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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월호 354 1. 1981년 독일로 향하다. ‘고기는 냉장고에’라고 쓰인 아크릴 팻말이 아무것도 진 열되어 있지 않는 쇼케이스 앞에 부착되어 있고, 가게 안 으로 들어서면 시뻘건 불빛에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아저 씨가 손님을 맞는다.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 하면 냉동고 안에서 꽁꽁 언 고깃덩어리를 꺼내다가 비닐 필름을 벗겨 내고 냉동 육절기로 얇게 썰어 시커먼 비닐봉지에 담아 주 었다. 1970년대 말 우리나라 정육점의 모습이다. 1981년 6월 21일, 내일이면 독일행 비행기를 올라타야 하는 날이었다. 두려움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 일의 육가공회사에 기술연수생으로 파견되는 행운을 얻어 6개월을 기다리다 드디어 출국하는 날이 다가왔다. 같은 과 조교를 하던 친구에게 부탁했다. “지금 내 발이 떨어지 지 않아 도저히 내일 공항에 나가질 못하겠다. 내 엉덩이 에 몽둥이찜질을 좀 해 주렴.” 퍽~ 퍽~ 으윽! 붉은 머리 파란 눈을 가진 독일 친구들과 함께 육가공장 에서의 연수생활이 시작되었다. 새벽 6시에 출근하여 하 Pork Line Pork Line 유통·소비정보 유통·소비정보 임 성 천 식육마이스터 (주)휴먼메쯔거라이 대표이사 훔메마이스터슐레 교장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식육 마이스터가 탄생하기까지 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1】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식육 마이스터가 탄생하기까지 · 2020-06-26 · 354-358 포크라인-임성천.indd 355 2020-05-20 오후 7:28:05 356 2020. 6월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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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월호354 3552020. 6월호

1. 1981년 독일로 향하다.

‘고기는 냉장고에’라고 쓰인 아크릴 팻말이 아무것도 진

열되어 있지 않는 쇼케이스 앞에 부착되어 있고, 가게 안

으로 들어서면 시뻘건 불빛에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아저

씨가 손님을 맞는다.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 하면 냉동고

안에서 꽁꽁 언 고깃덩어리를 꺼내다가 비닐 필름을 벗겨

내고 냉동 육절기로 얇게 썰어 시커먼 비닐봉지에 담아 주

었다. 1970년대 말 우리나라 정육점의 모습이다.

1981년 6월 21일, 내일이면 독일행 비행기를 올라타야

하는 날이었다. 두려움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

일의 육가공회사에 기술연수생으로 파견되는 행운을 얻어

6개월을 기다리다 드디어 출국하는 날이 다가왔다. 같은

과 조교를 하던 친구에게 부탁했다. “지금 내 발이 떨어지

지 않아 도저히 내일 공항에 나가질 못하겠다. 내 엉덩이

에 몽둥이찜질을 좀 해 주렴.” 퍽~ 퍽~ 으윽!

붉은 머리 파란 눈을 가진 독일 친구들과 함께 육가공장

에서의 연수생활이 시작되었다. 새벽 6시에 출근하여 하

Pork Line Pork Line

유통·소비정보 유통·소비정보

임 성 천 식육마이스터

(주)휴먼메쯔거라이 대표이사훔메마이스터슐레 교장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식육 마이스터가 탄생하기까지

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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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월호354 3552020. 6월호

루 종일 돼지창자에 담겨 쏟아져 나오는 한 뼘 길이의 소시지를 알루미늄 스틱에

거는 일만 했다. 처음 6개월 내도록.

주 5일 근무를 마치고, 토요일이 되면 시내 구경삼아 장이 서는 시청 앞 광장으

로 나가곤 했다.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각종 농산물과 수제 육가공품, 낙농품 등을

트럭이나 트레일러에 가득 싣고 나왔다. 바글거리는 인파 속을 헤집으며 둘러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눈요기를 했다.

