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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이천이년 구월호 69 대중 문화 문화현상읽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한국과 일 본 사이의 문화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몇 년 전부터 개방되기 시작한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 개방 또한 언제일까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라든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또는 몇 몇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등과 같은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면 벌써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 개방이 시 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름에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라는 작품이 개봉되어 비교적 성공적인 관객들의 호응 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1980년대 말이었나 90년대 초였나 김대중 대통령 - 물론 그 당시에는 아직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이 스웨 덴을 방문한 적이 있다. 스톡홀름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강연이 끝나고 질문시간이 있었다. 바로 그 즈음 할아 버지 일본 천황이 세상을 떠났었고 그래서 나는 이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질문을 한번쯤 던질 때가 아닌가 해서 질문하려고 손을 들었다가, 솔직히 좀 겸 연쩍기도 하고 해서 슬그머니 다시 손을 내린 기억이 있다. 1990년대 중엽에는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책임 연구원으로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무렵 일본 대 중문화 개방의 수순밟기가 본격화되지 않았나 싶다. 어 쩌면 이 글이 문자화될 때 이미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 개방이 공포된 후인지도 모른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퓨전이다 몇 년 전이었나, 여름방학을 이용해 마련한 한일 대 학생 포럼에서 문화 쪽을 맡아 두 나라 대학생들과 대 화의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강원도 어느 수련원의 널찍한 방에서 곧 다가올 815의 의미라든지 코끼리 전기밥솥의 인기라든지 등등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 누고 있을 때 갑자기 잠자리 두 마리가 날아와 우리 앞 에서 교미를 시작했다. 우리 대다수는 환호했고 그 중 의 일부는 남사스러워하며 못마땅해했다. 심지어“떼 어! 떼어!”하고 고함치는 학생도 있었다. 사실 일본 대중문화는 진작에 개방되어 있었다. 문 화는 물과 같아 이리저리 흘러다니는데 한 군데 고였다 가는 썩는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남사스러워 하겠지만 잠자리 한 쌍은 교미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문화의 생명이자 세상사 살아 있는 목숨의 모양새이다. 문득 득도한 스님의 말투같이 들려 송구스럽지만 실제 로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퓨전, 곧 섞임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일본 TV 프로그 아리랑은 누구의 것인가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박성봉 문화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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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천이년구월호 69

대중문화문화현상읽기

2002년한일월드컵이성공적으로끝나고한국과일

본사이의문화적교류가더욱활발해질전망이다. 몇

년전부터개방되기시작한일본대중문화의전면개방

또한언제일까적절한시기를보고있을뿐이다. 일본

총리의신사참배라든지일본역사교과서왜곡또는몇

몇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등과 같은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지않았다면벌써일본대중문화의전면개방이시

작되었을지도모른다. 이번여름에일본의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라는작품이개봉되어비교적성공적인관객들의호응

을받은것으로알고있다.

1980년대 말이었나 90년대 초 나 김대중 대통령-

물론그당시에는아직대통령이아니었지만-이스웨

덴을방문한적이있다. 스톡홀름에서강연이있었는데

강연이끝나고질문시간이있었다. 바로그즈음할아

버지 일본 천황이 세상을 떠났었고 그래서 나는 이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질문을 한번쯤 던질 때가

아닌가해서질문하려고손을들었다가, 솔직히좀겸

연쩍기도 하고 해서 슬그머니 다시 손을 내린 기억이

있다. 1990년대 중엽에는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책임

연구원으로있었는데지금돌이켜보면그무렵일본대

중문화개방의수순밟기가본격화되지않았나싶다. 어

쩌면이 이문자화될때이미일본대중문화의전면

개방이공포된후인지도모른다.

모든살아있는문화는퓨전이다

몇년전이었나, 여름방학을이용해마련한한일대

학생포럼에서문화쪽을맡아두나라대학생들과대

화의자리를함께한적이있다. 강원도어느수련원의

널찍한방에서곧다가올 8ㆍ15의의미라든지코끼리

전기밥솥의 인기라든지 등등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

누고있을때갑자기잠자리두마리가날아와우리앞

에서교미를시작했다. 우리대다수는환호했고그중

의 일부는 남사스러워하며 못마땅해했다. 심지어“떼

어! 떼어!”하고고함치는학생도있었다.

