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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 2014 570 10/9 여주 영릉 한글날 행사 기념 한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전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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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 2014 570 10/9

여주 영릉

한글날 행사 기념

한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전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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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P

글자를 지은 사람 세종과, 글자를 쓰는 사람 디자이너들이

시간과 지역을 넘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전시.

주최 여주시

주관 여주문화원, 여주대학교

협찬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

기획 정태경 여주대학교 총장

자문 안상수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PaTI)장

한재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디렉터 김윤태(여주대학교)

연출 안병학(울산대학교), 신믿음(PaTI), 김윤태

진행 윤병주(여주대학교)

콘텐츠 디자인

여주대학교 광고홍보과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PaTI)

울산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한글꼴연구소모임 외솔가지

도시디자인그룹 BA&Partners(일본)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Kubota Eiko(KITABA Co.LTD)

Oshima Wataru(Atelier Ondo)

인터랙티브 웹 디자인

곤브로

음악 트랜지스터헤드

영상촬영/편집

안병택, 정유석(여주대학교)

홍보 이지연(여주대학교)

02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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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05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전시 페이지 주소 http://pyu.yit.ac.kr

전시 페이스북 페이지 주소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https://www.facebook.com/pyusconnection?ref=bookmarks

파주 파티-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https://www.facebook.com/groups/681870345215192/

여주대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https://www.facebook.com/groups/417418995063061/

울산대 외솔가지 -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https://www.facebook.com/groups/1472486896345655/

札幌 삿포로 -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https://www.facebook.com/groups/564597397001324/?fref=ts

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2014년 10월 9일 한글날, 세종 이도가 계신 여주 영릉에서 파주, 여주, 울산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연결하고 삿포로의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가 참여한 한글 전시가 열렸다. 여주 영릉에

설치한 5x4m LED 패널의 화면을 4분할하고, 각기 분할된 화면에서 파주의 PaTI(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는 초성, 여주대학교는 중성, 울산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한글동아리

외솔가지는 종성을 담당하였다. 각자 담당한 한글이미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였고, 이를

모바일 폰으로 실시간 전송하여 하나의 실험적인 한글을 랜덤하게 완성했다.

실험적이라지만 훈민정음 제자해의 조합규칙을 그대로 따랐다.

이 전시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interactive media art), 인터넷아트(internet art)의

형식을 차용한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다. 파주, 여주, 울산 세 지역을 동시에 연결하는

컨셉은 1984년 백남준이 서울, 뉴욕, 파리를 인공위성으로 실시간 연결한 예술작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 당시의 ‘인공위성’이 ‘인터넷’이라는 다른 매체로 바뀌었다. 다른 지역에서

만든 실험적인 한글 자소이미지가 여주 영릉에 설치한 거대한 LED패널에 랜덤하게 하나의

한글로 실시간 조합되었다.

세종 이도가 계신 여주 영릉이기 때문에 비로소 그 콘셉트가 ‘완성’되었다.

각 지역 역시 한글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PaTI(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는 세종 이도를

큰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유일한 디자인 학교이며, 울산은 ‘한글이 목숨이다’를 신념으로 가진

외솔 최현배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울산대 시각디자인과 동아리 ‘외솔가지’는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글을 디자인한다.

PaTI(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는 행사 당일 파주의 거리에서 지나가는 행인들과 함께 글자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미리 제작한 나무판에 색실로 글자를 그 자리에서 만든 다음

사진을 찍어서 모바일폰으로 바로 전했다.

여주대는 영릉 자체의 이미지를 한글자소에 담았다. 그리고 발음하는 입모양으로 한글자소를

표현했다.

울산은 울산지역에 있는 한글모양이 드러나는 풍경과 사물을 골랐다. 그리고 한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담은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작업을 전송했다.

삿포로는 한글 자소를 연상시키는 삿포로 거리 곳곳의 풍경과 사물을 기록하여 전송했다.

무작위로 LED 패널에 조합되기 때문에 기존에는 볼 수 없는 형태의 한글모양이 나타나기도

했다. 각 지역은 따로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다.

모바일폰이나 PC를 통해 미리 프로그래밍된 인터넷 주소에 접속한 다음 각 지역에 해당되는

페이스북을 선택하고 사진과 텍스트를 올리면 하나의 홈페이지 화면에 모이도록 설계되었다.