직업을 속일 수는 없었던지 가장 눈에 들어오는 상점은 ‘메쯔거라이’였다. 독일

식 정육점 메쯔거라이! 쇼윈도우 역시 냉장 쇼케이스에 생전 처음 보는 ‘슁켄’이라

불리는 생햄들과 건조발효 소시지인 살라미들이 예쁘게 데코레이션되어 있었고,

각양각색의 치즈와 과일 잼 같은 병조림들도 있었다.

2.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의 모습

상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육상품이었다. 소고

기와 송아지고기, 그리고 돼지고기 순으로 지방이 하나도 없는 채로 덩어리째 쟁

반에 담겨 있었다. 이어서 1인분씩 포션 커팅하여 올리브오일에 재웠다가 쟁반에

진열할 때 표면에 데코시즈닝을 뿌려 놓은 조미 스테이크들과 함부르거 스테이크

나 미트볼 같은 분쇄육 제품들도 보이고, 소·돼지·닭고기에 고운 빵가루를 입

힌 슈니첼(돈가스류)도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길쭉길쭉한 모양의 훈연소시지들이 쟁반에 가득 쌓여 있는가 하면, 겉

이 하얀 구이용 소시지들도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순대처럼 생긴

▲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의 다양한 제품들▲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의 다양한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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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룻부어스트와 돼지 간으로 만든 레버부어스트, 그리고 예쁜 단면을 자랑하는 젤

라틴 소시지로서 슐체부어스트들도 눈길을 끌고 있었다.

쇼케이스 뒤쪽으로는 식빵처럼 생긴 플라이쉬케제류가 대여섯 가지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얇게 슬라이스한 콜드컷류로서 비어슁켄, 약드부어스트, 볼로나부어스

트, 슁켄부어스트 등이 쌓여 있어 손님이 원하는 만큼만 긴 포크로 찍어 포장해

주고 있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들어오며 보았던 건조발효 소시지로서 살라미, 세르발랏부어

스트, 란트예거 등과 함께 슁켄스펙, 누스슁켄, 락스슁켄, 크녹큰슁켄, 슈바이네

바우흐 등의 생햄과 베이컨들이 새빨간 색깔을 자랑하며 진열되어 있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치즈들과 함께 신선한 채소와 햄이나 소시지 조각들

이 섞인 햄·샐러드들이 놓여 있었고, 그 옆칸은 온장 쇼케이스로서 금방 구워 내

어온 따뜻한 메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임비스’라 불리는 간편식사 코너였다.

‘슈니첼’이라 불리는 돈가스도 튀겨져 있었고, 두툼하게 썰어 팬에 살짝 구운 플

라이쉬케제와 무첨가 구이용 소시지 브랏부어스트들도 구워져 있었다. 갈아 낸 고

기에 양념하여 손으로 주물럭거린 햄버거의 원조라는 후리카델렌 메뉴도 보였다.

이 고기 메뉴들은 모두 한결같이 접시에 독일식 양배추김치라는 사우어크라우와

오븐구이 감자가 함께 담겨져 한 끼 식사가 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에서는 정육상품뿐만 아니라 비가열 양념·분

쇄육제품과 햄·소시지·베이컨 등의 가열 육제품들이 다양하게 진열·판매되었

고, 이 육제품들을 이용한 즉석 메뉴들까지 조리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1981년도 독일 정육점의 모습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독일 육가공회사의 기술연수생

으로 현장에서 혹독한 실습생활을 견뎌내면서 ‘내가 이 기술을 배워 무엇에 쓸 것

▲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의 모습▲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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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내가 여길 왜 왔지?’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어

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육점을 독일의 메쯔거라이처럼 바꾸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그 답을 얻는 것은 너무

도 쉬웠다. ‘그래, 독일의 식육 마이스터가 되자’, ‘독일 마이스터의 기술로 우리나라에

서 독일식 메쯔거라이를 성공시키고, 그 성공 노하우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자.’

