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013 01 제34호 생명평화를 일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 Upload
    -

  • View
    219

  • Download
    3

Embed Size (px)

DESCRIPTION

town, town

Citation preview

Page 1: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20

13

0

1

제3

4호

생명

평화

일구

농도

상생

마을

공동

Page 2: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김세진 김준표 김형우 임안섭 주재일 최소란 디자인 김준열 김준표 서아름

문의 02-999-9294, 010-2578-6050 누리편지 [email protected]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436510

<아름다운마을>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을공

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의 시도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상

과 관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읍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교] [아이

들세상]에서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만나보기]에서는

당신과 우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2013 01 제34호

4 8 14

3 [편집실에서] 변화를 추동하는 힘 최소란

4 [새해 특집] 여러분의 새해 소망은 무엇인가요? 김준표

6 [마을학교] 새로운 시작 앞에 선 친구를 축하하며 최소란

8 [아이들세상] 서로의 품이 무대가 된 동지잔치 김미정

9 [그리고] 새해 아침 길서영

10 [함께 산다는 것] 내 짐 나눠지기 김세진

12 [空과 共] 스마트폰 없이 스마트하게 살기 주재일

14 [밥상머리] 노동이 기쁨이 되는 밥상지기의 하루 황소진

16 [農생활] 쿰쿰한 냄새도 곧 익숙해지겠지 이한영

18 [생태건축] 힘 모아 지을 수 있는 흙부대집 구자욱

20 [이웃공동체] 새로운 관계양식, 두레공동체 임안섭

22 [청춘답게] 먼저 변화를 보여주는 선생이고 싶습니다 정대영

Page 3: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3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편집실에서

최소란 편집장

2006년 6월 아흔 넘으신 백발 할아버지께서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찾아오셨습니다. 속리산 자락

에 사시는 분이라 아침 일찍 출발해 세 시간 넘게 걸려 오셨답니다. 오시자마자 공동체에 대한 궁금

증을 쏟아냈습니다. “아이 데리고 밤마실 다닐 거리에 모여 산다는 얘기에 솔깃했습니다. 어떻게 사

는지 배울까 해서 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당시 그분을 뵌 이는, 50년 동안 풀무원(지금은 평화

원)을 이끌었고 한국의 공동체운동과 유기농업의 산 증인인 원경선 선생님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소문을 듣고 몸

소 찾아오는 ‘청년’의 열정을 품고 계셔서 놀라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올 1월 8일 원경선 선생님께서

타계하셨습니다. 그분이 한평생 헌신한 생명의 씨앗은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나고 이어지리라 되새

기며, 새해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새해 첫 호 마을신문을 엮으며, 변화를 추동하는 힘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한 아이의 책임있게 지

켜보는 마을공동체 교육, 서로의 품이 무대가 되는 잔치, 내 짐의 무게를 돌아보고 나눠 지게 해주

는 이사 이야기를 전합니다. 밥상일과 생태건축과 농생활 속에서 노동의 참된 가치가 살아나는 것

을 느꼈습니다. 이웃 두레공동체를 만나, 기존의 틀에서 새로운 관계양식이 확산되어가는 기쁜 소

식을 들었습니다.

들판이 아름다운 건 아무데서나 살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들풀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때를

따라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하는 잡초들의 자기 생에 대한 긍정! 주어진 삶의 여건 속에서 부르심의

뜻을 새기고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이들에게 창조와 변혁의 힘이 있겠지요. 그럴 때 역사의 주인

은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라 믿습니다. 해봐야 별 것 있겠냐고 불평하기보다, 정성들여 우리

의 역사를 쓰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합니다.

변화를 추동하는 힘

Page 4: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4

” “지난해를 돌아보니, 제가 바랐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더 세밀하게 받은 은총이 컸습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쉽게 넘어지는 때임을 경험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노동하고 수련하는 삶

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직장인의 고백입니다. 그는 회사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몸에 무리가 되었던 지난해를 돌아보

며 올해는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하되 일의 성과에 있어 거리를 두며 몸과 마음의 기운을

건강하게 지켜가려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전망을 세워가는 공부를 계속하면서 삶—공부—노동—꿈

이 소통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좋은 때에 이사 와서 행복하게 한 해를 살았습니다. 무엇을 하느냐에 우선하는 것이 누구와 함께하

느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한 한 해였습니다. 새로운 배치 속에서 새롭게 해가야 할 공부와 관계

의 과제들이 생겼습니다. 생기 있는 삶에서 생기 있는 관념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공부하는 자

세를 가다듬고 잘 나누며 살겠습니다.”

지난해 봄 홍천에 귀촌하여 살아가고 있는 한 청년의 나눔입니다. 그는 농생활 속에서 표면적 기술

에 머무는 반쪽짜리 공부가 아니라 자연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큰 공부의 방향을 잡아가려 합니다.

힘에 부치는 노동을 하면서도 아침저녁으로 텃밭을 일군 시간이 회복과 충전이 되는 경험을 한 그는,

올해에도 틈틈이 밭을 일구며 천지의 기운과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생명들과 교감하는 능력을

키워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또한 농사철이 지나면 친구들과 함께 성서를 읽으며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틀을 놓치지 않을 계획입니다.

귀촌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이도 농사를 짓는다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이유를 더 깊

이 묻고 내 삶을 전적으로 바꿔갈 대안으로써 농사를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홍천에서 살다가

새롭게 전업 농부가 되는 뜻을 품게 된 젊은이도 있습니다. 그는 농사한다고 밭과 일에 갇혀 다른 여

유도 없는 채 지내는 게 아니라 늘 함께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즐겁고 유쾌하게, 또 아름답게 지내

2013년은 어떤 해가 될까요? 지난해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다시금 꿈틀대는 희망, 그 희망을 품고 스스로

세우는 삶의 계획이 있기에 우리는 선물처럼 받은 새날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이번 호 마을신문은 우리 곁에

서 살아가는 어떤 이들의 나직한 고백을 통해 우리 모두 새해 소망을 나누며 새로운 시대를 힘차게 추동하는

힘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정직한 성찰, 비추는 관계로 여는 2013년

Page 5: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5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고 싶다는 마음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을학교 예술수업에서 학생들과 춤추기를 해보며 잔치 같은

일상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홍천에 온 몇 년은 일하고 나서 저녁이면 쓰러지거나, 며칠 무리해서 뻗곤 했는데, 지난해에는 몸에 알

맞게 노동하며 잘 지냈습니다. 건강한 밥상, 노동, 일정하게 자고 일어나는 생활을 통해 몸이 더 튼튼해

졌습니다. 지난해 처음 독립적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혼자 하기에 수월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부지런

