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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경남연구 제6집 2012 목차 Ⅰ. 머리말 Ⅱ. 유적개관 Ⅲ. 기와생산시설에 대한 검토 Ⅳ.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Ⅴ.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의 운영양상과 평기와의 특징 Ⅵ. 맺음말 * * * 요약 본 글은 경남 거창 월평리유적에서 확인된 10기의 기와가마와 공 건물지, 출토 평기와 등의 검토를 통해 경남 서부지역 에서 ‘고려기와’의 성립과정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월평리유적은 통일신라말∼고려전기까지 존속된 유적으로 중 판타날된 평기와와 장판타날된 평기와가 함께 출토되고 있어 ‘고려기와’ 성립 과정을 검토하는데 있어 유효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월평리유적에서는 두번의 획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건물지에서는 상층과 하층 건물로 조영시기가 구분되며, 가 마는 중판타날된 평기와만이 확인되는 가마와 장판타날 및 중판타날된 평기와가 함께 확인되는 가마로 구분되고 있다. 가마 는 출토유물·평면형태·규모·구조·입지 등에서 일정한 차이가 확인되고 시기에 따른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 한 가마는 10기가 동시기에 운영된 것이 아니라 폐기와 신축이라는 과정을 반복하며 소규모로 운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 히 대규모의 인력동원을 필요하는 축대시설과 장기간 지속적으로 운영된 기와가마 및 공 건물지를 통해 월평리유적은 고 려시대 수공업과 관련된 역을 담당하던 ‘와소’로 비정해 볼 수 있다. 출토된 평기와에서는 중판타날에서 장판타날 평기와로의 전환이 확인될 뿐만 아니라 제 속성에서 다양한 특징이 확인되 고 있다. 즉 ‘고려기와’ 성립기에 경남지 에서는 외지적인 타날문양과 장판타날기법이 함께 도입되는 형태와 월평리유적과 같이 재지적인 타날문양에 장판타날기법만이 도입되는 형태로 이원적인 도입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월평리 유적을 통해 거창지역 일대 나아가 서부경남지역의 통일신라말∼고려전기 평기와의 특징과 변화과정을 검토할 수 있고 이 를 통해 ‘고려기와’ 성립기의 양상을 파악해볼 수 있다. 주제어 : 기와가마, 공 건물지, 와소, 고려기와, 중판타날에서 장판타날로의 전환

gnchc.re.krgnchc.re.kr/down/myeong.pdf · 로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은 전무하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전기의 평기와 생산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고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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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경남연구 제6집 2012

▫ 목차

Ⅰ. 머리말

Ⅱ. 유적개관

Ⅲ. 기와생산시설에 대한 검토

Ⅳ.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Ⅴ.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의 운영양상과 평기와의 특징

Ⅵ. 맺음말

* * *

▫ 요약

본 글은 경남 거창 월평리유적에서 확인된 10기의 기와가마와 공방건물지, 출토 평기와 등의 검토를 통해 경남 서부지역

에서 ‘고려기와’의 성립과정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월평리유적은 통일신라말∼고려전기까지 존속된 유적으로 중

판타날된 평기와와 장판타날된 평기와가 함께 출토되고 있어 ‘고려기와’ 성립 과정을 검토하는데 있어 유효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월평리유적에서는 두번의 획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건물지에서는 상층과 하층 건물로 조영시기가 구분되며, 가

마는 중판타날된 평기와만이 확인되는 가마와 장판타날 및 중판타날된 평기와가 함께 확인되는 가마로 구분되고 있다. 가마

는 출토유물·평면형태·규모·구조·입지 등에서 일정한 차이가 확인되고 시기에 따른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

한 가마는 10기가 동시기에 운영된 것이 아니라 폐기와 신축이라는 과정을 반복하며 소규모로 운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

히 대규모의 인력동원을 필요하는 축대시설과 장기간 지속적으로 운영된 기와가마 및 공방건물지를 통해 월평리유적은 고

려시대 수공업과 관련된 역을 담당하던 ‘와소’로 비정해 볼 수 있다.

출토된 평기와에서는 중판타날에서 장판타날 평기와로의 전환이 확인될 뿐만 아니라 제 속성에서 다양한 특징이 확인되

고 있다. 즉 ‘고려기와’ 성립기에 경남지방에서는 외지적인 타날문양과 장판타날기법이 함께 도입되는 형태와 월평리유적과

같이 재지적인 타날문양에 장판타날기법만이 도입되는 형태로 이원적인 도입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월평리

유적을 통해 거창지역 일대 나아가 서부경남지역의 통일신라말∼고려전기 평기와의 특징과 변화과정을 검토할 수 있고 이

를 통해 ‘고려기와’ 성립기의 양상을 파악해볼 수 있다.

▫ 주제어 : 기와가마, 공방건물지, 와소, 고려기와, 중판타날에서 장판타날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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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67

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이재명*1)

Ⅰ. 머리말

거창 월평리유적은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및 대산리 일원에 위치하는데, Ⅰ지구에

서 구릉사면 말단부에 축조된 10기의 기와가마(이하, 가마)와 그 아래의 곡부에서 대규모의 축

대시설과 함께 조성된 건물지가 확인되었다(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11). 건물은 상층

과 하층으로 나누어져 조성되었으며, 가마와 연관된 공방 건물지로 파악된다.

이러한 대규모의 공방 건물지와 가마는 고려시대 기와생산의 한축을 담당했던 ‘瓦所’일 가능

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까지 경남 서부지역에서 월평리유적과 같이 기와생산시설을 전체적으

로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은 전무하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전기의 평기와 생산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고고자료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월평리유적의 존속기간에 해당하는 통일신라말

에서 고려전기는 평기와 제작기법이 정형화되고 새로운 타날문양이 평기와에 도입되는 시기로

이는 ‘고려기와’의 성립과 전개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기민 2008).

월평리유적에서는 이러한 평기와 제작기법의 전환을 확인할 수 있는 중판타날 평기와와 장

판타날 평기와가 함께 확인되었는데, 특히 평기와의 속성을 면밀히 관찰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비교적 완형의 평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평기와가 주로 출토된 가마에서도 중

복관계 및 구조변화가 확인되고 있어 가마와 평기와를 유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이와 더불

어 월평리유적에서는 가마와 공방건물지가 함께 확인되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전기에 해당하

는 평기와 제작의 양상과 조업형태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본 글은 서부경남지역의 중판타날 평기와에서 장판타날 평기와로 전환되는 시점의 평기와

제작기법을 확인하고 이와 함께 가마와 공방건물지를 함께 검토 및 소개함으로써 향후 서부경

남지역 통일신라 말∼고려전기 평기와 생산의 제 양상을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데 목

적을 두고자 한다.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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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경남연구 제6집 2012

Ⅱ. 유적개관

거창 월평리유적은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및 대산리 일원에 위치하는 유적으로

2009년 10월 5일부터 2010년 2월 5일까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조사는 2개 지구로

나누어 실시하였는데, 이중 Ⅰ지구의 구릉사면 말단부에서 10기의 가마와 그 아래의 곡부에

서 대규모의 축대시설과 함께 조성된 공방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가마는 축조 위치에 따라 지

하식 가마와 반지하식 가마로 구분되며, 형태와 구조에서도 일정한 차이가 확인된다.

가마에서 출토된 유물은 중판 선문 타날이 이루어진 평기와와 무문평기 그리고 장판의 ‘사선

문+종선문’ 타날이 이루어진 평기와가 주를 이룬다. 가마는 중판타날 평기와만이 확인되는 가

마(1·3·4·9호)와 중판타날 및 장판타날 평기와가 함께 확인되는 가마(2·5∼8·10호)로 구

분되며, 이중 7·8·9호 가마는 중복 조성되었다. 건물지는 중앙에 위치하는 남-북향의 축대

를 기준으로 A구역과 B구역 건물지로 구분되고 계획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A구역 건물지는 B구역 건물지보다 낮은 위치에 조성되었는데, 습지퇴적층 위에 화강암 풍화

암반토를 성토한 후 정지하여 조성하였다. 건물과 관련된 초석 및 적심 그리고 주혈이 확인되

지 않으며 ‘ ’상으로 조성된 축대만이 확인된다. 유물 또한 기형을 확인하기 어려운 평기와편

과 토기편이 매우 적게 출토되었다.

B구역 건물지는 A구역 건물지보다 선축되었는데, 건물지를 조성하기 위해 북쪽 구릉사면의

말단부를 ‘ㄴ’상으로 편평하게 절개하였고, 남쪽에는 천석을 사용하여 대규모의 축대를 조성하

였다. 건물지가 조성된 남쪽의 축대와 북쪽의 절개지 사이의 공간에는 절개된 흙을 사용하여

부분적으로 성토 및 정지하였다. 축대 앞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기와생산에 필수적인 용수

를 확보하기 용이한데, 축대는 이러한 계곡수로 인해 건물지가 침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B구역 건물지는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어져 크게 2차에 걸쳐 조영되

었다. 하층건물지에서는 2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소량만이 확인되는데, 이

중 기와류는 중판타날된 선문 및 집선문 평기와가 주를 이루며, 장판타날된 평기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층 건물지가 폐기된 이후 상층 건물지를 조성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정지 및 성토가

실시되었다. 상층건물지에서는 4동의 건물지와 마당시설·소결흔이 있는 집석유구 등이 확인

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기와류이며, 암막새 2점과 다량의 평기와가 확인되었다.

평기와는 중판타날된 선문·집선문·선문+X자부가문·무문이 주를 이루나 장판타날 된 복

합문 평기와도 소량 확인된다. 상층건물지에서는 다량의 평기와가 확인되었으나 가마에서 출

토되는 장판타날된 사선문+종선문의 평기와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이외 인화문 토기편 및

해무리굽 청자편과 경부에 파상문이 시문된 대호의 경부편이 소량으로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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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69

<도면 1> 거창 월평리유적 Ⅰ지구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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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경남연구 제6집 2012

Ⅲ. 기와생산시설에 대한 검토

1. 기와가마

월평리유적에서 확인된 가마는 모두 10기로 축조 위치에 따라 지하식 가마와 반지하식 가마

로 대별된다. 지하식 가마는 소성실의 경사도를 통해 등요와 평요로 다시 구분이 가능한데, 3

호와 10호 가마를 제외한 모든 가마가 풍화암반토를 굴착하여 조성한 지하식 또는 반지하식 등

요로 파악된다. 가마는 동쪽 구간의 구릉사면에 중복·밀집되는 양상을 보이며, 9→8→7호의

순서로 중복 조성되었다.

