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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 처음 만난 남자와 떠난 105 아프리카 황윤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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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처음만난남자와떠난

105일의아프리카

황윤하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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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To준 오빠, 마키상, 석오빠, 사랑하는어머니아버지

그리고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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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처음만난남자와떠난

105일의아프리카

황윤하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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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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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r o l o g u e . . .

‘결제하기’버튼을 누르려다 다시 머뭇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안되겠어.

“엄마, 안가면안돼? 나무서워! 어떻게나혼자이집트엘가?”

“어이구, 이겁쟁이야. 늙은엄마도혼자다녀왔는데네가무섭긴뭐

가무서워! 대학생씩이나돼서는.”

결국엄마는망설이는나를제치고컴퓨터앞에앉아항공권의결제

버튼을눌 다. 난꼼짝없이 2월 9일비행기를타고이집트로출발해야

했고, 3월 4일귀국비행기가뜨기전까지 3주를혼자버텨내야했다.

덜컥겁이났다. 아무탈없이잘지내다가 3월 4일에무사히비행기를

탈수있을까?

겁이나고외로웠기때문은아니지만결과적으로나는예정된비행기

를타지못했다. 그보다하루앞선 3월 3일, 혹여나잃어버릴까애지중

지숨겨놨던귀국항공권발행확인서를속시원하게구겨버리고다른비

행기에올라탔기때문이다. 에티오피아행비행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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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이집트에서준 오빠를만난것이었다. 카이로에서처음만

난오빠가농담처럼내게던진한마디.

“윤하야, 오빠랑같이에티오피아가자!”

농담은진담이되었고나는어느새준 오빠의옆에서같은길을걷

고있었다. 정신을차렸을때는이미남아프리카공화국. 상상조차해본

적없는 105일간의아프리카종단이었다.

준 오빠가도대체무슨생각으로나에게아프리카여행을제안했던

건지, 다시금돌이켜봐도도통알수가없다. 내가가져간여행가방은

도로사정이좋지않은곳에서는바로애물단지가되어버리는캐리어

다(정확히 말하자면 끌낭이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가방뿐이 아니었

다. 오빠는내가아스완까지가면서 60달러짜리침대기차를탔다는것

도, 나일강크루즈를타려고예약했었다는것도알고있었다. 심지어주

소를보고내가강남사는새침데기아가씨인줄알았다고했다. 그렇게

곱게자란(?)아가씨를어떻게아프리카로데려갈생각을했을까.

쉽게예상할수있겠지만, 나는아프리카를여행하면서수백번도더

준 오빠를원망했다. 하지만또한오빠와함께해서아프리카의수없

이아름답고멋진모습들을보고소중한경험들을할수있었다. 어디에

서도만날수없을가슴벅차는천혜의자연에시시각각으로놀라워했

고, 너무천연덕스러워서코믹하기까지한사기꾼들과함께싸웠다가

웃었다. 역사의슬픔을가슴에묻은채미소짓는사람들의모습에마음

아파했으며, 50억짜리지폐가거리에뒹구는처참한경제현실에경악하

기도했다. 동물떼가노니는초원이나기아와내전에허덕이는아프리

카? 그것은아프리카의일면일지몰라도진정한모습은아니었다. 우리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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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를바없는사람사는세계. ‘진짜’사람사는세계가어떤것인지

매순간깨닫게해주는순수하고본능적인태초의땅. 그것이내가보고

느낀아프리카 다.

그아프리카위에서보낸105일동안의여정은그야말로좌충우돌이었

다. 우리는흙먼지를뒤집어쓰며트럭을히치하기도하고, 먹을것이없

어하루종일굶거나, 싼숙소를찾기위해한밤중의거리를목숨걸고걷

기도했다. 1달러도안되는돈때문에장사꾼들과목에핏대를세우며

싸우거나얼음장같이찬물로씻는일은다반사 다. 그리고언뜻사소해

보이는그모든일들을겪은후, 나는참많은면에서변해있었다.

아직도종종생각한다. 그때오빠가에티오피아에함께가자고하지

않았다면, 내가오빠의제안을거절했다면, 나는지금쯤얼마나재미없

게살고있을까. 내가감당할수있는세계는일상과그변두리까지일뿐

이라고생각하며어떻게하면더안락하게살수있을까고민했겠지. 세

계가이토록넓다는것도, 다양한삶의방식이있다는것도결코깨닫지

못한채우물안개구리조차도못한이끼정도로남아있었을거다.

그리고나를우물안이끼에서개구리까지끌어올려준아프리카. 그

곳은펄떡펄떡살아숨쉬는세계의심장이라고감히말하겠다. 누구든

지그곳에가면삶의박동을느낄수있다. 그리고어느새메말라버린

자신의심장도다시움직거리는것을느낄수있을것이다. 내가그랬던

것처럼.

2009년 2월 9일이른오후.

나는앞으로그런대단한세계를만나리란것을전혀예상하지못한

채, 카이로행비행기에몸을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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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Prologue 005

Part 1 거짓말처럼시작된여행 이집트

캐리어를끈초보여행자 _카이로 012

나를흔들어깨운, 그깊은모래의밤 _시와 028

재회그리고뜻밖의제안 _아스완, 룩소르, 카이로 039

사막여우의방문 _바하리야 047

On the Road _이집트를떠나다 052

Part 2 달콤쌉싸름했던, 그봄날의커피 에티오피아

도시의빛과어둠 _아디스아바바 (1) 056

달콤한도시 _아디스아바바 (2) 068

진짜커피를만나다 _아와사 082

샤샤마니의주스가게에서는대마초를판다 _샤샤마니 100

투어리스트프라이스 _아르바민치 109

허니와인, 달콤한황금색의기억 _첸차 117

선생님도때론실수를한다 _도르제 133

신이시여, 오늘우릴버리시나요? _진카 138

그들에게는우리도White다 _투르미 147

흙길따라, 바람맞으며 _콘소 157

안녕, 에티오피아 _모얄레 164

On the Road _더이상인제라는싫어!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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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천국은많지않지만천사는어디에나있다 케냐, 우간다, 르완다, 브룬디

사막의낙타마을 _모얄레 174

갑시다, 남아공까지 _나이로비 181

늦은밤, 포장마차에서맛보는소박한행복 _캄팔라 190

문명의샘, 나일강이시작되는곳 _진자 198

마음을씻어주는마법의호수 _부뇨니호수 205

서울이산속에있다면? 산골수도키갈리 _키갈리 217

눈물을묻고웃는사람들 _기콩고로 228

기이한합성사진같은, 낯선풍경의도시 _부줌부라 239

Part 4 천혜의자연과오래된도시의마법속으로 탄자니아, 말라위, 잠비아, 짐바브웨

45시간동안기차, 타보셨나요? _키고마 248

인연은강물처럼흘러, 만나고또이별하고 _다르에스살람 259

니모의친구들을찾아서 _잔지바르, 눙궤해변 269

200년묵은미로속으로 _잔지바르, 스톤타운 278

기린과함께달리는열차 _음베야 287

운수나쁜날 _음주주 292

천국의다른이름 _은카타베이 301

세계최고의닭볶음탕을맛보다 _리롱웨 310

천둥소리나는연기가피어오르는곳_리빙스톤 320

바닥에뒹구는50억짜리지폐 _빅토리아폴즈 333

On the Road _불라와요가는길 343

텅빈수도 _하라레 345

Part 5 5월의가을그리고이별 남아프리카공화국

위험과의거리약50km _프레토리아 356

아프리카의남쪽끝에는펭귄이산다 _케이프타운 (1) 364

마마아프리카! 아프리카는살아있다 _케이프타운 (2) 378

마지막이야기 _케이프타운 (3) 386

Epilogue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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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거짓말처럼시작된여행

