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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11 노르웨이 페르귄트 페스티벌 <페르귄트> 아름답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마저도 2008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일시 : 10월24일~10월26일 금7시반, 토3시7시반, 일3시 장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헨릭 입센 연출 : 스베인 스툴라 훈그네스(Svein Sturla Hungnes) 기획 : 페르귄트 페스티벌(Peer Gynt AS) 문의 : 2280-4115~6 (국립극장 고객지원센터)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페르귄트가 일생을 방황하며 마지막으로 손아귀에 쥘 수 있었 던 것은, 한 평생을 기다려온 그의 연인 솔베이지도,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줄 고향 마을도 아니었다. 바로 페르 귄트 그 자신. 허풍쟁이에 난봉꾼에 협잡꾼이었던, 부정하고 싶고, 되돌리고 싶은,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그 자 신이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꿈과도 같았던 인생, 그 안에서 그는 어쩌면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일 수 없었을지 모른다. 돈과 명예, 영광스러운 기억과 넘치는 기개가 아스라이 사라진 자리엔 오직 텅 빈 자신만이 덩그마니 놓여있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 그에게 영원과도 같은 안식이 깃든다. 노르웨이 극 작가 헨릭 입센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애잔한 선율이 너울너울 어울린 <페르귄트>, 혹 무대 위에서 진정한 의미의 꿈이나 현실 따위를 찾으려 한다면, 그 헛된 노력은 일찌감치 접어두자. 그저 페르 귄트만을, 그리고 그를 지탱해 준 환상의 세계, 그것의 아름다움만을 기억하자. 그들만의 아우라, 세계 공연예술의 향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남산 자락에 세계 곳곳의 특색 있는 공연예술이 몰려든다. 9월5일부터 10월30일까지 56일에 거쳐 진행될 이번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초청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노르 웨이, 프랑스, 몰도바, 러시아, 중국, 태국, 독일 등 총 8개국. 여타 국제공연예술축제와 비교해 세계 국립 극장 페스티벌은 그 나라, 그곳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독특한 향취와 색감이 스며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공연이야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든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작 품만이 가지고 있는 정수를 예리하게 관통하는 공연에는 분명히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번 페스티벌 초청작 역시 노르웨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페르귄트>, 러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세자매>, 중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패왕가행>, <홍등> 등을 위시해 각국의 침범할 수 없는 아우라가 서울의 가을 하늘 을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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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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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페르귄트 페스티벌<페르귄트>

아름답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마저도2008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일시 : 10월24일~10월26일금7시반, 토3시7시반, 일3시 장소 : 국립극장해오름극장

작 : 헨릭입센 연출 : 스베인스툴라훈그네스(Svein Sturla Hungnes) 기획 : 페르귄트페스티벌(Peer Gynt AS)

문의 : 2280-4115~6 (국립극장고객지원센터)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페르귄트가 일생을 방황하며 마지막으로 손아귀에 쥘 수 있었

던 것은, 한 평생을 기다려온 그의 연인 솔베이지도,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줄 고향 마을도 아니었다. 바로 페르

귄트 그 자신. 허풍쟁이에 난봉꾼에 협잡꾼이었던, 부정하고 싶고, 되돌리고 싶은,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그 자

신이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꿈과도 같았던 인생, 그 안에서 그는 어쩌면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일 수 없었을지

모른다. 돈과 명예, 광스러운 기억과 넘치는 기개가 아스라이 사라진 자리엔 오직 텅 빈 자신만이 덩그마니

놓여있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 그에게 원과도 같은 안식이 깃든다. 노르웨이 극

작가 헨릭 입센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애잔한 선율이 너울너울 어울린 <페르귄트>, 혹

무 위에서 진정한 의미의 꿈이나 현실 따위를 찾으려 한다면, 그 헛된 노력은 일찌감치 접어두자. 그저 페르

귄트만을, 그리고 그를 지탱해 준 환상의 세계, 그것의 아름다움만을 기억하자.

그들만의 아우라, 세계 공연예술의 향연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남산 자락에 세계 곳곳의 특색 있는 공연예술이 몰려든다. 9월5일부터

10월30일까지 56일에 거쳐 진행될 이번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초청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노르

웨이, 프랑스, 몰도바, 러시아, 중국, 태국, 독일 등 총 8개국. 여타 국제공연예술축제와 비교해 세계 국립

극장 페스티벌은 그 나라, 그곳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독특한 향취와 색감이 스며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공연이야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든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작

품만이 가지고 있는 정수를 예리하게 관통하는 공연에는 분명히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번 페스티벌

초청작 역시 노르웨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페르귄트>, 러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세자매>, 중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패왕가행>, <홍등> 등을 위시해 각국의 침범할 수 없는 아우라가 서울의 가을 하늘

을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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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을 닮은 연극매해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개최되는 노르웨이의 페르귄트 페스티벌

은 구드브란즈달에 있는 골로 호숫가에서 야외극 <페르귄트> 공연을

시작으로 그 막을 올린다. 각종 콘서트와 전시회, 문학 포럼 등을 비롯

해 다양한 연극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페르귄트 페스티벌은 노르웨이

의 표적 지역 축제다. 1989년부터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매해

12,000명이 넘는 관객들을 <페르귄트> 공연에 초 한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해가 비추면 비추는 로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는 관객들의 모습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나

낯선 문화에 한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다.

