비하였지만 주인공인 내가 정작 아프게 되어 결국 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것도 생각난다. 자이살메르에 낙타사파리도 재미있었고 사막에서 닭을 먹은 것도 생각난다. 닭은 정말 맛있었다. 사막에서 일출을 본 것도 생각이 난다. 정말 멋졌다. 그리고 자이살메르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때 정말 감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일과 많은 나라들을 간 것 같다. 이제 별로 안 남은 여행도 뜻 깊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 믿는다.

신실 아! 드디어 여행의 반이 지나갔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재미도 있었고 힘든 것도 많았지만 점점. 우리 인디고 여행학교에 익숙해 진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 우리가 짠 계획으로 우리가 여행을 다닌다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고 낙타사파리도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여행 초반엔 집에도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여기가 집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남은 반은 더욱 더 유익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거란 느낌이 온다. 이런 여행은 우리 나이 또래의 아이들도 한 적이 없을 텐데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이런 결단을 한 내가 대견스러워지고 있다. 이 여행을 끝나면 얼마가지 않아 고등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인디고 여행학교를 나가기 싫어진다. 휴대폰, 컴퓨터 등을 많이 할 수 없지만,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을 본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1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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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보다도 인디고 가족들이 더 친하고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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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 자이살메르역에서 2차 보고서를 작성한지 벌써 20일(?) 가량이 지났다. 끝이다. 벌써 40일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이제 막 인디고 팀원들과 친해져서 뭔가 시작하려고 했는데, 내일이면 네팔을 떠나 한국으로 귀국한다. 매우 아쉽다. 누구에겐 미안하고 누구에겐 너무 고마웠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물론 3월 2일에 만나기는 할 테지만 인천공항에 내려서 헤어지는 법을 모르겠다. 40일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막상 헤어질 것을 생각해보니 두렵기만 하다. 지금은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뱅갈로르에서부터 시작한 우리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단지 평소에 가 보고픈 인도나 네팔이 무대라서가 아니라 나와 팀원간 끈끈한 우정, 그것이 문제다. 사실 필자는 현재 두통을 동반한 감기와 공생(?) 하느라 정신 없고 주구장창 문장만 뱉어내고 있으니 훌륭한 독자님께서는 필히 이해하리라 믿는다. 하여튼 팀원들과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모르겠고 불안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여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께 너무너무 감사 드린다. 또 방학 동안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서 필자를 빼주신 담임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감사하다.

전양진 벌써 38일이 지났다. 깔루르에서는 ‘40일이 언제 가나’, ‘빨리 한국 가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벌써 38일이 지났다. 이젠 ‘언제 한국가지?’보단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훨씬 더 크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38일 동안 팀원들이나 생명팀에게 고마운 점 또는 미안한 점들은 많지만 너무 길어서 생략하겠다. 그리고 잊지 못할 일들은 이곳에서 많이 만들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패러글라이딩, 낙타사파리, 히말라야 가기 이렇게 3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히말라야이다. 셋째날 눈 있는 산을 갔을 때는 정말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 하지만 푼힐에서 해 뜨는 것을 보았을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일출을 지켜 보았다. 그 아름다움은 다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히말라야를 가서 느낀 점이 많고 제일 힘들고 제일 재미있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인디고 여행학교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좋은 선생님들과 착한 형, 동생들이 있어서 행복한 여행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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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 집에 돌아가기 하루 전날. 여기 인디고란 여행학교를 경험하면서 여러 경험을 하였다. 나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40일동안 동고동락을 하며 인도와 네팔을 돌아다녔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일정을 끝마친 우리 생명팀원들 하나하나가 고맙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얼굴을 못 볼 것 같고, 힘들게 여행해 온 우리 단체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것 같은 느낌이 다가온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진다. 히말라야 트래킹, 20시간이 넘는 기차여행 등, 그땐 정말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힘든 기숙사 생활이 반기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마음속에 남는 한마디는 “매사에 열심히”란 단어이다. 처음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뭔가 느긋하고 의욕도 없이 그냥 시간아, 어서 가라~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시간도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아깝다. 그 시간에 내가 가져간 책을 읽거나, 운동만이라도 꾸준히 하였다면 지금의 나보다 더 좋은 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달라진 점이라면 이걸 알게 되었다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류희상 여행의 마지막에 와서 느낌이 약간 묘하다. 먼저 자랑부터 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팬은 원래 쓰다 고장 난 팬이지만 내가 고쳐서 쓰고 있다. 여행의 막바지에 들어서는 초반과는 다르게 되게 느긋해지고 상황 대처가 빨라진 것 같다. 한국에서는 부족한 게 없어서 팬이 고장 나면 새 팬을 사서 쓰곤 했는데 여기서는 구입이 힘들기 때문에 그냥 빌리거나 고치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거의 모든 여행 그리고 여행자들이 여행 막바지에 들어서는 한국으로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지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지금 있는 인디고 팀이랑 계속 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있다. 남아서 여행을 하면 힘들고 귀찮고 사사건건 트러블이 많이 있을 것 같지만 그냥 혼자 한국 가서 생활할 걸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상황인 것 같다. 이게 바로 사람의 정이 아닐까. 물론 여행하면서 마냥 다 좋았던 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팀원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여행중의 트러블이 자주 생기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한국에 있다 모두 연락해 다시 모여 여행하고 싶다. 사람과의 정을 만들어주고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여유와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자신을 쉬고 하고 많은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한 단계 더 발전 시킬 수 있는 쉬는 시간 같은 게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이 모든 걸 충족시키는 건 혼자보단 단체여행인 것 같다. 이유는 사람의 정이나 불편함 속에서 해결 방법을 찾는 데는 개인보다 여러 사람이 같이 다니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인디고 여행학교가 “쉬는 시간”을 갖기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인디고 여행학교 일정을 끝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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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주 벌써 여행이 끝나간다… 오늘이 마지막 일정 날이고 내일부터는 비행기 일정이다. ToT. 오리엔테이션 캠프가 끝나고 비행기를 탄지 일주일 밖에 안된 것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총알 같다. 내일이 지나고 15일이 되어서 집에 갈 시간이 오면 눈물 날 것 같다. 원래의 내 생활로 복귀하는 것도 좋고 한국음식도 그립고 가족들도 보고 싶지만 여기서 지낸 많은 날 만큼 쌓인 추억도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개, 소, 원숭이보고 엄청 놀랐지만 이제는 거의 익숙해져서 수원가서 수원 길거리에 동물들이 없으면 서운할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 싫기도 했던 인도 특유의 냄새가 한국을 가면 그리울 것 같다. 현진언니, 주혜언니, 다인언니, 형석오빠, 희상오빠, 재영오빠, 윤하오빠, 원희오빠, 호근오빠, 찬중오빠, 건화오빠, 태종오빠, 강한오빠, 양진오빠, 실오빠. 여행이 끝나면 3월 2일날 만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데 한 사람 마다 추억이 하나 하나씩 있기 때문에 막 울면서 보고 싶다고 할 것 같다. 티쳐들께도 우리가 말 안 듣고 약속도 안 지키는 일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이해시켜주시고 다독여 주신 것에 대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 ‘인디고 무빙스쿨 생명누리’라는 프로그램이 힘들기도 했고(트래킹 때에는 죽을뻔하고) 즐겁기도 해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고 언젠가는 꼭 다시 오고 싶은 여행이다. 한 후년에는 오지 않을까?... 진짜 진짜 여행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린 게 아닌가 싶고 여행 순간 순간이 카메라 메모리처럼 영원히 저장되었으면 좋겠다. 아!!!!!~~~~ 한국 가기 싫고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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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한 40일 여행의 마지막 감상문. 휴, 벌써 40일의 여행이 끝나간다. 시작할 때는 정말 40일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빌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집에 가기가 싫어진다. 역시 여행은 좋은 것이다. 매일 매일이 기대가 되는 느낌은 집에선 느끼기 힘드니까.(물론 난 집도 좋아한다.) 두 번째 감상문을 쓴 후로는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처음으로 죽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봤고, 사람이 죽고 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한국에선 보기 힘든 광경일 것이다. 또, 기억나는 일이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를 만나서 짧게 이야기를 나눈 것도 기억난다. 네팔로 넘어가선 트래킹과 패러글라이딩이 가장 많은 기억이 남는 일정 중 하나일 것이다. 트래킹할 때는 진짜 많이 힘들었는데, 우릴 도와주면서 산을 같이 오르는 ‘솜 다이’와 첫 날의 비, 셋째날에 눈, 얼음 길이 특히 힘들어서 기억에 남는다. 푼힐에 올라서 보이는 8000m 산들은 그냥 그림 같았다. 트래킹할 때 종호 쌤과 건화가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문제 없이 트래킹을 마쳐서 다행이었다. 패러글라이딩은 진짜 다른 말 필요 없고 재미있었다. 비록 파일럿이 늦게 와서 20분 정도 기다리긴 했지만 그 파일럿이 실력 있고 재미있는 비행을 시켜주어서 즐거웠다. 다음 번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한번 타보고 싶고, 취미생활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카트만두에선 별다른 일정은 없었고 몽키템플(스와얌부나트)라는 곳을 갔는데 뭔가 없었고, 계단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남은 시간 동안은 쇼핑을 했는데 눈길 가는 것이 너무 많아서 돈만 있으면 다 사고 싶었다. 뭐 항상 돈이 문제지만…… 이렇게 40일 간의 여행이 끝날 내일이면 집에 간다. 집에 가면 고등학교도 가야 되고, 엄마 아빠랑 씨름도 해야 되는데 그래서 별로 집에 가기 싶지 않다. 그래도 집에 가서 잘 살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인디고 여행학교, 적어도 10년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여행가기 전 뭐라도 하나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적어도 하나는 얻은 것 같다. 좋은 사람들, 인연들,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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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중 국제 NGO 생명누리 생명과 평화를 사랑합니다.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 Global Indigo Moving School 내가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 하기로 결정한 계기는 어머니께서 인도, 네팔 여행을 할 수 있고 비행기를 오래 탄다고 하셔서 인디고라는 단체를 선택하였다.. 40일동안 여행하면서 세계 문화 유산을 관광하고 빈민촌 아이들과의 수업, 밥퍼라는 단체에서 봉사를 하다보니 40일이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 40일동안 뱅갈로르, 흰두푸르, 함피, 하이데라바드, 세바그람, 자이뿌르, 자이살메르, 델리, 아그라, 바라나시를 기차타고 이동하며 추위와 싸우고 소음과 싸우며 보냈다. 기차에서 자리 없을 때 더러운 바닥에서 지낼 때는 부모님이 피땀 흘려가며 고생해서 번 돈을 당연하게 여기며 한국에서 펑펑 썼던 것이 생각나면서 반성을 하였다. 특히, 밥퍼 봉사를 하면서 여기서는 10달러로 400명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고 저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내일 한국에 돌아가면 용돈을 계획적으로 쓰겠다고 다짐했다. 네팔 일정에서 이동은 기차가 없기에 주로 좁은 버스를 이용했다. 특히 처음 인도와 네팔의 국경소나울리에서 포카라로 이동할 때 특히 힘들었다. 좁은 버스에서 긴 이동 시간을 참다보니 참을성을 기를 수 있었고, 포카라에서 히말라야 푼힐 트래킹을 통해 꼭 하기로 했던 것 꼭 이룰 수 있는 끈기도 생겼다. 되돌아보면 6인조의 조장과 회계와 생활나눔을 하면서 처음과는 다르게 나서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발표력이 생긴 것 같아 여행학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40일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 이었던 것 같다. 윤태종 처음에 아빠소개로 여행학교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빠가 40일 동안 여행하는 곳이라고 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처음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생겨서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담도 됐다. 첫 해외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인도였던 것이다. 인도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내가 생명팀인 것이 결정 났을 때 나는 트래킹을 듣고 매우 설레었다. 8000m가 넘는 봉우리들을 보면서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OT때 사람들이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 40일동안 함께 할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눈치여서 무척 실망했다. 1월 7일날 공항에서 봤을 땐 좀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처음 비행기가 올라갈 때 그 중력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만 신기했지 너무 지루했다. 방콕에서 태국음식을 먹었을 때 그 메스꺼움이 40일 여행의 시작이었다. 힌두푸르에서 방과 후 교실을 가르칠 때 영어로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잘해서 괜찮았다. 함피에서는 큰 화강암 돌이 무척 멋있었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간디 아쉬람, 영화관, 낙타 사파리, 시체, 트레킹, 패러글라이딩 등 하나도 안 신기하고 재미없었던 적이 없다. 우리 조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해서 나는 이 40일의 여행을 만족한다. 남은 모든 일도 나에게 언제나 설렜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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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근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출국하는데 벌써 인디고 여행이 38일이나 지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한국을 간다 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정든 인디고 친구들과 헤어진다니까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든다. 한국에 가서도 인도에서 조별로, 혹은 팀으로 다니면서 예산 짜고 식비 맞춰가며 먹었던 인도 음식들도 많이 그리워 질 것 같다. 또 40일 동안 너무나도 익숙했던 인도와 네팔 문화들, 오른손으로 밥 먹고 왼손으로 똥 닦던 다신 못해볼 경험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인디고 여행은 단순한 패키지 여행이 아닌 봉사하고 일정과 예산을 내가 직접 짜서 가는 여행이라 매우 뜻 깊었고 배우고 가는 점도 많다. 앞으로 내 친구, 더 나아가 인디고 학교가 오래간다면 제 아들까지도 보내고 싶은 뜻 깊고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이윤하 40일간의 여정을 생각을 해본다면 정말로 재미있는 순간들, 아픈 순간들, 행복한 순간들이 모두 공존한다. 내가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은 낙타 사파리를 했던 것이다. 갈 때는 힘들지만 사막에 도착해서 모래를 밟는 순간이 가장 신났고, 사막에서 해 볼 건 다 해보았기 때문에 정말 신이 나고 재미있었다. 별이 참 많았고 그 별빛들을 보니 정말 색다른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는 패러글라이딩을 했을 때이다. 한번 해 본적은 있지만 그 때는 급상승과 급하강을 해보진 못했다. 이번에 또 다른 경험을 해봐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직접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바탕으로 매 순간 다른 경험들을 할 때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인디고 여행 가족들의 따뜻하고 배려 깊고, 때로는 얄밉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이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을 얻게 된 느낌이다. 만약 우리 가족들(인디고 여행에 오신 모든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포기하고 많이 지쳐서 인도에 대한 기억이 나빴을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이 있어준 덕분에 막내란 책임감을 지고 나의 할 일을 함께 같이하고 웃고 떠들 수 있었다. 특히, 함피에서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완전 지치고 힘들었을 때(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형들의 보살핌과 옆에 든든히 있어준 덕분에 매우 힘이 났고 빨리 나을 수 있었다. 히말라야 트래킹을 할 때도 매우 지칠 때가 있었지만 함께 있어준 형석이 형과 양진이 형 덕분에 웃으면서 하루에 900m를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도움만 받은 것은 아니고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건화형과 종호 선생님이 아파서 푼 힐(Poon Hill)에 발을 디딛지 못한 점이다. 또 형들에게 많이 잘해주지 못하고 약간씩 까불 때 제일 미안했다. 그리고 트래킹할 때 여자들과 약간 불화가 생겨서 선생님께까지 걱정을 끼쳐드리고 화를 내셔서 정말로 죄송하고 미안했다. 우리 조한테 여행을 하면서 미안한 점은 바야흐로 2013년 2월 12일 화요일에 회계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돈을 잃어버리는 불상사를 내어서 너무 너무 우리조원들에게 제일 미안하다. 조장인 다인이 누나에게 걱정을 끼치게 해서 미안하고 나 때문에 같이 혼이 난 형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많이 이해해주고 보듬어 준 분들이 너무 감사해서 형들, 누나들, 쌤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그리고 종호 쌤이 강남스타일을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들이 많이 선생님한테 보답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끝으로 가족의 연을 끊지 않고 이 연을 계속해서 이어가 나중에 사회에서 만날 때에 인디고 여행!을 외치면서 다시 만나는 날을 상상해본다.