여주대학교 메인 홈페이지 우측하단에 ‘파여울 한글로 잇다’라는 메뉴를 클릭하면 이 화면이

나타난다. 영릉에서는 이 메뉴의 전체화면을 LED 패널에 띄운 것이다. 때문에 인터넷을 볼 수

있는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도 이 작업을 볼 수 있다. 또한 각 지역의 페이스북에서는 메인화면에

올리는 작업 외에도 다른 작업과정과 설명 등을 볼 수 있다.

여주 영릉 설치 LED패널 구조

약 5.3m

1 PaTI(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

1 PaTI(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 | 초성(첫소리), 자음(닿자) 디자인 담당.

2 여주대학교 | 중성(가운뎃소리), 모음(닿자) 디자인 담당.

3 삿포로 | 종성(끝소리), 자음(받침) 디자인 담당.

4 울산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한글꼴연구소모임 외솔가지 | 종성(끝소리), 자음(받침) 디자인 담당.

3 삿포로

2 여주대학교

4 울산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한글꼴연구소모임 외솔가지

약 4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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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07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1

2 3

4

사진 1 웹페이지 전시 화면

사진 2 실시간 전송 웹페이지 메뉴 화면

사진 3 2014년 10월 9일 한글날. 영릉

사진 4 휴대폰을 이용한 실시간 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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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09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2014년 7월의 어느날.

매년 세종큰임금 영릉에서 개최되는 한글날 기념식 행사에 대해 상의하고자 여주문화원 조성문

사무국장님이 학교로 방문하셨다. 주된 내용은 올해 한글날 행사에 추가 예산이 배정되었으니

예년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한글 타이포그라피 전시를 세종큰임금 앞에서 해 보면 어떨까요.”

2014년 10월 9일, 여주 세종 영릉 묘역 내에서 열린 한글 타이포그라피 전시 ‘한글로 잇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간 외롭게 여주 한글날 행사를 지켜온 여주문화원은 2013년 한글날의

공휴일 재지정을 계기로 그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가행차

재현이나 과거시험 재현 등 매년 관성적으로 해 오던 행사에 더하여,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여주가 살기 좋은 고장으로 발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여주문화원의 지킴이 조성문 사무국장의 평생에 걸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국내 최고의 세종 전문가를 자처하는 그는, 세종정신의 구현이야말로

내 고장 여주 발전에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2013년 9월 23일.

113년 만에 여주군이 여주시로 승격되었다. 그 역사적인 시승격 행사가 여주시청 앞 도로에서

약 1만 여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벌어졌다. 그 서너 달 전부터 여주시에서는 이 역사적인

행사를 어디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김춘석 당시

여주시장께서는 장소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의논하고자 위원회를 결성했고, 필자도 위원회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매년 9월 23일에는 여주군 군민의 날 행사가 종합운동장에서 군민 체육대회와 함께 치러진다.

시승격 행사도 예년처럼 그렇게 치러지게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2013년 9월 23일은 달랐다.

예년의 군민의 날 행사가 아닌 113년만의 시승격을 축하하는 행사여야 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여주 ‘군민’이었던 지역주민들이 ‘시민’으로 바뀌는 바로 그날, 여주의 변화를 알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그러한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졌다. 시승격행사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여주문화원 김문영

정자각

비각

수복방

홍살문

전시 LED패널

수라간

영 릉 전 시 위 치 파주여주울산한글로 잇다 정 태 경 여주대학교 총장

들어감

공간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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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거대한 한글의 공간이다. 이러한 한글을 지으신 세종과 한글의 위대함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 제대로 아는 이도 별로 없다. 이것이 세종 영릉에서 한글날 전시를 해야 할 가장

큰 이유였다. 세종이라는 인물의 위대성을 시각적, 공간적으로 체험케 하는 것이 이 전시의

목적이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그 이유도 놀랍다. 백성을 위해서란다. 이는 그저 백성을 너무도

사랑한 성군 세종의 이미지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애민愛民하고 위민爲民하기

위해서는 선정을 펼치기만 하면 된다. 세종 자신처럼, 애민愛民하고 위민爲民하며 유능하고

도덕적인 관리들을 길러내면 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백성을 위한 통치 및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 잘 지휘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세종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느낀 것이다. 훈민정음은

애민愛民, 위민爲民의 영역을 뛰어넘는 철학적, 이념적 고뇌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종 스스로

당대 최고의 유학자로서, 유학의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훈민정음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 인간 지성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

그리고 음양오행으로 귀결되는 동양철학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 이들의 총아이다.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것이 정치라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글자란

무엇인가? 글자를 만든다면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이 있어야 한다. 그 자체로 인류가 수천 년 고민해온 가장 깊은 철학의 주제이며

인류문명사가 쌓아온 정수이다. 그 철학적 고뇌의 결과물이 바로 훈민정음인 것이다.