골로 호숫가에서의 공연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페르귄트(Peer Gynt

ved Gålåvatnet)>는 작품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자연환경

을 아낌없이 활용했다. 너른 호수를 노 저어 배를 타고 등장하는 인물

들과 때 맞춰 창공을 가르는 비행기 등 자연의 풍광이 빚어낸 한 편의

서사시는 말 그 로‘예술’그것에 경악케 한다. 그가 다녀간 미국

과 중국, 모로코와 터키, 이집트 모두가 골로 호숫가 주변을 그림자처

럼 배회하고, 솔베이지가 그를 기다리던 오두막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 밤, 아직 해가 채 지기 전에 시작해

까무룩 한 어둠이 젖어들 때까지 진행되는 이 야외공연은, 스무 살 청

년 페르귄트가 예순 노인이 될 때까지의 여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림처럼 담아낸다.

하지만 <페르귄트>의 한국 무 는 조금 특별하다. 유래 없이 최초로

실내극 버전으로 수정된 공연을 위해 연출가이자 페르귄트 역을 연기

하는 오슬로 뉴 씨어터의 예술감독 스베인 스툴라 훈그네스는 국립극

장의 해오름 극장을 사전 방문해 작품을 어떻게 조율할지 결심을 굳혔

다고 한다. 비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을 그 로 담아낼 순 없을지

라도 최 한 그 효과를 활용하기 위해서 거 한 상이 도입된다. 물

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제외한, 배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트가 총동원 될 거라 하니, 아쉬운 마음일랑 살포시 접어둬도

괜찮겠다. 어차피 그것은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이고, <페르귄트>는 그

자체로 자연을 닮은 연극이니까.

때론 부와 명예를 따라서, 진리와 철학을 좇아서 세계를 방랑하던 페

르귄트는 마침내 빈 털털이가 되어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심신이 황

폐해진 그를 맞아준 것은 주물국자에 그의 혼을 녹여버리기를 고

하던 단추공 뿐이었다. ‘당신은, 실은 훌륭한 윗저고리의 금단추가 될

수 있었는데 단추 구멍이 잘못 뚫어졌어요. … 당신이 진정한 자기 자

신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내가 온전히 내 자신이었던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저 다른 이들과 섞여서 녹아 없어져야 한다고. 삶

의 골목길을 목적 없이 헤매이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정말 궤변일 뿐

일까. 결단코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증명해 줄 이, 내게 있는가. 페르

귄트의 솔베이지처럼 그가

자신의 신앙 한 가운데, 희

망 한 가운데, 사랑 한 가운

데 있었음을 고백할 수 있

는 이 내게 있는가. 그래서,

웅장한 자연을 품에 안은

허무맹랑한 페르귄트의 모

험담은 결국 또 이렇게 우

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야

만다.

※ 공연과 더불어 마련된 세미나와 전시회 등 부 행사가 <페르귄트>의 감동

을 함께한다. ‘입센, 한국 연극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세미나에는 <

페르귄트>의 스베인 스툴라 훈그네스 연출이 직접 참여해 공연에 관한 담을

마련하고,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특별전에서는 지금까지 <페르귄트> 공연

의 프로그램과 관련 서적, 배우들의 의상 등을 전시해‘페르귄트 페스티벌’의

유서깊은역사를돌아볼수있는기회를제공한다.

(자세한일정은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홈페이지참고www.ntok. go.kr)

_김슬기 기자([email protected]) & 사진_국립극장 공연기획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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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경이로운 자연이 준 선물머리 꼭 기로 빽빽한 침엽수림이 울창한 굴을 만들어내고, 푸른빛의 빙하가 억겁의 시간을 품고

있는 곳. 굽이굽이 바위가 토해내는 폭포수도, 완벽하게 똑같은 풍경을 그려내는 거울 호수도, 그

곳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준엄함이 도사리고 있다. 예로부터 험준한 산악지 와 제멋 로 형성된

피오르드 지형 덕분에 바이킹들의 탐험 정신을 부추겼던 노르웨이. 그곳의 무수한 신화와 민담은

태생적으로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페르귄트> 역시 북구의 경이로운 자

연이 선물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표적 자연친화 작품이다.

극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트롤’은 노르웨이만의 숲의 요정. 낮 동안에 나무나 돌과 같은 자연

형상을 비롯해 빗자루나 주전자와 같은 일상의 친근한 사물로 변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

한다는 전설 속의 생물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선인이나 악인으로 보인다는 그것은 인간 세

상에 종종 그 모습을 드러낸다. 페르귄트와의 어이없는 결혼으로 그를 곤경에 빠뜨리고 마지막까

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도 바로 이 트롤. 도브레 왕은 페르귄트를 꼬드겨 내어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더니, 마침내는 다시 돌아온 그에게 그 후손을 만방에 퍼뜨렸다는

협박을 한다.

한편, 슬며시 눈을 감고 그 가느다란 떨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꽉 채운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그리그의 음악. 그리그는 노르웨이에서도 한 달에 20일 이상 비가 내린다는 베르겐 태

생의 음악가다. 악천후 탓으로 천성적으로 몸이 허약하고 음울한 성격을 지녔던 그는 로마여행에

서 우연히 만난 입센이 <페르귄트>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 줄 것을 부탁하자, 처음엔 자신의 음악

이 너무 서정적이어서 극 음악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그리그가 맡아

작곡한‘솔베이지의 노래’는 깊고도 여린 서정성으로 <페르귄트>, 그 희곡만큼이나 강한 울림으

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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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15

프리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조 조 오그라든다. 금세 눈물이 차오르지만 주먹을 꼭 쥐고 울

지 않으려고 노력해본다. 울게 되면 창피하다고. 당신은 지금 내 얼굴보다 더 벌게진 마음으로 날 쳐다

보고 있다. 왜 그러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분명,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솔직히, 난 당신

을 사랑했는데. 아마도, 난 당신한테서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어째서, 당신은 내가 부담스

러워진 건가? 도 체 이런 일들은 누구의 사주로 일어나는 것이죠? 어딘가에 신이 있다면 제발 알려

주시길.

