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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최고의 관광 명소 홉스골 호수 홉스굴호수(Khovsgol) : 몽골 북서쪽 국경부근에 위치하며,오염되지 않은 물과 타이멘(민물연어) 풍부한 어족으로 유명하다. 2000 평방킬로미터의 광대한 호수로 보존이 잘되어 있다. 몽골의 ' 알프스' 일컫는 이곳은 수정처럼 맑은 물과 주변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천해의 맑은 공기는 현기증이 정도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뮤른까지 비행기로 1 시간 30 이동하여, 버스로 3 시간 이상 달리면 흡수굴 리죠트에 도착한다. 엘크를 비롯한 무스(말코손바닥사슴)각종 야생동물의 보고이다. 수정같은 깨끗한 물과 공기,주변의 빼어난 경관,풍부한 어족,야생동식물로 해외 각지의 많은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여름에는 유람선으로 호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있다. 그외 수영과 낚시 승마,숲속 트레킹, 야생동물 관찰등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잇다. 목민 마을을 방문할 수도있다. 인근에 사는 소수부족 일명 ' 순록을 기르는 사람' 들은 원추형의 나무와 모피로 엮은 움막에서 살며, 순록을 기르고 말대신 이동수단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여름에는 등선을 따라 중앙 시베리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대장정에 오른다. 홉스골 레녹과 에깅골을 찾아들며.. 몸이 뻐근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 몽골에서 보내는 셋째 날로 오전은 어제 포인트에서 낚시를 하고 오후엔 에깅골(Eg River)떠나기로 계획된 날이었다. 메뉴가 나오기 전에 식탁에 먼저 올라 있는 브라질제 커피가 우리 입에 맞는다 생각하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모토보트에 올랐다. 가이드인 ' 나라' 양은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무료해 하는 같아 배려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탑승인원을 줄여 조금이라도 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바람이 잦아들은 코발트색 호수는 잠잠했다. 깊이 파고드는 햇살이 호수 바닥에 어른거리다가도 갑자기 깊어지는 곳에서는 끝도 없이 파란 물색으로 변하길 반복해 가며 한시간을 넘게 배를 몰아 어제의 포인트에 다시 다다랐다. 트에서 내려 부지런히 장비를 셋팅하는 동안 광수형님은 어제의 풍족한 조과 때문인지 느긋하게 호수주변을 사진을 담고 있었다. 길게 형성된 ()낮은 부분으로 물이 넘나드는 .. 어제 광수형님이 많은 레녹을 만났던 곳을 찾아갔다. 스트리머 (고스트)달고 부채꼴로 몇차례 캐스팅을 했다. 역시 퍼치가 먼저 물고 뚝심을

Ayala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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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최고의 관광 명소 홉스골 호수

홉스굴호수(Khovsgol) : 몽골 북서쪽 국경부근에 위치하며,오염되지 않은 물과 타이멘(민물연어) 등 풍부한 어족으로 유명하다. 약 2000 평방킬로미터의 광대한 호수로 보존이 잘되어 있다. 몽골의 '알프스'라 일컫는 이곳은 수정처럼 맑은 물과 주변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천해의 맑은 공기는 현기증이 들 정도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뮤른까지 비행기로 1시간 30분 이동하여, 버스로 3시간 이상 달리면 흡수굴 리죠트에 도착한다. 엘크를 비롯한 무스(말코손바닥사슴)등 각종 야생동물의 보고이다. 수정같은 깨끗한 물과 공기,주변의 빼어난 경관,풍부한 어족,야생동식물로 해외 각지의 많은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여름에는 유람선으로 호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그외 수영과 낚시 승마,숲속 트레킹, 야생동물 관찰등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잇다. 유 목민 마을을 방문할 수도있다. 인근에 사는 소수부족 일명 '순록을 기르는 사람'들은 원추형의 나무와 모피로 엮은 움막에서 살며, 순록을 기르고 말대신 이동수단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여름에는 산 등선을 따라 중앙 시베리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대장정에 오른다.