「세종어제훈민정음」이라는 책자는 이러한 세종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철학서이다. 생각을 글로

명쾌하게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설명이 길어지면 되레 명쾌함을 흩트린다. 하여, 구차한 설명을

최소한으로 한다. 그것이 ‘나랏말싸미’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훈민정음 서문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세종의 정치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외의 설명은 제자해, 즉 글자를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설명문으로 대체한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서는

세상에 없다.

훈민정음은 소리를 표현하는 글자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혼자 생각만으로는 그저 혼자만의

공상에 그칠 뿐이다. 그 생각을 말로써 전달해야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말은 성대의

울림을 통해 입으로 나와, 상대방의 고막을 통해 귀로 흡수된다. 그 소리 정보가 뇌를

원장의 의지와 김춘석 시장의 용기 있는 결단, 그리고 이에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

덕분에 매년 같은 날 여주군 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지던 행사가 여주 사상 처음으로 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것이다. 물론 반대도 많았다. 도로를 며칠간 통제해야 했고 부근 상인들은 난색을

표했으며 사람들의 동원 문제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시청 앞

도로에 설치된 행사장에 무려 1만여 명이 운집하는 장관을 이루게 된 것이다. 여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체험이었다. 이 일은 여주시민에게 있어 많은 것을 남겼다.

시청 앞 도로 공간에서 행사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는 사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전략적인

것이었다. 우선 시청 앞은 시내와 동떨어진 종합운동장에 비해 접근이 쉽다. 종합운동장의

행사는 인력 동원이 필수적이다. 예정된 인원을 버스로 실어 날라야 한다. 초대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다. 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종합운동장에서 뭔가를 했겠거니

하면 그만이다. 그에 반해 시청 앞 공간은 주택가와 곧바로 닿아있어 인근 동네 주민이라면 마실

나가는 정도의 마음으로 행사장을 기웃거릴 수 있다. 딱히 행사 참석 목적이 아니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나와 둘러볼 수도 있고, 굳이 버스로 동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접근할 수 있다. 참석이

아닌 접근에, 동원이 아닌 참여에 훨씬 유리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시승격행사가 그들만의

행사가 아닌 우리들의 행사가 되어버린다.

무엇보다도 시청 앞은 많은 시민들이 적어도 한두 번 이상은 찾아본 익숙한 공간이다. 왕복

4차선도로 한 켠은 주차공간이고 보행자도로는 좁으며 가로수도 제멋대로 서 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시청 앞은 정적이다. 자동차가 다니고 신호를 기다려야 하며 길가에는 늘상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있는 곳이다. 동시에 시청앞은 피동적이다.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다니는

것은 대부분 공무 때문이다. 그러니 시청 앞 주변 풍경이 어떤지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일상의 공간을 무대로, 객석으로, 놀이터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시승격을 축하하기 위해

시청 앞 공간에 모인 시민들은 무심히 지나던 그곳을 새롭게 인식할 것이었다. 단지 도로 교통을

통제하고 차가 없어진 아스팔트 도로에 걸어나왔을 뿐인데, 항상 다니던 그곳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그 새로운 경험이야말로 군민에서 시민으로 바뀌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도로가 통제되고 자동차를 위한 공간에 자동차가 사라지니, 우선 인접 상가의 시민들이 조심스레

걸어나와 본다. 처음엔 어색함이, 그러나 곧 익숙함과 개방감이 느껴진다. 어른들이 도로 위를

활보하자 아이들은 자전거를 가지고 나와 달린다. 굳이 ‘여기서 자전거를 타세요, 여기서 산책을

하세요’라고 안내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리 된다. 그렇게 한 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저녁 무렵에 시작된 행사에는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따로 먹거리 놀거리를 차려놓진

않았지만, 축제였다. 일상의 공간이 축제의 공간으로 바뀐 순간이었고, 시청 앞 공간에 새로운

공간감이 부여된 순간이었다. 여주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경험이었다.

시승격 행사에 관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풀어놓은 까닭은, ‘한글로 잇다’라는 타이포그라피

전시가 갖는 공간성을 설명하고자 함이다. 적어도 여주시민에 있어 이 전시는 2013년 9월

23일의 시승격 행사와 맥을 같이 하며 이어질 것이었다.

소리이며

공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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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파주.여주.울산 한글로 잇다

모이는 일 역시 세상에 유일하다. 이 자체가 한글의 유일성을 상징한다. 또한, 한글의 정신은

단지 한반도인에 국한되는 편협한 것이 아니다. 인류문명사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의 철학이다.

