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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연구 질병&백신 2020. 7월호 2020. 7월호 346 346 오 현 석 수의사 (주)중앙백신연구소 돼지열병 생마커백신 개발의 역사 CSFV Flc-LOM-BE rns 프로젝트【1】

돼지열병 생마커백신 개발의 역사 · 2020-07-24 · cDC3: 일반적 수지상세포(cDC, Conventional dendritic cell), B4: B세포(B cell), NK5: 자연살해세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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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돼지열병 생마커백신 개발의 역사 · 2020-07-24 · cDC3: 일반적 수지상세포(cDC, Conventional dendritic cell), B4: B세포(B cell), NK5: 자연살해세포(NK,

집중연구

질병&백신

2020. 7월호2020. 7월호346346 3472020. 7월호

오 현 석 수의사

(주)중앙백신연구소

돼지열병 생마커백신 개발의 역사

CSFV Flc-LOM-BErns 프로젝트【1】

Page 2: 돼지열병 생마커백신 개발의 역사 · 2020-07-24 · cDC3: 일반적 수지상세포(cDC, Conventional dendritic cell), B4: B세포(B cell), NK5: 자연살해세포(NK,

2020. 7월호2020. 7월호346346 3472020. 7월호

1. 도야지고레라

1947년 봄, 서울 서대문의 불이농원.

다시 한번, 온몸의 기운을 짜내 사지에 힘을 불어넣는다. 누워서 팔, 다리만 버둥

거리는 꼴이 애처롭다. 시선은 물과 먹이를 향하고 있으나 도무지 다가가지 못한다.

고열에 시달리다 쓰러진 이 돼지는 이미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

2주 전. 그 녀석들은 장터 식당에서 내다 버린 음식물 찌꺼기에 뒤섞여 돼지우리 뜨물

통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그들은 쩝쩝 대는 소음 속에서 돼지의 구강 안쪽으로 침투한

다. 그러나 소화기계의 초입에는 편도(tonsil)가 우뚝 솟아 있다. 상피세포로 에워싸인 외곽

과 면역세포가 빼곡하게 들어찬 내부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연상시킨다. 중력에 떠밀려 무

모하게 뛰어든 녀석들의 대다수는 단단한 벽에 부딪치고 튕겨져 거친 물살에 떠내려간다.

운 좋게 골짜기(crypt)에 떨어진 녀석들은 장대한 기골을 가진 대식세포(macrophage)

와 마주한다. 대식세포는 면역계를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주요 장기에서 상주하거나 혈관

통로를 따라 순찰을 도는 면역세포다. 병원체(pathogen)의 침입이나 동료 세포의 괴사

(necrosis)를 인지하면, 그 즉시 전시체계를 발동시켜 사건 현장으로 면역세포들을 소환

하고 작전수행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이 과정에서 숙주(host)는 발적, 종창, 발열, 통

증, 기능장애를 경험하는데, 이를 염증반응(inflammation)이라고 부른다. 곧 대식세포에게

발각된 침입자들은 녹아내리고 일시적인 소동은 해소되어 평소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적은 달랐다. 이 녀석들은 유전자 변이로 획득한 각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

다. 대식세포에게 삼켜진 이후에도 소멸은커녕 오히려 그 내부에서 고성능 유전자 3D 프

린터를 탈취해 자신들의 유전자를 카피한 후손들을 출력한다. 또한 감염된 대식세포는 대

량의 염증성 사이토카인(pro-inflammatory cytokine)을 분비하여 주변을 가득 메운다. 독

인지 약인지는 용량에 따라 결정된다. 적정량의 사이토카인은 면역계를 활성화하는 필수

물질이지만, 과잉 생산은 면역계를 혼란 속에 빠뜨린다. 대식세포 주변은 혈관에서 누출

되는 용액으로 인해 홍수가 난다. 돼지의 체온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그 대단한 먹성도 사

그라든다.

사이토카인 신호를 쫓아 헤엄쳐 온 ‘형질세포양 수지상세포(pDC, plasmacytoid

dendritic cell)’도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이다. 온 신경을 인터페론-알파(Interferon-alpha)

조립에 집중하고 있다. 이 신호단백질은 바이러스의 침략에 맞서 세포들의 자살을 유도하

는 기능을 한다. 탈 수 있는 물질을 미리 태워버리는 것처럼 감염될 수 있는 세포를 미리

제거하여 바이러스의 증식과 전파를 막는다. 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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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월호348 3492020. 7월호

무서운 전략이다. 미리 대기 중이던 줄기세포들은 각각의 기능세포들로 분화하여 죽어

간 이들의 공백을 메운다.

비판 없는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평상시 작업량을 아득히 초과하여 무언가 의심

할 만도 한데, 멈춤 사인(sign)을 받지 않은 pDC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결국 과도한 인

터페론-알파 합성으로 인해 자살하는 림프구 수가 태어나는 림프구 수를 한참 초월하

고 말았다. 숙주(돼지)는 ‘림프구감소증(Lymphopenia)’에 걸렸다. 면역체계가 일시적으

로 붕괴된 것이다. 긴급상황이다. 지금 병원체의 공격을 받는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이다. 희귀한 난치병 치료가 특기인 미드의 주인공 ‘닥터하우스’도 이것 만큼은 손 쓸 도

리가 없다. 어제 본 에피소드에 출연한 환자는 방사선 물질 중독으로 면역계가 망가지

는 바람에 감염성 질병으로 무기력하게 사망했다. 지금까지 닥터하우스가 못 고친 환자

는 처음 봤다!

“참 별일도 다 있네. 우리 집 도야지가 먹을 걸 마다하고.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야.”

“여보, 어디가 안 좋은 거 아닐까요? 몸에 열도 좀 있는 것 같아요.”

