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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새들마을학교ㆍ열린도시연구소 생명 생명 교육 찾아서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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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9일-12월25일 총 12회에 걸쳐 진행된 교육문화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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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새들마을학교ㆍ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 만남이 충(忠)의 만남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

의 교

육, 길

을 찾

아서

새들마을학교ㆍ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의생명 교육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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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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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새들마을학교・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펴낸이 최봉실

디자인 신수임

표지디자인 이효진・강한종

주소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매곡로 44번길 58 (비산동, 2층)

전화번호 070-8742-4480

누리집 www.cafe.daum.net/kyungdang

이메일 [email protected]

후원계좌 국민 222001-04-141337 윤희윤(새들생명울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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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길을 찾아서

새들마을학교・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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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경쟁과 이기심이 지배하는 사회 문화, 청년 실업, 빈부의 양극화, 고령화 문제,

세대 및 지역 갈등, 부동산 및 주거 문제, 환경 문제 등등.

문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처럼 문제 가득한 사회에 살게 되었을까요.

아니, 왜 우리는 이렇게 병든 사회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절망 가득한 이 땅의 절규 앞에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깨달음은

‘사랑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삶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열두 번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힘으로 마음을 모으고,

용맹스러운 기백으로 현실의 벽을 뚫고 가는 삶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홀로였다면 불가능했을 깨달음입니다.

이 안에는 함께했던 이들의 고뇌와 진리를 발견한 그 순간의 환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그 가슴 뜨거웠던 현장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우영 _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총무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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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인사말

교육문화연구학교 안내문

신청소감과 다짐

[기사①] ‘감사와 아픔, 고뇌의 자리에서 교육을 말하다’, 난장 첫 번째 시간

선생님? 이제 기억났어요! _김재광

[기사②]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정신, ‘충(忠)의 길’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_이명구

[기사③]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페스탈로치를 통해 본 근대교육

파스퇴르? 아니 페스탈로치! _윤희윤

[기사④] “우리 안에서 덴마크 만들자”는 오연호 대표

덴마크 칭찬은 했지만 이민은 가지 말라? _이명구

[기사⑤] 오연호 대표가 발로 뛰며 전하는 행복사회의 비밀

“진정한 행복사회로 가려면 분단 극복해야” _최봉실

[기사⑥] ‘홍익인간’으로 보는 우리 교육의 발자취

고구려의 ‘선배’는 왜 조선의 ‘선비’에게 밀렸을까 _이명구

[기사⑦]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공부하고

위기 극복 교육이 필요하다 _최봉실

[기사⑧]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따라서

사대주의 버리고 선배들과 함께 _윤희윤

[모둠나눔]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찾아서

[기사⑨] 자유와 신뢰의 교육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10남매 중 9번째, 애정결핍 이 아이가 달라진 힘 _이명구

[기사⑩]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의 무마사토를 보며

자기 중심성 강한 아이들, 배움도 두려워한다 _이동원

[기사⑪] 고유성과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

X의 부모에게 촘촘한 공동체가 있었다면? _이명구

[기사⑫] 나의 오늘이 우리 아이들의 희망이다

20대 싱글인 내가 교육 최전방에 뛰어든 이유 _최한솔

[모둠나눔]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기사⑬] 관계 안에서 진실을 포착하는 교육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명상으로 풀었다고? _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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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⑭] 위대한 가르침이란 연결됨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

우주 전체와 하나 되는 배움의 길 _김민수

[기사⑮]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교육

달에 추락해도 서로에게 귀 기울이면 산다? _이명구

[기사⑯] 교육 공간을 채우는 세 가지 가르침, ‘개방성·경계·환대’

학교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통’하는 가르침 _감재광

[모둠나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기사⑰] 오산학교·풀무학교 등의 교육 이념을 함께 읽고

대안 학교, ‘대안’이 되어선 안 된다? _이명구

[기사⑱] 솔직할 수 있는 힘

너무 솔직해서 절교까지 당했던 나, 왜 이렇게 됐지 _윤희윤

[기사⑲] 간디교육공동체 양희창 대표의 행복한 학교 만들기

“숙제 안 한 날, 학교가 불타는 꿈 꿨다” _이명구

[기사⑳] ‘사랑, 믿음, 소망 가운데 교육을 꿈꾸다’ 난장 두 번째 시간

“선생님,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찾으세요” _이명구

[기사㉑] 성탄절에 그려 보는 참된 교육정신

바람을 포착하는 교육... 우리 함께 머물자 _이명구

[닫는마당] 시_ 함께 머무는 자리 _이재호

편지_ 페스탈로치 선생님께 _김별・김종우

시_ 혼(魂) _구한글

시_ 우리가 모이니 무지개가 떠오르다 _양권진

[부록①] 새들생명울배움터 교육 이념

[부록②] 교육문화연구학교 여는마당 강의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정신, ‘충(忠)의 길’ _최봉실

[부록③] 2013학년도 새들마을학교 특별청소년신문 <우리> 수록 글

공부론 _최봉실

[부록④] 2014학년도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졸업생의 글

지난 배움을 돌아보며 _양권진 구한글 양의진 석현수 김지호 이영인

[부록⑤] 새들마을학교 창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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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여름날, 언젠간

2) 가을에 핀 꽃님이

3) Good Night

4) 하늘

5) 삶으로 답하는 거야

6) 생일 축하합니다

7) 바람의 노래

8) 시간 위의 꿈

9) 한 걸음 더

10) 인연

11) 우리 서로 되어

12) 우정이 쫀득해

13) 여기 끝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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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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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9

■ 교육문화연구학교 신청하는 법

ㅣ ㅣ ㅣ도하며, 대하며, 다리겠습니다.

아래의 방법으로 10월 3일(금)까지 신청해 주세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반갑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반드시 문화를 낳습니다.

오직 생명을 살리는 교육에만 가르치고 기를 자격과 역량이 허락됨을 믿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는 귀한 자리 되기를 바랍니다.

문의 ; 010-4331-3199 (이밀알 선생님)

장소 ; 새들마을학교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282-41번지)

누리집 ; j.mp/saedeul (검색창에서‘새들마을학교’를 검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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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앞으로의 나의 길과 나의 생각, 고민

들을 나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이야기하는 게 더 좋

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중3이니

만큼 어떻게 살면 좋겠는지, 어떤 인

생을 살면 좋을지 충분하고 깊이 이야

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_구한글(16세)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

누고 토론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신

청했다.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 말도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_김고운(14세)

꿈과 인성이 가득한 학교에서 훌륭

한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는다는 건

참으로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 더군

다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 오연호 대표가 오셔서 강의를

해 주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50명 정

도가 온다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진

행될지도 궁금하고 재밌을 것 같다.

_김지호(16세)

고등과정으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생각한다. 이 강의로 조금

더 성숙하고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

배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싶다.

_석현수(16세)

좋은 학교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충

분히 행복한 공부를 하고 있어서 딱

히 이유는 없다. 그냥 왜 참여하고

싶은지를 말한다면 어른들과 친구들

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

는 자리에 있고 싶기 때문이랄까?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모르는 분

들과 많이 만나고 처음 보는 분에게

배우고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을 하

게 되는 시간일 것 같다. 좋은 만남,

좋은 배움 되기를 기대한다.

_양의진(14세)

벌써 생명의 교육을 받고 있지만 또

다른 곳에선 어떤 생명의 교육이 있

는지 알고 싶어서 신청했다. 새로운

만남이 되기를 기대한다.

_양하늘(11세)

교육은 누구나 중요하다고 인정하면

서도 실제로는 소홀히 하면서 놓치는

부분이 많아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

은 것 같습니다. 그저 교육기관에 맡

기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일상의 전

영역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이라

면 그 삶의 길, 실천하는 참교육의 길

을 잘 묻고 또 배워 가고 싶습니다.

좋은 만남과 배움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_강한종

신청 소감과 다짐

생명을 살리는 교육,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마음과 지혜를 모으는 걸음에

저도 저의 몫을 할 수 있으면 좋겠

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신 수고

에 감사드립니다. :)

_권경아

교육이 가지는 참뜻을 알아가는 계

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네 교육

현실이 그 참뜻을 가리고 있다면, 모

순의 실상을 이 기회에 꼼꼼히 따져

물어야겠습니다. 우리 교육이 그 본

연의 뜻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도록

여럿이 함께 필요한 노력을 찾아가

고 싶습니다. 생명의 교육을 삶으로

깨닫는 시간 되길 바랍니다.

_김재광

생명, 교육이라는 말에 무감하게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자주 접

하는 기회가 생기면서 생명의 무한한

역동성에 놀라고, 이를 자라게 하는

교육에 대해서도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생명의 교육

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희

망이 없어 보이는 깜깜한 이 시대 가

운데 교육이 진정한 희망임을 마음으

로, 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_최한솔

신, 우주, 존재, 인간, 몸에 대한 배움

의 일환으로 참생명을 살리는 교육

에 대한 열망, 배움을 위해. 죽을 때

까지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길^̂

수고에 감사합니다.̂ _̂

_이승은

평소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엄

마로서 선생님으로서 교육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넓히고 싶습니다.

_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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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1

가치가 전복되고, 언어의 참뜻마저

불의한 것들의 볼모가 된 현실 속에

서 잘못된 것들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길은 참된 교육의 회

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교육

이 무엇인지 잘 배우고 싶어서 신청

합니다. 생명의 부름 앞에 진심으로

응답하는 법을 배우고, 또 그 배움을

어떻게 삶으로 살아 낼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_이달님

참교육을 소망하는 이들과 함께 고민

하며 생명의 교육, 그 길을 찾고 싶습

니다. 겸손히 잘 배우고 잘 만나고 싶

습니다. 함께 공부해 갈 시간들과 새

롭게 펼쳐질 만남들이 기대됩니다.

_김주열

이 땅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워 가

는 일은 너무나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습니

다. 즐겁게, 또 깊게 만나면서 함께

살 길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

_박규준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모으고

실천하며 살고 싶습니다. 함께 모여

생명을 살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깊

이 해 가고, 작은 일에서부터 그렇게

생각한 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신청

합니다. 생명과 교육에 대해 함께 고

민하고 배우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자리에 초대되어 감사합니다. 3개월

동안 열린 마음으로 잘 배우겠습니다.

_박한나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을 바꾸는 일

은 다음 세대를 어떻게 교육하느냐

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

존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면서 교육

에 대해 닫힌 마음으로, 부정적인 마

음으로 있었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걷어 내고

참으로 생명을 살리는 교육에 마음

을 모으고 싶습니다. 함께 공부하면

서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지

금 우리가 하려는 공부가 시대의 과

제와 맞닿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

니다. 겸손하고 성실하게 배우고 공

부하겠습니다. 익힌 바를 잘 살아 내

는 역량이 길러지기를 바랍니다.

_이명구

꿈꾸고 싶고, 꿈꾸는 이들의 열정을 배

우고 싶습니다. 한 걸음 내딛어 봅니

다. 이 걸음을 기억하고 잘 붙들게요.

_이윤주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대해 잘 배우

고 싶습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책 제목처럼, 두려

움을 넘어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_이효진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싶고, 더불어

어느 때나 배움이 일어나는 삶의 과

정에서 서로 잘 배우고 가르치는 길

을 함께 고민하고 싶어 신청하게 되

었습니다. 먼저 세미나를 기획하고

준비한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성실하

고 겸손한 배움의 자세로 함께 하겠

습니다.

_장미진

먼저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

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를 정화시킬

수 있는 생명의 교육이 필요함을 절감

하고 있기에 신청합니다. 힘껏 교육을

논하고 즐겁게 익히고 동지를 만나 생

명의 연대를 이뤄 가고 싶습니다.

_조동휘

일단 교육문화연구학교 취지에 공감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배

우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책도 좋

은 것 같고, 좋으신 분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제때 다 읽

을 수 있을까? 말도 잘 못하는데 토

론을 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

긴 하지만 ‘새로운 만남과 예기치

못한 배움, 전환의 계기’라는 안내

문구에 마음이 많이 갑니다. 기대하

며 기도합니다!! ̂ ̂

_박애영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나 많은 실수

를 하고 후회를 하는데, 이 수업을

듣고 조금이나마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_정희숙

Page 1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선생님? 이제 기억났어요!

올해로 서른 두 살이다. 이제 스승의 날이 되어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학창 시절 친구들 이름이나 얼굴도 점점 흐릿해진다. 수업

시간 풍경 같은 것은 끄집어내서 뭐하랴. 이 모든 게 부질없는 일이라 여기는

나이가 됐다.

주변 선배들은 하나둘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큰일이라는 것

이다. 다들 교육에 대한 불안을 자주 토로한다. 하는 얘기를 들어 보면, 애들

공부 잘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겠다는 극성은 많이 수그러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일이 돼 버렸지 않은가. 신물이

날 만도 하다.

교육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창의적이면서, 그래도 뭔가 건설적인 고민이 필

요하지 않을까. 이 얘기를 하면 눈에 불을 켜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참 많

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럴까. 생업을 마다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얘기라도 주고받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새들마을학교’가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

었다.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란 주제로 누구나 와서 강의를 듣고 토론도

나눈다 한다. 신청한 사람들을 보아 하니 연령층이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

하다. 모두 합해야 60명이 조금 못 되니까 두런두런 얘기 나누기에도 좋다.

모임은 10월 9일 한글날부터 12월 25일 성탄절까지 총 12번에 걸쳐 진행된다.

매주 금요일 저녁 시간이니 퇴근하고 가면 별 부담도 없겠다. 조금 망설이다

가 신청서를 보냈다. 오랜만의 등교라 기분도 약간 설랜다.

기사 ① ‘감사와 아픔, 고뇌의 자리에서 교육을 말하다’ 난장 첫 번째 시간 _<오마이뉴스 2014.10.14>

교육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창의적이면서,

그래도 뭔가

건설적인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_김재광

▲ 난장, 기억을 꺼내다 앞으로는 좋았던 것을

더 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구

▲ 난장, 기억을 꺼내다 좋았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힘을 준다. ⓒ이명구

▲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교육문화연구학교가

10월 9일 새들마을학교에서 열렸다.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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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3

한글날 오후, 새들마을학교 1층에서 첫 시간이 열렸다. 새

들마을학교 이밀알 선생님이 1교시를 맡았다. 근데 1교시

제목이 독특하다. ‘난장’이란다. 난장판 할 때 그 난장이다.

첫 판부터 난장판이란 얘긴가. 어쨌든 설명을 듣기로 했다.

교육을 주제로 떠오르는 기억을 제 마음대로 끄집어내는

게 이 난장판의 목적이다. 학교, 선생님, 친구, 수업 시

간, 시험 등 교육과 맺었던 갖가지 추억을 떠올려 보자는

거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일단 먹구름부

터 눈앞에 그려졌다. 나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대다수

가 어두운 뒷골목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

며 잠시 기억에 잠겼다.

기억은 제 마음대로지만 담는 그릇은 네 가지다. 첫 번째

그릇만 살펴보자. 좋든 싫든 기억에 남는 선생님 이야기

가 그 첫 번째다.

나눠 준 종이에 생각나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스승의 날에 전화 걸어 인사드리는 선생님이 한

분도 없다. 그렇다고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건 아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쓰다 보니 기억 속에 선생님들이 다

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적다 보니 꽤 길게 썼다. 초등학

교 4학년 때니까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그때 일이 생생하다. 수업 시간에 유달리 노래를

많이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국어 시간에도, 산수 시간에

도 일부러 틈을 내서 재미있는 동요를 율동과 함께 알려

주셨다. 그 시절이 참 좋았었나 보다. 입가에 미소가 슬

며시 번졌다.

선생님은 그때 왜 그렇게 수업을 하셨을까. 처음 가져 본

생각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왜

애들한테 노래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셨을까. 그

때만큼 학교 가는 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도 흥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노래와 율동을 매개로 선생

님과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은 1년 동안 정다운 시간을 보

냈다.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교육이다 뭐다 말이 많

고 실제로 이런저런 제도를 개혁해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많은 걸 잘 안다. 하지만 그 참교육이란 게 내게

는 멀게만 느껴졌었다. 말잔치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

런데 이제 보니 뻔히 내 곁에서 그 참교육을 실천하셨던

분이 계셨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어떤 분

은 30년 전 일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조용히 자기를 끌

어안아 주셨던 선생님 얘기를 하다가 그만 울먹울먹 말

을 잊지 못했다.

재미난 사연도 있었다. 학생들 인사말을 멋지게 바꿔 준

교장 선생님이 계셨다. 부모님한테는 “효녀가 되겠습니

다”,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정직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로 인사말을 바꿔 주셨다고 한다. 이 인사말은 당시 조

그마한 시골 마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한

다. 얼마나 기특했을까 싶다. 또 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손수 편지를 써 주신 선생님. 따돌림하는 친구들을 크

게 혼내시며 반 친구끼리 서로 아끼며 지내야 한다는 가

르침을 주셨던 선생님.

▲ 난장, 기억을 꺼내다 언제 학교 가는 걸음이 즐거웠을까. ⓒ이명구▲ 난장, 기억을 꺼내다 네 가지 그릇에 기억을 담았다. ⓒ이명구

Page 1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아이들은 모를 것 같지만 사건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다. 관심을 주신 선생님과 무관심을 보낸 선생님이 명확

하게 기억이 난다. 존재에 대해 배려하며 대하시는 선생

님과 살피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대하는 것도 선명히

각인된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모를 것 같지만 이 순간들

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삶의 질문을 계속 해 주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때는 지루하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60개 우산을 사 주신 선생님보다

그 선생님이 진짜 선생님이셨던 것 같아요.”

_두 자녀를 둔 주부

▲ 난장, 기억을 꺼내다 “삶의 질문을 계속 해 주신 선생님이 진짜

선생님이었던 것 같아요.” ⓒ이명구

이야기를 쭉 듣고 났더니 기억들이 제각각인 것 같으면

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첫째, 권위를 가진 선

생님과 권위적인 선생님은 서로 다른 기억을 만들어냈

다. 학생들을 위해 권위를 사용한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위해 권위를 사용하는 선생님이 있다. 전자는 오

랫동안 기억에 남는데, 후자는 잊고 싶은 기억이다.

둘째, 질문을 던지는 선생님이 있고, 획일화된 목표를 부

여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땐 우리도 당장의 시험 성적

이 중요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그 선생님이 던졌던

질문 덕분에 삶을 조금씩 깨우친다.

나누다 보니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았지만

우리 기억 속에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

들이 분명 계셨다. 이 이야기들을 언제까지 추억으로만

머무르게 할 건가. 우연한 듯 보이지만 아주 지혜로운 말

로 아이들의 갈등을 해결해 주고, 잘못했던 일은 정확히

혼내 주고,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 속에서 우리를 만나 주

시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 자체로 사랑으로 품어 주

시던 선생님.

그들을 이제 기억 속에만 머물게 하지 말자. 현재로 끌

어내어 우리 아이들에게 계승하자. 교육문화연구학교 첫

번째 난장은 바로 그러한 목적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참으로 심각합니다. 하지만

입시경쟁 위주의 비인간적인 교육 현실 속에서도

비록 미비하지만 사랑과 투철한 교육 정신으로

우리를 만나 오시며 오래전부터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계신 그 손길들, 인생들,

선생님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가는 빛줄기 같은 가르침을 계승하면서

이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가자는 것입니다.”

_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

기억하는 것이 이렇게 힘을 가진 것인 줄 몰랐다. 좋았던

선생님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리며 힘이 났다. 나쁜 건

쉽게 기억하는데 좋은 것은 자꾸 잊는다. 앞으로는 좋았

던 것을 더 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

좋은 것을 만들어 가는 길은 이미 있었던 좋은 것들을 잘

기억하는 바탕 위에서 세워 가는 것임을 이제 기억해 두

려 한다.

▲ 난장, 기억을 꺼내다 사랑으로 품어 주시던 선생님을 이제 기억 속

에만 머물게 하지 말자. 현재로 끌어내어 우리 아이들에게 계승하자.

ⓒ이명구

Page 1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5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기사 ②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정신, ‘충(忠)의 길’ _<오마이뉴스 2014.10.14>

조선 세종대왕 때 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패륜의 소식을 들은 세종은 신하들에게 자초지종을 알

아 오게 했다. 한자로 된 윤리책을 읽지 못해서 백성이 인간의 도리를 어기게 됐다는 이유를 들은 세종은 가슴 아파

했다. 쉽게 익히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을 만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글창제로 대표되는 위

민정치를 펼친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수확률을 높이기 위한 농법을 담은 <농사직설>

을 편찬하게 하고, 노비에게는 출산 휴가를 주는가 하면, 국경 지역에서 먹을 것을 찾아 넘어오는 이들도 자신의 백

성으로 돌보았다.

교육문화연구학교가 시작한 날은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를 더해 이

날을 여는 마당으로 잡았다.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펼쳤던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꺼내며 첫 강의의 문을 열었다. 최 대표는 세종의 위민정치의 본뜻은 ‘충(忠)의 길’에 있다고

말했다. 백성을 위하는 길을 논하려는데 거꾸로 충(忠)이라니?

▲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 최봉실 교장은 왜곡된 충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교육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명구

글_이명구

Page 1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관계의 도리를 중시한 사상입

니다. 신하는 왕에게 충(忠)을, 자녀는 부모에게 효(孝)

를, 부모는 자녀에게 자애(慈愛)를, 왕은 신하에게 인

(仁)을 다하라고 하지요. 이중 유교의 핵심은 인의 사상

입니다. 인은 측은지심, 안타까운 이를 보면 안타까워지

는 것을 말하는데요, 세종대왕이 가졌던 마음이 이 마음

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서 갖는 안타까운 마음, 이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왕이 신하에게 관계의 도리를 다하는 ‘인’은 설명이 된

다. 그렇다면 신하가 왕에게 관계의 도리를 다하는 ‘충’

의 본뜻은 무엇일까.

백성을 향한 이순신의 ‘충’

영화 <명량>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백의종군했던 이순

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해 병력을 모으려고 할 때,

임금은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으로 합류하라고 명령한다.

이순신은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편지를 보낸다. 이를 본 이순신의 아들 이회는

“왜 이렇게까지 임금에게 충성하느냐”고 묻는다. 이순신

은 “나의 충은 백성을 향한 충”이라고 답한다. 제대로 된

충은 백성을 향한 것이고, 왕에게 충을 바치는 것은 백성

을 책임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성을 책임지

는 존재인 왕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신하가 왕

에게 ‘충’하는 것. 여기서 ‘위민’과 ‘충’은 맞닿아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 ‘충’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

로 느껴진다. 최 교장은 이를 ‘충’의 개념이 왜곡됐기 때

문이라고 짚었다.

“현대에 숭상되고 있는 가치는 민주주의, 자유, 개인 존

중의 사상입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충의 사상은 이러

한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지요. 또 우리는 일제강

점기 천황을 숭배하도록 충을 강요받았습니다. 36년간

잘못된 충이 충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현실을 너무

오랜 세월 겪었습니다. 그때 입은 내상이 아직도 낫지 않

았을 겁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독재 시

대를 보냈습니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잡혀가고 끌려갔

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에 충을 바쳤던 친일파의

후예들은 지금도 친근하게 충을 이야기하지만, 진보적

인 사람들은 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충의 개

념이 왜곡됐기 때문입니다. 충이 긍정적으로 수용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요.”

최 교장은 한자에 담긴 의미를 통해 충(忠)의 개념을 설

명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만나서 이룬 글자

다. 중(中)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안과 밖을

관통하는 모양새이며, 하늘과 땅을 잇는다. ‘중’은 단순

히 시간적인 가운데나 공간적인 가운데를 말하는 게 아

니다. ‘안과 밖의 일관된 본질’ 혹은 ‘삼라만상의 가운데,

중심’을 의미한다.

심(心)은 인간의 염통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로, 마음・

정서・생각・느낌・정을 포괄하며 인간 존재의 ‘가운데’

이다. 최 교장은 “‘충’은 우리 정신, 마음, 가운데와 우주

세계 삼라만상의 중심이 딱 만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즉 중을 향한 집중, 중(본질)에 마음을 쏟고 거기에 마음

을 두는 것, 이것이 충이다. 이러한 충을 지속적으로 성

실히 해 가는 것이 또한 ‘충성(忠誠)’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충’의 의미를 회복하자

최 교장은 왜곡된 충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교육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충

▲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10월 9일 한글날에 모여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다.

ⓒ이명구

Page 1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7

의 본의를 제대로 살리는 것, 다시 말해 ‘충의 만남’을 이

끌어 가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 만

남이 충의 만남이 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이 세상의 무수한 대상, 다른 존재들을

만날 때에 그들의 중(본질)을 만나도록 돕고, 충으로 만

나게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이 충의 만남으로 부

지런히 이끌어 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 하나하나를 전심으로

만나고, 그 본질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거나 시험을 잘 보려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됩니

다. 그보다 건강한 목적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도 부족합니다. 진짜 목적은 영

어 그 자체를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용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영어를 말하고 듣는 것 자체, 그 언어 자체를

만나게 하는 게 교육의 1차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

음에 타인과의 소통이고, 직장이나 학교에 가는 거지요.

안타깝게도 제도권 교육은 영어 그 자체, 본질을 만나는

기쁨을 잃었습니다. 이를 잘 회복하는 게 필요합니다.”

여기서 개별 존재들의 만남은 반드시 삶 전체, 우주 전체

질서의 중심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이

중심으로의 연결점을 깨닫고 나아가게 해야 한다. 생과

존재에 대한 더 깊은 이해, 더 높은 차원의 이해로 나아가

며 더 큰 본질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인간 이해를 초월한 영역에 대한 겸허함과 경외심으로,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는, 하지만 언제든 내가 부분으

로 몸담고 있는 이 전체 우주 질서의 본질이 내 생의 인

식의 영역으로 포착될 때, 겸손히 열려 있음으로 끊임없

이 현실로 침투해 들어오는 초월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

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이

라 믿습니다. 행복은 잘 만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

서 충의 만남으로 이끄는 공부는 개별 생명체 상호 간의

본질적 만남뿐 아니라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질서와의

본질적 만남까지도 이어질 때 보다 더 온전한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 교장이 말하는 ‘충의 만남’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매순간 겸손하게

열려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이전에

고수하고 있던 틀이 강하면 낯선 것이 들어왔을 때 받아

들이기 너무 어렵습니다. 너무 낯설어 두려워 받아들일

생각을 못합니다. 열려 있어야 훨씬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전체를 향한, 인간이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향한 경외심을 갖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모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열어 두고 있는 것, 열린 자세로 부

지런히 ‘중’을 포착하는 것, 포착한 ‘중’에 나의 ‘심’을

온전히 쏟아내고, 거기서 비롯된 ‘충의 만남’을 도모하

고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

습니다.”

▲ 충의 만남  2014년 새들마을학교 가을겨울학기 수학 첫 시간,

‘생활 속의 숫자를 찾아라’. 우리는 수학 자체를 즐겁게 만날 수

있다. ⓒ새들마을학교

Page 2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너 페스탈로치 아니?”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 파스퇴르였다.”

10월 10일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새들마을학교가 함께 준비한 교육문화

연구학교에서 ‘페스탈로치를 통해 본 근대교육’ 발제를 듣기 전 지인과 나

눈 대화다.

페스탈로치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근대교육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저서도 <은자의 황혼>(서문문고)과 <겔트루

드는 어떻게 그의 자녀를 가르치나>(한국학술정보(주)) 정도다. 페스탈로

치의 교육사상을 들어도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을

요약해 보겠다. 특별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머리(지식), 가슴(도덕), 손(기술)을 하나의 인격으로 조화롭게 도야하는

전인교육.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오고가는 사랑과 믿음을 통한 가정교육. 인

간의 발달 순서에 맞게 구성된 수(수학), 형(기하), 음(언어)의 교육. 암기

를 통한 주입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내재된 것을 스스로 계발시키는 자발

성의 원리. 노작 활동을 통한 생활 중심 교육. 자연적 권리이기 때문에 누

구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평등 교육.

전인교육은 학교 다닐 때 주구장창 들었던 지덕체 교육과 비슷하다. 가정

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학교

교과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순차적으로 짜여 있다. 아이들에게 내

재된 힘을 길러 내야 한다며 아이를 중심에 둔 교육은 요즘 지나칠 정도다.

헌법은 모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이 이게 다가 아니지만 더 언급하지 않아도 지금 우리에게 새로울

게 하나 없다. 페스탈로치는 정말 특별할 게 없는 교육가였던가.

페스탈로치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18세기 유럽, 영

화 <레미제라블>을 기억하는가. 가난한 자는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을

파스퇴르? 아니 페스탈로치!

글_윤희윤

기사 ③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페스탈로치를 통해 본 근대교육 _<오마이뉴스 20014.10.15>

▲ <페스탈로치의 생애와 사상> 김정환 씀/ 박

영사 ⓒ박영사

▲ 페스탈로치를 통해 본 근대교육 발제를 하

고 있는 김민수 선생님 ⓒ이명구

Page 2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9

감옥에 있어야 했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아이를

기를 수 없었다. 아이 양육비를 위해선 머리와 생니를 팔

아야 했다. 혁명이 아니고서는 그 비참함을 전복시킬 수

없었던 시대.

페스탈로치가 스위스인이긴 했지만 프랑스인으로 태어났

다 하더라도 그는 <레미제라블> 속 혁명을 보기 전 세상

을 떠났다. 그런 현실에서 페스탈로치는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자식을 버리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때 가정교육을 이야기했다. 서로 물

고 뜯지 않으면 당장 내 먹을 것이 없어지는 판에서 도덕

적 도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단지 먹고 살려

고 기술을 배워 일하며 사는 인간이 아니라 도덕성, 소명

을 가지고 일하며 노동의 기쁨으로 누리라고 이야기했다.

페스탈로치가 이런 현실을 몰랐던 것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더 철저히 현실 속에서 살았다. 인생 대부분은 고

아와 가난한 이들과 살았다. 그들과 함께 살며 실패했고

또 실패했다. 세웠던 고아원이 학교가 농장이 망하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그의 생을 보면, 빛을 찾을 만한 구석이라

고는 하나도 없었다. 평생 가난과 실패와 싸워야 했다.

발제를 맡은 김민수 선생님(새들마을학교)은 철저히 현

실을 살았기에 페스탈로치의 삶과 교육 이론이 어렵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 수탈된 백성으로 사라져 갈 아이들

의 삶을 새로운 삶의 소망과 신앙적 가치로 전환시켜 주

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와 페스탈로치의 만남이

다행이라고 했다.

“페스탈로치를 통해 가난한 아이에게의 교육이 직업교

육에서 지적인 능력,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 윤리

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전인교육으로 변환

된 것이다.

그것이 한번 솟아올랐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세계로 일

파만파 퍼져 나갔다. 우리가 받고 있는 지금의 교육이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것을 계속 외워야 하는 교육이 아니

다. 직관에 따라 인식하고,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공부를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 공교육의 현장은 그렇지 않다. 입시와 경

쟁 속에 정말 페스탈로치의 교육이 구현되고 있는지 우

리에게 고민거리를 준다. 이 현실 속에 어렵고 가난한 환

경 속에서 수탈된 백성으로 사라져 갈 아이들의 삶을 새

로운 삶의 소망과 신앙적 가치로 전환시켜 준 페스탈로

치가 있어 다행이다. 사그라지지 않고 지금 우리의 장에

서 만나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페스탈로치는 교육이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 인류의 발전까지 이르러야 한다

고 했다. 교육을 통해 전인격적으로 도야된 존재, 나만

▲ 레미제라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아이를 기를 수 없었다. 아

이 양육비를 위해선 머리와 생니를 팔아야 했다. ⓒUPI 코리아

▲ 발제를 맡은 새들마을학교 김민수 선생님 ⓒ이명구

Page 2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2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삶을 사는 존재

가 되는 것, 그것이 그가 맺고 싶은 교육의 결말이다. 심

지어 철저히 개인에게 한정될 수밖에 없는 신체의 도야

조차 그에게는 조국 국민들의 삶에 충실히 봉사하기 위

한 것이었다.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조국에 충실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

우선 좋은 부모, 좋은 자식, 좋은 형제,

좋은 이웃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식구를 위해서,

나아가 이웃과 나라를 위해서도 건강해야 한다.

요새를 지키듯 스스로 건강을 지키자.”

_페스탈로치

첫날 강의 주제였던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정

신, 충(忠)의 길’과도 상통한다.(관련 기사 15쪽: 한글창

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자기 한 몸조차 챙기기

힘든 그 비참한 현실 속에서 나를 위한 것이 너를 위한

것이고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그렇게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가난한

자의 구원자, 민중의 목자, 고아의 아버지, 인류의 교육

자, 민중학교의 창설자, 인간, 그리스도인, 시민으로 남

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았다.(페스탈로치 묘비에 적힌 글)

중세와 비교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 교육 현실은 처절하

다. 캄캄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공부의 참의미와 기

쁨을 잃어버린 채 입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 오로지 나

만 위하는 교육 현실 속에서 나만 아는 삶이 다른 이들의

삶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지 무지몽매한 채 타인의 고통

에 둔감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OECD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 말하는 아이들. 그로 인해 파생된

학교 폭력, 성적 비관 자살, 왕따...

첫날 난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기

억을 무겁게 느꼈다.(관련 기사 12쪽: 선생님? 이제 기억

났어요!) 캄캄함 속에 잠시 멈췄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

갈 길이 어디 있을까. 페스탈로치가 걸었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캄캄한 시대 캄캄한 인생을 살았던 페스

탈로치.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묵묵히 걸어가 결국 그 빛을 발견하고 자기

눈앞에 있던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을 선사한 사람. 책

속의 교육 이론이 아니라 그 교육 이론대로 산 사람.

그 삶이, 그 걸음이,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

는 이 사회의 교육에 그리고 그 교육을 만들어 온 우리

어른들에게 도전을 던진다. 언제까지 그렇게 캄캄하다며

멈춰 있을 거냐고.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용감하게 생명의 교육 그 길을 향해 걸어가라고. 그 길

끝에 반드시 빛을 만나게 될 거라고.

▲ 새들마을학교 체육시간 “자신을 위해서뿐

만 아니라 식구를 위해서, 이웃과 나라를 위해

서 요새를 지키듯 건강을 지키자.”(페스탈로

치) ⓒ새들마을학교

▲ 발제 후 모둠 나눔 우리는 페스탈로치를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명구

▲ 발제 후 모둠 나눔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

고, 고민하고, 용감하게 생명의 교육 그 길을

향해 걸어가자. ⓒ이명구

Page 2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21

덴마크 칭찬은 했지만 이민은 가지 말라?

기사 ④ “우리 안에서 덴마크를 만들자”는 오연호 대표 _<오마이뉴스 2014.10.15>

글_이명구

“여러분, 덴마크로 이민 가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룬트비 목사가 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그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 학교도 그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9월 4일부터 ‘행복한 우리 만들기’ 전국 순회 특강을 다니고 있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강연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12월 초까지

총 100군데를 돌아다닐 예정인 오 대표가 지난 17일에는 경기도 안양 비산동

에서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이들 70여 명을 만났다. 교육문화연구학교 네 번째

시간, 오 대표는 ‘행복사회의 비밀, 행복교육–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들고 강단에 섰다.

오연호 대표는 ‘행복사회의 비밀’을 캐내려고 2013년 봄부터 세 차례 덴마크로

날아갔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냈다. 그가 쓴 <우리

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 난 뒤,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

▲ 오연호 대표기자 오연호 대표는 ‘행복

사회의 비밀’을 캐내려고 세 차례 덴마크

로 날아갔고,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책으

로 냈다. ⓒ이명구

Page 2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2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다. 절망하든가, 희망에 차든가. 오 대표는 “절망감을 느

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걸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은 희망을 갖는 것 같다”고 구분했다.

행복한 학교에서 행복한 인생이 시작

북유럽에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나라 덴마크는 UN

이 조사한 행복지수에서 2012년과 2013년 연속으로 1위

를 차지했다. 병원비는 공짜고, 모든 국민에게 주치의가

있다. 대학 등록금도 공짜다. 대학생이 되면 매달 우리

돈으로 약 1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다. 초등학교에는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없다. 실직 후 2년까지는 예전 월

급의 90% 정도까지 생활비를 준다.

오 대표는 덴마크 사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는

다. 그러면 나도 즐겁고 옆 사람도 즐겁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학교’다. 개인에게는 ‘자존감’을

부여하고 친구 관계에서는 ‘더불어 사는 법(연대의식)’

을 가르친다. 공립학교든 사립학교든 대안학교든 추구하

는 바는 같다.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할 뿐이다.

공부를 잘하는 건 여러 가지를 잘하는 것 중의 하나에 불

과하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에게 수학을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라고 권한다. 잘하는 사람을 비교하며 칭찬하지

않으니 못하는 사람의 자존감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더

불어 함께’와 ‘자존감’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학생들은 여유를 가지고 자유롭게 인생을 설계한다. 중학

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부모 곁을 떠나 1년

간 인생학교에 간다. 축구나 음악 등 보통 자신의 취미에

따라서 인생학교를 선택하는데, 좋아하는 것을 만끽하며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스스로 찾는 방법을 배운다. 인생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부쩍 어른스러워진다. 사회성과

독립심이 자연스레 길러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교에 가기 전, 6개월간 성인학교에 가기도 한다. 거기서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다시 점검한다.

덴마크 학생들은 객관식이나 주관식으로 시험 보지 않는

다. 논술로 실력을 검증하는 것도 아니다. 시험은 살아 있

는 말로 한다. 현대사 시험을 본다고 치면, 24개 키워드

를 추첨해서 하루 시간을 주고 다음날 구술시험을 보는

식이다.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

으로 보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행복 비결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데 있습니다.”

학교에서 사람은 평등하다고 배운 대로 택시기사와 의사

가 함께 어울린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해도 고등학교 동

창회에 나가서 위축되지 않는다. 가장 잘사는 자와 가장

못사는 자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70%에 달하는 노조

조직률이 보여 주는 연대의식, 교육비와 의료비가 무료인

든든한 사회 안전망 등이 덴마크 사회를 안정된 사회로

만들기 때문이다.

깨어난 농민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

그렇다면 덴마크 사회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

까. 오 대표는 150년 전에 행복의 씨앗을 뿌렸던 목사이

자 정치가였던 그룬트비를 소개했다. 1864년 덴마크는

왕이 주도한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했다. 그룬트비는 ‘깨

어 있는 농민 되기’ 운동을 벌였다. 살아 있는 교육으로

청년부터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룬트비는 농민이

주도하는 성인 자유학교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농민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 행복한 커플 강연이 시작되기 전, 지금 가장 행복한 두 사람이 나와서

노래했다. 사귄 지 한 달 하고 열일곱 날이 된 커플이다.“아름다운 그대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도 난 두렵지 않아 이 사랑 때문.” ⓒ이명구

Page 2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23

농민들의 고민은 협동조합 운동으로 이어졌다. 함께하면

개인이 하는 것보다 돈이 더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덴마크의 거의 모든 마을에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이들

은 연대의 힘을 몸으로 확인했다. 때마침 황무지를 농지

로 바꾸는 달가스의 국토개간운동도 일어났다. 정부 주

도가 아니라 농민이 주도하는 방식이었다. 개간된 농지

는 가난한 농민에게 싸게 나눠 주었다. 전쟁에서 잃어버

린 땅을 남아 있는 땅 안에서 찾아냈다.

협동조합을 만들며 일어났던 농민은 그대로 머물지 않고

깨어 있는 시민이 되었고, 깨어 있는 시민은 연대하여 당

을 만들었다. 그룬트비의 정신을 받든 이들이 꾸린 당이

지난 100년 중 70년을 집권했다. 그 기간 동안 덴마크의

문화 속에는 그룬트비의 정신이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그렇게 덴마크는 행복한 사회가 되었다.

그대가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면

오연호 대표는 우리 사회를 보며 절망만 하고 있을 게 아

니고 덴마크 같은 행복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

인가 생각하자고 했다.

“지금까지 달려오던 길과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든 이틀이든 열흘이든 두 달이든 잠

깐 멈춰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나, 아이들은 어떻

게 교육했나, 우리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

해 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안의 그

룬트비와 우리 안의 덴마크를 발견하고, 그들을 응원하

고 그들과 함께하고 내가 그들이 되어 봅시다. 그러면 우

리도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과도기를 지나 행복이 문화가 되는 그날까지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참석자들의 눈빛은 더 또

렷해졌다. 9살 자녀를 둔 한 참석자는 자신은 종교가 없

다고 밝히며 고민스레 물었다.

“덴마크 사회가 행복하게 된 데에는 기독교 정신이 강력

한 구심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는 그런 구

심점이 없는 것 같은데 과연 변화가 가능할까요?”

“루터교가 80%인 덴마크는 그룬트비의 발언이 스며들

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

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전제가 덴마크 사회를 형

성하는 데 기여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자유와 평등, 안정과 신뢰, 이웃과

환경 등은 불교냐 기독교냐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가치 아닐까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중

요한 거 같습니다. 또한 우리는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

때문에 어려운 점이 더 많습니다. 분단의 폐해가 너무 큽

니다. 진정한 행복사회로 가기 위해선 분단 문제를 극복

하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연호 대표)

오 대표가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 사회가 지금보다 더 행

복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짚자 또 다른 참석자가 물었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명구

▲ 교육문화연구학교 질의응답 시간 한 참석자는 한국사회에는 강

력한 구심점이 없는 것 같은데 변화가 과연 가능할지를 물었다.

ⓒ이명구

Page 2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2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통일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북한이 봤을 때 남한이

행복해야 하는데, 남한은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

다. 정치나 사회 여러 부분을 봤을 때 서로 신뢰를 못하

는 상황입니다. 시민들이 깨어서 뭔가를 하려고 했을 때

덴마크는 정부가 방해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기득권층이

방해를 많이 합니다. 와해를 시키려 합니다. 그걸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가

능할까요.” (이재호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회원)

이제는 기득권층, 이대로 괜찮다고 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오

대표는 판단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그렇다고 했다. 보

수의 본산이라는 대구의 교육청도 변화를 모색하며 강연

을 요청했다. 오 대표가 순회강연 중에 만난 우리 아이들

의 실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피폐했다. 한 초등학생

이 쓴 메모 내용이다.

“어른들아, 우리는 이렇게 살면 스트레스 안 받는 줄 아냐.

이렇게 살면 우리가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모르니?”

“나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우리 엄마가 살고 있다.”

오 대표는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두

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행인 건 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긍정적인 모델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과 혁신학교가 그 예이다.

경기도에서 혁신학교가 제일 잘 되는 곳은 양평인데, 4명

의 선생님이 즐거운 학교가 될 때까지 양평을 떠나지 않

겠다고 도원결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 학교에서 졸업한

아이들이 양평의 생활 경제 속에 정착하고 나중에는 양

평군수가 이 아이들 속에서 나와야 한다고 봤다. 홍성에

도 이미 그런 흐름이 있다. 홍성의 대안학교인 풀무학교

에서 자란 학생들이 친환경농사도 시작하고 협동조합도

만들고 도서관도 세우며 홍성의 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

다. 이런 방식으로 지방에서 서울을 서서히 물들여 가야

한다고 오 대표는 주장했다.

“지금은 과도기입니다. 혁신학교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문화가 되면, 옆집도 그러고 앞집도 그러고 우리 사회가

다 그러면 괜찮아집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정치의

변화가 맞물려서 가야 되겠지요.”

오 대표는 우리 사회가 자괴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

다고 강조했다. 분단이 되어 있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문

제가 너무 컸기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침묵해야 했지만,

질곡 속에서 이만큼 배고픔을 해결했고 이만큼 민주주의

를 이뤄 왔다고 했다. 오 대표는 “우리 민족의 과제가 만

만치 않지만, 만약 우리가 이를 풀어 나간다면 이 지구상

의 과제를 우리가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오연호 대표와 참석자들의 행복한 전체 사진 ⓒ이명구

Page 2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25

“또 참사가 났네요.”

식사를 하다 말고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전했

다. 지난 10월 17일 ‘행복한 우리 만들기’ 전국 순회 특강

43회가 열리기 1시간 전,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 현장에

서 환풍구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새들마을학교가 12회에 걸쳐 진행하는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세

번째 순서인 오연호의 ‘행복사회의 비밀, 행복교육-우리

도 행복할 수 있을까’ 강의는, 그렇게 사고 소식을 접하

며 시작되었다.

환풍구 추락사고. 이거 처음 듣는 일이다. 나도 가끔 도

심 거리에 솟아올라 있는 환풍구 위에 올라갔다 ‘안 위험

한가?’ 고개 갸우뚱하다 무서운 감에 내려오곤 했었다.

그런데 그 환풍구가 내려앉았다니. 그 위에 섰던 30명

가까운 사람이 20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져 16명이 사망하

고 11명이 중상을 입었다. ‘참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

어나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환풍구 추락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3월, 2009년, 2004년에도 환풍구 추락 사고

로 10대 3명, 40대 1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몰랐다. 그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은 듣지도 못했고, 주의하라는 이야

기도 들어 보지 못했다. 실제 추락 사고가 있었는데 어떻

게 한마디 경고나 주의 조치가 없었단 말인가. 어떻게 이

토록 태만하고 무책임할 수 있는가. 누구든 언제든 올라

갈 수 있는 환풍구였는데 말이다.

덴마크 행복사회의 비밀은? 촘촘한 책임망

오연호 대표가 2013년 봄부터 세 차례 덴마크를 방문해

전국을 돌며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행복 사회의

비밀을 천착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

은 많은 사람들은 우리 현실과 대비해 부러움과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사람이 이룬 것이니 우리도 가능하겠다

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일궈낸 것은

‘행복’ 이전에 ‘철저하고 전폭적으로 책임지는 삶’이었다

는 점에 주목한다.

“목사, 의사, 교사, 부모가 나를 둘러싸고 삶을 촘촘히

받쳐 주고 있습니다.”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의 행복 비밀을 이 표로 압축해 보

였다. 긴밀하고 집요하며 치밀한 책임과 신뢰의 관계망.

그 관계망이 사회 전체를 그물망으로 붙들어 받치고 있

는 것이 바로 덴마크 사회다.

진정한 행복사회로 가려면 분단 극복해야

기사 ⑤ 오연호 대표가 발로 뛰며 전하는 행복사회의 비밀 _<오마이뉴스 2014.10.22>

글_최봉실

▲ 덴마크 사회 촘촘한 책임의 관계망이 한 사람을 떠받친다.

ⓒ오연호

Page 2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2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그들은 초등 과정 9년 내내 한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책임진다. 이건 매번 새로워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서

로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관계는 부정적인 영향으로 서로

를 옭아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보다 교사가 먼

저 나가 떨어질 일이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자세로 동

일한 학생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그들이 9년 담임

제로 교육문화를 정착시켜 온 것은, 새로워지고자 끊임

없이 노력했기에 가능하다.

“교사가 즐거워야 학생들도 즐겁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공부를 해야 학생들을 쉽게 가르칠 수 있고요. 매년 똑같

이 가르친다면 우선 교사가 먼저 즐겁지 않고 지루할 겁

니다. 그러면 학생들도 즐겁지 않겠죠. 세상의 변화를 따

라잡아야 학생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

어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166쪽)

책을 읽은 새들마을학교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와. 9년 동안 같은 담임이면 어떨까요?”

옆에 있던 친구들이 말한다.

“우리도 비슷하잖아.”

“그래. 선생님이 너 지금 3년 동안 만나고 있잖아.”

그동안 이 친구들은 너무도 크게 변했다. 그리고 앞으로

도 계속 변화해 갈 것이다. 그들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진

다는 마음이 없이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푸석한 모

래알처럼 흩어지는 지루한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책임

의식이 덴마크인들의 몸에 밴 것은 어쩌면 이렇게 오랜

세월, 책임 있게 자신을 지켜봐 준 선생님과 함께한 경험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학생들이 등록금 취업 걱정 없이 공부하고, 하고 싶

은 일을 찾게 하는 것은 사회 전체가 학생들을 자녀로 여

겨야 가능한 문화다. 2세대를 국가 전체가 책임지고 있

는 것이다. 이는 국가 공무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이, 일

상 속에서 잘 만나지도 않을 자기 나라의 젊은 청년들을

자기 자식처럼 책임지는 마음이 있어야 마련될 수 있는

문화다.

구중궁궐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을 세종대왕은 저잣거

리 백성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표현하지 못

해, 혹은 생활에 꼭 필요한 윤리나 법의 문자를 읽지 못

해 답답한 마음에 사로잡혔을 그 처지를 헤아렸다. 그래

서 한글 창제를 밀어붙였다.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는 것

같은 그 마음. 덴마크 교육은 바로 그 부모의 책임감으로

▲ 오연호 대표 덴마크의 행복 비밀을 설명하고 있는 오연호 대표

ⓒ이명구

▲ 새들마을학교 학생이 그린 세종대왕. ⓒ이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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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27

교육의 문화를 형성한 경우다. (관련 기사 15쪽: 한글 창

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건강주치의 제도 역시 정말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도록

도우려는 책임을 지닌 의사들이 있을 때 가능한 제도다.

의사가 되어 돈 잘 버는 부자가 되려는 목적에 붙들렸다

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래서 그들 의사 직종은 우리나라처럼 고수입의 대표적

직종이 아니다. 그들은 마을에서 주민과 일상을 수시로

공유하며 건강을 살핀다. 무조건적인 주사나 약처방을

내리기보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으로 건강을 향상시

킬 것을 조언한다. 진정 자신이 맡은 환자들의 건강을 철

저히 자기 책임으로 여기지 않으면 불가능한 문화다.

“25년이나 일하다 보니 3대가 함께 찾아오는 경우도 많

아요. 자연히 그 가족의 건강 내력뿐 아니라 가정환경도

대체로 알고 있죠.” (같은 책, 88쪽)

한 사람의 건강과 삶을 책임지는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

어 있는 것이 그들 사회 행복의 비밀임을 여기서도 확인

한다. 주치의는 최대 1,600명의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것

이 의무이지만 2,300명을 넘어가면 안 된다. 환자에 대

한 서비스 질이 떨어지지 않게 상한선을 정해 둔 것이다.

돈을 벌고 자신의 병원에 들인 의료 기계를 어떻게든 써

먹으려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맡고

있는 환자의 건강한 삶, 거기에만 관심을 두는 것. 자신

이 맡은 책임의 본질을 알고 오직 그것에 철저할 때만 가

능한 문화다.

무엇보다 평범한 덴마크인들은 월급의 36%를 세금으로

기꺼이 사회를 위해 바친다. 내가 100만 원을 벌면 30만

원을 넘게 낸다는 말이다. 고소득자는 50%, 즉 500만 원

을 벌면 250만 원을 사회에 환원한다. 자신의 이익을 따

지기보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그 세금을 집행하는 기관이 믿을 만해

야 한다. 힘들게 세금 냈는데 그걸 허투루 쓰고 있다면

어디 불안하고 못 미더워 세금을 내겠나? 덴마크인들이

이렇게 기꺼이 세금을 내는 게 가능한 이유는, 이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고 실제 국가 구성원들의 삶의 혜택으

로 여실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형성한

것은 행복 이전에 서로를 신뢰하게 만들었던 철저한 책

임 의식이었음을, 구절마다 행간마다 발견한다.

