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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pp.87~121 1) |목차| 1. 들어가며 2. 남성성과 돌봄 그리고 지역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 3. 대구지역 기혼남성의 인식 변화와 가사 육아 참여 실태 4. 결론 및 제언 |초록| 최근 일생활균형은 사회적 이슈이자 정책적 화두이다 . 일생활균형은 일 가정 가가 균형을 이룬 삶을 의미하는데 , 이를 위해 우선 돌봄의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고 , 일상생활의 젠더의식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대구는 타 지역에 비해 보수적 이고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가부장적 가족가치관 이 지배적일뿐더러 성 역할 고정관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 이는 남성들의 돌봄 참여 가 상대적으로 낮고 , 불평등한 돌봄이 여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 지만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전통적 남성성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하는 새 로운 남성들이 등장하고 있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이 연구는 지역 남성성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 전통적 남성성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 운 남성으로 호명 받고자 하는 남성들의 인식 변화와 돌봄 참여 실태를 살펴보았다 . 연구결과 평등한 돌봄을 실천하려는 새로운 남성들이 강한 가부장적 남성성과 충돌하 면서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낙인찍혀 위축되는가 하면 , 강력한 가부장적 남성성으로 회귀하기도 하였다 . 그러나 남성성의 변화는 필연적인 시대흐름으로 인식하고 있었으 * 이 논문은 2017년 한국여성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수정 보완한 것 이다 . ** 대구여성가족재단 [email protected]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 대구지역 기혼남성들의 가사·육아를 중심으로* 성지혜 **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89 고정관념 해소 및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성평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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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pp.87~121

1)

|목차|

1. 들어가며

2. 남성성과 돌봄 그리고

지역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

3. 대구지역 기혼남성의 인식

변화와 가사 육아 참여 실태

4. 결론 및 제언

|초록|

최근 일생활균형은 사회적 이슈이자 정책적 화두이다. 일생활균형은 일 가정 여

가가 균형을 이룬 삶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 우선 돌봄의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고,

일상생활의 젠더의식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구는 타 지역에 비해 보수적

이고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부장적 가족가치관

이 지배적일뿐더러 성 역할 고정관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들의 돌봄 참여

가 상대적으로 낮고, 불평등한 돌봄이 여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하

지만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전통적 남성성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하는 새

로운 남성들이 등장하고 있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연구는 지역 남성성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전통적 남성성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

운 남성으로 호명 받고자 하는 남성들의 인식 변화와 돌봄 참여 실태를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평등한 돌봄을 실천하려는 새로운 남성들이 강한 가부장적 남성성과 충돌하

면서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낙인찍혀 위축되는가 하면, 강력한 가부장적 남성성으로

회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성성의 변화는 필연적인 시대흐름으로 인식하고 있었으

* 이 논문은 2017년 한국여성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수정 보완한 것

이다.

** 대구여성가족재단 [email protected]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대구지역 기혼남성들의 가사·육아를 중심으로*

성지혜**

Page 2: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89 고정관념 해소 및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성평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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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지역의 보수적인 이미지 변화를 위해서도 남성들의 빠른 편승이 필요하다는 입장

을 보였다.

주제어 : 남성성, 돌봄, 불평등, 가부장성, 일생활균형

1. 들어가며

근래 일가정양립 혹은 일생활균형은 사회적 이슈이며 정책적 화두이

다. 경쟁에 지친 사회는 개인과 가족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과 가정생활 그리고 여가의 균형된 삶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 일생활균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혹자는 신자유주의가 임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신자유

주의의 약육강식이 만들어낸 지나친 경쟁구도가 개인의 삶을 파편화시키

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신자

유주의에 지쳐 대안적인 삶을 선택하는가 하면,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행복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실 거창한 신자유주의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각종 연구와 정책평가를

통해 일생활균형의 긍정적 효과가 강조되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

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효과를 기대하면서 일생활균형 정책을 적극 추진

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는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새로

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고용률이 높아지는, 경제활동의 선순환 구조가 발

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출산 육아로 인해 발생하는 여

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가족의

유대가 강화되고, 개인의 삶의 질과 가족관계 만족도가 높아져 사회 건강

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일 중심적인 남

성의 생활패턴에 일과 가정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고, 돌봄 영역의 성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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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해소 및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성평등을 앞당기는 동력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가정양립에 대한 논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2008.6.22.시행)이 시행되면서 정책적 지원이 구

체화되었다. 하지만 일가정양립을 위한 정책이 자녀출산과 양육지원정책

으로 협소하게 이해되면서, 여성근로자에 국한된 정책으로 인식되는 한

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지속되고 있다(문은영 장명선 송민주, 2014; 신경

아, 2016). 최근에는 일가정양립에서 일생활균형으로의 개념 확장이 필요

하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삶의 양식과 생활패턴을 포괄하고,

가족적 책임을 넘어 개인의 자기개발과 여가향유까지 정책적 범위에 포함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삶과 권리 보장이 점차 부각되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 가족에서 일 가족 개인생활의 조화로 정책

재설계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김소영 외, 2016).

실제로 일생활균형으로의 논의는 문재인정부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국

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 생활의 균형 실

현’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고, 근로시간 단축과 근로자의 휴식권 보

장, 육아 돌봄 지원확대를 통해 일생활균형 문화를 확산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7년 6월부터 6개 광역단위로 하여금 ‘일 생

활 균형 지역 추진단’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지역별 일생활균형과 관

련된 이슈를 공론화시키고, 일생활균형을 위한 실질적인 여건개선을 통

해 정책 체감도를 높이려는 의도이다. 우리 사회를 일 중심의 삶에서 일과

가정생활, 개인의 여가 등이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 전반

적인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생활균형은 일과 가정생활

그리고 개인의 여가가 균형을 이루는 삶이며,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일

한 의미로 작동되는 것을 전제한다.

사회 정책적 화두인 일생활균형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는 단연코 돌봄

영역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별에 따른 돌봄 불평등이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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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않고서는 일생활균형은 그저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를 요구하는 고정관념이 돌봄에 여전히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생활균형 실현은 여성과 남성에게 불평등한 돌봄

을 평등하게 바꾸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며, 남성들의 돌봄 참여가 바로

출발점이다.

여성은 돌봄을 전담하는 사적영역, 남성은 공적영역이라는 이분법은

여성에 의해 이미 무너졌다. 사적영역에 머물던 여성들이 경계를 허물면

서 끊임없이 공적영역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의 절대

다수는 공적영역에만 머물고 있어, 여성들은 공 사 영역을 넘나들며 이중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돌봄의 불평등을 드러내고, 남성들의 돌봄 참

여를 확대함으로써 평등한 돌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는 활발하다

(윤승희, 2010; 강혜경, 2013; 조윤경, 2014; 안숙영, 2017). 또한 남성들의

돌봄 참여 증가와 기존 남성성의 변화 모색을 주제로 하는 연구도 활발하

다(박승민, 2006; 정윤희, 2008; 나성은, 2015; 김유경 구혜령, 2016; 마경

희 외, 2017). 이 연구는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관점을 바꿔 남성 내부

의 긍정적 변화에서 실마리를 찾아보기 위한 것이다. 보수적인 대구지역

에서 기존의 전통적 남성성을 거부하는 남성들을 드러내고, 이들의 경험

을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남성성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한

것이다.