1) 가마의 구조

(1) 평면형태

월평리유적에서 확인된 가마 중 평면형태를 알 수 없는 3호 가마를 제외하면 소성실의 평면

형태에 따라 크게 장타원형·제형(梯形)·선저형(船底形)·원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평면형태는 장타원형이 5(7)기로 비율이 가장 높고, 그 외 3기의 가마는 각각 제형·선

저형·원형을 띤다. 평면형태 중 장타원형은 ‘가’형으로 분류하였으며 이에 해당하는 가마는 1·6

∼9호가 있다. 장타원형으로 분류된 기와가마에서도 평면형태의 세부적인 차이가 확인된다.

4호 가마는 현대 교란으로 잔존하는 평면형태가 말각방형을 띤다. 그러나 4호 가마와 같이

중판타날된 평기와만이 확인되는 1호·9호 가마의 형태를 참조해 보면 전체적인 평면형태가

타원형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된다.

<표 1> 월평리유적 기와가마 평면형태 분류안

가형 나형 다형 라형

1호 6호 9호 7호 8호 5호 2호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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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71

평면형태가 제형, 즉 사다리의 형태를 띠는 가마는 ‘나’형으로 분류하였으며, 5호 가마 1기가

해당된다. 나형은 연소실로 갈수록 소성실의 폭이 좁아지는 형태이다.

선저형은 배의 밑바닥과 같이 가마의 상단부인 연소실로 갈수록 평면형태가 뾰족하게 변하

는 형태로 ‘다’형으로 분류하였다. 2호 가마 1기가 해당된다. 원형은 ‘라’형으로 분류하였으며,

10호 가마 1기가 해당된다. 10호 가마는 돔 형태의 소성실을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2) 아궁이

월평리유적의 가마는 최근의 농로 개설과정과 경작과정에서 이루어진 절토 및 삭평으

로 가마의 하단부가 교란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궁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마는

2·3·7·8호에 불과하다. 아궁이는 봇돌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봇돌의 형태는 7·8호

의 경우 방형의 할석 1∼2매를 세워서 축조하였고 2·3호는 가로로 눕혀서 축조하였다. 1·5

호 가마는 확연한 아궁이 시설이 확인되지 않으나 연소실 바닥에서 피열된 천석 2∼3매가 확

인되고 있는 점이 유의된다. 아궁이의 이맛돌은 남아있지 않으나, 7호 가마의 봇돌 주변에서

장방형과 부정형의 천석 및 할석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통해 석축된 이맛돌을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3) 연소실

연소실은 모두 6기의 가마에서 확인된다. 연소실의 평면형태는 모두 역사다리꼴형 형태로

파악된다. 연소실과 소성실의 경계에 위치하는 불턱의 축조방법을 통해 A∼D형의 4가지 형식

으로 연소실을 분류할 수 있다.

<표 2> 월평리유적 기와가마 연소실의 불턱 분류안

A형 B형 C형 D형

1호 / 9호 7호 / 8호 2호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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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경남연구 제6집 2012

A형은 기반토인 풍화암반토를 ‘/ ’상으로 비스듬히 굴착하여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 불턱

을 축조한 형태로 1·9호 가마 2기가 해당된다. 불턱의 규모는 9호 가마에서 확인 가능한데,

높이가 17㎝, 경사도는 31°이다. B형은 기반토인 풍화 암반토를 ‘┘’상으로 단이 지게 굴착하여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 불턱을 축조한 형태이다. 7·8호 가마 2기가 해당되며, C형으로 분류

된 2호 가마의 불턱도 본래는 B형의 형태를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7호 가마의 불턱 규모는 높

이가 20㎝, 경사도는 26°이다. 8호 가마의 불턱 규모는 높이가 35㎝, 경사도는 12°이다. B형의

불턱은 고려시대 가마로 보고된 거창 가지리유적(동서문물연구원 2011)과 고려시대 및 조선시

대 가마로 보고된 거창정장리유적(경상문화재연구원 2011)의 가마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B형

이 거창지역 고려시대 가마의 일반적인 형태임을 알 수 있다.

C형은 기반토인 풍화 암반토를 ‘┘’상으로 단이 지게 굴착하여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 불

턱을 축조한 후, 할석 및 수키와를 점토로 불턱에 보강해 놓은 구조이다. 2호 가마 1기가 해당

된다. 2호 가마 불턱의 규모는 높이가 32㎝, 경사도는 36°이다. 2호 가마는 가마벽체의 붕괴

로 인해 개보수가 이루어졌는데, 바닥면의 토층조사 결과 불턱이 본래는 B형이었으나 C형의

형태로 전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B형과 C형은 서로 유사성이 높은 불턱의 형태로

파악된다.

이와 같은 C형은 거창지역에서 나말여초기의 가마로 보고된 상동유적Ⅰ(경남문화재연구원

2003)에서 확인된 바 있다. B형과 C형은 유사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나 거창지역에서 확인되

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가마의 불턱이 C형의 형태로 확인되고 있어 불턱의 형태는 C형에서

B형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표 3> 월평리유적 기와가마 소성실 속성표

바닥시설 소성실의 평면형태 소성실 규모 (㎝)

a형 b형 c형 가 나 다 라 130 262~266 303 330 350 400 445

1호 ○ ●

4호 (○)

7호 ○ ●

8호 ○ ●

9호 ○ ●

5호 ○ ●

3호 (○) (●)

2호 ○ ●

6호 ○ ●

10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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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73

D형은 소성실 바닥에 점토로 바닥시설을 하고 연소실에는 바닥시설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소실과 소성실의 단 차이를 두는 방식이다. 6호 가마 1기가 해당되는데, 단을 전후로 하여 재

와 평기와가 퇴적되어 있다. 불턱의 규모는 높이가 11㎝, 경사도는 33°이다. 이외 3호 가마의

경우, 소성실과 연소실이 단으로 확연히 구분되지는 않는 점에서 A형식과 유사하며, 점토가 있

는 바닥을 통해서는 D형식과 유사성을 보인다.

(4) 소성실

소성실은 바닥시설의 형태에 따라 a∼c형의 3가지로 나누어진다. a형은 소성실 바닥에 아무

런 시설을 하지 않고 기반층면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1·4·5·7∼9호 가마가 해당된다. b

형은 소성실 바닥에 점토를 사용하여 바닥시설을 한 것으로 2·3·6호 가마가 해당된다. c형

은 소성실의 바닥에 평기와를 중첩되게 쌓아서 바닥시설을 한 것으로 10호 가마가 해당된다.

소성실은 기와의 생산량과 관련한 중요 시설로, 월평리유적 가마의 소성실은 규모에 따라 크

게 130㎝, 262∼266㎝, 303∼350㎝, 400㎝등으로 나누어진다. 4호 가마의 경우 교란으로 인

해 소성실의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3호 가마의 경우에도 소성실이 유실되어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데, 연소실과 뚜렷한 구분 없이 소성실과 이어지는 바닥의 점토 범위를 통해 445㎝

전후의 규모를 지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5호 가마의 경우, 소성실과 연소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데, 가마 하단에서 아궁이 봇돌일 가능성이 있는 피열된 천석의 위치를 통해 400㎝ 전후의

규모를 지녔을 것으로 판단된다. 130㎝ 규모의 소성실은 원형인 10호 가마에서 확인되며, 평기

와를 사용한 바닥시설의 형태를 띤다. 262∼266㎝ 크기의 소성실은 7호와 8호가 해당되며 장타

원형의 평면형태를 띠는데, 무시설의 바닥과 타원형의 평면형태를 지닌다. 303∼350㎝에 해당

하는 가마는 4기로 월평리유적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1·2·6·9호 가마가 해당되며

중판타날 평기와가 확인되는 가마와 장판타날 평기와가 확인되는 가마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표 4> 월평리유적 기와가마 연도부 분류안

1형 2형 3형

1 · 2 · 6호 가마 4 · 5호 가마 7 · 8호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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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경남연구 제6집 2012

(5) 연도부

연도부는 배연구와 연도 및 굴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도부는 축조방법에서 석축형(1)·돌

출형(2)·터널형(3) 3개의 방법으로 구분된다. 석축형은 천석을 사용하여 연도부를 축조한 것

으로 1·2·6호가 해당된다. 1·6호 가마의 연도부에서는 완형에 가까운 동이 및 옹이 확인되

고 있어, 동이와 옹이 연도부 폐쇄를 위한 덮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돌출형은 소성실 외곽으로 반원형으로 기반층을 굴착하여 연도부를 축조한 형태이다. 4·5

호 가마가 해당되는데, 4호 가마의 매몰토에서 피열된 장방형의 천석 1매가 확인되고 있어 덮

개돌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터널형은 소성실에서 일정거리 떨어진 지점에 타원형 수혈을 수직에 가깝게 굴착한 후 지하

에서 소성실과 ‘┘’상으로 연결시킨 형태이다. 7·8호 가마가 해당되는데, 7호 가마에서 천석

과 수키와를 사용한 배연구가 확인된다. 8호 가마는 배연구 없이 소성실과 연도가 바로 연결된

다. 8호 가마와 달리 매몰토에서 피열된 장방형의 천석 1매가 확인된다.

2) 보조시설물

기와가마 안과 밖에서 확인되는 보조시설물은 송풍로와 주혈이 있다. 송풍로는 평요인 3호

가마에서만 확인되며, 수키와 내면이 지면으로 향하도록 하여 연이어 잇대어 놓은 구조이다.

주혈은 2호 가마에서만 확인된다. 2호 가마의 연도부와 소성실 상부에는 대칭되는 4기의 주

혈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주혈은 연도부와 가마의 상부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의 것으로

보인다. 2호 가마는 붕괴된 후 보수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2호 가마의 입지는 천정부가 지

하식의 형태를 띠지 않고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반지하식의 형태를 지닌 것으로 파악된다.

<표 5> 월평리유적 기와가마의 보조시설물

상부 가림막 시설 송풍로 시설

2호 가마 3호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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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75

2. 공방 건물지

건물지는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누어진다. 건물지 남쪽에 위치하는 곡부에서 계곡수가 지속

적으로 흐르고 있어 생활과 기와생산을 위한 용수를 확보하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건

물지와 함께 조성된 대규모의 축대는 이러한 계곡물에 의한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

로 보인다. 축대를 기준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 A구역과 B구역의 공간배치는 기와생산 공간·

태토와 연료를 저장하는 공간·기와 건조장과 적재 장소·와공의 거주 공간등과 관련하여 검

토가 가능하다.