진심에 집착하다일본의 어느 한적한 지방의 커피숍에서 결혼축하 파티가 벌어진다. 유코와 다카다. 다카다는 두 번째,

유코는 네 번째 결혼이다. 초 된 손님은 단골인 마루야마와 다나카 그리고 다카다의 고등학교 동창

인 니무라와 고니시 4명 뿐. 다카다는 이 커피숍의 단골로서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그림책을 팔고 있

다. 그의 그림책을 보고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유코. 그 둘은 그런 인연으로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뭔가 어색하다. 둘 다 화려한 피로연 같은 건 원하지 않았지만, 본디 다카

다의 팬이라는 다나카나, 마루야마에게 수작이라도 걸 듯 다가가는 니무라나 다들 정말 둘의 결혼에

는 관심이 없다. 다만 커피숍의 주인 아베만이 썰 한 피로연을 즐기고 있을 뿐. 이윽고 시작되는 유

코와 다카다의 신혼생활. 그들은 어느새 알 수 없는 지루함에 빠지고, 유코는 피로연 때 우연히 화제

에 올랐던 그 지역에 있다는 매미를 찾으러 나가겠다고 하는데…

그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매미를 찾으러 가는 유코를 다카다와 마을 사람들 모두 이상하게 생각한

다. 그러면서도 매미를 찾으러 같이 가자는 유코의 말에 동의하고… 그러면서도 매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코는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그저 놀기 위해 따라나선 것뿐이었던 마을 사

람들은 유코를 위로하려고도 해보지만 실상은 왜 화를 내는지 이유는 알지 못한다. 혹은 알고 싶지 않

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도 판정할 수 없는 인간들의 관계유코의 억울함을 파헤쳐 들어가는 이 연극. 한 뼘이라도 더 사랑받기 위해 구지레하게 악다구니를 쓰

는 무 위 제각기의 군상들은 바로 지금 내 모습 그 자체다. 누가 누구보다 더 억울할지는 이 연극에

서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오해를

사고, 진심과는 다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손잡고 있는 당신 아닌 저 멀리 그 에게 심장을 맡기

고, 희망이나 신념이 보이는 길 쪽으로는 발걸음이 당최 옮겨지지 않고. 나의 눈물이 너에게는 웃음거

리가 되고. 너의 사랑이 나에게는 상처가 되고. 이 모든 것을 누구 탓을 할 수 있겠는가? 흥건한 핏자

욱도 없는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눔은 누가 해줄 수 있을 것이며, 피해자에게는 한 톨의 억울함도 없

다고 한다면 어느 화가, 어느 소설이, 어느 연극이, 어느 이야기가 그 뛰어남을 뽐낼 수 있겠는가?

승자도패자도없다…아니, 알수없다…괜한공허함에마음일랑허우적허우적뒷모습을보이고야만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런지 골똘히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운명이라는것일까. 요코와다카다, 그리고사람들때문에시시때때로터져나오는웃음을참지

못하겠지만, 호젓한가을밤아무도모르게스며나오는억울함은감추기어려울지도모르겠다.

_이가원 기자([email protected])

사진_서동신(maroblue studio 실장)

일시 : 9월4일�9월14일평일8시, 토4시7시반, 7일4시, 11일3시8시, 14일6시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

작 : 쓰시다히데오 번역 : 이시카와주리 연출 : 박혜선

출연 : 이지하, 박윤희, 한성식, 이선주, 김문식, 조 규, 김주령, 김원석, 이지

문의 : 762-0010

극단 전망<억울한 여자>정말, 하고 싶은 로 해도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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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러시아 타바코프 극단<바냐 아저씨>

인간이여, 삶을 살아내라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재앙과도 같은 삶의 순간들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저주스럽다. 스멀스멀 녹아서

탁하고 끈끈한 몇 동이 물이나 되어버리는 게 낫겠다. 하지만 살아간다. 차마 가증스

럽다고는 말 못하겠다. 어찌되었든‘나’는 지금 여기 존재하고, 그러니‘살아야 한

다’. 살자, 좀 살자고, 나도 좀 살자, 라고 뇌까리며 눈을 질끈 감는다. 당신 역시 같은

생각을 한다. 내 인생엔 나도 당신도 그이도 그치도 발을 담그고 있다. 그러니 삶은 나

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 버리곤 한다. 내 인생을 나 혼자 조종할 수 있다면 삶이

조금은 나아질까. 그나마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서로의 삶에 크고 작은 물결을 일게

하던 발을, 자의든 타의든 살짝 빼버리면 재앙은 한 발짝 물러나고 다시 위선적인 잔

잔함이 찾아온다. 여기 무 위 그 숨바꼭질 같은 인간사가 다시 씌어진다. 애원하고

간청하고, 서럽고 분하고, 자신에게 반하는 일에 흥분하고,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사

악하고, 환경에 따라 변하고 세월에 묻어가고,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공포에 질리고,

순간적이고 참지 못하고 기분 로 저지르고 돌아서서 좌절하는, 어찌됐든 거짓된 희

망이라도 품어보고자 하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체홉이다.

