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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 기획 기획 |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 2000년대 이전 총학 선거운동본부 (선본)의 정책자료집(공약집)은 공약 집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사회나 정권 비평에 가깝다. ‘공약’을 내걸기보다는 학생들에게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 하는 내용이었다. 박성현 전 학생처장 (1997.03.~1998.12. 재임)(통계학과) 은 “1997년, 1998년은 사회가 점점 민 주화되며 이전까지 성행하던 학생 운 동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2000년 제43대 총학 「광란의 10월」은 서울대 최초로 ‘비운동권’을 표방하며 당선됐다. 「광 란의 10월」은 정치적 견해보다는 셔틀 버스나 성적 처리 규정 등 학생들의 피 부에 와닿는 문제를 공략해 당선됐으 며, 이는 선본들이 학내를 겨냥한 공약 을 내놓는 시발점이 됐다. 한편 2002 년 제45대 총학 선거에서는 대다수 선 본이 복지 공약에만 치중해 정치색을 숨긴다 비판 받는 등 선본들의 정체성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높은 등록금은 2000년대 초반 학생들 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2002년에는 본 부의 상의 없는 등록금 인상 등에 항의 하며 제45대 총학 「에갈리아」가 총장실 을 점거하기도 했다. 등록금 개선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제46대 「원코 리아」 선본은 등록금 인상분을 학생들에 게 반환할 것을 본부에게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제50대 총학 선본 「+U」또한 등록금 상한제 입법을 촉구하는 등 등록 금 인상 반대 운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등록금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 이 유독 싸늘했던 이유는 수업료 외에 도 추가로 납부해야 했던 기성회비 때 문이었다. 기성회비는 교육 환경 개선 을 목적으로 학부모로부터 걷던 기금 에서 출발했지만, 이후에는 부족한 학 교 예산을 메꾸는 데 쓰였다. 기성회비 가 점점 인상되며 학생들의 원성도 커졌 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기성회비는 ‘제 2의 수업료’로 불릴 정도였다. 실제로 2000년 인문계열 기준 81만 원이던 기 성회비는 2006년 158만 원으로 증가했 고, 그 여파로 120만 원이던 전체 등록 금 또한 2005년 207만 원으로 5년 새 2 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학신문』 2006 년 10월 15일 자) 이미나 전 학생처장 (2004.08.~2006.07. 재임)(사회교육과) 는 “당시 수업료가 사립대에 비해 훨씬 낮았기 때문에 학교가 수업료만으로는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 했다”라며 “세금만으로는 부족한 예산 을 충당하기 힘들어 기성회비가 활용됐 다”라고 말했다. 서울대가 2011년에 법 인화된 후 기성회비는 폐지됐지만, 대신 수업료가 그만큼 인상됐다. 사회 문제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경향은 자연스레 운동권 학생회가 실제 학생 사회와 괴리돼 있다는 비판으로 이 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는 학생회’를 주창하는 선본들이 속속 등장 했다. 제43대 「IMPULSE 2000」선본은 각 자치단위의 목소리를 듣고, 위원회를 꾸려 형성된 의제를 공론화하는 제도인 ‘의제 워크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 치단위 밖 일반 학생들도 정책 설정에 참여시키기 위해 전체 학생 정책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당시 부후보 김경아 씨(식품영양학과·04·졸)는 총학 선거 후보자 간담회에서 “학생회 정책 을 투명하게 공개해 정책투표제에 부치 는 식으로 보완하겠다”라고 밝혔다. 인권 문제도 당시 총학의 과제로 대 두됐다. 특히 여성 인권은 대다수 선 본 공약집의 큰 줄기를 이뤘다. 제 43대「꼬뮤나르드」와「Democracia Desde Abajo」선본은 여성주의 학 생회로 나아갈 것을 약속했다. 제45 대「코페르니쿠스」 선본은 여성 교 수 할당제 도입을 주장했으며, 같은 해 다른 선본들 또한 공통으로 학내 반(反)성폭력에 앞장서겠다는 공약 을 냈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2000. 12.~2002.07 재임)은 “각종 학내 성폭 력 사건이 논란이 되자 이에 반발하며 반성폭력 풍토가 확산됐다”라고 말했 다. 당시 선본들은 여성 인권 문제를 학내에 가시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대책이 추상적이고 여학생에게 논 문 지도교수 우선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이 겉핥기식에 그쳤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당시 선본들이 사회 문제를 아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 사회 운동 에 집중한 선본이 선거마다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공동 선언으로 형성된 통일 분위기는 총학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43대 「IMPULSE 2000」 선본과 제44대 「민중과 함께 서울대의 맥박은 뛴다」 선본은 서울대·김일 성종합대 연합 축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학생 사회 관련 공약 없이 통일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공약집을 채운 선본도 있었는데, 제44대 「6·15 세대」 선본이 그 주 인공이었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사회 참여에 대한 선본들의 열의를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제48대 <Q> 제49대 <Suprise> 제50대 <Spotlight> 제51대 <실천가능> 제52대 <실천가능> 제53대 <Action Again> 제54대 <레디, 액션> 길과 회, 2000 2001 2002 2003 2004 제43대 <광란의 10월> 제44대 <발칙한 상상> 제45대 <에갈리아> 제46대 <학교로> 제47대 <학교로, 다시 쓰는 이야기> 투, 은 ‘쎄’?