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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재해와 일본인 일본비평 716 1 재해와 일본의 사상 스에키 후미히코 (위) 메기가 난동을 부려 지진이 일어난다는 믿음을 표현한 우키요에, 메기를 퇴치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 (오른쪽 페이지 위 왼쪽부터) 가모노 조메이, 니치렌의 입정안국론, 우치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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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6

    1재해와 일본의 사상

    스에키 후미히코

    ▒ (위) 메기가 난동을 부려 지진이 일어난다는 믿음을 표현한 우키요에, 메기를 퇴치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 (오른쪽 페이지 위 왼쪽부터) 가모노 조메이, 니치렌의 입정안국론, 우치무라 간조

  • 재해와 일본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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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일본에서의재해와사상이라는주제로다음과같이두가지다른시점에서논하

    고자한다.첫째,일본은최근에두개의커다란지진재해를겪었다.1995년의한

    신(阪神)・아와지(淡路)대지진과2011년동일본대지진이다.이두개의재해가

    일본의사상・정신상황에어떠한영향을미쳤는지에대해고찰하고자한다.둘째,

    역사를거슬러올라가재해다발국가인일본에서과거의사상은어떻게재해를

    받아들여왔는지에대해개관하고자한다.

    1. ‘1・17’에서 ‘3・11’로 : 지진재해와 현대의 정신상황

    1) 1995년에 이르는 일본의 정신상황

    1995년1월17일오전5시46분아와지섬북부의해저를진원으로하는진도

    (magnitude)7.2의거대지진이효고(兵庫)현을중심으로한간사이(關西)지방

    을휩쓸었다.한신・아와지대지진이다.사망자는6,434명에이르렀고제2차세계

    대전이후의일본에서최악의재해였다.거대한재해는일본의사상및정신상황

    * 지은이│스에키 후미히코(末木文美士) 1949년생. 도쿄대학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문학). 현재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 도쿄대학 명예교수, 비교사상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공은 불교를 중심으로 한 일본사상사이며, 지은

    책으로는 『日本仏教史』(新潮社, 1992), 『平安初期仏教思想の研究』(春秋社, 1995), 『鎌倉仏教形成論』(法蔵館, 1998), 『日本宗教史』(岩波文庫, 2006), 『鎌倉仏教展開論』(トランスビュ-, 2008), 『近代日本の思想・再考』(全3巻, トランスビュ-, 2004~2010), 『近世の仏教』(吉川弘文館, 2010) 등이 있다.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8

    에어떠한영향을미쳤을까?

    이를고찰하기위해서는이대지진이일어난지약2개월후일본을뒤흔든

    또하나의커다란사건을함께되새겨보지않으면안된다.그것은3월20일도

    쿄의지하철에서발생한옴진리교신자에의한맹독성가스사린살포사건이다.

    이사건으로13명이사망하고6,000여명의부상자가발생하였다.사건후3월

    22일에야마나시현가미구이시키촌의교단본부에대한경찰의수색및조사가

    진행되어교조및교단간부가체포되었고그와함께상식을뛰어넘는교단의실

    태가밝혀졌다.

    이두가지사건이발생한곳은지역적으로떨어져있어서,다시말하면대지

    진이간사이,옴진리교사건이수도권에서발생하여단지큰사건이한시기에겹

    쳐졌을뿐인우연한일처럼보인다.그러나양자가연이어발생했다는것은일본

    사회의정신상황을일변시킬정도의커다란의미를지니는것이었다.그런만큼

    양자를연관시켜고찰하지않으면안된다.이점을이해하기위해시대를거슬러

    올라가일본의제2차세계대전이후의정신상황의변천을간단히되돌아볼필요

    가있다.

    원래일본의근대는구미(歐美)의압력에저항하면서도그과학기술을받아

    들여국내의근대화를꾀하면서구미제국과나란히해외침략의길로나아갔지

    만,제2차세계대전의패배로좌절하여재차근대화로향하게되었다.전전에대

    한반성에서미국점령하에민주주의와평화주의를이념으로내걸고그기치아

    래전후의부흥을달성하였다.1950~60년대에는고도성장이달성되었지만,70

    년대무렵부터경제적으로불안정하게되었다.80년대에는거품경기에들끓기

    도했지만,90년대중반에는거품붕괴와더불어만성적인불경기에빠져들었다.

    사상적인측면에서는이전의국가주의・군국주의가몰락하여이른바진보적

    지식인이적극적으로발언대에나서게되었고,동시에학생운동・노동운동이활

    발해져종종국가와충돌하였다.국제사회의냉전체제를반영하여자유민주당과

    일본사회당이제1당,제2당으로서국정을양분한이른바‘55년체제’가고정화되

    었다.그런가운데지식인및학생운동은1960년의미일안전보장조약개정반대

  • 재해와 일본의 사상

    19

    운동으로하나의정점을찍었지만,패배로마감되었다.그후기존의정당에대한

    불신에서신좌익운동이생겨나1969,1970년무렵의전공투운동으로발전했지

    만,그운동도광범한지지를얻지못한채붕괴되었고,그일부는적군(赤軍)으로

    서과격한테러행위에매달려자멸의길을걸었다.

    1990년대에이르면서기존의질서는완전히붕괴되었다.결정타는1990년

    에일어난동서독일의통일,1991년에발생한소비에트연방의해체에서비롯된

    동구사회주의권의붕괴였다.이를계기로일본국내의정치정세도크게동요하

    게되었고호소카와모리히로(細川護煕)내각에의해55년체제는종언을고했

    다.이러한동향은진보주의의환상을완전히산산조각내어정치에의거한이상

    적사회건설운동의무력함을노정하게하였다.그러한상황에서1980년대에는

    청년층을중심으로신신종교(新新宗敎)라불리는새로운종교운동이활발해졌

    다.그중에서도가장활동적인교단의하나가옴진리교였다.교조아사하라쇼코

    (麻原彰晃,본명松本智津夫)는카리스마적성격과티베트밀교등을섞은교의

    및수행법으로젊은이들의마음을사로잡아신자에게절대자로군림했는데,무

    대뒤에서는일찍부터살인을포함한범죄행위가일상화되어있었다.

    이리하여1995년무렵에는기존질서및사상이그무력감을드러내고있었

    고,그렇다고하여그것을대체할새로운사상이충분히확립되지않은채불안하

    고유동적인상황이지속되었다.그런가운데옴진리교및통일교와같은종교교

    단이뭔지모를불안한움직임을보이던정신상황이었다.한신・아와지대지진과

    지하철사린살포사건은이러한상황에서발생하여기존의질서및사상의종언

    을결정지었다.

    2) 1995년 :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한신・아와지대지진이일본사회에제기한새로운개념으로볼런티어(volunteer)

    와트라우마(trauma)가있다고한다.1)볼런티어는기존의조직에의존하지않

    1) 北原糸子 編, 『日本災害史』, 吉川弘文館, 2006, 388쪽.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20

    고아무런보상에대한기대도없이자발적으로사회활동에종사하는것을가리

    키는말이다.절정이었을때는하루에2만명,연인원백만명에달하는사회인

    및학생등의볼런티어가커다란힘을발휘하였다.종래일본사회는혈연및지

    연에기반을둔공동체속에서상호부조가행해져왔다.그러나인구의도시집중

    에따라종래의혈연및지연이기능하기어렵게되었다.한신・아와지대지진은

    그최대의피해지역이고베(神戸)에집중된도시형재해였기때문에혈연및지

    연에의존하지않고외부로부터유입된볼런티어가활약할수있는여지가많았

    다.이러한볼런티어활동은1998년에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이성립하게되면

    서NPO(특정비영리활동법인)로서종래의고정적인조직을넘어다양한분야에

    서활약하게되었다.

    볼런티어가새로운시대에어울리는미래의가능성을보여주는동향이었던

    데에비해,트라우마는부정적측면의심각한문제로부상하였다.트라우마는정

    신적외상을지칭하는것으로충격적인사건에조우함으로써마음에상처를입

    게된것을가리킨다.그장애가특히심각하여정신병리적질환에까지이르게된

    경우를가리켜‘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한다.PTSD는전쟁・재해・가정

    내폭력등생명의위험을경험한후에나타나는불안및불면,감정의마비,기억

    장애,플래시백(flashback)등의정신적증상을가리킨다.

