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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9 www.yonhapimazine.com I 65 64 I Let's go fishing 잡아 온 은어(銀魚)를 요리하기 위해 창고 깊숙이 잠자고 있던 캠핑용 화로를 꺼내 챙겼다. 빨간 숯불이 타는 화로의 그릴 위에서 은어가 지글지글 익어간다. 바싹하게 익은 껍질 사이로 조심스레 속살을 끄집어냈다. 고소한 맛과 함께 입안 가득 수박 향이 퍼진다. 은어 낚시의 매력이다. · 사진 성연재 기자 입안 가득 ‘수박 향기’ 가득한 은어요리

잡아 온 은어(銀魚)를 요리하기 위해 창고 깊숙이 잠자고 있던 ... · 2019. 9. 9. · 니라 L(Large) 세트다. 불을 이용해 뭔가 제대로 된 캠핑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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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잡아 온 은어(銀魚)를 요리하기 위해 창고 깊숙이 잠자고 있던 ... · 2019. 9. 9. · 니라 L(Large) 세트다. 불을 이용해 뭔가 제대로 된 캠핑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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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s go f ishing

잡아 온 은어(銀魚)를 요리하기 위해 창고 깊숙이 잠자고 있던 캠핑용 화로를 꺼내 챙겼다. 빨간 숯불이 타는 화로의 그릴 위에서 은어가 지글지글 익어간다.

바싹하게 익은 껍질 사이로 조심스레 속살을 끄집어냈다. 고소한 맛과 함께 입안 가득 수박 향이 퍼진다. 은어 낚시의 매력이다.

글 · 사진 성연재 기자

입안 가득 ‘수박 향기’ 가득한 은어요리

Page 2: 잡아 온 은어(銀魚)를 요리하기 위해 창고 깊숙이 잠자고 있던 ... · 2019. 9. 9. · 니라 L(Large) 세트다. 불을 이용해 뭔가 제대로 된 캠핑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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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 전국 최대 은어 서식지가 됐다. 하천 바닥이 전부 돌밭이라는

얘기다. 산청군에서는 은어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해마다 치어를

방류해 오고 있다. 산청군은 올해도 단성면과 금서면 등지에 32만

마리가량을 방류했다. 지역 어업인들의 소득증대와 관광객 유입 등

을 위해서다. 치어들은 낚시 금어기가 풀리는 5월이면 17∼20cm가

량까지 자란다. 이곳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은어 낚시 마

니아들이 찾을 만큼 인기가 있다. 은어 낚시를 생업으로 하는 김태

화 프로는 올해 10여 차례 일본 낚시인들의 요청을 받고 가이드를

했다. 원래 건축업자였던 김 프로는 몇 년 전 은어 낚시의 매력에 흠

뻑 빠진 뒤 건축업을 접고 낚시에 매달렸다. 김 프로가 가이드로 받

는 돈은 하루에 2만5천엔가량이다. 30만원 가까운 액수지만, 김 프

로는 새벽부터 뛰어야 하는 일의 특성을 생각하면 많지도 않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김 프로는 직접 양어장을 운영해 살림에 보

태고 있다. 김 프로는 현재 은어 낚시가 지역 발전을 가져올 핵심 요

소라고 보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다소 슬픈 은어 낚시

은어 낚시는 다른 낚시와 사뭇 다르다. 은어 낚시는 먹이를

이용해서 잡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은어가 그 미끼가 된

다. 은어의 머리 쪽에 소의 코뚜레와 같은 바늘을 꿴 뒤 다른

은어들이 사는 서식지에 넣는다. 텃세가 아주 심한 물고기라

다른 물고기를 쫓는 은어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듯 동

족을 잡는 데 앞잡이가 되어야 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은어

를 ‘씨은어’라 부른다. 콧구멍에 코뚜레를 한 씨은어의 등지

느러미에는 또 하나의 침이 꽂혀 있다. 은어는 이제 낚시인의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됐다. 그야말로 꼭두각시