1) A구역

A구역은 Ⅰ지구의 동쪽에 위치하며 습지퇴적층 위에 성토를 하여 조성하였다. 성토된 A구역

퇴적토가 B구역 건물지의 동쪽축대 하단석 위에 퇴적되어 있다. 따라서 B구역 건물지가 조성

된 이후에 A구역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A구역은 건물과 관련된 초석·적심 및 기단이 일체 확인되지 않으며, 출토 유물 또한 기형을

확인하기 어려운 소량의 평기와편 및 토기편만이 확인된다. B구역이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어져

2차에 걸쳐 건물이 조영되고 또 밀집되어 건물이 조성된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도면 2> 월평리유적 건물지 배치 공간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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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경남연구 제6집 2012

이점은 A구역과 B구역이 용도 및 조성의도의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A구역은 개방된 공

간으로 넓은 공터의 형태를 띠고 있다. A구역이 기와제작 공정에서 비에 구애 받지 않고 한시

적으로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과 관련 있거나 또는 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대규모의 물

품을 적재하여 두는 장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평기와의 하단에서 확인되는 세사립과 세석립이다. 월평리유

적에서 출토된 모든 평기와의 하단에서 세사립과 세석립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나 적지 않은 평

기와의 하단에서 세사립과 세석립이 확인되었는데, 이것은 평기와가 건조될 때 A구역에서 건

조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 한식 평기와 생산공정(국립문화재연구소 1996)을 관찰해 보면 평기와는 제작과정에서

와통에서 분리된 후, 이른바 ‘기와밭’으로 불리어지는 건조장에서 일정기간 건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평기와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햇볕을 잘 받을 수 있는 공터에서 한시적

인 시간 내에 건조가 이루어진 후 창고와 같은 시설물로 옮겨져 가마에서 소성되기 전까지 보

관이 이루어진다. 한편 A구역은 기와의 건조장과 더불어 가마 연료인 땔감, 즉 ‘번와목’의 적재

공간으로도 상정해 볼 수 있다. 땔감은 가마의 운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기와는 한 번에 약 8∼9백장을 구워내고 가마에 불을 지핀 뒤 나

흘 만에 불을 끄게 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가마와 유사할 것으로 보이는 벽돌 가마

하나에서 한번에 1,600장을 구워내는데 이때 소요되는 땔나무가 200바리 였다고 한다(정치영

2006). 이외 월평리유적의 존속시기에 해당하는 10세기 초 일본 측의 사료인 『延喜式』에는 기

와 1천매를 굽기 위해서는 4,800근, 즉 2.9톤의 연료가 필요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성림문

화재연구원 20120).

이와 같이 시기와 장소의 차이는 있으나 가마의 운영이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

하면, 월평리유적의 가마 소성 시에도 막대한 양의 땔감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월

평리유적은 한시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평기와를 생산하던 곳이었으므로 보

다 많은 땔감과 이러한 땔감을 보관하기 위한 장소가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A구역이 의도적으로 성토되고 또 대규모의 축대가 조성되었음에도 건물과 관련된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A구역의 남동쪽 모서리 축대는 출입시설의 기능을 지

닌 것으로 파악되는데, 인접한 B구역의 출입시설에서 표시석과 확돌로 출입에 대한 제한과 경

계를 표시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2개의 공간에 2개의 출입시설이 필요한 점과 또 출입의

제한을 알리는 시설물의 유무는 B구역과 A구역의 공간 활용 및 용도가 완전히 다름을 반영하

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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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77

2) B구역

B구역 건물지는 상하층건물지로 구분되어 2차에 걸쳐 건물이 조성되었다. B구역은 A구역

이 조성되기 이전에 사용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하층건물을 조영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

력을 동원하여, 북쪽의 구릉사면을 ‘ㄴ’상으로 절개한 후 성토 및 정지를 실시하였고 남쪽과 동

쪽에는 축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층건물지는 2동이 확인되었는데, 1호 건물지의 규모는

길이 654㎝, 너비 386㎝이다. 2호 건물지는 1열의 초석 및 적심열과 기단 만이 확인되었는데,

규모는 전체 길이가 1,163㎝이다. 2호 건물지의 남-북 방향 적심 및 초석 열과 대칭되어야 할

초석 열의 위치에 1호 건물지가 조성되어 있어, 2호 건물지가 폐기 된 이후 1호 건물지가 조성

된 것으로 파악된다. 1·2호 하층 건물지는 취사 및 난방과 관련된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상시

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었기 보다는 작업장 또는 다른 성격의 기능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즉 적심의 규모를 통해 상층에서 확인되는 건물 보다 정형화되고 큰 규모의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하층 건물지는 유구의 밀집도가 낮고 출토유물 또한 거의 없는 점의 유의되

는데 출토 유물은 수막새 1점과 중

판타날된 선문 평기와가 있다.

하층 건물이 어떠한 이유에 의해

폐기된 후, 상층 건물 조영을 위한

정지가 이루어졌는데, 이 점은 하

층건물의 성격 내지 사용시기가 연

속적으로 활용 및 이어지지 못하고

의도적인 재정비가 이루어졌음을

반영한다. 이점은 하층건물과 상층

건물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유의

된다. 한편 정지층 일부에서는 기

형을 확인하기 어려운 다량의 평기

와편이 확인되었다.

상층 건물지가 조성된 기단석과

적심 주위에서도 다량의 평기와편

이 확인된다.

B구역의 건물은 밀집되어 조성

되어 있다. 이는 기와제작 공정에

필요한 작업공간과 관련하여 검토 <도면 3> 월평리유적 B구역 상층 건물지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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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경남연구 제6집 2012

가 요구된다. 전통 기와 제작 과정에는 大匠인 와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보통 흙을 이기는 질

꾼 1명, 부와·여와의 통을 빼는 통꾼 2명, 불일을 하는 화부 2명 등 대체로 5∼6명이 한 조가 되

어 ‘기와 일’을 하는 것을 알려져 있다(국립문화재 연구소 1996). 이를 참조해 보면 기와제작에는

최소 5∼6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인력이 작업하는 공간을 상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B구역에서 건물이 밀집되어 조성되고 또 여러 개의 건물로 구획이 나누어져 조성된 것은 기

와 생산에 필요한 작업 공정과 그 작업 공간이 분업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밀집되어

조성된 건물은 각각의 공정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건물지의 중앙에서 방형의 마당시설이 확인되고 계단시설이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형

의 공간 주위로 건물이 모두 배치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1-1호∼1-3호 건물지는 한 동의 건물지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연접하여 조성되어 있으

며, 축조의 선후관계를 확인하기 힘들다. 건물의 내부시설 및 구조를 통해 3동의 건물지로 파

악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1호 건물지는 평면형태가 남북 방향의 세장방형으로 회랑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동서 방향의 적심간 거리가 60∼80㎝에 불과하며 바닥면에서 다량의 평

기와가 출토되었다. 바닥면에 깔린 평기와로 인해 심한 요철이 형성되어 있다. 동서간의 주간

거리가 짧은 점을 고려할 때 1-1호 건물지는 벽체를 갖추지 않은 공간일 가능성이 높으며 작업

장으로 사용되었기 보다는 적재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1-2호의 우측과 소성유구가 위치하는 빈 공간이 1-1호 건물과 관련된 주 작업공간으로 추측

된다. 1-2호와 1-3호 건물지에서는 취사 및 난방과 관련된 고래시설 및 노지가 확인되고 있어

와공의 거주공간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러한 거주공간은 온돌의 형태를 지니지 않고 장소가

협소하게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상시적인 거주를 위한 곳이 아니라 기와생산 시 임시적으로

사용되는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호 건물지는 취사 및 난방과 관련된 시설이 확인

되지 않고 있어, 기와 제작 작업장 또는 물품의 적재공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외 정형성 있는 초석과 적심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마당시설의 동쪽 공간도 일부 천석이 확

인되고 있어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B구역 중앙에는 피열흔이 확인되는 석축된 소성유

구가 확인된다. 온돌 및 고래와 연결되는 구조를 갖추지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피열이 이루어졌

고 다량의 목탄과 소토가 확인되고 있어 난방 또는 취사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B구역 건물은 장기간 와공이 상주하지 않고 공방시설로서 기와제작 작업과

와공의 임시거주를 위한 건물로 파악된다.

한편 B구역 건물지에서는 가마에서 출토되지 않은 장판타날판을 사용하여 제작된 복합문의

평기와가 확인된다. 가마에서 출토되는 평기와는 가마의 폐기시점에 남겨진 것이므로 가마출

토 평기와와 건물지 출토 평기와가 제작시점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가마가 폐기된 이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건물이 사용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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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79

Ⅳ.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월평리유적에서 평기와는 기와가마와 B구역 건물지에서 다량으로 출토되었는데, 이중 수막

새 2점·수키와 79점·암키와 135점을 선별 수습하였다. 출토양상은 가마의 경우, 바닥과 매

몰토의 뚜렷한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고 부분적으로 내부시설물의 부재로 사용되

었다. 건물지의 경우, B구역 상층건물지를 중심으로 다량의 평기와가 출토되었다. 상층건물지

조성을 위해 성토 및 정지를 실시한 층에서도 평기와가 확인되나, 대부분 잔편이어서 기형을

확인하기 어렵다. 가마와 건물지에서 출토된 평기와는 문양과 제작기법에서 일정한 차이가 확

인된다.

1. 제작기법

1) 타날판

평기와의 타날판은 대개 크기와 타날 횟수에 따라 단판·중판·장판타날 평기와로 분류할

수 있다. 타날판은 대체로 단판 → 중판 → 장판으로 변화하며, 이러한 변화는 일정한 시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태선 1993).

<표 6> 월평리유적 가마출토 평기와 타날판 및 타날문양 현황 <●중판타날 평기와 ▲장판타날 평기와>

유형

가마

타날문양과 타날판

출토 수량A형 B형 C형 D형

1 2 1 2 1 2 1 2 3

1 ● ● ● ● ⅠA1 1점, ⅠA2 4점, ⅠB1 1점, ⅠC1 1점

2 ● ● ▲ ▲ ▲ ⅠA2 1점, ⅠC1 1점, ⅠD1 6점, ⅠD2 5점, ⅡD3 6점

3 ● ● ● ⅠA2 6점, ⅠB1 2점, ⅠB2 1점

4 ● ⅠA2 4점

5 ● ● ▲ ⅠA2 6점, ⅠC1 1점, ⅡD1 6점

6 ● ● ▲ ⅠA2 3점, ⅠC1 1점, ⅡD1 3점

7 ● ▲ ⅠA2 7점, ⅡD2 5점

8 ● ● ▲ ⅠA2 1점, ⅠC1 2점, ⅡD1 13점

9 ● ● ⅠA2 4점, ⅠC1 1점

10 ●▲ ●▲ ● ● ⅠA2 4점, ⅡA2 3점, ⅠB1 1점, ⅡB1 3점, ⅠB2 3점, ⅠC1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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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경남연구 제6집 2012

월평리유적에서는 중판과 장판타날평기와가 확인되는데, 중판타날(Ⅰ)은 길이가 폭보다 긴

타날판을 사용하여 평기와 외면을 종방향 내지 사방향으로 2∼3회 타날한 것이다.