대구는 보수적 성향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일상생

활에서 젠더 의식을 더디게 하고, 가부장적 가족가치관을 공고히 하고 있

다(김성애, 2014).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지역적 특성이 돌봄에 참여

하는 남성을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낙인찍음으로서 지역 남성들의 돌봄

참여를 가로막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

수적 가부장적 권위적인 지역의 전통적 남성성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하

는, 새로운 남성성을 획득한 남성으로 호명되기를 원하는 남성들이 등장

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새로운 남성성을 지향하는 남성들은 평등한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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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당연시하는 인식체계를 갖고, 평등한 돌봄을 실천할뿐더러 주변에 확

산시키고자 노력하는 남성이다. 하지만 새로운 남성성은 기존의 가부장

적 남성성과 충돌하면서 남성들의 변화를 위축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보

다 강력한 가부장적 남성성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구지역 기혼남성들의 가사 육아 참여 실태를 분석함으로

써 남성성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남성성은 사회적 실천에 의해

지속적으로 형성 변형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분석을 통해 유추할 수 있

기 때문이다(정윤희, 2008). 가사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남성들이 나타나

고 있는 현상이 돌봄의 성평등을 이끌어갈 새로운 남성성의 등장을 의미

하는지, 아니면 돌봄의 주체가 아닌 보조자역할을 적극 수행함으로써 기

존 남성성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의도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연구를

위해 대구지역에 거주하고,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30∼40대 기혼남성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 대상자는 여성과 남

성은 돌봄을 공평하게 분담해야 하며, 돌봄의 성평등 실현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라고 인식하는 남성들이다. 또한 스스로를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성과 동일하게 호명되길 거부했으며, 다름을 인정받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인터뷰 대상자들은 모두 기존의 남성성보다는 연구자

가 정의한 새로운 남성성에 가깝다고 하겠다.

2. 남성성과 돌봄 그리고 지역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

1) 남성성의 변화와 불평등한 돌봄

(1) 변화하는 남성성

남성성에 대한 개념은 하나의 통일된 대상이 아닐뿐더러 ‘남성적’, ‘여성

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일차원의 단수가 아닌 복수로, 보편적 규범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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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것으로 복잡하게 인지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성성은 가

부장 사회에서 남성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내면화하고 체화해야 할 정체

성, 사회성,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이는 남성이라는 성별 집

단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이다. 또한 근대로 접어들면서 남성성은 가부장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가족제도, 자본주의 경제체제, 관료제의 특성인 합

리성, 경쟁성, 효율성, 남성적 권위주의 등과 상통하면서 남성 헤게모니를

구축해 왔다(이영자, 2001; 정윤희, 2008; 지은숙, 2014).

‘지배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을 제시한 코넬(2013)은 가부장

사회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 따라 규범으로서 정당성을 주도하는

남성성도 바뀔 수밖에 없으므로 포괄적인 구조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코넬은 남성성은 언제나 여성성과 대조되거나 여성과의 관

계 속에서 존재하는 관계적 개념으로 보았다. 코넬의 입장은 남성성의 사

회적 구성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있으나 본질주의가 갖는 자의적

인 해석, 성역할과 정체성의 불일치성, 남성 내부의 차이에 대한 배제 등

의 이해를 구하는데 어렵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영자(2001) 역시 코넬

의 논지를 빌어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고 재생산되고 변화되

는지를 살펴보면서 남성성의 생산, 재생산을 구조적인 입장과 행위자로

서의 개인으로 볼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정윤희(2008)는 남성성을 하나의 대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남

성과 여성으로 하여금 잘못된 성적인 삶을 영위하는 과정들과 그 관계들

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위자로서의 개인은 성별화된 생활을 영

위하는 과정들과 관계들 속에서 육체의 경험, 인성, 문화가 자리 잡게 되

고 지속적인 작업에 의해 유지되면서 남성성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그

렇다면 남성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앞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성, 여성성은 끊임없이 재정의되

고 재협상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젠더가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

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여성성이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지닌 범주이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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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의미와 차이들이 다양하게 조합된 것으로 간주하

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성 또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

고 있다. 남성성으로 규정된 것들 중 어떤 것은 항구성을, 어떤 것은 일시

적이다. 이 중 항구성을 지닌 남성성이 남성적 권력을 정당화하고 자연화

시킴으로써 하나의 정형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형화된 남성성이 현대에 이르러 위기에 처했다. 남성성의 위

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공적이고 지배적이며 보편적인 것을 의미

했던 남성성이, 불완전하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남성성

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남성성과는 다른 새로운

남성성이 여러 형태로 체현되기도 한다. 남성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다양

한 역할(자녀양육 등)에 직면하면서 관계지향성, 상호의존성 같은 여성적

가치를 점진적으로 남성들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는 젠더의 위계와 이

원화된 젠더 관계를 흔드는 징후이다(박승민, 2006; 안미현, 2014; 나성은,

2015). 국가와 시민사회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가족의 생계부양자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독점할 수 있었던 구조적, 제도적 기반이 와해되면서 실제

로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이상은 균열하고 있다(마경희 외, 2017). 이러한

위기들은 남성들이 더 이상 공적 영역을 독점하거나 가부장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유지시키기 힘든 상황을 초래한다. 하지만 남성성의 균열과 새

로운 남성성의 등장이 남성 권력의 쇠퇴를 가져오거나 성별분업 해소 등

남성성의 특권을 유지시켜온 젠더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 지배적이다(이영자, 2001; 안미현, 2014; 나성

은, 2015; 마경희 외, 2017). 오히려 남성성의 위기에 대한 반동적 대응으로

서 가부장적 남성성을 재강화시키는 역공격이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성의 변화 지점들이 페미니즘에 우호적일 수 있지

만, 페미니즘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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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2) 불평등한 돌봄

돌봄의 성평등 실현은 일생활균형은 물론이고,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

기 위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주의 운동이 시작된 이

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변화가 더딘 영역이 돌봄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돌

봄은 ‘여자들의 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터틀(1999)은 돌봄의 성차

별 개선은 여성의 일에 남성을 참여시키는 것으로, 남성이 ‘남자들의 일’로

막아온 장벽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보다 더욱 어렵고 혁명적인 일이라 토

로했다. 양성평등을 그토록 외쳤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대부분의 돌봄

을 여성에게 기대하면서, 여성의 이중노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돌봄의 불평등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의미이다.