그것이 한글날이라는 시간, 영릉이라는 공간에서 구현됨으로써 글의 세계성이 구체화된다.

더불어 여주시민들에게는, 2013년 9월 23일 사람들이 여주시청 앞 행사장에서 느꼈던 새로운

공간감의 체험이 영릉에서 재현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번 전시는 여주시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어떤 생각이나 이념이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전해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공간의 체험은 다르다.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새로운 공간감의

체험은 여주, 영릉,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인의 가슴에 세종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이를 위해 원경희 여주시장은 귀한 저녁시간을 기꺼이 내 주셨다. 누구보다도 세종을 존경하는

원경희 시장은 이 전시를 성사시키기 위해 장장 두 시간을 관계자들과의 미팅에 할애해 준

것이다. 회의는 필자의 집무실에서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이 회의를 통해

한글날 전시 작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회의 끝에, 영릉 묘역내에서 한글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전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존의 인쇄물 중심의 작업, 혹은 설치물 중심의 작업을 고려하였다. 그러던

중 여주대 김윤태 교수를 중심으로 기존 작업을 탈피한 새로운 시도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파주와 여주 그리고 울산을 디지털로 잇는 작업을 시도해보자는 것이었다.

파주에는 한글 타이포그라피의 권위자 안상수 선생이 설립한 국내유일의 타이포그라피

전문학교인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파티)가 있다. 여주는 세종을 모시고 있는 어머니의

고장이다. 울산에는 한글연구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외솔 최현배 선생과, 그 뜻을 잇는

울산대학교가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위치에서 세종과 한글이라는 공통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글날 영릉에서 모이는 것이다.

사실 그 중심에는 안상수라는 독보적인 존재가 있었다. 한글 타이포그라피라는 영역을 한 차원

끌어올린 안상수라는 존재 덕분에 지금 활약중인 젊은 타이포그라퍼들이 존재할 수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영역 안에 여주대 김윤태 교수가 있었으며,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핵심 디자이너인 울산대

안병학 교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신믿음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은 각기 파주, 여주, 울산에서

안상수의 디자인 이념을 나름의 방법으로 구현하고 있었는데, 영릉 전시를 기회로 이 셋을 이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잇다’라는 전시 컨셉을 구현할 구체적인 방법으로, 영릉 묘역 내에 커다란 LED 패널을

설치하고 이를 4등분하여 각각의 분면에 파주, 여주, 울산에서 작업한 것을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송출하자는 안이 제시되었다. 1984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백남준의 작업에서 그 모티브를

얻었다. 각자가 작업한 한글의 자모는 이 LED 패널을 통해 무작위로 화면에 송출되면서 하나의

음가를 나타내는 글자로 보일 것이었다. 이는 세상의 어떤 소리도 담아낼 수 있다는 훈민정음

정신의 표현이다. 또한 고즈넉하고 성스럽기만 한 세종 영릉이라는 공간 안에 최첨단 기술을

통해 처리되고,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말이 내 것이 된다. 이렇게 떠도는 소리, 즉 사람의

생각을 글자라는 기호를 통해 종이 위에 붙들어 놓음으로써 그 생각은 음파 전달 영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이의 것이 된다. 생각이 공간화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명이다.

인류문명은 그렇게 켜켜이 쌓여온 공간들의 중첩이다. 세종이 보기에 모든 백성이 즐거운

생생지락生生之樂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만백성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훈민정음은, 그래서 세종 정치 이념의 구현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훈민정음은 생각을 문자화하고, 그럼으로써 생각을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시킨 인류 문명사적

구현물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자는 세상에 없다. 오직 훈민정음뿐이다.

그 글자를 어떤 모양으로 디자인할 것인가. 세종은 소리의 시각화라는 방법을 택했다. ‘ㄱ’이

혓바닥이 구부러지는 모양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제까지 없었던 기가

막힌 글자 디자인 콘셉트다. 소리의 시각화, 생각의 공간화, 이념의 구체화라는 콘셉트를 그대로

따른 독창적인 디자인 방법론이다. 그렇게 디자인된 것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이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바로 공간화에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통해 한반도에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글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것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훈민정음은 어린 백성들을 일깨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말과 글을 쓰는

한반도인을 새롭게 규정했다. 한반도인이 살아가는, 한반도라는 거대한 공간을 훈민정음이라는

하나의 틀로 엮어낸 것이다. 눈에 보이는 글자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출해 낸 것이다.

