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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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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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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를 위한 지침 (2)

지난 호에 이어 개조께서 초신자를 대상으로 가르침을 해설하여 주신 것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3월 발간 현재 오야소노 시보)에 게재된 것으로 마코토 기초행에 관한 질문에 답해주신 것입니다

마코토 기초행은 대승회에서 영능발동까지의 오늘날의 상승에자를 하나로 한 접심수행회로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리 향상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일여의 길 구도편 60쪽을 참조해 주십시오

「영적인 것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고민하던 신자 분이 마코토 기초행을 통해 그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개조 그 분은 스스로를 깊이 반성하셨을 것입니다 깊이 반성한 결과 자신의 결점에 스스로 집착했거나 혹은 깊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절대 구제받지 못한다는 아념(我念)에 사로잡

Ⅰ개조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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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접심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개조와 영조 (1955년)

힌 것이지요 기초행을 통해 이 아념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아념(我念)」이란 어떤 것인가요

개조 자신에게만 몰두하고 자기 방식대로 생각해버리는 것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뜻인지 알겠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면 교법을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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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신만의 생각으로 자신의 부족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마음대로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군요

개조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부처님께서 주신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그 신자분과 같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면 사로잡혀 있던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 갈 때 신심을 향상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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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친교

5월의 호마 법요를 맞이하며

이하는 1953년 5월 28일 법전공에서 엔슈영조께서 하신말씀으로 당시 월간지 내외시보 20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오늘도 비가 많이 내려서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귀원하시기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포교사 분이 새로운 신자 분을 위해 가지1의

식을 행했습니다 그 신자 분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드리자 에비스님과 대흑님(범어로 마하카라)2이 보이고 대흑(大黒)님이 기울어져 있는 것3이 투시되었습니다 그 정황을 말씀 드리자

1) 「재화초복」 등 부처님의 가호를 가져오는 진언 밀교의 수법 초창기에 개조와 영조 법을 익힌 제자에 의해 수법되었다

2) 대흑천(大黒天)은 본래 힌두교의 마하카라(전쟁의 신)에서 유래 일본에서는 대흑(大黒)이라는 글자가 대국(大国) 과 비슷한 점에서 예로부터 신도의 신 대국주(大国主)와 혼동되어 함께 신앙되어 왔다 대흑천은 식물과 재복의 신으로 쌀 가마니에 올라타 있는 모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비스는 고대에는 「풍어추복」의 어업의 신으로 신앙되어 왔다

시대와 더불어 「상업번성」과 「오곡풍작」을 가져오는 상업과 농업의 신으로 바뀌었다 대흑(大黒)과 에비스는 각각 칠복신(복을 전해준다고 하는 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마하카라의 일본어인 대흑천(大黒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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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가 조각한 에비스님(우측)과 대흑천님(좌측)

그 신자 분께서는 굉장히 놀라시며 ldquo사실은 제가 시집 왔을 때 남편의 가족들은 부유했고 모든 상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위의 집에서 저의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후부터 사돈집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가족들은 차례로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에비스님 대흑(大黒)님께 아무쪼록 예전처럼 집안을 다시 번성하게 해 달라고 오로지 기도 드렸습니다rdquo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 신자 분은 자신의 신앙의 기준이 물질적인 이익과 개인적인 부유함이었다는 과오를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그 분은 주변의 세상을 위해 남을 도와가며 바른 길을 정진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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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인연의 형태를

인식하고 그 원인을 없애는 길을 찾지 않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처님께 바라는 것 보다 우리가 병에 걸리고 불행한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달으며 바꿔가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바르게 인식하고 선한 것을 인식했을 때는 남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해가려고 노력하고 실천 할 때 비로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 달 5월 19일에는 lsquo오다이바(동경에 있는 바다)rsquo로 셋째 딸4과 함께 학교 소풍에 참가했습니다 소풍을 가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lsquo선생님들은 힘들겠다rsquo 고 지금까지 머리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가 지날 때까지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정말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배를 탔을 때 한 남자 아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뱃머리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놀란 얼굴을 하시고 큰 소리로 ldquo그 애를 안 쪽으로 들여 보내세요rdquo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그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챙겨주셨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멀미를 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도 가르침의 자식에게 그러한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

4) 현재 신뇨 게이슈사마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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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절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버려둔 쓰레기를 정리

하는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후에 오다이바 지역의 관할 담당자께서 학교측으로 감사엽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뒤에 정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감사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엽서를 보면 소풍이 끝난 후에 공원이 얼마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행 후에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둔 채로 돌아오는 학교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지막까지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멀미를 하지는 않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확인하며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활기차게 주위를 세심히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가르침을 정진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남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본존5을 더럽히고 교법에 상처를 내는 일은 남이 하는 비난과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의 언행에 달린 것임을 이 일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6

5) 당시는 아직 부동님을 본존으로 모시던 시대였다 6) 법난이 일어나고 세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괴로웠던 것을 언급한 내용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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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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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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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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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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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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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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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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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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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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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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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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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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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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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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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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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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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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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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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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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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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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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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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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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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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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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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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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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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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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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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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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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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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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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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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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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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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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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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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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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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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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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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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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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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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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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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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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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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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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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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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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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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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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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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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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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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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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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접심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개조와 영조 (1955년)

힌 것이지요 기초행을 통해 이 아념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아념(我念)」이란 어떤 것인가요

개조 자신에게만 몰두하고 자기 방식대로 생각해버리는 것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뜻인지 알겠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면 교법을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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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신만의 생각으로 자신의 부족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마음대로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군요

개조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부처님께서 주신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그 신자분과 같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면 사로잡혀 있던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 갈 때 신심을 향상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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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친교

5월의 호마 법요를 맞이하며

이하는 1953년 5월 28일 법전공에서 엔슈영조께서 하신말씀으로 당시 월간지 내외시보 20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오늘도 비가 많이 내려서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귀원하시기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포교사 분이 새로운 신자 분을 위해 가지1의

식을 행했습니다 그 신자 분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드리자 에비스님과 대흑님(범어로 마하카라)2이 보이고 대흑(大黒)님이 기울어져 있는 것3이 투시되었습니다 그 정황을 말씀 드리자

1) 「재화초복」 등 부처님의 가호를 가져오는 진언 밀교의 수법 초창기에 개조와 영조 법을 익힌 제자에 의해 수법되었다

2) 대흑천(大黒天)은 본래 힌두교의 마하카라(전쟁의 신)에서 유래 일본에서는 대흑(大黒)이라는 글자가 대국(大国) 과 비슷한 점에서 예로부터 신도의 신 대국주(大国主)와 혼동되어 함께 신앙되어 왔다 대흑천은 식물과 재복의 신으로 쌀 가마니에 올라타 있는 모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비스는 고대에는 「풍어추복」의 어업의 신으로 신앙되어 왔다

시대와 더불어 「상업번성」과 「오곡풍작」을 가져오는 상업과 농업의 신으로 바뀌었다 대흑(大黒)과 에비스는 각각 칠복신(복을 전해준다고 하는 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마하카라의 일본어인 대흑천(大黒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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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가 조각한 에비스님(우측)과 대흑천님(좌측)

그 신자 분께서는 굉장히 놀라시며 ldquo사실은 제가 시집 왔을 때 남편의 가족들은 부유했고 모든 상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위의 집에서 저의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후부터 사돈집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가족들은 차례로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에비스님 대흑(大黒)님께 아무쪼록 예전처럼 집안을 다시 번성하게 해 달라고 오로지 기도 드렸습니다rdquo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 신자 분은 자신의 신앙의 기준이 물질적인 이익과 개인적인 부유함이었다는 과오를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그 분은 주변의 세상을 위해 남을 도와가며 바른 길을 정진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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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인연의 형태를

인식하고 그 원인을 없애는 길을 찾지 않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처님께 바라는 것 보다 우리가 병에 걸리고 불행한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달으며 바꿔가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바르게 인식하고 선한 것을 인식했을 때는 남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해가려고 노력하고 실천 할 때 비로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 달 5월 19일에는 lsquo오다이바(동경에 있는 바다)rsquo로 셋째 딸4과 함께 학교 소풍에 참가했습니다 소풍을 가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lsquo선생님들은 힘들겠다rsquo 고 지금까지 머리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가 지날 때까지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정말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배를 탔을 때 한 남자 아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뱃머리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놀란 얼굴을 하시고 큰 소리로 ldquo그 애를 안 쪽으로 들여 보내세요rdquo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그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챙겨주셨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멀미를 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도 가르침의 자식에게 그러한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

4) 현재 신뇨 게이슈사마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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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절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버려둔 쓰레기를 정리

하는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후에 오다이바 지역의 관할 담당자께서 학교측으로 감사엽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뒤에 정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감사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엽서를 보면 소풍이 끝난 후에 공원이 얼마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행 후에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둔 채로 돌아오는 학교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지막까지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멀미를 하지는 않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확인하며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활기차게 주위를 세심히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가르침을 정진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남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본존5을 더럽히고 교법에 상처를 내는 일은 남이 하는 비난과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의 언행에 달린 것임을 이 일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6