로버(2005)는 “나에게 ‘모성’은 사회적 범주이다. 모성적 사고방식은 실

제로 아이를 기르면서 생기지만 생물학적 부모역할은 필요하지도 않고 충

분하지도 않다.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자녀양육의 모든 면에 여성과 남

성을 똑같이 포함시키는 것으로, 남녀가 자녀양육의 모든 면을 나누는 것

은 공평할 뿐 아니라 매우 도덕적이다. …만약 남성이 감정적, 실질적으

로 육아에 전념한다면 그들은 직장을 부모의 관심에 맞도록 개혁할 것이

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여성이 돌봄을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은 출산에

따른 편견에 불과하며, 남성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가 성평등을 위한 사회

개혁의 시작점으로 본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주장하는 민주적인 돌봄은 돌봄의 실천을 재구상하는 것

에서 시작할 것을 강조한다. 돌봄이 왜 여성화로 성별화되었는지, 성별화

된 관념으로서 남성성이 왜 돌봄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하는지를 끊임없

이 탐색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별화된 돌봄 패턴은 매우 심각해서 마

치 보편적이고 심지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보여 진다. Tilly(2003)는 남

성지배 체제의 결과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게 되면서 공 사 구분이

생겨나고, 남성들에 의해 덜 중요하다고 판명된 돌봄이 여성의 몫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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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95

아오고 이후 끊임없이 재생산된 것이라 주장하였다. 어떤 형태의 억압이

발생하게 되면 열세인 쪽은 ‘기회 울타리’에 동참하기 위해 열악한 지위를

전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억압하는 우위에 있는 사람

들의 선의에 자신들을 위치시키는 방법을 찾고, 우위의 사람들과 협력하

여 일부 자원을 획득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러너(2004)의 주장처럼

일부 여성들이 약간의 이득을 위해 사적영역에서 돌봄을 맡음으로써 남성

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에 동참했으며, 그것이 지금의 불평등한

돌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론토(2014)는 돌봄은 여성과 남

성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함께 돌봄’의 명제 아래 출발해야 한다고 보았

다. 민주적인 돌봄이 되기 위해서는 돌봄의 선택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

고, 정의로운 결과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초도로우(2008)의 주장처럼

여성과 남성 모두 돌봄의 선택지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

해서는 남성에게 주어진 돌봄의 무임승차권을 회수하고, 돌봄을 재구성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 없이 성별화되고, 하층계급에 집중되고, 인

종화된 불평등한 돌봄을 개선하기란 요원할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성 평등을 일궈가고 있다. 여성가족

부가 관리하는 지역성평등지수1)도 2011년 71.4점에서 2016년에는 75.6점

으로 점차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성비는 낙제점인 30점 미만에

머물러 있으며, 돌봄 영역의 성역할 고정관념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돌

봄의 성별 불평등이 해소되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의 일생활균형 뿐만 아

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성별 임금격차, 의사결

정 등의 불평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송다영(2009)은 여성의 노동시장

1) 여성가족부는 2011년부터 매년 지역성평등지수를 측정 발표하고 있다. 지역성평

등지수는 시 도의 성평등 수준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지수화한 값으로

사회참여 인권복지 의식문화 등 3개 영역 8개 분야, 23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성비가 완전평등상태이면 100점, 완전불평등상태는 0점이다. 2011년 71.4점, 2012

년 72.2점, 2013년 72.8점, 2014년 73.2점, 2015년 73.5점, 2016년 75.6점으로 매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여성가족부, 201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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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진출로 인한 가족 내 돌봄의 공백이나 부담에 대해 정책적 개입이 필요함

을 주장하면서 여성과 남성 모두 노동권과 부모권을 동시에 양립할 수 있

어야 하며, 여성이 양육 전담자로 회귀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것을 강

조한 바 있다. 2인 생계부양자모델을 요구하는 노동구조의 변화가 자칫

여성의 이중노동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윤홍식 외(2011)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성평등이나 사회 생산성에 필수적이며, 이미 돌

이킬 수 없는 대세로 파악하고,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재조

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의 양성평등정책도 돌봄의 불평등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

가족부는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양성평등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2017b) 결과를 제시하였는데, 여전히 ‘여성이 불평등(62.6%)’

하다는 응답이 절대적으로 많았으며,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최우선 과제

로 ‘가사 육아에의 남성 참여(23.4%)’ 요구가 가장 많았다. 더욱이 남성의

가사 육아 참여에 보다 집중함으로써 저출산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하락한 출산율이 논란의 쟁점에 있

었을 때,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우려에 힘입어 남성의 육아 참여가 공론화

되기 시작하였고, 제도화 요구가 강하게 일어났다.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남성이 육아를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음으로써, 남성의 육아휴직

이 가능해지고 명목상 전통적 성역할을 벗어날 수는 있었다(윤홍식, 2011).

하지만 남성의 육아휴직 실태를 살펴보면 2016년 전체 육아휴직 근로자 중

여성이 91.5%를 차지하여 남성의 참여는 매우 저조하다. 명목적으로는 양

육의 책임을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부과하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여성

에게 일차적인 책임을 지우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남성이 돌봄에 참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

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가사 육아에 참여하려는 남성이 생겨나고 있

음이다. 특히 시대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으로 남성 스스로 돌봄의 필연

성을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남자다움’에 냉소를 보이는 남성이 등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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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97

있다는 것이다. 가사 육아에 참여하는 다양한 경험이 남성들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가사 육아에

적극적인 남성은 전통적인 ‘남자다움’에 저항하는 새로운 남성성을 드러

내고 있다. 바로 ‘돌보는 남성’이다.

2) 지역적 특성과 가부장적 남성성

(1) 지역의 정체성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가부장성이 강한 곳이 어디냐고 질문한

다면 아마도 열에 아홉은 경상도를 지목할 것이다. 경상도 중에서도 대구

경북이라는 대답이 단연 많을 것이다. 대구지역 정체성과 이미지는 단연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특성의 이미지가 높다는 것이 일반적

인 평가이다(김정헌, 2004; 최용호 이용재, 2005; 윤손갑 김명하, 2007; 김

영화 김태일, 2012). 이재필 외(2007)의 연구에서도 대구경북 사람들은 스

스로를 정이 많고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보수성, 체면중시, 권위

주의, 배타성 등을 버려야 할 것으로 보았다.