덴마크에서는 150년 전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

고 이웃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라’ 가르쳤던 그룬트

비 목사의 정신 아래 깨어 있는 시민으로 자란 이들이 사

회민주당을 형성했다. 그리고 20세기 내내 제1당의 지위

를 뺏기지 않았다. 창당 시 내세운 평등, 자유, 이웃사랑

의 3대 가치를 국민들의 일상의 현실로 만들어 내는 데

앞장섰다. 중도우파인 벤스트레당 이후 가끔씩 집권을

했지만 사민당이 주도한 사회복지 정책의 필요성과 핵심

정책에는 뜻을 같이했다 한다. 덴마크 행복의 비결은 바

로 자기 나라 사람들의 삶의 실질적인 복지에 대한 철저

한 책임 의식이었다.

덴마크 행복 비밀 제1원리 ‘자유’

강의에서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의 행복 비밀 제1원리로

‘자유’를 들었다. 그는 이 자유란 바로 평등한 문화에서

꽃 피워진 것이라 말했다.

“평등해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평등이 제대로 되니까

눈치 볼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자유로운 거예요.

또 안정이 되어 있으니까 신뢰를 할 수가 있어요. 신뢰하

니까 또 이웃망이 생기더라고. 연결고리가 되어 있는 거

예요. 따라서 우리가 분단이 되어 있는 이 불안의 사회에

서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죠.”

▲ 교육문화연구학교 강의 중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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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평등은 나를 위하는 만큼 타인을 위하는 책임감 없이는 획득할 수 없는

가치다. 덴마크인들이 이 평등의 정신과 가치로 서로 차별을 느끼지 않

고 관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책임감에 바탕한

평등 교육에 가랑비에 옷 젖듯 물들여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구분하고

배제하여 선택하고 버리는 평가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서로 돕고 믿으

며 끝까지 책임지는 교육 정신이 그들의 평등의식을 키워 냈던 것이다.

‘자유’라고 하면, 개인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종종 여긴다. 자유란 ‘스스로 말미암음’이라는 뜻이다. 이는 자기 안에

서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삶을 결정한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겠다. 하

지만 공동의 가치에 대해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이유를 찾고 기

꺼이 동의하는 의미에서의 자유라고도 읽을 수 있다.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전자의 의미로 자

유를 이해한다. 이는 우리가 딛고 있는 억압적이고 불의한 현실에 그 1차

적 책임이 있을 터이고, 언제든 이기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우리의 인간

적 조건에 기인한 것일 수 있겠다.

덴마크가 보여 주는 이 ‘자유’란 서로가 서로를 철저히 책임지고 신뢰

하는 튼튼한 관계망에 근거한 자유였다. 책임과 신뢰의 튼튼한 그물망

속에서 그들은 안전과 편안, 즐거움과 행복함,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자녀의 행복을 바란다면, 먼저 맺고 있는 부모와의 관계, 친구

와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도리와 책임으로 있어야 하는지

부터 가르치라는 말이다. 관계에서 신뢰를 깨뜨리는 일이 무엇이며, 불

신을 형성하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은 자신을 포함해 자신을 둘

러싼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하는 일임을 일깨워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참된 자유란, 자신의 이익을 좇는 데 있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는 의식 속에서 진정으로 아름답고 기쁘게 피어날 수 있

는 것임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부모로부터 자기만 존중받으며 키

워진 자녀는, 안타깝지만 자신이 존중받은 대로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위하면서 부모 자신을 포함한 타인 전체를 배려

하지 않는 바로 그 태도를 배운다는 끔찍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될까

오연호 대표는 참석자들의 열기에 힘입어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무엇보다 첫 번째 질문자의 질문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고뇌하게 했다.

“덴마크가 저런 사회가 된 데에는 기독교가 구심이 되어 준 것 같은데

평등은 나를 위하는 만큼

타인을 위하는 책임감 없이는

획득할 수 없는 가치다.

▲ <내 토끼 어딨어?> 한밤중, 피곤한 아빠를

전혀 고려치 않은 아이를 존중하는 아빠의 모

습 ⓒ<내 토끼 어딨어?> 책 표지

Page 3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29

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종교가 다양하고 저 역시도 기독

교인이 아닌데, 하나가 되어 마음을 모아 가는 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오 대표는 종교도 다양하고 분단까지 되어 있어 더욱 하

나로 마음을 모으기 쉽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먼저 짚었

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치인 평화, 평등,

정의 등에 마음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우리의 정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자유와 평등, 안정

과 신뢰, 이웃과 환경 등은 불교냐 기독교냐를 떠나 기본

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이라 하나가 되기 어려운 점이 더 많지

요. 이 분단 현실이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고 강화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분단을 극복하

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연이어 사고가 터지고 있

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마음을 모으라고. 더 이상 책임

을 방기한 채 살면 안 된다고. 그런 정치와 사회를 방치

하면 안 된다고. 모두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세월호 여

객선에 내가 탔을 수 있고, 저 환기구 위에 내가 올라갔

을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은 지금 온몸으로 우리를 향해 절규하고

있다. 서로를 위하며 서로를 지키겠다는 철저한 책임감

으로, 각자가 있는 장에서 방관자가 아닌 주인으로 서도

록. 그렇게 하나 되기 어려운 우리는 뼈아픈 비극을 겪으

며 하나가 되라는 신호를 받는다.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지금 여기서 철저히 책임지는 존재로 오늘

하루를 사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오연호 대표의 전국 순회 강연은 12월까지 100여 회로

잡혀 있다. 전국을 다닌 후 그는 이번 기획에 참여한 각

지의 기획자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

다. 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까이는 2012년 대선

취재 투어로 전국의 유권자들과 후보들을 만났고, 저서

<새로운 100년>으로 법륜 스님과 전국을 돌며 시민들을

만나고 대담을 진행했다. 각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그 지

역 시민기자들을 만났다. 우리 사회 주요 이슈를 중심으

로 위로부터는 대통령, 아래로는 달동네 할머니까지, 그

리고 중국집 배달원도, 산간 초등학교 초등생들도. 수많

은 사람들을 만나며 특유의 소탈함으로 오랜 친구처럼

만나 기뻐하며 마음을 만나고 뜻을 모두어 왔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라는 그 참석자의

질문에 오연호 대표는 그동안의 줄기찬 만남과 사귐과

토론으로, 그 누구보다도 하나가 되려는 노력으로 이미

답해 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도 이렇게 편견과 차이를 넘어 만남으로 거듭 나아

가면 될 것 같다. 금방 다르다고, 금방 불쾌하다고 이내

마음을 닫고 대화를 중단할 게 아니다. 끝내 하나가 되려

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거기서 신뢰를 쌓으려 노력

하자.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책임을 감당하는 데 서로 힘

이 되어 주고 벗이 되기를 부지런히 힘쓰는 것이다.

▲ 새들마을학교 교사들과 함께 강의 후 함께 담소를 나누는 오연

호 대표 ⓒ이명구

Page 3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3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

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

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 교육법에 들어 있다. 전쟁하고 파괴하고 정복

을 지향한 건국이념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이롭게 함을 통해 나라를

세우는 가치를 담은 것이다.

다른 이를 돕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키고 남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

하다.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 앞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정신과 힘이

요청되었다. 때문에 ‘문’(文)과 함께 ‘무’(武)가 요구되었다.

문무(文武)의 조화, 낭가사상

고구려 때는 ‘선배(仙輩)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선배는 높은 인격을

지닌 자를 가리키는데, 각종 예기의 장기 경쟁에서 선발한다. 가장 뛰

어난 자가 전체 선배들을 통솔하는 수장을 맡았다. 선배제도는 계급과

무관하게 열려 있어서 다양한 계층이 벼슬에 오르는 길이 되기도 했다.

“선배제도의 조의선인은 학문에 힘쓰며 수박과 활쏘기 등의 기예를 익

히고 원근 산수를 탐험하며 시가와 음악을 익히며 공동으로 일처에 숙

식했다. 평시에는 환난 구제를 자임했고, 전시에는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일신을 희생했다.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던 경당에서도 문무가 분

리되지 않았다. 지방 서민의 아들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밤낮으로 독서

와 활쏘기를 익혔다고 전해진다.”

<태조본기>, <구당서 동이 고려조>

고구려의 ‘선배’는 왜 조선의 ‘선비’에게 밀렸을까

기사 ⑥ ‘홍익인간’으로 보는 우리 교육의 발자취 _<오마이뉴스 2014.10.30>

글_이명구

▲ 발제를 듣고 소감을 나누는 참석자들 우리 역사

속에 흘러내려 온 교육의 면면을 살폈다. ⓒ이명구

“살아있는 교육의 전통이 우리 역사 속에 있

다는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그동안 ‘문’에 치

우친 공부를 해 왔습니다. 몸으로 삶으로 익

히고 배워야겠습니다.”

_강한종, 자영업자, 34세

“홍익인간의 깊은 뜻을 다시 되새기며 ‘곧 태

어날 아이의 이름을 ‘김홍익’으로 지을까’라

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끼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착함이 깊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_김덕영, 직장인, 33세

지난 24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4번째 시

간을 마치면서 참석자들이 나눈 소감이다. 충

의 길과 페스탈로치의 삶, 덴마크의 행복을

탐구한 이들이 이번에는 우리 역사 속에 흘

러내려 온 교육의 면면을 살폈다. 발제자 이

동원 교사(새들마을학교)는 홍익인간의 이념

을 통해 우리 교육의 명암을 조명했다.

Page 3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31

신라의 화랑도는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모체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화랑은 서로 도의를 닦고 함께 노래와 음악을

즐기고 산수를 돌며 자연을 즐기고 전쟁을 대비해 지리를

익혔다.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해도 가지 않은 데가 없었다.

이를 통해 그 사람됨이 나쁜지 좋은지를 알아 내어 좋은

사람을 택해서 조정에 천거하게 되었다고 <삼국사기>에

나온다. 육체를 단련하면서 드러나는 사람의 됨됨이, 관

계 안에서 검증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수 있

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꿰뚫어 본 것이다.

백제는 아쉽게도 기록을 찾기 어렵다. 짧게나마 사료를 찾

아보면, <북주서 백제전>에 “백제인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겨 했으며 아울러 고서나 사서 읽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 가운데 뛰어난 자는 글짓기에도 정통하였다”고 나온

다. 백제 역시 문무에 동일하게 무게감을 두고 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문과 무를 중시하는 사상의 흐름을

‘낭가사상’으로 명명하고, 이를 우리 민족 고유의 국풍

(國風)이요 국맥(國脈)으로 봤다.

문으로 편향된 교육과 사대주의자들의 주도권 장악

학문뿐 아니라 육체를 고루 단련시켰던 우리 교육의 전

통은, 삼국 시대를 지나 통일 신라에 이르면서 흐름이 바

뀌었다. 삼국 각축이라는 위기 상황이 해소되면서 화랑

도의 존재 의의가 반감된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형식의 교육 기관인 학교가 등장했다. 당

의 국자감을 축소시켜 놓은 국학이 있었고, 지방 공립학

교로 향학이 있었다. 유교 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역

할을 했다. 인재 등용시험으로 독서삼품과가 있었는데,

필수 도서 목록을 읽고 시험 결과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직위가 주어졌다. 관리 선발 기준이 더 객관화되었다.

고려로 넘어오면서 과거제 선발 중심의 교육제도가 갖춰

졌고, 이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학교에서 길러 과

거를 통해 선발한다’는 게 고려 교육의 기본 정책이었다.

958년 과거제도를 실시하면서 무예 실력을 보던 삼국과

는 달리 학문만 출중하면 관리로 임명됐다. 문무가 함께

이뤄지던 교육은 문으로 치우쳤다. 무신에 대한 멸시도

생겨났다.

관학 기관이었던 국자감과 향교, 학당 등은 시설 면에서

나 교육의 내용 면에서나 유명무실해졌다. 권위 있는 유

학자들은 사학을 세웠다. 그중 시중을 역임했던 최충의

문헌공도 같은 학교는 학문뿐 아니라 선진과의 우정 관

계, 사제 간의 애경과 도의연마 등을 중시했다. 지방에는

서당이나 서원이 생겨났다.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낭가사상은 과거제도에 밀려

힘을 잃어 가다 1135년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의 실패로

주저앉게 된다. 북벌을 주장하던 이들이 자기 안위만을

지키려고 했던 사대주의자와 격돌했고, 여기서 전자인

묘청이 후자인 김부식에게 졌다.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

가 삭감되고 고조선 역사는 신화가 되었다. 신라 위주로

역사가 기술됐다. 사대적이고 보수적인 사상에 홍익인간

의 이념을 담고 있던 선배제도와 국풍파가 패한 것이다.

▲ 우리 교육의 발자취 발제를 맡은 새들마을학교 이동원 선생님.

ⓒ이명구

▲ 발제자 이동원 교사(새들마을학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통해 우리

교육의 명암을 조명했다.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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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맑은 물을 다시 흘려보내려는 이들의 분투

이후로 무는 더 천시됐다. 선배 정신은 완전히 쇠퇴했다.

선배라는 말은 ‘무’의 역량이 탈색된 ‘선비’라는 말로 둔

갑했다.

‘조선에 들어서 성균관에서는 쉬는 날에 사냥을 나가거

나 검술을 연마하는 자는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매를 맞

기도 했습니다. 입시 위주, 성적 위주의 학문 교육만을

강조한 것이지요.’ (<태학지> 권5학령 참조)

일부는 이러한 움직임을 거부했다. 사학이 일어났고 실

학으로 이어졌다. 실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학문

의 무기력함에 반발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진리를 탐구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학풍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일제의 필요에 따라 주체적으로 사

고하는 방법을 거세당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일본에

‘충량한 국민’으로 만들고자 노력했고, 우리 민족의 사상

을 일본화하거나 말살했다.

이를 거부한 움직임이 있었다. 일제 식민 통치 시기, 독

립운동가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무관학교를 세워 문무

교육을 이어 갔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는

교육을 삶으로 연결시킨 이상적인 농촌공동체를 만들어

조선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 문화, 신앙의 산실이 되려

했다. 지식과 덕과 체력을 균형 있게 훈련하는 걸 중요하

게 여겼다. 1919년 이후로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다. 일제

의 탄압으로 결국 오산학교는 총독부의 인가를 받았고,

그 결과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오산의 정신은 여기서 사그라지지 않고 홍성의

풀무학교로 계승되었다. 오산학교가 제도권 교육 기관으

로 편입되는 것을 비판했던 이승훈 선생의 조카 손자 이

찬갑 선생이 1958년 풀무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풀무는

학교와 지역 공동체 운동을 통해 더불어 사는 꿈을 실현

하려는 이들을 길러 냈다. 역시 지덕체 교육을 중시했다.

주목해서 볼 것은 몸의 교육, 즉 노동을 강조한 것이다.

과거 외세의 위협을 막아야 했던 조건에서 무예를 단련

했다면, 한국전쟁 후 삶의 기반을 복구해야 했던 상황에

서 농촌의 현장에서 실제로 살아낼 수 있는 기술을 연마

하는 데 풀무는 주력했다.

또 풀무는 생명의 교육을 추구했다. 풀무를 토대로 홍성

에서 국내 최초 유기농 벼농사가 시작됐다. 토종 종자,

마을 도서관, 지역 화폐 등 각종 협동조합운동이 일어났

다. 공동육아나 대안 어린이집 등 지금 형태의 우리나라

대안교육이 활발해질 수 있던 것도 풀무학교를 만든 이

들이 한 세대 동안 부지런히 맑은 물을 흘려보냈기 때문

에 가능한 일이었다.

홍익인간 이념의 회복, 문무가 조화로운 교육

발제자 이동원 교사는 신채호 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의

관점을 바탕으로 묘청의 서경전쟁 패배가 우리 교육에서

홍익인간의 이념이 흐릿하게 되어 버린 가장 큰 원인이

라고 전했다. 사대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했고, 다른 사

람을 이롭게 하려는 교육 목적은 자기 자신의 출세와 안

위를 위한 공부에 밀려났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요. 교육문화연

구학교 첫 시간(관련 기사 15쪽: 한글 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에 참된 교육은 본질을 만나게 하는 것

이라고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본질이라는 것은 홍익인

간의 이념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를 이롭

게 하려는 것을 배우는 것,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너를

▲ 지난여름, 풀무학교 공동설립자인 밝맑 이찬갑 선생을 기념해 만들

어진 홍성 홍동 밝맑도서관을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이 방문했다.

ⓒ새들마을학교

Page 3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33

지킬 수 있는 만남, 이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게 요청되

는 것 같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모둠별로 느낀 점을 나눴다.

그중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쓴 글을 소개한다.

“예로부터 교육은 지덕체가 함께 어우러졌다. 신라의 화

랑제도, 고구려의 조의선배제도가 그러했다. 지식을 배

우며 동시에 무술을 연마하며 육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길러 내기

에 적합한 교육이었다. 생각할 줄 알며 남을 도울 줄 알

게 하는 교육이다. 건장한 몸이 있어야 비로소 홍익인간

의 이념에 맞는 것이다.

그 전통이 고려 때 와서 깨졌다. 나라가 안일하게 굴러가

자 무신은 더 이상 귀족 대우를 받기 힘들었다. 문신의

나라가 되었다. 과거 시험이 생겼고, 그 결과 교육열은

더욱 심해졌다. 학교에서도 오직 글공부만을 가르쳤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에서는 심지어 여가 활동으로

무예를 일삼는 자는 내쫓거나 곤장을 때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현재와 다를 것이 없다. 모두가 하나의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체육이란 과목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험에 맞춰 이론 수업으로 바뀌어 간다. 혹

은 아예 자습시간으로 바뀐다. 덕은 어떤가? 과연 도덕

책을, 윤리를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가르칠까? 이런 세

태에서 당연히 홍익인간은 길러질 수 없다.

지금의 근대 교육을 일으켰던 페스탈로치도 애초 지덕체

는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18쪽 : 파스퇴르?

아니, 페스탈로치!) 홍익인간과 뿌리가 맞닿아 있다. 모

든 것의 근원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 근원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바로 역사고 수학이며 과학이고 윤

리며 체육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두근두근하다.”(새

들마을학교 구한글 학생)

▲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친구들이 비오는 날 체조와 달리기 수업 시간에 명상 수련을 하는 모습.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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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위기 극복 교육이 필요하다

기사 ⑦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공부하고 _<오마이뉴스 2014.10.29>

글_최봉실

현실 인식에 따른 교육의 목적

서태지 9집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는 어린 소녀와

마을 주민들이 그들의 행복한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향해 맞서 싸우러 나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서태지는

자신의 딸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거친 면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

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찌 들려주고

싶지 않을까만은, 아름답다는 것이 거친 세상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님을 서태지는 <크리스말로윈>을 통해

드러낸다.

새들마을학교가 진행하는 ‘고뇌와 축제로 펼쳐 가는 교

육문화연구학교’는 교육의 목적이 ‘충의 만남의 교육’이

라는 화두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학교 교육이 ‘그 순

간 행복한 것’만을 향해 있어서는 곤란하다 지적했다. 세

상은 함께 살아가는 전체 구성원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일이 항존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본질을 직면하는 충의

만남을 인도하고 돕고 번성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

이렇게 만난 충의 만남들이 연대해 전체의 안위를 위협

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관련 기사 15쪽 : 한글창제

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

그리고 지난 24일 4번째 만남에서 함께 살펴본 ‘우리 교

육의 발자취’에서는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을 구체적인

우리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우리 역사는 안주・사대・

경쟁 세력과, 안위・주체・통일지향 세력이 대립해 왔

다. 전자는 공동체 안위를 위협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안

주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사대주의에 근거해 상대를 적대

시하고 분열을 조장했고, 후자는 전체 공동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사태를 직시하며 공동체 전체를 지켜 내기 위

해 주체성을 가지고 철저히 대비할 것으로 주장하며 내

적으로 하나가 되려 했다. 그리고 위협이 존재하는 현실

인식을 외면했을 때 나라는 위기에 처하곤 했다.

발제 후 나눔 시간은 바로 이러한 역사와 현실에서 우리

교육의 목표는 어디쯤 있어 왔는지를 짚어 보는 계기였

다. 우리 교육의 발자취는 공동체 외적 위협에 대해서는

안주하면서 내부 경쟁에 매몰되게 하거나, 비록 미세한

물줄기였지만 공동체 외적 위협을 생생히 직시하고 그것

에 대비하여 시간과 지역을 뛰어넘어 하나 될 것을 가르

치는 교육이 팽팽히 맞서 왔다. 지금도 혼돈되어 있는 두

방향성 속에서 앞으로의 우리 교육은 무엇을 선택할 것

인가를 분명히 결정하고 나아가야 함을 헤아려 볼 수 있

었다.▲ 삶을 지키러 싸움에 나선 마을 사람들 서태지 9집 중 ‘크리스

말로윈’뮤직비디오 영상 캡쳐 ⓒ서태지

Page 3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35

나라를 지킨 교육, 나라를 잃은 교육

우리는 교육이 나라를 커다란 위협에서 거듭 구했던 훌

륭한 역사가 있다. 고조선, 고구려, 신라로 이어지는 교

육 전통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평상시

무를 겸비하고 거기에 지성과 덕성 교육이 함께 어우러

져 있었다. 이 정신과 역량이 있었기에 고구려는 70년이

나 이어진 중국 수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고

구려는 밖으로 위협 세력에 대비하며 안으로 하나 되는

교육에 힘썼고,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번번이 다윗

의 승리를 낳는 쾌거를 기록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작은 나라였고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지만,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당나라

의 야욕을 막아 냈다. 이는 삼국의 역사적 정황과 당나

라 주변 정세도 영향이 있었지만, 신라 내적으로 그 역량

을 감당할 자질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었다. 그 중심에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계승한 화랑도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삼국 유민들이 신라와 힘을 합쳐 당

나라에 맞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국은 결정적인 순

간에 아(我)와 비아(非我)를 분별했으며, 평상시 강인한

능력을 겸비함을 통해 힘을 합해 외부의 위협 세력을 물

리쳤다. 고조선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 선배의 교육 정

신은 삼국 전체에 공히 자리잡았던 교육 문화였다. (관

련 기사 38쪽 : 사대주의 버리고 선배와 함께)

그러나 나라를 위기에서 지켜 내고 안으로 하나로 통일

되는 교육이 주류 교육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시점은 안

타깝게도 한반도 역사에 있어 고조선 이후 명실공히 최

초 통일국가라 할 수 있는 고려에서였다. 마침내 통일을

이뤄 낸 한민족은 그것이 세상 다였다고 생각해서일까.

이제 이대로 천년만년 갈 거라 생각해서일까. 한반도 땅

에서 고조선 이후 가장 큰 나라를 누리게 된 고려 권문세

가들은 자신이 앉은 자리가 세상 권세를 다 쥔 자리처럼

여겨졌던 것인지 모르겠다. 안일함이 빚은 비극일까. 아

니 그 안일함에서 맞본 권력욕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의 통치를 책임 맡은 이들은 나라 내부

에서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며 외세의 침략 야

욕에 무감했다. 군신관계를 요구해 오는 금나라에 대해

정벌을 외쳤던 묘청의 난은 사대주의자 김부식 일파에

의해 저지되었고 그때부터 한국 역사의 주류 권력은 사

대주의자의 손으로 아직도 회귀하고 있다. 그때부터 나

라의 주류 교육은 나라를 지키고 안으로 하나 되는 교육

에서 변질되어 외부적으로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소에

안일하고 내부적으로 우리끼리 경쟁하고 죽고 죽이는 공

부를 조장하는 교육으로 굳어져 갔다.

하지만 고려에서의 이 중요한 역사적, 교육사적 전환은

고려를 세운 왕건의 간곡한 당부를 정면으로 외면한 걸

음이요 결과였다. 후삼국 전체를 아우르는 덕망과 탁월

한 정치 전략으로 통일 국가를 일구어 낸 왕건은 결코

권세와 물질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훈요10조를 통해

“이웃에 강폭한 나라가 있으면 편안한 때에도 위급을 잊

어서는 안 되며 ... 국가를 가진 자는 항상 무사한 때를

경계할 것”이며, “무일(無逸)(방심하지 말라)을 써서 붙

이고 출입할 때마다 보고 살펴라”고 후사들에게 당부했

다. 왕건 이후 고려의 주요 권력가들은 정확히 이 왕건의

당부와 정반대의 걸음을 걸었다. 나라를 외세로부터 지

켜 낼 무인을 종 취급하며 멸시함으로써 하나로 힘을 뭉

쳐 외세의 침입을 막아 내야 하는 내적 힘을 분열시켰다.

외세의 위협에 무감한 채 병기를 농기구로 전환해 버렸

다. 또한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그 기준으로 관리를

뽑기 위한 교육이 주가 되었으며 그 교육은 나라가 결국

몽골의 지배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성계가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나

라를 구한 공으로 백성들로부터 명망을 얻었음에도 그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을 거부하고 사대했다. 함

께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던 최영 장군을 배반했으며

유학을 공부하며 나라를 걱정했던 벗들을 죽이고 유교의

나라를 건설하며 대국을 섬기는 소국을 자임한 것이다.

이후 조선의 권세가들은 유교 성리학을 중심으로 이념

싸움을 벌였고, 학문을 핑계로 자리다툼을 벌였다. 백성

의 삶은 피폐해져 가고 마침내 두 번의 전란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사대부들은 내부 분열과

싸움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조선의 주류 교육이 전

체 공동체의 삶을 위태롭게 하거나 위태로워지는 현실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나라의 주류 교육이 내부적으로 우리끼리 물고

Page 3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3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뜯으면서도 외부의 위협에는 무대책인 경향성을 지금까

지도 목도하고 있다. 안전이 문제시될 때 나라의 권력을

잡은 이들은 언제나 ‘괜찮다, 별 문제 없다’라는 말뿐이

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철저히 외면하고 고통받는 자

를 오히려 더욱 짓밟는다. 이렇듯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경쟁의 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본래부터 있어 왔던 영

구적인 우리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어느 시

점에서 새롭게 노정된 경향성임을 기억해야겠다.

변질된 교육사에서 흐르는 맑은 물

그러한 교육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한국사 초기에 형성되

었던 맑은 물을 흘려보내려는 교육은 때로는 맹렬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그 숨결을 이어 왔다. 피와 배반의 역사

로 시작된 조선. 능력을 억압과 동반하는 본(태조-태종-

세조)을 보였던 조선 초기 역사를 만회라도 하듯, 세종

대왕은 상처받고 외면당한 백성들의 얼을 세워 주기 위

해 문자를 창제했다.

백성을 위해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성리학을 붙들

고 글자 하나로 죽이고 대결하던 성리학자들과 사대부들

은 두 번의 전란으로 파괴된 백성의 삶을 구조해 주지 못

했다. 하지만 바로 그 환란과 전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

으며 자라난 실학자들은 백성들의 삶을 소생시키기 위해

생을 바쳐 헌신하며 실제 삶과 연결된 공부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 주었다.

마침내 일제에 나라가 빼앗기자 이 땅 백성의 현실에 가

슴 아파하며 생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독립운동

가들은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이 살아 있는 고대 역사를

복원하려 했다. 정신을 올바로 고양하고 문무를 겸비하

여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긍심을 가지고 일제로

부터 우리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다.

서슬퍼런 독재 시대를 뚫고 참교육을 외치며 정의

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자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회

의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신)이 일어났으며, 정

▲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2014년 여름들살이로 찾은 고려 이색・이곡 선생의 문원서원 시우에서. ⓒ새들마을학교

Page 3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37

치에서의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했던 흐름은 교육과

일상의 삶으로 파고들어 마을과 삶이 총체적으로 어

우러질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는 대안교육의 노력으

로 확산되었다.

현재 우리 주류 교육의 본질인 경쟁 교육은 우리끼리

경쟁하며 관계가 파괴되는 동안 국가적으로 반드시 커

다란 위협에 노출되게 할 것이다. 우리의 주류 교육 어

디에서도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삶과 생존의 위협 앞에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에너지 위기, 식량 위

기, 관계 파괴, 자아의 존엄성 상실, 무분별한 폭력과

성적 문화로 인한 정신과 관계의 파괴, 안전 불감증에

의한 일상적 위기, 밖에서 들어오는 전염병 등에 대해

서 어떠한 대대적인 위기 관리도 찾아볼 수 없다. 다

만 국가가 적을 향해서나 할 법한데도 국민들의 일거

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뉴스만 자꾸만 들려올 뿐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작전 통

제권은 미국이 싫다고 하는데도 가져 달라고 애원하며

대신 무기들을 구입하면서까지 미국 의회를 설득하고

달래기까지 한다.

현재 우리 정부가 하고 있는 위기 관리는 북한에 대한

경계, 그리고 자국 국민들에 대한 경계. 그 두 가지 외

에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을 우리는 내부적인 분열과

자기 파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소외시

키는 정책은 반드시 국가적 큰 위기에 봉착하고 말 것

이다. 그 고통은 또다시 이 땅의 구성원들이 고스란히

다 짊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황에서 교육은 어떤 내용

을 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 교육의 상류, 홍익인간 정신

이 모든 한국사의 질곡과 교육의 변질에도 불구하고 한

반도 역사의 시작이 ‘홍익인간’의 이념에 바탕한 것이었

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다. 광복 후 나라를 새

롭게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도 바로 이 홍익인간 이념을

우리의 교육 이념으로 천명했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긴 하나 결코 편협하

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닌 인류 공영의 뜻

으로 민주주의 기본 정신과 완전히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

애정신, 유교의 인,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 인류의 이상이다.” (문교부, 1949년)

항존하는 위협과 분열이 근원적으로 극복된 세상, 즉, 널

리 인간이 이롭게 되는 세상을 지향했다는 것은 끊임없

이 불안과 소외로 삶의 안위를 위협받는 이 현실에 큰 희

망과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새들마을학교는 “너에게도 좋은 것과 나에게도 좋은 것

이 대립하지 않으며 그 결론에 이르는 것을 포기하지 말

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정과 신뢰가 쌓여야 한다”고

늘 가르친다. 어떤 가르침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

는 홍익인간의 정신 그 손바닥 안이 아닌가. 우리가 그

힘으로 결국 연대하고 구현하는 삶으로 교육한다면, 우

리의 일상의 삶을 위협하는 많은 도전들로부터 우리의

삶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이쯤되면 우리의 교육 내용

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 모둠별 나눔 시간 ‘우리 교육의 발자취’발제를 듣고 나누고 있는 참석자들. ⓒ이명구

Page 4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3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사대주의 버리고 선배들과 함께

기사 ⑧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따라서 _<오마이뉴스 2014.10.28>

글_윤희윤

“‘오! 대박. 우리 가족 식사 완전 간만.’ 식당에서 밥을 먹

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며 들어오는 거에요. 그러더

니 가족 네 명이 각자 스마트폰을 보며 식사를 하더라고

요.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는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우리 관계가 얼마나 깨어졌는지 잘 보여 주고 있지요.”

이 일뿐 아니다. 지하철을 타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한다. 손은 부지런히 페이스북 친구와

소통하고 있지만 주변 일에는 관심이 없다. 10월 24일 새

들마을학교에서 연 교육문화연구학교 4번째 시간.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찾아서’ 발제를 한 새들마을학교 이동

원 교사는 홍익인간 이념의 상실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은 우리나라가 나만 잘 먹고 잘 사

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이롭게 하고자 세워졌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2조에서도 우리 교육

이념을 홍익인간에 두고 있다.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는

이를 길러 내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적이란 말이다. 하지

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옆 친구를 이롭게

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이 바로 점수로 환원되어 앞날이

결정되기에 오로지 내 점수만 높이기 위해 애를 써야 한

다. 승자는 단 1명뿐이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친구의

책을 숨기는 일은 귀엽다. 이젠 친구도 성적에 따라 사귄

다. 반만년의 역사에 빛나는 홍익인간은 어디 갔나.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이 서경천도 실패를 우리 역사

일천 년 이래 제1의 사건이라 했다. 자주파였던 묘청이

사대파였던 김부식에 패함으로 우리 역사가 사대주의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대주의를 ‘주체

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태

도’라 했다. 지난 23일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이 또 연기

됐다. 기한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다.

큰 것에 붙어 있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거다. 사

대주의다.

큰 것에 붙어살면 안전한데 사대주의가 무슨 문제인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실리적 외교란다. 조선시대 중국을

숭상하여 따르고 지금 미국을 숭상하여 따르는 것처럼

큰 나라를 섬기는 것에 사대주의를 한정하면 그렇게 생

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대주의는 단지 큰 나라를 섬

기는 것이 아니다. 힘에 대한 숭배 그 자체가 사대주의

다. 그렇기에 사대주의는 사람의 정신에 깃들고 나라의

문화를 바꾼다. 우리 것이 있는 자체로 큰 것을 숭상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기반이 큰 것에 맞춰 흔들린다.

▲ 함께 먹는 도시락 봄나들이를 가서 함께 도시락을 먹

었다. 함께 밥 먹는 건 언제나 좋다. ⓒ새들마을학교

Page 4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39

그래서 신채호 선생이 묘청의 실패를 그렇게 안타깝게

여긴 것이다. 묘청의 서경 천도 실패는 우리 교육 문화를

바꿔 버렸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

을 변질시켰다. 관계 중심의 우리 교육을 파괴했다.

고려 초반까지 우리 교육의 핵심에는 선배제도가 있었

다. 선배(仙輩).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고상한 사람의

무리다. 신라의 화랑도가 대표적이다. 일제에 의해 화랑

도가 유희와 향락만을 일삼는 집단처럼 왜곡되었지만,

화랑도는 김유신, 관창처럼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

성하는 이들을 길러 내는 집단이었다. 화랑도에서는 서

로 도의를 닦고 함께 거하며 본이 되는 사람을 선배로 뽑

아 그 걸음을 따랐다. 선배제도는 신라뿐 아니라 고조선,

고구려, 백제까지 우리 교육의 공통분모였다.

멀리서 배울 것을 찾지 않았다. 내 눈앞의 사람, 나와 일

상을 같이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웠다. 선배로부터 배운

화랑은 나라에 충성하고(사군이충), 부모에 효도하고(사

친이효), 벗을 나와 하나로 여기고(교우이신), 겨레를 위

해 생명을 바치고(임전무퇴),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살

생유택). 관계의 도와 책임을 알았다. 고구려는 선배를

통한 배움으로 중국으로부터 삼국을 보호했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우리나라 통일의 첫 역사를 열었다.

김부식은 화랑 정신을 버렸다. 관계와 삶에 기반을 둔 배

움을 버리고 사대를 택했다. 그리고 고려 광종 때 과거제

를 시행하며 우리 교육은 ‘문’, 글자 중심의 입시 교육으

로 변질되었다. 앞선 이로부터의 살아 있는 가르침 대신

중국에서 건너온 책, 죽은 가르침을 외우기 시작했다. 유

학의 본질은 관계의 도다. 하지만 사대주의 안에서 유학

의 본질이 아닌 대국의 유학을 받아들였다. 과거제도 자

체는 필요할 수 있다. 입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의 검증은 버리고 글자의 우열로만 인

재를 뽑게 되며 문제가 생겼다. 학교는 책상머리에 앉아

입시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친구는 경쟁자가 되

었다. 국가에 대한 굳은 신앙으로 생사를 가벼이 여겼으

며, 세속의 일과 세상 인정에 구애받지 않고 몸을 공익에

잘 바쳤으며, 평일의 노고를 통하여 신체를 잘 단련하고,

전란에 나아가는 데 용감하였던 선배들(<고려공도>(서

긍))이 사라졌다.

그것이 지금의 교육 뿌리까지 닿아 있다. 우리 교육은 고

지론과 문자적 권위의 숭상으로 병들어 있다. 본성이 착

한 우리 민족은 마음 깊이 홍익인간을 품고 있다. 아이들

에게 물어보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도, 법조인이 되

고 싶은 이유도,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은 이유도,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은 이유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부자가 되어야 하고 서민

을 섬기기 위해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한다. 큰 인물이 되

어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자는 것이다. 홍익인간이

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 내 친

구의 어려움에는 눈을 감으라고 한다. 그저 책에 나와 있

는 내용을 외우고 문제를 풀고 또 푼다. 배움은 관계가

아니라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글로 연애를 배웠다고 농

을 할 정도로 관계와 만남은 소홀해졌다. 지금 내 옆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선배제도는 홍익인간을 가장 잘 구현하기 위해 고조선부

▲ 이동원 교사 새들마을학교 이동원 교사는 관계가 깨어진 교육 현

실의 원인을 홍익인간 이념의 상실에서 찾았다. ⓒ이명구

▲ 새들마을학교 여름들살이 서로 도의를 닦고 함께 거하며 본이

되는 사람을 선배로 뽑아 그 걸음을 따랐다.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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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터 내려오던 교육 방식이었다. 지금 내 옆의 관계를 책임

지고 이롭게 하는 것이 인간 세계 전체를 책임지고 이롭

게 하는 것과 같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내

옆의 관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고, 그 안에서 배웠던 이

들이 나라의 운명을 맡아 책임졌다. 고구려의 선배제도

인 조의선인에 대해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대해 다음

과 같이 기록하였다.

“공동으로 한곳에서 숙식(宿食)을 같이하며, 평소에는

환난(患難)의 구제, 성곽이나 도로 등의 수축(修築)을

자임(自任)하고, 난시(亂時)에는 전장에 나아가 죽는 것

을 영광으로 알아, 공익(公益)을 위하여 자기 한 몸을 희

생하는 것이 선배들이었다.”

관계의 단절, 힘에 대한 숭배는 문자에 권위를 부여했

다. 내 삶과 떨어진 이름난 이의 가르침에는 권위를 부여

하고 배움으로 받아들이면서 내 옆에 있는 이의 가르침

은 가볍게 여긴다. 9월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가 한국

을 방문했다. 피케티 열풍이 불고 있다. 그의 책 <21세기

자본>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그 여파가 한국

에도 미친 것이다. 2011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

인가>가 100만 부를 돌파했을 때와 비슷하다. 피케티에

대한 열풍도 마이클 샌델에 대한 열풍도 우리 사회가 얼

마나 정의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

열풍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정의에 대

한 이야기는 무수히 쏟아지는데 정의에 대한 갈망은 더

욱 강해진다.

각종 심리학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도 같은 이유

가 아닐까. 이제 인생에 대한 어떤 물음이 생기면 책을

찾는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대신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고, 늦은 밤 언니에게 하던 연애

상담 대신 연애에 관한 책을 읽는다. 촌부에 불과한 어머

니의 회초리가 삶에 깊은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던 것과

다르게 책장에 책은 느는데 삶은 바뀌지 않는다. 조선시

대 지배층들의 배움이 부족하여 우리나라를 일제에 넘긴

게 아니다. 그들은 사서삼경에 능통하다 못해 줄줄 외웠

다. 지금 우리도 영어를 제 나랏말처럼 공부한다. 원하기

만 한다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산다. 배움이

부족하여 삶이 안 바뀌는 게 아니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대학만 가면 모든 배움이 날아가는

걸 모두들 경험한다.

지금 우리 교육에 가장 시급한 일은 사대주의를 버리는

일이 아닐까. 관계가 아닌 문자에 권위를 부여하고, 작은

내 옆 사람이 아닌 큰 힘, 큰 가르침을 숭상하는 사대주

의. 그리고 관계 안에서의 배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몸소

삶으로 물음에 답하는 선배들과의 관계를 통해 홍익인간

의 정신을 다시 기억하는 것. 작고 소소한 만남이 전 세

계를 만나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을 책임지는 것이 전 세계

를 책임지는 것과 같다는 배움.

발제를 듣고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새겨진 내용을 함께

나누었다. 언젠가 이름 없이 사라질 작고 소소한 나눔이

지만 지금 내 삶을 바꿀 힘 있는 나눔이었다.

“홍익인간의 개념처럼 너와 나의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사를 보면 그 노력과 시도가 계속 있

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곳곳에 작은 학교에서의 교육이

그 대안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

습니다.”(박미정, 32세)

“교육이 만남이라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분단

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는 분단을 넘어 만나야 할 대상

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상을 넘어 전 인류를 이롭게 하

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 분열을 넘어서는 만남의 교육이 우리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안송수, 28세)

▲ 김장 후 청소하는 아이들 내 옆의 관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

이 세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새들마을학교

Page 4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41

모둠나눔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따라서 _2014.10.24

교육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다 자식 낳고 키우고 있거나

키울 테니까요 ̂ ^

최수미 _향초사업가

예전에 공부는 자신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친

구가 자신은 나누기 위해 공부한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공부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누려는 자와 가지려는 자의 위치 중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

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나누는 곳에서는 교육과 배움이 이어진다고 봅니

다. 나누는 위치에 있을 때 실질적인 만남이 이뤄질 것입니다.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분들이

세미나에 많이 오시는 것이

신기해요

양권진 _새들마을학교 16세

페스탈로치 선생님이 강조했던 지

덕체가 우리 교육에서도 중요했

던 것을 보면서 어디나 본질이 같

고 생각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지

덕체 중 하나가 무너졌을 때 홍익

인간의 정신이 막히는 것을 보면서

본질을 잘 붙잡아야겠다 생각합니

다. 그러나 홍익인간의 정신을 교

육의 주요 이념으로 세울 정도로

중요했다면 국가적으로 펼쳤어야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단의 현실은 서로의 이념을 양보

하지 않지만 좋은 것들이 통하다

보면 본질로 이어지리라 봅니다.

권경아 _치위생사

우리나라의 이미지 하면 약함과 줏

대 없는 모습이었는데, 유교・불교

・기독교의 정신을 아우르는 홍익

인간이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

라는 것을 아니 자부심이 생깁니

다. 이 정신이 역사 가운데서 어떻

게 막혔는지를 잊지 않고 잘 붙잡

고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것이 매

우 중요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막혀

있는 분단의 현실을 뚫어 만날 수

있는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조동휘 _새들마을학교 교사

역사를 잃어버렸을 때 정신을 잊어

버릴 수 있음을 보며 역사의 중요성

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살리는 정

신에는 이를 해하는 무리가 항상 있

는 듯합니다. 선배에 대해 처음 들었

는데 지금 꼭 필요한 자세라 생각합

니다. 무와 문을 단련하는 것은 곧 자

신을 다스리는 힘이기에 지금 필요한

단련이 무엇인지 살펴야겠습니다.

장미화 _학부모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공교육 현장

에서의 답답을 느낍니다.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보며 지금의 교육현장에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교육이 바꿔야 된다고 생각은 하면

서 사실 스스로 포기하고 못 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교육한다

며 관계를 닫게 되는 경험을 한 적도

있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최성안 _학부모

공교육 현장에서 홍익인간의 교육

이념과 달리 관계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안타깝게 생각

됩니다. 또한 만나야 할 것을 만나

기 위해서는 내가 익숙한 대로 머

물러 있지 않고 새로 알아야 되는

것 앞에서 나를 깨우쳐야 함을 생

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건국이념・교육이념,

홍익인간?!!

Page 4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4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양하늘 _새들마을학교 11세

참된 교육은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옳은 것을 만나

는 것. 생명을 만나게 하는 것. 관계

를 만나게 하는 것. 교육이 우리로

생명과의 관계를 더 가능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큰 나라에 힘을 빌리는

사례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종우 _회사원

덴마크의 예를 보며 교육과 사회가

선순환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홍익인간

의 정신으로 살펴본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배우며 분열이 아니라 통합

으로 가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였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친구들과의 만

남이 가장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공부가 즐거웠던 시절을 생각해 보

면 이 공부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

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

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반면 취업

준비만을 위해 공부를 할 때는 참

으로 힘들었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참된 교육이 회복된다

면 모두가 즐거운 학교가 될 것 같

습니다.

권민지 _새들마을학교 교사

‘충의 길’에서 시작하여 페스탈로치, 오연호 대표님의 강의, 그리고 오늘

의 강의까지 강의의 내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널리 인

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따르면 내 옆의 너를 넘어서, 우리

모두, 전 세계까지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한 나라와 한 문화 안에

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선조들이 '홍익인간'을 생각했다는 것이 놀라

웠습니다. 참된 교육은 결국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첫

날 강의와도 연결(지식 자체 그대로를 만나는 것)되는 내용인데, 참지식을

만나는 것이 모두 잘 이루어졌을 때 참교육이 이루어지겠다 생각됩니다.

박애영 _초등학교 교사

새들마을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찾으

려 애쓰며 공동체성을 실천하려 노

력한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공교

육 교사인데 대한민국 교육법 1조가

홍익인간임이 놀라웠습니다. 선생님

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교육이 수단

으로 전락한 공교육의 암울한 현실

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

지만 역사에 있었던 교육의 본질적

인 뿌리가 대단히 탄탄하며 희망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학

교 한 학급의 학훈이 ‘배워서 남 주

자’인데 학교 현장에서도 희망을 좀

가져볼 수 있음에 희망이 됩니다.

조우영 _시민단체 활동가

학창시절에 학교는 더 낳은 미래를

위한 인내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

학생들을 보면 스트레스가 예전보

다 심해 보입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단지 출세를 위한 수단이 되었을 때

그 공간에 있는 학생들의 고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교육

은 출세를 위한 수단을 넘어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덴마

크의 사례를 보며 교육과 문화 그리

고 삶이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함께 사는 것이 당연

하고 익숙해져야 올바른 교육이 세

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은선 _회사원

교육이라는 커다란 물의 흐름이 있

습니다. 홍익인간이라는 맑은 물이

물길이 꺾이며 물이 흐려진 것이 우

리 교육의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흐리다 못해 고여서 썩고 있

습니다. 그 가운데도 오산학교, 풀

무학교 등 참교육을 찾으려는 노력

들이 있었습니다. 맑은 물을 만나고

자 하고 또 흘려보내는 이들의 노력

과 손길들에 감사하며 나 또한 그런

물들을 잘 만나고 또 흘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양의진 _새들마을학교 14세

교육의 본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가 세워

져도 수단이 될 때가 많은데 무엇을

위해서 배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요. 요즘은 학생들은 대학을 위해서

대학생은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게

허무합니다. 저는 행복을 위해서 배

우는 것 같아요.

©박한나

Page 4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43

김은영 _상담심리학 대학원생

강의를 들으며 교육은 학교만의 주제

가 아니라 우리 삶의 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품게 되면서 교

육을 하는 자와 받는 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교육이 곧 삶

이라는 마음은 더욱 커집니다. 홍익인

간을 이어가는 교육과 홍익인간을 거

스르는 교육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에서 시대와 역사의 분명한 요청 앞에

홍익인간의 삶과 교육으로 초대받아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김덕영 _시민단체 활동가

교육이라는 주제가 곧 삶의 문제,

나의 문제로 다가오는 시간이었습

니다. 홍익인간의 깊은 뜻을 다시

되새기며 아이의 이름을 ‘김홍익’으

로 지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

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끼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착함이 깊은 울림이 되었

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시대의 요

청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문무

를 겸비하는 도야의 길을 걸어야겠

습니다. 지금 여기의 삶이 바로 그

현장이라고 생각입니다.

최한솔 _시민단체 활동가

“역사는 지나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 위에 서 있다. 지금 우리가 어

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과거의 사건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발제를 들으

며 작년에 교회에서 함께 읽었던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보는 한국역

사>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세월호 참사 등 가슴 아

픈 사건들이 너무 많은데, 이 사건들은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정신이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

습니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본질만이 진리임을 기억하여 잘 분별해야겠습니다.

이밀알 _새들마을학교 교사

좋은 뜻으로 지어진 학교도 그 본 뜻

을 잃을 수 있고 수많은 외부의 역동

들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봅

니다. “왜 좋은 뜻이 변질되는 걸까

요?” 교육의 본질과 목적이 변질되

어 바뀝니다. 배움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데 수단이 됩니다. 아이들에

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생각하며

아이들이 무엇을 만나면 좋을까 고민

이 됩니다. 교육의 본질을 찾는 것을

놓치지 않고 찾아가고 싶습니다.

장미진 _연구간호사

홍익인간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의 정신이 교육의 참된 본질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고미숙

선생님의 임꺽정 이야기가 생각납니

다.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던 임꺽정

이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과 공감하

고 배우며 성장한 임꺽정은 진정한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삶의 현장에

서 참된 교육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

다. 관계에서 서로 이롭게 할 수 있

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을 깨

닫습니다.

김별 _출산 준비중

모든 이를 이롭게 하고자 하였던

조상들의 흐름과 맥에 지금을 돌

파할 힌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

다. 매순간 노력하여 익숙한 의식

을 뒤집어 내지 않으면 안 되지

만, 모든 이가 평등하고 서로 이

롭게 하기 위하여 믿는 마음을 교

육의 유산으로 후세대에게 물려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

음을 모으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어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희망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지영

Page 4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4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박한나 _어린이집 교사

첫 시간 ‘교육이 만남이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

다. 결국엔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강

의 들으면서는 힘을 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참된 교

육을 위해 맑은 물을 흘려보내는 이들이 존재했고 지

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육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 책임인 것 같습니다. 분단된 현실 속에

서 참된 만남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고운 _새들마을학교 14세

마지막에 동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분단된 현실에서 진실된 교육이 가능한가?’ 질문을 던

지셨는데, 지금도 우리처럼, 그 답을 찾아가려는 사람

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단된 현실에서

진실된 교육이 가능한가?'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을 마음에 새기며 진실된 교육에 임

해야겠습니다.

안송수 _교육공무원

분열과 단절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

니다. 문무가 통합된 선배정신이

언제인가부터 흐려지게 되고, 나라

는 분단이 되었습니다. 근대를 지

나며 초래된 도시와 농촌의 단절,

사람 간의 단절, 계층 간 단절이 어

떻게 다시 통합되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란 관점에서 교육이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박귀임 _유아교사

얼마 전 EBS에서 방영된 서당편

을 보았습니다. 서당은 결국 과거

제도 때문에 사라지게 됐다는 것

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현재

의 우리 교육 문화와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안교육현

장에 있으면서 갖고 가야 할 교육

이념을 끝까지 가져가는 게 중요한

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임성은 _첼로 연주자, 음악교사

우리나라 역사를 교육의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 흥미로웠고 의미가 있

었습니다. 우리가 꿈꾸고, 지금 우

리의 걸음에서 지키려 하고 이루어

가려는 꿈이 승자의 기록으로 기록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우리 안에 뿌리 박힌 사대주

의는 거두어 내고 선조들이 꿈꿨던

자신감을 가져야겠고 운동도 열심

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동원

Page 4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45

10남매 중 9번째,

애정결핍 이 아이가 달라진 힘

글_이명구

기사 ⑨ 자유와 신뢰의 교육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_<오마이뉴스 2014.11.11>

문제아는 없다

알바니 프리스쿨은 3살에서 15살까지 아이들 60여 명이 다니는 대안학교

다.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폭넓

은 인간관계를 맺는다. 학교는 아이를 쉽게 문제아로 판단하지 않는다.