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제55대 <서포터즈> 제56대 <디테일> 제57대 <디테일> 제58대 <디테일> 제59대 <U> 제60대 <파랑>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선본들의 성 격은 더욱 다양해졌다. 여전히 사회 비판에 주력하는 운동권 선본이 있는 가 하면, 생활 밀착형 공약에 몰두한 비운동권 선본이나 단순히 ‘운동권’이 나 ‘비운동권’으로 정의되지 않는 선 본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제48대 총 「Q」나 제50대 총학 「Spotlight」 , 제52대 「세잎클로버」선본 등은 학생 복지와 사회 문제를 아우르는 청사진 을 제시했다. 비운동권과 운동권 학생회 모두를 비판하며 출마한 선본도 있었다. 제49 대 총학 「Surprise」는 운동권 총학은 정치만 일삼고, 비운동권 총학은 복지 정책을 이끌 추진력이 모자라 실패만 반복한다며 강력히 꼬집으며 당선됐 다. 그러나 「Surprise」는 총학생회장 이 약력을 위조한 것이 밝혀지며 탄핵 당함과 동시에 학생회를 향한 학생 사 회의 불신을 키우는 결과만 낳았다. 한편 등록금 인상의 해결책으로 효율 적인 예산 운용이 지목되며 예산 집행 투명화가 학생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 다. 제53대 「리본」선본은 학생, 교수, 직원이 함께하는 재정평가위원회를 설 치해 재정 운영 투명성을 극대화할 것 을 약속했다. 이들은 2008년 서울대 기 성회비 이월금이 180억 원에 달한 것 을 지적하며 본부가 예산을 불합리하 게 편성했을 뿐 아니라 합당한 근거 없 이 기성회비를 인상해왔다고 주장했 다. 같은 해 「Yes, We Can」선본 또한 발전기금 적자 및 200만 원에 육박하 는 기성회비를 문제 삼았다. 이들은 ‘등 록금 파놉티콘’을 구성해 기성회비와 본부의 예산 내역을 감시할 것을 제안 했다. 관련 문제의식은 계속돼 2013년 에는 제55대 총학 「서포터즈」가 대학 회계투명화TF를 꾸려 본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성회 회계정보 공개 이행 행 정심판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대학신 문』 2013년 5월 13일 자) 2000년대 중반 학내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의제는 단연 법인화였다. 본부 는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위 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역설했지만, 선 본 대다수가 학생과 상의 없이 법인화 를 추진한 본부를 규탄하는 입장을 드 러냈다. 당시 학생들은 서울대가 법인 이 되면 국가 보조금 감소로 등록금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인화에 반대했는데, 제53대 1~3차 총학 선거 에 출마한 총 11개 선본 중 8개가 법인 화 반대 공약을 제시할 정도였다. 제54 대 총학 「레디, 액션」은 법인화 중단을 위한 전체학생총회 소집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하지만 「레디, 액션」 은 법인화 반대 기조를 끝까지 이어나 가지 못했다. 정족수 미달로 총회가 무 산되며 「레디, 액션」또한 책임을 지고 임기 도중 사퇴했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 법인화가 확정된 이후 에도 반대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2011 년 5월 제53대 총학 「Action Again」 은 비상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하고 투 표 결과에 따라 28일간 행정관을 점 거했다. (『대학신문』 2011년 11월 28일 자) 이들은 전체학생총회를 공약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학내 법인화 반대 여론을 수렴해 행동했다. 제56대「내 일은 있다」선본, 「100℃」선본과 제 59대「더:하다」선본 또한 공약집에 법인화 비판을 싣는 등 법인화를 향한 차가운 눈초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여성 인권 향상 및 반성폭력 운동은 2000년대 중반에도 계속됐다. 제48대 「학교로, 교감 네트워크」선본은 강의 평가에 강의실 성폭력 관련 항목을 추 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제50 대 총학 「Spotlight」와 제53대 「Yes, We Can」 선본은 모두 성적 대상화에서 자유로운 여학생 전용 체육 수업을 제 안했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여성 총 학생회장(제48대 총학 「Q」 )이 선출되 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미나 전 학생처 장은 “단과대 학생회장을 넘어 여성 총 학생회장이 당선된 것은 성평등 의식 이 성숙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장애 학생 인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제49대 「PLAY」선본은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는 데, 장애 학생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함 이었다. 제48대 총학 「Q」는 학생회 집 행부 중 1인 이상을 장애 학생 인권 책 임자로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공약의 구체성은 미흡한 수준에 머물렀다. 선본들의 ‘이색 공약’ 또한 눈에 띈다. 제49대 총학 「Surprise」는 ‘지키지 못 할 공약은 제시하지 않겠다’는 단일 공 약으로 당선됐다. 제51대 총학 「실천가 능」은 구두를 신고 관악산을 오르는 여 학생들을 위해 여학생 휴게실에 ‘발 마 사지기’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 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며 이 를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제48 대 「MORE THAN」 선본은 사회 진출 박 람회와 취업 아카데미를 열어 학생들의 취업 준비를 도울 것을 약속했다. 제53 대 2차 선거에서는 「민중의 벗」 선본이 ‘윗공대에서도 바로 듣는 교양’을 개설 하겠다고 말하는 등 넓은 캠퍼스를 위 한 공약도 돋보였다. 제54대부터 제57대까지의 총학은 모 두 투표율 미달로 재선거를 거친 후에야 당선됐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제54대 총학 재선거를 시작으로 제55대 재선 거, 제57대 1차, 제58대, 제60대 총학 선 거 모두 단일 선본만 출사표를 던졌다. 총학에 대한 학생 사회의 무관심이 드 러나는 대목이다. 