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Intelligence Failure) * 전웅 ** I. 문제의 제기 지난 해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미국 정 글은 정보실패의 개념, 유형, 그리고 의미를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쓰여졌다. 이 러한 목적을 위해 정보실패의 사례와 이론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해보고 이를 바탕으 로 정보실패의 유형과 원인에 관한 인과관계 를 이론적 분석틀로써 정립해 보았으며, 이를 부시 행정부 동안 발생한 2개의 사례들에 경험 적으로 적용해 보았다. 정보실패는 정책결정권자로 하여금 왜곡된 정책결정을 유도함으로써 국가의 생존과 번영 에 치명적인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 제로 인식된다. 정보실패는 크게 정보기관의 실책에서 비롯된 정보적 실패와 정보의 정치 화, 정책결정권자의 오판 등 정보기관 외에 다 른 외적 요소들에서 비롯된‘정보외적 실패’ (non-intelligence failure)로 구분될 수 있겠 다. 물론 정보실패의 상당 부분은 정보기관의 실책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외견상 정보실패 로 보이지만 실상을 깊이 따져보면 정보기관 의 잘못이라기보다는‘정보외적 요소들’ (non- intelligence elements) 때문에 실패하게 되 경우도 많다. 9·11 테러 사건은 분명히 정 보기관의 실책에서 비롯된‘정보적 실패’로 규 정될 수 있겠지만,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 한 정보판단의 왜곡은 정보공동체의 실책 이 상으로 부시 대통령과 핵심 관료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보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큰 것 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므로 정보실패의 많은 부분은 정책적인 대응이 미흡했거나 정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정책결정권자에 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핵심어 : 정보, 국가정보, 정보실패, 9·11 테러, 이라크 전쟁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 이글의 결론과 정책 제언을 포함한 모든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소속기관의 해를 대표하지 않음을 밝힌다. **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911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Embed Size (px)

DESCRIPTION

Citation preview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

전웅**

I. 문제의 제기

지난 해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미국 정

이 은 정보실패의 개념, 유형, 그리고 그의미를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쓰여졌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정보실패의 사례와 이론에대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정보실패의 유형과 원인에 관한 인과관계를 이론적 분석틀로써 정립해 보았으며, 이를부시 행정부 동안 발생한 2개의 사례들에 경험적으로 적용해 보았다.

정보실패는 정책결정권자로 하여금 왜곡된정책결정을 유도함으로써 국가의 생존과 번에 치명적인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 정보실패는 크게 정보기관의실책에서 비롯된 정보적 실패와 정보의 정치화, 정책결정권자의 오판 등 정보기관 외에 다른 외적 요소들에서 비롯된‘정보외적 실패’(non-intelligence failure)로 구분될 수 있겠

다. 물론 정보실패의 상당 부분은 정보기관의실책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외견상 정보실패로 보이지만 실상을 깊이 따져보면 정보기관의 잘못이라기보다는‘정보외적 요소들’(non-intelligence elements) 때문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9·11 테러 사건은 분명히 정보기관의 실책에서 비롯된‘정보적 실패’로 규정될 수 있겠지만,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정보판단의 왜곡은 정보공동체의 실책 이상으로 부시 대통령과 핵심 관료들이 정치적목적을 위해 정보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므로 정보실패의 많은부분은 정책적인 대응이 미흡했거나 정보를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정책결정권자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 약

핵심어 : 정보, 국가정보, 정보실패, 9·11 테러, 이라크 전쟁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이 의 결론과 정책 제언을 포함한 모든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소속기관의 견해를 대표하지 않음을 밝힌다.

**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보기관의‘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특히민주당의 케리 후보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그것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커다란 실책이었다고 비판했다(Reston, 2004; 연합뉴스, 2004. 10. 9).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을 조사해온 이라크서베이그룹(ISG)의 찰스 듀얼퍼 단장은 2004년 10월 6일 미국 의회에 제출한 918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이라크의 WMD 프로그램은 1991년 걸프전 직후 폐기되었다고 밝혔다(Testimony of

Charles Duelfer, 2004). 듀얼퍼 보고서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또 미국의 침공당시 이라크는 생화학무기를 보유하지 않았고 핵무기 프로그램 재건도 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능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덧붙 다. 이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전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의 WMD 위협과 정면 배치돼 당시 부시의 선거전략에 치명적인타격을 주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듀얼퍼 보고서가 나온 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적극 지원했던 블레어 국 총리도 국민을 기만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것에 대해 사과하라는 야당의 압력이 제기되는 등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난다(연합뉴스, 2004. 10. 8).

어쨌든,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에 WMD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와 관련하여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왜곡된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정보실패’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2001년의 9·11 테러역시‘정보실패’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지적되는 바, 약 2,900여 명의 사망자와 2,0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정보실패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9·11 테러 예방에 실패한 것에대해서 CIA를 비롯하여 정보공동체의 어떤 기관이나 누구도 책임을 지지않으려 한다. 9·11 테러 사건 직후 조지 테닛(George Tenet) CIA 국장은 사임 압력에 대해 정보기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조지 테닛(George

Tenet) CIA 국장과 로버트 뮬러(Robert S. Mueller, III) FBI 국장은 의회 청문회동안 9·11 테러 예측 실패에 대해서 어떤 요원도 징계받거나 해임되지 않았다고 답변한 바 있다(Gertz, 2003, xxi). 또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에 대한 정보판단의 실패가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이 누구에

6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게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연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기관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여 이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는지 아니면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자체 정보판단에 있어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는지가 아직까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엄 한 의미로 정보실패라기보다는‘정보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intelligence)라고할 수 있겠고, 후자의 경우에는 정보기관의 잘못에서 비롯된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실패의 개념이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해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요컨대, 정보실패가 발생하는 데는‘정보적 요인’(intelligence factor)뿐만아니라‘정보의 정치화’와 같은‘정보외적 요인’(non-intelligence factor)이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의 경우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의 잘못, 즉‘정보적 요인’에서 비롯된 정보실패로 인식되는경향이 있고, 그래서 조지 테닛 CIA 국장이 사임하기에 이르 다. 그러나CIA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라크 전쟁의 경우 공격의 명분을획득하고자 정보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9·11 테러 사건과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정보실패의 책임을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 물론 여러 가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보실패를 야기했겠지만 결정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규명해 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정보실패는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 책임 소재를 명백히 규명함으로써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의 주요 쟁점은 9·11 테러 사건과 이라크의WMD 존재 여부와 관련한 정보실패가 순수하게 미국 정보공동체만의 잘못인가 아니면 부시 행정부의 정책실패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평가해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정보기관들이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20세기 이후 발생했던 정보실패의 사례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양상들을 추적하여 정보실패의 개념과 원인들을 분석해 볼 것이며,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7

이를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2개의 정보실패 사례들--9·11 테러와 이라크전쟁--에 적용해 보았을 때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가를 비교 평가해 보고자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보실패의 진정한 의미와 교훈점을 도출해 볼 수 있을것으로 사료된다.

II. 이론적 논의

1. 개념 정의: 정보, 국가정보, 정보실패1)

우리 사회에서 종종 정보(情報)의 의미에 대해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가많은데, 그 이유는‘Information’과‘Intelligence’라는 용어를 구분 없이‘정보’라는 명칭으로 통용하여 사용하는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여기서‘Information’과‘Intelligence’를 명백히 구분하여 정의할 필요가 있다.

‘Information’은‘Intelligence’에 비하여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1)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하는 자료(data)와 (2) 그 의미의 타당성이검증되지 않은 상태의 첩보(Information), 그리고 (3) 그 현상의 의미가 분석및 평가과정을 거쳐 일반적으로 인정된 내용으로 통용되는 지식(knowledge)

이 모두 포괄된다. 이에 비해‘Intelligence’는 대체로 가공된 지식, 즉 어떤현상의 의미가 분석 및 평가과정을 거쳐 타당성이 검증된 지식(knowledge)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모든 지식이‘Intelligence’라고 할 수는 없고, 주로 국가정책이나 국가안전보장에 관련하여 정부기관이나 군대에서 한

8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 정보, 국가정보, 국가정보와 안보정책의 관계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전웅, 1997,209-212)를 참고하기 바람.

2) 물론 정보의 개념은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체, 정당 및 선거활동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되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민간부문에서‘경 정보’(management intelligence),또는‘기업정보’(corporate intelligence)라는 용어들이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intelligence’의 개념을 민간부문까지 확대하여 사용함에 대해서는 다소의 이견이 있고,아직은 일반화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이 에서는 전통적인 개념에 입각하여‘intelligence’를 국가안보와 관련된 첩보 및 활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기업정보’(corporate intelligence)에 관한 연구서로서는 (Roukis, Conway, and Charnov, 1990)을참조 바람.