크리스는 무마사토라는 다섯 살 여자아이의 예를 든다.

무마사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정적인 행동을 한다. 열 명의

형제 가운데 아홉째인 무마사토는 거의 매일 총격전이 벌어지는 슬럼가

에서 자랐다. 늘 애정에 굶주려 있는 이 아이는 때를 가리지 않고 분노를

폭발했고,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사와의 일대일 접촉

에 집착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날카로운 성향의 이 무마사토를 ‘문제’가 있는 아이로

보지 않았다. 참고 견디며 관대하게 지켜봤다. 여전히 거칠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무마사토는 부모와 떨어져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다른 아이

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크리스는 아이의 타고난 생명력을 해치

는 일 없이 자유롭게 아이를 만난다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또 한 가지, 프리스쿨이 주목하는 것은 아이들의 힘을 믿는 것이다. 아이

들은 배움에 대한 타고난 의지가 있는데, 두려움 앞에서 이 의지는 질식

해 버린다고 크리스는 말한다. 부모가 가진 두려움은 아이에게 전달된다.

부모가 지닌 공포나 의심, 불안 등의 감정은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두려

움을 심는다. 두려움을 품은 아이들은 경직되고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

게 된다. 아이의 두뇌는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하지 못하고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해독제는 신뢰다. 신뢰는 미지의 것과 연관되어 있고

미지의 것은 당연히 위험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책임을

열아홉 살 청년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는

1973년 봄, 뉴욕 슬럼가에 있는 알바니 프

리스쿨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띄운다. 교육적 이상주의에 불타던

크리스는 그해 늦가을, 후에 아내가 된 벳

지와 이 학교를 찾았고, 그 뒤로 40여 년

을 이곳에 머무른다. 그는 아이들을 만나면

서 몸으로 체득한 지혜를 글로 썼다. 크리

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지난 7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5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크리스가 쓴 <두려움

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함께 읽

었다. 1장부터 7장까지 읽고 미국의 대안학

교 알바니 프리스쿨의 사례를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또 어

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

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 공양희 옮김 / 도서출

판 민들레 ⓒ민들레

Page 4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4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전폭적인 믿음을 보여 줄 때

훨씬 빨리 또 쉽게 배우고, 그 배움은 특정한 기간 안에

끝나지 않고 평생을 두고 이어진다. 프리스쿨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살아 있는 증

거가 되어 주고 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141~142쪽)

나의 자유가 너의 자유를 방해한다면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프리스쿨이 아이들을 신뢰

하고 잠재력을 끝까지 믿어 주는 모습에 공감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큰 위

로를 받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 참석자는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강압하는 형태의 공교육, 입시를 위해 한 줄 세

우기를 강요받아 온 자신의 경험 때문에 자유와 신뢰를

강조하는 프리스쿨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생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있는 한 선생님은 아

이들을 한 명 한 명 깊이 사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는 배움의

기폭제를 두려움으로 붙잡을 것인가, 신뢰로 부여잡을

것인가를 구분하는 게 진정한 배움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서 중요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프리스쿨의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의

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었다.

‘프리스쿨은 자유를 강조하는데, 한 친구의 자유를 보장

해 주려다가 다른 친구들의 자유가 침해될 경우는 어떻

게 할 것인가.’

‘자유만 강조한다면 교사는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

을까. 어디까지 자유를 주고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지 않는가. 자유를 보장해 주되, 배움의 과정

에서 교사의 개입은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해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열린도시

연구소 새 들 대표)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의 철학

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게 필요하

다고 답했다. 영국의 억압에서 자유를 쟁취한 미국의 역

사적 배경에서 자유와 개인주의는 미국인들의 뼛속 깊이

배인 중심 가치다. 하지만 미국의 공립 학교가 이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획일적, 억압적 교육으

로 치닫게 된 데에 대한 반작용으로 프리스쿨에서는 이

자유를 더욱 제대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런데 책을 보다 보면 크리스의 생각이 변화해 가는 것

을 볼 수 있다. 자유를 강조하던 그는 후에 “세월이 흐르

면서 때로는 다루기 어려운 아이에게 우리 학교가 너만

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줄 필요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최 교장은 “크리스는 무조건 자

기 맘대로 하려는 아이를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고 있었

다. 한 아이를 끝까지 제대로 만나려고 했던 그는, 결국

학교는 한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위한 것으로 달

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고 전했다.

“어떤 경우든 반항적인 수업 거부자들이 집중과 주의력

이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방해하지 못하도

록 하는 것은 인습적인 학교 교육으로부터 당분간의 피

난처를 제공해 주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내부에서 소

용돌이치는 분노와 혼란으로 가득 찬 아이들에게 배움이

얼마큼 즐겁고 신나는 것인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공

간을 제공해 주는 일 역시 중요하다.” (<두려움과 배움

은 함께 춤출 수 없다> 113쪽)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진짜 자유는 내 주장만이 관

철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몸담은 관계

속에서 얼마나 책임감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사랑

▲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 ⓒ이명구

Page 4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47

으로 임하고 있는가를 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

해 귀를 기울이는 게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책임감을 갖

고 성숙한 인격을 쌓는 것이 진짜 자유입니다.”

최봉실 교장의 말이다. 마음대로 행동하던 아이들과, 아

이들의 선택에 1차적으로 교육의 권위를 둔 크리스는 야

외 오두막 교육 장소인 ‘레인보우 캠프’ 경험을 통해 새

로운 교육의 방향을 경험한다. 이곳은 어려움을 참아 내

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조절하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장소였다. 또 어려움을 참고 어떤 것을 지속

적으로 해 나가는 훈련을 통해 책임감을 몸에 익히는 경

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권위와 자유의 이중주

또 최 교장은 교사의 권위 개입과 학생의 자유를 이분법

으로 구분하는 것을 경계했다. 사실 권위와 자유는 분리

된 것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서로 갈등이 생겼을 때나 어른들이 서로 갈등

을 겪을 때, 그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일까를 분별하는 데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한 권위

가 존중받지 못하면 구성원 모두가 고통을 겪게 되지요.

그 상황에서 분명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무엇이

본질인지 분별하고 끝까지 찾아내려고 하면, 모두가 연

결되어 있고 우리가 본질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

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결국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15쪽: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그것

을 깨달았을 때 아이들은 진정한 권위의 도움을 받아 비

로소 온전히 자유를 경험하게 되지요. 참된 권위와 자유

를 함께 경험하면 이를 분리하지 않게 됩니다.”

최 교장은 권위는 교사이기 때문에 무조건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권위는 교사가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때 비로소 확보되는 것이라고 했다. 갈등 상황이 생

기거나 토론이 잘 안 이뤄질 때는 서로가 자신의 이익에

만 파묻혀 있거나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생각하는 경우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모두를 고려했을 때는 답이 나

오기 마련이다. 권위는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에

게서 나온다. 그 역할을 교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끝으로, 최 교장은 한 아이의 리듬에 맞게 교육하는 것

은 그 존재를 둘러싼 모든 관계를 고려하는 것과 동시에

가야 한다고 했다. 평시에는 각자의 속도에 맞게 가르치

고 배우게 되지만, 때로는 각자의 속도와 상관없이 동시

에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충분히 함께

한 걸음을 걸어 낼 수 있다. 최 교장은 이 사실을 간과해

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배려할 때

그 아이를 연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크리스

의 말대로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믿고 가야 할 바를 분

별해 가르칠 때, 아이들은 거뜬히 그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 최봉실 교장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의 철학적 배경을 고려하

면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이명구

▲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이 전체 토론하는 모습. ⓒ이명구

Page 5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4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자기 중심성 강한 아이들,

배움도 두려워한다

글_이동원

기사 ⑩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의 무마사토를 보며 _<오마이뉴스 2014.11.13>

나는 선생님이다. 안양 비산동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초중고 통합 교과과정인 새들마을학교에서 23명의 아이들과 함

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무색해지고 친구 관계가 파괴되어 가는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는 참된 문화와 교육을 소망하며 선생님이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늘 변화가 일어난다. 선생님으로 보낸 2년의 시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변화 앞에 서야 했다. 학생들뿐 아니

라 선생님도 끊임없이 변화의 요청을 받게 된다. 오래도록 나쁘게 굳어진 자신의 삶을 옳게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의 결실이라

고 했을 때 우리 학교는 충실하게 열매를 맺고 있다.

다만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서로의 삶을 면밀히 살피고 함께 살고자 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옳은 변화의 길로 요청한다. 이것

이 우리 학교의 문화이다. 서로 경쟁하고 헐뜯고 내리깎는 것이 아닌 서로를 사랑하고 돕고 살리는 문화다. 이런 문화에서는

실로 놀라운 일들이 쉽게 일어난다. 배움이 가능하다. 변화가 일어난다.

▲ 2014년 새들마을학교 여름들살이,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셋째 날 충남 서천의 문헌서원에서. ⓒ새들마을학교

Page 5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49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

새들마을학교에서는 참교육을 고민하고 지혜를 나누고

자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를 열었

다. 다섯 번째 시간은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

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자리였다. 책을 읽으며 가

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양한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

며 그들의 고유성과 자유를 지켜 주기 위해 노력했던 교

사들의 모습이다.

토론하는 자리에서도 무마사토를 만났던 선생님들의

노력이 주로 이야기되었다. 나는 이 내용을 새들마을

학교 교사의 경험을 통해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다시

이야기해 보려 한다.

무마사토의 아버지는 일 년에 한두 번 잠깐 아이들을 보

러 오는 형편이었다. 어머니는 유능한 여성이었지만, 결

핍과 빈곤 속에서 열 명이나 되는 자녀를 어렵게 키워야

했다. 무마사토는 그중 아홉째였는데 진정한 인간관계가

부족한 가운데 자랐기에 언제나 관심을 끌려고 부정적인

행동을 했다.

일단 분노가 폭발하게 되면 자신의 에너지를 스스로 조

절할 수 없고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악을 쓰고 화를 내거나

혹은 손톱으로 할퀴거나 입으로 물어뜯었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그 아이를 봤다면 대번 주의력결핍장애와

행동과다인 ADHD로 진단했을 것이다.

책의 저자인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는 그것이 미리 짜인

표준 속에 아이들을 맞추고자 하는 사회요구적 진단이라

고 일축하고 무마사토는 독특한 발전 궤도를 가지고 있

는 친구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

하는 것을 아이 고유의 모습이 약간 뒤틀린 것이라 본다.

아이의 고유성과 자유 그리고 아이의 독특한 발전 시간

표를 참고 견디며 관대하게 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

한다. 때문에 아이에게 필요한 적절한 교육은 그 안에 넘

치는 분노와 에너지를 강압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건

강하게 소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처럼 크

리스는 주도면밀한 관찰로 아이의 고유성과 자유를 확립

시켜 주고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방법으로 아이들

을 만나러 간다.

“책을 보면서 크리스가 무마사토를 만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거기서 한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선

생님의 열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사람에 대한 믿

음과 사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참석자의 말이다. 한국의 특수한 교육적 상황 속에서

자란 참석자들에게 크리스가 무마사토를 만나는 모습은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참신한 교육 방식으로 인식됐

다. 강압과 경쟁, 두려움과 입시의 압박 속에서 자유, 고

유성, 아이의 속도라는 말은 포성 속에 피어난 한 줄기

꽃과 같이 다가온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고 살아가기

그런데 이렇게 한 아이의 자유 실현과 고유성을 키워 주

는 것만을 획일적으로 가져 가게 될 때 모순이 발생한다.

한 아이의 자유와 또 다른 아이의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

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

라 관계 맺고 살아가고 있으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존

재이다. 저자인 크리스 역시 후에 그 문제에 직면하게 된

다. 또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의 시간표를 존중해 주는 것, 고유성을 인정해 주

는 것,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

다. 혹 제가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봅

▲ 교육문화연구학교 모둠별 토론 모습. ⓒ이명구

Page 5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5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니다. 빼앗긴 저만의 고유성은 무엇일까요? 저는 남들보

다 도태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었습니다. ‘그 힘으

로 늘 배우다가 문득 이렇게 살아서 행복할까?’라는 생

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관계가 상실된 채로 배움이 된

다는 것이 결국 두려움을 일으키고 배움의 본질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한 아이를 향한 깊은 애정과 사랑, 그리고 아이의 고

유한 모습 속에 들어 있는 창조적 아름다움을 믿는 행

위로서의 크리스의 방법은 탁월하다. 그러나 크리스

는 철저히 미국의 자유주의적 철학에 기반하여 아이를

만나고 있다고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은 지적한다.

(관련 기사 45쪽 : 10남매 중 9번째, 애정결핍 이 아이

가 달라진 힘)

미국의 자유주의적 철학이 만들어 낸 개인의 존엄과 자

유라는 가치는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맹점이 있다는 것

이다. 내가 소중하고 나의 자유가 지켜지고 나의 고유성

만이 소중해야 하는 그 기치 아래 철저하게 타인이 배제

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무마사토 역시 본인이 내

키거나 호기심이 일 때는 친구들과 곧잘 놀고 교육 과정

의 참여도가 좋았지만, 본인이 내키지 않는 순간 자기 하

고 싶은 대로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개인의 존엄과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는 지점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 개인의 존

엄과 자유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존엄과 자유도 동일하

게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 존

중받아서는 안 되고 타인을 인식하고 타인에 대한 감수

성을 가지게 하는 교육이 또한 필요하다. 자기를 둘러싸

고 있는 모든 관계와 상황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는 것을 알려 주지 않으면 그만큼 타인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훈육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체벌의 의미로 이해되지만

참된 훈육이란 몸을 단련시키고, 자기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게 하는 것. 이를 위해 때론 하기

싫어도 참고 해 내도록 도와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

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

이러한 훈육은 전자의 깊은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관찰

하고 자유를 지켜주는 교육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아

이를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기반으로 아이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균형 있게,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모둠에 참여했던 한 이는 균형 있게 아이를 교

육하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꿈꿨다.

“저는 어릴 적 굉장히 체제순응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

이 들면서도 이 자유분방함도 내가 수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길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있습니다. 결국 내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려면 내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줘야 하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충돌 없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문화

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자유와 존엄이

침해되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향한 존중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문화,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너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 너와 내가 서로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문

화가 있어야 총체적이며 유기적이며 두 가지가 동시다발

적으로 일어나는 살아 있는 교육이 가능하리라 본다.

그것이 없이 한쪽으로만 치우칠 때 아이는 두려움으로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잃거나 혹은 타인을 배려할 줄 모

르는 이기적인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관계가 확보되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한 모둠

참여자의 말이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전체 토론 모습. ⓒ이명구

Page 5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51

“저도 어릴 적 쉽게 분노하고 꾹 참고 폭발하는 성향의

아이였습니다. 쉽게 포기되지 않는 공격성이 결국 관계

안에서 해결될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함께 있는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

는 것이 이질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문화, 경쟁하고 깎아

내리는 문화가 아닌 돕고 상생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우

리의 생각보다 아이들의 생명력은 강하다. 그리고 선하

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모두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자기 중심성에 굳어진 친구들

아이들을 가르치며 발견하게 된 것은 아이들 사이에 건

강하고 선한 문화가 중심을 잡고 있을 때 그릇되고 이기

적인 문화에 익숙한 친구들이 기꺼이 변화의 길로 나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중심성에 굳어

진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거듭 타인을 생각하게 하는 문

화가 낯설고 힘들 수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 이

문화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

깨닫게 된다.

배움은 철저하게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

런 문화는 두려움이 이길 수 없는 깊은 생명의 빛과 같

다. 함께 걸어 주고, 돕고, 배우고 배워 주는 관계가 있

기 때문에 두려움이 들어올 틈이 없다. 두려움을 이기는

관계가 있기에 배움의 속도도 빠르다.

“옳지 못한 행동, 즉 타인에 대해 무감한 행동은 즉각 교

정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바른 관계와 문화가 형성

되어 있어야만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을 잘 만날

수 있고 배움에도 잘 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새들마을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친구의 이야기다. 우

리를 지배하고 있는 두려움, 그리고 두려움이 자아내

는 공격성이 상쇄될 수 있는 관계가 허락될 때만이 참

교육은 가능하다. 학교에 처음 오는 친구들이 배움 앞

에 머뭇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 억누르고 있

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친구는 어떻게 생각할까?”, “저

친구가 내 수준을 보고 비웃지 않을까?”, “나는 저 친구

보다 못하는데 어쩌지?”

서로 돕고 상생하는 문화가 익숙해진 친구들은 아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하며 내

가 못하는 그것을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고 참배움 앞

에 서고자 한다. 그러나 경쟁이 익숙하고 서로 깔고 뭉개

는 것이 익숙한 친구들은 두려움에 잠식되어 배움 앞에

머뭇거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 지지 않기 위해 공격적,

폭력적이 되거나 수동적으로 위축되거나 한다. 그만큼

문화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용납되고 사랑받는 경험을 하는 것, 그리고 동일하

게 내게 다가오는 타인을 용납하고 사랑해 보는 경험이

참된 배움이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관계가 내게 두려

움이 아닌 행복과 즐거움이 되어 참된 배움의 길을 걷는

데 힘이 되어 준다.

나와 타인, 자유와 질서, 홀로서기와 연대하기가 균형 있

게 이루어지는 문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참교육이 대한민

국 사회에 가득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학교

친구들과 행복하지만 뜨겁고 치열하게 만나 간다. 나는

선생님이다.

▲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친구들이 산책 중 찍은 사진. ⓒ새들마을학교

Page 5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5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여기 한 아기가 있다. 편의상 X라 이름하자.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엄마

는 직장으로 돌아가고 X는 보육원에 맡겨진다. 맞벌이 부부인 아빠와

엄마는 경제적 압박과 노동이 가져다주는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린다. X

와 함께하는 시간은 고작 퇴근한 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저녁 시간뿐

이다. 가을철과 겨울철이 되면 X는 자주 귓병을 앓는다. 엄마는 아픈 아

기를 맡길 만한 사람이 없고, 그럴 때마다 일을 못 하게 된다.

엄마 아빠의 로맨틱한 출발은 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부부 싸움이

늘어간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자 일시적으로 마찰은 완화된다. 새로

태어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결국 X가 다섯 살

이 되기도 전에 엄마 아빠는 갈라선다.

X는 다섯 살이 되는 해 근처 유치원에 들어간다. 학년 중간쯤 이르자 담

임교사는 X가 모든 수업 시간에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해가 끝나갈 무렵 X는 초기 천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성적과 행동 발달에 대한 염려는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이내 옮겨진다.

알바니 프리스쿨의 교장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쓴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20세기 말 미국 어

린이의 판에 박힌 일상을 보여 주는 초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X의 가족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갈 관계망이 없었다. 크리스는 어

린이들의 실존의 위기는 공동체의 상실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잘라 말

한다. 그는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것인데, 인간의

탐욕과 경제 논리 때문에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크리스는 자신의 책에서 종교, 인종, 계급, 여성과 남성 등 아이들을 둘

러싼 문화 속에서 교육이 회복해야 할 것은 공동체라고 짚는다. 함께 모

여 함께 버티며 공동의 목표를 성취해 내는 과정에서 각자가 만나게 되

X의 부모에게

촘촘한 공동체가 있었다면?

글_이명구

기사 ⑪ 고유성과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 _<오마이뉴스 2014.11.18>

▲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

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 공양희 옮김 / 도서출판

민들레 ⓒ민들레

Page 5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53

는 저항을 기꺼이 극복해 가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공동체에 필요하다

고, 특히 교육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4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6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교육과

공동체에 대한 크리스의 의견을 놓고,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

을지 고민했다. 참석자들은 X의 사례가, 우리 현실에도 예외가 아니라

는 데 공감했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나눴다. 내 옆의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하기를 갈

망했지만,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환경 속에서 고립되고 단절되

어 답답함을 느껴 왔다고 했다.

고유성과 관계성이 파괴된 현실

이전 시간, 참석자들은 진정한 자유는 나만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만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자유와 권위는 분리된 게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거라고도 했

다.(관련 기사 45쪽 : 10남매 중 9번째, 애정결핍 이 아이가 달라진 힘)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 대부분은 개인

의 고유성과 타인과의 관계성을 파괴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새들마

을학교 최봉실 교장(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은 관계성이 극도로 파

괴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가 세월호 사건이라고 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사

실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른들의 말이 믿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는 것

은 두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기쁘게 서로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관계

가 되어야 하는데, 어른들의 말을 믿을 수 없고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

다며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는 게 사는 길이 되어 버린 겁니다. 이 얼마

나 비극적이고 슬픈 일입니까.”

그는 관계성이 파괴된 현실에서는 개인의 고유성도 발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의 고유성이 진정으로 꽃피우려면 사랑과 신뢰의 기반 위

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한 존재의 고유성은 발현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최 교장은 강조했다.

크리스가 프리스쿨에서 아이의 천성을 강조한 것을 미국의 교육사적 맥

락에서도 짚어 보았다. 다양한 인종과 계급 배경 속에서 인종 차별과 계

급 차별을 없애고 동일한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려는 시도가 19세

기 미국의 보통학교 운동이었다.

▲ 참석자들은 교육과 공동체에 대한 크리스의 의견

을 놓고,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

했다. ⓒ이명구

개인의 고유성이

진정으로 꽃피우려면

사랑과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Page 5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5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 계층으로 획일화시키

는 교육이 되고 말았다. 모두를 위하려는 교육은 그 시대 특정인들의 사

회적 이념과 체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본질을 잃어버리

고 제도의 틀에 끼워 맞추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교육은 언제나 다시 한

시대 제도와 이념에 복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최봉실 교장은 이런 맥

락에서 아이의 천성을 강조하는 크리스의 교육은 혁명적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아이의 천성을 강조한 것은 사실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맥이 맞닿아 있다. (관련 기사 38쪽 : 사대주의 버리고 선배들과 함께)

개인의 고유성을 발현시킨다는 말과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말은

표현은 다르지만 사실 같은 말이다. 다만 개인의 고유성을 강조한 전자

의 표현은 개인주의적 사상으로 흐르기 쉽지만, 후자의 표현인 홍익인

간은 관계성을 놓치지 않고 있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인류가 지향할 수

있는 참된 교육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을 분별하고 분노하라”

그렇다면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처참한 현실을 우리

는 어떻게 바꿔 내야 하는 것일까. 최 교장은 우선 현실을 냉철하게 분

별하고 분노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얼마나 부정적인 환경과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면 기사 옆에 계속 선정적인 이미지가 뜹니다. 우

리 학교 아이들에게 기사를 읽으라고 하기가 민망합니다. 아무리 진보

적인 신문이라도 이러한 구조를 탈피하기가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입니

다. 이를 극복하려면 독자가 돈을 많이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발적으로 구독료를 내는 운동을 벌이는 건 어떨까요. 부

정적인 문화 속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싸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지적한 것은 자존감을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일・

독재 시대를 겪으며 자존감을 박탈당해 왔다.(관련 기사 30쪽 : 고구려

의 ‘선배’는 왜 조선의 ‘선비’에게 밀렸을까) 최 교장은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만 제대로 배워도 자부심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남북 분단의 현실

속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진실을 가리고 분단 유지를 통해 불안을

조장한다.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이 현실은 역사를 복원하고

회복하는 것으로 극복해야 한다. 우리 안에 이미 이 부정적 현실을 극복

할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는 건 먼 곳에서 찾을 게 아니다. 지금 나의 삶의 현실에서

봉착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부터 시작해 갈 수 있다. 아이를 가르치는

▲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6번째 시간.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이명구

교육은 언제나

다시 한 시대 제도와

이념에 복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Page 5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55

문제, 가정을 꾸리는 문제, 친구와의 갈등, 직장에서의 문제 등을 해결

할 수 있는 열쇠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결해 가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쌓일 때, 본질을 분별하고 어떻게 문화를 바꿔

가야 할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최 교장은 강조했다.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부터 공의를 세워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

의가 만연한 사회에 무감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가 세워

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죄가 합당하게 물어지지 않는 현실들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최 교장은 나부터 철저히 공의로운 삶을

살아 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관계 속에서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것,

아이들에게는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 주고 돌이킬 수 있

게 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진실해지지 않고, 진실이 바로 서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정치인들과 대통령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까. 소용없다고 하는 포기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 안에서, 형제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학교에서부터 공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 앞에

고개를 숙이고 함께 기쁨에 이르는 훈련을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

게 공의를 세워 가는 투철한 정신과 실천하는 삶의 기운으로 불의한 정

치인들을 압박해 가야 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라고 말입니다.”

끝으로, 최 교장은 인격적인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고스란히 따랐고, 극단적으로 물질과 쾌락에 탐닉하

는 문화를 방치하고 있다. 천박한 인격들이 발생했다. 경비원에게 모욕

적인 말을 거듭해 결국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고, 해서는 안 될

말들을 너무도 쉽게 댓글로 쏟아 내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인

격 자체가 파괴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참된 인문학 교육이 중요하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알아 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

기 추구를 할 때 다른 이를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를 깨닫고,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서

로를 소중히 여기는 기쁨을 누리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그 기반 위에

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어떤 삶을 걸어갈 것인지 정해 가는 것이다. 인격

적 성숙함의 기반 없이 아이들을 만나려고 하고 진로를 정하려고 해 봤

자 답은 찾아지지 않을 거라고 최 교장은 말을 맺었다. ▲ 최봉실 교장은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 일상에서

공의를 세워 가야 한다고 했다. ⓒ이명구

우리 자신 안에서,

형제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학교에서부터

공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 앞에 고개를 숙이고

함께 기쁨에 이르는 훈련을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Page 5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5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20대 싱글인 내가

교육 최전방에 뛰어든 이유

글_최한솔

기사 ⑫ 나의 오늘이 우리 아이들의 희망이다 _<오마이뉴스 2014.11.20>

교육이라고 하면 흔히 선생님과 학생만의 문제라고 떠올

리기 쉽다. 그 영역을 조금 더 확장시키면, 부모와 자녀

정도 역시 포함될 수 있겠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교육과

는 무관한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는 올해로 3년이

되었고, 미혼 여성인데다가 NGO 단체에서 디자인 업무

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여름 즈음이었다.

대안적 삶을 꿈꾸며 함께 모여 사는 마을로 이사하며 어린

이집 선생님, 대안학교 선생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매일

아이들을 마주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라는 아이들의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뿐이랴. 바로바로 영향을 받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흡

수성부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는 역동성

까지 아이들의 생명력은 끝이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이 뿜어 내는 무한한 생명의 기운이 나에게까지

뻗친다는 것이다. 가슴이 벅찼다. 나도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에서 진행하는, ‘고

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

을 찾아서’ 소식을 들었다. 생명의 교육이라는 말에 마음

이 동했다.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고 싶었다. 설레는 마

음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교

육의 장에 뛰어드는 것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겼

다. 나는 아직 20대 미혼 여성이니까! 하지만 교육문화

연구학교를 거듭할수록 내가 누구보다 교육의 최전방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대 미혼여성도 교육 문제에 무관하지 않다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님

을 만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것

만도 벅찬데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현실.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육아를 남편 눈치 보며 혼

자 도맡아야 하는 현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피곤

한 하루 탓에 아이가 넘어지기만 해도 소리 지르며 혼내

게 되는 현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부모도, 교사

도 아니지만 공감하게 된다.

내가 일하는 NGO 단체에는 두 분의 ‘아빠’가 있다. 우

선 이제 갓 100일이 넘은 아들을 둔 아들바보 아빠가 한

명 있다. 그리고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눈에 넣어

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의 아빠가 또 한 명 있다. 연말이

다가오는 요즘, 우리 단체는 야근이 잦은 탓에 주말을 손

꼽아 기다린다. 헌데 주말이 지나도 두 분의 얼굴에는 피

곤이 가시지 않는다. 평일 내내 육아를 하느라 미뤄 둔

집안일을 하고 아빠를 기다린 아이들과 놀아 주다 보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란다.

▲ 아이들은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모듬북 공연을 하

는 새들마을학교 학생들.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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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57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일을 줄여야 한

다. 회사에서는 그것이 불가하다. 회사를 그만두면 경

제적으로 아이 기르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몸을

두 개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어쩔 수 없지 뭐. 더 열심히 해야지”뿐이다. 이처럼 교

육은 삶의 한 부분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사회적 구

조와 문화,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지 않는 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고,

나의 일상생활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모두가 가르치고, 모두에게서 배운다

지난 14일에 진행된 교육문화연구학교 6번째 시간에는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두려움은 배움과 함께 춤출

수 없다>의 8장부터 14장까지를 읽고 함께 나누는 시간

을 가졌다. 이 책에 나오는 프리스쿨의 미술시간 이야기

가 인상적이었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선생님인 미시는 이젤과 스케치북을 챙겨 들고 조용한 구

석자리를 찾아 앉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자기를

그려 달라며 모여든다. 그러면 미시는 모델이 된 아이를

그려 낸다.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아이들로서는 자신이 그

려진다는 경험, 또 자신의 이미지가 미시의 스케치북 위에

서서히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은 가히 매혹적이

다. 미시는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계속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육과정과 다른 점은 가르침이 일

방적으로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시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미시는 그리는 일을 좋아하고, 그녀의 즐거움은

확산되어 교실을 가득 채운다. 3일째쯤 되면 미시가 모

델이 되어 있다. 모델을 했던 아이가 이제는 미시를 그리

는 것이다. 그 수업이 끝나 갈 무렵이면 교실은 다른 아

이의 모습을 그리거나 자기 모습을 그리는 아이들로 가

득 차게 된다.

이처럼 프리스쿨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부모와 자녀, 그

리고 어른의 역할이 고정되지 않았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모두가 가르치고 모두

에게서 배운다. 심지어 아이들은 그 시간이 미술 시간인

지조차 모른다. 수업 시간조차도 한 가지 방식으로 고착

화되어 있지 않다.

프리스쿨의 미술 시간처럼 고착화되지 않으려면 매 순간

누구에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비단

이것은 교육 현장에서만 필요한 자세는 아니다. 상대에

게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사

람을 편견 없이 만난다는 것이고,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사람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만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허나 이 시대가, 이 사

회가 사람을 학벌, 직장, 스펙으로 평가하고, 마치 하나

의 상품인 양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당연한 일이 어색

하고 어려운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최전방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다

지난 10월 17일 진행되었던 교육문화연구학교 3차 세미

나에서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 오연호 오

마이뉴스 대표기자를 모시고 덴마크의 교육부터 역사까

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관련 기사 21쪽 : 덴마크 칭

찬은 했지만 이민은 가지 마라) 그중에서도 자유학교들

의 공통점이 기억에 남는다.

덴마크에는 자유학교들이 여러 개 있는데, 이 자유학교

들의 공통점은 ‘살아 있는 말’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

이다. 자유학교의 한 선생님은 “우리는 학생들이 유연

한 생각을 하길 원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공동

체 속에서 살아 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어울리는 것

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살아 있는 말’이란 무엇일까?

▲ 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오연호 대표. ⓒ이명구

Page 6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5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서

도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스펀지 같은

흡수성을 생각하며 아이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기도 했다.

좋은 어른이고 싶었다. 친밀하게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

망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행

복을 바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아이

들은 내가 아이들 앞에서만 좋은 어른인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생명의 기운을 전해 주고 싶다면 실제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 조심하는 말과 행동이 몸에 배도록 평소에

도 그렇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랬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하는 말

이 ‘살아 있는 말’이 되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두려움은 배움과 함께 춤출 수 없다>에 나오는 프리스쿨로 돌

아가 보자. 프리스쿨은 학교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가 있고,

프리스쿨 커뮤니티가 있다. 공동체 속에 공동체가 있는 것이다. 이

커뮤니티는 학교의 유기적 발전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점차적으

로 맺어진 공동체이다. 프리스쿨 커뮤니티는 함께 모여 사는 열두 가

구가 공동의 관심거리, 사업거리, 일거리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프리스쿨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들린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안양

의 마을공동체에도 ‘새들마을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새들마을학교’에서는 이미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다양한 교

육방법을 시도하고 있으며, 프리스쿨처럼 마을 공동체와 유기적인 관

계를 맺고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이모 삼촌들이 하나둘씩 축

구장으로 모인다. 마을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축구

를 한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다. 학교 아이들 중

원하는 친구는 금요일 저녁에 학교에서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달려

나온다. 신나게 땀 흘리고, 함께 아침밥도 먹는다. 체력 단련도 하고

이모와 삼촌들의 사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는 텃밭 농사를 한다. 물론 학교에도 농사 수업

이 있다. 농사에 더 깊은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이모 삼촌들을 따라

또 농사를 하러 가는 것이다. 아이들도 이모 삼촌들에게 배우지만,

이모 삼촌들도 아이들과 더불어 배운다. 그렇게 농사를 하고 있으면

인근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어른들이 직접 비법을 전수해 주시기

도 한다. 아무리 사회가 핵가족화 되었다지만 아이를 보는 어른의 그

▲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새들마을학교 학생.

ⓒ새들마을학교

▲ 마을 곳곳을 다니며 길이를 재는 새들마을학교

학생들.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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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59

마음은 여전히 푸근하다. 이웃 어른들께는 이모 삼촌들

도 아이들이다. 이러한 어른을 만나고 나면 이 시대의 희

망이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힘을 내게 된다.

주말에는 몸을 부비며 만나고, 주중에는 마을밥상에서

만난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마을밥상은 누구에게나 열

려 있는 일일식당 같은 곳이다. 마을밥상에 가려면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학교 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후 마을

곳곳에서 놀다가 마을밥상으로 오곤 한다. 이때 만나는

아이들은 일터에서 지친 이모 삼촌들에게 활력소가 된

다.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니!

이처럼 배움은 마을 곳곳에서 일어난다. 수학 시간이라

고 해서 교실에 앉아 공식과 씨름하지 않는다. 길이를 배

우기 위해 근처 운동장으로 나가 길이를 재고, 도형을 배

우기 위해 골목골목을 다니며 숨어 있는 도형을 찾는다.

마을에서 학교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아

이들을 보고 배드민턴장을 무료로 개방해 주는 일도 있

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이처럼 뜻하지 않은 만남을 선

물한다. 유기적이라는 것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렇게 함께 사는 것 아닐까.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런 것 아닐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후반부에 보면, 덴마크에

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통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교실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지만,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교실을 바꾸는 일이 너무 힘들다. 그러므로 교실

의 혁신과 사회의 혁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

교육은 삶이다, 그곳에 희망이 있다

그렇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이

사회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나의 문제다. 새들마을학교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아이들이 배운 대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지금 이 사회에서 그 삶을 살고 있어

야 한다. 바로 내가 이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인

식하여 시대적 상황에 맞서는 삶을, 내 앞에 마주한 사람이

누구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난 교육문화연구학교 세미나를 통해 덴마크와 프리스

쿨의 사례를 보며, 살아 있는 말을 하려면, 살아 있는 삶

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20대 미혼여성

인 내가 교육의 최전방에 서 있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나

뿐이랴.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아이가 없어도, 심지어 조

카마저 없다 하더라도 교육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교육의 최전방에 서 있다!

교육이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교육이 ‘모든 것’

이라는 말이다. 교육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말은 곧

‘삶’이라는 말이다. 교육을 누구 아버지의 문제, 어떤 선

생님의 문제, 혹은 지금의 고등학생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일

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가르침과 배움을

규정짓고, 경쟁과 두려움을 조장하는 이 사회 가운데 서

로가 서로의 삶을 배워 가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머지않아 고립과 단절을 끊을 수 있는 희

망이 될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고자 한다면, 반

드시 희망은 있다. 우리가 모인 바로 이 자리에...

▲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명구

Page 6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6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권경아 _치위생사

책의 후반부에서는 미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우

리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감수성, 진정한 의

미로부터 단절시키는 TV, 너의 신과 나의 신이 다르다

는 것으로 그치는 종교를 대하는 태도, 인간의 존엄을

묵살시키는 인종차별과 계급차별, 성차별, 교육의 현장

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를 견고히하려는 것까지. 이

런 환경이 관계의 단절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각자가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려고 할 때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

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게 되면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는 없습니다. 크리스의 이야기, 그의 삶을 통

해서 이런 굴레를 끊어 내는 것은 결국 관계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단절

된 관계를 하나하나 잇는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대안적

삶과 문화를 만들어 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거대한 흐름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치열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

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혀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

리의 지금이 빚어진 이유와 지금을 바로잡을 해답이 역

사 속에 있습니다. 길을 찾고 길을 만들어 가려는 이들

은 반드시 그 길을 찾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진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새로운 세대를 만나

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민창기 _전기공학 대학원생

오늘날 학교 시스템은 아이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

니다. 아니 어쩌면 지나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

다. 인생에 대한 관심이 아닌 성적에 대한 관심 말입니

다. 이 관심은 성적 평가와 성적 중심의 상벌 제도로 우

리를 압박해 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어둡게 채색되어 버린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음 걸음을 내딛기에 주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기억을 그냥 인정하고 다시 그 방향으

로 돌아가곤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린, 우리

를 둘러싼 현실 속에서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

끼게 됩니다.

새로운 교육과 그것을 아우르는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때, 우리는 부모님 세대와 주변 친구와 동료 등을

통해 회의적인 시선과 우려 섞인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

다. 그 이야기를 곱씹어 보다가 결국 내 안에 풀리지 않

은 문제와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두

려움입니다. 사회 속에서 뒤쳐지고 배제되어 버릴 것 같

은 느낌입니다. 제게도 이러한 불안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겠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그것

을 함께 인식하고 있고, 또 앞서서 이러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면서 살아가

고 싶습니다.

모둠나눔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_2014.11.7

“두려움을 넘어

Page 6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61

“이 별난 아이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나? 우리에게 무엇

을 가르치러 나타났나?”

말 그대로 별났던 무마사토가 학교에 왔을 때 저자에게

떠올랐다는 질문입니다. 참 아름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크리스와 저와의 극명한 차이이기도

합니다. 저라면 아마도 ‘저 아이는 대체 누구지? 저 아이

때문에 내 수업이 전혀 되지 않잖아?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전문가를 찾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 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도 지극히 내 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바꾸어 가야 할 ‘교육’의 길, ‘배움’

의 길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두려움’과 ‘신뢰’입니다. 두려움이 힘으로 작용

하는 문화는 무한 경쟁적, 폭력적이기 쉽습니다. 수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지요. 반면 신뢰

가 바탕이 되면 한 인간의 발달 고유성과 특수성을 꽃피

우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

고 싶은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믿어 주고 기다려 주는

가운데 ‘이끌어 낼 수’ 있겠지요.

새들마을학교에 다니는 김고운 학생이 학교에서 늘 듣고

말하게 되는 ‘만난다’라는 표현이 참 좋다고 이야기 해 준

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학생들

을, 음악을, 한 노래 한 곡들을 진정 만나고 있는지 말입

니다. 교육이란 ‘함께함을 배우는 것’이며 배운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나눔도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내 말이 힘이 없는 것 같고, 권위가 없다 느껴져 힘들어

질 때가 있습니다. 교사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고민

도 이어집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전체 모

둠 나눔 후 최봉실 님이 해 주신 말씀은 각성하게 함과

동시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올바른 권위는 모든 이에게 이로울 수 있는 것을 분별

하는 것에 있다.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면 모두가 힘들어

지는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힘은 참 부족하다. 그렇

지만 끝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하려는 자에게 분별

은 가능하다”고 하셨지요.

덧붙여 새들마을학교의 양하늘 학생이 권위와 자유를 나

누지 말자 했던, 함께 갈 수 있다는 말도 꼭 기억해야겠

습니다.

결국 사랑, 그것이 답이었습니다. 어떤 방법론, 어떤 이

론, 어떤 기술보다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나, 그 음

악을, 그 노래를 사랑하고 있나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남는 것은 무마사토, 제시, 테리, 앨런, 이런

‘아이들’이었다고 어느 분이 나눠 주시는 이야기를 들었

는데 공감이 됩니다. 한 아이 한 아이. 사랑으로 만난 아

이들의 이야기가 제 마음에도 써 내려가지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두려움 없이 용기와 사랑을 가지고, 가르침과 배

움의 축제에 모두와 함께 손 맞잡고 춤추고 싶습니다.

배움으로”임성은 _첼로 연주자, 음악교사

Page 6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6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먼저 11장에서 크리스 선생님이 스스로 여장을 해서 여

성에 대해 안 좋은 태도를 보이던 세 명의 남자 친구들에

게 예상치 못한 가르침(?)을 주었던 장면이 화제가 되었

습니다.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려는 사람의

습성이 무리 속에서 제지받거나 반대 받지 않을 때 아이

들이 얼마나 관성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성’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

운 것이지만, 그것이 잘못된 환경 속에서 얼마나 왜곡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 그것을 경계하고 가르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구요. 공교육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따돌림, 일명 ‘왕따’ 문제에 대해서도 그 심각성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친구를 따돌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

서 비난하는 것이 좋지 못한 행동이며 관계를 파괴하는

것인데, 일반 학교에서는 아이들끼리의 문제로 치부되고

선생님이 개입해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공동체, 이웃에 관한 이야기로 흐름이 이어졌습

니다. 사실 아파트라는 환경은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사

는 곳이기 때문에 서로 알아 가기가 쉬울 듯하지만, 막상

살아 보면 몇 년이 지나도 관계를 맺게 되는 이가 드물다

는 것. 그래서 같은 통로에 살고 있어도 얼굴 마주하고

인사하기가 어려웠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초등학

생을 자녀로 둔 분께서는 아이가 시간이 있어도 주변 아

이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느라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없

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웃이 없어졌다는 현실입니다. 심지어 요즘은 가족도

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함께 식사하러 나

와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광경이 흔합니

다. 책의 13장에서도 ‘아기 X’의 모습을 통해 파편화되고

관계가 깨어진 현대 가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한국 사회

도 미국을 모방하면서 공동체와 관계가 크게 깨어져 있

는 현실에 이른 것 같습니다.

또한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비싸고 좋은 물건을 갖고 있으면 행복한 것이 아닌데 참

행복의 기준을 소유에 둔다면 끝도 없는 비교와 경쟁 속

에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날 이어지는 나눔을 들으며 중요한 것은 서로 믿지 못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돈으로 삶의 문

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함에도 돈으로 장래와 행

복을 사려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다시금 생

각하게 되었구요. 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

서 정말 보람 있고 행복했던 순간, 인간적으로 살고 있다

고 느낀 순간은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만족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사람들과 같이 있어서 정말 좋다!’ 라고 감사했던 그

런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 크리스가 보여준 ‘아기 X’의 상징적인 예시는 주위

에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존중받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믿을 수 있는 이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 그런 아이

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없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

자체에 애를 먹게 됨을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

을 했더랬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경쟁과 경제

적 풍요함에 의지하지 않고 사람 그 자체를 믿으며 존귀

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이 땅을 다시 꿈꿔 보게 됩니

다. 그 꿈을 꾸는 이들과 함께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조현규 _프로그래머

“배움을 넘어

Page 6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63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잠시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

다. “왜 이 책의 제목은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나>인가.”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고 토론에 참여했

다.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가장 큰 주제는 ‘관계 맺기’다.

책의 배경인 프리스쿨은 다양한 이야기 속에 관계라는

핵심이 들어 있었다. 내가 다니는 새들마을학교도 이런

생각을 중심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나에게 더욱

돋보이고 크게 느껴지는 게 아니었나 싶다.

배움은 즐겁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사회에서는 배움이 두

렵게 느껴지는 것일까. 본래 배움은 즐겁지만 그 이상을

원하고 가르치려 하기 때문에 두렵다고 느껴지는 게 아

닐까.

나는 이 ‘두려움과 배움’이라는 말이 더욱 다가왔다. 나

는 학생이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배우고 배운다. 만

약 내가 ‘하기 싫다, 안 될 것 같다’라는 두려움에 빠지

면 결국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이나 사고를 통해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바로 그것을

방지해 주는 것이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넘어서 배움으로, 배움을 넘어 공동체로, 끊어

진 실 같지만 서로 단단히 묶여져 있는 이 연결체에서

우리는 그 본래 의미를 잊은 것 같다.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잊고 살았던 거 아

닐까.

석현수 _새들마을학교 16세

공동체로”

Page 6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6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춤을 춘다는 것은

뭔가 자유로운 것이 연상된다.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춤을 추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자유, 리듬, 고유성’이라는

단어들이 마음에 남았다. 나의 리듬을 따라, 내 안에 잠

재되어진 고유성을 활짝 꽃 피워 행복하게 되는 것. 그리

고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 생

각되어졌다.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 경험했던 교육의 환경, 개인적인

성향, 부모님과의 관계, 나를 둘러싼 외부 환경 등등의

영향으로 인해 ‘두려움’과 ‘억압’이 나를 성장시킨 주요

한 정서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지 못했던 것

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들이 들었고, 그것이 문제였다라

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환경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

다는 원망의 마음들이 드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억

압’으로 인해 억눌렸던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표출’하고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자유, 리듬, 고유성’만큼이나 중요

하게 이야기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각각의 고유성을 둘

러싸고 있는 ‘관계성’이다. 인간이란 더 큰 공동체와의

관련성 속에서만 충분히 ‘개인적’일 수 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동굴 속이나 어떤 성스러운 성전에 홀로 떨어져

서는 개인적 잠재력을 발견해 낼 수도, 충분히 발휘할 수

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간직한 타

고난 재능 전부를 완벽하게 캐내고 온전한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끊임없이 주고받

고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너의 존재 없이,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고, 공

동체 없이 나의 고유성을 꽃피운다는 것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서로 닿아 있으며, 서로서로에게 영향을 주

고받는 생명체이다. 그 생명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생명 안에 깃든 오묘한 생명력을 담고 있다. 선한 것

을 향한 마음과,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 고난과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 등.

교사와 아이들,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 너와 나의 관계에

서 우리는 누구나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 가르친다는 것

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어우러져 우리 안에 깃든 수많은 가능성들과 자질

들을 발견해 나가고 발현해 나가는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은 글이나 언어로, 어떤 체계나 틀로 고정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문제와 상황 앞에서든 ‘본질’

을 붙잡으려는 굳은 마음과 결국엔 서로의 ‘진실’을 마주

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나의 경험만을 고집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열린’ 존재

로 변화해야 한다. 생명이 생명답게 꽃피우는 행복한 삶

을 위해, 지금 내게 주어진 삶 가운데 요청되는 것은 다

름 아닌 ‘열렬한 사랑’이다.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것을

떨쳐 내고 ‘참배움’의 길에서 흥겹게 춤출 수 있기를 희

망하게 된다.

이효진 _새들마을학교 교사

“자유, 리듬, 고유성

Page 6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65

교육문화연구학교 안내장을 받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아, 토론.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만 많고 더구나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는데 부족함이 많은 저로서는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과정이 부담스러웠던 것입

니다.

하지만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이 읽어야 할 세 권의 책이

었습니다. 그중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 저는 아이들

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늘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저의

아픈 부분이자 최고의 고민을 콕 집어 낸 것 같아 신기

하기도 하고, 마치 읽기만 하면 저의 두려움을 치유해

줄 것만 같은 책 제목에 끌려 교육문화연구학교에 신청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생님은 착해서 애들도

못 혼내고 애들한테 휘둘릴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십니

다. 그러면 저는 멋쩍게 웃으며 “저 안 착해요. 저 엄청

무서워요”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잘해 줄 때는

잘해 주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말 그대

로 저의 멋대로의 기준에 근거하여 아이들을 휘둘렀습

니다. 그래서 공부만 하려고 하면 교실은 늘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딴 짓을 하면 그게 얼마나 거

슬리는지 혼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욱하고, 대놓고

혼내고 그럼 교실 분위기는 또다시 경직되고, 아이들은

잔뜩 긴장해 있고.

아이들은 저를 무섭다고 하겠지만 사실 저는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교사라는 책임이 두렵습니다. ‘담임으로서

이런 것들은 반드시 해야 한다. 교과서는 한 번씩 다뤄

줘야지. 6학년이면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지. 교과 전담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이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 우리

반 아이들이 말썽부리고 제대로 안 하네? 선생님들이 나

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생

각할까?’ 뭐 이런저런 두려움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의 모든 두려움들이 사라진 건 아닙

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그런 두려움들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지나온 나의 배움의 터전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잘못들도 반성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프리스쿨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잘 가르치려고 했던 말과 행

동들이 오히려 배움을 방해했구나’, ‘내가 두려워하던 것

들에 그렇게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구나’라는 것을 말입

니다.

오래 전부터 제가 잘하고 싶은 건 아무쪼록 내가 맡은 아

이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

면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였고 나름대로 엄

청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은 기반이 좀 잘못되

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모래 위에 집을 지어 왔다면

이제는 반석을 찾은 기분입니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첫 번째 시간 난장에서 ‘교육문화 연

구학교는 재도약이다’라고 썼습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새로운 도약을 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박애영 _초등학교 교사

그리고 관계성”

Page 6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6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아들은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는커녕 방 안에 누워 있다. 엄마는 화를 낸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다. 아들은 미동하지 않는다. 왜 아들이 바뀌지 않을까

고심하던 엄마는 비폭력대화에 대해 공부했다. 엄마는 자신이 달라졌다고 확

신한다. 아이도 바뀔 거라 생각한다. 비폭력대화를 배운 후에 시험 전날 놀기

만 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얘야, 네가 그러고 있으니 엄마가 많이 걱정이 되네.”

“엄마, 엄마보다 내가 백배 천배 더 걱정돼요.”

이 이야기에서 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존재로만 있다. 그런데 아

들은 엄마가 걱정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를 존중하고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가치를

존중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존중받지 못한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말투는 부

드러워졌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현실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학생들

은 배려받지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 보통의 부모와 자녀들은 잘못된 교육

제도 안에서 둘 다 희생자일 수 있다. 그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는 위의

이야기는 먼 이야기다.

그러나 한쪽만 헤아리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생들을 배려하

지 않는 교육에 대한 대안이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는 언명이 될 때,

상대를 극진히 위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정작 바로잡아야 할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설명하며 최봉실 교장은 영화 <카트>에서 손님이 판매원에게 잘

못된 행동을 해도 직원이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게 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학

생들을 우선에 두는 교육이 자칫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자본주의 체계의 관계

맺음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관계 맺고 있는 쌍방이 서로를 배려하

고 존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명상으로 풀었다고?

글_이명구

기사 ⑬ 관계 안에서 진실 포착하는 교육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_<오마이뉴스 2014.11.26>

▲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파커 팔머

씀 / 이종태 옮김 / IVP ⓒIVP

Page 6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67

지난 21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7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가르

침과 배움의 영성> 서론부터 4부까지를 읽고 토론했다.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에서의 더 깊은 관계성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저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날 수 없

고 온전히 관계 맺기가 불가능하다.

가르침과 배움은 변화를 요구한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의 저자 파커 팔머는 가르침과 배움은 변화를 요

구한다고 단언한다. 이는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에서 지식이 오고 가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안에서 물론 지식과도 진실하게 만나야 한다.

그러나 보통의 교육은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

다. 선생님은 권위적으로 이야기하고, 듣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임한다.