─이집트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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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끈초보여행자

이집트, 카이로Egypt, Cairo

카이로공항에도착하자마자든생각은초라하다는것이었다. 뭐야,

이게공항이야? 꼭지하철역처럼생겼는데. 서울의지하철역을걷는

듯한그익숙한느낌에여행을왔다는두근거림이나기대감이싹사

라져버렸다. 불안에벌벌떠는것보다야낫지만, 이건좀실망스러운

걸. 그래도덕분에여행을오기전걱정반, 두려움반에쪼그라들었

던가슴이약간의안도감과함께편안해지는것을느꼈다.

공항밖으로나오자한국사람몇명이보인다. 준 오빠일행이

다. 준 오빠는이집트여행카페에올려놓은내연락처를보고‘카

메라를잃어버렸으니, 카이로오는길에한국의가족들에게받아서

가져와달라’고부탁했었다. 한번도본적없는사람이지만, 한국인

은그사람들밖에없어쉽게알아볼수있었다. 카메라를전해주는사

이, 때마침오빠가탈버스가도착해서우리는제대로인사를나눌새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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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없이헤어졌다.

“카메라고마워요. 내일저녁에만나요, 제가밥살게요!”

이것이 3개월넘게아프리카를함께여행하게될준 오빠와의

스쳐지나가는듯한첫만남이었다.

다른쪽에서는수연언니를마중나온사람들이우리를기다리고

있었다. 수연언니역시이집트여행카페에서만난사이로, 첫날같은

숙소에서묵기로했으며일정이맞으면그때그때같이다니기로한

상태 다. 마중나온사람들은이집트를먼저여행중이던수연언니

의남자친구로이와그가묵는숙소의주인인이집션에이먼. 그들이

픽업을와준덕분에버스를탄답시고헤매는대신바로차에올라타

숙소로향할수있었다(나혼자 다면분명히허둥지둥거리다가버스는

놓치고기껏잡아탄택시에서는잔뜩바가지를쓰고말았을것이다).

길거리풍경또한인천공항에서서울들어가는길과별다를바

없었다. 반쯤은안도하고반쯤은실망스러운기분이가시질않았다.

배낭여행을처음와본때문인지, 입국첫날부터뭔가굉장히이국적

이고신세계스러운분위기를기대했던것이다. 지금생각해보면참

웃기는일이다. 화성으로라도여행을떠나지않는한, 지구어느곳을

가든다사람사는동네일텐데첫눈에보일정도로대단하게다른게

있을리없었다. 하지만나는아직그런사실들을깨닫지못하고있었

다. 지구상에는다른세계가아니라다른문화가있을뿐이며, 그문

화는눈에보이는것들만가지고는느낄수없다는사실을말이다.

여기가서울인지카이로인지. 심드 한표정으로차창밖을쳐다

보는내게에이먼이말을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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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돌아가면같이‘하시시’를하지않을래?”

“하시시가뭔데?”

“음, 다른말로는마리화나라고도하지.”

마리화나라니, 그럼대마초란얘기아냐?

나중에이들이여행자에게대마초를권하는게우리나라에서담

배를권하는것보다약간더특이한상황일뿐이라는걸알게됐지만,

이때는정말에이먼이무슨범죄자라도되는줄알고잔뜩겁에질렸

다. 결국숙소에들어와서도맥주나한잔하자는제의를거절하며얌

전히방으로들어갔다.

4인용도미토리의가장구석침대를차지하고눕자창밖의시끄

러운소리들이들려왔다. 사람들이떠드는소리, 호객행위하는소리,

경적소리, 코란송…. 시장통한가운데온듯한기분이었다. 이시끌벅

적한밤의소음역시카이로의일부겠지. 하루빨리이소음에익숙해

지길바라며, 나도모르는새잠이들었다.

인심 좋은 아저씨와 천연덕스러운 사기꾼

감긴눈꺼풀너머로희미하게햇빛이느껴진다. 이불을어깨까지끌

어올렸는데, 목덜미에닿는이불의감촉이평소와다르게까슬까슬하

다. 부스스눈을떠보니평소와다른주변풍경이들어온다. 네개의

침대가늘어선방에는이국적인프린트의커튼을통과해들어온약간

어둑한햇빛이들어차있다. 몇번눈을껌뻑인다음에야상황을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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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수있었다. 맞다. 여긴서울이아니라카이로지.

창문을열자환하게밝은카이로의거리가눈에들어왔다. 사람

도, 차도거의없는거리는한적하고조용하다. 정신없이시끄럽던어

젯밤과는사뭇다른풍경이다. 여기저기더럽게널브러져간혹바람

에날리는쓰레기만이지난밤의소란을증명해주고있다. 이국적으로

생긴건물들사이로간간히히잡을두른여인네들의모습도보 다.

필시아침거리를사러나온어머니들이리라. 신기하지만, 더없이일

상적인모습들이다.

신비함과상서로움이공존하는거리의모습을한참이나지켜본

후창가를떠났다. 오늘보기로계획한곳들을차질없이다녀오기위

해서는조금서두를필요가있었다.

알아주는길치인나에게, 택시의가장좋은점은길을잃고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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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않아도된다는것이다. 반대로말하자면, 택시를타지않으면언제

든길을잃을위험에처할수있다는뜻이기도하다.

오늘보겠다고목표했던곳중두군데는아무문제없이갈수있

었다. 숙소에서시타델까지오는데는택시를이용했고그다음목적

지는바로옆에있었으니까. 문제는그다음이었다. 또다른모스크로

가기위해사람들에게길을물어물어가는데, 걸으면걸을수록의구

심이드는것이아닌가. 좁은골목을걷다보면큰도로가나올줄알

았는데길은갈수록좁아지고있었다. 지도를꺼내봤지만심각한방

향치인나에게그런것이도움이될리없었다.

결국길찾기는포기하고식당을찾아보기로했다. 아침도제대

로먹지못한데다계속걸어다녔기때문에너무나도배가고팠다.

여기가어디든간에일단먹고나서생각해야지, 더이상은걷지도못

하겠다…. 근처식당에가서뭘파냐고물어보니, 이사람들 어를

할줄모른다. 손짓발짓을하고있자니주인남자가어디선가 어를

할줄아는사람을데리고왔다. 그가짧은 어로물었다.

“Do you like beans?”

콩을좋아하냐고? 콩이면어떻고메주면어떠랴, 지금입에들어

갈수있는거라면뭐라도상관없는데! 대충그렇다고대답하고좁고

허름한식당안에들어가앉았다. 위생상태가심히걱정되긴했지만

이미그런걸따질상황이아니었다.

