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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치 완 (한국외대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 소장) 한류 3.0 시기를 기점으로 한류는 해외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넘어서 전통문화와 생활 문화에 대한 수용으로 다각화되고 있으며, 소수의 마니아를 겨냥한 문화상품이 아닌 세계 시민이 좋아하는 콘텐츠로까지 부상했다. 한류를 통한 초유의 ‘세계화 경험’은 분명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 리에게는 내강외유(內剛外柔)의 정신이 요구된다. <Made in Korea>라는 대중문화콘텐 츠상품의 해외수출이 곧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여주는 것과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 기 때문이다. 그 징후들은 일본이나 중국에서의 반한류 움직임이나 가짜 한국산화장품의 등장, 의료관광의 피해 사례 속출 등이 증거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차제에 필자는 소프트 파워로서 한류를 심찰(審察)할 때라는 전제 하 에 한류의 영관(榮冠)에 가려진 것은 없는지, 이미 많이들 언급한 바 있지만 매무새를 바 로 하자는 차원에서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굳이 일본과 중국에서의 반한류며 혐한류 움직임을 재론하지 않더라도 ‘공격적 한류’, 즉 ‘문화의 세계화’기치로 포장된 한류에 대한 방향설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Special Issue 3 한류의 빛과 그림자 2013 월간 창조산업과 콘텐츠 + 09·10 28 한국콘텐츠진흥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4.0 Special Issue : 창조 한류

한류의 - 한국콘텐츠진흥원 ·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한국외대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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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치 완 (한국외대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 소장)|

한류 3.0 시기를 기점으로 한류는 해외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넘어서 전통문화와 생활

문화에 대한 수용으로 다각화되고 있으며, 소수의 마니아를 겨냥한 문화상품이 아닌 세계

시민이 좋아하는 콘텐츠로까지 부상했다. 한류를 통한 초유의 ‘세계화 경험’은 분명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

리에게는 내강외유(內剛外柔)의 정신이 요구된다. <Made in Korea>라는 대중문화콘텐

츠상품의 해외수출이 곧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여주는 것과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

기 때문이다. 그 징후들은 일본이나 중국에서의 반한류 움직임이나 가짜 한국산화장품의

등장, 의료관광의 피해 사례 속출 등이 증거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차제에 필자는 소프트 파워로서 한류를 심찰(審察)할 때라는 전제 하

에 한류의 영관(榮冠)에 가려진 것은 없는지, 이미 많이들 언급한 바 있지만 매무새를 바

로 하자는 차원에서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굳이 일본과 중국에서의 반한류며 혐한류 움직임을 재론하지 않더라도 ‘공격적

한류’, 즉 ‘문화의 세계화’기치로 포장된 한류에 대한 방향설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Special Issue

3 한류의

빛과 그림자

2013월간 창조산업과 콘텐츠 + 09·10

28 한국콘텐츠진흥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4.0 Special Issue : 창조 한류

UNESCO의 <문화다양성보호협약>의 정신을 존중해 문화다양성이 i)

인류의 공동유산이며, ii) 공동체, 민족,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원천이고, iii) 민주주의, 관용, 사회 정의, 그리고 사람과 문화 간의 상

호 존중을 위한 토대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한류를 평가할 때 만일

우리의 대중문화의 일방적 수출과 전파에만 치중한다면, 이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 나아가 문화다양성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간

과하기 쉽다. 주지하듯 지구촌에는 하나의 문화(Culture)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

럿 문화(cultures)가 존재한다. 따라서 ‘글로컬 마인드’를 통해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문

화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진정한 의미의 문화교류는 서로 다른 문화들 간의 상호 교류, 즉 상호 문화적 이해

에 그 대의가 있다. 쌍방향적 교류와 이해의 폭이 넓어질 때 타문화와의 문화적 갈등의

요소가 최소화된다. 하지만 문화는 쌍방향적으로 교류되는 사례보다 일방향적으로 전파

되는 것이, 역설 같지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한류와 연관해서도 ‘문화침입’, ‘문화전

쟁’이란 용어를 미디어나 지면에서 간간이 접하곤 할 것이다. 해서 『오리엔탈리즘』의 저

자로 널리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가 왜 “문화는 제국주의적이다”고 역설한 것인지를 되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류를 유럽인들의 식민지 확대 정책과 비교하는 연구가 이미 발표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의 과열되고 침소봉대된 한류에 대한 경종이다.

