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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정년교수 인터뷰 | 2020년 2월 24일 월요일 수학, 이제는 응용에 주목해야 할 때 지난달 17일 자연대(27동) 연구실에서 김명환 교 수(수리과학부)를 만났다. 김 교수는 2013년 대한수 학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수학계의 국제화, 수학계 연 구 전반의 인프라 강화, 수학의 대중화 등에 힘을 써 왔다. 정년을 맞는 소회를 묻자 그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Q. 수학의 다양한 세부 분야 가운데 정수론과 암호론 에 집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A. 정수론은 소수의 성질과 정수해에 관한 부정방정 식을 연구한다. 연구 과정이 수학적으로 깔끔해서 공 부에 흥미가 생겼다. 암호론은 소수의 성질을 이용해 암호를 개발하는 학문인데, 정수론이 순수 수학이라 면 암호론은 응용 수학이라 할 수 있다. 전자에서 얻 은 결과를 응용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면으 로도 연구하고 싶어 공부를 병행하게 됐다. Q. 수학에서의 응용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결과물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A. 수학의 응용은 첨단 산업의 발전을 위한 핵심이라 는 점에서 중요하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오늘 날 각광받는 첨단 산업들은 순수 수학에서 연구한 공 식을 컴퓨터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발달했다. 이렇듯 수학은 순수 학문의 차원에 머무르 지 않으며 보다 폭넓게 응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 무진하다. 일례로 내가 이끌었던 ‘응용대수 및 암호론 연구팀’에서 한때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브로드캐 스트 인크립션’(Broadcast Encryption)이라는 프로그 램을 개발한 적이 있다. 이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으로 유료 디지털 컨텐츠를 열람할 때 유료 결제를 한 사람에게만 컨텐츠 열람 암호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시리즈물처럼 신규 컨텐츠가 계속 만들어지는 경우 지속적으로 결제하는 소비자를 제외한 사용자의 암호 키는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실제 산업에서 쓰이진 못 했지만, 브로드캐스트 인크립션은 한때 국제산업표준 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Q. 후학 양성도 활발하게 해 온 것으로 안다. 본인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A. 처음 강의를 진행할 때는 학생의 이해 여부와는 관 계없이 주어진 시간 안에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데 만 급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방적으로 강의를 진 행해 수업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서 많은 학생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질문을 유도했다. 최대한 많은 학생을 지목해 사소하 더라도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새로운 고민을 할 수 있 도록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의 소통이 전제돼 야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가능함을 깨달았다. 또한 교 육은 학문 내의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 았다. 넓은 의미에서 교육은 연구자가 가져야 할 윤리 의식도 포함해야 한다. 연구자로서의 모범을 교육자 가 보여줘야 한다고 느꼈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끝으로 김명환 교수는 “후학들에게 반드시 수학의 응용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당부하고 싶다”라고 말했 다. 그는 “많은 연구자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수학을 여전히 순수 학문의 영역으로만 생각한다”라며 아쉬 워했다. 김 교수는 “교정을 떠나는 것이 굉장히 아쉽 지만 후학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관악에서의 생활을 ‘쿨하게’ 마무리하고자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공학과 의료의 만남을 추진하다 지난달 28일 공대(301동) 3층 전기․정보공학부 학생센터에서 김성준 교수(전기․정보공학부)를 만 났다. 김성준 교수는 전자공학을 의료분야에 접목 해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나노생체전자시스템공 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기자들을 반갑게 맞 이한 김 교수는 나노생체전자시스템공학 기술로 개 발된 신경 대체물을 눈앞에 보여주며 생생한 이야 기를 들려줬다. Q. 전기공학의 수많은 분야 중에서 나노생체전자시스 템공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A.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기술이 집중되는 곳은 메 모리나 시스템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에서 강세를 보이는 산업용 반도체다. 그에 비해 다른 분야에 반 도체 기술을 적용하는 시도는 다소 부진했다. 반도 체 기술을 의료분야에 접목할 경우, 인공와우, 인공 망막, 심부뇌자극기 등의 개발에 도움을 줘 신체 장 애를 치료하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이를 연구 하는 분야가 바로 나노생체전자공학이다. 나는 발 전 가능성이 높고,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서 나노생체전자공학을 연구하 게 됐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결과물은 무엇인가? A. 국내 최초로 다채널 인공와우를 개발한 일이다. ‘인 공와우’는 청각을 복원시키는 전자 이식체 기술이 적 용된 대표적인 신경 대체물로 고도의 청각장애자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소리를 신경 신호로 바꿔주 는 센서인 유모세포의 상실은 청각 장애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인공와우는 유모세포의 역할 을 대신 수행해 직접 청신경을 전기적으로 자극한다. 이런 인공와우 개념에 기초해 우리 연구팀이 국내 최 초로 다채널 인공와우를 개발했다. 그 결과 비교적 저 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한 인공와우를 공급할 수 있 게 됐다. 개발에 성공한 후 식약처의 허가도 받았고, 몇 명의 환자에게 이식해 성능을 확인했다. 이 연구가 신경 대체물을 활용해 청각장애를 치료하는 연구의 발전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전기정보공학부 학생센터 소장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A. 어려움을 겪다가 센터에 와서 나를 만나고 졸업을 잘한 친구들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상담하는 데 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시간을 내서 그들의 말을 듣고, 여건이 되면 밥을 사주는 것뿐이다. 소소한 것 같지만 학생들이 이를 통해 위로를 받고 좋아지는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이 이런 센터가 있는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부끄러움 이 많아 잘 이용하지 못하는 듯하다. 학생들이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센터를 찾아주면 좋겠다. Q. 정년 이후의 계획이 있는가? A.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인공와우, 인공망막, 심부뇌자극기에 대한 연 구에서는 모두 자극을 대신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 신경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가운데 인공망막의 경우 극히 예민한 신경인 시신경을 다루 다 보니 다른 두 분야에 비해 개발이 순조롭지 못하 다. 인공망막 개발의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에 대해 정년 후 더욱 공부하고 싶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가르치고 싶었던 것 이 현대의 성과 제일주의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 을 다잡는 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과학 기술자가 돼야 한다”라며 “위만 보지 말고 옆과 아래도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 원한다”라는 응원의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이소현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원가영 기자 [email protected] 이재용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박소윤 기자 [email protected] 삽화: 김지온 기자 [email protected]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이번 정년교수 인터뷰는 정년퇴임을 맞은 교수 중 인터뷰를 사양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은 교수를 제외한 13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수학, 이제는 응용에 주목해야 할 때 자연과학대학pdf.snunews.com/2001/200107.pdf · 김명환 교수 수리과학부 삽화: 김지온 기자 [email protected]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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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수학, 이제는 응용에 주목해야 할 때 자연과학대학pdf.snunews.com/2001/200107.pdf · 김명환 교수 수리과학부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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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정년교수 인터뷰 | 2020년 2월 24일 월요일