5) 당시는 아직 부동님을 본존으로 모시던 시대였다 6) 법난이 일어나고 세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괴로웠던 것을 언급한 내용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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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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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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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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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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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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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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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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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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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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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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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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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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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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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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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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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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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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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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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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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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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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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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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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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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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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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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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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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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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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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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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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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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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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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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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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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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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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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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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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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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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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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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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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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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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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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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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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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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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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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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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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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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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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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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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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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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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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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신만의 생각으로 자신의 부족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마음대로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군요

개조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부처님께서 주신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그 신자분과 같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면 사로잡혀 있던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 갈 때 신심을 향상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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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친교

5월의 호마 법요를 맞이하며

이하는 1953년 5월 28일 법전공에서 엔슈영조께서 하신말씀으로 당시 월간지 내외시보 20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오늘도 비가 많이 내려서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귀원하시기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포교사 분이 새로운 신자 분을 위해 가지1의

식을 행했습니다 그 신자 분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드리자 에비스님과 대흑님(범어로 마하카라)2이 보이고 대흑(大黒)님이 기울어져 있는 것3이 투시되었습니다 그 정황을 말씀 드리자

1) 「재화초복」 등 부처님의 가호를 가져오는 진언 밀교의 수법 초창기에 개조와 영조 법을 익힌 제자에 의해 수법되었다

2) 대흑천(大黒天)은 본래 힌두교의 마하카라(전쟁의 신)에서 유래 일본에서는 대흑(大黒)이라는 글자가 대국(大国) 과 비슷한 점에서 예로부터 신도의 신 대국주(大国主)와 혼동되어 함께 신앙되어 왔다 대흑천은 식물과 재복의 신으로 쌀 가마니에 올라타 있는 모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비스는 고대에는 「풍어추복」의 어업의 신으로 신앙되어 왔다

시대와 더불어 「상업번성」과 「오곡풍작」을 가져오는 상업과 농업의 신으로 바뀌었다 대흑(大黒)과 에비스는 각각 칠복신(복을 전해준다고 하는 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마하카라의 일본어인 대흑천(大黒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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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가 조각한 에비스님(우측)과 대흑천님(좌측)

그 신자 분께서는 굉장히 놀라시며 ldquo사실은 제가 시집 왔을 때 남편의 가족들은 부유했고 모든 상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위의 집에서 저의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후부터 사돈집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가족들은 차례로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에비스님 대흑(大黒)님께 아무쪼록 예전처럼 집안을 다시 번성하게 해 달라고 오로지 기도 드렸습니다rdquo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 신자 분은 자신의 신앙의 기준이 물질적인 이익과 개인적인 부유함이었다는 과오를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그 분은 주변의 세상을 위해 남을 도와가며 바른 길을 정진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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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인연의 형태를

인식하고 그 원인을 없애는 길을 찾지 않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처님께 바라는 것 보다 우리가 병에 걸리고 불행한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달으며 바꿔가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바르게 인식하고 선한 것을 인식했을 때는 남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해가려고 노력하고 실천 할 때 비로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 달 5월 19일에는 lsquo오다이바(동경에 있는 바다)rsquo로 셋째 딸4과 함께 학교 소풍에 참가했습니다 소풍을 가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lsquo선생님들은 힘들겠다rsquo 고 지금까지 머리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가 지날 때까지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정말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배를 탔을 때 한 남자 아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뱃머리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놀란 얼굴을 하시고 큰 소리로 ldquo그 애를 안 쪽으로 들여 보내세요rdquo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그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챙겨주셨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멀미를 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도 가르침의 자식에게 그러한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

4) 현재 신뇨 게이슈사마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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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절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버려둔 쓰레기를 정리

하는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후에 오다이바 지역의 관할 담당자께서 학교측으로 감사엽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뒤에 정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감사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엽서를 보면 소풍이 끝난 후에 공원이 얼마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행 후에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둔 채로 돌아오는 학교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지막까지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멀미를 하지는 않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확인하며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활기차게 주위를 세심히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가르침을 정진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남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본존5을 더럽히고 교법에 상처를 내는 일은 남이 하는 비난과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의 언행에 달린 것임을 이 일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6

5) 당시는 아직 부동님을 본존으로 모시던 시대였다 6) 법난이 일어나고 세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괴로웠던 것을 언급한 내용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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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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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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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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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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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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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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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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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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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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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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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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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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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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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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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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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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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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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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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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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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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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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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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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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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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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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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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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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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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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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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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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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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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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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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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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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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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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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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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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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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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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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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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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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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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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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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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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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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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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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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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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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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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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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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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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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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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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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친교

5월의 호마 법요를 맞이하며

이하는 1953년 5월 28일 법전공에서 엔슈영조께서 하신말씀으로 당시 월간지 내외시보 20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오늘도 비가 많이 내려서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귀원하시기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포교사 분이 새로운 신자 분을 위해 가지1의

식을 행했습니다 그 신자 분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드리자 에비스님과 대흑님(범어로 마하카라)2이 보이고 대흑(大黒)님이 기울어져 있는 것3이 투시되었습니다 그 정황을 말씀 드리자

1) 「재화초복」 등 부처님의 가호를 가져오는 진언 밀교의 수법 초창기에 개조와 영조 법을 익힌 제자에 의해 수법되었다

2) 대흑천(大黒天)은 본래 힌두교의 마하카라(전쟁의 신)에서 유래 일본에서는 대흑(大黒)이라는 글자가 대국(大国) 과 비슷한 점에서 예로부터 신도의 신 대국주(大国主)와 혼동되어 함께 신앙되어 왔다 대흑천은 식물과 재복의 신으로 쌀 가마니에 올라타 있는 모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비스는 고대에는 「풍어추복」의 어업의 신으로 신앙되어 왔다

시대와 더불어 「상업번성」과 「오곡풍작」을 가져오는 상업과 농업의 신으로 바뀌었다 대흑(大黒)과 에비스는 각각 칠복신(복을 전해준다고 하는 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마하카라의 일본어인 대흑천(大黒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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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가 조각한 에비스님(우측)과 대흑천님(좌측)

그 신자 분께서는 굉장히 놀라시며 ldquo사실은 제가 시집 왔을 때 남편의 가족들은 부유했고 모든 상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위의 집에서 저의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후부터 사돈집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가족들은 차례로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에비스님 대흑(大黒)님께 아무쪼록 예전처럼 집안을 다시 번성하게 해 달라고 오로지 기도 드렸습니다rdquo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 신자 분은 자신의 신앙의 기준이 물질적인 이익과 개인적인 부유함이었다는 과오를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그 분은 주변의 세상을 위해 남을 도와가며 바른 길을 정진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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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인연의 형태를

인식하고 그 원인을 없애는 길을 찾지 않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처님께 바라는 것 보다 우리가 병에 걸리고 불행한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달으며 바꿔가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바르게 인식하고 선한 것을 인식했을 때는 남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해가려고 노력하고 실천 할 때 비로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 달 5월 19일에는 lsquo오다이바(동경에 있는 바다)rsquo로 셋째 딸4과 함께 학교 소풍에 참가했습니다 소풍을 가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lsquo선생님들은 힘들겠다rsquo 고 지금까지 머리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가 지날 때까지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정말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배를 탔을 때 한 남자 아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뱃머리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놀란 얼굴을 하시고 큰 소리로 ldquo그 애를 안 쪽으로 들여 보내세요rdquo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그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챙겨주셨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멀미를 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도 가르침의 자식에게 그러한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

4) 현재 신뇨 게이슈사마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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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절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버려둔 쓰레기를 정리

하는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후에 오다이바 지역의 관할 담당자께서 학교측으로 감사엽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뒤에 정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감사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엽서를 보면 소풍이 끝난 후에 공원이 얼마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행 후에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둔 채로 돌아오는 학교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지막까지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멀미를 하지는 않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확인하며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활기차게 주위를 세심히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가르침을 정진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남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본존5을 더럽히고 교법에 상처를 내는 일은 남이 하는 비난과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의 언행에 달린 것임을 이 일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6

5) 당시는 아직 부동님을 본존으로 모시던 시대였다 6) 법난이 일어나고 세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괴로웠던 것을 언급한 내용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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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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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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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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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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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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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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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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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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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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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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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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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20

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21

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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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23

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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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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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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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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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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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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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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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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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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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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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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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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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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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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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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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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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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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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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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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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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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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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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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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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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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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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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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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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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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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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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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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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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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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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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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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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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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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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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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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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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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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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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가 조각한 에비스님(우측)과 대흑천님(좌측)

그 신자 분께서는 굉장히 놀라시며 ldquo사실은 제가 시집 왔을 때 남편의 가족들은 부유했고 모든 상황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위의 집에서 저의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후부터 사돈집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가족들은 차례로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에비스님 대흑(大黒)님께 아무쪼록 예전처럼 집안을 다시 번성하게 해 달라고 오로지 기도 드렸습니다rdquo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 신자 분은 자신의 신앙의 기준이 물질적인 이익과 개인적인 부유함이었다는 과오를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그 분은 주변의 세상을 위해 남을 도와가며 바른 길을 정진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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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인연의 형태를