셋째, 우리문화의 수용자에 대한 보다 치밀한 조사와 연구가 수반되지 않은 채 ‘그들’이 계

속 한류 붐을 일으켜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중국, 일본,

대만, 태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나라들의 한류 소비자들은 향

후 4년 이내에 그 열풍이 꺼질 것으로 스스럼없이 응답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

가? 붐은 흘러가는 바람과 같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아는 터다. 한류상품의 소비에 대해 해당

지역 및 국가의 수용도, 즉 문화코드적 접근이 수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역 문화와 교

류되거나 현지화되지 않은 문화는 마치 바람처럼 그저 흘러갈 뿐이다. 한나 아렌트가 『문

화의 위기』에서 “대중문화는 문화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한 경고다.

넷째, 바람처럼 그저 흘러가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라 문화를 가장한 상품에 불과하다.

문화를 한낱 사고파는 거래품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나 대학

및 기업연구소의 보고서들에서 보면 여전히 한류 파생상품들의 수출, 즉 경제적 효과

에 관한 언급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한류에 대한 평가가 아직은 그 수준이 객관적이고

체계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아전인수 격 해석이 지배적이란 반증이다. 그러나 보니

“한류 효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한류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장애가 된다”는

기관보고서까지 제출된 것 아니겠는가.

다섯째, 그동안 많은 통계조사에서도 지목되었듯, 한류소비자의 대부분이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 집중돼 있고, 또한 여성고객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향후 한류로드가 극복해

야 할 장애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한류가 아직은 ‘건강한 생태계’에 기초해 있지 않

다는 말과 상통한다. 지역 쏠림 현상이 강한 한류를 벨트화해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창작자를 보호하는 등 새로운 생태계에 맞추어 수익을 형평성 있게 배분하고, 정부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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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Life & Culture콘텐츠@창조산업 동향과 이슈

SP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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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줄이며, 단순한 문화현상으로서 한류가 아시아적 문화적 가치로 거듭날 수 있는 발

판을 마련하자는 <2020 Ten-Ten MEGA 한류>가 나름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여섯째, 게다가 지난 2012년 1분기 콘텐츠산업동향분석보고서를 종합해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분야가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과 한류 또는 한국문화콘텐츠산업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한류하면 K-Pop, 드

라마, 음식 순으로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와 K-Pop이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게

임의 약 1/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돌려 말하면 한류를 언급할 때 아무도 그 뿌리와

몸통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한류에 대한 의견 •한류, 국가이미지 증진에 도움(80.7%) •한류 인기가 지나치게 과장(41.5%) •한류 관련 언론보도 및 반응 지겨움(41.7%)

한류 열풍에 기여한 인물 •싸이(47.6%, 이유 : 노래가좋았기 (때문)

한류하면 떠오르는 콘텐츠• 가요(95%), 드라마(61.5%), 음식(32.3%), 쇼 프로그램(24.2%), 영화(23%),

스포츠(16.9%), 게임(12.1%), 캐릭터(11%)

향후 육성이 필요한 분야 • 음식(54.7%), 한글(43.6%), 영화(33.7%), 문학(24.5%), 스포츠(23.2%), 가요(17.4%), 캐릭터(16.9%)

한류 3.0에 대한 비전을 보다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문화콘텐츠산업의 고유 영역을 재설

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수출 주력 상품과 표방하는 대표콘텐츠가 일치하지 않은

상태로 문화콘텐츠산업의 외연만을 확대시켜 문화산업의 수출량이며 팬클럽의 수, 한

류스타들의 해외공연 횟수와 같은 팬덤 현상 등의 통계를 제시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

