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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vita Bible Class by Somang Presbyterian Church SBC by SPC VI I. 2018 년년 년년 년년 (Curriculum) 년년 년년 년년 1 월 24 월(4 th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1): 월 월월월 월 1:1-11 1 월 31 월(5 th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2): 월월 월월월 월 5:12-26 2 월 7 월(1 st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3): 월월월 월월 월 8:1-8 2 월 21 월(3 rd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4): 월월월 월월 월 10:17-33 3 월 7 월(1 st ) 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 월 13:1-12 3 년 21 년(3 rd ) 년년, 년년년 년년년 년년년 년 15:1-11 * 3 월 28 월(4 th ) 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월 월 18:1-11 4 월 4 월(1 st ) 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 21:1-16 II. 3 년 21 년 년년 년년 1. 월월 월 월월 월월월 (월월월 446 월) 2. 월월 3. 월월 월월 (월월 / 월월월 월월, 월 1:8 & 월 28:19~20) 4. 월월 월월 [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 15:1-11] 5. 월월 월 월월 (월월 / 월월월 월월, 월 15:11) 6. 월월월월 월월 7. 월월월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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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C by SPC VII. 2018 년도 교과 과정 (Curriculum)

일시 제목 성경

1 월 24 일(4th)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1): 땅 끝까지 행 1:1-111 월 31 일(5th)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2): 박해 속에서 행 5:12-262 월 7 일(1st)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3): 장벽을 넘어 행 8:1-8

2 월 21 일(3rd)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4): 편견을 깨고 행 10:17-333 월 7 일(1st) 성령, 선교의 문을 열다 행 13:1-12

3 월 21 일(3rd) 소통, 선교의 장벽을 허물다 행 15:1-11* 3 월 28 일(4th) 동역, 선교의 장을 넓히다 행 18:1-11

4 월 4 일(1st) 사명, 선교의 가치를 말하다 행 21:1-16

II. 3 월 21 일 모임 순서

1. 찬양 주 음성 외에는 (찬송가 446 장)

2. 기도

3. 과제 점검 (예습 / 암기한 말씀, 행 1:8 & 마 28:19~20)

4. 성경 공부 [소통, 선교의 장벽을 허물다, 행 15:1-11]

5. 다음 중 과제 (예습 / 암기할 말씀, 행 15:11)

6. 기도제목 나눔

7.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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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 복습]

1. 사도행전 중심 구절 (사도행전 1:8)

“오직 _________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_________을 받고 _________과 온 _________와 _________와 _________ 끝까지 이르러 내 _________이 되리라 하시니라”

2. 지난 주 암송 구절 (마태복음 2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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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_________ 모든 민족을 _________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_________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_________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_________날까지 너희와 _________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사도행전 기록 목적

This book is for every C_________ who wants to experience the p_________ of the H_________ S_________ and be a w_________ for Jesus Christ “to the e_________ of the e_________” (1:8). Ask G_________ what part He wants you to play in taking the g_________ to the whole w_________, starting right where you are.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9:6) - Warren W. Wiersbe,

『With the Word』, 1991, 705.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사도행전 강해), IVP, 1992, 366~367.

고넬료와 안디옥의 헬라 사람들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셨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방인 회심자들이 드문드문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방인들이 믿게 된다는 일반적 개념에 대해서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많은 구약 본문에서 그들도 포함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한 가지 특별한 질문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어떤 수단을 통해 믿는 공동체에 가입하도록 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할례에 의해 이스라엘에 합병될 것이라고, 그리고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진실한 일원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 매우 다른 어떤 것,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심지어 놀라게 만든 어떤 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방인 회심자들이 할례도 받지 않고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 교제권 내에 맞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이 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주체성과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이방인들의 회심을 승인해 준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들은 할례 없는 회심, 율법의 행위 없이 예수님을 믿는 것, 유대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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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되지 않은 채 메시아께 헌신하는 것을 승인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시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대교 내의 개혁 운동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좋은 소식으로 볼 만큼,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유대교의 한 종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국제적인 가족으로 볼 만큼 충분히 넓었는가? 이러한 것들이 바로 몇몇 사람들이 감히 던지고 있는 혁명적인 질문들이었다.