인식하고 그 원인을 없애는 길을 찾지 않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처님께 바라는 것 보다 우리가 병에 걸리고 불행한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달으며 바꿔가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바르게 인식하고 선한 것을 인식했을 때는 남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해가려고 노력하고 실천 할 때 비로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 달 5월 19일에는 lsquo오다이바(동경에 있는 바다)rsquo로 셋째 딸4과 함께 학교 소풍에 참가했습니다 소풍을 가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lsquo선생님들은 힘들겠다rsquo 고 지금까지 머리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가 지날 때까지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정말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배를 탔을 때 한 남자 아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뱃머리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놀란 얼굴을 하시고 큰 소리로 ldquo그 애를 안 쪽으로 들여 보내세요rdquo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그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챙겨주셨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멀미를 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도 가르침의 자식에게 그러한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

4) 현재 신뇨 게이슈사마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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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절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버려둔 쓰레기를 정리

하는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후에 오다이바 지역의 관할 담당자께서 학교측으로 감사엽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뒤에 정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감사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엽서를 보면 소풍이 끝난 후에 공원이 얼마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행 후에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둔 채로 돌아오는 학교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지막까지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멀미를 하지는 않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확인하며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활기차게 주위를 세심히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가르침을 정진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남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본존5을 더럽히고 교법에 상처를 내는 일은 남이 하는 비난과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의 언행에 달린 것임을 이 일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6

5) 당시는 아직 부동님을 본존으로 모시던 시대였다 6) 법난이 일어나고 세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괴로웠던 것을 언급한 내용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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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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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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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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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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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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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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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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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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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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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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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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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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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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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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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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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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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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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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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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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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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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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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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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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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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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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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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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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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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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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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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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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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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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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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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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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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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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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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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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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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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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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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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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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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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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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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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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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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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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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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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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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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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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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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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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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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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6

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인연의 형태를

인식하고 그 원인을 없애는 길을 찾지 않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처님께 바라는 것 보다 우리가 병에 걸리고 불행한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달으며 바꿔가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바르게 인식하고 선한 것을 인식했을 때는 남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해가려고 노력하고 실천 할 때 비로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 달 5월 19일에는 lsquo오다이바(동경에 있는 바다)rsquo로 셋째 딸4과 함께 학교 소풍에 참가했습니다 소풍을 가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lsquo선생님들은 힘들겠다rsquo 고 지금까지 머리로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가 지날 때까지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정말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배를 탔을 때 한 남자 아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뱃머리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놀란 얼굴을 하시고 큰 소리로 ldquo그 애를 안 쪽으로 들여 보내세요rdquo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그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챙겨주셨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멀미를 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도 가르침의 자식에게 그러한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

4) 현재 신뇨 게이슈사마를 가리킴

7

다고 절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버려둔 쓰레기를 정리

하는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후에 오다이바 지역의 관할 담당자께서 학교측으로 감사엽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뒤에 정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감사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엽서를 보면 소풍이 끝난 후에 공원이 얼마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행 후에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둔 채로 돌아오는 학교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지막까지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멀미를 하지는 않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확인하며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활기차게 주위를 세심히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가르침을 정진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남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본존5을 더럽히고 교법에 상처를 내는 일은 남이 하는 비난과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의 언행에 달린 것임을 이 일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6

5) 당시는 아직 부동님을 본존으로 모시던 시대였다 6) 법난이 일어나고 세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괴로웠던 것을 언급한 내용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8

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9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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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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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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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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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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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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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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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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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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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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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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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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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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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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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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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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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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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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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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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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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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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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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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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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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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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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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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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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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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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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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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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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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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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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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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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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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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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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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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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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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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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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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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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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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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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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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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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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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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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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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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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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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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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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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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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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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절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버려둔 쓰레기를 정리

하는 것도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후에 오다이바 지역의 관할 담당자께서 학교측으로 감사엽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풍이 끝난 뒤에 정말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감사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엽서를 보면 소풍이 끝난 후에 공원이 얼마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행 후에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남겨둔 채로 돌아오는 학교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지막까지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되겠지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멀미를 하지는 않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확인하며 아이들을 꼼꼼히 챙겨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활기차게 주위를 세심히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가르침을 정진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남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본존5을 더럽히고 교법에 상처를 내는 일은 남이 하는 비난과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의 언행에 달린 것임을 이 일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6

5) 당시는 아직 부동님을 본존으로 모시던 시대였다 6) 법난이 일어나고 세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괴로웠던 것을 언급한 내용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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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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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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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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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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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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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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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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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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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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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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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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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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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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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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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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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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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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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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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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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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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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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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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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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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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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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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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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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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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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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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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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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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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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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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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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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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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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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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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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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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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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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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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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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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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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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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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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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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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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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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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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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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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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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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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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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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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8

게이슈사마 5학년 때의 소풍사진 가장 뒤쪽 열 오른쪽에서 열 번째가 게이슈사

마 영조는 가장 오른쪽에 계시고 개조는 네 번째에 계신다 영조는 소풍에서의

일을 가르침으로 나타내셨다

이 소풍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사진사가 ldquo첫 번째 줄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주세요rdquo라고 외쳤지만 사진사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진흙 위에서 옷을 더럽혀가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들 앞으로 나와서 ldquo이렇게 하는 거야rdquo 하며 진흙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사진사가 말한 것을 아이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겠지요

9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10

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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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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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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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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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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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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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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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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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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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20

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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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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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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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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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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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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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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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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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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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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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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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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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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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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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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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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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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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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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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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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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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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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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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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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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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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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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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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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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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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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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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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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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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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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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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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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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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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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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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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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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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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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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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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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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9: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9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먼저 실행해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도 불평불만 없이 기꺼이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저희들이 정말 배워야 할 큰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각 조의 담당자들이 각자 조원들의 숫자를 세며 확인해서 선생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질서 있게 챙기며 차분하게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도 부처님의 깊은 설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날을 정말 의미 있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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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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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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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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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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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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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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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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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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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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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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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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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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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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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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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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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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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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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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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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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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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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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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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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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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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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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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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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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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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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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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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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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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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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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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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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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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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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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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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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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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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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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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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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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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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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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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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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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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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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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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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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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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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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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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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0: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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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2년 11월 24일에 행해졌던 영 하모니 선데이

라는 청년행사에서 신뇨 게이슈사마께서 청년들에게 말씀

해 주신 내용입니다 마음의 수행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스스로의 불성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해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어린 시절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나요 뒤에 숨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에게 ldquo마사코(게이슈사마)는 나중에 사회에서 저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요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영조께서는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용기를 주셨고 그 후로 저는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부장이니까 더 앞으로 나아가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Ⅱ신뇨 제1대 종정예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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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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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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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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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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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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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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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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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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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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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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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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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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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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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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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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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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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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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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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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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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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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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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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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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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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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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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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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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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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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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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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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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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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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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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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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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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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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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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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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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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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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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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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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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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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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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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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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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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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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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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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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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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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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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1: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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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구해가고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구제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할을 다 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개조와 영조 두 법사님은 반드시 힘을 쏟아주십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뇨의 가르침입니다

법연과 불성

우리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신뇨 가르침을 구해가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정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에 걸어주신 청정한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법의 연(緣)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법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로 인도하고 남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불성을 닦아가는 것이 실천입니다 ldquo신앙rdquo이란 스스로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실천을 관철해 갈 때 신뇨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의 힘이 쏟아지고 저희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정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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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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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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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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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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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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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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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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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20

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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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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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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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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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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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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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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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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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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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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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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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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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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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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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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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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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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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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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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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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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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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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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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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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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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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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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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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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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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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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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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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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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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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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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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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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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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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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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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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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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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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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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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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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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2: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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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힘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와 사랑과 힘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게 두 사람에게라도 되돌려줘야 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신뇨 가르침이고 개조와 영조님의 두 법사님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실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개조와 영조의 참마음에 이어지는 일입니다

가르침에 정진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아 가는 것 접심을 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회합에 참석하여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도전하고 이겨내 는지를 듣는 것 승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자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가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자신의 체험도 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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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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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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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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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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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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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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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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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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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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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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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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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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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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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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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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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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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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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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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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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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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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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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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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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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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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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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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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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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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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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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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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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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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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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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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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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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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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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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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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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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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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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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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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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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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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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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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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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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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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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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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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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3: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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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와 영조의 고난

신뇨 개조와 영조는 많은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의 부처님께서 고행 속에서 해탈하신 것과 같이 개조와 영조께서도 팔에 촛불을 세우시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해 주셨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잠을 잘 시간도 식사할 시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열반경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1 믿어주시고 구제의 손을 펼쳐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신뇨 청년들을 개조와 영조님 두 법사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끌어 주시고 손을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전해가는 것이 청년 바로 여러분입니다