사실 일본 대중문화는 진작에 개방되어 있었다. 문

화는물과같아이리저리흘러다니는데한군데고 다

가는썩는다. 누군가는환호하고누군가는남사스러워

하겠지만잠자리한쌍은교미할수밖에없다. 이것이

문화의생명이자세상사살아있는목숨의모양새이다.

문득득도한스님의말투같이들려송구스럽지만실제

로모든살아있는문화는퓨전, 곧섞임이다.

우리나라의많은TV 프로그램들이일본TV 프로그

아리랑은누구의것인가한국과일본의대중문화

박성봉 문화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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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문화현상읽기

램의 향을받았음은부정할수없는사실이다. 만화

책들은이미해적판으로숱하게나와있었고, 일본애

니메이션은이름만우리식으로바꾸어 TV의 어린이

시간을메우고있었다. 내가아주어렸을때〈철인 88

호〉라는 만화가 인기가 있었다. 땅꼬마라는 주인공이

리모컨으로조종하는로봇이나오는만화 는데그오

리지널은일본만화〈철인 28호〉 다. 〈황금박쥐〉〈타

이거마스크〉〈은하철도 999〉〈마징가 Z〉…. 그 많은

추억의애니메이션들이일본애니메이션이었다. 나개

인적으로는솔직히좀놀랐을뿐이지실망이라든지뭐

그런정도는아니었다. 내가국민학교(지금초등학교)

다닐때한일협정이체결되던화기애애한분위기에서

일본애니메이션이학교에서상 된적이있었다. 〈요

술소년〉이란아주재미있던애니메이션이었는데강당

에서상 되어단체로관람했었다. 이애니메이션끝부

분에일본색이분명한의상들이나와서어린마음에도

신기했던기억이있다. 이애니메이션이국민학교순회

상 의프로그램에따라우리학교에까지왔던것인지

는모르겠다. 그리고내희미한기억에극장에서도상

하지않았나싶은데확실치않다. 이런일에관심있

는독자라면한번확인해봐도좋을것이다. 어머님이

일본에서사신적이있어서내가어릴때집에는일본

여성 주간지가 여러 권 있었다. 심심하면 들춰보기도

했고가끔씩라디오에서일본방송이잡히면“곰방와”

운운하는소리가신기해잠깐씩들어보기도했다. 1960

년대말인가 70년대초 나아시아가요제라는큰행사

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중가수들과 홍콩,

필리핀 등에서 온 가수들이 함께 저마다 노래 솜씨를

뽐냈는데물론일본에서도꽤인기있는대중가수가한

사람왔었다. 어머님이보시던주간지에서도본얼굴인

데아쉽게도이름은기억나지않는다. 부드럽게깔리는

저음이매력적인가수 다. 그때그가수는오로지미

국의 대중가수 짐 리브스의 노래만 어로 불러 일본

노래도한번들어봐야지했던어린마음에서운했던기

억이있다.

1994년에스웨덴에서귀국해대학에서젊은학생들

과만난지도벌써 7∼8년이되었다. 그동안보고서라

든지그밖의이런저런경로를통해학생들의문화적인

관심사에귀를기울여왔다. 문학쪽에서학생들이걸작

으로꼽는소설중에는다나카요시키라는일본작가의

「은하 웅전설」이있고, 무라카미하루키의「노르웨이

의 숲」도 자주 언급된다. 화 쪽은 이와이 슈운지의

어린시절추억의만화 화들은거의일본애니메이션이었다.

