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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m ve kilic korece이슬람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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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칼

무슬림 형제 그리고 자매 여러분

‘이슬람’ 하면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옳은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선교 즉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초대하는 방법이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이들 방법들 중에는 칼과 무력이

없습니다. 반면에, 상대방에게 슬기롭게 굴고, 미소를 짓고 따뜻한 정을 베풀며 훌륭한 방법으로

이슬람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참고: 성 꾸란 16/125)

꾸란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2/256).”

인간은 자기의 종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절에 의해서 아무에게도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자리는 바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핵심은 신앙입니다. 신앙의 집은 마음입니다.

마음에는 신앙이 없이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슬람에서 “위선자” 라고 일컬어집니다.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 위선자”는 “불신자”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믿는 자”가 아니면서, 자기 자신을 믿는 자처럼 보여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해 당할까 두려워서 무슬림이 되는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억지로 만들고 사람 마음 속에 놓아

줄 수는 없습니다. 성 꾸란에 이와 관련하여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SWT) 선지자

모세와 아론(AS: 평화가 그 분들께 깃들기를)을 이집트 왕인 파라오에게 보내시면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라 아마도 그는 경각심을 갖거나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도 있느니라.”( 20/44)

이 사례가 교훈한 바와 같이, 파라오와 같은 불신자에게조차 이슬람을 부드러운 말씨로

선교하는 것이 바로 꾸란의 교훈이고 명령입니다. 요컨대, 개종에 대한 강요는 이슬람의

근본적인 원리와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무슬림 형제 자매 여러분,

알라께서 보내신 사도 무하마드(SAW: 평화가 그분께 깃들기를)께서 꾸란을 최초로

선교하는 자라고 확신합니다.

선지자 무함마드(SAW)께서는 사람을 이슬람으로 초대하셨던 23 년 동안에 항상

평화를 택하셨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쪽은 항상 불신자들이었습니다. 불신자들은 모든 방법을

시도했지만 이슬람이 퍼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한 명으로부터 시작했던 이슬람은 23 년

이후 40.000 명까지 달했습니다. 사도 무함마드(SAW) 일생의 마지막 10 년 동안 50 번 이상의

전쟁이 있었고 무슬림들이 정복한 땅이 백오십만 평방킬로미터를 이루었습니다. 불신자들

군대의 사망자는 150 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이 이유는 무슬림들의 목적은 불신자들을 죽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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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소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슬람만큼 빨리 전달된 다른 종교는 없습니다.

이슬람이 '칼로 전파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정체를 폭로함에 있어서,

비무슬림 역사가인 De Lacy O'Leary는 '그러나 역사는 전세계를 휩쓸고 다니며 칼끝으로

이슬람을 강요하는 광신적 무슬림들에 관한 전설은 역사가들이 이제껏 받아들인 사실 중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황당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Islam at the

Crossroads, London, 1923, p.8). 또한 무슬림들이 스페인을 약 800년 동안 지배했음을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그 곳의 비무슬림들은 살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융성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수파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중동의 무슬림 국가들에서 수 세기

동안 생존하여 왔습니다. 이집트, 모로코,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그리고 요르단 같은

나라들에는 모두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만일 이슬람이 모든 사람들이 무슬림이

되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여만 한다고 가르쳤다면, 이슬람 정부가 그렇게 오랫동안 번창하던

때에 어떻게 그 모든 비무슬림들이 생존할 수 있었겠습니까? 맨 처음 서양의 스페인과

모로코에서 동양의 인도와 중국에 이슬람을 전파한 사람들의 수가 적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한 종교의 구성원들이 되도록 강요하기에는 그 수가

부족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무슬림들에 의해 설립된 위대한 국가와 이슬람

문명은 위대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슬람 문명의 일부임을

자랑스러워 했던 것입니다.

이슬람의 전파는 기독교 추종자들의 행동과 완전히 대조가 되는 바, 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 이래로 흔히 그들의 행동의 기초를 성경의 구절들에 두면서 마음껏

칼을 휘둘렀습니다. 이 사실은 특히 남미와 아프리카의 식민지화에 분명히 나타났으니, 그곳의

원주민들은 개종을 강요 당하거나 아니면 체계적으로 전멸당하고 말았습니다. 몽골인들이 많은

이슬람 국가들을 침략하여 정복하였을 때에 그들이 이슬람을 파괴하기는커녕 이슬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주목해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역사상 특이한

사건이었으니, 정복자들이 피정복자들의 종교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승리자들이었기에,

분명히 무슬림이 되도록 강요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15억이 넘는 그 어떤

무슬림들에게 그들이 강요 받았는지를 물어보십시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국가는

인도네시아인데, 그곳에서는 어떠한 전쟁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칼이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요? 이슬람처럼 정신적 보상을 주는 종교를 고수하도록 도대체 그 누가 강요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결과적으로 모든 사실이 증명하듯이 이슬람은 칼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슬람은 인간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님의 완벽한 마지막

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