그렇게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는 시공을 초월하여 15세기로부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 한글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은, 그래서 공간의 개념이

함께 할 때 그 진정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것을 이번 영릉 전시를 통해 구현하고 싶었다.

‘한글로 잇다’의 가장 큰 목적은, 세종큰임금 영릉이라는 공간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에

있다. 세종이 직접 지으신 글자가 세종이 누워계신 그 공간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럼으로써

한글 정신의 정수인 생각의 공간화, 이념의 구체화라는 주제를 가장 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것이 전시가 목표하는 바였다. 그래서 전시 장소는 반드시 세종큰임금이 누워계신 바로 그

공간 안이어야 했다. 이러한 전시 테마를 설정할 수 있는 나라 혹은 민족은 세상에 없다. 글자를

만든, 글자가 반포된 바로 그날, 글자를 만든 사람과 그 글자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어떻게

이을

것인가

Page 8: 1443 2014 570 10/9 여주 영릉 한글날 행사 기념 한글 타이포 ...pyu.yit.ac.kr/pdf/pyu.pdf연출 안병학(울산대학교), 신믿음(PaTI), 김윤태 진행 윤병주(여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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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LED 패널이 설치되는 것만으로, 영릉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패널에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진 작업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뿌려진다. 생각의 공간화, 이념의 구체화라는 테마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4분면 중 파주, 여주, 울산에서 한 분면씩을 맡아 송출하면 한 면이 남는다. 여기에 필자의

아이디어를 더해 일본 삿포로의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작품을 추가하기로 하였다. 삿포로는 일본

그 어느 도시보다도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면에서 앞서가는 곳이다. 시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공공시설, 즉 퍼블릭 스페이스를 갖추고 있고 또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고 있다.

훈민정음의 공간성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의 범주를 넘어 도시

디자인,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영역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훈민정음 이념의

세계적 보편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국 작가들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여, 참여

도시를 파주, 여주, 울산, 삿포로로 확정하고 삿포로의 젊고 유능한 도시경관 디자이너들을 본

작업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한글로 잇다’ 전시계획은 하나하나 구체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전시일이 다가옴에 따라 ‘한글로 잇다’ 초대장 제작에 들어갔다. 매년 여주대에서는 추석을 맞아 여주

지역 특산품인 쌀, 고구마 등을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곤 했다. 원래는 매년 보내던 추석선물과 함께

간단한 초대장을 만들어 발송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선물 주고받지 않기’ 운동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선물 발송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이 온 터였다. 그래서 이 기회에 ‘선물’이 되는 초대장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냥 보고 버려지는 초대장이 아닌 소장하고 싶은 초대장, 전시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의 초대장 말이다.

이에 따라 초대장 디자인 작업에 몇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우선 민족의 명절 추석의 의미를 함께

되짚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그냥 읽고 버리는 감사장 및 초대장이 아닌, 소장가치를

지닌 초대장이어야 한다. 세 번째, ‘한글로 잇다’ 전시의 초대장 기능도 겸해야 한다. 네 번째,

‘한글로 잇다’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들이 검토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종이접기(오리가미)를 활용한 초대장이었다.

종이접기는 평면에 불과한 종이에 몇 가지 수고를 더 함으로써 2차원적 디자인을 3차원적

디자인으로 바꿀 수 있는 기법이다. 접어 세우면 평면이 공간으로 바뀐다. ‘한글로 잇다’의 전시

컨셉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이러한 고민 끝에 초대장을 종이접기 기법으로 제작키로 결정하고

많은 참고자료를 뒤지던 중 폴 잭슨의 종이접기 작업을 접하고는 바로 이것이라 생각했다. 여러

가지 작업물들이 있었지만 어딘가 한글의 모양과도 닮아있는 작품을 선정하고 곧바로 디자인

작업에 착수하였다. 추석의 의미를 살릴 초대장 문구는 박현모 교수의 도움으로 세종실록에서

발췌하여 작성하고 삽입하였다. 이렇게 추석, 세종, 한글, 전시 등의 네 가지 의미를 동시에

입체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실용적이고 예쁜 초대장이 완성되었다.