왼쪽부터〈은하철도999〉〈황금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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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천이년구월호 71

〈러브레터〉가 첫손에 꼽힌다. 출판 만화 쪽은 학생들

이 언급하는 대부분의작품들이일본만화라해도 과

언이 아니다. 「슬램덩크」와「드래곤 볼」을 양축으로

하여아다치미쓰루나우라사와나오키등의정말 다

양한 일본 만화들이 거론된다. 애니메이션 또한 디즈

니애니메이션이나〈사우스파크〉또는〈월레스& 그

로밋〉같은몇몇 ·미애니메이션을제외하고는일

본 애니메이션 일색이다. 위에서 언급한 한일 대학생

포럼에참가한한국학생들이〈신세기에반겔리온〉이

라는안노히데야키감독의애니메이션을일본학생들

과함께이야기할수있다고얼마나설레는마음으로

기다렸던지…. 〈신세기 에반겔리온〉이나〈건담〉같이

좀 마니아틱한 애니메이션에서부터〈마법소녀 리나〉

나〈보노보노〉또는미야자키하야오와다카하타이사

오가힘을합친지부리스튜디오의애니메이션에이르

기까지소위재패니메이션이학생들의관심의주류를

이룬다. 이제 여기에 전자오락 게임이 가세하면 출판

만화, 애니메이션, 전자오락 게임이라는 일본 대중문

화의 막강 버뮤다 삼각지대가 형성된다. 스타 크래프

트나디아블로같은PC 게임은미국쪽이강하지만소

니나세가의비디오게임쪽은거의일본게임일색이

다. 최근 스퀘어 소프트라는 게임사의〈파이날 판타

지〉류의롤플레잉게임은그음악이나 상, 감동적인

스토리 라인 등으로젊은 세대에 강한호소력을발휘

한다. 음악은 그렇게까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소위

J-pop 또는 J-rock이라해서꾸준히젊은세대의지

지층을확보해오고있다.

몇 년전지금보다일본음악을듣기힘든시절, 단

지듣기힘든일본음악을듣는다는사실하나로일본

음악을 듣는 층도 있었던 것 같은데…. 동시에 X-

Japan이나 L'Arc-en-Ciel 또는 아무로 나미에나

우타다히카루등의음악을남들에게도널리소개하고

싶어 조바심하던 학생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가끔씩

일본TV 드라마이야기도나온다. 얼마전MBC에서

방 된〈로망스〉라는 TV 드라마가 1999년에 방 된

일본TV 드라마〈마녀의조건〉의리메이크격이었는데

이드라마에대해서는이미일부학생들사이에서이

야기가돌고있었다.

일본대중문화중젊은층에서걸작으로꼽는소설「은하 웅전설」「노르웨이의숲」과출판만화「슬램덩크」「드래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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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문화현상읽기

물론아직김진명의「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나이

현세의「남벌」또는이우혁의「왜란종결자」등의작품

을거론하며일본에적대와경계의감정을드러내는학

생들도적지않으며일견순수해보이는미야자키하야

오나 다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에서도 무언가 기

분나쁜느낌을갖는학생들도여럿있다. 그래도일단

젊은세대쪽에서는적어도문화에있어일본과적극적

인 자세로 공존해 보려는 입장이 대세가 아닌가 말할

수있다. 실제로자본이나시장의규모와다양성, 단절

없는문화적전통등에서일본이우리나라보다훨씬유

리한경우인것은사실이다. 그러니까일본대중문화의

전면개방이자칫우리대중문화의종속화를야기할지

도모른다는우려는확실히근거가있다. 그렇지만나

는어떤의미에서문화도진검승부의측면이있으니맞

설건맞서고깨질건깨지면서성장을모색할수있을

정도로 우리의 대중문화가 유년기를 벗어나지는 않았

는가생각한다. 결국이현세의만화에서도일본만화의

향이느껴지고, 이우혁의「퇴마록」시리즈에서도스

케일은다르지만비슷한유형의일본소설들을떠올릴

수있다. 그러나그 향권에서양분을취해자라면서

이현세와이우혁의세계가뿌리를내리는것이다. 따지

고보면미야자키하야오의애니메이션에서도강한서

구의 향이 느껴지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뿐만 아니라

누구라도식성좋게이흐름저흐름취하다가드디어

는황금빛으로빛나는큼지막한똥을한무더기싸놓을

수있음은새삼스러운일이아니다.

