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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GEUMKWA SHILCHEON2017/12/18  · 발간사 침례신학대학교 교수논문집 「복음과 실천」은 여러 단계를 거쳐 발행됩 니다. 먼저, 논문을 게재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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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GEUMKWA SHILCHEONVol. 60Autumn, 2017Edited by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SEMINARY PRESSDae Jeon, Korea

  • 발간사

    침례신학대학교 교수논문집 「복음과 실천」은 여러 단계를 거쳐 발행됩

    니다. 먼저, 논문을 게재하고자 하는 교수들이 논문집 발행 일 년 정도 전

    부터 논문의 주제, 제목 그리고 연구계획서를 「복음과 실천」 편집위원회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복음과 실천」 편집위원회는 논문의 구성과

    전개가 논리적인지, 논문의 주제가 전공 분야와 또 「복음과 실천」의 성격

    과 관련이 있는지, 침례교의 신앙과 전통에 연관성이 있는지, 주제 선정과

    내용 전개 및 결론 제시에 있어서 독창성이 있는지, 주제의 연구가 국내외

    적으로 학문적, 실천적 기여도가 있는지 등을 주의 깊게 살펴 논문 게재 여

    부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논문을 게재하고자 하는 교수들이 논문 연구계획

    서가 통과된 이후 몇 개월 동안 최선을 다하여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복음과 실천」 편집위원회는 교수들의 논문을 다시 위에서 언급한 심사항

    목들에 준하여 평가함과 아울러 논문의 표절여부를 살펴보고, 논문의 미흡

    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두세 차례에 걸쳐 다시 수정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실천」에 수록된 논문들은 단순히 각 교수들이 각자의

    전공 분야에 관해 독자적으로 연구한 것을 가감 없이 혹은 무분별하게 게재

    한 것이 아닙니다. 각 교수들의 연구가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침례교단의

    신앙적 전통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지, 학문성과 독창성과 윤리성을 갖추고

  • 있는지 등에 관해 여러 편집위원들의 공감을 거친 엄선된 논문들입니다. 그

    러므로 「복음과 실천」에 수록된 논문들은 독자들의 학문적 관심과 호기심

    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의 발전과 목회적 진전을 위해서도 이바지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점은 「복음과 실천」이 발간되는 것으로 이 논문집의

    목적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귀한 논문들을 독자들이

    직접 읽고 각 논문들을 통해 신학적으로 새로운 이해를 얻거나 질문을 던지

    게 되거나, 목회적으로 유익한 정보들과 지식들을 얻게 될 때 비로소 이 논

    문집은 존재 가치가 드러나게 된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 저는 「복음과 실천」의 독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논문집에 수록된 논문들을 읽고 난 후에 독자 여러분들의 피드

    백(feedback)을 각 논문의 필자들에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롭

    게 깨닫게 된 점도 좋고 아니면 궁금한 점들에 관한 질문들도 좋습니다. 그

    래서 이 논문집을 통해서 여러 필자들과 신학적, 목회적 대화와 소통이 진

    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복음과 실천」 논문집은 더욱 발전하

    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2017년 9월 20일

    총장직무대행 이 형 원

  • 목 차

    ▪발간사 ················································································이형원 ·········3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우택주 ·········7

    ▪모세의 리더십 -민수기 10:29-32의 신학적 해석- ··································김정봉 ······35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말씀들에 나타난 누가의 구원 신학 -누가복음 23장 34a, 43, 46절을 중심으로- ··················김광수 ······57

    ▪‘주의 기도’에 나타난 ‘죄’ 용서에 대한 이해(마 6:12) ······신인철 ······87

    ▪미국 침례교회의 반(反)지성주의 전통에 관한 연구 ···········김용국 ····111

    ▪Pilgram Marpeck의 교회예전에 대한 이해 ···················남병두 ····141

    ▪Slavoj Zizek과 John D. Caputo 사이의 기독론 논쟁 ··· 171 ·························································································윤원준 ····171

    ▪이주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교회의 실천적 방안 ·············김종걸 ····201

  • 6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해체주의 해석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Jacques Derrida를 중심으로- ·····································정승태 ····229

    ▪Glen Stassen의 성육신적 제자도 개념이 한국교회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주는 함의 ··········································································김병권 ····259

    ▪복음서의 문학적 특성을 고려한 설교실제 ··························문상기 ····289

    ▪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이 아나뱁티스트 평신도 선교에 끼친 영향 ·························································································안희열 ····317

    ▪교회개척자에 관한 연구 -목회적 소명과 비전을 중심으로- ·····································허 준 ····347

    ▪본문이 이끄는 설교와 청중 분석 -한국 침례교 설교자를 위한 6단계 청중 분석 방법- ········임도균 ····369

    ▪청소년의 종교 활동과 사이버 언어폭력 관계연구 ··············노은석 ····403

    ▪침례교 은퇴목회자의 생활경험에 관한 질적 사례연구 ········권지성 ····433

    ▪윌리엄 개즈비(1773-1844)의 「공예배를 위한 선별된 찬송」 연구 ·························································································강만희 ····465

  •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우 택 주

    [email protected]

    Ⅰ. 들어가는 말

    이 연구는 신명기역사서의1) 후반부에 등장하는 열왕기하 18-20장에

    기록된 유다 왕 히스기야에 관한 기사가 지니는 정경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열왕기서 전체는 크게 통일왕국(왕상 1-11장), 북 왕국 이

    1) 성서학자들이 신명기역사서라고 부르는 성서는 히브리 성서의 예언서 중 전기

    예언서를 일컫는다. 전기예언서는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로 이

    루어진 네 개의 두루마리를 가리킨다. 그리스 번역인 칠십인역(LXX)은 사무

    엘서와 열왕기를 번역할 때 각각 상하권으로 분류하여 이를 1-4 왕국기

    (1-4Reigns or 1-4Kingdoms)로 명명하였다. 주후 2세기 이후 기독교는

    칠십인역의 배열을 따라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로 분류되어

    있는 전기예언서(Former Prophets)를 역사서(historical books)라는 장

    르로 이해하면서 읽고 있다. 이 글들의 내용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군

    주시대(왕정사회)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 Erich Zenger, 「구약성경개론」,

    이종한 역 (왜관: 분도출판사, 2012), 418.

  • 8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스라엘(왕상 12-왕하 17장), 남 왕국 유다(왕하 18-25장)로 구성되어

    있다.2) 열왕기상 1-11장에서는 솔로몬과 성전건축을, 열왕기상 12장부

    터 열왕기하 17장까지는 오므리 왕조의 아합의 실정과 예후의 쿠데타를,

    그리고 열왕기하 18-25장에서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을 각각 중점적

    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중점적이라는 말의 뜻은 상대적으로 기록 분량

    이 많다는 뜻이다. 기록 분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해당 왕의 시절에

    발생한 사건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역사가가3) 다른 왕들의 기록과 달리 무

    엇인가를 더욱 강조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기록 분량이 짧으면 통치업적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저자가 별다른 의미 부

    여를 하지 않은 것이며 그만큼 축소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열왕기상 16장 15-28절에 13개절로 기록된 오므리 왕에 관한 기록이다.

    그의 이름은 앗수르 제국의 비문들에 새겨질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4)

    그만큼 국제적 영향력과 위상이 컸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에 관한 신명기역

    사서의 기록이 겨우 13개절에 그친 것은 그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물론 이와 달리 그의 아들 아합과 손자 요람의 통치 기간에 벌어진 일에 관

    해서는 매우 길고 소상하게 전한다. 비슷한 현상은 남 유다 왕들의 기록에

    2) Brevard S. 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London: SCM Press, 1979), 288; Ziony Zevit, “1Kings,” The

    Jewish Study Bible, eds. Adele Berlin and Marc Brettler, 2nd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653.

