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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 · 1 사랑하는 새들마을학교가 만드는 특별 청소년신문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넌 참 고왔지 알고 보니 넌 너무 높은 벽이었어 손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 네가 싫어진 사람도 있더라 너를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섰고 매일매일 만났지만 우린 가까워질 수 없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너의 소리가 들렸어 너의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순간 우린 이미 가까워져 있었지 더 이상 벽은 존재하지 않았어 너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날 난 네가 너무 고와 보였어 고마워 2014년 1월 네 번째 이야기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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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마을학교가 만드는 특별 청소년신문 '사랑하는 우리' (2014.01.) - 새들마을학교는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초중고 통합 대안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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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1

사랑하는우리새들마을학교가 만드는 특별 청소년신문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넌 참 고왔지

알고 보니 넌 너무 높은 벽이었어

손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

네가 싫어진 사람도 있더라

너를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섰고

매일매일 만났지만 우린 가까워질 수 없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너의 소리가 들렸어

너의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순간

우린 이미 가까워져 있었지

더 이상 벽은 존재하지 않았어

너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날

난 네가 너무 고와 보였어

고마워

2014년 1월 네 번째 이야기

Page 2: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2·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02 목차

03 時論-지식과지혜 새로운 해를 맞으며

우울한 시대를 비추는 희망의 빛을 좇아

04 時論-지식과지혜 새로운 해를 맞으며,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만난 그들

09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공부론

공부란 사랑한다는 것

10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새들마을학교, 이렇게 공부해요

자세를 바르게 발성을 정확하게, 5~8학년 연극 수업

11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새들마을학교, 이렇게 공부해요

언니, 오빠가 좋아요!, 1~4학년 우리가락 장구

12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한반도 역대 통일국가, 통일을 내다보다

말과 행실의 분열로 세워진 조선

14 대안교육문화 현장을 찾아서 ‘중등무지개학교’를 다녀오다

18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애정감사

당신들이라서 감사합니다

20 담담(淡談)덤덤 창작 이야기

비밀

23 담담(淡談)덤덤 이 노래를 들어 봐!

진실을 알지 못하면, 사랑을 알지 못해

-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Where is the Love?’

25 일상이 예술이다 그림창문

하하호호 창문

24 아름다운 발자취 천사가 따로 있나!

우리를 에워싼 눈부신 천사들

26 비와 햇살 독자후기

27 뫼비우스 편집후기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김남주

발행 새들마을학교

발행·편집인 최봉실

디자인 이슬비

지도교사 윤희윤

기자 최봉실 윤희윤 이밀알

김민수 이동원 석현수

김고운 양의진 김지호

양권진 명권영 이영인

구한글 김진경 양하늘

명다소 김시원

주소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 3동 282-41 2층

전화번호 070-8742-4480

누리집 j.mp/saedeul

이메일 [email protected]

후원계좌 국민 222001-04-

103652 윤희윤(새들마을학교)

표지 사진 생일 축하에서 친구의 마음

을 듣다

표지 글 마지막 기타 수업에서 함께

지은 시

사랑하는우리새들마을학교가 만드는 특별 청소년신문

Page 3: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3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꽤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밀양에서 송전

탑 문제로 유한숙 할아버지께서 자살하셨을 때는 달을 보고

혼잣말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기차를 많이 이용하거나 병원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수서발 KTX 민영화 논란, 영리병원 설립

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는 한숨을 달고 살았습니다. ‘안녕

하시냐’는 물음에는 차마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하자면

국정원과 군의 선거 개입과 조직적인 은폐, 공약 후퇴 등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습니다. 관악산 자락 비봉산 밑에서 아이들과

배꼽 빠지도록 웃으며 살지만 이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

으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변호인>이 개봉된 지 19일 만에 관람객 수가 800만 명을 넘

어섰습니다. 이 수치는 역대 한국 개봉 영화 흥행 1위인 <아바

타>보다 7일 빠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도가니>, <국가

대표>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흥행한 경우는 꽤 되지만

특정 정치인을 동기로 한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한 적은 없었

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처럼 “이런 기 어디 있

어요?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외쳐 줄 누군가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하는 세상에

그래도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그 바위를 넘는

다”고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한 해 세계 최대 검색 엔진 구글(Google)에서 제일 많이 검

색된 단어는 12월 5일 타계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라고 합니

다. 만델라 대통령의 장례식은 91개국의 정상과 10명의 전직

정상이 방문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습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직 대통

령도 아닌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세계인이 이렇게 애도한 이유

는 무엇일까요. 그가 큰 권력을 쥐었기 때문도 아니고, 부를 가

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척박하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시대의

아픔을 지고 산 사람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온 힘을 다해 불의를 거부하고 정의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만모

한 싱 인도 총리는 만델라 대통령을 “전 세계의 양심일 뿐만 아

니라 진정한 간디주의자”라며 그의 서거를 애도했습니다.

구글에서 검색 1위가 만델라 대통령이라면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기고 교황 전용 차량을 거부하고 작은 중

고차를 직접 운전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프란치스

코 교황이 회자되고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이런 이슈 때

문은 아닙니다. 그는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빈민의 성

자였던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하며 ‘가난한 이를 위한

치유의 교회’를 강조했으며, 즉위 직후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계

층을 보듬는 데 앞장섰습니다. 성탄절 미사에서는 “주님은 거

대한 분이시지만 스스로 작아지셨다. 주님은 부유하지만 스스

로 가난해지셨다. 주님은 권력자이시지만 스스로 연약해지셨

다”며 교회가 사회에서 가장 낮고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할 것

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시대는 우울하지만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새

들마을학교의 꿈 중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새들마을학교는 같은 소망으로 앞서 내디딘 모든 걸음을 스승 삼아,

신명과 고뇌를 품고 분투하는 동시대 모든 교육 현장을 벗 삼아, 그리

고 우리가 못 다할 몫을 뒤이어 감당할 핏줄 삼아 가는 길임을 잊지 않

겠습니다. 언제나 이 모든 걸음과 우정 깊은 연대를 애쓰며 새들마을학

교에 허락된 몫을 열심히 감당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간디, 넬슨 만델라, 헬렌 켈러, 나이팅게일, 체 게바라, 이순

신, 장기려, 노무현. 아이들이 이번 시론에서 이들에 대한 글

을 쓴 이유는 우리보다 앞서 걸음을 내디딘 스승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

금 이 순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의 몫을

부여잡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어둡다 생각할 때는 어찌 해야 할지, 어찌 가야 할지

온통 ‘모르겠다투성이’이다가도 망망대해에서 멀리 보이는 등대

빛에 의지해 항구로 돌아오는 배처럼, 저 멀리 보이는 빛 하나

붙잡으면 가야 할 길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옆에 선 이들의 손

꼭 잡고, 앞서 가신 이들을 빛 삼아 그렇게 시대의 아픔을 품고

새로운 들판에 펼쳐지는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칠 오늘을 살아

내겠습니다.

글_ 윤희윤

우울한 시대를 비추는 희망의 빛을 좇아

時論-지식과지혜 | 새로운 해를 맞으며

Page 4: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4·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時論-지식과지혜 | 새로운 해를 맞으며,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만난 그들

지난 12월 5일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평

생 온 몸을 바쳐 지구의 평화를 이룩하려 하셨던 넬슨 만델라가 돌아

가신 것입니다.

그는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백인 중심의 교육

을 받게 됩니다. 그때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백인 대통

령이 있고 소수의 백인이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만일 넬슨이 이런

현실에 안주하고 살았다면 지금의 남아공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

니다. 하지만 넬슨은 현실을 등에 들쳐 업고 똑바로 전진해 나갔습니

다. 그렇게 해서 백인과 흑인이 상생하는 지금의 남아공이 탄생했습

니다.

넬슨은 1961년 아프리카민족회의(이하ANC) 내에 무력 시위를 책임

지는 ‘민족의 창’을 결성합니다. 그리고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일환으로 파괴 행위를 일삼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화합과 용서

의 상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넬슨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넬슨

은 자신이 어느 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의 남아공은 백인들의 차별이 거의 절정에 달했을 때입니다. 1960년

에는 큰 시위를 하는 도중 67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부상당하는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넬슨은 참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포옹하고 화합하는 넬슨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넬슨은 파괴 행위를 일삼는 도중 종신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이때가

1964년이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해입니다.

흑인 차별이 질타를 받고 있을 때였지요. 이런 상황에서 넬슨을 감옥

에 투옥한 남아공 정부는 세계 곳곳에서 질타를 받게 됩니다. 자연스

럽게 남아공으로 들어오던 원조도 서서히 끊기게 됩니다. 이에 남아

공 정부는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넬슨은 감옥에서

도 짧은 죄수복을 길게 바꾸는 등, 죄수에 대한 부당한 행동을 중단

시키기 위한 운동을 계속해 나갑니다.

넬슨은 27년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 사이 남아공 정부는 계속해서

넬슨과의 협상을 시도합니다. 폭력 행위를 그만두면 풀어 주겠다는

등 계속해서 회유를 하지만 넬슨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아공의 대통령인 데클레르크는 ANC를 비롯

한 31가지의 불법 단체에 대한 활동 금지령을 철회합니다. 그리고 넬

슨과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데클레르크는 “만약 당신이 대통령이 된

다면 남아공에 거주하고 있는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우리가 하였던 것

처럼 핍박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넬슨은 백인들

이 고개를 숙이고 사과할 때 진심으로 그들을 포용하였습니다. 아파

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넬슨은 대통령이 됩니다. 넬슨이라는 인물

은 우리에게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이룩한 나라를 ‘무지개나라’라고 부릅니다. ‘무지개나라’

란 ‘화합과 소통으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리고 이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경쟁과 빈부 차이가 더

욱 극심해져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가장 필요한 대안이 아닐

까 싶습니다.

글_ 양권진(15세)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법

넬슨 만델라를 만나다

넬슨 만델라, 주한남아프리카공화국대사관 갈무리

Page 5: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5

時論-지식과지혜 | 새로운 해를 맞으며,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만난 그들

간디가 비폭력운동을 시작

한 것은 변호사가 되어 소송

때문에 남아프리카에 가 있

었을 때이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수모를 겪었다. 기차표

를 정당하게 사고 1등석에

앉았는데 쫓겨났다. 마차를

타면 마부가 말을 다루는 자

리에 앉혔으며, 그것을 거부

하면 몰매를 맞았다. 백인호

텔에도 묵을 수 없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건 어린아이가 그 상대방이랑 놀

기 싫다고 배척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닌가.