잠시후별로깨끗해보이지않는그릇에샐러드와콩소스를끼

워넣은빵이나왔다. 이집트인들의주식인‘아에시’빵사이에들어

있는콩소스는가이드북에서보던‘후르’라는것으로추정되었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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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맛이었는지는기억나지않는다. 맛같은걸기억할만한정신이아

니었으니까. 어쨌든배고프다고막먹은걸보면아주맛이없지는않

았던모양이다.

비상식량으로아에시를두어장더사려고하자주인남자는사

람좋은웃음을지으며그냥가져가라는듯손사래를친다. 어라, 이

집트인들은만날사기치고팁을요구한다고들었는데. 하지만그들은

관광지를벗어나이런거주구역까지들어온외국인이신기하고재밌

는지계속웃기만할뿐이었다. 그들의호의에감사하며기분좋게식

당을나왔다. 이집트사람들, 생각보다친절하구나.

식당을나와서도한참동안길을잘못들어이골목저골목을헤

집고다녀야했다. 여러친절한사람들의도움을받아겨우겨우목표

했던모스크근처까지다다랐을때, 풍채좋은중년의남성이자신을

‘알리’라고소개하며말을건네왔다.

“안녕. 여행자인가? 어디를가? 아, 그모스크? 거긴공사중이라

들어갈수없어. 대신내가다른멋진모스크를소개해줄게. 어때?”

살갑게말을붙이는그의태도를보니이런일이한두번이아닌

모양이었다. 여행자를안내해주고팁을요구하는것이일상인사람이

겠지. 내게도팁을요구할게뻔해보 지만왠지재밌을것같아서그

를따라가보기로했다. 이런것도다추억이고경험아니겠어?

알리는좁은골목여기저기를누비더니어떤모스크안으로날

데리고들어갔다. 모스크라기보단폐품처리장이란말이더어울릴

것같아보이는곳이었다. 신성해야할모스크안에는사람들이가져

다버린것으로보이는못쓰는가구들이잔뜩널브러져있었고잡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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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무성하게자라있었다. 내가좀실망한기색을보이자알리가다

른걸권한다.

“미너렛에올라가보지않겠어? 높은미너렛에올라가면카이로

의전경이파노라마처럼펼쳐져보인다고. 아주아름다워. 분명히좋

아할거야.”

나는그말에피식웃을수밖에없었다. 파노라마라니! 이렇게모

래바람부는날씨에? 100m 앞까지만보여도다행이겠다. 날씨가맑

았다면한번올라가볼까고민했을지도모르지만오늘같은날에그렇

게높은곳에올라갔다간사막체험이나하게될것이뻔했다. 제안을

거절하고자리를떠나려하자, 알리가은근슬쩍말을꺼낸다.

“저기, 여행자라모를수도있겠지만, 이집트에서는선행을베푼

사람에게박시시를줘야하거든.”

역시, 팁을달라고하는구나. 예상하지못한일도아니었기때문

에담담하게대답했다.

“미안하지만지금 20파운드짜리밖에없어요.”

“괜찮아. 내가거스름돈을줄게.”

계속거절해봤지만소용없는일이었다. 어떻게하나, 생각하다가

일단 20파운드짜리를건네줬다. 그가정말거스름돈을줄까? 알리는

재빠른속도로내돈을받아들더니세상에급할것하나없다는태도

로미적미적거스름돈을세서내게건넸다. 5파운드다. 겨우이거안

내해놓고 15파운드나받겠다고? 웃음이나왔다. 어이가없다거나화

나서그런게아니라, 이사람의행동이왠지웃겨서정말로웃음이

나왔다. 나는결국 15파운드에다무너져가는모스크를구경하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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밌는추억을하나얻을수있었던것이다.

숙소로돌어가수연언니에게오늘있었던일을장황하게늘어놨

다. 나는나름재밌었다고생각하고말한거 는데언니는고생담으

로들은모양이다.

“그러게아침에에이먼이안내해준다고할때나랑같이가지왜

혼자가서그렇게고생했어?”

언니, 젊어고생은사서도한다잖아요. 그리고안내해주는사람

따라서편하게여행다닐거면패키지여행을가지왜배낭여행을왔

겠어요?

범상치 않은 이 남자

그날저녁, 어제카메라를전달했던준 오빠가보답으로저녁식사

를대접하겠다고해서수연언니와함께약속장소로나갔다. 준 오

빠는이집트의전통음식코사리를먹여주겠다며어디론가데려간다.

카이로에서나름유명한집인모양이었다. 맛은…괜찮았다. 그야말

로평범하게맛있었다. ‘이런맛은처음이야, 정말이지새로운음식

인데!’라는걸기대했던나로선또다시실망이었지만.

문제는코사리가아니라준 오빠의이야기 다. 코사리를먹는

동안준 오빠가이집트남부의룩소르와아스완에대해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늘어놓았던것이다.

“제가중국에서부터여기까지 1년가까이육로로여행해왔거든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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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 그런데이집션같은놈들이정말없어요! 특히아스완, 룩소르

등이집트남부에있는놈들은진짜사람이아니에요. 다그냥관광객

들어떻게든뽑아먹으려고혈안이에요. 뭘하나사려고해도 10분의

1로가격을깎아야할걸요. 따라오기는또얼마나끈질기게따라오

는지. 이집트오기전까진인도가제일독한줄알았는데, 이집션에

비하면인도사람은순박한겁니다. 조심하시는게좋을거예요!”

이집트에쉬러왔다는수연언니는준 오빠의고생담에지레

겁을먹은것인지남부여행을포기하고곧장남자친구와휴양지다

합으로 향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수연 언니와는

같이동행할만큼마음이맞는사이가아니었으니까. 심술궂은일이

지만, 덕분에나는마음속으로준 오빠에게조금고마워했다. 그러

나눈을반짝이며즐거운고생담(?)을늘어놓는준 오빠의진면목

을확인한것은그이튿날이었다.

다음날, 전자상가에갈거란내말에준 오빠가흔쾌히동행해

주었다. 전자상가에들 다가돌아가는길, 한적한골목에서웬이집

션이우리를손짓해부르더니샤이한잔하고가라며말을걸어왔다.

‘호객행위의냄새가강력하게나는데?’하지만내가머뭇거리는사

이준 오빠는대뜸좋다고하며그를따라들어간다. 얼떨결에뒤따

라들어가는나에게준 오빠가귀띔해줬다.

“아마이옆의향수가게주인이라서오라고하는걸거야.”

과연, 그는우리에게샤이두잔을대접하더니곧바로각종향수

들을꺼내오기시작했다. 이건 Sweet한것, 이건 Fresh한것, 또다른

건 Soft한것이라며계속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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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게에서파는건모두순수한에센스뿐이에요. 분명히만

족할겁니다. 이옆의여자분께지금선물하는게어떠세요?”

느긋하게샤이를마시던오빠가대답한다.

“아, 죄송해요. 그녀는향수알레르기가있어요.”