다. 한류의 팬덤 효과는 K-Drama, K-Pop에 이어 한식, K-Beauty, 한국 관광 등 다

양한 한류 파생상품의 소비로 이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외에서의 한류콘텐츠상품

의 소비 증가는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기업인 삼성의 스마트폰 수출이나 현대의 자동차

수출에도 물론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한류가 전 세계의 한류 팬들에게 한국의 전

통문화나 한국문화 일반의 이해로까지 심화되느냐에 있다. 총량을 부풀리는 것은 방향

과 목표가 분명치 않다는 반증이다. 라면, 막걸리, 화장품, 문방구, 장신구, 세제, 헤어

스타일 등 과연 한류 아닌 것이 어떤 것인지 묻고 싶다.

산업  총수입 수출

애니메이션 1355억 원 352억 원

방송 2135억 원 22억 원

만화 1832억 원 27억 원

캐릭터 1조8829억 원 1116억 원

게임 2조4125억 원 1052억 원

정보/지식 2조1231억 원 1052억 원

영화 9038억 원 156억 원

음악 9973억 원 485억 원

출판 5조2846억 원 650억 원

일곱째, 우리에게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한류상품의 수출 증가는 오직 한류의 경제화와

직결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재삼 강조하지만 경제의 세계화는 문화의 세계화로

이어지는 것이 상례이다. 한류상품을 해외에서 파는 우리의 입장에서야 기분 좋은 일이

겠지만 수용해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시장을 잃었다고 불평할 것이고, 그들

젊은이들의 문화가 <Korea>라는 유입문화의 유행에 지나치게 경도되었다고 비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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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가. 문화는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될 때 진정한 교류가 일어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해두고자 한다. 제로섬 게임이란 말이 있다. 해외에 수출하는 한류상품과 수입하는

외국 문화상품의 총량이 동일하거나 후자가 우세하다면, 더더욱 우리는 ‘한류’를 과대평

가해서는 곤란하다. 호혜성이 문화교류의 최종 목표일 때 다양성이 기조인 문화생태계

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바야흐로, 한류는 지구촌의 사회·문화 현상이 되었고, 그 진원지인 대한민국도 책임 있

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한류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보다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문화콘텐츠상품 수출의 증가/축소, 한류상품 소비자들의 숫

자와 인구통계학적 특성, 한류의 순기능/역기능, 한류에 대한 호감/비호감의 이분법을

넘어, 이제 우리는 한류현상이 각 문화권과 세계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파악

해야 한다.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가변성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역동적으

로 변화하고 있는 지구촌 문화에 한류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문화에 어떻게 기여해야 마땅하다는 당위적 판단이나 미래비

전과 계획이 어떤 방향으로 세워져야 건강한 것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한류의 본질을 움켜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민간기

업도 개인도 이제는 한류상품의 수출에만 매두몰신(埋頭沒身)할 것이 아니라 한류를 고

품격 문화로 연마하여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이고 인류의 행복과 평화 증진에 기여

할 방도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profile<박치완 교수 프로필>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한국외대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 소장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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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 <콘텐츠 코리아 비전21 – 문화콘텐츠 발전 추진계획>, 2001.

박치완 외, 『글로컬문화콘텐츠, 어떻게 그리고 왜?』,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9.

박치완, 김평수 외, 『문화콘텐츠와 문화코드』,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1.

E.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정정호·김성곤 옮김, 창, 2011.

채지영, <신한류 발전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한류백서 – 세계인이 공감하는 K-컬처를 말하다』, 문화체육관광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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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한류스토리』, 제25호, 2012.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한류 포에버 – 세계는 한류스타일』,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조산업과 콘텐츠』, 2013/ 07·08.

H. Arendt, La crise de la culture, trad. de l’anglais sous la dir. de Patrick Lévy, Paris: Gallimard, 1972.

E. Osnos, “Asia rides wave of Korean pop culture invasion”, Chicago Tribune, dec.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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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Warnier, La mondialisation de la culture, Paris: La Découverte,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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