트래킹할 때 우리에게 힘을 불끈 준 XX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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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혜 생명팀과 같이 보낸 시간이 벌써 38일이나 지났다. 처음에는 ‘40일 여행이 언제 끝날까’, ‘나도 한국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 라고만 생각했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서 아쉽다. 그래도 이번 인디고 여행학교 12기 생명팀으로 들어와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간다고 생각한다. 세바그람에서 조별활동 계획을 세우면서 어떻게 계획을 세우면 좋은지 알게 되고, 자이푸르에서 조별활동을 시작함으로써 조원들끼리의 협동심이 생겨서 좋았다. 그리고 ACE조의 회계를 맡으면서 책임감도 생기고 인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인내심도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잘 하지 못하는 얼굴에 철판 깔기도 실천해 보았다. 차도에 신호등이 없으니 뻔뻔하게 걸어가고, 우리에게 가격이 비싸게 부르는 상인들과 릭샤꾼에게 가격을 깍기 위해 조금 더 뻔뻔해진 듯하다.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만약 내가 인디고 여행학교를 오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ACE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나 역시 한국에서 학원다니는 빡빡한 일정에 내 소중한 시간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 인디고 여행학교에 왔고, 인디고 여행학교에서 여러가지 색다른 체험도 해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끼리의 ‘정’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마음 속 깊이 새겨졌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생명팀 팀원들에게 고맙고, 우리 ACE 조원들에게는 더욱 고맙고 미안하다. 2013.2.13 ACE조원 김주혜의 마지막 감상문 곽다인 벌써 마지막 소감문이다. 새삼 시간이 빨리 흘러감을 느낀다. 여름 방학 때 인디고 여행학교를 알게 됐는데,,,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이다. 여행 초기에는 내가 선택한 여행인 만큼 책임감과 어떠한 의무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할 땐 이러한 생각들이 들지 않았다. 너무 즐거웠기 때문인가? 생각해보면 40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매우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선생님도 되어보고, 작은 동네의 스타도 되어보고,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상인들과도 친구가 되고, 석양을 보며 점프샷도 찍고, 기차에서 잠도 자고, 20시간 열차 안에서 자리 없이 지내보고, 설산을 올라가고,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아! 사막의 모래에 묻혀보기도 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너무 아쉽고 그립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집 천장을 보게 된다면 왠지 모를 알싸한 기분을 느낄 것 같다. 꿈만 같았던 40일. 나마스떼!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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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아그라에서 봤던 타지마할과 포카라에서 했던 트레킹과 패러글라이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오늘 한 밥퍼 봉사도 기억에 남는다. 교과서와 말로만 듣던 타지마할을 직접보고 느낄 줄 상상도 못했다. 역사시간에 타지마할이 나오면 그냥 건물이라고 별 생각도 안 들었는데, 그 건물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그 안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또한, 히말라야도 알고는 있었는데 자세하게는 모르고 우리나라에 있는 태백산맥과 비슷한 건 줄 알았고 안나푸르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첫날에 비가 오고, 중간중간 끝도 없는 계단과 얼음 길에 힘이 많이 들었지만 경치가 끝내줘서 좋았고 가족들과 푼힐을 꼭 다시 와보고 싶다. 트래킹 끝나고 삼겹살을 먹어서 좋았다. 설날에는 부모님께 말을 못 드렸지만 동영상으로 새배드려서 좋았고 두번째로는 설날에 패러글라이딩을 타봐서 좋고 그와 관련된 CD를 만들어서 좋았다. 그리고 솜아저씨가 생각난다. ㅋㅋ 정말정말 12th 생명팀을 해서 좋았고 내년에는 아이젠을 사서 솜 아저씨와 함께 꼭 A.B.C를 다시갈 것이다. 이현진 여행의 끝이 와버렸다. 정말 여행의 끝이 왔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아니 오지 못할 것 같던 끝이 오고 있다. 40일… 짧고도 길었던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서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보다도 더 친하고 편하다. 헤어지기 싫다. 지금 이대로 정말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배신하고 가버릴 것이고 우리들의 여행의 끝은 다가올 것이다. 평소에 이 관계의 끝이 무서워 끝이 다가 올 때 쯤이면 한 발짝 물러났지만 이번엔 『헤어짐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을 믿어보려 한다. 이번엔 저 말만은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고 여행 가족들에게 한걸음 더 한 발짝 더 다가갈 것이다. 이번엔 정말로 이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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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화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식사 전이다. 우리 생명팀과 함께 지내는 것도 마지막 날이다.

오리엔테이션 1박 2일 그리고 우리들의 여행 38일, 총 40일을 같이 가족같이 지내던 사람들과 헤어지면 정말 보고 싶을 것 같다. 내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40일간 지내던 사람들과 이제 언제 만날지도 모르게 살아야 한다니 조금 섭섭하다. 그래도 40일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 조금은 다행이다.

