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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155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의미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Frank Lloyd Wright's Experience with the Korean Traditional Floor Heating System Ondol, Its Application Process in His Architectural Works and Meanings 김 남 응 * 장 재 원 ** 임 진 택 *** Kim, Nam-Ung Jang, Jae-Won Lim, Jin-Taek ……………………………………………………………………………………………………………………………… Abstract Frank Lloyd Wright is one of the most prominent American architects, who has been respected worldwide up to these days. He had shown many innovative ideas throughout his carrier, and one of them was the use of floor heating system in his many realized or unrealized buildings. But a few know, that he had achieved the idea originally from the Korean traditional heating system "Ondol(called also Goodl)", that he had experienced in Japan. But one of the more interesting points is that he had played an important role to spread it widely over in the United States America, so we may see him as a transmitter of the Korean heating system "Ondol(Goodl)" in his country, because his idea is originated from "Ondol(Goodl), even if he used steam or hot water pipes instead of th flues beneath the floor of the Korean's. This paper follows Wright's life and works and describes the circumstances, which allows us such point of view. ……………………………………………………………………………………………………………………………… 키워드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온돌, 구들, 바닥난방 Keywords : Frank Lloyd Wright, Ondol, Goodl, Floor Heating ……………………………………………………………………………………………………………………………… 그림 1. 45세의 Frank Lloyd Wright. 그는 47세 때 온돌을 만난다. 1. 서 론 1) 1.1 연구의 배경과 목적 한국인들은 조상대대로 구들 또는 온돌(溫突) 1) 이라 하는 난방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 온돌은 약 2300년 이상 된 것으로 알려지 있으며, 바닥난방법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것으로서, 구들장에 열을 저장하여 장시간 따뜻함을 취하고, 아궁이 하나에 지핀 불로 방 두세 칸을 난방하며, 또한 데워진 열기는 위로 상승 하는 자연원리를 그대로 이용하면서도 우수한 온열환경을 제공하 여 주고, 취사까지 겸하는 난방방법이라는 점, 그리고 인류에게 오랫동안 필요악의 존재였던 연기를 바로 난방의 핵심으로 이용 하되, 연기에서 열기만을 걸러 난방에 활용한 점 등 동시대의 다 른 난방법에서는 보기 힘든 지혜로운 점을 지니고 있어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요소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2)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전통난방법인 온돌을 일찍이 만나고 그 가치를 잘 파악한 서양 건축가가 있었으니 바로 너무나 유명하여 * 단국대 건축대학 건축학과 교수, 공학박사 ** 단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 단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이 연구는 2004학년도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의 지원으로 연 구된 것임. 1) ‘온돌(溫突)’이란 이름은 한글이 발명되기 전에 ‘구들’을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구들’은 ‘온돌’이란 명칭보다 오래되 었고 순수 우리말 이름이다. ‘구들’이란 명칭을 널리 쓰면 좋겠으 나 현재 ‘온돌’이란 명칭이 더 널리 퍼져 있어서 본 고찰에서는 부 득이 ‘온돌’이란 명칭을 앞세운다. 그러나 ‘구들’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명칭문제는 <김남응, 문헌과 유적으로 구들이야기 온돌이야기, 단국대 출판부, 2004>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2) 앞 책 pp. 498-511 참고 건축을 하는 사람이면 모두 아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이다. 그는 1914년 일본 도쿄에 제국호 텔 설계 건으로 체류하면서 온돌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라이트 자신이 쓴 자서전 ‘An Autobiography’(이하 ‘자서전’이라 칭함)와 ‘The Natural House’에 ‘Gravity Heat(중 력난방)’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으나 3) 이트의 ‘낙수장(Falling Water)’ 4) 이나 ‘구 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5) 알아도 라이트가 온돌(구들)을 경험하였다 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함으로 그의 명성에 비하여 국내에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과거 우리의 사정이 이러한 문헌을 접하기 쉽지 않았고, 교육에서도 부각되지 않았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라이트의 온돌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일이 한국인으로서는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지만, 위에 언급된 ‘Gravity Heat’에는 우리를 그의 온돌과 만남 이후의 활동에 대하 여 관심을 가지게 하는 단초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라 이트는 온돌을 체험하고 바로 그것에 매료되었고, 거기에서 그치 3) 뒤의 참고문헌 목록 1과 2 4) 공식명칭: Edgar J. Kaufmann House, Bear Run, Pennsylvania(1935-39)의 별칭 5) 공식명칭: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N.Y.(1943-46)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cfs3.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 · 1912 라이트 ‘The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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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155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의미에 대한 고찰A Study on the Frank Lloyd Wright's Experience with the Korean Traditional Floor

    Heating System Ondol, Its Application Process in His Architectural Works and Meanings

    김 남 응* 장 재 원** 임 진 택***

    Kim, Nam-Ung Jang, Jae-Won Lim, Jin-Taek

    ………………………………………………………………………………………………………………………………

    Abstract

    Frank Lloyd Wright is one of the most prominent American architects, who has been respected worldwide up to these days. He

    had shown many innovative ideas throughout his carrier, and one of them was the use of floor heating system in his many realized

    or unrealized buildings. But a few know, that he had achieved the idea originally from the Korean traditional heating system

    "Ondol(called also Goodl)", that he had experienced in Japan. But one of the more interesting points is that he had played an

    important role to spread it widely over in the United States America, so we may see him as a transmitter of the Korean heating

    system "Ondol(Goodl)" in his country, because his idea is originated from "Ondol(Goodl), even if he used steam or hot water pipes

    instead of th flues beneath the floor of the Korean's.

    This paper follows Wright's life and works and describes the circumstances, which allows us such point of view.

    ………………………………………………………………………………………………………………………………

    키워드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온돌, 구들, 바닥난방

    Keywords : Frank Lloyd Wright, Ondol, Goodl, Floor Heating

    ………………………………………………………………………………………………………………………………

    그림 1. 45세의

    Frank Lloyd Wright. 그는 47세 때

    온돌을 만난다.

    1. 서 론1)

    1.1 연구의 배경과 목적

    한국인들은 조상대대로 구들 또는 온돌(溫突)1)이라 하는 난방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 온돌은 약 2300년 이상 된 것으로 알려지

    고 있으며, 바닥난방법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서,

    구들장에 열을 저장하여 장시간 따뜻함을 취하고, 아궁이 하나에

    지핀 불로 방 두세 칸을 난방하며, 또한 데워진 열기는 위로 상승

    하는 자연원리를 그대로 이용하면서도 우수한 온열환경을 제공하

    여 주고, 취사까지 겸하는 난방방법이라는 점, 그리고 인류에게

    오랫동안 필요악의 존재였던 연기를 바로 난방의 핵심으로 이용

    하되, 연기에서 열기만을 걸러 난방에 활용한 점 등 동시대의 다

    른 난방법에서는 보기 힘든 지혜로운 점을 지니고 있어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요소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2)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전통난방법인 온돌을 일찍이 만나고 그

    가치를 잘 파악한 서양 건축가가 있었으니 바로 너무나 유명하여

    * 단국대 건축대학 건축학과 교수, 공학박사 ** 단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 단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이 연구는 2004학년도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의 지원으로 연 구된 것임.1) ‘온돌(溫突)’이란 이름은 한글이 발명되기 전에 ‘구들’을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구들’은 ‘온돌’이란 명칭보다 오래되었고 순수 우리말 이름이다. ‘구들’이란 명칭을 널리 쓰면 좋겠으

    나 현재 ‘온돌’이란 명칭이 더 널리 퍼져 있어서 본 고찰에서는 부

    득이 ‘온돌’이란 명칭을 앞세운다. 그러나 ‘구들’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명칭문제는 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2) 앞 책 pp. 498-511 참고

    건축을 하는 사람이면 모두 아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이다. 그는 1914년 일본 도쿄에 제국호

    텔 설계 건으로 체류하면서 온돌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라이트 자신이 쓴 자서전 ‘An

    Autobiography’(이하 ‘자서전’이라 칭함)와

    ‘The Natural House’에 ‘Gravity Heat(중

    력난방)’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으나3) 라

    이트의 ‘낙수장(Falling Water)’4)이나 ‘구

    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5)은

    알아도 라이트가 온돌(구들)을 경험하였다

    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함으로 그의 명성에 비하여 국내에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과거 우리의 사정이 이러한 문헌을 접하기 쉽지 않았고,

    교육에서도 부각되지 않았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라이트의 온돌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일이

    고 한국인으로서는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지만, 위에 언급된

    ‘Gravity Heat’에는 우리를 그의 온돌과 만남 이후의 활동에 대하

    여 관심을 가지게 하는 단초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라

    이트는 온돌을 체험하고 바로 그것에 매료되었고, 거기에서 그치

    3) 뒤의 참고문헌 목록 1과 2 4) 공식명칭: Edgar J. Kaufmann House, Bear Run, Pennsylvania(1935-39)의 별칭5) 공식명칭: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N.Y.(1943-46)

  • 김남응․장재원․임진택

    156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년도 주 요 사 항

    1867 Wisconsin주 Richland Center에서 출생

    1885Madison시 소재 University of Wisconsin, Engineering 과정에 입학Engineering 교수 Allan D. Conover 교수에게서 아르바이트

    1887Wisconsin 대학에는 건축과가 없어 건축수업을 받을 수 없어 학업을 중단, 시카고로 감. Joseph Lyman Silsbee 설계사무실 입사. Adler & Sullivan 사무실로 옮김

    1892 Adler & Sulivan 사무실 퇴사

    1893 라이트 개인 사무실 시카고에 개설

    19051905년 첫 일본여행(고객 Ward Willits 부부와 동행). 일본 목판화를 수집, 미국에 판매. 38세

    1906수집한 일본의 목판화가 Hiroshige의 작품을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전시