지식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익히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행된다. 이것은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가 서로 안전하려고 일종의 협약을 맺은 것과

같다. 선생님은 강의를 통해 권위를 득하고 학생들을 통제할 힘을 얻는

다. 학생들은 편하게 앉아서 그저 그대로 머무른다. 서로가 변하려고 하

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유하

면 오히려 겁을 낸다. 그 상황에 맞서지 않으려고 한다.

파커 팔머는 이러한 교육의 위기를 호기심과 지배욕에서 비롯된 지식관

에서 찾는다.

“호기심은 도덕과 무관한 열정으로서, 알고자 하는 욕구를 방해하는 어

떠한 지시도 거부하려 든다. 지배욕은 권력욕의 다른 말에 불과하며, 도

덕과 무관할 뿐 아니라 부패하기 쉬운 것으로도 악명 높다. 만일 우리

앎의 주된 동기가 이러한 호기심과 지배욕이라면, 결국 우리는 우리를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끄는 지식을 낳고 말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

의 영성> 54쪽)

그럼 우리는 어떤 지식을 만나야 할까. 그는 호기심과 지배욕이 아닌 자

비와 사랑에서 기인한 지식을 역설한다. 사랑은 깨어진 자아와 세계의

재연합과 재구축을 목표로 하는 지식이고, 자비는 세계와 자신의 화해

를 추구하는 지식이다. 여기서 앎의 행위는 타자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포용하는 행위,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실재 속으로 들어와 그것

을 포용하도록 허락하는 행위다.

▲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여기고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고 참석자들은 노

래했다. ⓒ이명구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에서

지식이 오고 가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안에서 물론 지식과도

진실하게 만나야 한다.

▲ 한 참석자는 지금도 여전히 지식 전달 차원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명구

Page 7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6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파커 팔머는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된 가르침과 배움을 위해서는 영성

을 새롭게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성 회복을 위해서는 기도가 충만

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기도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진리(본질)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과 진리가 나를 향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동시에 인식하고 열려 있

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진리를 만나는 것은 유기적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 그가 말하

는 진리는 인격적 진리이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이 개별적이고 객관

적으로 구분되고 구별되는 게 아니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은 상호적

으로 반응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앎의 주체가

되어 세계를 바꾸기를 원할 뿐, 변화를 요구당하면서 앎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배운다 함은 변화와 대면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배운다 함은, 주도할 뿐

아니라 반응하고, 얻을 뿐 아니라 주기도 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는 관계

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진리의 공동체적 요구에 자신을 연다

면, 우리에게는 회심이 필요하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106~107쪽)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파커 팔머의 글에 감응했다. 한 참석자

는 진리 앞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본질 앞에서

변화할 마음이 있는지 돌아봐야겠다고 소감을 나눴다. 다른 이는 인식

주체와 대상이 괴리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싶고, 그를 위해서는 관계성

을 견고히 다지는 가운데 가르치고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관계 맺음의

역량을 잘 키워 가고 싶다는 참석자도 있었다.

그동안 교육을 받아오면서 느낀 어려움도 나눴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

은 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차원의 관습적인 교육에 물들여져 왔고

자라왔는데,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지식 전달 차원의 교

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참석자는 수동적인 교육 환경이 전복되고 전환되기를 염원해 왔

다며 지금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자기의 몫을 성실하게 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다음 세대에서라도 영성을 회복하는 교

육이 실행되기 위해선 지금 굳건한 토대를 놓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

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바로 시작해야겠다고 했다.

최봉실 교장은 실제 현장에서 영성을 회복하는 교육을 하면서 누리게

된 지혜를 나눴다. 지난 ‘충(忠)의 만남’ 강의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중심(본질)을 만나기 위해서는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아이들이 수학 수업 시간에 만든 3단 책상.

ⓒ새들마을학교

▲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새들마을학교 학생이 조별

토론 후 발표하는 모습. ⓒ이명구

Page 7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69

15쪽 :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파커 팔머가 말하는 기도

가 바로 그 중심을 만나기 위한 작업이다.

“하루를 바쁘게 지냈어요. 피곤하잖아요. 빨리 드러눕고 싶죠. 하루를

다 지내고 나면 그게 다인 거 같죠. 그런데 딱 멈추어서 잠잠히 거하게

되면, 그냥 잠들었으면 몰랐을 오늘 하루의 참된 진실을 포착하게 됩니

다. 그걸 기도라고 할 수 있지요.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수학 문제만 마주하면 얼어

버려요. 우선 긴장을 완화하고 두려움을 없애도록 온갖 사투리를 써 가

며 아이를 재밌게 해 주었죠. 그래도 안 되니 집에 가서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수학 시간에 자신이 어떤지 잠잠히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어땠을

까요. ‘아, 내가 할 생각을 안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

요. 그 다음부터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풀기 어

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도 위축되지 않게 되었어요.”

최 교장은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참된 진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

는 자세와 그렇지 않은 자세는 차이가 크다고 했다. 이를 알고 있는 것

과 모르는 것은 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피곤했으면 그냥 잠들었을 하루를 그냥 보내지 않

고 잠잠히 돌아보는 것은 ‘생과 사’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수업 시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수업을 하고 나면 새들마을학교 학

생들은 그 시간의 평가를 적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 너머 나에게 다가오는 진실을 포착했

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고,

내가 하루를 바쁘게 지낸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최 교장

은 당부했다.

이어서, 최 교장은 교육 현장에서 모든 질문이 선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

했다.

“책임 있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아담과 하와의 예에서 보

는 것처럼, 질문은 호기심과 지배욕에 좌우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꼭 죽는다고 그러디?’라는 뱀의 질문을 봅시다. 성경이라는 종

교 고전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이 참으로 간사한 질문이었습니다. 관

계를 파괴하는, 사이를 갈라놓는 질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봅

시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자 하나님이 아벨을 찾았습니다. 가인은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질문합니다. 회피와 공격의 질문입니다.

▲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은 “피곤해서 그냥 잠

들었으면 몰랐을 진실을 잠잠히 돌아보아 알게 되는

것은 ‘생과 사’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명구

▲ 멈추어서 잠잠히 거하게 되면 진실을 포착하게

된다. 명상하는 학생들. ⓒ새들마을학교

Page 7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7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우리의 지식은, 우리의 질문은 사랑에 근거한 것이 되어

야 합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 가고 배워 가기 위해

질문하는 것에는 물론 정성껏 답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

나 차차 질문의 동기가 순수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

다. 순수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늘 자신을 점검하는 것

이 중요합니다. 질문을 놓치지 않고 성실하게 질문해 가

면서도 내가 던지는 질문이 불신을 조장하고 나의 잘못

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철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끝으로, 최 교장은 진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직관의 능력

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기도의 힘을 직관이라

고 한다. 어렵거나 힘든 일을 만날 때, 손쉽게 해결하고

싶을 수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그들에게 권위를 부

여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진다. 내 삶의 문제를 타인에

게 떠맡기는 것이다.

최 교장은 어렵고 해결하기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잠잠히 물어볼 때,

진리가 나에게 와서 그 답을 이야기해 줄 거라고 했다.

우리 삶에 대해 스스로 어떤 판단도 못한 채 늘 전문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알고자 한다면 우

리의 길을 알아 갈 수 있다고 최 교장은 힘주어 말했다.

직관의 능력은 우리 모두를 삶의 주인으로 세워 내고, 자

유로운 영혼으로 세워 낸다. 이성과 감각으로뿐만 아니

라 직관과 감정과 그 모든 노력으로 진리를 만나려고 노

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가운데서 서로가 배

우고 가르치고 돕는 자로 만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해결해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

아가야 합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

리가 해야 할 일, 오늘 내가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면서 다른 이들의 얼

굴을 떠올리며 책임 있게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최 교장은 우리를 파편화시키려고 하는 이기심과

이 이기심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우

리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서로를 지키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전체 모임 시간, 새들마을학교 친구들 웃음이 터졌다.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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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71

우주 전체와 하나 되는 배움의 길

글_김민수

기사 ⑭ 위대한 가르침이란 연결됨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 _<오마이뉴스 2014.11.26>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

생들을 이끌어야 할까, 내버려 두어야 할까, 인생의 주

요한 걸음을 눈앞에 두고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작고 큰 게 어디 있겠냐만은 소소하고 작은 일상부터

주요하게 획이 그어질지도 모르는 걸음을 앞에 두고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래, 결심했어”라며

두 가지 인생을 그려 냈던 90년대 어느 오락 프로그램처

럼 이렇게 저렇게 해 보면 좋으련만, 닥쳐온 시간 앞에

나의 선택은 늘 비슷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 대로

선택을 하거나 어찌할 줄을 몰라 손 놓고 있게 된다. 이

리저리 돌려도 보고 흔들어도 보지만 찰나의 순간 뒤에

벌어질 일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

게 될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남의 얘기 같

지 않게 느껴진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그 정답을!

수학 문제도 문제고 인생 문제도 똑같은 문제. 수학 문제

를 잘 풀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잘 공부하면 되겠다만 인

생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대

학에 가기 위한 수능 공부, 학점을 잘 받기 위한 전공 공

부, 취업을 잘 하기 위한 토익 공부, 그리고 이후부터 끊

임없이 이어지는 자격증 공부 등, 많은 이들이 인생의 문

제를 잘 풀어 가기 위해 많은 배움의 과정을 거치는데,

어찌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삶의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복잡하게 남아 친구의 답을 따라 답안지 써 내기

급급하게 될까.

하지만 답지를 내는 것으로 끝인가. 내가 내놓은 답들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생의 생과 연결되어 있는데. 내

욕망을 위해서라면 모든 맥락과 관계를 단절하고 파괴하

며 매진하는 호기심에 기반한 공부, 함께하는 이를 결국

에는 밟고 올라가서 열매를 따먹었으나 결국 굶주림에

금세 지쳐 버리는 경쟁과 지배의 공부로 인해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 가고 결국 스스로의 생명까지 잃게 되는 것

이 지금의 현실이다. 단순히 멈추어 서는 것이 아니라 어

떤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치열하게 머리 싸매고 진지하

게 자신을 성찰해야 할 때다.

새들마을학교에서 진행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일곱 번째 시간, 참가자들과 함께 읽

고 토론한 파커 팔머의 책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참된 공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파커 팔머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가르침이란 ‘연결됨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 교육문화연구학교 일곱번째 시간,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토론하는 참가자들. ⓒ이명구

Page 7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7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위대한 교사는 학생, 주제 그리고 그들 자신 사

이에 관계의 망을 엮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의미 있는 삶

을 엮어 낼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의 삶을 통해 이 갈가리 찢어진 세계를

다시 엮어 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위대한 가르침이 연결됨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위

대한 배움, 위대한 공부는 연결됨의 역량을 쌓는 것이 되겠다. 너와 내가

한 존재라는 공동체적 배움, 우주 전체가 나와 단절된 존재가 아닌 나와

연결된 ‘너’가 되는 인격적 배움이, 바로 연결됨의 역량을 쌓는 온 존재와

공동체적 관계를 맺게 되는 배움이다. 파커 팔머는 이 공부를, 이 지식을

‘진리’라고 말한다.

진리를 말하기 앞서 우리는 우리가 지식을 쌓고 찾는 기반, 즉 인식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파커 팔머는 현대인의 인식 방식을 객관주의라 부르

는데 이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단절과 결별을 의미한다. 배우는 이

가 배우는 대상과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한 채 대상을 관조하며 조작과

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객관주의다.

객관주의는 서양 중세의 역사에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갔던 종교의 광기

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문학・예술・과학의 영역에서 인류를

윤택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결별은 “인식 주

체로서의 자아와, 인식 대상으로서의 세계 사이의 공동체성과 책임성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파커 팔머는 말한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결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배우는 이가 배우는

대상을 조작과 통제의 영역으로만 두는 것, 자신이 배우는 지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온 세계와 공동체적 관계로 전환되는 걸음이 아니

라 파괴하고 착취하는 관계로의 전락이 바로 주체와 대상 간의 결별이 초

래한 결과다.

온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은 인식 주체와

대상이 단절되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다.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들어 낸

미국 과학자들은 원자폭탄 실험으로 대기권이 폭파되어 지구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말이 오갔음에도 실험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가르침

과 배움의 영성> 44쪽)

중학교 수학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

른 두 변의 제곱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고 있지만, 피타고라

스가 공동체를 이루어 ‘세계는 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백 가운데 그 진

리를 밝혀 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투신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 새들마을학교 초등과정 친구들의 ‘절기와 예

술’수업 시간. 24절기를 공부하며 마을과, 땅과, 이

땅의 역사와 연결되는 시간이다. ⓒ새들마을학교

▲ 피타고라스의 정리.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

은 다른 두 변의 제곱과 같다. ⓒ김민수

Page 7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73

지식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인류의 소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

니라 단순히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고 이를 평가하는데 국

한되어 있는 현대의 교육은, 결국 타인과 나의 관계 사이에 생존 경

쟁이라는 고리 이외에는 어떤 것도 만들어 줄 수가 없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걸음 속에 발견한 피타고

라스의 정리를 통해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숫자를 대입해 문

제를 푸는 산수뿐만 아니라 진리를 향한 간절함을 함께 배우고, 모든

만물이 수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믿었던 피타고라스와 연결되는

배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파커 팔머는 진리를 인격적이며 공동체적이라고 말한다. 진리

가 인격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주 안의 모든 비

인간 형태의 생명과 공동체의 유대를 이루어 배우고 살아가야 한다”

는 것이며(위의 책 85쪽), 진리로의 나아감은 결국 공동체로의 나아

감을 의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삶의 문제는 한 개인이 대상과 분리된

지식을 쌓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가 없다.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공동체적인 삶에 기반하지 않는 지식과 진리는 그 의도가 어찌됐든

온전히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

그래서 배움은 학과 과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식사

하는 점심시간, 함께 뛰노는 시간, 간식을 나눠 먹는 시간, 타인을 믿

지 못하거나 위하는 마음 없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발견되는

모든 순간과 현장이 배움의 시간이 된다. 학과 과목 시간에는 그 과

목의 세계와 온전한 만남을 이루는 것과 함께 공부하는 이와 우정 어

린 만남을 이루는 것이 공존해야만 한다. 이때 우리는 참진리를 만날

수 있다.

다시 삶의 문제로 돌아오자. ‘모르겠다’는 말은 결국 함께 하는 이들

을 잘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하는 이가 아닌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리를 마주하지 못하게 한

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꼭 나를 잃어 버리게 할

것 같은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이와 진실하게 만나고, 다른 이를 온전히 도우

며 사는 것이 우리가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사는 것임을 믿는다면 그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 만물과 공동체적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를 살리는 존재로 전환되어져 가는 배움의 길을 걷게 될 것

이다.

▲ 친구들과 신나게 뛰노는 시간! ⓒ새들마을학교

▲ 로마 카피톨리누스 박물관에 있는 사모

스의 피타고라스 흉상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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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달에 추락해도 서로에게 귀 기울이면 산다?

글_이명구

기사 ⑮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교육 _<오마이뉴스 2014.12.3>

파커 팔머가 쓴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는 ‘달에서의

실종’이라는 모의 게임이 나온다. 학생들은 자신을 달의

표면에 추락한 우주선의 승무원이라고 가정한다. 추락

뒤에 15가지 장비가 남았다. 추락한 곳에서 300킬로 떨

어진 곳에는 또 다른 우주선이 그들을 지구로 귀환시키

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달에서 본 별자리 지도, 몇 리터

의 물, 나침반, 산소 탱크, 밧줄 등을 사용해서 추락 지

점에서 구조선까지 이동해야 한다.

유용성에 따라 15가지 장비에 대해 등급을 매긴다. 학생

들은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각자 등급을 매긴다. 그 다

음에는 6~8명 정도가 한 그룹으로 모여 각자 매긴 등급

에 대해 토의하고 이견에 대해 협상한 뒤, 그룹이 공동

으로 등급을 정한다. 15가지 장비의 상대적 유용성에 대

해 합의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룹이 공동으로 매긴

등급과 개인이 매긴 등급을 미항공우주국(NASA)이 제

공한 등급과 비교한다. 그룹 점수는 거의 언제나 개인

점수의 평균보다 높았다.

새들마을학교에 다니는 16살 김지호 학생은 초등학교 5

학년 때 일반학교에서 이 게임을 한 적이 있다. 반 친구

들 중 ‘달에서의 실종’ 게임을 아는 학생은 김 군을 포

함해 2명. 이들은 인터넷에서 NASA의 장비 선정 목록

을 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이 둘만 같은 조로 묶었

다. 다른 친구들은 6명씩 그룹을 이뤄서 장비의 등급을

매겼다.

결과는 아무 사전 정보 없는 그룹이 2명보다 더 좋았다.

지호 학생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타그룹의 점수를 능

가할 수 있다 생각했고, 자신이 자만했음을 알았다. 이야

기를 듣던 석현수 학생은 한 개인보다는 주위 사람들과

공동으로 힘을 합쳐 좋은 점수를 낸 거 같다고 평했다.

지난달 28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8번째 시간에 참

석한 이들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5부부터 7부까지

읽고 토론했다. 이전 시간, 참석자들은 가르침과 배움은

상호 변화를 요구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자는 인격적 진

리 앞에서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공유했다. (관련

기사 66쪽 : 어려운 수학 문제를 명상으로 풀었다고?)

이번 시간에는 상호 변화를 위한 훈련의 과정과 영적인

덕목에 대해 함께 공부했다.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

파커 팔머는 “가르친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

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보통

교실을 실천하는 장소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파커 팔

▲ 이날은 새들마을학교 학생들로 한 모둠을 이뤘다. 학생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명구

Page 7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75

머는 교실이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이 되어

야 한다고 단언한다. 배운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

는 지식만을 단순히 습득하는 일이 아니다. 참된 배움은

삶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그리고 교실은 세계

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로 세

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이고 참여하고 책임지도

록 가르쳐져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순종’이란 노예적이고 기계적으로 추종

한다는 뜻이 아니다. 분별하여 듣는 것이다. 또 들은 말

에 담긴 인격적 의미에 신실하게 응답하는 것이고, 실천

하는 것이다. 인격적 의미에 응답한다는 것은 “자신이

화자 및 그 사람의 말과 언약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며 인

격적으로 응답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진리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서는

합의에 의한 학습법이 도움이 된다. 앞에서 말한 ‘달에서

의 실종’ 게임이 그 훌륭한 예다.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

기 위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때 진리는 우리가 서로에

게 순종하도록 만든다. 서로에게 순종함으로 우리는 진

리를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합의는 우리가 순종과 언약을 실천하는 실제적인 과정

이다. 합의는 다수의 의견을 곧 진리로 여기는 의견의 민

주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와 당면 주제에 귀 기울이

고 응답할 때 나타나는 진리는 단순히 집단의 의견으로

전락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초월한다. 합의란 바로 그

러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

성> 203쪽)

이렇게 서로에게 순종하며 더 좋은 합의에 이르게 될 때,

우리는 개인의 총합보다 더 나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지호 학생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

를 귀 기울이고 함께 지혜를 짜내 합의에 이를 때 더 좋

은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과 고독, 그리고 기도 속에서

파커 팔머는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

하려는 교사들은 먼저 자기 내면부터 바꾸어 내야 한다

고 강조한다. 교사의 마음 변화에서부터 가르치는 일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하며, 사랑과 진리가 우리 마음을 재

형성하도록 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영성 훈련을 위해 그는 교사들에게 침묵과 고독

속에서 잠잠히 머무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주고,

고독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준다. 이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만드

는 자아의 왜곡들을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

그는 침묵과 고독의 훈련은 기도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확신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정

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세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기도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세계를 하나로 묶어 주는 영적 끈

들을 인정한다. 파커 팔머는 기도는 어떤 면에서는 역설

의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세계 전체의 말을 듣기 위해 침

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세계 전체의 관계성을 느끼

기 위해 고독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함께 푸니깐 수학 문제를 더 꼼꼼히 풀 수 있었다.” 수업 후 학생

의 소감. ⓒ새들마을학교

▲ 참석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이명구

Page 7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7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개방성, 경계, 그리고 환대의‘공간’

파커 팔머는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은 다음

의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우리는 배움에 대한 방해물, 곧 진리가 우리를 발견

하지 못하도록 숨을 수 있는 장벽을 치워야 한다. 이것이

‘개방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무지하게 보

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또 우리가 진리를

찾으려 애쓸 때 동시에 진리도 우리를 찾으려 애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배움의 공간이 무작정 개방되어 있을 수

는 없다. 학생들은 무한한 개방성으로 도망가려는 습성

이 있기 때문이다. ‘경계’가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배

움의 공간인지 교사가 신중하게 정해야 하고 이를 지켜

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경계 없이 무한한 개방성으로

도망하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배움의 공간은 개방성과 경계가 공존하는 역설적인 환경

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서린 장소일 수 있다. 때문에 긴

장감을 해소할 ‘환대’가 필요하다. 파커 팔머에게 환대란

“우리가 서로를, 서로의 갈등을, 서로의 새로운 생각을

개방적이고 주의 깊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배우는 공간에 환대가 필요한 이유는, 배움에서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에 따르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무지의 폭로, 잠정

적 가설에 대한 검증, 거짓되고 치우친 정보에 대한 문제

제기, 서로의 사상에 대한 비판 같은 고통스러운 일들 없

이는 어떠한 배움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는 진리에 대한 순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위협과 비난을 느끼는 분위기에서

는 일어날 수 없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166쪽)

본질을 분별하고 붙잡는 배움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눴다. 한 참석자는 순종이

란 게 수동적인 게 아니라 ‘본질을 분별하고 관계 안에서

깨어서 만나 가며 이뤄지는 진리를 따르는 응답’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는 가르침

과 배움에 있어서 고통을 견뎌 가는 데에는 환대의 역할,

함께하는 공간과 신뢰하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

다고 했다.

파커 팔머가 말하는 영적 훈련을 해 나가야겠다는 다짐

하는 이도 있었다. 그는 “내가 먼저 변해야 다른 사람들

을 가르칠 수 있고 변화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

해야겠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말이 침묵의 기회를 깨

뜨리지 않도록 기다리는 훈련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진리와 만나게 하는 노력을 포

기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아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잘 살

피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잘 포착하고 진리 안에서 이야

기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저 혼자서는 어려운 일인

거 같습니다. 함께 가르치는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선생님

들과의 관계를 굳게 다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참석한 현직 교사의 나눔 중)

이날은 새들마을학교 학생들끼리 토론 모둠을 짰다. 한

학생은 순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위압감이 느껴지

는 건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며,

순종은 진리에 하는 것이라는 본질을 붙잡아야겠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가르치고 배우며 맺는 관계가 긴

장감을 놓치게 되면 도구적인 관계로 전락할 수 있음을

주의하며 지금 허락된 관계를 충실히 맺어야겠다고 마

음을 나눴다.

▲ 모둠 토론 후 발표하는 새들마을학교 학생. ⓒ이명구

Page 7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77

삶과 행위가 넘쳐나서 나오는 말의 초월성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

은 침묵과 고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태초의 말의 본질

은 행위의 충만이라고 지적했다.

최초의 소리로서의 말의 본질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탄을 표할 때, 바위에 부딪혔을 때 아픔을 표현할 때처

럼, 우리 존재 안에서 넘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우

리가 회복해야 할 말은 삶과 행위가 넘쳐나서 내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또한 최 교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말의 초월성을

지적했다. 지금 이순신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순신이 치

열하게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대목을 읽다가 그 헌신에

감동하여 울컥하게 될 때, 바로 그때의 시간과 지금의 시

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관련 기사 15쪽 : 한글 창

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아야 한다. 불

평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말, 자신이 없다고 걱정하는 말,

자신을 향해 규정하는 부정적인 표현이 우리 생활을 얼

마나 지배하고 있는지 돌아보자고 했다. 최 교장은 삶의

넘침으로서의 말,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말의 본래 힘을

잘 회복하며 살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침묵이 중

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번잡하게 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걸 끊어 내는 작업으로 침묵과 고

독이 필요합니다. 쓸데없는 말들을, 단절시키는 말들을,

본질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말들을 고요히 잠재울 때 비

로소 우리 안에 서서히 부상하는 진리를 만날 수 있게 됩

니다.”

그러나 최 교장은 예전보다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갖기

가 더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더 편리한 것들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는 침묵의 시간을 더 갖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큰 의지를 내야 하지

요.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시

도들은 항존합니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본질

을 상실한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경계하고 깨

어 있지 않으면 지금의 노력도 5년 뒤엔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최 교장은 인생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때, 두 갈래의

갈림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게 힘들

어서 진이 빠지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거기서 멈

추지 않고 버티고 넘어서면 진리가 주는 환대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했다. 이렇듯 삶은 언제나 역

설로 이뤄져 있고, 이 역설은 음양의 원리처럼 긴장을 내

포한다.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 바로잡아 주기 위해 가르

치는 자는 혹독하게 야단을 치는 것과 동시에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해서 나쁜 길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을 같이 전해야 한다. 이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가치를 어

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붙드는 긴장, 우리는 바로 이

역설의 긴장을 견디는 역량을 길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결된 존재라고 한다면, 이 모든 연결된 존재

의 안위를 생각하는 그가 누구든지, 신이든지, 나를 가

르쳤던 선생님이든지,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이든지,

우리가 이 역설과 긴장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

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

하는 과정에서 맞게 될 긴장과 갈등을 넘어서도록 환대

해 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어려움

보다 더 큰 환대의 달콤함을 우리가 맛본다면, 다른 사람

에게도 이 길이 힘들지만 함께 가자고 기꺼이 손 내밀 수

있을 겁니다.”

끝으로, 최 교장은 참교육의 걸음을 고민하면서 우리를 환

대해 주었던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와 <가르

침과 배움의 영성> 저자들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우리가 함

께 공부한 내용을 힘써서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Page 8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7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언제부터인지 질문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친구들 눈치

도 보이고 선생님도 약간 피곤해 보여서입니다. ‘너 그

거 여태 모르고 있었어?’ 친구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 같

습니다. 다른 친구들 속도를 나만 못 맞추고 있었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되도록 실패는 그림자도 보여서는 안 됩

니다. 몰라도 아는 척, 나중에 혼자 뒤쫓아 가면 됩니다.

그럼 될 것 같습니다.

교실에서는 티를 내면 안 됩니다. 친구들이 동무였으면

좋겠는데, 질문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걸 보니 동무는 사

라지고 죄다 남들뿐입니다. 허물을 보이면 안 되는 남남,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네

교실은 그런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질문하기가 두려워서야 되겠습니까. 무턱대고 질문만 해

대는 버릇은 고쳐야겠지만, 질문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

서는 안 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누구나 번쩍 손을 들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참된 교육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친구들도 눈치를 주

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피곤해 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모

두에게는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기쁨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의 질문이 새로운 영역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습니

다. 그런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찬 공간, 우리네 교실이

그런 곳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문화연구학교 9번째 시간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파

커 팔머, IVP)을 5부부터 7부까지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

었습니다. (관련 기사 74쪽 : 달에 추락해도 서로에게 귀

기울이면 산다? ) 모둠별로 흩어져 각자 읽고 생각한 것

들을 나눴습니다. 저자 파커 팔머가 ‘가르침은 공간을 창

조하는 일’이라고 한 주장이 토론을 이끌어 가는 주된 화

두가 됐습니다.

우리의 교실은 어떤 공간이었나. 그 공간은 우리를 편안

하게 해 주었나. 과연 진정한 배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었나.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경험담을 나누다 보니,

질문하기가 두려워 조용히 숨죽이고만 있었던 교실 속

풍경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

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으로 충만한 공

간을 만들 수 있을까. 자연스레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학교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통’하는 가르침

글_김재광

기사 ⑯ 교육 공간을 채우는 세 가지 가르침, ‘개방성·경계·환대’ _<오마이뉴스 2014.12.5>

▲ 교실은 하나의 질문으로도 새 장이 열리는 공간이어야 한다.

ⓒ새들마을학교

Page 8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79

‘배움의 공간’ 세 가지 주된 특징

파커 팔머는 배움의 공간에는 세 가지 주된 특징, 세 가지 본질적인 차

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특징은 ‘개방성’입니다. 교육의 공간은

낯설음을 창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낯설다고 어색해 할 필요가 없는

곳 말입니다. 오히려 낯설어서 더 반갑습니다. 나만 중요하고, 내가 아

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세상의 중심이 내가 되고 보면, 낯

선 것은 좀처럼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내 손이 미처 닿지 못하는 곳

에 내가 몰랐던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 이렇게 여지를 인정하는

태도가 나를 진정 배움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그렇다면 개방성이 모든 걸 보장해 줄까요. 파커 팔머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경계’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대중 교육의 보편성이 저질러

놓은 폐해를 극복하고자 개방성의 나팔을 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

다. 시대의 선각자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모든 걸 다 해결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 줄 세우기에 신물이 났다고, 무작정 줄만

없애 버리면 어린 학생들은 스스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

의 자유 때문에 오히려 숨이 찰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선을 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혼돈으로 치달을 수 있는 무한

한 개방성이 아니라, 공간의 개방성을 지켜주는 선, 그 공간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막아 주는 선이 필요합니다. 그 경계 안에서 일단 숨을

좀 고르면서 자기 길을 제 속도에 맞게 걸어가도록 하는 배려의 선 말

입니다. 파커 팔머는 “공간의 개방성은 경계들의 견고함에 의해 만들

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파커 팔머는 배움의 공간에서의 환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배움은 언제나

변화를 요구합니다. 앎은 배우는 자를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내도록 요청합니다. 그 과정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합니다.

파커 팔머는 ‘환대’가 그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합니다.

학교 다닐 때 지적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학교를 떠난 지 한참 지났

는데도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진땀이 흘러내립니다.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한테 그러나’, ‘나는 한다고 했는데 어쩌란 말인가’

푸념 섞인 불평과 원망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그런데 혼내는 사람은 그

정도까지 생각한 게 아니었습니다. 잘 알아듣고 고치라는 뜻에서 한 말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적 자체가 너무 싫고 부담스러워서 나 혼자서 감

정을 과도하게 키운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 환대의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널리 환대

▲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9번째 시간. 모둠별로 흩어

져 각자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생각한 것을

나누는 모습. ⓒ이명구

▲ 무제한의 자유는 오히려 아이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사진은 새들마을학교 체육시간. ⓒ새들마을학교

혼돈으로 치달을 수 있는

무한한 개방성이 아니라,

공간의 개방성을 지켜 주는 선,

그 공간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막아 주는 선이 필요합니다.

Page 8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8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받고 두루두루 신뢰를 쌓아 가는 만남, 그 관계가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반응도 달라집니다.

파커 팔머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환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환대는 언약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분위기, 변화시

키는 진리가 가져오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분위기를 창

조한다는 뜻이다.”

지적을 받으면 그 길로 몸과 마음을 고쳐먹으면 됩니다.

고개 숙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버

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두루두루 신뢰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보장된 공

간. 그 공간에서는 낯설음이 환영을 받고 무지가 축복이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허용되고 모든 노력이 다

칭찬받는 것은 아닙니다. 경계 안에서의 자유가 진정 나

를 살리는 자유임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 공간입니

다. 개방성, 경계, 환대가 어우러진 교육 공간은 이렇게

우리의 실제적인 경험, 고민, 소망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커 팔머는 가르침이 창조하는 공간은 실천

을 담보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승은 제자들

을 실천의 영역까지 데리고 갈 작정을 해야 합니다. 새로

움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가르침이 생명력을 지닐 수 있

습니다. 그게 없다면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가르침이

되고, 허울밖에 남지 않은 껍데기 가르침이 되고 맙니다.

학교에서뿐만이 아닙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자기 사무실 이야기로 화제가 번졌습니다. 상급자

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런데 지시 사항의 이행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지시 내리기에만 바쁩

니다. 지시를 받은 사람이 지시를 이행하면 결과가 나올

것이고, 기대했던 바가 어떻게 끝맺음을 하는지 함께 지

켜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생략된 채로 오로지 지

시를 내리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는 상사로서

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시를 이행하는 이

의 성장을 도울 수도 없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가

빠져 버린 경우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아 가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통해 또 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참된 생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역시나 실천이 중요해

집니다. 실천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의 행위가 비로소 생

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에서는 이 생명력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

언약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며 인격적으로 응답한다는 의

미”라고 설명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실천을 끝까지 붙

들게 하는 관계, 그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참다운 교육을

꿈꾸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 아닐까요.

▲ 악기가 익숙해지려면 손에 물집이 잡히는 고통이 필요하지만 연주

의 즐거움은 고통을 이기게 한다. ⓒ새들마을학교

▲ 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함께 책을 읽고 나누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

는 신뢰 관계를 쌓아 가고 있습니다. ⓒ강한종

Page 8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81

지난 삶을 돌아보면 손에 잡히지 않는 진리를 잡아 보고

자 간절히 바란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제

가 늘 취했던 행동은 객관주의적 입장이었습니다. 내가

있는 현실과 한 발자국 떨어져 비판적으로 상황을 바라

보고 모든 것에 적용 가능한 정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사

람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청했고, 그 안에 나의 논리를 세

우고 다른 이의 논리를 반박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납득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배척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

던 것 같습니다. 더욱 견고해지는 내 세계와 도무지 점점

상관없어져 가는 관계를 만나게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간혹 정답인 것 같다고 찾게 되더라도 주어진 추상적이

고 모호한 답들을 내 삶에 적용시켜 살려면 또 다른 고민

을 해야만 했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파크 팔머는 모든 것과 관

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관계 안에서 진리는 인

격적 진리가 됩니다. 나의 삶과 떨어져 모든 것을 조망하

는 진리가 아니라, 내 삶 옆에 바로 붙어 나에게 어떻게

살지를 알려 주는 세세한 가르침입니다. 진리가 그렇게

세세한 가르침으로 다가오게 될 때 진리를 진정으로 만

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진리에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권위

에 대한 노예적 신봉이 아닌 자유로운 자아들이 서로 대

화 속에서 주의 깊게 듣고 응답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이와 내가 대화를 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며 또 그 진리와 내가 만나는 것입니다. 나만 진리

를 알거나, 진리만 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나를

알고 내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이건 서로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 같습니다. 사랑을 하

면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한시도 떨어

지고 싶지 않고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집니다. 그

렇게 되지 않을 때는 깊은 실망에 빠지고 걷잡을 수 없

는 낙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알고 만나지는 순간

을 만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나만의 감

정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

간, 나를 묶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참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참된 배움과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파커 팔머는 말합니다. 내 이해나 지식을

늘려 가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맞대어 알듯 함께하는 이

들과, 또 진리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 서로 사랑하는 일

입니다.

저는 배우는 자로, 또 가르치는 자로 언제나 존재합니다.

나의 전부를 걸고 온 정성과 관심과 성의를 가지고 약속

을 하고 모든 도전과 변화에 나를 열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더욱더 관계에 깊이 투신하라는 요청

입니다.

이 글을 쓰며 저는 여전히 나를 보호하고 싶고, 객관주의

안에 나를 묶어 두고, 그저 추구만 하는 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합니다. 이 마음과 더욱

깊이 싸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묻는 모든 이에게 삶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또 삶을 걸고 잘 배우고 싶습니다.

모둠나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를 읽고 _2014.11.12

윤희윤 _새들마을학교 교사

우리들의 고백

Page 8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8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김은영 _상담심리학 대학원생

우리 모둠은 침묵과 함께 나눔을 시작했습니다. 그 침묵

의 의미가 무엇일까? 책이 많이 어려웠나요? 이 책의 깊

이가 우리들로 하여금 쉽사리 입을 떼기에 주저함을 주

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침묵으로 표현한 뒤 이내

활발히 나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읽고 있

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탁

월한 개인은 옳지 않습니다. 결국 회심을 요구하는 지점

인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한

계를 마주합니다. 찢어진 존재와 세계를 깨달을 때 단절

의 고통을 느낀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고통을 느꼈습니

다. 그러나 그 고통을 넘어 나와 연결된 만남, 세계를 잘

연결하고 만나 가는 경험을 꿈꿉니다. 신실한 관계를 맺

을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저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귀감을 주는 것은

저자의 삶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 또

한 책에 있는 추상적인 언어이지만 삶에서 구체적으로

읽어내려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앎의 주체와 대

상이 괴리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를 계속 변화시

켜야 함을 깨닫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집중해서 관계성을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관계성 앞에 투신하는 공부가 잘 될 때 나머지 공부는 쉽

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동체에서 이런 기운을 형성해

야 합니다. 앎의 주체와 대상이 괴리되지 않는 공부, 그

러한 관계성을 실천해야 함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쪽 눈이 아닌, 두 눈으로 함께 보

고 가르치고 살아가야 함을 배웁니다. 본질을 잘 붙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책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

은 아직 본질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 같

습니다. 본질을 잘 붙잡고 또한 구체적인 삶으로 살아 내

야 함을 깨닫습니다.

교육세미나에서 우리는 ‘관계’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관

계 맺음의 역량을 잘 키우는 것이 교육입니다. 가슴 아픈

현실 가운데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잘 만날 수 있는 것도

지금 나에게 허락된 관계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책임

을 다하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야 만나

게 될 사람들을 잘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송수 _교육공무원

파커 팔머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가장 인상

에 남는 건 교육에 있어서의 우리의 세계관입니다. 이 책

을 통해 더욱 근본적으로 교육의 문제에 다가선 느낌입

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미명하에 ‘가르침과 배

움’ 자체를 대상화하는 현대 교육의 기본 전제에 대해 다

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지식에 대한 정복, 혹은 지배로 전락

할 때 우리는 똑같은 태도로 사람을 대하게 됩니다. 끊임

없이 상대방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내 필요에 따라 관계가

결정됩니다. 자연 만물을 다스리고자 하는 근대인의 가

치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현대인의 소외 문제,

환경의 재앙 등은 객관적으로 지식을 파악하려는 교육의

기본 전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억울한 건 우리는 보통 이러한 전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교육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진리를 알아 가기 위해선 내

가 무언가를 알아 가는 것뿐 아니라 그 진리가 나를 알 수

있도록 나를 그 진리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걸 우리 대부

분은 모르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상호작용이 배움의 과정에서도 이뤄져

야 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여러 학문을 통

해 우리 스스로도 변화에 열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선 ‘가르침과 배움’을 이 책

은 진리에 대한 추구로 설명합니다. 그 진리는 곧 맹세,

언약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상호성, 관련성, 책

임성의 관계로 깊이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배움의 진정

한 의미라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가르침과 배움은 사랑

에 대한 뜻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교육

이 학교 현장에서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도 한층 진일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Page 8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83

박한나 _어린이집 교사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은 생각만 해도 겁이 덜컥 난다. 그것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로 가득할 것 같기 때문이다. 너와 맺는 관계에서 최대한 갈등

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이가 불편해질 것 같

기 때문이다. 나에게 너의 틀을 깨라며 변화를 촉구하는 크고 작은 두드림이

막연히 두렵게 느껴진다. 나는 무수한 변화들로 가득 찬 재미나고 역동적인

삶보다는 잔잔하여 때로는 지루하기도 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는 이런 내 마음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기어코 나를 찾아와

알 수 없는 모험을 즐기라고, 갈등 속에 피어나는 진정한 우정을 누리라고,

너의 틀을 깨고 나와 이전엔 만나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 보자며 나를

부른다. 그 진리의 부름 앞에 멈칫거려지기도 하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환

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며 말이다.

이제 나는 하나씩하나씩 변해 가야 한다.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

게 되더라도 숨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낯선 상황에서 각각의 때마다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즐거움과

괴로움을 진리와 함께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와 함께 새로운 모험에 뛰

어들어 때에 따라 새롭게 알고 만나게 되는 것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것이

내 삶에 허락된 참된 기쁨임을 잊지 않고 싶다.

너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너와 내가 연결

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가슴 아픈 일이다.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기에 서

로의 삶이 너와 나에게 긴밀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유기적인 관계

성 안에 있는 너와 나 사이에 생기는 갈등들을 두려워하며 피하거나 어렵다

고 눈감아 버릴 수 없다. 그것은 너와 나의 관계의 단절을 불러오기 때문이

다. 너와 함께 우리 안에 생기는 갈등을 안고 풀어 가는 과정들을 통해 결국

엔 하나인 너와 나의 관계를 신뢰와 우정으로 쌓아 가야 한다. 이 신뢰와 우

정이 관계 속에서 발생한 갈등의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에

게 줄 것을 믿으며 말이다.

진리를 내 스스로가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함을 벗어던져야

한다. 너와 나 그리고 온 우주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관계 속

에서 분리되어 홀로 존재할 때에는 결코 진리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

야 한다. 진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상황 속

에서 나의 틀을 기어코 유지하고 싶어 하는 태도는 나 혼자의 힘으로 진리와

만나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만함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

고 있는 틀을 깨라는 변화의 요청 앞에 안정적인 삶을 주장하지 않으며 겸손

하게 나를 비우고 바꾸어 낼 수 있어야겠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진리와 기쁘게 만나 가고 싶다.

Page 8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8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말을 통해

소통할 수 있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공

유로 생각에 깊이를 더해 갈 수 있고, 생각의 차이로 생

각을 확장해 갈 수 있습니다. 말을 통해 나와 네가 만나

고 깊어지고 확장될 수 있으니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말이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말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나를 주장하고 강요하며

오히려 나와 너를 만날 수 없게 하는 단절의 도구로 사용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분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위

험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말, 가르침과 배움을 풍

성하게 할 수도 가로막을 수도 있는 말의 위험성과 중요

성을 되새깁니다.

공간 창조

‘가르침이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

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공간이라는 표현은 ‘관계’라 바꾸어도 그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관계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 가르침이라 할 때 그동안 제가 받아

온 가르침은 참 가르침과 거리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진

리가 무엇인지부터가 가르침의 주제가 아니었던 것 같습

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추상적이던 진리라는

개념이 ‘사랑 :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으로 구

체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가르침의 공간, 순종이 실천

되는 관계 안에서 배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진리가 더

욱 분명해지고, 그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역량이 끊임없

이 훈련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관계가 날마다 새롭게

창조되어 가길 소망합니다.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관계의 ‘창조’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어납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관계를 새롭게

창조해 가야 합니다. 이 관계가 서로의 순종을 돕고 있는

지, 반대로 순종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위로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순종을 원하지 않을 때 역시 이 관계는 파괴됩니다.

지금 나에게 요구되는 순종을 구체적으로 해결해 가지

않고서 ‘관계’를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진리

에 대한 순종’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기억하고 일상의 순

종에 힘을 쏟아야겠습니다.

거룩한 독서

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 습득은 필요하지 않을까? 무

엇을 위한 대화인지 돌아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누가 더

많이 아느냐의 경쟁이 아닌, 나와 너의 만남이기에 ‘대화

할 수 있는 지식의 수준’이 만남의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

다. 오히려 지식으로 치장했지만 정작 본인의 생각과 고

민이 없는 사람을 만날 때 큰 벽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에 지식으로 치장하는 독서가 아닌 거룩한 독서로 본인의

생각과 고민을 치밀하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많은 글들 중에서 나와 마주침이 일어나는 글, 내게 의

문을 일으킨 그 지점에서 의문을 끌어가고 마침내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꼭 나를 찾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그렇

게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천천히 ‘나’를 그려 가는 거

룩한 독서를 통해 나를 견고하게 지어 가야 합니다.

침묵, 고독, 기도

그러나 견고하게 지어진 나도 언제든 허물어뜨릴 수 있

어야 합니다. 잘못 세워진 것이라면 말입니다. 침묵은 그

때그때 자기를 돌아보고 잘못 쌓아진 것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자기 성찰입니다. 침묵은 견디기 힘들어 말하지

장미진 _연구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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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85

않는 수준 이상이며, 더 이상 나를 주장할 수 없는 지경

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전히 서는 시간입니다. 다른

어떤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침묵

의 시간을 하루 중 떼어 잘 가져가야겠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을 잘 구별해야겠습니다. 외로움, 즉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으로는 철저하게 나를 만나는 시간, 고

독에 이를 수 없습니다. 철저한 고독으로 나 스스로에게

까지 감추고 있었던 나를 만나는 시간이 고독입니다. 나

를 고독하지 못하게 하는 자기 연민의 감정을 걷어 내고

분명한 나의 민낯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시작은 기도 없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일곱 번 넘

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붙드심 없이는 다시 시

작할 엄두조차 낼 수가 없습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

를 붙잡고 다시 힘을 내야 합니다.

질문 창조

설익은 질문을 농익은 질문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교사

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뿐 아니라 나와 다른 어느 누군가

를 만날 때 질문 창조를 통해 묻고 대답하며 서로를 만나

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깁니다. 설익은 질문, 이해되지

않는 질문을 경히여기지 않고 만나지는 지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질문을 주의 깊게 듣고 다시 질문을 창조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역설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않지만,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

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

우리의 삶에는 이러한 역설이 무수히 존재합니다. 모든

이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죽여야 했던 창조주 하나님

의 역설을 비롯해, 삼위일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

음, 일치를 위한 갈라섬, 만남을 위한 단절 등 수없이 많

은 역설들이 우리 삶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것이 공존하는 것, 이 역설을 통해 우리

삶의 역동을 느낍니다. 이 역동은 보이지 않는 자유를 위

해 스스로 얽매이게 하고, 너를 돕기 위해 너를 반대하게

하며, 만남을 위해 단절을 견뎌 내게 합니다. 치우치거나

고정되어 ‘진리’라 굳게 믿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움직여

냅니다. 진리에 다다르는 길에 어떠한 제한도 없음을, 모

두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도, 심지어 논리적

모순이 있는 것으로도 ‘진리’를 막아설 수 없음을 역설이

라는 장치는 보여 줍니다.

환대

타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 나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분명하게 듣게 된다는 역설도 있습니다. 역설이라는 장

치를 통해 진리에 다다르는 길이 치우치고 고정된 나와

너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생각하게 되는 한편, 그 열린

길도 나와 너 따로 갈 수 없음을 생각합니다. 연결된 서

로를 통해 특별히, 나와 다른 방향의 너를 통해서 진리로

끌어당겨지고 있습니다.

너, 나 아닌 너, 특별히 나와 다른 너를 만날 수 있는 길

을 환대에서 찾습니다. 다를 수 있고, 틀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힘껏 진리

로 견인해 가는 것임을 기억할 때, 서로의 존재를, 불편

함을 초래하는 서로의 다름까지를 환대할 수 있습니다.

나 또한 환대받고 있습니다. 다를 수 있고 틀려도 됩니

다.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관계 안에서 두려움 없

이 진리를 향할 수 있습니다.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환대

받고 있는 은총,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은총, 하

나 되게 하신 은총을 힘써 지켜 가야겠습니다.

Page 8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8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박현지 _중학교 교사

저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처음 읽고 ‘배움의 공간’을 창조하는데, 서로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데 저의 역할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후 교실에서 제 모습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아직 한참 부족한, 아니, 다시 한참 멀어져 있는 저를

보았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가르치는 자의 영성 훈련

부분을 읽으면서 희망이 생겼고, ‘여기서 출발하면 되겠다. 처음부터 다시’를 생각

했습니다.

누군가에 맞춰 부합할 수도,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부족한 나 자신

을 걸어야 하고 이 모든 순간에 파커 팔머가 말한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

을 느낍니다.

가르치는 자는 그래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

의 영성을 훈련하고 기도와 초월로써 모든 단절을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가르치는 자는 어떻게 이 훈련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의 힘은 어디

에서 오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

으면서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가르치는 자의 꾸준한 영성 훈련을 가능케 하는

힘은, 그와 삶을 함께 나누어 가는 공동체에 있습니다. 프리스쿨의 교사 공동체와

같이, 일상을 함께 나누는 관계 안에서 가르치는 자가 자신을 열어 둘 때에야 교사

자신이 먼저 충실과 진리에 순종, 언약 관계, 환대, 침묵, 경계, 감정 표현, 합의,

고독, 전문 분야를 벗어나는 훈련의 의미를 진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절을 벗어나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를 열어 둘 때

우리는 배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은혜’를 만나는 기쁨

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들의 말은 최봉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

과 같이 삶과 행위가 일치하여 충만함으로 인해 ‘툭’ 터져 나오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 그 말이야말로 비로소 초월성을 지니고, 모든 시공간에서 그 힘을 발휘할 것임

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학

부모님들은 같은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은 벅찬 감동과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배경은 다양하

지만 ‘교육’이라는 주제로 한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저를

새롭게 해 주었습니다.

Page 8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87

지난 5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9번째 시간은 앞서 대안교육의 길을 걸

어간 선배들의 ‘교육 이념’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오산학교, 풀무

학교, 거창고등학교, 간디학교, 이우학교, 밝은누리움터 등 6개 학교의

정신을 담은 글에는 현수 학생이 말했듯, ‘공동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

았다. 생명의 교육을 고민하는 참석자들은 선배 교육 공동체에게 한 수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둘러앉았다.

교육과 공동체는 함께 가야

먼저 살펴본 곳은 1907년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다. 식민

치하에서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깨우려 했던 오산학교는 우리 역사에

대한 공부와 함께 신학문을 도입하고 실천을 강조했다. 오산의 졸업생들

은 독립운동의 핵심 지도자로 자랐다. 개인의 출세나 영달보다 남을 생

각하고 민족을 생각하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정

신을 배웠다.

이승훈 선생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경・애・성(敬愛誠)을 교육 목

적으로 삼았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스승을 공경하며(敬), 민족을 사랑

하고 국가를 사랑하며(愛), 진실하고 성실하게 거짓이 없이 사는 삶, 또

이를 따르는 학생들을 기르자(誠)’고 했다. 이는 오산의 교훈인 ‘사랑・

정성・존경’으로 이어졌다.

‘평화・생태・공동체’를 강조하는 풀무학교(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이승훈 선생의 조카였던 밝맑 이찬갑 선생이 1958년 충남 홍성에 세웠

다. 전쟁 이후 피폐해진 조국을 살릴 길은 ‘농업’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

찬갑 선생은 농업은 단순한 식량 생산이 아니라 환경과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는 평화산업이라고 봤다.

농업과 생태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히 지역 사회에 뿌리박은 일꾼들을

길러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풀무는 지역에서 배우고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했다. 풀뿌리 주민자치, 유기농

대안 학교, ‘대안’이 되어선 안 된다?

글_이명구

기사 ⑰ 오산학교·풀무학교 등의 교육 이념을 함께 읽고 _<오마이뉴스 2014.12.9>

“대안적인 가르침과 배움을 펼쳐 왔던

학교들의 교육 이념을 읽으며

공동체라는 단어가 눈에 쏙쏙 들어왔어요.

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두 책을 보면서도

‘교육과 공동체는 함께 가는 거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_새들마을학교 16살 석현수 학생

▲ 지난 5일, 생명의 교육을 고민하는 참석자들은

선배 교육 공동체에게 한 수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

로 자리에 둘러앉았다. ⓒ강한종

Page 9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8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업, 협동조합운동, 도농직거래, 지역 문화 등의 활성화

를 꾀했다.