정적으로 사용되는 특수용어로서, 통상 군사상의 첩보나 비 내용을 담은지식을‘Intelligence’로 칭한다.2) 또한, 일반적인 지식 또는 학문적인 정보(즉 Information)와는 달리‘Intelligence’는 비 성(secrecy)을 포함하고 있는지식이라는 점에서도 명백히 구분되는 용어이다.3)

그러면‘국가정보’(national intelligence)란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한 정보의 개념은 정보를 단순히 지식의 차원에서만 고려하고 있으나, 국가정보는그러한‘지식’과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국가적‘조직’, 그리고‘활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고려된다. 국가정보에 관한 고전적 저서인 셔먼 켄트(Sherman Kent)의『미국의 세계정책을 위한 전략정보』(Strategic Intelligence

for American World Policy)에 따르면“정보(intelligence)란 지식 또는 첩보(information), 활동(activities) 및 조직(organizations)을 포괄하는 개념”4)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국가정보라는 말은 일종의 지식이며 그러한 지식을 입수하는 행위(또는 상대방의 입수행위를 저지하는 것), 그리고 입수또는 저지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 등을 일컫는다(Shulsky, 1991, 1-3).

한편, 정보기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공개및 비공개 자료를 획득하고, 수집된 자료들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타당성 있는 정보를 생산하는데 있다고 본다. 정보기관은 이러한 정보생산 활동 외에도 방첩활동과 국가 외교 안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공작(covert operation) 등을 수행한다. 이러한 정보활동을 통해 국가안보 또는 이익에 관련되는 중요한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정책결정권자에게 제공해줌으로써 앞으로 발생할 사태를 예측하고 그것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9

3) 사실 정보(intelligence)의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 또는 전문가들 간에 상반된 논쟁이 지속되고 있어 아직까지 일반화가 되지 않았다. 예컨대, 정보(intelligence)의 개념 정의와 관해서 이 분야의 전문가인 슐스키(Abram Shulsky)와 심스(Jennifer Sims) 간에 다소 상반된견해를 피력한다. 슐스키는 심스가 정보(intelligence)를 지나치게 광의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비 성이 포함된 것만을 intelligence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서는 (Shulsky and Sims, 1994, 21)을 참고바람.

4) 엄격히 말하자면, ‘국가정보’라는 것은 지식만을 의미하고, 활동은 국가정보 활동, 조직은국가정보기관으로 구분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식, 활동, 조직을 포괄하는 것은‘국가정보체계’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국가정보’의 용어 속에 체계로서의 3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셔만 캔트(Sherman Kent)의 저서는 이러한 국가정보의 세 분야에 대해 기술하는 것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Kent,1949).

런데 국가정보는 종종 부정확한 첩보, 정보기관의 관료조직적 무능, 적의 기만책, 분석관의 편견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종종 잘못된 판단으로 귀결되곤 한다(Laqueur, 1985, 255).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적으로부터 군사적인 기습을 당할 수도 있고, 때로 상대방의 능력이나 취약점 또는 동향을 잘못 판단하여 국가 이익에 크나큰 손실을 입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흔히

‘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라고 규정한다.

요즈음 미국 학계의 정치학 분야에서‘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라는용어는‘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나‘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라는 용어처럼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5) 정보실패는 국가 안보와 이익에 치명적인 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점에서 현실 정치에서는 물론 학계에서도 많은 연구들이 나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연구들이 정보실패의 역사적 사례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으며, 아쉽게도 그 개념이나 이론적 논의는 대체로 미흡한 상황이다.

그래서 아직까지‘정보실패’의 개념에 대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정의가 제시되지 않고 있는 한편, 개념적인 모호성으로 인해 몇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될 수 있다. 예컨대, 정보실패의 책임 소재가 정보기관의 실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정책결정권자의 편견이나 왜곡된 판단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정보기관에서 적시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정책결정권자가 이를 무시하거나 왜곡되게 해석하여낭패를 보게 될 수 있다. 엄 히 말해서 이는 정보실패라기보다는‘정책실패’(policy failure)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때로 최고정책결정권자가 자신의오판이나 실수로 인한‘정책실패’를‘정보실패’로 규정하여 그 책임을 정보기관에 전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는 최고정책결정권자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고자 정보기관의 정보판단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킬 수도있는데 흔히 이를‘정보의 정치화’라고 하며, 이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이처럼 책임 소재가 정보기관이든지 최고정책결정권자에게 있든지 간에 이를 모두 정보실패라고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부정확한 첩보자료, 잘못된 정보분석 등 정보기관의 잘못이

10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5) 정보실패에 대해 잘 정리된 로써는 (Lowenthal, 1985; Laqueur, 1985, 255-292; Shulsky,1993, 59-71; Herman, 1996, 221-239) 등을 참고.

나 실책만을‘정보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물론 역사적으로알려졌던 바 정보실패의 사례들은 한 가지 요인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위에서언급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실패에 이르게 된 주요 원인과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정보실패’,‘정책실패’, 또는‘정보의 정치화’등으로보다 엄 한 개념적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6)

흔히‘정보실패’는“기습(surprise)을 제 때에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게 되어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Shulsky and Schmitt, 2002, 62-64; Laqueur, 1985,

255-271). 라쿠어(Walter Laqueur)는 정보실패를 야기하는 기습의 종류로써 적의‘군사적 기습’(Strategic Military Surprise), ‘정치적 기습’(Political Surprise),

‘경제 과학기술적 기습’(Economic and Scientific-Technological Surprise) 등으로구분했다(Laqueur, 1985, 255-271). 로웬탈(Mark M. Lowenthal) 역시 정보기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습에 대비하는데 있다고 언급했다(Lowenthal, 2002,

2-4). 슐스키(Abram N. Shulsky)는 정보실패란 기본적으로 상황에 대한 오판(misunderstanding)이라고 정의하고, 그 때문에 정부 또는 군대가 그 자신의 이익에 반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Shulsky and

Schmitt, 2002, 63). 여러 가지 관점을 종합해 보건대, 정보실패는 기습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를 개략적으로 정의하자면“국가이익이나 안보에 치명적인 향을 끼칠 수 있는 현상을 제대로 예측하거나 판단하지 못함으로써 국가적으로 상당한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정보실패의 책임 소재 또는 주체가 정보기관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정책결정권자까지 포함하는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엄한 의미로 정보실패는 정보기관만의 실책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보기관만의 실책보다는 정책결정권자들의 오판이나 의도적왜곡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보실패가 발생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이 에서도 정보실패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11

6) 뒷장에서 언급하겠지만, 이 에서‘정보실패’는 광의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크게‘정보적실패’와‘정보외적 실패’로 구분된다. 정보적 실패는 정보기관 자체의 실책에서 비롯된것을 의미하고, 정보외적 실패는‘정보의 정치화’와‘정책실패’를 들 수 있다. ‘정책실패’는 정책결정권자의 무지와 오판으로 인해 잘못된 정책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 정보기관의 실책은 물론 정책결정권자와 관료들의 정책적 실책 또는 정보를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는‘정보의 정치화’까지 포함하는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실책과 정보기관 외에 다른 행위자의 실책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누가 잘못했는가를 분명히 규명함으로써 또다시 유사한 실책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정보실패의 유형과 사례들

정보실패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용어로써 적의 군사적 기습공격을 제때에 알아차리지 못해서 발생하는‘경고실패’(warning failure)가 있다(Betts,

1982; Kam, 1988, 3-4). 그리고 적의 능력을 과대 또는 과소평가하거나 정치경제적 동향 또는 군사과학기술의 진보 등을 잘못 파악하는 것은‘정보왜곡’(intelligence misjudgement)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것이 보다 적합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넓은 의미의 정보실패에 포함된다(Herman, 1996, 221-

239).

우선 역사적으로 알려졌던 바 경고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들로써는 1941년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기습사건, 1941년 독일의 러시아 침공사건,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도발에 의한 한국전쟁의 발발, 1951년 중국의한국전쟁 개입, 1962년 중국의 인도 공격, 1968년 8월의 체코슬로바키아 사태, 1973년 욤 키푸르(Yom Kippur) 전쟁, 1979년 중국의 베트남 침공, 1982년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Falklands) 침공,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알 카에다에 의한 테러사건 등이 있다(Betts, 1982; Kam, 1988, 3-4; Shulsky, 1993). 이 모든 사례들의 경우 전문성을 갖춘 정보기관이 적의 기습에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꼼짝없이 당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적으로‘정보왜곡’(intelligence misjudgement), 즉 상대방의 능력이나취약점 또는 동향을 잘못 판단하여 낭패를 보았던 사례들이 무수하게 많이나타난다. 한 예로 1978-9년 이란에서 샤하(Shah) 정권의 몰락 등 정치적인변화나 쿠데타 발생을 미리 예측하는데 실패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정보실패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면 1973∼4년 동안 OPEC가 석유를 무기화할것에 대해 예측하지 못한 것도 포함될 수 있다(Shulsky, 1993, 60). 냉전시기

12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동안 미국 정보공동체는 종종 미 의회의 여야 양쪽으로부터 소련의 의도와군사적 능력에 대해서 잘못 평가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Berkowitz and

Goodman, 1989, 125-36; Sullivan, 1980, 49-73). 미국은 소련의 전략적인 능력에 대해 때로는 과소 또는 과대평가했는데, 그 중에서 1950년대 말 소련의 ICBM 위협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그 유명한‘미사일 갭’(missile gap) 논쟁을 야기했던 일도 있다(Shulsky, 1993, 61; Prados, 1986). 무엇보다도 미국 정보기관은 1990년대 초 소련 경제체제의 붕괴와 소련체제가 군소국가로 분할되는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던 일로 비난받기도 하 으며, 그로 인해 미 의회에서 CIA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 다.