영원토록 새로운 가르침

2천년 전의 불교는 고대 민족에게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그 당시에는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 세상을 일깨우고 구제하는 사람은 탄생합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

1) 법난을 둘러싼 정황에 관한 것 신뇨엔의 역사 속에서 이 시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외시보 (2012년 8월호) 와 일여의 길 구도편 76~100쪽을 참조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을 쏟아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에피소드는 법의 울림 Vol 5 24~25쪽에 게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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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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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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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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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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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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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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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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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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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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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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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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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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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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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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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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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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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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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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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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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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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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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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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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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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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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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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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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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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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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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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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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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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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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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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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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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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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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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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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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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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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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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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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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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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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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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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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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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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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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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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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4: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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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위해 두 법사님은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르침이 멈추지 않도록 몇 백 년 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시대를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신뇨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나쁘다거나 사회와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힘든 시대를 신뇨 가르침은 이겨내 왔습니다 그렇게 장년부 분들께서 가르침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몇 백 년 후에도 신뇨 가르침이 살려질 수 있도록 저도 깨달아가며 정진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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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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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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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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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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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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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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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22

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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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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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25

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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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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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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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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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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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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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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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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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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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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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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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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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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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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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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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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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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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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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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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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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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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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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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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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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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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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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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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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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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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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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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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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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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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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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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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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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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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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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15: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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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인님은 어렸을 때 치분1님이라고 불리며 개조와 영조

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9일 동경 다치카와에서 태어나

셨습니다 불과 22개월의 짧은 생애에도 순한 신심으로

개조와 영조 그리고 교도인님을 알고 있는 신도들에게 나

를 멸하고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의 각오를 보여주

셨습니다「탐방신뇨엔 역사」이번 호에서는 신뇨 개조

와 영조가 입조각2을 결성하고 1936년 6월 9일에 교도인

님이 타계하시기까지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교도인님(1936년 5월)

1) 교도인님의 이름을 「토모후미」라고 부르는데 이 한자에는 「치분」이라는 발음도 있다 타계 후에는 이쪽이 쓰이게 되었다

2) 1936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신뇨엔은 「입조각」으로 불렸다

Ⅲ신뇨엔 역사

역사탐방

입조각과 교도인님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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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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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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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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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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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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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22

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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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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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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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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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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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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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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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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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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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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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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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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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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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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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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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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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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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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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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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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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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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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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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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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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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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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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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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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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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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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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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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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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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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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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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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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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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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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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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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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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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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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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6: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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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개현(正法開顯)의 험한 길

「현에서 밀로 들어가 바르게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바르게 길을 관철할 것」이라는 근본영언 아래 1936년 2월 8일에 입교한 후로 신뇨 개조와 영조는 중생제도에 몸을 바쳐 길 없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중모색(暗中模索) 중에 교법을 개척한 업적이었습니다 정법을 확립하는 길에 있어서의 고난은 말로 다하기는 어려우나 개조는 옛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친교하고 계십니다

1936년 나는 총본산 다이고지의 사에키 에겐 문적 아래에

서 득도하고 정법 확립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후 타향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치카와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교다 엉터리 기도꾼이라는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도 가

르침을 관철해 왔습니다 지역의 옛 명사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나를 찾아와 신상

상담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갖 비난비방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ldquo토지와 집을 팔고 다치카와를 떠나세요 다

치카와는 예로부터 종교의 정글입니다 당신도 얼마 안가

매장될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제자 프란나3가 미개한 야만국에 개교(開教)를 위

3) 불타가 프란나에게 「스다나 나라의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자 프란나는 그것까지도 기쁨으로 여기고 포교를 하겠다고 답했다 스다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믿음의 힘이 알려진 프란나는 후에 불타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몇 천 명의 재가신자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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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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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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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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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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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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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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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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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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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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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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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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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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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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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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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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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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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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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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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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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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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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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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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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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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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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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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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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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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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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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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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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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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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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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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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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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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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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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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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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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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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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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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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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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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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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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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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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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7: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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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떠날 각오를 정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이 땅

을 개발해 가겠다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습니다

신참자(新参者)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습과 더불어 쇼와 초년부터 10년에 걸쳐 다치카와에는 부동신앙을 표방하는 종교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낫기를」 「장사가 잘 되기를」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하면 효험이 크다고 선전했으며 그렇게 해서 많은 신자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교도는 많은 행자가 다치카와 거리를 누비다 월례 참배라고 말하며 집집마다 부적을 나누어 주며 기도해 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속 신앙이 확산하는 이 땅에 신뇨 개조와 영조는 정법 확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가 설하시는 가르침과 민속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고 낭코쵸에 있는 임시안치소를 방문하는 신도는 한결 같이 이익을 구하거나 또는 실제로 민속신앙을 하고 있으면서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조각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이 참배를 올 때마다 개조와 영조는 오식을 행하기도 하고 영능을 통해서 이익신앙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하며 부처님 중심의 바른 신심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받아들이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독실한 교도 이케다 누이님은 이렇게 회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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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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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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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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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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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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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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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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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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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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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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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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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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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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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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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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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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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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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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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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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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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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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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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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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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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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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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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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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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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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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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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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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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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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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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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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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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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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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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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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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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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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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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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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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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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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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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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8: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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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신뇨엔은『다치카와 부동님』이라고 불리며 지

역에서는『잘 맞춘다』라는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 때

에는 상업 번성 가내 안전을 원하는 이익신심이 번성하

고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임시안치소로

달려와 『가지(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개조께 부탁을 했

습니다 개조의 오식(奥式)의 위력은 대단해서 구제된 분

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참배하러 오면 개조와 영조

께서는 접심을 통해서 바른 신심의 길4을 말씀해 주셨습니

다 당시의 수행은 발고대수5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

에 영언은 없었습니다 깊이 입신한 영조께서 나타내시는

ldquo체현(体現)rdquo을 통해서 개조께서 알기 쉽게 해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가할 때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본위의 신앙이므로 상황이 나빠지면 한 번씩

기도를 부탁하러 오셨습니다만 개조와 영조께서는 한 번

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기도를 해 주셨

습니다 그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제자로서 개조 영조와 함께 했던 마츠모토님(고인)은 교법이 출발한 날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4) 자기본위가 아닌 상대본위 부처님본위를 말한다5) 발고대수란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보살의 자비)의 현

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뇨엔의 발고대수는 수행자가 선을 행하고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도인과 신도인이 타계한 후에 현현되었다 고뇌가 자비에 의해 구제되는 과정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부 신뇨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오야소노 시보 2012 년 6 월호를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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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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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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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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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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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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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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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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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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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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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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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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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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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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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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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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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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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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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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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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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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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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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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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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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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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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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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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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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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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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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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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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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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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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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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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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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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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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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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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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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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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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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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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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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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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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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9: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19

「가르침의 길로 출발하자 개조와 영조께서는 순식간에

하루 세 번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

습니다 절은 병의 치유나 상업번성을 기도해 달라고 하는

신도로 가득했고 바른 신앙의 길에는 한 번도 귀를 기울

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하여 큰 힘을 받아도

보시를 하지 않았고 겨우 물품이나 쌀을 조금 갖고 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영조께서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시며 제자

인 저를 대신 챙겨 주셨습니다

정해진 수입도 없이 고구마 3개로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데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때로는 행력을 뽐

내는 사람이 힘을 시험하기 위해 임시안치소로 뛰어 들어

오거나 저급령에 의한 빙의현상도 자주 일어나는 등 제

령이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

니다 이러한 영적장애를 하나씩 없애면서 신도를 인도하

고 그 위에 자신의 수행을 해야만 하는 가혹한 생활이 이

어졌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가르침의 길을 시작하면서 만 한 살인 큰아들 교도인님은 개조와 영조의 무릎에서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언제나 방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교도인님의 모습

『일여의 길』 「구도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20

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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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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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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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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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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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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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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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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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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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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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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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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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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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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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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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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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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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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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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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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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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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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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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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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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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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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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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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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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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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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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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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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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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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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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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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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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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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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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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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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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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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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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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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20: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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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오직 가르침 한길로 들어선 그 해 장남인 치

분은 1년 6개월이 되었다 한창 귀여울 때였다 우리들 부

부와 장녀 치분 이렇게 네 가족이 오직 부처님의 한 길로

나아가기에는 물질적으로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상황이었

지만 그러한 가운데 치분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동작 하나

하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는 밝고 따뜻한 등불이었

다 게다가 어린 치분이었지만 벌써 비범한 예지를 빛내

어 부처님의 참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행하러 오는 교

도들의 마음의 눈을 몇 번이나 뜨게 했는지 모른다

교도였던 미스님(고인)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 입교하신 다음 달인 1936년

3월 신뇨 가르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S교회의 부동신앙을 열심히 믿고 있었습

니다 이웃들의 평판을 듣고 임시안치소를 방문한 저에게

교슈사마는 바른 신심의 길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습니

다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강하게 울려 lsquo젊

으신 분인데도 참으로 덕이 높은 선생님이시구나 지금부

터는 이토 선생님을 따라야지rsquo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는 아침과 저녁에 수행이 있었고 개조와 영조의 바쁜