히 했을 때 할 만한 규모였습니다. 자기 책임하에 농사짓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애쓰고 있는데

왜 삶에 큰 성숙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올해에는 하고 있는 것들을 간결하게 가지치기하고 삶의 중심을 농

사에 두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신과 같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따먹은 교만한 인간에게 땅을 갈고 땀 흘리

는 은혜의 자리를 주셨듯이 저도 정직하게 땀 흘리며 땅을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보는 기질이라, 비슷한 고민 속에 너무

오래 맴돌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의 여러 수들은 하나님께 의탁하면서, 내 앞에 있는 한 수만 단순

하게 선택하고 정직하게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난해 직장에서 야근을 줄여보리라 마음먹었던 이 직장인은, 자기 아닌 다른 이들을 돌보면서 자기 집

중의 기질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대화의 기술이나 사교력에 좌우되는 겉사귐에서

믿음을 가지고 만나는 만남으로 바꾸겠다고 다짐합니다. 함께 하는 관계를 통해 자기를 성찰한 그는 홀

로 되는 침묵과 묵상의 힘도 일상에 들이는 수련을 하고자 합니다. 침묵과 묵상의 힘으로 올해는 여러 일

을 벌이기보다 자연스럽고 질서있게 필요한 일에 집중하며 리듬감 있는 일상을 꾸려가려 합니다.

함께 어우러져 사는 관계 속에서 우리의 소망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여행, 다이어트, 어학 공부, 연

애 등 개인의 욕망에서 혹은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모르는 목표가 아니라 나를 비춰주는 관계 속에서 새로

운 뜻을 품고 함께 이루어가는 시간. 2013년은 어떤 해가 될까요?김준표

성찰과 다짐, 그리고 밝은 웃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길 기대합니다. 사진은 마을잔치 공연.

Page 6: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6

마을학교

“공부와 삶과 놀이가 예전에는 따로따로였는데

이제는 하나로 연결되어요.” 자기가 배우고 변화

된 모습을 스스로 평가하는 열세 살 학생, 한 학생

이 가진 능력과 과제를 꾸준히 지켜보고 권면해주

는 선생님, 일상 속에서 아이와 마주치면서 새롭게

꿈꾸게 해주는 마을 이모삼촌들. 배움의 걸음을 함

께 걷고 있는 든든한 선후배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졸업식은 한겨울 눈발

이 흩날리는 가운데도 훈훈하고 유쾌함이 넘쳤다.

이날 졸업생은 ‘다인’ 한 명. 같은 학년이 혼자라

서 공부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

서 “일대일 수업이 얼마나 집중 잘되고 재밌는지

몰라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걱정하

는 일을 오히려 자기에게 좋은 것으로 만드는 아

이”라며 선생님도 맞장구쳤다. 교장선생님은 학생

이 졸업할 만한 자질을 갖췄는지 다인 스스로 고백

한 내용과 선생님들이 정리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들려줬다. 졸업을 축하하러 온 이들도, 한 가지 기

준으로 규정될 수 없는 학생의 배움의 자세에 대한

나눔에 귀 기울였다. 한 사람의 삶을 책임있게 지

켜보는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교육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인은 주중에는 학교에서 생활하다가 주말마

다 서울을 오가는 일상이 지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밝고 씩씩한 기운으로 지냈단다. 주어진 상황을 즐

기며 어려움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

모르는 것을 배우고자 중학생 언니들에게 묻기도

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며 상호

학습능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

과 사는 것과 노는 것과 꿈꾸는 것을 잘 연관시켜내

는 것도 다인의 소중한 능력이었다.

중학교로 진학하는 다인에게 선생님들이 해주는

애정 어린 권면도 이어졌다. “집에서도 첫째로 자

라고, 초등학교에서도 최고 학년으로 지낸 터라,

첫째라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자기에게 어려움

이 생겼을 때 표현을 못할 수 있어요. 자기 어려움

을 솔직하게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요. 중학교에 가면 막내가 되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훈련을 하기 좋겠지요. 중학생이 되어 내면의 어려

움을 겪을 때 대화를 하면서 함께 풀어갈 수 있으

리라 믿어요.” 다인과 같이 살아봐야만 해줄 수 있

는 권면도 빼놓을 수 없다. 차분해 보이는 다인이,

보기보다 덤벙거린다, 중학생이 되면 자기 흔적을

남기지 않는 훈련을 잘 하라는 말씀이 나오자, 다

한 사람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졸업식

Page 7: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7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인은 물론 학생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공감하는 웃음소리

가 퍼졌다.

5학년 때부터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홍천터전 학교생활

관에서 지내온 다인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자립심을 키운

게 학교생활을 통해 성숙한 점이라고 꼽았단다. 앞자리에서

듣고 계시던 부모님도 서운해하기보단 대견스러운 표정으

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커서 연극을 하고 싶어 했던 다인에

게 새로 생긴 꿈이 있을까? 바로 ‘농생활’이란다. 자연과 더

불어 자급자족하면서 사는 삶이 소중한 삶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다인에게 학교 자랑을 해보랬더니, 농

사 교육을 통해 먹거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공동생

활을 통해서 힘든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삶을 배울 수 있

는 학교라고 한다.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의 배움을 자기 삶에 잘 체득한 우

수한 학생이며, 다인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아름다운마을초

등학교도 행복했고 많이 성숙할 수 있었다”며 다인에게 빛

나는 졸업장을 건네줬다. 친구들이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수

놓아 만든, ‘세상에서 하나뿐인’ 졸업장을 받아든 다인은 아

쉬운 기색도 없이 활짝 웃었다. “졸업을 앞두고 ‘수학이 어

려워?’ ‘숙제가 많아?’ ‘중학생이 돼서 제일 힘든 게 뭐야?’ 이

것저것 물어봤는데, 언니들이 정말 잘 알려줬습니다. 저도

중학생이 되면 동생들에게 격려도 해주고 잘 도와주겠습니

다”라며 벌써 생동중학교에 올라갈 기대에 설레어하는 모습

을 보여줬다.

선배들이 “다인아, 어서 와!” 하자, 다인은 동생들이 있는

초등 서당에서 몇 발을 살짝 뛰어 중등 서당으로 건너갔다.