이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면 원래의 각자의 정해진 삶과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것이 있을 것이므로 여행오기 전과는 겉은 같지만 속은 다른 그런 삶을 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좀더 철이 든 것 같았고 우리나라, 내 부모님, 내 가족, 내 주거 환경에 불평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되는 것 또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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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영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인디고에서의 40일이 벌써 끝이 다가오고 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많은 사건들과 추억거리들을 20명의 생명팀 식구들과 같이 나눴다. 1월 7일 새벽. 졸린 몸으로 추위를 이겨내며 들어섰던 인천공항, 그때는 다들 낯설고, 또 설레었던 그곳으로 내일이면 다시 돌아간다. 비행기를 타고 거의 24시간을 걸쳐 도착했던 칼루르 마을은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인도 같았던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으로 밥도 먹어보고, 짜파티 같은 인도음식에 적응하면서 순박했던 마을사람들과 마음껏 뛰놀던 어린아이들도 만났다. 그곳에서의 5일이 정말 길게 느껴졌었는데 말이다. 기차를 잘못 타가면서 갔던 함피는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느낌이 드는 관광지 이었는데, 외국인을 신기하게 보던 인도 사람들 덕에 연예인병도 걸려보고, 노을이 저무는 절벽 위에서 여러 생각에 잠겨도 보았다. 함피를 벗어나서 갔던 세바그람은 여유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혼자 산책도 다니고 책을 읽어도 시간이 가질 않았는데, 그땐 그게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하루만 더 있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웨이팅이 풀리지 않은 20시간 기차에서는 정말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 와중에서도 인도인들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는 것도 느끼고, 역지사지라는 말도 체감했고 밤에는 정말 추위와 맞서 싸웠다. 그렇게 춥고 길게 왔던 자이푸르는 처음 보는 인도의 대도시였었다. 마치 한국의 도시처럼 높다란 빌딩도 있었고 맥도날드의 그 반가운 피에로인형도 있었다. 더욱이 좋았던 것은 우리가 세웠던 계획을 따라서 여행을 하는 것이 거의 처음이었기에 그 재미를 알게 된 것이 좋았다. 자이살메르의 낙타사파리는 우리가 왜 이걸 해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막 위에서 보름달을 보면서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모닥불 주위로 모여 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유대감도 생겼다. 델리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짜증과 인도특유의 복잡함이 뒤섞여서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었다. 신호등도 무시하던 차들과 이리저리 끼어들며 경적을 울리던 오토릿샤들과 질서도 없었던 메트로 만이 인상에 남았다. 대신 아그라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과 아그라성의 재밌었던 관광이 정말 좋았다. 아그라를 떠날 때가 여행의 반이었는데 그때 쓴 글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뒤 도착한 마지막 인도의 여행지 바라나시. 처음엔 정말 큰 도시일줄 알았던 그곳이 도착했을 땐 짜증으로 바뀌었다. 너무 복잡했던 차도와 더러운 길들이 원인이었다. 너무 복잡했던 골목골목과 싱거웠던 갠지스 강 주변 가트들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다음날 저녁 보트 위에서 소원을 빌었던 것도 40일 동안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로 남아있다. 국경을 넘는 기차는 두 시간이 연착되었고 역시 인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밤에 도착한 네팔, 포카라는 정말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여유로운 현지인들과 아름다웠던 호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설산까지도. 푼힐에 올라가기 까지는 너무 힘들었었다. 첫날에는 폭우가 내려서 서로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도 했고 둘째 날에는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지 한걸음 내딛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음 날에는 얼어붙은 눈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푼힐에서의 일출은 다 잊을 수 있게 만들었다. 설산들의 풍경은 정말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수도인 카트만두의 첫 느낌은 이게 수도야? 이었다. 고층 빌딩도 없이 한없이 늘어선 낡은 건물들이 나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자유로웠기 때문에 우리끼리 이것저것 사면서 여기 있는 동안 즐겁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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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유로웠기 때문에 우리끼리 이것저것 사면서 여기 있는 동안 즐겁게 보냈다. 이곳에 오기 전 접했던 많은 인터넷 기행문들과 뉴스들로 인해 인도인들에 대한 많은 편견이 생겼던 것 같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사람이 아니라 돈줄로 본다.” “소매치기나 도둑들이 많을 것이다” 같이 부정적인 편견들은 나를 40일 내내 인도와 네팔사람들을 삐딱하게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났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잘못 보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 적도 많았다. 스무 시간을 웨이팅이 안 풀린 기차 안에서 보낼 때 여기 앉아도 된다면서 나를 아들처럼 바라봤던 아저씨라던가, 겨우 몇 일 봤을 뿐인데 헤어진다고 울었던 칼루르의 아이들, 트래킹 내내 유쾌하고 푸근했던 솜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4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재미있고 쭉 같이 있을 것 같았던 우리 생명팀 식구들. OT에서 처음 봤을 땐 얘네와 어떻게 친해지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좀 거리감이 있었지만, 도착한지 몇 시간 만에 친해져서는 지금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서로간의 좋은 점, 나쁜 점 다 받아주면서 때로는 다툼도 일어났지만 긴 여정 동안 힘듦을 같이 공유했기에 더 가족 같았던 우리 팀이 헤어지기도 전부터 그립기 시작한다. 이런 걸 정이라고 하는가보다. 수능이 끝나고 두 달이 넘도록 집에서 놀기만 했었다.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도 않아서 대충 점수 맞춰서 냈던 대학들과 여행학교라는 핑계로 해야 할 일들을 미뤘지만 어느 샌가 결정해야 할 시간이 덜컥 다가와 버렸다. 처음 여기 오기 전 적었던 자기소개서에 여행하는 동안 꿈을 찾고 싶다고 적었던 게 생각이 난다. 아직 꿈은 못 찾았지만, 대신 스무 살에 하고 싶은 일은 찾은 것 같다. 항상 여유로웠고 웃음을 보여주며 “as you like” 라고 말하던 인도 사람들 덕일까? 여기 있었던 40일 동안 나 역시 여유로워 진 듯 “겨우 1년쯤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그 결정이 나쁘던 좋던 간에 이 여행은 내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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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팀 여행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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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민 1.8-1.10 2박 3일 짧고도 긴 시간이라고 다들 말한다. 방과 후 교실 활동이 끝나고 교회로 가서 홈스테이 집 배정을 받을 때다.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며 순영쌤과 함께 제이스티의 집으로 갔다. 처음 본 제이스티의 집은 알록달록한 콘크리트 집이었다. 순영샘이 ‘화장실 어디야?’ 그러자 자신의 외할머니 댁으로 우릴 안내했다. 할머니 집은 더 컸다. 화장실을 보고 외할머니한테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하자 빵을 내어주셨다. 정말 맛있었다! 버터를 바른 구운 빵에 예쁜 잼도 주시고 우유도 데워주셨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갔다. 집에 도착하니 면 요리를 주셨다. 먹고 싶었지만 난 밀가루를 별로 안 좋아해서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먹을 걸 그랬나보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후 교회에 들려 생활 모임을 하고 돌아왔다. 순영쌤은 교사회의 때문에 나는 혼자 집에 와서 잘 준비를 했다. 얼굴을 닦기 위해 이장님 댁으로 향하던 중 동네 개들이 나한테 짖어서 엄청 무서웠다. 그러자 홈스테이 엄마가 나와서 안전하게 세수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땡큐 맘! 내가 얼굴 정리를 하며 취침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제이스티와 엄마가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래서 제이스티에게 스킨, 로션 바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기뻐하며 따라서 발랐다. 그리고 옆에 있던 엄마도 무척 좋아하셨다. 나는 굉장히 뿌듯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자파티라는 음식을 먹었다. 처음엔 경계하며 순영쌤이 드시는 걸 봤는데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 나도 왕 맛있게 먹었다. 근데 아침이라 그런지 입맛도 없어 많이 남긴 것이 지금 생각하면 무척 죄송하다. 점심은 엄마가 없어서 이장님 댁에서 먹었다. 그 날 저녁은 너무 피곤해서 잘 씻지도 못하고 ‘굿나잇’이라 말한 채 잠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음식을 우리가 좋아하게 만드신다. 그래서 배불러 남기는 것 밖에 없다. 입에 맞지 않는 것 빼고... 헤어지는 날 저녁 나와 순영쌤이 가장 늦게 밥을 먹었다. 첫째 날 아침에 먹고 반한 자파티를 저녁에 주셨다. 맛있게 먹고 선물을 홈스테이 가족에서 전달하고 단체 사진 찍고 끝냈다.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또 있다면 꼭 이 마을을 다시 찾고 싶다. 티피파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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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레 처음, 티피파캄에 도착했을 때에는 정신이 없었다. 첫 방과후교실도 순식간에 끝났고, 바비뜨라네 집에서는 얼굴들이 다 똑같이 보였다. 이름은 듣자마자 까먹었다. 음식도 쉰내가 나거나 너무 달달한 맛 때문에 적응은 커녕 한국 음식만 생각났다. 그 땐 홈스테이하는 2박 3일 동안 잘 버텨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이런 내 태도가 바뀐 건 아마 손바닥에 헤나를 그렸을 때부터 인 것 같다. 나한테 헤나를 그려준 아이의 얼굴을 인식했고, 그 아이가 자신의 친구라며 웃으며 소개하던 우리 집 아이, 바비뜨라의 얼굴을 기억했다. 이름을 외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이름을 가르쳐 줬는데 다시 물어보기엔 좀 미안했다. 그래서 두 자매 바비뜨라와 보비뜨라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눈치를 봤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우릴 배려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우리가 지루하지 않도록 간단한 게임들을 가르쳐주었고, 우리가 게임에서 이길 수 있도록 봐주고 있었다. 간단히 씻을 때도 옆에서 계속 도와주었고, 부모님들은 우리가 편히 잘 수 있도록 모기향을 피워주시고는 두 분은 밖에서 주무셨다.