앞서 언급했던 바, 정보실패는 실패의 주체 또는 책임 소재가 누구인가에따라서 정보기관만의 실책인가 또는 정책결정권자의 오판, 의도적 왜곡, 행정관료의 무책임 등‘정보외적 요소들’(non-intelligence elements)로 인한 실책으로 구분될 수 있겠다. 즉 외견상 정보실패로 보이지만 실상을 깊이 따져보면 정보기관의 잘못이라기보다는‘정보외적 요소들’때문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진주만 기습 당시 워싱턴에서 경고전문 발송이 지체되어 일본이 공격할 바로 그 무렵 진주만에 겨우 상업용전보가 도착했는데 이는 정보의 실패라기보다는 지휘통제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어네스트 볼크만, 2003, 293-312).

때로 정보가 정책을 만나는 지점에서 정책결정권자가 적절하게 반응하지못함으로써 정보실패를 야기하기도 한다. 즉 정책결정권자가 정보기관의 경고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여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결정을 지연시키는 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존슨 행정부는 당시 CIA의베트남에 대한 평가를 무시하고 베트남전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들게 되어낭패를 보게 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Laqueur, 1985, 180-182). 물론 정보기관은 정보경고(intelligence warning)에 대해 정책결정권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엄 히 따지자면 경고조치를취한 정보기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경고에 대해서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7)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13

7) 베츠(R. K. Betts)에 따르면 기습공격을 당한 국가들의 정책결정자들이 대부분 사전에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낭패를 보게 되었던 사례들이 많다고 한다(Betts 1989, 16-17).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에 대해서 스탈린은 84개의 경고를 받았음에도불구하고 이를 무시했던 것으로 나타난다(Whaley, 1973). 따라서 1941년 독일 침공에 대해 스탈린이 오판하게 된 것은 정보실패라기보다는 그가 독재자 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타당하다고 본다(Herman, 1996, 226). 물론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사용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사용자와 접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거나 작성된 정보보고서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할 정도로 사용자의주의를 끌지 못했던 점은 분명히 정보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책임이 정보기관에게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정보실패의 많은 부분이 정책결정권자의 정책적인 대응이 미흡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 정보실패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었는가에 따라서‘의도적인 왜곡’또는‘비고의성 실패’로 나누어 볼 수도 있겠다. 종종 정보와 정책이 만나는 지점에서 정책결정권자들이 정보를 의도적으로 조작하여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정보기관의 보고서가 정책결정권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 뒤에서 보다 자세히 검토해 보겠지만, 미국 내 일부 여론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할 구실을 마련하고자 이라크의 WMD 존재 여부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3. 정보실패의 요인들

정보실패의 요인은 크게 정보기관만의 실책에서 비롯된 것과 정보기관 외다른 요인들에 의한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물론 정보와 정책이 만나는 지점, 즉 정보요원과 정책결정권자가 상호 교류하는 과정에서도 정보실패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편의상 이를구분하여 살펴본다.

1) 정보적 요소 (Intelligence Elements)

(1) 첩보수집 수단 및 자료의 신빙성

일반적으로 정보실패의 주요 요인은 분석에 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레빗(A. Levite)은 정보실패의 주요 요인은 분석보다도 첩보수집에 있다고 주장했다(Livite, 1987, 177). 그는 진주만 기습사건과 미드웨이 해전을

14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비교하고 나서 분석은 첩보자료의 질에 달려있다고 결론지었다. 즉 미국은진주만 기습 당시에는 암호해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일본 해군의 암호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승리할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허만(Michael Herman)은 국 정보기관이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침공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원인은 부분적으로 수집이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Herman, 1996, 231). 즉 아르헨티나는정보 목표로써 우선순위가 낮았기 때문에 충분한 수집활동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부정확하고 신뢰성이 낮은 첩보자료는 정보판단을 왜곡시켜 정보실패를 야기할 수 있다.

(2) 분석과정에서의 오류들

학계의 연구들은 정보실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대체로 인정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정보분석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정보분석의 실패는 1차적으로 분석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분석관이 올바른 정보판단에 실패하는 요인은 인지적오류(cognitive failure)와 분석관의 자질(capability failure) 등 크게 두 가지로구분된다(문정인, 2002, 144-146). 인지적 오류는 거울이미지(mirror image),

‘집단사고’(group think), 분석상의 편견 등을 들 수 있다(Berkowitz and

Goodman, 1996, 199-202; Lowenthal, 2000, 81, 90-92).

분석관의 인지적 오류뿐만 아니라 분석관의 능력 또는 자질도 정보실패를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정보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분석관이 분석기법을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첩보자료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등 전문성이 떨어지면 심각한 정보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수집된 모든 첩보들이모두 분석에 활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분석을 위해 요약, 분류, 번역, 암호 해독 등 일련의 처리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전문성이 부족한 분석관의경우 적시에 필요한 내용을 요약, 분류, 번역하는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없다. 즉 분석관이 언어적 능력, 직관력, 그리고 분석업무에 관한 전문성이부족할 경우 정보실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3) 정보기관들간 정보공유의 부재

정보기관은 기본적으로 비 보안을 생명으로 한다. 따라서 어떤 정보기관이든 자신의 조직 밖으로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심지어 조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15

직 내부에서조차‘차단의 원칙’이 유지되어 부서 간에도 정보유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이다. 정보기관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경쟁관계에 있는 타정보기관들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정보기관들 간의 정보공유 부재로 인해 정보실패가 발생하게 된 대표적사례로써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지적된다. 뒤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9·11 테러사건 역시 정보기관들 간의 정보공유가 미흡하여 테러를저지할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치게 된 것으로 지적된다.

2) 정보외적 요소 (Non-Intelligence Elements)

(1) 정보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intelligence)

‘정보의 정치화’란 정보의 생산자와 사용자간의 관계에서 종종 발생하는일로써 정책결정권자의 선호에 맞게 분석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정보의 정치화’사례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많았으며, 정보가 사용자와 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정보기관이 정부와 접한 관계를 유지할수록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지간에 정보보고서의 내용이 정권의 요구에 맞게 왜곡될 위험성이 증가한다.

현실적으로 정보기관이 정권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며, 정책결정권자로써는 정보기관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코자 하는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2) 관료주의적 부처 이기주의

냉전시대 동안 미국은 대체로 소련의 군사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 주요 요인은 소련이 워낙 군사력에 관해 비 을 유지했기때문에 정확한 첩보자료 및 분석이 어려웠기도 하지만, 국방 관련 부서들이국방비를 늘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소련의 군사력과 군사적 위협을 지속적으로 과장해왔던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관료주의적 부처 이기주의는국방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여타 정부 부처의 경우에도 필요시 자기조직의 이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정보를 조작 또는 왜곡시킬 수있을 것이다.

16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3) 정보 배포와 운 체계의 비효율성

때로 적시에 정확하게 정보판단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부서에 정보 배포가 지체되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정보실패가 발생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정보분석 상의 문제 이상으로 배포과정에서의 실수가 결정적인 실패를 야기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당시최종적으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의 전모를 파악하고 진주만으로 경고 전문을보냈으나 배포과정에서 실수하여 경고 전문이 늦게 도착했고, 그로 인해 일본의 기습에 꼼짝없이 당했던 것으로 나타난다.8)

또한 정부조직이 지나치게 세분화됨으로써 정보 실패가 발생하는 경우도있다. 국 정보기관의 실패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82년 초 아르헨티나의 태도가 점차 강경해지는 것에 관한 보고서가 국 내각사무처(Cabinet Office)에 배포되지 않음으로써 포클랜드에서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을 파악하는데 실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Herman, 1996, 233). 국이 히틀러정권 초기에 독일의 재무장을 알아차리는데 실패한 원인은 당시 산업정보센터(Industrial Intelligence Centre)에서 관련 보고서를 제때에 배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Wark, 1987, 91-100).