준 오빠는얼굴빛한번바꾸지않고천연덕스럽게나를듣도

보도못한알레르기가있는사람으로만들어버렸다. 가게주인은잠

시실망한표정을지었지만아직포기는하지않은모양이다.

“그렇다면파피루스는어때요. 자, 봐요. 이건진짜파피루스에

요. 아주고급이죠….”

“미안하군요. 우린어제이집트에도착했거든요. 아직짐을늘릴

수가없네요. 한국에돌아가기전에한번들르도록하죠.”

“언제돌아가는데요?”

“ 쎄, 다음주쯤? 이만가볼게요!”

준 오빠는대충대화를마무리지으며자리에서일어났다. 우

리두사람의샤이잔이거의비어갈때쯤이었다. 가게를나오면서나

는의아한표정으로물었다.

“향수가게주인이라는걸알면서왜들어간거예요?”

“난권하는건거절안하거든. 공짜로차를준다는데마다할이

유가없잖아.”

하긴, 덕분에잠시앉아쉬면서차까지대접받을수있었다. 그

이집션은순진한동양인두사람을가게안으로불러들 다고좋아했

겠지? 결국엔공짜차만내준셈이됐지만말이다. 현지인의귀찮은

호객행위마저도자기페이스로끌어들여호의로바꿔버린준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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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별일도아니라는듯장난스러운표정을짓고있었다. 불현듯, 이

능청스러운장기여행자덕분에앞으로의여행이상당히재밌어질것

같다는생각이머리를스치고지나갔다.

그렇게어느덧둘째날의반나절이흘 다. 이날저녁에는숙소

주인아주머니의제안에따라시와행버스를탈예정이었다. 숙소에

서묵던두한국인이오늘시와로간다는데사막투어를위해서는인

원이모여야하니같이가는게어떠냐는것이다. 일행이없는나에게

는뜻밖의수확이었다.

인연과 여행길, 그 모두가 인샬라!

준 오빠는친절하게도토루고만터미널에가서시와행버스표를끊

는것까지도와주었다. 숙소까지데려다주겠다는말에“타흐릴광장

까지가면찾을수있을것같아요”라고말했다. 아침에숙소에서부

터타흐릴광장의고고학박물관까지걸어갔었기에거기까지만가면

금방찾을수있을거라고생각하고있었다. 사실은숙소를나와아무

렇게나걷다보니타흐릴광장이나타났었다는것은이미까맣게잊

은나 다.

타흐릴광장에도착했지만갈림길은상상초월로많았고그중에

숙소로향할것으로추정되는길만세개 다. 어디에내놔도빠지지

않는길치인내가그런데서길을찾지못하는건당연지사. 길을모

르겠다는말에잠시당황하던준 오빠는일단아무길로나가보자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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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했고, 우리는결국세개의길중가장오른쪽길로들어서무작정

걷기시작했다.

하지만그길은정답이아닌모양이었다. 아무리걸어도내가묵

는숙소는커녕그주변에서봤던비슷한건물조차보이지않았다. 그

길의끝에서, 또다른광장에도달해다시수많은갈림길앞에선우

리는난감해졌다.

“이제어디로갈래? 다시타흐릴광장으로되돌아갈까?”

카이로를종횡무진누비고다녔던준 오빠에게도이곳은낯선

골목인모양이었다. 타흐릴광장으로돌아가는대신다른길을택한

다면그때야말로길을잃게될지도모른다. 되돌아간다고해도숙소

로가는길을찾을수있으리란보장은없다. 여기서선택을잘못했

다가는시와행버스를놓치게될것이다.

잔뜩신경이곤두서야마땅하건만나는어째서인지이상황이참

을수없이재밌게느껴졌다. 결국심각한표정의준 오빠에게한

마디로대답했다.

“인샬라(Inch’alla, 신의뜻대로)!”

준 오빠가어이없다는듯웃었다. 생전처음와보는외국의도

시한가운데에서길을잃은데다버스시간은다가오는데태연하게인

샬라를외치는여자라니. 나같은사람은처음보겠다고한다.

“그래서, 인샬라의뜻으로. 이제어떻게할까?”

“숙소근처에서아브딘궁전을봤던것같아요. 아브딘궁전을찾

으면될것도같은데요.”

그렇게우리는다시사람들에게길을물으며느긋하게아브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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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향해갔다. 나도, 준 오빠도, 길을잃었다는불안감은사실처

음부터가지고있지않았던것이다.

‘분노의 코란송’을 자장가 삼아 사막으로

우여곡절끝에숙소를찾아짐을싸들고서는, 거의차시간이다되어

서야시와행터미널에도착했다. 살인적인카이로의교통체증때문이

었다. 서울보다더차가많은것같은길거리에신호등은커녕차선조

차없으니당연한일인지도몰랐다(게다가모든거리가일방통행이다).

차에서내리자마자냅다뛰어정류장으로갔는데다행히도버스는연

착이었다. 그제서야나는안도의한숨을내쉴수있었다. 숨을고르고

정신을차린후먼저기다리고있던두사람과인사를나눴다. 시와

말고도다른장소에서여러번만나게될, 이집트여행에서의소중한

인연인진우오빠와지연언니 다. 남녀이긴했지만두사람은커플

이아니었다. 여행중에만나마음이맞아함께다니는것일뿐이란

다. 연인도아닌남녀가함께여행을다니는것이이때는생소하게느

껴졌지만, 두사람을옆에서계속지켜본후에는왠지납득이갔다.

여행자들의마음은대체로순수하다. 동행하는상대가이성이라는이

유만으로이상한마음을품는사람은드물었다. 두사람을보고이상

하게생각한내가오히려불순(?)했달까.

버스가예상보다금방도착해서나와준 오빠는아쉬운작별인

사를나눴다. 준 오빠는시와에함께가지못하는걸못내아쉬워하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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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이메일로연락할테니카이로에오면다시만나자고한다. 꼭그러

겠노라고약속하고버스에올라탔다.

버스는자리가좁고불편했으며사람들은시끄럽게떠들어댔다.

조금더밤이깊어지자사람들은하나둘잠이들고스피커에서는일

정한운율의코란송만흘러나왔다. 이집트여행을한사람들은‘분노

의코란송’이라고하며버스를탈때는귀마개가필수라고들말한다.

하지만나에게는그소리가오히려편안하게느껴졌다. 숨가쁜하루

를지나보냈다는안도감때문이었을까.

코란송을자장가삼아나는얼핏잠에들었다. 추위때문에다시

깼을때는동이터올무렵. 슬슬시와에도착할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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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흔들어깨운, 그깊은모래의밤

이집트, 시와Egypt, Siwa

사막투어는 2시에출발이라고한다. 우리는그동안동네탐방을나

가기로했다. 아침이른시간의시와는차도거의안다니고사람도

거의없이한적했다. 어제까지숨쉬기힘들정도로공기가더럽고명

동보다몇배는혼잡한카이로에있었던것을생각하니심하게이질

감이느껴졌다.