장판타날(Ⅱ)은 타날판의 폭은 중판과 유사하나 길이가 평기와의 길이와 동일한 크기이며 횡

방향으로 1회 타날한 것이다.

2) 타날문양

타날문양은 중복 타날방지와 흙 밀림을 방지하고 타날판과 타날되는 소지의 접착력을 높여

준다는 점에서 제작기법적 속성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기에 따라 빠르게 문양 및 그 구조가 변

화하고 특히 명문기와의 경우, 문양적 요소가 강해 제작기법적 속성과 문양적 속성 모두를 포

괄하는 속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타날문양은 문양의 구성 및 요소를 기준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문양의 구성을 기준으

로 타날문양을 분류할 경우, 단위문양 1개가 단독문의 형태로 시문되는 1단구성문·단위문양 2

개가 조합되어 타날판에 새겨지는 2단구성문·단위문양 3개가 타날판에 조합되는 3단구성문,

3개 이상의 단위문양이 조합되는 다단구성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 3단 구성문은 상하 2개

의 단위문양이 중앙의 횡대구획문에 의해 구분되는데, 이때 상단과 하단의 단위문양은 동일하

거나 다른 형태의 문양이 조합된다.

문양의 구성이 아닌 문양 요소를 기준으로 평기와를 구분할 경우, 단독문과 복합문으로 구분

이 가능하다. 단독문은 선문계와 집선문계·무문계의 문양이 확인된다. 복합문은 선문+사선문

계·능형문·어골문 등이 확인된다. 월평리유적에서 타날문양을 구성하는 단위문양과 타날판

의 문양 구성 및 요소를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단위문양

월평리유적에서 확인되는 타날판의 단위문양은 선문·집선문·무문·어골문·능형문·차륜

문·초문·사격자문·기하문·동심원문이 있다. 선문은 종선문 내지 사선문의 형태로 평행타

날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판타날평기와에서는 선문간의 간격이 0.5㎝ 정도인 선문과 0.1㎝ 내

외의 매우 세장한 선문이 새겨진 것이 확인되며 문양구성에서는 주로 2단구성문의 형태를 띤

다. 장판타날 평기와에서는 1단구성문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이외 선문+사선문이 조합되는 2

단구성문의 형태를 보인다.

집선문은 삼각집선문을 중심으로 종선문 내지 횡선문이 부분적으로 조합되는 삼각집선문·선

문바탕에 횡선문 내지 ‘X`’자문이 조합되는 집선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삼각집선문과 선문+X자

부가문은 중판타날평기와 및 장판타날평기와 모두에서 확인되며, 대체로 2단 구성을 띠는 중판

선문평기와와 달리 종방향으로 타날이 이루어져 문양구성은 1단구성문의 형태를 보인다. 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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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81

원래부터 타날판에 문양이 새겨지지 않은 경우와 문양이 있는 타날판을 사용하여 타날을 실시한

후, 물손질로 문양을 지운 경우로 나누어진다. 후자의 경우 평기와 외면 전체에 물손질 흔적이

확인되며 부분적으로 타날문양이 약하게 확인되기도 한다. 월평리유적의 무문타날 평기와에서

는 1점의 수키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무문평기와가 외면의 물손질흔이 확연하지 않고, 문양이

일체 확인되지 않고 있어 문양이 새겨지지 않은 타날판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어골문은 고려기와를 대표하는 타날문양으로 종선을 중심으로 하여 사선이 좌우로 대칭되는

문양형태이다. 월평리유적에서도 일부가 확인되나 어골문의 전형적인 형태인 1단구성문 내지

상하대칭의 2단구성문·중앙의 횡대구획문에 의해 어골문이 구분되는 3단구성문의 어골문은

일체 확인되지 않는다. 월평리유적에서 어골문은 장판타날된 평기와에서 종선문과 부분적으로

조합되는 형태로만 확인되며, 평기와의 잔존상태가 불량하여 기형을 확인하기 어렵다.

능형문은 사격자문의 형태로 월평리유적에서는 능형문 중앙에 점문을 배치하였는데, 1단구

성문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차륜문 또는 초문과 조합되어 2단 내지 3단구성문의 형태로 사용하

였다. 격자문은 정격자문과 사격자문이 확인된다. 월평리유적에서는 모두 장판타날된 평기와

에서만 확인할 수 있으며 1단구성의 단독문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른 문양과 조합되어 2단 내지

3단구성문의 형태를 보인다.

차륜문은 수레바퀴와 유사하게 원형문의 중심에서 여러 선이 뻗어나가는 형태를 띤다. 1점이

출토되었는데, 장판타날된 3단구성문에서 능형문과 조합된다. 동심원문은 말각방형에 가까운

원문 내에 원문이 동심원의 형태로 포함되는 경우로, 차륜문과 같이 1단구성문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3단구성문에서 다른 문양과 조합되는 형태를 보인다. 이외 장판타날된 평기와 1점에서 2

단 내지 3단구성문의 문양요소로 보이는 방곽문 형태의 기하문이 확인되나, 잔존상태가 불량

하여 전체적인 기형을 확인하기 어렵다.

(2) 문양구성 및 문양요소

월평리유적에서는 1단구성문·2단구성문·3단구성문이 확인되며, 3단 이상의 문양이 조합

되는 다단구성문은 1점만이 예외적으로 확인된다.

1단구성문은 중판타날된 집선문 수키와와 장판타날된 선문 및 집선문 평기와에서 확인되며,

무문평기와의 경우 무문양이라는 하나의 문양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1단구성문으로 파악

할 수 있다.

2단구성문은 중판타날된 선문 및 집선문 평기와와 장판타날된 선문+사선문평기와가 해당된

다. 2단구성문 중 선문평기와와 선문+사선문 평기와의 타날문양은 기와가마 출토 평기와의 대

부분을 차지하는 중심 문양구성에 해당한다.

그런데 중판타날된 선문 평기와의 경우, 문양 요소에서는 1단의 단독문 형태를 띠나, 평기와

외면을 종방향과 사방향으로 2∼3회 타날하는 타날방법에 의해 문양구성은 2단구성문의 형태

를 띠게 된다. 즉 하단은 종선문이며 상단은 사선문의 형태를 띠게 되는데, 월평리유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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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경남연구 제6집 2012

2∼3회 타날을 통해 이뤄지는 종선문+사선문 형태의 문양구성 모티브가 1회 타날만을 실시하

는 장판타날 제작기법이 도입되면서 장판타날 평기와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

된다. 이외 중판타날된 평기와 중, 단위문양은 선문이나 종방향과 사방향의 타날이 이루어지지

않고 종방향의 타날만이 이루어져 1단 구성문의 형태를 띠는 선문 평기와가 소량 확인된다.

따라서 중판타날된 선문 평기와의 경우, 문양요소에서는 1단 단독문으로 파악할 수 있으나

종선문+사선문 형태의 문양구성 상의 모티브가 강하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2단 구성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외 단독문에 가까운 능형문에 초문이 상단에 배치되는 능형문+초문 형태의

2단구성문 평기와가 건물지에서 소량 확인된다.

3단구성문은 기와가마 출토 평기와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건물지 출토 평기와에서만 일부

확인된다. 건물지 출토 평기와의 경우 잔존상태가 대체로 불량하여 전체적인 기형을 확인하기

어려우나 문양구성의 비율을 통해 3단구성문으로 판단하였다. 월평리유적의 3단구성문은 중앙

의 횡대구획문에 의해 상하의 문양이 구분되는 형태를 띠는데, 중앙의 횡대구획문으로 사용된

문양은 차륜문·동심원문이다. 차륜문은 능형문을 상하로 구분하는 형태이며, 동심원문은 종

선문을 구분하는 형태로 파악된다. 이외 방곽문 형태의 기하문은 잔존상태가 불량하나 문양구

성의 비율을 통해 3단구성문으로 추정된다. 3단 이상의 문양이 조합되는 다단구성문은 건물지

에서 1점이 확인되며, 잔존상태가 불량하다. 사선문과 격자문·동심원문이 조합되는데, 평기와

의 길이를 고려하였을 때 하단에 다른 문양이 추가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문양의 요소는 평기와에 타날된 단위문양으로 이를 기준으로 월평리유적 출토 평기와를 검

토할 경우, 단독문에 해당하는 선문계(A)·집선문계(B)·무문계(C)와 복합문에 해당하는 종선

문+사선문계(D)로 대별이 가능하다. 이외 공방건물지에서 확인되는 복합문 평기와는 출토 수

량이 적고 잔존상태가 대체로 불량하다.

월평리유적에서는 중판타날 평기와와 장판타날 평기와가 함께 출토되었고 더욱이 중판에서

장판타날로의 전환 및 타날문양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타날기법

의 전환 및 타날문양의 계승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타날된 문양 요소를 기준으로 검토해 보고

자 한다.

선문계(A)는 문양요소가 단독문의 형태로 평행타날이 이루어진 것으로 중판타날과 장판타날

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된다. 선문계는 10호 가마에서 출토된 장판타날 평기와 3점을 제외하면

모두 중판타날평기와에 해당하며, 선문이라는 문양 요소가 장판타날기법이 도입된 이후에도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판단된다. 선문계(A)는 선문의 간격이 0.1㎝ 크기인 세선문(A1)과 0.5㎝

크기의 태선문(A2)으로 구분되는데, 1호 가마 출토 수키와 1점과 B구역 상층 1-1호 건물지 출

토 수키와를 제외하면 모두 태선문에 해당한다.

집선문계(B)는 삼각집선문을 중심으로 종선문 내지 횡선문이 부분적으로 조합되는 삼각집선

문(B1)과 선문 바탕에 사선문 내지 X자문이 부가되는 부가집선문(B2)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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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83

<표 7> 월평리유적 가마 출토 평기와 문양요소 분류안

선문계(A) 집선문계(B)

중판(Ⅰ) 장판(Ⅱ) 중판(Ⅰ) 장판(Ⅱ)

A1형 A2형 A2형 B1형 B2형 B1형 B2형

1호 가마 1~10호 가마 10호 가마 3,10호 가마 1,3,10호 가마 10호 가마 10호 가마

무문계(C) 선문+사선문계(D)

중판(Ⅰ) 장판(Ⅱ)

C1·C2형 D1형 D2형 D3형

1,2,5,6,8~10호 가마 2,5~8호 가마 2호 가마 2호 가마

집선문계(B)의 경우에도 10호 가마에서 출토된 장판타날 평기와 4점을 제외하면 모두 중판

타날로 제작되었다. 집선문은 중판타날의 문양적 요소가 장판타날 평기와에서도 계승되는 것

으로 판단된다.

