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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1 도서관 vs 도서관 | 국내 도서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닷새쯤 앞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 온수근 린공원 옆에 위치한 노원정보도서관을 찾았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았다고는 하나, 성 큼 다가선 봄이 확연히 느껴질 만큼 내리쬐는 햇살에 온기가 묻어있는 날이었다. 노원 정보도서관은 ‘21세기 지식 정보화를 선도하는 유비쿼터스 도서관’을 목표로, 지난 2006년 2월 개관한 공공도서관이다. 대지면적 2,850㎡, 연면적 6,526㎡의 규모에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이며, 총 778석의 열람석을 갖추고 있다. 신축한 지 얼마 되 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도서관은 견고하면서도 깔끔한 현대식 외관을 유지하고 있 다. ㅁ자 형태로 꽉 차게 설계된 내부 또한 노원정보도서관이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곳 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L I B R A R Y 노원 정보도서관 NOWON 과감한 공간 선택으로 최적화된 환경 도서관 문을 열고 1층에 들어서면, 순간 병원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 이 든다. 방학이라 그런지 열람실을 이용하려는 대기자들로 북적이는 안내 데 스크와, 열람실 좌석 배정을 기다리는 이용자 대기 좌석 때문인데, 접수 창구와 대기 번호, 대기 좌석까지 마련된 풍경이 흡사 대형 병원 1층에 마련된 로비 같 은 느낌이다. 그래서 한편 복잡하고 분주하기도 하지만, 외려 너무나 잘 정돈되 어 적막감이 드는 여느 도서관의 1층 풍경에 비해 오히려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이용자를 위해 마련된 휴게공간과 원어민 이 상주하여 이용자의 영어 학습을 도와주는 잉글리쉬 카페(English-Cafe), 노 원정보도서관만의 특색사업인 휴먼 라이브러리(Human Library)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하루 이용자 6,000명 규모의 노원정보도서관에는 신기하게도 식당과 매점이 없다. 사실 이용자 편의 측면에서 보자면 반드시 필요한 시설임에는 분 명하지만, 식당과 매점이 도서관 필수 시설인지에 대한 의견은 찬반이 엇갈리 는 상태. 아무튼 노원정보도서관은 필요한 시설은 과감히 확충하고, 다소 불편 이 따르더라도 필요가 덜한 시설은 과감히 없애는 공간 선택을 통해 이용자에 게 필요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대여 가능 품목의 다양화 도서관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거쳐 가는 1층에는 노약자와 장애인을 배려한 연 속간행물실, 시각장애인 열람실, 어린이 열람실과 모자 열람실이 위치해 있다. 여기에 또 하나, 노원정보도서관은 2010년부터 유아들의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장난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장난감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좋은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장난감을 빌리러 왔다가 책과 친해지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라는 두 가지 아이디어가 공존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대여된 장난감은 때로 파손이 되기도 하고, 대여 후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 움이 있는 사업이지만, 주말이면 장난감을 대여하고 반납하러 온 가족들로 늘 붐비기에 보람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 장난감도서관이다. ‘장난감도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보다 확장된 사업은 휴먼 라이브러리 (Human Library)다. 사람이 곧 책이 되어, 필요한 사람에게 정보를 줄 수 있다 는 생각은 사실 그리 차별화된 것이 아니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나 사회 리더 계층을 초빙해 강연을 듣는 이벤트식 행사는 사실 어느 도서관에나 있는 프로 그램. 하지만 노원정보도서관은 좀 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지역 인사들의 재능 기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휴먼 멘토(휴먼북)는 제1호가 가정주부다. 그녀가 주는 정보 또한 ‘맛있는 반찬 만들기’ 노하우다. 물론 의사, 기자 등 학생들이 꿈 꾸는 직업군의 멘토들도 많지만, 노원정보도서관이 생각하는 휴먼북은 다양하 장난감도서관 노원정보도서관 외관 도서관 1층 열람실 좌석 배정 시스템

NOWON L IB RA R Y - nl.go.kr · 노원정보도서관이 개관했을 2006년 당시만 해도, 도서관에 무인 도서 대 출·반납기나 열람실 좌석 배정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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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vs 도서관 | 국내 도서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닷새쯤 앞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 온수근

린공원 옆에 위치한 노원정보도서관을 찾았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았다고는 하나, 성