풀무의 인재상은 ‘더불어 사는 평민’이다. 풀무가 말하는

평민이란 ‘국가 사회의 기초이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

고 성적이나 지위나 재산을 판단 기준으로 보지 않으며,

나와 남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기본적 가치관과 교양과 실

무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공격적이고 자학적인 관계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인간관계, 이웃과 나누고 협동하는

보통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이 바로 풀무가 지향하는 바다.

1953년 설립한 거창고등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주 시민 양성을 교육 목표로 삼는다. 인간 삶의 궁

극적 목적은 하느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

이라 강조하는 거창고는 이웃에게, 민족에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거창의 인재상은

타인을 깊이 배려하고 남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거창고는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평화롭게 사는 것

이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평화는 일치(合一)의 상태를

말한다. 남과의 관계에서든, 자기 자신 내에서든 평화는

하나 됨을 뜻한다. 인간의 평화는 절대 진리에 복종하는

것이고, 이것이 실생활에서는 공존의 형태로 나타난다.

진정한 공존으로서 일치된 평화를 이루려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먼저 내어 주어야 하고, 내가 먼저

희생해야 일치가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간디학교는 주입식 교육과 입시 위주 교육, 학원 폭력

문제와 조기 유학 붐 등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마음에서

1997년 탄생했다. 현재 산청, 금산, 제천, 필리핀 등의 지

역에 퍼져 있는 간디학교의 교육철학은 ‘사랑’과 ‘자발

성’이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 사이에는 우정과 사랑

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사랑’은 서로에 대한 믿음, 서로의 행복과 기쁨

을 비는 순수한 기도와 축복, 그리고 그것을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가르침과 배움은 자발성을 가질 때

가치가 있다. 강제적으로나 타의에 의해 마지못해 이뤄

지는 것은 기쁨을 낳지 못하며 오히려 불행과 고통을 초

래한다고 말한다.

“사랑과 자발성은 서로 의존적이다. 사랑에 기초한 교육

은 결코 강요되거나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발성

을 전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자발성에 기초한 교육

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

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이루어지

고 배움과 가르침이 순수한 자발성 위에서 이루어질 때

에만 비로소 참교육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 (간디고등

학교 학교장 경영관 중)

이우학교 역시 공교육을 염려하는 이들이 세웠다. 100명

의 공동설립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립된 이우는 도

시형 대안학교를 지향하며 2003년 경기도 분당에 자리

를 잡았다. 이우가 지향하는 인재상은 더불어 사는 사람

▲ 풀무학교가 터 잡은 홍성군 홍동면 마을활력소에서 풀무학교에 대힌 설명을 듣고 있는 새들마을학교 학생들.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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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89

이다. 성・계급・인종・종교・장애 여부를 떠나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과 환

경을 소중히 여기며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을 길러 내려 한다.

다만 이우는 “학교 부적응아를 모집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 가는 데 한몫 해낼 자

질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선발한다는 원칙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학생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속단하긴 어렵지

만, 사회성과 감수성, 지적 능력과 의지력, 창의력과 체력 등을 종합적

으로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양육 철학과 방법, 기대 사항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밝은누리움터는 관계 맺는 마지막 한 명까지 경쟁 상대로 대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질서는 자기 자신도 온전한 생명으로 살지 못하

게 만드는 죽음의 질서라고 본다. 이 죽음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

을 만드는 것은, 바로 마을을 회복하는 길이다. 그리고 하늘땅 곳곳, 농

촌과 도시에서 다양한 마을공동체들이 연대하여 생명과 평화를 구현하는

마을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짚는다. 현재 서울 북한산 ‘인수마을’, 강

원도 홍천 ‘생명평화마을’, 경기도 양평 ‘지평마을’ 등이 연대하고 있다.

밝은누리움터는 초등까지는 마을배움터를 통해 교육하고, 중등 이후 과

정은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으로 나눠서 가르친다. 삼일학림은 고등・

대학 통합과정이다. 초중고와 대학으로 나눠진 편제 자체에서 오는 상

상력의 한계를 극복해 과도한 대입 위주 교육과 대학 서열화가 만들어

내는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 삼일학림은 청소년, 청년, 성인이 나눠지지

않고 함께 배우고 익히는 것을 지향한다.

극복하려는 현실 인식이 교육 이념에 녹아들다

평소 모둠별로 토론하던 것과는 달리, 이번 시간은 전체 토론으로 진행

했다. 사회를 맡은 최봉실 교장은 “가장 좋은 의견 앞에서 기꺼이 고개

를 숙이고 인정하는 자세로 있는 것을 ‘연찬’이라고 한다. 이 시간이 연

찬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운을 뗐다.

“각 학교들의 교육 이념을 읽으면서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

각했어요. 배움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는 것 같아

요.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랑의 힘을 믿고, 사랑이 창조하는

힘에 기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수임 님)

조우영 님은 교육을 고민한다는 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

▲ 신수임 님은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랑의 힘

을 믿고, 사랑이 창조하는 힘에 기대야 하는 게 아닐

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한종

▲ 조우영 님은 교육을 고민한다는 건 지금 우리에

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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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일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교육 이념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고, 어떤 게 가장 시

급한가를 고민하면서 나름대로의 답을 적어 놓은 것이라

고 정의했다.

그는 새들마을학교가 교육 이념을 세운다면, 인간의 ‘욕

망’에 대해서 언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어떻게 욕망의 방향을 선하게 이끌어 갈 것인

가에 대한 고민을 넣었으면 했다.

이동원 교사는 대안학교가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본래 교

육 이념을 잃어버릴 위험을 지적했다. 오산학교가 총독

부의 인가를 받는 문제를 놓고 고민했던 이야기와 풀무

학교가 교육부 인가를 받은 후 발생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된 이야기를 꺼냈다.

인가를 받은 후, 오산은 본래 목적했던 민족의 인재를 키

워 내는 데 한계에 부딪혔고, 풀무는 원 취지와는 달리

내신 성적 조건으로 인해 홍성 지역 학생들이 입학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이동원 교사는 이렇듯 인가를 받으

면 설립 취지를 놓치게 될 것을 우려해야 하는 현실이 안

타깝다고 했다.

윤희윤 교사는 학교가 본질을 잊지 않으려면 학교의 주

체인 학생과 교사, 부모가 자기 삶으로 이 교육 이념의

본질을 철저히 고민하며 구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자기 고민 속에서 실제 삶에서 본질을 붙들게 될

때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 본질 안에

서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가 형성된다면, 학교의 본질을

지키는 데 건물이나 체계 같은 외형의 유무는 아무 문제

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승은 님은 각 학교들이 자신의 교육 이념대로 삶을 살

아가는 학생을 길러 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이밀알 교사는 ‘이념이 삶으로 살아지지 않으면 무슨 소

용이 있느냐’는 말이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실제

로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념은 이상적인

내용으로 담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현해 나가는

방법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대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핵심인 거 같아요. 풀무나

밝은누리움터는 자체 대학 과정을 마련하여 대학 걱정으

로 다시 매몰되어야 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있는데, 다른

학교들은 여전히 대학 입학 문제 앞에서 거부했던 교육의

여정에 다시 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안 교육이 근본적

으로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

는지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할 것 같아요.”

이밀알 교사는 참만남이 이뤄지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덧

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공동체 속에서, 특히 마을

속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김재광 님은 부모, 또래, 어른뿐 아니라, 이모삼촌 나이

의 동네 이웃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경험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꼭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동네 이모삼

촌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직

접 보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

모삼촌들의 삶을 보며 배울 수 있고, 또 다양한 가능성들

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모삼촌들도 학생들이

배워 가는 것을 보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터럭만큼이라도 선한 마음이 있다면

최봉실 교장은 각 학교가 세워질 때마다 학교 설립의 중

요한 토대였던 그 시대 상황을 짚었다. 오산은 일제강점

기라는 현실에서, 풀무는 전쟁 후라는 배경에서 세워졌

▲ 이승은 님은 각 학교들이 말하는 교육 이념대로 삶을 살아가는 학

생을 길러 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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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91

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교육 이념을 실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시대가 어떤 현실인지, 그리

고 그 현실에서 요청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최 교장은 지금의 주류 교육은 자본주의의 현실을 반영

하는 교육이라고 평했다. 관계를 내 이익을 채우는 도구

로 전락시키며 무한 증식과 무한 파괴를 긍정하는 신자

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부응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교육 이념이 된다고 했다. 최

교장은 이런 현실에서 자본의 체계를 따르는 교육을 시

킬 것인가, 진정으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시킬 것인가

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최 교장은 대안 교육이 위협받는 현실을 개탄했

다. 인가받는 문제로 풀무학교가 지역의 일꾼을 길러 내

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올바르고 선한 이념으로 학교를 운영하고자 하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를 통탄했다.

“우리는 대안적인 학교를 세워 가는 분들의 글들을 읽었

습니다. 이게 대안인가요? 아닙니다. 이건 대안이 아니

라 ‘진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입니다. 진짜를 대안이

라고 말하는 게 안타까운 겁니다. 이건 분노하고 통탄할

일입니다. 왜 이런 교육이 대안이 되어야 할까요. 모두를

위하는 이 선한 노력을 왜 대안이라고 지칭해야 할까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에 반하는 모습이 우리 삶의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최 교장은 이런 현실은 누가 만들고 있는지 되물으며 그

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은 우리 자신, 바로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

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인간

이라는 존재의 현실을 처절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인간이

선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소망하는 것만큼, 인간

의 욕망과 이기심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소망에 반하

는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의 현실을 인식하고 제대로 싸워 가기 위해서

는 정직하게 성찰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다고 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이고 타인을 기만하려

는 현실을 극복하는 힘은 관계 앞에서 거짓됨 없이 진실

하게 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솔직하게 돌아보는 것을 훈련합니

다. 잘못했을 때,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뭘

잘못했는지 스스로 답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피합니다.

잘못한 것을 이야기 안 하려 합니다. 지금은 너무도 쉽

게 바로바로 뭘 잘못했는지 말합니다. 그전에는 ‘사랑받

지 못하지 않을까, 벌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었

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믿음과 신뢰 속에서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얼른 돌이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요.”

최 교장은 배우는 과정에서 무지가 축복일 수 있다고 했

다. 모를 수 있는 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펼쳐진 것이

다. 내 존재의 부족함이 드러난 것은 쓰라린 것일 수 있

지만, 멸시하거나 숨겨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다른 이의 진실을 만나려고 하고, 기꺼이 관계 안에서 자

신을 드러낼 수 있고, 공유된 진실 위에서 선한 일을 도

모해 가는 것, 그것이 교육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

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는 선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

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선한 마음이 생길 때 지체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터럭

만큼이라도 선한 게 올라오면 생명줄 붙잡듯이 잡아야 합

니다. 여러분 속에 100분의 1만큼이라도 선한 마음이 있

▲ 믿음과 신뢰가 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돌아보게 된다. 사진

은 들살이에서 하루 돌아보기를 하는 새들마을학교 학생들. ⓒ새들마

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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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여러분의 생명을 살리고 옆 사람의 생명

을 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악착같이 그 선한 마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힘든 싸움입니다. 하지만 같이 하면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연대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정직할 수 있는 힘과 용기

최 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참석자들은 정직할 수 있는 힘과 용기

가 어디에서 비롯될까를 놓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윤희윤 교사

는 “신뢰하는 관계의 힘이 자신을 솔직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

승은 님은 “다른 사람을 쉽게 규정하지 않는 자세와 자기 내면을

진솔하게 돌아보는 것에서 정직해질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 같

다”고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솔직한 힘이 나오는 것 같습니

다.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려는 것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서 진

실을 마주하는 게 필요합니다. 진실을 마주할 때, 자신의 수준이

한참 못 미치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

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라지는 듯한 두려움을 넘어 진

실에 터 잡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새들마을학교 김민수 교사의 말이다.

끝으로, 최 교장은 진실이 주는 참된 기쁨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고 조언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거나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

날 때, 진실로부터 숨고 싶은 충동에 우리는 시련을 겪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진실을 받아들였을 때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 찾아

온다고 말했다. 진실에 기꺼이 나아가기까지는 고통스럽고 두려

울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 진실에 직면했을 때 온전한 기쁨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고 했다.

“진실은 지금 현재 상태가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는 진실입니다. 이 진실

을 잘 붙잡고, 이것이 모두에게 참된 기쁨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

고, 우리가 그런 진실한 존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한다면, 진실하

게 되는 경험을 더 많이 축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물론 쉽지 않지만 인간으로서 우리의 몫은 진실에 이르는 그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그 여정의 자리에서 감사하고 충실하

게 노력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윤희윤 교사는 “신뢰하는 관계의 힘이 자신을 솔직하게

한다”고 말했다. ⓒ강한종

▲ 함께 하면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된다. ⓒ강한종

터럭만큼이라도

선한 마음이 있다면

악착같이 그 선한 마음을

붙들어야 한다.

Page 9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93

너무 솔직해서 절교까지 당했던 나,

왜 이렇게 됐지

글_윤희윤

기사 ⑱ 솔직할 수 있는 힘 _<오마이뉴스 2014.12.12>

“직장에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려면 서로 솔직해야 한다

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솔직하려고 하니까 굉장

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 참석자의 나눔을 들으며 순간 고민에 빠졌다. 과거에

는 자랑스러울 정도로 내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

실 솔직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길을 밝히

는 교육 이념’ 읽기로 모인 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

학교 아홉 번째 시간, 나는 지난 나의 삶과 배움을 돌아

보게 되었다.

솔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교육문화연구학교 참가자들은 오산학교, 풀무학교, 거창

고등학교, 간디학교, 이우학교, 밝은누리움터 등 6개 학

교의 교육 이념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활자이

긴 했지만 각 학교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만났다.

이 학교들이 먼저 뜻있고 힘 있게 걸음을 뗀 것에 감사했

고, 뒤이어 또 함께 걷고 있는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 생

각했다.

학교라는 공간에 큰 의미를 둔 적이 없다.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그럭저럭 했다.

나쁜 선생님도 있었지만 떠올리면 웃음 짓게 하는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다. 친구들과도 재밌게 보냈다.

그런데 왜 의미가 없었을까. 배운 것이 없다. 선생님 그

림자는 밟아서는 안 되고, 결석은 용납하지 않는 부모님

덕에 매일 학교에 갔는데 배운 게 없다. 돌이켜 보면 개

개인의 관계 안에서는 분명 좋은 가르침도 있었지만 학

교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배움은 온통 뜯어고쳐야 할 것

뿐이다.

<도덕> <윤리> 과목은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쳤다. 그 배

움에 충실하게 정직하게 살려고 했다. 내 생각을 항상 솔

직하게 말하고 내 상황을 정직하게 나눴다. 학교에서 사

회에서 나는 솔직하고 쿨한 사람이었다.

그런 솔직함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대학교 때 한 친

구가 절교를 선언했다. 솔직한 내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됐다. 왜 솔직하게

▲ 교육문화연구학교 아홉 번째 시간은 ‘이 시대의 길을 밝히는 교육

이념’ 읽고 나누는 시간으로 모였다. ⓒ강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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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나눈 건데 그 이야기를 어려워하는 걸까. ‘왜 너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니’라고 묻고만 싶었다.

더불어 함께 살자며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안양으로 이사를 하고 공동

체적 가치를 담은 대안학교인 새들마을학교를 시작했다. 함께 살며, 학

교를 하며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상황, 진심을

묻는 질문이 부담스러워졌다.

몹시 아픈 때가 있었다. 이곳저곳 병원에 가도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딱히 답을 찾을 수 없이 고통만 지속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

서 어떻게 아프냐고 물었다. 그런데 내 몸 상태에 대해 이리저리 묻는

질문이 싫었다. ‘왜 저렇게까지 묻지. 내가 어떻게 아프다고 하면 도와

줄 수 있는 게 있나.’ 나도 책임지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책임질 수 있을

까 하는 불신이었다.

함께 살고 일하니 일터에서 잘못한 일이 일터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내

삶의 전반의 문제가 되었고 일 처리의 수정이 아니라 삶의 변화가 요청

되었다. 그렇게 되니 내 삶 깊숙이 들어오는 질문이 싫었다. 회피하고

싶었다. 난 뭐든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하

고 싶지 않은 부분이 많아졌다.

나의 솔직함은 꾸며진 거짓이었다

이런 마음은 아이들을 정직하게 만나지 못하게 했다. 선생님인 내가 아

픈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니 아이들도 그렇게 나를 만났다. 한 번은

체육시간에 한 친구가 공에 맞았는데 그 옆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죽는 거 아니야.”

내가 나의 이야기를 숨기게 되자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는 아이들이 공

감됐다. 문제가 있으면 드러내 해결해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그것을 요

청하기가 어려웠다. 문제 뒤로 숨는 아이, 입을 다물고 선생님과는 이야

기할 수 없다는 아이, 그냥 자신을 놔두면 안 되겠냐는 아이를 만나며

내 모습을 보았다. ‘내가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

니 끔찍해졌다. 공동체를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에게 철저히 개인주의를

가르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솔직함을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온

나였는데, 왜 나의 솔직한 상황과 마음을 묻는 질문이 부담스러웠을

까. 솔직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법은

▲ 더불어 함께 살자며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함께

집을 구하고 청소하고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새

들마을학교

▲ 믿음과 신뢰의 관계는 오가는 말 속에 진실을

담게 된다. ⓒ새들마을학교

Page 9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95

배우지 못했다. 이야기만 할 줄 알았지, 하고 들은 이야기에 대해 책임

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의 솔직함은 솔직함을 위해 꾸며진 거짓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서도, 정작 솔직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솔직하지 못했다. 다른 이에게 나

를 온전히 드러내고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내

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 앞에

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비단 이것뿐이었을까. 옆에 있는 이는 경쟁자라고 배워 온 지난 삶은 함

께하는 동료 선생님을 무의식적으로 경쟁하게 했다. 내가 놓친 부분을

다른 선생님이 챙겨 주면 고마워야 하는데 불편했다.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누가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내는 답이 정

답일 때 더 기뻤다. 함께 칭찬받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

이라면 칭찬받는 건 나고 혼나는 건 상대일 때 마음이 놓였다.

관계의 전환... 나도 아이들도 변했다

그런 나를 발견하는 데는 동료 선생님, 아이들과의 만남이 큰 힘이 됐

다. 자신의 이기나 이익이 아닌 사랑으로 점철된 관계 앞에 서게 되었

을 때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깰 수 있었다. 옆 선생님이 나의 잘못을 지적

한다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지적이 아니라 그 근본에는 그 일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내가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챙겼다.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를 대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아는 순간 아이처럼 기

뻐했던 한 선생님의 얼굴이 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아이들을 만날 때 아이들도 진심을 알아주었다. 자신을 감싸고 열지 않

던 아이들도 사랑의 관계 앞에 서면서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켰다. 혼나

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긴 시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서로를 깨우는

도움의 말을 기꺼이 듣고 전했다. 옆 친구가 잘하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

고, 못하면 잘하기를 온맘 다해 응원했다.

아픈 것을 동료 선생님들과 나눈 후 선생님들과 이웃에 살던 친구들 중

몇이 같이 단식을 하고 45일간 생채식을 했다. 여기저기 방사능을 맞으

며 하던 무의미한 검사를 중단했다. 잠시 동안 고통을 면제해 주던 진통

제도 먹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잤다. 그 후로도 가끔씩 아프기도 했지만

통증의 농도와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며 먹을거리

를 대하는 내 삶의 태도와 밤늦게까지 놀기 좋아하던 습관이 바뀌었다.

▲ 나를 발견하는 데는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

의 만남의 힘이 컸다. 사진은 간디학교 양희창 선생

님과 새들마을학교 선생님들. ⓒ새들마을학교

자신의 이기나 이익이 아닌

사랑으로 점철된 관계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깰 수 있었다.

Page 9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9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학창시절에 만난 학교는 그렇지 않았지만 교사가 되어 만난 학교라는

공간은 나에게 가르침과 배움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지자 그 가르침과 배움은 나를 변화시켰고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우리 학교에 올 때 대안학교에 오며 기존 교육 질서에서 멀어질 것을 두

려워하던 아이들이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금의 배움을 즐

기게 되었다. 근처에 어울려 사는 동네 이모삼촌들을 보며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신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이긴다.

수학을 너무 싫어했던 아이는 수학 자체의 기쁨을 알고 수학 수업을 기

다린다. 누군가의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던 아이는 자신의 생

각을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나눈다. 채소가 먹기 싫어 쌀알보다 더 작게

조각을 냈던 아이는 시금치가 맛있다며 두세 번 더 떠서 먹는다. 자신이

제일 잘 해야 맘이 놓이던 아이는 자기보다 더 잘하는 친구를 마음으로

축하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던 아이들

이 TV 속에서만 만나는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야

기한다. 개그만 유재석은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유재석이 아니라 유재석

아저씨다. 아이들의 세세한 변화를 기록하기에 이 지면이 너무 적다.

이런 변화를 경험하며 우리 학교나 다른 대안학교뿐 아니라 지금 이 시

대 아이들이 다니는 모든 학교가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서로를 변

화시키고 이 시대의 문화를 생명을 살리는 문화로 변화시키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더욱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삶으로 믿는다. 그 마음을 여섯 번째 시간에 읽었던 책 <두려움과 배움

은 함께 춤출 수 없다>의 한 구절로 표현해 본다.

“우리가 어떻게 그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누군가 한 명의 아이를 진실로 구원한다면

그때는 이 세상을 구원했다

할 만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 채소를 먹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은 가르침의 본

질을 만나며 채소도 조금씩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새들마을학교

▲ 새들마을학교의 행사는 마을 모두의 행사다. 동

네 삼촌들이 아이들의 일 년 갈무리를 축하하며 축

하 공연을 하고 있다. ⓒ새들마을학교

▲ 새들마을학교 아이들은 동네 이모삼촌들을 보며

삶이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배운다.

사진은 어울림잔치.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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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97

“숙제 안 한 날, 학교가 불타는 꿈 꿨다”

글_이명구

기사 ⑲ 간디교육공동체 양희창 대표의 행복한 학교 만들기 _<오마이뉴스 2014.12.17>

1988년, 중학교 2학년 여학생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

었다. 유서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썼다. 간

디교육공동체 양희창 대표(아시아평화학교, 간디학교 전

교장)는 그때 교사가 될 생각을 처음했다. 교사가 되면

아이들의 날개를 절대 꺾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더니 학교를 세우게 됐다고 말한다.

양 대표는 초등학교 방학이 끝날 때쯤마다 학교가 불타

는 꿈을 꿨다. 숙제를 안 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불이 안

나고 엉덩이에만 불이 났다. 많이 맞았다. 하루에 100대

씩도 맞았다. 간디학교를 세운 다른 이유다. 그는 학교생

활이 행복했으면 학교를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지난 12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10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양희창 대표를 만났다. 이전 시간에 간디학교의

교육 이념을 읽고 공부했던 터라 반가움이 더 컸다. (관

련 기사 87쪽 : 대안학교, ‘대안’이 되어선 안 된다) 양

대표는 ‘한반도, 아시아, 세계를 위한 교육’이라는 주제

를 들고 왔고, 참석자들은 우리의 교육이 만들어 갈 세상

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맞이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요즘 강남 초등학생은 하루에 4시간 내지 6시간 잔다고

한다. 양 대표는 이를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라고 칭했

다. 지금 우리 교육은 불안을 먹고 사는 교육이라고 표

현했다.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올라가기 위해 경쟁한다.

확률・통계적으로 97~98%는 꼭짓점에서 탈락한다. 공

부해서 소위 성공할 확률은 2~3%밖에 안 된다. 경쟁에

서 탈락한 아이들은 패배감덩어리가 된다고 양 대표는

지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걸러진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취직 공장에 갔는데도 취직이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취

직을 해도 전망은 밝지 않다. 나만 비정규직인 줄 알았는

데, 옆 친구도 비정규직이다. 어찌어찌 정규직이 되더라

도 50대가 될 때쯤 명예퇴직 대상자 명단에 오른다. 회

사를 떠난 뒤 퇴직금을 끌어다 식당을 차린다. 열에 아

홉은 망한다. 열이 받는다. 암에 걸린다. 2~3년 고생하

다가 2~3억 원정도 쓰다가 죽는다. 다소 극단적으로 양

대표가 표현한 암담한 세상의 단면이다.

▲ 간디교육공동체 양희창 대표는 ‘한반도, 아시아, 세계

를 위한 교육’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이명구

Page 10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9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다람쥐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이런 틀을 강화시킨 건 교육입

니다. 공부해서 성적을 올릴수록 자기 자신을 상품화시킵니

다. ‘나는 일류대 출신이야’, ‘나는 최저 시급의 알바야’라고

자기를 규정하도록 하고, 거기에 매여서 살도록 만듭니다.

한 교육학자는 이를 ‘빈곤의 합리화’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못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도록 한다는 거지요.”

양 대표는 우리 안에 있는 불안을 끄집어내어 경쟁으로

내모는 ‘틀’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세상 속에 살아서는 안 되지 않을

까요. 대안교육은 ‘변화’를 위한 교육이지, ‘적응’을 위한

교육이 아닙니다. 적응이 아닌 변화를 위한 교육입니다.

10년 후에 살고 싶은 세상이 이런 암울한 세상이면 안 되

겠지요. 내가 변화하고 이웃도 변화시키고 세상도 바꾸

자고 대안교육을 하는 겁니다.”

때리지 않고 경쟁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양 대표는 1997년 간디학교를 시작했을 때 지금처럼 거창

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고 말한다. 좋은 학교, 때리지

않는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처음에

간디학교에는 일명 부적응아들이 많이 왔다. 학생들은 마

냥 놀았다. 주 무대는 주로 산이었다. 3년 동안 2년 6개월

을 아예 교실에 안 들어온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너무

놀다가 심심하다고 공부할 거 없냐면서 수업에 들어왔다.

그러나 안 때리고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

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는 그 다음 단계의 요구가 있었

다. 이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니 ‘그래도 대학은 가야겠

지요’라고 물어왔다. 마땅한 다른 길이 없으니 학생 중

80%는 대학을 갔다. 양 대표는 대안적인 삶을 위한 교

육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앎이 삶이 되는 교육 말이다.

농사 등 의식주 교과라든지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

는 교과 등을 심화해서 가르쳤다. 세상 속에서 떳떳이 땀

흘리며 발을 딛고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안적인

삶은 마을이 책임져야 하고 공동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졸업생들이 애프터서비스를 해 달

라고 학교에 찾아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게 세상에서 하

나도 통하지 않는 거 같다고 말합니다. 혼자서 부대끼기

는 너무 힘든 세상입니다. 협력해서 우리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연대해서 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

히 느낀 겁니다.”

양 대표는 “교육 공동체는 지식 전달을 넘어 마을을 단위

로 하는 삶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대안 교

육은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양 대표는 이를 위해서 필요한 항목을 세 가지 들었다.

남을 배려하고, 삶을 기획하고, 역경을 극복하는 교육

먼저는 ‘배려’의 교육이다.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양 대표는 경쟁 교육은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고

▲ 강남 초등학교 수면 시간을 보도한 한겨례 기사 갈무리. ⓒ한겨레

▲ 지난여름,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이 제천간디학교에 생태탐방을 했

다. 간디학교 운동장에서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이 뛰어노는 모습. ⓒ새

들마을학교

2015. 2. 21. 오후 10:46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1/2페이지http://www.hani.co.kr/popups/print.hani?ksn=668013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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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110명 설문조사초록우산, 110명 설문조사

하루 여가시간 4시간 밑돌고하루 여가시간 4시간 밑돌고

“친구와 놀때조차 공부 걱“친구와 놀때조차 공부 걱

정” 정”

‘새벽 2시30분에 잠들어 아침 7시

에 깨어나기. 오전 8시에 등교해서

오후 3시 하교. 3시간 더 영어학원

에서 공부하고 저녁식사. 밤 10시

까지 수학학원. 집에 돌아와서는

새벽 2시30분까지 영어·수학학원

숙제에 피아노, 한자, 중국어 공

부.’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직접 그린, 둥근 돈가스 접시 크기의 일과표는

6개 칸막이만으로 하루가 정리됐다. 일과는 너무나 단순했고, 잠자는 시간은 4시간

30분에 불과했다. 대입 수험생도 버티기 힘든 일정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어린이 연구원으로 선발된 초등학교 5~6학년생 23명이 8

일 ‘대한민국 아동을 말한다’라는 보고서를 냈다. 어린이 연구원들이 서울과 충북

충주 지역에 사는 또래 110명을 직접 조사한 설문 내용은, 보고서 소제목처럼 ‘공

부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대입 수험생처럼 하루를 사는 초등학생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어린이들은 보통

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학원 숙제가 많으면 밤을 새우거나 늦게 자야 한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하루에 5시간만 자도 많이 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 아

이들의 평균 취침 시간은 새벽 1시다. 그 많은 숙제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

Page 10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99

짚었다. 바로 옆에서 고통받고 있는 친구를 봐도 아무 감

정의 변화가 없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양 대표는 학교

에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

면서, 배려는 가르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

면서 배울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지금 관계 맺고 있는 사람과 사이가 좋으면 행복한 겁

니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권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혼자 있으면 불행합니다. 조금 못 살아도 좋고 실패해도

좋습니다. 남과 연대해서 같이 살아가는 것, 이웃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을 잊게 만드는 게

경쟁 교육입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

닫지 못하게 합니다. 배려하는 교육은 우리 모두가 이 세

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교육입니다.”

양 대표는 남을 배려하려면 우리의 삶을 ‘기획’할 수 있

어야 한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과 함께 같이 잘

사는 방식이 없을까 고민하는 것이 기획이라고 했다. 다

른 말로는 “문제의식을 사회화시킬 수 있는 연대체를 꾸

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의 구조를 함께 공부하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 나가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가져야

하는 창의적인 자세라고 말했다.

삶을 기획하려면 역경을 극복해 내는 힘이 필요하다. 양

대표는 ‘역경 지수’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힘들면

포기하고 어려움이 생길 때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빡세게 고생해 봐야 합니다. 자식을 애기로 만들고 나

이가 들어도 부모가 계속 무한 리필을 해 줍니다. 청소년

기에는 지랄 총량의 법칙대로 지랄을 떨어야 하는데 순

둥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운동장도 달리고, 가출도 하

고, 연애도 하고, 유리창도 깨야 하는데 그걸 안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이길 줄 모릅니다. 아이들이 역경을 이

겨 낼 힘을 기르도록 해야 합니다.”

양 대표는 역경 지수를 높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

로 스마트폰 사용을 꼽았다. 스마트폰에 길들여져서 과

도하게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계를 쓰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기계가 나를 쓰고 있고 은밀히 조종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부모도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도 읽

고 꽃도 가꾸고 가족과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아는 학생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양 대표의 강의에 질

문으로 화답했다. 한 학부모는 간디학교를 졸업한 학생

들이 배운 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가를 궁금해 했다.

간디학교 졸업생들은 외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다른 것 같다고 양 대표는 답했다. 대학을

가기도 하고 해외를 나가기도 하고 연극이나 도자기 등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가는 경우도 있다. 자기 길

에 따라서 대학에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양 대표가 보기에 간디 졸업생들은 자기가 뭘 해야 하는

▲ 지금 관계 맺고 있는 사람과 사이가 좋으면 행복하다. ⓒ새들마을

학교

▲ 새들마을학교 생활기술 시간. 나무를 깎아 모형 집을 만드는 모습.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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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내면

적으로 다르다. 최근에는 농촌으로 돌아오거나 마을을 만

들고자 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도시에서 2~3년 고생해

보고 온 친구들은 시골에 와서 살아도 괜찮을 거라고 말

한다. 그중 두 명의 친구는 간디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다른 참석자는 양희창 대표가 말하는 마을 공동체를 어

떻게 이뤄 가고 있는지 물었다.

양 대표는 산청에서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학교 옆에 땅

을 사서 마을을 만들었는데, 원래 살던 주민과 물과 기름

처럼 섞이지 않았다. 본래 살던 어르신들은 잘난 것들이

좋은 집을 지어서 지네끼리 산다고 생각하셨다. 마을에

서 뭘 해보려고 해도 계속 반대에 부딪혔다.

2002년에 제천으로 오면서는 작전을 바꿨다. 마을에 한꺼

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스며드는 방법을 택했다.

한 가정씩 들어가면서 원래 살던 주민과 서서히 녹아드는

것을 꾀했다. 양 대표는 간디학교의 마을 공동체 형성은

아직 초창기를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같이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아시아인의 정체성

안양YMCA에서 일하고 있는 조우영 님은 대학생 친구

들을 만날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해 오는데 답을

해 주지 못할 때가 있었다고 나눴다. 그 친구들과 함께

길을 모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안 대학들을

찾아보다가 양희창 대표가 꾸리고 있는 아시아평화학교

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시아평화학교는 중국 남양에서 3년 전 개교했다. 아시

아의 청년들과 함께 아시아인으로 사는 것을 한번 해보

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과 한국

의 청년들이 함께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양 대표는 앞으로는 동아시아 친구들도 모을 생각이다.

제주도에 세울 이 학교의 이름은 지구마을대학. 캄보디

아, 네팔 등 10개 나라 아시아 학생들이 네트워크를 형성

해 같이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필리핀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인도에서 교사가

되든지 네팔에 가서 대안 에너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방식

등이다. 주 무대는 아시아다. 지구마을대학은 자치 대학의

형태를 띤다. 학생들 자체적으로 일을 하며 학비를 마련하

고 커리큘럼을 자치적으로 짜서 공부한다. 학비는 월 10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라도

와서 일을 하면서 배우면 다닐 수 있게 하려는 의도다.

“월 10만 원이 넘으면 아사아의 가난한 청년들은 돈이

없어서 배울 수가 없습니다. 네팔에서는 7살에서 10살

어린아이들이 강가에서 돌을 깨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자갈을 깨다가 지문이 다 닳고 실명하기도 합니다. 그렇

게 버는 돈이 하루에 1달러예요. 그걸로 온 가족이 먹고

삽니다. 우리가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아

의 청년에게 희망을 주도록 도왔으면 합니다.”

양 대표가 마을에 집중하면서도 아시아라는 넓은 영역에 눈

을 돌리게 된 건, 세상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

이었다. 20~30대 때 마을이 세계라는 생각으로 지역에 들

▲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양희창 대표의 강의에 질문으로

화답했다. ⓒ이명구

▲ 아시아평화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아시아평화학교

2015. 2. 21. 오후 10:57아시아평화학교 |

1/1페이지http://www.asiapeaces.com/html/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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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평화학교에서 4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졸업식에 초대합니다(2기졸업식)

2014년도 아시아평화학교 3기 최종합격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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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01

어가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보니깐, 좋아졌어야 할 세상은

더 피폐해졌다. 사람들은 자본에 노예화되고 길들여졌다.

“옛날에는 세월호 같은 사건이 터지면 정권이 바뀌고 대

통령이 하야했을 겁니다.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보며 내가 실패했구나 생각했습

니다. 지역이 세계라고 생각하다가 이 세상을 간과했습

니다. 거대 담론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모두가

가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노예 생활을 계속 살아야 합

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네팔, 아시아의 청년들

이 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양 대표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문제가 산적하다고 지

적했다. 황사 같은 기후 변화의 문제나 후쿠시마의 핵문

제와 같이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가 지금 우리의 문제라

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정치적 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

이 든 것이다. 그는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로 눈을 넓혀 서로 연대해 가야 한다고 했다. 지역 담

론과 거대 담론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들마을학교 16살 김지호 학생이 질문했다.

“대안 학교를 다니는 저와 같은 친구들과 공교육을 받는

친구들의 비율로 봤을 때, 공교육을 받는 친구들의 숫자

가 더 많습니다. 지금 같은 경쟁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소수인 대안 교육을 받는 친구들이 세

상을 어떻게 바꿔 갈 수 있을까요.”

양 대표는 대안 교육이 공교육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

지 않는다고 답했다. 공교육은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것

인데, 공정한 경쟁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소수가 다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안 교육의 가치를 고백하는 삶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

했다. 비록 안 바뀔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살 거냐를 결

단하는 문제이고 고백한 대로 외치며 사는 게 중요하다

고 했다.

끝으로, 양 대표는 공교육 고3 담임을 15년간 맡았던 간디

학교 학부모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5년 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꿈 깨라. 너 몇 등이냐”였다고 한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의

꿈을 짓밟았다고 술자리에서 울면서 고백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니 뭐 될래?’라고 묻는 걸 멈춰야 합니다.

무엇을 묻기를 그치고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왜 선생

님이 되고 싶고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서 선생님이 되고 싶고, 사람을 고

치고 싶어서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의 길을 막아서지 말

아야 합니다.

왜 사람을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데, 어떻게 하면 너도 좋고 남을 도울 수 있는데? 그렇게

물어야 합니다. ‘왜’라고 물으면, 꼭 의사나 선생님이 아

니어도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수많

은 꿈들이 생깁니다. 사람을 고치기 위해 상담가가 될 수

도 있고, 조리사가 될 수도 있고, 농부가 될 수도 있습니

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여러 가지 길을 택할 수 있을

겁니다.”

▲ 김지호 학생은 경쟁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소수인

대안 교육을 받는 친구들이 세상을 바꿔갈 수 있을까 물었다. ⓒ이명구

▲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있는 참석자들.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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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선생님,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찾으세요”

글_이명구

기사 ⑳ ‘사랑, 믿음, 소망 가운데 교육을 꿈꾸다’난장 두 번째 시간 _<오마이뉴스 2014.12.23>

“‘교사는 성직자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교사가 성직자라

면, 신이 하시는 말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말이겠죠. 교사는 신

을 대하는 것처럼 학생을 대할 것이고, 학생들도 서로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함께 알게 되겠죠. 그런데 요즘 선생님

들은 자존심을 잃어버린 거 같아요. 학생을 만나서 가르치는

게 기쁘지 않은 거죠. 모든 선생님들께 ‘자신의 혼(魂)을 찾으

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선생님들이 모두 자신이 성직자라는

자존심, 혼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우리의 교육은 새로워질 거예요.”

새들마을학교 중학교 3학년 구한글 학생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말했다. 그가 든 그림에는 파란색으로 “너의 혼은 무엇이

냐”고 쓰여 있다. 혼(魂)이라는 한자 옆에는 공이 하나 놓여 있

다. 한글 학생은 모든 선생님들이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

기를 바랐다.

지난 19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11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각자가 꿈꾸는 교육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이날 주제는 ‘사

랑, 믿음, 소망 가운데 교육을 꿈꾸다’였다. 모둠별로 흩어져 자

신이 꿈꾸는 바를 나눈 뒤, 그림을 그려 표현하고 발표했다. 10

주 동안 생명의 교육을 고민하며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자

신에게 생긴 변화를 풀어 놓는 시간이었다.

교육은 ‘연결’이다

참석자들이 주로 표현한 내용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 한글 학생은 모든 선생님들이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

기를 바랐다. ⓒ이명구

▲ 참석자들은 꿈꾸는 바를 나눈 뒤, 그림을 그려 표현했다. 모

둠별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이명구

Page 10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03

새들마을학교 이동원 교사는 사람의 머리 안에 지구를 형상화했다. 눈에

는 한반도와 오세아니아 대륙을 담았고, 코에는 지렁이들이 밭을 갈고 있

다. 볼에는 동물과 물고기가 뛰논다. 원시 민족의 움막도 있고, 마차와 기

차도 지나간다. 그는 “나라는 존재와 너라는 존재가 서로 만나서 하나 됨

을 이루는 것이 온 우주 만물을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만남을 서로에게 끊임없이 전하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윤주 님은 태반과 탯줄을 그렸다. ‘진리’의 태반에 나무, 새, 물고기,

동물과 사람이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진리에 연결됨이 모두를

살리게 됨을 배우고, 믿고, 잘 살아 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박한나 님은 ‘우리’라는 글자 속에 모든 관계가 나눠지지 않고 하나로

꿰어지는 그림을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모두 하나로 이어집니다. 끊어지지 않습니다. 서로가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따로인 것 같으나 네가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알아 갑니다. 우리의 만남이 교육입니다.”

이승은 님은 교육은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더하

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순환하는 선을 그렸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

을 더하는 걸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배운다는 것

은 때로는 빼기가 될 수도 있고, 곱하기가 될 수도 있고, 나누기가 될 수

도 있다. 앞으로 나아갈 때도 있지만 뒤로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미로와 같은 ‘생’을

우리는 역설과 모순을 견뎌 내며 온전함에 닿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게 변화이고 만남이고 참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획일화’는 이제 그만

초등학교 교사인 박애영 님은 꽃과 풀에 물을 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 그는 가지치기용 가위를 거부했다. 공교육 안에서 획일적이고

아이들 각자의 개성과 꿈을 꺾어 버리는 교육을 거부하고, 아이들 개개

인이 가진 아름다운 모습들을 피워 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돕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박길수 님은 자신을 반성하는 기

회를 가졌다고 했다. 자신이 만나게 되는 아이들과 학부모와 동료 교사

들과 더욱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생활해야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에 더욱 민감하고 학부모의 요구에도 적절히 반응하고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나누는 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 이동원 교사의 그림 사람의 머리 안에 지구를

형상화했다. ⓒ새들마을학교

▲ 이윤주 님의 그림 ‘진리’의 태반에 모든 것이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새들마을학교

▲ 이승은 님의 그림 교육은 직선이 아니고 곡선

이라고 표현했다. ⓒ새들마을학교

▲ 박한나 님의 그림 ‘우리’라는 글자 속에 모

든 관계가 하나로 꿰어지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새들마을학교

Page 10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0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자신을 공교육 미술 교육의 실패 사례로 표현한 이들도

있었다. 김재중 님은 강강수월래를 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림에서는 마음껏 표현되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이 있

고 손을 잡은 게 보인다.

“이제는 교육을 생각하면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서로

어울리는 것을 익히는 게 떠오릅니다. 저는 서로 어울리

는 법을 이제야 배우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과

정에 이제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아요. 저는 세상을 함께 살

아갈 동지를 찾는 것이 참 배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태욱 님도 자신을 공교육 미술 교육의 희생자라고 소

개했다. 그는 수업을 듣는 여성들과 강의실 옆 공간에서

아이를 보고 있는 남편을 그렸다. 지금의 청년 세대를 연

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일컫는데, 우

리의 교육이 만남의 기쁨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낳고 키

우는 것이 배움을 막는 요인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

들어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준비물을 챙겨 가야 하는 미술 시간을 극도로 싫어했다

는 김주열 님은 그림을 조금씩 그리다 보니 자신감이 붙

는다고 했다. 그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하면서 다른 누

군가가 자신의 한계 안에 갇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고 했다. 그가 최근 생각하는 한계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가시 안에서 신음하며 울던 얼굴이 가

시를 뛰어넘어 웃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서로 도우며

사랑함으로 나와 너의 한계를 뛰어넘고, 맘껏 자유하고

맘껏 사랑하며 진리를 찾고 누리는 참교육을 꿈꾼다”고

적었다.

현실을 극복하는 교육

새들마을학교 이밀알 교사는 현실에 뿌리내린 새싹에 물

을 주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우리의 꿈은 현실에 근거하

지 않으면 흩날려 버릴 수 있다며, 현실에 근거한 분명한

이유와 절박함만이 우리의 꿈이 이뤄지는 것을 보게 해 줄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교육이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의

아픔을 품고 새롭게 꽃 피우는 것이 되기를 꿈꾼다며, 그

렇게 가꾼 꿈으로 현실의 척박함이 바뀌게 되길 소망했다.

▲ 박애영 님의 그림 가지치기용 가위를 거

부하는 모습을 그렸다. ⓒ새들마을학교

▲ 김태욱 님의 그림 우리의 교육이 만남의

기쁨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들마을학교

▲ 김주열 님은 가시 안에서 신음하며 울던

얼굴이 가시를 뛰어넘어 웃고 있는 모습을 그

렸다. ⓒ새들마을학교

▲ 김재중 님의 그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

이 있고 손을 잡은 게 보인다. ⓒ새들마을학

▲ 박길수 님의 그림 아이들과 학부모, 동료

교사들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말했다. ⓒ새들마을학교

▲ 이밀알 교사는 우리 꿈이 현실에 근거한

절박함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새들마을학교

Page 10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05

조우영 님은 가운데 중(中)을 표현했다. 네모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을 나무 하나가 툭 가로질러서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펼쳐 있는 그림이다. 감옥 같았던 학교에서 벗어나 활짝 열린 삶을 지향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대안적인 삶이 세상의 변두리같이 이야기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대안적인 삶은 진리로 해방된 진짜

삶을 살아 내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도록 현실에 올곧이 뿌리박아 하늘

을 향해 활짝 열린 삶을 지향하는 교육을 꿈꾼다”고 말했다.

새들마을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김민수 교사는 억압받는 현실을 뚫

고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입체적으로 그림에 구멍을 뚫었다.

“억압받아 획일적으로 길러지는 아이들이 해방되어 서로를 살려 내는

존재로 거듭나는 교실을 꿈꿉니다. 어릴 적 나의 기억에 춤추던 산과 들

이 친구된 교실을 꿈꿉니다. 세상을 관통하는 우주적 진리, 그 초월자

를 깨닫고 경험하는 교실을 꿈꿉니다. GMO와 농약이 아닌 땅・물・바

람・불・마음으로 채워진 먹거리의 교실을 꿈꿉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캄캄한 눈앞의 모든 장벽을 함께 힘껏 뚫고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

도합니다,”

더불어 사는 역량을 기르는 교육

참석자들이 꿈꾸는 교육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장미진 님은

더불어 사는 힘을 길러 가는 만남이 거듭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함께 살아가는 역량이 나선형으로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교

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하면서 충의 만남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던 우리

가, 일상 속에서 함께 있는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노력하는 동시

에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고민하는 거대 담론에까지 이른 것 같다고 말

했다. 만남에 따라 역량이 증가한 것이다.

윤희윤 교사는 나뭇잎의 생애를 그렸다. 씨앗은 혼자서 싹을 못 틔운다.

세 알씩 심어야 서로의 온기에 기대 싹을 쉽게 틔울 수 있다. 때때로 어

린잎은 애벌레에 자기 몸을 내어 준다. 자신을 나누는 것은 자연의 필연

적인 요소다. 태양빛을 받아 광합성을 한 나뭇잎은 반짝반짝 빛난다. 윤

교사는 이를 진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설명했다. 나뭇잎이

성숙해지면 낙엽으로 떨어진다. 역경을 만난 것이다. 이를 본질을 살리

기 위해 자기 몸을 떼어 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뭇잎은 성장할 때도 다른 이와 함께했지만, 낙엽이 되어서는 더 많은

나뭇잎을 만난다. 역경을 경험하면서 한 곳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

른 낙엽들을 만난다. 낙엽의 만남은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된다. 그렇게

▲ 조우영 님은 감옥 같았던 학교에서 벗어나 활

짝 열린 삶을 지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새들마

을학교

▲ 김민수 교사의 그림 억압받는 현실을 뚫고 나

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입체적으로 그림에 구멍

을 뚫었다. ⓒ새들마을학교

▲ 조우영 님의 그림 가운데 중(中)을 표현했다.

ⓒ새들마을학교

▲ 장미진 님의 그림 함께 살아가는 역량이 나선

형으로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새들마을학교

Page 10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0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배움은 순환한다. 윤 교사는 교육을 꿈꾸면서 함께 더불어 하는 것과 역

경을 이기는 힘을 길러가는 것을 그려 보고 싶었다고 했다.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이 꿈꾸는 교육은?

교육문화연구학교에 참여한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이 꿈꾸는 교육은 어

떤 모습일까.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학생들의 말로 들어 보자.

“쪽빛이 무슨 빛인지 아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쪽빛색인데요.

푸른색 계열의 색을 통틀어서 쪽빛이라고 한데요. 푸른 계열의 색을 보

면, 약간의 차가움이 느껴지지만 평화적이고 희망적인 느낌도 들잖아

요. 저는 쪽빛 창문을 그렸어요. 어둡지만 완전히 어둡지는 않은 세상

한가운데서 창문의 색깔을 희망적인 쪽빛 색깔로 칠했어요.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비행기

는 빠르지만 너무 돈이 많이 들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는 없잖

아요. 기차는 많은 이들이 타고 갈 수 있고 교통비도 싸고, 마디마디

로 나뉘어져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끈끈하게 연결되는 느낌

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기차는 철로로만 다닐 수 있으니깐 좀 더 자

유로운 수단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코끼리열차’가 생각났

어요. 빠르지도 않고 느리기 때문에 천천히 가면서 모든 사람을 태우

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그림을 그렸어요.” (16살 김지호 학생)

“새 하고 지렁이도 있어요. 자연과 생명을 같이 더 자세히 알아 가고 싶

어요. 다른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이 기쁨과 행복을 담으려고 했어

요.” (11살 김시원 학생)

“여기 있는 새싹 두 개가 사랑하고 있어요. 어릴 때 좋은 환경 속에서 사

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배우지만, 커서 세상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면 환

경이 어두워질 수 있잖아요. 자기가 그런 배움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곁

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하고 의심하고 그러면 자기도 그 환경에 맞춰 어

둡게 변할 수 있는 위험이 있죠. 어둡게 되지 않도록 밝은 환경을 만들

고 자신이 밝은 기운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더 밝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교육을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1살 양하늘 학생)

“초등학교 때 국어책에서 나왔던 그림이에요. 훨체어를 탄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거예요. 교육을 생각하니, 차별 없는 교육

이 떠올랐어요. 장애 친구들이나 다문화 친구들과도 차별 없는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14살 김고운 학생)

▲ 윤희윤 교사의 그림 나뭇잎의 생애를 그렸다.

ⓒ새들마을학교

▲ 김지호 학생의 그림 쪽빛 창문을 향해 코끼리

열차가 달려가고 있다. ⓒ새들마을학교

▲ 김시원 학생의 그림 자연과 생명을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 ⓒ새들마을학교

▲ 양하늘 학생의 그림 어두움에 잠식되지 않고

밝은 기운을 만들어 내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그렸

다. ⓒ새들마을학교

Page 10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07

“저는 어렸을 때 꿈이 엄마이고. 지금 꿈도 엄마예요. 엄마를 그렸어요.