무문계(C)의 경우, 중판타날과 장판타날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중판타날되었을 가능

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무문계는 문양이 확인되지 않는 평기와로 문양이 없는 타날판(C1)

을 사용하였거나 또는 타날 이후 물손질 정면으로 문양을 지운 경우(C2)로 나누어지는데, 1점

의 수키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가마 출토 무문계 평기와는 외면의 물손질 정면이 확연하지 않

아 문양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선문+사선문계(D)는 타날문양이 하단은 종선문, 상단은 사선문을 띠는 복합문으로 문양의

구성을 기준으로 분류할 경우 2단구성문에 해당한다. 선문+사선문계는 상단의 사선문 방향이

‘\’상으로 우에서 좌로 향하는 것(D1), ‘/ ’상으로 좌에서 우로 향하는 것(D2), 종선문과 사선

문 사이에 문양이 부가되는 것(D3)으로 나누어진다.

이외 건물지에서 출토된 평기와는 B구역 1호 상층건물지를 중심으로 확인된다. 가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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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경남연구 제6집 2012

<표 8> 월평리유적 건물지 출토 장판타날 평기와 문양안

어골문 능형문+초문능형문+차륜문

방곽문사선문+격자문+

동심원문동심원문+종선문

출토된 평기와와는 타날문양 및 문양 비율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건물지 출토 평기와의

경우에도 가마 출토 평기와와 같이 선문계(A)·집선문계(B)·무문계(C)가 확인되나 2·5∼8

호 가마에서 주문양 평기와로 확인되는 선문+사선문계(D) 평기와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그

러나 가마에서 출토되지 않은 장판타날된 어골문·능형문·차륜문·방곽문·동심원문이 추가

로 확인된다.

문양 조합에서는 단독문 내지 복합문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마 출토 평기와에 비해 제작

시기가 후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건물지 출토 평기와의 경우, 중판타날과 더불어 장판타날이

확인되는데 선문계와 집선문계·무문계는 중판타날이 이루어졌다. 이외 어골문·능형문·차

륜문·방곽문·동심원문은 모두 장판판날이 이루어졌다.

3) 길이

평기와의 길이는 와통의 규격과 관련된 것으로 평기와의 제작기법 중 중요한 속성에 해당하

나, 건물지 유적 출토 평기와의 경우 대체로 잔존상태가 좋지 않아 기존의 자료를 통해서는 검

토의 어려움이 있었다. 월평리유적에서도 길이를 확인할 수 있는 양호한 형태의 평기와는 대부

분 기와가마 출토유물이며, 건물지 출토 평기와는 잔존상태가 대체로 불량하다.

수키와 79점·암키와 135점 중 전체길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키와 41점과 암키와 37점

이며 이를 대상으로 길이 속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의 표 9와 같다. 월평리유적에서 확인되는

평기와의 길이는 표와 같이 타날판의 형태 및 문양요소와 관계없이 매우 다양하게 확인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정 규격에 해당하는 길이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평기와 제작의 규격

화가 검토의 대상이 된다. 월평리유적의 평기와 길이는 최단 25.7㎝이며 최장 36.3㎝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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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85

판타날 평기와와 장판타날 평기와는 제작의 시간성을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중판과

장판타날 평기와를 구분하여 길이의 속성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중판 선문계 평기와는 최단 길이가 27.4㎝, 최장 길이는 36.3㎝이다. 확인되는 길이는 모두

19종으로 27.4㎝, 30.5㎝, 30.7㎝, 31.0∼31.2㎝, 31.7∼31.9㎝, 32.2㎝, 32.4㎝, 32.6㎝,

32.7㎝, 32.8㎝, 32.9㎝, 33.2㎝, 33.5㎝, 33.7㎝, 34.0㎝, 36.3㎝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길

이는 동일 유구 내의 동일 타날판을 사용한 평기와의 경우 길이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따라

서 유사한 수치내의 길이는 제작과정에서 생긴 소지 길이의 미세한 차이이기 보다 규격이 다른

와통을 사용하여 평기와를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선문계에서는 대체로 30∼34㎝

내외의 유사하거나 동일한 수치의 평기와가 제작되었다.

중판 집선문계에서 길이를 검토 가능한 평기와는 모두 5점이다. 길이는 삼각집선문에 해당

하는ⅠB1의 경우 32.2㎝, 33.2㎝, 33.7㎝가 확인되며, 선문바탕에 횡선문 및 X자가 부가되는

ⅠB2의 경우 31.8㎝, 34.4㎝가 확인된다. 이중 32.2㎝와 33.2㎝는 중판 선문계 평기와에서도

동일한 수치가 확인되고 있어, 일부 평기와는 타날문양과 상관없이 와통의 규격이 유지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판으로 판단되는 무문계에서는 28.5㎝, 29.1㎝, 32.7㎝, 34.1㎝, 34.4㎝, 34.7㎝, 35.1㎝

의 길이가 확인된다. 이중 32.7㎝와 34㎝가 선문계의 길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하며, 집선문계

ⅠB2와는 34.4㎝가 동일한 점이 주목된다.

장판타날된 평기와의 경우, 선문계와 선문+사선문계 2종에서만 길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장

판타날된 선문계 평기와의 길이는 32.1㎝에서 33.2㎝이다. 32.1㎝는 중판 선문계에서 유사한

수치가 확인되며, 33.2㎝는 중판타날된 집선문 평기와와 장판타날된 선문+사선문계에서 동일

한 수치가 확인된다.

선문+사선문계의 문양요소는 모두 장판타날된 평기와로 기와가마 출토 평기와의 주 타날

문양에 해당한다. 선문+사선문계의 ⅡD1에 해당하는 평기와의 경우 25.7㎝에서 34.2㎝의 길

이가 확인되며 종류는 총 21종이다. ⅡD1의 경우 25.7㎝, 28.7㎝, 29.7㎝, 30.0㎝, 30.5㎝,

30.8㎝, 31.4∼31.6㎝, 31.9㎝, 32.0∼32.1㎝, 32.3㎝, 32.4㎝, 32.7㎝, 33.0㎝, 33.1㎝,

33.5㎝, 34.0㎝, 34.1㎝, 34.2㎝의 길이가 확인된다. 이중 30.5㎝와 31.9㎝, 32.4㎝, 32.7㎝,

33.5㎝, 34.0㎝는 중판타날된 선문계 평기와에서 확인되며 32.0㎝는 중판타날된 무문계 평기

와, 그리고 31.5㎝는 장판타날된 ⅡD2계의 평기와에서 확인된다.

ⅡD2의 경우, 9종의 규격이 확인되며 최단 및 최장 길이는 29.5∼34.4㎝이다. 검토 수량이

ⅡD1에 비해 적은 편인데, 동일한 형태의 규격은 확인되지 않는다. 29.5㎝, 31.5㎝, 31.8㎝,

32.2㎝, 32.4㎝, 33.0㎝, 33.8㎝, 34.4㎝가 확인되는데, 이중 31.5㎝는 중판타날된 선문계 평

기와, 31.8㎝는 중판타날된 선문계와 집선문계에서 확인된다. ⅡD3은 2호 가마에서만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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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경남연구 제6집 2012

되는 타날문양으로 길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개체는 4점이다. 수치는 31.2㎝, 32.5㎝, 34.2㎝,

34.8㎝가 확인된다. 이중 31.2㎝는 중판타날된 선문계 평기와에서 확인되며, 34.2㎝는 장판타

날된 ⅡD1에서 확인되는 점이 주목된다.

한편 평기와의 길이를 출토 유구별로 살펴 볼 경우 <표 10>과 같다. 중판타날된 평기와는 장

판타날 평기와에 비해 제작시기가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장판타날 평기와가 확인되

지 않는 1호 가마와 3호 가마는 월평리유적의 기와가마 중 축조시기가 가장 이른 것으로 판단

된다. 7·8·9호 가마는 중복관계에 있는데, 축조 및 사용은 9 > 8 > 7호의 순으로 이루어졌

다. 이중 9호 가마에서는 완형의 평기와가 확인되지 않아 길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1호 가마에서 출토된 평기와의 길이는 27.4㎝, 31.1㎝, 32.8㎝이다. 1호 수혈에서 32.8㎝ 수

치를 띠는 동일한 규격의 평기와가 확인되며, 다른 기와가마에서는 동일한 규격이 확인되지 않

는다. 다만 31.1㎝와 유사한 31.0㎝, 31.2㎝ 크기의 장판타날된 평기와가 2호 가마에서 확인되

며, 이외 1-1호 상층건물지에서 31.0㎝, 5호 가마에서 31.2㎝의 중판타날된 평기와가 확인된다.

32.8㎝와 유사한 수치의 평기와는 4호·5호 가마의 중판타날된 평기와에서 확인되고 있어 유사

한 수치 내의 규격성을 갖춘 와통을 사용하여 평기와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3호 가마에서 출토된 평기와는 모두 중판타날된 것으로 33.5㎝, 33.7㎝, 34.4㎝의 수치가

확인된다. 동일한 규격의 수치는 장판타날된 2호 가마 출토 평기와와 1호 수혈출토 선문계 중

판타날 평기와에서 확인된다.

2호 가마는 29.5∼34.8㎝에 이르는 14종의 다양한 길이가 확인되며, 이중 31.8㎝는 중판타

날과 장판타날 평기와 모두에서 확인된다. 4호 가마에서 규격을 알 수 있는 평기와는 1점으로

32.9㎝의 크기를 지니는 선문계 중판타날 평기와이다. 10호 가마 출토 중판타날 평기와에서

동일한 규격의 평기와가 확인된다. 5호 가마에서는 30.5∼34.1㎝에 이르는 11종의 평기와가

확인되었다. <표 3>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5호 가마에서 출토된 평기와는 2호·6호·7호·8

호·10호·1-1호 상층건물지 출토 평기와에서 확인되는 규격의 평기와가 대부분 확인된다. 6

호 가마에서 길이를 확인할 수 있는 평기와는 1점으로 32.6㎝의 수치를 보이며 5호 가마에서

동일한 수치를 지니는 중판타날평 기와가 확인된다.