이것보다 훨씬 더 심한 차별이 있었다. 법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체류 인도인들에게 지문등록을 강제하는 신아시아법이 상정되었

다. 또한 1913년에는 그리스도교 방식을 통한 결혼만 정식 결혼으

로 취급되었다. 나라면 영국의 횡포에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간디와 남아프리카의 인도인들도 분노했다. 그리고 사티아그라하

란 조직을 만들어 법들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싸웠다. 간디의 비

폭력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지문법에 반대하여 지문을 등록

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간디는 징역 2개월을 선고받았다. 간디

는 영국의 스무츠 장군과 타협하고 감옥에서 나와 지문 등록을 했

지만 스모츠 장군이 약속을 어기자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재개되고

등록장들을 모두 태웠다. 그 일로 인해 간디는 징역 3개월을 선고

받았다. 1913년 영국이 지정한 법에 반대하며 인도 여자들이 항의

의 행동으로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행진했다. 결국 1914년 6월

에 스무츠 장군이 ‘영국은 결혼법과 지분등록법을 폐지한다’고 약조

문을 작성했다.

간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난 예

전에 술래잡기를 하다 술래가 잡았다고 하고 난 그렇지 않다고 생

각하여 싸운 적이 있었는데 상대의 마음만 잘 이해하고 이야기를

잘했을 때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싸움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되지 않았고 이긴다 해도 진쪽, 이긴쪽 쌍방이 모두 마음

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 자신이 화가 난다고 폭력으로 누군가에

게 해를 가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고쳐

야 할 것이다. 글_ 명권영(12세)

체 게바라는 쿠바의 혁명가

다. 원래 아르헨티나 출신 의

사였다. 친구와 여행을 하다

라틴아메리카의 고통을 체험

하게 된다. 그리고 멕시코로

가서 쿠바 반정부 혁명군에

들어갔다. 당시 쿠바는 바티

스타 독재정권에 시달리고 있

었다.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

업을 마다하고 자신의 길이라

고 생각한 것에 전념한 것이다.

또 체는 가난한 사람과의 교감을 중요시했다. 혁명 중에도 농민들

을 치료해 주고 그들의 빈곤과 배고픔까지 함께했다.

그는 끝까지 휴머니스트였다. 쿠바가 바티스타정권을 몰아낸 후 체

는 쿠바 산업부장관, 쿠바 국립은행총재 등 여러 차례 높은 관직

에 올랐다. 사람들은 이러한 때를 인생의 황금기라며 절대 벗어던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체는 달랐다. 그는 쿠바가 안정되자

1965년 볼리비아에 가서 바리엔토스 정권을 상대로 다시 게릴라전

을 벌였다. 또다시 어려운 약자들의 편에 선 것이다.

혁명 정신이 필요한 것 같다. 혁명이란 것은 ‘전쟁을 일으키라’는 것

이 아니다. 사회에 끌려가고 사회에 맞춰 살아가는 자신을 혁명시켜

깨우라는 말이다. 깨우치라는 것. 옳다고 생각되면 하라는 것. 하

고 싶으면 하라는 것이다. 체 게바라는 이런 말을 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의 일생은 이 문장으로 요약된다. ‘리얼리스트가 되자’는 것

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란 말이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는

것은 로멘티스트가 되라는 것, 즉 낭만을 가지라는 말이다. 체 게

바라는 현실을 직시한 후 꿈을 품고 그 꿈을 실천으로 옮겼다.

옳은 길을 선택한 후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하나 너 하나가 모여 혁명을 일으킨다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꿈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실

글을 쓰는 나는 굉장히 말하기 힘들다. 나 역시 옳다고 여겨지는 길

을 선택하게 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를 생각하며 세상

에 휘둘리지 않도록, 현실을 피하지 않고 잘 맞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글_ 구한글(15세)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하다

간디를 만나다자신의 혁명

체 게바라를 만나다

간디, 간디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체게바라의 혁명을 다룬 영화,

<체: 파트 투>

Page 6: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6·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역사를 배우다 보면 과거 ‘차별’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신분차별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시대에는 차

별이 없다고. 그래서 옛날보다 지금 살아서 다행이라고. 또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과연 지금 이 세상은 차별이 없을까.

고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어느 공장을 방문했다가 일을 하

다 다친 노동자를 보았다. 충격적인 것은 다친 노동자에 대해 아무

런 보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노무현은 차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후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의 생각은 여전했다. ‘아무리 높은 권

력을 잡더라도 나는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 살고 싶

다’라는 생각은 그의 기둥이자 목표였던 것이다. 비록 집권 말기

FTA나 이라크파병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끝까지 국민들을

생각했던 대통령이었다. 바보라 불린 노무현은 바로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역사를 배우며 차별이 있는 세상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을 바꾸고자 꿈꾸며 억울하고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이들 편에

선 그를 알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변호해 주고, 이득은커녕 오

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저 ‘이것이 정직하고 바

른 것이다’라고 생각한 그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자료를 찾

으면서 그가 평생에 걸쳐 이런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노력보

다 값진 것은 없음을 다시금 새긴다.

글_ 석현수(15세)

나이팅게일은 1854년 크림전쟁 당시 38명의 성공회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스쿠타리의 야전병원에서 초인간적인 활약을 펼친 천재 간호사이

자 행정가였다. 크림전쟁은 전략과 병참 모두가 지극히 비효율적이어서 사상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오스만 측을 지원한 영국군의 경우에

도 전사자가 5천만 명에 달했는데 전염병으로 인한 병사자는 1만 5천만 명으로 세 배나 되었다.

그 당시의 야전병원은 굉장히 비위생적이었고, 그 때문에 상처 악화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나이팅게일은 청소와 빨래 등 위

생 체계를 바로잡고 무질서한 병원에 엄격한 규율을 세웠다. 그리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야간 간호를 혼자서 도맡아 했다. 매일 밤 등불을

들고 회진을 돌면서 환자들을 돌봐 주는 모습 때문에 ‘등불을 든 여인’이라는 애칭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나이팅게일의 노력 덕분에 사망률

이 42%에서 2.2%로 줄어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는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 보이면 금방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도 어려워 보이는 것들은 지레 겁을 먹고 하지 않으려고 한 적이 많다.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처음 기타 악보를 보고 어려워 보여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기초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고,

악보 보는 법도 잘 몰랐으니 이런 생각을 먹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타 수업이 끝난 지금, 난 ‘Like Wind'를 끝까지 칠 수 있고, 제일 못 잡

던 F코드도 명확하게 소리를 낼 수 있다.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리더라도, 뭐든 계속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나이팅게일을 통

해 배웠다.

글_ 이영인(15세)

“이것이 정직하고 바른 것이다”

노무현을 만나다

등불을 든 여인

나이팅게일을 만나다

時論-지식과지혜 | 새로운 해를 맞으며,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만난 그들

3당 합당에 반대하는 노무현.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 갈무리

Page 7: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7

時論-지식과지혜 | 새로운 해를 맞으며,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만난 그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라

헬렌 켈러를 만나다인생의 결말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이순신을 만나다

헬렌 켈러는 19개월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심한 열병으로

두 눈과 두 귀를 모두 잃었다. 들리지 않는 귀와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말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헬렌은 자신만의 방법으

로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하지만 헬렌은

크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소통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헬렌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모든 이들이 헬

렌을 포기할 즈음,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앞에 나타났다.

헬렌이 처음 설리번 선생님을 만났을 때의 나이가 7살 무렵이

었다. 헬렌은 소통이 불가능했고 설리번 선생님도 헬렌을 감

당하기에 버거웠다. 하지만 설리번은 어릴 적 헬렌과 같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헬렌과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고,

글과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 헬렌은 처음 물(water)이라는

글자를 배우는데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순간이

헬렌에게 일어난 기적의 시작이었다. 그 후 헬렌은 빠른 시간

내에 5개의 국어를 구사하였고, 레드클리프대학에 입학함으

로써 사람들에게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인물로 명성을 떨치

게 된다.

헬렌은 대학 졸업 후 여러 가지 사회운동을 했으며, 여성참정

권 운동도 참여하는 등 자신이 사회운동가라는 것을 적극적으

로 표현하였다. 또한 희망을 주는 여러 책들을 써서 장애인뿐

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까지도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는 저

자가 되었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나는 헬렌이 장애를 극복한 것도 위대하지만, 3중장애라는

큰 병을 앓고 있음에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감사한 헬렌 켈

러가 더 와 닿았다. 나는 헬렌보다 더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더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깊게 반성

하게 됐다. 또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글_ 김고운(14세)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이름 이순신. 1592년 일본이 20만여 대

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조선의 앞날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그러던 중 이순신이 등장해 일본군들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한산도대첩에서는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적을 둥글게 둘

러싸는 전법인 학익진으로 일본 배 59척을 파괴하면서도 조

선의 배는 한 척도 잃지 않았다. 명량대첩에서는 단 13척의

배로 일본 배 133척을 물리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다.

하지만 이순신의 이런 면들 이면에 담긴 그의 생각과 아픔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남들보다 늦은 28세에 무

과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지고 다시 32세에 시험을 봐 합격하

고 관직에 올랐다. 하지만 윗사람의 비리를 지적해 미움을 받

기도 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바른 길만을 나아가다 억울하

게 모함을 당한다. 그는 두 번의 백의종군을 기꺼이 받아 안

으면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사랑하는 부모의 임종

을 곁에서 지켜보지도 못하고, 21살 된 아들 면도 잃었다. 그

는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나라를 지킬 뿐이었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전장에서 적과 싸워 승리를 일구어 냈

지만, 승리의 기쁨보다 그 전에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순신

의 빛나는 업적 뒤에 참으로 큰 고통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

다. 이순신도 어느 다른 위인과 비슷하겠지 생각했었는데, 이

번 기사를 쓰기 위해 이순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서 위인

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한 위인의 인생은 한 편의 영

화 같지만 그 인생의 결말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 어떤 시련

과 반전이 있다 해도 자신

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

라 그 결말이 바뀔 수 있다

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거울이 절대 혼자 웃지 못

하듯이.

글_ 김지호(15세)

이순신을 다룬 영화, <천군>

Page 8: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8·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時論-지식과지혜 | 새로운 해를 맞으며,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만난 그들

자신의 모든 삶을 남을 위해 산

장기려를 만나다

“옷이라는 건 말이다. 네 몸의 온기를 가두어 두는 것일 뿐이란다. 옷 자체가 따뜻한 건 아

니잖니. 그런데도 우리가 옷을 입으면 따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옷이 내 몸에서 나오

는 열기가 허공으로 헛되이 흩어져버리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깐 결국 온

기를 지닌 건 바로 너 자신이란다. 기려야 너는 옷을 여러 벌 껴입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옷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냐. 이 할머니는 네가

다른 사람들의 옷이 되어 줬으면 좋겠구나. 다른 사람들의 체온을 지켜 주는 옷처럼 늘 사

람들 곁에 머무는 그런 사람이 되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구나.”

장기려 박사님의 할머니가 한 말이다. 장기려 박사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위 말을 듣고 한번도 자신만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그만큼 너무 착해 ‘바보 의사’라고 불렸고 바로 그 중심을 지

키고 산 분이다. 나는 이 분을 존경하기에 이 글을 쓴다.