    한신・아와지대지진에서는다수의사망자가발생하였을뿐만아니라,살아

    남은사람들도가까운사람들을도와주지못하고자기만살아남았다는죄책감에

    시달렸다.역사상선례가없었을정도로대지진후정신과의사의활동이잦아지

    게되었다.2)또한노인이임시주택에서고립된채고독사를맞는경우도많아졌

    다.이러한‘마음’의문제는재해후수십년이지나도여전히해결되지않는경우

    가적지않다.이러한것은물론한신・아와지대지진에의해비로소처음으로발

    생한것이아니다.과거의재해및전쟁등의경우에도종종보이는것이었지만,

    이제까지는본격적으로문제시되지않았다.정신의료가발달하지않았다는점도

    2) 中井久夫 編, 『1995年1月・神戶 : ‘阪神大震災’ 下の精神科医たち』, みすず書房, 1995.

  • 재해와 일본의 사상

    21

    관련되지만,당시는물질적손해를회복하고경제적발전을이루는것이제일차

    적과제였던만큼‘마음’의문제는무시되어왔다.

    이와같이한신・아와지대지진은다양한문제를안고있었지만,적어도표면

    적으로는어느정도순조롭게부흥이추진되었고,또한수도권은피해를입지않

    았기때문에,그것만으로는일본전체의정신상황을크게일변시킬정도는아니

    었다.그러나그후의옴진리교사건이이어짐으로써수도권을포함하여일본의

    정신상황에심각한사태를초래하게되었다.그때까지만해도일본은안전하고

    치안상태가좋다는점이자랑거리였는데,수도권도간사이권도모두피해를당

    하여극히위험한나라로바뀌고말았다.

    지하철사린살포사건은한신・아와지대지진과그렇게무관하지않다.사린

    살포는그이전부터계획되고있었다.하르마게돈(세계최종전쟁)의접근을자작

    극으로연출할목적이었는데,한신・아와지대지진은그것을극히현실적으로느

    끼게하는종말론적인사건이었다.사린살포사건직전에간행된아사하라의저

    서『해뜨는나라,재해가가깝다』에서그는“1995년말무렵부터한순간에일본

    은커다란변화의길에들어설것이다.이커다란변화는바로하르마게돈,그리

    고제3차세계대전으로움직여갈것이다”라고위기감을부추기고있다.3)옴진리

    교가해체된이후에도1999년에세계가종말을맞을것이라는‘노스트라다무스

    의대예언’이유행할정도로종말론적인상황은지속되었다.

    대지진과옴진리교사건이후,“끝없는일상(日常)”4)이라불리는상황이되

    었다.정치운동의정열은잦아들었고정치변혁으로이상적사회를건설하고자

    한꿈은사라졌다.그런가운데신신종교붐이일어났는데,옴진리교의기만이드

    러남으로써종교역시신용할수없게되었다.젊은이들은갈데없는불안속에

    서하루하루를보내게된것이다.그가운데뭔가불길한사건은점점더늘어만

    갔다.1997년에는한신・아와지대지진의피해지역이면서도상대적으로피해가

    3) 麻原彰晃, 『日出づる国, 災い近し』, オウム, 1995.4) 宮台眞司, 『終わりなき日常を生きろ』, ちくま文庫, 1998.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22

    적었던고베스마(須磨)뉴타운에서연쇄아동살해사건이발생한다.범인은살해

    한소년의머리부분을학교앞에전시하는잔인함과사카키바라세이토(酒鬼薔

    薇聖斗)라는이름을내건게임감각의도전으로화제가되었는데,그살인범으로

    서14세의중학생이체포되어일본전체에큰충격을던졌다.정신병리학으로도

    해명할수없는“마음속의깊은어둠”이크게클로즈업되었으며,‘꽉막힌느낌’

    (閉塞感)은점점더강해져만갔다.그런상황속에서‘오타쿠문화’라고불리는

    폐쇄적인서브컬처가점점더젊은이들의지지를받게되었다.5)

    3) 2011년 : 동일본대지진과 망자의 문제

    2011년3월11일동일본대지진은도호쿠(東北)지방의태평양쪽연안부터간토

    (關東)동북부에이르는광범위한지역에거대한피해를초래하였다.사망자는1

    만5천명을넘었으며,대지진후1년이지난현재에도3천명이상의행방불명자

    가남아있어이를위한수색활동이진행중이다.2012년2월부흥청(復興廳)이

    설치되었지만,그후에도부흥의전망은아직불확실한상태다.

    그이유는첫째,지진・쓰나미・원전사고라는다층적이고복잡한구조를띤

    재해인만큼대응이용이하지않다는점을들수있다.특히원전사고에대해서는

    발전장치그자체를어떻게최종적으로안전하게처리하는가라는문제와함께

    광범위한지역에퍼진방사능오염에따른인체에의영향도우려되는만큼극히

    장기적인대응을필요로한다.

    둘째,피해지역이광범위하게퍼져있는데다가각각의지역마다저마다의

    사정이있어일률적인대응이어렵다.센다이(仙台)와같은도시지역은비교적

    빨리부흥의전망이서기시작했다.그러나쓰나미의피해는해안선을따라넓은

    지역에퍼져있는데다가원래그지역은열악한교통편,고령화에따른인구감

    소에다경제적으로도곤란한마을이많은지역이어서부흥의로드맵조차작성하

    지못하는상태에있다.후쿠시마현의농업・축산업은방사능오염에따라대단히

    5) 末木文美士, 『他者/死者/私:哲学と宗教のレッスン』, 岩波書店, 2007.

  • 재해와 일본의 사상

    23

    심각한타격을받고있으며,쓰레기철거도커다란문제가되었다.

    이와같이심각한사태가장기적으로지속됨으로써그영향은피해지역뿐만

    이아니라일본전체에파급되고있다.종전에는피해뒤에는부흥버블이라고도

    부를만한호경기로이어지는경우가많았지만,이번에는그것을기대할수없을

    정도로경제적으로곤란한사태가계속될것으로예상하고있다.원전사고에따

    라국내의거의모든원전이정지되었으며,앞으로의전력공급에대한전망도밝

    지않다.더욱이가까운장래에수도권을대지진이직격할가능성이높다는예상

    조차제기되고있다.만일그것이현실화될경우,얼마나큰피해가발생할까에

    대한예측조차하기어려운상태다.이렇게동일본대지진은일부지역의문제가

    아니라일본전체의문제가되었다.

    동일본대지진의사회적측면을생각할때,일본사회의저출산및고령화현

    상을고려하지않으면안된다.1970년대전반을정점으로하여출생률은감소하

    기시작한반면,1940년대후반의베이비붐시기에출생한이른바‘단카이(團塊)

    세대’가60세를넘겨저출산및고령화가세계적으로가장두드러지게진행되고

    있는상황이다.그상황또한국가경제를직격하고있다.노동인구가감소하고연

    금세대가증가하면국가경제는파탄에이르게된다.경제하강기의대지진은경

    제상승기에비해훨씬더타격이크다.또한피해지역의고령화에따른부흥의

    곤란함이라는문제에도직면하고있다.대지진이전부터인구과소지역의고령화

    가진행되어그고령화가한층더인구과소를가속시킨다는악순환에빠져지방

    도시는피폐해지고있었다.대지진은이들지역을직격하여재건을점점더곤란

    하게만들고있다.

    이러한상황에서일찍이거론되던“끝없는일상”은종언을고하고,“끝없는

    비일상(非日常)”으로돌입하기시작했다.막연한불안이아니라,현실문제로서

    대처하기곤란한문제가산처럼쌓이기시작하여쉽게움직일수없는정세가되

    고있는것이다.대지진후종종연호되고있는“도호쿠힘내라!”,“일본힘내라!”

    라는구호는정신력에의지할수밖에없는,구체적대책의결여를의미하는것이

    며,‘연대감’의강조는그만큼인간관계의해체가진전되고있는현실을반증하는

  • 특집

    : 재해

    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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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24

    것에지나지않는다.아즈마히로키(東浩紀)는이것을“대지진으로우리들은산

    산조각이나고말았다”6)고표현하고있다.

    이런상황에서사상적으로도기존의개념으로는대처할수없게되었다는

    점이명확해졌다.예를들면,대지진후가모노조메이(鴨長明)의『방장기』(方丈

    記)에주목하여‘무상’(無常)이라는개념이종종인용되고있다.실로대지진으

    로많은사람들이세상을떠나고많은가옥이파괴되었는데,불교에서말하는무

    상의현실을보여주는듯하다.그러나문제는그정도로단순하지않다.방사능

    문제는어느정도안정된상태에이르는데에만도수십년,완전히무해한상태에

    이르는데에는십만년이걸린다고한다.피해지역의부흥도전망이밝지않다.

    그러한상태가장기간지속된다면,그것을무상이라고정리해버리는것은곤란

    하다.