    3) 이 연구는 ‘역사가’(아래에서 ‘저자’)란 단수 표현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신명기

    역사의 최종본문을 완성한 저자들을 총칭하는 대표명사로 사용한다.

    4) 참고. J. Maxwell Miller and John J. Hayes, A History of Ancient

    Israel and Judah, 2nd ed.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6), 300-7; Iain Provan, V. Philips Long, and Tremper

    Lonman III,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3),

    529-39. 주전 9세기 중반 앗수르 살만에셀의 서방원정(845년 어간 세 차례)

    을 기록하고 있는 블렉 오벨리스크가 오므리 왕조를 전복시킨 예후를 “오므리의

    아들”로 기록하거나, 훗날 주전 8세기 후반의 티글랏필레셀 3세와 사르곤 2세

    가 북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땅”으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다.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9

    서도 찾아볼 수 있다. 히스기야를 계승한 므낫세의 경우가 그렇다. 므낫세

    는 55년을 통치하였으나(왕하 21:1) 그에 관한 열왕기서의 기록은 18절

    에 그치고 있다. 히스기야의 통치기록은 종교개혁(왕하 18:4-6), 앗수르

    배신(왕하 18:7), 블레셋의 가사 점령(왕하 18:8), 산헤립의 침공과 퇴

    각(왕하 18:13-19:37), 히스기야의 질병과 치유(왕하 20:1-11), 바벨

    론 사신의 방문과 이사야의 신탁(왕하 20:12-19)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체 기사는 95절이다. 신명기역사서의 주인공으로 이해되는 요시야 왕에 관

    한 기록이 50절인 것과 비교해 보면 히스기야에 대한 기록은 이보다 분량

    이 두 배 정도 많다.5) 그러므로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신 12-26

    장)에 비추어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 왕보다 히스기야 왕의 기록내용이

    많은 것은 역사가가 히스기야의 경우를 요시아보다 무엇인가 더욱 강조하

    려는 장소로 삼았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야훼가 이스라엘 여러 지파 가

    운데서 선택한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한 장소(신 12:5, 11, 14, 18, 21;

    14:24, 25; 16:6, 11, 15; 17:10)에서 야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일 외에 여타의 장소에서 다른 신들에게 바치는 종교적 행위를 모두 불법으

    로 간주하고 폐지하는 조치로 유명한, 역사상 전무후무한 요시야의 개혁보

    다 더욱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신명기역사가/저자에게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다.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역사비평이든 문학비평

    이든 본문의 의미파악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최종 본문이 저자의 수중

    에 있는 정보를 어떤 식으로 배치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일이다. 자

    료 배치가 저자의 강조점을 알려주는 단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료배치

    는 본문의 문학구조 분석을 통해 확인된다. 그런데 고대의 저자들은 고대

    5) 신명기역사서와 요시야 왕의 관계에 대해, 참조. Steven L. McKenzie,

    “Deuteronomistic History,” Anchor Bible Dictionary, vol. 2 (New

    York: Doubleday, 1992), 160-8; “Deuteronomistic History,” The

    New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2 (Nashville:

    Abingdon Press, 2007), 106-8.

  • 10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사회의 글쓰기 관행에 많든 적든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

    의 글쓰기는 경우마다 사상의 차이는 있고 항상 자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지라도 어느 정도 유사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신명기부터 시작해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와 같이 다섯 개의 두루마리라는 긴 글을

    완성한 신명기역사서의 경우는 시종일관 유사한 어휘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곳곳에서 유사한 방식과 의도를 지닌 정보를 찾아보는 것

    도 유용하다. 따라서 저자의 자료배치에 담겨 있는 의도는 유사한 방식의

    다른 글쓰기 사례에 비추어 추정 가능하다.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또 다른 중요한 단서는 저자가 제공하는 정보와

    배치가 객관적인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지 않는 경우이다. 우리의 연구주제

    인 왕들의 통치기록을 전하는 열왕기는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를 순서에 따라 제시하는 연대기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성서는

    현대적 의미의 역사 개념이나 역사편찬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은 탓에 사건

    기록이 연대기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하지가 않으므로 그의 기록은 다만 신

    학적인 의미를 담은 글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일반적인 견

    해이다.6) 히스기야 왕에 관한 열왕기 본문이 바로 이런 사례 중에서 대표

    적이라는 사실은 오랫동안 잘 알려져 왔다. 이 연구는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에 발생한 사건들을 열왕기하의 본문과 이사야 36-39장, 역대하

    29-32장 등을 통해 재구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다만 어느 대목에서 연

    대기적 정확성이 흐려지는지는 기술하려고 한다. 본문의 배열이 저자의 의

    도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구는 먼저 히스기야

    의 통치기록에서 파악한 역사적 불일치 현상을 제시할 것이다. 그 다음에

    6) Thomas Römer, “1Kings,”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with the Apocrypha, 4th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486-7. 연대기적 불일치나 불

    확실 혹은 객관적 증거 결여로 인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제는 구

    약학자들의 치열한 논쟁의 장이 되고 있다. 참고. 우택주, “주전 10세기 통일

    왕국 시대의 역사성 논쟁,” 「복음과 실천」 54집 (2013): 15-42를 보라.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11

    최종 본문의 구조분석을 통해 저자의 신학적 의도를 해석할 것이다. 이 때

    고대의 글쓰기 관행에 대한 통찰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활용할 것이다.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정경적 해석(canonical interpretation)’이

    란 용어를 설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경’과 관련된 이 용어는 차일즈

    (Brevard S. Childs)가 처음 제안한 정경적 접근 방식(a canonical

    approach)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의 방법론은 전통적인 역사비평이 본

    문의 문서 층을 나누는 데 집중하는 과정에서 성서의 통전성을 해치고 의미

    있는 해석적 결과를 신앙공동체에게 제공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아울러 그

    대안으로 제시된 주석방법이다. 그의 방법론은 ‘구약성서의 정경적 해석

    (construal)을 목적으로 정경적 맥락(canonical context)을 고려하여

    정경적 형태(canonical shape)를 해석하는 작업’이라고 압축할 수 있

    다.7) 하지만 이 방법은 정경의 정의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서 구약성서를 해석할 때 히브리어로 된 마소라 본문, 그리스어 번역인 칠

    십인역, 현대 영어성경 중 어느 것을 선택하라는 말인지에 혼동과 논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본문분석방식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약점을 갖고 있

    다. 열왕기서 해석을 정경적으로 해석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편집비평적

    관점을 피하고 정경적 맥락이 되는 오경이란 규범적 문서가 담고 있는 사상

    에 비추어 본문을 해석하라고 소개한다.8) 그런데 열왕기가 작성되어 가는

    과정에 오경이 문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비평적 성서학계가 수긍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차일즈의 방식을 따라 수행하는 정경적 해석은 쉽

    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해석의 적절성 여부조차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와 달리 최종본문에 집중하되 역사비평적 관점을 소홀히 하지 않는 방

    7) B. S. 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72-83; Old Testament Theology in a Canonical Context (London:

    SCM Press, 1985), 6-15. 이 문장은 차일즈의 방법론을 연구자가 한 문장

    으로 요약한 것이다.

    8) B. S. 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300-1.