반면 김규원(2014)은 대구경북이 보수적이라는 낙관이야말로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수구적인 가

치로 무장한 지역의 이미지가 왜 생겨났는지 자각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규원(2014)은 보수적이라는 지역이미지가 저간의

투표 성향이 특정 정파에 쏠림 현상을 보여 온 것을 보수적이라는 말로 통

칭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의 기억공유에 머물기

보다는 상생적인 관계설정과 역사성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보돈(2014)도 대구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

람들에게 극히 배타적이며, 강한 집단 이기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비

춰지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그러한 평가가 원래는 그리 나쁜 뜻으로 사용

된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하였다.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보수적 폐쇄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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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란 의미는 대부분 수구적, 폐쇄적, 국수주의적인 사고와 동일하게 사용되

고 있음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대구 사람들이 태

생적으로 지녀온 본성이나 지역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임을 강조하면서 주체들이 스스로 쇄신하면 충분히 바

꿀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조순제 최병덕(2014)은 지역의 보수적 성향이 정당 정체성과 결합하면

서 이념과 가치로 내면화되는 모습을 지적하면서도 최근 지역주의가 해소

되는 변화의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변화의 뿌리를 시민

운동에서 찾고 있다. 사실 대구경북의 시민운동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

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1960년에는 2 28 학생운동으로 진보적 운동 성향

이 강한 곳이었다. 이후 중앙권력의 산출지라는 명분으로 상당히 위축되

었으나 2003년 대구지하철화재참사 사건을 계기로 시민운동은 증폭되었

다. 당시 사건 수습과정 중 주류집단의 연줄망과 보수성이 책임자 처벌을

어렵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지역의 보수지배구조에 대한 변화

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보았다. 이상용(2014)도 대구경북의 정

체성을 보수성과 전통적 가치 지향, 개인보다는 국가를 포함한 공동체 중

시, 물질보다는 정신문화에 높은 가치 부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한 정신

력 등이 공통적인 특징으로 보았다. 하지만 과거의 지역 정체성에 매몰되

기보다 시대정신에 부합되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개방성, 역동성, 창의성을 새로운 정신적 가치로 추구해야 한

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대구의 지역성은 내 외적으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가부장

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

려는 다양한 움직임도 만만찮다. 김영철(2014)은 지역사회가 공동체적인

호혜성에 바탕을 두고 무형의 공익적 자산을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변화와 혁신의 지름길이라 강조하였다. 김영화

(2014)도 대구의 미래는 지역의 가부장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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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99

곳이라는 자생적 태생적 속성들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면서 생태여성주의적인 사회 복지를 강조하였다.

(2) 지역의 전통적 남성성

대구는 오랜 유교적 전통과 정치적 특성으로 인해 유난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성은 가부장적인 가족가치관

으로, 지역의 남성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지역의 남성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남성 중심

적인 가부장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김성애(2014)는 최근에도 성별에 대한 차별의식이나 대우는 크게 달라

진 바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역의 정서가 일상생활에서의 젠더 인식을 더디

게 하고, 가부장적 가족가치관을 공고히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

다. 특히 가부장적 가족가치관은 가족생활 만족도와 가정에서의 성차별,

남성의 낮은 가사분담 등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음을 우려하였다. 이민주

김혜순(2005)도 조선시대 열녀 분포를 비교하면서 대구의 가부장성이 타

지역에 비해 더 강하다고 주장하였다. 달리 해석하면 가부장적인 남성이

지역의 주류 남성성임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김미진(2016)은 대구지역

에 거주하는 베트남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조사하였는데,

남성 중심적인 가족문화,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노동, 순종적인 부인의 역

할을 강조하는 이미지로 확인되었다. 조사대상자 모두 대구지역에 거주하

고 있어 지역적 한계가 전체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대구지역의 가부장적 가족가치관이 강하다는 것은 통계청(2016) 자료

에 의해서도 드러난다.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이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하

고 있는가에 대한 조사에서 대구는 13.7%로 전국평균 17.7%보다 낮았으

며, 7대 광역시 중 가장 낮았다. 또한 전적으로 아내가 책임진다는 비율이

31.0%, 아내가 주로 책임지고 남편이 돕는다는 53.8%로 가사는 여성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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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할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드러났다. 이런 결과는 가족관계 만족도에도 영

향을 미쳤는데, 대구지역 여성은 52.1%만이 만족한다고 응답하여 전국평

균 54.7%보다 낮았으며, 7대 광역시 중에서 가장 낮은 결과를 보였다. 가

부장성이 강한 전통적 남성성이 가족관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

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성가족부에서는 ‘지역별 성평등 지수’를 매년 발표하고 있는데, 대구

는 가족분야에서 전국 16위로 꼴찌를 차지하였다. 특히 가사노동시간 성

비와 육아휴직자 성비는 완전성평등수준을 100점으로 보았을 때, 각각

32.2점과 51.2점으로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주재선 외

(2017)는 대구의 가족분야 성평등 수준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고 평가하고, 지역에 강하게 남아 있는 가부장성과 전통적인 남성성의 영

향으로 분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가사

노동시간 성비는 2011년 21.7점에서 2016년 32.2점으로 매년 조금씩 점수

를 높아지고 있다. 지역사회 분위기와 남성들의 미세한 변화로 해석된다.

하지만 기존의 전통적 남성성은 뿌리 깊고 지배적이며 여전히 공고하

게 작동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성지혜(2017)는 대구지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하루 평

균 가사 육아 소요시간에서 여성은 3시간 이상이 54.1%인 반면, 남성은

1시간 미만이 41.4%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조사대상 모두 취업상태임

을 고려할 때, 여성들의 이중노동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돌봄의

주 책임자는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

기 때문이다. 평균 근무시간을 살펴보면 여성은 8시간 미만 29.4%, 8시간

37.8%, 8시간 초과 32.8%, 남성은 각각 1.4%, 17.4%, 81.2%로 나타나 남성

들의 장시간 노동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남성 응답자의 33.2%는 정해

진 시간에 퇴근할 수 없는 상황에 있으며, 69.4%는 주 1일 쉬거나 거의 쉬

지 못한다고 응답하였다. 대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일’ 중심 문화가 강하

게 작동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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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101

<그림 1> 대구지역 기혼 여성・남성의 1일 가사・육아 소요시간

(성지혜, 2017: 50 재정리)

남성들이 가사 육아 참여가 낮은 이유는 ‘업무로 피곤하고 시간이 없

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대구 남성들이 장시간 노동과 과중

한 업무에 노출되어 있으며, 남성 1인 생계부양자 모델에 의한 노동환경

의 가부장성이 여전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일가정양립

문화가 정착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대구의 여성들도 ‘업무로 피곤하고 시간이 없어서’ 가사 육아 참여가 낮

은 대구 남성들을 받아들이면서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가사

육아 시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취업중인 기혼여성들이 기꺼이 공 사

영역의 이중노동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동조가 전

통적 남성성을 유지시키기도 한다. 여성을 종속시킨 가부장적 체계를 구

축하는데 여성은 희생물이 아니라 공모에 가담했다고 본 러너(1986)의 주

장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별에 따라 다른 기대치

를 갖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개념화된 인식체계가 잔존해있음

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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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그림 2> 대구지역 기혼남성이 가사・육아 참여가 낮은 이유

(성지혜, 2017: 53 재정리)