제55대 총학 「서포터 즈」의 이은호 부총학생회장(서어서문학 과·09)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 표소를 서울대입구역이나 녹두거리에도 두는 것이 관행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제58대 총학 「디테일」3기 김민석 부총 학생회장(정치외교학부·14)은 “학생회 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오락적인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2010년대에는 학 생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생활 밀 착형 공약이 주를 이뤘다. 「서포터즈」 는 도서관에 강의별 기출 문제를 비치 하고 수면실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제56대 총학「디테일」1기는 군복무 중 학점 이수제, 자취생 길라잡 이 책자 발간 등을 약속했다. 제59대 「닿음」선본은 서울대입구역이나 녹두 거리 등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공약을 내기도 했다. 총학을 향한 관심 자체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다.「서포터즈」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북돋웠으며, 제57대 총학 「디테일」2기는 각 과/반 학생들의 의 견을 단과대운영위원회를 거쳐 총운영 위원회에 상정하는 ‘총학 안건 주간’을 고안했다.「디테일」2기 주무열 총학 생회장(물리·천문학부·04·졸)은 “총학 이 꾸준히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 해 정기 월간 보고 및 총학 안건 주간 을 실시했다”라고 밝혔다. 당시의 뜨거운 감자로 시흥캠퍼스(시 흥캠)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학내 전 반에 시흥캠에 RC(Residential College, 기숙형 학부대학)를 도입해 특정 학과· 특정 학년을 이전한다는 본부의 입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2016년 본 부의 독단적인 시흥캠 실시협약 체결에 항의하며 학생들이 6개월간 본부를 점 거할 정도였다. (『대학신문』 2017년 3월 6일 자) 본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총학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졌다. 2016 년에는 시흥캠을 둘러싼 갈등이 정 점에 달했는데, 이준호 전 학생처장 (2016.07.~2017.04 재임)(생명과학부)은 “총장이 시흥캠에 RC를 도입하지 않겠 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누적된 불신 때문에 학생들은 믿지 않았다”라고 밝혔 다. 또한 그는 “본부 점거 해제 조건으로 재경위원회, 기획위원회, 이사회 등에 학 생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안 건이 전학대회에서 부결됐다”라고 아쉬 움을 표했다. 「디테일」 3기 김민석 부총 학생회장은 “초반에는 시흥캠 반대 여론 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라며 “공론화 과정에서 본부가 총학하고만 소통한다 는 불만이 터지며 학내 갈등이 고조됐고, 이후 전체학생총회를 통해 본부 점거가 결정됐다”라고 밝혔다. 시흥캠 이슈가 떠오르자 학생들의 시 흥캠 관련 의사 결정 참여를 보장하겠다 는 약속이 중심 공약으로 등장했다. 제 55대 「터닝포인트」선본은 시흥캠 RC 등 중대 사안을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는 ‘협의체 사전간담회’의 시행을 약속했으 며, 제57대 총학 「디테일」 2기 또한 시흥 캠 TF를 조직하겠다고 주장했다. 최근 에도 제60대 총학 「파랑」이 시흥캠 문제 대책 마련에 힘쓸 것을 약속하는 등 관 련 공약은 계속되고 있다. 2010년대로 접어들며 학내 소수 자 인권 논의의 범위가 이전보다 넓 어진 것 또한 돋보였다. 제58대 총 「디테일」3기가 인권 가이드라 인을 제정한 것이 그 예다. 김민석 전 부총학생회장은 “모든 단과대 에서 한 명 이상을 파견 받아 특별 위원회를 꾸렸다”라며 “학내 소수 자 단체와 노동조합, 대학원총학생 회 등과 의견을 나눠 제작한 인권가 이드라인을 전학대회에 상정했는데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라고 회상했 다.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후에도 제 59대 「더:하다」선본은 인권 가이 드라인에 대한 일부 학생의 혐오 발 언을 지적하며 이성애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 다. 같은 해 「닿음」선본도 수업 중 일어나는 교수의 인권 침해적 언행 을 신고할 수 있는 ‘속마음 셔틀’ 제 도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전부터 꾸준히 언급됐던 장애 인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 는 공약도 등장했다. 제59대 총학 「U」는 단과대 새내기 새로배움터 (새터)에서 장애 인권 교육에 힘쓰 고, 새터에 참여하는 장애 학생들에 게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총 학이 직접 학내 배리어프리 조사를 주관해 통일된 배리어프리 기준을 확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43대 「IMPURSE 2000」 선본이 서울대김일성종 합대 연합 축제를 공약으로 내건 모습이다. 각종 SNS로 학생들과 소통하겠다는 공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다. 제55대 총학 후보 「서울대, 깨다」가 총학 SNS 개 설을 약속했고, 제56대 「100℃」 선본도 총학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학생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삼을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똑똑똑 들어줘요!」 선본 또한 ‘해결해주세요 SNU’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학생들의 불편을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단과대나 총학생회 SNS 계정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1999년 11월 비운동권 선본이 선거에 서 승리한 후 총학 선거 판도는 본격적으 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나 전 학생처장 은 “사회가 민주화되며 이데올로기 대립 이 약해졌고, 비운동권 선본이 등장할 틈 이 생겨났다”라고 설명했다. 비운동권 총 학의 복지 중심 기조가 성공하면서 운동 권 선본들도 학생 복지를 공약으로 내기 시작했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은 “정치적 인 문제를 떠나 학내 문제 또한 무수했기 때문에 선본들이 여기에 집중해온 것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변화를 긍 정적으로 평가했다. 