헨첸(E. Haenchen)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15 장은 전환점, 이 책의 ‘중심부’이며 ‘분수령’, 과거의 발전들을 마무리 짓고 정당화하는 사건, 그리고 앞으로 있을 발전들을 본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누가는 조용히 강조점을 바꿈으로써 이것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이 장에서 예루살렘은 여전히 관심의 초점이며, 베드로는 이 이야기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베드로가 사라지고 대신 바울이 등장하며, 바울이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으로 힘차게 나아감에 따라 예루살렘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고, 로마가 시야에 등장한다.

실제로 우리 자신은 지금에 와서 교회사의 관점에서 볼 때,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이 첫 번째 전 기독교적 회의가 얼마나 중대한 것이었는지를 볼 수 있다. 그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은 복음을 유대적 속박에서 해방시켜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될 수 있게끔 했으며, 유대-이방인 교회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의 화목된 백성,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고 신원을 인식하게끔 해주었다.

John A. Motyer, 『New Bible Dictionary』 (새성경사전),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1738.

할례(Circumcision)

창세기 17 장이 이스라엘의 할례의 기원에 대한 유일한 성경적 기록이다... 할례는 신약 시대의 유대교의 기본 특징이며, 사도 시대의 유대주의 논쟁의 불씨였다. 신약의 유대인들은 할례를 모세와 밀착시켜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기본적으로 아브라함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사실상 잊고 있었던 것이다(행 15:1, 5; 21:21). 그래서 우리 주님은 할례가 모세보다 앞서 있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우쳐 주셔야 했었다(요 7:22). 바울도 사람들이 할례를 모세와 관련지어 이해하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강조하여(갈 5:2~3), 시종일관 자기의 독자들을 아브라함에게로 되돌아가게 한다(롬 4:11).

행 21: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요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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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5:2~3,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롬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로마서 강해), IVP, 1996, 163~164.

바울의 첫 번째 질문은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았는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는가였다(1~3 절). 그의 두 번째 질문은 ‘의롭다 함이라는 이 행복이 할례자(유대인)에게만 주어지는가 아니면 무할례자에게도 주어지는가’이다(9 절). 이 질문 때문에 보충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어떻게’(직역하면 ‘어떤 상황에서’ – 역주)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는가이다. 그가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시냐 무할례시냐’(10 절 상). 다시 말해, 랍비들이 가르치듯이, 그는 먼저 할례를 받고 그리하여 의를 이루었는가? 아니면 할례받았을 때 이미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상태였는가? 사건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가? 특히, 그가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것은 그가 할례받기 전에 일어난 일인가, 후에 일어난 일인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간단하고 무뚝뚝하다.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10 절 하). 사실상 이 일은 할례받기 오래 전에 일어났다. 그가 의롭다 함을 받은 사실은 창세기 15 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할례받은 사실은 창세기 17 장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사건의 시간적 간격은 적어도 십사 년 심지어 랍비들에 따르면 이십구 년이 된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분리되어 있다고 해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는 것은, 비록 의롭다 함을 받은 근거가 아니지만 그것의 표징이고 인이었다.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11 절 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이 할례를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표징’이라고 부르셨다(창 17:11). 마찬가지로, 바울은 이제 그것을 칭의의 표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하나의 ‘표징’으로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구별해 놓는 표시이다. 사실상 그것은 그들의 신원을 밝히는 표징일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이 진정 의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입증하는 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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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주신 두 개의 독특한 선물 즉 칭의와 할례를 받았다. 먼저 칭의 그리고 그 다음에 할례의 순으로 받은 것이다. 첫째로, 그는 아직 할례받지 않았을 때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둘째로, 그는 이미 받은 칭의에 대한 가시적인 표징과 인으로서 할례를 받았다. 세례도 마찬가지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문제, 곧 세례와 할례를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 유아 세례를 정당화해 주는가 아닌가를 접어 둔다면, 성인 회심자에게 있을 순서는 명백하다. 먼저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그 다음에 의롭게 된 것에 대한 표징 혹은 인으로서 세례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올바른 순서를 지켜야 하며, 표징(세례)과 그것의 의미(칭의)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핫지가 썼듯이, ‘하나의 표징으로서는 제 역할을 다하는 것도, 그것이 의미하는 실재를 대체하려 할 때에는 볼품없는 대체물이 되어 버린다.’