3.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식육 마이스터의 탄생

그리하여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앞서 연수생으로 나와 끝내

고 나서는 대부분 독일 대학에 진학하여 박사학위 과정을 선택했던 선배들과 달리 독

일의 직업학교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여 16세 나이에

들어가는 학교였다. 10살이나 어린 동생뻘 되는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하루를 학

교에 모여 이론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주중 4일은 메쯔거라이나 육가공회사에 견습

생으로 취업해 현장에서 실기훈련 과정을 이수하는 일·학습 병행제 도제 양성 프로

그램이었다. 이렇게 3년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시험으로서의 ‘도제 자격시험’에 합격을

해야 졸업과 동시에 도제자격을 취득하는 시

스템이었다.

당시엔 도제자격을 취득하고, 또 다른 마이

스터 밑에서 3~4년간의 도제학습 기간을 거

쳐야 마이스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도제자격을 취득한 채 제일제당 백설햄에

특채되어 귀국하였고, 3년 동안 신제품 개발

담당으로 근무하며 도제학습 기간을 이수했

다. 그 후 1987년 2월,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

트에 위치한 식육전

문학교 마이스터 시

험 준비과정에 입학

하여 2개월간의 담금

질을 통과하여야만

했다. ▲1984년 도제시험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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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월호358 PB2020. 6월호

처음 1개월은 시험과목에 대한 이론교육을 시행하면서 중간중간에 지정된 메쯔

거라이에 나가 실기시험을 보았다. 돼지지육 2분체를 1시간 내에 모두 발골하고,

각 부위별로 진열상품이 되도록 정형하기가 첫 번째 실기시험이었다. 이어서 소 전

지 4분체를 1시간 내에 뼈 한 마디 한 마디씩 모두 발골하여 정형해 놓는 것까지가

두 번째 실기시험이었다. 세 번째로는 마이스터가 보는 가운데 유화형 소시지 한

품목을 정하여 배합표 작성하기부터 원료 및 향신료 계량하기, 분쇄 및 세절·유화

하기, 충전하기, 훈연하기까지 시연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1개월은 한 달 내내 이론시험만 보는 것이었다. 전공이론에 해당하는 식

육학, 식품미생물학, 식육가공학, 전공수학 등과 법률·경제·경영에 해당하는 각

종 법규, 즉 헌법,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공정거래법, 근로기준법, 환경법, 식품

위생법 등과 재무제표 작성법, 원가계산 방법, 점포 마케팅, 판매 촉진 등…. 그리

고 직업교육학에 해당하는 청소년 심리학, 카운슬링 기법, 기술전수 기법 등 모두

30개가 넘는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한 사람의 온전한 수공업 분야의 자영

업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영역을 가르치고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1987년 4월 30일,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식육 마이스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03명 중 13등으로 호명되어 강단에 불려나가 시험위원장으로부터 마이스터 자격

증을 받아 들고는 뒤로 돌아서는 순간 앉아 있던 동료들이 동시에 모두 기립하여

축하의 박수를 쳐 주는 것이 아닌가? 까만 머리의 동양인은 나 한 명이었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평생을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 … ◇ … ◇ … ◇

마이스터가 되어 돌아온 2년 후 제일제당 백설햄을 나와 1989년 12월 올림픽선

수촌 아파트 상가에 ‘마이스터델리’라는 독일식 메쯔거라이를 처음 개설하였었던

이래, 지난 2018년 4월 강동구 명일동 소재 한국4-H회관 1층에 또다시 ‘마이스터

델리’라는 이름으로 신개념 정육점+레스토랑을 오픈할 때까지 근 30년 동안 모두

여덟 번의 도전과 실패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

로 ‘한국형 메쯔거라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 정육점을 모두 리모

델링할 필살기를 이제부터 독자들과 공

유하고자 한다.

상기 원고에 대한 궁금한 사항은

글쓴이에게 문의바랍니다.

☎ 글쓴이 연락처 : 010-2513-2844

문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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