SPAF is SPArk! 불꽃, 타오르다2008년 제8회를 맞이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2008.9.18~10.19, 이하 스파프). 이

번 축제 프로그램의 면면들 역시 예년과 다름없이 설레는 기다림으로 입안을 바짝바

짝 타들어가게 한다. 황금마스크 최고 연출상을 수상한 연출가 민다우가스의 <바냐

아저씨>, 지난 해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우리 연극계를 열광케 했던 연출가 루크 퍼

시발의 <오셀로>, 그로토프스키 협회의 감독 야로스와프 프렛의 극단 자르 <어린 시

절의 가스펠>, 200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잠자는 숲속의 미

녀> 등 해외초청작들이 발표되면서 공연예술 마니아들 사이에는 이미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쉬이 접할 수 없었던 해외 수작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몰아

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물론, 예술가와의 화를 통해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광스런 시간까지 마련된다는데 뒷짐 지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은

가. 이미 지난 8월 초, 공연이 두 달이나 남은 <돈키호테>의 매진 사례 이후, 불꽃은

더욱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스파프는‘세계를 바라보는 창’으로서

국내 공연예술축제의 독보적인 선구자로 명실 공히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올해는 김철리 예술감독의 연임이 확정되고 김정남 행정감독의 이원체제로 사

무국을 정비하면서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축제 전반을 정비하는 데 든든한 버팀

목을 마련했다. 김철리 예술감독에 따르면 이제‘세계를 바라보는 창’에서‘세계로

나아가는 문’으로서 스파프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들을 마련 중이라

하니 그 역시 기 해볼만하다. 내년과 내후년의 국내 작품 공모는 이미 시작되었으

며, 공동제작 작품 수를 늘리고 신진 예술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계획 중

이다. 올해 국내 초청작 역시 연극과 무용을 비롯해 복합장르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공연의 행렬이 줄줄이 이어질 계획이다. 예년에 비해 국내 공연팀에 한 사무국의

지원도 늘어 그간 지적되어 왔던 국내 작품과 해외 작품의 균형 또한 어느 정도 맞출

일시 : 10월3일~5일4시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극장

작 : 안톤체홉

연출 : 민다우가스카르바우스키스(Mindaugas Karbauskis)

단체 : 타바코프극단(Tabakov Theatre)

문의 : 3673-2561 (서울국제공연예술제사무국)

1716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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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희망이라고바냐는 세월을 다해 어린 조카 딸 쏘냐와 늙은 어머니를 위

해 일하고 또 일해 왔다. 하지만 존경해 마지않았던 쏘냐의

아버지 세레브랴꼬프와 그의 아름답고 젊은 새 부인 엘레나

의 방문은 그런 그의 삶을 뒤흔들어 버린다. 아무 것 없이 나

이만 들어버린 바냐가 사랑하는 엘레나에게 손을 내미는 모

습이 안쓰럽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채, 속물스러운 세레브랴꼬프를 저주하는 일밖에

없다. 괴팍하게 병들어 버린 세레브랴꼬프의 진찰을 변명 삼

아 흠모하는 엘레나를 바라보는 의사 아스뜨로프는 또 어떠

한가. 그리고 아스뜨로프만을 품고 사는 쏘냐는 또 어쩌란

말인가. 애초에 엉켜버린 실타래, 그것을 다시 서로에게 던

져 며 결국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할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엉망진창의 현실. 차라리 마리나가 뜨고 있는 털실

양말, 그들의 삶이 그것이었으면 좋겠다. 빠진 코를 세어보

고 틀린 만큼만 풀어내 다시 짜고, 그래서 종내는 완벽한‘한

짝’의 양말이라도 될 수 있게.

하지만 삶이란 그 누구의 의지 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

끝끝내 세속적인 욕망만을 추구해 쏘냐의 지를 팔아치워

핀란드에 별장을 얻으려는 세레브랴꼬프는 바냐의 순수한

혼을 폭주하게 만든다. 무 를 울리는 두 발의 공허한 총

성. 빗나간 눈빛, 빗나간 마음, 그리고 빗나간 총알. 그렇게

의도치 않았던 방향으로 한바탕 일상을 휩쓴 거친 풍파는 가

라앉는다. 바냐의 출구는 어디일까. 아스뜨로프에게서 훔친

모르핀 병에도, 매달린 사다리에도 그를 위한 출구는 없다.

나갈 수 없으니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인생의 새로운 희망

을 뱉어내는 쏘냐의 마지막은 애처롭다. 시종일관 그네들의

안팎을 연결해주며 열리고 닫히길 숱하게 반복한 창문들이

깜깜한 어둠에 잠기고 잠든 쏘냐는 그 빛 속으로 어 넣어

진다. 한 줄기 희미한 빛 속에 스러진 희망, 어찌됐든 아직은

살아있다. 그러니 희망이라고. 밝아오는 아침에는 짓이겨진

세상을 덮어주는 롱한 종소리가 메아리친다.

극단 타바코프는 <바냐 아저씨>로 2005년 러시아 황금마스

크에서 연출가 민다우가스가 최고 연출상을, 쏘냐 역의 여배

우 이리나 빼고바가 최우수 여배우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

룬다. 그 이후 2008년에는 새로운 작품 <The Story of

Happy Moscow>로 민다우가스와 이리나가 다시 한 번 최고

연출상과 최고 여배우상을 휩쓸어 극단의 저력을 과시했다.