    1911 Wisconsin의 Spring Green 근처에 작업실을 겸하여 새 집을 짓고 Taliesin이라 명명

    1912 라이트 ‘The Japanese Print: An Interpretation’ 출간

    1913 라이트 두 번째로 일본여행, 제국호텔(Imperial Hotel)설계계약을 확고히 굳히고 미국의 고객들을 위해 일본 목판화들을 확보하기 위한 여행

    1914

    온돌과의 만남: 겨울 어느 날 라이트는 오쿠라 남작(大倉 男爵) 저택에서의 만찬에 초대됨. 매우 추운 방에서 만찬을 끝낸 후 아래층 ‘한국방’이란 곳으로 옮겨 커피를 마시게 되며, 그곳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바닥난방 온돌(구들) 체험하고 ‘위대한 발견’으로 받아들임. 라이트의 작업실 겸 저택 Taliesin 화재로 소실. 47세

    1915라이트는 도쿄에 사무실 개설, ‘New Imperial Hotel’ 설계. 구들 체험에 따라 바닥난방 적용. 48세

    1916 도쿄에 ‘New Imperial Hotel Annexe’(별관, 부속건물)설계

    1917도쿄에 Aisaku Hayashi 저택 설계. (하야시는 1915년경 제국호텔 설계 건으로 라이트를 ‘Taliesin’집으로 방문했던 사람)

    1918 중국 북경으로 여행(‘New Imperial Hotel’에 쓸 양탄자 주문 겸)

    1920화재로 소실되었던 Wisconsin주 Spring Green의 자신의 ‘Taliesin’ 저택 일부 공간 추가 복원

    1921 도쿄에 Jiyu Gakuen School(自由學園 明日館) 설계

    1923관동대지진발생, ‘New Imperial Hotel’은 손상 없이 견딤‘Nakoma Country Club’ (계획안), Madison시 근교, Wisconsin 주. 라이트의 미국내 최초 바닥난방 채용 계획안

    1925 ‘Taliesin’ 저택 두 번째로 화재에 의하여 소실

    1932 자서전 ‘Frank Lloyd Wright-An Autobiography’ 초판 출간

    19361937

    ‘Jacobs House I’(Westmoreland, Madison, Wisconsin)설계. 바닥난방 적용. $5,500(설계비 포함한 총 건축비)‘Johnson Wax-Administration Building’(Racine, Wisconsin) 설계, 바닥난방 적용. ‘Herbert F. Johnson House’(“Wingspread”), 바닥난방적용, 69세

    1943‘Gravity Heat’이 포함된 자서전 증보판 ‘Frank Lloyd Wright-An Autobiography’ 출간(1943년 판)

    1944‘Jacobs House II’, 일명 “Solar Hemicycle”(Middleton, Wisconsin) 설계. 바닥난방 적용. 77세

    1954구들(온돌)체험기가 자세히 기록된 ‘The Natural House’ 출간. 87세

    1959 4월 9일 사망. 92세

    1969 라이트의 ‘New Imperial Hotel’ 헐림

    1977자서전 ‘Frank Lloyd Wright-An Autobiography’ 출간(1977년 판)

    표 1. 라이트의 온돌체험 및 적용과정 관련 주요연혁 지 않고 이후 온돌의 원리를 그의 여러 건축 작품에 적용하였다

    는 것이며, 적용하기 시작할 때의 미국사회의 관심과 반응도 언급

    하고 있어서 그의 온돌과 만남은 ‘만남’만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

    이다.

    본 고찰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라이트가 온돌을 알게 되는

    과정부터 다시 음미 하며, 이후 그의 작품에 온돌의 원리를 적용

    해 가는 과정과 시대적 상황을 함께 살펴서 라이트의 온돌과 만

    남의 의미를 좀 더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대표적

    인 문화요소인 온돌연구의 관점에서나 ‘거장 건축가’ 라이트 연구

    의 관점에서 모두 의미 있는 일일 것으로 사료된다.

    1.2. 연구방법과 범위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문헌을 바탕으로 한다. 원만한 이해를

    위하여 먼저 라이트의 인생여정을 축약적으로 소개하고, 라이트가

    온돌(구들)과 만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온돌을 만난 이후의 그의

    건축작품에서 바닥난방을 적용한 사례와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고

    라이트와 온돌과의 만남의 의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

    한 2권의 책에 실려 있는 ‘Gravity Heat’에 관한 내용은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본 고찰의 중요한 바탕이 되므로

    전문을 번역으로 인용하기로 한다.

    2. 라이트의 인생여정 개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1867년 미국

    Wisconsin주 Richland Center에서 태어났고 1959년 Arizona주

    Taliesin West에서 92세로 타계하였다. 아버지는 잉글랜드계였고

    어머니는 웨일즈계 미국인이었는데 라이트 자신은 미국인 중의

    미국인, 또는 그가 즐겨 사용하던 유소니언(Usonian) 중의 유소니

    언으로 느끼고 있었다.

    라이트는 위스콘신 대학 공학부(Engineering)에 입학하였으나

    당시 이 대학에는 건축(설계)학과가 없어서 원했던 건축공부를 할

    수 없었으므로 2년 후에 대학을 그만 두고 1887년 시카고로 갔다.

    그곳에서 Joseph Lyman Silsbee 설계사무소에 취직하였는데 처

    음에는 청사진을 만드는데 쓰는 디자인 패턴이나 문양을 베끼는

    일을 하였다. 이곳에서도 설계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라이트

    는 곧 Adler and Sullivan 사무실로 옮겨 Sullivan에게 일을 배우

    며 1892년까지 5년 정도 일을 하였다. 그리고 1893년 퇴사하여 처

    음으로 개인사무실을 개설하여 독립하였다. 그해 1893년에는 세계

    콜롬비아 박람회(World Colombian Exposition)가 시카고에서 개

    최되었는데 그곳에는 실물의 반 정도 되는 일본사찰의 모형이 전

    시되고 일본 건축들에 대한 책도 많이 출판되었다. 라이트는 이를

    흥미 있게 보았으며, 또 책이나 옛 고용주 Silsbee를 통해 극동의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그는 호쿠사이(Hokusai)나 히로시게

    (Hiroshige)의 목판화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어서 1905년 3

    월 고객인 Ward Willits 부부와 함께 생애 첫 일본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 때 일본에 약 2개월 체류하였는데 이때의 주목적

    은 일본 목판화 수집이었다. 라이트는 부업으로 수집한 목판화를

    미국에서 전시도 하고(1906), 판매도 하며 그에 대한 해설책을 내

    기도 하였다(1912). 그러면서 라이트는 일본을 아는 건축가가 되

    고 Imperial Hotel 건축계획을 알게 되었다.

    1913년 라이트는 미국의 수집가들을 위한 목판화도 구입할 겸

    새 Imperial Hotel 설계 수주를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 두 번째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이 방문에서 두 가지 목적은 성공적으로 달성

    되었다. 목판화도 다수 확보하고 호텔설계 건은 이야기가 잘 되어

    계약으로 이어졌다(공식계약은 1916년). 1915년 Aisaku Hayashi6)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의미에 대한 고찰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157

    를 포함한 일본인 사업가 일행이 새 Imperial Hotel 설계와 관련

    하여 라이트의 Taliesin 집으로 라이트를 방문하였다. 이때 라이

    트는 호텔 설계도(設計圖) 초안을 준비해 이들이 가지고 돌아가게

    했다.7) 그리고 이 해에 도쿄에 사무실을 개설하였고, 1916년부터

    거의 3년간을 일본에 머물고 마지막으로 1922년 일본을 떠났다.

    횟수로는 총 8차례 일본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8)

    3. 한국의 온돌(구들)과의 만남

    임페리얼 호텔 수주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던 1914년 겨울 어느

    날 라이트는 도쿄에서 오쿠라 남작(大倉 男爵)이라 불린 사람의

    만찬에 초대받는다. 그리고 오쿠라 남작의 저택에서 그는 처음으

    로 한국의 온돌(구들)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때의 상황을 라이트는

    자신의 1943년 판 ‘자서전’에서 ‘Gravity Heat(중력난방;重力煖房)’

    란 주제 하에 소개 하였다. 이 1943년 판 ‘자서전’의 많은 주제들

    은 1954년 출간된 ‘The Natural House’에 다시 전재(轉載)되었는

    데 ‘Gravity Heat’도 여기에 실림으로서 라이트의 온돌과의 만남

    에 대한 원전이 되고 있다. 그런데 두 곳의 내용은 거의 같으나,

    1977년 판 ‘자서전’의 내용은 또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작은 차

    이점이지만 유의할 점이 있다. 여기서는 1943년 판 ‘자서전’의 내

    용을 기준으로 하고 서로 다른 부분은 필요에 따라 언급하도록

    한다.9)

    중력난방(GRAVITY HEAT:重力煖房)

    바닥난방에 대하여: 데워진 공기는 자연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중력난방이라 부르는데, 이는 콘크리트 상판 아래의 자갈층에 놓인 파이프

    에 증기나 뜨거운 물이 흐르면서 공기를 데우고, 이 공기가 상승해 콘크리트 바

    닥에 열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자갈층과 콘크리트 상판을 합쳐서 바닥매트(floor

    mat)라 한다. 바닥이 지면에서 떠 있는 경우에는, 가로와 세로가 약 2인치

    (5cm)인 긴 나무 장선을 3.8피트(1.1m) 정도 간격으로 배치하고 장선 사이사이

    에 난방 파이프를 깐다.10)

    이 난방법이 내게 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It came to me in this way

    ).11) 1914년 겨울 일본 제국 호텔의 신축 건을 협의하면서 나의 후원자의 한사

    람인 오쿠라 남작(大倉 男爵)12)이 우리를 만찬에 초대하였다. 도쿄의 겨울은 지

    6) Aisaku Hayashi는 ‘Imperial Hotel’ 건축 매니저였으며, 한자로

    성이 ‘林’으로 표기됨: The Imperial Hotel, Global

    Architecture(GA) No.53, A.D.A. EDITA Tokyo, 1980, p. 3 7) Aylesa Forsee, 박철현 역,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태림문화사,

    1998, p. 69 8) Anthony Alfofsin, Frank Lloyd Wright - Europe and Beyo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and Los Angeles,

    California, 1999, pp. 24-449) ‘자서전(An Autobiography)’ 초판은 1932년에 있었고 1943, 1977년에 증보판이 발행되었으며 현재 2005년판까지 나와 있다

    ‘Gravity Heat’은 1943년 판 부터 실렸으며, 거의 같은 상태로

    ‘The Natural House’(1954)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1977년 판 ‘자서전’의 내용은 1943년 판과 전반적으로는 같지만 좀 더 차이를

    보인다. 오장환의 ‘근대지향의 서양예술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의미

    에 관한 연구’(대한건축학회 논문집(계획계, 2004.12)에 주12로 부분 번역인용 되어있다. ‘The Natural House’는 ‘라이트의 주택’(윤

    장섭 역, 건우사, 1986)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10) 뒤에 소개되는 ‘Nakoma Country Club’ 단면도 좌측날개 참조11) 이 부분은 ‘The Natural House’에서도 동일하나 ‘자서전’ 1977

    년판에서는 “The Gravity heat came to America in this way.”로

    바뀌어 있다.