바울은 계속해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그 후에야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이는’, 12 절)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먼저 아브라함이 ‘무할례자로서 믿는’ 그리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모든 자의 조상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실제로 그러하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이방인 신자들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는 데 할례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이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도 더 이상 할례가 필요하지 않다. 이같이 믿음과 칭의와 할례가 결합된 두 번째 목적은, 아브라함이 ‘또한 할례자’ 곧 할례를 받은 것에 대해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의 조상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실제로 그는 그러하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은 사람이건 받지 않은 사람이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다. 사실상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했던 할례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의 하나됨을 침해하거나 혼란케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유대인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인류의 역사에서 위대한 분기점’이지만, 바울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을 통해서 ‘할례를 받았건 할례를 받지 않았건 모든 믿는 자를 위한 위대한 집결점’이 되었다. 할례는 분열시키는 반면 믿음은 연합시키기 때문이다.

Although according to the Jews Abrahams was ‘the great dividing point in the history of mankind,’ according to Paul Abraham through his faith became ‘the great rallying point for all who believes, whether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For where circumcision divides, faith un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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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ine of Hippo, “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liberty; in all things, charity.”“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사도행전 강해), IVP, 1992, 37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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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겸손하게 말했다.

먼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베드로의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그들 가운데서 그를 택하셨다(7 절). 선택도 하나님의 것이었고, 특권도 그분의 것이었다.

둘째,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증거하셨다(8 절). 이는 베드로가 전에 한 진술, 곧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10:35)는 진술이 회심에는 인종적 장벽이 없다는 의미임을 입증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분의 성령을 주셨을 때에만 그들을 그분의 가족으로 맞아들이신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다.’

셋째, 믿음으로 그들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않으셨다(9 절). 그럼으로써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외적인 음식물이나 의식상의 정결이 아니라 내적 정결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또한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정결이었다.

이러한 삼중적인 하나님의 역사(베드로를 선택하심, 성령을 주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심)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그것을 표현하면서 베드로는 그 정반대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0 절, 즉 왜 그분이 이미 분명하게 계시하신 것에 저항함으로 그분을 자극시키는 것입니까?) 우리 유대인들은 율법에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방인들이 그렇게 하기를 기대한다는 말인가? ‘그럴 수 없습니다.’ (영어 성경의 No 가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다 – 역주) 베드로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로 믿노라 하니라”(11 절)

베드로의 증언 중심 주제는 단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들었고, 예수를 믿었으며, 성령을 받았고, 믿음에 의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뿐 아니라, 각 단계에서 하나님은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9 절). 베드로의 연설에 대한 누가의 압축된 보고에서 네 번에 걸쳐 ‘우리를-그들을”, 혹은 ‘우리는-그들은’이라는 주제가 반복된다.

Max Lucado, 『Anxious for Nothing』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생명의말씀사, 2018, 63~67.