순탄하게흘러온일본대중문화,

척박한땅가로질러온한국대중문화

와룡생이나양우생, 고룡, 김용등의중국 4인방에서

강한 향을받은우리의무협소설이김광주에서시작

해서 검궁인, 야설록, 금강, 서효원 등을 거치면서

1990년대중엽용대운이나좌백, 진산등의젊은한국

판신무협작가들을탄생시킨다. 이역사는동시에대

중문화의전 역에서벌어져온역사이기도하다. 문화

는흐름이라고했다. 정말중요한것은우리모두문화

를타고흘러가다가끔멈춰서서지금문화는어디로

흐르는가, 혹시고여썩고있는것은아닌가등의물음

을스스로에게던져보는일이다. 확실히일본의대중문

화는중세이후인위적인급격한단절없이비교적순

탄하게흘러온듯싶다. 부끄럽게도일본의대중문화를

제대로공부한적이없어서‘비교적’이라든지‘…듯싶

다’등과같은표현을쓸수밖에없는데어쨌든이노우

에다케히코의「배가본드」같은만화, T-스퀘어나류

이치사카모토등의음악, 이마무라쇼헤이의〈우나기〉

같은 화, 아야쓰지 유키토의「시계관의 살인사건」

같은추리소설등은일본대중문화의흐름이라는긴호

흡에서자연스럽게나타난작품들이라할수있다. 반

면에우리의대중문화는때로는인위적으로흐름이끊

문화는흐름이라고했다. 정말중요한것은우리모두문화를타고흘러가다가끔멈춰서서지금문화는어디로흐르는가, 혹시고여썩고있는것은아닌가등의물음을스스로에게던져보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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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천이년구월호 73

기기도 하면서 너무 척박한 땅을 가로질러 흘러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데쓰카 오사무라는 환상적인

첫단추가꿰인것은사실이지만사실우리에게도〈홍

길동〉의신동헌감독이있었다. 그러나지금〈홍길동〉

은어디론가통째로사라져버려나라면기억이라도하

지만젊은세대는앞으로도볼기회가없으니까…당연

히일본대중문화의전면개방이라는도전앞에서서두

르는마음이생길수있다.

그러나 억지로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래서 무엇이

되지도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중문화가 흐르는

이땅의문화적대기권이언제서부터인가변하고있지

않은가. 이곳 저곳에서 만화 관련 학과들이 개설되고

보수적인것으로이름난서울대음대의경우재즈관련

교양강좌를 개설하여 수강신청을 받는다. 벌써 몇 년

전부터 화나음악은토종작업들이대한민국국민들

의주목할만한지지를받고있으며TV 드라마의수준

도중국이나동남아시아의감탄을사고있다. 한가지

만 강조하자면 이 변화의 주역은 젊은이라는 것이다.

지금나는현실의나이를이야기하는것이아니다. 조

금과장하자면인간사모든쓸만한일들은젊은이들에

의해이루어져왔다. 모든성인들은젊은오빠들이었고

모든고전들도젊은예술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본격적인 식민지 체제

로들어갈때우리의대중음악도변했다. 소위뽕짝이

라불리는트롯형대중음악이 1930년대부터등장한다.

1920년대대중음악이었던〈희망가〉〈타향살이〉〈황성

옛터〉〈강남달〉등이모두세박자음악이었다. 심지어

1926년윤심덕의〈사의찬미〉도세박자왈츠의번안곡

이었다. 그러다가일본의대중음악엔카의 향을받아

뽕짝뽕짝뽕짜작뽕짝네박자의트롯이시작하는것이

다. 그래서일부에서는트롯은일본강점기시대의유

물이니하루라도빨리청산해야한다고주장했었다. 그

러나트롯은일본엔카의 향을강하게받은우리나라

의대중음악이다.