    독하게 춥다. 음습한 추위여서 결코 얼거나 서리가 내리는 일은 거의 없지만,

    도쿄는 그 때까지 내가 가본 곳 중에서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추운 곳

    같았다.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난방 도구는 방바닥에 놓여있는 히바치

    (hibachi)라는 원형의 용기인데, 그 속에 흰 재가 채워져 있고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숯 몇 토막을 박아 놓은 것이다. 이 삐져나온 숯덩이는 빛을 내면

    서 이글거린다. 사람들은 모두 히바치 주위에 둘러앉아 그 위로 손을 뻗어 불을

    쬐기도 하는데, 손을 맞잡은 모습이 마치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는 그러한 추위를 견뎌내는 일본인들의 참을

    성이 –그들이 자신의 몸을 첩첩이 감싼 기모노 속에 두꺼운 모직으로 된 일본

    고유의 내의(內衣)를 입고 있는 것을 엿보기 전까지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

    다. 그러나 그들은 자국의 그러한 기후 조건에 적응이 되고 단련이 되어 있어서

    우리보다 추위에 훨씬 고통을 덜 받았다.

    어쨌든, 우리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게 될 것을 알았지만 오쿠라 남작의 도쿄

    저택(그는 일본 제국 전역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에서의 만찬초대

    를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은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나는

    19코스 족히 되는 음식이 제공되는 동안 내내 먹는 척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

    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 남작은 아래층의 “한국방”13)이라 불리는 방으로 우리

    를 안내했다. 방은 크기가 가로 11피트(3.35m), 세로 15피트(4.57m)에 천장까

    지 높이가 7피트(2.13m)14) 정도 되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으며,

    연한 노란색의 벽은 밋밋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는 터키식 커피를 마시면서 이

    야기를 나누기위해 그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데, 기온이 갑자기 바뀐

    것 같았다. 결코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봄이 온 듯 했다. 우리는 곧 몸이

    따뜻해지고 다시 즐거워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훈훈함이 감돌았다. 눈에 보이는 난방시설도 없었고, 이것으로 난

    방이 되는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난방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기후적 사건이었다.15)

    하버드대학 출신의 남작 통역관이 한국방이란 방바닥 아래에서 난방을 하는

    방을 의미한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방 밖의 한 쪽 구석에서 불을 지펴 그 열이

    방바닥 밑에 있는 관을 통해 들어오도록 한다는 것이다. 방바닥은 구획된 연도

    (煙道)(또는 덕트)의 상층부를 형성하는데, 연기와 열기는 아궁이의 반대편 코너

    에 있는 높은 굴뚝으로 올라가 집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통역관이 설명해 주었다.

    아래로부터 따뜻해지는 이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은 정말 대단한 발견이

    었다.16)

    나는 그 즉시 제국호텔의 욕실들의 바닥 밑에 전기난방장치를 넣도록 조치하

    였는데, 욕실들의 천장을 낮추는 방법으로 욕실들 밑에 열을 생산할 수 있는 공

    간을 확보하였다. 이렇게 해서 타일바닥과 붙박이 타일욕조가 항상 따뜻해서 맨

    발로 욕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보기 흉하고

    목욕탕에서는 위험하기도 한 모든 난방 장치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여러

    장치들, 특히 라디에이터들이 널려있는 것을 늘 싫어했는데 건물에서 이들 잡동

    12) 오쿠라 남작(大倉 男爵)은 오쿠라 가하치로(大倉喜八郞)를 말하

    며, 당시 80세가 넘었었고 제국호텔건축에서 황실의 관심을 대표하였다. 현재 세계 여러 곳에 ‘오쿠라 호텔’이 있는데 이때의 오쿠

    라가 창업한 호텔체인이다. 오쿠라(大倉)는 ‘조선물산공진회(박람

    회)’ 개최를 빙자하여 경복궁해체를 주도했던 인물이며, 송병준과도 밀착관계에 있었던 자로 파악된다.13) ‘Korean room’이란 아마도 일본말로는 ‘조선방’이라 불렸을 것

    인데 어쨌든 ‘고래’가 있었던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14) 1977년 판 ‘자서전’에서는 방의 크기를 12"x24"(3.66x7.32m)로

    1943년 판에서 보다 좀 더 크게 수정하고 있다.15) 1977년 판 ‘자선전’에서는 이 다음에 “Organic Heat!”라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16) 1977년 판 ‘자서전’에서는 이 다음에 “-sitting warm, feet

    warm”이 추가되어 있다.

  • 김남응․장재원․임진택

    158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사니들을 줄이고 없앨 수 있는 완벽한 기회가 바로 이 난방법에 있었다. 또 그

    것은 그냥 방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지도 날리지 않고 조용하며 건강

    에도 이로운 하나의 기후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러한 방 아래에서

    올라와 전체에까지 열기가 퍼지는 경우에는 온도가 높지 않아도 된다. 화씨 65

    도(섭씨 18.3도) 정도면 보통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적당할 것이다. 물론 이웃에

    서 늘 과도하게 난방을 하고 사는 사람이 놀러오면 처음에는 춥게 느낄 수도 있

    다. 그러나 이는 인공적으로 강제로 만드는 조건 대신에 자연적인 기후가 생성

    되는 것이며, 자연적인 기후환경이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미국에서도 기회가 되는 대로 즉시 이 난방법을 시도해보려고 마음먹

    었다. Nakoma Country Club이 그 첫 기회가 되는 듯 했으나, 인디언 풍의 이

    일거리는 그저 아름다운 계획안 형태에 머물고 말았다.

    그 다음 맞은 기회가 Johnson Administration Building이었다. 바닥난방이

    거기에 딱 맞는다고 생각하고 설비문제를 추진해갔으나, 단 한 곳(Westerlin &

    Campbell)만 제외하고 모든 난방설비업체들이 우리의 아이디어를 비웃으면서

    어떤 시도도 해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던 참에 마침 자그마한 Jacobs

    House 설계를 맡게 되었고, 그 더 거대한 모험이 가동에 들어가기 전에 완공되

    었다.

    이리하여 Jacobs House는 새로운 난방 시스템을 갖춘 첫 번째 건물이 되었

    다. 이는 “관련업계” 전체에 커다란 반향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Crane

    Company의 관계자들이 왔는데17) 바로 융단 밑으로 엎어졌고(dove beneath

    the rugs) 보일러에서 먼 곳에 손을 콘크리트 바닥에 대어보기도 하고는 마치

    유령을 보기라고 한 것처럼 서로를 쳐다보며 탄성을 질렸다. “세상에, 작동하네.

    라디에이터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혁신적인 사항은 늘 그렇듯이 “복사 난방(radiant heat)”에 대한 글들이 여

    러 저널에 실리기 시작했다.18) 그러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난방 방식은

    “복사 난방(radiant heat)”도 “패널난방(panel heating)”도 아니었으며, 그들이

    부르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중력난방(gravity heat)으로, 열기

    는 저절로 위로 상승하듯이 아래에서 위로 열기가 올라오는 난방방식이었다.

    많은 유소니언(Usonian) 건물들이 오늘날 바닥난방(floor heating)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기후와 조건에 맞게 열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연구

    해야 했었고 유익한 정보를 축적하였다.19)

    세상에 이것보다 “이상적인” 난방법은 없다. 태양열조차도 이상적인 것은 아

    니다.

    라이트는 이와 같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바닥난방이라 하는 것

    을 먼저 ‘중력난방(Gravity Heat)’으로 설명한 후에 그 난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온돌

    (구들)을 경험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털어놓고 있다. 모두 본문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 글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한 번 새기는 의미에서 일단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오늘날 바닥난방으로 통칭되는 것을 라이트는 ‘Gravity

    Heat’, 즉 ‘중력난방’이라 칭하고 있다는 것.

    2) 라이트는 일본 도쿄의 오쿠라(大倉) 남작이라 불린 사람의

    저택에서 온돌을 만난다는 것.

    17) 1977년 판 ‘자서전’에서는 이 바로 다음에 “문을 열어주는 Catherine을 그냥 지나쳐”란 의미의 말이 추가되어 있다.18) 1977년 판 ‘자서전’에서는 이 문장 다음에 “몇 몇 잡지는 ‘내가 그

    것을 처음으로 고안했다’고 썼다.”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19) 1977년 판 ‘자서전’에서는 “대략 30채 또는 그 이상(Some

    thirty or more......)”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문단 끝에 “그리고 온

    도조절장치를 외부에 부착하였다.”고 추가하였다.

    3) 라이트가 그곳에서 체험한 온돌은 고래가 있는 정통방식에

    가까운 구들방을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4) 온돌을 만난데 그치지 않고 이에 매료되어 곧바로 진행중이

    던 ‘Imperial Hotel’설계에부터 적용하였고, 이후 미국에 돌아와서

    도 그의 건축에 적용하였다는 것.

