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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 February 2017 43 42 Chindia plus 러시아는 그 영토의 크기만큼 다양하고 풍요로 운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7세기 드네프르강과 볼가강의 도시국가에서 성장한 러시아는 12세기 몽골의 200년 가까운 지배를 받았지만 16세기부 터는 유라시아의 강대국이 됐다. 17세기에는 유 럽의 최대 영토 대국이 됐으며, 18세기부터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차지하고 극동에도 진출했 다. 20세기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 는 소련 제국으로 부상했으며 유라시아에서 생산 되는 다양한 식재료를 러시아 식으로 요리하는 유라시아 음식제국이 됐다. 제국은 확장하면서 이질적인 문화들을 융합하 거나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러시아의 음식문화 에도 전통적인 슬라브적 요소와 함께 몽골, 유럽, 그리고 자국의 식민지였던 캅카스와 중앙아시 아, 심지어 아시아 음식문화도 뒤섞이게 됐다. 러 시아는 종교도 다르고 민족도 다른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점차 하나로 통합해 나가고 있다. 서양과 동양, 정착 민족과 유목 민족의 식재료와 음식 문 화를 하나의 밥상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러시아 음식 산림의 민족인 러시아인은 춥고 황량한 북유럽의 숲을 개간해 메밀·귀리·호밀·보리 등을 심었으 며 이것을 가장 쉽게 조리 가능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죽으로 만들었다. 러시아 속담에 “메밀죽 은 우리의 피를 나누는 어머니요, 호밀빵은 우리 의 피를 나눈 아버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 세기 제분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 러 시아인의 주식은 죽과 흑빵이었다. 카샤(kаша, 러시아식 죽)는 메밀·보리·귀리 같은 잡곡의 낱 알을 갈아서 물에 불리고 여기에다 우유·소금 등 을 섞어 만든다. 가난한 농노들은 이런 음식조차 도 구하기 힘들어 물기를 많게 해서 죽처럼 만들 고 소금을 넣어 먹었다. 부유한 귀족들은 물기를 적게 해서 질게 된 밥처럼 만들고 여기에다 꿀· 잼·우유 등을 넣어 달고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먹 었다. 카샤는 빵조차 만들어 먹기 힘들 정도로 곤 궁했던 농노들의 주식인데, 최근에는 건강 다이 어트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흑빵(хлеб, 초르니흘렙) 은한랭하고척박한땅에서도잘자라는호밀로만 든다. 밀로 만든 흰 빵은 20세기가 돼서야 서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흑빵은 발효 과정에서 이스트를넣어시큼한냄새가난다.한국인이김치 없이밥을먹을수없는것처럼러시아인은신맛이 나는 흘렙 없이 식사를 하지 못한다. 러시아 전쟁 영화에서 병사들이 흘렙을 깔고 앉거나 머리에 베 고 잠들기도 하고 식사 때가 되면 칼로 돌처럼 단 단한흘렙을잘라먹는장면이자주나온다. 고기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근대 이전 러시 아인은 가끔씩 생기는 귀한 고기를 수프와 국에 다 끓여 먹었다. 시(Щи)는 수프의 일종으로 소 금에 절인 양배추를 주재료로, 여기에 토마토·당 근·양파와 고기 몇 점을 넣어 끓여 만든다. 보르 시(борщ)는 당근·양파·사탕무 등을 채 썰고 여 기에다 푹 고은 고기를 넣은 러시아식 갈비탕이 다. 우유크림인 스메타나를 곁들이면 핑크빛 뽀 얀 국물이 나온다. 약간 새콤한 맛이 난다. 농노들 은 이마저도 명절에 가끔씩 먹을 정도로 과거 러 시아에서는 고기가 귀했다.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인 러시아인은 음식문화 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슬라브 정교가 정한 금식 기에는 배추·무·콩·오이 등을 날로 먹거나 끓이 거나 혹은 구워 먹었다. 