디자이너들 간의 회의 및 협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각자의 개성이 강한 디자이너들이지만,

세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협업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전시 작업에 대한 각종 사안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그리고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빠른 시간 내에 결정되었다. 참여 작가 전원이

전시의 주된 콘셉트에 동의하고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각종 행정이나 예산

등 디자인 외적 작업에 있어서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들이 많았다. 우선 예산은, 전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오히려 처음 계획했던 것의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시 예산의 공평한 분배라는 논리가

우선되었으며,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분은 정치와 행정에 관한 것이라 뜻처럼 풀리기

어려웠다. 절대적으로 예산이 부족했다. 예산 삭감에

따라 전시계획도 축소해야만 했다. 그러나 참여

아티스트들은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이 전시의

의미를 살려내고 싶어했고 전시 규모의 축소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2014년 9월 18일, 여주대 총장실에서 전체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회의가 열렸다. 일본 디자이너

쿠보타 에이코와 오오시마 와타루도 참석했다.

전시 콘셉트의 공유, 각종 진행사항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졌고, 함께 영릉을 견학하며 전시 위치도 확정지었다.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 쿠보타

에이코의 의견에 따라, 왕릉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오른쪽 소나무 숲 안쪽에 비스듬히 LED

패널을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특히 영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목에 자연스럽게

LED 패널의 존재가 시선에 들어온다는 설정은 전시의 극적효과와 영릉의 공간감을 극대화해 줄

것이었다.

그런데 장소선정에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영릉 묘역내에 LED 패널을

설치하는 것은 생각 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결정하고 시에서 통보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문화재청,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등 관계 부처의 허가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기획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관계부처와의 소통을 등한시 한 것이

문제였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관련 담당자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부정적이었다. 신성한 묘역 내에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타이포그라피 전시를 한다는 것을

왼쪽부터

안병학

신믿음

정태경

오오시마 와타루

강제모

쿠보타 에이코

권태용

김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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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시키기 어려웠다. 물론 전시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으나, 묘역내의 LED 패널 설치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묘역 밖의 공간에서 전시를 하게 될 판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

의미나 느낌이 반감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묘역 내에서 해야 한다.

그때,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교수가 아이디어를 냈다. 한글날 행사의 일환으로,

묘역 내에서 ‘한글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회를 갖자는 것이었다. 일전에도 묘역 내에서 각종 공연

행사 등을 진행한 경험이 있고, 특히 세종리더십의 권위자인 박현모 교수가 영릉 묘역 내에서

강연을 하게 되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한글의 미래’ 강연회와 ‘한글로

잇다’ 전시가 함께 어우러질 때 더욱 큰 시너지를 끌어낼 수 있겠다는 논리였다. 류근식 세종대왕

유적관리소장은 박현모 교수의 아이디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류근식 관리소장의 시원한 결단

덕분에 모든 장애가 눈 녹듯 사라졌다. 게다가 발전차량의 소음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며

최고의 전시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렇게 박현모 교수의 도움과 류근식 관리소장의 통

큰 결단으로 결국 전시 장소를 원래 계획했던 소나무 숲으로 확정지을 수 있었다.

원래 전시계획에는 배경음악이 없었다. 어떤 음향효과도 고려하지 않았다. LED 패널에 송출되는

한글의 자모가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영릉이라는 공간자체가 워낙

큰 의미였으므로 그 자체로 전시의 반은 성공인 셈이라 생각했고, 오히려 어설픈 음향효과는

전시의 순수성을 그르칠 수도 있다 판단됐다. 그런데 우연히 이번 전시기획의 실무 총책임을

맡은 여주대 기획실 윤병주 담당이 한국 전자음악의 독보적 존재 트랜지스터헤드(민성기)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전시와는 상관없이 트랜지스터헤드의 음악을 김윤태 교수와 함께 들으며

그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자적 소리의 근원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트랜지스터헤드의 음악이, 소리의 본질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물인 한글과 절묘하게 매치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후 회의를 통해 전시의 음향효과로 트랜지스터헤드의 음악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에 인터넷 연결은 필수이다. 그런데 의외로 영릉 내에서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여러 가지 안이 나왔지만 필자의 아이패드로 테더링하는 것이 가장 쉽고

안정적이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렇게 준비는 끝났다.

2014년 10월 8일, 드디어 LED 패널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가로 약 5미터, 세로

약 4미터 크기의 패널을 영릉 오른편 소나무 숲에 설치했다.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관계자들의

성의어린 도움으로 설치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설치 후 모습은 만족스러웠다. 전체적인

구도, 느낌, 크기, 밝기, 해상도, 모든 것이 적절했다. 우거진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패널은

그 자체로 새로웠다. 이어서 현장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각각의 작업물들이 4분할 화면에 뜨기

시작한다. 원래 각 화면에 뜨는 작업물들의 화상전환은 부드럽게 디졸브되며 변환되는 것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테스트해보니, 4개의 화면에 뜬 영상들이 각기 다른

타이밍에 디졸브되며 변환되는 것이 조금 어지러워 보였다. 그래서 현장에서 디졸브 효과를

없애는 것으로 결정했다. 모든 인위적인 효과를 최소화한다. 그것이 한글 정신에 더 어울린다는

결론이었다. 이렇게 모든 준비 작업을 완료했다.