살아 있는 작은 예수로 불렸던 장기려 박사는 집 한 칸 없이 병원 옥탑방에서 지내며 겸손하게 살았다. 너무나도

서민적이고 초라한 인생으로 살았던 그는, 마음이 흔들려 나쁜 짓을 하거나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지 않았다. 요

즘 돈만 밝히는 많은 의사들과 달리 돈 없는 환자들을 눈물겨워하며 환자의 치료비 전액을 자신의 월급으로 대

신 처리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니 병원 운영이 어려워져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한 장기려 박사는 어려운

환자에게 야밤에 탈출하라고 알려주었다. 며느리가 혼수로 해 온 이불을 춥고 배고픈 고학생에게 건네주기도 했

다. 점점 가난해져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죽었을 때 물레밖에 남기지 않았던 간디에 비하

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하며 묵묵히 베풀며 살았다.

또 ‘장기려’ 하면 생각나는 것은 이산가족이다. 그는 6.25전쟁 때 아내, 5남매와 생이별을 한다. 죽을 때까지

둘째 아들 가용과만 살며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했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45년간 혼자 살았으며 머리맡

에 늘 북한에 두고 온 아내 김봉숙 여사의 사진을 두고 살았다. 1985년 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되면서 그에게도

가족을 만날 기회가 왔지만, 다른 이산가족들과 함께 떳떳이 고향을 찾겠다며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로 대신했

다. 이 정도로 남을 배려하는 삶을 보였다.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삶을 일 년은 살 수 있지만 평생 하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평생 동안 남을 위해 사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한 일이라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진심어린 배려를 행하고 산

것이니까. 그리고 그의 평생의 삶을 따라가는 건 어렵겠지만, 지금 이 순간 타인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것은 기

꺼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_ 양의진(13세)

<장기려, 그 사람> 표지

Page 9: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9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공부론

공부란 사랑한다는 것새들마을학교 특별 청소년신문을 세 번째까지 이어오면서 반복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 속담은

그만큼 가까우면 서로가 예뻐 보인다는 말입니다”,“더 잘 알게 되면

사랑이 깊어지죠”,“시금을 고르듯 정성을 다하는 노력이 우리를 꿈이

현실이 되는 지경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더 잘 알게 되는 것, 즉

배움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시금을 고르듯 정성을 다

한다는 것은 내가 만나는 대상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생각하고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공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쓴 파커 팔머는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앎이 곧 사랑이라는 것은 인류가 오랜 기간 지

속해 오면서 깨달은 지혜이지요. 저 역시도 남편의 마음을 더 잘 헤

아리게 되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현실을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를 위해 인

생의 큰 결단을 해 갈 정도로 이 사회를 깊이 끌어안게 되었으며, 알

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를 만났을 때 이 땅을 잘 사랑할 수 있기를 간

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신문 ‘이 노래를 들어 봐’에서 소개된

‘Where is the love?'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만약 진

실을 알지 못한다면 결코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다”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만남은 바로 이 사랑에 이

르는, 배움의 문이 열리고 이 배움이 펼쳐지는 경이로운 장이며 길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배움-사랑’의 과정에 반드시 늪이 존재합니다. 파커 팔머

는 제대로 된 배움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직한 자기 성찰과

이어지는 자기 고백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

족함과 잘못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돌아보며 바로잡는 노력

을 함께 해 가지 않으면, 문제가 오랜 세월 암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

어져 우리의 몸과 우리의 생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

기 성찰과 고백은 나로부터는 회복을 이끌어 내고 타인에게서는 용

서를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파커는 성찰과 자기 고백은 “용서와 변

화의 근원을 향해 자신의 내적 어둠을 바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내적 어둠을 꼭 부여잡고 아무에게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어두움에 속박되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이들, 그를 사랑해 주는 모든 이들을 슬픔과 어둠으로 잡아끌어 같

이 죽음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습니다. ‘배움-사랑’이 이루어지

는 여정에서 이 어둠과의 싸움이 필수적입니다. 어둠에 대한 냉정한

분별과 단호히 끊어내는 교육이 불가피한 까닭입니다. 그 어둠을 기

꺼이 내려놓고 회복의 변화와 용서받음으로 기꺼이 나아올 때, 우리

는 비로소 제대로 배우게 되고 마침내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 있게 되

는 것이지요.

사랑이란 그 존재의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하는 온갖 종류의 행위며

그것은 이 온 우주의 하나됨에 조화하여 그 섭리를 향해 나아가는 모

든 생명체, 특별히 인간 존재의 마음과 행위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결코 획일적인 형태를 취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그 존재가 처한 유일

한 정황 속에서, 그 존재가 생명으로 당당히 서고 그 각성과 성장이

이 온 우주의 섭리에 한 몸으로 화합하고 조화하게 하는 것이며, 그

것이 모든 존재의 기쁨과 환희로 이어지도록 길러 가고 돕는 모든 마

음과 행위인 것이지요.

우리의 교육과 양육 문화가 거듭 난관에 봉착하는 이유는, 이 다양

한 정황에 대한 더 깊은 숙고와 이해, 그 앎 가운데 도출되는 필요와

사랑의 방향이 아닌, 언제나 무엇이 강조되면 무조건 그 방법으로,

휩쓸리기를 마다 않는 나약함과 무책임함에 있습니다. 공부란 앞서

살아가는 자가 먼저 배우고 깨우쳐 간 유산을 물려받고 그 건강한 터

전 위에서 새로운 생명과 세상을 창조해 가는 모든 일련의 무의식적,

의식적 몸과 마음의 행위일 터, 우리 교사와 부모와 선배들이 시대의

강압을 탓하며 언제까지나 나약하고 무책임하게 있을 수 없는 노릇

입니다. 우리들의 분별 있는 단호한 사랑이 우리 아이들과, 이 세상

을 마침내 살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글_ 최봉실

Page 10: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10·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새들마을학교, 이렇게 공부해요

연극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자세와 발성입니다. 이것

은 관객과 만나고 소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배

우가 어떤 자세로 연기하느냐에 따라 관객은 전혀 다

른 느낌을 받습니다. 기운을 뿜어 내는 이 자세를 연

기할 때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연기를 하는 시간

보다 몸의 습관대로 사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

다. 내 몸의 습관은 연기를 하면서 무심히 흘러나옵

니다. 그것도 아주 자주 말입니다.

습관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평소 대상에 집중하며

의도를 전달하는 몸동작이 습관이라면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한 장점이 되지만, 딴청을 피우며 대화하

는 습관은 단점이 되겠지요. 이 단점은 연기에서뿐 아

니라 일상에서도 고쳐야 할 나쁜 습관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할 때 내 마음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

다면 응당 내 몸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

여야만 합니다. 옆을 본다던지 손톱을 뜯는다던지,

내 것에만 집중한다면 상대는 이내 말하고 싶지 않아

집니다. 연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몰입하여 실제

로 바른 자세로 말하지 않으면 상대 배우에게 내 마

음과 의도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과 의도가

전달되지 않으면 엉뚱한 답변을 듣게 됩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바르게 말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연기에서는 신경 쓸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관객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상대 배우와 관객, 두 방향으로 뻗쳐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양쪽으로 기운이 반씩 나

눠지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 모두 100%의 기운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발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

실 우리가 나누는 일상의 대화는 눈과 입 모양, 몸동작, 손짓 발짓 모든 것을 동원하며 이야기하기 때문에 대화 속

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말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무대와 관중석의 괴

리는 상당합니다. 바른 기운을 전하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말이 빠르게 느껴집

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되 자신의 기운이 아닌, 소통의 기운을 뿜어 내며 몸을 제어하며 연기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 수업을 할 때는 자기 기질을 넘어 연기에 몰입해야 합니다. 평소엔 조용한 성격

이어도 연기를 할 때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자기 기질을 넘어 연기에 몰입하려는 친구들의

노력이 대견합니다. �

� 글_이동원·사진_ 이명구

자세를 바르게 발성을 정확하게5~8학년 연극 수업

어울림잔치에서 연극 중

Page 11: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11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새들마을학교, 이렇게 공부해요

휘모리장단을 다 배웠습니다. 하지만 수업은 여기부터

가 시작입니다. 서양 음악은 악보를 보며 연주하지만

풍물은 가락을 모두 외워 연주하기 때문에 그동안 배

운 가락을 다 외워야 합니다. 함께 연주하니 서로서로

맞추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그동안 수업하면서 가락을

외우고 서로를 보며 장단을 맞췄지만 쉽게 몸에 익지

는 않습니다. 무던히 연습하고 서로 돕는 것이 필요합

니다.

그동안 수업은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면 학생들은 따라

하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연습하며 부족한 점을 보

충했습니다. 가락을 다 외운 학생도 있고, 아직 못 외

운 학생도 있습니다. 제법 본새가 나는 친구도 있고 따

라 치는 것도 벅찬 친구가 있습니다. 학년도 다르고 소

질도 다르니 그것은 당연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쭉 배우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실력 차이가 나도

진도를 쭉 나갔지만, 큰 틀에서 이제 배워야 할 내용은

다 배웠기에 세부적인 것들을 세심하게 짚는 일이 남

았습니다.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면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

법은 무엇일까요. 조를 짜서 연습하기로 했습니다. 기

본적으로 아이들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할 때 서로 주고받는 기운이 힘을 나게 하는 것 같습

니다. 조 짜는 방법은 3~4학년끼리 1~2학년끼리 사

다리를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3~4학년과 1~2학년을

적절히 섞는 것이지요. 사다리는 타는 재미도 있고, 의도

하지 않게 조를 나누는 묘미도 있습니다. 조가 만들어지자 조별 연습을 합니다. 첫째 마루는 많이 반복해서 다들 잘

합니다. 둘째 마루는 많이 연습했어도 가락이 길어서 살짝 꼬이기 시작합니다. 셋째 마루는 가락은 단순한데 채발림

이 들어가기 때문에 까다롭습니다.

각 조마다 연습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처음부터 함께 치며 연습하는 조가 있고, 구음을 하며 가락을 외우고 연습하

는 조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장구를 칠 때 상당한 힘이 필요합니다. 장구가 몸보다 크기도 하고, 소리를 내기 위해

서 힘을 주고 계속해서 바른 자세로 앉아 팔을 반복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업할 때 아이들이 팔이 아

프다며 중간에 자주자주 쉬었습니다. 이 시간을 이용해 서로 주물러 주기도 하고 몸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지

요. 그래도 장구 치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재미있게 연습합니다.