학내 사안에 집중하는 것이 능사가 아 니라는 반응도 있다. 이준호 전 학생처장 은 “학생들이 학내 문제에만 주목한다면 시야가 좁아질 것”이라며 “시흥캠퍼스 논 란 당시에도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한 학생 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옅어진 것이 안 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이전 총학생회장 단은 사회 참여와 학내 사안 해결 간 균형 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주무열 전 총학생 회장은 “생활 의제부터 다뤄야 사회적 의 제에도 학생들이 참여하리라 생각했다” 라며 “생활 밀착형 공약부터 실행한 뒤 역 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사회적 의제에 접 근했고, 덕분에 큰 반대 없이 학생들의 공 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김 민석 전 부총학생회장 또한 “운동권과 비 운동권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 라고 말했다. 이젠 운동권과 비운동권으 로 선본의 성격을 이분화하기보다는 두 의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총학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총학이 계속 짊어져야 할 숙제도 산재 해 있다. 특히 학생 인권 보장과 소통 확 대는 20년간 공약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다. 2000년대 초반 선본들이 피상적 인 여성 인권 향상과 반성폭력 운동에 초 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는 장애 학생 인권도 본격적인 논의의 대 상이 됐다. 2010년대 이후엔 성소수자나 외국인 학생 인권 문제가 가시화됐고 실 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이 뤄졌다. 그러나 학내 장애 학생 지원 제도 가 아직 미흡하고, 학내 성폭력 문제도 끊 이지 않는 만큼 인권 문제는 총학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아 있다. 학생회와 일반 학생 간 거리도 멀기만 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일반 학생들도 학생회 의제 설정에 참여해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됐다. 그러나 투표율 저조로 인한 선 거 무산의 반복 등 학생들은 학생회가 제 대로 기능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기층 구 조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총학 안건 주 간’ 정책부터 시작해 SNS나 애플리케이 션을 통해 학생들에게 직접 불만 사항을 듣겠다는 공약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일반 학생들과의 활발한 소통’ 공약이 매년 등장한다는 것은 여전한 소통의 부 재를 반증한다. 총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의견 도 다양했다. 특히 학내 사안에 대한 학 생 참여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돋보인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은 “학생들이 단순한 피교육자에 그치지 않고 교내 문제에 적 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총학이 노력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은호 전 부총 학생회장 또한 “총학은 필요하다면 갈등 을 회피하지 않고 본부와 협상하거나 싸 울 줄도 알아야 한다”라며 “학내 의사 결 정 과정에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 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민 석 전 부총학생회장은 “다양해지는 학생 들의 요구에 대응해 어떤 활동을 펼칠지 확실히 정하고 이를 책임질 수 있는 체계 를 조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준호 전 학생처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외 부 사회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총학 이 등장하길 바란다”라며 균형 잡힌 시 선을 강조했다. 장기적인 안목을 당부하 는 목소리도 있었다. 장재성 전 학생처장 (2008.08~2010.08 재임)(불어불문학과)은 “짧은 임기 안에 성과를 내기보다는 5년, 10년 후를 위한 초석을 닦아야 한다”라며 “10년 뒤 후배들이 마주할 서울대 또한 고 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역 사회와 상 생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주무열 전 총 학생회장은 “지역 상권과 협업해 지역을 발전시킨다면 학생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학은 학생들과 함께 서울대를 만 들어 왔다. 선본이 제시하는 공약 은 당시 학생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 며, 총학이 실시하는 정책은 학생들 의 생활을 바꾼다. 학생이 강의평가 의 주체가 되고 교원징계규정이 바 뀐 것은 지난 학생회들이 이룩한 성 과다. 하지만 여전히 실천되지 못하 고 남은 과제도 많다. 다가올 2020 년대의 학생회가 학생들의 생활을 바꾸는 공약과 책임감 있는 실천으 로 총학사(史)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 기를 기대한다. 최서영 기자 [email protected] 이현지 기자 [email protected] 삽화: 송채은 기자 [email protected] 레이아웃: 신동준 편집장 [email protected] 이전까지 ‘운동권’을 중심으로 국내 정치의 민주화나 노동 문제 등 학교 밖 현안에 주력했던 총학생회(총학)는 1999년 11월 변화의 기로에 선다. 2000년 서울대를 이끌 총학으로 ‘비운동권’ 선본이 당선된 것이다. 비운동권 총학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학생 복지는 총학의 주요 공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제가 됐다. 지금까지 총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약속했으며 그들의 활동은 서울대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가? 『대학신문』에서 총학이 걸어온 20년을 짚어 봤다.