4. 분석의 틀: 정보순환과정과 정보실패

지금까지 정보실패의 유형과 사례들, 그리고 그것을 야기하는 요인들에대해서 살펴보았다. 요약컨대, 정보실패는 크게 기습의 종류에 따라서 경고실패와 정보왜곡으로 구분해 볼 수 있겠고, 그것을 야기하는 요인들은 크게정보적 요소와 정보외적 요소로 나누어서 분석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정보실패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이 에서 정보적 요소에 기인한정보실패는‘정보적 실패’로, 정보외적 요소들에 기인한 정보실패는‘정보외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17

8) 1941년 진주만 기습 당시 미국의 정보공동체는‘매직작전’을 통해 일본군 암호체계를해독하고 일본의 비 전문들을 감청하여 진주만 기습이 있기 하루 전인 12월 6일 마침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의 전모를 파악했다. 그런데 워싱턴에서 진주만 해군사령부로 일본의 기습공격에 대비할 것을 지시하는 경고전문을 군의 긴급통신 아닌 민간회사인 웨스턴유니언 사를 통해 발송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 다. 결국,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개시된 저녁 무렵까지 경고 전문이 전달되지 못한 채 하와이 소재 웨스턴 유니언사의 창고에있었다(어네스트 볼크만, 2003, 293-312).

적 실패’로 구분해 본다.

한편, 정보는 첩보수집에서 분석과정을 거쳐 최종정보보고서로 생산되고,

이를 필요한 곳에 배포하게 된다. 그리고 정책결정권자는 배포된 최종정보보고서를 참고로 하여 정책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현안이 발행하게 되면 정보기관에 그에 관련된 정보자료를 요청하게 된다. 정보기관은첩보요구에 부응하여 다시 첩보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여 배포하는 등정보가 생산되어 배포되기까지 일련의 순환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를 정보순환과정이라고 한다. 정보실패는 이처럼 정보가 순환되는 각각의 단계에서발생될 수 있으며, 이를 아래 <그림 1>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그림 1> 정보순환과정과 정보실패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첩보수집 단계에서 수집된 자료가 부정확할 경우 정확한 분석이 불가능해지고 이로 인해 정보실패가 야기될 수 있다. 그리고 종합적인 분석이 이루어지려면 다양한 부서로부터 첩보자료들이제공되어야 하지만 정보기관들이 정보공유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때 정보실패가 발생될 수 있다. 또한 수집된 자료를 처리 분석하는 과정에서

18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정보수집

정보순환과정 원인(실패요인) 결과(정보실패)

정보적실패

정보외적실패

자료의 부정확성

정보공유 부재

정보의 정치화

분석관의 자질/인지적 오류분석과 생산

배포

사용자정책결정

관료주의적 부처이기주의

정책결정권자의 무지/오판

정부조직의 세분화/비효율성

정보요구

분석관의 인지적 오류 및 자질 부족으로 인해 상황을 오판하게 될 수 있는데 이것이 정보실패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정보기관들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들이 관료주의적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의도적으로사실을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정보실패는 대부분 정보기관들의 자체적인 실책에서 비롯된 것으로써‘정보적 실패’로 명명한다.

순수하게 정보기관의 실책에서 비롯된 정보실패가 아닌 경우‘정보외적실패’로 명명한다. 예를 들어, 정보기관이 아닌 정부 부처--예를 들어 국방부,

외교부 등--가 자신의 조직 이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사실을 과장하거나 과소평가하여 정보실패가 발생하게 될 경우도 있는데 이는‘정보외적 실패’에속한다. 또한, 정부 조직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정보가 적시에 필요한 곳에배포되지 않음으로써 정보실패를 야기할 수 있는데 이것도‘정보외적 실패’에 속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배포된 정보가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책결정권자의 무지와 오판, 그리고‘정보의 정치화’로 인해 정보실패가 발생할 수도있다. 어쨌든, 이러한 사례들은 정보기관의 잘못보다는 정부부처 또는 정책결정권자의 실책이 결정적이기 때문에‘정보외적 실패’유형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정보실패를 굳이‘정보적 실패’와‘정보외적 실패’를 구분하는 이유는 정보실패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하는데 있다. 즉 정보실패의 책임이 정보기관들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책결정권자 또는 정부내 타 부처의 잘못에 기인한 것인가를 구분하고자 하는 것이다.

III. 정보실패의 사례들

1. 9·11 테러 사건

지난 해 발표된 미 의회 9·11 진상조사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일명 9·11 Commission)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정보통합관리의 실패로 9·11 테러를 무산시킬 수 있었던 수 차례의 기회를 놓치게 된 것으로 평가되었다.9) 동 보고서에 따르면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19

9) 미 의회는 공화·민주 양당에서 추천한 10명으로‘9·11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 2002년

미 NSA는 2000년 1월 사전에 항로를 답사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테러분자 3명의 통화를 감청하여 이들이 불순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유관기관에 이를 전파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CIA는 2001년 3월 태국 당국으로부터 테러범 중 1명이 LA행 UA편에 탑승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도 이를 FBI와 공유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의 미국내 행동을 사전에 포착할 중요한 기회를 상실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그리고FBI 본부는 미니에폴리스 지부에서 체포한 이슬람인 비행 훈련생을 CIA의알 카에다 관련 정보와 연계시키지 않고 단순히 추방시키는 조치만 취함으로써 용의자 심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놓치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10) 요컨대, 미국 내 CIA, FBI, 국무부, 군, 국토안보 관련부처 등 관련조직들 간에 통합된 정보 공유체제가 부재한 결과가 9·11 테러를 막지 못한 결정적인 요인인 것으로 지적되었다.11)

이밖에 9·11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한 요인으로써 정보가 생산되고 순환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우선 첩보 출처(source) 및 첩보자료의 신뢰성이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제대로 된 정보분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확하고 신빙성 있는 첩보자료가제공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9·11 이전 정보공동체 내에 몇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된다. 우선 NSA는 1998년 언론매체에 NSA의 감청 능력을 언급했는데, 이후 오사마 빈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통신방식을 바꿈으로써 9·11 이전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미국에 잠입하여 교신하는 내용을

20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1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50만 페이지의 자료들을 열람하고, 1,200여 명과 면담을 실시했으며, 19일간 청문회를 개최하여 9·11 테러 예방의 실패원인 분석 및 개선방안 등을 제시한 최종보고서를 발간하 다(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United States, 2004, http://www. gpoaccess.gov/911, 검색일: 2004년 10월 9일).

10) 뉴욕 주재 한 FBI 대테러 담당자는 합동조사위에서 그와 다른 한 FBI 요원이 9·11테러 용의자인 미드하르(Khalid al-Midhar)와 하자미(Nawaf al-Hazmi)에 대한 자료를 찾고자 CIA 정보자료에의 접근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2001년 8월 29일 관료주의적 장벽 때문에 정보자료 접근이 거부됨으로써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FBI 본부에 보냈던 것으로 밝혀졌다(Gertz, 2003, xv).

11)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9·11 최종보고서에서는 정보기관들 상호간의 수평적인 정보공유의 역을 확대하고, 현재의 중앙정보장(DCI) 직을 국가정보장(DNI, Directorof National Intelligence)으로 대체하여 정보공동체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할 것을 제안하다(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이하 9·11 Report),

2004, http://www. gpoaccess.gov/911, 검색일: 2004년 10월 9일).

전혀 감청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난다(Gertz, 2003, xxi). 그리고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미국 정보공동체는 기술정보 수집능력이 미흡한 상황에서 인간에 의한 정보 수집을 경시함으로써 실책을 자초했다고 지적되었다(Gertz,

2003, 10). CIA 요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빈 라덴을 추적하는 공작관들이 대부분 아랍어도 모르고 해외에서 첩보수집활동을 수행한 경험이 전혀 없는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 카에다에 대한 첩보수집 활동을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Taylor and Goldman, 2004, 431).

CIA를 비롯한 정보공동체의 분석능력이 미흡했던 것도 9·11 테러를 막지 못한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9·11 합동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엘리노 힐(Eleanor Hill)에 따르면 CIA의 테닛 국장이 1998년 알 카에다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 당시 CIA의 방첩센타에는 단 3명의 분석관이 그리고 FBI에는 단 1명의 분석관이 알 카에다 분석을 담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Gertz, 2003, xv).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제대로 된 분석보고서가 생산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보활동에 대한 지나친 규제도 9·11사태를 막지 못하는데 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01년 8월 16일 이슬람 테러리스트 무사위(Zacarias Moussaoui)가 체포되었는데 FBI와 법무부는 그에 대한 미행감시여부를 놓고 고민하다가 추후 법적인 문제 소지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이를 포기했다고 한다(Gertz, 2003, xv). 만일 그에 대한 미행감시가 시행되었더라면 9·11 테러의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보조직체계의 결함뿐만 아니라 정보와 관련된 관료조직의 경직성 역시정보실패 또는 왜곡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바, 9·11 최종보고서에서 9·11 테러를 막지 못한 요인을 창의력, 정책, 대응능력, 관리 등 4가지로 지적했는데 그 첫 번째 요인을 정부 부처 관료들의‘상상력의 부재’에서 찾는 것이 주목된다(9·11 Report).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정보공동체나 항공보안전문가 등 그 어떤 관료도 피랍 항공기를 이용한자살테러 가능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12)특히 미 정보공동체에서 테러문제를 전담하는 대테러센터는 자살테러가 중동테러분자들의 주요 전술임에도 불구하고 테러분자의 시각에서 분석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결국 정보공동체 내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와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테러 가능성을 과소평가했고, 그로 인해 9·11 테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21

러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9·11 테러 사건을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다소 상반된견해가 제시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9·11 테러사건을 정보공동체의 실책에서 비롯된‘정보실패’로 규정하는 반면,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공동체는 그것을 자신들의 실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조지 테닛 전 CIA 국장은 9·11 테러사건이‘정보실패’라라는 견해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는 2002년 2월 CIA와 FBI를 포함한 정보공동체 요원들이 1997년부터 대테러활동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 다고 주장하면서 결코 실패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Zegart, 2005, 81). 물론 정보기관들의 입장에서볼 때 테러 발생 가능성과 그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했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정책결정권자들이 이를 제대로 정책에 반 하지 못한 측면이 없지않다. 따라서 9·11 테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들만이짊어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 정보공동체는1997년 이후 대테러 활동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 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테러사건이 발생할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채 알 카에다조직으로부터 전격적인 기습을 당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9·11 테러 사건은명백히 정보공동체의 실책에서 비롯된‘정보실패’라고 평가된다.