인자한 미소를 엄청 살렸어요. 왜 엄마를 그렸냐면, 요즘 교육은 엄마들

이 자녀를 위한 게 아니라, 다른 욕망을 위해 자녀를 교육하는 것 같아

요. 그러지 말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가르칠 수 있는 그런 교육

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14살 양의진 학생)

“제가 그린 기린 그림은 긴 기린 그림인데요. 이건 단순한 말장난입니

다. 교육의 장은 꼭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교육의 장입니다. 친구, 선생님, 자연과의 관계도 교육이라고 생

각합니다. 교육을 틀 안에 가둬 학원과 학교만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린은 믿음과 사랑에 기반을 두고 항

상 더욱 좋은 것을 소망하는 교육을 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고 결국에

는 길을 닦고 길을 걸어가는 길인(人)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돌고 돌

아 선순환의 연속인 사회를 꿈꿔 봅니다.” (16살 양권진 학생)

“나무에 나뭇잎 한 개만 달린 나무를 그렸어요. 그리고 옆에 이렇게 적

었습니다. ‘나는 나뭇잎이다. 살아남기 위해 친구들의 슬픔을 듣지 않았

다. 나는 슬픈, 외로운, 나뭇잎이다. 그래서 더 겨울이 춥다.’ 공교육은

경쟁 교육이잖아요. 누군가를 누르고 내가 올라가야지 좋은 직업을 얻

든 좋은 대학을 가든 그렇게 살도록 현실의 구조가 만들어지죠. 그러나

우리는 그런 구조가 아닌 다 같이 배우고 다 같이 살고 다 같이 행복한

걸 원합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나무를 그렸어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나뭇잎이

다. 쉽게 날아가는 연약한 나뭇잎. 하지만 모이고 모여 나무라는 큰 배

움을 만든다.’ 이처럼 나만 살아남기 위해 모두를 떨어뜨리지 않고, 모

두가 하나가 되고 공동체가 되어 같은 소망과 같은 믿음과 같은 사랑을

가질 수 있는 큰 넓음과 배움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6살 석

현수 학생)

▲ 김고운 학생의 그림 차별 없는 교육을 꿈꿨다.

ⓒ새들마을학교

▲ 양의진 학생의 그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으

로 가르칠 수 있는 엄마의 마음과 같은 교육이 되

기를 바랐다. ⓒ새들마을학교

▲ 양권진 학생의 그림 길을 닦고 길을 걸어가는

길인(人)이 되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새들마을

학교

▲ 석현수 학생의 그림 연약한 나뭇잎이 모이고 모

여 나무라는 큰 배움을 만든다. ⓒ새들마을학교

▲ 석현수 학생의 그림 나뭇잎 한 개만 달린 나무.

ⓒ새들마을학교

Page 11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0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최봉실 교장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아이들이 운

동장 끝에서 갖고 놀던 공이 차양 위로 올라갔다. 두 아이는 장대를 가

져와 떨어뜨리려고 애를 썼다. 이 모습을 본 최 교장은 ‘가서 도와줘야

하나, 아니면 아이들이 해결하기를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렇게 망

설이며 지켜보던 순간, 바람이 불어와 공은 떨어졌다. 최 교장은 이를

시로 적었고, 거기에 음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다.

지난 25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12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이 ‘바

람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성탄절에 열린 마지막 시간의 주제는 ‘구유

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그리며-사랑과 용맹으로 펼쳐 가는 생명의 교육’

이었다. 참석자들은 예수 탄생 사건을 통해 교육의 의미를 헤아려 보는

강의를 들었고, 그간의 가르침과 배움을 정리하며 깨달음과 희망을 시

와 노래로 표현했다.

바람의 계기에 열려 있는 자세

최봉실 교장은 함께 부른 ‘바람의 노래’는 교육에 관한 중요한 함의라고

서두를 놓았다. 먼저는 아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공을 꺼내기 위해

엄마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스스로 해결하려 애썼다. 해

봐도 안 되었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 다른 한편 아이

들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기회를 빼앗지 않으려는 긴장감과, 도와줘야 할 때 바로 달려가려

고 준비하는 마음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다.

아이들의 노력과 엄마의 사랑. 여기에 예상치 못한 바람이 불어온다. 최

교장은 이를 ‘바람의 계기’라고 명명했다.

“바람의 계기는 다른 말로 하면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바람이 부는 건 필연입니다. 그 바람이 아이들과 조우하는 장면은

바람을 포착하는 교육... 우리 함께 머물자

글_이명구

기사 ㉑ 성탄절에 그려 보는 참된 교육정신 _<오마이뉴스 2014.12.30>

▲ 최봉실 교장은 함께 부른 ‘바람의 노래’에는 교육에

관한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는 말로 서두를 놓았다.

ⓒ이명구

“차양 위로 올라간 공을

내리려 애쓰는 두 아이

달려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순간 바람이 힘차게 불어와

부드러운 미소와 손길로

아이들의 손에 공을 안겨 주었죠.”

_바람의 노래

Page 11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09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란 말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표현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다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때, 인간은

그 연결 고리들을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포착되는 국면은 한정되어 있지만, 필연

은 분명히 서로 연결된 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

이지 않던 연결 고리들이 순간순간 우리 시선 안으로 포착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걸 우리는 우연이라고 하기도 하

고, 다른 말로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최 교장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는 이 바람의 계기에 열

려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바람의

계기를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우연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

라, 삶의 주요 요소로 받아들여 주의 깊게 살피고 기꺼이

조우할 때, 가르침과 배움의 여정에서 존재의 성장과 변

화라는 값진 결실에 이를 수 있다고 단언했다.

깊은 사랑으로 엮여진 아기 예수의 탄생

성경은 이 세상을 죄 된 현실로, 인간을 죄 된 존재로 규

정한다. 죄 된 현실에서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나

님이 아들을 보냈다고도 하고,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

을 입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최 교장은 “이 세상이 죄 된 현실이라는 전제에서 하

나님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지를 살펴봄을 통

해 교육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교장은 예수 탄생 사건은 주변 관계의 깊은 사랑과 신

뢰로 잉태된 사건이라고 짚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

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보냈고, 이를 통해 세상을 구원

하려 한다고 진술한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 탄생 사건을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

와 공유했다. 마리아와 요셉, 양치기들과 평생 과부로 지

낸 여인 안나, 자식이 없었던 늙은 제사장 부부 사가랴와

엘리사벳. 이들은 하나같이 힘없는 약자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던 자들이었다. 이후 예수의 구원 사역을

예비하는 자는 권력자가 아니라 죄 된 현실과 싸우기 위

해 광야에서 근신하며 하나님을 섬기기만을 애썼던 세례

요한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죄 된 현실을 극복하려는

방식은 이렇듯 인류와 약자를 향한 사랑이었다고 최 교

장은 설명했다.

하나님만 약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하나

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깊었고, 약자와 민족을 향한 사

랑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남자를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

이를 가졌다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주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 고백하며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나님과

마리아의 깊은 신뢰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잉태 사실을

알았을 때, 마리아는 하나님이 약한 자와 민족의 아픔을

해결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약자들의 삶을 주의 깊게 지

켜보고 있었고, 억압받고 있는 민족의 굴레가 벗겨지기

를 고대하고 있었다.

요셉은 약혼녀가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고도 이를 드러

내지 않는다. 위험에 빠트리지 않고 가만히 관계를 끊고

자 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다.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을 때, 요셉은 이를 믿고 받아들

인다. 하나님에 대한 요셉의 사랑과 신뢰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마리아를 데려와 아들을 낳기까

지 동침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절제했다. 이런 모습에서 요셉이 하나님에 대해

서나 인간에 대해서나 신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최

교장은 말했다.

시몬과 안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고 하셨던 하

▲ 성탄절에 열린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마지막 시간. ‘사랑과 용맹으

로 펼쳐 가는 생명의 교육’. ⓒ이명구

Page 11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1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게 평생의 사명이었던 사람이

었다. 그들은 민족을 해방할 그리스도를 보기 전까지 죽

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진심

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했기에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동방박사와 목자들은 진리를 향한 사랑에 투철했던 이들

이었다. 저 멀리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왔던 박사들은

꿈에 천사가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니 그냥 돌아갔

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이의

초라함에 좌우되지 않았다. 구유에 누인 아기를 외향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리가 세상적인

외적 기준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았다.

목자들은 구주가 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던 일을 중

단하고 당장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허름한 강보에 쌓인

아기를 보고도, 그가 그리스도임을 믿기를 망설이지 않

았다. 최 교장은 그들 역시 외적인 기준이 아니라 진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의미

최 교장은 아기 예수의 탄생에서 사랑과 용맹을 읽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사랑의 관계망을 살펴본 것을 토

대로 용맹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아기 예수가 처한 현

실에 주목했다.

“예수는 아무 힘도 없는 연약한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최

고 권력자인 헤롯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협 아래서

태어났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일은 물리적, 외형적 힘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위험을 막아 주기도 하고 예수 십자가 사건처럼 죽음을

감수하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말합니다. 생

과 사가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어

떤 죽음의 현실도 하나님의 뜻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이

예수 탄생 사건은 보여 줍니다.

다음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미’와 ‘아직’의 사건입

니다. 이 어린 아이가 뭘 할 수 있습니까? 30년을 기다려

야 합니다. 이미 왔으나 아직은 아닙니다. 이미 현실화되

었다는 믿음의 기반 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

릴 줄 알아야 합니다. 미래가 착실히 다가올 수 있도록

부지런히 미래를 앞당기면서 현실을 성실하게 살아 내는

게 필요합니다.”

최 교장은 용맹(勇猛)이 사전적으로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고 사납고 엄격하고 준엄하고 세참’의 뜻을 갖지만, 예

수 탄생 사건을 통해 용맹이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용맹은 외적 기준에 좌우되지 않고, 내 생의 주관이 인

간의 손에 좌지우지될 수 없음을 믿으며, 현실로 실현되

고 있는 것을 감사와 경외로 받아들이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기다릴 줄 알면서 부지런히 현실로 받아들

이고 도래시켜 내며 살아가는 힘입니다.”

사랑과 용맹으로 펼쳐 가는 생명의 교육

최 교장은 반생명적 질서가 지배적인 현실에서 생명의

교육을 고민하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

게 사랑과 용맹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를 둘러싼 불의한 질서와 권력, 문화에 굴복하지 않고 살

아갈 수 있는 길은 생명의 질서와 생명의 권위, 생명의

문화에 과감히 우리 자신을 순종시켜 내는 것으로만 가

능하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비판해도 안 되고,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있어

▲ 별을 보고 찾아왔던 박사들은 아이의 초라함에 좌우되지 않았다.

ⓒ이명구

Page 11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11

도 안 됩니다. 지금 나 자신을 과감하게 순종시켜 내는

것만이 세상의 어두운 현실과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

이 될 겁니다. 이러한 순종의 삶은 오로지 뜨거운 사랑이

있을 때만 생생(生生)할 수 있습니다.

생생하다는 건, 끊임없이 창조된다는 뜻이며 생기 있고

활발한 것입니다. 이 뜨거운 사랑이 있을 때만, 불의가

편만한 현실 속에서 우리 자녀들과 학생들이 참되고 옳

은 길로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를 수 있습니다.”

최 교장은 사랑과 용맹으로 생명의 교육을 펼쳐 가기 위

해 ‘바람의 계기’에 열려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했

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준비한 것만 가르치는 것은 바람

의 계기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교실 안에서는 변수

가 수도 없이 일어나는데, 이를 배제하고 교사가 준비한

것만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 교장은 교사가 성실히 준비한 상태에서 수많은 변수

를 주의 깊게 살피고 바람의 계기와 조우할 수 있도록 열

려 있어야 우리의 교육에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말했다.

바람의 계기에 열려 있는 자세는 교실에서뿐 아니라, 자

녀를 키우는 일, 사귐을 해 가고 어떤 일을 맡아 해결해

나가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바람의 계기에 열려 있는 자세는 부모와 교사가 가진 한

계를 겸손하게 인정하는 거라고 최 교장은 설명했다. 가

르치는 자는 완벽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하더라도 한계

를 안고 있다. 가르치는 이의 한계로 할 수 없었던 것들

을 채워 줄 누군가와의 만남이 있다는 걸 믿는 자세는 부

모와 교사에게 위로를 준다. 최 교장은 이 바람의 계기를

배제하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교사가 결국

학생을 한계 있는 교사의 틀 속에 가두고 권위로 억압하

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바람의 계기로 포착되는 사랑의 통치

“그렇다면 성탄절의 의미와 바람의 계기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예수 탄생 사건은 사랑의 힘이 이 땅을 구원

하고 통치하고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초청하는 것입니

다.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죄 된 현실이 있지만, 죄

와 고통을 극복하려고 하는 신의 힘이 이 땅에 작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게 바로 예수 탄생 사건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사랑의 힘이 인간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는 것이지요. 더 이상 희망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도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는 사랑의 힘이 분명 존재하

고 필연으로 작동할 거란 얘기입니다.”

최 교장은 이런 사랑의 필연이 우리 이해로는 포착되지

않은 무수한 바람의 계기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령 아이들이 문제가 생기고 걱정이 되더라도

이 걸음을 극복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돕는 계기가

발생할 거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교육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것 같은 선한 계

기를 조우하기를 기다리고, 때를 만났을 때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사랑과 용맹으로 펼쳐 가는 생

명의 교육은 사랑의 힘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줄

거라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할 거라고 최 교장은 힘주어

말했다.

바람의 계기와 함께 춤추는 배움, 새들생명울배

움터

강의를 마치고, 최 교장은 새들마을학교가 2015년부터

새들생명울배움터로 새롭게 태어나게 됨을 알렸다. 참석

자들이 생명의 교육을 고민했던 12주 동안의 배움은 새

들생명울배움터의 정신으로 수렴됐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가르침과 배움의 길이 인간의 삶 전

▲ 갑작스럽게 내린 눈은 바람의 계기가 되어 뜻하지 않은 기쁨을 준다.

ⓒ새들마을학교

Page 11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1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백한다. 따라서 ‘학교’라는 기관으로서

제한된 ‘교육의 장’의 의미를 벗어나, ‘사랑의 공동체적 관계’로서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그 길을 모색하고 창조해 가는 확장된 ‘교육의 장’을

구성해 가고자 한다. (119쪽 : 부록1. 새들생명울배움터 교육 이념)

생명의 교육, 함께 머무는 자리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교육 이념을 공유한 뒤, 참석자들은 그간의 배움

을 시와 편지, 노래와 연극으로 표현했다. 또 각자 느낀 소감을 나뭇

잎에 적어 ‘생명의 교육, 길을 만나다’ 나무를 만들었다. ‘이달님’ 님

은 “내가 진리를 향해 다가가고자 하는 것만큼, 어쩌면 더 간절히 진리

가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 진리가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임을 믿

는다”고 적었다. 이윤주 님은 “삶과 교육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는

데,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이 교육과 연결됨을 배우게 되었다”며, “또한

그 모든 연결이 지금까지의 삶을 살게 했음을 깨달으며 누군가의 생을

살리는 삶을 살게 되길 소망한다”고 썼다.

석현수(16) 학생은 “너라는 존재와의 관계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

리고 모여 하나로 만나 공동체를 이루어 기쁘다”고 했다. 김별 님은

“세월호 사건의 2014년. 참혹하고 처참한 땅에 피어날 꽃은 깊은 사랑

의 교육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빛을 보았다”고 했다. 김재광 님은 “곁

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교육의 본질을, 생의 본질을

샘솟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 참석자들이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교육 이념을 함께

읽고 있는 모습. ⓒ이명구

▲ 참석자들은 각자 느낀 소감을 나뭇잎에 적어 ‘생

명의 교육, 길을 만나다’ 나무에 붙였다. ⓒ이명구

▲ 참석자들은 그간의 배움을 정리하며 연극으로 12

주 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연극의 한 장면. ⓒ이

명구

Page 11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13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입니다.

당신 눈 속에 나를, 내 눈 속에 당신을

서로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아름다운 당신을 찾는 길에서

외려 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아름다움은 지구별에도 달나라와 별나라에도

평화 속에도 전쟁 중에도 풍요와 가난

그리고 사랑과 증오 속에서도 감출 길 없으나

두려움과 무관심의 세상에서는 피어날 수 없습니다.

만남은 두려움 속에 뿌리내릴 수 없고

무관심 위에 싹 틔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를 만나지 않고 나를 알아 갈 길 없어

앎은 대상을 초대합니다.

당신을 알고 싶다. 당신은 ‘앎답다’(아름답다).

고백 후에 더 깊은 당신을 알아 갑니다.

생각과 마음을 꿰뚫는 힘으로

치우침 없는 온전함으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꽃 속에 피어나는 꽃처럼

나는 그대 안에서 또 다른 나로 피어납니다.

한겨울의 추위가 따스한 온기를 허락하고

여름철 무더위가 냉수 한 그릇의 시원함을 주듯

나는 치열한 우리의 만남 속에서

당신과 나를 발견해 가는 기쁨을 누립니다.

열매를 위해 꽃은 지고 새 생명 틔우려 열매는 썩어집니다.

진정 너를 위하고 진정 나를 위하는 것은

행여나 겪게 될지도 모르는 단절의 아픔조차도

함께 누렸던 지난 행복의 일부인 것처럼 여길 때 가능합니다.

배움은 본질을 향한 여정.

이 길에 당신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하루도 죽어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곁에 당신이 있어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갑니다.

삶과 죽음, 행복과 고난이 다르지 않음을...

일생의 만남을 통해 삶과 죽음,

행복과 고난의 양날 검을 온몸으로 익혀 내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싹이 트고 다시 꽃이 피듯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나와 너를

온전히 알게 될 그날을 힘써 기다립니다.

닫는마당 첫 번째 시간 ‘충의 만남’ 강의를 기억하며 _2014.12.25

함께 머무는 자리 이재호

Page 11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1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안녕하세요. 페스탈로치 선생님. 사실 편지를 쓰기 전에 호칭을 무어라 할까 살짝 고민을 했습

니다. 고아들과 학생들과 함께 하셨던 마음 넓고 따뜻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아직 제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페스탈로치 할아버지가 아닌 페스탈로치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로 정한 이

유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이 시대에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EBS ‘지식채널 e’에서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란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

다. 7년 전 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의 현실은 가출충동을 느껴 본 적

이 있다’ 53%, ‘자살 욕구를 경험해 본적이 있다’ 27%. 수치만으로도 처참함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000으로 시작하는 문장 만들기에서 어떤 학생이 “언젠가 나는 공부 제일 잘하는 XX를

이기고 싶다”고 썼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처하셨던 현실도 처참하리만큼 절박하셨던 걸로 압니

다. 현실에 뿌리박았던 선생님의 몸부림을 이 참혹한 현실에서 저희가 잘 따라갈 수 있기를 바

랍니다.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가슴을 가진 사람이 되

도록 돕고 싶습니다. 수많은 거듭된 실패가 선생님의 삶에 가득하였지만 거듭된 시도들을 하셨

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또한 단순히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비참한 삶을 사는 근원을 찾아 해결하고자 고뇌하며 노력

하셨던 선생님의 치열하였던 모습을 또한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하셨던 말과 가르침

은 그저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선생님 스스로 온몸으로 살아 내신 삶이였기에 우리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가슴, 머리, 손이 조화된 전인교육에 대한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모든 교육 기관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라고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이기심과 탐욕이 판치는 사회와

이 사회의 논리를 강화하는 우리의 교육을 볼 때면 허울 좋은 공허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말과 행동의 일치로 보여 주셨던 선생님의 생애의

본은 우리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위로가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미 살아 내셨고 영향을

끼치셨으며, 그 영롱한 진리의 빛은 세계에 비추어져

페스탈로치 선생님께

닫는마당 ‘페스탈로치를 통해 본 근대교육’ 강의를 듣고 _2014.12.25

Page 11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15

지금 대한민국 속에서도 빛이 바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밝게

비추어진 빛을 어둠 속으로 가리워지지 않게 받들어 따르며 이 땅의 교육에 더욱 밝은 빛을

비추도록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겠지요? 너무 익숙하여서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페스탈로

치 선생님,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묵상하며 이 편지를 마칠게요. 선생님,

우리 가운데 계속하여 영롱한 빛을 비추어 주세요.

“나는 여러분 안에 신적인 마음씨를 싹틔워 익히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두세 개의 으뜸 된 개념을 새겨 넣으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이것만 갖춘다면 확고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아침저녁으로 새김질 하십시오.

사고하기 위하여 머리를 도야합시다.

이웃에게 선을 베풀 수 있게 가슴을 도야합시다.

몸과 손발을 도야함으로써 기술을 익힙시다.

여기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진 시적인 뜻을

우리가 눈여겨봄으로써 얻어집니다.

여러분이 장차 큰 사람이 되어 뜻대로 일할 수 있게 될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민중을 위하여 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바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회상하는 것에 못지 않게 나도 여러분을 회상하고,

나의 가슴을 여러분께 쏟을 것입니다.”

_페스탈로치가 뮨헨부흐제 학교를 떠나며 학생들에게 했던 고별 강연 중

김별・김종우 올림

Page 11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1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우리가 모이니 무지개가 떠오르다

_양권진

교육이란 뭘까

가르친다는 건 뭘까

배운다는 건 뭘까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상황 속에서

처해 있는 관계 속에서

홀로 외로이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였다

함께 모이니 교육의 장이 형성되었다

배우고 배움을 주니 교육의 영성이 우리를 끌어안았다

배움은, 모두가 모여 정성스레 서로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홀로 외로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상황 속에서,

처해 있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안에서,

가슴 아프게 교육을 고민하던 우리들

교육은

배움은

가르침은

함께 모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안타까운 비를 맞으며 끙끙 앓던 우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니 무지개가 떠올랐다

어느 누구 하나 똑같지 않은 우리

그런 우리가 모이니 무지개가 떠올랐다

어두컴컴했던 길이

환해졌다

魂 _구한글

성직자의 혼은 무엇

신의 말씀을 잘 전하는 것

교사의 혼은 무엇

교육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신의 말씀을 전하듯

조심스럽게 전하는 것

학생의 혼은 무엇

마치 신의 목소리를 듣듯이

잘 경외하는 것

교육의 혼은 무엇

개별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

우리의 혼은 무엇

모두를 신을 대하듯

가치 있게 사는 것

혼은 무엇

신의 기개

닫는마당 교육문화연구학교를 마치며 : 학생들의 시 _2014.12.25

Page 11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17

새들생명울배움터 교육 이념

교육문화연구학교 여는마당 강의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충(忠)의 길

2013학년도 새들마을학교 특별청소년신문 <우리> 수록글

공부론

2014학년도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졸업생의 글

지난 배움을 돌아보며

새들마을학교 창작노래

1) 어느 여름날, 언젠간

2) 가을에 핀 꽃님이

3) Good Night

4) 하늘

5) 삶으로 답하는 거야

6) 생일 축하합니다

7) 바람의 노래

8) 시간 위의 꿈

9) 한 걸음 더

10) 인연

11) 우리 서로 되어

12) 우정이 쫀득해

13) 여기 끝에 와

1

2

3

4

5

부록

Page 12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1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자율은 타율의 도움에 열려 있는 자율이 되어야 하고

타율은 자율을 돕고 자율을 더욱 승하게 하는 타율이 되어야 한다.

Page 12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19

12월19일 교육문화연구학교

난장2.사랑·믿음·소망 가운데 교육을 꿈꾸다 시간

참가자들의 그림

새들생명울배움터를 시작하며

새들생명울배움터 교육 이념부록 ①

Page 12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2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새들생명울배움터를 시작하며

2014년 12월 25일

사랑의 공동체로 일구어 가는 가르침과 배움의 길

새들생명울배움터는 가르침과 배움의 길이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새들생명울배움터는

‘학교’라는 기관으로서의 제한된 ‘교육의 장’의 의미를 벗어나, ‘사랑의 공동체적 관계’로서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그 길을 모색하고 창조해 가는 확장된 ‘교육의 장’을 구성해 가고자 합니다.

모든 인생의 삶은 가르침과 배움의 길에 서서 신뢰와 우정으로 그 생을 펼쳐 갈 때 비로소 생명의 삶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그러한 분명한 의식 속에서 사랑과 우정 가운데 가르치고 배우며, 기르고 돕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 이 생명의 삶을 부지런히 창조하고 영위해 가는 가운데 우리의 배움의 걸음이 본래 하나였던 모든

생명의 공동체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 길에 용감히 불꽃 틔우는 작은 촛불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인생은 오직 사랑으로만 생생(生生. 나고 살아갈)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은 지극한 인격적 표상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참으로 모순적이고 비일관되게도 그 사랑을 ‘인격적 존재’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인생이 오직 사랑으로만 생생해 갈 수 있음을 믿기에,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이 바로 사랑으로 표상되는 ‘인격적 존재’로

우리와 만나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우리 역시 기꺼이 인격적으로 응답해 가고자 합니다.

인격적 응답이란 바로 그 사랑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와 존경의 최상의 표현은 바로 그 ‘존재를

존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물질과 권력이 우선되는 삶은 옆에 있는 존재, 엄연히 상관되어 있는 생명들을

물화시키거나 거세해 버리며, 나아가 우리 삶을 생생하게 만드는 사랑의 인격적 존재에 대해서도 거뜬히 사장시켜

버립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우리를 사랑으로 존재하고 연결되게 하며, 모든 세계와의 이토록 즐거운 만남을 허락하고 있는

사랑의 인격적 존재에 대해 깊은 감사와 경외를 잊지 않고 가르침과 배움의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이 여정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이 참된 자유와 사랑이 실현되는 만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애틋이 돕고 기도할 것입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의 ‘뜻’

‘뜻’이란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는 시작과 목적지가 같음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뜻을 깨닫는 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고, 그 뜻을 잃어버릴 수 있는 수많은 인생의 여정

가운데에서도 기어이 그 뜻을 붙잡아, 본래 자신의 정체성에 합당한 삶을 살아 냄으로 그 뜻을 마침내 이루어 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뜻을 알고, 이 뜻을 이룰 때 비로소 참된 기쁨과 만족이 있음을 믿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가르침과 배움의 길은 바로 이 뜻을 알아 가고, 이 뜻을 합당히 좇으며, 이 뜻을 마침내 이루어 내는

삶으로 수렴되어야 함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배움의 길은 바로 이 뜻 앞에 한껏 열려, 기꺼이 이 뜻을 소망하며,

마침내 이 뜻을 만나고 이루는 수만 가지 복된 길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음을 믿으며, 지금 여기 우리에게 허락된

작지만 소중한 길을 아끼며 본질에 집중해 정성을 다해 지속적으로 만나 가는 충(忠)의 만남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새들 생명의 터전 들은 장구한 세월 온갖 생명이 야생성과 생명력, 자유함 속에서 어우러져 공생해 온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나 현대 삶의 터전인 도시 문명은 물질문명이 고도화되어 인간의 삶을 물질과 기계에 예속시키고, 인간뿐 아니라

모든 벗 된 생명체들의 야생성과 생명력, 자유함을 마비시키며 나아가 서로가 서로의 죽음을 재촉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게 하고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가르침과 배움의 길은 삶의 터전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해 가는 길이 되고자 합니다.

Page 12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21

또한 들은 언제나 넓은 하늘을 마주하며 하늘을 향해 탁 트여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상징으로서의 이 하늘을 향해 한껏 열려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 크고 더 깊은 차원으로서의 초월을

품을 수 있는 삶만이, 인간 삶이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한계를 거듭 뛰어 넘어 새롭고 온전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죽음의 현실을 넘어 새롭게 펼쳐질 새 땅, 새 들을 소망합니다.

더불어 ‘새 들’은 하늘을 나는 ‘새들’도 의미합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새들’이라는 이름을 통해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성경 마태복음6:26)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작고 허다한 뭇 생명을 하나하나 돌보시는 하나님이, 기댈 곳 없는

연약한 인생의 순간에 언제나 조용히 찾아오셔서 연약하고 고통 받는 모든 인생에 유일한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셔

왔음을 고백합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가르침과 배움의 길은 오직 하늘(하나님)에서만 올 수 있는 이 도움이 앞

으로도 모든 인생의 여정 가운데 실패 없이 도달하기를 응원하고 기도해 가는 길이 되고자 합니다.

생명 생명은 ‘살아가는 목숨’이자 ‘살라는 명을 받은 것’입니다. 들은 바로 이 ‘생명’ 자체입니다. 그러나 살아감과

그 명을 순종하는 삶이 펼쳐져야 하는 들로서의 우리의 인생은, 생명을 살리느냐 생명을 죽이느냐로 안타깝게도

분명한 전선이 그어집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배척을 의미하는 선명성이 아니라, 생과 죽음 모두를 포괄 및 초월하는

전체로서의 생명(하늘의 섭리)에 향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분명한 구분은 종국에 생명으로 모든 것이 수렴

될 것을 믿는 소망과, 생명으로 하나 되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선명성입니다. 오직 생명에 모든 것이 수렴되게

하는 것은, 그 생명의 법칙에 순종할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와 더불어 동무(同舞-함께 자유롭고 절제되어 조화를

이룬 춤을 춤)할 것을 소망하며 결단하는 언명입니다.

울 ‘울’은 ‘울타리, 우리’의 준말입니다.

울은 감쌈(하나 됨)과 경계 지음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하나로 묶는 것과 동시에 이기심(죄)에 대한 분명한 거부를

명시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름에는 ‘지향해야 할 가치’가 담기지만, 지향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분명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됩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이 만연하고 크다는 인식 속에, ‘감쌈’과 ‘경계

지음’ 그 두 의미를 분명히 담고자 합니다.

‘울’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울의 안과 밖은 결국 하늘을 향해 열려 있으며 하늘을 향해서 비로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울’은 인간이 구분 짓고 경계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하늘을 향하는 그 조건에서만 비로소

온전히 하나 되고 만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정하는 어떤 기준으로도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며 가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울은 하나와 경계를 뜻함과 동시에 하늘을

향해 한껏 열려 있음으로 비로소 다시 온전히 하나 될 수 있음을 믿고 기약하며 힘쓰는 의미의 울타리이며 우리입니다.

‘울’은 우주적 질서를 상징하는 음악이 지닌 율동과 역동성을 내포하는 ‘울림’도 의미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생은 이 땅

을 향한 애통으로 울음을 울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울음’의 ‘울’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우리 삶이 다양한 변주와 역동 속에서 조화와 질서를 누리는 것이 되어야 하며, 또한 우리 삶 전체가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눈물 어린 기도의 삶이 되어야 함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배움터 새들생명울배움터는 모든 삶이 광막한 우주와 인생 앞에서 끝까지 배우는 자로 겸허히 살아가는 생이

되어야 함을 고백합니다. 배움은 삶으로 실천되어야 하며, 다음의 계승자들에게 그 배움이 가르침으로 전수될 때조차

겸손히 배움 앞에 설 수 있는 자만이 가르침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순간, 모든 이들로부터

배우고 배움을 전하는 자로 살아갈 때 인간은 비로소 온전한 존재 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Page 12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2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배움터경당)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이하, 배움터경당)은 다음 세대를 기르며 가르치고 돕는 교육 과정입니다. 경당은 고구려 시대,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마련된 서민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경당의 학생들은 일상에서 공동체로 하나 되고, 자연과

한 몸 되어 학문과 무예를 닦으며 몸과 정신을 단련했습니다. 더불어 계급 차이를 초월해 학우로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위기 시 자신을 헌신해 사랑하는 이들과 땅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경당’의 이름을 다시 복원하는 것은 동북아시아 귀퉁이 작은 한반도 땅의 민초들을 사랑하고 길러내며 지키고자

했던 그 교육 정신을 이어받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왜곡된 2000년의 역사를 살았던 한반도 땅이 잃어버렸던 소중한

역사적 유산을 회복함으로 현재, 향방을 잃은 한반도 인생들의 삶이 생명으로 소생하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소망을

담은 것입니다.

2015년, 인류 전체 어둠이 더욱 짙어질 이때에 시작되는 배움터경당은 한 작은 땅에서 빛났던 소중한 역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길임을 믿으며, 한반도와 이웃 나라, 그리고 더 큰 생명공동체의 삶을 널리

이롭고 풍요롭게 하는 삶을 창조해 가는 배움의 길을 걸어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배움터경당의 길

다음 배움의 길은 매 시기 역동적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구분되기도 하며 진행됩니다.

(1) 입문과정에서는 배움의 관계에 들어서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합니다. 기존 과정에 결합하게 되는 경우, 입문

과정은 기존 과정에 결합하여 ‘숨은 교육 과정’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숨은 교육 과정’이라 함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교육의 틈새에서 이뤄지는 교육으로, 우리는 이를 세밀히 살피며 목적의식적으로 교육의 성과와 과정으로 거듭

구성해 갈 것입니다.

(2) 나울너울자람터는 이제 막 친구와 세상을 사귀어 가는 단계에 있는 유아의 자람터입니다. 나와 너가 덩실덩실

어우러져 자라며 자연(생태)과 타인(생활), 자아(신명), 하늘(영성)에 대한 관계의 감수성을 키워 갑니다.

(3) 새들학당(美)은 친구와 집중적으로 사귀어 가며 집중 공부가 요청되는 단계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공부 과정입니다.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 생명 자체의 존귀함(美)을 온전히 발현하고 독려 받는 관계와 공부를 심화하며,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정성과 수고’(藝-예), ‘관계의 바른 길’(道-도)을 묻고 배우고 익혀 갑니다.

(4) 뿌리별학당(善)은 온전히 자유하는 가운데 관계의 도리 및 배움의 자세와 수고(善)를 익혀 가는 단계로,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공부 과정입니다. 배움과 존재의 뿌리를 든든히 내려, 가지를 뻗어 내고 열매를 맺어 갈 힘과 저력을

기릅니다. 캄캄하고 차가운 땅 속에 고독히 뿌리 내리는 과정을 거뜬히 감당해 가는 동안, 어둔 밤 반짝이는 별이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동시에 누리며 성실히 책임을 감당해 가는 훈련을 해 갑니다.

(5) 바람빛학당(眞)은 관계의 도리와 배움의 자세를 익히고, 존재의 뿌리를 깊고 든든히 내린 바탕 위에서 인생과

시대의 의미를 묻고 길을 찾아 나가는 단계(眞)에 있는 청소년 및 청년의 공부 과정입니다. 바람빛학당은 바람처럼

빛처럼 살며 사랑하며 공부해 가고자 합니다.

바람빛학당은 '바람의 자유함'과 '빛의 생명력'으로 서로를 살릴 수 있는 삶에 대해 모색하고 공부하며, 더불어 살아

갈 더 큰 공동체에 대한 배움과 이해를 연마함으로, 필요한 새 길을 내는 데 요청되는 자질과 역량을 배양합니다.

바람빛학당은 바람처럼 ‘자유함으로 우리 안에 허락된 길을 찾아가는’ '바람길공부'와 이 걸음이 ‘생명 공동체를 널리

이롭게 하는 분명한 지향(빛)을 가지고 우리에게 맡겨진 ‘짐(빚길)과 고난(빗길)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빛(빚,빗)길공부'로

이루어집니다.

길은 어떤 것으로 이어지게 하는 여정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과 뜻하는 목적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바람빛학당의 바람길공부와 빛(빚,빗)길공부는 이 뜻을 견지하며 역동적으로 펼쳐 갑니다.

Page 12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23

바람빛학당은 공부의 과정과 목적에 성실히 임하고 다음 단계의 삶과 배움의 과정이 결정되는 때에 따라 바람빛학당을

마치고 배움터경당을 졸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저마다 자신의 때가 있으며, 그것은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그때를 가장 잘 만나고 가장 정성껏 만나는 것만이 가장 복된 일입니다. 인생이 그렇다면

배움의 과정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배움의 길을 모두에게 획일화시키지 않고, 각자의 때와 길을

잘 만나고 찾도록 가르쳐 가고자 합니다. 바람빛학당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가운데 진리를 향해 한껏 열려

있는 공부가 되도록 모든 공부 과정을 모색하고 구현해 갈 것입니다.

또한 바람빛학당은 소망의 길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바람은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며,

생명을 옮겨 심으며 생명을 확장시킵니다. 빛을 향하는 소망은 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곳곳에 생명의 꽃씨를 흩뿌릴

것입니다. 바람빛학당은 빛을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법을 깨닫고 배우고 익혀 가고자 합니다.

배움터경당의 공부

배움터경당의 공부는 우리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신비와 기적으로 이 땅에 찾아오는

어린 생명들을 맞이하기 위한 존재와 삶의 준비부터, 경외함과 감사로 첫 생명의 삶을 맞이하고 축복하며 책임 앞에

서는 경건한 맞이함까지도 공부의 시작이며 실천임을 고백합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이 생명과 더불어 사랑과 언약의 공동체를 맺어 가는 매 순간의 걸음이 또한 중요한 공부임을

믿으며, 이들을 사랑하고 돕고 길러 책임 있는 다음 세대의 언약의 주체로 세워 가는 길을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쳐

갈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 서서 세상과 벗들을 만나며 사랑하고 고뇌하며 살아가게 될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는 앞서 책임을

지닌 자로 합당히 만나며 더불어 살아갈 것이며, 그 모든 길이 배움의 과정임을 고백합니다.

또한 온갖 이기심이 만들어 낸 인류의 폭력과 파괴와 혼란 속에서도, 사랑의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 땅에서 삶을

기어이 살아 내는 것이 진정한 배움의 길임을 믿습니다. 이를 위해 기꺼이 돕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참

된 가르침과 배움의 길임을 고백합니다.

이 모든 여정 가운데 자연(생태)과 타인(생활)과 자아(신명)와 하늘(초월을 만나는 영성)과 중단 없는 정성어린 본질과의

만남을 해 가도록 부지런히 돕고 도모하며 번성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 길에 참된 기쁨과 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를 위해

1.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웁니다. 나와 타자와 공동체를 생각하며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모든 생명에 대해 책임

있게 임하는 삶을 훈련합니다. 이를 위해 마음을 다해 듣고 보고 생각하는 ‘귀기울이는 훈련’과 이를 말과 글과

기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 갑니다.

2.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배웁니다. 모든 공부의 길을 통해 마음과 몸을 살피고 단련하며 성장

시켜 나가, 어디에도 머무르거나 갇히지 않고 사유와 몸, 타생명과 ‘보다 잘 관계 맺는 역량’을 부지런히 연마합니다.

3. 우리는 온전한 삶을 배우고 경험합니다. 더불어 사는 삶과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그 모든 과정과 목표가

언제나 온전한 것이 되도록 힘쓰고자 합니다. 온전함이란 우리가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합당한 것이 되기를 오직

소망하는 긴장과 간절함을 잃지 않을 때, 온 우주가 우리의 그 가난한 마음에 기꺼이 화답함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찰나임을 고백합니다. 이렇듯 온전한 삶을 배우고 경험함을 통해, 사랑의 생명 공동체를 널리 이롭게 하는 걸음을

주의 깊게 살피고 연단해 갈 것입니다.

Page 12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2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알공부‖

실제 삶의기술

관계(사귐마음대화)의 감수성 만남(사랑․존중․신뢰․대화․극복)-자연(생태)․타인(생활)․자아(신명)․하늘(영성)

공부의 자세(배움과 실천)

실제․개념(글․수)익히기/손조작/노래․리듬즐기기/다양한 실제와 영역 맛봄선․면․색/자유그림/도형․소묘․수채․유채․정물․인물․풍경/생태․생활․자유미술/조소․공예․디자인율동․노래․합주합창․연주․이론․발표우리말글․동화책․줄동화책․어휘․문장․사전․단락․기본문법․중학문법시․생활글․독서감상글쓰기․창작이야기․단편소설․논리적글쓰기/시쓰기작업․노동 통해 철학․본질 공부/전과정 포괄 공부

식의주환경 정리정돈․청소․요리․수리․목공․생활공예․옷만들기․건축․농사․환경대안식의주 및 대안경제 및 환경 연구 및 모델 창출

놀이 신명․존중․대화․창조․활동․자연 - 놀이로 수렴, 놀이에서 확산몸수련 명상․기도/요가․체조/달리기․체육/무예/지속수련

얼공부‖

정신과뜻

몸맘수련 알 공부 통해(맑은몸맘공부) : 명상․무예․체력․몸․인생․우주․몸맘치유․의역학역사정치시사 역사․사회와 법․정치시사․시대와 문명

철학․과학․고전․종교 언어․사유․정신 : 외국어․고전․철학․문학․언어학

살아 있는 말글 시․생활글․독서감상글쓰기․창작이야기․단편소설․논리적글쓰기․시쓰기대화와 발표

울공부‖

삶예술신앙

공동체

미 - 집중과정성(조화와역동) - 삶예술신앙관계(공동체) 삶의 예술(일상․신앙과관계․종교와영성), 상징으로서의 예술

선 - 책임성(주체성․창발성․사랑) - 사랑․자율․창조 - 집중심화공부 - 공부 및 생활 기획

스스로 기획, 책임, 실천, 성찰 과정 일단락, 또 다시 공부 과정으로 돌입

진 - 마을과 지역(나라와 세계) 모든 배운 바를 발 딛고 있는 삶의 터전에 구현, 새로운 삶과 시대 창조

이러한 공부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모든 공부의 길은 ‘숨은 교육 과정’을 통해 역동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됩니다.

알공부는 우리 존재가 발 딛은 물리적 현실을 소중히 여기고 이에 성실히 뿌리 내리는 공부입니다.

얼공부는 우리 존재의 물리적 현실을 초극하여 뻗어 내려가는 심연과, 우주공동체에 우리 자신을 열어 보다 온전한

우리의 물리적 현실을 다시 새롭게 가늠해 가는 공부입니다.

울공부는 알공부와 얼공부를 통해 발견하고 꿈꾸게 되는 새로운 물리적 현실을 상징과 실제 삶으로 구현해 내는

것을 배우는 것이며, 이 모든 공부를 통해 생명과 관계를 파괴하는 모든 인간의 이기적 시도로부터 사랑의 생명

공동체를 지켜내고 창조해 가는 역량을 실제 삶 속에서 구축해 가는 공부입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새들연구소)

새들연구소는 배움을 삶 속에 실천하고 창조해 가는 모든 걸음을 도모하고 응원하는 삶의 연구소이자, 뒤이어

오는 이들에게 앞서 배우고 살아가는 걸음을 사랑과 책임으로 계승하기 위한 연구실천 기관으로, 배움과 가르

침, 삶이 어우러지는 삶의 연구소입니다. 배움터경당을 졸업한 친구들은 자신이 뿌리내리는 삶의 터전 위에서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이하, 새들연구소)로 결합하여 삶과 배움의 실천을 본격화해 갈 수 있습니다.

새들연구소는 새들생명울배움터와 연대하는 벗들이 신뢰와 우정으로 결합하여 생명을 살리는 뜻을 함께 펼쳐 가며,

다양한 형태로 연마되는 삶의 기술과 지혜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합니다. 연구소의 연구 성과와 재력(才力)은 2세대

교육기관인 배움터경당의 배움의 내용과 돕는 자로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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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25

새들연구소는 2007년, 믿음대로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기 원하는 이들이 비공식 모임을 통해 삶의 바른 길을 묻

고 그것을 실천하는 노력을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끊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실천해 보는

‘단채식’모임을 가지며 우리 시대 먹거리 문제를 조명하고 삶으로 실천했으며, 이 뜻을 모아 2011년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을

열고 산하에 새들마을학교를 두어 대안적 교육을 모색했습니다.

2011년 7명의 학생과 4명의 상근교사로 초등과정 새들학당을 시작한 새들마을학교는, 2012년 중등과정 뿌리별학당을

시작하며 11명의 학생이 함께하게 되었고, 2013년 17명의 학생과 5명의 상근교사가, 2014년 23명의 학생과 6명의

상근교사가 함께했습니다. 이제 을미년 2015년을 맞아, 새들마을학교는 바람빛학당의 시작과 함께 ‘새들생명울

배움터 경당’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은 2012년에 ‘마을농부’ 모임을 시작하여 3년째 도시 텃밭 가꾸기 활동을 펼치며 텃밭농사가

활성화되어 있는 실제 마을 농부들의 격려와 조언을 받는 마을공동체적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환경화장품

‘산들바람’을 통해 필요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친환경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2012년 매주 한 차례, 그리고

2013년부터는 매주 두 차례 ‘천진난만마을밥상’을 열어 마을 이웃과 멀리 있는 지인들을 친환경제철 먹거리 밥상으로

초대해 함께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환경과 몸에 좋은 먹거리를 나누며 일상을 소소히 나누는 공동체적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은 2013년 임의단체로 가입하고, 상반기에는 ‘인물로 보는 독립운동사’와 하반기 ‘생의 명령, 농사’라는 주제로 창립기념세미나를 진행하여 이 땅에서 진정 서로를 살리는 삶을 모색하고 걸어왔던 이들을 통해 그

지혜와 용기를 배우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또한 2014년 상반기에는 ‘서양철학사’ 세미나를 통해 우리 삶의 근원을 더욱 깊이 묻고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반기에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진행하며 삶과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바탕하여, 그렇다면 우리의 가르침과

배움의 길은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가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각자 몸담고 있거나 섬기기 원하는 삶의

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이 모여 ‘동의보감읽기모임’ ‘유아교육모임’ 등의 자발적 모임을 형성해 뜻과 마음을

모으고 배워 가는 시간을 가져 오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이 일구고 깨달아 왔던 삶과 우주에 대한 이해와 지혜를 더욱 깊이 연구하여,

우리가 터 잡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세워 나가야 할 대안적 삶의 길을 모색해 가려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시대

요청되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들을 더욱 심화해 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원과 인재의 도시 쏠림 현상으로 인해 소외되어 버린 농촌의 가난, 직장인들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발생한

도시 구성원 간 소외와 단절, 이를 극복하기 원하며 이름 지었던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은, 이제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로 새롭게 태어납니다.(약칭은 동일하게 ‘새들연구소’) 앞서 지녔던 ‘열린 도시’를 위한 연구와 실천은 삶의

연구소인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의 연구와 실천 과제로 수렴됩니다.

새들연구소를 통해 연구와 실천을 펼쳐 가는 이들은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모삼촌선배로, 합당한 때에 배움터

경당의 학생들을 돕고 가르치는 자로 함께합니다. 새들연구소의 공부와 실천의 성과 또한 배움터경당의 공부로 창

조적으로 연계해 갑니다. 배움터경당의 학생들은 바람빛학당을 졸업한 후 새들연구소로 결합해, 성인으로서 실질적인

삶과 책임을 감당해 가는 데 벗 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경당과 연구소는 끊임없이 당대 지배이데올로기가 노정하는 반생명적 흐름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공교육 체계와 이념에서 자유로이 탈피하여, 진정으로 삶의 길을 묻고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원하는 이들을

위해 펼쳐 갈 배움과 가르침과 삶의 교육의 장입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특정 권력이 재생산해 내는 자기 이익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어리석게 복속되지 않고, 가뿐하고 담대히 생명의 교육과 삶을 사랑하며 펼쳐 갈 것입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는 그것이 진정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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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새들생명울배움터 공동생활수련

새들생명울배움터는 더불어 사는 삶을 실제 함께 살아가는 삶을 통해 배우고 익혀 갑니다.

공동생활수련은 새들생명울배움터에 함께하는 이들이 합당한 때에 합당한 방식으로 초청되는 가운데 이뤄집니다.

공동생활수련은 실제 일상을 함께 살아가며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과 더 깊은 만남을 통해 사랑과 배움의 역량을

키워 갑니다.

공동생활수련을 위한 터전 마련과 생활 비용은 모두 자체적으로 충당함으로 삶과 생활의 역량을 기르며, 서로가

스스로를 책임지고 함께 책임지는 훈련을 해 갑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의 살림

새들생명울배움터는 배움터경당과 연구소 살림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며, 배움터경당 역시 학당의 성장에 따라 학당

자체 독자적인 재정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배움터경당에 함께하는 이들은 입학기부금과 교육기금, 수업료 등을 냅니다.

입학기부금은 앞서 일구어 온 손길에 대한 보답과 그 책임에 함께하는 결단으로 냅니다. 입학기부금은 합당한 책임과

정성으로 자신의 형편에 따라 자율책정합니다. 다만 나울너울자람터 및 각 학당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입학기부금

정책 또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다음 학당으로 진학하는 경우에는 따로 입학기부금을 내지 않는 대신 교육기금으로

함께합니다. (계좌 : 국민은행 222001-04-141337 윤희윤(새들생명울배움터) )

교육기금은 새들생명울배움터가 지향하는 교육을 지지하고 함께 힘을 모으기 원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배움터경당의 각 학당에 입학하는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참여하되, 형편이 허락되는 대로 정기후원, 특별기금 형태

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음 학당으로 진학하는 경우에는 따로 입학기부금을 내는 대신 교육기금으로 함께합니다.

(계좌 : 국민은행 222001-04-141337 윤희윤(새들생명울배움터) )

수업료는 교사들의 연구와 생활을 위해 방학과 무관하게 1년 12개월 납부합니다. 자람터 및 각 학당의 수업료는

그해 물가 인상, 각 학당의 재정 운영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개인 소장이 가능한 수업 재료 구입비나

특별 수업 참가비 등은 각 개인이 부담합니다. (계좌 : 국민은행 222002-04-281647 윤희윤(배움터경당) )

새들연구소의 뜻에 동의하고 그 실현을 함께 지향하는 모든 이들은 새들연구소의 정기회비와 연구기금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계좌 : 국민은행 222002-04-283018 권민지(새들연구소) )

정기회비는 매달 약정한 일정 금액을 내는 것으로 새들연구소의 전반적인 살림과 연구실천비로 사용됩니다.

연구기금은 연구실천비로 더 큰 몫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마련하는 기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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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27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충(忠)의 길

교육문화연구학교 여는마당 강의

1. 만남의 기쁨

안녕하세요. 여러분. 혹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

전에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게 사로잡는 그 설렘과 기쁨,

고통을 느껴보셨나요? ‘저는 어떻게 이런 마음의 지경

이 될 수 있는 거지’ 하며 신기하게 스스로를 관찰하기

도 했습니다. 또 조금 국한된 경험일 수 있겠지만, 아이

를 출산하고 맞이할 때의 그 감격. 저는 그때 시를 썼었

는데 ‘온몸이 폭파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했

지요. 또한 저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어

디를 떠나게 될 때, 그럴 때 또 기쁨의 지수가 급속도로

올라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오랜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너무 기뻐서이지요. 저는 열

린도시연구소 새 들 산하의 새들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는데요. 이번 학기 첫 시간, 첫 수업

때 저희 학생들의 첫 반응이 어땠는지 아세요? “아, 너

무 설렌다”였어요. 이번 학기엔 또 무엇을 공부하게 될

지, 무엇을 또 만나게 될지, 너무 설레었던 거지요. 그건

선생님인 저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될 때도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우리는 다른 이들이 만나는 걸 봐도 기쁩니다. 올해 저

희 학교 선생님들이 교제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아이들

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다른 이들이 좋은 걸 만날 때 우

리는 함께 너무 기뻐하지요. 참 신기합니다. 어쩌면 행

복이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잘 만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2. 교육문화연구학교에 임하는 자세

- 만남의 축복을 소중히

이 만남을 앞두고, 또 오늘 여러분을 맞이하면서 설레

고 떨리기도 하면서 한편 이 만남이 정말 좋은 만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척 컸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이 만남이 정말 기쁜 만남, 뜨거운 만남, 이후 인생에 빛

이 되고 길이 되어 주는 만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

으로 약 석 달에 걸쳐 거의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게 될

텐데요, 우리의 열심과 정성과 간절함이 만나 여기 모인

우리뿐 아니라 우리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도 기쁜 만남

의 소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또한 여

러분의 최선을 다해 주셔야 하고요. 우리들의 힘이 최상

으로 모아질 때 모두에게 정말 값진 결실이 맺어질 거라

믿습니다.

3.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정신

이번 [여는 마당] 강의 제목이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

된 교육 정신’입니다. 오늘이 한글날이지요. 한글날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종대왕을 추모하기 위한 날입

니다. 한글창제는 세종대왕을 가장 대표하는 것이지요.