시와한가운데의구시가지‘샤리’에올라갔던우리는멀리보이

는오아시스를보고저기까지다녀오자는데단번에동의했다. 우리

는그곳이아마도시와의유명한관광지판타시섬이리라짐작하고,

‘자전거를타고다녀오면금방이라들었다’고하며잔뜩들떠있었

다. 그결정이우리를생고생의세계로안내할줄은전혀모르고말

이다.

샤리에서내려와자전거를빌린우리는아까봤던방향을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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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달렸다. 오빠와언니를두고먼저씽씽달리는나를보며뒤에

서두사람이중얼거렸다. “역시젊은애라체력이달라.”

문제는언니와오빠의체력이아니었다. 한참을달리다가길이

끊어진지점에서자전거를세운우리는모두한가지사실에동의했

다. 이길이아닌가봐.

우리는잘못된길로가고있었고돌아가는길도잘모르고있었

다. 한마디로길을잃은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지연언니의자전

거체인이계속문제를일으켰고달랑반통들고온 500mL짜리생수

는바닥이났다. 판타시섬에간다는것에마냥들떠물을챙겨올생

각을아무도안했던것이다. 한참을고민하던우리는적당히타협하

기로했다. 사막투어시간이다가오니여기서사진찍고돌아가기로

말이다.

몇번이나고장이나더이상고칠수없게된지연언니의자전

거를당나귀수레에싣고, 우리는마을로돌아왔다. 그리고돌아오자

마자사막으로떠날준비를하며 1.5L짜리생수 4통을샀다. 1박 2일

의사막투어동안그렇게많은물이필요할리없었지만, 자전거를타

며물의소중함을느낀터라그정도는필요할거라고생각하고있었

다. 결국다음날남은생수 3통을하나씩나눠가졌지만말이다.

간단한짐을챙기고운전기사인오마르와인사한우리는투어차

량에올라탔다. 차를타고조금달리자민가들이잦아지기시작하며

검문소가나왔다. 본격적인사막투어가시작된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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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밤은 냉정하다, 그러나 깊다

오마르는사막에들어서자마자코란송을틀었다. 정말어디에서나코

란송을듣는구나. 처음에는‘정말신앙심투철한사람들이다’라고생

각했지만지금은그냥버릇처럼하는일이리라생각하고있다.

차를타고가다보니어느새사막한가운데와있었다. 신이나서

신발을벗고밖으로나왔다. 발에닿는모래의감촉이부드러웠다. 노

란사막과파란하늘의경계를바라보며나는한숨을쉬었다. 정말사

막이구나. 정말사막에왔어.

한국에돌아가면사막에대한일장연설을늘어놓으리라생각했

지만지금에와선그어떤말도떠오르지않는다. 머릿속에선명하게

그장면이떠오르건만, 어떤장광설을갖다붙인다해도내가봤던모

습을정확하게묘사할수없을것같다. 사막은그저사막일뿐이었

고, 그사실이나를감동시켰다. 바다를보지않은자가바다에대한

미사여구를듣는다고해서그느낌을떠올릴수있을까. 산을오르지

않은자가정상의풍경에대한시를읽는다해서그풍광을떠올릴수

있을까. 자연의위업이란인간의도구인말로써는절대표현할수없

는것이아닌가.

높은모래언덕, 새파란하늘, 그중심에선우리들. 가슴속에응

어리졌던모든일들이한꺼번에풀어지는듯했다. 그렇게홀가분한

마음으로한참을사진찍고, 산책하고, 멍하니구경하며그시간을만

끽했다. 자리를옮겨샌드보드도타고사막드라이브도하고콜드스

프링과핫스프링에도다녀오니어느새사막이주황색으로물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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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작했다. 일몰의시간이다가온것이었다.

차를타고선셋포인트에다다른우리는한참동안사진을찍어대

다가겨우마음을진정시키고앉아일몰을감상했다. 그것은결코웅

장하고경이로운모습은아니었다. 끝없이고요하고, 아름답고, 정갈

한모습이었다. 그래, 정갈했다. 자연을표현할때쓰기에는어울리지

않는말이지만사막의일몰은정말로정갈했다.

그리고가차없었다.

일몰은광활하게빛나는사막에서그빛과열기를무자비하게앗

아가는순간이었다. 어떤따스함이나포근함없이, 일말의여지도남

기지않고다음날아침까지그것을가져가버리는. 사막의사람들은

밤이깊어가고추위가덮쳐올수록그무자비함을더욱뼈저리게느끼

며매일밤을보냈을것이다. 빛나는세계를다시가져다줄일출을

기다리며.

낮동안의거대한세계를한치의자비없이빼앗아가는일몰. 그

러나가차없기에더욱아름다운순간이었다.

해가완전히진후우리는자리를옮겨시와의야경을감상했다.

사막저멀리서샤리를향해켜놓은조명들이반짝반짝빛나고있었

다. 사막이너무좋아, 나원래사막에살던사람이었나봐. 사막에서

살고싶다. 진우오빠의말에저절로고개가끄덕여졌다.

시내에서저녁식사를가지고캠프에내린나는사막의밤이그렇

게무자비한것만은아니라는사실을깨달았다. 별이었다. 셀수도없

이수많은, 별자리가별속에파묻혀찾을수조차없는빼곡한별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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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쪽끝에서저쪽끝까지펼쳐져있었다. 낮에는낮의세계가

있듯, 사막에는밤의세계가있었던것이다. 사진으로남길수없는

광경이었지만어차피기억속에서잊혀지지않을것이었기에아쉽지

않았다.

천막안에서저녁식사를마치고나오자달이밝게떠더이상별

은보이지않았다. 우리는그텅빈듯한하늘아래모닥불을피우고

둘러앉았다. 정신없이달고쓴베두인차를한잔씩마신후오마르가

물통을두드리며베두인족의노래를불러줬다. 끝없이이어지는듯한

노래. 모닥불의일 임과함께꿈틀거리는그림자들. 아무것도존재

하지않는사막한가운데앉아있는우리. 사막의밤은그모든것을

감싸안고깊어갔다.

밤이깊자오마르는함께왔던자신의사촌을데려다주고오겠다

고, 30분후에돌아오겠다며차를타고사막을떠났다. 일찌감치잠든

지연언니옆에서나는진우오빠와한참동안이야기를나눴다. 철학

과에다닌다는진우오빠는모닥불을보다가문득생각난듯말했다.

“어느날통닭을먹으러갔는데한사람이말하는거야. ‘불에도이데

아가있을까?’우리는모두쓸데없는소리라고했지. 그리고어떻게

됐는줄알아? 10분후에우리는술을마시며불의이데아에관해토

론하고있었어.”

불의이데아라니! 처음에는어이가없어서웃었지만웃음의끝에

마음은점차 쓸해졌다. 진우오빠가과친구들과나누는대화는내

가친구들과나누는대화와너무달랐다. 내나이대여대생들이모여

서하는이야기라는게다그렇다. 앞으로뭐해서먹고살것인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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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스펙이면어떤직장에취직할수있을것인가. 세계에대한고

민, 하다못해자아에대한고민조차도하지않았으며그런생각으로

시간을보내다간치열한경쟁에서도태되기십상이었다. 정신적여유

조차부릴수없는숨막히는현실이고, 여행을끝내고돌아가면나를

기다리고있을현실이기도했다.