앞서 9·11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결정적인 요인들로써 정보공동체자체의 실책과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냉전 이후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테러리즘을 비롯한 탈냉전기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공동체 조직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이를 위해 미 의회 내 6개의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행정부에서 3개의 비 보고서가 생산되었으며, 3개의 싱크 탱크 T/F 팀이 구성되어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했다.13) 여기서 정보공동체의 개혁에 대해 총 340개의 제안들이 제시되었는데, 그 중 35개만이

22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2) 물론 일부 기관에서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 시나리오를 제시한 일도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하 다. 1999년 8월 초 미 FAA 민간항공보안정보실은 빈 라덴이 항공기를 납치, 테러를 가할 위험성을 종합해 보았다. 이들은 관련 사항에 대해 가용한 모든 정보를 동원하여 몇 개의 주요 시나리오를 착안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 다. 그러나 FAA 분석관들은 이 시나리오를 가능성이없다고 판단했다.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라흐만’과 같은 주요 과격세력들의 석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국과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판단의 근거 다(9·11 Report).

성공적으로 실행되었고, 약 11%는 대충 실행, 그리고 79%는 전혀 실행되지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Zegart, 2005, 88). 제가트(Amy B. Zegart)는 냉전 이후 조직체의 개혁에 실패함으로써 정보공동체간 정보공유의 부재, 인간정보수집 능력의 한계, 미흡한 정보목표의 우선순위 설정, 업무의 효율성과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인사제도의 부재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정되었고, 그로 인해 9·11 테러사건을 막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했다(Zegart, 2005,

102-107).

사회학자들의 조직 이론에 따르면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조직은 변화한다(March, 1981, 563; Hannan and Freeman, 1984, 151; Zegart, 2005, 82). 그런데조직이 변화하는 것과 조직이 주변의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변화된 안보환경에 부응하여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기관들을 개혁하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 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보기관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었고 그때문에 공동체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하는데 실패했다(Zegart, 2005, 100-107). 그로 인해 정보공동체는 첩보수집 및 생산활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했고, 정보기관들 간의 수집된 첩보를 공유하는 등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9·11 테러를 막을 수 있는 수차례의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요컨대, 9·11 테러사건은 일부 정책결정권자의 정책적 실책이 없지 않지만, 정보공동체 스스로 개혁을 거부하고 저항함으로써 조직체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저하된데 기인한것으로써 명백히‘정보실패’로 규정될 수 있겠다.

2. 이라크의 WMD 정보판단

미국이 대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가조지 부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 간에 대결하는 2004년도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었었다. 문제는 미 CIA가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해 왜곡된 정보판단을 내렸고, 그것이 미국이이라크 전쟁을 단행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 다는데 있다. CIA는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23

13) 이들 위원회들의 구성과 활동 내용에 대해서는 (Zegart, 2005, 85-86, footnote 36-38)을참고하기 바람.

2002년 말 발간된 보고서에서 이라크가 유엔결의와 기타 규제를 위반하면서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은 히 추진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14) 그런데최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서 시작되었음을 지적하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제시되고있다.

우선‘ ·미안보정보위원회’(British American Security Information

Council)가 발간한 보고서는 이라크 전쟁 직전 미국과 국 정보기관이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라고 단정지었다(Isenberg,

2004, 4). 또한 미국의 싱크 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도 2004년 1월 8일 보고서를 통해“이라크가 WMD를 폐기 또는 이동하거나 은닉했을 가능성은 없다”면서“부시행정부가 이라크의 WMD 위협을 조직적으로 왜곡했다”고 평가했다.15)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에 관한 가장 결정적인 내용은 2004년 10월 6일이라크서베이그룹(ISG)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918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발표되었다(Iraq Survey Group, 2004). 찰스 듀얼퍼(Charles Duelfer)를 단장으로하여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조사해왔던 이라크서베이그룹(ISG)은 보고서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은 1991년 걸프전 직후 폐기됐다고 밝혔다. 또한 보고서에서는 미국이 공격할 당시 이라크는 생화학무기를 보유하지 않았고, 핵무기 프로그램 재건도 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능력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기술했다.16) 결국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2002년의 CIA 보고서는 부시 행

24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4) 당시 CIA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8년 마지막으로 무기사찰을 받은 이래 이라크는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하 고, 유엔 규제를 넘는150k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후세인 정부는 석유를 비리에 판매한 자금을 WMD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만일 이라크를 당장 제지하지 않으면10년 내에 핵무기까지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2002,http://www.odce.gov/cia/reports/Iraq_wmd/Iraq_Oct_2002.pdf, 검색일: 2004년 7월 6일; 이상현, 2004, 4-5).

15) 카네기재단은 보고서에서“정보왜곡과 잘못된 판단 때문에 미국과 중동, 나가가 세계안보에 즉각적인 위협이 없는데도 이라크의 위험성이 극히 과장됐다”며“이라크가 생산·보유했던 대량살상무기는 미국의 침공 훨씬 이전에 전량 파괴됐다”고 강조했다(한겨레 신문, 2004. 1. 8; Isenberg, 2004, 4).

정부의 정책적 시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왜곡된 것이라는 주장이설득력 있게 들린다(Alam, 2005, 1).

CIA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평가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는몇 가지 정황 증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CIA는 2001년 이라크가 암시장에서 알루미늄 튜브를 구입하고자 시도했던 것을 두고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다른 정보기관의 전문가들은 이라크가 구입하고자 시도했던 알루미늄 튜브는 크기,

모양, 재질 등에서 핵물질 획득에 쓰이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부품과는 전혀 다르다는 견해를 제기했는데, CIA는 이를 묵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Alam, 2005, 2). 또한, CIA는 사실을 왜곡시킬 목적에서 미국 내 원심분리기 분야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의 평가조차 의도적으로 회피했던것으로 여겨진다. CIA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정보기관들과 전혀 협의하지 않았으며, 이 문제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위원회 보고서의내용 중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것만을 취사선택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나타난다(Alam, 2005, 2). 사실, 위원회에서는 알루미늄 튜브는 이라크의 재래식 로켓용으로 활용될 부품으로써 핵무기 개발과는 무관하다는 것으로 판단했다. 요컨대, CIA가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증거로써 내세운 알루미늄 튜브 구입 시도는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CIA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묵살하면서까지 이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는데 의혹이 있다. 이에 대해 많은사람들은 CIA가 부시 행정부가 원하는바 이라크 전쟁의 구실을 제공해주기위해서 이라크의 핵개발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것으로 추정한다(Alam, 2005, 2).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이라크의WMD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조작했을 것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일고있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한 비난을 잠재우고자 2004년 2월 6일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정보 오류를 포함한 미국의 정보능력을 조사할‘특별조사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Intelligence Capabilities of the United States Regarding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25

16) 듀얼퍼 단장은 이라크 지도자들은 나중에 서방의 제재조치가 해제되면 이란과 이스라엘에(미국이 아니고) 대응하기 위해 핵시설을 복구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Iraq Survey Group, 2004).

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구성했다.17) 위원회는 2005년 3월 31일 총692 쪽에 달하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이라크의 WMD 정보판단은‘치명적인 실패’라고 규정했다(Silberman and Robb, 2005).

보고서는 정보실패의 주요 원인을 분석상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하고, CIA, DIA, NSA, NGA 등 미국의 주요 정보기관들의 첩보수집 능력 역시 미흡했음을 지적했다(Silberman and Robb, 2005, 15-16). 특히 인간정보(Human Intelligence) 분야의 정보활동이 매우 취약했음을 지적했다. 보고서는“이라크 핵과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인간정보가 거의 없었고, 사담후세인을 포함한 이라크 지도부의 의도에 대해서 사실상 전혀 알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통신감청 등을 통한‘신호정보’의 경우도“이라크 통신의 중요부분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극단적으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관한 첩보들이 거의 무가치하거나 왜곡되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정보공동체조직이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분산됨으로써 정보기관들 간의 정보공유가 잘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Silberman and Robb, 2005, 14-

15).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냉전이 종식된 이후 변화된 정보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첩보수집이나 정보분석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Silberman

and Robb, 2005, 5; Zegart, 2005, 78-111).