7호 가마에서 확인되는 평기와의 수치는 3종으로 월평리유적에서 최단 길이에 해당하는

25.7㎝ 수치의 평기와가 확인되며, 이외 28.7㎝, 31.5㎝ 길이의 평기와가 출토되었다. 8호 가

마에서는 30.5∼34.7㎝에 해당하는 13종의 평기와가 확인되었으며, 8호 가마와 7호 가마는 중

복관계에 있음에도 동일한 수치의 평기와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토된 평기와 길이의 대다수가

다른 가마에서 확인된 5호 가마와 달리 7호 가마는 출토된 평기와 길이의 종류가 많음에도 불

구하고 중복되는 수치를 보이는 개체가 상대적으로 적다. 5호·10호 가마, 1호 수혈, 1-1호 상

층건물지에서 동일한 수치를 보이는 평기와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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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87

<표 9> 월평리유적 평기와 제작기법 속성표1)

일련번호

보고번호

유구번호1)

종류

타날판타날 문양

길이(㎝)

와도분할형식

물손질

깎기

선문계(A) 집선문계(B) 무문계(C) 선문+사선문계(D)

중판(Ⅰ)

장판(Ⅱ)

A1 A2 B1 B2 C1 D1 D2 D3

1 158 건1-1 수 ● ● 30.5 a

2 3 가1 수 ● ● 27.4 a

3 59 가5 수 ● ● 30.5 a ○

4 141 건1-1 수 ● ● 30.7 d ○

5 169 건1-1 암 ● ● 31.0 d ○

6 2 가1 수 ● ● 31.1 c ○

7 49 가5 수 ● ● 31.2 a ○

8 97 가8 수 ● ● 31.7 a

9 19 가2 수 ● ● 31.8 a

10 171 건1-1 암 ● ● 31.8 d ○ ○

11 125 가10 암 ● ● 31.9 c ○

12 119 가10 암 ● ● 32.0 c ○

13 37 가3 수 ● ● (32) a

14 48 가5 수 ● ● 32.2 a ○

15 122 가10 암 ● ● 32.4 d ○

16 50 가5 수 ● ● 32.6 b

17 60 가5 수 ● ● 32.6 a ○

18 68 가6 수 ● ● 32.6 d

19 118 가10 암 ● ● 32.7 c ○

20 61 가5 수 ● ● 32.7 a

21 134 수1 수 ● ● 32.8 a

22 9 가1 수 ● ● 32.8 c ○ ○

23 44 가4 암 ● ● 32.9 d ○

24 126 가10 암 ● ● 32.9 c ○

25 127 가10 암 ● ● 33.2 c ○

26 34 가3 수 ● ● 33.5 a ○

27 36 가3 수 ● ● 33.5 d

28 35 가3 수 ● ● 33.7 c

29 135 수1 암 ● ● 34.0 b ○ ○

30 170 건1-1 암 ● ● 36.3 d ○

31 115 가10 수 ● ● 32.2 a

32 120 가10 암 ● ● 33.2 d ○

33 33 가3 수 ● ● 33.7 a

34 121 가10 암 ● ● 31.8 d ○

35 39 가3 암 ● ● 34.4 d ○

36 157 건1-1 수 ● ● 28.5 a

37 116 가10 수 ● ● 29.1 a

38 172 건1-1 암 ● ● 32.7 d

39 53 가5 암 ? ● 34.1 c

40 133 수1 수 ● ● 34.4 b

1) 유구번호는 기와가마 1호의 경우 가1, 수혈 1호는 수1, 상층건물지 1-1호는 건1-1로 표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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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경남연구 제6집 2012

일련번호

보고번호

유구번호

종류

타날판타날 문양

길이(㎝)

와도분할형식

물손질

깎기

선문계(A) 집선문계(B) 무문계(C) 선문+사선문계(D)

중판(Ⅰ)

장판(Ⅱ)

A1 A2 B1 B2 C1 D1 D2 D3

41 99 가8 암 ● ● 34.7 d

42 197 건1-2 암 ● ● 35.1 c ○

43 123 가10 암 ● ● 32.1 b ○ ○

44 124 가10 암 ● ● 33.2 d ○

45 76 가7 수 ● ● 25.7 c

46 77 가7 수 ● ● 28.7 d

47 14 가2 수 ● ● 29.7 d

48 18 가2 수 ● ● 30.0 d

49 30 가2 수 ● ● 30.0 d ○

50 142 건1-1 수 ● ● 30.0 d

51 87 가8 수 ● ● 30.5 c ○

52 88 가8 수 ● ● 30.8 d

53 96 가8 수 ● ● 31.4 d

54 75 가7 수 ● ● 31.5 c

55 58 가5 수 ● ● 31.6 d

56 57 가5 수 ● ● 31.9 a ○

57 15 가2 수 ● ● 32.0 c

58 51 가5 수 ● ● 32.0 d

59 93 가8 암 ● ● 32.1 d ○

60 95 가8 암 ● ● 32.3 d ○

61 90 가8 암 ● ● 32.4 d ○

62 91 가8 암 ● ● 32.4 d ○

63 101 가8 암 ● ● 32.7 c ○ ○

64 94 가8 암 ● ● 33.0 b ○ ○

65 89 가8 암 ● ● 33.1 c ○

66 31 가2 암 ● ● 33.5 c ○

67 100 가8 암 ● ● 34.0 b

68 92 가8 암 ● ● 34.1 d ○

69 21 가2 암 ● ● 34.2 b ○

70 27 가2 암 ● ● 29.5 c ○

71 56 가5 수 ● ● 31.5 c

72 16 가2 수 ● ● 31.8 d

73 29 가2 수 ● ● 32.2 c ○

74 52 가5 수 ● ● 32.4 c ○

75 22 가2 암 ● ● 33.0 c

76 23 가2 암 ● ● 33.8 c ○

77 24 가2 암 ● ● 34.4 c ○

78 13 가2 수 ● ● 31.2 c ○

79 17 가2 수 ● ● 32.5 c ○

80 25 가2 암 ● ● 34.2 d

81 26 가2 암 ● ● 34.8 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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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89

<표 10> 월평리유적 유

구별 평

기와 길

이 속

성표

<● : 중

판타날평기와 / △

: 장

판타날평기와>

cm

25.7

27.4

28.5

28.7

29.1

29.5

29.7

30.0

30.5

30.7

30.8

31.0

31.1

31.2

31.4

31.5

31.6

31.7

31.8

31.9

32.0

32.1

32.2

32.3

32.4

32.5

32.6

32.7

32.8

32.9

33.0

33.1

33.2

33.5

33.7

33.8

34.0

34.1

34.2

34.4

34.7

34.8

35.1

36.3

1호 가마

●●

2호 가마

△△

△△

△△●

△△

△△

△△

△△

3호 가마

●●

4호 가마

5호 가마

●●

△△

△△

●△

●●

6호 가마

7호 가마

△△

8호 가마

△△

△●

△△

△△

△△

△△

10호

가마

●●

●●

△●

●△

●●

1호 수혈

●●

1-1호 상층

건물지

●△

●●

●●

●●

계1

11

11

11

23

11

21

21

21

14

22

23

14

12

42

22

11

21

12

21

3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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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경남연구 제6집 2012

10호 가마는 중판타날 평기와를 중심으로 길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29.1∼33.5㎝ 크기에 해

당하는 10종의 길이가 확인된다. 이중 32.4㎝는 중판타날 평기와와 장판타날 평기와가 동일

한 수치를 보인다. 1호 수혈은 32.8㎝에서 34.0㎝·34.4㎝의 길이가 확인되는데, 1호·2호·3

호·8호 가마에서 동일한 수치의 평기와가 확인된다. 1-1호 상층건물지에서는 28.7∼36.3㎝에

이르는 9종의 평기와가 확인된다. 월평리유적에서 최장 길이에 해당하는 35.1㎝·36.3㎝ 수치

의 평기와가 확인되며, 최장 길이 2점과 28.5㎝ 크기의 평기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평기와가

다른 가마에서 출토된 평기와의 수치와 동일한 규격을 보인다.

4) 와도분할

월평리유적에서는 4가지의 와

도분할 형태가 확인되며, 이러

한 와도분할의 차이는 와도를 긋

는 행위뿐만 아니라 와도분할 시

사용되는 도구의 차이를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a형식은 한 면은

내측에서 외측으로 다른 면은 외

측에서 내측으로 와도분할을 혼

용하여 실시한 형태이다.

a형식은 1점의 선문+사선문계 장판타날 평기와를 제외하면 모두 중판타날된 수키와에서만 확

인되는 와도분할 형식이다. b형식은 내측에서 외측으로 두께의 1/5∼1/7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분할 한 형식이다. b형식은 선문계, 선문+사선문계와 무문계에서 소량이 확인된다. c형식은 내

측에서 외측으로 두께의 1/2∼1/3 정도로 와도분할한 형식이다. d형식은 두께의 전면 내지 1/5

정도로 와도분할한 형식이다.

5) 기면조정

평기와의 기면조정은 하단부 깎기 조정과 물손질 조정이 있으며, 기와제작의 시간성을 반영하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태선 1993). 월평리유적 평기와의 기면조정은 하단부 깎기·하단부 외

면 물손질·상단 물손질 조정이 있다. 하단부 깎기는 장판타날된 선문+사선문계를 중심으로 확

인되며, 부분적으로 중판타날된 선문계와 무문계 평기와에서 깎기 조정이 확인된다. 깎기 조정

의 범위는 1.5∼2.0㎝ 정도이며, 이와 함께 하단부 외면조정이 대부분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단부 외면 물손질 조정은 5∼14㎝ 범위에서 이루어졌는데, 선문계·집선문계·무문계·선

<표 11> 월평리유적 평기와 와도분할 형식 분류안

a형식 b형식 c형식 d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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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91

문+사선문계 모두에서 확인된다. 상단조정은 물손질로 상단을 凹상으로 둥글게 처리한 것으

로 상단 조정과 함께 상단부 외면의 물손질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단조정은 중판타날

된 선문계 평기와에서만 확인된다.

6) 띠흔

띠흔은 윤철흔 및 와통띠흔과 합철흔이 확인된다. 월평리유적에서 윤철흔과 띠흔은 평기와

의 상단이 아닌 하단에서 확인되는 점이 특징이다. 하단에서 확인되는 띠흔의 경우에도 일정한

수치로 포목전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확인이 된다. 합철흔은 중판타날된 수

키와에서 주로 확인되며, ‘X’자형을 띠거나 ‘ㅅ’의 형태를 띤다.