이런저런이야기를나누고있자니모닥불이약해지며점점추워

졌다. 30분이한참지났지만오마르는돌아오지않았다. 원래있던장

작은이미다써버린터, 휴지를태우며불길을살리려해봤지만소용

없었다. 할수없이캠프주변을돌며잔나뭇가지를주웠다. 다른사

람들이캠프를하고가며남긴잔해인모양이었다. 풀한포기없는

사막에서나뭇가지를줍고있다니…. 지금생각하면웃기지만이때는

정말살아야겠다는일념으로나뭇가지를주워모았다. 그정도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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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의밤은추웠다.

오마르는 3시간이나지난후에돌아오더니어디서나무를한짐

끌고와모닥불을살려줬다. 따뜻하다는게이렇게감사한일이었구

나! 나와진우오빠는그제서야마음을놓고다시살아난모닥불앞에

앉아몸을녹 다. 재미있는사실은나와진우오빠가불을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동안지연언니는계속자고있었다는거다. 무슨일이

있는지도모르고, 아주편안하게말이다.

천막안에서자겠냐는오마르의물음에우리는모두밖에서자겠

다고했다. 내일아침이면떠나게될사막을조금이라도더느끼고싶

었다.

신의 역, 인간의 역

새벽, 뼛속까지얼어붙을것같은추위에잠에서깼다. 옷깃을여미며

몸을일으켜보니해가뜨고있었다. 멍하니앉아해가뜨는것을쳐

다보았다. 해가떠오르고햇빛이가까워올때마다조금씩따뜻해지

는걸느낄수있었다. 엄마가예전에이집트배낭여행을마치고돌아

와하셨던말 이기억났다. “사막에서해뜨는걸볼때마다왜이집

트사람들이태양신을섬기는지이해가가더라고. 그렇게춥다가도

해가뜨면신기할정도로따뜻해지잖아.”그말에공감이갔다. 그옛

날, 제대로된방한복이나바람막이도없이떠돌던유목민족들에게

길고추운밤을지나떠오르는태양은정말신처럼보 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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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간단하게아침식사를하고시와로돌아왔다. 진우오빠

와지연언니는일정이빠듯해서바로카이로로돌아가고나는좀쉬

기위해시와에남았다. “바하리야에가면사막여우에게꼭안부전

해줘. 나를기다리고있을거야.”진우오빠의부탁을받아꼭바하리

야에가겠노라고약속을했다.

나는시와에이틀을더머물며푹쉬고카이로로돌아갔다. 다음

목적지는이집트남부, 아스완과룩소르다. 사막에서자연의경이로

움을만끽했으니이제인간의위업들을느끼러갈차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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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그리고뜻밖의제안

이집트, 아스완-룩소르-카이로Egypt, Aswan-Luxor-Cairo

다시카이로에서하루를보낸후, 아스완까지침대기차를타고내려

왔다. 먼저여행왔던엄마가추천해준것이었지만, 나중에룩소르에

서카이로까지 1등칸을타고가보니굳이 60달러나내고침대기차를

탈필요가없다고느껴졌다. 어쨌든나는이때침대기차를이용했고

이일은준 오빠에게두고두고놀림감이되었다. ‘60달러짜리호화

기차를타고다니는럭셔리한아가씨’라고말이다.

아스완에내리자마자가장먼저떠오른건준 오빠가전해준

남부의무시무시한악명이었다. 하지만막상기차역밖으로나와보

니그렇게끈질기게따라붙는호객꾼들이없다. 사람들이잔뜩달라

붙어귀찮게굴것을각오하고나왔는데. 내가너무단련된건가? 순

한인상때문에한국에서‘도를아십니까’하는사람들에게많이시달

렸던나에게는시시하게느껴질정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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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도착해서는아부심벨과이시스신전등을보러가는아스

완투어를신청하고룩소르까지가는 2박 3일크루즈배편까지예약

했다. 크루즈역시침대기차처럼엄마의추천이었지만너무비싼게

마음에걸렸다. 엄마는여행을간이상할거다해보고오라고하

셨지만, 이게과연이가격정도의가치를가질까? 지중해크루즈도

아니고좁은나일강을떠다니는건데?

설렘 없는 여행이란

숙소를나와박물관도다녀오고식물원도다녀왔지만머릿속에는계

속해서크루즈생각만이맴돌았다. 갈까, 말까. 어떻게해야하나. 종

일걸어다녀힘들었지만입맛도없고머릿속이복잡해아무것도먹

지않은채숙소로돌아왔다.

배고픈상태에서텅비고넓은방과마주하자극심한외로움이

덮쳐왔다. 몇시간돌아다녀보니, 준 오빠가남부는호객꾼때문에

피곤하다고했던말이이해됐다. 아스완에고작반나절머물 을뿐

이지만관광객을봉으로만여기는사람들사이를걸어다니는것은

정신적으로지치는일이었다. 그 누구도진심이나호의로다가오는

사람이없었다. 카이로가그리웠다. 카이로라고해서별다를게있는

건아니지만적어도그곳에서는사람사는분위기를느낄수있었다.

외진거리를헤매다보면관광객의때가묻지않은사람들의순수한

미소를마주할수있었다. 하지만이곳에는박제된고대도시, 수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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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흔적에의지해사는사람들의껍데기뿐인웃음만가득했다. 아

부심벨이고뭐고상관없으니어서이곳을떠나고싶다는생각이간절

했다.

그순간나는깨달았다. 내가원하던여행은이런게아니라는것

을. 지금까지하나라도더봐야된다는의무감으로유적지를돌아다

녔지만나는그것들에진정으로감탄하거나그런관광을행복하다고

느낀적이없었다. 매일매일날괴롭히는이지독한피로함이어디서

오는건지그제서야알수있었다. 천성이게으르고느릿느릿한내가

별로좋아하지도않는유적지를하나라도더보기위해열심히여행

하는것은그저피곤하기만한일이었다.

내가즐거워할수있는공간은인간의한계를느끼게하는곳이

아니라자연의경이로움을느끼게하는곳이었다. 흘러간역사의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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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간직한곳이아니라현재의사람들이살아가는솔직한이야기를

들을수있는곳이었다. 아부심벨도, 피라미드도아닌시와사막, 카

이로의길거리야말로나에게어울리는장소 던것이다.

크루즈를취소하고최대한빨리카이로로돌아가야겠다고결심

했다. 이런우울한기분으로크루즈를타봤자재밌지도않을거고, 어

서카이로로돌아가골목골목을걸으며사람사는풍경을마주하고

싶었다. 무엇보다준 오빠가보고싶었다. 별로친하지도않고, 겨

우두번밖에보지않은나를계속걱정하며메일을보내준사람. 왠

지함께하면재밌을것같은, 나와같은여행을즐길것같은사람.

나는로비로내려가숙소주인에게크루즈를취소해달라고했다.