  • 12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법이 있다. 그것은 제임스 샌더스(James A. Sanders)가 ‘정경비평’이라

    고 주창한 방법이다.9) 이것은 미국의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크니림

    (Rolf Knierim)과 스위니(Marvin A. Sweeney)와 같은 성서학자들이

    주창하고 실행하는 방법으로서10) 그의 주장에 근거하여 구축된 비평방식을

    ‘구약성서문학양식’(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이라는 명칭의 주석 시리즈로 발행해오고 있다. 이 주석방법은 우리나라에

    서 여러 학자들이 구조비평(structure criticism) 혹은 구조분석

    (structure analysis)이란 명칭으로 풀이해서 사용하고 있는데11) 연구

    자는 이것을 작문비평(composition criticism)이라고 부른다. 독일의

    렌토르프(Rolf Rendtorff)도 이와 동일한 입장을 밝히고 구약신학을 기

    술한 적이 있다.12) 그는 편집비평으로 드러난 개별본문보다도 최종형태의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해석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종본

    문을 소중히 여기는 해석이라는 취지에서 “정경적”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 연구 제목이 표현한 ‘정경적 해석’이란 용어는 차일즈보다는 후자의 개념

    에 더 가깝다. 우리의 ‘정경적 해석’은 본문의 형성과정을 무시하지 않으면

    서도 최종본문의 형태 혹은 구조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9) James A. Sanders, Canon and Community: A Guide to Canonical

    Criticism (Philadelphia: Fortress, 1984); From Sacred Story to

    Sacred Text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10) Rolf Knierim, The Task of Old Testament Theology: Substance,

    Method, and Cases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57-71; Marvin A. Sweeney, I and II Kings: A

    Comment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7);

    Burke O. Long, 2Kings, 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10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1).

    11) 대표적인 경우가 왕대일, 「구약신학」, 개정판 (서울: 감신대성서학연구소,

    2010)이다.

    12) Rolf Rendtorff, 「구약정경신학」, 하경택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09),

    543-50.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13

    Ⅱ. 열왕기하 18-20장의 연대기적 문제들

    열왕기하 18-20장의 히스기야(727-699 BCE)의 통치기록은 오랫동

    안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지되어 왔다.13) 가장 주목을

    받은 사안은 앗수르의 산헤립(704-681 BCE)이 유다를 원정한 역사적 사

    실이 한 번인가 두 번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열왕기

    하 18장 17절부터 19장 37절까지의 자료 분석이다. 여기에 열왕기하 19

    장 9절에 등장하는 구스 왕 디르하가가 이 시점의 산헤립과 조우했는지도

    문제가 된다. 또 산헤립의 침공기사는 열왕기하 20장 12-15절에 바벨론

    의 왕 므로닥발라단이 보낸 외교사절단과 히스기야가 만난 때가 언제인가

    하는 질문을 일으킨다. 열왕기하 20장 12절은 이 사건을 다만 “그 때에”라

    고 표기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이 마치 산헤립의 침공시기와 맞물려서 벌어

    진 것처럼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정벌하러 온 시

    기를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이라고 기록한 보도는 역사적으로 얼마나 정확

    한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14) 열왕기하서에 묘사된 히스기야의 통치

    기록에 관한 한, 산헤립의 유다 침공 횟수, 구스 왕 디르하가, 그리고 바벨

    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보낸 사신의 유다 방문에 관한 역사성은 모두 신 앗

    수르제국, 이집트 통치기록, 그리고 신 바벨론 제국과 같은 고대 근동의 제

    국들이 남긴 역사기록의 도움을 받아 신명기역사가의 기록과 함께 검토해

    13) 이에 관한 연구 성과는 이스라엘 역사 방법론과 관련한 유럽 성서학자들의 세

    미나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단행본으로 엮어 출판된 최근의 책에 잘 나타나

    있다. Lester L. Grabbe, ed., ‘Like a Bird in a Cage’ The Invasion

    of Sennacherib in 701 BCE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3)을 보라. 한편 괄호로 표기한 히스기야와 산헤립의 통치기간

    은 Miller and Hayes의 A History of Ancient Israel and Judah를

    따른 것이다.

    14) Grabbe, “Introduction,” in The Invasion of Sennacherib, 20-36.

    여기서 그는 이상의 질문들을 놓고 19세기와 20세기의 1970년대까지 그리

    고 이후 30년간에 이루어진 연구 성과들을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 14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보아야 한다. 여기서는 이 이슈들을 해결하기보다는 연대기적 문제를 인지

    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1. 산헤립의 유다 침공 횟수

    열왕기하 18-19장에 기록된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 기사는 여러

    모로 의아한 점을 보여준다. 성서에 묘사된 앗수르 침공은 대략 다음과 전

    개된다. 신명기역사가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처음부터 앗수르 왕을 배반하

    고 섬기지 않았다(왕하 18:7). 그 결과 “히스기야 왕 제 십사 년에” 앗수

    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여 여러 성읍을 점령했다(왕하 18:13).

    이에 히스기야가 라기스에 있는 앗수르 왕에게 (사자를 보내) 사죄했고 앗

    수르 왕은 (사자를 보내) 히스기야에게 엄청난 양의 벌금을 요구했으며 히

    스기야는 그대로 이행했다(왕하 18:14-16). 그런데 사죄와 벌금을 받은

    앗수르 왕은 예상된 퇴각과 달리 세 명의 사신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히스기

    야에게 항복을 요구한다(왕하 18:17-35). 이미 항복이나 다름없는 앞서

    의 조치가 아무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는 히스기

    야가 경건한 자세로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이사야를 통해 전달된 구원신탁

    을 기록한다(왕하 19:1-7). 여하튼 앗수르의 사신 랍사게는 라기스로 되

    돌아간다. 그때 앗수르 왕은 라기스를 떠나 립나에서 싸우는 중이었는데 게

    다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나타나 앗수르와 전투를 자청하였다(19:9a).15)

    산헤립은 어찌된 영문인지 히스기야에게 재차(왕하 19:9b의 마소라 본

    문에는 “다시”란 단어가 없다) 사자를 보내 항복을 요구한다. 이에 히스기

    15) 19절의 BHS는 19a와 19b 사이에 약간의 공백을 둔다. 19b절는 특정한

    주어가 없이 바브 접속사와 연결된 미완료 동사(주어는 3인칭 남성단수)로

    시작한다. 그래서 주어는 산헤립(본문에는 3인칭남성단수 주어를 가진 동사

    로만 표현되어 있음)으로 읽는다. 19b절의 첫 번째 동사, “그리고 그가 돌아

    갔다”는 히브리어 필사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이사야서의 해당구절은

    “그리고 그가 들었다”는 동사를 사용한다.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15

    야는 항복하지 않고 야훼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이사야는 이에 대한 응답으

    로 주신 구원신탁을 전달한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는 “이 밤에”(왕하

    19:35) 야훼의 사자에게 십팔만 오천 명이 죽는다.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

    아갔으며 신하들에게 시해를 당한다(왕하 19:36-37).16)

    학자들은 본문의 매끄럽지 못한 내용을 앗수르 연대기와 이집트 연대기

    의 도움을 받아 산헤립의 유다 침공이 한 번 일어났다 혹은 두 번 일어났다

    는 주장을 펼쳐왔다. 2회 침공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근거는 열왕기하

    18:4-6과 19:9b이다. 열왕기하 18:4-6에 따르면 주전 701년에 일어난

    산헤립의 1차 침공으로 히스기야는 항복했고 벌금을 냈으며 이로써 산헤립

    의 원정 목적은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앗수르 군대

    는 퇴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해석은 산헤립의 비문이 전하는 내용

    과도 대동소이하다. 이어서 19:9a(“구스 왕 디르하가가 앗수르와 싸우고

    자 나왔다”)에서 언급한 구스 왕 디르하가의 존재는 주전 690년/698년에

    산헤립이 유다를 두 번째 침공했을 때에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앗수르가

    이집트 군대와 싸운 기록은 주전 690년/689년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

    다.17) 이 2차 침공설은 디르하가(Tirhaga)에 대한 기록이 연대착오가

    16) 내용의 비일관성과 반복양상을 보여주는 본문을 읽은 성서학자들은 열왕기하

    18:13-19:37에 상이한 자료가 혼재한 탓이라고 해석한다. 1886년 슈타데

    (Berhard Stade)는 18:14-16(히스기야의 사죄와 벌금)을 A자료, 18:

    13, 18:17-19:37(산헤립이 보낸 사자의 2회에 걸친 항복요구 연설과 앗

    수르 군대 퇴각 그리고 산헤립의 죽음)을 B자료라고 분류한다(“Anmerkungen

    zu 2 Kö. 15-21,”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

    schatf 6 [1886], 156-89). B자료는 다시 차일즈(Brevard S. Childs)

    에 의해 제시된 B1(18:17-19:9a, 36-37)과 B2(19:9b-35)로 나누어

    진다는 이론(Isaiah and the Assyrian Crisis [London: SCM Press,

    1967], 69-103)을 받아들이고 있다. B1과 B2는 앗수르 사자의 모욕적

    연설과 히스기야의 기도 그리고 이사야의 구원신탁과 결과를 반복적으로 서

    술한다. 한편, 차일즈는 B1이 주전 7세기 중반, B2는 신 바벨론 제국의 후

    반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7) 참고. Miller and Hayes, A History of Ancient Israel and Judah,

  • 16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아니라는 가정 하에 이루어진다.18) 그에 대한 논의는 아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학자들은 구스 왕 디르하가의 언급이 연대착오라고 판단

    하며 대체로 히스기야 통치와 산헤립의 침공을 주전 701년에 단 한 번 일

    어난 사건으로 본다.19)

    2. 구스 왕 디르하가

    열왕기하 19:9의 디르하가는 산헤립의 유다 침공과 관련하여 원정 횟수

    를 결정하는 데 역사적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이디오피아 출신으로서 이집

    트 제25왕조의 마지막 왕이며 690년부터 664년까지 통치한 왕으로 알려

    진다.20) 1950년대의 이집트 문헌학자들은 디르하가가 701년에 겨우 열

    418. 산헤립의 주전 701년 서방원정 기록(Talor Prism[테일러 프리즘]이

    라고도 부른다)을 보라. 또한, James B. Pritchard, ed., 「고대 근동문학

    선집」, 강승일 외 5인 역 (서울: CLC, 2016), 533-4를 보라.

    18) John Bright, 「이스라엘 역사」, 엄성옥 역, 4th ed. (서울: 은성출판사,

    2002), 433, 452-66.

    19) 참고. Siegfried H. Horn, “분열왕정,” 「고대 이스라엘: 아브라함부터 로

    마인의 성전파괴까지」, Hershel Shanks, ed., 김유기 역 (서울: 한국신

    학연구소, 2005), 258-69; Miller and Hayes, A History of Ancient

    Israel and Judah, 410-21; Gösta W. Ahlström, The History of

    Ancient Palestin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4), 707-17;

    Megan Bishop Moore and Brad E. Kelle, Biblical History and

    Israel’s Past: The Changing Study of the Bible and History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1), 317-

    8; Mario Liverani, Israel’s History and The History of Israel

    (London: Equinox, 2003), 147-8; 김유기, “산헤립의 원정과 유다: 연

    대기의 관점,” 「구약논단」 44집 (2012): 138.

    20) Adele Berlin and Marc Brettler, eds., The Jewish Study Bible

    with TANAK Translation, 2nd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747.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17

    살 정도였을 것이므로 전쟁참가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으나21) 1980년

    대에 이르러서는 그가 스무 살 정도였으며 새 왕조의 왕자로서 원정 군대를

    지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으로 바뀐다.22) 하지만 1990년대는 구스

    출신인 그가 이집트 왕이 된 때는 690년이며 아무리 빨라도 700년 이전

    은 아니라는 견해까지 개진된 상황이다.23) 그러므로 산헤립이 주전 701

    년 유다를 침공한 전쟁 중에 구스 왕 디르하가와 만났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24) 그래서 본문의 디르하가는 분명히 연대착오이거나 디르하가가 이

    집트 왕이 된 이후에 벌어진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감안한다면 모든 증거는 주전 701년 이후에 산헤립이 두 번째로

    유다를 침공했을 가능성에 대한 개연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그리고 디

    21) Grabbe, The Invasion of Sennacherib, 25 and n. 113. J. M. A.

    Janssen, “Que sait-on actuellement du Pharaon Tarhaqa?”

    Biblica 34 (1953): 23-43. 카와 비문(the Kawa inscription)은 타

    르하가가 690년에 즉위할 때 스무 살이었음을 알려준다.

    22) Ibid., 31 and n. 144. 참고. Kenneth A. Kitchen, “Egypt, the

    Levant and Assyria in 701 BC,” in Fontes atque Pontes: Eine

    Festgabe für Helmut Brunner, Manfred Görg, ed. (Wiesbaden:

    Harrassowitz, 1983), 243-53; Anson F. Rainey, “Tarhaqa and

    Syntax,” Tel Aviv 3 (1976): 38-41; F. Yurco, “Sennacherib’s

    Third Campaign and the Coregency of Shabaka and Shebitku,”

    Serapis 6 (1980): 221-40; 정중호, 「열왕기하」 (서울: 대한기독교서

    회, 1995), 348-9; Cogan and Tadmor, II Kings, 234.

    23) Ibid., 32 and nn. 147, 148, 149, 150. Donald B. Redford,

    “Tarhaqa in Western Asia and Libya,” Eretz-Israel 24 (1993):

    188*-91*; William H. Shea, “The New Tarhaqa Text and

    Sennacherib’s Second Palestinian Campaign,”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 35 (1997): 181-7; Mordechai Cogan, “Senna-

    cherib’s Siege of Jerusalem,”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7/1

    (January/February 2001): 40-5, 69.

    24) Ibid. 참고. Thomas Römer, “2Kings,”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with the Apocrypha: An Ecumenical Study Bible, 4th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562.

  • 18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르하가는 본문 구성에 있어서 역사적 정보가 아닌 다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자는 어쩌면 앗수르 왕의 사신을 두 번씩이나 파송한 일

    을 순탄하게 보이도록 하려고 당시 이집트와 앗수르의 전쟁 사실을 활용했

    을 수도 있다.

    3.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의 외교사절

    열왕기하 20장 12-15절은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의 사신이 병든 히스

    기야를 방문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 본문의 서두는 “이 때에”로 시작

    하고 있으므로 이하의 사건이 주전 701년 산헤립의 유다 침공이 일어난

    시기에 벌어진 것으로 읽게 만든다. 그렇다면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의 사

    절단은 과연 주전 701년에 유다를 방문했을까?