일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ldquo왜 이렇게까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제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rdquo라

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교도인님은 아직 기저귀를 차

고 있었습니다만 영조께서는 수행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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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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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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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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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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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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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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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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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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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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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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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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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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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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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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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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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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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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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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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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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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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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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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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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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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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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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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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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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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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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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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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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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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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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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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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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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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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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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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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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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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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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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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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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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1: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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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에 세탁이나 아이들 목욕을 시켰습니다 일하실 때

도 영조께서는 교도인님을 안고 계셨는데 독경이 시작되

면 교도인님은 작은 석장을 흔들며 개조와 영조와 함께

작은 입으로 독경을 올립니다

제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접심수행 중에 이익을 바라는 사

람이 오면 교도인님은 영조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거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의 죄를 뉘우치면 무릎에서 내려와 얌전히 석장을 손에 쥐

고 방 한쪽에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누구한테 배

운 적도 없는데 정말 그 모습은 불가사의했습니다」

마츠모토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rsquo입조각rsquo 간판을 내걸게 되면서부터 개조와 영조의 곁에

는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호마를 올릴 때에는 참좌 교

도가 전부 석장을 들고 진지하게 독경을 올립니다만 그

속에서 작은 석장을 흔들었던 교도인님의 모습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개조와 영조께서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

람에게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괴로워하

는 사람들이 임시안치소로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교

도인님은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한 살 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의 무릎이 많이 그리울 시기였

지만 부모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수행이 다

끝난 후 20분에서 30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하루 종일 제가 업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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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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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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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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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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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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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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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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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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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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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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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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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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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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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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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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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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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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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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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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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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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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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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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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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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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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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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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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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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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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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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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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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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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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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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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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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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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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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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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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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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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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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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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2: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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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 당시의 기록이 담긴 신뇨 개조의 수기 『신뇨엔 기록』

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아침에 임시안치소에 가면 벌써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합

니다 개조께서 ldquo치분 마츠모토 씨가 왔구나rdquo라고 말씀하

시면 교도인님은 방에서 뒤뚱 뒤뚱 걸어서 나와 제 팔에

안깁니다 안아 올리면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때부

터 업고 밖으로 나갑니다 매일 다치카와 거리를 걷는다든

지 선로에서 몇 시간이나 전차가 오는 것을 보면서 하루

를 보냈습니다 가끔 ldquo구리코 구리코rdquo라며 교도인님이 좋

아하셨던 캐러멜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가난한 학생

이었던 제게는 5전6했던 캐러멜을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서 수행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

6) 1936년 당시의 5전은 현재 약 65엔(065달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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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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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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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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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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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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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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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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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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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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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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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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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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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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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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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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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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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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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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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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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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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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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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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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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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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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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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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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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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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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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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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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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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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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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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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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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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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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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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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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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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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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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3: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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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시안치소로 돌아가면 아직도 수행은 계속되고 신도

들도 가득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도인님의 작은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잠시 밖에 있다가 수행이 끝

났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가면 수행이 끝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

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도인님의 사랑스러운 모

습을 통해서 ldquo개조와 영조께서는 왜 이렇게 귀여운 자식

을 돌보지 않을까rdquo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러할 때에 교도인님은 좀처럼 잠

들지 않았습니다 교도인님은 제게 개조와 영조께서 자신

의 일체를 버리고 수행을 관철하신 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제 등에는 교도인님

의 그 작은 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2살도 되지 않는 몸으로 이미 영능을 갖고 개조와 영조의 가르침의 길을 여시는데 협력하셨습니다 더욱이 이익신앙으로 번뇌하는 신도를 각성시키고 바른 대승이타의 신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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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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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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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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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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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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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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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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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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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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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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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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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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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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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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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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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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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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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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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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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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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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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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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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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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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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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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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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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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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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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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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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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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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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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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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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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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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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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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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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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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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4: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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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억

2013년 9월에 발간된 일본어 출판물『춘하추동』특별

호에 제1대 종정스님이 한 해의 여러 가지 절목에 가르

침을 설명해 주신 신뇨 개조와 영조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 4월에 얽힌 추억을 소개

하겠습니다 종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추억 속에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개조의 마음 따뜻한 일상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1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ldquo출발rdquo은 꿈과 희망이 넘쳐납니다

당시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에 낡은 갈색 가방은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리본이 달린 카키색 원피스와 구두는 새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을 부를 때 ldquo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도록rdquo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ldquo이토 마사코rdquo라고 불렸을 때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충실하게 ldquo예rdquo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ldquo음 남자 아이처럼 씩씩한 아이구나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조께서는 ldquo너무나 큰 목소리로 대답해서 엄마는 조금

1) 일본의 초등학교 입학은 4월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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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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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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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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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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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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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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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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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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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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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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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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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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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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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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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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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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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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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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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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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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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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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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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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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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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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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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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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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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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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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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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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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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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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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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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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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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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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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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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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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5: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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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어rdquo라고 웃으시며 솔직한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스와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 입학식에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벚꽃 축제와 감차공양

4월 8일의 강탄회는 다른 이름으로 「벚꽃 축제」로 불리며 신뇨엔에서도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영조와 함께 핑크나 하얀색의 얇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꽃을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나 봉사하시는 분들도 탄생불을 봉안한 사당의 지붕을 꽃으로 가득 장식했습니다

꽃을 만들 때는 영조께서 ldquo꼼꼼하게 잘 접으세요rdquo라고 지도를 하셨습니다 접은 중심에 실을 매서 단단히 묶고 깨끗이 한 장씩 떼었습니다 ldquo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고 얇은 종이를 하나씩 떼어낼 때 찢기지 않도록rdquo이라는 조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접는 방법이 엉성하거나 실을 잡아당길 때 균형이 안 맞으면 한 쪽은 커지고 다른 한쪽은 작아져 꽃의 형태가 엉망이 되어 장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 부처님께 바치는 봉사라면 최선을 다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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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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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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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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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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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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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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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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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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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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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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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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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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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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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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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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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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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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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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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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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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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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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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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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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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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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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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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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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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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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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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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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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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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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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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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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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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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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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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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6: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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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해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께 진심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강탄회가 끝난 후에는 개조와 영조 가족 제자 분들 모두 감차를 마십니다 당시는 주스 같은 단 음료수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정말로 감차는 달고 맛있었습니다 ldquo아버지 이 차는 달아요~~rdquo라며 개조께 이야기 하면 ldquo감차니까 단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이 감차는 탄생하신 부처님께 용왕이 차가운 비와 따뜻한 비를 내려 축복했다는 『감로의 법수』라고 합니다

「감로」란 산스크리트어로 아무리타 그 뜻은 불사(不死) 또는 불사(不死)를 하게 해주는 음료를 말합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霊薬)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열반」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열반이란 죽음을 넘은 영원 상주이며 이 감로처럼 신뇨 가르침은 일체중생에게 상주공덕의 윤택함을 전해주고 구제를 베풀어 가는 것입니다 탄생불 머리에 감차를 따를 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분들께 상주의 법부모의 가르침을 전해가겠다는 구제의 서원으로 공양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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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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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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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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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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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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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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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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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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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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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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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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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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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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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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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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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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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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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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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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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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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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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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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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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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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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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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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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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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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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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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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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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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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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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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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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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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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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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7: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27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불

성이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며 그 불

성을 개발해 가면 누구라도 구극의

깨달음을 체험하여 진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불성에 접

했을 때 보리심이 깨어나 지혜의 눈

이 열리고 거기에 보다 나은 내 자신이 태어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라고 진심의 실천을 쌓아 가는 일상의 한 순

간 한 순간 속에 작은 깨달음 해탈의 체험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마크 윗담 스미스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마크님은 영국출신으로 일본에서 정진하신 지 20년이 됩

니다

먼저 자신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크 윗담 스미스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신뇨 가르침의 정진을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아내에게 인도되어