(Puppet)가 된 것이다. 기존에 자기 영역을 지키고 있는 은어

는 ‘먹자리 은어’라고 한다. 씨은어를 발견한 먹자리 은어는

적극 방어에 나선다. 몸싸움을 하는 것이다. 침입자를 밀어내

는 과정에서 씨은어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진 삼발이 형태의

또 다른 바늘에 걸리게 된다. 그러므로 낚시에는 모두 2마리

가 걸리는 셈이다. 이런 은어 낚시 특성상 최초의 한 마리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과거에는 이 첫 한 마리

를 맨손으로 잡았지만, 지금은 낚시점 등에서 씨은어를 살

수 있다. 문제는 씨은어를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씨은어를 낚시터까지 죽이지 않고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애써 데려간 은어가 축 늘어져 있으면, 그날 낚시는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은어와 경호강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은어 낚시를 하기 위해 경남 산청군에

있는 경호강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크기가 30㎝까지 자라는

은어는 가을이면 하류에서 산란하고 생을 마감하는 단년생

어류다. 조선시대에는 민물고기 가운데서 맛이 가장 뛰어난

물고기로 여겨져 임금님께 진상돼 왔다. 원래는 겨울철 바다

로 내려가 유년 생활을 보내지만, 경호강을 비롯한 대부분의

하천이 댐으로 막혀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은어는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있게 된다. 산청군을 가로지르는 경호강

도 마찬가지로, 은어들은 진양호 댐에 가로막혀 그곳에서 겨

울을 지낸 뒤 3월 말부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낚시가 가

능한 기간은 이들이 다시 하천을 통해 상류로 올라온 다음인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다. 경호강이 은어 낚시의 메카가

된 것은 이끼 덕분이다. 경호강은 은어의 미끼가 되는 이끼가

1 은어는 은어가 미끼. 물 아래에 한 마리가 더 매달려 있다.2 수풀을 헤치며 경호강으로 들어서는 낚시인들3 은어 낚시를 준비하는 낚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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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수십마리의 은어를 잡는 동안 다른 낚시인들은 20% 정도의 조

과를 기록했을 뿐이다.

그다음 낚시에 나선 지역은 첫 번째 지역보다 조금 더 하류 지점이

었다. 물 깊이가 발목 위쯤 될 정도로 얕았지만, 물살은 빠르고 여울

이 져 있다. 당연히 수중의 산소량이 증가한다. 수심이 낮아 낚시인

들이 지나치기 쉬운 지역일 듯했다. 그러나 프로는 역시 달랐다. 들

어가자마자 한 마리를 걸어낸 뒤 잇따라 계속 잡아냈다. 옆에서 김

‘다이빙 캐치’ 뺨치는 은어 낚시

김 프로가 안내한 곳은 함양군 유림면과 산청군 생초면 사이를 흐

르는 경호강의 지류인 임천 지역이다. 올해는 상류 쪽이 낚시가 잘

된다고 한다. 그래선지 이번 출조에 찾은 곳은 모두 상류 쪽인 임천

이었다. 해가 뜬 뒤라 벌써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서넛 눈에 띄

었다.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입수했다. 첫 번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심심찮게 입질을 받을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은어가 잡히자마자 김 프로가 취한 동작이었다.

은어가 잡히자 긴 낚싯대를 90도 가까이 들고 은어를 조용히 몸쪽

으로 날리는 모습이 야구 경기의 야수가 다이빙 캐치하듯 보였다.

평생 물속에서만 살던 은어는 이때 생전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경

험을 하게 된다. 김 프로는 공중을 붕 날아온 은어 2마리를 미리 왼

손에 잡고 있던 네트로 정확하게 잡아넣었다. 마치 야구 글러브로

공이 빨려 들어가듯 은어는 정확하게 네트 속으로 떨어졌다. 이런

기술은 오랜 기간 연마해야 가능하다. 김 프로를 제외한 다른 낚시

인들은 은어를 낚고도 숱하게 떨어뜨렸다. 이렇게 되면 은어가 상

하게 되고 미끼 역할을 못하게 되면서 조과가 떨어진다. 이날 김씨

프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다른 낚시인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잡은