학생회, 학교로 몸을 틀다 총학의 고군분투, 반응은 ‘글쎄’?pdf.snunews.com/1996/199609.pdf · 문』 2013년 5월 13일 자) 2000년대 중반 학내를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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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학생회, 학교로 몸을 틀다 총학의 고군분투, 반응은 ‘글쎄’?pdf.snunews.com/1996/199609.pdf · 문』 2013년 5월 13일 자) 2000년대 중반 학내를 가장

8 9기획기획 |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

2000년대 이전 총학 선거운동본부

(선본)의 정책자료집(공약집)은 공약

집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사회나 정권

비평에 가깝다 lsquo공약rsquo을 내걸기보다는

학생들에게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

하는 내용이었다 박성현 전 학생처장

(199703~199812 재임)(통계학과)

은 ldquo1997년 1998년은 사회가 점점 민

주화되며 이전까지 성행하던 학생 운

동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던 시기였다rdquo

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2000년 제43대

총학 「광란의 10월」은 서울대 최초로

lsquo비운동권rsquo을 표방하며 당선됐다 「광

란의 10월」은 정치적 견해보다는 셔틀

버스나 성적 처리 규정 등 학생들의 피

부에 와닿는 문제를 공략해 당선됐으

며 이는 선본들이 학내를 겨냥한 공약

을 내놓는 시발점이 됐다 한편 2002

년 제45대 총학 선거에서는 대다수 선

본이 복지 공약에만 치중해 정치색을

숨긴다 비판 받는 등 선본들의 정체성

lsquo밀고 당기기rsquo가 벌어지기도 했다

높은 등록금은 2000년대 초반 학생들

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2002년에는 본

부의 상의 없는 등록금 인상 등에 항의

하며 제45대 총학 「에갈리아」가 총장실

을 점거하기도 했다 등록금 개선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제46대 「원코

리아」 선본은 등록금 인상분을 학생들에

게 반환할 것을 본부에게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제50대 총학 선본 「+U」 또한

등록금 상한제 입법을 촉구하는 등 등록

금 인상 반대 운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등록금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

이 유독 싸늘했던 이유는 수업료 외에

도 추가로 납부해야 했던 기성회비 때

문이었다 기성회비는 교육 환경 개선

을 목적으로 학부모로부터 걷던 기금

에서 출발했지만 이후에는 부족한 학

교 예산을 메꾸는 데 쓰였다 기성회비

가 점점 인상되며 학생들의 원성도 커졌

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기성회비는 lsquo제

2의 수업료rsquo로 불릴 정도였다 실제로

2000년 인문계열 기준 81만 원이던 기

성회비는 2006년 158만 원으로 증가했

고 그 여파로 120만 원이던 전체 등록

금 또한 2005년 207만 원으로 5년 새 2

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학신문』 2006

년 10월 15일 자) 이미나 전 학생처장

(200408~200607 재임)(사회교육과)

는 ldquo당시 수업료가 사립대에 비해 훨씬

낮았기 때문에 학교가 수업료만으로는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

했다rdquo라며 ldquo세금만으로는 부족한 예산

을 충당하기 힘들어 기성회비가 활용됐

다rdquo라고 말했다 서울대가 2011년에 법

인화된 후 기성회비는 폐지됐지만 대신

수업료가 그만큼 인상됐다

사회 문제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경향은 자연스레 운동권 학생회가 실제

학생 사회와 괴리돼 있다는 비판으로 이

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lsquo소통하는

학생회rsquo를 주창하는 선본들이 속속 등장

했다 제43대 「IMPULSE 2000」 선본은

각 자치단위의 목소리를 듣고 위원회를

꾸려 형성된 의제를 공론화하는 제도인

lsquo의제 워크샵rsquo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

치단위 밖 일반 학생들도 정책 설정에

참여시키기 위해 전체 학생 정책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당시 부후보

김경아 씨(식품영양학과04졸)는 총학

선거 후보자 간담회에서 ldquo학생회 정책

을 투명하게 공개해 정책투표제에 부치

는 식으로 보완하겠다rdquo라고 밝혔다 인권 문제도 당시 총학의 과제로 대

두됐다 특히 여성 인권은 대다수 선

본 공약집의 큰 줄기를 이뤘다 제

43대 「꼬뮤나르드」와 「Democracia

Desde Abajo」 선본은 여성주의 학

생회로 나아갈 것을 약속했다 제45

대 「코페르니쿠스」 선본은 여성 교

수 할당제 도입을 주장했으며 같은

해 다른 선본들 또한 공통으로 학내

반(反)성폭력에 앞장서겠다는 공약

을 냈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2000

12~200207 재임)은 ldquo각종 학내 성폭

력 사건이 논란이 되자 이에 반발하며

반성폭력 풍토가 확산됐다rdquo라고 말했

다 당시 선본들은 여성 인권 문제를

학내에 가시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대책이 추상적이고 여학생에게 논

문 지도교수 우선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이 겉핥기식에 그쳤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당시 선본들이 사회 문제를 아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 사회 운동

에 집중한 선본이 선거마다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공동

선언으로 형성된 통일 분위기는 총학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43대 「IMPULSE

2000」 선본과 제44대 「민중과 함께 서울대의 맥박은 뛴다」 선본은 서울대김일

성종합대 연합 축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학생 사회 관련 공약 없이 통일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공약집을 채운 선본도 있었는데 제44대 「615 세대」 선본이 그 주

인공이었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사회 참여에 대한 선본들의 열의를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총학 춘추전국시대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제48대ltQgt

제49대ltSuprisegt

제50대ltSpotlightgt

제51대lt실천가능gt

제52대lt실천가능gt

제53대ltActionAgaingt

제54대lt레디액션gt

총학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학생회 학교로 몸을 틀다2000 2001 2002 2003 2004

제43대lt광란의 10월gt

제44대lt발칙한 상상gt

제45대lt에갈리아gt

제46대lt학교로gt

제47대lt학교로

다시 쓰는 이야기gt

총학의 고군분투 반응은 lsquo글쎄rsquo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제55대lt서포터즈gt