큼 다가선 봄이 확연히 느껴질 만큼 내리쬐는 햇살에 온기가 묻어있는 날이었다. 노원

정보도서관은 ‘21세기 지식 정보화를 선도하는 유비쿼터스 도서관’을 목표로, 지난

2006년 2월 개관한 공공도서관이다. 대지면적 2,850㎡, 연면적 6,526㎡의 규모에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이며, 총 778석의 열람석을 갖추고 있다. 신축한 지 얼마 되

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도서관은 견고하면서도 깔끔한 현대식 외관을 유지하고 있

다. ㅁ자 형태로 꽉 차게 설계된 내부 또한 노원정보도서관이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곳

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l i b r a r y

노원

정보도서관

n o w o n

과감한 공간 선택으로 최적화된 환경

도서관 문을 열고 1층에 들어서면, 순간 병원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

이 든다. 방학이라 그런지 열람실을 이용하려는 대기자들로 북적이는 안내 데

스크와, 열람실 좌석 배정을 기다리는 이용자 대기 좌석 때문인데, 접수 창구와

대기 번호, 대기 좌석까지 마련된 풍경이 흡사 대형 병원 1층에 마련된 로비 같

은 느낌이다. 그래서 한편 복잡하고 분주하기도 하지만, 외려 너무나 잘 정돈되

어 적막감이 드는 여느 도서관의 1층 풍경에 비해 오히려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이용자를 위해 마련된 휴게공간과 원어민

이 상주하여 이용자의 영어 학습을 도와주는 잉글리쉬 카페(English-Cafe), 노

원정보도서관만의 특색사업인 휴먼 라이브러리(Human Library)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하루 이용자 6,000명 규모의 노원정보도서관에는 신기하게도 식당과

매점이 없다. 사실 이용자 편의 측면에서 보자면 반드시 필요한 시설임에는 분

명하지만, 식당과 매점이 도서관 필수 시설인지에 대한 의견은 찬반이 엇갈리

는 상태. 아무튼 노원정보도서관은 필요한 시설은 과감히 확충하고, 다소 불편

이 따르더라도 필요가 덜한 시설은 과감히 없애는 공간 선택을 통해 이용자에

게 필요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대여 가능 품목의 다양화

도서관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거쳐 가는 1층에는 노약자와 장애인을 배려한 연

속간행물실, 시각장애인 열람실, 어린이 열람실과 모자 열람실이 위치해 있다.

여기에 또 하나, 노원정보도서관은 2010년부터 유아들의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장난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장난감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좋은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장난감을 빌리러 왔다가 책과 친해지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라는 두 가지 아이디어가 공존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대여된 장난감은

때로 파손이 되기도 하고, 대여 후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

움이 있는 사업이지만, 주말이면 장난감을 대여하고 반납하러 온 가족들로 늘

붐비기에 보람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 장난감도서관이다.

‘장난감도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보다 확장된 사업은 휴먼 라이브러리

(Human Library)다. 사람이 곧 책이 되어, 필요한 사람에게 정보를 줄 수 있다

는 생각은 사실 그리 차별화된 것이 아니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나 사회 리더

계층을 초빙해 강연을 듣는 이벤트식 행사는 사실 어느 도서관에나 있는 프로

그램. 하지만 노원정보도서관은 좀 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지역 인사들의 재능

기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휴먼 멘토(휴먼북)는 제1호가 가정주부다. 그녀가

주는 정보 또한 ‘맛있는 반찬 만들기’ 노하우다. 물론 의사, 기자 등 학생들이 꿈

꾸는 직업군의 멘토들도 많지만, 노원정보도서관이 생각하는 휴먼북은 다양하

장난감도서관

노원정보도서관 외관

도서관 1층 열람실 좌석 배정 시스템

Page 2: NOWON L IB RA R Y - nl.go.kr · 노원정보도서관이 개관했을 2006년 당시만 해도, 도서관에 무인 도서 대 출·반납기나 열람실 좌석 배정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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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의 깊이도 다르다. 만나고 싶은 휴먼북

을 신청하면 미팅을 통해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맞춰 원하는 정보를 얻

을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1:1로, 때로는 소그룹으로 이뤄지는 휴먼 라이

브러리는 연중 상시 운영되며, 현재 약 300명의 휴먼북이 등록되어 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특색 있는 문화 프로그램

매일 매일이 똑같을 것 같은 도서관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은 어

느 도서관이나 문화 프로그램이 담당한다. 대다수 지역 이용자들에게 환

영받는 문화 프로그램은 독서 교육이나 자격증 취득, 재테크 강연, 컴퓨

터 교육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노원정보도서관은 보다 색다른 프로그램

을 시도했다. 지난 해 개최한 ‘어린이 건축학교’와 ‘청소년 뮤지컬학교’