사실 위원회 보고서에서 언급된 것처럼 미국의 정보공동체는 첩보수집,

분석, 정보공유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던 것으로 지적된다. 우선, CIA

의 인간을 통한 첩보수집 활동이 위축됨으로 인해 분석에 치명적인 오류를야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첩보수집활동은 정확한 정보분석을 위한 가장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첩보수집활동의 중요성이 감소했고, 해외에서 첩보수집 활동이나 비 공작 활동을 수행하는 요원들이 승진에서 푸대접 받는 등 근무환경이 나빠지면서

26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7) 동 위원회는 베트남 참전 군인인 찰스 롭(Charles S. Robb) 전 버지니아 상원의원 겸 주지사와 닉슨 및 포드 대통령 시절 법무장관을 역임한 로렌스 실버먼(Laurence H.Silberman)이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을 대표해 공동위원장에 임명됐으며, 나머지 초당적인사 7명을 포함하여 9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위원회가 조사 결론을내놓을 시점을 11월 대선이 끝난 후인 2005년 3월까지로 해 이 사안의 대선 쟁점화를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는 비난을 받았다(서울경제, 2004. 2. 9).

첩보활동이 위축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Baer, 2005). 해외 공작활동이 위축되면서 신뢰성 있는 첩보출처(source) 확보가 어려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했는지 여부에 대한 첩보의 대부분은 이라크인 망명자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는데,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미국이 사담후세인을 축출해주기를 염원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를 허위로 과장하여 보고했던 것으로 나타난다(Baer, 2005). 그런데 분석관들은 이라크 망명객들이 제공하는 첩보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정보보고서 작성에 활용하 던 것으로 드러났다(Baer, 2005). 또한, 1995년 당시 중남미 지역에서 CIA가 테러 용의자, 마약중독자, 살인자 등을 협조자로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작활동 지침(guideline)이 개편되었다(Taylor and Goldman, 2004, ). 이로 인해 비 공작활동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고 첩보수집 활동이 위축됨으로써 첩보자료의정확성이나 신뢰성이 저하된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첩보수집은 물론 분석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현지 언어 능력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CIA는 지난 수십 년간 직원 채용 시 엄격한 신원조사 관행 때문에 외국어에 유창한 인력을 확보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수십 년 동안 정보능력이 약화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Taylor and Goldman,

2004, 431). CIA 내 분석관이든 수집관이든 아시아나 중동지역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정보인력에관한 하원 특별위원회(The House Permanent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

Accompaning H.R. 2883) 보고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정보공동체 내에 현지어 해독 능력이 미흡해서 수개월동안 외국어로 쓰여진 문서가 번역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Taylor and Goldman, 2004, 431).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에 관한 정보실패의 요인으로써 분석과정에서의 인지적 오류도 지적된다. CIA는 1991년의 1차 이라크 전쟁 이전에 사담 후세인의 핵개발 상황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실책을 범했다. 아마도 CIA 분석관들은 또다시 그러한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Gormley, 2004,

7). 특히 사담 후세인이 워낙 음흉하고 교활하여 대량살상무기를 비 리에은닉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즉 사담 후세인에 대한 편견,

과거의 왜곡된 분석으로 인해 낭패를 본 경험 등이 또 다른 분석적 오류를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27

야기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요컨대, 첩보수집활동의 위축, 첩보출처의 신뢰성 저하, 분석관들의 자질저하, 인식론적 오류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라크의WMD 존재에 대해 잘못된 보고서가 작성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과연 잘못된 정보판단이 정보공동체만의 실책인가 아니면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부시 대통령이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리고 미국의 정보공동체가 이라크의 WMD 존재 여부에 관해몇 가지 실책을 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의구실로 삼고자 의도적으로 정보를 조작 또는 왜곡했던 몇 가지 정황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 사례에 있어서 정보실패의 모든 책임이 정보공동체에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전 재무장관 오닐(Paul H. O’Neill)은 청문회에서 부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을 언급했었다고 증언했던 바, 이로 보아 부시대통령은 일찍부터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그 구실을 찾고자 부심하는 가운데 CIA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과장했으리라고 추정된다(Gormley,

2004, 8; Freedman, 2004, 6-50; Isenberg, 2004, 9). 이라크와의 전쟁 이전 부시 대통령을 포함하여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플레이셔(Ari Fleischer) 백악관 대변인 등이 방송 연설, 인터뷰, 청문회, 뉴스브리핑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수차례에 걸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음을 강력히 주장했었다.18)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대통령과 고위관료들의 이러한 입장을 반박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아마도 그것이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해주도록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라크 WMD에 대한 정보판단은 정보공동체의 실책에 기인한‘정보적 실패’라기보다는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관리들의‘정책실패’에서비롯된 것으로써‘정보외적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조지 테닛 전 CIA국장은 9·11 테러사건은 물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28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8) 2001년부터 이라크 공격을 개시하기까지 부시 대통령과 측근들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 거짓말했던 내용에 대해서는(Bush Administration Officials Lies, 2005)를 참고바람.

존재에 대한 정보판단도 결코 정보실패가 아니라고 강조했다(Martin, 2003,

3-4; Zegart, 2005, 81). 2002년 10월 7일 부시 대통령은 신시네티에서 행한연설에서 이라크를 무장해제하기 위해 이라크와의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조지 테닛 국장은 대통령의 연설문 중에서 이라크가 아프리카에서 우라늄을 구입하고자 시도했다는 내용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었다고 한다(Martin, 2003, 3). 부시 대통령은 2003년 1월 28일 연두교서에서 이라크가 아프리카로부터 상당량의 우라늄을 획득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국정부가 밝혀냈다고 언급하면서 이라크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자신의주장을 관철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2003년 2월 5일 파월 국무장관이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입장을 피력하는 연설을 했는데, 테닛 국장은 이라크가 알루미늄 튜브를 구입하고 알 카에다와 연계되었다는 주장은동의하면서도 니제르(Niger)에서 우라늄을 몰래 구입하려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명백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Martin, 2003, 3). 결국, 이라크전에이르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와 핵심 각료들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정보 가운데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요소는 은폐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유리한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나타난다(Martin, 2003, 3-4).

한편, 국의 BBC 방송은 국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조작했다고 보도했다(연합뉴스, 2005. 3. 21). 이 방송은2005년 3월 20일 블레어 총리와 내각의 핵심 각료들이 이라크 전쟁 발발약 9개월 전에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고 폭로했으며목적은 이라크의 정권교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BBC는 이날 방 된 다큐멘터리‘이라크와 토니(블레어 총리의 애칭) 그리고 진실’에서 국 해외정보담당 기관인 해외정보국(MI6)의 책임자인 리처드 디어러브 국장이 전쟁발발 훨씬 전인 2002년 6월 경 미국 정보당국과비 협의를 하고 돌아와서 블레어 총리와 핵심 각료들에게 부시 행정부가이라크 침공을‘확정’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05. 3.

21). 이러한 정황을 감안했을 때 국의 블레어 총리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으로 가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여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정보를 의도적으로 조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라크 WMD 관련 정보실패는 전적으로 정보공동체의 실책으로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29

만 볼 수는 없으며, 상당 부분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의도적인 정보왜곡, 즉‘정보의 정치화’가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정치가들은‘정보의 정치화’가 드러나서 정치적으로 쟁점화되거나 여론의 비난을 받게 될 경우 종종 정보기관을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모면하고자 한다. 2004년 6월 2일 조지 테닛 미 CIA 국장은‘개인적인 이유’로 사임한다고 발표했다(조선일보, 2004. 6. 4). 테닛 국장이 부시 행정부의 정보 실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지만, 그 정보실책이 과연 CIA만의 실책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제기된다. 부시로서는 테닛의 사임을 통해 자신에 대한여론의 비난을 잠재우고 특히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대한 사임 압력을 희석시킬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결국 테닛은 부시와 럼즈펠드의 조직적인 정보왜곡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정권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19)

3. 사례들에 대한 비교 분석

지금까지 최근 부시 행정부에서 발생한 정보실패 사례들--9·11 테러사건, 이라크의 WMD 정보판단--에 대해 살펴보았다. 위에서 살펴본 2가지 사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정보실패는 한 가지 요인에서 비롯되었기보다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9·11 테러 사건과 이라크의 WMD 정보판단의 사례는 부시 행정부 들어서서 발생한정보실패로써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는 한편, 실패를 야기한 기습의 유형,

실패의 원인, 책임 소재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그러한 차이점들을 아래 <도표 1>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2가지 사례의 차이점들을 언급하기에 앞서 공통적인 점을 우선 살펴본다.