수학, 이제는 응용에 주목해야 할 때지난달 17일 자연대(27동) 연구실에서 김명환 교

수(수리과학부)를 만났다. 김 교수는 2013년 대한수

학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수학계의 국제화, 수학계 연

구 전반의 인프라 강화, 수학의 대중화 등에 힘을 써

왔다. 정년을 맞는 소회를 묻자 그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Q. 수학의 다양한 세부 분야 가운데 정수론과 암호론

에 집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A. 정수론은 소수의 성질과 정수해에 관한 부정방정

식을 연구한다. 연구 과정이 수학적으로 깔끔해서 공

부에 흥미가 생겼다. 암호론은 소수의 성질을 이용해

암호를 개발하는 학문인데, 정수론이 순수 수학이라

면 암호론은 응용 수학이라 할 수 있다. 전자에서 얻

은 결과를 응용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면으

로도 연구하고 싶어 공부를 병행하게 됐다.

Q. 수학에서의 응용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결과물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A. 수학의 응용은 첨단 산업의 발전을 위한 핵심이라

는 점에서 중요하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오늘

날 각광받는 첨단 산업들은 순수 수학에서 연구한 공

식을 컴퓨터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발달했다. 이렇듯 수학은 순수 학문의 차원에 머무르

지 않으며 보다 폭넓게 응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

무진하다. 일례로 내가 이끌었던 ‘응용대수 및 암호론

연구팀’에서 한때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브로드캐

스트 인크립션’(Broadcast Encryption)이라는 프로그

램을 개발한 적이 있다. 이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으로 유료 디지털 컨텐츠를 열람할 때 유료 결제를 한

사람에게만 컨텐츠 열람 암호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시리즈물처럼 신규 컨텐츠가 계속 만들어지는 경우

지속적으로 결제하는 소비자를 제외한 사용자의 암호

키는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실제 산업에서 쓰이진 못

했지만, 브로드캐스트 인크립션은 한때 국제산업표준

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Q. 후학 양성도 활발하게 해 온 것으로 안다. 본인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A. 처음 강의를 진행할 때는 학생의 이해 여부와는 관