그리고내일저녁룩소르로가는기차표를부탁했다. 아무리유적지

를보는게기대되지않는다해도마지막남은의무감에투어까지취

소할수는없었다. 내일아부심벨을보고룩소르로가서, 내일모레는

룩소르를보고밤에카이로로돌아가자. 모든걸다끝내고빨리홀가

분해지고싶다.

윤하야, 에티오피아에 같이 안 갈래?

아스완과룩소르여행을끝내고마침내카이로행야간기차의 1등칸

에앉자마음이평온해졌다. 야간기차에서는뜻밖에반가운만남도

있었다. 시와에동행했던진우오빠와지연언니를다시만났던것이

다(어쨌거나만날인연은다시만나게되는법인가보다). 두사람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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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다녔다는희문군과함께, 우리는준 오빠를만나오빠가묵는

숙소에짐을풀었다. 준 오빠가묵는숙소는일본인숙소 는데내

가준 오빠와대화하고있자니지나가던일본인이한마디한다.

“준 상, 한국어잘하시네요..”

숙소사람들은내가오기전까지준 오빠가일본인인줄알았

던모양이다. 준 오빠가한국인이라는말에사람들은믿지못하는

눈치 다. 일전에는한국인이라는걸안믿으며여권을보여달라는

사람도있었단다.

이집트를떠나에티오피아로갈계획이었던오빠가아직까지도

카이로의평화로운일본인숙소에서할일없이늦장부리고있는데

는이유가있었다. 에티오피아행비행기표를사야하는데환율이떨

어지질않는것이었다. 이야기끝에오빠는농담처럼덧붙여말한다.

“윤하야, 오빠랑같이에티오피아가자. 에티오피아에가면고추

에뿔만달고다벗고다니는원시부족들을잔뜩볼수있대!”

카이로에서의나날은빈둥거리기의연속이었다. 사실, 천성이게

으른내가그동안의스케줄을소화한것은실로놀라운일이었다. 쉴

만큼쉬다가가고싶을때가는여유로운여행이나에게맞는것이었

는데말이다.

준 오빠는그런날끌고동물원으로향했다. 전날동물원에갔

다온일본인요코상이정말좋았다고한것도있고, 부지런한오빠

가더이상내게으름을두고보지못한이유도있었다. 지하철을타

고가야할거리를우리는천천히걸어한시간반만에도착했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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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원은차가씽씽달리고높은건물들이서있는도심한가운데에위

치해있었다.

폐관시간이거의다돼서인지대부분의구역들이닫혀있었다.

볼수있는건타조와벅, 원숭이정도뿐이다. 산책하는기분으로동

물원을돌아다니고있는데히잡을쓴한무리의이집트여학생들이

깔깔웃더니우리에게로달려왔다. 우리가신기한지한참을쳐다보고

할줄아는 어한두마디를던지더니귤몇개와팝콘한주먹을주

고사라진다. 이거야원…, 우리가철창안에들어가서동물노릇하고

있어야할처지네. 하지만우리는이집트소녀들의해맑은호의가싫

지않았다.

너무늦게간탓에동물들은거의볼수없었지만오빠와나는동

물원벤치에앉아한참동안수다를떨며신나게시간을보냈다. 수다

거리가많은동년배여자친구도아니고, 만난지얼마되지않은사

람과이토록즐거운대화를할수있는건여행자라는공통분모가있

기때문일까? 우리가앉아있는곳이동물원이라는것을잊을정도로

대화는신나게이어졌다. 얘기가어찌나길어졌던지, 슬슬일어나자

고생각하고주위를둘러보니사람이하나도없는게폐관시간인모

양이다. 그리고보니저녁먹을때가다된듯배도좀고프다. 동물원

출구로향하며우리는또다시저녁메뉴에대한시시콜콜한잡담을

시작했다. 하지만동물원출구에도착한우리는마음편하게저녁식

사에대한이야기나하고있을때가아니라는것을알게되었다.

문이잠긴것이다!

세상에, 어떻게된동물원이안에사람이있는지없는지도확인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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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고문을잠그는거지? 우리는동물원담벼락을돌며다른문들

도찾아봤지만모두잠겨있기는마찬가지 다. 이쯤되자걱정보다

는웃음이나왔다. 도심한가운데에타조와원숭이와함께갇혀버리

다니, 이얼마나우스꽝스러운상황인가. 처음에는당황했지만우리

는슬슬농담을하기시작했다.

“오빠, 우리오늘여기서못나가면어떻게해요?”

“ 쎄. 오늘뭐먹고싶니? 타조먹을까?”

“밤에잘때추울텐데.”

“사자가죽벗겨서덮고자자.”

“히히. 근데진짜경비허술하네요. 타조되게많던데한마리잡

아가도모르겠어요.”

실없는농담을하며우리는태평하게걸었다. 이전에카이로를

헤맬때도느낀거지만, 둘다위기감과는거리가먼사람들인것같

아. 잠시후, 딱한군데열려있는출구를발견해겨우밖으로나갈수

있었다.

극적으로동물원을탈출해저녁을먹은후우리는찻집에서다시

마주앉았다. 독특한향의시샤를피우며나는한국에돌아가기싫다

고, 계속여행하고싶다고푸념을늘어놓았다. 조용히이야기를듣던

준 오빠가문득진지한표정으로물었다.

“윤하야. 진짜에티오피아에같이가지않을래?”

지금까지농담처럼넘겨듣던그말이갑자기무겁게들려왔다.

한국에정리하고오지않은일들, 가서책임져야할일들이많았지만

나는돌아가고싶지않았다. 그렇다고해서딱히에티오피아에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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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은것도아니었다. 또, 잘모르는사람을믿고모르는땅으로뛰어

든다니약간경계심이느껴지기도했다. 순식간에머릿속에온갖생

각들이떠올랐지만일단고민하겠다는한마디로대답했다.

이날밤, 우리는바하리야로가는버스표를사고돌아와짐을정

리했다. 바하리야에가면이고민에대한해답을얻을수있을까? 광

활한사막을보고있노라면, 나도잘모르는내마음들이정리가되며

이매력적인제안에대해확실히결정을내릴수있을까?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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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여우의방문

이집트, 바하리야Egypt, Bahariya

내가시와사막이너무아름다웠다고감상을늘어놓자준 오빠는

조금미묘한표정을지었다. 시와와바하리야둘다다녀온준 오빠

는시와에서본것같은사막을기대한다면바하리야는좀실망스러

울거라고했다. 그곳은시와처럼모래만잔뜩있는사막이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바하리야에들어간나는당황스러웠다. 검은돌들로뒤덮

인산들이있는바하리야는시와사막과는완전히느낌이달랐다. 시

와가너무나도아름다운풍경때문에다른세계에온것같았다면, 바

하리야는그느낌자체가황폐한것이마치화성에라도온것같았다.

아름답다기보단이색적인그풍경에살짝실망한것도사실이었다.

결국바하리야에서는풍경을즐기기보단같이간사람들과놀면

서즐거운시간을보냈다. 검은사막, 크리스탈사막, 모래사막과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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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모두다녀왔지만기억에남는건두개뿐이다. 화려하고아름다

웠던일몰과, 우리캠프를찾아온사막여우.