가 좋은 예다. ‘어른들에게도 생소한 전문 분야인 ‘건축’을 초등학생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기우(杞憂)로 만들며 아이들은 뚝딱

뚝딱 다리와 마을을 만들었고, 마침내 커다란 아지트까지 지어냈다. ‘청

소년 뮤지컬학교’는 대중문화에 관심 많은 성장기 아이들이 자신의 끼

와 재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터전을 제시했다. 20주간의 이론과

실기 수업을 받은 뮤지컬학교 수료생들은 뮤지컬 <FAME>의 배우가 되

어 성황리에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전통문화를 추억하는 이벤트 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노원정보도서관의 특색사업이다. 지난 연말 근처 공원에서 노원 구민들

과 함께 끓여 먹었던 ‘동지팥죽’ 나눔 행사나 설맞이 ‘복주머니 저금통’

만들기 행사, 정원대보름맞이 ‘소원연’ 만들어 날리기 행사에 이어, 3월

16일에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돌멩이국 끓이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

다. 이렇듯 다양한 도서관의 특색 프로그램과 이벤트 행사들이 연중 쉬

지 않고 계속되니, 노원정보도서관 사서와 직원들의 손발이 얼마나 바쁘

게 움직이고 있을지는 가히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될 듯하다.

노원 지역 지식의 중심을 꿈꾸는 곳

노원정보도서관이 개관했을 2006년 당시만 해도, 도서관에 무인 도서 대

출·반납기나 열람실 좌석 배정 시스템, 디지털 자료실 등의 시설을 갖

춘 도서관이 흔치 않았었다. 그렇기에 노원정보도서관은 ‘노원도서관’

이 아닌, ‘노원정보도서관’이라는 명칭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발달의 속도가 눈부신 오늘날에는 신축 도서관마다 최신 디

지털 기기들을 경쟁적으로 갖추고 있기에, ‘정보=디지털화’라는 공식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장난감을 빌려주고, 휴먼북을 대여

하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문화 프로그램과 지역

이용자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서는 이벤트 행사를 진

행하는 노원정보도서관은 또 다른 의미의 ‘정보’를 제

공하는 도서관이 되고자 날마다 노력하고 있는 것이

다. “지식이 정보가 되고, 정보가 곧 지식이 되어 모든

노원 주민들이 행복해지는 그곳” - 바로 노원정보도

서관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미니 인터뷰 | 노원정보도서관 최진봉 관장

“책이 있어 행복한,

함께 만드는 도서관을 꿈꿉니다.”

충북 제천에서 5년간 기적의 도서관 초대관장을 지낸 최진봉 관장은 서

울 송파어린이도서관을 거쳐 지난 2011년 12월, 노원정보도서관 관장

으로 부임했다. 대학에서 민속학을 연구하는 학자였던 그는 늘 ‘책을 학

업의 수단으로만 보고, 도서관을 공부하는 장소로만 인식하는 시선’이

안타까웠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독서의 목적을 너무 ‘지식 습득’에만 둡니다. 때로는 독서를 통

해 ‘휴식’도 하고, ‘성찰’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전국민이 독

서로부터 멀어진 게, 바로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래서 최진봉 관장은 이곳 노원정보도서관에 오면서 네 가지 목표를 세

웠다고 한다. 첫째는 운영자와 이용자가 함께 하는 도서관 만들기, 둘째

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 만들기,

셋째는 직원과 사서들의 업무 마인드를 새롭게 하기, 넷째는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교육 프로그램 진행하기다. 어

느 것 하나 단기간에 이뤄낼 수 없는 목표들이지만, 여기저기서 조금씩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며 최진봉 관장은 조급함 없는 미소를 지었

다.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늘 많은 것들을 계획하다보

니, 바빠진 직원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도 들고, 외부에서는 정치적

인 오해의 시선도 보내오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책이 살고, 도서관이

살기 위해서는 이런 여러 노력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제 소신입니

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책과 함께 행복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 더 고

민하고 노력해야죠.”

도서관을 통해 독서 문화와 미래 교육의 변화까지를 소망하는 최진봉

관장이 있어, 노원정보도서관의 불은 오늘도 꺼지지 않을 듯하다.

글. 진유정 객원기자

모자 열람실 최진봉 관장

전시된 어린이 건축학교 작품

지하 1층 잉글리쉬 카페와 휴먼 라이브러리

지식이 정보가 되고, 정보가 곧 지식이 되어

모든 노원 주민들이 행복해지는 그곳

바로 노원정보도서관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