    5) ‘Imperial Hotel’에는 객실이 아니라 욕실(화장실)에 처음으

    로 바닥난방을 적용해 보았다는 것20). 그리고 그것은 전기에 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

    6) 하지만 미국 내에의 적용에서는 오늘날의 온수 바닥난방과

    같이 바닥에 증기 또는 뜨거운 물이 채워진 파이프에 의한 바닥

    난방으로 발전시켜 쓰고 있다는 점.

    7) 미국에 돌아가서는 ‘Nakoma Country Club’에 바닥난방을

    처음으로 시도해 보려 하였다가 실현하지 못하고, ‘Johnson Wax’

    회사에 적용하려 하였으나 이 역시 지연되는 바람에 결국 ‘Jacobs

    house I’에 먼저 실현하게 되었다는 점.

    8) 미국 내에서는 바닥난방법이 생소하여 설비 전문가들도 라

    이트의 아이디어에 냉소적이었고, 한곳을 제외하고 아무도 라이트

    의 바닥난방을 시공해 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

    9) ‘Jacobs House I’ 완공 후 바닥난방을 견학한 사람들은 모두

    라이트 자신이 온돌(구들)을 만날 때 그랬던 것과 같이 신비롭게

    받아들였다는 점.

    10) 바닥난방법을 태양열보다 나은 최상의 난방방법으로 극찬

    하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기후가 변한 듯 했다”라든

    가 “indescribable comfort”, 즉 ‘형용할 수 없는 안락감’이라든가

    또는 한국의 온돌(구들)을 경험한 것을 “a discovery”, 즉 하나의

    대단한 발견이라고 하는 라이트의 표현 형태이다. 라이트는 서양

    인으로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추위 속에 식사를 하며 곤혹을 치

    르다가 따뜻한 한국식 방으로 자리를 옮겨 매우 만족해하며 온돌

    (구들)난방법에 대해 경외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

    다. 이것은 곧 바닥난방인 온돌(구들)의 성능을 평가하고 있는 것

    이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라이트는 온돌(구들)에 반해버렸던 모습

    을 고백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라이트는 ‘The Natural House’ 뒷부분에서 “Insulation and

    Heating”이란 주제 하에 다시 한 번 바닥난방, 즉 그가 말하는

    “Gravity Heat”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바닥난방관련 주요 부분

    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단열과 난방(Insulation and Heating)

    매우 춥거나 더운 기후에서 건물의 천장은 단열이 되어야 하는 곳이

    다.(중략) 그러나 위스콘신 남부와 같이 추운 지역에서는 바닥난방법이 단

    열에 아주 좋은 바탕이 된다. 중력에 의한 열로 바닥을 따뜻하게 하면 벽

    을 단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 추운 날에도 창문을 열수

    있고, 창을 열어도 여전히 편안하다. 발이 따뜻하고 따뜻하게 앉아 있으

    면 따뜻한 것이기 때문이다.(후략)21)

    20) “라이트가 동경의 제국호텔(‘New Imperial Hotel’)에 온돌방을

    하나 두었다”는 설(說)이 일부에 유포되어 있다.21) 원전: Frank Lloyd Wright, The Natural House, pp. 155-156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의미에 대한 고찰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159

    그림 2. Imperial Hotel 전경과 평면도, Tokyo, Japan, 1914-1922.

    이 호텔은 비싼 대지의 재활용을 위해 1969 헐림.

    그림 3. Nakoma Country Club-Club House, Wisconsin주

    Madison시 근교, 1923-1924(계획안). 평면, 단면, 모델사진. 라이트의 미국최초의 바닥난방 계획사례

    4. 라이트의 바닥난방(온돌원리) 적용사례

    라이트가 온돌을 만났다는 것 자체만은 그냥 하나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온돌을 알고 난 후

    부터 그 원리를 여러 작품에 적용하기 시작하였고 몇 개의 설계

    는 라이트 스스로 앞에 언급한 문헌에서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 그 사례들을 좀 더 가까이 살펴보기로 한다.

    4.1 라이트 최초의 바닥난방, Imperial Hotel, Tokyo(1914)

    Imperial Hotel은 라이트가 온돌을 만나게 되는 계기를 제공

    하여 주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라이트가 온돌의 원리를 적용해보

    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Imperial Hotel’에서 라이트는 객실에 달

    린 욕실의 바닥을 바닥난방으로 하였다. 라이트에게는 하나의 실

    험의 장(場)이기도 하였다.22) 그런데 앞에서 인용한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욕실의 바닥을 아래층으로 튀어나가게 낮추어 마련한 공

    간에 ‘전기히터’를 넣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설명은 자세하지 않아

    여기서 말하는 ‘전기히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 즉 바닥

    을 낮추어 만든 공간의 공기를 데웠는지 아니면 발열 케이블형태

    였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의 그의 바닥난방에서는 증기파이프나

    온수파이프를 사용하는데 비하여 그의 첫 바닥난방 ‘실험’은 어쨌

    든 ‘전기히터’에 의한 것이었음은 알 수 있다.

    라이트의 ‘Imperial Hotel’은 객실 수가 285개였다. 이는 건물이

    1969년 헐려서 존재하지 않고 추가적인 자료를 구할 수 없어서

    도면에 표기된 객실의 호수로 계산해본 결과이다. 만약 라이트가

    이 285개의 객실에 딸린 욕실을 모두 바닥난방으로 한 것으로 본

    다면 실험적 적용이긴 하였지만 대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라이트는 인용한 글에서 라디에이터(방열기)나 난방과 관련 잡

    동사니들이 사라질 수 있어서 좋고, 다른 난방법들의 경우에서처

    럼 국부적으로 따뜻함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후’를 창

    조하여서 좋다고 하고 있다. 사실 하나 하나 되짚으며 부언할 것

    도 없지만 라이트는 전체적으로 온돌과 바닥난방법이 지닌 여러

    장점을 이 시점에서 벌써 잘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Imperial Hotel’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주목할 대상

    이 되지만. 우리는 ‘라이트와 온돌의 만남’ 그리고 ‘온돌원리의

    22) ‘Gravity Heat’ 원문표현: “This experiment was a success.”

    최초의 적용’관점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맥락을 살펴보았다.

    4.2 미국내 최초의 적용사례 Nakoma Country Club, Club

    House, Madison 근교, Wisconsin (1923/1924: 계획안)

    라이트의 족적을 살펴보면 그는 제국호텔 건축을 끝내고 1922

    년 마지막으로 일본을 떠난다. 미국에 돌아간 이 후에도 라이트는

    글에서도 드러나듯이 극동에서 발견한 바닥난방방식을 적용해 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바로 다음해인 1923

    년 ‘Nakoma Country Club’의 Club House 설계를 의뢰받게 되었

    는데 여기에 바닥난방 도입을 계획하였다.

    ‘Nakoma Country Club’의 클럽하우스는 1923년에 개념설계가

    제시되고 1924년에 실시설계도(working drawings)가 만들어졌다.

    중앙에 거대한 팔각형 평면의 홀이 있고, 그 가운데에 사방에서

    불을 땔 수 있는 “Campfire”가 위치하며, 그것의 굴뚝이 지붕 밖

    으로 돌출하고 있다. 지붕은 팔각형 평면으로 폭이 50피트

    (15.24m)이고, 높이도 50피트로 피라미드처럼 위로 올라가며 줄어

    든다. 밖에서 보면 거대한 인디언 텐트인 ‘teepee(tepi; tipi)’를 연

    상하게 한다. 라이트는 도면에 이것을 “wigwam”이라 표시하였는

    데 그것은 북 아메리카 원주민의 오두막을 뜻한다. 그 외에도 라

  • 김남응․장재원․임진택

    160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그림 4. Jacobs House I, Westmore Land,

    Madison, Wisconsin(1936). 라이트의

    미국최초의 바닥난방 실현사례

    이트는 이 건물에 다수의 인디언 심벌과 문양을 사용했는데, 이

    지역이 전에 Winnebago 인디언들이 살던 곳이었으므로 라이트

    는 그들의 요소를 활용한 것이었다.

    바닥평면은 부정형으로 되어있고, 여성시설과 ‘Tea pavilion’이

    되는 날개를 제외하고는 바닥은 충진재 위에 납작한 돌을 까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여성시설과 ‘tea pavilon’으로 되어 있는 날개

    (wing)부분(그림 3의 평면도와 단면도에서의 왼쪽 날개 참조)은

    땅이 경사져서 밑이 빈, 즉 떠 있는 공간이므로 라이트는 이 날개

    의 바닥을 목구조(木構造)로 하였다. 라이트는 이 건물을 각 실들

    을 통과하는 바닥의 자갈충진재 속에 스팀파이프를 묻는 방법으

    로 바닥난방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라이트는 지면 위에 떠 있는,

    목구조로 된 여성공간에서도 파이프를 바닥의 장선들(joist) 사이

    에 매다는 방법으로 바닥난방을 실현하고자 했다.23) 바닥이 지면

    에서 떠 있고 목구조여서 시공이나 난방효율 면에서 바닥난방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 곳에 까지 바닥난방을 적용하려 하였다.

    이유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 라이트의 설계안은 실현

    되지 못하고 ‘Nakoma Country Club’은 1929년에 다른 건축가에

    의하여 건축되었다. 이 건물이 지어졌더라면 이 건물은 라이트가

    미국 내에서 실현한 최초의 중력난방(gravity heating system),

    즉 바닥난방의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라이트가

    ‘Imperial Hotel’ 이후 ‘미국’에서 처음으로 바닥난방을 구체적으로

    계획에 반영한 사례로서 의미를 갖는다. 또 땅에서 띄워 목구조로

    계획된 여성공간에 해당하는 날개(wing)도 바닥난방으로 계획했

    었다는 점에서 라이트가 얼마나 바닥난방을 실현해보고 싶어 했

    는지를 간접적으로 엿보게 한다.