그런데 조를 짜서 연습을 하니 어디서들 힘이 났는지 중간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처음에 서로 보조를 맞추

느라 어려워했는데 금세 방식을 맞추고는 신나 연습합니다. 동생들은 언니 오빠가 가르쳐 주니 더 재밌나 봅니다. 처

음보다 일취월장했습니다.� 글_윤희윤·사진_ 김민수·이명구

언니, 오빠가 좋아요!1~4학년 우리가락-장구

▲▲어울림잔치에서 장구 공연 중 ▲장구 수업하는 모습

Page 12: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12·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한반도 역대 통일국가, 통일을 내다보다

고려 왕조를 전복하고 유교의 나라 조선을 세우는 데 앞장선 정도

전.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최초의 법전인 <조선경국전>

을 썼던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써 “불씨 윤회의 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극심하게 미혹시키는 것에 대하여 분노를 느껴왔다”

며 불교를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정도전을 죽였던 이방원 태종 역

시도 불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유교 국가를 내세웠습니다.

정도전은 유교의 공자가 말했던 ‘인(仁)’의 사상과 인을 행하지 않

은 임금은 더 이상 임금이 아니고 그런 자를 민(民)은 끌어내릴 수

있다고 했던 맹자의 혁명적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철인이 다

스리는 나라를 꿈꿨던 플라톤처럼 유교적 성인이 다스리는 나라를

건설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정도전은 마지

막까지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스승이었던 이색을

숙청하자고 거듭 왕을 졸랐고,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은 자신의

능력과 야망을 펼치기 위해 형제들과 건국 동지였던 정도전을 죽이

고 왕이 되었습니다. 후에도 조금이라도 반역의 기미가 보이면 모

조리 숙청했으며, 태종의 아들이었던 세종과 그의 아내 역시 장인

의 숙청과 왕비의 폐위 위협으로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

야 했습니다. 또한 세종의 아들 문종이 빨리 죽자 뒤를 이어 즉위

한 어린 단종을 삼촌인 세조가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이

때 사육신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어린 단종을 지키려다 멸문

지화를 당합니다. 건국을 전후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너무 많은

피가 흘려진 것입니다. 유교에 의해 세워진 나라지만 초반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죽이고 죽이는 일은 거듭 자행됩니다.

이런 조선의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이들이 내세웠던 대표적인 사상

은 주자의 성리학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자학을 절대화하며 숭상

했고, 백성의 삶이 손상되는 건 아랑곳하지 않아도 주자 성리학이

손상되는 건 참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발생한 것이 바로 사문난적

이라는 것입니다. 유학에 대한 주자의 해석을 조금이라도 고치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정도전은 불교가 나라를 망친다고 그토록

성토하면서 유교만이 살 길이라 했지만 자신이 타인의 피를 희생으

로 삼아 내세웠던 이념과 사상이 결국 자신에게 피가 되어 돌아온

것, 그 사상이 백성의 삶을 파탄내는 동일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

을 어떻게 바라볼까 씁쓸해집니다.

조선 초기 피의 권력은 살인의 역사를 계속 이어갑니다. 연산군시

대의 무오사화, 갑자사화, 병인사화, 중종 때의 신사사화, 을사사

화. 거듭된 사화가 끝날 때쯤 백성의 삶은 이미 파탄이 나 있었고,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사회에 마침내 의적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백

성들이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명종실록>은 다음

과 같이 전합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력자들을 섬겨야 하므

로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

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왕의 인의 정치를 유교적 사상과 덕목을

갖춘 신하가 견제하고 이끌어가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던 정도전

의 정치이상, 곧 재상정치는 그 재상이 타락하는 사례를 조선 정치

전체를 통해 직면하게 됩니다. 이는 왕의 타락뿐 아니라 왕을 견제

해야 하는 자들의 타락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 앞에

서게 합니다. 조선은 그 견제의 역할이 권력을 사이에 두고, 혹은

믿고 있는 입장이 달라서 서로 죽이고 죽이느라 정작 이 땅 백성들

의 삶을 돌아보지 못했던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심

으로 백성들을 위했던 세종대왕이나 정조 등의 민본정치, 내팽겨

말과 행실의 분열로 세워진 조선새들마을학교는 이번 학기 역사 수업에서 한반도의 통일 국가를 중심으로 한국사를 공부합니다. 통일신라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역대 통일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분단되어 있는 우리가 어떤 나라를 어떻게 새롭게 창조

해 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번에 만난 시대는 조선입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 동상

Page 13: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13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한반도 역대 통일국가, 통일을 내다보다

쳐진 백성들의 삶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하고자 했던 실사구시

의 학파들(흔히 실학파라 불리는 이들)의 생을 바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긋

난 조선의 역사를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쓴 것은 불교가 어떻고 유교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

닙니다. 자신의 사상이나 입장을 절대시했을 때, 그리고 자신이 믿는 바를 구

현해 보고자 하는 야망으로 어떻게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지, 그것

의 말로가 어떤지 조선의 역사는 큰 반면교사가 아닐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시대 무엇이 필요한지를 개진하되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수많은 분열과 파괴만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입장과 주장으로는 그 입장과 주장

이 그리고 있는 이상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최선의 걸음을 걷는 것이고, 이것이 지금 최선의 걸음인 것

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그 이상은 조금씩조금씩 구현되어 갈 수 있는 게 아닐

까 합니다.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이상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방식으로 그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고, 정확히 그 이상에 반하는 그

방식으로 자신은 제거되는 입장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말만 그럴 듯하게 하고 정작 자신의 삶으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그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그러한 이율배반의 자세는 한 뜻으로 힘을

모아야 하는 모든 이들을 혼란시키고 분열시킵니다. 즉, 자신의 말에 경도되

어 자신의 뜻을 따르게 된 사람들이 결국 그 사람이 보여준 정반대의 삶의

결과를 지지하게 만든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 전

에 없이 하나 되지 못할 것 같은 이 한반도의 현실에서 오직 필요한 것은 삶

으로 이상을 살아내는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박한 삶과 실천이 아닐까

합니다.

글_ 최봉실

광화문 광장에서, 이순신 동상

마지막 수업 날, 수업을 돌아보며

Page 14: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14·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새들마을학교 특별 청소년신문 <우리>는 네 차례에 걸쳐 인근에 있는 대안교육문화 현장을 찾아 나섭니다. 척박한 교육의 현실, 문화의 현실 속에서도

대안적인 교육과 문화를 꿈꾸고 도전하며 새로운 삶을 창조해 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여기서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새

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지, 호기심 가득 품고 만나고자 합니다. 12월에는 서울시 과천에 있는 대안학교 ‘중등무지개학교’를 다녀왔습니다.

대안교육문화탐방 4차는 과천에 있는 중등무지개학교로 갔다. 무

지개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는 중학교

로 갔다.

무지개학교란 이름의 뜻은 ‘무지개가 자신의 아름다운 일곱 빛깔

을 내듯이 아이들도 자신들의 개성을 잘 발휘할 수 있게 되는 학교’

다. 2011년 학생 16명으로 개교를 했고 지금은 45명이다. 우리 학

교와 똑같이 개교했는데도 학생이 많은 이유는 10년 전에 만들어

진 초등무지개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이 대부분 중등무지개학교

로 왔기 때문이다.

무지개학교는 장애인도 들어올 수 있어 지금 장애인 학생이 3명 있

다. 근데 가끔 장애인 학생이 화가 나서 자기 머리도 때리고 다른

사람도 때릴 때가 있다. 그때는 자기 머리를 때리는 건 뭐라고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못하게 한다. 장애인 학생들도 비장

애인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따로 장애인 학생들만 하

기도 한다. 장애인 학생들만 따로 하는 수업은 특별교사가 담당하

는데 시장 가는 거, 버스 타는 거, 숫자 세는 거, 농사, 수영 등의

수업을 하고 있다.

이 학교가 장애인학생과 비장애학생을 같이 교육시키는 이유는 이

렇다. 조금 다르더라도 우리는 같다는 생각에서다. 참 신기하다. 아

니 존경스럽다고 할까나. 현실은 장애인을 외면하고 피한다. 이러

한 현실에서 무지개학교는 오히려 그들과 더욱 어울리고 즐기며 장

애인 학생이 어려운 고난을 풀 수 있게 교육을 시킨다. 그저 대단하

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나마저 장애인을 보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외면

했다. 사실대로 말해서 다리, 팔이 불편하고 말도 이상하게 하는데

누가 그와 어울리는가. 우리 사회의 흔한 그런 풍경을 무지개학교

가 깼다고 봐야 하나. 그들은 장애인들에게 손을 뻗어 준 장본인인

셈이다. 나는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대단하게 생각되고, 또 장애인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들 따름이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을 내게 심어 주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

는 것은 오직 생각이라는 것. 또한 ‘대안학교’라는 곳이 ‘이러한 교

육을 펼칩니다’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

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무지개학교는 점심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지만 게임은 금한

다. 음악 듣는 것은 쉬는 시간에도 허용한다. 참고로 점심시간은 1

시간이다. 비장애인 학생들이 장애인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장애인 인식 개선 수업이 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 이 학교는 열려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수교과는

우리말우리글, 수학, 과학, 평화교육, 체육, 사회가 있다. 여행은

개교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총 10번 갔다. 다양한 곳을 가 봤지만

지금으로선 비용이 모자라 해외는 한 번도 안 가 봤다.

점심밥은 주방이 너무 작아서 밥을 못 만드는 사정이라 도시락을

싸 온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먹는다고 했다. 귀찮게 생각할 수도 있

지만 옛날 엄마, 아빠가 학교를 다니실 때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던

걸 생각해 보면 재밌는 경험이고 추억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등하교 시간은 8시45분, 4시이다. 동아리는 화요일, 수요일만 한

다. 무지개학교에서는 영화, 종이 건축 등의 다양한 수업들이 있

다. 영화 수업은 직접 영화를 만들고 종이 수업은 종이 낭비에 대

해 배우기도 하고 직접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 건축 수업 때는 건

축에 대해 배워서 직접 건물 모형을 만든다. 간식은 학생들이 선

생님에게 애교 부려서 구하고 청소는 학교 오자마자 15분 동안 9

시까지 한다.

장소는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고 밤이어서인지 벽지 색깔 때문인

지 내부 분위기가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샛별선생님이 잘 맞아주

시고 이야기를 잘 들려 주셔서 고마웠다.