Ⅴ.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의 운영양상과 평기와의 특징

1. 기와생산시설 운영양상

기와생산시설의 운영양상은 가마 몇 기만이 확인되는 단독운영과 중복 및 밀집된 다수의 가

마와 공방건물이 확인되는 집단운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나말여초기의 가마로 보고된 거창

상동유적Ⅰ과 고려시대 가마가 확인된 거창 가지리유적에서는 공방건물지가 확인되지 않으며,

가마 1∼2기만이 확인되고 있어 월평리유적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기와는 건축부재로서 많

은 수량을 필요로 하고 있어 공급지와 수요지 간의 거리가 멀 경우 이동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따라서 공급지와 수요지 간의 거리가 멀 경우, 수요지에 와공이 직접 이동하여 기와생산시설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상동유적Ⅰ과 가지리유적의 가마는 단독운영이 이루어

진 형태로 월평리유적과 멀리 떨어져 위치하지 않는데, 따라서 상동유적Ⅰ과 가지리유적의 가

마가 운영된 시점에서 월평리유적의 기능이 소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월평리유적 보

다 제작시기가 늦은 출토 유물의 차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반면 집단운영 된 월평리유적은 대규모의 축대시설과 함께 10기의 가마 및 상층과 하층건물

로 나누어진 공방건물지가 함께 확인되고 있다. 10기의 가마는 함께 운영되었다기 보다는 폐기

와 신축과정을 반복하며 운영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소규모 가마를 통해 지속적이고 장기적

으로 거창 지역 일대에 기와를 공급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대규모 인력 동원을 필요로 하는

축대시설과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기와생산시설의 운영 형태를 통해 월평리유적은 고려시대 수

공업과 관련된 역을 담당한 ‘瓦所’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와소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

람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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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경남연구 제6집 2012

「新增東國輿地勝覽 卷 七 驪州牧 古蹟 登神莊 : 高麗時 又有稱所者, 銀所, 銅所, 鐵所, 絲所, 紬

所, 紙所, 瓦所, 炭所, 鹽所, 墨所, 所, 陶器所, 魚梁所, 薑所之別 而各供其物.」

위와 같이 와소로 추정할 수 있는 월평리유적의 운영시기와 형태를 출토유물과 가마의 구조

를 통해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출토유물 및 상하층으로 나누어져 조영된 건축물을 통해 월

평리유적의 운영은 크게 2번의 획기가 확인된다.

즉, 출토유물을 통하여 가마 축조의 선후관계는 크게 중판타날된 평기와만이 확인되는

1·3·4·9호 가마와 중판 및 장판타날된 평기와가 함께 확인되는 2호·5호∼8호 가마로 나

누어진다. 중판타날된 평기와가 장판타날된 평기와에 비해 제작시기가 빠르므로 1·3·4·9호

가마도 2호·5∼8호 가마에 비해 축조 및 운용시기가 앞서는 것으로 판단된다. 1·3·4·9호

가마 간에는 중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물 또한 평기와만을 통해 가마 축조의 선후관계를 확

단하기 어렵다. 다만 3호 가마의 경우, 구릉사면 말단의 평탄지에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고 또

송풍로 시설을 갖추고 있어 1·4·9호 가마와 입지와 구조상 일정한 차이가 있다.

3호 가마는 경사면에 밀집되어 조성된 1·2·4∼9호 가마와 달리 소성실의 경사도가 10° 이

하인 평요에 해당한다. 송풍로 시설 또한 이처럼 낮은 경사도로 인해 연소 시 산소의 공급이 원

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구조상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호 가마가 조성된 평

탄지에서는 더 이상 가마가 조성되지 않고 구릉사면에서만 밀집되어 가마가 조성되고 있는데,

경사도 10° 내외의 평요가 삼국시대에 일시적으로 조영되다가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사라지

고 경사도가 급해지는 등요로 구조가 변화한다는 기존의 연구성과(이훈 1996)를 참조하면 3호

가마는 월평리유적의 가마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고 운용된 가마일 가능성이 높다.

출토유물 또한 10호 가마를 제외한 다른 가마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배면각(背面角)이 있는 중

판타날된 삼각집선문 평기와가 확인되는 점도 유의된다.

이외 1·4·9호 가마는 서로 간에 중복·밀집되지 않고 비교적 거리를 두고 조성되었는데, 이

는 후축된 5∼8호 가마가 1·4·9호 가마와 중복되거나 연접하여 조성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1·4·9호 가마의 평면형태는 장타원형(가형)이며, 불턱은 낮은 단이 지는 A형, 303·350㎝ 크

기의 소성실 규모, 점토를 바닥면에 바르지 않고 기반층을 그대로 사용한 공통점(a형)이 확인된

다. 그러나 연도부에서는 석축형(1형)과 돌출형(2형)으로 구분되고 소성실의 장폭비 및 평면형

태의 세부적인 차이가 확인된다. 이러한 가마 속성의 세부적인 차이는 가마 축조의 시간적인 차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며, 가마의 운용 또한 여러 기의 가마가 동시에 운용되기보다 소규모

의 형태로 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가마의 편년은 9호 가마에서 출토된 대부완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9호 가마에서

는 소량의 평기와와 대부완 3점, 완 1점, 동이 파수 1점이 출토되었다. 9호 가마 출토 대부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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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93

무문으로 저화도 소성되었는데 기형이 용인 용덕동유적 출토 대부완과 유사하다(기전문화재연

구원 2010). 용인 용덕동유적 출토 대부완은 9세기 전중반대의 유물로 보고되었고 통일신라시

대 대부완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구자린 2009)에서도 이러한 기형은 9세기대로 파악되고 있

다. 9호 가마에서 확인된 대부완은 연소실의 바닥면에서 출토되어 가마의 최종 폐업 시에 유입

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대부완은 가마 폐기 시 제례행위와 관련하여 유입되었거나 또는 9

호 가마가 평기와와 도기를 함께 생산하는 와도겸업요로 운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부

완을 통해 9호 가마의 폐기 시점은 9세기대로 파악된다. 한편 중판타날된 기와가 확인되는 가

마의 하한 운용시점은 10세기 후반으로 편년할 수 있다.

서부경남지역에서는 10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진주 묘엄사지 출토 「大平興 丁丑」 명문기와에

서 확인되는 것처럼 977년 까지도 중판타날기법을 사용한 평기와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후 창녕 말흘리 고려시대 건물지에서 출토된 「大(太)平」 명문기와와 사천 선진리성 출토 「太平

十五連」 명문기와를 통해 1021∼1030년 사이에는 평기와 제작에 장판타날 기법이 도입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월평리유적에서는 중판과 장판타날된 평기와가 2호·5∼8호 가마에서 함께

확인 되고 있다. 이는 1·3·4·9호 가마보다 뒤 늦게 제작된 2호·5∼8호 가마가 운용되던

시점에도 중판타날 제작기법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1·3·4·9호 가마는

최소한 10세기 후반 이전에는 확실히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월평리유적에서는 건물지가 상층

과 하층으로 2차에 걸쳐 조영되었는데, 하층건물지에서는 중판타날된 평기와만이 확인되고 있

어 1·3·4·9호 가마는 하층 건물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장판타날된 평기와가 확인되는 2호·5∼8호 가마의 경우, 회구부의 중복관계를 통해 8호가

선축되고 7호가 후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7호와 8호 가마는 평면형태·규모·구조·축조 위

치가 거의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유의된다. 2호·5∼8호 가마는 평면형태에서 장타원형(가

형)·제형(나형)·선저형(다형)의 형태로 다양하게 확인된다. 소성실의 경우에도 7호와 8호를

제외하면 장폭비에서 일정한 차이가 확인되고 있다. 연도부의 형태에서도 석축형(1형)·돌출형

(2형)·터널형(3형)의 형태가 확인되고, 불턱의 경우에도 3종류가 확인되고 있어 가마축조의 기

술적인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마 속성의 차이는 가마축조의 시간적

인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며, 평기와의 제작기법이 중판타날에서 장판타날 제작기법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보다 많은 가마의 구조변화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2호·5∼8

호 가마의 운용 또한 여러 기의 가마가 동시에 운용되기보다 소규모의 형태로 운용되었을 가능

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공방건물지와 관련하여 2호·5∼8호 가마는 상층건물이 사용

되던 시기에 운영된 것으로 파악되며, 하층건물과 달리 상층건물에서 건물이 보다 밀집되어 다

수가 조성되고 있는 점이 유의된다. 이러한 2호·5∼8호 가마의 편년은 출토된 평기와의 제작기

법과 고지자기 연대측정을 통해 10세기 후반에서 12세기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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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경남연구 제6집 2012

2. 평기와의 특징

월평리유적 평기와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가마 내에서 중판타날된 평기와와 장판타날된

평기와가 함께 출토되는 점이다. 중판타날 기법에서 장판타날 기법으로의 전환은 평기와 제작

의 획기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고려기와’의 성립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서부경남

지역에서 고려기와 성립기의 양상은 10세기 까지 유지되던 중판 선문타날·상하 2단 문양구성

의 전통이 11세기 들어 장판타날·어골문과 결합되어 경남지방 최초의 고려기와인 장판타날·

상하 2단 대칭구성 어골문 기와로 발현하는 것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김기민 2008).

그러나 월평리유적에서는 중판 선문타날·상하 2단 문양구성의 평기와(ⅠA2형)가 장판 선문

+사선문 타날·상하 2단 문양구성 평기와(ⅡD형)와 함께 가마 내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것은

2∼3회 타날을 실시하여 ‘선문+사선문’ 형태의 2단 문양구성을 나타내는 중판타날 모티브가

장판타날 기법이 도입된 후 1회 타날 만으로도 표현될 수 있게 계승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

한 양상은 경남지역에서 ‘고려기와’의 성립이 장판타날·상하 2단 대칭구성 어골문 평기와뿐만

아니라 장판타날·상하 2단 구성의 ‘선문+사선문’ 평기와(ⅡD형)를 통해서도 다원적으로 성립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평리유적에서는 선문계에 해당하는 중판타날 2단 구성문(ⅠA1형·ⅠA2형)이 장판타날 선

문+사선문계(ⅡD형)로 계승되는 것 외에 집선문계에 해당하는 중판타날 삼각집선문 평기와(Ⅰ

B1형)와 선문+X자부가문 평기와(ⅠB2형)의 경우에서도 각각 장판타날 평기와인 ⅡB1형과 Ⅱ

B2형으로 계승되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거창지역 일대에서 중판타날에서 장판타날 제작기법으로의 전환은 어골문과 같은 외

지적인 문양요소의 도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판타날 단계에서 사용되던 재지적

인 문양 요소에 장판타날기법이 접목되어 성립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선문+사선문계 타

날문양인 ⅡD형은 월평리유적에서 장판타날된 평기와의 중심문양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현

재까지 거창지역을 포함하여 경남지역 일대에서 출토사례가 확인되지 않아 수급관계 및 확산

과정을 확인할 수 없는 점이 과제로 남는다. 월평리유적에서 평기와의 전체 길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개체는 81점으로 25.7∼36.3㎝까지 44종의 수치가 확인된다. 이러한 길이는 와통의 규모

와 관련된 중요한 속성으로, 기와제작에 사용되는 와통이 일회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점을 감안

하면 월평리유적에서 가마의 조업 횟수를 파악할 수 있는 유효한 자료로 검토할 수 있다.