하지만 조사결과를 다른 입장에서 해석해 보면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

되기도 한다. 즉, ‘업무로 피곤하고 시간이 없어서’ 가사 육아 참여가 낮으

므로, 업무로 피곤하지 않고 장시간 노동이 해소된다면 가사 육아에 참여

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일’ 중심 문화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돌

봄의 평등도 가능할 수 있음이다. 이들 58.2%가 실제로 가사 육아에 참여

하고 싶은 남성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최근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장시간

노동관행에 대해 규제하면서 일가정양립 문화를 확산시켜 나갈 것을 강조

하고 있어 긍정적 변화가 기대된다. ‘일’ 중심 문화와 장시간 노동관행 해

소는 남성 1인 생계부양자 역할에서 벗어나 사적영역으로 시간을 분배시

키고 남성들의 삶에 균형점을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

여야 비로소 남성을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인 ‘맨박스(MAN BOX)’2)로부터

탈출을 도울 수 있고, 새로운 남성성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MAN BOX’는 ‘남자다움’으로 상징되는 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을 의미하는

것이다. 저자이자 ‘행동하는 남성들 A Call To Men’의 공동설립자인 토니 포터는 비

교적 열린 성의식을 가진 미국에서조차 남성에 대한 성역할은 여성의 그것과는 다

른 의미로 보다 폭넓게 강요되어 왔다고 주장하면서, 남성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맨박스를 깨부수고 탈출해야만 남성에 의한 여성폭력을 멈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포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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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103

3. 대구지역 기혼남성의 인식 변화와 가사・육아 참여 실태

1) 조사대상자 및 연구방법

대구 남성들의 가사 육아 참여 실태와 돌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살펴보

고 새로운 남성성의 등장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육아기에 있는 기혼남성

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조사를 진행하였다. 심층면접을 실시한 것은 남성

들의 가사 육아 경험에 내재된 복합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이러한 현상이

남성 자아 및 남성성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데 적절하

기 때문이다. 조사대상자는 전통적으로 규정된 남성성을 답습하기보다는

변화하는 남성성을 기대하면서 불평등한 돌봄에 문제의식을 지닌, 일정정

도 성평등 감수성을 가진 남성들을 선별적으로 표집 하였음을 밝힌다.

조사대상자는 모두 10명으로 대구에 거주하고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

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기혼남성이다. 자녀의 연령을 제한한 것

은 현행 법규상 육아휴직이 가능한 범위이고, 가사 육아에 따른 돌봄 요

구가 집중되는 시기로 남성들의 돌봄 실태를 파악하기 용이한 장점 때문

이다. 조사대상자의 연령은 30대가 6명, 40대가 4명이다. 직업군은 공무

원 1명, 제조업 2명, 건설업 1명, 시민단체 상근자 1명, 유통 영업직 3명,

자영업 1명, 전문직 1명이다. 자녀가 한명인 남성은 2명, 두 명은 5명, 세

명은 3명이다. 취업 중인 아내는 5명으로 공무원, 교사, 시민단체 상근자

등의 직업군에 있으며, 나머지 5명은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전업주부이다. 조사대상자 중 2명은 대구일가정양립지원센터의 ‘신통남

프로젝트’교육에 참가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는 주변 지인들을 통

해 가사 육아에 적극적이고 성평등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고 평

가되는 남성들을 추천받았다. 추천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돌봄의 불평

등에 문제의식을 가진 남성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사대상

자 중 현재 육아휴직 중인 남성이 1명 포함되어 있고, 아내가 육아휴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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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에 있는 남성도 2명이 있다. 조사는 2017년 4월부터 7월까지, 주로 조사대

상자의 집 근처 카페에서 퇴근 후 야간 시간을 이용하였다. 남성들의 동

의를 얻어 녹취한 뒤 풀어쓰기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전체 내용을 손상

하지 않은 범위에서 사투리를 표준어로, 조사 어휘 등을 수정하였다.

조사대상자는 조사에 앞서 가사 육아는 여성의 몫이 아니라 남성과 함

께 공평하게 나누어 분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데 공감하고 동의하였다.

그리고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스스로를 기존의 전통적인 대구 남성들과는

다른, 우리 사회에 성평등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가족 안에서 돌봄을 평등

하게 나누는 것이 가족구성원의 행복을 높일 수 있다고 입장을 취했다.

직업군 번호 나이자녀 수

(성별/나이)직장규모/하는 일

아내 직업

공무원 사례1 35세 3명(딸6, 딸4, 아들2)

초등교사(육아휴직 중) 교사

제조업

사례2 35세 1명(아들2)

300명/재무관리

연구원(육아휴직 중)

사례3 36세 2명(아들3, 딸1)

60명/품질관리

교사(육아휴직 중)

건설업 사례4 36세 2명(딸4, 아들2)

24명/건설회사 경영자

공무원

시민단체 사례5 49세 1명(딸5)

1명/NGO단체 상근

NGO단체 상근

유통, 영업직

사례6 39세 2명(아들8, 딸4)

300명/제약회사 영업팀

전업주부

사례7 41세 2명(딸10, 딸7)

240명/외국기업 세일즈팀

전업주부

사례8 38세 3명(딸8, 아들7, 딸3)

33명/물류회사 유통팀

전업주부

자영업 사례19 42세 3명(딸10, 아들8, 딸5)

식당(레스토랑) 전업주부

전문직 사례10 42세 2명(딸10, 딸7)

20명/컴퓨터 프로그래머

전업주부

<표 1> 조사대상자 일반적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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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105

2) 연구결과

(1) 변화하려는 남성, 가로막는 기존체계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가장 성평등한 직업군을 꼽으라면 공무원, 특히

교사라는 응답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유는 성별 임금격차가 존재하지 않

고, 여성대표성 제고를 위해 일차적 요구를 받고 있어 개선이 불가피한 직

업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육아휴직 사용 등 일가정양립제도 활용 실적

이 기관 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적극적인 사용을 독려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막상 일가정양립제도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는 일

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남성은 여전히 특수한 상황으로 이해

되기 때문이다. 부부교사인 사례 1)의 경우도 아내의 육아휴직은 주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나, 본인의 육아휴직은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

였다. 여성이 육아를 더 잘한다는, 더 잘할 수 있다는, 더 적합하다는 육아

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차별적인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성별화된 돌봄의 고정관념이 남성 교사들의 육아휴직을 특수한 상

황으로 몰아가 자유로운 선택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남성 개

인의 변화는 빠른 반면, 사회적 통념이 더디게 작동하기 있기 때문이다.