죄책감은 영혼을 시들게 한다. 은혜는 영혼을 소생시킨다. 바울은 이 은혜를 굳게 붙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했다. 바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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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신자들을 붙잡아 피 흘리게 한 그는 요즘으로 치면 테러리스트였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 8:3). 게다가 그는 지독한 율법주의자였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 바울은 평생 자기 구원을 위해 노력했다. 구원은 그의 완벽함과 행위에 달려 있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4~6)

바울은 손에 피를 묻히고 벽에는 종교학 학위증을 걸어놓았다. 그러나 그 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다. 일단 예수님을 보자 그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력의 가치가 보이지 않았다. 더는 자신의 공로와 선행의 가치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이 하는 여하한 일에 대해서도 자랑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남은 평생을 자신에 대해서는 더 적게 말하고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바울은 은혜를 노래하는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빌 3:7) 하나님은 바울에게 자기 구원 대신 의를 주셨다. “이제 나는 율법을 지켜서 내 스스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 의는 어디까지나 믿음에 근거한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빌 3:9, 현대인의 성경)

바울은 죄책감을 예수님께 드렸다. 그는 죄책감을 마비시키거나 감추거나 부인하건 다른 것으로 상쇄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벌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죄책감을 그냥 예수님께 드렸고,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행복은 성인은 죄의 심각성과 은혜의 무한을 모두 아는 이다. 죄는 줄어들지 않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줄어들지 않는다. 행복한 성인은 죄가 아니라 은혜 안에 거한다. 그의 영혼은 평안하다...

나는 이 은혜의 능력에 대해 증언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을 그 도시로, 그 도시 안의 그 교회로, 그 교회 안의 그 신도석으로 안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은혜가 나를 찾아왔을 때, 내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나는 스무 살짜리 대학교 2학년생이었는데, 4 년째 콘크리트 블록 같은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처음에는 술에 취했던 날에 느낀 죄책감뿐만 아니라 그 후로 100번도 더 넘게 술에 취한 데서 비롯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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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죄책감은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나는 비참한 인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그 교회의 목사님이 지금 내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했다. 바로 죄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그가 설교 말미에 이 은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하는 순간 죄책감의 쇠사슬은 나를 더는 속박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자비가 죄책감의 쇠사슬을 끊고 나를 자유하게 했다. 죄책감은 영혼을 격동시키지만 은혜는 영혼을 잠잠하게 한다.

그것이 벌써 40 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다양한 종류의 염려가 나를 괴롭혔지만, 죄책감에 기초한 염려는 없었다. 큰 죄인이 되는 것의 좋은 점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용서를 발견했다. 나는 최초로 구원받은 순간보다 더 많이 구원받거나 더 적게 구원받은 적이 없다. 내가 행한 어떤 잘못도 구원을 부족하게 하지 않았고 어떤 선행도 구원을 넘치게 하지 않았다. 내가 구원받는 것은 내가 한 일과는 상관이 없고 온통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과 상관이 있다.

당신은 이 은혜를 아는가? 만약 모른다면 당신이 염려의 근원에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쁜 스케줄과 결혼생활과 일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해소되지 않은 죄책감이 문제다.

죄책감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있지 말라. 스스로를 정죄하는 허튼 소리의 바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자동차 앞 유리가 백미러보다 큰 이유가 있다. 미래가 과거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의 죄보다 크다. 당신이 한 일은 선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하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 인생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바울과 함께 이렇게 말하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행 15:12~21>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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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사도행전 강해), IVP, 1992, 376~377.