홉스골 레녹과 에깅골을 찾아들며.. 온 몸이 뻐근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 몽골에서 보내는 셋째 날로 오전은 어제 포인트에서 낚시를 하고 오후엔 에깅골(Eg River)로 떠나기로 계획된 날이었다. 식 사 메뉴가 나오기 전에 늘 식탁에 먼저 올라 있는 브라질제 커피가 우리 입에 잘 맞는다 생각하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모토보트에 올랐다. 가이드인 '나라'양은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무료해 하는 것 같아 배려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탑승인원을 줄여 조금이라도 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바람이 잦아들은 코발트색 호수는 잠잠했다. 깊이 파고드는 햇살이 호수 바닥에 어른거리다가도 갑자기 깊어지는 곳에서는 끝도 없이 파란 물색으로 변하길 반복해 가며 한시간을 넘게 배를 몰아 어제의 포인트에 다시 다다랐다. 보 트에서 내려 부지런히 장비를 셋팅하는 동안 광수형님은 어제의 풍족한 조과 때문인지 느긋하게 호수주변을 사진을 담고 있었다. 길게 형성된 만(灣)의 낮은 부분으로 물이 넘나드는 곳.. 어제 광수형님이 많은 레녹을 만났던 곳을 찾아갔다. 스트리머 (고스트)를 달고 부채꼴로 몇차례 캐스팅을 했다. 역시 퍼치가 먼저 물고 뚝심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편에 최재우님, 이규홍님 캐스팅을 하고 있었다. 최재우님은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버트 힘 좋다고 정평 나 있는 지로미스 6번 로드를 치켜들지도 못하게 만들고 라인을 터트린 녀석과의 재회를 노리며 열심히 도전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바닥에 수초가 자라고 있었고 특히 만(灣)을 따라 수초가 더욱 무성했다. 스트리머는 완전히 바닥에 가라앉힌 후 끌어 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다소의 밑걸림이 있었지만 강하게 회수하면 수초를 끊고 빠져 나왔다. 레녹은 평소 수초지대에서 은신하며 지내다 지나가는 먹이는 공격하는 것 같았다. 부 채꼴로 캐스팅 하다 측면을 공략할 때였다. 강렬한 반응이 왔다. 어제 하루종일 느끼지 못한 굉장한 반응이었다. 힘을 쓰며 수초를 감아버렸다는 광수형님 얘기가 생각났다. 2X 티펫이니 버텨 주겠지 하며 강제회수에 들어갔다. 손맛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힘은 많이 썼으나 체형, 체색 모두 우리나라 내린천 열목어와 흡사한 43센티미터 레녹이었다. 사진에 담고 릴리즈하였다. 잠시후 최재우님에게도 레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위쪽 사진) 제일 많이 올라오는 것은 퍼치였고 그 다음이 그레일링 그리고 레녹 순 이었으며 레녹은 대부분 40급이었다. 즐거울수록 시간은 짧은 법!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오전 낚시를 마치고 토일로그트 캠프로 돌아왔다. 장작불을 지피는 작은 사우나에서 샤워를 하며 피로를 풀었고 점심식사 후에는 에깅골(Eg River)로 이동하기로 했다. 호수를 깨끗이 보호하자는 뜻으로 해석될 만큼 샤워장의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조금씩만 나왔다. 얼마만큼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홉스골 국립공원에서의 규칙은 그들이 얼마나

자연환경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책자에 소개된 홉스골국립공원 규칙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 홉스골의 물은 깨끗한 만큼 오염되기도 쉬우니 호수, 강, 지류, 샘의 50m 내에서는 비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 차량은 도로나 트랙 외에는 운행하지 못하며 도로에서 5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주차할 수 없다. - 낚시는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외국인 2일 허가에 4달러) - 야영은 사전 허가를 얻어야 한다. 라는 것들이었다.