글_ 양하늘(10세)·명다소(10세)·김지호(15세)·석현수(15세)

대안교육문화 현장을 찾아서 | ‘중등무지개학교’를 다녀오다

중등무지개학교를 설명하겠습니다

Page 15: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15

대안교육문화 현장을 찾아서 | ‘중등무지개학교’를 다녀오다

이해와 설득의 중요성을 배웠어요

우리는 과천에 있는 중등무지개학교에 갔다 왔다. 과천 무지개학교에 장애인 학생들이 3명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스트레스를 받으

면 자신의 머리를 벽에 부딪치고 혹은 친구를 때리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나는 그러면 팔을 잡고 “하지 마. 그건 못 된 짓이야”라고 말한다. 당연히 저기 무지개학교 학생들도 그러겠지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

다. 장애인 친구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러면 안 돼” 하며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나는 이 형 누나들에게 깊

은 감명을 받았다. 자신들도 처음엔 거부감을 느꼈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도 이전에 제일초등학교라는 학교에 다녔을 때 정신지체장애인이 있었는데 그 친구랑 그럭저럭 나랑 잘 지냈다. 무지개학교에 다녀오

고 그런 장애인 친구들을 생각하니 아무리 정신지체장애라도 마음 깊은 곳엔 자신들의 모습에 화가 나고 슬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에게는 많은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놓지 못한 짓, 나쁜 짓을 할 때 무조건 화만 내지 말고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을 하며 자신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려면 많이 노력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글_ 명권영(12세)

Page 16: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16·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대안교육문화 현장을 찾아서 | ‘산울어린이학교’를 다녀오다

프로그램, 숙소, 교통편 모두 기획·진행,

살림수업 한길로

무지개학교는 과천에 위치해 있는 대안학교이다. 건물이 임시라 낡고 부실해 보이지만 그건

새로운 건물로 이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지개학교는 초등, 중등, 고등 과정까지 있다. 현

재는 중3 과정까지 있는 상태이다. 초등무지개학교는 과천 문현동에 위치해 있고, 중등은

과천 갈현동에 있다. 오늘 우리가 간 곳이다.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더 잘 이

해하고 함께 도울 수 있도록 통합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무지개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을 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낸다. 동아리도 학생들이 만들

었고, 살림수업의 한길로(여행반)에서는 프로그램, 숙소, 여행숙소, 교통편 등등을 모두 학

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한다. 교사들은 그저 돕고 안내해 주는 역할이다. 학생들의 ‘홀로서기’

힘이 길러질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것을 보고 약간

부산스럽거나 어수선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진행되는 것 같아서 신기

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영상에서 보인 친구들은 정말 해맑아 보였다. 여유로와 보이고, 재

밌을 것 같았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면 뭔가 더 숨겨진 공간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건물에 학생들

이 가득 차 있으면 또 어떤 분위기를 자아낼지 궁금해진다.

글_ 이영인(15세)

대안교육문화 현장을 찾아서 | ‘중등무지개학교’를 다녀오다

‘자유로우면서 통괄하는 학교’. 대안교육문화탐방 마지막 시간, 과천 중등무지개학교를 다녀와서 든 생

각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즐겁기도 하고 많이 아쉽기도 했다. 중등무지개학교에 갔는데도 초

등학생인 하늘이, 진경이, 시원이, 권영이, 다소, 의진이가 우리보다(?) 잘 들어주어서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탐방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학생의 자유’다. 무지개학교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가고 학생

전체가 직접 여행 계획을 세운다. 학생들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일 아닌가?! 또 점심시간에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고(게임은 제외) 3층에 있는 도서관에는 만화책도 꽂혀 있다. 이토록 남이 보면 자유로워 보

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욕을 써도 되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게 한다. 욕을 많이 하면 남

아서 청소를 하거나 욕을 쓰지 말자는 캠패인을 맡아 진행하게 하는 것이다.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도

확인을 받은 후에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자유란 건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것,

그게 진짜 자유이다. 이 학교에서는 그것을 가르치는 것 같다. 자유로우며 절제하는 힘. 그걸 기르게 하는 것 같다.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자

유로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글_ 구한글(15세)

욕 쓰지 말자는 캠페인, 누가 진행할까요

중등무지개학교, 욕 고발 기록

▲▲교실을 둘러보다 ▲여행반 지도

Page 17: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17

대안교육문화 현장을 찾아서 | ‘중등무지개학교’를 다녀오다

12월 11일 수요일, 새들마을학교 ‘대안교육·문화탐방 글쓰기학교’

의 마지막 탐방지는 과천의 중등무지개학교입니다. 이날 3,4학년

친구들과 뿌리별학당 모든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다 함께 방문해

서 더 의미가 있었지요. 함께 무지개마을학교로 가는 친구들의 얼

굴에 즐거운 웃음이 가득합니다.

중등무지개학교는 큰 길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따라 들

어가니 주변에 논밭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

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새들마을학교에서 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무지개학교를

만나니 동네에서 좋은 친구를 알게 된 기분이었지요.

중등무지개학교는 우리 학교와 같은 해인 2011년에 개교했습니

다. 2003년 무지개교육마을에서 초등무지개학교를 설립 한 후 그

이후 걸음에서 자연스럽게 세워진 것입니다. 무지개교육마을은 대

안학교의 교육내용이 일상의 삶속에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즉 대안

적인 교육과 대안적인 삶을 일치시키려는 지향과 가치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 상생하는 삶 속에서 사랑과

평화를 느끼고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소외층과도 함

께 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지개학교는 학교의 지향과 가치를 ‘살림수업’과 ‘장

애-비장애 통합’수업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살림수업은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일 년의 배움의 과정을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설계

하고, 배움을 다양한 영역으로 펼쳐 나가면서 일정 정도의 성과물

을 내고, 그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수업입니다. 살림수업은 연령,

장애-비장애, 다양한 교과를 통합하는 것을 가장 큰 특징이자 장

점으로 꼽습니다. 현재 건축을 주제로 공부하는 <공터반>과 종이

를 주제로 공부하는 <종이반>, 여행을 주제로 공부하는 <한길로반

>이 있고 학교를 설명해 주신 샛별 선생님은 <한길로반>의 교사로

친구들과 만나고 계시지요. 한 해 동안 친구들과 짧게는 하루 여

행을 포함해서 총 열 번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십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이었지요.

글_ 김민수

살림수업·통합수업으로 학교 가치 구현해요

빛깔로 보는 무지개학교‘어? 여기가 학굔가?’. 문을 열자 학교로 갈 수 있는 통로(계단)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들리는 낯선 소리와 광경이 순순한 빛깔을 발산했다.

우리가 들어가자 부끄러워하며 방에 들어가 숨고 “우리를 왜 취재를 해요?”,“우리가 뭔데요?” 등등 들리는 소리가 재밌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 선생님은 샛별선생님이셨다. 연한 하늘 빛깔이 났다. 샛별선생님도 학생들처럼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는지 하늘에

노을 진 것같이 얼굴이 붉어지셨다. 8시 45분부터 4시까지 학교 선생님으로서 진을 다 빼셨는지 약간 힘들어 보이기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해 주시고 간식도 준비해 주셔서 감사했다.

학교의 색깔은 회색 빛깔이었다. 학생들이 대부분 가고 없어서인지 약간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제 빨간색, 주황색, 노랑색, 초록색, 파란

색, 남색, 보라색 빛깔 학생들이 모이면 오로라 색깔로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글_양의진(13세)

중등무지개학교에서

Page 18: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18·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04 05

우리가 청소년이었을 때, 우리는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세상을 판단하며 각자의 가치관을 세워 갔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마음에만 담고 있었답니다.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고, 이야기를 제대로 해 줄 사람도 없었지요.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격

려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만 꼭꼭 우리 자신의 생각을 묻어 둬야 했답니다.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너의 목

소리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너의 목소리를, 너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을요. 올 여름 SBS에서 방영

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제목을 빌려 옵니다.

너 의 목 소리가 들 려 | 애정감사

지난 세 차례의 신문을 통해 외모에 대해, 소통에 대해, 그리고 욕구에 대해 청소년들의 불만을 들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

에 불만만 가득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불만은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불만이었던 거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감사한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모든 불만의 해소는 받고 있는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

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번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13년~15년 살면서 깊은 사랑과 위함의 마음을 느꼈던 때 다섯 가지

정도를 기억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더니 결국 이런 말이 튀어나오네요.

현수 1.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했을 때. 내가 아무리 싫어했던 사람이라도, 혹은 나

를 싫어한 사람이라도, 그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그가 나에게 아쉬움

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를 싫어할 거라 생각했지만 나에 대한 깊

은 애정과 위함이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2. 누군가와 추억을 기억할 때. 나와 추억을 함께했던 이와 같이 추억을 되살릴

때, 그런 추억을 만들어 준 그 사람이 고맙게 느껴졌다.

3.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보여주었을 때. 노래나 춤 등을 끝까지 기뻐하고 즐

거워하며 봐 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마웠다.

4. 누군가가 내 생각을 해 주었을 때. 큰 게 아니더라도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

를 했을 때, 같이 고민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마웠다.

5. 나를 보고 웃어 주는 것. 내가 누군가를 웃기려고 할 때 그것을 보고 웃어

주는 것. 특히 친구들이 보고 웃어 주는 것을 보면 정말 고맙다.

한글1. 10살 때 한 행사에 참여했다가 이름표와 점심 티켓을 챙기지 못했다. 밥도

못 먹고 울고 있을 때 아는 어떤 분이 지나가다 보시고 “한글아, 뭐 해. 밥 먹

으로 가자” 했을 때 너무 감사했다.

2. 2012년 교회 친구 지인이가 나에게 애니매이션 <은혼>과 웹툰 <마술사>를

추천해 주었다. 처음엔 그냥 그랬지만 <은혼>을 보고 너무너무 좋아하게 되

었다. 지인이가 너무 고마웠다.

3.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지하철에 손가락이 끼어 아파하고 있는데 어떤 누나

가 응급처치(?)를 해 줬다. 그때 나의 눈물 속으로 사라지는 누나의 뒷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같이 떠오른다.

4. 초등학교 5학년 때 하안북초등학교에서 서면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애들

하고 어색어색했다. 그런데 나를 불러주고 초대해 준 하안북초등학교 친구

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당신들이라서 감사합니다

“쓸 게 너무 많아 뭐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이영인

밤새 앓고 아플 때

잠도 못 주무시고 간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이 너무 올라서 어지러울 때

나를 업고 달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1학년 때 사고 치고 다닌 것

뒷수습하고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싸웠을 때 먼저 다가와서

사과해 준 친구들, 감사합니다

잘못한 것 다 용서해 주고

다시 친하게 지내 준 친구들

감사합니다

당신들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엄마라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아빠라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친구라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선생님이라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오빠라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동생이라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이라서 감사합니다

Page 19: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19

너 의 목 소리가 들 려 | 애정감사

권진1. 내가 손가락을 크게 다친 그날 저녁, 엄마아빠가 나

를 크게 혼내실 줄 알았는데 피자를 사주셨다. 그때 부모님께 정말 감사했다. 2. NFC에 초대해 주신 신철순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3. 어떤 친구에게 미안한 일을 했는데, 그 다음에도 그 친구가 잘 대해 줄 때 고마웠다. 4. <코난>을 올려 준 블로거에게 감사하다. 5. 내가 아플 때 동생들이 완전 잘 해 줬다. 고마웠다.

고운1. 아빠가 학교 준비물을 말없이 가져다 놓아 주

셨을 때. 2. 내가 아프신 할아버지를 위해서 즐거운 게임을

함께 준비했는데 아프신 몸으로도 즐겁게 즐겨 주신 것.