학생들이 학교 일상을 담아 몇날 며칠 애써 만든 동영상의

한 장면이었다. 아이들에게 졸업은 두려움으로 멀리 떠나는

게 아니라 가뿐하게 뛰어 올라서는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생동중학교 선배들은 마음을 담아 노래를 했다. “아무도 걸

어가지 않은 길, 우리 함께 걸어가자. 새로운 꿈꾸며!” 한 생

명의 아름다운 성장을 같이 지켜보는 이들 모두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환한 미소를 나누며 흥에 들썩

였다.

덧붙이는 말. 2012년 12월 29일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홍천터전에서 졸업식을 한 다인은 경기 산본 산울어린

이학교를 졸업한 기원, 예준과 더불어 올해 생동중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최소란

동생과 언니, 오빠들이 공들여 한땀한땀 수놓아 만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졸업장 전달.

둘러선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명나는 우리 장단으로 잔치를 마무리했다.

그동안 다인의 배움과 성장을 함께 지켜봐온 선생님들은 추위를 잊고 땀나도록 격한 몸짓으로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줬다.

1학년을 맞이하는 생동중학교 선배들이 벅찬 마음으로 들려준 공연.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 우리 함께 걸어가자. 새로운 꿈꾸며!"

Page 8: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8

어린이세상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 아침부터 하늘이 꾸물

꾸물 하더니 결국 눈이 내린다. 이 눈길에 찾아올

손님들을 떠올리며 아이들도 상기된 표정으로 연

습을 한다. 그동안 ‘빛깔과 모양’ 수업시간에 꾸준

히 그렸던 습식수채화와 선 그림 도화지들로 무대

를 장식했다. 모아서 걸어놓으니 더 멋있어 보인

다. 아이들의 뿌듯한 마음이 벌써 차오르기 시작

한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인수터전(7살~3학년)과

마을어린이집(3살~6살) 아이들은 물론 한두 살 아

기들과 삼촌, 이모들까지 자리를 가득 메웠다. 아

이들의 진행에 따라 다같이 팔다리를 쭉쭉 움직이

는 몸풀기로 잔치를 열었다. 이어진 장구 연주에

사람들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그 긴 장단을 술술

외워서 연주를 마친 아이들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간다. 친구들과 함께 맞추어 연주했다는 게 큰

기쁨이 되었을 것 같다. 그동안 연습할 때는 많이

틀리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다같이 마음 모

아 연주하니 제법 멋진 소리가 만들어졌다. 차분하

고 시원하게 울려 퍼진 형님들의 리코더 연주에 아

우들이 맑고 경쾌한 실로폰 연주로 화답했다.

잔치 내내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기량이 한껏 펼

쳐졌다. 시 낭송을 한 다음 자기들이 직접 구상한

춤과 노래를 곁들였다. ‘우리말 우리글’ 시간에 배

웠던 ‘돼지 임금’ 이야기를 음악극으로 꾸며서 보여

주기도 했다. 귀여운 동물 탈을 쓰고 나와서 노래

와 율동으로 연기하는 아이들의 얼굴 가득한 웃음

이 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졌다. 한글 배우는 데 한

참 재미를 붙인 일곱 살 새울과 지수는 “이보게, 친

구 새울, 말놀이 하세~”, “배아파 못하네”로 말꼬리

잡기를 하는데, 척척 맞는 호흡이 느껴졌다. 형님

들의 ‘말놀이’ 순서에선 몇몇 친구들이 입에 모터가

달린 듯 빠른 속도로 말놀이를 이어가서 청중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입이 근질근질해진 손님들도

재치를 발휘할 기회가 왔다. 수학시간에 외운 구구

단으로 아이들이 구구단 쇼를 준비한 것. 구구단을

듣다가 구구단 속에 아이들이 숨겨놓은 말놀이를

찾아내는 퀴즈였다. ‘5×2(오이)는 장아찌’, ‘3×3은

삼진’…. 덕분에 어른들도 아주 오랜만에 구구단을

외워보았다.

잔치 마무리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고소한 동지

팥죽 나누어 먹기. 마을어린이집 아이들이 보여준

깜찍한 찬조공연이 화제가 되었다. 앞에 나와서 빤

히 바라보기만 해도, 갑자기 간지러운 코를 마구

파고 서있어도 귀엽고 예쁜 동생들이 잔치 이야깃

거리를 풍성하게 해줬다. 화려한 조명이나 무대가

없어도 함께 모이니 우리의 얼굴이 밝은 조명이 되

고 우리의 품이 멋진 무대가 된다. 한해의 정성스

러운 배움과 가르침, 서로의 보살핌이 느껴지는 따

뜻한 자리였다.

김미정 / 작곡과 합창 지휘 경험을 토대로 마을학교 음악수업

을 하면서 ‘마을학교 노래’ 등 다수 곡을 지었습니다. 올해부터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인수터전 선생님으로 함께 지냅니다.

Page 9: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9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밤새 쌓인 눈 위로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나서보자

가다보니 어느새, 나 혼자가 아닌 든든함

약속 없이 길동무를 만나는 즐거움

앞사람을 의지하고 뒷사람을 기다리는 발걸음

큰 숨 들이마시고 힘차게 맞이하는,

새날

그림 길서영

Page 10: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0

함께 산다는 것

“등짐 진 달팽이가 길을 가다가

집을 버리고 길을 가는 민달팽이를 만났다.

너는 발가벗고 집을 나와 어디를 가느냐고 놀려대고,

그런 너는 그 무거운 집을 왜 짊어지고 다니느냐고

서로 깔깔거리며 더듬이질을 한다.”

등짐 진 달팽이가 민달팽이에게 ‘짐 없이는 불안

해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어. 하지만 도착하면 너

와 나눌게’라고 연약함을 드러내며 도움을 요청했

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가벼운 몸을 한 민달팽이가

먼저 너의 짐을 좀 나눠 들어주겠다고 말했더라면?

우연히 만난 ‘달팽이’라는 시에 눈길이 머무는 걸

보니, 이번 이사가 제법 나를 성장하게 했나 보다.

사실, 이사만큼 나와 짐의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도

없다. 간편하게 산다고 자부했는데, 싸도 싸도 줄

어들지 않는 짐을 보면서, 옷가지를 살피다가 당장

입지는 않지만 언젠가 입을 테니 버리기는 아깝다

며 다시 넣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은 마트에 가

서 짐을 싸기 위한 상자를 더 얻어오는 나를 보면서

내 짐의 부피와 무게, 현실 자각을 비로소 한다. 짐

을 오래 쌀수록 내 짐이 많구나, 짐이 무거울수록

마음도 무겁구나 와 닿는 건 이사를 할 때다.