육류와 유제품을 먹을 수 없어 대안으로 생선을 먹기 시작했는데, 철갑상 어의 알인 이크라(икра)라는 최고급 식재료가 탄생했다. 러시아에서 생일이나 결혼식에 이크 라가 나오지 않으면 접대가 시원찮은 것으로 간 주해도 무방하다. 러시아인은 부활절이나 마슬레니차라는 사순 절, 그리고 기념할 만한 좋은 날에는 러시아식 팬 케이크인 블린(Блин)을 먹는다. 블린은 밀가루 나 메밀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해 아주 얇게 만들 어 굽는다. 둥글고 평평한 블린을 1분 동안 구워 서 입맛에 맞는 소를 골라 채워 넣으면 된다. 보통 잼이나 감자, 다진 고기, 양파 등을 넣기도 하지만 버터를 듬뿍 바르고 연어 살과 캐비어를 얹어 먹 는 초호화판 블린도 있다. 러시아인의 블린 사랑 은 유명하다. 블린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릴 정도 로 맛있기 때문에 반드시 여유 있는 명절이나 일 요일에 먹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러시아는 강과 호수, 숲이 많은 지역적 특성으 로 생선, 야생 포도인 베리류, 버섯 등이 중요한 식 재료가 됐다. 그렇지만 오늘날 러시아의 주식인 감자는 18세기에, 토마토는 19세기가 돼서야 본 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처음에는 관 상용으로만 재배됐고 감자는 그 생김새 때문에 악마의 음식이라며 외면당했다. 지금 러시아 음 식에서 토마토나 감자를 뺀 식단을 생각해 본다 면 근대 이전 러시아 음식의 식재료가 얼마나 빈 약했는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근과 전쟁 이 닥치면 러시아인은 충분하지 못한 영양 공급 으로 굶어 죽어 갔으며 이에 따라 인구증가율도 미미했다. 몽골과 유럽 음식문화의 도입 12세기 이후 러시아는 몽골 제국의 후손인 킵차 크한국으로부터 200년 동안 지배를 받는다. 킵차 크한국은 지금의 러시아 남부에 자리잡고 슬라브 도시국가들을 지배했다. 유목민족인 몽골은 다 양한 실크로드의 음식문화를 러시아에 남겼다. 몽골인은 긴 겨울에 대비해 소금물에 양배추를 담그고 저장한다. 이를 눈여겨본 러시아인은 양 배추뿐 아니라 귀리·사탕무·오이·버섯 등 다양 한 식재료를 절이는 음식문화로 발전시켰다. 유 목민족인 몽골인은 발효된 우유로 응결된 치즈를 제조하는 법을 가르쳤고, 요구르트와 마유주도 러시아에 선보였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인기 높 은 청량음료의 일종인 크바스(квас)는 호밀과 보리를 발효시켜 만드는데, 마유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몽골인 덕분에 러시아인은 저장식품으로 펠메 니(пельм ни)라는 러시아식 만두를 만들었 다. 펠메니는 밀가루를 얇게 반죽해 다진 고기로 속을 채워 만든다. 만들어 놓은 펠메니는 한번 냉 동시켰다가 나중에 끓이거나 튀겨서 먹을 수 있 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저장식품으로 인기가 높 다. 또한 당시 세계제국이었던 몽골은 또한 향신 료를 러시아에 도입해 귀족들의 식탁은 점차 호 화스러워지기 시작했다. 18세기 서구화를 지향한 표트르 대제는 프랑 스와 이탈리아 출신의 서구 요리사들을 고용했 다. 유럽의 요리사들은 무엇보다 러시아의 음식 문화를 바꾸어놓았다.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 혁 이전에 러시아인은 음식을 먹기 위한 접시·포 크와 식사용 칼의 구분이 없었다. 조그마한 칼 하 나로 밥도 먹고 나무도 베며 집안일도 했으며 심 윤성학 고려대 러시아 CIS 연구소 교수 [email protected] 슬라브 인문산책 ④ 러시아의 음식 문화 Bell Ringer 인문산책 땅덩이만큼 다양한 유라시아 융합의 식문화 사회주의 영향, 혼술·혼밥 없는 음식 공동체 러시아인은부활절이나마슬레니차라는사순절,그리고기념할만한좋은날에러시아식팬케이크인블린을먹는다.[Shutterstock] 몽골인 덕분에 러시아인은 저장식품으로 펠메니라는 러시아식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Shutterstock]