야고보의 진술은 얼핏 보기보다는 상당히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백성’과 ‘자기 이름을 위할’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어김없이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이방인 신자들도 이제 하나이자 둘도 없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부름받고 선택받은 참 이스라엘에 속했다는 그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야고보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아모스 9:11~12 을 인용했다. 이 아모서의 인용문은 두 관련된 진리에 대한 강력한 진술이다. 하나님은 먼저 다윗의 무너진 집을 회복하고 그 허물어진 곳을 다시 고치실 것이며, 그래서 남은 이방인들이 주를 찾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다시 말해,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이 그분의 새로운 공동체에 포함되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다윗의 씨인 그리스도의 부활과 높이 올려지심 그리고 그분의 백성이 확립된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처럼 할례당들이 자신들의 옹호자라고 주장했던 야고보가 자신은 베드로, 바울, 바나바와 완전히 의견이 일치한다고 선포했다. 이방인들이 포함된 것은 하나님의 뒤늦게 궁리해 내신 방편이 아니라 예언자들에 의해 이미 예언된 것이었다. 성경 자체가 그 선교사들이 경험한 사실들을 확증해 준다. 하나님이 사도들을 통해 행하신 것과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은 일치한다. 성경과 체험, 예언자들의 증언과 사도들의 증언 간의 이러한 일치는 야고보에게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F. F. Bruce, The Book of Act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ment (사도행전), 아가페출판사, 2014,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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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야고보의 결론은 결국 이것이다.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할례와 할례에 수반되는 모든 율법의 의무를 부과하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구원의 도와 교회 교제의 조건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그 바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 즉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은혜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방인 신자들은 유대인 신자들과 나란히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신자들은 어릴 때부터 각종 음식에 대한 율법을 준수할 것과 가능한 한 이방인과의 상종을 피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이방인들에게 의식 율법에 복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에 이방인 형제들이 유대인 태생의 ‘더 약한 형제들’에게 신중하게 행동하는 일을 잘 해내야 되었다. 이것은 유대인 형제들이 모두 베드로나 바울같이 즉시 음식 율법과 같은 여러 가지 율법에 대하여 자유로운 견해를 체득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고보는 이방인 신자들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자신의 신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이방인 형제들에게, 우상에게 드린 고기와 정당하게 피를 빼지 않는 고기를 금하고, 이성 관계에 있어서 지금까지 익숙한 저급한 이교도들의 표준에 만족하여 머무르지 말며, 유대인의 높은 도덕률에 순응함으로 유대인 형제들의 양심의 거리낌을 존중하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의견은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 사이의 사회 교제와 식탁 교제의 길을 부드럽게 하였을 것이다.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사도행전 강해), IVP, 1992, 389~392.

영구적 교훈

사도행전 15 장은 적어도 영구적인 가치를 지닌 두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구원과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는 교제와 관련된 것이다.

1. 구원: 기독교 진리의 문제

유대주의자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1 절). 그러므로 교회가 서로 경합하는 신학적 파벌들로 나누어져 사도들마다 서로 다른 복음들을 가르치고 교회의 연합이 파괴될 위험이 있었다. 그 위험은 충분히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유대주의자들은 야고보의 권위는 주장하고 바울은 부인했다. 베드로는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다가 바울에게서 반박을 당했다. 그 세 사도들은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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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야고보와 바울은 서로 맞서고 있으며 베드로는 그들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듯하다. 그 상황은 위급한 것이었다. 그래서 누가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어떻게 베드로가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바울이, 그리고 그 다음에 야고보가 말했는가 하는 것과, 성경과 체험이 어떻게 부합되었는가 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그 사도들(베드로, 바울, 야고보)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만장일치의 결정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22, 28 절)을 무척 애써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복음의 하나됨은 교회의 하나됨을 유지시켜 주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복음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복음, 우리를 대신해서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신 데서 나타난 바, 죄인들에 대한 그분의 과분한 사랑에 대한 복음이다. 게다가 그것은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에 대한 복음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예를 들어, 유대교)의 보충물이나 다른 어떤 것(예를 들어, 할례)에 의해 보충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 복음은 훼손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유대주의자들이 범한 실수였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할례와 율법의 행위가 그에 더해져야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여러 다른 종류의 행위들, 가령 자선이나 종교적 관습을 지키는 것, 또는 특정한 의식이나 체험 등을 덧붙이려 애쓴다. 각 경우에 그것은 ‘예수님 + 00’ (Jesus plus)식의 복음이다. 그것은 그분이 하신 사역의 충분성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의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들과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11 절). 우리와 그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똑 같은 방식으로,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도적 복음을 통해 구원받았다.