Ⅳ체험담

불성에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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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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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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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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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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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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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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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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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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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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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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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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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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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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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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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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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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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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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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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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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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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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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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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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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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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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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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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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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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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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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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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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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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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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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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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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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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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8: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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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도 정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영조께서는 「감사는 깨달음을 얻는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도 주위 분들께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실감하면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관계의 선후배이기도 합니다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아무리 애써도 뜻이 맞지 않는 동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 동료가 사실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료는 제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을 해서 말다툼을 하여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남겼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의 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으로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료뿐만 아니라 제 생활에서 항상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고 나서부터 저는 동료의 비평도 의견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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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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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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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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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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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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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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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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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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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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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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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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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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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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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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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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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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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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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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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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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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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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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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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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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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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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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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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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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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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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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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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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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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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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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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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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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9: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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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료도 제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들 사이에 마찰이 없어지고 보다 좋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善意)는 사람과 사람을 맺어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을 직장에서 실천하면서 마크 씨는 자신이 얼마나 주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고 감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보다 원만한 관계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동안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쪽 길입니다」 「저쪽 길입니다」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그렇구나 길은 이쪽으로 뻗어 있으니까 계속 가면 되겠구나」라고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불성이 생길 때 더욱더 정진하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 때 인생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고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금씩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개성은 발휘되고 진정한 제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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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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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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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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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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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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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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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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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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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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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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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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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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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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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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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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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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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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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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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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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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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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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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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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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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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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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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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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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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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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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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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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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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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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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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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0: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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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등호마에서 마크 씨는 승사를 맡았습니다 그 때의 깨달음 진정한 각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이신 게이슈사마를 마주보고 절했을 때 그 눈빛 속에서 결의와 각오의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어떤 장애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바라는 강한 기도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고 누구라도 목표로 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게이슈사마는 우리들의 불교의 스승입니다만 모습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도 그 모습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의 불성을 찾아내자는 강한 각오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한 각오입니다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생각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우리들에게 환희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환희세계」의 의미는 주위 분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 계속 이어가는 것 주위 분들이 충만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자신도 충만한 인생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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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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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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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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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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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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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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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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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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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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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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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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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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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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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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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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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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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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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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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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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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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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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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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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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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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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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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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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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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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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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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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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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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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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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1: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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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것은 간단히 자신의 소원이나 야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나 야심은 항상 우리들을 따라다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께 더욱더 마음을 베풀어 가면 행복은 조금씩 다가오고 인생도 똑같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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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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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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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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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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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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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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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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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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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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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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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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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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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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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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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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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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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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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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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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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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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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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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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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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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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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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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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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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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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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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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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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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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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2: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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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승열반경」의 줄거리 ①

이번은 신뇨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교학의 몇 가지 중

요한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대반열반경의 전체 구성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승 대반열반경의 산스크리트 단편 한역 티벳 번역 등의 여러 자료에 대해서 개관하고 특히 법현과 담무참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신뇨 교도가 매일 아침저녁 독경을 독송하고 또한 교화에 활용하고 있는 남본 열반경과 북본열반경을 접하면

Ⅴ신뇨 교학 1

희망의 경전 - 대반열반경

신뇨엔 1대 종정 이토 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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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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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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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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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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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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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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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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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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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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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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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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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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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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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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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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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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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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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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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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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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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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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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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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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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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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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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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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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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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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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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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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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3: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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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승열반경의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열반경의 구성

담무참이 번역한 북본 40권 13품이 양자강 이남에 전해지고 혜엄과 혜관에 의해서 36권 25품으로 재구성된 것이 「남본」입니다(대조표 참조) 분품(分品) 이외에는 모두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담무참의 번역이 3회로 나누어져 행해졌다고 하는 전승을 바탕으로 내용도 3막의 오페라처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습니다

담무참은 약 412년경에 고장(지명)으로 들어가 3년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먼저 제 1파트인 10권(북본은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남본은 10권의 도중까지에 해당함)을 번역합니다 이 10권은 불타발타라와 보운이 번역한 법현본 6권 전부와 티벳번역 전부에 상당합니다 그 후에 10권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의심을 품고 탐색을 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에 의하면 2회에 걸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즉 「담무참은 열반경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가 철저하게 찾아 다녔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1년 정도 중단했다 그 후에 호탄에서 중문을 입수하고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했다 그 후 또 사람을 호탄으로 보낸 뒤 다음 부분을 찾아 이어서 번역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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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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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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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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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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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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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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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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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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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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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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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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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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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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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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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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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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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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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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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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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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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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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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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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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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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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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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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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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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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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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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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4: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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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구성 비교대조표

법현본 6권 18품

417-418(법현 불타발타라 외)

남본 36권 25품

436(혜엄 혜관 등)

북본 40권 13품

414-421(담무참)

1 서품

2 대신보살품

3 장자순타품

4 애탄품

5 장수품

6 금강신품

7 수지품

8 사법품

9 사의품

10 분별사정품

11 사제품

12 사도품

13 여래성품

14 문자품

15 조유품

16 월유품

17 문보살품

18 수희품

1 서품

2 순타품

3 애탄품

4 장수품

5 금강신품

6 명자공덕품

7 사상품

8 사의품

9 사정품

10 사제품

11 사도품

12 여래성품

13 여래성품

14 조유품

15 월유품

16 보살품

17 일체대중소문품

18 현병품

19 성행품

20 범행품

21 영아행품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3 사자후보살품

24 가섭보살품

25 교진여품

1 수명품

2 금강신품

3 명자공덕품

4 여래성품

5 일체대중소문품

6 현병품

7 성행품

8 범행품

9 영아행품

10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11 사자후보살품

12 가섭보살품

13 교진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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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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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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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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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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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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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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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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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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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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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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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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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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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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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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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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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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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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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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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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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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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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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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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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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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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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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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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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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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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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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5: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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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파트는 10권에서 20권(현병품에서 영아행품 남본은 18권까지) 제3파트는 그 이후부터 말미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삼장기집』에 의하면 지맹이 인도에서 고창으로 가지고 온 「범어」의 열반경을 하서왕이 입수하여 담무참에게 중국어로 번역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이후의 자료(11권 이후)는 돈황에 있는 인도인 불교학자가 담무참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지맹이 번역한 열반경 20권의 존재를 들면서 이른 시기에 결본이 되어 소실되었지만 이 「20」이라는 숫자를 주목해 보면 담무참이 번역한 2회째의 번역 업적은 11권에서 20권의 범위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 제1파트 (처음부터 일체대중소문품)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의 열반경은 세존 최후의 여행을 더듬고 사람들에게 설한 교화를 기록하고 파바마을에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임종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열반경은 2월 15일1 하루 lsquo쿠시나가라rsquo 단 하나의 장소가 무대입니다 다시 말해 대승열반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루 하나의 장소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 경전에는 「제2월의 15일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용되는 태양력 2월이 아니라 음력을 말한다 신뇨 개조께서는 석존이 최후의 가르침을 남기신 그 하루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시고 거기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날짜에 관해서는 일부러 모두가 알기 쉽도록 2월 15일이라고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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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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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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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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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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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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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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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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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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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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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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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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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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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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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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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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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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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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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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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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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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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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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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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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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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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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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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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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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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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6: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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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뇨 개조 교슈사마께서 제시한 접근방식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현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고 영원무궁한 「진실」을 찾아내는 「밀교적인 해석」이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종횡으로 열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구제되는 영원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제1파트의 전개를 보면 세존의 입멸이 가까워진 것을 안 중생이 쿠시나가라에 모이고 각자 열반의 공양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왕후귀족과 대보살도 있는 가운데 세존이 마지막 공양을 받겠다고 한 것은 대장장이의 아들 청년 순타였습니다 「동료 15명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장소로 데리고 온 재가불도로서의 사람구제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개조께서는 해설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공양자로 지명된 순타는 세존이 상주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친 공양은 영원한 법신2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이러한 순타의 진심이야말로 법신여래께 공양을 바치고 정법의 건립과 공덕의 회향을 바라는 불교법의식의 원형이 됩니다

제1파트의 일체대중소문품에서 순타는 상주를 믿으면서도 자비로운 세존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

2) 부처님의 진실한 모습 해탈 그 자체 불타의 육신은 멸해도 법신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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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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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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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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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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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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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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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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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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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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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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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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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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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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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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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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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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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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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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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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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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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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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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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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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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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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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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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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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7: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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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양을 바칩니다 세존은 문수와 가섭과 순타에게 미래성불의 기별을 주고 정법을 후세에 전할 것을 부탁하고 몸에 병을 느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이렇게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 업적 제1파트는 세존의 입멸선언에서 마지막 공양이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정리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선적 이야기 내부에는 더욱 깊은 가르침이 복수로 움직이며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1파트를 더욱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합시다

상주middot불성middot상락아정

첫 번째 움직임은 서품에서 명자공덕품에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상주」라는 테마입니다 대승열반경은 불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면서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불사(不死)」 영원한 법신으로서 「여래는 상주한다」고 주장합니다

명자공덕품은 법현본에서 「수지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반열반경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뜻을 강하게 권유하고 공덕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러한 부분은 경전에서 주장하는 끝부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열반경의 연구』를 집필한 시모다 박사는 여기에서 장수품을 제외한 부분을 「원시대승열반경」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정리된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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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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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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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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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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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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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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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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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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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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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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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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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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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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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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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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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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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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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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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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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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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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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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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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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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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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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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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8: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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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움직임은 (장수품 및) 사상품에서 일체대중소문품

으로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실유불성」입니다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락아정」입니다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 있는 애탄품에 종래의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무상middot고middot무아middot부정이라는 부정적인 진리표현(法印)3이 「상락아정」이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처음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승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아(無我)에 대해서 유아(有我)를 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컸을 것입니다

이 상락아정의 「아(我)」 즉 항상 즐겁고 청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움직임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면 「아(我)」는 「상주의 여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움직임 부분에서의 「아(我)」는 「불성」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여래상주」를 엔진으로 두 번째에서는 「불성」을 엔진으로 하여 상락아정의 세계가 기동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주와 불성이 다른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즉 여래상주란 부처님의 본질(진리)이