Bell Ringer - POSRI · 슬라브 인문산책 ④ 러시아의 음식 문화 Bell Ringer 인문산책 땅덩이만큼 다양한 유라시아 융합의 식문화 사회주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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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Bell Ringer - POSRI · 슬라브 인문산책 ④ 러시아의 음식 문화 Bell Ringer 인문산책 땅덩이만큼 다양한 유라시아 융합의 식문화 사회주의 영향,

January / February 2017 4342 Chindia plus

러시아는 그 영토의 크기만큼 다양하고 풍요로

운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7세기 드네프르강과

볼가강의 도시국가에서 성장한 러시아는 12세기

몽골의 200년 가까운 지배를 받았지만 16세기부

터는 유라시아의 강대국이 됐다. 17세기에는 유

럽의 최대 영토 대국이 됐으며, 18세기부터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차지하고 극동에도 진출했

다. 20세기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

는 소련 제국으로 부상했으며 유라시아에서 생산

되는 다양한 식재료를 러시아 식으로 요리하는

유라시아 음식제국이 됐다.

제국은 확장하면서 이질적인 문화들을 융합하

거나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러시아의 음식문화

에도 전통적인 슬라브적 요소와 함께 몽골, 유럽,

그리고 자국의 식민지였던 캅카스와 중앙아시

아, 심지어 아시아 음식문화도 뒤섞이게 됐다. 러

시아는 종교도 다르고 민족도 다른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점차 하나로 통합해 나가고 있다. 서양과

동양, 정착 민족과 유목 민족의 식재료와 음식 문

화를 하나의 밥상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러시아 음식

산림의 민족인 러시아인은 춥고 황량한 북유럽의

숲을 개간해 메밀·귀리·호밀·보리 등을 심었으

며 이것을 가장 쉽게 조리 가능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죽으로 만들었다. 러시아 속담에 “메밀죽

은 우리의 피를 나누는 어머니요, 호밀빵은 우리

의 피를 나눈 아버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

세기 제분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 러

시아인의 주식은 죽과 흑빵이었다. 카샤(kаша,

러시아식 죽)는 메밀·보리·귀리 같은 잡곡의 낱

알을 갈아서 물에 불리고 여기에다 우유·소금 등

을 섞어 만든다. 가난한 농노들은 이런 음식조차

도 구하기 힘들어 물기를 많게 해서 죽처럼 만들

고 소금을 넣어 먹었다. 부유한 귀족들은 물기를

적게 해서 질게 된 밥처럼 만들고 여기에다 꿀·

잼·우유 등을 넣어 달고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먹

었다. 카샤는 빵조차 만들어 먹기 힘들 정도로 곤

궁했던 농노들의 주식인데, 최근에는 건강 다이

어트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흑빵(хлеб, 초르니흘렙)

은 한랭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호밀로 만

든다. 밀로 만든 흰 빵은 20세기가 돼서야 서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흑빵은 발효 과정에서

이스트를 넣어 시큼한 냄새가 난다. 한국인이 김치

없이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러시아인은 신맛이

나는 흘렙 없이 식사를 하지 못한다. 러시아 전쟁

영화에서 병사들이 흘렙을 깔고 앉거나 머리에 베

고 잠들기도 하고 식사 때가 되면 칼로 돌처럼 단

단한 흘렙을 잘라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고기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근대 이전 러시

아인은 가끔씩 생기는 귀한 고기를 수프와 국에

다 끓여 먹었다. 시(Щи)는 수프의 일종으로 소

금에 절인 양배추를 주재료로, 여기에 토마토·당

근·양파와 고기 몇 점을 넣어 끓여 만든다. 보르

시(борщ)는 당근·양파·사탕무 등을 채 썰고 여

기에다 푹 고은 고기를 넣은 러시아식 갈비탕이

다. 우유크림인 스메타나를 곁들이면 핑크빛 뽀

얀 국물이 나온다. 약간 새콤한 맛이 난다. 농노들

은 이마저도 명절에 가끔씩 먹을 정도로 과거 러

시아에서는 고기가 귀했다.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인 러시아인은 음식문화

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슬라브 정교가 정한 금식

기에는 배추·무·콩·오이 등을 날로 먹거나 끓이

거나 혹은 구워 먹었다. 육류와 유제품을 먹을 수

없어 대안으로 생선을 먹기 시작했는데, 철갑상

어의 알인 이크라(икра)라는 최고급 식재료가

탄생했다. 러시아에서 생일이나 결혼식에 이크

라가 나오지 않으면 접대가 시원찮은 것으로 간

주해도 무방하다.