이런 면에서 이사를 자주 하는 건 축복일지도 모

른다. 구석구석 박혀 있던 짐을 정리하고 몸을 가

볍게 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볼록볼록한 군살을

빼는 다이어트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책장에 쌓아

놓은 문서를 하나하나 살피며 들고 갈 것인가를 구

분하다 보면 어느새 반이 줄어 있고, 너와 네가 각

자 가지고 있는 책은 한 권으로 같이 보기로 하고

다른 한 권을 적당한 곳에 기증하면 더 가벼워지고,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깨끗한 옷도 내놓으면

제 주인을 찾아간다. 처음엔 아까운 마음에 선뜻

내놓게 되지 않더라도 한 번 해보면, 다음은 쉽다.

내게 외면당하던 물건들이 제 짝을 찾아가는 건 신

기하고 재미가 꽤 쏠쏠하다.

스스로 이사할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살기로 매

번 다짐하지만, 이번에 확 줄이지 못한 내 짐을 미

안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맡기는 법을 훈련하기도

한다. 내 일인데 네게 부담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

음이 들다가도, 다음에 네 일에 내가 함께 할 것을

생각하며, 또 우리 사이에 너나의 경계가 희미해지

내 짐 나눠 지기몸이 가벼워지는 선물을 받는‘이삿날’

Page 11: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1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기를 바라며 “이삿날 와 달라”고 초대한다. “최상

의 몸 상태로 가겠다”는 답을 듣고는, 내가 새로워

지는 이사가 곧 모두 새로워지는 사건인 것을 깨닫

는다.

이사는 익숙한 것에서 떠나게 해준다. 순간 삶의

배치도 재구성된다. 버스 정류장과 1분 거리에 살

면서 몸에 붙어버린 늑장 버릇이 이사 가면서 고쳐

지기도 하고, 가구 배치를 새롭게 하면서 동선을

다시 구성하기도 한다. 비혼공동체집은 구성원들

이 바뀌면서, 새롭게 관계를 맺는다. 아침저녁 얼

굴을 마주 대하는 만남은, 그렇지 않은 마주침과 다

를 수밖에. 서로를 이해하는 정도도, 알게 되는 깊

이도 말이다. 이미 익숙해진 관계에서 떠남은 나를

직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듯, 상대방을 통해 미처 몰랐던 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알게 되는 게 변화의 시작이다. “우리 아

직 안 살아봤는데” 하는 아쉬움과 “우리 다음에 같

이 살면 좋겠다”는 소리가 이사 때마다 여기저기에

서 들린다. 비혼공동체집 이사 때는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전율과 기대가 있다.

나라가 새로워지길 소망하는 대선 날, 마침 우리

도 새 마음으로 이사를 했다. 시간을 비우는 것부

터 시작이었다. 삼삼오오 모였는데 모이고 보니 서

른 명이다. 이사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얼핏 보면

분간이 되지 않았다. 팔 걷고 하얀 장갑 낀 모습들

이 다들 주인이다. 하긴, 이사 하루 전에 이사 갈 집

을 청소하자고 빗자루며 걸레, 세제 등을 들고 모

인 사람들 대부분도 자기가 거처를 옮기지 않는 사

람들이었다.

아무도 진두지휘하지 않지만 척척이다. 어떤 이

는 조립용 가구를 분해하고, 어떤 이는 물건을 옮길

순서를 정해준다. 나머지는 일렬로 서서 손에 손

으로 짐을 전달한다. 대충 선 것 같지만 거기에도

질서가 있었다. 계단이나, 경사진 곳, 트럭 근처에

는 힘 쓸 사람들이 섰다. 재활용과 관련한 일을 하

는 친구는 이사한 뒤에 남은 쓰레기와 가구들을 마

무리했다.

어떤 이는 안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준비했다. 떡

볶이를 만들고 라면을 끓이고, 집에서 밥을 해서 나

르기도 했다. 부족한 수저와 그릇을 들고 나오느

라 집집을 몇 번이나 오간 친구, 일하러 가야 해서

이사를 돕지 못해 미안하다며 30인분 짜장을 만들

어놓고 간 친구들을 생각한다. 내 짐 나눠 지는 친

구, 내 밥 나눠 먹는 친구들이 있으니 이 어찌 기쁘

지 아니한가.

김세진

새 집에 짐을 내리고, 다시 기존 집에 짐을 빼기 위해 돌아가는 길.

춥지도 않은지 트럭에 올라타고 재미있어 하는 친구들.

수고한 사람들 모두 모여 함께 밥을 먹었다.

이사를 함께하지 못한 사람은 맛있는 짜장밥을 한솥 해놓고 갔다.

Page 12: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2

우리 안에 공(空)과 공(共)의 모습을 찾아 1년간 꾸준히 나누겠습니다. 이미 비우거나 버리고 사는

문명의 이기들은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들 없이 사는 삶이 어떠한지, 개인의 소유로만 여겨지던 것

들이 어떻게 마을에서 나누고 통용하는지 소개하겠습니다. 이미 소박하면서 풍성한 삶을 사는 이

들을 만나고 증언하는 일 자체가 큰 배움입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몇 년 전 마을신문에 실린 글을 보고 취재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핸

드폰 없이 사는 사람들은 우리 시대 진짜 기인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여자친구와 사귄 기념으

로 핸드폰과 헤어진 그는 지금 결혼해 홍천과 서울을 오가며 살면서, 부부가 하나의 폰으로 필요할 때마

다 돌려쓰고 있다. 전혀 불편함 없이.

천연기념물까지는 아니지만 핸드폰 없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핸드폰 사용자가 5000만 명을 넘었

고 스마트폰 사용자도 3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떴다. 공중전화는 우리 눈에서 멀어졌고, 집전화

도 밀려나고 있다. 한때 출근길 지하철을 휩쓸었던 무가지 신문을 보는 풍경도 사라졌다. 대신 스마트폰

으로 인터넷에, 오락에 흠뻑 빠져 있다. 하도 여러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사

람들까지 꺼내 만지작거리게 만든다.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눈은 폰에 가 있다.

물론 스마트폰이 ‘스마트’한 면이 있다. 편하게 인터넷을 쓰고 메일도 바로 확인 가능하다. SNS로 어디

서나 페친·트친들과 대화하고 정보도 주고받는다. 다양한 어플을 내려 받으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

할 수 있다. 영화와 음악 감상에서 프레젠테이션 등 사무와 은행 업무, DMB까지 별의별 기능들이 손바닥

만한 것 안에 다 들어 있다.