계없이 주어진 시간 안에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데

만 급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방적으로 강의를 진

행해 수업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서 많은 학생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질문을 유도했다. 최대한 많은 학생을 지목해 사소하

더라도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새로운 고민을 할 수 있

도록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의 소통이 전제돼

야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가능함을 깨달았다. 또한 교

육은 학문 내의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

았다. 넓은 의미에서 교육은 연구자가 가져야 할 윤리

의식도 포함해야 한다. 연구자로서의 모범을 교육자

가 보여줘야 한다고 느꼈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끝으로 김명환 교수는 “후학들에게 반드시 수학의

응용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당부하고 싶다”라고 말했

다. 그는 “많은 연구자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수학을

여전히 순수 학문의 영역으로만 생각한다”라며 아쉬

워했다. 김 교수는 “교정을 떠나는 것이 굉장히 아쉽

지만 후학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관악에서의 생활을

‘쿨하게’ 마무리하고자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공학과 의료의 만남을 추진하다지난달 28일 공대(301동) 3층 전기․정보공학부

학생센터에서 김성준 교수(전기․정보공학부)를 만

났다. 김성준 교수는 전자공학을 의료분야에 접목

해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나노생체전자시스템공

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기자들을 반갑게 맞

이한 김 교수는 나노생체전자시스템공학 기술로 개

발된 신경 대체물을 눈앞에 보여주며 생생한 이야

기를 들려줬다.

Q. 전기공학의 수많은 분야 중에서 나노생체전자시스

템공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A.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기술이 집중되는 곳은 메

모리나 시스템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에서 강세를

보이는 산업용 반도체다. 그에 비해 다른 분야에 반

도체 기술을 적용하는 시도는 다소 부진했다. 반도

체 기술을 의료분야에 접목할 경우, 인공와우, 인공

망막, 심부뇌자극기 등의 개발에 도움을 줘 신체 장

애를 치료하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이를 연구

하는 분야가 바로 나노생체전자공학이다. 나는 발

전 가능성이 높고,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서 나노생체전자공학을 연구하

게 됐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결과물은 무엇인가?

A. 국내 최초로 다채널 인공와우를 개발한 일이다. ‘인

공와우’는 청각을 복원시키는 전자 이식체 기술이 적

용된 대표적인 신경 대체물로 고도의 청각장애자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소리를 신경 신호로 바꿔주

는 센서인 유모세포의 상실은 청각 장애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인공와우는 유모세포의 역할

을 대신 수행해 직접 청신경을 전기적으로 자극한다.

이런 인공와우 개념에 기초해 우리 연구팀이 국내 최

초로 다채널 인공와우를 개발했다. 그 결과 비교적 저

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한 인공와우를 공급할 수 있

게 됐다. 개발에 성공한 후 식약처의 허가도 받았고,

몇 명의 환자에게 이식해 성능을 확인했다. 이 연구가

신경 대체물을 활용해 청각장애를 치료하는 연구의

발전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전기․정보공학부 학생센터

소장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A. 어려움을 겪다가 센터에 와서 나를 만나고 졸업을

잘한 친구들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상담하는 데

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시간을 내서 그들의

말을 듣고, 여건이 되면 밥을 사주는 것뿐이다. 소소한

것 같지만 학생들이 이를 통해 위로를 받고 좋아지는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이

이런 센터가 있는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부끄러움

이 많아 잘 이용하지 못하는 듯하다. 학생들이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센터를 찾아주면 좋겠다.

Q. 정년 이후의 계획이 있는가?

A.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인공와우, 인공망막, 심부뇌자극기에 대한 연

구에서는 모두 자극을 대신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 신경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가운데

인공망막의 경우 극히 예민한 신경인 시신경을 다루

다 보니 다른 두 분야에 비해 개발이 순조롭지 못하

다. 인공망막 개발의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에 대해 정년 후 더욱 공부하고 싶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가르치고 싶었던 것

이 현대의 성과 제일주의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

을 다잡는 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과학 기술자가 돼야 한다”라며 “위만

보지 말고 옆과 아래도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

원한다”라는 응원의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이소현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원가영 기자 [email protected]

이재용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박소윤 기자 [email protected]

김성준 교수전기․정보공학부

김명환 교수수리과학부

삽화: 김지온 기자 [email protected]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이번 정년교수 인터뷰는 정년퇴임을 맞은 교수 중

인터뷰를 사양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은 교수를 제외한 13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