3) 법의 울림 창간호 43쪽 참조 불교에 있어서의 진리의 표지(標識) 모든 것에 통하는 특징적 성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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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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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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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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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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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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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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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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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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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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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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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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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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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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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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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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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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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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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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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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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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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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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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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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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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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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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9: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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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으로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만물에 가득 차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물며 실유불성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법의 공덕이 세계에 편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 법을 받을 때 사람들은 「구제받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구제를 실감할 때 「불성」이라는 「상주하는 부처님」의 내재를 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열반경은 세존의 입멸을 그린다고 하는 전통적인 열반경 문헌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최후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상락아정」과 「실유불성」의 가르침을 복수로 구동해 갑니다 이러한 반복에 의해 상락아정의 테마를 넓히고 그 테마처럼 열반경은 직선적이고 닫힌 체계뿐만 아니라 시점도 종점도 없는 경전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설해 갑니다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내부에 포함되고 모든 시대의 마음에 즉응해 갑니다 즉 고전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응해서 움직이는 여래상주 middot 실유불성 middot상락아정이라는 「신뇨(진여)」를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나타내어 갑니다

이 대승열반경의 움직임은 후에 더한 전개를 낳아 갑니다 대승열반경은 율(승가의 규칙)이나 론(불법의 주석 해석) 경(반야경 법화경 등의 경전)을 발판으로 다층적인 구조와 논리전개를 가지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근대적 문헌을 읽는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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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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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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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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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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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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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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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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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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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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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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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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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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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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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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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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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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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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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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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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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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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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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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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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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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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0: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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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으로 읽으면 감당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대승열반경은 여래의 영원성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입니

다 여래를 「일(一무한정의 전체 비유한다면 바다)」이라고 한다면 불성은 「다(多전체가 개성으로 나누어진 것 비유한다면 파도)」입니다 세존이 유언의 설법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열반경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일(一)인 여래와 다(多)인 불성이 접합 궁극의 열반의 세계가 증명됩니다 거기에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존재가 긍정되고 상락아정이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순타처럼 진법을 이타에게 「실천」하고 선정접심을 거듭해 가면 열반경을 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한 부처님이 자리하고 지혜와 자비의 빛이 건네지고 현실사회를 우심세계로 변혁해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담무참의 번역 업적의 제2 제3 파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더욱이 여래상주와 불성 상락아정에 대해서 테마 별로 살펴볼 때 이해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 품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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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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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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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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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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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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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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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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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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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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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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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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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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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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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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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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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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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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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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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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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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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41: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41

이 시리즈에서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신뇨엔의 위치가 어

떠한지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석존 입멸

후에 교선이 신전한 땅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이번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바자석굴지금까지는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 시대에 불교의 교선이

얼마나 신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불교의 신전과 함께 비

Ⅴ신뇨 교학 2

불교의 전파

아잔타 제26굴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있는 예배당과 탑

42

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43

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44

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45

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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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47

(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48

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49

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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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51

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52

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53

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56

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59

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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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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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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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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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2: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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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포교루트(대승불교)

남방포교루트(소승불교)

바자 석굴 가까이에 있는 마라브리 역

구의 숫자와 주거의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목조 주거건물의 거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지만 산이나 언덕 중턱에 있는 암반을 파서 만든 것은 오늘

날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와 푸네의 거의 중간 로나바라 근교

의 마발에 있는 바자석굴에는 산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22개의 석굴사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대승불교와 불상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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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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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45

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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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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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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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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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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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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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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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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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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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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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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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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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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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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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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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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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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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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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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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3: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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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석굴 입구 좌우

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비구의 거주

장소가 보인다

바자석굴 예배당과 탑(차이티

아 굴)

높이 2미터 정도의 작은 탑이 즐비해 있다

기 이전의 시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상은 없고 시대의 심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비탈길을 따라 산 위에 오르면 드디어 석굴 앞에 있는 암석이 많은 테라스에 나오게 됩니다 석굴에는 불타의 유골을 안치한 수많은 탑과 예배당이 하나가 된 차이티아 굴과 비구들이 모여서 거주하며 독경이나 명상수행을 했던 거주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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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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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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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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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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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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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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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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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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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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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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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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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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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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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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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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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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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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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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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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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4: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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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고 그것이 세트가 되어 사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탑에는 정교한 장식은 없지만 수많은 기둥 위에는 아치형태로 걸쳐진 목제 수목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깎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2개의 석굴에는 거주 장소와 모여서 예배를 올리는 방과 탑이 있습니다 탑 안에는 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힌두교 신화가 그려져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제19굴에는 베란다도 있고 입구 문 양 옆에는 힌두교의 수리아 신과 인드라 신의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기석굴 베드사

바자 기슭의 마라브리역에서 10킬로 정도 되는 곳에 베드사 석굴이 있습니다 주변에 얼마 안 되는 민가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기슭의 작은 힌두사원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잠시 걸으면 돌계단이 나타나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석굴이 보입니다 건너편 산까지 탁 트인 전망은 볼거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집장소와 상당히 큰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또 하나는 승방(僧坊절)이라고 생각되는 비하라 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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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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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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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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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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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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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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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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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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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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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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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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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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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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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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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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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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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45: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45

베드사 석굴 앞 테라스에서의 조망은 용맹 과감한 여행자에 대한 보상이다

(좌) 베드사 석굴 내부 예배당과 탑이 있는 차이티아 굴 입구에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 있다 (우) 차이티아 굴 내부에 장식은 거의 없다

베드사 석굴의 승방내부는 4평방미터 정도 1인용 침대만 있는 간소한 건물

46

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47

(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48

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49

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50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51

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52

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53

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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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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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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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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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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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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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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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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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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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6: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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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절벽을 파낸 석굴은 예전 비구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베드사 석굴은 바자 석굴에 비해 별로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배자도 많지 않습니다 이곳도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것이므로 별로 장식은 없지만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불타의 유골과 경전의 구를 적은 것을 모신 탑이 기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참집장소가 U자 형식으로 깎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집장소와 거주 장소의 건축의 원형을 이들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사 석굴도 입구 앞에는 말에 탄 여성상이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왜 당시 사람들이 석굴사원을 만들고 여기에 살며 수행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칼라 석굴

인도에서 석굴사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이며 아라비아해에서 데칸고원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교역로 가까이를 원점으로 하여 그 대부분은 뭄바이 근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칼라 석굴도 마하라슈트라주 로나바라의 바자석굴이나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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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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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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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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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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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52

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53

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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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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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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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47: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47

(좌) 석굴사원 입구로 통하는 석단은 넓지만 위험하다

(우) 탑이 있는 예배당 내부는 체육관처럼 넓다

사 석굴에서 가까운 산 중턱 바위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러 옵니다 이곳은 예전에 불교 사원이었지만 물고기의 수호신 에크비라를 모신 힌두사원이기도 했으므로 참배자 중에는 특히 뭄바이 어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이 세워진 시기는 두 개의 연대로 나누어집니다 전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 2세기이고 후기는 5세기에서 9세기입니다 칼라의 중심이 되는 차이티아 굴 예배당은 천정에 큰 아치 형상의 수목이 있고 그 규모는 세로 38미터 가로 14미터 바닥에서부터의 높이는 14미터나 됩니다 인도의 석굴사원 중에서 최대입니다

남녀의 모습 조각도 보이고 예배당 정면에는 사자 조각이 새겨진 기둥도 있으며 뒤로는 탑이 있습니다 비구들의 주거는 3층으로 되어 있고 마치 맨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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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49

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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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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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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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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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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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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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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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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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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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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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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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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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48: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48

코끼리에 탄 여신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칼라 석굴을 방문하는 사

람들을 매료시킨다

석굴이 만들어진 뒤는 대승불교가 번성한 후이기 때문에 탑에 이르는 벽에는 불타와 보살의 조각이 보이고 비구들의 주거장소 중앙에도 본존으로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석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엘로라 석굴1처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주거와 참집공간이 나란히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바라문교와 관련된 사원건축의 흔적은

1)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북서로 29킬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유명한 석굴군 아잔타 석굴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49

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50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51

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52

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53

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56

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59

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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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9: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49

아잔타의 제1굴의 벽을 아름다운 벽화가 감싸고 있다

아잔타 석굴을 입구에서 본 모습

제19굴 탑에는 불상이 새겨지고 몇 겹의 천

개는 높이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후대의 탑의 형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17굴의 천정화

50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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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52

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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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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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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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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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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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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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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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50: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0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인도종교 건축이 불교에서 시작한 가능성을 시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 석굴이 기계가 없었던 고대에 건축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축지식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자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부처님을 향한 그 시대의 수행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아잔타 석굴