3. 부흥회나 비전예배에서 큰 소리로 같이 울고 나를 위해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붙잡고 진심으로 기도해 줬을 때.4. 내가 혼자서 교회에 버스 타고 멀리 다니는데

볼 때마다 교회 분들이 고생한다고 해 주시는 게 참 고맙다.

5. 할아버지 아프실 때, 할아버지 돌보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권영1.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낳아 주신 것이 고마워요.

2. 사람들이 있는 것에 감사해요.

3. 새들마을학교를 만나 다니며 여러 명의 사람들과 만나게 해

준 게 감사해요.

4. 하나님이 저를 세상에 파견(?)해 주신 것에 감사해요.

5. 나 자신이 있는 것에 감사해요.

6. 의식주가 있는 것에 감사해요.

7. 어머니 아버지가 집안 일 등등을 하시면서 나를 돌봐 주실 때

위함을 느꼈어요.

8. 세상이 있는 것이 감사해요.

9.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게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요. 그리고

그걸 용서해 주는 것에 감사해요.

지호 1. 6학년 어느 겨울, 정글짐에서 놀다 미끄러져 엉덩이를

땅에 부딪히면서 진짜 아팠다. 그런데 그 모습이 웃긴

바람에 몰려든 아이들이 다 웃었다. 그때 한 친구가 사

태를 파악하고 급히 보건실로 데려다 주었다. 그 친구

가 진짜 고마웠다.

2. 제주도 여행을 처음 갔을 때 너무 즐겁고 재미난 기억

들이 가득해서 추억을 남겨 준 가족이 고맙다.

3. 중 1때 나의 가장 친했던 벗. 같이 놀고 여러 얘기를 나

누며 말동무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

4. 7살 때 살던 아파트 옆집 할머니께서 엄마아빠 일 나가

시고 어린 동생이 집안에만 있으니 놀이터에서 놀 수

있도록 돌봐주시며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했다.

5. 둘째 고모와 둘째 큰아빠께서 우리가 가면 항상 잘 챙

겨 주시고 너무 잘해 주셔서 고마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항상 감사하다.

의진1. 새들마을학교를 만드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새들

마을학교 덕분에 너무 즐겁고 행복하기에.

2. 힘들 때 같이 있어 주시고 얘기해 주시고 미소 지어

주시는 엄마. 감사한 게 너무 많다. 그래서 그런지 힘

들 때 엄마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3. 나를 즐겁게 하는 아빠, 권진이 오빠, 하늘이, 엄

마, 공동체 이모삼촌들. 특히 귀여운 하늘이에게

감사하다.

4. 나를 유연하게 해 주신 이전 학교의 김은영 선생님

께 감사하다. 그때 택견을 배울 때 다리를 처음 찢

었다. 그래서 지금 피겨도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5. 친구 같은 아빠가 감사하다. 옛날 얘기도 많이 해

주시고 놀아 주시고. 감사한 게 역시 너무 많다.

Page 20: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20·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담담(淡談)덤덤 | 창작 이야기

내 이름은 솔. 나는 세상의 시선이 두렵

다. 나는 내가 밉다. 그리고 이 병을 물

려준 엄마도 밉다. 난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시작장애인인 걸

알지 못한다. 각막이 손상된 게 아니라

눈 안 쪽에 신경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솔, 다 왔어. 내리자.”

나는 다른 애들보다 일찍, 담임인 아빠

와 차를 타고 등교한다.

“…….”

“안 내릴 거야?”

“내릴게.”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하는 솔을 보며

아빠는 솔을 잡아 준다. 둘이 같이 교실

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아

빠는 솔에게 책을 쥐어 줬다. 그리고는

교무실로 갔다. 아이들이 속속들이 등

교했다. 그리고 아빠가 들어왔다.

“쌤!”

“꺄아아악~”

아빠가 그렇게 잘 생겼나? 어떤 애가 솔 옆으로 와 어깨에 손을 얹

었다.

“야, 넌 좋겠다. 꽃미남 아빠를 둬서.”

“…….”

“자. 다들 수학책 67쪽을 펴세요.”

아빠는 아이들 몇이 솔 주위에 모여든 것을 보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과학, 국어, 사회, 아니 수학!’

솔은 책 겉표지 위에 조그맣게 붙여 있는 점자를 읽었다. 그리고 전

날 아빠가 접어 준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앞머리로 눈을 가린 후

책을 보는 척했다.

“자, 다음 페이지!”

아빠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때마다 솔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솔은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란 걸 숨기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 반장.”

반장이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섰다.

“차렷! 열중쉬엇! 차렷! 샘께 인사!”

“감사합니다!”

의자 끄는 소리. 아빠도 교실을 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솔은 가만히 책을 보는 척했다.

“야! 솔방울! 안 가냐? 오늘 주운이가 떡튀순 쏜대! 아~너, 알레르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도시락만 먹지?”

“…….”

‘아 놔. 선우 저 시키.’

“진짜 안 가냐? 튀김도 못 먹고, 쯧쯧”

‘저 자식 입 좀 닥치지.’

“선우, 이제 가니?”

‘아빠다.’

“네, 샘. 안녕히 계세요.”

드르륵. 문이 열린다.

“솔아.”

“…….”

“보충 안 해?”

“할게.”

뒤적, 뒤적.

“야, 백선우. 뭐 하냐?”

“핸폰. 학교에 놓고 왔나 봐.”

선우는 분식집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맸다.

“가게? PC방 안 가냐?”

비밀

Page 21: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21

담담(淡談)덤덤 | 창작 이야기

“아니, 가 있어!”

선우는 분식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로 달렸다. 3분 만에 학교

에 도착한 선우는 잠시 숨을 고르고 교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은솔!”

교실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샘인가?’

“그만 좀 해! 아니 눈도

안 보이는 나 따위한테

대체 왜 이런 걸 가르치

는 거야?”

선우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이 멈춘 이

유를 생각했다. 아마.,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솔의 목소리가 들려서

는 아닌 것 같았다.

‘역시, 눈인가?’

“솔아,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모든 걸 다 포기할 수는 없어. 헬렌 켈

러는….”

“또야? 그 지긋지긋한 헬런켈러는 좀 그만 해!”

“흠. 음. 으으음.”

선우는 음악을 듣는 척을 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아빠와 솔은 순간

적으로 모든 행동이 정지됐다.

“어? 샘? 솔? 뭐 하세요?”

솔은 불안한지 자리에 주저앉고는 앞머리를 내려 눈을 가렸다.

“하하하. 선우? 넌 어쩐 일이냐?”

아빠의 말에는 자신감이 부족했지만 선우의 말에는 자신감이 좔좔

흘렀다.

“아. 핸폰을 학교에 놓고 가서요. 그러는 솔은 뭐 하고 있었어요? 아

빠와의 사랑이 넘치는 대화?”

“어? 어. 뭐. 그렇지 뭐.”

선우는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교실을 빠져나갔다. 솔은 그

제야 긴장이 풀린 듯, 책상에 엎드렸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등교하는 솔은 아빠의 회의 때문에 혼자 교실

로 들어가 더듬더듬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그때 솔의 어깨에 손이

하나 얹어졌다.

“야, 솔.”

백선우였다.

“너, 눈.”

솔은 의자에 앉았다.

“삐꾸냐?”

솔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손이 떨리는 걸 어찌하지 못했다.

“참 대단하다. 그럼 지금까지 우릴 속인 거냐? 은솔, 브라보. 짝짝짝.”

선우의 박수소리가 솔의 귀 깊숙히 박혔다. 선우가 갑자기 박수를 멈

췄다. 짝!

“아, 아닌가? 뭐, 눈이 저러니 그 정도 연기는 해야지.”

뚝. 솔의 눈물이 책상을 적셨다.

“어? 솔 우냐? 연기? 진짜? 야,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냐. 진짜 존경

할 만하다. 아니 존경한다.”

다시 선우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솔은 그 소리를 외면하려고 머리를

책상에 깊이 쑤셔 넣었다.

다음 날, 솔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우는 점심시간 때 조금 늦게

급식실을 가기 위해 교실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솔의 책상

을 쳤는지 솔의 교과서가 떨어져 있었다. 선우는 교과서에 붙어 있

는 점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교과서를 들어 제자리에 넣어 주었다.

선우는 하루 종일 실체를 알 수 없는 생각에 자석처럼 붙들려 있었

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보다도, 그 집착되어 있는 상황에 문득문

득 놀랄 정도였다.

“네?”

선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갑자기 정신이 팍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해 줄까? 너는 솔이랑 한팀이니 발표 준비해.”

그렇게 선우는 솔의 반 친구들 중 처음으로 솔의 집에 갔다. 솔의 집

은 전원주택이고 의외로 컸다.

띵동~

인터폰을 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떤 여성의 소리가 인터폰에서 흘러 나왔다.

Page 22: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22·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어~ 여보. 다녀왔어요? 일찍 왔네요. 오늘….”

“아, 아니. 솔이 같은 반 친군데요. 솔한테 알려줘야 하는 게….”

“아. 솔이 같은 반 친구? 들어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열렸다.

“아, 안녕하세요!”

솔의 어머니는 선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 안녕?”

하지만 눈은 선우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솔은 2층에 있어.”

“아….”

선우는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피

아노 소리가 선우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솔의 목소리가 함께 들

려오기 시작했다. 솔의 목소리가 선우를 문앞으로 이끌었다.

문고리는 선우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었다. 선우는 차마 들어가지는

못한 채 문턱에 서서 노래를 들었다. 솔의 목소리가 떨려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솔은 울기 시작했다. 선우는 조용히 집을 빠져

나왔다.

다음 날.

“야! 은솔! 학교 안 가냐?”

솔의 집에 선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솔의 엄마는 입안 가득 미

소를 머금고 있었다.

“솔아. 어제 왔던 반 친구인가 본데?”

“백선우가 우리 집에?”

솔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야. 선우가 데리러도 오고. 빨리 가자.”

아빠가 즐겁게 말했다.

잠시 후, 솔과 아빠는 집밖을 나왔다. 아빠는 삐징 하고 문을 열었다.

“아, 선생님. 오늘은 제가 솔이랑 같이 갈게요.”

덥석!!!

“솔, 가자!”

선우가 솔의 손을 잡아끌었다.

글_ 양권진(15세)·김고운(14세), 그림_ 이영인(15세)

Page 23: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23

담담(淡談)덤덤 | 이 노래를 들어 봐!

미국 팝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Where is the Love?'. 이 노래는 사람들에게서 사라진 따뜻함과 인정, 함께 더불어 살아

가는 차별 없는 세상을 애타게 그리는 곡입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박력 있는 분위기가 좋은 노래지만 가사에 이 세상의 진실이 잘 담겨 있는

듯합니다. 이 곡은 봉실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곡인데, 그 뒤로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친구들도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강한 리듬과

랩이 가슴을 뛰게 하는 곡입니다. 가사가 좀 길지만 한 대목 한 대목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가사가 길어 해석만 실어요)

진실을 알지 못하면 사랑을 알지 못해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Where is the Love?’