홉 스골의 토일로그트 캠프를 떠나기 전에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러시아제 보르건에 올랐다. 운전을 하는 '일인칭'(=자신 이름의 뜻을 모름), 식사를 제공할 '러기'(=자신이름의 뜻을 모름) 아줌마, 그리고 한국말 가이드 '나라'양이 동승했다. 그때쯤 그들에게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선물했다. 모두 좋아했지만 옷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으로 봐서 월드컵경기를 제대로 보진 못한 것 같았다. 토 일로그트 캠프로 들어올 때는 깜깜한 밤중이라 주변경관을 볼 수 없었는데 한 낮에 차창으로 보이는 주변경관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수정 같은 호숫가에 침엽수림 그리고 주변 草地에 말, 소, 양, 야크 등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과 함께 현지 몽골인들의 게르가 있었고, 4살부터 승마를 배운다는 아이들의 말 타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많은 乾川을 건너며 그 동안의 의구심을 풀었다. 당초 몽골원정을 계획하며 홉스골 유입되는 계류를 찾으면 낚시가 쉽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막상 홉스골호수에서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동안 호수로 유입되는 지천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폭 30km, 길이 136km, 깊이 262m, 지구상 민물의 1~2%를 차지한다는 거대한 호수로서 96개의 강이 유입된다고 했으나, 이는 雨期에만 물이 흐르고 평상시에는 乾川이었던 것이었다. 차고 넘친 물이 오로지 한줄기로 넘쳐흐르는 곳이 우리가 찾아가는 에깅골(Eg River)이라니 지표수는

없어도 지하를 통해 많은 물이 계속해서 홉스골로 유입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성황당 부근의 돌무더기 같은 '오보'가 보일 때마다 운전기사인 '일인칭'은 정차해 '오보'를 세 바퀴 돌며 祈願과 함께 더워진 모르건의 라지에이터를 식혔다. '오보'는 방향을 가름하기 어렵고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몽골 대평원에서의 길잡이 역할도 겸하고 있었고 '오보'의 높이와 넓이가 오보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맞은 편에서 홉스골로 들어오는 외국관광객들을 태운 러시아제 짚차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일본인 관광객이 제일 많아 보였다. 차는 계속 달려 홉스골 남부에 있는 '하투갈'이라는 소도시를 통과하고 있었다. 운전기사 '일인칭'이 손으로 하투갈 공항이라며 가르쳐준다. 초원 위에 길게 말뚝을 박아 놓은 곳이 공항 활주로였다. 홉스골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얻고 있으니 대략 10년 정도만 지나도 아마 이곳엔 정상적인 공항이 들어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흙먼지를 날리며 한참을 더 달려 에깅골(Eg River)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차를 멈췄다. 여러 줄기로 나뉘어져 초원을 흐르는 강가에 양떼들의 풀을 뜯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좌우로 20km 쯤 아무 것도 없이 탁 트인 초원을 또 달렸다. 더위를 피할 곳도 없었고 한 낮의 기온은 무척이나 높았다. 말들은 도로에 설치된 나무다리 밑에 들어가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있었다. 흔 하지 않은 에깅골의 다리를 건너다 손에 낚시줄은 움켜쥐고 스피너를 던지는 몽골의 어린 조사를 만났다. 낚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로드 없이 던지다 보니 줄이 엉키기도 했고 원하는 포인트에 스피너를 떨구지는 못하였지만 손 놀림은 아주 빠르고 훌륭했다. 물색과 물속의 고기를 살피며 꼬마가 물고기 거는 모습을 보고자 했으나, 잡는 모습은 보여주질 못했다. 에깅골(Eg River)은 그 맑고 깨끗한 홉스골 물이 넘쳐흐르는 강이라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물이 탁했다. 그 곳에서 낚시를 해 보고 싶었으나 목적지에 도착하자면 시간이 없다며 '일인칭'이 길을 재촉했다. 산을 넘기 시작했다.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을 넘어가다 결국은 차가 고장나고 말았다. 더운 날씨에 많은 부하(負荷)가 걸리다 보니 엔진온도가 올라가 출력이 떨어져 버렸다. 바람 부는 쪽으로 차 머리를 돌려 몇 차례 쉬고, 의자를 뜯어낸 후 냉각수를 보충하기도 했다. 차를 식히는 동안 도시락 컵라면을 먹는데 어찌나 파리가 많던지.. 컵라면을 들고뛰면서 라면을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 라면을 들고뛰는 발 밑으로 하얀산이라는 뜻의 사강올스(=에델바이스)가 무수히 짓밟혔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에겐 귀한 식물. 귀한 꽃으로 알고 있지만, 그 곳은 온통 에델바이스가 뒤덮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원기를 회복한 보르건은 다시 산을 탓다. 평소 짚차를 타고 험로 운전을 더러 해본 나로서도 몸을 움츠릴 정도의 험한 코스를 따라 차는 계속 나아갔다. 모두가 탱크가 따로 없다며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차가 뒤집힐 듯한 측면 경사도 지나쳤고 분명 차 바닥이 박살날 듯한 험난한 요철도 거뜬히 넘나들었다. 이제 그만 갔으면... 저 고개.. 저 구비만 넘고 돌면 강물이 보이고 우리가 쉴 곳이 나타나겠지 하는 생각은 때때 여지없이 깨지며 험한 길은 계속되었고 보르건은 거침없이 달려갔다. . 그 렇게 산을 넘고 넘어 산 그림자가 길게 누울 때쯤 운전기사 '일인칭'은 차를 세웠다. 그 자리에 내린 우리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평지만 흐르던 강물이 협곡을 지나고 있었고 그 곳을 석양이 비추고 있었다. 우리가 넘어온 그 험한 길이 바로 그 협곡을 이루는 큰산이었던 것이었다.