“감기라도 걸렸나 보지, 뭐.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2~3일 저러다

말겠지, 뭐.”

의도된 위기 상황에서 바이러스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 대식세포에서 1차 증식

을 마치고 나온 녀석들은 인근의 림프관에 흡수되어 림프절(lymph node)로 이동한다.

이곳은 본래 면역 세포들로 구성된 일종의 군인 양성소, 수지상세포가 분석한 침입자의

정보를 넘겨받아 맞춤형 공격을 해야 하나 전투요원인 림프구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수세에 몰리고 나니 전신에 두루두루 발달된 림프계와 혈관계는 오히려 적군의 침투

경로로 악용된다. 바이러스가 각 내부 장기들(organ)로 뻗어 있는 도로망을 따라 쏜살

같이 퍼져 나간다. 체내 진입 24시간 만에 비장, 파이어 판(Peyer’s patch), 림프절, 흉

선, 혈관내피세포, 골수, 순환림프구까지 도달한다.

72시간이 지나자 바이러스는 이곳을 떠나 또 다른 숙주를 찾아 나설 채비를 마친다.

콜로니 개척임무를 맡은 바이러스들은 침, 콧물, 분뇨, 등에 몸을 숨기고 바깥세상으로

낙하한다. 그 사이, 췌장, 뇌, 심장, 담낭, 침샘, 부신, 갑상선, 간, 신장의 저지선도 뚫린

다. 꼼꼼한 녀석들은 피부조직도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 케라틴 세포, 모낭 상피세포, 중

간엽세포도 희생양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신의 장기들이 망가지고 고유의 기능을

상실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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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발버둥칠 기력도 없다. 다음 생을 기약하며 눈을 감는다. 바닥에는 돼지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다. 피부와 근육이 절개되어 열린 공간으로 핏빛 내장들이 빠

져나와 흘러나와 있다. 조금 전 폐사체를 부검한 모양이다.

“목구멍 편도에 자리잡은 이질적인 질감과 색깔의 조직들,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

붓기가 보이는 림프절, 혀 모양의 가장자리를 따라 검정색 얼룩무늬가 생긴 비장.”

가축위생연구소 돈역팀에서 급파된 스물네살 청년 수의사의 얼굴은 화사한 컬러

로 물든 풍경과 대비되어 더욱 어둡고 창백해 보인다. 그는 한참의 무거운 침묵을

흘려보낸 다음 앙다문 입술을 뗀다.

“돈콜레라가 의심

됩니다!”

“빨리 관청에 신고

부터 합시다!”

pDC1 : 형질세포양 수지상세포(pDC, Plasmacytoid dendritic cell), MΦ2 : 대식세포(MΦ, Macrophage), cDC3 : 일반적 수지상세포(cDC, Conventional dendritic cell), B4 : B세포(B cell), NK5 : 자연살해세포(NK, natural killer cell), CTL6 : 세포독성T림프구(CTL, Cytotoxic T lymphocyte)

A. 실패 시나리오(검은색). pDC1와 MΦ2가 사이토카인(IFN-α, IL-1β, IL-6, TNF-α, PGE2)을 과잉 생산할 시 림프구 감소증과 소실, 흉선과 골수 위축, 림프구 무반응과 자살로 이어짐. 숙주는 병원성 반응을 보임.B. 성공 시나리오(회색). pDC1와 MΦ2가 적정량의 사이토카인(IFN-α, IL-1β, IL-6, TNF-α)을 생산하면, cDC3가 Th와 연계하여 IFN-γ를 분비하고 CTL, NK, B가 활성화됨. 정상적인 세포성 면역과 체액성 면역(중화반응)이 작동하여 바이러스에 대항함.

〈출처 : Summerfield, A., & Ruggli, N. (2015). Immune responses against classical swine fever virus: between ignorance and lunacy.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 2, 10.〉

(그림 1) 면역계의

급성 돼지열병바이러스

수비 전략,

실패 시나리오(검은색)와

성공 시나리오(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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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월호350 PB2020. 7월호

영수네 집 돼지가 죽었다. 순자네

집 돼지도 죽었다. 서울 시내 집집마다

한탄과 원망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이듬

해 봄부터는 다른 지방들에서도 비보

가 날아든다. 공식적으로 118,000여두

가 돼지열병(CSF)에 걸렸다. 남한의

첫 CSF 발병기록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해 우리나라 돼지의 절반이 죽었다고 한다.

* 도야지고레라(돼지콜레라)는 돼지열병의 옛 이름이다.

☞ ‘CSFV Flc-LOM-BErns 프로젝트【2】’로 이어집니다.

■ 참고문헌

1. 한국수의인물사전 29, 돼지열병 방역에 크게 기여한 ‘박동권’ 수의사. (2018. 11. 15).

데일리벳.

2. 김봉환(2001.2). 우리나라의 돼지콜레라 발생역사와 근절정책평가. 월간양돈.

3. Classical Swine Fever. (2015.10). Retrieved from

http://www.cfsph.iastate.edu/Factsheets/pdfs/classical_swine_fever.pdf.

4. Summerfield, A., Knötig, S. M., & McCullough, K. C. (1998). Lymphocyte

apoptosis during classical swine fever: implication of activation-induced cell death.

Journal of virology, 72(3), 1853-1861.

5. Summerfield, A., & Ruggli, N. (2015). Immune responses against classical swine

fever virus: between ignorance and lunacy.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 2, 10.

6. Malik, Y. S., Singh, R. K., & Yadav, M. P. Emerging and Transboundary Animal

Viruses.

7. Blome, S., Staubach, C., Henke, J., Carlson, J., & Beer, M. (2017). Classical

swine fever—an updated review. Viruses, 9(4),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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