    4.3 Jacobs House I, 최초의 ‘Usonian House’(1936, 1937)

    ‘Nakoma Country Club’계획이 실제로 지어지지 못함에 따라

    라이트의 미국 내에서의 최초의 바닥난방 실현도 수포로 돌아갔

    다. 이로부터 13년 후인 1936년에 라이트는 ‘Johnson Wax’ 빌딩

    설계를 의뢰받으며 여기에 다시 바닥난방 적용을 시도하였다. 하

    지만 ‘Johnson Wax’회사 프로젝트는 곧 지체되게 되고, 그 대신

    조그마한 ‘Jacobs House I’을 먼저 설계하게 되며 그것이 Johnson

    Wax회사보다 먼저 완공되게 되어 ‘Jacobs House I’이 미국 내

    에서는 제일 먼저 바닥난방을 갖추게 되었다.

    ‘Jacobs House I’은 Wisconsin 주 Madison시 서편에 1936년

    당시 Westmoreland란 이름으로 새로이 분양택지로 개발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편 Jacobs는 당시 33세로 ‘Milwaukee Journal’

    의 기자로 일하고 있었고, 부인 Katherine은 22세였는데, 남편

    Jacobs가 Madison시의 ‘Capital Times’의 기자로 직장을 옮기면

    서 살 집을 찾게 되었다. 이때 부인 Katherine의 조카가 되는

    Harold Wescott가 이를 알고, 그러지 말고 Madison에 차라리 너

    희들 자신의 집을 지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고, 게다가 이왕이면

    자신이 알고 있는 라이트에게 한번 부탁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충

    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즈음 Jacobs 부부는 집을 지을 만 한 돈이

    23) Paul. E. Spraque, Frank Lloyd Wright and Madison-Eight

    Decade of Artistic and Social Interaction, Elvehjem Museum of

    Art,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1990, p. 80-81

    없었고, 대출 등을

    통해 동원할 수 있

    는 것은 $5,000정도

    였다.24) 하지만

    Jacobs 부부는 자신

    의 집을 가질 꿈에

    부풀기 시작했고,

    1936년의 무더운 8

    월 어느 날 드디어

    한 친구의 주선으로

    라이트의 Taliesin

    집으로 만찬에 초대

    되었다. 그 자리에서

    Jacobs 부부는 라이

    트에게 조심스럽게

    $5,000짜리 집을 디

    자인해 줄 수 있겠느

    냐고 물었다. Jacobs

    부부는 라이트가 백

    만장자들의 집이나

    설계하는 건축가로

    생각했었고, 당시 이

    금액으로는 감히 라

    이트와 같은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 그런데 이 만남에서 라이트는 많은 사람들이 $10,000은 들여야

    하는 집을 $5,000에 갖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욕실의 타일 등 집을

    비싸지게 하는 시설을 포기할 용의가 있겠느냐고 되묻고 이들의

    부탁에 선뜻 응했다. 그리고 라이트 자신은 지난 20년 동안 비용이

    적게 드는 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집을 부탁하는 사람

    은 당신들(Jacobs 부부)이 처음이라고 했다.25)

    라이트는 또 이어지는 대화에서 Jacobs 부부에게 “한국인들의

    주거난방법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느냐?(Have you ever heard of

    Korean way of heating houses?)”고 물었고, “경제적인 한국인들

    은 방바닥을 굴뚝의 일부로 이용하며, 그렇게 하여 그냥 밖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는 연기에서 열기를 뽑아낸다”고 설명하였다. 그

    리고 “한국인들은 연도(煙道: 고래를 말함)를 바깥벽으로 유도하

    기 전에 바로 방바닥 면(面) 밑에서 관(channel)을 뱀과 같이 꼬

    불꼬불 구부러지게 한다”고 설명하였다. 또 라이트는 계속하여

    “무엇보다도 인체에서 추위를 먼저 느끼는 곳은 발이며, 대부분의

    집은 방바닥 높이에서 춥고 한기(寒氣)가 감도는데 따뜻하게 데워

    진 한국인들의 방바닥은 ‘거대한 보온병’과 같다. 이 난방법은 발

    24) Harold Wescott는 한 여름 동안 라이트의 학생이었고, 이때는

    미국이 불황 한가운데 있었으며 라이트는 오랫동안 일거리가 없었

    으므로 5천 달러짜리 집이라도 맡을 것으로 생각했다. Donald G. Kalec, The Jacobs House I, in Frank Lloyd Wright and

    Madison: Eight Dacades of Artistic and Social Interaction,

    Elvehjem Museum of Art, 1990, p. 91. 25) Herbert Jacobs, Frank Lloyd Wright, America's Greatest

    Architect, Harcourt, Brace & World Inc., New York, 1965, pp.

    227-228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의미에 대한 고찰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161

    그림 5. ‘Jacobs House I’ 건축 당시 집주인이 촬영해둔 콘크리트 바닥판 모습

    은 따뜻하게 유지해주면서도 머리주변과 몸의 상체부분의 공기는

    시원하게 유지해주며, 또 외풍을 없애주고 벽면공간에 라디에이터

    나 통기구들을 설치할 장소를 남겨 둘 필요도 없다”고 설명하고

    그러니 “당신들이 미국에서 이런 난방을 집에 시도해보는 최초의

    사람들이 되고 싶은가(Would you like to be the first people in

    America to try this kind of heating in a home?)”라고 물었다.26)

    ‘Jacobs House I’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 집은 결국엔 $500이

    더 들어가 $5,500에 지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건축비였다. 라이트는 이 집을 저렴한 비

    용으로 짓기 위하여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새로이 적용하였는데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평가되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가

    능한 평면을 단순화 하고 몇 가지 재료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도

    록 설계했다. 바닥은 모두 콘크리트 바닥으로 하고, 벽체는 벽돌

    또는 목재로 형성하되, 회(灰) 바르기, 타일붙이기, 페인트 칠, 도

    배 등을 하지 않고 벽체를 이루는 재료 자체가 내외에서 노출된

    상태로 최종벽면이 되게 하여 작업과 공사비를 줄였으며, 설계를

    시스템화하고 건축을 단순화하기 위해 라이트는 이 집의 설계에

    서 평면과 벽면구성 모두에 스스로 ‘unit system’이라 부른 그리

    드(2x4ft: 0.6x1.2m)를 적용하였고, 심지어 이 그리드를 흙손으로

    바닥슬래브 표면에 지워지지 않게 새겨 넣게 해서 공사를 쉽게

    하였다.27)

    그러나 이들 아이디어 가운데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요소는 콘

    크리트 바닥슬래브였다. 라이트는 스팀보일러를 바닥보다 낮은 높

    이에 두기 위해 부엌과 욕실 밑에 아주 조그만 공간을 둔 것을

    제외하고는 집 전체를 하나의 동일한 콘크리트 바닥판 위에 얹히

    게 하였는데(그림 5 참고) 이 콘크리트 바닥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많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주는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넓

    은 지하실들을

    두는 것은 터

    파기 등 돈이

    많이 들므로

    없애도 좋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지하실에는

    잡동사니들이

    나 쌓이기 십상인데다가 필요한 물품들 저장장소는 주층(main

    floor)에 같이 있는 것이 접근하기에 한결 용이하다는 생각이었다.

    또 라이트는 비용이 많이 드는 기초공사를 없앨 수 있다고 생

    각했다. 이즈음 Upper Midwest지방에서는 흔히 집 둘레 밑으로

    3.5피트(약 1m) 깊이의 도랑(줄기초)을 파고 콘크리트로 채워 집

    외벽을 지탱하게 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그것은 동결선 이하에

    기초의 바닥을 두는데 필요한 깊이였고, Wisconsin 남쪽에서는

    기초두께가 3.5피트 보다 얇으면 겨울에 지하수가 기초 밑에서 얼

    26) Herbert Jacobs 앞 책, p. 12927) Donald G. Kalec, The Jacobs House I, in Frank Lloyd

    Wright and Madison: Eight Dacades of Artistic and Social

    Interaction, Elvehjem Museum of Art, 1990, p. 96

    어 늘어나 기초벽을 들어 올려서 그 위의 건물이 일그러질 염려

    가 있었다.28)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트가 이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이미 도쿄에서 몸소 체험하고 시험적용을 해본 ‘바닥

    난방’이란 열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팀 난방파이프를

    콘크리트 바닥슬라브 밑에 두면, 그것이 바닥 밑의 충진재를 가열

    할 것이고 그러면 충진재는 얼지도, 건물을 들어 올리지도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비용을 증가시키는 터파기와 기초공사도 없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29)

    이 ‘Jacobs House I’에서 라이트는 1.5인치(약3.8cm)짜리 쇠파

    이프 4열을 거실주위의 모래 충진재 속에 깔았고, 침실 측 날개

    둘레를 따라 3열을 모래 충진재 속에 깔았다. 콘크리트 매트는 직

    접 파이프와 모래 위에 부어서 만들었다. 스팀이 압력에 의해 파

    이프 속으로 흐르면 바닥 전체가 난방요소가 되었다.30)

    1937년 7월 22일 보일러가 설치되었고, 23일부터 29일까지 충

    진모래 위에 파이프를 깔고 용접으로 서로 연결하였다. 콘크리트

    슬래브 밑에서 파이프들이 신축할 수 있도록 그 위를 또 모래로

    덮은 다음 콘크리트를 쳤다. 그리고 8월 3일 난방테스트를 성공적

    으로 마쳤다.31)

    여기에서 보는 라이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평범한 재료들

    을 평범하지 않게 사용하거나 그리드를 적용하여 작업을 단순화

    하고 시스템화 하여 궁극적으로 건축비를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것은 바닥난방을 겸하고 있는 콘크리트

    바닥슬래브의 역할이다. 그것은 기초임과 동시에 난방장치로서 종

    래의 터파기와 지표아래로의 기초공사를 불필요하게 하여 공사비

    를 대폭 낮출 수 있게 하고, 라디에이터 등이 차지할 공간으로부

    터 실내공간을 자유롭고 유용하게 하여 말 그대로 이 집의 바탕

    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이러한 바닥슬래브도 그 생명은 난방기능

    에 있다는 점이다. 난방기능을 빼면 그 의미가 반감되고 특별히

    아이디어라고 주목할 가치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이트가

    적용한 바닥난방에 대한 아이디어는 앞의 기술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의 전통난방방법인 온돌과의 만남에서 비롯되고 있다.