몽골은 사람보다 땅의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인구라야 고작 270만 명 정도이니 알고 보면 서울인구의 1/4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7배가 넘는 매우 넓은 땅을 갖고 있다. 천혜의 지하자원과 아름다운 초원은 몽골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현재의 몽골은 국민소득 335불 정도로 여전히 가난한 나라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나라 우리 일행이 도착한 이튿날, 전날 밤에 보지 못한 울란바타르시를 돌아보면서 이전의 몽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무언가 역동적이고 생명감 넘치는 힘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를 단장해 놓고 질서를 잡아가려는 분위기까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몽골은 분명히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디서 그 변화의 축이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는 몽골의 가장 오지인 홉스골 호수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45인승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넓은 바이칼호의 상류 홉스골로 향했다. 홉스골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추위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러나 창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홉스골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으로 2박 3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홉스골에서 울란바타르까지 돌아오는 비행기에다. 우리 일행은 홉스골의 하트갈을 떠나는 경비행기를 오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5명이 정원이라던 그 비행기 안에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좌석에 앉지 못한 사람들의 일부는 짐을 싣는 짐칸에 혹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그들 중 얼마는 조종사가 조종하는 방에까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비행기에도 입석이 있었던 것이다. 아 직 몽골은 모든 것이 꽉 채워진 정돈된 나라가 아니다. 설렁설렁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정말 사람 냄새가 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급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느림보도 아닌 그들 나름의 삶의 양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어느 순간 엄청난 속도로 앞을 향해 달려가다가 한 순간 쉬엄쉬엄 말과 이야기를 나누듯이 어슬렁거리는 여유로움도 보았다. 재미있는 민족이다. 세 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면서도 전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하여는 걱정이 없는 나라가 몽골이다. 적어도 그들은 굶어 죽거나 기근으로 인하여 고통 받지는 않는다. 말, 소, 양, 염소, 낙타