제56대lt디테일gt

제57대lt디테일gt

제58대lt디테일gt

제59대ltUgt

제60대lt파랑gt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선본들의 성

격은 더욱 다양해졌다 여전히 사회

비판에 주력하는 운동권 선본이 있는

가 하면 생활 밀착형 공약에 몰두한

비운동권 선본이나 단순히 lsquo운동권rsquo이

나 lsquo비운동권rsquo으로 정의되지 않는 선

본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제48대 총

학 「Q」나 제50대 총학 「Spotlight」

제52대 「세잎클로버」 선본 등은 학생

복지와 사회 문제를 아우르는 청사진

을 제시했다

비운동권과 운동권 학생회 모두를

비판하며 출마한 선본도 있었다 제49

대 총학 「Surprise」는 운동권 총학은

정치만 일삼고 비운동권 총학은 복지

정책을 이끌 추진력이 모자라 실패만

반복한다며 강력히 꼬집으며 당선됐

다 그러나 「Surprise」는 총학생회장

이 약력을 위조한 것이 밝혀지며 탄핵

당함과 동시에 학생회를 향한 학생 사

회의 불신을 키우는 결과만 낳았다

한편 등록금 인상의 해결책으로 효율

적인 예산 운용이 지목되며 예산 집행

투명화가 학생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

다 제53대 「리본」 선본은 학생 교수

직원이 함께하는 재정평가위원회를 설

치해 재정 운영 투명성을 극대화할 것

을 약속했다 이들은 2008년 서울대 기

성회비 이월금이 180억 원에 달한 것

을 지적하며 본부가 예산을 불합리하

게 편성했을 뿐 아니라 합당한 근거 없

이 기성회비를 인상해왔다고 주장했

다 같은 해 「Yes We Can」 선본 또한

발전기금 적자 및 200만 원에 육박하

는 기성회비를 문제 삼았다 이들은 lsquo등

록금 파놉티콘rsquo을 구성해 기성회비와

본부의 예산 내역을 감시할 것을 제안

했다 관련 문제의식은 계속돼 2013년

에는 제55대 총학 「서포터즈」가 대학

회계투명화TF를 꾸려 본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성회 회계정보 공개 이행 행

정심판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대학신

문』 2013년 5월 13일 자)

2000년대 중반 학내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의제는 단연 법인화였다 본부

는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위

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역설했지만 선

본 대다수가 학생과 상의 없이 법인화

를 추진한 본부를 규탄하는 입장을 드

러냈다 당시 학생들은 서울대가 법인

이 되면 국가 보조금 감소로 등록금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인화에

반대했는데 제53대 1~3차 총학 선거

에 출마한 총 11개 선본 중 8개가 법인

화 반대 공약을 제시할 정도였다 제54

대 총학 「레디 액션」은 법인화 중단을

위한 전체학생총회 소집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하지만 「레디 액션」

은 법인화 반대 기조를 끝까지 이어나

가지 못했다 정족수 미달로 총회가 무

산되며 「레디 액션」 또한 책임을 지고

임기 도중 사퇴했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 법인화가 확정된 이후

에도 반대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2011

년 5월 제53대 총학 「Action Again」

은 비상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하고 투

표 결과에 따라 28일간 행정관을 점

거했다 (『대학신문』 2011년 11월 28일

자) 이들은 전체학생총회를 공약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학내 법인화 반대

여론을 수렴해 행동했다 제56대 「내

일은 있다」 선본 「100」 선본과 제

59대 「더하다」 선본 또한 공약집에

법인화 비판을 싣는 등 법인화를 향한

차가운 눈초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여성 인권 향상 및 반성폭력 운동은

2000년대 중반에도 계속됐다 제48대

「학교로 교감 네트워크」 선본은 강의

평가에 강의실 성폭력 관련 항목을 추

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제50

대 총학 「Spotlight」와 제53대 「Yes

We Can」 선본은 모두 성적 대상화에서

자유로운 여학생 전용 체육 수업을 제

안했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여성 총

학생회장(제48대 총학 「Q」)이 선출되

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미나 전 학생처

장은 ldquo단과대 학생회장을 넘어 여성 총

학생회장이 당선된 것은 성평등 의식

이 성숙한 결과rdquo라고 설명했다

한편 장애 학생 인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제49대 「PLAY」 선본은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는

데 장애 학생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함

이었다 제48대 총학 「Q」는 학생회 집

행부 중 1인 이상을 장애 학생 인권 책

임자로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공약의

구체성은 미흡한 수준에 머물렀다

선본들의 lsquo이색 공약rsquo 또한 눈에 띈다

제49대 총학 「Surprise」는 lsquo지키지 못

할 공약은 제시하지 않겠다rsquo는 단일 공

약으로 당선됐다 제51대 총학 「실천가

능」은 구두를 신고 관악산을 오르는 여

학생들을 위해 여학생 휴게실에 lsquo발 마

사지기rsquo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

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며 이

를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제48

대 「MORE THAN」 선본은 사회 진출 박

람회와 취업 아카데미를 열어 학생들의

취업 준비를 도울 것을 약속했다 제53

대 2차 선거에서는 「민중의 벗」 선본이

lsquo윗공대에서도 바로 듣는 교양rsquo을 개설

하겠다고 말하는 등 넓은 캠퍼스를 위

한 공약도 돋보였다

제54대부터 제57대까지의 총학은 모

두 투표율 미달로 재선거를 거친 후에야

당선됐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제54대

총학 재선거를 시작으로 제55대 재선

거 제57대 1차 제58대 제60대 총학 선

거 모두 단일 선본만 출사표를 던졌다

총학에 대한 학생 사회의 무관심이 드

러나는 대목이다 제55대 총학 「서포터

즈」의 이은호 부총학생회장(서어서문학

과09)은 ldquo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

표소를 서울대입구역이나 녹두거리에도

두는 것이 관행이었다rdquo라고 회상했다

제58대 총학 「디테일」 3기 김민석 부총

학생회장(정치외교학부14)은 ldquo학생회

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오락적인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rdquo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2010년대에는 학