러시아인은 부활절이나 마슬레니차라는 사순

절, 그리고 기념할 만한 좋은 날에는 러시아식 팬

케이크인 블린(Блин)을 먹는다. 블린은 밀가루

나 메밀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해 아주 얇게 만들

어 굽는다. 둥글고 평평한 블린을 1분 동안 구워

서 입맛에 맞는 소를 골라 채워 넣으면 된다. 보통

잼이나 감자, 다진 고기, 양파 등을 넣기도 하지만

버터를 듬뿍 바르고 연어 살과 캐비어를 얹어 먹

는 초호화판 블린도 있다. 러시아인의 블린 사랑

은 유명하다. 블린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릴 정도

로 맛있기 때문에 반드시 여유 있는 명절이나 일

요일에 먹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러시아는 강과 호수, 숲이 많은 지역적 특성으

로 생선, 야생 포도인 베리류, 버섯 등이 중요한 식

재료가 됐다. 그렇지만 오늘날 러시아의 주식인

감자는 18세기에, 토마토는 19세기가 돼서야 본

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처음에는 관

상용으로만 재배됐고 감자는 그 생김새 때문에

악마의 음식이라며 외면당했다. 지금 러시아 음

식에서 토마토나 감자를 뺀 식단을 생각해 본다

면 근대 이전 러시아 음식의 식재료가 얼마나 빈

약했는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근과 전쟁

이 닥치면 러시아인은 충분하지 못한 영양 공급

으로 굶어 죽어 갔으며 이에 따라 인구증가율도

미미했다.

몽골과 유럽 음식문화의 도입

12세기 이후 러시아는 몽골 제국의 후손인 킵차

크한국으로부터 200년 동안 지배를 받는다. 킵차

크한국은 지금의 러시아 남부에 자리잡고 슬라브

도시국가들을 지배했다. 유목민족인 몽골은 다

양한 실크로드의 음식문화를 러시아에 남겼다.

몽골인은 긴 겨울에 대비해 소금물에 양배추를

담그고 저장한다. 이를 눈여겨본 러시아인은 양

배추뿐 아니라 귀리·사탕무·오이·버섯 등 다양

한 식재료를 절이는 음식문화로 발전시켰다. 유

목민족인 몽골인은 발효된 우유로 응결된 치즈를

제조하는 법을 가르쳤고, 요구르트와 마유주도

러시아에 선보였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인기 높

은 청량음료의 일종인 크바스(квас)는 호밀과

보리를 발효시켜 만드는데, 마유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몽골인 덕분에 러시아인은 저장식품으로 펠메

니(пельм ни)라는 러시아식 만두를 만들었

다. 펠메니는 밀가루를 얇게 반죽해 다진 고기로

속을 채워 만든다. 만들어 놓은 펠메니는 한번 냉

동시켰다가 나중에 끓이거나 튀겨서 먹을 수 있

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저장식품으로 인기가 높

다. 또한 당시 세계제국이었던 몽골은 또한 향신

료를 러시아에 도입해 귀족들의 식탁은 점차 호

화스러워지기 시작했다.

18세기 서구화를 지향한 표트르 대제는 프랑

스와 이탈리아 출신의 서구 요리사들을 고용했

다. 유럽의 요리사들은 무엇보다 러시아의 음식

문화를 바꾸어놓았다.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

혁 이전에 러시아인은 음식을 먹기 위한 접시·포

크와 식사용 칼의 구분이 없었다. 조그마한 칼 하

나로 밥도 먹고 나무도 베며 집안일도 했으며 심

윤성학 고려대 러시아 CIS 연구소 교수

[email protected]

슬라브 인문산책 ④ 러시아의 음식 문화

BellRinger 인문산책

땅덩이만큼 다양한 유라시아 융합의 식문화

사회주의 영향, 혼술·혼밥 없는 음식 공동체

러시아인은 부활절이나 마슬레니차라는 사순절, 그리고 기념할 만한 좋은 날에 러시아식 팬케이크인 블린을 먹는다. [Shutterstock]

몽골인 덕분에 러시아인은 저장식품으로 펠메니라는 러시아식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Shutterstock]

Page 2: Bell Ringer - POSRI · 슬라브 인문산책 ④ 러시아의 음식 문화 Bell Ringer 인문산책 땅덩이만큼 다양한 유라시아 융합의 식문화 사회주의 영향,

January / February 2017 4544 Chindia plus

지어 전쟁이 나면 그 칼을 휘둘렀다. 서민들은 숟

가락을 장화에 끼고 다니며 식사 시 빼서 사용했

다. 당시 러시아인은 음식을 먹기 위해 커다란 하

나의 항아리와 대접만을 사용했다.