    학자들은 산헤립의 유다 침공 시기와 관련하여 본문의 바벨론 왕 므로닥

    발라단에 대한 언급을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하나는 산

    헤립이 바벨론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후에 유다를 침공했다는 것이

    고25) 다른 하나는 바벨론에서 일어난 반란 때문에 산헤립이 유다 침공을

    완결 짓지 않고 서둘러 회군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므라닥발라단

    의 사신이 히스기야를 방문한 사건은 산헤립의 침공 이전에 벌어졌을 가능

    성이 높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앗수르 왕이 반란 주모자인 히스기야를

    다루는 방식은 과거 주전 722년에 사마리아를 멸망시켰을 때와 다르게 도

    성 예루살렘을 공격하지도 않고 또 히스기야 왕을 폐위시키지도 않는 이유

    를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그것은 산헤립이 제국 동부의 바벨론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 평정이 더욱 시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부에서는 므로닥

    발라단, 서부에서는 히스기야가 동시에 앗수르를 협공하는 양상을 그려보

    면 된다.26) 그래서 산헤립은 유다침공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신속히 회군

    25) Ahlström, The History of Ancient Palestine, 707; Miller and

    Hayes, A History of Ancient Israel and Judah, 410.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19

    해서 제국 동부의 바벨론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

    만, 므로닥발라단은 주전 721-710년과 703년에 바벨론을 다스린 왕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그가 반앗수르 동맹이나 연대를 결성하기 위해서 병든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낸 때는 주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보다 먼저 일어

    난 사건이어야 순서가 맞는다.27) 그러므로 바벨론 사신의 방문 기록은 히

    스기야의 통치와 관련하여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며 예루살렘의 기적적 보

    존이라는 주제와는 동떨어진 목적을 지닌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본문은 이

    사건이 바벨론 포로의 빌미를 제공해주었다는 이사야의 신탁(왕하 20:

    16-19)을 보도한다.

    4. “히스기야 제십사년”

    히스기야의 통치연수는 연대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

    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 제 삼 년에 아버지 아하스를 이어 유다 왕으로 즉위

    하였다(왕하 18:1). 이스라엘 왕 호세아 제 칠 년이고 동시에 히스기야

    제 사 년에는 앗수르의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삼년 후

    에 함락시켰다(왕하 18:9-10). 따라서 사마리아가 패망한 주전 722년

    /721년은 바로 히스기야 제 칠 년인 셈이 된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727

    년에 즉위한 것이고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해인 “히스기야 제 십사 년”

    (왕하 18:13)은 722년부터 칠년 후인 715년이 된다. 이것은 산헤립의

    침공기사를 주전 701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앗수르 연대기 테일러 프리즘

    26) Marvin Sweeny, I & II Kings: A Comment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7), 413.

    27) Ulrich F. Berges, The Book of Isaiah: Its Composition and

    Final Form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12), 249.

    베르게스는 이사야서의 순서를 따라 실제 사건은 히스기야의 질병과 치유(사

    38장)으로 므로닥발라단의 사신 방문한(사 39장) 다음에 산헤립이 침공(사

    36-37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 20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the Taylor Prism)의 기록과 큰 시간차이를 발생시킨다.28)

    이러한 불일치에 대한 가장 단순한 해법은 성서본문에 나타난 연도표기

    를 서기관의 오류라고 가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십사 년”을 “이십

    사 년”으로 수정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하면 히스기야의 통치햇수가 총 29

    년이므로 병들었다가 15년의 수명 연장을 받은 해가 바로 산헤립이 침공한

    해라고 할 수 있으므로 29년에서 15년을 감하여 14년이란 연도수를 얻어

    기록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29)

    이와 달리 히스기야 ‘제 십사 년’을 715년으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경

    우도 있다.30) 그래서 이때의 침공은 사르곤 2세가 주도했고 산헤립은 왕

    자로서 군대를 지휘했다고 가정하여 이것이 산헤립의 일차 침공으로 보고

    이차 침공은 701년에 일어났다고 본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2회 침공은 개연성이 아주 낮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히스기야의 통치를 기록한 열왕기하서 기록이 안고 있

    는 연대기적 문제 네 가지를 살펴보았다. 히스기야가 조공을 바친 내용을

    담은 열왕기하 18장 14-16절과 산헤립의 사신이 남긴 항복촉구 메시지에

    관한 기록을 담은 열왕기하 18장 17절부터 19장 37절까지는 산헤립의 유

    다 침공이 한 번인지 두 번인지를 혼동하게 만든다. 또 이집트 25왕조의

    28) James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according

    to the Old Testament, 3rd. e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287.

    29) James A. Montgomery and Henry S. Gehma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f the Book of Kings (Edinburgh: T.

    & T. Clark, 1951), 483; John Gray, I and II King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0), 673; H. Tadmore and M. Cogan, II

    King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ew York: doubleday & Co., 1988), 262.

    30) Bob Becking, The Fall of Samaria: An Historical and Archaeo-

    logical Study (Leiden: E. J. Brill, 1992), 51-6. 참고. 정중호, 「열

    왕기하」, 340.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21

    왕이었던 디르하가를 언급하면서 산헤립의 앗수르 군대가 싸운 사건(왕하

    19:9a)이나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보낸 사신이 병든 히스기야 왕을

    방문한 사건(왕하 20:12-15), 또 “히스기야 제 십사 년”과 같은 연대표기

    등은 서기관의 연대착오였거나 사건을 혼동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산헤립의 유다 침공이 앗수르의 비문기록에 증거로 남아 있

    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열왕기하 18-20장의 히스기야의 통치기록은

    현대인의 역사기록개념과 분명하게 다름을 보여준다. 우리는 성서기록의

    이런 모습을 단순히 과거의 착오나 오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

    사건을 보도하는 성서의 저자는 이 사건의 소상한 전모를 전달하는데 관심

    이 없었을 수 있다. 저자는 지금의 최종 글 모양을 통해 독자—과거와 현재

    —에게 전하고 싶었던 보다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와 진리가 있었음에 틀림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다.

    Ⅲ. 열왕기하 18-20장의 구조와 정경적 해석

    1. 문학구조

    본문의 최종형태는 산헤립의 유다 침공 사건과 관련하여 거룩한 영감을

    받은 저자의 의도를 담고 있다. 이 의도는 본문의 글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제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간에 벌어진 사건들 가운데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신학적 메시지와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본문

    의 문학구조를 통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차례이다.

    먼저, 본문 전체의 문학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31)

    31) 참고. Long, 2Kings, 190-46.

  • 22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A. 히스기야 통치 요약 18:1-8, 20:20-21

    통치기간과 가계 18:1-2

    통치에 대한 긍정적 평가 18:3

    긍정적 평가의 근거: 개혁, 율법에 대한 충성, 형통 18:4-6

    앗수르 왕을 배신 18:7

    배신의 근거: 블레셋 가자 점령 18:8

    히스기야 업적 20:20-21

    B. 사마리아 멸망 18:9-12

    앗수르 왕 살만에셀의 공격과 사마리아의 함락 18:9-10

    사마리아 주민의 유배 18:11

    사마리아가 멸망한 신학적 이유 18:12

    C.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 산헤립의 침공과 히스기야의 조공 18:13-16

    산헤립의 침공 18:13

    히스기야의 사죄와 퇴각 요청, 그리고 산헤립의 벌금 요구 18:14

    히스기야의 벌금 18:15-16

    D. 예루살렘 포위와 구원 18:17-19:37

    앗수르의 예루살렘 포위 18:17

    앗수르 사신 셋과 유다 관료 셋의 만남 18:18

    랍사게의 첫 번째 연설 18:19-25

    유다 관료들의 요청과 랍사게의 대답 18:26-27

    랍사게의 두 번째 연설 18:28-35

    유다 관료들이 히스기야에게 보고 18:36-37

    히스기야의 경건한 대응과 이사야의 구원신탁 19:1-7

    두 번째로 파송된 앗수르 사신 19:8-9

    앗수르 사신의 세 번째 메시지 19:10-13

    히스기야의 기도 19:14-19

    야훼의 응답 19:20-34

    야훼의 기적적 개입 19:35

    산헤립의 퇴각과 궁전 시해 19:36-37

    E. 히스기야의 치유 20:1-11

    F. 바벨론 사신 방문 20:12-19

    현재의 본문은 최종적으로 완성되기까지 여러 차례 작업한 흔적을 갖고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23