2014년 10월 9일.

몇 달을 준비한 전시가 드디어 시작된다. 이미 파주, 여주, 울산, 삿포로 등지에서 각자 작업한

결과물들은 페이스북 공유 페이지를 통해 보고 있던 터다. 그것들이 LED 패널의 사분면에서

모아질 때 어떤 느낌일지는 어제의 테스트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이제 일반에 공개할 일만

남았다. 프로그램 에러나 인터넷 연결 오류 없이 무사히 전시가 마쳐지길 기도할 뿐이다.

파주에서는 그간의 작업물들을 거리로 들고 나와 지나가는 행인들과 함께 전시를 즐기는 퍼포먼스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 모습들이 실시간으로 디지털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영릉에 설치된 LED로

모아지고 보여진다. 이번 행사의 취지를 잘 살린 기획이다. 파주, 여주, 울산, 삿포로의 작업들이 LED

패널에 하나하나 뜨기 시작한다.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된 한글 자모들이 이어져 하나의 글자가 되었고,

파주, 여주, 울산, 삿포로가 이어져 하나가 되었으며, 영릉이라는 공간, 그리고 관람객들과 어우러져

더 큰 하나가 되었다.

전시에 대한 구차한 설명은 없다. 조그만 테이블에 놓인 간략한 인쇄물이 전부다. 한글날을

맞아 영릉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세종큰임금께 인사 올리러 가는 길에 전시물을 자연스레

마주치게 된다. 어떤 이는 지나가는 길에 힐끗 눈길 한 번 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시물 앞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의미 없이 랜덤으로 조합되는 글자 조각들을 입으로

되뇌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음가들을 조합하여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기도 한다. LED 패널에

끊임없이 나열되는 글자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옆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그저 말없이 그 광경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트랜지스터헤드의 소리가 화면과 절묘하게 매치된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 각종 행사로

조금은 어수선한 주변의 소리들이 트랜지스터헤드의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영역의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이 한글이 가진 힘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필자 역시 그 광경을 말없이 즐기고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건다. “관계자로 보이는데,

이 전시가 마치 백남준의 그것과 같은 느낌이네요” 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것을 보고 대화

없이 소통한 것이다. 미소와 함께 “그렇게 보셨군요” 하고 더 이상의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화면에 표시된 글자를 입으로 소리내어 보며 즐거워한다.

한참을 그러고 논다.

음악 | 트랜지스터헤드

영릉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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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농아협회 사람들이었다. 여주는 세종을 모시고 있다는 이유로 모음

디자인을 맡았다. 그 중 입모양 사진과 모음을 합성하여 디자인한 작업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귀가 들리지 않는 분들에게는 특히 각별하게 와 닿았던 모양이다. 물끄러미 전시를 바라보고

있던 내게 다가와 감격어린 표정으로, 입모양이 그대로 글자가 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들을

위한 전시인 것 같다며 기뻐했다. 한글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고 했다. 필자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소름이 돋았다. 한글 정신은 그런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그 분들이 일깨워주신 것이다. 감동이었다.

오후 2시.

예정된 ‘한글의 미래’ 강연을 위해 LED 패널에 띄워진 한글 타이포그라피 전시를 잠시 거둬야

했다. 대신 강연회 타이틀 화면을 화면 전체에 띄웠다. 물론 강연 자체도 좋았지만, 두 어 시간

전시를 거둬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청중들을 위해 배치해둔 의자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한재준 교수의 강연을 시작으로,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교수,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실 김경묵 수석의 강연이 이어졌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통에, 처음 가져다 놓은 200여개의 의자 외에 급히 100여개를 더 놔야 했다.