    라이트는 이미 1920년대 ‘Praire House(초원주택)’ 불리는 주택들

    을 설계할 때부터 미국 보통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한 비용의

    집 설계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는 30년대에 들

    어와 ‘유소니언 하우스(Usonian House)’라 불리는 주택개념32)으로

    비로소 구체화되는데 ‘Jacobs House I’은 바닥난방 전용과 함께 그러

    한 개념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Usonian House’였고,33) 이 후

    이어지는 수많은 ‘Usonian House’의 원형(prototype)이 되었다.

    28) 앞 책, p. 9629) 앞 책, p. 9630) 앞 책, p. 9631) 앞 책 p. 97. 여기에 공사 진행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됨.32) 캐나다 사람이나 브라질 사람도 ‘american’이라는 점에서 라이트

    는 미합중국 시민을 따로 지칭하고자 할 때 ‘US-American’의 축소형으로 ‘usonian’이란 용어를 사용했다(앞 책 P. 99, 주 3참조). ‘유

    소니언 하우스(Usonian House)’는 새로운 개념의 난방, 조명, 환기

    시스템 등을 통하여 건축비를 낮추는 것으로 일종의 ‘국민주택’이라 할 수 있다. 33) 라이트 스스로 ‘Jacobs House I’을 “Usonia No. 1”이라고 즐겨

    불렀다(Herbert Jacobs 앞 책, p. 134 참조).

  • 김남응․장재원․임진택

    162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그림 6. Johnson Wax Co. 전경과 ‘Great

    Workroom’, Racine, Wisconsin(1936-39)

    그림 8. Johnson Wax Co. 평면도, 단면도, 단면 상세도. “Steam

    pipe for slab, floor heating system”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림 7. ‘수련잎’ 기둥.

    바닥에 파이프를 그려 넣고,

    “Heating Pipes”라 표기함

    4.4 Johnson Wax 회사, Racine, Wisconsin (1936-1939)

    이 회사는 1886년 미국 Wisconsin주 Madison시의 부도시인

    Racine에 설립된 회사로 공식명칭은 ‘S.C. Johnson and Son

    Company’이지만 흔히 ‘Johnson Wax’ 또는 ‘Johnwax’로 불린다.

    앞의 ‘Jacobs House I’에서 간단히 언급되었듯이 이 건물은 라

    이트에 의해 1936년

    에 설계가 시작되어

    바닥난방을 적용하

    는 것으로 계획되었

    었는데 지연에 의해

    ‘Jacobs House I’보

    다 늦게 1939년에

    완 공 되 었 다 .

    1944-1950년에 역시

    라이트에 의해 실험

    동 타워가 추가 되

    었으며, 아직도 이

    회사의 본사사옥으

    로 사용되고 있다.

    외부로 폐쇄적이

    고 내향적인 이 건

    물은 그럼에도 불구

    하고 전체적으로는

    변화 있는 조형미를

    보여준다. 외벽 위아

    래에 유리 튜브로 건물을 둘러 빛

    을 끌어들이고, 밤에는 밖으로 멋

    있는 빛의 효과를 연출한다. 이 회

    사의 건물은 그 외에도 주목할 만

    한 사항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버섯

    기둥, 또는 물 표면에 떠 있는 ‘수

    련잎(lily pads)’34)이라는 애칭을 얻

    고 있는, 라이트의 독특한 기둥이

    있는 “Great Workroom”이 인상적

    이다. 그런데 바로 이 버섯기둥으

    로 지지되고 있는 거대한 사무실이

    이 고찰에서는 특히 주목되는 공간

    이다. 이 사무실은 단일공간으로

    약 2,534㎡(약768평)35)이나 되는데

    34) 라이트 자신은 이 기둥을 식물학 용어인 ‘dendriform’ (tree

    shaped:나무 꼴)으로 불렀다. Jonathan Lipman, Frank Lloyd

    Wright and the Johnson Wax Buildings, Architectural Press, London, 1986, p. 51, 130 35) 이는 전체크기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하여 기둥그리드 간격이

    20ft란 설명과 그리드가 표시된 평면도를 토대로 산정한 것이다. 이에 다르면 이 공간의 크기는 130×210ft이며 약 2,534㎡(약 768

    평)이 된다(Jonathan Lipman, 앞 책 p.43과 첨부도면 참조). 이도

    작지 않은 공간이지만 한 문헌(Johnson & Son Building and Research Tower, Global Architecture-GA No.1, A.D.A. EDITA,

    Tokyo 1980. p. 6)에서는 이 공간의 크기를 “228×228ft”로 소개하

    고 있다. 이는 환산하면 4,828㎡(1460평)이나 되는데 이 공간은 실

    이 거대한 사무실에 라이트는 바닥난방을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무실은 스팀파이프에 의한 바닥난방으로 되어 있다. 라이

    트는 처음에 속이 빈 타일블록 속으로 스팀을 넣으려 하였다가

    나중에 동(銅)파이프로 계획을 바꾸었고, 또 동파이프를 충분히

    동원하기 어려워 다시 쇠파이프를 쓰게 되었다.36)

    Wisconsin 주는 추운지방이다. 수백 명이 일하는 거대한 공간

    인데다가 사무실 홀 가장자리로 둘러진 중이층(mezzanine)은 홀

    쪽으로 열린 공간임을 감안하면 바닥난방이 아니면 만족스런 난

    방효과를 얻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라이트가

    바닥난방이란 대책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거대한 사무실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지연으로 ‘Johnson Wax’ 건물은 라이트의 미국 내 최초의 바

    닥난방 실현사례가 되지 못했지만 라이트가 바닥난방을 실현한

    사무실건축물로서 ‘최초’의 의미가 있다.

    4.5 Johnson House, 일명 “Wingspread”(Wind Point by

    Racine, Wisconsin, 1937)

    이 집은 라이트가 ‘Johnson Wax’를 설계할 당시에 회사의 소

    유주였던 Herbert F. Johnson의 집으로 설계하고 지은 것이다. 바

    람개비 모양으로 사방으로 ‘날개’를 펼친 형태라 하여

    제로 직사각형 평면이란 점 등으로 보아 착오로 보인다.36) Jonathan Lipman, 앞 책, p. 77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의미에 대한 고찰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163

    그림 9. Johnson House, 일명 “Wingspread" (1937, Wind Point by

    Racine, Wisconsin)

    그림 10. Schwenn House(1954: 계획안)의 난방파이프 배관계획도

    그림 11. Jacobs House II, 일명 “Solar Hemicycle”(1942-49,

    Middleton, Wisconsin. 난방파이프 매설공사중의 모습(아래)

    “Wingspread House”로도 불리기도 하는 집이다.

    집 가운데에는 4방향에서 불을 지필 수 있는 거대한 벽난로가

    있다. 여기서도 라이트는 ‘Nakoma Country Club’ 계획에서와 같

    이 인디언 텐트모양의 벽난로가 있는 지붕부분을 “wigwam”이라

    불렀다. 이를 중심으로 건물은 사방으로 ‘날개(Wingspread)’를 펼

    친 평면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4×4ft(122×122cm) 그리드 시스템

    을 적용하였다. 라이트의 주택설계는 빈번히 벽난로를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전개하고 풀어가는 시발점이었다. 이 집의 벽난로는

    특히 거대하여 인상적인 형태요소가 되고 있지만, 이 집의 실질적

    인 난방기능은 콘크리트 바닥슬래브에 감추어져 있는 바닥난방이

    담당하고 있다.37) 이 집은 ‘Usonian House’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Usonian House’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고, 대 기업의 소유주의

    집이란 점에서 상류저택에 바닥난방이 채용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들 사례들은 라이트가 바닥난방을 사용한 초기의 작품들로

    온돌을 만난 이 후 바닥난방의 적용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

    례라 할 수 있으며 각기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들이 있는 것들이

    다(표2 참조).

    4.6 그 외의 라이트의 바닥난방 적용사례

    라이트는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닥난방을 사용하였

    다. 그리고 난방이 필수적인 추운 지방에 건립된 ‘Usonian House’

    유형의 집에서는 바닥난방이-벽난로를 두는 경우에도-기본이 되

    었다.