한국에서 홈스테이를 했다면 이런 대접은 못 받았을 것이다. 다른 집과를 달리 특히 바비뜨라네 가족은 대가도 없이 도와주었고, 우리가 불편해 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둘째 날 부터는 아예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따로 준비해주셨다. 양파 스크램블 에그 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저녁 때 프렌치토스트를 해줬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여기선 빵과 계란이 귀하단 걸 척 봐도 알 수 있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해주셨고 자신들은 평소 먹던 걸 준비해 먹었을 땐 정말 감동이었다. 게다가 지민이가 배가 아파 더 먹기 힘들다고 하자 바비뜨라 아빠가 바로 돈을 꺼내 약을 사러 가려 하셨을 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루 이틀 보고 말 사람에게 이렇게 정성스럽게 대해 줄 수 있나 싶었다. 이런 친절이 너무 고맙고도 낯설게 느껴졌다. 셋째 날은 떠나는 날이었다. 떠나기 한 시간 쯤 전, 바비뜨라와 보비뜨라에게 “우린 곧 떠난다. 아마 다시 보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자꾸 목이 메었다. 나를 ‘나인데라’ 라고 부르면서 떨어지지 않는 바비뜨라와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바비뜨라 엄마와 인사할 땐 꼭 끌어안았다가 양손을 맞잡았는데 손을 떼고 싶지 않았다. 꽉 잡아주는 손이 든든하고 아쉬웠다. 배웅하며 눈물 흘리는 바비뜨라 가족이 너무 고마웠다. 지금 생각하면 바비뜨라네 가족과 다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너무 아쉽다. 바비뜨라 아빠 사진은 없지만, 바비뜨라, 보비뜨라 그리고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을 들고 언젠가 다시 티피파캄에 가고 싶다. 아니,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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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 인도의 첸나이 근처 TP Pakkam 마을에 도착했다. 하민쌤이 알려준 대로 도착하자마자 마을 안에 있는 학교에 가서 방과후교실을 진행했다. 우리조의 방과후교실 주제는 ‘풍선 아트’였다. 풍선 아트는 풍선으로 강아지, 칼 등 여러 가지 동물과 사물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도 아이들은 참 순수하고 이쁘고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기대하던 홈스테이 시간이다. 하민쌤이 마을 이장님 댁에서 홈스테이를 하면 정말 좋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장님 댁 차례다. 내가 걸렸다!! 이장님 댁에는 동근이형, 나, 혁주 이렇게 셋 이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첫날 이장님 댁에서 저녁을 먹었다. 정말 다 먹기 힘들고 맛도 잘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 꾸역꾸역 다 먹었다. 이장님이 보고 계셔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이장님 가족과 얘기를 했다. 가족에는 e이장님, 딸 제니퍼, 아들, 아빠 이렇게 4명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친척들도 같이 사는 것 같았다. 역시 이장님 댁이라서 그런지 화장실도 있고, 방에는 침대도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좋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3일을 이장님 댁에서 홈스테이를 하다 보니 정도 많이 들고 나의 미각도 변한 것 같다. 음식도 먹을 만해지고, 떠난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 다음에 다시 와서 달콤한 면과 밥을 소스에 찍어 먹고 짜파티도 먹고, 짜이도 다시 먹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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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버스를 타고 도착한 티피파캄! 이곳에서 홈스테이를 한다고 해서 설렘 반 걱정 반인 마음이었다. 교회에 무거운 배낭을 놓고 홈스테이 파트너를 정하는 시간... 한 아이가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산이와 나는 어느새 그 아이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 이름은 이세워니 라고 했다. 나랑 이름이 비슷해서 이름을 금방 외웠던 거 같다. 그 아이 집에 도착했을 때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현관문이 없는 시멘트로 된 건물이었는데 처음에 ‘와... 여기서 어떻게 자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집에는 딸 아이 세 명이 있었는데 산이와 나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춤을 보여준 기억이 난다. 저녁 식사 때 홈스테이 엄마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말도 잘 안통하고 어색해서 이틀 동안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 첫 저녁식사 때 주신 밥을 먹는 순간 입에 맞지 않아 조금 먹다가 배부르다고 남겼던 게 아직까지 죄송하다. 화장실도 숲속에 있어서 굉장히 당황 했던 것 같다. 이틀 째 되던 날. 밥도 점점 입맛에 맞고, 화장실도 맨발로 턱턱 걸어가 씻고 오고, 그렇게 그 집에 점점 익숙해 졌다. 홈스테이 엄마가 사리를 입혀주겠다고 옷을 꺼내 오셔서 흔쾌히 오케이라고 했지만 입어보니 조금 부담스러운 거 같았다. 그래도 굉장히 예뻤다. 엄마는 우리한테 이것저것 많이 챙겨 주신 것 같다. 떠나기 하루 전부터 우리 사진을 가지고 싶다고 하셨다. 정말 너무 주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 딸처럼 챙겨주셔서 금세 정이 들었나보다. 엄마는 다음 주에 가라고, 우리 집에 딸이 둘 더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한국에서 만약 홈스테이를 하게 된다면 같은 집 같은 방에 있어도 어색하다는 핑계로 자기 할 일만 하고, 소홀히 대할 것 같은데, 이곳은 정말 한 가족처럼 챙겨주셔서 지내는 동안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했다. 환경은 다른 곳 보다 열악할지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챙겨주는 마음만은 어느 곳 보다 컸던 것 같다. 홈스테이 집을 떠나기 전 작은 선물에도 고마워하는 가족들을 두고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울컥울컥 하던지... 잘 가라고 안아주는 엄마 품에서 결국 울음이 터졌다. 말은 안 통해도 마음으로 통한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격하게 느꼈다. 엄마, 그리고 여동생, 남동생, 아빠, 할머니. 홈스테이 하면서 진짜 딸 처럼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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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아무래도 인도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 티피파캄에 도착 했을 때 우리를 반겨주던 사람들, 방과후교실 시간동안 부족한 우리들을 잘 따라주던 아이들, 깊고 넓게 빛나던 밤하늘의 별까지. 처음 홈스테이를 시작할 때 정말 그들의 생활에 경악했다. 너무 열악한 상황들, 전기는 때에 맞춰 끊겼다가 다시 들어오고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아래 그들은 잠을 청했다. 그들이 더 많은 부를 바랬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은 그들의 생활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의 모습이 비교가 됐다. 지금 현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매사에 감사하지 않았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더 바랬던 나의 모습,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들처럼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는 살아 갈 순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시간마다 우린 아이들의 학교에 들려서 조별로 방과후교실 활동을 했다. 우리 조는 첫날엔 풍선 만들어 주기, 둘째 날엔 헤나 그려주기, 셋째 날엔 작은 운동회를 했다. 나는 그 시간 때마다 내게 정말 놀라웠던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귀찮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고, 풍선이 터질까봐 조마조마 해서 풍선을 제대로 묶었던 적이 없어서 포기를 했었고, 그림도 한참을 잡고 있다가 포기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을 그렸다. 근데 빛나는 눈과 미소를 가진 아이들 앞에서는 놀랍게도 난 1시간 안에 그것들을 척척 해내갔다. 땀을 흘리고 손가락이 아파도 이것들을 원하는 아이들의 눈빛에 나는 포기할 수 가 없었다. 정말 좋았다. 이런 시간들로 인해 이틀이 빠르게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집에 들러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그들은 우리의 손을 잡고 기도문을 오랫동안 읊어주었다. 우리가 정말 잘 살기를 바라고 행복하길 바라는 진지한 모습에 눈물이 글썽였었다. 버스를 타고 떠날 때까지 막내는 나에게 웃음을 보여줬고 엄마는 우리에게 귀한 과자를, 아빠는 닭고기를 챙겨주셨다. 마지막까지 따뜻한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하루하루가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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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훈 나는 우리팀 막내 기준이와 함께 티피파캄 마을에서 ‘바라디, 바라지’ 집에 3일간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외국인인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집에 가서 바라디의 할아버지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땅바닥에 앉으려고 했는데 담요를 가져와서 깔아주셨다. 우린 ‘땡큐’ 하며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원래 인도사람들이 거칠고 예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선입견이 깨졌다. 적어도 그 티피파캄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고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인도 밥은 생각했던 것처럼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너무 짜고, 달고, 맵고 하나같이 다 별로였다. 하지만 ‘짜이‘라고 하는 설탕 우유가 있었는데 이건 나름 맛있었다. 또 짜파티라고 피자 도우 같은 거에 소스를 발라 먹는 건데 정말 맛있었다. 맛없는 밥이 나왔을때 웃으면서 먹는 것을 지켜 볼 땐 맛이 없는데도 웃으면서 먹어야했던 생지옥 같은 기억이 떠오른다. 먹는 것은 그랬고, 길에는 소, 개, 염소의 배설물이 널려 있었다. 저녁에 정전이 되고 밖에서 걸어 다닐 땐 땅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걸어 다녔다. 한국에서 올 때 정전이 잘 일어난다고 손전등을 챙기라고 했는데 나는 ‘정전이 얼마나 잘 되겠어.’ 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전이 매우 잘 됐다. 하하. 인도는 너무 땅이 넓어서 전력공급이 잘 안되는가 보다. 또 화장실도 마을에서는 이장님 댁 밖에 없었고 이장님 댁 화장실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화장실이 아니라 구멍에 볼일을 보고 우리가 직접 물을 부어야 했다. 우리 집 바라지가 나에게 화장실에 가고싶냐는 질문에 ‘예스’ 라고 하니 날 풀숲으로 데려다 주고는 free~(마음껏 싸~) 라며 미소를 지었다. 난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나는 풀숲에다 자연스럽게 볼일을 봤다. 히히. 급할 때에는 어쩔 수 없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 집 아주머니랑 포옹을 하고 웃으며 인사를 하고 이별했는데 다른 가족들은 막 울고 가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었다. 나는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작 3일 동안 같이 살았는데 그 만큼 정이 들 정도면 그 인도분들은 정말 정이 많은 분들인가 보다. 솔직히 집에서 소변도 못보고 씻지도 못하고 밥도 맛없고 땅바닥도 돌이고 모기약도 없는 인도가 좋았냐고 물었을 때 좋았다고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정말 살갑게 대해주고 웃어주고 따뜻하게 대해줬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첫 여행인 인도에서의 가장 인상 깊은 3일이 될 것 같다. 이 마을을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다시 찾아가 만나고 싶다. 지금도 나는 티피파캄 사람들이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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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민 이틀간 티피파캄에서의 홈스테이를 통해 인도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간 것 같다. 처음 홈스테이 집을 찾아갔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사실 가족들 없이 다른 나라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것도 처음이고, 인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하나 없이 왔기 때문에 첫날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집에 있는 아이들이 너무 착하고 배려심도 깊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집에 있는 아이들 이름이 바비뜨라와 보비뜨라였는데 영어도 잘하고, 무엇보다 우리를 지루하지 않게 같이 게임도 하고 얘기도 해주어서 참 고마웠다. 원래 내가 먼저 말도 걸고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홈스테이를 하는 동안 그 집 아주머니께 죄송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잠을 청할 때 집이 모두가 잘 만큼 넉넉하지가 않아 아주머니와 아저씨께서 밖에서 주무신 것 부터, 밥을 먹을 때 우리 때문에 밥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항상 나중에 드셨던 것 등 정말 죄송했다. 지금이라도 그 마을에 다시 갈 수 있다면 아줌마 아저씨께 그 때 정말 고마웠고 죄송했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솔직히 홈스테이를 하면서 제일 친분을 쌓은 것은 바비뜨라나 보비뜨라가 아닌 4살짜리인 제이키터라는 아이였다. 내가 워낙 아이를 좋아하다보니 제이키터한테 관심이 더 쌓였던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내 또래의 아이들과도 친해져야겠다. 제일 감동받았던 점은 아무래도 티피파캄을 떠날 때 아이들이 울었을 때 같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 같이 단체사진도 찍고 잠시 시간을 가졌었는데, 아이들이 나를 껴안으며 울어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이 때 이 마을 아이들이 정도 많고,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나까지도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을 느꼈다.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티파파캄에서의 홈스테이는 배울 것도, 느낀 것도 정말 많은 것 같다. 이로써 이 지역에서의 언어나 문화도 배우고, 인도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도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인도를 떠나고 한국에 도착해 오랜 세월이 흘러도 티피파캄 아이들이 손에 그려준 헤나, 음식, 그 집에 있던 개의 이름, 이런 사소한 것 까지 모두 기억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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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근 티피파캄에 도착해 우린 홈스테이 체험을 했다. 처음 숙소배정을 하는데 나와 혁주, 준용이는 이장님댁에 지내기로 결정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색한 것이 많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집을 구경하고 다른 집과 비교해 보니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특히 정빈이와 승민이네 숙소는 한쪽 벽이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는데 그나마 정빈이랑 승민이는 둘다 긍정적인 아이들이라 잘 적응 한 것 같다. 첫날 저녁 이장님이 만들어 주신 “설탕국수” 이건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한국식 소면을 삶은 것에 설탕을 잔뜩 버무려 주셨는데 아직 입맛 적응이 되지 않은 우리에게는 심하게 벅찬 음식이었다. 그래도 계속 더 먹으라는 이장님 인심에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다 먹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교회에서 간단한 모임을 가진 우리는 이장님 댁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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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우린 방과후교실을 진행하기 위해 마을에 있는 학교에 갔다. 우리는 딱지를 만들었고 다른 조는 헤나, 탈 만들기를 했다. 학교 아이들이 탈을 만들던 풀을 내 머리에 흘려 조금 짜증은 났었지만 나름 뜻 깊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노는 것, 소통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 (가끔 버릇없는 애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는데 비리야니가 나왔다. 나름 입맛에 맞았던 음식이었던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이장님댁에 도착해 조금 쉬다가 연호쌤이 진행하는 공동체 프로그램을 했다. 좀 어이없게 끝이 나긴했지만ㅋㅋ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다. 대망의 마지막 날! 각자 집에서 점심을 먹고 조별회의를 하다가 우리는 마지막 방과후교실 진행을 위해 다시 학교를 찾았다. 이 날에는 작은 운동회를 열었다. 밀가루 속 사탕 먹기, 빨랫줄에 과자 따먹기, 코끼리코 돌기 등 세가지를 진행하다가 하민쌤의 선동으로 밀가루 싸움을 했다ㅋㅋ 아주 재밌게 놀던 우리는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내 인생 18년,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 일부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인도, 많은 것을 느끼고 가는 곳이다.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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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욱 나는 인도여행을 끝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인도에 왔을 때는 주변의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소리, 릭샤 소리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너무 머리가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이 소리들도 인도의 매력이란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의 풍경과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 또한 인도의 매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인도하면 생각나는 것이 타지마할이다. 나는 말로만 듣던 타지마할을 실제로 보니 너무 설레고, 기분 좋고, 인도에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인도하면 생각나는 것이 세바그람의 간디 아쉬람에서 비노바바베 아쉬람까지 1시간 반 동안 걸으며 묵언 수행하던 기억이다. 앞으로의 내 미래와 내가 가야할 길을 고민할 수 있었던 너무 뜻 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처음 인도에 출발하기 하루 전날에는 방에 틀어박혀 많이 울었는데 어차피 돈도 다 냈고 안가면 내 손해 일 것 같아 속는 샘치고 인도에 온 것이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에 대해 많이 알고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좋은 여행을 보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I Love so much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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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귀여운 인도아이들과 방과후 수업을 하면서 친해지고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이 울기도 했던 티피파캄 마을, 마을 이장님은 마치 엄마처럼 나에게 잘해주셨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뱅갈로에서 현지교사 라주를 만나 인도의 궁금증을 풀며 함께 네팔 트레킹까지 동행하고 있다. 첫 조별여행 함피! 힘들고 지치는 여행지였다. 첫째 날. 헤마쿤다힐과 마탕가힐을 보았다. 자연의 웅장함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둘째 날. 빗딸라 사원을 재밌게 보고 로터스마할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우리 조원들의 갈등으로 로터스마할은 구경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셋째 날. 하민쌤이 있는 외지주팀과 같이 하누만 사원을 보았다. 수 없이 많이 계단쯤에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함피 조별여행은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 그 후, 세바그람이라는 지역을 왔다. 세바그람의 뜻은 ‘봉사의 마을‘이다. 이름에 맞게 간디가 이곳에서 수행했었고, Bapu Kuti 라는 간디 아쉬람에서 간디의 추종자들이 수행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도 함께 체험해 보기로 하며 채식도 하고 노작도 했던 기억이 난다.