한재준 교수는 그의 분신이라 할 ‘슈’를 가지고 나와 직접 시연해 보였다. 한재준 교수의 손길에

따라 ‘ㅅ’ ‘ㄱ’ ’ㅜ’ 등으로 만들어진 글자조각들이 변화무쌍하게 춤춘다. 종이에서 튀어나온

세종의 글자들이 살아 움직인다. 청중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물론 고개만 옆으로 돌리면 세종이

보이는 공간에서 시연했기에 그 의미가 증폭되어 사람들에게 다가왔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강연의 백미였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한글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켠에서는 여주대 방송제작과 안병택 교수가 삼각대에 설치한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LED 패널 설치에서부터 전시, 그리고 마무리까지 ‘한글로 잇다’의 모든 과정을 카메라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1, 2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촬영한 후 이를 이어 붙이는 타임랩스 형식의

영상 기록물로 남기려 전날부터 삼각대를 고정하고 촬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강연이 끝나고 다시 전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실수가 나왔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의자들을 치웠어야 하는데, 미리 이야기하지 못한 탓에 LED 패널 앞에 의자를 쌓아둔

채로 방치한 것이다. 전시물 앞에 의자들이 쌓여있으니 마치 전시가 끝나버린 듯 보였다. 급히

치웠지만 결국 패널 뒤쪽 한편에 쌓아둘 수밖에 없어 전체적인 분위기가 반감되어버리고 말았다.

온전히 필자의 짧은 생각 탓에 벌어진 실책이었다.

여하튼 전시는 이어졌고, 그제야 한숨 돌리며 작품을 감상할 여유가 생겼다. 해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영릉 한 구석에 끊임없이 한글 자모를 쏟아내고 있는 LED 패널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릿속 마음속이 여러 생각으로 복잡했다. 그러더니 어느 한 순간부터 머릿속 마음속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영릉이라는 공간, 등 뒤에 누워계신 세종, 그리고 눈앞에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글자들. 그 공간감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그저 바라볼 뿐.

무아지경이란 게 이 비슷한 느낌일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갑자기 트랜지스터헤드의 음악이 툭 끊기더니만, 난데없이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의 음악이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알아보니, 음향 담당 엔지니어가

트랜지스터헤드의 음악을 음향 기기에서 나오는 잡음인 것으로 오해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전자음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나오니, 음향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큰 실수가 벌어진 것으로 오해하고 즉시 유행가로 음악을 바꿔버린 것이다. 1984년의 백남준이

떠올랐다. 의도적으로 송출시킨 노이즈 화면을 방송사 엔지니어가 방송사고로 오인하여 “위성

사정으로 화면이 고르지 못합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낸 그 유명한 사건.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백남준의 일화를 김윤태 교수와 농담 삼아 이야기했던 터였다. 이 역시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전시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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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잇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집념, 그리고 세종에 대한 경외가 맺은 결실이다.

여주문화원 조성문 사무국장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세종으로 이어진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이 그 날 하루 영릉에 투영되었다.

‘한글로 잇다’는 제목 그대로 이음이었다. 시간적으로는 약 600여년 세월의 이음이었고

공간적으로는 파주, 여주, 울산, 그리고 삿포로의 이음이었다. 아티스트들에게는 세종과

작품들의 이음이었다. 첨단 기술을 통해 세종 정신을 나눈 21세기적 이음이었다. 관객들에게는

한글을 통한 마음의 이음이었고, 여주시민에게는 2013년 9월과 2014년 10월의 이음이었다.

최초의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 그럼에도 늘 아쉬움은 남는다. 기획자의 의도가 얼마만큼

반영되었는가, 실제 어디까지 구현되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는가 하는

반성의 여지를 남긴다. 준비 기간도 너무 짧았고 예산도 부족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첫 시도들은 늘 실패하지만, 그래서 결국 성공한다.

그 날의 전시가 그랬다. 시도 자체만으로 반은 성공이었다. 기획자의 성공이라기보다 세종으로

인해 보장되어 있던, 예정된 성공이다. 여주의 미래가 그러하다. 세종 정신은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이며, 여주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한글로 잇다’는 그 열쇠 쥔

손을 호주머니로부터 빼내도록 하는 하나의 계기였다. 영릉 소나무 숲에서 빛을 발하던 LED

패널은 그간 숨죽여왔던 수많은 열쇠구멍들 중 하나였을지 모르겠다. 세종이라는 열쇠로 닫혀

있던 상자를 열면, 그 안에는 여주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여주 영릉에서 600여년을

잠자고 있던 세종이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한글로 잇다’는 세종이 선사한, 단연코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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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가.제안했고.

파티가.응답했다.

울산.안병학이.가세했다..

세종.이도.. 그.분.몸.묻힌.곳.

여주.

‘한글이.목숨’이라.외치는.외솔.향.울산..

새로움.품은.파주..

셋이.무엇을.만들어낼까?

이제.시작이다..

ㄴㄱ.기림.

안상수

PaTI.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날개

Pa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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