석굴 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도 벽화와 조각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도 다른 석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지역에 있는 아우랑가바드 마을에서 104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으며 다른 석굴에 비해 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라강 U자형 계곡의 남측 절벽에 만들어졌으며 이 장소에는 30개에 이르는 석굴이 있습니다 아래쪽 하원까지는 105~335미터 정도로 비구들의 물 긷는 일은 상당히 곤란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고 198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행자는 갈 수 있는 곳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까이

51

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52

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53

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56

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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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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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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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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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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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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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1: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1

연화수보살(좌)과 금강수보살(우)이 불상을 감싼다 아잔타를 대표하는 박진감 넘치

는 묘사이다

가야 합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예전의 이 장소는 울

창한 삼림이었다고 합니다 석굴이 사용되지 않게 되자 천 년 간 정글 속에 파묻혀 있었고 1819년 영국 군인이 산속 깊이 사냥을 갔을 때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것은 정확에게는 현재의 제10굴로 내부의 기둥에 적혀진 존 스미스의 이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 시기는 두 시기로 나뉩니다 아마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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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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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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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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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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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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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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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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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52: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2

기는 기원전 2세기 후기는 기원 400년에서 650년 사이에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정교한 조각과 건조물로 장엄되어 있고 다른 석굴에 비해서 보다 많은 벽화가 있습니다 인도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벽화의 열화가 심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잔타에 남아있는 5세기에서 8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벽화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불교화에는 후에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 불교의 특징이 보여집니다

위의 사진은 금강수보살과 연화수보살을 그린 벽화입니다 금강수란 「금강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각성시키는 부처님의 힘의 상징입니다 팔리어 경전 안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티벳 불교와 정토종 안에서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중국 티벳 일본 사원에서 보여지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주 헤라클래스상과 중복되어 박력 넘치는 풍모를 한 보살과 호법신도 많이 보여집니다 일본 사원의 산문 앞에 서 있는 인왕상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화수보살은 「연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S자형으로 조금 몸을 구부린 모습과 반 정도 뜬 눈빛은 후에 일본의 법륭사 등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연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제1

53

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56

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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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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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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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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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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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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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3: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3

굴의 불상 양측에 그려진 이들의 보살상 벽화와 태장계 만다라2 보살이나 부처님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벽화를 볼 때 불교가 심원한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전해져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와 열반상

아잔타 석굴은 벽화만이 아니라 조각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석굴은 해탈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벽화와 조각 부조물이 있는 다차원적인 성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장식과는 대조적으로 비구들이 살았던 승방은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석굴이 사용되었던 당시는 호랑이 등의 맹수의 출입을 방지하는 문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석굴군이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 로마제국과 중동 중앙아시아 왕국 사이에서 무역이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보시는 수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석굴은 모두 이러

2) 자비의 관점에서 본 해탈의 세계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려진 영적인 세계 거기에는 해탈한 사람이 살고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모체의 원리를 상징하듯 그려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안에도 사물을 키우려고 하는 해탈의 일면이 내재한다는 견해가 여기에는 있다 태장계만다라와 불이일체로 대립되는 금강계만다라로 신뇨엔 정사에는 금태양부의 만다라가 항상 전시되어 있다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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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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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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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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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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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54: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4

내부 탑으로 통하는 회랑 왼쪽 벽화에 새겨진 대열반상 이것은 인도에서도 최대

규모이다

석굴입구 앞에서 쉬고 있는 견학자

굴 내부의 기둥 상부를 장엄하는 정교한 조

각 불상에는 안료가 아직 보인다

이들 세 개의 사진은 모두 아잔타 제26석굴이다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56

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59

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55: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5

제4굴의 불타는 ldquo달

마차크라rdquo라고 불리

는 전법륜인을 맺고

있다 박력 넘치는

불타가 서 있고 견학

자를 맞이하고 있다

제26굴의 회랑 안쪽

탑 뒤의 벽화에는 더

욱 많은 불상이 새겨

져있다

불상 상부에 새겨진

복잡한규모의부조물

56

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59

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56: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6

제2굴의 본존도 ldquo달마차크라rdquo의 인을 맺고 있다 앞쪽 벽화에도 무수히 작은

불타가 그려져 있다

한 교역로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몇 세기 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석굴이지만 현재는

역사적 유적으로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견학하러 옵니다 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낸 깊은 실천과 신앙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59

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57: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57

선타파(先陀婆)의 의미

이것은 먼 옛날 석존이 사라림에서 최후의 설법을 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석존은 해탈을 여시고 45년간 다양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설해 오셨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상락아정1이 열반의 실체라는 것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얕은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석존은 이 세상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부정한 세상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살이 되어 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 잘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표면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이것을

1) 대반열반경 안에 강조되고 있는 대열반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상락아정」은 그 중의 하나 자아에서 해방된 순수한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신을 나타내는 해탈을 가리킨다

Ⅴ신뇨 교학 3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지혜로운 신하는 lsquo선타파rsquo의 사의(四義)를 알고 있다

58

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59

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64

Page 58: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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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절대시하고 자신들이 이미 얻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석존은 그들에게 ldquo제자들이여 여래2의 말이라는 것은 심원하고 미묘하여 마음속으로 듣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기도를 철저히 하고 나의 말의 진의

2) 「이렇게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여래(如來)」란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에 대한 10종류의 명칭 중 하나이다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불타가 된 사람 다시 말해 완전하게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해탈의 세계 양쪽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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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60

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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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62

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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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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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9: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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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만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지혜로운 자도 여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느 곳에 나라를 통치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대왕은 명령을 내릴 때 실로 말이 짧았습니다 정말로 무뚝뚝하게 ldquo목욕rdquo ldquo밥rdquo 이라는 식으로 불쾌하게 생각이 들게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인들은 이 부분이 고역이었습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선타파」였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금」 두 번째는 「대왕의 컵」 세 번째는 「물」 네 번째는 「말」이었습니다 선타파의 의미는 이 4가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왕은 하인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거라rdquo 그러면 하인들은 정말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ldquo대왕님 어느 선타파를 바라십니까rdquo라고 여쭙니다 그러나 어느 현명한 하인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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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61

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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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63

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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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0: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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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군의 마음을 살핀다

우둔한 하인들이 신경을 쓰며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용의주도하게 왕이 의도한 물건을 언제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왜냐하면 지혜로운 하인은 언제나 왕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버릇 행동패턴 좋고 싫음을 잘 알고 그것을 제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성격을 이해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인은 왕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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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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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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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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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1: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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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이 손을 씻으려고 생각하고 ldquo선타파rdquo라고 외치면 현명한 하인은 바로 물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식사 도중에 ldquo선타파rdquo라고 하면 왕의 컵에 와인을 따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밖으로 산책을 가려고 할 때에 ldquo선타파를 가지고 오라rdquo고 하면 바로 말을 끌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명한 하인은 언제나 왕의 한마디 명령을 듣고 바르게 뜻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왕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지혜로운 하인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ldquo제자들이여 지금 이야기 속에 lsquo선타파rsquo는 대왕의 밀어(密語)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말을 사용하여 최후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설하고 있다rdquo

ldquo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나는 어느 때는 ldquo여래는 입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정법은 멸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나의 병과 죽음에 의해 교단은 별개가 된다rdquo고 설했다 어느 때는 ldquo공3이야 말로 바른해탈이다rdquo라고 설했다rdquo

3) 모든 현상에 본래 갖추고 있는 실체는 허공이라는 것 대승불교의 기본적 이념 현상이란 그 자체가 고정적 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 「공」의 사상은 부정적 또는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경향을 지적한다 개조께서는 다음을 강조하셨다 ldquo우리들은 본래 서로 이어진 존재이다 이것에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자신의 집착하는 마음을 성찰할 때 장애가 없는 유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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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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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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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2: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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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까rdquo

ldquo지혜로운 제자는 번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의 불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고 자기중심의 자아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무상관(無常觀)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설했다 그래서 그들이 집착을 버리고 「공」에 자각하는 길을 가르치고 싶었다 「공」이야말로 바른 해탈이며 상주불변의 부동의 경지이다rdquo

ldquo네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rdquoldquo나는 또한 ldquo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rdquo고 설했다 지혜로

운 제자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여래는 집착을 버린 제자들에게만 무상의 현상세계를 초월한 상주법신의 실체를 밝히고 불성을 닦아내는 실천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심득하여 수행에 힘쓰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제자이다rdquo

이 설법을 듣고 일부 제자들의 의문이 드디어 풀렸습니다세존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ldquo선남자여 이 대열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극의 정법이라 믿고 실천한다면 나의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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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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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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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3: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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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것은 저 대왕의 지혜로운 하인이 왕의 의향을 잘 아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깊고 깊어 세간의 범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지혜로운 제자만이 불타의 진실의를 체해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천하거라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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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9sdotApril 2014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정정

No 8 법의 울림 66쪽 4째줄times 이곳은 20미터의 사각 기단 이곳은 400평방미터의 사각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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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4: 이 인터뷰는 내외시보 3호(1950년 file신) 중의 하나이다. 3) 일본어로 집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대흑주(大黒柱)」라고 하는데, 이 단어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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