생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생활 밀

착형 공약이 주를 이뤘다 「서포터즈」

는 도서관에 강의별 기출 문제를 비치

하고 수면실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제56대 총학 「디테일」 1기는

군복무 중 학점 이수제 자취생 길라잡

이 책자 발간 등을 약속했다 제59대

「닿음」 선본은 서울대입구역이나 녹두

거리 등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공약을

내기도 했다

총학을 향한 관심 자체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다 「서포터즈」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북돋웠으며 제57대 총학

「디테일」 2기는 각 과반 학생들의 의

견을 단과대운영위원회를 거쳐 총운영

위원회에 상정하는 lsquo총학 안건 주간rsquo을

고안했다 「디테일」 2기 주무열 총학

생회장(물리천문학부04졸)은 ldquo총학

이 꾸준히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

해 정기 월간 보고 및 총학 안건 주간

을 실시했다rdquo라고 밝혔다

당시의 뜨거운 감자로 시흥캠퍼스(시

흥캠)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학내 전

반에 시흥캠에 RC(Residential College

기숙형 학부대학)를 도입해 특정 학과

특정 학년을 이전한다는 본부의 입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2016년 본

부의 독단적인 시흥캠 실시협약 체결에

항의하며 학생들이 6개월간 본부를 점

거할 정도였다 (『대학신문』 2017년 3월

6일 자)

본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총학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졌다 2016

년에는 시흥캠을 둘러싼 갈등이 정

점에 달했는데 이준호 전 학생처장

(201607~201704 재임)(생명과학부)은

ldquo총장이 시흥캠에 RC를 도입하지 않겠

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누적된 불신

때문에 학생들은 믿지 않았다rdquo라고 밝혔

다 또한 그는 ldquo본부 점거 해제 조건으로

재경위원회 기획위원회 이사회 등에 학

생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안

건이 전학대회에서 부결됐다rdquo라고 아쉬

움을 표했다 「디테일」 3기 김민석 부총

학생회장은 ldquo초반에는 시흥캠 반대 여론

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rdquo라며 ldquo공론화

과정에서 본부가 총학하고만 소통한다

는 불만이 터지며 학내 갈등이 고조됐고

이후 전체학생총회를 통해 본부 점거가

결정됐다rdquo라고 밝혔다

시흥캠 이슈가 떠오르자 학생들의 시

흥캠 관련 의사 결정 참여를 보장하겠다

는 약속이 중심 공약으로 등장했다 제

55대 「터닝포인트」 선본은 시흥캠 RC

등 중대 사안을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는

lsquo협의체 사전간담회rsquo의 시행을 약속했으

며 제57대 총학 「디테일」 2기 또한 시흥

캠 TF를 조직하겠다고 주장했다 최근

에도 제60대 총학 「파랑」이 시흥캠 문제

대책 마련에 힘쓸 것을 약속하는 등 관

련 공약은 계속되고 있다

2010년대로 접어들며 학내 소수

자 인권 논의의 범위가 이전보다 넓

어진 것 또한 돋보였다 제58대 총

학 「디테일」 3기가 인권 가이드라

인을 제정한 것이 그 예다 김민석

전 부총학생회장은 ldquo모든 단과대

에서 한 명 이상을 파견 받아 특별

위원회를 꾸렸다rdquo라며 ldquo학내 소수

자 단체와 노동조합 대학원총학생

회 등과 의견을 나눠 제작한 인권가

이드라인을 전학대회에 상정했는데

만장일치로 통과됐다rdquo라고 회상했

다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후에도 제

59대 「더하다」 선본은 인권 가이

드라인에 대한 일부 학생의 혐오 발

언을 지적하며 이성애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

다 같은 해 「닿음」 선본도 수업 중

일어나는 교수의 인권 침해적 언행

을 신고할 수 있는 lsquo속마음 셔틀rsquo 제

도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전부터 꾸준히 언급됐던 장애

인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

는 공약도 등장했다 제59대 총학

「U」는 단과대 새내기 새로배움터

(새터)에서 장애 인권 교육에 힘쓰

고 새터에 참여하는 장애 학생들에

게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총

학이 직접 학내 배리어프리 조사를

주관해 통일된 배리어프리 기준을

확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43대 「IMPURSE 2000」 선본이 서울대김일성종합대 연합 축제를 공약으로 내건 모습이다

각종 SNS로 학생들과 소통하겠다는 공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다 제55대 총학 후보 「서울대 깨다」가 총학 SNS 개

설을 약속했고 제56대 「100」 선본도 총학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학생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삼을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똑똑똑 들어줘요」 선본 또한 lsquo해결해주세요 SNUrsquo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학생들의 불편을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단과대나 총학생회 SNS 계정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1999년 11월 비운동권 선본이 선거에