    그렇다면무상론을대신하여어떠한사상이가능할까.재해에관한과거의

    사상을역사적으로거슬러올라가검토하는것은제2장의과제인데,여기서는

    21세기에들어서망자(亡者)의문제가크게부상했다는점을지적해두고자한

    다.7)원래근대의사상은기본적으로생(生)의사상이며,현세에서의인간의삶을

    풍요롭게할것을목표로해왔다.사후의문제는과학적해명의불가능성에따라

    배제되었으며,유물론과같이사후를완전히부정하는사상이유력했었다.이러

    한경향은제2차세계대전후의일본에서더욱두드러진특징이었다.원폭피해지

    히로시마(廣島)의원폭희생자위령비정식명칭은히로시마평화도시기념비이

    다.공적으로는위령을의도하고있지도않은것이다.8)

    그러나실제로는전쟁망자의문제는전후60년이상이지나도사라지기는

    커녕오히려점점더중요한과제가되고있다.야스쿠니(靖国)신사및난징대학

    살문제등전쟁망자의문제는결코사라져잊혀진문제가아니다.대지진만이

    아니라미국에서2001년에발생한9・11테러는대도시에서의대규모희생이라

    6) 東浩紀, 「震災でぼくたちはばらばらになってしまった」, 『思想地図』 2卷, 2011.7) 末木文美士, 『他者・死者たちの近代』, トランスビュ-, 2010.8) 末木文美士, 『他者・死者たちの近代』, 168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25

    는문제를새롭게부각시켰다.

    망자의문제가부상하게된것은자각적인사상레벨에서보다도먼저대중

    적인사회현상으로서나타났다.2006~2007년경「천갈래의바람이되어」(千の

    風になって)라는가요가대히트했는데,원래미국에서1930년대에작사된것이

    9・11위령집회에서낭독되면서화제가된것이라한다.이노래는“내무덤앞에

    서울지마세요”(아라이만新井満옮김)로시작하여망자가무덤속에서잠들지않

    고천갈래의바람이되어허공에서산자를지켜본다는스토리로전개된다.이

    노래가유행하게된무렵에는급속히고령화가진행되어죽음에대한관심이높

    아짐과동시에장례식및묘지의문제가커다란관심을끌기시작하였다.

    2008년에는영화「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다키타요지로감독,한국어판「굿

    바이」)가공개되어많은관객을동원했다.장례식에서시신을깨끗이씻고납관하

    는장의사를주인공으로하여삶과죽음,가족의사랑을그린영화다.이영화를

    통해이제까지그늘에가려져있던망자에관계되는직업이일약클로즈업되었

    다.2009년나오키상(直木賞)은덴도아라타(天童荒太)의「애도하는사람」(悼む

    人)이수상했는데,주인공이회사를그만두고노숙하면서각지를순회하여비명

    횡사한망자를애도한다는내용이다.

    동일본대지진이전에이와같은망자를테마로한작품이연속적으로화제

    가된것은기묘한일이라하지않을수없다.한신・아와지대지진,그리고동일본

    대지진이라는대규모피해가속출하는가운데이전과같이그것을극복하여활

    기가넘치는사회를재건한다는것이오늘날의일본에서는용이하지않은상황

    이되고있다.그런상황에서이러한작품들이예견한죽음및망자의문제가이

    제는불가피한문제로서전면에등장한것같다.실제로지진과관련하여죽음과

    망자를주제로한사상서의출판이이어지고있기도하다.9)

    9) 若松英輔, 『魂にふれる : 大震災と, 生きている死者』, トランスビュ-, 2012 ; 森岡正博, 『生者と死者をつなぐ : 鎮魂と再生のための哲学』, 春秋社,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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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26

    2. 재해의 사상사

    1) 고대·중세의 재해관

    ① 재해관의 기본유형

    일본은고대부터지진,태풍등자연재해가많이발생하여사람들의생활을위협

    해왔다.수해를예방하기위해제방을쌓고한발에대해서는저수지를축조하는

    등과학기술에의한대응이이루어지기도했지만,그것으로모든것을예방할수

    있는것은아니었다.거기서자연의심오한의지를묻는종교적인재해관이중요

    한의미를띠게되었다.

    고대일본인의재해관,특히지진에관한사상으로서니시오카도라노스케

    (西岡虎之助)는천견(天譴)10),음양도(陰陽道),재앙신사상,이렇게세종류를들

    고있다.11)니시오카의설명에따라간단히개괄해보면,우선천견의사상은나라

    (奈良)시대부터헤이안(平安)초기에이르는시기에보이는것이며,“주로천황의

    조서에나타나는유교주의에의거한것”이다.천견은“계급전반에내려진하늘

    의경고표시가아니라,단지정치에관여하는특수한계급에만한정되어내려진

    것”이다.

    다음으로음양도의사상은헤이안중기이후의사상이다.음양도에서는네

    가지지진이있다고한다.그네가지는화신동(火神動),용신동(龍神動),금시조

    동(金翅鳥動),제석천동(帝釋天動)이다.“이러한네종류의지진은각각일정한

    숙요(宿曜,달의상태에따라길흉화복을점치는점성술의일종)에따라움직이는

    것으로,역으로말하면숙요가어떠한가에따라지진의종류를결정하는것이가

    능해진다.더욱이그것이여러가지길흉화복의전조와도관련되어있다”고한다.

    그때주의할것은“음양도에서는지진을괴이(怪異)한것으로는인정하지만,재

    액(災厄)이라고여기지않는다”는점이다.즉,지진자체는재액이아니라재액의

    10) 하늘의 꾸짖음. 고대 중국의 한(漢) 무제(武帝) 재위기에 활약한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음양오행, 천인감응론 등에

    의거하여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천재지변을 내려 견책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 옮긴이

    11) 西岡虎之助, 「王朝時代の地震とそれに対する思想」, 『社會史硏究:日本震災史』 49~55, 1923.

  • 재해와 일본의 사상

    27

    전조가되는이변으로간주되어그때문에위정자는근신하여재액을초래하지

    않도록하지않으면안된다는것이다.

    세번째가재앙신사상이다.재앙은천견설에의거한하늘의질책과유사하

    다.그러나“벌을내리는주체가천견설은하늘이고,재앙신설은가미(神)라는점

    에서서로미묘하게다른것이다”.가미에의한재앙이라는시각이명백히문헌에

    보이는것은다카쿠라(高倉)천황이인안(仁安)4년(1169)정월26일에이세신

    궁(伊勢神宮)에바친칙명의해석에서보인다고한다.

    ② 재앙설의 전개

    이상과같이니시오카도라노스케의정리에의거하여고대・중세의재해관을개

    관하였다.이세가지의재해관은고대・중세재해관의기본적인유형이라고해도

    좋은데,그에대해다소논의를전개하고자한다.

    천견설과재앙신설에는니시오카가거론한하늘과가미의차이만이아니라

    또다른차이가존재한다.천견설은지배자가도덕적인선을행하지않고악을행

    하는것에대해하늘이징벌하는것을의미하는것이며,그와다르게재앙신의경

    우는도덕적인선악보다도가미에대해바르게제사지냈는가아닌가가문제가

    된다.음양도사상은선악이아니라이변에대해근신할것을요구하는점,또한

    용신등의가미가일으킨다는점에서재앙신설에가깝다.단지이변의출현을숙

    요의이론으로해명하고자하는바는재해에대한과학적이론에입각한설명으

    로이어지는측면이있다.네종류의지진의원인과숙요와의관계는원래불경의

    『대지도론』(大智度論)8권(大正藏25,117上)에의거한것으로음양도설은실제

    로는불교와밀접하게관련되어있다.중세에는지진이일어나면이네종류에수

    신동(水神動)을더한다섯종류중의하나로지진을분류하였다.12)

    재앙신설은이미정관(貞觀)8년(866)1월20일에“여러가미가재앙신이

    되었다”(『類聚三代格』)라는구절에보이며,그사례들은헤이안초기부터보인

    12) 黑田日出男, 『龍の棲む日本』, 岩波書店,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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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28

    다.그외에도유사한용례는많다.호조가쓰타카(北條勝貴)에따르면,이보다더

    이른시기인『고사기』(古事記)스진(崇神)천황조에“가미가분노하여인간에재

    앙을초래하는‘재앙’의양상”이보인다고한다.13)즉,역병이유행하고사람들이

    하나둘죽어갈때,삼륜산(三輪山)의오모노누시신(大物主神)이신탁으로그재

    액은가미의의지라는것을알게되었고,가미가요구하는바대로제사지낸결과

    역병이멈췄다고한다.