유럽의 귀족문화에 익숙한 유럽 요리사들은 음

식용 접시, 포크 등 식기 자재를 러시아에 도입했

다. 또한 그들은 돈 많은 귀족과 왕족이 보다 많은

음식을 먹게끔 애피타이저, 수프, 메인 요리, 디저

트 순서로 음식을 제공했다. 그 이전에는 한식처

럼 한 탁자에 음식이 가득했다. 이제 귀족들에게

식사란 단순히 위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교와

친교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에서 서두르

지 않고 담소하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먹는 식문화는 유럽 귀족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유럽 음식문화가 도입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생

겨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음식문화의 영향

18세기 이후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캅카스와 중

앙아시아에 진출하면서 제국의 면모를 갖추어 간

다. 이 지역은 건조한 초원지대로 유목민들이 사

는 곳이다. 양과 소를 방목하는 이 지역에서는 자

연스럽게 꼬치구이 음식인 샤슬릭(шашлык)

이 생겨났다. 19세기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 진

출하면서 샤슬릭은 러시아의 대표 음식이 됐다.

샤슬릭 이전에 고기를 구워 먹는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석탄의 강력한 화력을 이용해 고

기에 숯불 향을 입혀 먹는 샤슬릭은 러시아인에

게 신세계였던 것이다.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에서 샤슬릭은 지역과 종

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중앙아시아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주로 양고기만을 재료로 사

용하지만 아르메니아·조지아 등 기독교 국가들

은 돼지고기를 사용한다.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우즈베크 전통 샤슬릭은 쇠꼬챙이에 양고기의 살

코기와 지방을 순서대로 꽂아 넣는다. 꼬치의 크

기는 한입에 먹기 좋을 만큼 잘라낸다. 캅카스 지

역에서는 한입에 들어가기 힘든 크기의 돼지 목살

을 주로 사용한다. 여기서는 커다란 쇠꼬치를 손

에 들고 먹는 것이 아니라 접시에 담아 스테이크

나 로스트비프처럼 칼로 썰어 먹는다. 아제르바이

잔·투르크메니스탄·터키 등 셀주크튀르크족은

쇠꼬챙이에다 야채와 고기를 함께 구워낸다.

샤슬릭의 장점은 360도 돌려가며 골고루 구울

수 있어 육즙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잘 구워진 샤

슬릭은 입안에서 육즙의 고소한 감칠맛이 퍼져나

간다. 샤슬릭이 다 구워지면 특별히 간을 할 필요

없이 썰어 놓은 양파와 함께 먹는다. 조미료나 향

료가 들어가지 않은 한우 등심과 마찬가지로 샤

슬릭은 그 자체로 맛있다. 보드카와 가장 궁합이

맞는 요리가 탄생한 것이다.

샤슬릭과 함께 중앙아시아에서 온 다른 음식문

화는 밥이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와 달리 벼농사

가 가능하다. 중앙아시아에서 벼농사가 본격적으

로 시작된 것은 16세기 이후 킵차크에서 건너온

우즈베크인들이 지금의 페르가나와 안디잔에 정

착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아랍식 볶음밥의 일종인

플로프(плов)를 목화씨 기름으로 볶아냈다.

우즈베크식 플로프는 쌀을 삶지 않고 생쌀을

목화기름을 부은 큰 밥솥에 올려놓으면서 요리하

기 시작한다. 플로프는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밥솥을 열어 시간 날 때마다 큰 주걱으로 뒤집어

준다. 가끔씩 목화기름을 보충하거나 소금을 뿌

린다. 밥이 어느 정도 익으면 당근을 넣어 달달한

맛을 내고 주황빛이 살짝 돌도록 만들어준다. 밥

이 황갈색이 되도록 몇 시간 동안 볶고 난 다음에

는 채 썬 당근과 향신료, 그리고 고기를 넣는다. 접

시에 음식을 담을 때는 마늘·오이·자두와 건포도

등을 얹어서 비타민을 보충하기도 한다.

플로프는 시간과 정성이 없으면 만들기 힘든

음식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결혼이나 장례식

등 명절에는 반드시 플로프를 만들어 나누어 먹

는다. 플로프 전문 식당에는 그날 플로프가 떨어

지면 아무리 손님이 원해도 당장 만들어낼 수가

없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샤슬릭과 플로프를 파

는 우즈베크 식당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시아 음식문화의 재발견

러시아인이 극동을 점령한 길은 오늘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다니는 평원이 아니라 야쿠츠크와 레