지금 육아휴직 2년째 접어들었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끝냈을 때,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아내도 좋아했다. 하지만 육아휴직 말을 꺼냈을 때, 상

사들은 헛웃음만 짓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있었다. 진급에 대한 욕심이 없느냐

고. …힘들지만 재미있을 때도, 행복할 때도 많다. 내가 육아휴직 하는 것을 보

고 친구(남성)도 얼마 전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 친구는 처음에 주변의 반

대 때문에 육아휴직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사례 1)

사례 2)는 결혼 전 세 명의 자녀를 갖기로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첫아이를 낳고 부부 모두 마음이 바뀌어, 셋은 전혀 생각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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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둘째를 갖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였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례 2)는 TV를 통해 남성들의 육아휴직이 증가한다는 보도를 접

하고 직장상사에게 육아휴직 가능여부를 질문하였는데, 상사의 반응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회사설립 후 지금까지 30여 동안 남성 육아

휴직자는 단 한명도 없었으며, 가능여부를 공식적으로 질문한 사람도 없

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육아휴직)’을 할 수 있으며, 남자가 ‘그

런 생각’을 갖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

다. 동료들 역시 ‘괜히 위(상사)에 찍히기만 할뿐, 어차피 안 될 일이다’고

말렸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이 아직도 남성들에게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

들의 선택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인식체계를 그대

로 답습하려는 조직문화의 경직성과 더딘 수용성이 변화하려는 남성들을

위축시키거나 가로막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이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회사에 내부적으로 일가정양립 규정이 있지만, 남자가 사

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혼하기 전에는 (육아가 힘든지)몰랐다.

…남자도 육아휴직 할 수 있다고 해서, (회사에)물어본 적 있는데, 말이 되는 소

리냐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이상하게 보았다. 누군가는 유리천장을 깨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아직 중소기업은 그런 분위기(남성 육아휴직)가 아니

다.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례 2)

사례 4)는 자영업자로 공무원인 아내에 비해 출퇴근이 자유롭다. 그래

서 가족들의 아침식사 준비, 유치원 등하교 등이 자연스럽게 본인의 몫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자가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졌으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행복감도 증가했다고 한다. 사례

4)는 더 많은 남성들이 육아의 행복을 체감하고, 육아에 참여하려는 남성

들이 늘어날 때, 변화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 것으로 보았다. 그러기 위해

서는 남성들에게 육아 경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사례 4)는 ‘우리 쪽(대구) 남자들이 바뀌면 우리나라가 다 바뀔 거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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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107

면서 대구 남성들은 뼛속까지 ‘경상도 남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하였

다. 그래서 남성들의 가사 육아 참여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남자들 사이에서도 아직은 감춰야 할 이야기라고 말하였다.

아내가 아침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아침식사와 아이들 유치원, 학교는 내가 데려

다준다. 한번은 아이들과 공원에 놀러 갔는데,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 순간 행

복감을 느꼈다. 그런 경험이 있으면, 육아나 가사가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 요즘

은 인터넷에서 보면 남자들도 가사육아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사실 많다.

그런데 시간이 없고, 어른들이나 주변 시선이 별로 좋지 않아서 용기를 내지 못

하는 것이다. (사례 4)

시민단체 활동가로 근무하는 사례 5)는 부부는 평등해야 하므로 가사

육아를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성별화

된 사회구조와 부딪히면서 견고한 가부장성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고

하였다. 사회구성원 개인의 변화 속도와 달리 지역사회가 가진 인식체계

의 구조적인 모순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성별화된 인식구조

는 간신히 변화를 시도하려는 남성들을 멈추게 하거나 오히려 강한 가부

장성으로 무장하게 만드는 위험요인이다.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하게 남

아 있는 지역사회에서 남성들의 가부장성 획득은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주어질뿐더러 칭송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성성의 변화에 긍

정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은 사례 5)와 같이 성별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

하면서 ‘힘들이는’ 남성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한 부부는 결혼 전부터 원하던 것이다. 아내가 산후조리를 집에서 했는데,

내가 1달 휴가를 냈다. 아내보다 내가 일찍 마치는 날이 많아 딸을 데리러 유치

원에 며칠 계속 가면 유치원에서 ‘엄마가 무슨 일 있나’고 물어본다. 이런 말들이

남자들을 위축하게 만든다. 남자들은 변화하려고 하는데 사회 변화가 느리다.

…유치원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것 같다. 아이가 집에 와서 ‘아빠다리’

하면서 다리를 벌리고 앉고, ‘엄마다리’ 하면서 다리를 모으고 앉아 놀랐던 적이

있다. (사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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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2) ‘옛날 남자’와 다름을 인정받고자 하는 ‘요즘 남자’

가사 육아는 부부가 함께,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남성

을 선별하여 조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면에는 성역할 고정

관념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돌봄을 실천하려는 남성들의 변화

가 남성 스스로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버지 세대와 구분함으로써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남성으로 가족에게,

여성에게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사례 8)과 사례 10)은 ‘요즘 대

구 남자’는 더 이상 지역의 전통적이라는 무뚝뚝한 남자가 아니라고 항변

하면서 모든 남자들을 동일하게 묶지 말기를 부탁하였다. 특히 사례 8)은

홑벌이이지만 퇴근 후에는 가사 육아를 아내와 공평하게 나누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자신의 직장생활도 힘들지만 아내도 그 시간동안 가사 육아

로 힘들기 때문에 퇴근 후 혹은 주말 휴일은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업주부의 가사 육아를 남성들의 직장생활과 동일하게 인정하

는 남성들이 등장하고 있음은 과거와 분명 다른 현상으로 이해된다. 사례

10) 역시 ‘요즘 남자’ 특히 최근 결혼하는 남성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대구 남자가 무뚝뚝하다고 하지만, 많이 바뀌었다. 퇴근 후 가사육아는 공평하

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피곤할 때는 좀 쉬고 싶다. 맞벌이가 아니니 아내가

가사육아를 좀 더 많이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내도 낮에 거의 쉴

수 없으니 이해한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아내도 애들 때문에 쉼 없이 일하

고 있지만, 나도 밖에서 쉼 없이 일하고 있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

아버지께서 보셨다면 말세라고 하실 것이다. (사례 8)

우리 아버지 세대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바뀌었다. 요즘 남자는 옛날 남자와 많

이 다르다. 옛날 남자들에게는 ‘어디, 여자가’라는 말이 자연스러웠다. 요즘 그런

말은 생각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사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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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역의 ‘일’ 중심 문화와 충돌하는 새로운 남성성

대구는 가부장적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가부장

적 이미지는 남성들의 장시간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몰아가고, 성공이라

는 ‘기회 울타리’에 편성하려는 남성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증폭되어 ‘일’

중심 문화를 만들어 낸다. 남성들의 장시간 노동은 심각하다. 성지혜

(2017)에 의하면 취업 중인 기혼남성 5명 중 1명은 1일 평균 12시간 이상

일하고 있으며, 3명 중 1명은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남성의 69.4%는 주 1일 쉬거나 거의 쉬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타났

다. 지역의 ‘일’ 중심 문화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삶에도 전이되고 있었

는데, 하루 근무시간이 9시간 이상인 여성도 30%를 넘었으며, 11.6%는 정

해진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일과 가정의 균형이 어렵다는

응답자 중 남성의 96.8%, 여성의 68.3%는 가정보다 일에 치우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역의 ‘일’ 중심 문화는 남성뿐 아니라 여