먼저 2가지 사례에서 보면 사태가 발생하게 된 주요 원인이 미국 정보공동체 조직의 비효율성과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앞서 언급했던 바, CIA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국 정보기관들은 9·11 테러사건은

30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9) 이와 관련하여 부시 행정부가 은 하게 그의 사임을 유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스탠스필드 터너 전 CIA 국장은 CNN에 출연, “테닛은 려났으며 희생양”이라며“선거기간 동안인데 사임을 요구받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2004. 6. 4).

물론 이라크 WMD 정보판단 실패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실책으로 인정하지않으려 한다. 그러나 정보가 생산되고 순환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문제점들이 드러났다.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CIA는 인간정보수집능력이 매우 저하되었고, NSA는 신호정보 수집능력이 약화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첩보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졌고, 그러한 자료들이 분석에 활용됨으로써 제대로 된 분석보고서가 생산될 수 없었던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서도 테러를 전담하는 분석관들이 턱없이 부족했고, 분석관들이 현지어도 서툴러서 중요한 첩보자료들이 번역되지 않은 채 수개월동안 방치되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정보 분석관들은 테러가 국외에서 발생할 것으로 생각했고, 비행기를 납치하여 빌딩으로돌진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할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는 분석관의 선입관에 기인한 일종의 인식론적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9·11 테러를 막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정보기관들 간의 정보공유가 부재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한편, 9·11 테러 사건을 경험한 이후 미국 정보공동체에 대한 개혁이 진행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바, 각종 위원회와 T/F 팀이 구성되어 정보공동체를개혁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했고, 무려 340여개의 제안들이 제시되었는데 그 중 35개만이 성공적으로 실행된 것으로 나타났다.(Zegart, 2005,

88). 이라크의 대상살상무기에 관한 정보판단의 경우에서도 9·11 테러 사건과 유사한 문제점들이 되풀이 되어 그대로 나타났다. 인간정보는 물론 신호정보 능력도 개선되지 못했다. 정보공동체 조직도 아직 통합을 이루지 못해 효율적인 정보공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분석관들의 현지어 능력도 하루아침에 향상될 수 없는 일이었고, 분석관들의 선입관과 편견에 따른 인지적 오류도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31

<도표 1> 정보실패의 유형과 원인 비교: 9·11 테러사건과 이라크의 WMD 정보판단

사 례내 용

9·11 테러사건 이라크 WMD 정보판단

기습 형태 경고실패 정보왜곡고의성 여부 없음 의도적인 정보조작 가능성 농후실패의 주 책임소재 정보공동체의 정보기관들 대통령과 정책결정권자

정보기관들 간의 정보공유 부재첩보수집 능력 저하

첩보수집 능력 저하분석관의 자질 미흡

분석관의 자질 미흡분석관의 인지적 오류

분석관의 인지적 오류조직 구성원의 업무 효율성향상 노력 및 개혁 의지 미흡

공작활동 지침 개편으로 비 대통령과 행정부 핵심각료들에

공작활동에 대한 지나친 통제의한‘정보의 정치화’또는

‘정책실패’

이러한 몇 가지 유사점들에도 불구하고 9·11테러 사건과 이라크 WMD

정보판단 왜곡 사례는 명백한 차이점을 가진다. 우선 정보실패의 유형과 관련하여 9·11 테러 사건은 적의 군사적 기습공격을 제때에 알아차리지 못해서 발생한 것으로써‘경고실패’(warning failure)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고,

이라크 WMD 정보판단은 적의 능력이나 동향을 오판한 것으로써‘정보왜곡’(intelligence misjudgement)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무엇보다도 정보실패를 야기한 주요 요인이나 그 책임소재에 있어서 위의2가지 사례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9·11 테러 사건에 대해 혹자는 부시 행정부가 사태가 발생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의도적으로 방조했다는 음모설도 제기되지만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고 본다. 9·11 테러 사건은 정보공동체의 무능력과 비효율성에서 비롯된 실책으로써명백히‘정보실패’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물론 비 공작활동 지침 개정으로인해 첩보수집능력이 저하됨으로써 정보분석에 어려움을 야기한 점이 있지만 그것이 정보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9·11테러 사건의 경우와 유사하게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존재에 대한 정보판단이왜곡되는데 있어서 정보공동체의 무능력과 비효율성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

32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실패원인

정보적요소

정보외적요소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라크 WMD 정보판단의 경우 정보의 정치화 또는 정책실패가 보다 결정적인 실패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 WMD 정보판단의 경우는 정보실패의 책임 소재를정보공동체로 보기 보다는 부시 대통령이나 핵심각료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2가지 사례 공히 국가이익이나 안보에 중요한 향을 끼칠 수 있는 현상을 제대로 예측하거나 판단하지 못함으로써 국가적으로 치명적인 손실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명백히 정보실패로 간주된다. 그러나 9·11 테러사건은 정보공동체의 실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되는 반면, 이라크 WMD

정보판단의 왜곡은 정보의 정치화 또는 정책실패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IV. 결론

지금까지 정보실패의 개념, 의미, 유형, 그리고 원인들을 이론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을 부시 행정부 동안에 발생한 2개의 사례에 적용하여 분석해 보았다. 9·11 테러사건에서 보았듯이 적시에 정확한 정보판단 또는 경고가내려지지 않을 경우 적의 기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국가적으로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초래한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판단이 있었더라면 미국은 국내외의 비난을 무릅쓰면서 이라크에대한 공격을 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보실패가 오늘날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가시작된 이래 적의 갑작스런 기습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거나 적의 군사력이나 동향을 왜곡 판단하여 무모한 군비경쟁에 빠져드는 등 수많은 정보실패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을 치르게 되었거나 또는 적의갑작스런 기습으로 인해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무수한 인명과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 다. 요컨대, 정보실패는 정책결정권자로 하여금 왜곡된 정책결정을 유도함으로써 국가의 생존과 번 에 치명적인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외견상 정보실패로 보이지만 실상을 깊이 따져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보기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정보외적 요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33

소들(non-intelligence elements) 때문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 빈번히발생한다. 진주만 기습 사례에서처럼 생산된 정보가 제때에 배포되지 않음으로써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또는 적시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 주었음에도불구하고 정책결정권자가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함으로써 정보실패를 야기하기도 한다. 정책결정권자가 정보기관의 경고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여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낭패를 보았던 사례들이 역사 속에서 빈번히 발생했다. 이 경우 엄 히 따지자면 경고조치를 취한 정보기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경고에 대해서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정책결정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모든 책임이 정보기관에게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정보실패의 많은 부분은 정책결정권자의 정책적인 대응이미흡했거나 정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정책결정권자에게 있다고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정책결정권자의 잘못으로 인해 정보실패가 발생했을지라도 정보기관은 그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따라서 정보기관은 정보실패를 막기 위한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첩보수집, 분석, 정보공유체계의 개선 등 정보의생산과 배포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 정보실패에명백히 책임이 있는 정보기관이나 부서 조직을 개편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정책실패’또는‘정보의 정치화’를 막고 정보가 정책결정에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편으로는 정책결정권자들을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과 접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4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참고문헌

문정인. 2002. “정보분석론.”문정인 편저. 『국가정보론』. 서울: 박 사.

어니스트 볼크만, 이창신 역.2003.『스파이의 역사 1(작전편): 20세기를 배후조종한 세기의 첩보전들』. 서울: 이마고.

이상현. 2004. “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정보활동: 정보실패의 교훈과 시사점.”국가정보대학원. 국가정보포럼 발표문(7. 8).

Alam, M. Junaid. 2005. “No Intelligence Failure in Iraq, But Political Failure in

America.”ZNET/TerrorWar(April 12). http://www.zmag.org/content/

print_article. cfm?itemID=7627&sectionID=40 (검색일: 2005년 6월 20일).

Baer, Robert. 2005. “Wanted: Spies Unlike Us--Getting the CIA Back in the

Game.”Foreign Policy. (March/April). www.foreignpolicy.com/story/cms.

php? story_id=2782.

Berkowitz, B., and Goodman, A. 1989. Strategic Intelligence for American

National Securit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Betts, R. K. 1978. “Analysis, War and Decisions: Why Intelligence Failures are

Inevitable.”World Politics 31, 1(October).

______. 1980. “US Strategic Intelligence Estimates: Let’s Make Them Useful.”Parameters(US Army War College) 10, 4(December).

______. 1981. “US Strategic Intelligence: Politics, Priorities and Direction.”in

L. Pfaltzgraff, Jr., U. Ra’anan, and W. Milberg, eds. Intelligence Policy and

National Secuirity. London: Macmillan.

______. 1982. Surprise Attack: Lessons for Defense Planning.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______. 1983. “Warning Dilemmas: Normal Theory vs Exceptional Theory.”Orbis(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 26, 4(Winter).