엄마, 대체 뭐가 잘못된 거죠. 사람들은 다들 엄마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요. 세상은 온통 드라마에 중독된 것 같아요. 뭔가 극적인 것만

을 바라는 것 같아. 우리는 저 바다 너머 테러리즘을 멈추려 하고 있

지만, 테러리스트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걸요. 바로 미국에 말이죠.

대단한 CIA, 갱단과 KKK단들요. 그대의 진실한 사랑이 있어도 한편

으로 차별하는 마음을 남겨둔다면, 그 미움이 그대를 사로잡히게

할 거예요. 당신은 지금 광기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 광기가 정확히

화가 작동하는 방식이에요. 우린 사랑을 해야 해요, 그게 우릴 안정

시킬 거예요. 정신을 가다듬고 명상에 잠겨 봐요. 그리고 당신의 영

혼을 맡겨 봐요, 사랑에 말이죠.

사람들은 죽이고 죽어 가고 있고, 아이들은 다치고 여자들은 울부

짓고 있어요. 당신이 설파하는 것을 실천할 건가요. 오른쪽 뺨을 맞

으면 왼쪽 뺨을 돌려댈 건가요? 오 주여, 우릴 도와주세요. 하늘로

부터 당신이 지침을 내려 주세요. 사람들은 내게 끊임없이 의문을

갖게 해요. 사랑이 어디 있는 걸까 하고요.

모든 게 달라졌어요. 옛것은 모두 변했어요. 새로운 세상은 이상해

요. 세상이 미친 걸까요? 사랑과 평화가 그토록 강하다면, 왜 사랑

은 보이지 않는지. 국가들은 폭탄을 떨어뜨리고, 화학가스가 어린

아이들의 폐를 채우고 있어요.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또 하나의

젊음이 죽어 가요. 자, 자신에게 물어봐요. 사랑이 정말 사라진 건가

요? 나 자신에게 물어보죠. 대체 뭐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고 옳

지 않은 결정들을 내리고 오직 제 몫을 챙기려고만 하죠. 서로를 존

중하지 않고, 형제들을 부정하지요. 전쟁은 계속되는데 그 이유는

감춰져 있고, 진실은 계속 비밀에 부쳐지고 영원히 덮어져요. 만약

당신이 절대 진실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절대 사랑이 뭔지도 모

를 거예요. 진실은 어디 있죠? 사랑은 어디 있죠?

세상의 무게가 무겁게 내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 갈

수록 사람들은 더욱 차가워져 가고, 우리 대부분이 그저 돈 벌기에

만 몰두해요. 이기심이 우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었고, 미디어도

항상 우리에게 거짓만을 보여줘요.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리의 주요

한 기준이 되어 박테리아보다 빠르게 젊은이들의 정신을 전염시키

고 있어요. 어린 아이들은 영화에 나오는 것을 흉내 내고 인간성의

가치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평등과 공평함은 어떻게 된 거

죠? 우린 사랑 대신 증오를 퍼뜨리고 다니고, 부족한 이해심은 우리

를 일치되지 못하게 해요. 내가 때때로 마음이 슬퍼지는 이유는 바

로 그 때문이죠. 마음이 쳐지는 이유예요. 그게 당연할 수밖에 없

죠. 하지만 난 사랑이 찾아질 때까지 내 믿음을 지킬 거예요. 자, 이

제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오 주여, 우릴

도와주세요. 하늘에서부터 인도해 주세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의문케 합니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나와 같이 노래해요. 하나의

사랑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한 사랑

이에요. 무언가가 잘못되었을 때, 세상 일이 어긋날 때,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요.

가사를 읽으면서 공감이 되셨나요? 당연하죠. 지금 이 세상은 돈밖에 모르는 절박한 세상이니까요. 사실대로 이야기해서 우리는 어쩔 수가

없지요. 돈이 있어야 먹고 사고 살지요. 우리가 원치 않았지만 저절로 그런 세상이 된 거지요. 하지만 이 노래는 그것을 꼭 짚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돈과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지요. 손에 침 묻히며 돈 세는 것보다 서로

따뜻한 정과 사랑을 나누는 것 말이죠. 사람들은 돈이 삶의 기본적인 요소라 하지만 저는 사랑으로 삶의 기본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_ 석현수(15세)

Page 24: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24·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8거리 한쪽 찻길 끝에 자리잡은 빌라, 빌라트 하호. 땅의 모양대로 지어진 건물은 길 쪽이 좁고 산 쪽이 넓다. 그런데 길 쪽으로 난 이

좁은 면에 창문 세 개가 그려져 있다. 그것도 반쯤 열린, 여닫이 창이다.

‘하호’라는 이름이 주는 어감이 경쾌해서인지 처음 이 건물에 그려진 창문 세 개를 봤을 땐 유쾌한 마음에 속으로 ‘하하호호’ 웃었다. 그

런데 보면 볼수록 ‘여기에 아무것도 안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혹은 ‘여기에 창문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

각이 들면서 정이 간다.

만약 이 건물에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았다면 이 건물 앞을 지나도 별 다른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골목 끝에 자리한 네모반듯

하지 않은 건물로만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창이 아닌 꽃이 그려졌다면 이 건물은 ‘꽃 건물’이 됐을 것이다. 나무가 그려졌다면 ‘나무 건

물’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창문’이 그려졌으니 이 건물은 뭐든 될 수 있게 됐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창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 것만 같기도 하고, 파란색으로 비치는 것이 꼭 그 너머에 바다가 있을 것만도 같다.

저절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창이 그려진 벽 너머에 사는 사람들은 창 없는 벽을 보고도 ‘이 벽엔 창이 있지’ 생

각하진 않을까.

창은 외부와 내부를 이어 주는 통로다. 이 통로를 통해 공간은 외부로, 내부로 열리게 된다. 이 건물에 그려진 창문은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활짝 열린 창문 안 세상으로 초청하는 것만 같다. 네모반듯하지 않은 건물의 모양새도 창문 그림과 함께 꼭 그랬어야만 했

던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한 가지 걱정은 된다. 요즘같이 추운 때에는 저 창을 닫아야 난방비도 아낄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글·사진_ 이밀알

일상이 예술이다 | 그림창문

예술의 예(藝)는 ‘재주’를 의미하지만, ‘심다’란 뜻이 있습니다. 이 재주라는 것이 땅에 벼를 심는, 생명을 심는 절박함과 수고를 들일 줄 아는

그런 재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藝는 ‘극진하다’는 뜻을 가진답니다. 지금 여기, 우리 곁에서 아주 작지만 소중한 손길로 우리의 일상을 아

름답게 빚어 주며 행복어린 미소 짓게 하는 예술들을 만납니다. 우리 삶에서 그런 예술들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고 그런 예술이 피어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하호호 창문

Page 25: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사랑하는 우리·25

지난 1월 3일, 새들마을학교 2013학년도 가을겨울학기를 마무리하는 날, 빙 둘러앉아 어울림잔치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다시

그때의 감동이 새록새록 솟아났습니다. 잔치 전날까지도, 불안한 대목들이 많이 있어서 내심 모두가 걱정했더랬지요. 그때 기분 상

한 마음으로, 혹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져 있는 한, 우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

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선생님도, 제일 어린 친구까지도 마찬가지였지요. 그 사연이 있어 잔치를 멋지게 마치고, 많은 감동

어린 화답을 받으며 그 추억을 되새기는 자리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으로 충만했습니다.

영상을 다 본 후, 함께 좋았던 것, 돌아보게 되는 일들을 나누었지요. 고민하고 걱정한 만큼 기쁨이 컸습니다. 단연 태권무가 최고였

고, 장구는 연습할 땐 제일 걱정 없던 것이었는데, 실전에서 친구들이 실수를 하고 너무 빨랐던 것을 다 아쉬워했지요. 하지만 축하

공연 해 주셨던 라움무용학원 배승채 선생님이 무슨 가락을 연주하고 있는지 아이들이 다 알아본 것들은 무척 대견했습니다. 제일

걱정이었던 연극은 유쾌한 웃음과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주었지요. 평소에 고쳐야 할 부분을 잘 못 받아들이다 영상을 보고 자신

을 잘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무대 뒷면 약간 벌어진 커텐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장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무

엇보다 신나고 즐거웠던 기억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도 끝이 없지요.

소감을 닫으려던 찰나, 밀알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잔치했던 장소가 원래는 아주 많이 지저분했거든요. 우리는 몸만 가서 준비

한 공연만 했지만, 지저분했던 장소를 말끔히 청소하고 준비해 주시고, 우리

가 빠져 나간 자리를 다시 깨끗이 정돈해 주시고 사진도 찍어 주시고, 그리

고 잔치 끝나고 계속해서 영상 편집 수고해 주셨던 분들, 그 모든 마을의 이

모삼촌들에게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

게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우리를 응원하고 축하해 주

러 오신 부모님들, 친지들, 그 모든 분들이 우리를 지켜봐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도와 주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에만 빠져 있던 마음을 딱 멈춰 세우고, 우리

를 둘러싸고 있는 이 풍요로운 관계의 은총을 깊이 돌아보았습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눈부신 모습은, 어린이 동화에만 나

오는 이야기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천사를 알아보는 눈이 점

점 더 뜨이게 되면, 혹 우리도 천사가 된다는 그런 전설이 어디 있는

건 아닐까요.

글_ 최봉실·사진_ 이명구

아름다운 발자취 | 천사가 따로 있나! 지내다�보면�주변에�‘와,�저런�분이�없으면�어떨까.�우리가�살아가는데�참�고마운�분이구나.�혹시�하늘에서�보

내진�천사가�아닐까?’�이렇게�생각되는�분이�있습니다.�공기처럼�우리�곁에�있지만,�그리고�그런�분이�없다면�

우리�삶이�어떻게�될까,�상상도�안�되는�그런�분�말입니다.�그런�생각들,�그런�이들의�삶을�기억하고자�우리�

곁,�살며시�남겨져�있는�아름다운�발자취를�주목해�보고자�합니다.��

우리를 에워싼 눈부신 천사들

2 어울림잔치 학부모 소감 발표 중인 정보연 님

1,3,4 어울림잔치 준비를 도와주신 마을 이모삼촌들

1

2

3

4

Page 26: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26·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요즘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잘 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은 직접 취재도 하고 기

사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학생들이 느낄

수 없는 성취감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구요.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정겨

운 이웃들의 이야기, 필요한 정보들이 많이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유익하

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많이 올려 주세요. 이것을 통해서 새들마

을학교 학생들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상범 님

비 와

햇살- 세 번째 이야기 <꿈꾸는 우리>를 읽고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이 우리 신문을 자라게 합니다

게임중독법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던

저의 청소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밤새 게임에 몰두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 저의 게임에 대한

열정은 거의 중독 수준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게임에 빠져 있

던 시점과 제가 처음 안경을 착용하게 된 시점은 거의 일치합니

다. 저의 안구 건강에 있어서 게임이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 ;̂

그만큼 게임이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게임 자체가 재미있

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 더욱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학교 수업이 마치면 종종 친구

집에 우르르 몰려가서 같이 밥 먹고 늦은 시각까지 게임을 즐기

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함께 했던 게임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던 당시의 즐거운 분위기만큼은 분명하게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느낌들을 주었던 그 기억들을 소중

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게임에 어느 정도로 몰두하느냐보다는 어떠한 관계망 속에서 게

임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물론 게임의 내용

적 측면은 차치했을 때 말입니다) 만약 제가 과거에 ‘홀로’ 게임에

몰두했다면 과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런 점

에서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더 확장된 관계

속에서 게임 중독 관련 문제를 고민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

각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관계를 소중

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 커져 나가길 소망합니다.