문화는 그렇게 흐르는 것이다. 인위적이라 그 과정

이자연스럽지않은부분도있었고작업하기힘든부분

도있었겠지만언제부터인가덩더쿵대신에뽕짝뽕짝

이우리의일상에서어떤역할을맡아왔다. 문제는트

롯이 조용필의〈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정점으로 이제

더이상젊은음악이아니라는것이다. 이발언은일반

화라서허점이많은데, 내가지금세대를문제삼는것

은아니라는점은분명히하고싶다. 젊은세대도술좌

석에서 트롯을 부르지만 대체로 거의 모두 흘러간 옛

노래일뿐이다. 물론최성수의노래들도있고김수철의

노래들도있지만이런것은일반화의한계이니까그냥

넘어가자. 개인의취향일뿐이라고반박할사람도있을

텐데그문제는내개인적인능력의한계이니까또그

냥넘어가고싶다. 그대신좀더객관적인자료를제시

하겠다. 1981년 11월『조선일보』에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실렸다.

20곡중에흘러간옛노래가 1위〈눈물젖은두만강〉, 2

위〈나그네설움〉을위시해서 19위〈번지없는주막〉까

지 8곡이었다. 트롯형의 대중음악까지 포함하면 12곡

정도가된다. 1999년인가MBC TV에〈21세기대중문

화대장정〉이라는프로그램이있었다.

거기서도설문조사를발표했는데한절반정도가트

롯형대중음악이었던것으로기억한다. 놀랍게도이것

은설문의대상으로 10대를제외한결과 다. 나로서는

경악할만한일이었다. 2001년MBC FM에서다시우

리시대의노래 20곡을발표했다. 시인과촌장의〈가시

나무〉, 유재하의〈사랑하기때문에〉에서박효신의〈해

줄수없는일〉, 임재범의〈사랑보다깊은상처〉에이

르기까지트롯형대중음악은단한곡도없었다. 물론

가끔 트롯도 4분의 4박자 트롯이 젊은 오빠의 기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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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문화현상읽기

뿜어낼때가있다. 나훈아가그랬고, 신바람이박사가

그랬고, 산울림, 심수봉, 김수철, 서태지와아이들에게

서도느낄수있다. 트롯이엔카의 향을강하게받은

것은나에게문제되지않는다. 현철, 설운도, 송대관,

태진아 등 소위 우리나라의 트롯 4인방이 스스로에게

치열하게묻고있는지궁금하다. “트롯은어디로흘러

가는가?”“지금트롯은한곳에고여썩고있지는않는

가?”이런물음에주어진대답은없다. 물음을계속던

지다보면그냥문득어느순간우리는트롯의뉴웨이

브가시작되고있음을알게될뿐이다.

비슷한이야기를하나만더하고싶다. 1900년대초

중국의경극의 향을받아창극의역사가시작하는데,

그때까지판소리는소리하는창자와북을치는고수두

사람의연희 다. 이제여러소리꾼들이역할을나누어

맡아이야기를풀어가는극적구성을갖게된다. 그러

다가 1940년대말여성들로만구성된창극이등장하는

데우리가보통여성국극이라부르는연희가그것이다.

여성이연기하는남성배역의중요성이나분장의전형

성등에서일본의여성뮤지컬다카라즈카와비슷한점

이많아 향관계를생각해볼수도있으나음악이나

춤에서분명히구별된다.

우리여성국극은남도창을기본으로하는전통연희

의성격을강하게띠고있다. 사실 1960년대전성을구

가하던우리나라의여성국극이젊은층을새로운관객

으로포섭하는데어려움을겪고있는반면일본의다

카라즈카는아직도어느정도대중성을확보하고있는

것으로보인다. 노래와춤에서전통에얽매여있지않

으므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선보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좀더근본적인삶의맥락도개입하는까닭이리

라. 내 짧은 견문으로 다카라즈카의 중요한 볼거리는

남성역을맡은여성의남성못지않는– 때로는남성

보다더한– 터프한‘후카시’라할수있다. 그러니까

아직도일본여성들은일상에서소위상냥한여성성을

강요당하고있는것이다.