    헤이안기에발달한재앙신설의전형으로서는원령설을들수있다.정치적

    음모에의해예기치못한죽음을맞이한사람의영혼이재액을초래한다는생각

    에서비롯된것이다.정치적으로불안정하여음모및책략이횡행했던헤이안초

    기에특히유행했다.정관5년(863)에사와라친왕(早良親王)을비롯한6인의영

    혼을교토의신센원(神泉苑)에서제사지낸것이최초라고한다.신불습합(神佛

    習合)의분위기속에원령신에게밀교의명왕(明王)의성격이부여되었으며,밀

    교적의례에의거하여진정시킬수있다고여겼다.원령신의전형으로서는스가

    와라미치자네(菅原道真,845~903)의영혼을제사지내는덴만천신(天滿天神)

    이다.미치자네는뛰어난문인정치가였는데,후지와라(藤原)씨의음모에의해

    다자이부(大宰府)로좌천되어거기서원한을품고죽었다.그의사후,역병및낙

    뢰등의재해가계속되어사회적인불안이커졌는데,그것이미치자네영혼의소

    행으로간주되어가미로모셔지게되었다.

    이와같은재앙신설은정치와관련된국가적문제에국한된것이아니었다.

    개인의발병및돌연사도종종악령에의해일어났다고생각되었다.악령에는망

    자의영혼및적대적존재에대한저주,생령(生靈),갖가지악마적존재가포함되

    었으며,그에대해서는밀교적인주술로대항하는방식이채택되었다.또한대부

    분의마쓰리는이러한재액신을위무(慰撫)하여재액을면하려는목적으로행해

    졌다.그전형은교토의기온마쓰리(祇園祭)인데,중세에는재액신인우두천왕

    (牛頭天王)이그제신으로간주되었다.우두천왕을잘모시지않은고탄쇼라이

    13) 北條勝貴, 「災害と環境」, 北原糸子 編, 『日本災害史』, 吉川弘文館, 2006, 19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29

    (巨旦将來)는우두천왕에의해멸망당했지만,정중하게환대한소민쇼라이(蘇

    民將來)일족은재액을피할수있었다고한다.이와같이재액신은재액을초래

    하는공포스러운가미이지만,동시에정중하게제사지내면그강력한힘에의해

    재액을피하게해주는이익도얻을수있는선신(善神)으로서도작용한다는양가

    성을띠고있다.우두천왕은조선으로부터유래된가미라고도일컬어지는데,신

    불습합적이면서동시에음양도의요소도섞여있다.

    헤이안기부터중세에걸쳐원령설을포함한재앙설은널리수용되어일본에

    서는천견설보다도더일반적인것이되었다.이러한발상은도덕적인선악보다

    도현세를넘어그배후에있는영혼및신불(神佛)과의관계를중시하는태도를

    의미한다.천견설이유교적인정치론을배경으로하고있는데반해,재앙설은종

    전의가미신앙에유래하는요소를가지면서도불교,특히밀교에의해크게전개

    되었으며게다가음양도적인측면도존재하는복합적성격을띠고있다.

    ③ 재해의 주체적 수용

    그런데중세에는이러한기본적인재해관을바탕으로하면서도,각종재해를주

    체적인입장에서어떻게받아들여야하는가라는새로운문제제기가보인다.그

    사례로서가모노조메이의『방장기』및니치렌(日蓮)의『입정안국론』(立正安國

    論)을들수있다.

    가모노조메이(1155?~1216)는가모미오야신사(賀茂御祖神社,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신관의아들로태어났지만,신관으로서의길이막혀출가하여

    교토남부의히노(日野)에서은거하였다.『방장기』는그의삶의모습을기록한짧

    은에세이인데,전반부에서는당시의화재,회오리바람,천도(遷都),역병,지진등

    각종재해가빈발했던양상을상세하게기록하고있다.당시는겐페이(源平)전

    란14)이휩쓸고있던와중이어서『방장기』에는자연재해와함께다이라가문(平

    14) 1180년부터 1185년까지 중세 헤이안시대 일본에서 벌어졌던 내전이다. 이 전쟁에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다이라 씨

    (平氏)와 지방세력인 미나모토 씨(源氏)는 일본의 각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국 다이라 씨는 패배하고 미나모토 씨

    가 전국을 장악하여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는 막부의 수장인 쇼군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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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30

    家)에의한후쿠하라(福原)로의천도와같은정치적인혼란도역시재해로서동

    열에서취급되고있다.

    이글에서그는수많은사람들이재해로순식간에사망하고,그자리에역시

    새로운집들이건축되는모습에무상(無常)을통감한다.그것이권두의유명한

    문구,즉“흘러가는강물은끝없이흐르지만똑같은물이아니다.물웅덩이에떠

    있는물거품은사라졌다가다시생겨나는것처럼멈춤이없다.세상사람들과거

    처도역시이와다르지않다”15)로결실되고있다.후반부에서는그와대조적으로

    히노에은거하면서부터의한적한삶의평안에대해서술하고있다.그러나암자

    의생활을즐기는것도집착이된다고하여,“너는모습은성인이지만,마음은탁

    한세상에물들어있구나”16)라고하면서그평안에대해서도자성(自省)한다.

    이와같이무상을이론으로서보다도감상적인‘무상감’으로파악하고수행

    에정진하는모습이아니라은자로서한적한삶을즐기는모습은은자문학이라

    불리는중세문학의큰장르를형성하게되었다.

    『방장기』가재해가지속되는세상을벗어나한적한삶의평안을추구한데

    에비해서,천견설및재앙설을받아들여스스로의종교적실천의근거로서삼았

    던사람이니치렌(1222~1282)이었다.니치렌이살았던시대는가마쿠라시대후

    반이었는데,각종재해가끝없이이어져사회적으로불안감이높았던시대였다.

    『입정안국론』에서는“나그네가와서한탄하여말하기를,근년오늘에이르기까

    지하늘과지상에천변(天變),지요(地夭),기근,역병등이널리하늘에퍼지고땅

    을휩쓸고있다.마을여기저기에는소와말들이쓰러져그해골이거리에넘치고

    있다.죽음을눈앞에둔사람들은이미태반을넘었고이를슬퍼하지않을사람은

    한사람도없다”17)고운을떼고있는데,이런서술은당시의상황을잘보여주는

    것이다.

    다. ‘겐페이’는 ‘源平’이라는 한자에 대한 음독 표기이다.― 옮긴이15) 鴨長明, 簗瀬一雄 譯注, 『方丈記』, 角川書店, 1967, 15쪽.16) 鴨長明, 簗瀬一雄 譯注, 『方丈記』, 49쪽.17) 佐藤弘夫, 『日蓮‘立正安國論’全訳注』, 講談社, 2008, 59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31

    그러한상황에서어떻게대처하면좋겠는가라는나그네의질문에대해주인

    이대답한다.그기본은“세상모든일이바른자리(正)를잃어모든사람들이악

    에빠졌다.이에따라선신(善神)은이나라를떠나버렸고성인은자리를떠나돌

    아오지않는다.이리하여악마와귀신이휩쓸고다니면서재해가일어났다”18)는

    점에있다.사람들이올바른것에등을돌리고악에빠지게되면,선신은나라를

    버리기때문에남겨진악마와귀신이난무하여재해가일어난다는것이다.이를

    선신사국설(善神捨國說)이라부른다.재해가도덕적인선악과연관되고있다는

    점에서천견설에가깝지만,천견설의하늘이유일자적인것에비해,선신사국설

    은선신과악귀의관계를문제로삼는다는점에특징이있다.또한지배자만의책

    임으로간주하지않고,‘세상사람들모두’라든지‘모든사람들’이라는표현에서

    드러나듯이사람들전체의책임으로간주하는점도주목할만하다.그것을니치

    렌은『금광명경』(金光明經)등의경전을이용하여논증하고있다.

    그렇다면구체적으로‘올바른것에등을돌렸다’거나‘악에빠졌다’는것은

    어떤현상을말하는가.그는사람들이『법화경』(法華經)을버리고염불에빠졌기

    때문이라고하는데,그것은당시유행하고있던호넨류(法然流)의염불을비판하

    는것이었다.니치렌은『입정안국론』을정부에헌상하여염불의금지를실현하려

    고했지만,오히려그로인해자기자신이사도(佐渡)에유배당한다.그런상황에

    서니치렌은스스로를응시하는방법으로『법화경』의주체적인이해를심화시켰

    다.그것은과거세에서자기자신이『법화경』을비방했었기때문에그로인해현

    세에수난당하게되지않았을까라는자성이었다.그자성이『법화경』의수행자로

    서의자각을더욱심화시켜갔다.

    이와같이니치렌의사상에는염불배격등의극단적인부분도존재하지만,

    재해를사상적인문제로파악하여주체적인문제로서심화시키고있다는데에

    그독자적전개의특징이보인다.