민창기 님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받아 읽는 기분이다.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를

손에 쥐는 기쁨이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 첫 머리를

보니 최근 발의된 ‘게임중독법’과 관련해 게임 문화 전반을 바라보는 각자

의 시선을 글로 정리했다. 게임 산업의 현황,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

은 뭔지, 법안을 만들면 과연 폐해가 줄어들 것인가 등 다양한 각도에서 진

단을 내렸다. 진단이 있으면 처방도 뒤따르는 법. 처방전을 보고 있자니 빙

그레 웃음도 나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무릎을 탁 쳤다. 으름장 놓으

면서 무턱대고 소리치는 갖가지 법안이며 규칙들이랑은 빛깔 자체가 다르

다. ‘저희랑 놀아 주세요’, ‘할 일을 주세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길

러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게임을 만들어 주세요’ 새들마을학교 3호 신문

<꿈꾸는 우리>는 이렇듯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힘이란 도대체 어디서 나오

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좋은 글은 좋은 생각이 만든다’는 말을 자꾸 되뇌곤 한다. <꿈꾸는 우리>

에 기고하려고 얼마간 생각에 잠겼을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의 모습이 머

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평소 게임을 몇 시간이나 하지?’, ‘내가 하는 게임

은 어떤 게임들이지?’, ‘게임 때문에 바뀐 내 모습은 뭘까?’ 등 이런저런

생각을 끄집어 냈을 것이다. 글을 적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한 걸 가지고

또 글을 써 내려가고. 그 과정의 반복이 생각도 자라게 하고, 생활도 정돈

시키고, 결국엔 세상도 조금씩 바꾸리라 믿는다. 다음 편지 받아볼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김재광 님

새들마을학교 친구들이 어떤 꿈을 꿀까, 궁금했습니다. 우리의 바람

은 ‘너’와 온전하게 사랑으로 만날 때 이뤄지는 것이라니, 꿈만큼이

나 꿈을 이뤄 가는 과정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시론> 기사를 보면서 게

임중독과 관련된 통계와 사례 인용을 보고 기사를 쓰기 위해 정성껏 공

부한 친구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담담덤덤>은 제가 가장 좋아하

는 순서인데, 소년과 소녀가 함께 별에 머물렀다는 이번 이야기는 무척 아

름답고 여운이 남습니다. <뫼비우스의 띠> 배경으로 실린 새들마을학교 앞

겨울 하늘 풍경 사진은 감탄을 자아냈어요.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둘러

앉아 새콤달콤한 천혜양과 달달한 고구마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

는 기분! 신문을 읽을 때마다 이렇게 행복한 마음이 가득 차오릅니다. 고

맙습니다! 박현지 님

Page 27: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뫼비우스

2013학년도 가을겨울학기 공부를 돌아보며

한글 이번 마지막 시론은 혁명을 주

제로 썼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한 가장 큰 혁명은 새들마을학교에

들어온 것인 것 같다. 일반학교에 문

제의식을 느껴 들어온 새들마을학교

는 정답이었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

며 그리고 신문도 마무리하며 고생한

우리 기자들, 밤새 철야 작업하신 선

생님들, 우리 신문을 즐겁게 읽어 주

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하

고 싶다. 모두 감사합니다.

권영 벌써 2013년이 지나갔다. 신문도 이

제 마지막 신문만 만들면 된다. 벌써 마지

막 신문이라니 참 아쉽다. 다음에도 신문

이 나왔으면 좋겠다. 제발~!

현수 긴 여정을 끝냈다. 4번의 신문을 내

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였다. 모두 고

생하고 수고했다. 선생님 포함. 기사를 쓰

면서 독자들이 내가 쓴 기사를 볼 때를 고

려하며 썼는데(고려한다는 것은 역시 더욱

보기 쉽게?) 다시 내 기사를 볼 때마다 매

번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 다시 신문을

내면 더 열심히 하겠다.

권진 지금까지 신문을 봐 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넬슨의 기사를 몇 번이나 수

정했는지…. 옛날에 쓴 글보다 글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다. 신문, 재미있다.

밀알 사랑하는 우리. 마음에 머금

으니 뭉클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

니다. 특히 봉실 선생님, 슬비 선생

님. 수고 많으셨어요!민수 <사랑하는 우리> 표지에 좋

은 사진을 고민하던 중 만났던

친구들의 속삭임. 마지막까지 신

문이 멋지고 아름답게 나와서 참

감사해요. 기사 쓰느라 수고한

친구들, 편집과 교정으로 함께하

신 선생님들 모두 모두 수고 많

으셨습니다!

동원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만드는

모습이 큰 힘이 됩니다. 수고해 주신 모

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관심과 애

정어린 눈빛으로 지켜봐 주신 모든 분

들께 감사드립니다.

희윤 아~ '2014년에도 신문 만들어요'라

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 놓고,

'우리 다음 신문 만들어요'라고 해 버렸다.

슬비 잊지 못할 기쁨을 가득 안겨 준 새들

마을학교 친구들, 선생님들, 고마워요. 그리

고 이 시간을 지면으로 만난,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들에게도, 고마워요.

지호 지금까지 4개의 신문에 기

사를 쓰면서 새로운 정보들을 많

이 얻고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매

일 나오는 신문의 기자들은 참 대

단한 것 같다. 매일 기사를 쓴다

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앞으로 기사를 더 쓸진 모르겠지

만 이번 신문의 마지막이 내가 쓸

기사들의 발판이 되어 더 좋은 기

사를 쓸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 신문을 읽어 주신 독자

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

족하지만 읽어 주셔서.

고운 생각보다 시간이 훅 갔던 것

같다. 시론 쓰고, 소설 쓰고, 바쁜

시간이었다. 작가 경험을 한 것 같

아 기쁘다. 독자후기 써 주신 작

은아빠에게도 감사하고. 끝까지

열심히 해 주신 선생님들과 함께

달려온 친구들한테도 감사한다.

2014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사

랑하는 우리와 함께!!!!!

시원 벌써 네 번째 신문이다. 처음에

는 신문 하나 만드는 줄 알았는데 네

번째 신문까지 나오게 되었다. 만약

에 다섯 번째 신문이 나온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진경 이제 마지막 신문이네….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쉽다….

하늘 표지 사진들을 보니 우리가

참 행복해 보인다. 벌써 마지막 신

문이라니!

다소 4번째 신문까지 만들다니 놀

랍다. 신문을 만들어 주신 분들에

게 감사하다. 내가 만들지는 않았

지만. ㅋㅋ

영인 마지막 신문이라니 시원섭섭

하다. 앞으로 계속 신문을 발행했

으면 좋겠고, 조금 더 다른 코너도

생기면 좋겠다. 언젠가 다시 알찬

내용으로 돌아오고 싶다.

의진 지금 너무나도 슬프면서도 기

쁘다. 벌써 마지막 신문이라는 것과

신문을 더 이상 안 만든다는 것에

슬프고, 네 개의 신문을 낸 것과 지

금까지의 노력에 기쁘다. 우리들의

신문을 보시면서 기뻐해 주고 우리

를 응원해 준 분들께 고개 숙여 감

사드린다. <우리> 신문을 만들면서

글쓰는 실력이 많이 는 것 같아 뿌

듯하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직업인

것을 다시금 느꼈다. 우리들의 메시

지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기쁘다. 이

번 신문 표지 사진만 봐도 그렇다.

뭘 속닥속닥 즐겁게 얘기하고 있을

까요?

Page 28: 새들마을학교 청소년신문 201401 사랑하는우리

28·새들마을학교 청소년 신문

정말 신기합니다. 꿈이란 어쩌면 미래를 미리 살짝 엿보

는 망원경일지 모르겠습니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말

하는 시간여행을, 우리는 이 꿈을 통해 정말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서만 있던 특별 청소년신

문 작업이 정말 현실에서 펼쳐졌고 우리는 그 시간 안에

서 참 행복했습니다. 이젠 또 꿈같이 지나가 버린 지난

추억이 되었네요. 네 번의 특별 신문으로 마감하는 것

을 모두 못내 아쉬워합니다. “선생님, 신문 또 내면 좋

겠어요”라는 친구들의 진한 그림움 담긴 요청에 빙그레

미소 짓습니다.

처음 신문을 내면서 ‘아, 문집과 신문의 차이는 뭘까.

아, 이건 문집 아닐까’ 하며 샘들에게 하소연했었는데,

신문을 받아 보셨던 지인이 무심결에 ‘문집 잘 받아 보

았다’고 하셨지요. “아, 그래 문집이 맞았어.” 진실에 직

면한 부끄러움과 진실이 확인된 통쾌함이 교차했더랬

지요. 또, “신문 받아 보셨어요?”라고 지인에게 물으면

“아, 그게 신문이었어요? 잡지인 줄 알았어요”라는 답

이 돌아올 땐, ‘그래. 신문 같진 않지.’ 고개를 끄덕이기

도 했습니다. 다음에 또 신문을 낼 기회가 되면, 취재

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를 고대해 봅니다.

하지만 신문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편지입니다. 신문이 편지 같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

습니다. 진심과 진심을 나누는 깊은 소통의 도구이니까

요. 많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단순히 정보를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나누고 공유하여 하나가 되는 그

런 일이 되면 좋을 텐데요. 아는 관계에서 어떤 일이 생

겼을 때, 그것을 내 일처럼 전하는 옛 마을의 모습도 그

렇고, 우리 어린 친구들이 어떤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

신이 아는 누구든 만나면 상기된 표정으로 바쁘게 전하

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처럼요. 그렇게 우리에게 일어나

는 일들을 전하고, 우리가 올바르게 한마음이 될 수 있

는 길을 함께 모색해 갈 수 있는 그런 신문이 되면 좋겠

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받아 읽는 기분이다.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를 손에 쥐는 기쁨이란.” 이 독자

후기를 받아 보고, 마음이 통한 듯하여 안심입니다. 편

지가 사라진 이 시대, 뜨거운 편지로 다시 만나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글_ 최봉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