우리여성국극은어떤가? 우리여성국극에서도남성

역을 맡는 여성 연희자는 스타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다카라즈카에 비해서 여성국극의 남성성은 부드럽고

관대하다. 물론 여기에도‘후카시’는 있지만 그것은

부드러운‘후카시’다. 그러니까 1960년대우리의어머

니들은 일상에서 자신들에게 억압된 터프한 남성성보

다는그보다더절박한어떤것을여성국극에서찾았던

것이다. 그것은무엇인가? 바로우리어머니들이일상

에서지겹게견뎌내야했던우리아버지들의투박하고

거친무관심이었다. 일상에서함부로내뱉는거친언어

일본애니메이션〈건담〉과〈신세기

에반겔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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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천이년구월호 75

들…. 거리를 함께 걸을 때에도 항상 몇 걸음 앞으로

가면서 가끔씩 뒤돌아보며 던지는 냉담한 시선…. 일

본남성들도그렇다고? 일본이문제가아니라 1960년

대 우리 아버지들은 감히 말하건대 세계 제일이었다.

그런데이제시대가변했다.

주위에 부드러운 남자들투성이가 아닌가. 유지태,

배용준, 유희열, 성시경등은그냥우리주위의누구일

수도 있다. 반면에 여성들은 조금씩 내면에 억압되고

있는남성성을심각하게의식하기시작한다. 내가스웨

덴에간첫학기첫시간에나에게다가와말을건학생

은 핀란드에서 온 여학생이었다. 군화에 가죽잠바를

걸치고파이프담배를피우고있었는데나에게다가와

“어이, 커피한잔어때?”그랬다. 지금나의느낌은우

리나라의많은젊은여성들이이럴수만있다면이렇게

하고싶다는것이다. 그러나이충동은일상에서억압

된다. 지금 여성국극은 스스로에게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묻고있는가? 여성국극은한곳에고여썩어가

고있는것은아닌가? 우리나라의젊은세대들이남도

창에서소외되고있는것도문제지만문제는그것만이

아니다. 얼마전에우연한기회에한여성국극전문극

단의최근몇년동안의공연팸플릿을구해서본적이

있다. 그것은감격적인경험이었다. 상당히힘든조건

에서도끊임없이판을벌이고있었으니까. 그런데문득

“이건이상한데?”라는의문부호가떴다.

한 번의공연도예외없이연출에서작곡, 조명, 무

대장치등등의역할을남성이맡고있는것이다. 기껏

해야 분장이나 홍보 정도의 역할이 여성의 것이었다.

분장이나 홍보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일관되게이래야하느냐하는것이다. 물론극단의

대표는 여성분이었지만 한국이든 일본이든 이러면 어

려울 수밖에 없다. 여성국극은 젊어야 한다. 말로 다

할수없는고충이한둘이아니겠지만나또한어떻게

라고말할수없다. 하지만위에서도말한것처럼서둘

러서될일은아니다. 여성이남성의역할을맡는연극

은어쨌든젊을수밖에없다. 그렇지않은가?

“누가아리랑을만들었건그게그렇게중요한가?”

문화는흐른다. 그리고흐름들이만나서새로운물줄

기를 이룬다. 인위적으로 흐름을 막으면 결국 옆으로

돌아만난다. 한자리에고이면썩는다. 얼마전『뉴스

메이커』라는주간지에서맛기행을연재하는맛칼럼니

스트황교익이‘김치맛왜곡하는기무치’라는 을쓴

그다음주에‘원래는뉘의것인고’라는 을새롭게써

서스스로를반성했다. 중국집에서자장면을먹으면서

느낀반성이다. 자장면은구한말청나라상인들이들여

와우리식으로완전히개조한음식이고, 자장면에딸

려나오는단무지도일본의다쿠앙이건너와우리무로

절인것이고, 양파역시 1940년대에우리나라에유입된

외래 농산물인데 어떻게 기무치와 김치를 비교하면서

‘왜곡’이라는표현을쓸수있었는지모르겠다며황교

익은자신의옹졸함을부끄러워했다. 맛칼럼니스트황

교익을직접만난적은없으나그는젊은사람이다.