    18) 佐藤弘夫, 『日蓮‘立正安國論’全訳注』,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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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32

    2) 근세의 재해관

    ① 지식인의 자연관과 재해관

    근세가되면무사를중심으로한지식인의세계에서는유교가주류를점하게된

    다.유교에서는천견설과같이하늘을초월적으로설정하는경우가있는데,그러

    한사고방식이근세에이르러서도여전하다.특히그사고방식은다이묘(大名)

    등지배자자신의자성에종종등장한다.19)그러나근세에널리퍼진주자학에서

    는초월적인하늘을설정하지않고세계를그자체로서내재적인원리에따라발

    전하고전개되는것으로생각한다.근세초기의『유불문답』(儒彿問答)은유학자

    하야시라잔(林羅山)과재가불교신자마쓰나가데이토쿠(松永貞德)와의논쟁을

    기록한것인데,불교측이전세,현세,내세의인과의논리를펼치는데에비해,유

    교측은이세계가‘만물일체’(萬物一體)로전개되고있음을주장한다.이차이가

    커다란대립점이되었다.20)

    주자학의입장에서자연과인간은일반적으로서로떨어진존재가아니다.

    인간도자연속의일부로생각되었다.이에대해마루야마마사오(丸山眞男)는

    근세유교속에‘자연’(自然)과‘작위’(作爲)를대립적으로사고하는발상이생긴

    점을지적하고거기서근대의출발점을보았다.특히마루야마가중시한것이오

    규소라이(荻生徂徠)였다.21)주자학이사회및윤리를자연과의일관성에서이해

    하고있었던데비해,소라이는양자를떨어뜨려사회의질서는성인이인위적으

    로성립시킨것으로사고하였다.그에따라인간사회는자연에의해결정되는것

    이아니라인간이책임을가지고만들어가는것이라는논리가가능해진다는것

    이다.

    오늘날근세의사상은마루야마가정리한정도로단순하게전개된것이아

    니었다는점이명확해졌다.근세에도인간과자연을일관된것으로파악하는사

    고가일반적이었으며,그기반위에서양자를택일적으로취급하지않으면서‘자

    19) 若尾政希, 『安藤昌益からみえる日本近世』, 東京大学出版会, 2004.20) 大桑斉・前田一郞 編, 『羅山・貞德 “儒佛問答”』, ぺりかん社, 2006.21) 丸山眞男, 『日本政治思想史硏究』, 東京大学出版会, 1952.

  • 재해와 일본의 사상

    33

    연’과‘작위’의조화를추구하는길도있었다.즉,‘자연’에따르면서도어느범위

    에서‘작위’의요소를인정하는것이다.

    그사례는예를들면니노미야손토쿠(二宮尊德,1787~1856)에게서전형적

    으로보인다.손토쿠는오다와라(小田原,가나가와현)및시모쓰케(下野,도치기

    현)에서냉해등으로황폐해진농촌의부흥에성공했다.그근본사상은‘천리’(天

    理)와‘인도’(人道)를대립시키면서도상보적으로파악하는데있다.“세계는순

    환하고회전하면서멈춤이없다.추운겨울이가면더운여름이오고또더운여

    름이가면추운겨울이온다.날이밝으면낮이되고낮이되면밤이온다.또한

    만물이생기면없어지고없어지면다시생겨난다”.22)그는이러한자연의섭리

    를‘천리’라고부르고,이에대해“인도는이와다르다”23)고하여‘천리’와‘인도’

    를확실히구별한다.사람은깃털도비늘도없이벌거벗은몸으로태어나기때문

    에,“집이없으면차가운비와이슬을피할길이없고의복이없으면추위와더위

    를피할길이없다.이에인도라는원칙을세워벼를선으로잡초를악으로여기

    고,집을짓는일을선으로그파괴를악으로여긴다.모두사람을위해세운도이

    기때문이다”24)라고하는것이다.그때문에“천리라는관점에서볼때는선악이

    란없다”25)는것이되지만,인도를세울때에는선악이생기게된다는것이다.

    그러나‘인도’는‘천리’와전혀상반되는것이아니다.“인도는천리에따른다

    고해도,그틀안에서구별을지어잡초를악으로벼를선으로여기는것과같이

    어떤일이든사람에게편리한것을선,불편한것을악으로여긴다”26)는것이다.

    이처럼‘인도’는‘천리’와다르게선악을세우는것이지만,‘천리’를떠나서는있을

    수없다.

    이러한점을손토쿠는수차(水車)에비유하여절묘하게설명한다.“예를들

    면인도는수차와같다.반은물의흐름에따르고반은그흐름을거슬러회전한

    22)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岩波書店, 1973, 122쪽.23)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123쪽.24)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123쪽.25)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123쪽.26)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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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34

    다.전체가물속에잠기면회전하지않고흘러가고말것이며,또한물을떠나서

    는회전하지않을것이다”27)라고한다.즉,반은‘천리’에따르면서반은‘천리’를

    거스르지않으면안된다.그때문에“사람이천하게여기는축도(畜道)는천리자

    연의도”28)인데비해,“존중해야할인도는천리에따르면서도,역시작위의도로

    서자연그대로가아니다”29)라고하는것이다.손토쿠는이러한사상에입각하여

    황폐한농촌의재생을꾀하여성공한다.재해에대해합리적으로대처할길을열

    어젖힌사상이라할수있다.

    손토쿠가활동한지역은그렇게자연환경이열악하지않은간토지방이었기

    때문에이러한조화적인발상으로부흥을꾀할수있었다.그에비해자연환경이

    열악하고종종기근에시달린도호쿠지방에서는그러한자연관으로는대처할

    수없었다.도호쿠의열악한자연환경속에서인위를부정하고자연으로의회귀

    라는방법으로이를극복하려한사상가가안도쇼에키(安藤昌益,1703~1762)

    였다.쇼에키는젊은시절재해에대해천견설의입장을취하고있었다.30)역학

    (曆學)을배우던시절의노트『역(曆)의대의(大意)』에서,“요괴(妖怪)는국정(國

    政)을사사롭게전횡하는잘못에서비롯된것으로서하늘이그잘못됨을보여주

    는것이다.민(民)은천진(天眞)이머무는곳[舍]이다.국정이잘못될때는이로

    인해민이괴로움을당한다.민이괴로움을당할때는그근심에천신(天神)과지

    기(地祇)가응답한다”31)고주장한다.국정이잘못되어민이고통을당할때는그

    근심에감응하여천신과지기가요괴(이변)를보여준다는것이다.

    자기자신의독자적사상을확립한이후의쇼에키는천신및지기를매개하

    지않고자연의자기운동으로서세계가움직인다고생각하게되었다.『자연진영

    도』(自然眞營道,3권)의서문에서“자연이라함은오행(五行)의존칭이다”32)라고

    27)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123쪽.28)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124쪽.29) 奈良本辰也他校注, 『二宮翁夜話』 1, 124쪽.30) 若尾政希, 『安藤昌益からみえる日本近世』, 2004.31) 安藤昌益, 『安藤昌益全集』 16下, 農山漁村文化協会, 121∼122쪽.32) 尾藤正英他校注, 『安藤昌益・佐藤信淵』, 岩波書店, 1977, 13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35

    한다.그‘자연’은‘오행’이라는것이다.“오행이진퇴(進退)의운동을하는곳에

    저절로질서가생겨난다.오로지홀로그렇게진실되게영위하는곳이다.천지,인

    륜,조수,벌레,물고기,풀,나무가되는이유이다”33)라고하는것처럼,질서는우

    주적인‘천지’(轉定=쇼에키독자적인표기방법으로천지를가리킨다)에서인간과

    연관된조수초목(鳥獸草木)등의환경,그리고인간세계에이르기까지일관되는

    것이다.그점에서쇼에키의세계관은세계와인간의일관성을인정하는주자학

    적세계관에가깝다.그러나거기서인륜이라고하는것은봉건적인신분차별에

    따른것이아니다.쇼에키는철저하게농경의현장에입각하여인간사회의지배

    관계를부정하고‘직경’(直耕),즉직접적인농업생산에종사하는일을이상화한

    다.그럼에도불구하고‘경작하지않는’(不耕)자들이근본적인자연질서에반해

    신분질서를만들어지배하고수탈하는데에서사람들의불행이시작되었다고보

    는것이다.

    이러한관점에서고본(稿本)『자연진영도』‘사법신서권’하(私法神書券下)

    에서는“기괴,천재지변을두고가미의영험(靈驗)으로여기는것은심히잘못된

    것이다”34)라고하여,천재지변및이상현상을가미의영험으로여기는사고를부

    정한다.또한스가와라미치자네가벼락신이되어사람을죽인다는설을비판하

    면서“천뢰신(天雷神)이여기저기떨어져사람을죽이는일이있지만,천뢰가사

    람을죽이는것이아니다.사람이있는곳,가는곳에벼락이우연히떨어져죽게

    되는것이다”35)라고하여,낙뢰를가미의행위가아니라자연현상의일부로보고

    있다.

