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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Journal of the Electric World | 지리산의어느겨울밤, 노고단대피소 지리산에 머물 수 있는 수십 가지 방법 중 노고단대피소 코스는 가장 쉬운 길이라 할 수 있다. 그 아래 성삼 재휴게소부터 대피소까지는 길이 쉽고 거리도 짧다. 하지만 겨울에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휴게소까지 다 니던 버스는 겨울철에 운행하지 않고, 폭설이 내리거나 땅이 꽁꽁 얼어버리면 그 부근까지 올라가는 택시도  찾아보기 어렵다. 화엄사를 지나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역시 막막하다. 자칫 눈 때문에 길 자체가  없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구간을 만날 수 있다. 겨울 지리산은 그 품을 그리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글, 사진 : 김애진(여행작가)) Culture & Life

지리산의 어느 겨울밤, 노고단대피소천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에 창건됐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소실된 것을 복원과 중수를 거쳐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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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지리산의 어느 겨울밤, 노고단대피소천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에 창건됐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소실된 것을 복원과 중수를 거쳐 현재

92 | Journal of the Electric World |

지리산의�어느�겨울밤,

노고단대피소지리산에 머물 수 있는 수십 가지 방법 중 노고단대피소 코스는 가장 쉬운 길이라 할 수 있다. 그 아래 성삼

재휴게소부터 대피소까지는 길이 쉽고 거리도 짧다. 하지만 겨울에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휴게소까지 다

니던 버스는 겨울철에 운행하지 않고, 폭설이 내리거나 땅이 꽁꽁 얼어버리면 그 부근까지 올라가는 택시도 

찾아보기 어렵다. 화엄사를 지나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역시 막막하다. 자칫 눈 때문에 길 자체가 

없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구간을 만날 수 있다. 겨울 지리산은 그 품을 그리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글, 사진 : 김애진(여행작가))

Culture & Life

Page 2: 지리산의 어느 겨울밤, 노고단대피소천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에 창건됐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소실된 것을 복원과 중수를 거쳐 현재

+ 天·地·人

노고단�고개로�걸어가는�길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천은사에서 성삼재휴게소로 이어

지는 길과 휴게소에서 노고단대피소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이어지

는 길이다. 천은사 구간은 차량으로 이동하기 용이한 코스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에 꼽혔으며 1,000m 넘는 고지를 걷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차량을 이용하기가 어렵다. 구례터미널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지 다니

는 버스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날씨가 따뜻할 때는

성삼재 부근까지 택시가 다니지만, 요금이 3만5,000원 정도다. 더구나 산 아래에서 보는

것과 달리 막상 위로 올라가다 보면 택시조차 지날 수 없어 결국 걸어야 하는 경우도 종

종 발생한다. 자기 차량으로 오르는 것도 운전이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쉽지 않다.

산행길인 화엄사 코스는 7km 구간에 난이도가 중간이지만, 겨울 등산은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겨울 노고단에 오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천은사에서부터 걷

는 것일지도 모른다.

걷는�길에�마주하는�풍경

천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에 창건됐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소실된 것을 복원과

중수를 거쳐 현재 건물 20여 동이 남아 있다. 천은사 일원은 1984년 2월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35호로 지정됐다. 경내로 향하는 첫 관문인 일주문의 현판이 독특하다. 조선시대

4대 명필가로 꼽히는 이광사가 물 흐르는 듯한 필체로 ‘천은사 일주문’이라 써서 걸었다고

전한다.

천은사를 지나 성삼재로 향하는 길에 삼일암, 도계암, 수도암, 상선암 등 산내 암자들

이 자리한다. 천은사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지는 1988년에 개통된 지리산 횡단도로를 이용

한다. 총 10km 구간으로 걸어 올라갈 때는 3시간 반, 내려올 때는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성삼재에서 2km 떨어진 시암재에도 휴게소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지리산 특산물과

관광기념품을 판매하며, 직접 담근 과실청으로 만든 음료와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

을 내는 식당이 있다.

해발 1,102m 성삼재는 삼한시대에 성이 다른 세 장군이 지켜낸 고개라는 뜻을 지녔다.

주차장과 휴게소, 전망대가 조성돼 있고, 등산용품 판매점과 커피 전문점도 자리한다. 노

고단 탐방로 안내소가 있어 등산객들의 안전장비를 점검하고, 등산 시 주의사항 등 정보

를 제공한다. 성삼재 방향으로는 노고단 정상이 올려다 보이고, 아래로는 구례군의 마을

이 내려다보인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 고개까지는 최단거리 4.7km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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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Life

어느�겨울,�지리산의�일몰과�일출

노고단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국모신으로 모시고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노고단으로 불리게 되었다. 노고는 순우리말로

‘할미’라는 뜻이다. 예부터 신령한 장소로 여겨지던 이 부근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환경파괴가 속출했다. 해방 후에는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완만한 경

사도, 넓은 대지 등을 갖춘 탓에 전국스키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1960년대

벌목이 성행하며 노고단 부근의 주목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성삼재 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탐방객이 급증했다. 결국 노고단의 생태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노고단에 자

연휴식년제를 적용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2001년 8월부터 재개된 노고단 탐방은 예약제와 지정제로 운영된다. 여

름과 가을에는 1일 탐방인원을 제한하고, 안내원이 동행해 자연생태에 대한

해설을 들려준다. 그 외 기간에는 인원에 상관없이 입장할 수 있지만, 탐방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제한한다.

노고단에서는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다. 그중 일몰은 노고단대피소

에서 보면 좋다. 노고단 고개에서 해가 진 후 어둠 속을 걸어 내려오는 것은

위험하다. 일출은 노고단 고개에서 봐야 한다. 천왕봉 방향에서 해가 떠오

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 뜰 무렵 오르는 길에 미미하지만 빛이 있어 보

다 안전하다.

대피소 내 숙박은 인터넷 예약제로 진행된다. 국립공원 대피소는 일반 여

행객을 위한 숙박업소가 아니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숙소이자

등산객의 쉼터이며, 산행 중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피난처이다. 식수는 아

껴서 사용하고, 취사는 정해진 구역에서만 하며, 쓰레기는 도로 가져가야

하는 이유다. 모르는 사람들과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만큼 지켜야 할 사항들

은 반드시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노고단까지 길이 아무리 쉽다 해도 이곳이

지리산임을 잊지 말자. 겨울 산행은 난이도와 상관없이 철저한 준비가 필요

하다. 빙판길과 추위에 대비한 장비는 꼭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