서 승리한 후 총학 선거 판도는 본격적으

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나 전 학생처장

은 ldquo사회가 민주화되며 이데올로기 대립

이 약해졌고 비운동권 선본이 등장할 틈

이 생겨났다rdquo라고 설명했다 비운동권 총

학의 복지 중심 기조가 성공하면서 운동

권 선본들도 학생 복지를 공약으로 내기

시작했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은 ldquo정치적

인 문제를 떠나 학내 문제 또한 무수했기

때문에 선본들이 여기에 집중해온 것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rdquo라며 변화를 긍

정적으로 평가했다

학내 사안에 집중하는 것이 능사가 아

니라는 반응도 있다 이준호 전 학생처장

은 ldquo학생들이 학내 문제에만 주목한다면

시야가 좁아질 것rdquo이라며 ldquo시흥캠퍼스 논

란 당시에도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한 학생

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옅어진 것이 안

타까웠다rdquo라고 말했다 이전 총학생회장

단은 사회 참여와 학내 사안 해결 간 균형

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주무열 전 총학생

회장은 ldquo생활 의제부터 다뤄야 사회적 의

제에도 학생들이 참여하리라 생각했다rdquo

라며 ldquo생활 밀착형 공약부터 실행한 뒤 역

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사회적 의제에 접

근했고 덕분에 큰 반대 없이 학생들의 공

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rdquo라고 설명했다 김

민석 전 부총학생회장 또한 ldquo운동권과 비

운동권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rdquo

라고 말했다 이젠 운동권과 비운동권으

로 선본의 성격을 이분화하기보다는 두

의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총학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총학이 계속 짊어져야 할 숙제도 산재

해 있다 특히 학생 인권 보장과 소통 확

대는 20년간 공약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다 2000년대 초반 선본들이 피상적

인 여성 인권 향상과 반성폭력 운동에 초

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는 장애 학생 인권도 본격적인 논의의 대

상이 됐다 2010년대 이후엔 성소수자나

외국인 학생 인권 문제가 가시화됐고 실

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이

뤄졌다 그러나 학내 장애 학생 지원 제도

가 아직 미흡하고 학내 성폭력 문제도 끊

이지 않는 만큼 인권 문제는 총학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아 있다

학생회와 일반 학생 간 거리도 멀기만

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lsquo일반

학생들도 학생회 의제 설정에 참여해야

한다rsquo라는 문제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됐다 그러나 투표율 저조로 인한 선

거 무산의 반복 등 학생들은 학생회가 제

대로 기능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기층 구

조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lsquo총학 안건 주

간rsquo 정책부터 시작해 SNS나 애플리케이

션을 통해 학생들에게 직접 불만 사항을

듣겠다는 공약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lsquo일반 학생들과의 활발한 소통rsquo 공약이

매년 등장한다는 것은 여전한 소통의 부

재를 반증한다

총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의견

도 다양했다 특히 학내 사안에 대한 학

생 참여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돋보인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은 ldquo학생들이 단순한

피교육자에 그치지 않고 교내 문제에 적

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총학이 노력

해야 한다rdquo라고 밝혔다 이은호 전 부총

학생회장 또한 ldquo총학은 필요하다면 갈등

을 회피하지 않고 본부와 협상하거나 싸

울 줄도 알아야 한다rdquo라며 ldquo학내 의사 결

정 과정에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

를 확대해야 한다rdquo라고 주장했다 김민

석 전 부총학생회장은 ldquo다양해지는 학생

들의 요구에 대응해 어떤 활동을 펼칠지

확실히 정하고 이를 책임질 수 있는 체계

를 조성해야 한다rdquo라고 말했다 한편 이

준호 전 학생처장은 ldquo자신뿐만 아니라 외

부 사회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총학

이 등장하길 바란다rdquo라며 균형 잡힌 시

선을 강조했다 장기적인 안목을 당부하

는 목소리도 있었다 장재성 전 학생처장

(200808~201008 재임)(불어불문학과)은

ldquo짧은 임기 안에 성과를 내기보다는 5년

10년 후를 위한 초석을 닦아야 한다rdquo라며

ldquo10년 뒤 후배들이 마주할 서울대 또한 고

려해야 한다rdquo라고 말했다 지역 사회와 상

생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주무열 전 총

학생회장은 ldquo지역 상권과 협업해 지역을

발전시킨다면 학생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rdquo이라고 말했다

총학은 학생들과 함께 서울대를 만

들어 왔다 선본이 제시하는 공약

은 당시 학생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

며 총학이 실시하는 정책은 학생들

의 생활을 바꾼다 학생이 강의평가

의 주체가 되고 교원징계규정이 바

뀐 것은 지난 학생회들이 이룩한 성

과다 하지만 여전히 실천되지 못하

고 남은 과제도 많다 다가올 2020

년대의 학생회가 학생들의 생활을

바꾸는 공약과 책임감 있는 실천으

로 총학사(史)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

기를 기대한다

최서영 기자 philyoung_v3vsnuackr

이현지 기자 dlguswl0829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레이아웃 신동준 편집장 sdj3862snuackr

이전까지 lsquo운동권rsquo을 중심으로 국내 정치의 민주화나 노동 문제 등

학교 밖 현안에 주력했던 총학생회(총학)는 1999년 11월 변화의 기로에

선다 2000년 서울대를 이끌 총학으로 lsquo비운동권rsquo 선본이 당선된 것이다

비운동권 총학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학생 복지는 총학의 주요

공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제가 됐다 지금까지 총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약속했으며 그들의 활동은 서울대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가

『대학신문』에서 총학이 걸어온 20년을 짚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