    그렇기는하지만쇼에키는재해를완전히자연현상으로서만보고있지도않

    다.인간의선악이천지의운행에영향을미친다고파악한다.『통도진전』(統道眞

    傳)에서는다음과같이주장한다.

    33) 尾藤正英他校注, 『安藤昌益・佐藤信淵』, 20쪽.34) 安藤昌益, 『安藤昌益全集』 16上, 64쪽.35) 安藤昌益, 『安藤昌益全集』 16上, 67쪽.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36

    사람이내뱉는공기가천지가마시는공기가되어천지를운동시키는기운이된

    다.이때문에사람이바른기운이될때는천지의운기도바르게되며대풍(大

    風),폭우등의올바르지않은기행(氣行)은발생하지않고만물의삶도좋아진

    다.사람이조화롭고기뻐할때는천지의운기도조화롭고순조로워약으로쓰

    일생물을낳고희열과행복이사람에게돌아온다.사람이항상지나친욕심에

    사로잡혀불행을느끼고탐욕적으로되어남을위협하는등의악한생각이왕성

    해질때에는그악한마음과사악한기운이언제나호흡작용을통해몸밖으로

    나가결국천지의운기를더럽히게된다.그사악한기운이쌓여마침내운기가

    크게격동하게되는것이다.36)

    마음의옳고그름에따라천지의운기가영향을받아온화하고순조롭거나

    격동하기도한다는것이다.이것은인간행위의선악이최종적으로자연의순조

    로움및재해를초래한다는점에서천견설에가깝지만,하늘이라는초월적존재

    의의지를상정하지않고,직접자연이인간의행위에반응한다고보는점에서다

    르다.

    이와같이쇼에키는자연과인간을통합적으로보고재해를사고하는입장

    을취하고있지만,그렇다고그입장이지식인에게널리받아들여진것은아니었

    다.원래쇼에키의『역의대의』는니시카와조켄(西川如見)의천견설비판을반

    비판하는것이었다.37)쇼에키입장에서는자연과인간은서로떼려야뗄수없는

    관계이기때문에자연에반한인간생활을자연으로되돌리지않으면안된다는

    강한윤리적지향을정당화해야만했다.그에따라천견설,혹은거기에가까운

    주장을취하게된것은아니었을까.

    근세의지식인들대부분은훨씬더각성된눈으로자연재해를보고있었다

    고생각한다.근세에널리퍼진백과사전인데라지마료안(寺島良安)의『화한삼

    36) 安藤昌益, 奈良本辰也 譯注, 『統道眞伝』 下, 岩波書店, 1967, 120쪽.37) 若尾政希, 『安藤昌益からみえる日本近世』, 2004.

  • 재해와 일본의 사상

    37

    재도회』(和漢三才圖會,1712)55권에는‘지진’항목이있는데,우선“진(震)은움

    직임을말하는데,성냄을가리킨다”고정의하여,“양(陽)이음(陰)의아래에엎드

    려음에다가선다.따라서피할수없다.이리하여땅이움직이게되는것이다”라

    고간략하게설명하고있다.더욱이여러책을인용한후“생각하건대땅속에구

    멍이있어벌들의집처럼물이스며들고양기는항상들락날락한다.그음양이서

    로조화로워져때가잘맞으면언제나같은모습이된다.만일양기가막혀들락

    날락하지못한채시간이흐르면땅이팽창하고물이축소한다”고하여,음양의

    기운이적절하게순환되지못할때지진이일어난다고하였다.즉,인간의행위와

    는관계없는자연현상으로서이른바‘과학적’인설명을하고있는것이다.이와

    같이근세에는객관적・과학적・합리적인재해관도상당히퍼져가고있었다.

    ② 민중의 재해 수용방식

    이와같이지식인들은재해를이론적으로설명하려하였지만,일반인들은재해

    를어떻게받아들이고있었을까.우선아사이료이(淺井了意)의『가나메이시』

    (かなめいし)를살펴보자.이책은1662년5월1일교토방면에서일어난대지진

    의모습을기록한것인데,당시유행한가나조시(假名草子)라불리는가나로쓰

    인통속적책자의형태로출판되었다.이책에대해서는기타하라이토코(北原糸

    子)가상세히정리하고있는데,38)3권으로구성되어있으며“상권은교토에서의

    지진에대한실황적묘사,중권은교토이외지역에서의지진피해의개요,[중략]

    하권은일본지진사라고도할만한것으로서고기록에서지진기사를발췌하거

    나지진의원인에대한해설,그리고이이야기가성립하게된계기등을소개한

    다”39)는구성으로되어있다.지진으로인한심대한피해의모습은물론,그상황

    에서사람들의당황해하는모습,불안,비탄등이해학과어울려경쾌하고절묘

    한필치로기록되어있는데,지진에대한정보를얻을수있을뿐만아니라지진

    38) 北原糸子 編, 『日本災害史』, 232∼245쪽.39) 北原糸子 編, 『日本災害史』, 239쪽.

  • 특집

    : 재해

    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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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38

    에대비한계몽적인책자로서도널리보급되었다.

    본서하권에는지진의원인설로서‘불경’(佛經)과‘역도’(易道)의두가지설

    을들고있다.‘불경’의설로서는중세에도행해진『대지도론』(大智度論)의사종

    설(四種說)도있지만,오히려본서에서상세하게서술하는것은이세계가풍륜

    (風輪),수륜(水輪),금륜(金輪),토륜(土輪)이라는네가지층으로구성되어있는

    데,풍륜의움직임이차례로위로전해져지진이일어난다는설이다(『중아함경』

    中阿含經의지동경地動經에의거한다).‘역도’라는것은중국고전에의거한설인데,

    “음기(陰氣)가위를덮고양기(陽氣)가그아래에눌린상태에서위로오르려는

    양기가음기에눌려움직일때지진이일어난다”40)는설을소개하고있다.이것은

    위에서본『화한삼재도회』등에서보이는설명의원형적인것이다.

    『가나메이시』의마지막장에서는음양오행에의한천재지변설을들고있는

    데,“이번지진은오곡이풍성하고백성이부유하게될징표이다”41)라고긍정적

    으로서술하는것은체제비판을회피하여출판통제에걸리지않도록하기위한

    조치라고해석한다.42)더욱이그후에다음과같이이어간다.

    속설에이세계를관리하는오제용왕(五帝龍王)이성을낼때대지가흔들린다

    고한다.가시마(鹿嶋)의묘진(明神)이그오제용(五帝龍)을거느리고머리와

    꼬리를한곳에뭉뚱그려그위에가시마의암석을놓아두었기때문에아무리

    흔든다고해도인간세계는멸망하지않는다.옛노래에“흔들린다고해도,빠지

    지않는요석(要石)과가시마의가미가있는한”이라읊었다.43)

    위에서인용한내용은가시마신궁에얽힌이야기로서그요석이이책의제

    목이되었다.용이지진을일으키는것은앞에서본네종류혹은다섯종류의움

    40) 井上和人 外 訳, 『仮名草子集』(新編日本古典文學全集 64), 小学館, 1999, 70쪽.41) 井上和人 外 訳, 『仮名草子集』(新編日本古典文學全集 64), 82쪽.42) 北原糸子 編, 『日本災害史』, 240쪽.43) 井上和人 外 訳, 『仮名草子集』(新編日本古典文學全集 64), 83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39

    직임가운데하나인용동(龍動)에서유래하는데,동시에용은중세에서는국토를

    휘감아지키는신적인존재이기도하였다.44)그것이점차로세속화하여마침내

    메기[鯰]로변한것이다.

    본서는이와같이여러가지설을거론하면서도그어느것하나만으로모든

    것을설명하지않는다.또한서민은그러한이론적인설명에만족하지도않았다.

    호코쿠(豊国)신사주변은흔들리지않았기때문에호코쿠신사에참배하는사람

    들이줄을설정도였다고한다.그리고점쟁이들은각종점을치고신사에서는신

    탁이행해졌다.저자는그러한급조된신탁에냉소적인시선을보내고있지만,그

    렇다고자기자신은냉정・침착했었는가하면,지진이일어났을때자신의아내로

    착각하여구마노(熊野)여승의손을잡고도망치게된바람에아내에게서버림받

    을정도였다.그이후출가승의모습을하고여기저기서일어난지진의모습을보

    거나들으면서본서를작성했다는것이다.이것은픽션이겠지만,사태가벌어지

    자당황하여허둥거리던자기자신을희화화함과동시에그러한서민의모습에

    따뜻한시선을보내고있다는점에본서의특징이있다.