김준용 벌써 인도가 끝이 났다. 지금은 포카라 숙소에서 쉬는 중이다. 시간 참 빨리 간다. 누리팀 형, 누나, 동생들과 어색해 하던 것이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친해져 있고 선생님들과도 많이 가까워졌다. 처음 인도 여행지가 생각난다. 벨로르지부에서 외지로 들어가면 나오는 티피파캄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인도의 문화와 접해 매우 힘들었지만 마을 이장님의 도움과 딸 제니퍼의 도움으로 조금씩 접해가면서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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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래프팅을 하기위해 두 팀으로 나누었다. 밑에는 갠지스의 물살이 엄청났다. 파도를 타는 것 같은 느낌에 굉장히 신이 났다. 라주가 래프팅을 하는 중 물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엄청 웃겼다. 라주 말고도 동근이형, 승민이가 추가로 물에 빠졌다. 래프팅이 끝날 때쯤 희훈이가 나를 빠뜨렸다. 그리고는 희훈이랑 장난을 치다가 발을 다쳤다. 하민쌤이 절대 장난은 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장난을 쳐서 이렇게 됐나보다. 그렇게 리쉬케시 일정이 끝나고 바라나시행 기차를 타러갔는데 시간을 잘못 계산해 기차를 놓쳐버렸다. 그래서 하루 더 이 곳에 머물고 바라나시로 향했다.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제일 더럽다고 한다. 역시 바라나시에 도착하니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바라나시에서의 여행은 꽤 좋은 기억에 남는다. 기념품도 많이 사고, 화장터(마니까르니까 가트), 갠지스에 대한 축제 등 멋진 나날이었다. 그렇게 바라나시를 마지막으로 인도여행이 끝이 났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인도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귄 것 같다. 티피파캄 마을에서 보비뜨라, 바비뜨라, 미나, 제니퍼, 바라지, 안네샤, 제이키다.. 그리고 식당의 여러 사장님들, 바라나시에서 만난 귀엽고 이쁜아이 핑귀, 기차에서 만난 박디, 여러 아저씨들, 아주머니 등 많은 사람들이 내 기억을 스쳐간다. 나는 인도여행을 하면서 나중에 꼭 다시 오고싶다. 위험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고, 경험이자, 내가 한 걸음 더 발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곳이다.

다음 여행지는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다. 역시 듣던 대로 웅장하고 멋졌다.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대단한 세계유산이자 7대 불가사의이다. 웅장한 타지마할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리쉬케시로 이동했다. 리쉬케시는 비틀즈가 머물며 요가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리쉬케시에서 인도의 전통요가를 체험해보니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명상은 조금 힘들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드디어 기대하던 래프팅이다. 래프팅을 도와주는 강사들은 무지 재미있는 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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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빈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서운 섭섭하기도 하다.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서 1월 8일에 간신히 도착한 첸나이. 벨로르 지부까지 또 울퉁불퉁한 험난한 길을 3시간 넘게 갔다. 너무 힘들고 지쳤고 도착한 숙소는 우리나라에 비해서 너무나 좋지 않아 실망감이 컸다. 도착한 날은 불평불만을 가질 세도 없이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눅눅한 방에서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처음으로 간 인도식당... 정말 맛이 없었다. 그 음식 이름이 ‘비리야니‘ 라는 음식이었는데 앞으로 그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바로 티피파캄에 가자 그 곳 그 눅눅한 방과 비리야니가 상당히 고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 높이가 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았고 벽도 마땅히 없고 그 뚫린 공간으로는 소와 개가 똥을 싸고 지나간다. 그 곳에서 먹는 음식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면 요리를 갈아서 죽처럼 만든 다음 설탕을 미친 듯이 많이뿌린 후 먹는다.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을 좋아한다기에 꾸역꾸역 먹었지만 2박 3일 동안 견딜 자신이 없었다. 하루를 지내고 방과후 활동 등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걸쳐 티피파캄의 문화체험 시간을 끝내고 다른 곳으로 여행을 시작 할 때 문득 이 곳의 음식이 내 여행중의 음식을 모두 맛있게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과 그립다는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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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르 지부에 도착해서 얼마 머물지 않았던 곳을 추억하면서 다시 “암마”라는 식당에 찾아가 비리야니를 먹었다. 맛이 환상이었다. 그렇게 지낸 후 폰디체리에 도착했다. 그 곳은 바다와 이어진 곳이어서 풍경이 환상적이었다. 폰디체리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우리가 인도에 오기 전 정해 놓았던 역할들을 수행하였다. 나는 숙소 담당이라 도착하자마자 지치고 배고픈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방을 구하러 다녔지만 성수기라 방이 없었고 가격도 상당히 높았다. 다른 곳도 방이 없어서 그냥 잠만 잘 수 있는 허름한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다시 이동. 뱅갈로를 향해 버스에 몸을 싣고 달렸다. 10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뱅갈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라주를 만났고 바로 함피로 출발했다. 함피에서는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이 장관을 이루었다. 고요하고 세밀하면서 웅장하고 거대함 앞에 인간의 한 없이 작음을 느꼈다. 이러한 풍경을 뒤로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온 곳은 세바그람. 하이데라바드를 거쳐서 도착한 곳이다. 이곳은 간디 아쉬람이 있는 곳인데 간디의 추종자들이 수행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숙하고 음식도 채소만 먹는다. 그리고 자급자족의 삶을 살고 있는 곳이다. 가장 사건사고도 많았던 곳이지만 가장 뜻 깊은 곳이기도 하다. 남녀간의 어색함, 형들에 대한 동생들의 불만이 다 표출된 곳이기도 하다. 다음 목적지는 아그라,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는 기차로 약 16시간을 이동해야만 도착 할 수 있다. 그 곳 사람들이 어깨 넘어로 배운 한국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그 닥 맛은 없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거대한 타지마할에 도착하였을 때 거대함 보다는 그 아름다움에 놀랐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한곳을 왔다는 기쁨과 왠지 모를 놀라움이 어우러져 나를 멍 때리게 했다.

그렇게 아그라를 뒤로 한 채 래프팅과 요가체험을 하러 리쉬케쉬로 향했다. 리쉬케쉬에서는 푹 쉬고 시원한 패프팅을 만끽하고 바라나시로 향했다. 간발의 차이로 열차를 놓쳐서 하루를 더 쉬고 바라나시에 도착해야했지만 바라나시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이 또한 지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허나 인도여행의 종착지인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땐 처음부터 쓰레기 냄새, 오줌 냄새, 알 수 없는 냄새들이 내 코를 썩게 만들었다. 그렇게 도착 후 비좁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한국음식점을 찾았고 오랜만에 만찬을 했다. 그리고는 숙소를 잡고 피곤한 몸을 뉘였다. 바라나시는 갠지스 주변에 가트나 볼거리들이 많았다. 때 마침 강을 숭배하는 축제 중이여서 할 것도 볼거리도 너무 많았다. 골목골목 마다 할 것이 너무 많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그런 골목들은 너무 많았다. 그 중에 제일 아쉬운 점은 인도에서 가장 맛있다는 라씨를 못 먹어 본 것이다. 인도는 꼭 다시 와야 할 곳이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다시 찾아올 인도에 대한 향수병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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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곳 사람들의 인심은 너무 좋았다. 물론 몸은 힘들었다. 음식들은 정말 맛이 없었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먹어야 했고 화장실이 없어 풀숲까지 가야만 했다. 그렇게 어두운 밤 풀숩을 헤메다 똥도 밟고 잘 때는 또 춥고.. 몸은 정말 괴로웠지만 그 분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정말 마음은 즐거웠다. 나는 원래 이런 오그라드는 멘트를 하지 않지만 이건 정말 사실이다. 정말 헤어질때는 우리집 아이가 울었는데 나도 정말 눈물이 쏟아질뻔 했다. 그리고 센터로 다시 돌아가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빨래도 하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휴식을 하는 동안 부모님들이 에이즈에 걸려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는 시간도 가졌다. 각 조마다 하나씩의 메뉴를 정했다. 계란말이, 계란찜, 야채볶음 이렇게 세가지 음식을 했는데 계란말이는 오물렛이 되고, 계란찜은 다 타고, 야채볶음은 그냥 망했다. 즉, 세팀 다 망했다. 그래도 그나마 우리팀의 계란말이가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태욱이가 많이 아파서 하루를 더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승민 한국에서 인도에 오기 전 인도를 간다는 생각을 하며 4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내고 참가를 하는데 그렇게 고생을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세번 다녀왔었지만 나름 휴식의 여행이었다. 그런데 인도에 왔더니, 이런? 버스보소? 이게 뭐야? 그래도 일단은 버스에 올라타 센터로 향했다. 나는 진짜 한국에서의 그런 센터들을 생각했었는데 헐... 그냥 가정집일세? 방에 들어가니 벽에서는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네? 화장실에 가보니 휴지는 커녕 좌변기도 아니고 샤워기도 없는 뿐더러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고 물을 직접 내려야하네?... 정말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가 홈스테이를 체험하기 위해 티피파캄 마을로 향했다. 우와... 우리집은 초가집이네? 벽에 구멍이 뻥뻥뚫려 흙이 그냥 막 쏟아지네? 너무 실망감도 크고 충격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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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다 보니 일기를 쓰는 느낌이 들어서 이제는 조금 간단하게 쓰겠다. 함피에 가서 산을 많이 올라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어서 무서웠지만 참고 올라갔다. 무서웠지만 산에 올라가서 보는 함피의 풍경은 정말 자연의 위대함이 느껴졌지만 그 곳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려서 짜증났다. 그리고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인간의 위대함을 보는 듯 했다. 내부에는 무덤이라 별게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인도는 정말 더럽다. 방안에서 플래쉬키고 사진을 한 장 찍으면 먼지가 찍힐 정도이고, 물은 정말 한국에서 본적도 없는 찝찝한 물이다. 그리고 또 안타까웠던 점이 여기 사람들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개념이 없다. 그냥 막 버린다. 정말 아쉬웠다. 이렇게 더럽고 바가지 많이 씌우고 음식도 맛없고 교통은 불편하고..