    있다. 그러나 그 흔적들은 본문이 전개하는 구조와 그것의 의미 형성에 기

    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A(통치 요약, 18:1-8, 20:20-21), B(사마리아 멸망, 18:

    9-12), C(앗수르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과 히스기야의 조공, 18:13-

    16), D(예루살렘의 포위와 구원, 18:17-19:37), E(히스기야의 치유,

    20:1-11), F(바벨론 사신 방문, 20:12-19)의 여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단락 중에 가장 긴 것은 D(예루살렘 포위와 구원)이다. 그것은

    저자가 D 단락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단락구조와 배열에서 D는 B(사마리아의 멸망)와 극명하게 대조

    된다. B는 북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가 멸망한 사건(왕하 17:5-6)을 다시

    기술한다. B의 18:12는 또 열왕기하 17:7-18의 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고 있다. B는 남 유다 왕 히스기야 시절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사

    마리아가 멸망한 역사적 사건과 대조시키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후의 글

    은 우선적으로 바로 이 목적에 기여한다. 사마리아는 멸망했다. “여호와 하

    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않았기”(왕하 18:12)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예루살렘은 살

    아남았다. 결정적 이유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께 연합하며 그를 떠나

    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기”(왕하 18:5-6)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하려는 몸통은 C-D-E에 있다. 본문 읽기의 문제는 C와 D

    사이에 발생한다. C는 산헤립이 침공한 결과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신을

    보내 앗수르에게 반역을 사죄하고 산헤립이 제시한 벌금을 냈다고 보도한

    다. 그러나 D는 이런 C의 내용을 무시하고 예루살렘를 포위한다. D 단락

    이 연대기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앞에서 충분히 지적했다. 롱

    (Burke O. Long)은 C와 D의 흐름이 보여주는 비일관성을 고대 저자의

    “병렬 작성 문체”(a paratactic style of composition)이라고 설명한

    다.32) 아울러 신명기역사가와 같은 고대저자들이 사건의 시간적 순서에

  • 24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관심을 갖기보다는 주제나 기록동기를 유비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덧붙

    인다. 이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게 보인다. 이런 관점은 D가 산헤립의

    침공과 히스기야의 구원 보도를 반복하는 구조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에 관한 의구심을 전부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이

    관점은 산헤립이 히스기야의 조공을 받고도 왜 다시 예루살렘으로 군대를

    보냈으며 또 장황하리만치 긴 연설을 전하는 이유 그리고 히스기야 측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으로 회군한 이유를 설

    명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D에서 사신을 통해 두 명의 왕이 의사를 교환한 과정과 결과가

    C로 마무리되었다고 보면 어떨까? 사실 C는 열왕기본문과 평행한 이사야

    서와 역대기서에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단락이다. 하지만 C의 줄거리는 산

    헤립의 침공성과를 나열하는 앗수르의 테일러 프리즘(혹은 시카고 프리즘)

    이 보도하는 내용과는 대략적으로 일치한다.33) 따라서 C-D 단락의 관계

    에 대해서는 C가 사태의 최종 결과를 압축적으로 보도하는 한편 D는 실제

    로 벌어진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D는 C를 보충

    (a gap-filling)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히스기야의 질병과 치유을 보도하는 E 단락

    (20:1-11)에서 또 다시 접할 수 있다. 히스기야는 야훼께 기도를 드린 후

    이사야를 통해 십오 년의 수명 연장과 더불어 삼일 후에 야훼의 성전에 올

    라갈 것이라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듣는다(20:5-6). 그리고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상처에 무화과 반죽을 붙여주어 낫게 해 준다(20:7). 그런데

    32) Ibid., 191.

    33) 참조. James B. Pritchard, ed., 「고대 근동문학선집」, 강승일 외 5인

    역 (서울: CLC, 2016), 533-4; 김유기, “산헤립의 원정과 유다,” 141-3;

    정중호, 「열왕기하」, 340. 김유기는 테일러 프리즘과 같은 내용의 시카고 프

    리즘을 번역한다. 유사점은 에디오피아의 원군[디르하가?]과 전쟁, 유다의

    성읍들 점령, 예루살렘 포위, 조공(금 30달란트, 은 800달란트 외), 사신

    파송 등이다.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25

    히스기야는 자신이 낫고 성전에 올라갈 표적이 무엇이냐고 재차(!) 묻는다

    (20:8). 이것은 7절에서 이미 치유되었다는 보도와 조화되지 않는다. 차

    라리 이 7절의 내용이 20장 8-11절 다음에 나온다면 흐름이 매끄러워진

    다. 이 경우도 여러 가지 해설이 가능하다.34) 그러나 8-11절이 6절과 잘

    이어지므로 7절로 마무리되는 내용을 메꾸어주는(“filling a gap”) 것으로

    읽는 것이 가장 적절하게 보인다.35) 그러므로 C(18:13-16)에서 간략하

    게 개요를 말한 후 소상한 과정은 D(18:17-19:37)를 통해 설명하고 E

    단락에서는 20장 1-7절의 내용을 20장 8-11절을 통해 보강하는 것으로

    읽으면 B-C-D-E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2. 정경적 해석

    D(18:17-19:37)는 본문을 구성하는 단락들 중에서 가장 길다. 이 안

    에는 적어도 두 개의 보도(B1, B2)가 존재한다. 이 두 개의 보도는 각각

    앗수르 사신의 항복촉구 연설(18:19-25, 28-35//19:10-13), 히스기

    야의 기도(19:1-4//19:14-19), 이사야의 구원신탁(19:6-7//19:20-34)

    을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작성 시기에 관해서도 B1(18:17-19:9a, 36)

    은 주전 7세기에 유다에서, B2(19:9b-35)는 주전 6세기에 바벨론 포로

    공동체가 작성되었다고 본다.36)

    34) Gray, I & II Kings, 698. “편집상의 해설(editorial gloss)”; Cogan

    and Tadmore, II Kings, 256-7 (7절을 생략하면 이야기 흐름이 순조롭

    다); W. Brueggemann, 1 & 2 Kings, Smyth & Helwys Bible

    Commentary (Macon: Smyth & Helwys Publishing, 2000),

    523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 Sweeney, I & II Kings, 421 (아무런 언

    급이 없이 지나친다).

    35) Long, 2Kings, 236-7. 그는 8-11절을 후대에 이루어진 1-7절의 간격 메

    우기로 읽는다.