더구나 <바냐 아저씨>에는 러시아 국민들의 열렬한 존경을

받는 노배우, 극단 타바코프를 창단한 올렉 타바코프의 생생

한 연기가 더해진다. 그 광의 무 를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기회, 놓칠 수 없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홉의 희곡을 정공법으로 풀어낸 타바코프 극단의 <바냐

아저씨>. 이제, 극장에서 인간을 들여다 볼 시간이다. 가을,

만사 제쳐두고 그저 스파프다.

*축제세부일정은서울국제공연예술제홈페이지참고(http://spaf21.com/)

_김슬기 기자([email protected])

사진_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 제공

19

수 있을 것으로 기 된다. 한편 내년부터는 축제 시즌을 약 한

달간 뒤로 미뤄 도쿄 및 상하이의 국제공연예술축제와도 경쟁

과 협조의 공생 관계를 맺어나갈 예정이다. 향후 스파프가 더

멀리 도약하고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서는 지난 해 지원 삭감

결정으로 불거졌던, 휘청거리는 예산 또한 긴 안목으로 신중

히 결정되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이 자명해 보인다.

안톤 체홉, 어쩌면 그의 희곡에는 아무 것도 없다. 기발한 상상

력이나 특이한 사건, 범상치 않은 웅, 심오한 주제 의식, 그

어떤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100여 년 전 러시아를 살아

갔던 인간 군상들의 평범한 일상이 있을 뿐이다. 이다지도 동

떨어진 시 와 장소를 호흡했던 사람들에게서 무엇인가를 공

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생경하고, 또

신기하다. 체홉의 위 함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인간사 하

찮고 조악한 갈등을 가감 없이 그 로 드러내는 사, 그래서

어느새 유야무야 허물어지고 마는 나사 풀린 일상의 립각.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도 없이, 아무 것도 없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희곡이 바로 체홉이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젊은 연출가 민다우가스와 러시아 극단 타

바코프는 이러한 체홉의 텍스트를 완벽하게 살려낸다. 심지어

희곡만 읽었을 때는 어딘가 불필요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

던 사 한 마디조차도, 이들의 작품에선 개연성을 획득하고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고야 만다. 가히 순도 100%라고

할만하다. 원전을 그 로 살리면서도 희곡의 빈틈을 말끔히

메워낸, 머리로든 가슴으로든 이해되지 않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군더더기가 완전히 제거된 연극 무 는 경이로움 그 자

체다. 시야를 압도하는 세트와 배우들의 섬세한 손짓에서 표

정에 이르기까지 단 한 가지도 놓치지 말자. 무 위 시계 바

늘이 돌아가는 그 시간만큼은 바냐 아저씨도, 쏘냐도, 엘레나

도, 아스뜨로프도, 세레브랴꼬프도, 심지어 보이니쯔까야와

마리나, 젤레긴까지 모두가 <바냐 아저씨>의 주인공이다.

18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희곡의 숨소리가 들린다<바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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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0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프리뷰

극단 동<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날 것으로의 가족과 마주하다

온 몸으로 흘리는 눈물이 있다. 마음이 아니라 인생을 뒤흔들어 놓을 만

한 충격은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하는 신 온 몸으로 격렬하게 눈물을

흘리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충격으로 실신을 하는 것도

아마 이 이유에서일 것이다. 어미가 죽었다. 가족들은 어머니를 잃은 슬

픔에 자신들 스스로에 한 불쌍히 여김이 더해져 말 혹은 눈물론 도저

히 표현이 안될 정도의 괴로움을 몸으로 뱉어낸다. 죽었어도 고통으로

존재하는 어미를 위해, 죽은 어미를 고통으로 기억하는 남은 가족들을

위해 그들은 돌아누워야 했다. 서로를 포기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가족’이라는 코드는 그리움, 정, 사랑, 행복 등으로 표

현되거나 완성되어야만 했다. 아니,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을 기 혹

은 강요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가족’이 꼭 그렇지 않음을.

작품 속에서 그려진 가족들은 결국 그 사회의 문화적인 요소들로 바라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 본연의 모습은 늘 왜곡되어 그려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의 날 것, 아무것도 덧입혀지지 않은 날 것으로의

모습이 필요했다. 극단 동이 <변신>, <아기를 가지다>에 이어 가족 시

리즈 3부작의 완결로 완성해낸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의 가족이 그

러하다.

윌리엄 포크너의 원작 소설을 한국식으로 재구성해낸 이 작품은 원작

의 배경이었던 척박했던 미국의 남부지방을 1930년 함경북도 근방,

특히 간도 지방을 배경으로 바꿔냈다. 들어본 적도 없는 함경북도 지

방의 방언이 무 위에 가득하다. 처음 듣는 언어의 낯섦은 듣는 이로

하여금 경계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말의 힘이랄까, 결국 2막

을 지나면서 이내 익숙해진다. 이젠 무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

는 가족의 맨 얼굴과 마주할 차례다.