많은 회사들이 페이스북으로 거의 모든 보고와 업무 지시, 토론 등 일을 처리한다. 업무에 관한 글이 뜨

면 친절하게 알려주는 기능 덕분에 실시간 확인도 가능하고, 상대방은 내가 그 글을 언제 보았는지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구속하고, 우리와 빈틈없이 동행하는 신적인 존재가 되어 가

고 있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는 새해와 함께 스마트폰을 피처폰(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에 쓰던 핸드폰)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나님 대신 자꾸 우리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들을 멀리하는 게 영성

스마트폰 없이 스마트하게 살기 몰라도 되는 정보 홍수에서 자유롭게

空과 共

Page 13: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3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을 수련하는 일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년 넘게 스마트폰을 써온 재혁 님은 최근 피처폰으로 바꿨다. 스마트폰으로 처리했던 일들은 컴퓨터

앞에 있을 때 해결하고, 출퇴근길에는 책이나 성서를 보고 묵상을 한단다. 폰을 바꾼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데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알아야 할 것 같은 정보 홍수에서 벗어나니 상쾌하다고 했다. 스마트폰과 이

별하고 나서 더 스마트해졌다.

피처폰으로 바꾼다고 하면 핸드폰 가게 점원부터 이상하게 쳐다보고, 친구들도 카톡 안 된다고 아우성

이다. 주변에서는 별종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아름 님은 스마트폰과 헤어지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궁금

하면 바로바로 검색해서 처리하던 습관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여유롭게 대처하는 삶으로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핸드폰을 쓰기도 한다. 종일 같은 일터에서

일하니 굳이 사람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핸드폰 없이 지내도 큰 불편함을 느

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여러 사람이 쓰는 전화가 주는 생활의 재미도 있다. 친구 부모님의 전화를 먼저

받을 때가 있다. 몇 번 그러다보니 친구를 대신해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나중에 실제로 뵈었을 때도 친근

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대세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핸드폰 제조사들이 몇 년 뒤부터는 스마트폰만 생산하기로 했다

는 뉴스도 떴다. 예상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사용을 미루거나 절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문명과 욕망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

고 있어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든다.주재일

Page 14: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4

밥상머리

혼자 자취하면서 해먹던 밥은 참 맛이 없었습니다. 탈만

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미역을 하나 사면 다

떨어질 때까지 똑같은 냄비에 계속 물을 부어 미역국만

끓여 먹기도 했으니까요.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에 집중

하거나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기도 했습니다. 국그릇에

밥과 국과 반찬을 한꺼번에 담아서 먹었고 설거지는 뒷

전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에 힘이 되어야 할 밥이 저에게

는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담이었습니다. 밥

을 차려 먹는 것이 생존을 위한 힘든 노동이 아니라, 즐거

운 잔치일 수 있다는 것은 마을에 함께 사는 친구들과 밥

을 먹고, 마을밥상에서 밥을 지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밥상에서의 하루는 ‘썰기’에서 시작해서 ‘나누기’를

거쳐 ‘닦기’로 마무리됩니다. 파는 길고, 양파는 동그랗고,

감자는 울퉁불퉁하지만 긴 시간 다듬고 썰어져 먹기 좋

은 크기로 맛을 냅니다. 가끔 수십 개 감자 중 하나가 껍

질 채 통째로 국에 들어가 있거나, 잘게 썰어넣은 파가 길

게 붙어있기도 하지요. 국을 뜨다가 통감자를 발견하면,

Page 15: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5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머쓱한 표정으로 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아기들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

기도 합니다.

밥상을 차리고 나면 손님들이 옵니다.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고 밥상을 나누는 것은 혼자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즐겁습니다. 자연스레 단골손님들이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얼마만큼의 밥을 먹는지 알

게 되니 밥 짓는 재미도 더해집니다. 은행 넣은 밥을 좋아하는 한 손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다음에도 부탁

한다고 이야기하면, 밥을 짓다가 생각나서 은행을 꺼내기도 합니다. 손님들도 제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

지, 얼마만큼의 밥을 먹는지 알고 있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파 한 조각, 양파 한 조각이 눈에 밟혀, 남지 않게 깨끗이 먹게 됩

니다. 파를 썰며 흘렸던 눈물과 수고 이전에 씨앗을 뿌리고 자라도록 애쓴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손님들도 밥 지은 사람에게 감사하며, 어떤 마음으로 지었는지, 밥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피

고 느끼며 먹습니다. 입맛에 맞는 음식들만 골라 소비하듯 먹어 치우지 않습니다. 밥상 위에 밥이 올라오

기까지 수고한 손길들과, 밥을 짓는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에 갈라진 틈이 없으니 밥을 허투루 남기지 않

지요.

서로 알아갈수록 삶이 섞이고 경계를 넘나들기 마련입니다. 밥을 먹던 손님이 어떤 날은 밥을 함께 짓

기도 하고, 뒷정리를 같이 하기도 하고, 직접 밭에 씨앗을 뿌려 얻은 귀한 식재료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또 밥을 먹고 나서 자기가 먹은 그릇은 직접 닦아 놓지요. 남긴 것이 없어 쉽게 닦을 수 있고, 그릇을 닦

으며 남긴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니 다음에는 더욱 깨끗이 먹게 됩니다.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모든 과정

이 밥 짓는 사람에게만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밥상을 대하는 것이 모두 함께 누리는 잔치가 됩니다.

밥상 손님들은 대부분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스스로 설거지하는데, 둘러앉은 사람들끼리 가위바위보

를 해서 설거지 몰아주기를 하기도 합니다. 긴장감 속에 가위바위보를 여러 번 외치고 나서 성별과 나이

를 막론하고 한 사람이 낙점됩니다. 머쓱한 표정으로 겹겹이 쌓인 그릇을 들고 나온 이도 설거지를 마치

고 손의 물기를 닦으며 고생했다는 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뿌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친구들에게 한턱 쏜

것처럼 말이지요.

아이들도 자연스레 자기가 먹은 그릇을 치우고 씻는 습관을 들입니다. 아직 수도꼭지에 손이 닿지 않

아 혼자 물을 틀기도 버거운 아이가 발판을 갖다 놓고 까치발로 서서 이리저리 물을 튀기며 그릇을 닦기

도 합니다. 설거지하면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 어른들 못지않게 능숙하고 꼼꼼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설

거지는 힘든 일이거나 엄마가 해줘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게 당연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입니다.