성의 삶에도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았다. 조사대상자 역시 남성의 가사

육아 참여를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일’ 중심 문화가

바뀔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절대적인 시간 부족과 과중한 업무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가사 육아 참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 중심

문화로 대변되는 장시간 노동은 돌봄의 성평등 실현을 위해 반드시 풀어

야할 숙제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례 2)와 사례 3)은 직장에서의 장시간 노동으로

항상 피곤하다고 호소하였다. 잦은 야근이 성실함으로 대변되는 직장 문

화, 직장에서의 승진을 인생 성공으로 인식하는 ‘일’ 중심의 지역문화가 바

뀔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일’ 중심 문화가 변하지 않는다면 남성들의 돌

봄 참여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례 2)는 육아휴직 중인 아내의 일상적 힘듦

에 공감하고, 휴일에는 본인이 가사 육아에 전념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때로는 본인의 삶이 완전히 없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탄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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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다. 돌봄을 실천하려는 남성들을 응원하고, 여성과 남성 모두 육아의 즐거

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려면 육아기 부모의 노동시간에 대해 전환적인

합의를 이끌 필요가 있다고 본다.

출근 8시고, 퇴근 6시 30분이다. 집에서 7시 전에 출발하고, 퇴근하면 8시 정도

된다. 일주일에 4일 정도 야근이다. 아직은 야근하면 윗분이 열심히 일하네 라고

생각한다. 아내에게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같이 하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는 않

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그래서 휴일은 대부분을 내가 한다. 요즘 내 삶이 완

전히 없어지는 것 같다. (사례 2)

일주일에 4번 정도 야근하고 10시쯤 퇴근한다. 평일은 퇴근하면 애들은 거의 자

고 있다. 주5일 근무인데, 거의 주6일 일한다고 봐야 한다. 야근하면 피곤해서 집

에 오면 그냥 쉬고 싶을 뿐이다. 아내에게 미안해서 내가 쉬는 날은 아내를 쉬게

한다. 아이는 전적으로 내가 돌본다. (사례 3)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2,069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 평균 1,763시간보다 306시간 길고, 34개 회원국 중에서 2위이

다. 야근을 당연시하는 기업문화, 즉 ‘일’ 중심 문화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일’ 중심 문화는 1인 생계부양자 모델에 의존하는 가부장성에 기인한다.

가부장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대구에서 ‘일’ 중심 문화는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남성 역시 정형화된 사회 안에서 사회화되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강

인해야 한다는 남자다움의 규준을 이상적 자기개념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

다. 그러한 기준에 맞게 살아가도록 사회구조가 또다시 강요하고, 남성들

의 성역할 태도는 고정되고 남성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과 성공의 등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벗어나고 싶

어 하는 남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전통적인 가부장성이 가장 강하

고, 성역할 고정관념이 여전한 대구지역에서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고 하

겠다. 사례 10)은 대구 남성들이 특히 강하게 요구받는 ‘일’ 중심 문화에 대

해 남성의 삶을 억압하고 선택의 자유를 저해한다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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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111

일 때문에 주중에 집에 못 들어갈 때가 많다. 집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

대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일 중심이 강하고, 가족들이나 사회에서 남자들에게 승

진이나 수입 등 기대하는 것이 많다. 특히 돈을 많이 벌면 다른 건 다 이해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우리끼리 (대구)남자들이 남자역할을 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사례 10)

(4) 남성들에게 돌봄의 학습과 기회 제공

어떤 현상을 지속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의해버리면 그것의 변화

가능성을 상정할 수 없다. 돌봄을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여성이 가장

잘 한다는 인식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여성이 돌봄을 더 잘하는 것은 여

성이 돌봄 상황에 많이 노출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

다. 돌봄을 여성스러운 것이라고 간주해버리면 돌봄을 실천하는 남성은

여성적인 남성으로, 돌봄을 잘하지 못하는 여성은 남성적인 여성으로 규

정된다. 남성적인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여성적인 남성에 대한 사회

적 시선은 사뭇 다르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약간의 긍정적 평가도 얻기

어렵다. 남성성 변화의 초입단계에서 여성적인 남성은 남성 집단으로부

터 조롱당하거나 배척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소년들이

‘여성적인’ 행동을 보일 경우 호되게 처벌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부장

성이 공고하게 작동되고 있는 지역의 특성상 여성적인 남성으로 불릴 경

우에 뒤따르는 조롱과 비난은 충분히 예견된다.

이는 돌봄을 실천하려는 새로운 남성에게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남성됨을 상호 인정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 기존의 전통적 남성성이

새로운 남성성을 포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남성성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남성들을 어떻게 유지 확산시킬 수 있을까? 변화를 시도

하는, 시도하려는 생각을 가진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배려가 필요한 것

은 아닐까? 우선 돌봄에 서툰 남성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례 10)은 아

내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지만, 서툰 가사 육아로 매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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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불평하였다. 남성들이 가사 육아에 서툰 것

은 경험이 부족하기에 당연한 결과이다.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줄 필요가

있겠다. 사례 2)의 제안처럼 남성들이 가사 육아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가사도 육아도 어렵다. 여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자들이 못

한다고 야단치지 말고, 서툰 남자들에게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배울 수 있는 기

회도 다양했으면 좋겠다. (사례 2)

가사육아는 하고 싶은데도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휴일은 밥 청소

빨래 거의 내가 다 한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아내가 맘에 안 든다고 하지 말라

고 할 때가 많다. 아내가 좀 느긋해졌으면 좋겠다. (사례 10)

남성들에게 성역할 변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나성은

(2015)은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에 적극 동참하려는 남성들이 있음을 증명

하였다. 이들 남성들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는가 하면, 다양한 가족소통 행사에 동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

한 참여가 남성들의 태도나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성평등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하지만 ‘좋은 아

버지’가 되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씩 모여야 비로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좋은 아버지’에 참여하는 행동이 변화의 출발

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 10)의 주장과 같이 가사 육아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의 서툰 행

동, 어색함을 줄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봄에 익숙한 새로운 남성

성이 기존의 전통적 남성성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작은 하나

의 행동들을 응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례 3)과 사례 5)를 통해 돌봄을 배우려는 남성들이 있음을 확인하였

다. 남성들은 가사 육아에 대해 남성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지지

를 받으면서 배우고자 하였다. 돌봄에 대한 경험이 남성들의 인식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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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113

씩 바꿔가고 있다. 하지만 남성들의 돌봄 경험 공유가 반드시 돌봄을 더

잘하려는 배움의 의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다른 측면에서 해석가

능한데, 하나는 자신의 돌봄을 이야기함으로써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지

역의 남성들과 다름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즉 탈권위적이고 평등한

부부관계를 지향하는 ‘좋은 남편’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다른 하

나는 보수적인 지역사회에서 남성다움이 아닌 여성적이란 평가의 두려움

때문이다. 돌봄을 실천하는 동질의 남성 집단을 확인함으로써 배제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가지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는 새로운 남성성을 획