백성을 위했던 업적, 즉 위민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습

니다. 언제고 한글날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귀한 시간을 마련해 한글날을 기

념할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무척 기쁘고 감사합니다.

한글날이니만큼 한글에 대해 조금 알고 넘어 갑시다. 한

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는데요.

한글은 왜 우수할까요? 한글은 우주 자연 만물의 섭리를

담고 있는 점, 과학성, 배우기 쉬움, 높은 활용성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글_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 /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

부록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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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한글은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우주자연만물의

섭리인 음양오행의 이치를 담은 것뿐”이라고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말하고 있

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만물을 창조한 두 가지 형상이 있는데 이는 상반되

는 이원적 대립 관계이지만 상보적이며 우주의 생성소입니다. 해례본에는 곤

과 복으로의 이행 과정에 태극이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태극이 만물이 생긴 근원이라고 하네요. 태극이 움직여 양이 생기고 이 움

직임이 극해지면 고요가 찾아오고 고요함은 음을 낳습니다. 고요함이 극에 달

하면 다시 움직임이 생깁니다. 한번 고요해지면 뿌리가 되어 음과 양으로 갈

리게 되고 양과 음이 맞서게 되면 다시 태극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양이 생기는 것이지요. 한글은 이러한 음양의 원리를 담아 만들어진 글

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글자를 ‘목화토금수’ 오행의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어금니 소

리인 아음(ㄱ,ㅋ)는 나무(木), 혓소리인 설음(ㄴ,ㄹ,ㄷ,ㅌ,)은 불(火), 입술소

리인 순음(ㅁ,ㅂ,ㅍ)은 흙(土), 잇소리인 치음(ㅅ,ㅈ,ㅊ)은 금(金), 목구멍 소

리인 후음(ㅇ,ㅎ)은 물(水)을 뜻합니다. 그리고 기본모음인 •, -, ㅣ는 ‘하늘,

땅, 사람’을 가리키는 ‘천지인’ 삼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글자이지요.

다음으로 한글은 소리와 기호가 동일하여 배우기가 무척 쉽습니다. 웬만한 사

람은 아침이 되기 전에 다 익히고 조금 아둔한 사람은 일주일 안에 다 배운다

고 하지요. 또한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으로 이 세상 모든 소리를 다 표현

할 수 있는 높은 조합력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한글을 창제하게 된 계기는 한 백성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 때문

이었습니다. 가정 안에서의 도리를 알려주는 삼강행실도라는 책이 있었지만 모

두 한자로 되어 있었지요. 먹고 살기 바쁜 평민들은 한자를 배우기가 여간 어

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글이 중국어와 달라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백성이 할 말이 있어도 제 뜻을 쉽게 펴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겼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

게 되기를 바랐지요.

4. 세종의 위민정치

한글 창제로 대표되는 위민 정치를 펼친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정치, 경제, 문화 면에서 큰 치적을 쌓았습니다. 우리 실정에

맞는 최초의 <농사직설>을 편찬케 하여 백성들의 농사에 도움을 주고자 했으

며, 우마 취급을 받던 노비들에까지 배려를 아까지 않아 임신한 노비에게 출산

휴가를 주었습니다. 남편도 출산 휴가를 받았구요. 세종의 민생 정치 소문에

천지 자연(우주만물)의 원리는

오로지 음양오행일 뿐이다.

곤(坤)과 복(復)의 사이에서

태극이 생겨나서 움직이고,

멈춘 후에 음양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릇 목숨을 가진 무리들로 하늘과

땅의 사이에 있는 것들은

음양을 버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는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사람들이

살펴서 깨닫지 못한 것일 뿐이다.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원래에 있는) 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뿐이다.

(음양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_『훈민정음 해례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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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29

국경을 넘어 살러 오는 이국인들에 대해서도 세종대왕

은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관직을 지녔던 이들에게 관직

을 부여하고 이국 백성들도 후히 대접했을 정도로 백성

의 삶 구석구석을 어버이의 심정으로 따뜻하게 보살피었

던 것입니다.

5. 세종의 위민정신 - 스승의 정신

그런데 흥미롭게도 스승의 날은 이 세종대왕의 탄생일

을 기념해 제정되었습니다. 스승의 스승으로 세종대왕

을 떠올렸던 것이지요. 이는 백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지극정성의 정치를 펼쳤던 그 정신과 노력이 바

로 교사가 지녀야 할 자세와 노력이라고 보았다는 뜻

이지요. 왕은 백성을 어버이같이 아끼고 살피며 돌보

아야 하듯이, 교사는 학생을 어버이처럼 아끼고 살피

며 돌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양 근대 국민교육의 아

버지라 불리는 페스탈로치도 교육이란 ‘목자가 양을 치

듯, 농부가 식물을 기르듯’ 그렇게 어버이의 마음으로

이뤄져야만 하는 것이라 주창했습니다. 간디도 낳고

기르고 키우는 어머니처럼 학생을 가르쳐야 함을 강

조하며 ‘어머니교사’라는 개념을 내세웠지요. 결국 그

‘애틋하고 늘 노심초사하며 자신을 던져 그의 안위를

도모하며 지키고 도우며 자라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

이라는 것입니다.

6.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란? - 충의 길

결국 위민, 위민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이 생깁니다. 그럼 어떻게 ‘위(爲)’해야 하는 걸까.

백성을 위하는 건 맞는 말인데, 그러면 어떻게 위해야 하

는 걸까요? 백성을 돌보듯, 백성을 지키는 심정으로 학

생들을 돌보고 지키며 그들의 자람과 성숙을 책임지는

그 길.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을 진정 위하는 길일까요.

우리는 이 대목에서 실상은 무수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는다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이들을 가르쳐 본 교사나 자녀를 길러 본 부모라면 정

말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 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정 위하는 길일까요. ‘자녀들의 교육비에 무

리하게 장만한 집 대출 갚느라 돈 열심히 벌어야 하니 아

이들과 만날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가까이서 잘

못 돌보니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이 해 달라는 거 왠만하

면 다 해 주게 되고, 가능할 때마다 외식하며 맛있는 거

사 주고, 잘못을 하면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러려니

하며 또 미안한 마음이 앞서 아이들을 야단치기보단 더

감싸 줍니다.’ 이게 진정 위하는 길일까요? 그러니 진정

위하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그 답을

‘충의 길’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진정 위하는 길이란 ‘충’

을 하는 것이라고요.

영화 <명랑>에서 이순신은 거듭되는 모략과 고초를 겪으

면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져 왜적에 맞서 싸

웁니다. 원래 무인과 문인은 따로 구분이 없었습니다. 우

리나라 역사에서 훌륭한 위인이란 대부분 문무를 겸비

했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들어와 점점 무인을 멸시하

는 분위기가 싹트게 되고 마침내 무인 차별이 심해졌습

니다. 그래서 결국 무신정변이 일어났지요. 밖에 나가 목

숨 걸고 실컷 싸우고 들어오면 따뜻한 방에 앉아서 갑론

을박만 하던 대신들은 공을 세우고 온 장군들의 영향력

을 견제하기 위해 모함을 해 제거하는 일이 잦았던 것입

니다. 그런 분위기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게 되고 그 맥

락 속에 이순신도 동일한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아들

이회는 목숨 걸고 왜적과 싸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

게 홀대하는 왕에게 충을 바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

습니다. 도대체 그런 왕에게 무슨 충이냐고 항변하지요.

이때 이순신은 “나의 충은 백성을 향한 것”이라고 말합

니다. 이순신이 말하는 충이란, ‘왕을 향한 충’이 그 본질

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충’이었고, 그것이 왕의 명령에

충하는 것으로 표현될 뿐이었지요. 이순신은 ‘충’의 본질

을 정확히 해석하고 그것을 몸소 살아 내 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충(忠)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충’이란 것이

요즘 시대에는 무척 배척되는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숭상받고 있는 지고의 가치는 ‘민주주의,

자유, 개인 존중’ 이런 가치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충은 이러한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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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꺾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무언가 종이 되는 것 같

은 거죠. 그리고 충을 요구받으면 맹목적 추종을 요구하

는 듯해 거부감이 드는 것입니다. 충이란 조직폭력배에

서나 아직 유효할 법하게 느껴지지요. 또한 우리는 일제

식민 통치를 통해 황국신민으로서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

세하는 패악을 36년 세월 동안 겪었습니다. 충이란 친일

과 한 이름이 아니었겠습니까.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독재 정권이 국가

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며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했습니다.

국민의 삶을 유린하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기까지

하며 노상 충을 얘기했으니까요. 실제로 충은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말입니다. 오늘 저는 그렇

게 왜곡되고 비틀려 버린 충 사상의 본의를 되살려 그것

이 지닌 가치와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유교의 충 사상

충 사상은 효 사상과 더불어 유교의 핵심을 이룹니다. 유

교는 관계의 도리,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지켜야 하는

도리를 설파하고 있는 윤리적 사상입니다. 신하와 자식

은 왕과 부모를 향해 충과 효를 지녀야 하고, 왕과 부모

는 신하와 자식을 향해 인(仁)과 자(慈)애를 지녀야 하

지요.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 벗 사이의 신의가 지

목됩니다. 이것이 유교 사상의 핵심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주 조화로운 관계의 도입니다.

하지만 충의 진정한 본의는 같은 땅에서 같은 운명으로

살아가는 이들(백성)의 삶의 안위를 책임지고 대표하는

왕이란 존재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신하가 왕

에게 충하는 것에 있습니다. 즉 충의 본의는 바로 이 ‘위

민’에 있는 것입니다. 왕이 신하와 그 나라 백성에게 충을

요구하는 것은 그 백성 전체를 위한 위민에 있는 것이며,

신하와 그 나라 백성이 왕에게 충성하는 것 또한 그 나라

전채 백성의 안위를 위한 위민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충 사상은 본래의 본의가 펼쳐지기보다 국가가,

왕이, 즉 한 인간이 우위에서 지배의 이념을 실현시키고

그것에 백성을 복종시켜 자기 이익을 관철하는 데 종종

이용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충이 그렇게 왜곡된 예는

무수히 많지요. 그러나 실재로 그런 왜곡되고 비틀어진

충의 예가 있는 것과 동시에,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마

음으로 왕과 나라의 부름에 충성하려고 했던 또한 무수

한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역사는 때론 왕이 백성을 위

해 충을 요구할 때 신하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왕을 거스

리고 대항한 예, 신하가 백성을 위해 백성에 충하려 하나

왕이 패역하여 신하의 충을 왜곡하거나 참된 충신을 끊

어 내는 예가 격자처럼 얽히고 섥혀 펼쳐졌습니다.

8. 한자 의미를 통한 ‘충’의 심화 이해

그렇다면 이 충(忠)의 의미를 한자 개념을 통해 좀 더 자

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충을 이루고 있는 중(中)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중(中)은 ‘가운데’를 뜻하지요.

가운데는 시공간적으로, 양적으로 질적으로 그 질이 되

게 하는 핵심, 본질, 본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

리가 언뜻 생각하는 ‘중, 가운데’란 인간의 한계에 묶인

이해가 되기 쉽습니다. 실제 중은, 인간의 공간과 시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현실입니다. 칠판의 한가운데, 하루 중

한가운데란 불가능합니다. 삶의 중요한 현상의 본질인

한가운데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한가운데는 계속해서 변

하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로 연결되어 전체 우주의 한가

운데인 본질과 하나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시공간을 다라고 결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추구>라는 책에, ‘山外有山山不盡(산외

유산산부진) 路中多路路無窮(노중다로로무궁)’이란 말

이 있습니다. “산 밖에 산이 다하지 않고 길 가운데 길

이 끝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

라 실제 우리 현실을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입니

다. 즉 외적 확장으로든 심연의 깊이로든 우리는 우리

인생의 끝, 이 우주의 끝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실제

가 이렇기에 이 실제의 ‘중’이란 아주 역동적으로 변하

는 것이라 때론 규정하기 매우 어려워 보이는 어떤 지

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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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31

그렇다면 시공간에 제한된 우리가 시공간을 초월해 ‘중’

을 알아보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우리가 사용

하는 이해와 표현의 수단은 시공간의 제한을 갖겠지만,

우리 존재는 이미 시공간을 뛰어넘은 이 우주세계만상의

한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우리가 그것을 다

표현하고 우리의 개념으로 다 담아 이해할 순 없더라도

우리는 우주세계만상의 원리와 어떤 질서에 얽혀 있는

존재이기에 자연히 그 ‘중’(본질)을 어김없이 몸(여기서

정신을 포함 한 일체로서의 몸)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 이제 말문이 트여 자유자재로 말하

는 다섯 살 해람이가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그 많고 많은

표현들을 다 재치고 “모두 열심히 하고 있네”라고 했던

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른들이 뭐 하고 있는 거

지?’ 이럴 수도 있고 ‘난 심심한데’ 이럴 수도 있고요. 그

러나 자신이 함께 얽혀 있는 그 현장의 본질을 5살 아이

는 너무도 잘 포착한 것입니다. 실제로 참가자들이 기록

한 걸 보면 정말 정성스레 열심히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이렇게 우리는 매 순간 무엇이 본질인지 직감

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끊임없는 포

착의 과정 가운데 있고 완전한 포착으로 계속해서 나아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걸 부정하고 알

수 없다 하고 포착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당연히 그 능력

이 감소될 것입니다. 반대로 이것에 한껏 열려 있으면 그

본질을 분명코 포착할 수 있으며 그 이해의 깊이와 폭은

끝없이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관건은 ‘가운데(본질)란 획일적이거나 고

정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고 다양한 모양을 띌 수 있다

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이 중을 포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중을 분별해 포착하는 행위를 실제로 이행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우리로 중을 인식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긴

밀히 작동하게 돕는 세 가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中은 안과 밖을 관통하는 모양새입니다. ‘가

운데’라는 뜻을 가지지만 이 가운데란 ‘안과 밖을 관통하

는 가운데’입니다. 따라서 이 ‘가운데’라는 것은 안과 밖

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안과 밖이 단절되거나 어긋나 있

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이룬 것은 밖에서도 이루는 것

이지요. 안과 밖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언제든, 어디에

있든, 동일한 것입니다. 가운데란, 이렇게 한 존재의 본

질, 안으로든 밖으로든 일관된 본질을 의미하는 것입니

다. 흔히 우리는 공간의 의미로 ‘가운데’를 생각하지만,

실제 존재에서의 가운데란 바로 이 본질, 변하지 않는 일

관된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은 또한 하늘과 땅을 잇는 모양새입니다. 中 자의 가운

데 획은 하늘과 땅을 이어 관통하지요. 하늘과 땅을 잇

는 것이면서 인간세에서 파악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파

악될 수 있는 ‘중’인 것입니다. 하늘, 땅, 인간세의 진리,

질서를 관통하는 본질이 바로 중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관성이라는 게, 표면적으로 똑같은 모

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세종이 신하

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끝까지 토론하고 다시 또 만

나 논의를 이어 갔던 면과,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하며 집

현전 학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글 창제와 반

포를 밀어붙인 것은 겉으로는 상반된 태도 같아 보이지

만 위민이라는 중심에 있어서는 참으로 일관된 태도를

보인 것이지요. 아이가 잘하든 못하든 평정심을 유지하

며 온유한 목소리로 언제나 ‘그래 네가 그렇게 느꼈구나,

엄마는 이러이러해서 마음이 몹시 상했어.’ 이렇게 반응

하는 게 일관된 걸까요? 아이들은 화가 났을 때 화를 발

하지 않으면 화가 난지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화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겠으나 화를 없이할 순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정말 화를 낼 만한 행동을 했다면 정

당하게 화를 표현해야 ‘아 이게 화나게 하는 상황이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알아듣게 하고 고쳐

야겠다 마음먹게 하는 것과, 아이를 인내하며 기다려 주

고 온유함으로 설명해 주는 것. 이런 다양한 모습으로 만

나는 게 일관성이 없는 게 아니라 진정 아이를 이롭게 하

기 위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일관된다는 것은

본질이 일관된다는 것입니다. 위민의 정신이 일관된 거

고 아이를 사랑하여 그 아이가 바르게 되기를 바라고 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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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는 그 정신과 자세가 일관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 방식이

나 표현은 실제 상황들에서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획일적인 대응 방식

을 법칙처럼 가르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마음 심(心)을 봅시다. 마음 심 자는 원래 인간의

염통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라 합니다. ‘몸과 생각을 통

합하여 생활을 유지하는 작용의 본체’라고도 하고 ‘느낌,

모습, 뜻, 의지’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심자는

‘한가운데’란 뜻도 있고 ‘도의 본원’이란 뜻도 가집니다.

이렇게 충이라는 것은, ‘우리의 정신, 마음, 가운데(心)

가 우주세계삼라만상의 가운데(中)와 딱 만나는 것’입니

다. ‘심이 중에 가는 것’이지요. ‘심이 중과 결합하는 것’

입니다. 즉, 그 ‘중을 향하고 그 중에 마음, 정서, 생각,

느낌, 정을 두는 것’. 즉, 실제 행위, 실천, 삶을 뜻합니

다. 그 ‘본질에 마음과 정을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충입

니다. 쉽게 말하면 가야 할 때 가는 것이고 가야 하는 곳

에 가는 것이고 해야 할 때 하는 것이고 해야 하는 그것

을 하는 것이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만나야

할 때 만나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 존재의 본질과 이 우

주삼라만상의 한가운데가 합치되는 것이 바로 충이지요.

따라서 ‘충성’(忠誠)이란 그 마음이 중에 가는 행위에 성

실히 임함을 뜻합니다. 지속적으로 신실함, 총체적으로

신실히 충하는 것입니다.

9. 한자(언어)에 담긴 생의 이치

한자 글자 하나에 무얼 그리 많은 이치를 끌어내나 싶지

만, 한자에는 처음 이런 한자를 만들어 썼던 사람들이 무

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그것을 표현했는지가 아주 심오하

게 담겨 있습니다. 이건 한자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말

도, 어떤 언어라도 그러한 측면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형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 인생을 보다 깊이 있

게 이해할 수 있지요. 언어에 철학이 담겨 있지요. 언어

는 위대한 철학이라고 저는 부르고 싶습니다. 아주 비근

한 예로 영어의 present는 ‘현재’이면서 ‘선물’을 뜻합니

다. ‘현재가 선물’이라는 깊은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습

니다. 우리말에서 ‘올’이란 ‘실오라기’를 나타냅니다. ‘올

바르다’는 ‘올이 바르다’를 뜻합니다. 올바르다는 것은

무언가를 총체적으로 바르게 붙들어 온전한 하나가 그것

이 되게 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요. ‘얼굴’에서 ‘굴’이란

동굴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 몸에 굴이 제일 많은 것이 얼

굴입니다. 그리고 ‘얼’은 순우리말로 ‘정신’이란 뜻입니

다. 얼굴에서 정신이 가장 많이 드러납니다. 굴을 통해

몸 안의 정신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또한 ‘장인’을

뜻하는 공(工)은 ‘하늘과 땅을 인간이 잇는 것’으로서,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아울러 담아내는 지경’의 작품을 만

들어 내는 것이 장인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백성 민

(民)은 ‘눈을 찔러 사물을 볼 수 없게 된 노예’를 나타냅

니다. 원래 백성이란 존재는 그렇게 짐짝처럼 짓밟히고

노략질당하고 포로로 잡혀 노예로 살아야 했지요. 그런

데 위민(爲民)이라 함은 그런 처지에 있던 백성이란 존

재들을 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고아와 과

부’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고 한 것과 같은 사상이지요.

민주주의(民主主意)란 바로 그런 힘없고 고통받는 백성

을 주인으로 높이는 사상인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참으

로 높은 지경의 사상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지요. 그

구현이 관건이긴 하지만요.

이렇게 언어에 담긴 깊은 사상을 헤아리다 보면, 오늘날

문명이 발달해 있다고 하는 우리가 언어를 얼마나 천시

하고 있으며 얼마나 얕고 단편적인 언어 사용과 그로 인

한 얕고 단편적인 사유에 머물러 있는지 모릅니다.

10. 충의 본의를 상실한 현대의 삶

이렇게 충의 의미를 보았을 때, 우리가 이 좋은 ‘충’의 본

의를 상실한 채 살고 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곡된 ‘충성’의 의미가 우리 삶의 관계를 막아서고 있

지요. 오늘날 기독교의 수많은 불의와 부정으로 인해 많

은 사람들은 기독교 하면 막무가내 거부 반응을 일으킵

니다. ‘정치’ 하면 회의와 실망, 더 이상의 기대를 갖지

않게 하며, 불가능을 떠올리게 하지요. ‘사업’을 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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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33

면 부정 없이 하기 어렵다고들 하고, 교수는 탁상공론의

학문을 붙들고 학생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대학원생들

을 부려먹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학교’ 하면 참된 교육

정신을 상실한 채 아이들을 경쟁과 실패감과 관계 파괴

의 현실로 몰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에게 있

어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녀를 빼내야만

하는 그런 장으로 종종 여겨지곤 하지요.

우리의 실제 삶은 왜곡되고 비틀어진 개념의 의미들로

온통 장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개념을

인정하고, 그 불의해져 버리고 왜곡되어 버린 개념을 수

용한 채 그 전제 위에서 우리 삶의 선택과 걸음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다 그러니’, ‘남이 하는데 내가

안 하면 어떡하지’. ‘그런 건 다 소용없어, 나만 믿을 거

야.’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은 부정

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1. 공자의 정명 사상

그래서 공자는 정치를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하라

(正名)”고 말했습니다.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따져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다

음과 같이 말합니다.

“군자는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법이다. 이름이 바르게 되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일

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도덕적 삶과 법질서가 유

지되지 않는다. 도덕적인 삶과 법질서가 유지되지 않으

면 형벌이 정확하게 시행되지 않고, 형벌이 정확하게 시

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름을 정확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말(생각)이 알맞게 나오는 법. 알맞게 나온 말(생각)에

는 반드시 실천이 따른다. 그래서 군자는 말을 구차스럽

게 하는 법이 없다.”

정치란 삶에 대한 바른 다스림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모

든 영역의 삶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정치라면, 이 정치

라는 것은 결국 그 말의 본의, 개념의 본의, 즉, 왜곡된

이름의 본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름과 본의와 실제

가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언어란 놀라운 것

입니다. 언어 자체가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이를

회복하는 게 바로 정명입니다. 왜곡되고 거짓으로 사용

하는 것을 끊어 내는 것. 언어가 지닌 진리성에 우리 삶

과 정신을 일치시키는 것이지요.

12.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육 정신 - 충

오늘 저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교육 정신으로 바로

이 충의 길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충의 본의를

제대로 살려 살아가자는 것이고, 그것이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이 충의

상실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과도한 입시교육

으로 학생들은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못한 채 억지로 열

심히 공부해야 하는 고역의 고난의 행군을 이어 가고 있

습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은 학교라도 학생들의 삶에 무

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남은 스마트폰 물살에 가로

막혀 있고, 조기교육 열풍은 아이들이 지닌 잠재력과 고

통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경쟁 사회 분위기 속에 켜켜이

쌓여 가는 부모의 불안은 말하지 않아도 자녀에게 고스

란히 전염됩니다. 유치원생들에게까지 부모의 불안과 두

려움이 전이되어 어린 아이들의 생명력은 두려움에 포로

잡혀 있습니다.

충을 말함은, 바로 이 ‘중을 향한 집중’을 요청하는 것입

니다. 서로의 중심을 만나 가려는 노력, 서로의 문제의

본질을 직면하려는 노력,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머리 맞대고 끝까지 부딪쳐 뚫고

가려는 노력, 부모와 자식 간엔 어떤 충이 이뤄져야 하

며, 친구들 간에는 어떤 충이 이뤄져야 하고, 교사와 학

생 간엔 어떤 충이 이뤄져야 하는지. 서로의 마음의 중심

을 만나려는 노력. 그 가운데 본질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

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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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교육에 있어서 이 충을 심각하게 가로막는 대표적인 것

이 바로 ‘평가’입니다. 획일적인 잣대로 한 존재를 함부

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적 성과를 어떻게

어떤 시험이나 수치로 평가를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으

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치로 알 수 있

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 본질을 대면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 없이 수치로 평가하려고만 하는

것은 참으로 폭력적인 것입니다.

평가는 어느 부분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알아보기

위해, 어느 정도 공부가 이뤄졌고 그렇다면 다음엔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 가야 할지를 가늠하는 의미에서만 의미

가 있는 것입니다. 특정 기업이 자기 기업에 필요한 인재

를 뽑기 위해 기업이 필요한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국가의 교육 제도는 전체 국

민을 위한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특정 집단의 이익에 기

반한 목적에 국한한 교육 목적을 제정하는 것은 결국 많

은 구성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가 그

나라 학교들의 교육 성과를 판단하기 위해 획일적인 잣

대로 평가를 하는 것만큼 무지막지한 일은 없습니다. 교

육은 키우고 길러 가는 일이어야지 배제하고 구분하고

선발하는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학교를 둘러보러 오는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와

보면 아이들을 보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어

보면 음식의 질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수업의

질에 대해서는, 장기간의 살펴봄을 통해 알 수 있겠지요.

공무원이 그것이 하는 일이라면 지속적으로 학교와 만나

면서 서로 돌보는 관계로 갈 때 얼마든지 그 학교의 건강

함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평가 자료로만

의존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본질적인 만남은 하지 않

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예는 현실에 허다합니다. 건강에 해가 되는 작

업 환경은 굳이 역학조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이 걸렸다면, 그것도 계속해서 병이 걸리는 사

람이 발생한다면, 그 작업 환경에 대한 대처는 역학조사

니 이런 연구를 거칠 때까지 기다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송전탑의 전자파가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수십 년의 연구를 해 보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떡하라구요. 우리는 얼마든지 직관으로 그것

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가 아직 없다느니, 과학

적으로 아직 검증이 안 됐다느니, 그런 이유들로 위험

에 처한 실제 삶은 언제까지나 방기됩니다. 수년을 끔

찍한 폭력에 시달린 아내가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던

남편을 죽이게 되었을 때, 그것이 정당방위니 아니니

따져야 한다는 건 참으로 가슴을 칠 노릇입니다. 정확

한 연구나 조사는 다음을 대비해 필요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의 사태를 우리가 분별할 수 없는 게

결코 아니라는 얘기지요. 과학과 제도란 우리의 삶을

정리해 주고 또 다음 미래에 대한 발판이 되는데 아주

유용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우리 삶의 모든 판단과

선택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삶의 제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과 조

치를 미룬 채 과학과 제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신

발을 사려고 발의 본을 그려 놓고 깜빡 놓고 갔다가 신

발 가게에서 본을 안 가져왔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는 꼴입니다. 모두가 본질에 무지하거나 본질을 주목

하지 않는 결과인 것이지요.

교육은 바로 이 충의 만남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

고 싶습니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 만남이 충의 만남이 되게 이끄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그리고 배우게 되는 무수한 대

상, 타존재, 이 세상의 무수한 존재들과 면면들. 이것들

의 중을 만나도록 돕고 충으로 만나게 돕는 것. 우리의

교육이란 바로 이 충의 만남으로 부지런히 이끌어 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지식을 축적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 배움의 대상을 전심으로,

충으로 만나는 것. 본질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되어야

Page 13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35

합니다. 그럴 때 부모와 자식, 학생과 교사, 친구와 친구

는 진정한 만남의 기쁨 속에서 ‘지복’이라는 것을 만끽하

게 될 것입니다.

13. 다양한 교육목적

대부분의 성인이나 철학자들이 하나같이 말하고 있는 교

육의 목적은 ‘인격의 도야, 천성을 회복하고 기르는 것’

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충의 만남에 이르는 데

있어 인성을 도야하고 천성을 회복하고 기르는 것이 더

욱 유익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이 충의 만남의

결과로 인성이 도야되고 천성이 회복되고 길러질 수 있

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인성도야, 천성의 기름의

쌍방으로 ‘충의 만남’을 두는 것입니다. 이 충의 만남은

인격적으로 도야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평범한 사

람이 이 만남을 통해 인격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무수

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 외의 교육 목적들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교육의 주요 목표는 종종 ‘인재 양성’

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인재 양성은 국가나 기업의 특

정 필요에 따라 누구를 선택하면서 누구는 소외시켜 다

수를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선택받아야 하

는 구조 앞에서 간택을 기다리는 궁녀들의 처참한 심경

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국가 교육의 목적이

되어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요즘에는 교육 목적으로 ‘행복’을 내세우는 추세입니다.

이것은 기존 교육 환경이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지 못하

게 했던 오랜 세월의 고뇌를 배경으로 나온 교육 목적입

니다. 그래서 많은 대안 학교의 교육 방향이 아이들로 하

여금 자신을 발현해 행복하게 되는 것에 초점이 많이 맞

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왜곡되고 불의한 현실과 조건이 고려되면 좋겠다는 아쉬

움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역사

와 현실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행복하게 지낸 것만으로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넘

어뜨리는 현실의 냉혹함을 이겨 내기에는 취약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또 종종 보게 되는 교육 목적에 ‘더불어 사는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더불어 사는 삶, 타인

도 함께 행복한 삶을 위한 교육’ 여기에 방점을 두는 것

일 테지요. 그런데 간혹 ‘개인 능력의 신장’이라는 맥락

에서 더불어 사는 능력, 소통 능력이 강조되는 경우도 보

게 됩니다. ‘더불어’를 이야기하지만 거기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개인 능력’에 방점이 있는 철학적 배

경일 때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 충의 만남을 크게 가로막

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서 본질을 대면하는 역량과 자세,

그 바탕 위에서 자신의 삶의 걸음과 수고를 쏟을 결정을

하는 것에 대한 교육이 될 때, 그것은 불의하고 왜곡된

현실에서 본질 간의 강인한 만남의 연대로 대응할 수 있

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도

바로 이 ‘충의 길’이라는 바탕 위에서 진정한 본질로서의

만남을 모색하는 맥락으로 추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

금 내 삶의 본질이 되는 만남,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에

가장 중요한 가운데를 알아보고 그 중(中)에 마음과 정

성을 쏟는 것. 그것이 누구에게는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게는 방황하고 고뇌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4. 우주 전체 중심으로 연결시키는

‘충의 만남의 교육’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을 것은, 개별 존재들의 중심 간의

만남은 반드시 삶 전체, 우주 전체 질서에서의 중심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이

중심으로의 연결점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까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 인간이 지금 노정하고 있는

범주 너머의 세계가 있을 수 있음에 열려 있는 것이 합당

하고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했습

니다.

Page 13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3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우리는 폭넓은 이해를 위해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근대인들은 배경 속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의 보잘것없는 안정된 전통을

압도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선택지들에 대한 느낌을 상실해 버렸다.

문명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이해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는 생과 존재에 대한 더 깊은 이해, 더 높은 차원의 이

해로 나아가야 하며 본질과의 만남은 계속해서 지속적으

로 추구해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 이해를 초월한 영

역에 대한 겸허함과 경외심으로,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든 내가 부분으로 몸담고 있는 이 전체 우주

질서의 본질이 내 생의 인식의 영역으로 포착될 때 겸손

히 열려 있음으로, 끊임없이 현실로 침투해 들어오는 초

월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충

의 만남으로 이끄는 공부는 개별 생명체 상호 간의 본질

적 만남뿐 아니라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질서와의 본질

적 만남으로까지도 이어질 때 보다 더 온전한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5. 결론

결론적으로 교육은 충의 만남으로 인도되어야 하고, 그

러려면 언제, 어느 순간, 어느 장, 어느 시점, 어떤 모양

일지 모르는 본질적 만남의 계기에 늘 열려 부지런히 포

착하고 그것에 힘을 쏟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는 오늘, 누구를, 무엇을 만나고 있는지, 내 중심을 누구

와 무엇과 만나고 있는지, 그 중심의 만남에 충을 다하고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충을 바치고 있는지, 충성하고 있

는지 그것을 매일매일 돌아보고 다시 실천하기를 거듭하

는 것이 공부와 배움의 길일 것이며 그것을 돕는 것이 교

육일 것입니다. 내가 어떤 중심과 충성으로 만나고 있는

지 매일매일 성찰하는 것. 그리고 다시 새롭게 나의 중심

을 일신하여 충으로 만나 가는 것을 목적의식적으로 해

가는 것, 그것이 교육이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음악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수를 만나고, 역사를 만

나고, 과학적 세계를 만나고, 글을 만나고, 인생을 만나

고, 우주의 질서를 만나고, 옆자리 앉은 친구를 만나고,

나와 함께 공부하는 동무들을 만나고,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오늘도 내 앞에 서신 저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

가 나를 마른자리 기른 자리 갈아 뉘시며 돌보시는 부모

님을 만나면서. 그 충으로 만나고자 노력하도록 돕는 것.

그 만나지는 기쁨과 관계성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

고 우리는 우리를 파편화시키고 고립시키며 끊임없이 왜

곡과 불의로 미끌려 추락하게 만드는 인간의 온갖 행실

과 작태로부터 우리를 지켜 보다 더 많은 이들을 지복으

로 더불어 이끌어 가야 할 것입니다. 충의 만남을 찾고

발견하고 구성하고 펼쳐 가고 누리며 다시 또 그 만남을

번성시키는 길. 그 길에 참된 생명의 교육이 있지 않을까

헤아려 봅니다.

Page 13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372013 아름다운 우리·7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논어 ‘학이’편의

첫 구절입니다. 우리는 흔히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으로 알고 있지요. 책 보고 공부하고 어떤 것을

가끔 더 잘 알게 되면 기쁘다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곰

곰이 생각해 보세요. 배우고 겨우 때때로(경우에 따라 가끔) 되

풀이해 기억하는 게 뭐가 그리 기쁠까요?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는 ‘습(習)’자가 완전히 행하게 될 때까

지 반복해서 오래 익힘으로 아주 능숙하게 행하게 되는 것까지

포함하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시(時)’는 ‘때때로’가 아닌,

‘제때에’ ‘때에 맞게’로 푸는 게 더 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

고 보니 時와 習의 의미가 아주 멋지게 연결됩니다. 배우고 배워

온전히 익힘으로 때가 이르러 행해야 할 때 제때에 때에 맞게 행

하니 참으로 기쁘다는 말인 거지요. 그러면 정말 기쁠 수 있겠구

나,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익히다’를 뜻하는 ‘습(習)’은 ‘새끼가 나는 법을 익힌다’는 의미에

서 나온 글자입니다. 흰 부리의 어린 새가 매일 날갯짓을 한다는

의미이지요. 갓난아기가 눈 뜨고 젖만 먹으면 몸을 뒤집으려고

하고, 잡고 일어서려고 하고, 뒤뚱뒤뚱거리다 끝내는 걸으려고

매일매일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習은̓ ‘반복적으로

시도해서 몸에 완전히 익히는 과정을 말하지요.

사실 ‘익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걸음, 즉 무엇(물질적이고 정

신적인 모든 것)을 생산하고 그것을 누리는 그 모든 과정을 지탱

시켜 주는 본질적인 행위입니다. 뭐 하나 제대로 익히지 않고 되

는 일이란 없으니까요. 우리가 하는 공부란 바로 이 ‘익힘’의 가치를

회복하는 길일 것입니다. 반복하는 수고 끝에 내 안에 몸의 근력과

마음의 근력이 함께 생성되어 더 단단하고 풍성한 창조물을 낼

수 있는 존재로 자라고 성장해 가는 길 말이지요.

여기서 ‘익힘’이 자연스레 ‘행함’과 연결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익

힌다는 것은, 배운 것이 몸에 체화되고 넘쳐 내 몸 밖으로 나와

외부에서 새로운 생명(물질적, 정신적 창조물, 혹은 모든 생명)

을 창조해 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지요. 진정한 공부, 학습이

란, 매일 배우고 익히되 단지 머릿속에만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아주 손쉽게 행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나와

너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해 가도록 돕

는 소중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 창조의 과정이 너와 나와 이 세

상을 파괴해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모든 존재와 관계를

거듭 되살아나게 할 것인지를 우리는 또한 더욱 잘 공부해야 하

는 것이지요.

앞으로 네 차례 발행될 새들마을학교의 특별 청소년신문을 통

해 비록 짧은 나눔이겠지만 이 공부의 길에 누리는 기쁨과 그 공

부의 열매를 나누고 싶습니다. ‘공부’ 하면, ‘숙제’ 하면, ‘시험’ 하

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우리 어린 친구들에게 공부가 얼마

나 재밌는지, 숙제를 하는 일이 얼마나 뿌듯한지, 시험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 일인지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실제 인생은 딱 세 마디 말로 정리가 됩니다. 공

부를 제대로 해야 하고, 자기 인생의 과제,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하며, 여러 가지 닥쳐오는 온갖 유혹과 시험을 잘 맞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 이것을 정말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공부를 우리 모두

가 잘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_ 최봉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공부론

배우고 배워

때에 합당히 행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부록 ③

2013 아름다운 우리·7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논어 ‘학이’편의

첫 구절입니다. 우리는 흔히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으로 알고 있지요. 책 보고 공부하고 어떤 것을

가끔 더 잘 알게 되면 기쁘다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곰

곰이 생각해 보세요. 배우고 겨우 때때로(경우에 따라 가끔) 되

풀이해 기억하는 게 뭐가 그리 기쁠까요?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는 ‘습(習)’자가 완전히 행하게 될 때까

지 반복해서 오래 익힘으로 아주 능숙하게 행하게 되는 것까지

포함하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시(時)’는 ‘때때로’가 아닌,

‘제때에’ ‘때에 맞게’로 푸는 게 더 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

고 보니 時와 習의 의미가 아주 멋지게 연결됩니다. 배우고 배워

온전히 익힘으로 때가 이르러 행해야 할 때 제때에 때에 맞게 행

하니 참으로 기쁘다는 말인 거지요. 그러면 정말 기쁠 수 있겠구

나,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익히다’를 뜻하는 ‘습(習)’은 ‘새끼가 나는 법을 익힌다’는 의미에

서 나온 글자입니다. 흰 부리의 어린 새가 매일 날갯짓을 한다는

의미이지요. 갓난아기가 눈 뜨고 젖만 먹으면 몸을 뒤집으려고

하고, 잡고 일어서려고 하고, 뒤뚱뒤뚱거리다 끝내는 걸으려고

매일매일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習은̓ ‘반복적으로

시도해서 몸에 완전히 익히는 과정을 말하지요.

사실 ‘익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걸음, 즉 무엇(물질적이고 정

신적인 모든 것)을 생산하고 그것을 누리는 그 모든 과정을 지탱

시켜 주는 본질적인 행위입니다. 뭐 하나 제대로 익히지 않고 되

는 일이란 없으니까요. 우리가 하는 공부란 바로 이 ‘익힘’의 가치를

회복하는 길일 것입니다. 반복하는 수고 끝에 내 안에 몸의 근력과

마음의 근력이 함께 생성되어 더 단단하고 풍성한 창조물을 낼

수 있는 존재로 자라고 성장해 가는 길 말이지요.

여기서 ‘익힘’이 자연스레 ‘행함’과 연결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익

힌다는 것은, 배운 것이 몸에 체화되고 넘쳐 내 몸 밖으로 나와

외부에서 새로운 생명(물질적, 정신적 창조물, 혹은 모든 생명)

을 창조해 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지요. 진정한 공부, 학습이

란, 매일 배우고 익히되 단지 머릿속에만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아주 손쉽게 행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나와

너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해 가도록 돕

는 소중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 창조의 과정이 너와 나와 이 세

상을 파괴해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모든 존재와 관계를

거듭 되살아나게 할 것인지를 우리는 또한 더욱 잘 공부해야 하

는 것이지요.

앞으로 네 차례 발행될 새들마을학교의 특별 청소년신문을 통

해 비록 짧은 나눔이겠지만 이 공부의 길에 누리는 기쁨과 그 공

부의 열매를 나누고 싶습니다. ‘공부’ 하면, ‘숙제’ 하면, ‘시험’ 하

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우리 어린 친구들에게 공부가 얼마

나 재밌는지, 숙제를 하는 일이 얼마나 뿌듯한지, 시험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 일인지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실제 인생은 딱 세 마디 말로 정리가 됩니다. 공

부를 제대로 해야 하고, 자기 인생의 과제,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하며, 여러 가지 닥쳐오는 온갖 유혹과 시험을 잘 맞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 이것을 정말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공부를 우리 모두

가 잘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_ 최봉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공부론

배우고 배워

때에 합당히 행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하나

Page 14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3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8·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공부론

뭘 공부해?

함께 사는 우리!뭘 공부해?

함께 사는 우리!공부해야 할 것은 참으로 무궁무진합니다. 배우고 알고 익히고 싶은

것이 무수합니다. 배우고 배워 때에 합당히 행할 일이 참으로 많은

것이지요. 그중에서도 우리가 함께 살기 때문에 익히고 합당히 행해

야 할 일은 공기처럼 우리의 시간과 관계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런

데 어렸을 때부터 이것을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공부

가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천청벽력처럼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일 수 없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 하

나 마음먹는 생각과 행동 어느 하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

는 일이 없습니다. 골방에서 혼자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무슨 영

향을 미칠까 싶지만, 골방에서 종종 음악을 듣든, 안 좋은 영상을 보

든, 그것은 그 골방을 나와 만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혼해 낳을 자식과 그 다음 자식에게로 대를 이어 영향을 미

치게 됩니다. 그냥 내 입으로 들어가고 마는 음식이라도, 내 몸을 형

성해 다음 세대에 그 인자를 물려주게 되고, 내가 무심히 사용하는

물건, 버리는 쓰레기는 자연의 질서를 교란시켜 자연 파괴의 역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품는 마음.

어느 것 하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지요.

나 편하자고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으면 다음에 들어오는 사람도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게 되고 신발은 뒤죽박죽, 밟히고 뒤집어지는

일이 발생하지요.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신발을 던지듯 벗어 놓으면

다음에 들어갈 사람은 다리를 쭉 뻗어 슬리퍼를 끌고 와서 신어야 합

니다. 책상에 내 물건을 아무렇게나 놓아두면 다음 사람이 그 책상을

쓸 때 그것을 치우고 나서야 쓸 수 있습니다. 내가 밥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밥을 해 줘야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고, 내가 청소를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대신 청소를 해 줘야 내가 제대로 살 수가 있습니

다. 나 하나 편하자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짐을 지우고 있는

지 눈 뜬 장님입니다. 폐휴지를 거둬 가시는 분, 쓰레기를 치우시는 분,

이런 분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이렇게 깨끗한 환경에서 편

안하게 사는 것은 마치 자동기계처럼 저절로 되어 있는 일이 결코 아닌

것이지요.

내가 타인과,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나만’ 중요하고 타인(타생명)은 아무것도 아

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전락시켜버려 타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

는 일이 허다합니다. 타인을, 타생명을 위하는 심성 없이 어떤 능력

을 능숙하게 아주 쉬이 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익힌 사람들이 참으로

무감하고 냉담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

아가는 사회, 나아가 이 지구 전체를 위험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예

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혹여 그러한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이 한 가정

안에서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 하더라도, 밖의 세상으로 나와 만나게

되는 다른 사람, 다른 생명들에게까지 마땅히 그 짐을 지라고 요구

하는 일이 결코 허용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것은 종종 한 사회 구

성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온갖 사회적 불의와 불법이 되기 때문

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에서부터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나만큼

다른 사람도 중요하며 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생

각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며 학교라면 더더욱 그것

을 잘 가르쳐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우리를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모든

길은 이 이기주의, 나 중심성을 거슬러 올라가는 분투의 길에 철저히

발 딛고 설 때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편한 거, 내가 좋

은 거를 한 번 더 돌아보아 그것이 나만 편하고 나만 좋은 것이 되고

누구에게 어떤 피해와 짐을 가하는 것인지를 두렵게 살피는 공부, 그

리고 그런 공부와 배움이 진정으로 기쁘고 소중한 일임을 배우고 새

기는 공부가 절실합니다. 그러니 세세하게 깊이 설명하고 거듭 듣고

귀 기울여 순종하고 행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업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 청소시간에도 우리의 공부는 계속 이어집

니다.

“교육은 불의와 양립할 수 없다. 교육 최대의 적은 이기주의, 곧 사회적

불의다. 떠나서 천명을 보느냐 못 보느냐는 불의를 보느냐 못 보느냐에

달려 있다. 천명을 본다는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불의를 본다는 말이

다. 천명을 안다는 말은 불의를 안다는 말이다. 천명을 산다는 말은 불의

와 싸운다는 말이다.”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중에서

글_ 최봉실

-둘

Page 14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398·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공부론

부족한 점은 겸손의 계기로

지금으로부터 2억5천만 년 전, 고생대 마지막 시기로 불리는 페름

기는 대멸절 사태를 겪으며 막을 내립니다. 이 시기는 공룡이 지배

했던 바로 앞 시기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가장

크고 무서운 재앙이었다고 하지요. 판게아 지각 변동으로 인한 화

산 폭발과 사막화가 일어나 90%에 가까운 거의 모든 생명이 가뭄

과 뜨거운 열을 견디지 못하고 멸절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번성

했던 모든 양서류, 파충류가 다 멸절하고 고생대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했던 4억 년 역사의 삼엽충마저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멸절

합니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동물들은 다이익토든, 리스트라사우르스 같

은 아주 작은 생명체들입니다. 이들은 땅굴을 팔 수 있었지요. 다

이익토돈은 앞발에 날카로운 5개의 발톱이 있고, 최대 1.5cm까

지 땅굴을 팔 수 있었지요. 기껏 1m, 폭 30㎝에 불과한 땅굴을 파

서 목숨을 부지했던 것입니다. 고온건조한 계절이 극에 달했을 때

돼지만한 파충류 리스트로사우르스는 아예 땅굴에 틀어박혀 잠

을 잤다고 해요. 일부 화석들은 여러 종이 한 땅굴에서 같이 지냈

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였던 한 특징(강점·고유한

점?)이 2천만 년을 견딜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제가 자랄 때 저희 어머니께서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

람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한 가지씩은 있는데 그건 겸손하라고 그

런 거야.” 어머니의 그 말씀 덕분에 부족함을 그저 겸손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메우려 발버둥치

는 과정에서 또한 거듭 겸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부족함을 아주 많이 부끄러워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어떤 부분이 절대 드러나지 않게 하려 고집스럽게 숨겨 두

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습을 억압해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이고, 곧 미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부족함

이 극복될 기회를 통 얻을 수가 없지요. 부족함이 도전과 만나는

계기가 되지 못하고 그런 자신을 은폐시키는 억압과 단절의 계기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을 살펴보며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

이들은 결코 그 부족함에 붙들려 두려워 옴짝달싹 못한 채 마비되

어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이 부

족해 잘 못하고 있는 그 부분을 사실은 아주 잘하고 싶고, 심적 부

담만 잘 극복한다면 그저 하는 과정 자체를 참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성적으로 강점이 있고 또 부족한 점이 있지요. 또

후천적으로 강해진 부분이 있고, 아직 강해지지 못한, 즉 아직 부

족한 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약한 존재였던 생명체들이 오히려 지구

상의 강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

던 자신만의 특징(곧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 강점과 부족한 점이 있기에, 강점을 더 잘 활용하고

부족한 점은 겸손의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부족함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겸

손히 극복해 가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강점만 믿고 자신의 부족

함을 내팽겨쳐 놓거나, 혹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깨닫지 못한

채 강점만을 휘두르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부족함으로 주변 사

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고 강점도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

면서 강점을 살려가려 애쓸 때에만 부족함으로 인한 폐단을 최소

화하면서 자신의 강점으로 유익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러니 부족함 때문에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고, 강점 때문에 오만해

져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부란, 바로 이 강점을 더욱 강화시키고 부족한 점으로 마음을 낮

추어 주변을 돌아보며 부단히 채워 가려 노력해 가는 걸음일 것입

니다. 꿈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 강점에서, 그리고 부족한 그 지점

에서 내다보게 되는 풍경이지요. 잘 하는 점이 있으면 그것을 더욱

잘하게 되고 싶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그것을 채우고 싶은 그런 꿈

을 우리는 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와 꿈이 닿아 있습니다.

공부는 꿈으로 향한 길인 것이지요. 그러니 공부하지 않고 꿈을 이

루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강점과 부족한 점은 동전의 양면

이기도 합니다.̂ )̂

글_ 최봉실

-셋

Page 14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4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사랑하는 우리·9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공부론

공부란 사랑한다는 것새들마을학교 특별 청소년신문을 세 번째까지 이어오면서 반복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 속담은

그만큼 가까우면 서로가 예뻐 보인다는 말입니다”,“더 잘 알게 되면

사랑이 깊어지죠”,“시금을 고르듯 정성을 다하는 노력이 우리를 꿈이

현실이 되는 지경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더 잘 알게 되는 것, 즉

배움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시금을 고르듯 정성을 다

한다는 것은 내가 만나는 대상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생각하고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공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쓴 파커 팔머는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앎이 곧 사랑이라는 것은 인류가 오랜 기간 지

속해 오면서 깨달은 지혜이지요. 저 역시도 남편의 마음을 더 잘 헤

아리게 되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현실을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를 위해 인

생의 큰 결단을 해 갈 정도로 이 사회를 깊이 끌어안게 되었으며, 알

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를 만났을 때 이 땅을 잘 사랑할 수 있기를 간

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신문 ‘이 노래를 들어 봐’에서 소개된

‘Where is the love?'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만약 진

실을 알지 못한다면 결코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다”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만남은 바로 이 사랑에 이

르는, 배움의 문이 열리고 이 배움이 펼쳐지는 경이로운 장이며 길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배움-사랑’의 과정에 반드시 늪이 존재합니다. 파커 팔머

는 제대로 된 배움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직한 자기 성찰과

이어지는 자기 고백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

족함과 잘못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돌아보며 바로잡는 노력

을 함께 해 가지 않으면, 문제가 오랜 세월 암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

어져 우리의 몸과 우리의 생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

기 성찰과 고백은 나로부터는 회복을 이끌어 내고 타인에게서는 용

서를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파커는 성찰과 자기 고백은 “용서와 변

화의 근원을 향해 자신의 내적 어둠을 바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내적 어둠을 꼭 부여잡고 아무에게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어두움에 속박되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이들, 그를 사랑해 주는 모든 이들을 슬픔과 어둠으로 잡아끌어 같

이 죽음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습니다. ‘배움-사랑’이 이루어지

는 여정에서 이 어둠과의 싸움이 필수적입니다. 어둠에 대한 냉정한

분별과 단호히 끊어내는 교육이 불가피한 까닭입니다. 그 어둠을 기

꺼이 내려놓고 회복의 변화와 용서받음으로 기꺼이 나아올 때, 우리

는 비로소 제대로 배우게 되고 마침내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 있게 되

는 것이지요.