    37) Heidi Kief-Niederwöhrmeier, Frank Lloyd Wright und

    Europa, Karl Krämer Verlag, Stuttgart, Germany, 1983. p. 82;

    Jonathan Lipman, 앞책, p. 177

    라이트의 유명한 낙수장(Falling Water)과 비슷하되 고상함이

    그에 못 미친다 하여 “Poor man's Falling Water”라는 별명으

    로 불리기도 하는 ‘Pew House (1938-1940, Madison,

    Wisconsin)’,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벌집모양의 평면그리드를 사

    용하고 라이트 스스로 “Honeycomb House”이라 불렀던 ‘Sundt

    House(1941, Honeycomb House, Madison, Wisconsin, 계획안)’,

    ‘Schwenn House(1954, Madison, Wisconsin, 계획안)’, 라이트가

    바닥난방을 최초로 실현한 사례인 ‘Jacobs House I’의 집주인인

    Jacobs 부부가 그 집을 팔고 이사하여 두 번째로 역시 라이트에

    게 의뢰하여 지은 집으로 “Solar Hemicycle”이라 불리기도 하는

    반원형의 ‘Jacobs House II(1942-48, Middleton, Wisconsin)’, 교회

    에 적용한 사례로 “Unitrian Meeting House”로도 불리는

    ‘Unitarian Church(1947-1951, Shorewood Hills, Madison,

    Wisconsin)’, 그리고 ‘Brooks House’ (1956-57, Town of

    Middleton, by Madison, Wisconsin, 계획안)’가 있으며, 미국 동북

    부 Massachusetts의 Baird House(1940, Amherst,

    Massachusetts),38) 그리고 뉴욕시보다도 훨씬 남쪽지방인

    Virginia의 Cooke House(1954, Virginia Beach, Virginia)도 바닥

    난방을 갖춘 라이트의 작품으로 파악되고 있다.(표2)

    38) Bruce Brooks Pfeiffer, Frank Lloyd Wright, Benedikt

    Taschen Verlag, Köln, Germany 1994, p. 139 참조

  • 김남응․장재원․임진택

    164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계획연도

    건물명 의미 또는 참고사항

    1915Imperial Hotel Tokyo, Japan

    온돌(구들) 경험 후 라이트의 최초의 바닥난방

    1923Nakoma Country Club Madison, Wisconsin (계획안)

    라이트의 미국 최초의 바닥난방 적용

    1936Jacobs House I Madison-Westmoreland, Wisconsin

    라이트의 미국 최초의 바닥난방 실현 주택사례. 직경 3.8cm 쇠파이프를 난방파이프로 사용. 2×4ft 그리드 적용

    1936Johnson WaxRacine, Wisconsin

    라이트의 미국 최초의 바닥난방 실현 사무소건축사례

    1937Johnson House Racine-Wind Point, Wisconsin

    라이트의 미국 상류주택에서의 바닥난방 적용사례

    1938Pew HouseMadison, Wisconsin

    “Poor man's Falling Water”로 불리기도 함

    1940Baird HouseAmherst, Massachusetts

    숲속 언덕 위 별장형. 남쪽 전망 우수, 좌측 접근, 북쪽 현관

    1941Sundt House, Madison, Wisconsin, (계획안)

    “Honeycomb House”로도 불림

    1942Jacobs House IIMiddleton, Wisconsin

    ‘Jacobs House I’의 주인인 Jacobs 부부가 이사하여 두 번째로 지은 집. 반원형 평면. “Solar Hemicycle”이라고도 불림

    1947Unitarian Church Madison-Shorewood Hills, Wisconsin

    “Unitarian Meeting House”로 불림. 교회에 바닥난방을 적용한 사례

    1953Cooke HouseVirginia Beach, Virginia

    해변에 위치. 규모: 278.6㎡, 바닥난방 3개 영역으로 조닝.

    1954Schwenn House Madison, Wisconsin, (계획안)

    실현되지 못한 1947년의 ‘Muehlberger House’ 도면을 기본으로 사용. 4×4ft 그리드 시스템 적용. 규모: 174㎡. 가공한 쇠파이프를 난방파이프로 사용.

    1956

    Brooks House Town of Middleton, by Madison, Wisconsin (계획안)

    4×4ft 그리드시스템 적용. 쇠파이프를 바닥난방 파이프로 사용

    표 2. 라이트의 바닥난방 적용사례

    5. 라이트의 바닥난방 적용사례 수

    이번의 연구에서 파악된 라이트의 바닥난방 적용사례는 총13건

    이다. 도쿄의 ‘Imperial Hotel’을 제외하면 미국 내의 사례로서 총

    12건이며 이 중 계획안에 머문 것이 4건이다. 그러나 그의 바닥난

    방 적용사례가 모두 몇 건 인지는 알 수 없다. 이에 관심을 두고

    별도로 조사된 적이 없어 리스트 같은 것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파악된 13건 중 일부는 많은 작품집이나 관련문헌의 내용

    을 훑어서 어렵게 확인한 것이다. 대개 난방배관도(煖房配管圖)

    같은 것 까지는 소개하지 않고, 바닥난방을 적용한 작품이라 할지

    라도 이에 대한 언급이 따로 없으면 바닥난방이 쓰였는지 알 수

    없기도 하다.

    그런데 라이트는 1943년 판 ‘자서전’의 글 ‘Gravity Heat’ 말미

    에서 “Some thirty or more Usonian buildings ......”라고 하였는

    데 ‘The Natural House’에서는 “Many of the Usonian buildings

    now have floor heating.”이라 하고 있다. 이로 보면 ‘자서전’이

    출간된 1943년 무렵에 30여 건이 좀 넘는 ‘Usonian House’에 바

    닥난방이 적용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런데 ‘자서전’에서의 수치는

    라이트의 표현대로라면 ‘Usonian House’ 시리즈에 한한 경우이고,

    글을 쓸 시점의 정보가 된다. 이미 앞에서 본 사례에서도

    ‘Nakoma Country Club’, ‘Johnson Wax’, ‘Johnson House’,

    ‘Unitarian Church’ 등은 비(非) ‘Usonian House’들이므로 이런 점

    을 감안하면 라이트가 바닥난방, 즉 온돌의 원리를 적용한 사례는

    적어도 40건은 될 것으로 보이고, 이로부터 1959년 그가 타계할

    때까지는 16년 정도의 세월이 또 있음을 감안하면 그 수는 이보

    다 더 될 것으로 생각된다.39)

    6. 라이트 시대의 미국과 유럽에서의 바닥난방

    라이트의 글 ‘Gravity Heat’의 내용은 여러 곳에서 바닥난방이

    라이트에게는 물론 미국에 처음이었던 것으로 시사되고 있다. “It

    came to me in this way.”라고 글을 시작하는 점에서도 그렇고,

    느낌을 표현하는 글의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으며, “It was a

    discovery!”라고 하고 있는 점에서도 그렇다. 또 다양한 난방법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라이트가 ‘하나의 대단한 발견’

    으로 표현하는 점도 그렇지만 ‘Johnson Wax Building’을 위하여

    바닥난방을 시공할 업자를 물색할 때 한 회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설비업자들은 비웃기나 하다가 ‘Jacobs House I’ 완공 된 후에는

    모두 와서 만져보며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신기해했다는 기록에

    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1943년 판 ‘자서전’에서는 “It came to me in this way”

    라 한 것이 ‘The Natural House’에까지는 그대로 전재(轉載)되어

    있는데 1977년 판 ‘자서전’에서는 “Gravity heat come to America

    in this way.”로 바뀌었다. 바닥난방이 라이트에게 전해지게 된 것

    은 미국에도 처음 전해진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 한 것이 아닌

    가 생각된다.40) 또 앞의 ‘Jacobs House I’ 설명에서 인용하였듯이

    그를 처음 찾아간 Jacobs 부부에게 “Have you ever heard of

    Korean way of heating house?”라 고 묻고, 온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나서 “Would you like to be the first people in

    America to try this kind of heating in a home?”라고 물었다는

    것은 적어도 라이트는 그것을 미국에서의 최초의 사례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1977년 판 ‘자서전’에서는 “몇 몇 잡지들은

    ‘내가 그것을 처음으로 고안했다’고 쓴 것도 있었다”는 문장이 추

    가되어 있는데 이는, 비록 ‘radiant heating’으로 잘못 표현하긴 했지

    만, 당시 미국 언론들도 그를 바닥난방의 ‘발명자’로 인식하고 있었

    음을 알 수 있다.41)

    그런데 Donald G. Kalec은 ‘Jacobs House I’을 설명하는 글에

    서 바닥난방과 관련하여 주(註)를 달고, 건축잡지 ‘American

    Architect’의 기사를 참고하여 Sir Edward Lutyens가 설계하여

    1931년 완공한 영국대사관(Washington D.C.)이 미국최초의 바닥

    난방 시공사례라고 하고 있다. 당시에 “복사난방(radiant

    heating”)은 “panel heating”이라 불렸고, 그 영국대사관에서는 천

    39) 라이트는 1936년 ‘Jacobs House I’을 필두로 1959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저렴한 비용의 ‘Usonian House’를 308채나 설계하였고, 이

    중에서 140채가 미국 도처에 지어진 것으로 집계 되고 있다( Donald

    G. Kalec, 앞 책, p. 91 참조). 또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700건이 넘는 건물을 실현하였으며, 1923년 시점에 179건을 건축하였고 계획

    안으로 머문 것이 70건이었다. Herbert Jacobs, 앞 책 p. 10540) ‘자서전’ 1977년 판은 라이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1977년 판 내표지에 1943년 판에는 없는 라이트의 원고교정 샘플 사진이 있

    는 것으로 보아 그가 생존 시에 그렇게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41) 주18 참조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온돌체험과 그의 건축작품에의 적용과정 및 의미에 대한 고찰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165

    정내의 동파이프에 뜨거운 물을 펌프로 공급하는 것이었는데, 벽

    과 바닥 몇 군데에도 난방파이프가 설치되었었다고 하고 있다.

    또 Kalec은 ‘Architectural Forum’의 기사를 바탕으로 1935년에

    미국 내에 “panel heating”이 약 6개소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면

    서 엄밀하게 말하면 라이트가 미국 내에 바닥난방을 사용한 최초

    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다.42)

    이에 따르면 라이트가 미국에서 최초로 바닥난방을 실현한

    1936년의 ‘Jacobs House I’은 영국대사관보다 5년 정도 뒤의 일이

    다. 하지만 라이트의 ‘Nakoma Country Club’설계는 1923년이므로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영국대사관 보다 8년 앞선 것이었다.

    또 도쿄의 ‘Imperial Hotel’은 1914년의 사례이므로 미국 내에 바

    닥난방을 실현한 사례는 아니지만 1931년의 영국대사관 보다 무

    려 17년이나 앞선 경우가 된다. 이처럼 ‘최초’문제는 ‘기준’문제이

    고 감안할 점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미국건축가로서는 바닥난

    방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며, 바닥난방법이 낯선 시대에 미국에

    누구보다도 많은 사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라이트는 미국 내

    에서 바닥난방을 개척하고 보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라고 할 수 있다.