야생의 사막여우가 기다리는 곳

해가진후저녁도먹고모닥불도피워놓고놀고있자니어디서부스

럭거리는소리가들려왔다. 잘보니어둠저편에서작은물체가움직

이고있었다. 사막여우 다.

바하리야에선사막투어중여우가거의백프로출몰한다고는하

지만, 실제로보니정말신기했다. 먹을걸찾아왔는지주변을맴맴

돌던사막여우는잽싸게빵한조각을채서달아났다. 여우보다는고

양이같아보이는그작은손님이떠나고나서야나는중요한사실을

기억해냈다. 진우오빠가사막여우한테안부전해달라고했는데! 사

막여우야. 너정말진우오빠를기다리고있었니? 어쩌면진우오빠

가있는건아닌지알아보려고살짝왔다간걸지도모르겠다는, 낭만

적인생각이머리를스쳤다.

사막에서하룻밤을지내고마을로돌아온후, 혼자슬그머니투

어를운 하는아주머니댁을빠져나왔다. 생각도정리할겸산책을

할생각이었다(물론나같은길치가대책없이걷다간큰일난다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에길을잃지않기위해무조건앞으로만걸었다).

길이끝나는곳저편에는검은사막이있었다. 사막이라기엔화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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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같은, 어떻게보면또공사장의돌무더기같은검은사막의산들을

쳐다보며머릿속으로여러가지생각이스치고지나갔다. 내가여기

서이러고있는동안한국의친구들은열심히 어공부도하고자격

증도따고있겠지. 같은과동기들은임용고시공부에한창일테고. 그

런것들에서벗어나잠시쉬고싶어휴학을한것이지만, 사실은마음

이불안했다. 나, 이러고있어도괜찮은걸까? 카이로의숙소에서맥

주를마실때진우오빠가해준이야기가생각난다. “지금의너에게

가장중요한게뭔지잘생각해야해.”지금의나에게중요한것, 그게

무엇일까. 어떤대답을얻을수있으리라기대하고바하리야사막으

로왔건만, 이곳은나에게정답을보여주지않았다. 결국나스스로

생각해야한다는건가.

문득전날밤본별똥별이떠올랐다. 두개나봤지만당장소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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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지않아아무런소원도빌지못했지. 내가지금정말중요하게

생각하는일이란사실없는것아닐까. 진심으로원하는일이없다는

걸까. 그럼지금상황에만족하고있다는이야기일까.

잠시검은사막을쳐다보다가슬슬발걸음을돌렸다. 일자로걸

어왔음에도불구하고돌아가야할길이헷갈렸지만, 남아있는발자

국을보고간신히돌아올수있었다. 슬슬버스시간이다가와우리는

짐을챙겨바하리야를떠났다.

이런 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지도 몰라

돌아온카이로에는비가내리고있었다. 추적추적내리는비를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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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돌아온나는준 오빠에게말했다.

“저, 에티오피아갈래요.”

내가지금하고싶은일이뭔지는모르겠지만하기싫은일은확

실히안다. 한국에돌아가고싶지않다. 어쩌면현실도피일지도모르

지만, 정말가고싶지않았다. 내가아는, 날아는사람들이있는곳

으로돌아가는것이싫었다. 언젠가는그속으로돌아가야할것을

알지만지금은일단모든걸묻어두고준 오빠를따라가겠다고결

심했다.

잘알지도못하는사람, 거기다남자인데도, 이사람을따라나서

면분명지금까지겪어보지못한즐거운세상이기다리고있을것만

같은느낌이든다. 그리고그새로운세계에서내가길을잃지않도록

이사람은톡톡히안내자역할을해주리라. 근거없는막연한믿음,

지금의나에게딱필요한만큼의무모한믿음이어느새마음속을채

우고있었다. 나중에후회할지언정, 지금은마음이가르키는방향으

로몸을던지자.

가끔은좋지않은가. 모든책임감과두려움을던져버리고미지의

세계로뛰어드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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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On the Road

이집트를떠나다

에티오피아에함께가겠다는대답에준 오빠는조금놀란표정이었

다. 하지만곧있어싱 벙 해지는걸보니오빠도동행이생긴게

기쁜모양이다. 오빠는약간들뜬목소리로농담처럼말한다.

“같이가자고한나도나지만, 덜컥쫓아온다는너도너다.”

이날이후부터우리는본격적으로일행이되었다. 초특급짠돌이능

구 이장기여행자와기네스북에오를만한길치에방향치인어리바

리초보여행자. 그럭저럭봐줄만한조합이다.

에티오피아로갈비행기를끊기엔환율이너무높았기에, 환율이떨

어지는걸기다리는동안다합에다녀오기로했다. 버스시간이다가

오길기다리며숙소로비에앉아있자한일본인이직접만든김치를

들고와서먹어보라고한다. 이얼마만의김치냐! 약간다르긴했지만

분명그건김치의맛이었다. 준 오빠가맛있게김치를먹고있자그

일본인이웃으며말한다. “김치를좋아하는걸보니정말한국인이었

군요.”이사람들은아직도준 오빠가한국인이라는걸믿기힘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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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에서천국같은며칠을보내며푹쉰후다시카이로로돌아왔다.

카이로의더러운공기와혼잡함은여전했지만이제예전같이숨이턱

턱막히는느낌은없었다. 이제는카이로가마치고향처럼느껴질정

도다. 에티오피아를넘어케냐로가기위해황열병예방주사를맞고

며칠후떠나는비행기표를예약했다.

드디어출발당일날. 우리는그동안사놓았던식재료를처리할겸숙

소의주방에서파스타를만들어먹었다. 채소볶음에간장으로만간을

해서파스타면위에얹어먹은것이지만생각보다꽤맛있다. 나는진

지한표정으로이요리에‘카이로파스타’라고이름을붙여줬다. 처

음개발한요리에는무릇지역이름이들어가기마련이니까.

이집트를떠나는기념으로마지막코사리까지산후에야우리는공항

으로출발했다. 손에는에티오피아행비행기표가들려져있다. 한껏

설레면서도조금은두려운마음이다.

‘드디어이집트를떠나에티오피아로가는구나. 에티오피아는나에

게또어떤새로운세계들을보여줄까.’

물론이때는알턱이없었다. 파스타에코사리에기내식까지먹은내

가에티오피아에가자마자만나게될세계가, 우리를닷새동안아디

스아바바에잡아둘무시무시한배탈의세계라는것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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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14,500원

이집트에서에티오피아를거쳐남아공까지,초특급짠돌이능청백단장기여행자와어리바리평범여대생의

결코평범하지않은아프리카종단기!

3주를계획하고홀홀단신이집트로떠났던윤하씨. 여행을준비하던중우연히카이로에

있는한여행자에게서‘우리집에서디지털카메라를받아가져다달라’는부탁을받게된

다. 그리고마침내카이로에서만나게된준 오빠, 그가운명(?)의남자 을줄이야…

카메라에대한보답으로카이로를안내해줬던그가에티오피아행을제안했던것. 그때는

몰랐다. 나일강크루즈를뒤로하고선택한에티오피아행이무려8개국을거쳐남아프리

카공화국까지이어지게될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