그래서 몸, 정신 둘 다 엄청 힘들었다. 하지만 왠지 나는 한국보다 여기가 더 좋다. 한국은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힘들고 괴롭더라도 따분한 것보단 나은 듯 하다. 그리고 여기 있으면서 깨달은 점도 정말 많다. 처음에는 여기 인도를 도대체 왜 온 걸까 싶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따분한 일상보다 이렇게 힘들어도 여행은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살고 있는 한국 즉, 깨끗하고 맛있는 밥이 있는 곳의 소중함을 알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앞으로 내가 어떠한 꿈을 꾸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대충 감이 오는 듯 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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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굉장히 긴 비행을 마치고 인도에 도착하였다.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었다. 오토바이와 릭샤들이 미친 듯이 클락션을 울려댔다.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자동차는 계속 우리에게 빵빵 소리를 질렀다. 인도 적응의 첫 관문은 티피파캄 마을에서 2박 3일이었다. 내가 홈스테이 할 집은 우디라는 아이의 집이었다. 첫날에는 뻘쭘해서 아무것도 못하다가 저녁부터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을의 아이들과 했던 방과후교실 시간이었다. 첫날에는 풍선 만들어 주었는데 내가 풍선 만들기는 초보라서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솔직히 내가 인도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타지마할이다. 아그라에서 가서 직접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푸른색 물에 비춰지는 하얀 궁전, 햇빛 하나하나 반사되는 그 모습을 보니 정말 황홀했다. 그러나 타지마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달란 관 두개가 끝이었다. 역시 타지마할은 밖에서 봐야하는 것 같다.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체험은 세바그람에서의 간디 아쉬람 체험이다. 그 곳은 마하트마 간디가 살았던 자급자족의 삶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사는 곳이다. 새벽 4시 반에 기도를 하고 저녁 6시쯤 또 기도를 한다. 새벽기도는 너무 졸렸다. 그래도 인도체험의 일부이기에 묵묵히 참여했다. 아쉬람에서는 무조건 ALL 채식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이겠지만 나는 그래도 맛있게 먹은 것 같다. 특히 콜리플라워에 커리를 양념 한 것과 구운 감자는 정말 최고였다. 세상에! 이제는 고기보다는 채소요리가 더욱 맘에 든다. 다시 아그라로 넘어와서 그 다음은 요가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는 리쉬케쉬다. 어두운 밤에 릭샤를 타고 차가운 칼바람을 헤치며 도착한 곳이다. 요가의 본고장이니 요가를 배우는 것이 기본이다.

아침 9시쯤 요가를 하고 오후 3시쯤 요가를 하고 저녁에는 명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요가의 포즈는 Boat pose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요가 선생님은 초보인 나에게 너무 어려운 것을 시켰다. 그런데 요새 스트레칭을 하지 않다 보니 몸이 많이 굳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옛날에는 여유로웠던 ‘앞으로 굽혀 발 닿기’가 힘들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래프팅이었다. 처음에는 물을 튀기며 놀다가 나중에는 승민이가 나를 붙잡고 물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발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수영을 해 다른 보트에 다가가 생선처럼 튀어 올라갔다. 그렇게 리쉬케쉬를 지나 바라나시로 갔다. 기억나는 것은 단 하나 화장터였다. 사람이 불에 타는 것을 보니 멍해졌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인도여행은 나에게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 주었고 인도인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나 자신을 한번쯤 돌아볼수 있게 해준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수능이 끝나고 그 다음해에 생일이 지나면 학생이 아닌 교사로 지원해 한번 더 인도여행에 도전할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며... Adios. 그래서 몸, 정신 둘 다 엄청 힘들었다. 하지만 왠지 나는 한국보다 여기가 더 좋다. 한국은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힘들고 괴롭더라도 따분한 것보단 나은 듯 하다. 그리고 여기 있으면서 깨달은 점도 정말 많다. 처음에는 여기 인도를 도대체 왜 온 걸까 싶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따분한 일상보다 이렇게 힘들어도 여행은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살고 있는 한국 즉, 깨끗하고 맛있는 밥이 있는 곳의 소중함을 알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앞으로 내가 어떠한 꿈을 꾸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대충 감이 오는 듯 해서 너무 좋다..

김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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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나는 1월 7일에 첸나이에 도착 했다. 우린 3시간 동안 버스를 타서 센터에 도착했다. 며칠 뒤 우리는 티피파캄 마을로 갔다. 그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마을에 도착해서는 바로 방과후교실을 진행했다. 그러고 이틀 뒤 폰디체리에서 뱅갈로를 향해 가는 버스를 탔다. 긴 시간동안의 이동이라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다. 뱅갈로에 도착해 함피까지 또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형 누나들과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겁이나기도 하고 불편했지만 나름 인도기차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함피에서 우리는 3일동안 함피 유적지를 4개나 돌아보았다. 마탕가힐, 비루팍샤 사원, 헤마쿤다힐, 하누만사원을 다녀왔고 하이데라바드에서는 기차만 갈아타야하는 경유지로 지나쳤지만 아그라에 도착해 처음으로 한국음식을 먹어서 그리운 한국생각에 매우 좋았고 아그라에서 3일 동안 한국 음식을 먹어서 매우 행복했다. 그렇게 아그라를 떠나 리쉬케쉬로 향하는 길. 나는 또다시 오르게 된 인도기차에 짜증도 난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리쉬케쉬에 도착하고 우리는 인도의 전통요가도 배우고, 래프팅을 체험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제일 좋았던 것은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가 인도의 마지막 기차라서 너무 좋았다. 바라나시에서 우리는 시체를 화장하는 것을 봤는데 무척이나 신기했고 갠지스에서 타보는 보트는 색다른 기분을 낼 수 있어 엄청 좋았다. 이렇게 우리들의 인도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는 네팔로 가야하는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25일의 인도 여행! 형, 누나들과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잊혀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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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이제 정들어가는 인도가 벌써 마지막이라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다. 티피파캄 마을에서 홈스테이한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참 인도에 정을 많이 주고 또 얻어 가는 것도 정말 많은 것 같다. 처음 한국에서 인도 간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싫어했었다. 살색이 틀린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싫고 그냥 인도라는 나라를 더럽게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가기 싫고 더럽다고 느꼈던 인도가 너무 아름답고 얻어가는 것도 너무 많은 인도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따뜻함을 인도에 와서 많이 느꼈다. 한국에 없는 자연, 인심 등 많은 것이 인도에 많아서 오히려 우리가 인도에서 배워 갈 것이 많은 것 같다. 한국에 와서도 인도라는 나라를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인도를 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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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욱 나는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를 잘 왔다고 생각한다. 비록 40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40일간의 인도 네팔 여행이 너무 빨리 흘러간 것 같아 정말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매우 좋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 생각도 많이 나고 집 생각도 많이 나서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잘 버틴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를 다니며 참 많은걸 깨닫고 간다. 고통 뒤에 기쁨이 찾아오니 그것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는 이 10대의 나이를 정말 유익하게 보낸 것 같다.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 트래킹도 해보고 생전 생각도 못하던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또 어려운 아이들에게 봉사도 할 수 있었던 참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될 수 있으면 생명팀의 프로그램도 참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정말 이제 끝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정말 부모님께 감사하다. 정말 나는 복이 많은 아이인 거 같다. 좋은 부모님덕에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를 올 수 있었고 황하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참 감사하다. 나는 이곳에 있는 동안 매우 행복했고 즐거웠다. 친구와 형 누나 동생과 함께 40일간 지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한국에 가서도 서로 연락하며 지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면 인디고 여행학교 선생님의 자격으로도 다시 오고 싶다. 그래서 황하민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매우 좋을 것 같다. 한국에 가서 이곳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매우 wonderful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황하민 선생님 처럼 상남자가 되어 한국에 갈 수 있어서 무엇보다 뿌듯하다. 한국에 가서 하민 선생님처럼 강하고 속으로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것