    36) Na’aman, “Updating the Message: Hezekiah’s Second Prophetic

    Story (2 Kings 19:9b-35) and the Community of Babylonian

  • 26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나아만(Nadav Na’aman)은 앗수르 사신의 연설 가운데 등장하는 패

    망 당한 민족 목록은 B1(19:12-13)의 경우, 앗수르 제국 시절에 정복당

    한 목록이고 B2의 목록(18:34-3)은 바벨론 제국 시절에 정복당한 목록

    임을 밝히고 이를 근거로 B2는 B1을 개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7) B1

    과 B2 사이의 전환점에 등장하는 디르하가는 B1을 B2로 확장하는 문맥

    에 활용된 역사적 정보 같다. 두 번의 앗수르 사신파견과 연설은 히스기야

    가 그만큼 쉽게 항복하지 않고 완고하게 저항했다는 인상을 준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B1과 B2 사이에 어휘와 사상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B2의 히스기야 기도(19:15-19)는 포로기 예언서로 알려진 이사야

    40-55장의 신학적 강조점과 매우 흡사하다. 이사야 40-55장은 야훼의

    유일신 신앙관을 제시하며(사 44:6, 8; 45:5-6, 18, 21; 46:9) 바벨

    론 제국의 다른 신들은 하나같이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에 불과하다면서 조

    롱하는 노래를 전한다(40:19-20; 44:9-20; 46:1-2)는 점을 상기하면

    그 유사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사야의 구원신탁의 경우도 B1(19:6-7)은 산헤립의 회군과 사망을

    예고하는 데 비해서 B2(19:21-34)는 예루살렘과 시온의 “남은 자”(19:

    31)를 언급하면서(참고. 사 1:9)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지도 못

    하고 공격도 제대로 못한 채 회군할 것이며 이 모든 일 즉 예루살렘의 구원

    은 야훼 하나님이 자신의 명예와 다윗 왕조에 한 약속을 위해 이루실 것이

    라는 점을 부연 설명한다(19:34). 그러므로 위의 세 가지 평행항목에 대

    Deportees,” in The Invasion of Sennacherib, 213 n. 46.

    37) Ibid., 204-12. 참고. Amita Baruchi-Unna, “The Story of Hezekiah’s

    Prayer (2 Kings 19) and Jeremiah’s Polemic concerning the

    Inviolability of Jerusalem,”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39 (2015): 281-97. 나아만이 B1-B2의 개정관계를 이렇

    게 설명하는 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다만 이와 같은 개정을 위해 저자/편

    집자가 해당 내러티브의 배경설정을 위해 라기스에 머물던 산헤립이 립나로

    이동한 것(19:8)과 거기에 역사적으로 혼동을 초래한 구스 왕 디르하가 이

    야기(19:9a)를 삽입했을 가능성은 추가로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27

    한 분석을 정리하면 D 단락의 최종형태는 7세기 유다 왕실의 기록(B1)을

    6세기에 바벨론 공동체가 위해 새로운 강조점으로 부연하고 확대한 것

    (B2)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B1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대비, 앗수

    르의 권력과 임박한 위협, 히스기야의 애곡과 예언자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외적 태도묘사와 기적적 구원으로 되었는 데 비해서, B2는 사마리아-예루

    살렘 대조가 사라지고, 앗수르는 실제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군사력을 상징

    하며, 예언자는 독자적 의미를 상실하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진 사람으로

    서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한다.38)

    E(히스기야의 치유)는 예루살렘의 극적 구원을 히스기야 왕의 치유 이

    야기로 치환하여 해설한다. 이 단락은 일종의 ‘정치적 비유(political

    figure)’로 이해할 수 있다.39) 신명기역사는 왕들의 이야기이다.40) 그것

    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기술하는 역사이다. 왕은 곧 나라의 운명을 좌우

    하는 지도자이다.41) 지도자의 운명은 곧 나라의 운명이며 도성의 운명을

    38) Ibid., 213-5.

    39) 이 용어는 연구자가 고안한 것이다. 정치적인 현실과 상황을 겨냥해서 의미를

    담아 작성한 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것을 창안해서

    썼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품은 의도를 전하기 위해 이 사안을 의도

    적으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연구자와 달리, 롱(Long)은 “예루살렘의 구원과

    히스기야의 치유 사이의 유비”(analogy)가 있다고 해석한다(2Kings, 240).

    참고. ‘정치적 풍자’에 관한 연구를 위해, Ze’ev Weisman, Political

    Satire in the Bible (Atlanta: Scholars Press, 1998)을 보라.

    40) 그런 의미에서 ‘정치문서’(political literature)이며 ‘국가문서’(state

    literature)이다.

    41) 참고. David Janzen, “The Sins of Josiah and Hezekiah: A

    Synchronic Reading of the Final Chapters of King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37 (2013): 359. “사사기와 사

    무엘서처럼 열왕기의 최종 형태는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Gina

    Hens-Piazza, 1-2Kings (Nashville: Abigndon Press, 2007), 357.

    “[히스기야]를 길게 묘사하는 것은 그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북

    왕국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끌려가서 이제 모든 희망은 유다 왕들이 걸

    어간 자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28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판가름 짓는다.42) 거꾸로 도성이 망한 것은 왕이 망한 것이고 또 나라가

    망한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의 패망은 북 왕국의 패망을 뜻한

    다. 반대로 예루살렘이 위기 중에도 보존되었다면 그것은 나라가 보존되었

    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왕에게 일어난 일은 사안이 국제적이든 국내적이든

    언제나 이러한 어조와 의도 안에서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북 왕국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은 아히야 선지자가 준 표적을 통해 그의 왕권이 하늘

    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진 일임을 보여준다(왕상 11:29-39). 그러나 곧이

    어 여로보암의 아들(아비야)이 병들었을 때 아히야를 찾아가서 문의한 결

    과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들었고 그 아이는 결국 죽는다(왕상

    14:1-18). 신명기역사의 이 대목에서 여로보암의 아들이 죽고 사는 문제

    는 북 왕국의 존속과 폐지를 암시하는 정치적 비유로 읽혀지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43) 또 이사야서 6장에서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내러티브를 전개

    할 때 첫 구절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소명기사

    는 이사야가 받은 소명을 따라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탁 선포를 나라

    가 멸망할 때까지 할 것이라는 내용(사 6:1, 11-13)으로 마무리 된다.

    그러므로 왕의 죽음은 나라의 멸망을 암시한다.44)

    이런 사고방식이나 글쓰기 관행을 고려할 때 본문에서 히스기야의 죽을

    병은 유다라는 나라와 도성 예루살렘이 무너질 위기와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그가 고침을 받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나라의 회복과 도성

    의 평안을 되찾았음을 전하는 이야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바벨론

    사신의 방문 이야기(20:12-19)에서 보여준 이사야의 예언을 보라. 이사

    42) Long, 2Kings, 238. “이상적 왕 히스기야의 운명은 하나님의 이상적 도성

    인 예루살렘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다(시 87:3; 48:2, 9[RSV: 1, 8]).”

    43) Richard D. Nelson, 「열왕기상·하」, 김회권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 161.

    44) R. E. Clements, Isaiah 1-39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0), 73. Brevard S. Childs, Isaiah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 54-9.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29

    야는 히스기야가 사신에게 왕궁과 왕실 창고를 전부 보여주었다는 이야기

    를 나라의 패망을 암시하는 신탁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E 단락은

    C-D 단락의 요지를 왕의 질병과 치유라는 정치적 비유를 통해 막강한 외

    세의 위협 앞에서 도성 예루살렘이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건의 의미를 강조

    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히스기야의 열왕기 이야기는 전부 긍정적이지만은 아닌 것 같다. E에서

    20:7의 “상처”(히, haššəḥîn)에 바른 “무화과 반죽”(히, dəbelet tə’ēnîm)은 정치적 비유라는 장르 안에서 조금 색다른 의미를 전하는 것처럼 읽혀지

    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남 왕국 히스기야 시절은 사실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히스기야 시대의 라기스 부근의 모레셋 가드에서 활동한 예언

    자 미가는 시온과 예루살렘이 “피와 죄”로 건축되었다는 비판과 함께 도성

    이 파괴될 것이라는 심판신탁을 전했다(미 3:10, 12). 다시 말해서 그의

    선포는 상당수 백성은 히스기야의 통치 방식에 대하여 다양한 불만을 품고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치유기사가 말하듯이 히스기야의 통치가 단절되지

    않고 15년씩이나 계속 되었다면 미가의 선포처럼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백

    성들(혹은 반대파벌)의 목소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잠재우거나 달래주어야

    할 필요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히스기야는 예언자 이사야

    의 도움을 받아 “무화과 반죽”(국가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선전하는 내

    용?)으로 백성(나라)의 불편한 마음(상처)을 어루만지고 달랬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F는 히스기야 시절의 특정 일화를 유다가 바벨론에게 패망 당하고 유배

    되는 상황의 단초를제공해 준 사건으로 진술한다. 그러므로 A-F의 배치를

    통해 저자는 개혁으로 통치를 시작한 선한 왕이 결국에는 패망의 원인을 제

    공한 당사자로 전락했음을 말한다.