______. 1989. “Surprise, Scholasticism, and Strategy: A Review of Ariel

Levite’s Intelligence and Strategic Surprises.”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33, 3(September).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35

“Bush Administration Officials Lies about Iraq’s Suppose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in Their Own Words.”2005. http://www.geocities.com/

jacksonthor/lieswmd.html (검색일: 2005년 1월 20일).

Codevilla, A. 1980. “Comparative Historical Experience of Doctrine and

Organization.”in Roy Godson. ed. Intelligence Requirements for the 1980’s:

Analysis and Estimates. National Strategy Information Center Inc..

Cubbage, II. T. L. 1987. “The German Misapprehensions Regarding Overlord:

Understanding Failure in the Estimative Process.” in M. I. Handel, ed.

Strategic and Operation Deception in the Second World War. London: Cass.

Davidson, Keay. 2004. “Intelligence Failure, Misinterpretation or Deceit?”March 17. http://www.sfgate.com/cgi-bin/article.cgi?file=/c/a/2004/03/17/

MNG2N, (검색일: 2005년 6월 27일).

Davis, J. 1992. The Challenge of Opportunity Analysis. Washington D.C.:

Center for the Study of Intelligence(CIA).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2002. “Iraq’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grams.”October, http://www.odce.gov /cia/reports/Iraq_wmd/Iraq_Oct

_2002.pdf (검색일: 2004년 7월 6일).

Duffield, J. S. 1991. “Soviet Military Threat to Western Europe,”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15, 2(June).

Evangelista, M. A. 1982-3. “Stalin’s Postwar Army Reappraised,”International

Security 7, 3(Winter).

Freedman, Lawrence. 2004. “War in Iraq: Selling the Threat,”Survival 46,

2(Summer).

Garbo, C. M. 1989. “The Watch Committee and the National Indications Center:

the Evolution of U.S. Strategic Warning 1950-75.” International Journal of

Intelligence and Counterintelligence 3, 3(Fall).

Garthoff, R. L. 1990. “Estimating Soviet Military Force Levels.”International

Security 14, 4(Spring).

Gertz, Bill. 2003. Breakdown: The Failure of American Intelligence to Defeat

Global Terror. New York: Penguin books Ltd.

Godson, Roy. ed., 1980, Intelligence Requirements for the 1980’s: Analysis and

36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Estimates. National Strategy Information Center Inc.

Godson, Roy. ed. 1989. Intelligence Requirements for the 1990s. Lexington,

Mass.: Lexington Books.

Gormley, Dennis M. 2004. “The Limits of Intelligence: Iraq’s Lesson.”Survival

46, 3 (Autumn).

Handel, M. I. 1980. “Avoiding Surprise in the 1980s.”in Godson(1980).

Handel, M. I. 1984. “Intelligence and the Problem of Strategic Surprise,”Journal of Strategic Studies 7, 3(September).

Hannan, Michael T., and Freeman, John. 1984. “Structural Inertia and

Organizational Change.”American Sociological Review 49, 2(April).

Herman, Michael. 1996. Intelligence Power in Peace and Wa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olt, Pat M. 1995. Secret Intelligence and Public Policy: A Dilemma of

Democracy Washington, D.C.: Congressional Quarterly Inc.

House of Commons Defence Committee, Session 1983-4, Third Report. 1984.

Ministry of Defence Reorganisation. London: HMSO, 15 October. Minutes of

Evidence, Evidence of Marshal of the Royal Air Force Lord Cameron of

Balhousie, question 17.

Iraq Survey Group. 2004. Final Report About Saddam Hussein’s Weapons of

Mass Destruction(WMD) Programs. http://news.findlaw.com/wp/docs/iraq/

dciwmd93004kf.pdf (검색일: 2005년 1월 20일).

Isenberg, David, and Davis, Ian. 2004. “Unravelling the Known Unknowns:

Why no Weapons of Mass Destruction Have Been Found in Iraq.”British

American Security Information Council. Basic Special Report.

http://www.basicint.org/pubs/Research/2004WMD.pdf(검색일: 2005년 1월20일).

Jervis, Robert. 1976. Perception and Misperception in International Politic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Jervis, Robert. 1986. “What’s Wrong with the Intelligence Process?”International Journal of Intelligence and Counterintelligence 1, 1(Spring).

Kam, E. 1988. Surprise Attack: The Victim’s Perspective. Cambridge, Mass. and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37

London: Harvard University Press.

Kent, Sherman. 1966, Strategic Intelligence for American World Polic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Knorr, K. 1989. “Avoiding Surprise in the 1980s.” in Roy Godson, ed.

Intelligence Requirements for the 1980s. Lexington, Mass.: Lexington Books.

Laqueur, Walter. 1985. A World of Secrets: The Uses and Limits of Intelligence.

New York: Basic Books, Inc.

Livite, A. 1987. Intelligence and Strategic Surpris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Lowenthal, M. W. 1996. “The Burdensome Concept of Failure,” in A. C.

Maurer, M.A. Tunstall and J.M. Keagle, eds. Intelligence: Policy and Process.

London: Westview.

______. 2000. Intelligence: From Secret to Policy. Washington, D.C.:

Congressional Quarterly Press.

______. 2002. Intelligence: From Secret to Policy(Washington, D.C.:

Congressional Quarterly Press.

March, James G. 1981. “Footnotes to Organizational Change.”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6, 4(December).

Marshall, A. 1988. “Intelligence and Crisis Management.” in J. N. Merritt, R.

Read and R. Weissinger-Baylon, eds. Crisis Decision-taking in the Atlantic

Alliance: Perspectives on Deterrence. Menlo Park, Ca.: Strategic Decisions

Press.

Martin, Patrick. 2003. “Bush White House in Crises over Iraq War Lies.”http://www.wsws.org/articles/2003/jul2003/iraq-j14_prn.shtml (검색일: 2005년 6월 18일).

Merritt, J. N., Read R., and Weissinger-Baylon, R. eds. 1988. Crisis Decision-

taking in the Atlantic Alliance: Perspectives on Deterrence. Menlo Park, Ca.:

Strategic Decisions Press.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The 9-11Commission Report(Final Report of the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Official Government Edition. http://www.9-

38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

11commission.gov/report/911Report.pdf (검색일: 2004년 10월 6일).

Pfaltzgraff, Jr., L., Ra’anan, U., and Milberg, W. eds. 1981. Intelligence Policy

and National Secuirity. London: Macmillan.

Prados, J. 1986, The Soviet Estimate: US Intelligence Analysis and Soviet

Strategic Force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Reston, Maeve. 2004. “WMD report heats up debate.” http://www.post-

gazette.com/pg /04282/392390.stm(검색일: 2004.10.8).

Robertson, K. G. ed., 1987. British and American Approaches to Intelligence.

London: MacMillan.

Roukis, George S., Conway, Hugh, and Charnov, Bruce H. eds. 1990. Global

Corporate Intelligence: Opportunities, Technologies, and Threats in the 1990s.

New York.

Seabury, P. 1989. “Analysis.” in Godson, Roy, ed., Intelligence Requirements

for the 1990s. Lexington, Mass.: Lexington Books.

Shulsky, Abram N. 1993. Silent Warfare: Understanding the World of

Intelligence. New York: Brassey’s, Inc.

Shulsky, Abram N., and Schmitt, J. Gary. 2002. Silent Warfare: Understanding

the World of Intelligence, 3rd. ed. New York: Brassey’s, Inc..

Shulsky, Abram, and Sims, Jennifer. 1994. “What Is Intelligence?”A paper

presented on the Working Group on Intelligence Reform. Consortium for the

Study of Intelligence.

Sullivan, D. S. 1980. “Evaluating US Intelligence Estimates.”in R. Godson, ed.,

Intelligence Requirements for the 1980s: Analysis and Estimates. Washington

D.C.: National Strategy Information Center.

Taylor, Stan A., and Goldman, David. 2004. “Intelligence Reform: Will More

Agencies, Money, and Personnel Help?” Intelligence and National Security

19, 3(Autumn).

“Testimony of Charles Duelfer Special Advisor to the DCI for Iraqi Weapons of

Mass Destruction.”2004.”http://armed-services.senate.gov/statemnt/2004/

October/Duelfer%2010-06-04.pdf (검색일: 2004년 10월 2일).

The Commission on the Intelligence Capabilities of the United States Regarding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39

Weapons of Mass Destruction. 2005. Report to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March 31). http://www.whitehouse.gov/wmd (검색일: 2005년 8월 24일).

Wark, W. 1987. “Intelligence Predictions and Strategic Surprise: Reflections on

the British Experience in the 1930s,” in K. G. Robertson, ed. British and

American Approaches to Intelligence. London: MacMillan.

Whaley, B. 1973. Codeword Barbarossa. Cambridge, Mass.: MIT Press.

Wolhstter, R. 1962. Pearl Harbor: Warning and Decision(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Zegart, Amy B. 2005. “September 11 and the Adaptation Failure of U.S.

Intelligence Agencies.”International Security 29, 4(Spring).

40 『국가전략』2005년 제11권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