이다. I like indigo school, I love indigo school, I miss indigo school.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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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항상 지나고 나서야 느끼는 거지만 시간은 참 빨리 간다. 벌써 여행을 마치는 글을 쓰고 있으니 기분이 뭔가 아쉽기도 서운하기도 하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해서 말도 잘 안 걸었던 우린데, 그새 정들었는지 떨어지기가 많이 아쉽다. 인도의 적응 기간이었던 티피파캄 홈스테이, 시원한 바다가 예뻤던 폰디체리, 지내면 지낼수록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좋았던 함피, 간디체험을 했던 세바그람, 장엄한 타지마할에 감탄했던 아그라, 쓰러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던 안나푸르나 트래킹, 푼힐 전망대의 멋진 관경, 모두모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또 다른 곳을 여행 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큰 돈을 들여서 이곳에 보내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리고 40일 동안 철없는 누리팀 챙겨주신 하민쌤, 연호쌤, 순영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외지주> 누나 말 잘 따라줘서 고마웠고 고생했어. 12기 누리팀! 우리 이 인연 잊지 말고 연락하며 지내자! 40일 동안 좋은 추억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Good bye India! &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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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40일이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지만 새로운 경험과 만남, 그리고 나의 감정 변화들과 깨달음. 관계맺음의 성취는 40일이란 짧은 시간 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벅차다. 이번 여행이 내게 달콤한 추억을 줄지도 모르지만 떨쳐버리고 싶은 만큼의 쪽팔림과 아픈 기억을 나에게 담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과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남아서 내 인생에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 부터 행복하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인도와 네팔 안에서의 나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철없는 내가 그저 조른다고 해서 인도까지 가는 여행을 쉽사리 보내 준 우리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 또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40일 이란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모습들을 이해해주고 배려해준 우리 누리팀 쌤들과 친구들에게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이제는 각자의 인생으로 돌아가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한 시간들을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도나 네팔 여행을 끝마치면서 더 확실해 지는 것은 역시 여행은 아름답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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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민 40일의 길고도 짧은 인도, 네팔 여행을 시작했다. 장기간 엄마, 아빠의 품을 벗어나는 기간이라서 무섭기도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가득했다. 출발하기 전 새벽 5시까지 참을 청하지 못할 만큼 긴장도 많이 했었다. 인도 첸나이에서 솔직히 내가 생각하던 센터가 한국의 센터 같지가 않아서 많이 당황 했었다. 그렇게 시작한 인도여행을 넘어 네팔 카트만두 마지막 전날이다. 40일이 언제 지나가지 하며 티피파캄에서 홈스테이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내일 모레면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여태껏 지내면서 잊지 못할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우리를 이끌어준 하민쌤, 순영쌤, 연호쌤, 라주티쳐, 가지삼촌, 다 짱이에요! 인디고 여행학교는 이번 여행을 통해 나를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변한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길이 남을 내 인생의 역사이다. 우리 뚜어조 막내로써 많이 부족했던 저인데 끝까지 저랑 잘 놀아주어서 감사해요. 뚜어조 많이 생각 날거에요. 그리고 순영쌤의 사랑 많이 받았어요! 진짜 감사해요! 그리고 누리팀 짱! 인디고 여행학교는 역시 하민쌤이랑 가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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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솔직히 이건 이름을 좀 바꿔야 할 문제다. 인디고 여행학교가 아니라 인디고 세상의 험난함을 깨닫게 해주는 학교로 말이다. 나는 도착한 첫 날 공항에 내려 우리가 타게 될 버스를 본 순간. 내가 여기 왜 왔지? 엄청 생고생 할 듯. 한국 가고 싶다. 그리고 며칠 있으니 그 생각은 첫인상이 아닌 확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한국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조금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랬다. 이런 생각들이 없어지기 시작한 곳이 티피파캄에서 마을 사람들과 헤어질 때부터이다. 겨우 2박 3일이지만 그 아이들과 나는 정말 정이 들었다. 다 큰 애가 울 정도 였으니.. 그리고 그 생각이 아그라에서 완전히 없어지고 새로운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와서 잘만하면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구나. 허나 나는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터닝포인트까지는 아니어도 굉장히 많은 것을 깨닫고 간다. 지금은 인디고 여행학교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타 한국으로 가는 중 이다. 그리고 나는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나는 분명히 미세하게라도 변할 것이다. 그 미세한 것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내 인생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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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기 여행학교를 마치며 40일간의 길고도 어찌보면 짧았던 여행이 끝났다. 잘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선택한 인디고 여행학교 교사로서의 경험은 나에게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다. 처음 도착했던 칼루루 마을에서 서로서로 어색해 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한데 여행이 벌써 마무리 되었다니 너무 아쉽고 벌써 아이들이 보고싶다. 칼루루 마을에서 강남스타일 춤을 가르키며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함피, 자이살메르 사막, 타지마할에서 춤을 같이 추며 웃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함피에서의 공연은 우리들에게는 연예인 병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아주 환타스틱 공연이 아니었을까?(연예인이란 직업이 힘든걸 깨달음..ㅋㅋ) 인도의 교통수단인 기차, 인도는 춥지않다는 거짓말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기차, 20시간동안 침대자리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기차, 인도인들의 친절함을 알게해 준 기차.... 인도에서의 기차여행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선사했으며 나도 아이들과 친해질 수 시간을 제공 받아 너무나 좋았으나 새벽기차에서의 찬 바람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또한, 히말라야 트레킹은 내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감기몸살에 걸렸고 물갈이까지 해서 내 인생 최대의 고비가 아니었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몸은 솔직했다.ㅋㅋ 한국과 너무나도 문화가 다른 인도와 네팔 여행은 나에게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므로 내가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 때 이런 경험을 했으면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경험으로 다가갔을까 너무 궁금하다.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 칼루루 마을에서의 맨발의 인도아이들, 오랜 시간의 기차여행, 사막에서의 낙타사파리 여행, 히말라야 트레킹 등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많은 경험들 특히 나에게도 힘들었던 이 여정을 다 이겨낸 아이들이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만들어갈지 기대가 된다. 이번 여행으로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얻은 경험으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아이들의 가슴속에 담겨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감히 해본다. 이번 여행이 무사히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리며 선생님들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잘 따라와 준 우리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고맙다. 40일간의 여행은 끝이 났지만 우리의 인연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12기 인디고 여행학교로 가족이 된 우리들(성주샘, 미주샘, 유진샘, 다인, 현진, 주혜, 진주, 재영, 찬중, 형석, 강한, 호근, 실, 원희, 희상, 양진, 건화, 태종, 윤하) 모두에게 서로서로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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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종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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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글로 쓰자면 책 한권은 거뜬히 나올 것 같은 우리 12기 생명팀. 항상 매순간 함께 울고 웃고 즐기며 40일이라는 시간동안 무척이나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많은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출발했다. 옥상에 누워 수많은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 안타깝게도 기차도 잘못타보았으며, 근 일주일 동안 하루 세끼를 채식으로 식사 하며 생활하며 음식의 소중함을 느껴보았고, 20시간 동안 앉을 자리 없이 바닥 혹은 남의 자리에 함께 앉아 밤새 추위와 싸워 보았다. 낙타를 타며 사막을 배경으로 뒤처리(?)도 해보았고, 화장터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며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히말라야라는 대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나 자신의 한계와 싸웠다. 그리고 벌써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한다. 40일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인솔하려면 힘들고 어렵지 않냐고. 물론 당연히 힘도 많이 들고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우리 12기 이었으니까. 우리 생명팀이었으니까. 우리 19명 가족이 함께한 여행이었으니까. 항상 즐겁게 여행에 임해준 우리 친구들과 모든 일을 믿고 따라 와준 선생님들 덕분에 어려움과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벌써 돌아왔다. 여행이 끝난지 2주가 다되어가지만 아직도 아침에 누군가가 밥 먹자고 깨워줄것만 같고, 용돈은 언제 받냐며, 오늘 저녁 생활나눔의 주제를 생각해봐야할 것만 같다. 무엇인가 계속 아쉽기만 하다. 인도, 네팔에서의 여행을 끝으로 헤어짐이 아닌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만남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40일동안 건강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끝내준 우리 12기!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 이 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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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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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미슈! 영원히 러뷰!

함께해주어서 땡큐! 인천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위해 가방에 청테이프를 칭칭 감을 때가 정말 어제일 같은데, 인도 벵갈로르 공항에 처음 딱 도착해서 깜깜한 저녁 지프차를 타고 칼루르 마을에 도착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 새 모든 여행을 마치고 이렇게 내 책상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12기 인디고 여행학교 생명팀과의 지난 40일을 돌이켜보면 매일 매일이 정말 예측불가! 천방지축! 우당탕탕! 시끌벅적! 흥미진진!한 날들이지 않았나 싶다. 참 많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함께였기에 어려움도 아픔도 기쁨도 나누며 행복했던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했던 하루 하루였다. 16명의 인디고 친구들과 4명의 선생님. 우리 생명팀 가족 스무명이 함께 보냈던 ‘아침,점심,저녁’ 24시간이 그립다. 처음으로 숟가락 없이 손으로 밥을 먹었던 나가빠 언클이 만들어준 도사와 삼바, 인도 아이들과 일명 ‘바나나 송’을 부르며 바나나 껍질을 수도 없이 까고 딱지를 접고 접었던 이브닝 클래스, 꼰좀 꼰좀(조금 조금)을 외쳐도 주고 또 주시려는 인도 어머니들 덕에 배터지게 짜파티를 먹었던 홈스테이, 릭샤에서 나오는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처음으로 말춤을 선보였던 함피, AM 4시 30분 스티븐 잡스를 꼭 닮은 아저씨가 옴샨티를 외쳐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새벽기도와 ‘파파야와 커드’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세바그람, 처음으로 조별 자유 여행을 하며 우리 조의 상징인 ACE를 똑같이 헤나로 팔에 새기며 도원결의를 다졌던 핑크시티 자이뿌르, 여기서 찍으면 모든 게 그림! 가히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멋진 점프샷들을 쏟아냈던 낙타 사파리, 여자는 특별히 하이패스! 동그란 플라스틱 기차표가 인상적이었던 델리의 지하철, 우리가 정말 인도에 있구나를 실감케 해준 어마어마한 건축물 타지마할, 맛있는 라시에 감탄하고 있는 우리 옆을 지나가던 장례 행렬, 삶과 죽음의 경계에 존재하는

도시같았던 바라나시,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고 내려오고 내려오고 내려와도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3210m 푼힐까지의 히말라야 트레킹, 400명의 네팔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침 밥을 나눠주었던 카트만두의 밥퍼 봉사. 지금도, 인도 벵갈로르부터 시작해 네팔 카트만두까지 지난 여정들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요약해서 이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이 글에 담지 못한 우리의 추억들은 더 많고, 지금도 내 머릿 속에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영화처럼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님으로서 처음으로 자기 소개를 했을 때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을 하고 싶다 말했는데 그 말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잊지 못할 여행을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무엇보다 내겐 너무나 소중한 재영,형석,다인,찬중,현진,강한,호근,실,양진,원희,건화,희상,윤하,태종,주혜,진주 우리 16명의 친구들과 성주쌤, 종호쌤, 미주 쌤 영원히 함께 하고픈 사람들이 생겨 더더욱 감사하다. 함께 만들어가기에 서로에게 더 소중했을 이번 여행!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지난 12기 여행을 모두 마무리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어쩌면 인도에서 여행 중일 때보다 오히려 한국에 돌아온 지금이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더 중요한 순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행복하고 소중했던 경험들을 앞으로 펼쳐질 우리들의 멋진 미래를 위한 소중한 양분으로 바꾸어야할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900m 씩 오르고 올라 푼힐 정상에 도달했던 듯, 그리고 지난 40일간의 힘들고 힘든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잊지 못할 여행을 만들었듯, 우리 스무명 생명 가족 모두가 매일 매일의 노력을 모아서 빛나는 꿈을 이루어 나아갔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모습이 더 더욱 기대되는 우리 생명 가족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항상 기도할겠습니다. 빛나는 20개의 꿈들을 위해! 지금도 미슈! 영원히 러뷰! 함께해주어서 땡큐! 너무너무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우리 가족 생명팀 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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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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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벌레 가지고 그러냐,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할 때도 됐잖아!"