함께 마주하는 밥상은 늘 설레고, 함께 먹는 밥은 언제나 고맙습니다. 파와 양파, 감자가 들려주는 맛깔

나는 이야기들을 더욱 풍성하게 나눌 수 있으려면 혀와 눈과 귀가 늘 깨어 있어야 하겠지요. 함께하는 삶

을 통해 노동이 잔치가 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황소진 / 언어치료사로 일하다가 활발하게 사람들을 만나며 일하고 싶어서 매일매일 시끌벅적한 아름다운마을밥상에서 밥 짓는 일을 하며 친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Page 16: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6

메주 쑤는 법을 알려주신 김영옥 할머니께서 잘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아직 콩을 갈무리하는 중이라

고 했더니 예부터 음력 섣달은 ‘썩은 달’이라 메주를 안 만들었다며 얼른 만들라신다. 원정여 할머니도 12

월 안에 하라며 메주는 쒀본 적 있는지 물어보신다. 처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나를 불러, 갈켜줄게" 하

신다. 떡 메치기를 가르쳐주신다더니, 지난번 마을잔치 때 정말 하나하나 도와주셨던 할머니. 할머니 마

음이 전해져 미소가 번진다.

그래, 동짓달을 넘기지 말자! 부랴부랴 서둘러 콩 털기 마무리에 돌입! 11월부터 시작했는데 도무지 끝

이 보이지 않던 콩 털기. 처음엔 두드려서 털면 키질하고 고르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손으로 일일이

깠다. 그랬더니 수북이 쌓인 콩대 더미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막대기로 콩대를 두드리기 시작

했다. 미처 털리지 않은 콩이 남았는지 콩대를 확인하며 1차 분리. 그리고 콩과 검불(콩깍지, 마른 잎, 줄

기)이 뒤섞인 더미에서 2차 분리. 체에 쳐서 티끌과 먼지를 거르고 키질하고, 마지막 콩 선별 작업까지!

두 달이 걸렸다. 나름 갈무리에 강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점점 못하겠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콩을 고르는 밤이면, 평소 들여다보지도 않던 책이 어찌나 읽고 싶던지…. 요령이 없는 건가 싶다가도 꾀

를 부릴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마다 홍천에 와서 틈틈이 콩을 골라준 이들의 손이 없었다

면 뒷심이 급격히 떨어졌던 때를 이겨내지 못했을 거다.

이듬해 씨로 쓸 것부터 남기고, 쭈글쭈글한 콩을 골라내니 모두 15.8kg, 두 말 정도다. 드디어 오늘, 메

주콩을 삶았다. 해뜨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두 겹 양말 위에 껴 신은 털버선이 무색할 만큼 추위가 매서

웠다. 깨끗하게 씻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물을 채우는데, 가마솥과 화덕 주변에 흐른 물이 곧장 얼어버렸

다. 그래도 뒷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샘물이 이 추위에 얼지 않고 시원하게 나와주니 무척 반갑고 고맙다.

메주 띄운 날, 콩 털기부터 매달기까지

별채에 떡하니 자리 잡은 메주. 쿰쿰한 냄새로 존재를 알리고 있다.

農생활

Page 17: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7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흙손’에서 만들어준 가마솥 화덕에 불을 지폈다. 효율을 높

인 화덕이라 나무는 적게 들지만 아궁이 크기가 작아서 수시로

장작을 넣어줘야 한다. 자주 들여다봤는데도 다른 일에 잠깐 눈

돌린 사이 콩물이 끓어 넘쳤다.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뜸들

이듯 콩을 익혀야 하는데 젖은 장작이 마르면서 갑자기 화력이

세지는 바람에 또 한 번 끓어 넘쳤다. 불을 약하게 한답시고 잘

타고 있는 장작을 꺼냈다가 두어 번 불이 꺼져서 다시 지피기도

했다. 가스불 조절하듯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온갖 난리통 속

에서 메주콩이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해간다.

오전 7시 반쯤 불을 지폈는데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다 되었

다. 손가락 사이에서 콩이 으스러진다. 본격적으로 만들 때다.

물장화를 신고 뜨끈뜨끈한 걸 밟고 으깨니 내내 얼어있던 발이

후끈후끈 녹는다. 계속 밟다보면 절로 으깨지려니 했는데 가볍

고 날렵한 물장화가 무겁게 느껴진다.

메주틀 대신 작은 반찬통에 면보를 깔고 으깬 것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고는 면보를 잡아당겨서 메주를 꺼내고 손으로 다

듬었다. 이렇게 만든 메주는 모두 16장. 물 양이 조금 많았나보

다. 콩 삶은 물도 조금 남았는데, 진한 갈색에 몽글몽글 엉겨 붙

은 것이 걸쭉하기까지 하다. 화천 시골집 원장님이 메주 삶고

가마솥에 남은 물 퍼서 항아리에 부어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지

난해에 짜게 담갔던 간장독에 부어주었다.

이제 잘 띄우는 일이 남았다. 짚으로 엮어 매달아 어느 정도

말린 후 이불을 뒤집어 씌워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줄 계획이

다. 메주가 구수한 냄새로 존재를 알린다. 쿰쿰한 메주냄새도

곧 익숙해지겠지. 살아 있는 녀석이니 매일 말도 걸어주고, 좋

은 마음으로 좋은 글도 읽어주면 잘 띄워질 거라는 친구들의 이

야기가 떠오른다. 좋은 미생물이 많이 살 수 있게 나도 매일매

일 건강한 기운으로 살아야지.

이한영 / 홍천 효제곡마을 밥상지기. 자연과 벗하고 사는 덕분에

생명밥상에 대해 조금씩 눈떠가는 중입니다.

절구 대신 선택한 차선책, 물장화. 자루에 담아서 밟았으면 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막 탄생한, 아직 굳기 전인 여린 메주. 이때만 해도 쿰쿰한 냄새 대신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를 풍겨 누군가 큰 인절미 같다고 표현했다.

어느새 붉게 변한 메주콩. 밤처럼 부드럽고 달달해서 계속 집어먹게 된다.

Page 18: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8

16미터 되는 길이의 양파망을 깔때기에 촤

르륵 말아 넣은 뒤 깔때기 안으로 흙을 부으

면서 양파망을 가래떡 뽑듯 풀어줍니다. 뒤

따라 커다란 나무망치가 양파망이 납작해질

때까지 떡방아 찧듯 따라옵니다. 그렇게 지

름 5미터 되는 원을 돕니다. 서른여덟 번만

하면 됩니다. 흙부대집 짓기, 참 쉽죠잉~

나무를 사용하는 방법의 집짓기는 기둥과

서까래가 만나는 도리의 짜맞춤이라든지, 벽

체의 높이를 미리 계산해서 나무를 재단한다

든지, 대들보를 끼워 맞춘다든지…. 아무리

쉽다고 해도 약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

런데 이 흙부대 공법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

도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낮으면 한 단 더 쌓

고 문틀을 세우면 됩니다. 창문도 한 단 한

단 쌓아가며 높이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집

높이도 마음대로 조절 가능합니다. 물론 미

리 설계를 하고 시작하지만 창문을 높이고

넓히고 하는, 건축과정 중에 생기는 마음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할 수 있어서 매력적인 방법입니다.