    이러한서민의재해관을가장잘나타낸것이막말1855년10월2일에도

    (江戶)를중심으로한대지진후에시판되어대유행한메기그림이다.이것은가

    시마신궁의요석에눌려있던큰메기가난동을부려지진이일어났다는속설에

    의거하여메기를주인공으로하여지진의양상을그린한장의판화인데,200종

    류이상이팔려나갔다.고마쓰가즈히코(小松和彦)는그그림을네종류로분류

    하고있다.45)

    1.기괴한메기의활동으로발생한지진의참상을그린것.

    2.지진제압의가미로서가시마다이묘진(大明神)을필두로한가미들및민중

    에의한지진의제압,메기퇴치를그린것.

    44) 黑田日出男, 『龍の棲む日本』, 岩波新書, 2003.45) 小松和彦, 「民衆の記憶装置としての鯰絵」, 宮田登・高田誠 編 所收, 『鯰絵』, 里文出版, 1995.

  • 특집

    : 재해

    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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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40

    3.부흥경기로인해일부의직공인들이크게기뻐하며기괴한메기에게감사

    하고있는것,혹은그반대로지진으로인해직업을잃은사람들의궁핍상을

    그린지진직후의세상을그린것.

    4.부자들을응징한다든지새로운세계를출현시키는,이른바요나오시(世直

    し,세상바로잡기)메기를그린것.

    이와같이지진을일으키는메기는악한성질을띠는것이지만,동시에복신

    (福神)적성격도함께갖고있다.지진은“부의치우침을바로잡아직공인들에게

    경제적활력을가져오는경제적은혜”46)도베풀고있어환영받기도하였다.

    더욱이기타하라이토코는신적인존재로서의대형메기에비해서민적인

    모습으로그려지는작은메기(메기남자)에주목하고있다.“서민다운이메기남

    자가생생하게그려진것은지진에의해땅속및진흙탕에서해방되었기때문”47)

    이며,서민에게재해는비일상의해방감을동반한‘재해유토피아’48)의측면이있

    었다고지적하고있다.

    이상과같이고대중세에서는재해의원인에대해인간계를뛰어넘은초월

    적존재에서그이유를찾고있었고,그설명으로서천견설,음양도설,재앙신설

    등의형태를취하고있었다.그것이근세가되면서세속화의양상이강해져초월

    성이약해지고이러한주장들은점차변형되어갔다.한편으로는지진에대해객

    관적인자연현상으로간주하는사고방식이지식인들사이에서퍼져나감과동시

    에,다른한편으로는자연이인간의행위까지포함하여운행된다는사고방식에

    서안도쇼에키와같이초월적인하늘및가미가아니라자연이직접인간의행위

    에감응한다는발상도나타났다.일반서민들사이에서는중세의용이메기로변

    하여메기그림으로발전해갔다.이것은한편으로는초월적・신적인힘이왜소화

    하면서도결코사라져없어지지는않는다는근세적인상황을잘보여주고있다.

    46) 北原糸子, 『地震の社会史:安政大地震と民衆』, 講談社, 2000, 226쪽.47) 北原糸子, 『地震の社会史:安政大地震と民衆』, 228쪽.48) 北原糸子, 『地震の社会史:安政大地震と民衆』, 230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41

    중세의악마적존재가근세에는유령및요괴로변모하는것과마찬가지다.

    3) 근대의 재해관

    근대가되어최대의재해는1923년9월1일에발생한관동대지진이었다.도쿄를

    중심으로사망자가10만명을넘어수도권이궤멸적상태에빠졌다.관동대지진

    은특히화재에의한피해가심각하여혼조(本所)피복창(被服廠)이었던공원부

    지에서는회오리바람을동반한화재로인해4만명이숨졌다.49)현재그자리에

    는도쿄도(東京都)위령당(慰靈堂)이세워져대지진의사망자와도쿄대공습의

    사망자를같이모시고있다.

    관동대지진에서역시잊어서는안되는것은각종유언비어가난무하여사

    람들의불안을선동한일이다.그가운데에서도특히조선인및사회주의자가폭

    동을일으킨다는유언비어가사람들에게강한경계심을불러일으켜각지에서조

    직된자경단에의해조선인이라면가리지않고학살하는일조차발생했다.사회

    적불안이심각한상황에서정보전달이불충분했던것이원인이었다.

    관동대지진이후에이러한사태를반성하여다양한형태의사상적모색이

    전개되었다.예를들면,도쿄제국대학이과대학교수이자수필가로서알려진데

    라다도라히코(寺田寅彦,1878~1935)는대지진후조사를행하면서그와동시

    에몇몇의수필로대지진에관한생각을피력했다.그기본적사고방식은“문명

    이진전되면될수록자연의폭위(暴威)에의한재해가그격렬함의도를증가시

    킨다”50)는점에있다.즉문명이진전되면될수록인간이자연을거슬러인위적인

    제작물을만들어왔기때문에그것이재난을증가시킨다는것이다.여기서는단

    순하게문명이발전하여방재가철저해지면재해가적어진다고생각하는낙관론

    을비판하고있다.

    대지진을계기로문명의진화에대해반성한다는방향은새로운형태로천

    49) 吉村昭, 『関東大震災』, 文芸春愁, 2004.50) 寺田寅彦, 『天災と国防』, 講談社學術文庫, 2011, 12쪽.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42

    견설의소생도낳았다.작가이자날카로운문명비판가였던나가이가후(永井荷

    風,1879~1959)는일기『단장정일승』(斷腸亭日乘)에서“근년세간일반의사치

    와교만,끝을모르는탐욕적모습을되돌아보면이번의재앙은실로천벌(天罰)

    이라할만하다(1923년10월3일)”51)고적고있다.가후는“외관만을보기좋게

    꾸밀뿐백년의대계를준비하지않는국가의말로는바로이와같다.자업자득,

    나쁜일로천벌을받았다(天罰覿面)고할수밖에없다”52)고하는것처럼,표면만

    의무리한근대화를무계획적으로추진해온것에대한비판과재해를결부시키

    고있다.이것은재해를지배자에대한경계로삼는유교적인천견설과는달리근

    대문명의양상을되묻는새로운형태의‘천벌론’이라할수있다.

    새로운형태의천벌론으로서는기독교의입장에선우치무라간조(內村鑑

    三,1861~1930)의설이주목된다.우치무라는대지진후「천재와천벌및천혜」

    (天災と天罰及び天惠)를발표하여그천벌관을표명하였다.그에따르면“천재

    는글자그대로천재입니다.즉자연에서생긴일입니다.이점에어떠한불가사

    의한것도없습니다.지진은지질학의원리에따라충분히설명할수있는일입니

    다.그자체에정의도도덕도없습니다”53)라고하면서도,“그러나도덕과는관계

    없는자연적현상이라도이에접하는사람에따라은혜가되기도하고형벌이되

    기도합니다.그리고지진이전의도쿄시민은매우타락해있었기때문에이번의

    지진이적당한천벌로서그들에게느껴지게된것입니다”54)라고이어가고있다.

    즉,지진은실제로는자연현상이지만그것을받아들이는쪽에따라그의미가변

    한다는것이다.그리고도쿄시민이타락해있었기때문에관동대지진을천벌로

    서받아들이고있다는것이다.

    도쿄시민이어떻게타락해있었을까?우치무라는“이번대지진은미증유의

    천재임과동시에하늘로부터의견책이다.……근래정계는동물들의싸움터로

    51) 永井荷風, 『摘錄断腸亭日乗』 上, 磯田光一 編, 岩波書店, 1987, 69쪽.52) 永井荷風, 『摘錄断腸亭日乗』 上, 70쪽.53) 內村鑑三, 『內村鑑三全集』 28, 岩波書店 18쪽.54) 內村鑑三, 『內村鑑三全集』 28, 18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43

    변했고경제계역시상도덕이땅에떨어져있었으며풍속의퇴폐정도는아리시

    마(有島)사건과같은일을찬미하기에이를정도였다.따라서이번대지진은결

    코우연한일이아니다”라는시부사와에이이치(渋沢栄一)의말을인용하면서

    그의말에찬동의뜻을표명하고있다.

    아리시마사건이란대지진직전인1923년6월에작가아리시마다케오(有

    島武郞)가유부녀하타노아키코(波多野秋子)와동반자살한사건이며,불륜스

    캔들로서세간의화제가되었다(발견은7월7일).시부사와는그것을도덕적퇴폐

    의극치로서비난하고있는데,우치무라도그생각에동조하고있지만실제로는

    우치무라의경우단순히도덕적퇴폐만을문제삼고있지는않다.아리시마는우

    치무라의훈도를받아기독교에입신하였는데,아리시마의행위는배교행위로서

    결코용서할수없는것이었다.