가족의 맨 얼굴과 마주하다스토리는 간단하다. 죽은 어미의 유언 로 친정 가족들의 곁에 묻어주

기 위해 가족들이 어미의 관을 수레에 싣고 폭우를 뚫고 강을 건너며 9

일에 걸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어미의 죽음으로 가족들은 자신

의 감정에 더욱 솔직해지고 그 동안 담아왔던 아픔을 폭발시키며 격하

게 충돌하게 된다. 그저 어미는 관 속에서 누워있을 뿐인데 모든 갈등

은 그녀에서 시작돼 그녀에서 끝이 난다. 한 가족으로 관계 맺음을 통

해 서로는 서로의 모습일 텐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을 상처 내

고 결국 자신 스스로도 상처 입고 아파하게 된다. 그리고 겨우 그 갈등

이 풀리는구나 싶은 시점에 새로운 갈등은 싹트고 있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의 가족은 서로의 노동력에 의지해 살아가야

만 하는, 그 어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요소가 불필요했던 원시

부족 시절의 가족일 수 있겠다. 원작 소설에서 심리적인 요소가 강조

되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선 표현하고자 했던 가족의 특성을 최 한

부각시키기 위해 심리를 배제하고 신체를 선택했다. 날 선 눈빛과 동

물 같은 움직임, 그리고 격렬한 충동으로 심리 상태를 담담하고 건조

하게 표현했고 그로 인해 관객들로 하여금 그 안에 흐르는 뜨거운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남부에서 한국 간도지역으로, 어에서 함경도 방언으로 또한

1930년 배경의 작품을 지금 시 에 올리는 그 이질감 속에서 전 세

계를 아울러, 같지만 결코 같지 않고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가족

의 모습을 가슴 아프지만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_전상희(객원기자, [email protected])

사진_서동신(maroblue studio 실장)

일시 : 9월4일�9월28일

평일8시, 토3시반7시반, 일4시,

월쉼(13, 14일정상공연)

장소 : 아리랑소극장

원작 : 윌리엄포크너소설 연출∙각색 : 강량원

방언 본 : 최명옥(한국방언학회)

출연 : 최태용, 김석주, 김진복외

문의 : 766-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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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23

프리뷰

극단 미추<리어왕 King Lear>비이성적인 세상의 총체적 비극성

일시 : 9월4일�9월10일 평일8시, 토3시7시반, 일3시

장소 : 예술의전당토월극장

작 : 셰익스피어 연출 : 이병훈

출연 : 정태화, 서이숙, 황연희, 박 숙외극단미추단원

문의 : 747-5161

고전 희곡, 연극 <리어왕>의 매력

<리어왕>은 셰익스피어 4 비극 중에서도 가장 비

극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햄릿>,

<맥베스>, <오델로> 보다는 무 화됐던 편수가 현

저하게 낮다. 30가지 이상의 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리어왕>의 매

력은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지만, 제

로 읽어내지 못하고서는 섣불리 건드리기 힘들기 때문

이기도 하다.

<리어왕>은‘가정의 파괴와 질서의 붕괴, 고난과 시련을 통

해 얻는 삶의 지혜’라는 커다란 서사 속에 극적 갈등과 세 한

플롯을 녹여내 연극 고유의 은유적 특성을 맛깔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으뜸이 되는 장면이 애드

가가 로스터 백작을 끌고 절벽으로 데려가는 장면(실

제로는 평지)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고

전 희곡 <리어왕>은 이리저리 굴려 봐도 앞뒤가 맞

아떨어지는 묘한, 희곡 그 자체의 매력을 맘껏 발

산하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볼만한 연극이 별로 없다는 학로의 연극

풍기현상에서 극단 미추의 <리어왕>이 기 되

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원작이 주는 탄

탄함과 <리어왕>을 현 의 화두로 접목, 끌어올

수 있는 깊이를 지닌 이병훈 연출, 연극에 맞는 배

우의 움직임을 창조해야 한다는 움직임 연출가 유

진우와의 협업, 정태화, 서이숙을 비롯한 극단 미추

단원들의 앙상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선보일

극단 미추의 <리어왕>은 오랜 훈련과 연습의 과정을 거

쳐 셰익스피어 비극의 묘미, 비이성적인 세상의 현재성을 총

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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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25

공간 인식과 관계 형성을 통해 드러나는 배우의 존재감

연극은 이야기가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연극무 에서 배우의 역할은 그 무엇

보다 중요하다. 어떤 이미지를 형상화하든 배우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이야기

를 설명하기만 할뿐 제 로 된 전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성에 입각해 최

근 배우의 신체 훈련이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지만, 실제 연습과정 속에서 그것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머문다. 이번 작품의 연습 초기부터 움직임

연출로 참여하고 있는 유진우 움직임 연출과 미추 배우들의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기

해볼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연극적 움직임은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유진우 움직임 연출의 신체연기론과 배우들

의 오랜 앙상블이 결합된 <리어왕>은 기존 연극무 에서‘자감(自感)’에 빠져 허우

적거리던 연극무 의 답답함을 시원스럽게 날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움직임이라는 것은 자유롭게 되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 해야지, 제약이 되어서는 안 됩니

다. 보통 움직임이라고 하면 외형적인 신체훈련으로 이해하는데, 연극적 움직임은 공간을

인식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요. 거기서부터 배우의 존재성이 드러나게 되거

든요. 그동안 연극은 자감 즉, 개인적인 감성에만 머물 던 것 같아요. 결국, 작품을 분석하는

방법이 지극히 개인적이죠.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 일반 관객이 그 개인보다 더 깊을 수 있다는

거죠. 이번 작품에서는 광인과 광 의 신체구조와 움직임을 구분하고, 캐릭터마다‘유지선’을 하나

씩 둬서 미치광이들의 하모니를 만들어보려고 했고 또 왕족, 기사 등의 역할에 맞는 품위 있는 걸음걸이

등 배역마다 다양성을 구분하려고 노력했어요.”-움직임 연출가 유진우

어떤 연극을 좋은 연극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병훈 연출은 간결하게 답한다. 연극의 가장

큰 기쁨은‘인식’이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최

하 감각적으로 재밌어야 하지만 정신적인 인

식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연극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연극적 움직임

을 찾는 유진우 연출의 공간 인식으로부터 출

발해, 원작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현 적 이

미지를 채워놓은 이병훈 연출의 <리어왕>은

연극성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적합한 유지선을

지켜내고 있는 듯하다. 이제 남은 것이 배우의

몫이라고 한다면, 20여년의 앙상블로 연극무

를 지켜온 극단 미추의 저력에 기 를 걸어

봐도 좋지 않을까.