나강, 아무르강 등 동토 지대, 바다와 같은 넓고 긴

강을 통해서다. 러시아 탐험대는 강이 얼어붙는

겨울에 극동지역을 탐사했는데, 사실상 먹을 것

이라고는 물고기밖에 없었다. 강가에서 두꺼운

얼음을 깨고 낚시를 드리우면 굶주린 물고기들이

줄줄이 낚인다. 오물, 송어 등 물고기들은 영하 20

도 이하로 떨어진 지상에 맨몸으로 올라오면 세

번 팔딱거리기 전에 몽둥이처럼 얼어버린다. 자

연 냉동된 돌멩이와 같은 물고기를 먹기 위해서

는 대패로 문질러야 한다. 얇게 썬 물고기 조각에

양파를 버무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먹는 것

은 대팻밥이라고 불리는 스트로가니나(строг

анина)이다. 여기에다 와사비와 간장을 치면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으며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입속에 퍼져 나간다.

문명의 교차로인 중앙아시아에 전파된 아시아

음식문화도 러시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청나라의 건륭제는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이

유로 지금 신장성에 살고 있는 위구르족을 톈산

산맥 서쪽인 카자흐스탄으로 쫓아냈다. 중앙아

시아에 정착한 위구르족은 본격적인 면 요리를

선보였는데, 국물이 없고 고기와 채소를 볶아 칼

국수 면을 섞은 라그만(Лагма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인도 이제 밀가루로 빵과 만두

뿐 아니라 본격적인 면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라그만보다 더 인기 있는 면 요리

는 한국에서 수입된 도시락 라면이다. 도시락 라

면은 극동에서 먼저 수입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 등 러시아 남부로 수출됐다. 러시

아인은 추운 겨울 뜨거운 국물과 면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러시

아에서 생산되는 한국 라면은 닭고기 육수를 많

이 사용하며 한국 기준으로 맵지 않고 느끼하다.

러시아는 새로운 라면 맛을 창조한 것이다.

한국이 러시아에 수출한 또 다른 음식은 러시

아식 김치다. 1930년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한 고려인들은 배추를 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김

치를 만들 만한 재료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당근이다. 당근으로 만든 김치(Корейской

моркови)는 느끼한 러시아인의 입맛에도 잘

맞아 당당히 러시아 음식이 됐다. 러시아의 대형

수퍼에 가면 ‘카레이스키마르코비’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동서양과 실크로드 음식문화의 향연

오늘날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는 유럽과 전통 러

시아 식당뿐 아니라 일본의 스시 등 아시아 식당

이 번성하고 있으며, 특이한 것은 우즈베키스탄·

조지아 등 실크로드 식당도 유행을 타고 있다. 유

라시아 제국의 중심지인 러시아의 식단에서는 유

럽과 아시아에 걸쳐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을 쉽

게 만날 수 있다. 과거 러시아의 음식 테이블에서

는 러시아식 음식과 실크로드와 아시아 음식을

구별했지만 최근에는 가리지 않고 섞는 추세다.

러시아 흑빵과 보르쉬에다 실크로드의 샤슬릭,

고려 음식인 당근 김치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러시아인은 혼술, 혼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

며 음식은 같이 나누어 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러

시아 농가에서는 일정한 시간에 식구들이 반드

시 각자의 자리에 앉아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어

야 했다. 무엇보다 러시아인은 친구나 손님을 초

대해 같이 먹는 것을 인생의 행복으로 생각한다.

손님은 주인이 제공하는 식사나 술을 거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

100년의 사회주의 문화는 음식 공동체를 보다

강화했다. 식사 시간에는 모두가 평등하며 만약

보드카가 곁들여지면 돌아가면서 축사를 해야 한

다. 한 번의 토스트(축사)가 끝날 때마다 반드시

잔을 비워야 한다. 러시아인은 음식은 혀를 만족

시키고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인 동시에 서로의 유

대감을 확인하고 좌절을 위로하며 성공을 축복하

는 신성한 제사로 생각한다. 천년에 걸쳐 인류사

의 가장 큰 고난과 좌절을 극복한 러시아인에게

유라시아의 곳곳에서 올라온 식재료로 만든 이

정도의 향연은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19세기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 진출하면서 꼬치구이 음식 샤슬릭은

러시아의 대표 음식이 됐다. [Shutterstock]

러시아 탐험대는 강이 얼어붙는 겨울에 극동지역을 탐사했는데, 사실상 먹을 것이라고는 물고기밖에 없었다.

얇게 썬 물고기 조각에 양파를 버무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먹는 음식으로, 이른바 대팻밥이라고 불리는 스트로가니나가 대표적이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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