보통 집짓기에서 벽체는 뼈대인 구조와, 피부인 단열을 고려해서 짓게 됩니다. 두 가지를 따로 고민해

야 하죠. 그러나 흙부대집은 두 가지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흙부대 두께가 45센티미더이

니,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단열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고 벽 안팎으로 아무 고민 없이 흙미장만 하면 되

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흙부대 공법은 경제적입니다. 나무 구조의 집일 경우 굵은 나무든 얇은 나무든

목재 값이 건축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그런데 흙부대집은 흙을 담을 부대만 있으면 됩니

다. 실제로 이번에 벽체에 들어간 비용은 양파망값 35만 원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흙부대집은 원래 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고안된 건축법이라고 합니다. 지구에서 건축자재를 가지

생태건축

Page 19: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19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고 갈 수 없어서 생각한 방법인데, 진도 7.0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공법이라고 하니 구조적으로 매

우 튼튼한 공법입니다. 이 공법을 알게 된 건 귀촌을 한창 준비하던 2009년이었습니다. 책 제목도 《이

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이어서 전문가가 아니라도 지을 수 있고, 함께 짓기 때문에 행복할 거란 확신

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공법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겠다 하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한 건 실행하기 전 두 가지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집 지을 자리의 땅을 깎아내

거나 토지 정리를 할 때만 건축할 수 있는 만큼의 흙량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흙을 사와야 하는데,

집 짓기 위해 엄청난 양의 흙을 사온다는 게 누군지 모르는 김선달에게 흙값 지불하는 것 같아서 실행하

기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는, 건축재료는 집 주위에 있는 흙을 사용하면 된다지만 사람 힘으로 이 많은

흙을 퍼내기는 쉽지 않기에 굴착기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집 짓는 데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최소 5일, 최

대 10일까지는 굴착기를 빌리게 됩니다. 굴착기 하루 임대비는 55만 원이니 임대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

갑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흙을 파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어려움이 이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새로운 건축부지의 땅은 어차피 일부분을 깎아내

야만 했습니다. 파낸 땅의 흙이 벽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실현시킬 기회가 드디어 온 것입니다. 굴

착기는 돈 들여 임대하지 않고 이참에 중고 굴삭기를 구입했습니다. 이후 계속될 건축을 생각하면 우리

가 직접 연습해서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좋겠다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에게 굴착

기가 필요치 않게 되는 그날 다시 팔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름 5미터짜리 원형집 두 동을 흙부대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명이 준비된 흙을 양

동이에 담아 나르고, 양파망에 부어 한 단 한 단 쌓아갔습니다. 가까운 곳과 서울에서 주말마다 친구들이

와서 즐겁게 함께 부대를 쌓았습니다. 사실 흙부대 무게가 제법 나갑니다. 그런데 흙부대 잡는 걸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했기 때문에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더디지만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 싶게 매우 능숙하고 빠르게 진행됩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쯤 일이 끝나버립니다. 벽체를 다 쌓고 모두에게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는 설렘과 성취감을 만끽한 흙부대 쌓기였습니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흙부대집을

지은 과정을 소개하겠습니다.

구자욱 /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심심할 틈 없이 부지런히마을 살림공간을 하나하나 지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벽체를 쌓아올라가면 문과 창문 틀을 만들고 고정합니다. 긴 양파망에 흙을 채워넣고 달구질하면서 단단한 벽체를 만들어갑니다.

Page 20: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20

새로운 관계양식두레공동체

교회에서 신앙하는 바대로 사는 삶을 소망하는

청년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다. ‘두레기초

공동체’는 두레교회(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안에

있는 공동체이다. 교회 청년들 중 공동체지도력훈

련원에서 공부하면서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이 생

겼고, 이들이 그 꿈을 함께 나누며 키워온 것이다.

2009년 10월 한 지체의 집에서 여덟 명이서 시작한

모임이었다.

두레기초공동체는 기존 교회 안에서 새로운 관

계양식을 일구었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교회

사역을 섬기고 주중에 따로 하루씩 모여서 성서 묵

상과 삶을 나누었다. 얕은 겉사귐의 관계를 극복

하고 말씀과 기도로 서로 목회하는 만남을 이루려

고 힘썼다. 다른 여러 공동체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공동체희망연대’ 모임에도 참여했다.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일구고 있는 다른 공동체

이웃공동체

Page 21: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21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들과 연대하는 장은 자기 한계를 뚫고 나갈 수 있

게 해줬다.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하는 것이 좋을지, 나가서

해야 할지 고민도 했다. 교회 안에서 하는 게 아무

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존에 형성되어온 교회 구조가 견

고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대안적

삶을 실천하는 게 한계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 문제를 두고 함께 침묵하는 기간을 가지면서 기

도했다. 결국 교회를 떠나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변

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오세택 목사님과 두레 교인

들이 공동체를 믿고 존중해주셔서 교회 안에서 공

동체를 든든히 세워갈 수 있었다.

처음에 각자 떨어져 살고 있던 두레 지체들은 일

상을 투명하게 열어 보일 수 있도록 가까운 거리에

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뜻을 모았다. 먼저 비혼여

성공동체방을 마련했고, 이어서 가정들이 하나둘

이사 왔다. 현재 어른 열한 명, 아이들 넷으로 구성

된 두레 지체들 대부분이 교회가 자리한 당산동에

산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서로의 집을 돌며 밥

상을 나누고 있다. 아울러 지체들의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공동체 모두가 함께 공부하며 맞이했다. 지

체를 어떻게 대하며 서로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성찰하며 관계 수련을 하기도 한다.

공동체 지체들은 공동체 생성부터 모든 과정이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한다. 처음부터 계

획한 것도 아니었고, 특정한 누구 하나의 주도로

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서로를 목회해주며 함께

하는 관계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거야”라고 고개를

젓던 이도 지체들과 더불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가뿐히 하며 끊임없이 삶의 전환을 이루고 있단다.

지금 두레는 또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두레기초공동체는 2011년 말부터 귀촌에 대한

꿈을 나누기 시작했다. 교회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자립을 돕는 ‘두레마을’을 시골에 세우

자는 뜻을 보이며 ‘두레마을추진위원회’를 꾸렸다.