2. 교제: 기독교적 사랑의 문제

복음의 변질되지 않도록 막는 일과 교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손상시키는 일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저항하고,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했으며 갈라디아인들에게 열렬한 호소의 글을 썼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결속을 유지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복음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서 교회를 하나되게 할 수 있었는가? 아니면 교회의 연합을 희생시키지 않고서 복음의 완전무결함을 수호할 수 있었는가? 그의 대답은 그의 마음과 정신의 위대함을 드러낸다. 구원은 은혜로만 된 것이며, 할례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중립적인 것이라는 신학적 원리를 일단 확고하게 확립해 놓고 나서, 이제 그는 그의 실제적 정책들을 조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양보를 하는데, 둘 다 똑같이 융화적 이유로 인한 것이었다. 첫째로 그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제안한 네 가지 문화적 금지 사항들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은 널리 읽혀지고 전해졌으므로, 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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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이 그 네 가지 금지사항을 지키면 유대인의 양심을 편하게 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회적 교제를 촉진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그는 디모데가 계속 할례를 받지 않을 경우 마음이 상하게 될 유대인들을 고려하여 그에게 할례를 베풀었다(방금 할례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던 그가!)...

사도행전 15 장과 16 장에 나오는 바울의 양보는 그의 서신서들에 나오는 융화적 가르침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그는 ‘강한’(또는 ‘지식에 기초한’) 양심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에게 ‘연약한’(또는 ‘지나치게 주의 깊은’) 양심을 지닌 사람들을 침해하지 말라고 촉구한다. 강한 양심은 우리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지만,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또한 바울은 비록 자유롭지만 기꺼이 다른 사람의 종이 되었다. 율법에 매여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는 율법에 매여 사는 사람처럼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율법에 매여 사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였다... 루터가 말했듯이, 바울은 믿음에서 강하고, 사랑에서 부드러웠다. 따라서, ‘믿음에 관해서는 우리는 불굴의 존재가 되어야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철석보다 더 단단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울리는 사랑에 관해서는 부드럽고, 갈대나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보다 더 유연하며 모든 것에 양보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아니면 존 뉴튼(John Newton)이 1799 년 절충학회(Eclectic Society)의 모임 기간에 말한 바 있듯이 ‘바울은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갈대였으며,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쇠기둥이었다.’

* eclectic society: English missionary and anti-slavery society, founded in London in 1783.

[행 15:1-1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Some men came down from Judea to Antioch and were teaching the

brothers: 'Unless you are circumcised, according to the custom taught by Moses, you cannot be saved.'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This brought Paul and Barnabas into sharp dispute and debate with

them. So Paul and Barnabas were appointed, along with some other believers, to go up to Jerusalem to see the apostles and elders about this question.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The church sent them on their way, and as they traveled through Phoenicia and Samaria, they told how the Gentiles had been converted. This news made all the brothers very gl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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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When they came to Jerusalem, they were welcomed by the church and the apostles and elders, to whom they reported everything God had done through them.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Then some of the believers who belonged to the party of the Pharisees stood up and said, 'The Gentiles must be circumcised and required to obey the law of

Moses.'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The apostles and elders met to consider this question.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After much discussion, Peter got up and addressed them: 'Brothers, you know that some time ago God made a choice among you

thatthe Gentiles might hear from my lips the message of the gospel and

believe.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God, who knows the heart, showed that he accepted them by giving the Holy Spirit to them, just as he did to us.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He made no distinction between us and them, for he purified their hearts by faith.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Now then, why do you try to test God by putting on the necks of the

disciplesa yoke that neither we nor our fathers have been able to bear?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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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We believe it is through the grace of our Lord Jesus that we are saved, just as they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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