생명누리 힌두푸르 지부의 깔루르 마을에서 우리 생명팀의 인도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늘도 한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우리의 잠자리를 침범하고 있는 벌레를 향해 "쌤~! 벌레에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나도 벌레가 참 싫다. 인도 오기전에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이 나도 화장실과 벌레라규!!!! 하지만 사람의 직분이란 것이 참 무섭다. 아이들을 인솔하는 선생님으로 난 여기, 이 인도 땅에 밟고 나니 이깟 벌레가 두렵지 않다. 손으로 그냥 휙~ 치워버린다. 사실, 인디고 여행학교를 오기위해 준비할 때는 설렘보단 선생님으로써의 책임감이 더 컸다. 선생님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 땅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같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열심히 달려오던 나의 인생에서 한 템포 쉬면서 가던 길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다니던 회사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져~버리진 못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퇴사 버튼 클릭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인디고 친구들은 이런 늦은 고민들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어떻게 미리 말해 줄까... 하지만 현실은... 깊은 얘기는 둘째 치고, 나 또한 처음이며 낯선 이 인도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기 바빴던 것 같다. 손으로 밥 먹는 것도 처음엔 어색해서 바닥에 음식을 마구 흘리며 겨우 몇 풀 입에 갖다 됐으며, 혼자 있으면 인도 남정네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무리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등에 땀날 때까지 열심히 걸었으며, 장 활동이 활발해 매번 화장실을 찾아 다니느라 여기저기 수색하고 다녔으며, 나도 짐작할 수 없는 인도 교통 환경에 여기저기 같이 길을 찾아내느라 진땀 빼기도 했다. 위엄 있게 뒷짐 지며 든든한 선생님으로써의 역할은 충실히 하지 못했지만, 같은 것을 느끼며 같은 경험을 공유하다 보니 어느덧 인디고 친구들은 정말로 친구가 되어 있었으며 끈끈한 무언가 연결고리가 생긴 것 같다.(물론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물론, 선생님으로써의 직무를 유기한 것은 아니다. 친구들에게 많은 잔소리들 속사포처럼 늘어놓았으며, 충실한 일정 소화의 압박을 마구 넣었으며, 원하지 않는 조별 활동도 친화의 목적으로 무자비하게 실행시켰다. 가끔 언성도 높히기도 하면서(?). 그리고 얕은 뒷담화 토크와 깊은 속 얘기까지...^^ 내가 해준 말들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해준 말들에 대해 힘을 실기 위해, 내가 뱉은 말처럼 살기 위해 여행이 끝난 이 현실 속에서 더욱 선생님의 임무가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그것이 옳다고 삶으로 말해줄 수 있을 때까지 내 남은 삶의 여행도 꾸준히 할 예정이다. 여행오기 전에 가장 소망했던 두 가지는 첫 번째 안전 여행과 두 번째 친구들이 하나라도 뭔가 얻어가는 것이 있었으면 했다. 힌두푸르에서 기차를 잘못 타기도 하고, 함피에선 우리가 타고 난 후의 배가 다음날 뒤집어 지기도 하고, 세바그람에선 몰아서 줄줄이 아프기도 하고, 네팔로 가는 길에선 우리 바로 앞의 차들이 사고 나기도 했지만, 사고는 다행히 우리를 비켜가고 이렇게 무사히 한국에 와 있다. 그리고 지금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40일 우리는 가족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인디고 친구들을 얻었기에 나는 두 가지가 이루어졌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난 여행은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와 네팔이라는 나라도 참 매력 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난 우리 인디고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이 여행이 정말 즐거웠다. 40일간의 인도 네팔에서의 모든 일정들과 그 경험은 결코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던 것들이라 생각한다. 우리 인디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있었기에 더 화내며(?), 더 웃으며,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맙다 인디고 친구들!! 내 삶의 일부분을 함께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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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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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eu! 12th Indigo, 숨쉬기 힘들게 만드는 먼지들 여기저기 널려있는 배설물 복잡하고 더러운 길거리 하루 종일 식당에서 서서 일하는 아이들 길거리를 집 삼아 생활하는 사람들..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는 아이들.. 손으로 똥을 닦고 밥을 먹는 사람들 화장실이 없는 집 동물들이 집에 들어와 함께 잠을 청하는 모습 그리고 설탕을 얹은 국수…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인도의 모습들이었구나. 우리가 지내던 곳과는 많이 다른 모습들이었고 때로는 힘들고 짜증나고 신기하고 겁도 났던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속에서 그들의 따뜻함을 느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지?

이로써 나는 지금 너희들의 생활에 정말 만족하고 앞으로의 일에 사소한 것에도 짜증내지 않고 하루하루 매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동안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다른 얼굴들 속에서 수 많은 의견충돌과 때로는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를 대하기가 많이 힘이 들었겠지만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힌 큰 경험이었다고 생각해라. 우리가 40일간 함께 부딪히며 경험했던 것들이 앞으로의 삶에 있어 소중한 재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40일간 나에게 또 다른 만남을 선물해준 너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Welcome to INDIA, NEPAL 너의 삶에 큰 변환점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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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하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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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만 않는다면 첫 발을 내 딛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한번쯤 꿈꾸는 낭만의 도시에 간다.’ 라는 환상에 젖어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채 출발을 하였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지 비행기에서의 시간은 천천히도 흘러간다. 꿈에 그리던 인도에 도착하니 낭만은커녕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후덥지근한 공기는 불쾌감이 들게 하였다. 그렇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가온 인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도 처음이듯이 나에게도 처음인 인도.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시작 된 여행. 나는 모든 것들에 미숙했다. 아이들이 처음 보며 신기해하는 것에 나 역시도 신기했고, 아이들이 처음 먹으며 당황해 하는 음식에 나 역시도 당황했고, 아이들이 불편한 생활에 불평 할 때에도 나 역시도 불만이 있기도 하였고, 이렇게 모든 것들을 같이 느끼며 조금씩 적응 해 나갔다. 가는 곳 마다 먼지와 흙투성이, 식당에서는 음식이 한 시간 쯤 걸리고, 길거리에는 쓰레기와 소똥천지, 상점에는 맨날 뻥튀기 가격, 낭만이 있다고 표현하기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난무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 속에서 나는 낭만과 행복을 찾았다. 상황을 바라보기보다 그 상황 속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을 때 가장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며 아이들도 웃기 시작했다. 어쩌면 교사인 나보다 먼저 아이들은 인도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샌가 짜증보다는 웃음을, 불평보다는 감사를, 지겨움보다는 아쉬움을 더 느끼고 있었다. 아마 아이들도 이곳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낭만을 찾았나 보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만 올라가고 싶었다. 멈추고 싶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생각들이다. 다들 같은 생각을 했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두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우리는 눈부신 설산에 반해버렸고, 트레킹의 의미를 찾았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 했을 때의 성취감을 느꼈다. 이 경험은 앞으로의 삶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 할 소중한 경험적 자산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무엇을 꿈꾸며, 무엇에 도전하며,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아마도 너희들이 [멈추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인도의 여정을 완주 했듯이, 히말라야 트레킹의 정상에 올랐듯이. 스스로에게 만족 할 수 있는 삶, 행복한 삶,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너희들은 12기 인디고 여행학교 최강 누리팀이니깐.

수고했어 오늘도. 91

♥ 김순영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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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안녕 연호쌤이야~~^^ 이제 여행의 피로에서 많이 회복되었니? 쌤은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일들이 몰려와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오늘도 5개월간의 훈련을 위해 홍천을 통하여 제주도로 가서 어느 외국땅에 2개월간의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출발한다. 무엇이 얼마나 바쁜 지 출발하는 날 새벽에 너희들을 생각하며 내 마음을 남기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우선 아무 말 없이 여행이 끝난 뒤 보고회를 참석하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게 돼서 미안해. 한국에서 다같이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을텐데 나도 이 때에 다시 나가게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너희들이 정말 진심으로 다시 보고 싶고 그립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물론 불평도 있고 불만도 있었겠지만 나와 함께 40일간 함께 지내며 애쓰고 같이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돌이켜보면 너희들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다른 친구들이 틀에 박힌 입시 준비에 빠져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듯 그 안에서 매일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정말 나는 이 길 끝에서 웃을 수 있을까’를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 그러나 너희들에게는 그 삶에서 벗어나 더 큰 꿈을 꾸고,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 같아. 물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40일 동안 공부의 굴레에서 풀어주어 너희들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해. 그렇게 결단해주신 부모님들께 생각만 하지 말고, 물론 다녀와서 다 했겠지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마음을 꼭 표현해주었으면 해. 청소년 시절에 40일간 외국에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혹은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너희들의 앞으로 삶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나도 고 2때, 어머니께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지.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고, 내 마음을 활짝 열어보고 싶었어. 대학생 1학년이 되어서라도 너희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되어 기뻤어. 책상에 앉아서는 공부에 몰입해야 되지만, 지하철을 탈 때나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우리가 다녀왔던 곳들과 경험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그 나라들과 현재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감사의 마음이 들 것 같아. 그 환경에서도 만족하며 행복해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환경이 어떠하던지 행복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될테니까. 늘 행복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어. 환경이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지 않니? 나도 그렇게 노력하고 살려고 해. 그리고. 우리가 함께한 40일의 여행은 잠시 멈춰있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라 우리들의 만남은 계속 될 것으로 생각해. 서로의 분야에서 멋진 인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얘들아! 너희들의 여행은 이제 다시 시작된 것이야, 장소가 인도, 네팔에서 한국으로, 유적지와 산행에서 책상과 교실로 바뀌었을 뿐 우리들의 여행은 게속 되고 있어. 40일간의 여행을 멋지게 마쳤듯이 우리 인생의 여행을 마치고 인생의 종착역에서 우리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그런 삶의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어. 너희들 앞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안나프르나에 오를 때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우린 다 해냈잖니. 그리고 끝냈을 때의 기쁨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 처음에는 먹기 힘들어하던 음식들도 나중에는 짜파티! 짜파티! 하던 너희들을 그려본다. 너희들의 앞의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루하루 한발자국씩 걷게 된다면, 그 길에 끝에서는 우린 웃게 되는 것을 알고 있잖아^^ 우리들이 다녀온 히말라야 산만큼이나 큰 꿈을 품고 세계의 위대한 인물로 성장해나가자. 쌤도 함께 할게!. 많이 보고 싶다!. 이젠 나도 출발할 시간이다. 정말 많이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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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연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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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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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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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조

비 쥬 얼조

육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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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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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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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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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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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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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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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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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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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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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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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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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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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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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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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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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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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호

이미주 정유진 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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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팀 아가드라 격하게 아낀다! LOVE YOU, ALL!

- 생명팀 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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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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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어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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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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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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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 12기 보고집

가족의 탄생

지은이 펴낸곳 주소 전화 팩스 홈페이지 전자우편 발행인 편집팀

인디고 여행학교 12기 사단법인 국제 NGO 생명누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409호 02-766-5595 / 070-4010-4949 02-766-5596 www.lifeworld.or.kr [email protected] 정호진 주종호, 이미주, 정유진,김성주, 황하민, 김순영, 성연호

초판 1쇄 2013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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