말이쉽지이렇게젊기란사실어려운일이다. 적어

도내가아직스웨덴에있을때인 1990년대초까지스

웨덴문화정책의주요한지향점중의하나가범지구주

의 다. 트로츠키의 향을받은사회주의의전통이었

다. 모든문화가저마다의정당성을인정받았다. 내가

공부하던 웁살라라는 도시에서는 여름 축제로 브라질

삼바축제를빌려다썼다. 스웨덴의젊은이들은자연스

럽게 어로노래를만들어불 는데그중에는아바도

있었고 에이스 오브 베이스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스웨덴에서몇년살다보면느껴지는것이있다. 그것

은 질투심이다. 노르웨이나 덴마크 또는 핀란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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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문화현상읽기

이웃나라들이잘풀리면그렇게배아파한다. 세계어

느나라보다도열심히힘든처지의나라들을도와주면

서동시에이웃을질투하는것이다. 뿐만아니라 국

이나프랑스, 독일같은나라를선망하면서터키나방

라데시, 필리핀같은나라를무시한다.

일본은또어떤가. 우리나라에서이미자를엘레지의

여왕이라하듯일본엔카의여왕은미소라히바리라는

가수이다. 벌써이세상사람이아닌지오래이지만아

직도엔카의여왕으로불린다. 그만큼타의추종을불

허하게 노래를 잘한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일대기를

장장네시간이넘게제작하면서도그녀의아버지에대

해서는일언반구도언급이없다. 그녀의어머니이야기

만잔뜩이다. 왜그럴거라고생각하는가? 바로그녀의

아버지가한국사람이기때문이다. 언젠가일본사람을

한사람만났는데그는그래서엔카의여왕이라는타이

틀을다른일본의엔카가수에게로돌리려고열심이었

다. 아니, 적어도나에게는그런인상을주었다. 그래

도미소라히바리는스타 다. 일본에살고있는그숱

한우리동포들은오늘도굴욕을견디며산다. 일본사

람이전형적인한국사람이라고생각하는얼굴은한국

사람이전형적인일본사람이라고생각하는얼굴과같

다는조사결과가몇년전에 TV를통해방 된적도

있었다. 일본은대한민국을무시한다. 할수있다면역

사자체도왜곡하고싶어한다. 그러나대한민국도일본

을무시한다. 아니, 그럴수만있다면그렇게무시하고

싶어한다. 이것이세상이다.

우리나라는 세상에서도 으뜸갈 만큼 외국 사람들이

발붙이고살기힘든나라이다. 한국과일본은이웃이지

만이것은스웨덴과핀란드가이웃이라고말하는것과

별로다를게없다. 그래서문화는흐른다. 그 팍팍한

세상사갈라진틈바구니사이사이로피부를젊게해주

는로션처럼그렇게문화는흐른다. 그런데‘피부를젊

게해주는로션’이라니… 잘나가다가이게무슨놈의

비유란말인가.

마지막으로 독자의 젊음을 테스트해 보고 싶다. 사

실나자신도이테스트앞에서내나이를짐작할수없

다. 그러니까한마디로대답이준비되지않은질문이라

고할수있다. 1926년윤심덕의〈사의찬미〉가일본에

서녹음되던해우리나라 화사의중요한작품이개봉

되었다. 바로나운규감독의〈아리랑〉. 이 화를통해

〈아리랑〉이란 노래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이

제〈아리랑〉은 한민족의 노래가 되었다. 분단된 남과

북조차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겨레의 노래…. 그런데

〈아리랑〉은누가만든노래인가? 막연하게민요라고만

들어왔거나, 조금더궁금하면 1920년대그당시경성

(지금의서울)을중심으로사람들사이에서불리기시

작한 노래인데 작곡자는 알 수 없다는 정도의 자료는

쉽게구할수있다.