    미국사회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통적으로 벽난로 문화권이었

    다. 그리고 라이트가 바닥난방을 건물에 쓰기 시작한 1936년 무렵

    까지만 해도 주거의 난방은 주로 벽난로에 의존하여왔다. 철제 난

    로와 스팀 또는 온수를 매체로 하는 라디에이터 난방방식이 조금

    씩 보급되던 때이다.

    미국이 벽난로를 즐겨 쓰게 된 것은 초기 이주자들이 고향에서

    의 생활양식과 난방법을 그대로 신대륙에 가져온 때문이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 모두 벽난로문화권이었기 때문이다. 온돌을 만

    나기 전 라이트의 주택설계에서 벽난로가 특히 설계의 중심이 되

    는 것도 이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역사는 유럽의 전통

    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라이트가 미국에서 바닥난방을 사용하기 시작할 무렵 바

    닥난방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낯선 난방에 속했다. 유럽

    에서는 오랫동안 벽난로와 타일벽난로(Kachelofen: 카헬오펜)가

    일반적인 난방방법으로 사용되었는데, 벽난로는 비교적 기후가 온

    화한 서 유럽 쪽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독일을 중심으로 동유럽

    지역에서는 타일벽난로가 많이 사용되었다. 타일벽난로는 1400년

    대 중반부터 철제난로로 발전되며, 열기를 가능한 최대로 이용하

    기 위하여 연통을 실내에서 많이 꾸불꾸불하게 하거나, 여러 갈래

    의 연통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라디에이터 난방방법은 17~18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42) Donald G. Kalec, 앞책, p. 100., 미주 50. 그가 참고한 잡지는

    ‘First Installation of Hot Water Panel Heating’, American Architect 138(Nov. 1930), pp. 32-33와, ‘Panel Heating’,

    ‘Architectural Forum’ 63, Dec. 1935, p. 624이다. 한편 Kalec은 여

    기서 바닥난방 개념으로 ‘panel heating’이란 용어를 쓴다. 라이트는 ‘중력난방’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고 때때로 ‘floor heating’이

    란 용어도 썼다. 하지만 바닥난방을 ‘radiant’난방이라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바닥난방법은 ‘radiation’에 의해서보다 ‘convection’에 의해 난방이 되며, ‘중력열’은 차가운 공기가 더운

    공기보다 무거워 지면서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끌어내려지는 대류

    원리(convection principle)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는 증기를 이용하여 펌프나 운반기계를 만드는데 이용했고, 이어

    서 기술이 조금씩 숙성되며 온실의 난방으로 이용되었다. 온수를

    이용한 라디에이터 난방법도 1716년 온실의 난방법으로 시작되었

    고 양계장에도 쓰이긴 하였지만 이때는 파이프를 구부려 놓은 정

    도였다. 라디에이터식 온수난방은 1877년 무렵부터 시작된다. 하

    지만 벽난로나 타일난로를 가지고 있던 기존의 집에 라디에이터

    와 파이프 배관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라디에이터식

    난방방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주거를 재건하면서 많이

    보급되게 되었다.

    그런데 바닥난방법은 유럽에서 사실 한국의 전통난방법인 온돌

    (구들)만큼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공

    중욕장에 주로 사용된 ‘하이퍼코스트(Hypocaust)’란 난방법이 있

    었기 때문이다. ‘하이퍼코스트’는 온돌(구들)과 매우 유사한 연기

    에 의한 바닥난방법이어서 ‘서양의 온돌’ 또는 ‘서양의 구들’이라

    할 수 있을 정도 인데 그 흔적은 기원전 250년경 그리스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이들 로마시대의 공중욕장은 로마의 멸망

    과 함께 4세기 말 이후부터는 잊혀지고, 따라서 그에 사용된 하이

    퍼코스트란 난방법도 잊혀 졌다가 19세기에 공중욕장 유적들의

    발굴을 통하여 다시 존재가 알려진 난방법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난방법의 존재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몇몇 고고학자들이나 그

    존재를 알 정도였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43)

    그렇긴 하지만 1905년 독일에서 발간된 일종의 건축핸드북은

    ‘Fussbodenheizung(푸스보덴하이충)’이란 제목으로 몇 가지 바닥

    난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막사, 별장 등에 이어 몇 몇 병원시설

    에 시공된바 있는 이 ‘특별한’ 난방방법은 방바닥 밑에 둑을 쌓아

    만든 도랑(고래)에 증기파이프가 놓여 있어서 방바닥이 난방이 되

    게 한다”고 설명하고 베를린 아동병원, 함부르크 에펜도르프

    (Eppendorf)의 병원시설 등에 설치된 사례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 난방법은 운영비가 많이 들지만 기분 좋게 따뜻하게

    한다고 하고, 이어서 방바닥 밑 또는 바닥 위에 터널을 만들거나

    토관을 설치하고 그 속으로 연기를 통과하게 한다고 소개하여 원

    리는 한국의 구들과 비슷하다. 아궁이와 굴뚝간의 긴 연도를 연기

    가 새지 않게 하기도 어렵고, 열을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아궁

    이에서 굴뚝에 이르는 동안 온도가 감소되어 균일한 온도를 얻기

    어려운 점 등은 좋지 않아서 간단하고 싼 방법이지만 드물게 사

    용되며, 교회나 온실, 공장과 같은 곳의 화재에 안전하고 평평한

    공간의 방바닥에 적당하다고 하고 있다.44) 이러한 자료를 보면

    유럽에서는 미국에서 보다는 좀 더 빠른 1905년경에 이미 바닥난

    방이 등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와 같이 몇

    몇 사례에 불과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고 ‘특별한 난방법’이

    어서 미국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유럽사례가 미국사례보다는 조금 빠르다는 점에서 영국대

    사관을 비롯한 라이트에 의하지 않은 몇몇 사례들의 아이디어의

    43) ‘하이퍼코스트’를 포함하여 서양의 각종 난방방법의 발전에 대

    하여는 많은 서양자료가 있다. ‘문헌과 유적으로 본 구들이야기 온

    돌이야기’(김남응, 단국대 출판부, 2004)에도 폭넓게 다루어져 있다.44) Deutsche Bauzeitung und des Deutschen Baukalenders,

    Baukunde des Architekten - Deutsches Bauhandbuch, Bd. 1,

    Teil 2, Verlag Deutsche Bauzeitung, Berlin, 1905, pp. 266-267.

  • 김남응․장재원․임진택

    166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系 21권 9호(통권203호) 2005년 9월

    그림 12. ‘Jacob House I’과 ‘Johnson Wax’ 설계가 있던

    즈음 Taliesin의 작업실에서

    15명의 학생들과 라이트(1937)

    원천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바닥난방의 확

    산에는 라이트의 영향이 크며, 라이트가 적용한 바닥난방 아이디

    어는 유럽과는 무관하고 한국의 온돌을 원천으로 하고 있다는 것

    은 분명하다.

    7. 결 론

    라이트가 어떻게 온돌을 만났고 어떻게 느꼈는지는 그의 자서

    전 ‘An Autobiography’와 ‘The Natural House’에 기록되어 있으

    므로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그 이후 그의 작품에의 적용과정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추가적인 정보를 함께 살펴봄으로서 ‘라이트

    와 온돌의 관계’와 ‘온돌과 만남의 의미’를 좀 더 구체화 하고 분

    명히 하고자 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라이트와 온돌의 만남은 ‘만남’정도로 끝나지 않고 이후 그의

    작품과 미국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 라이트가 바닥난방을 사용하기 시작할 당시에 바닥난방은

    미국사회에 생소한 난방법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라이트

    가 바닥난방법을 사용하기 시작 하였다는 점에서 라이트는 미국

    에서 바닥난방법의 ‘개척자’이며, 또 ‘Imperial Hotel’에서의 적용을

    기준으로 하면 바닥난방을 사용한 ‘최초’의 ‘미국 건축가’라 할 수

    있다.

    - 또한 라이트가 바닥난방을 적용한 작품은 40여건이 넘는다.

    이들 건물은 Wisconsin주와 같은 미국의 추운지역 여러 곳에 산

    재하여 각기 이웃에 바닥난방법의 존재와 특성을 전파하는 역할

    을 하였다. 이에는 라이트와 함

    께 일한 사무실 사람들, 시공업

    체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집에

    살게 된 가족들, 언론 등의 역할

    도 포함되며, 무엇보다도 라이트

    자신의 높은 지명도도 영향력 있

    게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러한 점에서 라이트는 미국에서

    의 바닥난방 발전에 있어서 개

    척자의 의미를 넘어 바닥난방을

    널리 보급한 ‘전파자’의 의미를

    지닌다.

    - 그런데 이 모든 라이트가 적용한 바닥난방은 한국의 전통온

    돌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비록 그 만남은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라이트의 방법은 전기히터, 스팀 및 온수파이프를 건물의 바닥판

    콘크리트에 매설하는 방법이었지만 그 아이디어의 원천은 온돌에

    있고 근본적으로 온돌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라이

    트가 전파한 바닥난방은 비록 고래도 있는 전통의 형태 그대로는

    아니지만 한국의 온돌을 전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전

    통온돌이 라이트를 통하여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며 미국에

    전해진 것을 의미한다.

    - 바닥난방은 많은 그의 ‘Usonian House’에도 적용되었다. 그

    곳에서의 바닥난방은 그냥 난방법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몇 가

    지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Johnson

    Wax’ 빌딩의 예에서는 대형공간 실현에 하나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그의 몇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한국의 전통 바닥난

    방법인 온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라이트는 오늘날 “위대한 건축가”로 칭송된다. 라이트가 온돌

    을 만날 때는 47세였고, 그는 이미 이때도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

    을 때이지만, 그가 더욱 유명하게 되는 데에 그의 수많은 ‘Usonian

    House’나 ‘Johnson Wax’같은 것의 역할도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에는 수천 년 동안 한국인들이 사용해온 한국의 전통

    난방인 온돌도 일조(一助)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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