평기와는 기본적으로 건축부재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어 규격에 대한 규제가 있었을 가능

성을 상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 만월대의 회경전은 31.2∼31.25㎝, 장화전은 31㎝ 또는 그보다

조금 큰 크기의 척을 사용하였고 개성 만월대는 31㎝, 금강산 장안사 대웅보전은 31.2㎝, 개성

현화사 7층석탑에는 31.1㎝, 안동 봉정사 극락전 30.94㎝, 강릉 객사문 31.03㎝의 단위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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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95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건축물 영조척의 기준척은 31㎝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종봉 2001). 월평리유적에서도 31㎝ 내외의 길이가 다양하게 확인된다. 그러나 제작된 시기

차이가 있는 중판과 장판타날 평기와의 길이에서도 동일한 수치가 확인되거나 이와 반대로 유

사한 형태의 타날기법과 문양이 확인되는 평기와에서도 다양한 수치가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평기와와 관련된 규격은 31㎝내외로 규격화된 고려시대 영조척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확

인할 수 있다.

와도분할은 a∼d형 4가지로 분류하였다. a형식은 ⅡD형 단 1점을 제외하면 ⅠA1형·ⅠA2

형·ⅠC1형에서만 확인되는데, ⅠA1형·ⅠA2형·ⅠC1형에서 확인되는 다른 와도분할 형식과

비교하여 a형식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b형식은 ⅠA2형·ⅠC1형·ⅡA2형·ⅡD1형에서만 소량 확인된다. c형식과 d형식은 전체 타

날문양에서 확인되나, 특히 장판타날에 해당하는 ⅡD1∼3형의 평기와에서는 대부분이 이 형식

에 해당한다. 분류된 각 타날문양은 시간성을 지니고 있어 와도분할은 a형식이 비교적 이른 시

기에 사용된 분할 기법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a형식은 c형식 및 d형식과 함께 공반하다 장판

타날 단계인 ⅡD1∼3형 단계에서는 소멸하고, c형식 및 d형식이 ⅡD1∼3형 단계의 중심적인

와도분할의 형식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한편 미세하게 기와 측면을 분할하는 b형식은 11세

기 후반∼12세기대의 남한강 유역 고려전기 평기와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윤용희 2003). 그리고 강원지방 고려시대 평기와 제작기법에서도 11세기 초에서 13세기

초에 해당하는 시기에 와도분할의 분할 깊이 속성이 1/4∼2/3 가량의 범위에서 다양하게 나타

나는 한편 얇게 자국만 내어 한 번에 그어 올리는 경우가 확인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

다(최영희 2003). 그러나 서부경남지역에서는 진주 묘엄사지 출토 「太平興 丁丑 / 977년」 기년

명기와에서도 b형식이 확인되고 있고(이재명 2010), 남한강유역의 평기와와 비교할 수 있는 월

평리유적의 ⅡD1∼3형 단계에서는 중심적인 와도분할의 형식이기 보다 극히 소량이 확인되고

있어 와도분할의 지역적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평기와의 기면조정으로는 하단부 깎기조정이 있다. 하단부 깎기의 실시와 그 범위는 기와 제

작의 시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태선 1993). 그러나 월평리유적에서는 ⅠA2

형·ⅠC1형·ⅡA2형·ⅡD1형에서 극히 소량만이 확인되며 깎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무조

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를 통해 중판타날에서 장판타날로 전환되는 월평리유적 단계에서

의 조정기법은 무조정기법이 주류를 차지하고 깎기조정의 실시 유무 또한 시간적인 차이를 반

영하기 보다는 오히려 와장의 제작성향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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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경남연구 제6집 2012

Ⅵ. 맺음말

월평리유적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전기에 이르는 평기와의 특징과 조업형태를 파악할 수 있

는 유적이다. 월평리유적의 존속기간에 해당하는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전기는 평기와 제작기법

이 정형화되고 새로운 타날문양이 평기와에 도입되는 시기로 이는 ‘고려기와’ 의 성립과 전개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평리유적 평기와 검토를 통해 경남지역에서 ‘고려기와’ 의 성립은 장판타날·외래적인 상

하 2단 대칭구성 어골문 평기와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장판타날·재지적인 ‘선문+사선문’ 또는

집선문의 형태를 통해 다원적으로 성립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분류된 평기와의 제 속성에서

일정한 차이가 파악되며 분석된 속성들은 시간적인 차이를 반영하거나 또는 와공의 제작성향

을 반영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와생산시설은 기와가마와 대규모 축대시설 그리고 공방건물지의 규모가 모두 확인되었는

데, 이러한 운용형태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기와를 공급하기 위한 고려시대 瓦所일 가능

성이 높다. 가마와 공방 건물지는 2번의 획기가 확인되는데, 가마는 크게 중판타날 평기와만을

생산하는 단계와 장판타날 평기와를 생산하는 단계로 구분되며, 건물지는 상층과 하층 건물로

구분된다.

가마의 평면형태 및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점이 특징이며, 이러한 점은 가마 축조의 시간

적인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판타날기법이 도입되는 단계에서 평면 형태 및

구조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건물지에서 확인되는 평기와는 기와가마

에서 확인되는 평기와와 타날문양 및 제작기술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다. 즉 가마에서는 확인되

지 않는 2단 내지 3단 복합문의 평기와가 확인되고 있어 가마가 폐기된 이후에도 건물은 지속

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으로 서부경남지역에서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전기의 평기와 특징과 기와생산 양상을 확

인하기 위해 월평리유적을 검토해 보았다. 본래의 목적은 월평리유적을 통해 ‘고려기와’ 성립

기의 기와생산시설의 양상과 가마의 구조변화 및 특징을 파악하고 이와 더불어 출토된 평기와

를 유구와 함께 검토하고자 하였으나 연구가 미흡하여 기초적인 검토에 머물렀다. 이점은 향

후 보다 면밀한 자료 분석과 주변유적 및 유물의 검토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다음을 기약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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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97

① ② ③

④ ⑤ ⑥

⑦ ⑧ ⑨

<도면 4> 1호 가마 출토 유물 (①ⅠA1형, ②ⅠA2형 ③ⅠB2형, ④ⅠC1형, ⑤ 연도부 출토 동이, ⑥ 바닥 출토 세), 2호 가마 출토 유

물 (⑦ⅡD1형, ⑧ⅡD2형, ⑨ⅡD3형, ⑩ⅠA2형, ⑪ⅠC1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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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경남연구 제6집 2012

⑫ ⑬ ⑭

⑮ ⒃ ⒔

⒕ ⒖ ⒗

<도면 5> 3호 가마 출토 유물 (⑫ⅠA2형, ⑬ⅠB1형, ⑭ⅠB2형), 4호 가마 출토 유물 (⑮ⅠA2형, ⒃ⅠA2형, ⒔ 바닥 출토 시루저

부), 5호 가마 출토 유물(⒕ⅠA2형, ⒖ⅡD1형, ⒗ⅠC1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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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99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도면 6> 6호 가마 출토 유물 ((21)ⅠA2형, (22)ⅡD1형, (23)ⅠC1형, (24) 바닥 출토 옹), 7호 가마 출토 유물 ((25)ⅠA2형, (26)ⅡD1형), 8호

가마 출토 유물 ((27)ⅠA2형, (28)ⅡD1형, (29)ⅠC1형), 9호 가마 출토 유물 ((30) 바닥 출토 대부완, (30) 바닥 출토 대부완, (30) 바

닥 출토 완)

31 32

31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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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경남연구 제6집 2012

<도면 7> 9호 가마 출토 유물((30)ⅠA2형, (30)ⅠC1형), 10호 가마 출토 유물((30)ⅠA2형, (30)ⅡA2형, (30)ⅠB1형, (30)ⅠC1형, (30)ⅡB2형,

1 ⅠB2형,(30) ⅡB1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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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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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경남연구 제6집 2012

<Abstract>

A Study on Tile Production Facilities and Plain Roof Tiles Excavated from Wolpyeongri Relics in

Geochang

Lee, Jae-Myeong

(Center of History & Culture, Gyeongnam Development Institute)

This article examines 10 roof tile kilns, workshop building sites, and plain roof tiles

excavated from Wolpyeongri relics in Geochang, Gyeongnam in order to figure out the

process of establishing ‘Goryeo roof tiles’ in west Gyeongnam. Wolpyeongri relics are

the relics that existed from the end of unified Silla till early Goryeo and are effective

data to examine the process of establishing ‘Goryeo roof tiles’ since both plain roof

tiles beat by a jungpan (a beating tool to beat the outside two to three times to make

roof tiles) and those beat by a jangpan (a beating tool to beat the outside only once to

make roof tiles) are excavated at the same time.

Wolpyeongri relics are thought to have had two epoch-making periods. To wit, in

the building site, the periods of construction are divided with the upper and lower

buildings. The kilns are divided into those from which only the plain roof tiles beat by

a jungpan are found and also those from which plain roof tiles beat by both a jangpan

and jungpan are discovered. Kilns show some fixed differences in terms of excavated

relics, shapes of the plane, scales, structures, or locations, and their changes

by the elapse of time can also be figured out. Those 10 kilns were not operated

simultaneously, but the process of building and discarding the roof tiles was repeated,

and it was operated in small scale. Especially with the axial facility needing large-

scale manpower mobilization and the tile kilns and workshop building sites operated

constantly for a long period, we can suppose that Wolpyeongri relics may have been

the ‘waso (a special administrative district existing in the period of Goryeo, which had

to offer hand-made products as well as tax)’ playing crucial roles related with manual

industry in the period of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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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월평리유적 기와생산시설과 출토 평기와에 대한 검토 103

The plain roof tiles excavated show the conversion from plain roof tiles beat by a

jungpan to those beat by a jangpan, and also it exhibits various characteristics in all

aspects. In other words, in the establishment of ‘Goryeo roof tiles’, Gyeongnam area

had dualistic types of introduction with both the type introducing external beating

patterns and jangpan beating technique and the type with internal beating patterns

and only the jangpan beating technique just like Wolpyeongri relics. As what is

written above, through Wolpyeongri relics, we can examine the aspects of establishing

‘Goryeoroof tiles’ with the features and changes of plain roof tiles from the end of

unified Silla till early Goryeo in the area of Geochang and also west Gyeongnam area.

□ Key words roof tile kiln, workshop building sites, waso, Goryeo roof tiles, the conversion from

plain roof tiles beat by a jungpan to those beat by a jang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