_최윤우 기자([email protected])

사진_ 염혜원([email protected])

두 딸들의 미사여구에 현혹돼 삶의 마지막을 비극적으로 마감

해야 했던 리어왕과 코딜리어, 서자인 에드먼드의 계략에 속아

두 눈을 잃어버린 로스터 백작과 장자 애드가, 리어의 경솔한

처사를 만류하며 충언을 하다 추방당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숨

기고 리어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던 켄트, 욕망에 사로잡혀 죽게

된 고너릴과 리건…

<리어왕>의 이야기가 재밌는 것은 이 작품이 한 인간(리어)에

게만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중심에는 리어왕의 가

족사가 큰 획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로스터 백작의 가족사 역

시 이 작품의 중심 플롯으로 함께 작용한다. 천천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의 외향에는 권력과 그를 둘러싼 욕망이 불러오는 비극

적 상황들이 산재해 있다. 모두 다 처절한 고통과 힘듦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깨달음이란

그런 것인가.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감내하고 나서야 비로소 찾

아오는 것. 이병훈 연출은 그것이 바로 비극성이라고 꼬집는다.

연극 <리어왕>의 표적인 비극미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

에서 절규하는 리어의 모습이라면, 연극미는 에드먼드에게 배

신당해 두 눈을 잃은 로스터 백작과 미치광이로 가장한 애드

가가 황야에서 만나는 장면인데, 자살을 꿈꾸는 로스터를 위

해 절벽에서 떨어진 뒤에도 살아난 것처럼 위장해 삶의 의지를

되살리도록 하는 모습이다. 행위 자체가 연극인 이 장면과 폭풍

우속 리어왕의 절규는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

고 있는 부분이며, 극단 미추의 <리어왕>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가고 있는 백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면으로서의 고뇌, 기존의 아집, 이성, 고정관념이 무

너지고 정신과 육체성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 리어왕을 통해

우리가 근접할 수 있는 현 성은 무엇인가. 그 첫 번째는 세

간의 단절, 소통의 부재에 있다. 현 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결

국은 세 간의 갈등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이병훈 연출은

오늘날의 문제를 작품 속에 교묘히 침투시킨다. 붉은 색과 검정

색으로 고전의상과 현 의상을 시각적으로 부각시켜 두 세 의

단절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또 동서양의 문화를 조화시킨 무 - 마치 셰익스피어의 극장을

연상케 하는 4개의 기둥이 세워지고, 우리나라의 궁을 연상케

하는 마룻바닥 등을 이용한 무 - 등이 구조적으로 숨겨져 있

어, 작품 이면의 극적 장치들을 찾아보는 연극적 상상력의 즐거

움을 느낄 수 있다.

“비극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태까지 가는 것을 말해

요. 극단적인 상태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바로 인식에 도달

하기 때문인데요. 그건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른 세계를 보게 하는

힘이기도 해요. 이 작품의 본질은 한 인물에 한 이야기가 아니

라, 이 세계의 총체적인 세계상을 담고 있다는 데 있어요. 각 인물

들은 똑같은 비극적 상황에 있어요. 그것이 욕망, 자기 자신에

한 집착, 물질이나 권력으로 나타나는데, <리어왕>이 위 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개인으로서가 아닌 인류의 보편성

을 획득하고 있다는 데 있죠.”- 연출가 이병훈

<리어왕>의 이야기 속 본질, 권력과 욕망으로 점철된 시 의 비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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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프리뷰

ㄜ모아엔터테인먼트뮤지컬<파이란>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그녀와 그의 사랑

태양은 그저 떠있을 뿐이다. 딱히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해바라기에게 태양은 오로

지 자신을 위한 존재다. 그리고 자신도 태양만을 위한 존재다. 오롯이 태양만 바라보며 해바라기

는 찬란하게 피어나고 초연하게 죽어간다. 태양은 사랑이다, 해바라기에게만큼은. 그렇게 한 남

자를 사랑이라 믿고 바라보며 해바라기처럼 살다 간 여자가 여기에 있다. 바다를 건너와 낯선 땅

에서 외롭지만 홀로 견디어 내며 사랑을 꽃피워 아름답게 피었다 사라진‘파이란’과 그녀의 태양

이며 사랑이었던‘강재’. 그들의 슬프고도 애달픈 사랑이 춤과 음악으로 무 위에 펼쳐진다.

뮤지컬 <파이란>은 뮤비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관객들이 알고 있듯이 <파이란>은 2001

년 화로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원작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이 없을 듯 하다.

화와 뮤지컬의 원작은 일본작가 아사다 지로의『철도원』에 실린 단편「러브레터」. 최근 공연계

에서 크게 유행했던 뮤비컬들이 거의 화만을 모태로 작품을 만들었던 것에 비해 뮤지컬 <파이

란>은 화와 원작소설들의 여러 요소들을 뽑아내 뮤지컬만의 매력을 덧붙여 창조된 작품이다.