은어는 곧바로 씨은어로 쓰인다. 원래 미끼로 썼던 은어를 빼고 새

로 잡은 은어에 코뚜레를 꿰어 내보내는 것이다. 먹자리은어가 걸

리게 되면 이를 손맛으로 알아채야 한다. 처음에 씨은어가 매달린

상태에서 다른 한 마리가 더 잡혔을 때, 그 손맛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1 은어 2마리를 한꺼번에 잡아내는 낚시인 2 코뚜레와 바늘들3 찌 역할을 하는 마커 4 날아오는 은어 2마리를 한꺼번에 캐치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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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은어 낚시, 갈 길 먼 대중화

은어 낚시는 고급스럽다. 긴 장대로 맑은 시냇물에 몸을 담그고 낚

시하는 모습을 보면 멋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다른 측

면에서 보면 장비가 너무 비싸다. 게다가 대부분 일본제품이다. 낚

시계의 일본제품 사용이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은어 낚시만큼 값비

싼 제품을 사용하는 낚시도 없다. 은어 낚싯대는 보통 9m 이상으

로, 예민한 은어의 경계심을 피하기 위해 고안됐다. 또, 낚시인이 입

고 있는 웨트수트와 은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기포 발생기를

탑재할 수 있는 ‘살림통’도 수십만원씩 한다. 이것 외에도 필요한 것

이 낚시하면서 은어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장비인 ‘보트’다. 보

트는 그야말로 물 위에 뜬 보트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은어들이

신선하게 보관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낚시인들이 허리춤에 줄

로 매 함께 이동할 수 있게 돼 있다. 역시 수십만원에 달한다.

이런 값비싼 일제 장비를 사용하는 풍토가 은어 낚시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산청군 축산내수면 담

당인 강진규 계장은 “최근에는 붕어 낚싯대를 활용해 은어 낚시에

나선 분들도 생겨나는 등 은어 낚시가 대중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

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 계장은 “은어는 은어가 잡아준다고

보면 되기에 고가 장비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스킬을 연마할 필

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함께 낚시에 나섰던 김 프로는 “국산

화가 시급히 이뤄져야 은어 낚시 대중화가 이뤄지고 지역 경제에

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국내 은어 낚시 시장 규모가 너무 작

다는 점이 제품 개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잊지 못할 은어의 맛

이번 은어 취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장비가 있다. 보아하니 전문

적인 스킬이 필요한 은어 낚시를 직접 하기란 힘들 것 같고, 요리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코베아의 화로인 ‘파이어

캠프 L세트’를 준비한 것이다. 이것은 요즘 나온 L(Light) 세트가 아

니라 L(Large) 세트다. 불을 이용해 뭔가 제대로 된 캠핑 요리를 만

드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장비다. 캠핑 요리 장비 가운데 가장 무거

운 축에 속한다. 화로 본체 무게만 해도 6.6㎏이며, 숯불받이와 불

조절이 가능한 캠프 스탠드까지 합치면 20㎏이 훌쩍 넘어가기 때

문에 사실 일반 오토캠핑족들도 쓰기가 버겁다.

이런 장비를 챙겨온 것은 오로지 은어의 맛을 느껴보고자 했기 때

문이었다. 잔디가 깔린 적당한 장소를 찾아 화로에 불을 붙였다. 한

여름 땡볕에 토치로 불을 붙이는 것은 사실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

렇지만, 은어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자는 일념이 있다면 이런 고역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수박 향은 은어를 회

로 먹었을 때가 가장 진하다고 한다. 하지만 디스토마균 논란을 피할 수 없어 결국 바비큐를 하기로 했다. 이윽고

브리켓에 불이 붙었고, 배를 가른 은어에 왕소금을 흩뿌린 뒤 조심스레 그릴 위에 올렸다.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이. 은어에서 떨어진 기름은 그릴 아래로 사라졌고 지글지글 은어는 익기 시작했다. 은어 속살을 집어내 훅 불어가

며 맛보기 시작했다. 고소한 맛과 함께 수박 향이 퍼졌다.

1 살림통과 보트(오른쪽)2 살림통에 가득 찬 은어3 씨은어를 살려오는 데 쓰이는 살림통4 경호강은 ‘은어 낚시의 메카’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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