등 소위 오축(五畜)이 약 3천만 마리 정도니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 없을 것이다. 다만 양질의 문화적 혜택과 좀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있을 뿐이다. 1990년 3월 25일 우리나라와 대사급 국교를 수립한 이후, 몽골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나라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몽골과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 것은 1999년 이후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몽골에서 엄청난 숫자의 몽골인들이 한국에 외국인근로자로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몽골을 알기 시작한 것은 몽골에서 외국인근로자로 오기 시작한 몽골인 근로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부터다. 현재 한국에는 1만 7천 명이 넘는 많은 몽골인들이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몽골 문화원에서는 그들의 자녀를 위한 재한몽골학교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랄만한 교류임에 틀림없다. 몽골 지도자, 한국의 몽골 문화원 '환영' 일행이 홉스골에서 울란바타르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공식적인 행사는 울란바타르 시청을 방문하여 시장과 면담하는 것이다. 일찍이 울란바타르 시장 엥크볼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 몽골 문화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우리 문화원 이사들과 깊은 친분관계를 갖고 있었다. 시 장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8월 12일 정오에 잡혀 있었다. 시청을 방문하고 시장과 오찬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을 만나기 위하여 시청을 향하던 중 시장에게 급박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시 간부회의를 주재하던 시장은 갑작스러운 일로 인하여 급하게 떠나야 했고, 의전에 맞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시장과 만나야 했다. 아쉽긴 했지만 시장에게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기에 우리 일행은 이해할 수 있었고, 부시장과의 면담을 통하여 몽골문화원과 울란바타르시와 지속적인 문화교류와 인적 교류에 대해 합의했다. 물 론 그들은 우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의전을 베풀기 위하여 노력했다. 실제로 몽골에서 고위관료들과의 만남은 별도로 하고, 그들과 식사를 한번 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특히 그들에게서 식사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러나 울란바타르시는 공식적으로 우리 몽골문화원 이사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한 것이다. 바양골 호텔에서 한 오찬은 부시장과 우리 일행이 깊은 교제를 갖기에 충분한 식사 자리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한 대접을 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우리 몽골문화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란바타르에서 부시장과 공식적인 만남을 한 것은 우리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여러 가지

현안을 놓고 대화하면서 우리와 울란바타르시는 더 가까운 관계가 된 듯 했다. 우리 몽골문화원 이사들과 몽골의 고위관료들이 만나는 것이 한두 번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의 공식적인 만남과 오찬은 매우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특히 앞으로 몽골에서 나름대로 비전과 뜻을 이루려는 우리 문화원 입장에서는 몽골의 공식적인 정부기관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이것은 몽골의 정부 지도자들이 인정하고 지원하는 문화원 사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한 선교기관이나 단체가 하는 일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몽골정부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정부와 정부의 일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몽골인근로자센터, 합리적 선교전략 몽골문화원의 이사들은 몽골의 대통령이나 총리 혹은 국회의장이나 실세로 꼽히는 울란바타르 시장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보다도 그들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 문화원은 그들에게 진 빚이 없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기에 우리는 자신 있게 그들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 문화원의 이사들이 목사요 장로들임을 익히 잘 알고 있음에도 몽골의 지도자들은 우리를 외면할 수 없다. 한국에 있는 몽골인 근로자들의 센터를 만들었고, 몽골문화원을 세워 몽골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그들의 자녀까지 학교를 만들어 교육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찌 그들이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있으랴. 우 리가 대접받기 위하여 사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역할이 필요하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했다. 특히 몽골을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들에게 우리 문화원은 한국과의 관계를 풀어갈 중요한 교두보다. 오히려 대사관보다 더 쉽게 대화하고 필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우리 문화원과 몽골정부의 관계인 것이다. 우리 일행이 울란바타르에서 만난 첫 번째 사람들은 몽골의 정부 지도자들이다. 앞으로 우리의 몽골선교는 몽골 정부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땅을 얻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이전까지의 선교전략과는 전혀 다른 매우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선교전략이다. 기독교를 인정할 수 없는 몽골정부와 기독교의 선교적 의지를 가진 몽골문화원과의 절묘한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