사랑이란 그 존재의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하는 온갖 종류의 행위며

그것은 이 온 우주의 하나됨에 조화하여 그 섭리를 향해 나아가는 모

든 생명체, 특별히 인간 존재의 마음과 행위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결코 획일적인 형태를 취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그 존재가 처한 유일

한 정황 속에서, 그 존재가 생명으로 당당히 서고 그 각성과 성장이

이 온 우주의 섭리에 한 몸으로 화합하고 조화하게 하는 것이며, 그

것이 모든 존재의 기쁨과 환희로 이어지도록 길러 가고 돕는 모든 마

음과 행위인 것이지요.

우리의 교육과 양육 문화가 거듭 난관에 봉착하는 이유는, 이 다양

한 정황에 대한 더 깊은 숙고와 이해, 그 앎 가운데 도출되는 필요와

사랑의 방향이 아닌, 언제나 무엇이 강조되면 무조건 그 방법으로,

휩쓸리기를 마다 않는 나약함과 무책임함에 있습니다. 공부란 앞서

살아가는 자가 먼저 배우고 깨우쳐 간 유산을 물려받고 그 건강한 터

전 위에서 새로운 생명과 세상을 창조해 가는 모든 일련의 무의식적,

의식적 몸과 마음의 행위일 터, 우리 교사와 부모와 선배들이 시대의

강압을 탓하며 언제까지나 나약하고 무책임하게 있을 수 없는 노릇

입니다. 우리들의 분별 있는 단호한 사랑이 우리 아이들과, 이 세상

을 마침내 살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글_ 최봉실

-넷

있는 존재이기

Page 14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41

어느새 바람빛학당이 제 앞에 와 있습니다. 정말 코앞까

지요. 생각해 보면 바람빛학당으로 오기까지 많은 시간

이 흘렀습니다. 새들마을학교와 함께했던 지난 4년의 시

간은 수치상으로는 제 인생의 1/4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의 주변

에 있는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여러 친구들과 인

생의 걸음을 함께 걷고 있고, 든든한 선생님들께서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관계는 학교에서 끝이 아닙니다. 부모

님, 동생들, 마을의 이모, 삼촌들. 이 관계들이 있었기 때

문에 바람빛학당으로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처음 이 학교에 올 때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친구였습니다. 저는 동갑내기 친구가 없던 상

황에 늘 있었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새들마을학교에 가

면 친구가 생길 가능성이 더 적어질 것이 염려가 되었습

니다. 그 후로 4년이 지난 지났습니다. 작년 2014학년도

에는 제 동갑내기 친구들이 학교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

지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 충실히 임하다 보면 친구를

만나는 때가 올 것이라 하셨던 엄마의 말씀이 새들마을

학교를 다니며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것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

다. 내가 살아왔던 상황, 처해 있던 관계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던 친구들과 제가 똑같진 않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가 다르고 그래서 갈등이 발생할 때도 있죠. 하지만 그래

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저

에게 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2014년도 초, 저는 소설을 써 보자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집에서도 쓰고 학교 자율심화활동 때도 틈틈이 작성하여

네이버 웹소설에 65화 분량, A4 용지 크기에 글자 크기

10포인트로 200쪽이 넘는 소설을 완결시켰습니다. 그리고

다른 소설 하나도 완결시켰습니다. 그건 100쪽 분량 정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좀 바뀌었습니다. 한글이로

부터 비롯된 노래 사랑이 조금은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

고 있는 건 한글이일 것입니다. 지난 학기 노래 창작 시

간을 가지면서 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

습니다. 노래라는 건 예술 작품과 똑같은 듯합니다. 끊임

없이 자기 안에서 되뇌이고 수정해야 하며, 명화들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오기 때문입니다.

한글이를 제외한 친구들. 이 친구들은 다~ 새로웠습니다.

현수는 여드름이라는 무시무시한 걸 소유하고 있었고, 중1

까지 공교육에 있었던 지호는 범접할 수 없는 다크포스를

가진 남자로 첫인상이 남아 있습니다. 영인이는 잘 알 수 없

지난 배움의 길을 돌아보며

부록 ④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졸업생의 글

양권진(17세)

Page 14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4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는 친구였습니다. 지호도 비밀이 많고, (제가 볼 때 는) 현수

도 비밀이 많은 것 같았지만 가장 아이러니한 사람은 영인

이었습니다. 채은이와 정현이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모두

가 저에게는 새롭고, 새롭고, 새로운 친구들이었습니다.

왜 그동안의 배움을 정리하는 데 친구들 이야기를 늘어놓

을까. 믿고 기다렸더니 이런 친구들이 생겼다는 걸 말하

기 위해서?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100% 정

답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친구들을 나열해 놓은 이유

는 친구들을 통해서 배운 게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물

론 이 친구들은 새들마을학교에서 배웠고, 저도 그렇습니

다. 아마 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친구들로부터 무

언가를 배운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저로서는 비밀이 많은 아이들과 말을 잘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 편지에도 썼던 말이지만, 말을 한다는 건 나를 밖으

로 표현하는 것인데 내가 하는 말들이 무거운가, 아예 말

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말들이 아니라면 침묵하는 것

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데에도 학교의

힘이 컸고, 친구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점입니다. 내

가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것, 이런 것들을 쉽게 보따리

밖으로 풀어놓기보다 내 속에 조용히, 바다 깊숙이 묻혀

있는 희고 아름다운 백자처럼 품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배우게 된 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옛날 저

의 모습과 지금 저의 모습을 비교해 봤을 때, 가장 많이

변한 건 승부욕인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지는 걸 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

난 봄여름학기 때 학교 동생이 축구 마지막 시간에 졌다

고 우는 걸 보며 더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옛날 가졌

던 승부욕이 관계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를 그때

는 몰랐던 것입니다. 물론 그 친구를 뭐라 하는 건 아닙

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거 하나 정도는 있는 것 같습니

다. 지금 그 친구한테 그때 이야기를 하면 웃으면서 ‘그

땐 왜 그랬지?’라며 말합니다.

어렸을 때, 지금도 어린데 또 어렸을 때가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모든 인생은 대부분, 아

니면 삶 전체가 어렸을 때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몇 년 전, 아니 며칠 전 내가 했던 행동과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렇

게 스스로 되새김질하는 것이 이후 내가 원하는 삶을 이

루고 살아갈 때에 참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삶에는 ‘때’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때’를 놓치게

된다면 삶은 후회만 남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

가지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삶에 만족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고, 다른 걸 추구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드러내야 할 때가 있고, 나의 소중한 것을 간직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삶이 핑크빛일 때가 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 있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행동하기 적기일 때

도 있고, 나중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걸 놓치면 이미

시기는 잡을 수 없는 일초 전 과거로 가 있겠지요. 그래서

항상 내가 추구하는 바를 향해 온 신경을 열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때라는 것은 호날두가 차는 페널티

킥보다 강력하고 정확한 것 같습니다. ‘내가 얼빠진 채로

있다면 그 공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금세 스코어보

드의 숫자는 바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호날두

의 디딤발이 향하는 방향, 공에 발이 접촉되는 순간, 호날

두의 눈빛, 심지어는 호날두의 머릿속도 읽을 수 있도록

나의 온 존재를 집중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Page 14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43

바람빛학당에서는 뿌리별에서의 배움 위에 다른 배움들

이 쌓여 갈 것입니다. 뿌리별학당에서의 배움이 바람빛

학당에서의 생활에 주춧돌이 되어 줄 것이지만, 바람빛

학당에서의 배움 또한 모두 내 인생의 주춧돌이 될 것이

라 믿습니다. 차근차근 배운다면 언젠가 하나의 결과물

이 세워질 것이라 생각하기보다, 내가 배운 바탕 위에 나

스스로가 건물을 지어 가는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배

움의 바탕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은 저의 몫이라 생각합니

다. 그러니 저의 배움이 모래사장이면 집은 무너질 것입

니다. 저의 배움이 구름과 같다면 집은 허상에나 존재할

것입니다. 저는 배움의 과정에서 바위의 배움, 뿌리의 배

움을 해 가고 싶습니다. 그 위에 짓는 집이 나무집이든,

바위집이든, 종이로 지은 집이든 상관없을 것입니다. 저

의 배움을, 나의 삶을 매순간 돌아보게 되고 펼쳐질 배움

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바람빛학당. 참 마음에 드는 이름입니다. 아이러니한 색

깔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바람은 자유롭고 저기

압과 고기압의 영향으로 발생됩니다. 빛은 가볍지만 온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에 머뭅니다. 바

람은 궤적을 알 수 없지만 빛은 직진합니다. 우리의 배움

과 삶이 이런 모습을 닮으리라 기대하니 벌써부터 설레

는 것 같습니다.

새들마을학교는 학생 인원에 비해 선생님들이 매우 많

이 계신 학교입니다. 이번 졸업여행을 갔을 때도 학생은

다섯 명이었지만 여섯 분의 선생님이 함께 하셨지요. 졸

업여행 중 선생님들께서는 ‘너희가 졸업여행 온 줄 알았

지? 우리가 온 거야’ 하시며 신나게 웃으셨지요.

선생님들께는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를 비롯한

많은 학문들은 배웠지만 가장 크게 배우는 때는 선생님

들께서 부단히 노력하시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저희를

온 맘 다해 대하려고 하시는 모습들, 어떤 수업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실 때 등등.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노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제 월요일이 되면 뿌리별이 아닌 바람빛학당에 학생으

로 등교를 하게 되겠죠. 아마 별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그

래도 차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며 학교를 다니겠습니다.

온몸으로 열심히,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것처럼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열심을 다해 살

아가겠습니다.

Page 14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4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음...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정말 어려운 숙제를 내주셨습

니다. 하지만 정말 ‘언젠간 쓰자’라고 생각했던 주제입니다.

그래서 더 어려웠습니다. 그냥 뚱하게 생각만 해 봐서 정리가

도저히 안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잘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난 어땠는가.

6학년 때까지 그냥 평범하게 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그

랬던 시절이 아주 싫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가 시간

이 많기는 했습니다. 공부도 그럭저럭 했습니다. 어른들

의 말씀도 그럭저럭 잘 들었다고 할 참입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

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나만 좋은 것. 그걸로 좋은 건

가? 이 시대에 이렇게 휩쓸려서 사는 것, 그게 맞는 건가?

그런 생각을 우리 부모님께서는 하셨나 봅니다. 당시의 저

로서는 철들었던 아이라고 생각했던 6학년 때이지만, 지

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철들지 않

았었나 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저는 엄마의 추천으로

새들마을학교에 왔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새들마을학교에서의 중학교 1학년.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냥 나에게는 조금 특이하고 그리고 신기한

학교였습니다. 여러 가지 철학 이야기를 들었고 그런가 보

다 했지요. 그러나 중1? 그때는 정말 뭔가 쌓이는 시간이었

던 것 같습니다. 알아도 아주 조금씩 남을 알아 갔던 시절.

중학교 2학년. 이때부터 저의 머리는 조금씩 철학이라는

사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고 우

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아직도 ‘이것은 이것

이다’라고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끊임없이 사고했습니다.

그리곤 이때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참교육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라는 것을. 저는

처음으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란 게 생겼습니다. 어디에

서도 받을 수 없는 인생 수업을 해 주는 ‘우리학교’라는 느

낌? 학교가 좋아지고 특히 수학이 좋아지고 그랬습니다.

어머나 이게 왠 걸? 했지요.

그래서 그때는 선생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뭐 좋은 거겠

지~~~’ 하고 따랐습니다. 이게 6학년 때까지 나름 선생

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았던 나와 엄청난 차이입니다. 초

등학생 때는 ‘이게 좋은 거겠지’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냥 뭐 선생님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거니까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좋은 거니까’라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Page 14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45

구한글(17세)변화인지. 이렇게 되니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 변화가 시작된 해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중3의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선생

님에 대해 신뢰가 깊어지는 해였습니다. 한문장(漢文章)

암송 시간에 봉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말입니다.

“질문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대답하여 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는 질문은 위험할 수 있다. 신뢰가 없으면 대답해

주는 사람은 그냥 나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한 도구에 불

과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했습

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더욱 믿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심화된 것도 있습니다. 2학년 때는 ‘좋겠지’라

고 생각했던 것을 이제 차근차근 풀어 나가는 작업을 하

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이렇고 나의 생각은 어떤지

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는 해였습니다. 물론 선생

님이 그동안은 그렇게 질문하지 않았던 게 아닙니다. 그

저 깨닫는 과정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게 저번에

들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지금 들으면 이렇게나

엄청난 말이었나 싶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즉답할 수 있습니다. 예. 저는 행

복합니다. 저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우

리 학교는 다니는 교사와 학생 모두가 학교에 대한 자부

심을 느끼게 해 줍니다. 나만 그런가? 이렇게 좋은 학교

이렇게 좋은 선생님 어디 있나. 하고 말입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건 장래에 대한 준비가 아닌 것 같습

니다. 물론 이제 고등학생의 나이가 되니 그것도 여러모

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지금 제가 가장 필요하

다 생각되는 것은 친구에 대한 신뢰입니다. 학교도 믿고

선생님도 전면적으로 믿습니다. (그러려고 노력 중입니

다.) 그렇다면 이제 친구를 믿는 것만이 남았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저는 우정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 우정을 다치게 하는 행동을 할 때

가 있습니다. 그런 저를 고치고 싶습니다. 전적으로 친구

를 믿고 어떤 일을 하든지 결국에는 모두 원만하게 풀릴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여기서 믿고 싶다는 것

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준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 녀석

도 나를 사랑해 줄 거야, 그렇지?’ 같은. 제 성격이 원래

조금 그렇습니다. 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할 생각인데

알고 보면 원체 사람을 잘 못 믿는 것 같습니다. 아니 못

믿는다고 할까 불안함은 언제나 있다고나 할까요. ‘저 녀

석은 언젠간 나를 배신하고 또 나를 상처 입히겠지.’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듭니다. 결국에는 내 성격의 문제가 되

어버리는 건가?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하하. 어쨌든 의외로 상처 받기 쉬운 저는 그렇게 여릿여

릿한 마음으로 사람을 사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나약한

제 자신이 걱정입니다. 진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싶은데

그게 쉽게 안 되니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참 걱정입니다.

그래서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인한 마음! 나의 나약함

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인함! 그 덤으로 친

구의 어떤 것도 함께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넓은 듬직한

강인함이 저에게 있어서는 가장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가까워지는 나이입니다. 바람

빛학당. 17살입니다. 주위에서는 종종 듣습니다. ‘검정고

Page 14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4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시는?’ ‘대학은?’. 물론 고민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막연하게 물어본다면 역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어

떤 것을 전공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전 그저 자유롭

게 살고 싶습니다. 여행하면서 그렇게 청춘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꾸 주위에서 그렇게 말

하면 정말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꾸 나의 결심이 흔들립니다. 역시 앞

으로 살아가는데 돈은 필요할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느긋하게 살면 되는 건가? 솔직히 지

금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

히 압니다. 이렇게 결국 불안에 쫓겨서 대학을 가면 분명히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학에 가는 것.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꿈일지도 모릅니다. 학식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 있어서는 그저 심드렁합니다. 물론 나중의 일

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은 모릅니다. 아니. 지금의 저는 이렇게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

그래서 이제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하신다면 먼저 모든 것을 선생님께 맡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소인이 작은 숟가락 하나 얹어본다면, 일단 자립심 키우기? 그런 프

로젝트! 자신이 혼자 설 수 있게 이제 조금씩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업 하나를 통

째로 학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해 본다든가 그런 것을 주도적으로 함으로써 스스로 할 수 있

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배움은 혁명학!입니다. 어디선가 이런 글귀를 보았습니다. “바야흐로

혁명이라고 하면 놀림 받고 무시 받는 시대가 찾아왔다. 혁명이라고 하면 1980년대까지가 끝이었

다. 그 이후로 혁명은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은 곧 자신을 이기는 것이고 그런 공부는 끝없이 계속되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수한 혁명의 의미를 알고 실천해 가는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습니

다. 그런 뜨거운 피 끓는 혁명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계속되어야 하는 우리 자신의 혁명을 위한

공부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지켜봐 주신 부모님, 함께 가는 학교의 모든 사람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들이 나

를 사랑해 주었기에 나 또한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이 길을 같이 함

께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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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47

졸업여행 직전, 뿌리별학당을 졸업할 수도 있다는 이야

기를 듣게 되었을 때 좋다는 마음은 한구석에 접어둔 채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부터, 가면 여

학생으로 혼자 외로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 너는 왜 바

람빛학당에 들어갔냐고 물어볼 친구들의 질문이 두려웠

습니다. 하지만 열린 자세를 가지시고 매번 여러 방면을

고민하시는 선생님들을 믿고 가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졸업여행을 가게 된 저는 친구들과 오빠들을 믿지 못했

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걱정과 달리 말하지 않아

도 이해해 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믿어 줘서 졸업여행

을 즐겁고 뜻깊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졸업을 통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고민

하고 뭐가 옳은지 고민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겠습니다. 길

이 막막하다 하더라도 함께 용기를 내고 하기 전에 두렵

다고 포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들마을학교에서 처음 공부를 하게 될 때는

친구들과 집중적으로 사귀고 이해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뿌리별학당을 시작할 때는 관계를 더욱 더 돈독하게 하

고 배움과 존재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는 공부를 할 수 있

었습니다. 그렇게 새들마을학교에서 쭉 공부를 하면서

인간성보다 성적, 직업, 돈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의 생각

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소중

함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 나

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관계가, 원하지 않

았던 관계가 생길지라도 인생에 꼭 필요한 만남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

습니다.

이제 바람빛학당에서의 공부는 너, 나의 관계성만이 아

닌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함께 고민하는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바람빛학

당에 들어가게 되어 관계의 도리와 배움의 자세를 열심

히 익힐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바람빛학당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새들학당에서의 배움과 뿌리별학당

에서의 배움을 잊지 않고 간직하며 기억하겠습니다. 하

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어 하고 힘들어하는 마음을 계속

해서 잘 극복해 가고 전체를 볼 수 있는 힘을 길러 가고

싶습니다.

이제 바람빛학당에 서는 지금 저에게 주어진 몫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뭐가 옳은지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겠습니다. 길이 막막하다 하더라도

함께 용기를 내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관계

맺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의진(15세)

Page 15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4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지난 시간 동안 어떤 것을 배웠을까?

제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아무래도

‘신뢰와 관계’인 것 같습니다. 지난 3

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여기

저기 싸돌아다니고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

서 그런지 타인과 대화를 할 때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정직하지 못하

게 되는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

때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타인과의

신뢰가 떨어지거나 관계가 멀어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렇게 같

은 패턴으로 2~3년을 지내다 부모

님과 선생님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

다. 그러면서 배우게 된 것이 신뢰와

관계입니다. 사회에 나가면 가장 중

요한 요소 중 한 가지를 저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일지 모르겠

습니다. 저는 이것이 새들마을학교

에 온 지난 3년의 과정에서 가장 중

요한 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들마을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 전체가 또한 저

에게 이미 큰 배움이었다고 생각됩

니다. 많은 방황을 하며 내 자신의

본성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고민했지

만, 3년이라는 시간을 너무 제 자신

에게만 집중한 채 정말 배워야 할 것

들에 마음을 잘 쏟지 못한 것 같습

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미래에 대

한 불필요한 고민 때문이었던 것 같

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쩌지’ ‘저렇

게 되면 어쩌지’ 등등. 그런 고민들

을 하며 곧 올 미래를 부정적으로 단

정해 버렸던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지금 제게 주

어진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체

가 저에게 큰 배움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관계와 공부 앞에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하는지, 그 중심

을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예전 책을 보다가 이런 글을 본 적

이 있습니다. ‘사람이 걷는 길은 한

가지만이 아니다.’ 정말 저에게는 큰

조언이었습니다. 어느 측면으로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3년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것

을 배웠지만 그것을 보지 못했던 것

입니다. 그저 내 중심대로만 앞만 보

고 내 생각대로만 지내 왔던 것입니

다. 그래서 내 옆으로 다가왔던 다양

한 배움을 보지 못한 것이고, 그 보

지 못했던 시간이 지금은 너무 아깝

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제 본질을

붙들고 나의 문제를 하나하나씩 풀

어 나가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

가고 싶습니다.

이런 말을 보았습니다.

“순간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를 넘어 퍼져나

갈 것이다.”

이 말처럼 지난 3년이 후회스럽지만

저에게 새로운 밑거름이 되어 줄 거

라는 믿음을 갖고 배움을 향해 더 나

아가 저에게 보이지 않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이제는 이 순간을 쉽게 놓

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다시 새

로운 배움을 기다리며, 그리고 지난

시간의 깨달음을 기억하며 이 순간

을 즐기면서 공부해 가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배움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또 이런 말도 보았습니다.

“조금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

저는 많은 시간 동안 위험을 감수하

지 않고 3년을 지냈습니다. 감수하

지 않고 지내다 보니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붙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런 문제들을 바로잡고 새

로운 2015년을 지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후의 일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즐겁

게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나

에게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 3년이라는 지금까지의 시간이

새로운 저의 삶을 열어 가는데 큰 밑

거름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바람빛학당에 들어서면서는 개인적

으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일단 이번

바람빛학당은 새로 만들어진 학당

이고 새들 중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높은 학년들이 올라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서 그런지 매우 긴장되

석현수(17세)

Page 15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49

고 기대되며 책임이라는 단어가 더

욱 크게 느껴집니다. 기대와 책임감

이 서로 엉켜 여러 가지 기분이 섞여

있는 듯합니다. 이상하게도 중학 과

정(뿌리별학당)에 올라올 때와는 다

른 느낌입니다. 어떤 배움을 만날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서 1년을 보

낼 것인지 아무튼 여러 가지가 기대

가 됩니다. 더 많은 배움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배

울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긴장되거

나 기대되기도 합니다. 바람빛학당

에 들어가며 다짐하는 것은, 있는 그

대로 이야기하며 어떤 상황에 맞닿

으면 그 상황을 짜증내지 않고 즐기

리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벗어

나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

을 다시 기억하면서 핑계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직면할 수 있

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합니다.

사실 누구나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겪기 마련이고, 어쩌면 더 많은 어려

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을 피할 수 있겠지만 어떨 때는

피할 수는 없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그냥 툴툴대며 보내기

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생각합니

다. 어쩌면 내가 짜증내는 시간이 내

인생길을 좌우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는 것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뿌리별학당을 마무리하고 바람빛학당

에 올라가는 즈음 새로운 ‘꿈’이 생겼

습니다. 조금씩 생각은 했었지만 구

체적으로 고민한 적은 없었던 것입니

다. 최근 저는 그림과 건축디자인과

예술 분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

서 취미로 모형 만들기나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무

엇인지 생각을 해 보았는데 그림과 작

품 만드는 것, 그 일을 할 때 가장 좋

고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짐이 한 가지 더 생겼다

면, 꿈이 생겼으니 그것을 이루기 위

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비관

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며 즐겁고 좋

게 받아들일 것이며 무엇이 최선일

지 고민하고 새롭게 생긴 꿈을 품고

어른이 되어 가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기까지는 지금까지

의 모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

끔 ‘만약 지금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라

는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만남이 더욱 빛나고 더욱 아름다

운 것 같습니다. 이 만남에 감사합

니다.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마음도 나누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

입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날을 열어 2015년

을 보내고 싶습니다. 올해도 잘 부

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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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2013년 새들마을학교에 들어와서 첫 학기, 첫 수업은 <태권도> 시간이었습니

다. 친구를 따라 태권도장에 가서 재밌는 게임을 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태권

도를 배운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

습니다. 첫 수업은 그냥 평범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무언가를 기대한

게 이상한 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무언가 다른 점을 찾

을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는 제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모든 수업에 다 공통되게

있던 것, 돌아보기였습니다.

<독서와 토론> 시간. 책을 읽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토론을 하는 장. ‘토론’ 하면

딱딱하고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새들마을학교에서

의 ‘토론’은 그야말로 금방 대화의 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많이 접해 보지 않

아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제가 고정관념 속에서 머물러만 있었기 때문

입니다. 한 이야기에서 내가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또 그 이

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서 뻗어 가는 가지가 되어 그 공간 속에서 한

이야기를 통해 나무 한 그루가 탄생했습니다. 이 나무는 그 공간 속에 있던 모

두의 무의식 속에서 지금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그 이야기를 되새

기며 토론을 가진다면 나무는 더 크게 자라나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만드는 건 좋아하지만 그림 그리기는 원체 관심이 없었기에 그림 실력은 예상

되는 바였습니다.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져 갔고 첫 미술수업에 그렸던 자화상

과 마지막 시간에 그린 자화상은 천지차이였습니다. 옆모습이기는 했지만 너무

나도 만족스럽고 마음에 들었기에 그림 여백에 한자로 미남이라고 적었습니다.

아이들의 원성을 샀지만 내 그림 실력에 대해 미남이라 적은 뜻이기에 마냥 즐

거웠습니다.

공예, 조소가 기대되었던 수업이었지만, 큰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봤을 때 실망

감이 그만큼 큰 것처럼 실망도 약간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는 모르겠으나 문제가 제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집중했

으면 더 나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그리 크진 않았고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실용적으로 잘 쓰고 있어서일까요. 결과물 중 휴지통이 가장 기억에 남

습니다. 다른 결과물들과 그리 크게 다른 건 없는데 들어간 정성의 차이라고 생

지호(17세)

Page 15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51

각합니다. 특히나 공을 들여서 전개도를 그리고, 자르고,

만들고, 한지를 붙일 때도, 바니쉬를 바를 때도 조심스럽

게 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입니다.

공구함 만들기와 전기이론, 집 만들기를 했던 <생활기술>

시간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던 시간이어서 즐거웠습니

다. 전기이론을 하면서는 추억도 돌아보고 꽤나 흥미가

생기는 새로운 지식도 얻었습니다. 공구함 만들기가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허술해도 다 같이 만들었

기에 느껴지는 그 느낌 같은 느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체조와 달리기>는 수업들 중에서

가장 시간대를 잘 잡았다고 느껴집니다. 주말 동안 굳어

있는 몸을 풀고 한 주를 시작하기에 딱 적당하게 느껴졌

기 때문입니다. 체조와 달리기를 하러 운동장에 갈 때는

너무나도 가기 귀찮지만 가서 뛰면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작년부터 쭉 이어져서 이제 원서까지 읽게 된 영어는 목표

가 생겨 올해는 어떤 영어 수업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새

들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각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서 공부

를 하기 때문에 첫 해에는 발음, 어휘, 문장, 초급듣기를 공

부했고 두 번째 해에는 단문해독을 차근차근 배우고 이번 학

기에는 원서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말 책을 읽을 때처

럼 정독하며 읽었다고 생각하기에 걱정은 없으며 한편으론

좋은 영어 글귀들을 외우기도 하며 영어 외우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원서 읽기를 통해 영어가 그리 복잡

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년에 걸쳐서 배운 <법과 사회>는 1학기 배웠던 영

향인지 2학기부터는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래

도 아직까진 어려운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 어려운 부

분들이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라서 생겼기 때문에 단어들

만 잘 익혀 둔다면 이해하기는 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재미없는 내용도 있지만 꽤나 흥미를 느끼는 내용도 있어

서 수업은 항상은 아니어도 재밌었습니다.

가장 특이하고 신기하고 깊이 있게 남았던 한문 시간. 이

건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너

무나 많은 것들과 연관되어 있고 삶의 지혜를 새기는 공

부. 살아가며 꼭 필요한 내용이 담긴 마음에 새길 한문으

로 된 짤막한 문장을 공부한다는 건 직접 느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느끼는 것이 다

다르기에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듣는 것도 이 시간의 장점

이었습니다. <한문장암송> 수업에서는 항상 내 마음속에

새기고 새길 것들을 배웁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그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이 많

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나누면서 알

아가는 것들이 더 많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야외에서 발표했던 모듬북공연은 지금 생각해 봤을 땐 공

연 전과 후는 생생히 기억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연할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끝내기 동작에서

다 같이 서두른 감이 있게 마무리한 것만 기억이 났습니

다. 항상 공연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연습의 100%

가 나오는 공연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 공연을 볼 때는

공연을 하는 이들의 노력을 생각하고 느끼며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만들면서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수학에 관해서는 불확실합니다. 푸는 것이 재미있

긴 한데 어떨 땐 또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애정이 생기고 있습니다.

외할머니 댁에서는 작물을 수확하는 기쁨만을 누렸었는데

그 과정에 대한 보람을 농사 수업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습

니다. 첫해보다 작년 농사를 통해서는 작물에 대한 책임감

Page 15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5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을 크게 느끼고 임할 수 있었고, 다행히 작물이 잘 자라서

수확의 기쁨이 남달랐습니다. 배드민턴을 하면서는 운동에

대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축구 수업에서는 축

구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갖게 된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독립 운동가는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 김구, 유관순 같

은 분들만 알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던 분들이 많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한 분 한 분 배울 때 존경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이분들의 노력을 크게 생각지 않고

산 게 반성되었습니다.

이번 겨울계절학교에 진행된 과학 수업도 굉장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론을 어떻게 배울지가 가장 기대가 되었습

니다. 계절학교에서 끝나지 않고 새들만의 느낌으로 과학

공부를 하게 될 게 기대가 됩니다. 음식 기행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시중에 나오는 가공식품이나 다른 식품,

재료들을 배우고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먹으러 식당으

로 가는 것으로. 체육도 이번에 새로운 종목이 나와서 재

밌었는데 다른 종목도 접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나

라의 역사를 어느 정도 배웠으니 세계 역사를 배워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우리 역사와 비교하면서 시대별

로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어땠고 어떤 인물들이 있었는지

에 대해. 창작 작품을 각자 주제를 가지고 만드는 수업도

생기면 좋겠습니다.

새들만의 느낌은 바로 가족 같은 학교라는 점입니다. 학생

수가 적어서 그리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가족 같은 학

교는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왔던 2012학년도

겨울계절학교 첫날 학교가 끝나고 마음에 와 닿은 것이 가

족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건 다 기억이 나지 않아도

마무리 시간에 소감을 말하며 가족 같은 느낌을 받았다라

고 얘기했던 장면만은 신기하게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10년 20년 후에는 어떤 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 가서

라도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후회할 이유도 없고 후회

할 미래를 만들지 않을 테니까요.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

들 수는 적고 험난하고 확실치 않은 위험들이 있겠지만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알고 몸소 실천할 수 있다면

그래도 마음만은 행복하리라 봅니다. 한 사람의 주위 인

간관계는 그 사람의 행복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

다. 흔히들 말하는 좋은 직업, 말하자면 안전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나 유명세를 타서 명예를 얻게 되는 것

도 행복을 주겠지만 인간관계만큼 그 사람의 행복을 책임

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란 단어는 ‘복된 좋은 운수’라는 뜻과 ‘생활에서 충

분한 만족을 느끼어 흐뭇하고 좋은 상태’라는 뜻을 가지

고 있습니다. 좋은 운수로 부와 명예를 얻으면 그것도 행

복이지만 이것이 채워 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고

그 나머지 대부분인 행복한 관계가 좋은 운수로 인한 행

복까지 채워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관계, 행복한 관

계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일단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모든 것들을 다 수용하

되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확실히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을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밴 사람들이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과하면 안 좋

다는 말처럼, 남을 위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과하면 오히

려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또는 자신도 생각해야 되는 맥락에서 남만 생각하면 남

이 부담스러워 하거나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나 무리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관

계를 만날 때는 긴장을 가지고도 여유를 느끼며 중(中)을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게 된다면야 여러 상

황들을 만날 때 잘 처리하고 끝마무리를 하게 되고 자연

스레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돌아보면 너무 빠르게 지나 있습

니다. 알게 모르게 벌써 17살이 되었고 일명 고등학생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고

뇌에 빠지게 되며, 또 다른 ‘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웃기

도 하고 울기도 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이 느끼게 됩

니다. 때론 자신을 꾸짖고 탓하고, 타이르고 화내며 한숨

을 쉬기도 합니다.

Page 15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53

또 앞으로 시간은 금방 흘러갈 텐데 어찌하면 좋을까, 그

냥 몸을 맡기자니 미래가 두렵고 조금 무언가를 찾고 열

심히 해보자니 잘 안 되는게 다반사고, 청소년은 이런 거

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인간이란 동물에 대해 깊이 생

각해 보면 정말 복잡하고 이도저도 아닌 생명체라 생각되

고, 참 못됐기도 하지만 또 불쌍하면서도 대단한 것이 인

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무엇을 목표로 꿈을 정하

고 이뤄 갈지를 바람빛학당에서 찾아 나가도록 하려 합니

다. 어릴 적 많은 꿈들이 다시금 되살아날지, 완전히 새로

운 것이 생겨날지 모르지만 언제든 오면 잘 붙잡을 수 있

도록 준비를 하고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

려 합니다. 방학 동안 해 보고 싶은 건 맘껏 하며 과거에

서의 배움을 다지고 다지며 준비를 하면서는 시간이 조금

만 더 천천히 가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미래를 상상

할 때 언제 그때가 올까 했던 기억들이 벌써 추억이 되었

고, 현재에서 꿈꾸는 미래도 금방 추억이 되 버릴까 두렵

기도 하지만, 이 과정들을 즐기면서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자고 다짐합니다.

꿈꾸면 현실이 된다고 하지요. 뭐가 됐든 간에 어린이같

이 순수한 마음으로 불가능한 꿈도 꾸고 하면서 언제나

늘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자 그렇게 다짐해 봅니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너무 특별한 것을 하기 보단 평범

한 일상에 충실히 임하면 그 속에서 자연히 특별함을 찾

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좀 더 키우고 싶습니다.

이를 잘 새기고 바람빛학당에 임하면 최소한 행복하게 즐

길 시간들이 필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때때로 힘든 시간들이 온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요. 발길이 닿는 대로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다운받아 보던지 영화관에 가서 보고 맛집을 찾아

가서 배불리 먹기도 하구요. 돈을 아껴야 할 땐 집에서 요

리를 만들고 당일치기로 도시락을 싸들고 가까운 곳으로

탐방을 가기도 하고 말입니다. 방황해도 괜찮으니 실패를

두려워 말자 다짐합니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이런들

어떠하랴 저런들 어떠하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기

억하며. 바람빛학당에 올라가려 합니다. 또한 바람빛학당

뿐만 아니라 새들에 속한 모든 이들이 꽤나 괜찮은 2015

년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면 행복하겠지요?

항상 보다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두고 그 시선이 닿는 곳을

향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과 이 자리를 함께 하지 못

한 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 사람 한 사

람이 모여 지금 이 자리 이 공간 이 시간을 만들고 이것들

은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행복이란 뜻을 달

리 보게 되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웹툰

에서 “낭만은 오글이 되었고 감성은 중2병이 되었으며 여

유는 잉여가 되었다”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낭만과 감성, 여유를 펼칠 수 있게 된 점에서도 감사를 드

립니다.

Page 15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5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는 생각에 놀랍기도 합니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가 엊그

제 같은데, 벌써 2년이 훌쩍 지나 곧 고등학생이 된다는

게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왔을 때는 사람 수가 적은 덕에 내 일을 다른 사람

들이 모두 알게 되고, 화합하고, 같이하는 ‘공동체 생활’

이 익숙하지 않아 학교 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

습니다. 원래 내 성격이 선을 긋고 내 영역 안을 침범하

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그런 성격이어서 그럴지도 모

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최악의 중2병까지 겹쳤나 싶

게 이래저래 어려움을 많이 겪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번 겪다 보니 ‘아. 이거 내가 지금 중2병 걸려서 쓸데없

는 자존심 내세울 때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

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조금이나마 철이 들어 가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공동체라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진 느낌이 듭니다.

내가 새들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공동체인 것 같습니

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선생님들께

서 무슨 결정을 내리셨으면 요즘은 ‘아. 무슨 생각이 있으

셔서 저런 결정을 하신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것도. 예전 같았으면

‘아 왜 저렇게 하지’부터 나왔을 텐데 말입니다. 아직 무

의식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불평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

도 조금은 더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 새들에 왔을 때, 친구들이 큰 낯가림 없이 다가와

서 인사하고 같이 놀고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신기했습

니다. 저는 낯가림이 굉장히 심한 편이고, 낯선 사람은 일

단 경계하고 보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가 어울

림잔치 왔을 때, 행사가 끝나고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하나둘 와서 저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지금보다 앳된 모

습으로 완전 해맑게 “이름이 뭐라고요? 아 영인이. 영인

아 안녕!”이라고 하이톤으로 인사하던 양권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 당시 여자애들도 아니고 남

자애들이 와서 낯가림 없이 해맑게 인사하는 모습이 저에

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너무 경계 없이 다

가오는 바람에 저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입 주변에 경련이 좀 일어나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그렇게 허물없이 다가와 준 친구들 덕분에

좀 더 빨리 새들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일 년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밥도 입에 잘 맞지 않

고, 원치 않아도 드러나게 되는 내 사생활도 그렇고. 그

리고 내 또래 여자애가 없어서 좀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

Page 15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55

습니다. 남자애들이 아무리 편하게 대해 준다고 하더라

도 남자애는 남자애니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남자애들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편하고 좋았습니

다. 여자애들이라고는 동생들밖에 없으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내내 있었습니다. 동생들도 물론 매우 좋지만, 동

갑만큼 좋은 건 없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기존 일반

학교를 다니던 저로서는 일반학교에서 당연하게 하던 것

들이 달라지니 적응이 어려웠던 것은 어쩌면 조금은 당연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작년까지는 중

2병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새들에 적응

을 해 가면서 중2병은 조금씩 작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들마을학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왔던 2013학년도

겨울계절학교를 할 때는 솔직히 좀 별로 달갑지 않았습

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낯가림이 매우 심한데 새

로운 애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저에게 그리 즐거운 일

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제 동생이 오게 되었는데, 그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걱정했던 상황과

는 달리 저도 어느새 새들에 물들었는지 그닥 낯가림 없

이 새로운 친구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동갑 여자 친구가 없다는 것이 상당히 아쉬웠습

니다. 그렇지만 동생들과 무지 재미있는 3주를 보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3이 되어 새로운 일 년을 시작했을 때부터는

정말 시간이 훅 지나가 버렸습니다. 봄여름학기도, 들살

이도, 여름방학도, 가을계절학기도, 그리고 모듬북도.

정말 이번 일 년은 뒤돌아볼 새 없이 빠르게 지나가 버려

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일 년을 지내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고, 어느새 저는 선생님들을 신뢰하고 있었

고, 친구동생들과 더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너무 발빠르

게 달려와서인지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큰 에피소드 한

덩이 한 덩이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중학생으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일 년이었는데 조금 더 추억을 만들어 둘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하지만 정현이와 봉실 쌤, 다른 선생님들을 보면서 기다

리는 법을 배웠고, 조소를 하며 집중을 배웠고, 축구와

배드민턴을 하면서 땀 흘리는 즐거움을 배웠고, 수학을

하며 끈기를 배웠고, 농사를 하며 자연의 신비를 배웠고,

모듬북을 하면서 화합을 배웠고, 합창을 하면서 조화를

배웠고, 숙제를 내면서 시간을 지키는 것을 배웠고, 청소

를 하며 성실함을 배웠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웠

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것을 배웠고, 그 사람 그대

로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배웠고, 진실하게 만나

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일반학교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여기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가슴에 담고 머리에

새기고 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들을 떠나면

친구동생들 선생님들이 너무 그리울 것 같습니다. 2년 동

안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살 부대끼면서 이

런저런 일 다 겪으면서 같이 지내온 뿌리별학당, 사실 어

떨 때는 조금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친동생 같은 귀여운

새들학당. 그리고 나까지. 모두 고생했고 미안했고 고마웠

고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영인(17세)

Page 15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5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사랑과 용맹으로 펼쳐 가는 교육은

사랑의 힘이 우리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줄 거라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사랑의 필연이 우리의 이해로는 포착되지 않는

무수한 바람의 계기로 끊임없이 일어난다.

가르침과 배움은 이 바람의 계기에 열려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된다.

이를 우리 삶의 주요 요소로 받아들여

주의 깊게 살피고 기꺼이 조우할 때

가르침과 배움의 여정에서 존재의 성장과

변화라는 값진 결실에 이를 수 있다.

Page 15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57

부록 ⑤ 새들마을학교 창작노래

Page 16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5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GDAm

EmG D/F#

G

D

D

EmG/DC

G

C

D

G

나 네빛

하일 축

나 더

만릴

하 늘네피 었짝활활 짝

뻐기

우람

무나 너

바살 과

만를

햇비

ΟΟ Ο핀에가 을

44

글·가락 새들마을학교 친구들

10

가을에 핀 꽃님이

6

FC

FC

CGm

BbDm

GmD

Bb

Am

F평안을평안을 비는비는 마음으로마음으로

peace

night!

May the

Good

night,Good

li fery

ni malry a

Goodthe worldinry oneevenight,

eve

evenight,

withsong be

Goodplant

this

ryeve

of

night,

Goodones!army denight,Good

34

글·가락 최봉실

11

Good Night

6

Page 16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59

GD7AmCG

D7Dsus4AmCG

E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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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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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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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Coda

여명 이생라 운놀

여연 대운름 다아

그늘하늘하

그늘하늘하

이 여늘

내 려

인 하

이 여

땅 으

과 하

하하 는주질

이 여늘하무 는머

내 리

꺼 이

뿌 리

든 히

없 이침거

수 로

하 지

늘 에

로주우

히윽그없 이동요

이 여늘하되 는나하과명생으 로호 흡

68

29

25

17

21

13

9

글 최봉실 가락 김겸손

5

하 늘

Page 16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6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GD7Dsus4CEm

D/FGDCG

D/F

GD7

GD

Dsus4

D7

Am

C

C

G

Em

Dsus4

G/BC

Em/C

G

Em7/D

DmAm

Dsus4GD

Em/D

C

Em

Em

CG

D.S. al Fine

D.S.

냐아 니것 이인하 나리 가우

냐것 이인너지 가디 까어

니 냐은 아것나 인하리 가우

이 고나가까 지디어

것 이

이 아 니

어 하더 불그 와

지 가

하 나

디 까

리 가

이만 물

이 여늘하안 는어끌

니 냐

이 고

은 아

나 인

온꺼 이기나

까 지

리 가

않 으들 지붙

게뜨 겁를주우온

로함 으허는 겸않이 지

여늘 이하땅 의는랑 하사

보으 로흡호픈냘가

긋 이지하 여마 주과땅

63

59

51

55

49

45

41

37

33

Page 16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61

A

D

Bm7/AA

F#mEF#m

E

D9

DA

D9

DA

E

D9E

E

E/G#

A

A

D9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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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7/AA

EF#m

F#mD

E

A

E

E

D9

A

D

D9

AE

E

A

E

E

A

A

D9

A

EA

D9/F#E/G#A

D9

D9EA

D9

A ED9

EA

A E

꿈 은

말 이

로우 리

야거

거는하답으 로삶은

닌아가내

는하답로

로오 늘닌아

삶 으은꿈

야는 거사리 며흘

그 냥

거 야

라 어

야거는가

하답

으 로

이 떠

땀야는 거사하 며랑사

아살서

질많 은

면답 하으 로

수 없

며 사리

꿈야거는

이말로

거 야는

우 리닌아내 가

하답으 로

하답로으삶

로오 늘닌

삶은꿈

야는 거되면살그 냥

삶건그

흘땀야

는 거

걸 까는맞

하 며

야거되 는면하

이것는사

삶 으

면 되

그 냥야거는되면하그 냥군더

지하

두모

야말고냐되게는사그 리

니아거별보 니아살야말만

어 찌네하말 을고다된안들

44

42

37

32

28

24

13

18

글·가락 새들마을학교의 마을 이모, 삼촌들

10

삶으로 답하는 거야

6

Page 16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6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FCBb6

Gm

Gm/F

Gm

Dm

Bb2/F

Dm/C

F

DmFC

F

DmGm7

Bb2/F

Am

F

CF/C

F

F

CFBb

Bb2/C

C/FFF

C/FBb2/FF

3

3

3

D.C. al Coda

함히원

니합하축

영야구친

살히대

담해복축

하축사

내는하랑살

에속

널는가아

늘의

에속

니합하축일생Ο

니합하축일생

ΟΟ는하랑사다

다니합하축일생

44

20

16

12

8

글·가락 최봉실

4

생일 축하합니다

Page 16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63

AE/DEBF#m/C#D/F#E/G#A

ED

D E/D

G/EA/E

B

B

FE/GA

F#mA

F#m

ED

A

죠었

겨 주

을 안

에 공

의 품

이 들

아길 로

와 손

미 소

간 바

드 러

그을 때있보 고바 라그 저에 도

달이두 아는애 쓰리 려을 내

음은 마싶주 고도 와려 가

공간올 라위 로차 양

44

13

글·가락 최봉실

9

바람의 노래

5

Page 16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6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BA/B

Gm

Fm

A

Cm

EB

A

Bsus4

A/B

A

A

E

Cm

A

B

B

E

E

Fm

A

E/G

E

AE

BA/BEBEA

E/GAE

는을 했

도 내

훌 쩍

생각

가꿈

려 해

지(그러다 보면 물음표)

고뭐 냐꿈 이

와 같

흘 러

지 나

하는

요 한

냈 는

루어

이뤄

는꿨을

고 이

꿈 이

그 꿈

고 돌

앞 에

지 꿈

지 내

꿈어 떤가져 내

꿨는

꿈을

이 있

끝 없

다면

어떤

는 꿈

해 꼭

들은

야 하

싶 지

빠각 에는 생나

어른

곗 바

그 럼

어게 물에이 나들어 른면주 치

요서려가소

마다 눈아 가살가 끔

로 미으것 만그것는

꾸을꿈까 지곳는이 닿의 힘상내 상지 요꾸을꿈

12

14

17

20

23

10

8

4

글·가락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시간 위의 꿈

Page 16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65

E

A2

C/B

G

D/E

E

B

G

C/B

E/G

BBsus4A2

Bsus4A2

A2E

C

C/A

D

D/E

A

C/A

C

E/B

A

E E/G

EA2CmBsus4

어느날

느끼고

지뭐,

이는

여림을

해보

리 도

있고

믿는

르는

까짓꺼

왜 이

고만

다고

차오

괜찮아

하지싶다보고

다리

강하

라면

신이

함께

는자

마음 한구석에서

괜찮아,

시간만

그래

로 인

다시을꿈들버린

내가지다른리도왜이습과내모

하니상상모습내는이뤄꾸고

가아알것 을많 은더져

에현실어없갈 수라따만들

나는

가 고있

그순간

했지

보면서

않고

는길

맞이

이들을

지않

안개를

주위의

는 여

잊어살지

주지

이닿

짙은

하지만

하고 나

기다려

날아온

당황

발길이

정에

은 없

시간

들의

세상에서

이감

가 능

잊고꿈을은현실

사람

자기

낯선

사는지(그러다 보면 물음표)

지금데아닌로가이대모습은

꿈을뭐니꿈이들의너희들아꼬마어린

어린

들 어만춰에 맞그곳꿈 도춰맞

것싶 은고하내 가땐을버 렸커

39

41

43

45

47

37

35

33

29

26

Page 168: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66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Bsus4Cm

Fm

A2

D7/C

Bm

Bsus4

E

A

A

B

B

A/B

DEB

FmCmBsus4AB

G

D

E

A

A

Fm

GmACm

B7

E

B

D.S.

Fine

아살면

문했

의 진-

는 지

해 보각서 생가

이 뤘

시 멈

꿈 이

끝 에가우 리

않 기

회 하

는여 하것잡는꼭 붙

내게에내도해

꿈고다한려나떠

원 진 정너 를날꿈 이앞 에

가내잡아붙실현다면않

부심 을

진해을 다힘

꿈 을고않싶 지고놓

지기하을가꿈

포지까끝내건요 한중만돌 지고돌없 이끝이

지는가

바 늘곗시

아돌

63

67

69

73

59

56

53

51

Page 169: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67

1.

2.

2.

1.

A7

A7

D

Em

A7

Em

D

G

Em

Em

Em

Bm/A

D/F#

G

A/C# Bm

G

D/F#

D

Bm/A

Bm/A

D/F#G

G

A

Bm

Bm

G

A/C#

A/C#

A

A

D

D

DA7

ADDA7

A7G

D

DD

ADG/ED/F#GD

3

3

3

3

33

3

3

3

3

대 로

있 니

지 이

소 리 쳐

을 보 고

어 봐

우 리네

열 셋냥 꼬 마

는 데줄 알 았

늘 향 해

에 서 땅

하 늘 을 걸

고 저 하

희 망 앞

을 떠

쳐 버 리

왜 넌

면 눈

좋 아

따 윈 떨

있 는 데

수 있 다

지 않

기 좀

는 게 많

는 얘

수 있

여 하

까 할

내 가

두 려 움

널 향 해

웃 을

봐 요

이 제

언 제 나

기 빛 으 로

들 어

희 망 은

한 줄

셋 이 모

라 보 니

마 열

가 자

쩌 면 그생 어

이 뤄 질로

는 고 등생 또

하 는 대게 원

은 중 학들

땐 모 든렸 을어

34

34

48

49

50

54

47

46

19

24

29

33

14

9

41

37

4

글·가락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한 걸음 더

Page 170: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68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A7

A7

Em

Em

D/F#

G

G

DA7EmG

A7EmD/F#G

Bm/A

Bm/A

Bm

BmA/C#

A/C#D

D

Bm/ABmA/C#D

Bm/ABmA/C#D

3

3

33

3

괴 물

해 물

은큰

는방

망을

려 움선 두

뭔 지은 대체내 꿈

달 려향 해물 을

먼 지온 통속 은

으 로는 그 곳이 보 이봐 꿈

지 않 니웃 어 주늘을 향 해넌 저하

생 각

아 도

세상

막 아

싶은

어 널어 넘

는도 모르고 나도 모르

하지

아름

여기

방 해어 저개 들

머 리지게 뭔고 싶은

날 아하 늘 을롭 게 저제 는 자 유이

데 왜웃 고 있 는를 향 해늘 은 너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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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37

Page 171: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69

1.

2. D

A7Em

A7Em

GBm/ABm

A7EmD/F#GBm/ABm

G

A/C#D

A/C#D

33

33

3

서에그 곳있 는이빛

지가 되 주킬 용 기꿈을 지

다 워아 름렇 게 나상 은 이

직 하 면않 고 간랠 잊 지

길빛 이 되희 망 의그 들 의고 있 어상 은 울마 른 세

꾸 는 세꿈

망 과 노희

망 에 목희

67

62

58

Page 172: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70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1 -

인 연글/가락 양권진, 이영인, 최정현

Page 173: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71- 2 -

Page 174: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72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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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되어

글/가락 구한글, 김정희, 석준모, 명권영

Page 175: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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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 쫀득해

글/가락 김지호, 김고운, 이혜인

Page 176: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174 교육문화연구학교 자료집 - 4 -

여기 끝에 와

글/가락 석현수, 김채은, 양의진

길을,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새들마을학교ㆍ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 만남이 충(忠)의 만남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

의 교

육, 길

을 찾

아서

새들마을학교ㆍ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의생명 교육찾아서

Page 177: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

길을,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새들마을학교ㆍ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 만남이 충(忠)의 만남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

의 교

육, 길

을 찾

아서

새들마을학교ㆍ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의생명 교육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