    대지진이전의설교로서대지진직후에발표된우치무라의「신은업신여겨

    서는안된다」(神は侮るべからず)는아리시마사건을염두에두고배교자를엄하

    게추궁하는내용으로일관하고있다.그속에서“신이때때로노여움을드러내어

    명백한정의를왜곡하여기뻐하는자를벌하지않는다면,그때야말로세계는끝

    입니다”55)라고신벌이내려질것을예언하고있다.

    정작배교자아리시마는이미숨진상태였는데도,대지진후의논조에서는

    아리시마개인만이아니라퇴폐의극을달리는모든도쿄시민에게벌이내려져

    당연하다는논리를전개하고있다.우치무라는그후같은해에쓴몇몇문장에서

    소돔과고모라의일화를비롯하여『구약성서』에서신에등을돌려타락한지역에

    신벌이내려진사례를종종인용하면서신벌을강조한다.

    그러한문장중에서도「이학과신앙」(理学と信仰)은그의시각의특징을잘

    보여주고있다.거기서“세상모든일은두방면에서해석할수가있습니다.하나

    는자연현상으로서해석하는것입니다.또하나는신앙적으로해석하는것입니

    55) 內村鑑三, 『內村鑑三全集』 28, 10쪽.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44

    다”56)라고두가지시각을거론한후,“이학은세상모든일을설명할수가없습니

    다.이학위의이학이있습니다.신의성스러운뜻이이루어지고있는것입니다.

    세계의과거를되돌아보건대존재했던모든일은선한일이라는것을알수있습

    니다”57)라고하여,어디까지나이학을넘은신앙의입장에서모든일을‘신의성

    스러운뜻’으로받아들여야한다는것을주장하고있다.

    이와같이우치무라의천벌론은얼핏보면과거의천견설의흐름을잇는도

    덕주의적재해론처럼보이지만,실은어디까지나기독교에서의신의섭리와신

    앙의논의라는점에서이제까지일본에는없었던새로운주장이라할수있다.

    1945년8월9일나가사키(長崎)에원폭이투하되었는데,가톨릭신자가많

    은우라카미(浦上)천주당(天主堂)주변지역에서더큰피해가발생했다.나가사

    키의기독교는에도시대에혹독한탄압을견뎌왔는데,다시커다란수난을당하

    게된것이다.스스로그피해에괴로워하면서도부흥에앞장선나가이다카시(永

    井隆,1908~1951)는기독교입장에서나가사키의원폭의의미를받아들이려고

    했는데,그것이나가사키번제설(燔祭說)이라고불리는것이다.

    세계대전쟁이라는인류가저지른죄악에대한벌로서일본유일의성지인우

    라카미가희생의제단에서태워질순결한어린양으로선택된것이아니겠습니

    까?……신앙의자유가없는일본에서박해를받으면서지낸4백년,순교의피

    로물들이면서신앙을지켜온곳,전쟁중에도영원한평화를위해아침저녁으

    로기도를멈추지않았던우라카미교회야말로신의제단에바칠만한유일한

    어린양이지않았겠습니까?58)

    나가이는수난의땅나가사키야말로선택된땅으로서인류모두의죄를안

    고원폭의피해를맞게된것이라고하여거기서신의섭리를찾으려고한다.그

    56) 內村鑑三, 『內村鑑三全集』 28, 63쪽.57) 內村鑑三, 『內村鑑三全集』 28, 67쪽.58) 永井隆, 『長崎の鐘』, サンパウロ, 1995, 145∼146쪽.

  • 재해와 일본의 사상

    45

    것은고난을선택된자의징표로이해함으로써극복하려고하는것으로이논리

    역시종래일본에는없던발상이라할수있다.

    천견설,천벌설에대해서는동일본대지진후에도논의의초점이되었는데,

    필자자신이그논의에관계한바있다.59)여기서는그문제에대해논의할여유

    가없지만,그때종래일본의사상및종교이외에도남방계데라와다불교(소승

    불교)및티베트불교의입장에서도적극적으로자연재해에대해발언하였고(예

    를들면2012년달라이라마14세),국제적인반향을불러일으켰음은주목할만한

    일이었다.그러나그논의의과정에서위에서언급한일본에서의사상사적전개

    가아직충분히검토되지않았다고생각하게되었다.종종극심한재해를겪어온

    일본에서그것을어떻게사람들이받아들여왔는가를둘러싸고얼마나다양한

    사상적양상이전개되었는지에대해한번더되돌아보고논의할필요가있을것

    이다.

    59) 末木文美士, 『佛敎から現代を讀む』, 新潮社, 予定, 2012.

    * 이 글의 원문은 일본어로 작성되었으며 고희탁(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연구교수)이 번역하였다.

  • 일본비평 7호320

    ABSTRACT

    국문초록

    재해와 일본의 사상 | 스에키 후미히코

    투고일자 : 2012년 4월 29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5월 29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일본에서의재해와사상이라는문제에대해두가지관점에서논하고자한다.

    첫째,일본은최근두개의커다란지진재해를경험했다.1995년한신・아와지대지진

    과2011년동일본대지진이다.이두재해가일본의사상・정신상황에어떠한영향을

    미쳤는가에대해생각해보고자한다.한신・아와지대지진은같은해에일어난옴진리

    교의지하철사린살포사건과함께사상계의폐색적상황을낳았다.더욱이그후동일

    본대지진이발생하여다수의희생자를낳았고망자의문제를부상시키게되었다.

    둘째,역사를거슬러올라가재해의다발국인일본에서과거의사상은어떻게재해를

    받아들여왔는가에대해사상사적으로개관하고자한다.고대・중세에는천견설・음양

    도설・재앙신설등이있었는데,특히신불(神佛)이내리는재앙이라는설이널리수용

    되었다.근세가되면천리와인도의관계가문제가되어인간이자연과어떻게연관되

    어있는지가관심의초점이되었다.특히안도쇼에키는천견설의입장에서출발하면

    서인간의행위가자연에영향을미친다는독자적인설을전개하였다.일반민중들속

    에서는거듭되는자연재해에대해각종속설이등장했다.특히막말안세이(安政)대지

    진(1855)후에는메기그림이대유행하였는데,메기에의탁하여재해의다양한양상이

    묘사되었다.근대에이르면새롭게기독교가들어와,관동대지진(1923)후에는우치무

    라간조가지진을신의벌로간주하는새로운입장을표명하였다.

    주제어 :재해,자연,천견설,음양도설,재앙신설,천벌론

    재난과 이웃, 관동대지진에서 후쿠시마까지 : 식민지와 수용소, 김동환의 서사시 「국

    경의 밤」과 「승천하는 청춘」을 단서로 | 황호덕

    투고일자 : 2012년 6월 10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6월 22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시인김동환은관동대지진(1923)후에두권의장편서사시집을출간한다.「국경의밤」

  • 영문초록

    327

    영문초록 Abstract

    Disasters in Japanese Intellectual History _ SUEKI, Fumihiko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discuss the issues of natural disaster in

    Japanese intellectual history from two different viewpoints.

    First, I would like to investigate the recent intellectual situations in Japan

    surrounding two large earthquakes: the one occurred in western part of

    Japan in 1995 and the other was in the eastern part of Japan in 2011. After

    the disaster in 1995, a sense of impotence prevailed in Japan. After the

    disaster in 2011, the issues of the dead became an important subject in the

    intellectual world.

    Second, I would like to reflect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thought

    surrounding natural disasters. In the ancient and medieval periods, the

    idea of punishment from heaven, yin-yang theory and the idea of divine

    wrath were the main ideas on the causes of disasters. In particular, the

    idea of divine wrath was the most popular. In the early modern period,

    the relations between nature and human activities became an important

    topic in the intellectual world. Ando Shoeki(1703~62) was the most

    exemplary philosopher who investigated the cause of the natural disaster

    which he himself experienced in Tohoku district. In the world of popular

    belief, trembling of a large divine catfish was thought to be the cause of

    earthquake. In the modern period, Christianity introduced a new idea of

    “punishment from God” as the cause of natural disasters.

    Keywords : natural disaster, nature, punishment from heaven, yin-yang

    theory, divine wrath, punishment from God

    Disaster and Neighborhood, from Great Kanto Earthquake(1923) to Fukushima Disaster(2011): Colony and Camp, A Contemplation from

    재해와 일본의 사상머리말1. '1·17'에서 '3·11'로 : 지진재해와 현대의 정신상황2. 재해의 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