스토리는 화와 비슷하다. 중국에서 돈을 벌러 한국으로 온‘파이란’의 불법국적취득을 위해 돈

을 받고 호적을 빌려준‘강재’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목포로 팔려가 외롭고 힘겨운 생활을 하

면서도 출입국관리소의 불심검문 등을 받을 때마다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버린‘강재’에

한‘파이란’의 애처로울 만큼 해바라기 사랑과 그녀의 죽음을 처리(?)하기 위해 목포로 내려온

‘강재’가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그녀를, 그리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게 되는 모습들이 화, 소설

과는 다른 미묘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무 에 오른다.

일시 : 9월11일�11월2일평일8시, 토4시8시, 일3시6시, 월쉼 장소 : 학로문화공간이다1관

프로듀서 : 남기웅 각색 : 차근호 작곡: 이현섭 연출 : 김규종 출연 : 서범석, 배성우, 은유찬, 김용덕, 김동현외

문의 : 74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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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8. 9

나의 존재를 긍정해 주는 건 그녀의 사랑사실 제목은‘파이란’이지만 소설도, 화도 그리고 뮤지컬도 모두 남자인‘강

재’의 이야기다. 조직 내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도 무시당하고 강한 자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찌질한 그 남자는 자신의 존재도 그저 목숨을 부지하며 찌질

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을 사랑이라

부르는 한 여자를 만나 켜켜이 쌓인 감정이 폭발해 엉엉 울어버리고 마는 참으

로 단순하고 불쌍한 그런 남자를 뮤지컬 배우 서범석과 배성우가 더블 캐스팅

돼 연기한다.

“ 화는 일부러 안 봤어요. 원작 소설의 주인공 마음이 너무도 잘 이해가 돼서 그

감정을 살리는 데에 주목했죠. 우리도 그렇잖아요. 평상시 삶에서 누구한테도 친

절하게 하지 못한 채 그냥 외롭게 살아가죠. ‘강재’처럼 밑바닥이라 외로운 게

아니에요. 그냥 삶 자체가 외로운 건데 그 외로운 존재에게‘왜 사냐’라는 거 한

의문과 솔직하게 면하게 만드는, 여태까지 살아왔던 인생이 무너져버리는 순간

을 경험하는‘강재’의 마음은 저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쉽게 공감할 거에요.”

-배우 서범석(강재 役)

배우 서범석에게‘니마이와 삼마이가 공존하는 배우’라는 칭찬(?)을 들은 배

우 배성우도 배우로서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는‘능 맞은 배우’라는 말로

맞칭찬(?)을 하며 말을 덧붙 다.

“‘강재’라는 사람으로 보 으면 좋겠어요. 극 속의 캐릭터로 보이는 게 아니라 나

와 너와 다를 바 없는 인간‘강재’로 보이도록 연기하고 싶어요. 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나를 너무 큰 존재로 봐주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불쌍히 여기고 새로운 힘을 얻는 그런 평범한‘강재’가 될 거에요.”

-배우 배성우(강재 役 )

작품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외롭기 마련이지만 또한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은 존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남기웅

표가 프로듀서를 맡아 전체적인 진행을 시켜왔다. 여기에 얼음처럼 차가운 파

이란의 시체를 부여잡고 울며, 정작 얼음처럼 차가웠던 스스로의 모습을 깨트

리는 강재의 모습을 통해 울고 싶은데 못 울었던 남자 관객들이 울었으면 좋겠

다는 김규종 연출과 최고의 음악을 위해 준비된 7인조 라이브 밴드 등의 합작

으로 탄생하게 될‘뮤지컬 <파이란>’. 여자의 삶과 사랑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

작되는 남자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었으나 죽지 않은 그녀,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그녀의 사랑이 높고 깊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펼쳐진다.

_전상희(객원기자, [email protected])

사진_서동신(maroblue studio 실장)

29

원작과 같으면서도 다른 매력2004년 화 <파이란>을 처음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ㄜ모아엔터테인먼트의 남기웅 표는 이후 원작 소설도 찾아

읽으며 이 작품을 꼭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당시 GM 우 뮤지컬페스티벌의 운 을 맡아 하며 1회 수상자

던 김경문 연출가, 이현섭 작곡가와 친해지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회의 취지를 살려 공연계

의 새로운 세 를 발굴하고 또 직접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다. 화나 소설과 다르게 가기 위해 스토리

를 먼저 짜고 음악을 얹히는 브로드웨이식 시스템이 아니라 음악적 구성을 먼저 고민하고 완성했다. 음악으로 먼저

만들어진‘파이란’과‘강재’의 이미지는 화, 소설과는 또 다른 그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제작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파이란’역의 외로움을 표현해내고자 진짜 중국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생각해 중국 중앙희극학원의 한 학생을 캐스팅, 지난 6월 제주도에서 열린 쇼케이스 무 에도 세웠다. 하지만 절차

상의 문제로 학교 측의 허락을 받지 못해 갑자기 주연 여배우가 하차해버렸다. 다시 추천을 통해 오디션을 열고 새로

운‘파이란’이 된 주인공은 22살의 당찬 여배우 은유찬.

“파이란은 매우 착하고 순수한 여성이에요. 한 번도

본 적 없고 마주친 적도 없지만 무섭고 힘들 때 힘

이 되어준‘강재’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그래

서 이해가 갑니다. 화에서 <파이란>을 연기한

장백지와 비교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녀도

나도 진짜‘파이란’은 아니니까요. 다만 전 제

안에 있는‘파이란’을 솔직하게 끄집어

내 표현해낼 거에요. 공연 보러 오셔

서 제가 어떤 파이란을 연기해냈

는지 직접 확인해주세요.”

- 배우 은유찬(파이란 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