내가 1980년대스웨덴에있을때우연히「전후일본

문화사」라는책을보게되었다. 어로쓰여진책이고

한국과일본은이웃이지만이것은스웨덴과핀란드가이웃이라고말하는것과별로다를게없다. 그래서문화는흐른다. 그팍팍한세상사갈라진틈바구니사이사이로피부를젊게해주는로션처럼그렇게문화는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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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천이년구월호 77

쓴 사람은 쓰루미 케 다. 어로는「A Cultural

History of Postwar Japan 1945∼1980」이라는제목

이고원래 1984년일본어로쓰여진책이 1987년에 어

로번역되어출판되었다. 적당한관심과함께그책을

읽어가던중 99쪽에이르러이런문장과마주쳤다. “일

본노래의특징을구별하려면일본과가까운, 그러면서

도조금다른아시아여러나라들의노래들, 예를들어

인도네시아의〈붕가왕솔로〉라든지한국의〈아리랑〉같

은노래들을들어보면좋다.”문제는주 다. 위 문장

에주가붙어있어서책뒤를열어주를찾았다. 그리고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았다. 미야우치 칸야라는

이름과함께그가〈아리랑〉의선율을작곡했다는식으

로밖에는해석될수없는문장이실려있는것이다.

이책은 1996년한림신서의‘일본학총서’시리즈열

번째책으로서울대김문환교수가번역해서「전후일

본의대중문화」라는제목이붙어출판되었다. 이책에

는그주부분이참고문헌들에대한정보와함께이렇

게번역되어있다. “학교생활과는동떨어진군대신병

시절, 소년원에 갇혀 있는 시절, 미야우치는 조선의

〈아리랑〉과 합류하는 선율을 작곡했다.” 문이든 일

문이든다애매한문장인데어쨌든‘합류’라는번역은

재미있다. 한마디로학교다니다군대에징집된한젊

은 일본 군인이 만든 선율이 점차 지금의〈아리랑〉이

되었다는주장이다. 작년모 FM 방송음악프로그램

에정기적으로출연할때“이이야기를한번꺼내볼까

요?”하고PD에게제안한적이있었다.

그때 PD의 대답은“하지맙시다” 다. “일본 사람

들도참우습네요. 〈아리랑〉이한국사람들에게얼마나

소중한노래인데그걸잘알면서도검증도제대로되지

않은이런추억담을세상사람들이다읽는 문판책

속에떡하고싣다니…. 우리그사람들의장단에춤추

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꼭 이대로는 아니지만 대충

이런의미 다. 나는PD의생각에동의했고지금도참

현명한PD 다고생각한다. 지금내가다시이이야기

를꺼낸것이현명한건지어떤건지모르겠지만어쨌

든내질문의동기는분명하다. “그노래를누가만들

었건그게그렇게중요한가요?”아직나의대답은불

분명하다. 인간세상얽혀있는감정의매듭들이그렇

게쉽게만풀리는것은아니니까…. 꽤오래전에프랑

스의국가〈라마르세예즈〉가어떻게국가가되었는가

에대한 을읽은적이있다.

지금 프랑스 사람들이야 단순하게 자신들의 국가를

사랑할뿐이지만애당초그배경에는무언가복잡한고

려가작용하 던모양이다.

이 을쓴유진웨버라는이에의하면 1800년대프

랑스에는 지방마다 다양한 언어들이 저마다 생생하게

살아있었는데이언어들을표준프랑스어하나로묶는

데〈라마르세예즈〉가중요한역할을했다고한다. 그

렇다면 결론은? 사실〈아리랑〉도 좋지만〈진도 아리

랑〉도좋고〈강원도아리랑〉도좋다. 일본황실의조상

이백제인일수도있고우리나라도깨비가사실은일본

도깨비오니일수도있다.

문화가 그렇듯이 우리도 흐른다. 어제의 내가 오늘

의나일수없다. 일본대중문화의전면개방은새로운

나에대한기대이다. 중심은중요하지만때로는그중

심을흐트러뜨려도좋다. 그리고사실문화에는중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