두레기초공동체에서 세 사람이 추진위 주체로 참

여했다. 두레마을추진위원회는 귀촌지로 여러 곳

을 찾아보고서 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 가깝게 교류

할 수 있는 강원도 홍천지역으로 정했다. 두레 지

체들은 두레마을 선발대로 가서 터를 닦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설레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홍천으로

이사한 지체들도 있다.

두레 지체들은 귀촌이 도시 문명에서 생기는 소

비와 경쟁, 파괴적인 영성에 대한 반응이라고 본

다. 서울에 있는 두레교회가 홍천에서 마을공동체

를 일구어, 도시 교회와 농촌 마을이 함께 서로를

살리며 교류하는 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안섭

Page 22: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22

청춘답게

저는 학생들과 말글살이 공부를 하는 12년차 국어교사입니다. 웬만큼 경력이 쌓였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학교에서의 숱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교사나 학

생의 자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 그렇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학교와

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 저 스스로는 마땅히 품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걱정 되기도 합니다.

저는 고3 담임을 맡게 되면서 수업보다는 대학 진학 업무에 더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요즘 대

학입시는 굉장히 복잡해져서 수도권 대학의 수시전형만 모아둔 자료집이 천 페이지가 넘습니

다. 대학 가려면 교과공부에 더해 대입전형 방식까지 공부해야 한단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수시

전형이 확대되고 입학사정관제도가 도입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습니다. 어떤 입시전문가

는 이런 입시 방식의 변화를 서울 가는 길이 다양해진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예전엔 도보 여

행만 가능했는데, 이제는 기차, 버스, 비행기 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은 대학 진학의 기회가 늘었지

만, 내세울 게 마땅찮은 아이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일찍

인정해버리고 주어진 조건으로 아무 데나 가겠다는 학생들에게 끝까지 노력하라는 말을 저는 차

마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거짓 희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Page 23: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23 아름다운마을 2013 01 34호

수능시험이 끝난 후부터 일과 대부분을 교무실에서 보냈습니다. 하루 서너 시간씩 수업이 잡혀

있지만 등교하는 학생이 거의 없어 실제로 수업이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파행적인 학사운영

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입시 이후 완벽하게 권위를 상실해버린 학

교와 교사들은 속수무책 그저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요.

대부분의 고3 교사들은 이 개점휴업 상태를 은근히 즐깁니다. 교육이 불가능해져버린 현실에 쉽

게 체념하고 적당히 안주하는 것이지요. 드물게 학생의 의무와 교권을 내세워 악다구니 쓰듯 아이

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교사도 있긴 합니다만 끝까지 저항하는 아이들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저

도 괴롭긴 마찬가지입니다. 수업 듣기를 마다하고 잠을 자거나 휴대전화에 빠져 있는 아이들 앞에

서 이 시대 교사들은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상담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기 이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습

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물었는데 ‘그냥요’라고 답하면 크게 혼내겠다고 으름장도 놓지만 많

은 아이들이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랍니다. 모호한 미래가 두렵고, 자신이 없어서일 것입니

다. 기껏 생각하는 장래희망이 열에 아홉 공무원이고, 남들과 다른 꿈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

를 들려줘도 그리 살 자신이 없다며 고개부터 내젓는 아이들.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상

상력과 용기를 키워주는 것이겠지요. 학교에 있는 동안 새로운 삶을 꿈꾸고, 그 꿈에 겁없이 도전

하는 제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담배를 피우는 교사가 흡연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듯이 가르쳐야 할 바를 제대로 전하려면 교사

가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이 앞서는 자리라 교만해지기 쉽고, 나와 남을 기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나의 이유를 가지고 교사의 자리에 서 있는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사막 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원한 물 한 모금 나

눠줄 수 있는 맑은 ‘샘’이 되기를 바라지만, 마음 한 구석 공립학교 교사로 적당히 안주하려는 욕망

도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불의하게 흘러갈수록 이 두 마음은 격렬하게 부딪힐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 내적 갈등을 견디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기보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최근에 배웠습니다. 그 관계의 힘으로 암중모색하는 이들도 많이 만났고요. 먼저 난(先生) 자

로 길을 만드는 것이 선생의 몫이라 믿는 이들과 함께 사람을 살리는 만남을 꿈꾸어 봅니다. 홀로

성공하는 삶 대신 여럿이 모여 각자의 생기를 나누고, 평화를 일구는 삶을 나의 어린 친구들과 함

께 일구어가고 싶습니다.

정대영 / 의정부의 한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얼마 전 백일을 맞아 젖살 잔뜩 오른 딸 아람이를 돌보며 육아와 살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Page 24: 2012-1/2월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농촌과 도시에서 함께 쓰는 절기달력

농생활연구소·농생활 소농연대 친구들이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지으며 기록한 한해 농사 흐름과

‘아름다운마을生活(cafe.daum.net/agimazung)’에 썼던 농사일기를 농생활 절기달력으로 엮었습니다.

국내에서 만든 재생종이에 콩기름 잉크로 인쇄하고 되살려 쓸 수 있는 끈으로 묶었습니다.

농생활연구소 · 농생활소농연대 주소 _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검산1리 806-3 누리집 _ http://cafe.daum.net/agimazung

가격은 1부에 1만원입니다. (10부를 사시면 1부를 선물로 드립니다.)

달력을 원하시는 분은 전화나 메일, 다음쪽지로 <이름/원하는 달력부수/전화번호/주소>를 남겨주세요.

( 달력값 입금시 우편료도 함께 입금해주세요. 우편료 _ 1~2부 3,000원/ 3부 이상 4,000원 )

매주 금요일에 배송합니다.

전화 033.436.9190 / 010.4539.5724 / 메일 [email protected]

계좌입금: 농협 352-0188-4934-23 김수연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는 강원도 홍천과 서울 수유에서 농촌과 도시가 서로를 살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토대로

살아 있는 학교를 가꾸며 살림이 있는 교육을 실천합니다.

참가신청문의 | 02-999-9132, 010-9094-1031참가비입금 | 국민은행 487101-01-382550

생명평화연대(마을학교)

초등

언 제 ㅣ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 31일 목요일

어디서 ㅣ 강원도 철원과 연천

누 가 ㅣ 2013년 7살 ~ 초등학교 3학년 예정자

뭘할까 ㅣ 철새탐조, 고석정에서 얼음놀이, 경원선타고 달려요

참가비 ㅣ 18만원 (재학생1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