득하려는 남성들이 가진 내재적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을 실천하는 남성들이 점점 늘어나 다수의 집단이 형성된다면 변화는

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사 육아에 서툰

남성들이 서로 다른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가사 육아에 익숙해질 수 있

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돌봄을 실천하려는 새로운 남성성이 보편성

을 획득하기 위한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중은 많이 못하고, 주말에 종일 아이를 보니 쉽지 않다. 아내는 집안일 보다는

애들하고 많이 놀아주기를 바라는데,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면 애들이 지겨워한

다.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잘 모른다. 집 근처에 놀만한 장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아빠들끼리 모여서 아이들과 놀이도 배우고, 잘은 못하지만 서로 응원

해 주고, 서로 정보도 공유하는 그런 것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례 3)

4. 결론 및 제언

남성성은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시대와 장소의 변화에 상호

작용하면서 새롭게 형성되고 변형된다. 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따

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남성들은 권위적이고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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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적이며 공적영역을 독주하던 가부장으로서 남성성을 고집하기란 힘든 상

황에 처해 있다. 여성의 공적영역 참여 확대, 가족구성의 변화 등 공 사 영

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남성의 성역할에 대한 기대도 다양해지고 있

다. 실제로 남성들 사이에서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돌봄과 관련된 성별 고정관념은 아직 사회 곳곳에서 강하게 작

동되고 있다. 안숙영(2017)은 여성의 생애주기가 남성화되는 속도에 비해

남성 생애주기의 여성화는 느리게 진행된다고 분석했다. 사적영역에 속

했던 여성들이 대거 공적영역으로 몰려든 것과 달리 공적영역에 속한 남

성들의 사적영역 진출은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버지 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남성들이 등장하면서 전통적 남성성이 해

체되고 있음도 분명해 보인다(마경희 외, 2014). 과거에는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던 생활방식을 옹호하기도 하고, 사적영역에서 돌봄을 자

연스럽게 실천하는 남성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전통적인 가부장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대구지역에서 과연

새로운 남성성의 출현이 가능한지, 기혼남성들의 가사 육아 참여를 중심

으로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새로운 남성성의 긍정적 신호를

확인하였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의 남성이미지와 동일시를 거부하고, 돌

봄을 실천하는 새로운 이미지의 남성으로 호명되길 원하고 있었다. 하지

만 장애물도 만만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터뷰 참여한 남성들은 가사

육아는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진보적 성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가부장성이 남성들의 변화를 저지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도

록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새로운 남성성으로 변화하려는 남성들을

전통적 규범에 묶어두면서 가부장적 권위를 확산하고, 재무장시킬 수 있

기에 주의해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가부장성이 강하다는

지역에서, 소수이지만 남성들에 의해 성역할 고정관념의 경계를 허물려

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의미가 크다. 성평등 감수성을 지

닌 남성을 선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수용적 태도와 경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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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2호(2018.10.) 115

여성과 남성의 경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남성들은 돌봄에 참여함

으로써 경쟁사회에 지친 삶의 여유를 찾거나, 자녀를 돌보는 경험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했다. 이는 돌봄을 통해 가족을 보호

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남성적 가치를 재구성하려는 무의식적 반응으로

해석되며, 성역할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뿌리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은 새로운 남성성을 획득하려는 남성이 극소수에 불과하고, 남성성의 특

권을 유지시키면서 젠더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이 우세하다. 이는

돌봄이 남성의 삶을 감정적, 심리적, 신체적으로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한순간에 강한 가부장성으로 회귀할 위험이 도

사리고 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지배적인 남성성에 변화는 일어나고 있으며,

돌봄 지형의 균열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아직은 소수의 남성에 의한 움직임

이지만, 가부장성이 강하다는 대구지역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그 의미는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이 남성 스스로에 의한 자발적인 변

화인가, 남성들의 단순한 돌봄 참여로 돌봄의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가

등의 논의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남성들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드러내기를 시도하고, 새로운 남성성의 확산과 돌봄의 성평등을 연

계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남성들의 작은 변

화가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돌봄의 성평등 실현을 가능하게 만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남성성으로 변화의 발을 내

딛은 남성들이 위축되거나 기존 체계로 회귀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아직

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세한 환경에서 기존 체계로 회귀하여 강

한 가부장성으로 재무장한다면,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위협함은 물론이

고 지금까지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의 경험에 관심을 가지고, 남성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

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이들 남성을 활용한 새로운 여성주의 전략이 필요

한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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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이 연구는 불평등한 돌봄에 문제제기하면서 가사 육아에 적극 참여한

다고 자부하는 남성을 선별적으로 표집 하였기에 지역 남성들의 일반적

변화 양상으로 보기에 한계가 있다. 인터뷰 대상자를 찾기 어려웠던 것도

기존의 전통적 남성성이 지역 남성들의 일반적 성향임을 반증하는 것이

다. 하지만 가부장성이 가장 강하다는 지역에서 새로운 남성성의 출현에

긍정적 신호를 감지함으로써, 돌봄의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젠더 체계의 변

화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향후 돌봄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의 전통적 남성성을 허물어뜨리는 사례 연구

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젠더 경계를 무너뜨리는 남성들의 새로운 경험들

을 축적함으로써, 성별화되고 불평등한 젠더 권력에 평등이라는 희망이

전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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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남성들의 돌봄 참여 실태와 남성성의 변화 양상

Abstract

The actual condition of caring participation and the changing aspect of masculinity

- Focusing on housework and child care of married men in Daegu -

Sung, Ji-Hye(Daegu Women & Family Foundation)

Work-life balance is a social issue and a political topic recently. It means a balanced life between work, family life and leisure time. In order to do it, gender inequality of caring have to be solved and gender consciousness in daily life ought to be raised. Daegu is estimated for having a severely conservative and patriarchal propensity beside other area. The family value of patriarchy is on a firm basis and sex role stereotype still remains strong. It means there has not much caring participation in men and unequal caring is as before. However, a new masculinity that rejects identification with traditional one as conservative, patriarchal and authoritarian is emerging in Daegu as well. The study takes note of changing masculinities in this area and observes the actual conditions of caring participation and changes in perception of men who want to be named new man by breaking with traditional manhood. The research shows that the new men intending to practice an equal caring are daunted by a stigma attached to be unmanly or return to a severely patriarchal masculinity over conflicting with traditional manhood. Nevertheless, it is essential to changes into the new masculinity and jumping on the bandwagon quickly to transform of images in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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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Condition of caring, masculinity, gender inequality, work-life balance

❙투 고 일 : 2018년 8월 17일

❙최초심사일 : 2018년 9월 28일

❙게재확정일 : 2018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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