  • 30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Ⅳ. 나가는 말

    열왕기하 18-20장에 기록된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록은 연대기적 순서

    에 개의치 않고 현재 형태의 자료 배열과 기록을 통해 다음의 가르침을 전

    한다. 히스기야는 개혁을 한 왕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지만(왕하 18:1-8)

    더욱 기려야 하고 강조할 업적은 도성 예루살렘을 지켜내고 그래서 나라를

    구한 경건한 왕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저자가 요시야의 통치기사보다

    두 배나 길게 작성한 이유이다. 히스기야는 전적으로 개혁에 치중한 요시야

    와 달리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사마리아와 비교하여 예루살렘을 살렸다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다. 이렇게 도성 예루살렘을 살려낸 사건은 전혀 예상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저자는 그 원인이 일차적으로 앗수르의 지나친 교만

    함 때문이고 두 번째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히스기야 왕의 경건한 신앙

    심에서 찾는다. 저자는 히스기야가 위기 중에도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야훼

    하나님을 믿었음(왕하 18:20-22, ‘믿다’를 6회 사용)을 강조하길 원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 열쇠는 살아계신 야훼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왕하 18:17-37). 왕의 신앙과 야훼 하나님의 간섭과 도우심

    이 없었다면 예루살렘도 사마리아와 동일한 운명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을병(왕하 20:1-11)과 같은 고통도 뒤따랐다. 어쩌면 그 고

    통이란 앗수르에게 바쳐야 할 조공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고(왕하

    18:14-16) 도성을 지키기 위해 수로 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했

    기 때문일 수도 있다(왕하 18:20; 사 22:8-11). 어떤 이유에서건 그는

    그 병에서 치유되어(왕하 20:1-11) 15년이나 수명을 연장했다. 그러나

    그는 어이없게도 나라가 망하고 유배당하는 단초를 제공한 왕이기도 하다

    (왕하 20:12-19). 예수 외에 완전하게 행한 지도자란 없다.

    열왕기하 18-20장의 히스기야 통치기록이 주는 정경적 가르침은 이렇

    게 해석할 수 있다. 나라를 잃지 않기를 원하거나,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

    성전을 회복하기 바란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과 도우심을 바

  • 우택주, 열왕기하 18-20장에 나타난 유다 왕 히스기야 기사의 정경적 해석 31

    란다면 히스기야의 경건한 자세를 본받으라. 그러나 그의 객기는 닮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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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세의 리더십

    - 민수기 10:29-32의 신학적 해석 -

    김 정 봉

    [email protected]

    Ⅰ. 서론

    모세에 대한 민수기의 묘사는 이중적이다. 모세는 분명 여호와의 신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로 묘사된다(민 12:8; 참고 신 34:9).1) 그러나 그

    는 또한 여호와의 지시를 준수함에 있어 믿음이 부족한 자로 평가되기도 한

    다(민 20:12; 27:12-14).2) 광야를 유랑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민수기 내의 다의적 견해는 민수기의 배경이 광야인

    것과 관련지어볼 수 있다. 광야에서 모세의 리더십은 신적인 특성과 동시에

    인간적 특성을 모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목적인 본 연구에서 주목되는 본문

    1) Edward J. Woods, 「신명기」, 김정훈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461-2.

    2) John H. Sailhamer, “The Mosaic Law and the Theology of the

    Pentateuch,”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vol. 53, no. 2

    (1991): 260.

  • 36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은 민수기 10:29-32이다.3) 민수기 10:29-32은 모세가 미디안 사람 호

    밥에게 광야에서 진 칠 방법을 구하는 장면을 보인다. 이 사건의 묘사 속에

    함축된 모세의 리더십은 주변 문맥과 뚜렷한 대조를 드러낸다. 본문을 선행

    하는 민수기 1:1-10:28은 모세의 신적 리더십 아래에서 여호와의 말씀과

    명령을 준수하는 이스라엘이 나타난다.4)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신적 리더십의 특징은 민수기 10:33-36에서도 이어진다. 이처럼 민수기

    10:29-32은 신적 리더십의 문맥 속에서 인간적 리더십이 부각된 사건을

    전한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민수기 10:29-32에는 주변 문맥 속에서 신

    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로 특징지어진 모세가 인간적 요소에 의존하는 자

    로 묘사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 민수기 본문은 기본적으로 신학적이란 주장을 전제한다.5)

    민수기의 신학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직접 화법과 관련된다. 민수

    기에서 여호와의 직접 화법은 이스라엘 회중을 이끄는 모세의 신적 권위를

    보증한다. 그러나 여호와는 모세와 아론 또는 모세와 아론의 아들인 엘르아

    살(민 2:1; 4:1, 17; 14:26; 16:20; 19:1; 20:12, 23; 26:1)에게

    동시에 말씀하신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는 모세가 아

    닌 백성들(민 11:18)과 아론(민 18:1, 8, 20) 그리고 이방 선지자 발람

    (민 23:5, 16; 25:4)에게도 그의 말씀을 직접 전하신 것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모세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한 여호와의 직접 화법은 일회

    성이거나 특정한 경우에만 제한된다. 반면에 모세는 민수기 내에서 이스라

    3) Gordon Wenham, Number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Downers Grove: InterVarsity, 1981), 16-7.

    4) 에리 C. 레더(Arie C. Leder)는 민 10:29-32을 포함한 민 1-10 전체가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Arie C.

    Leder, 「에덴의 동쪽에서: 모세 오경 내러티브에 대한 문예비평적 접근」, 류

    호준, 주현규 역 (서울: 개혁주의신학사, 2012), 190-1.

    5) Terence E. Fretheim, 「오경」, 이영미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5),

    44.

  • 김정봉, 모세의 리더십: 민수기 10:29-32의 신학적 해석 37

    엘과 관계된 거의 대부분의 사건들에서 여호와의 직접 화법과 연관된다.6)

    그런 맥락 속에서 민수기 10:29-32의 사건 묘사는 모세의 리더십 속에

    여호와의 직접 화법에 대한 인식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민

    수기 10:29-32의 주변 문맥 내에서의 위치와 여호와의 신적 리더십의 문

    맥 속에서 인간적 리더십을 구하는 모세의 모습이 묘사된 본문의 내용은 이

    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는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신학적 질문을 제기하

    는 것이다. 본 논문은 민수기의 최종 형태 속에서 민수기 10:29-32의 위

    치와 그 본문에 묘사된 모세의 리더십의 성격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안함

    에 그 목적이 있다.

    Ⅱ. 민수기 구조

    본문의 넓은 문맥을 제공하는 민수기는 이질적 특성들을 반영한 다양한

    문학적 양식들과 여러 신학적 관점들을 반영한 개별적 내러티브들로 구성

    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그와 같은 민수기의 다양한 문학적 신학적

    특징들을 주시하면서도 여전히 민수기 본문 자체가 제공하는 구조적 통일

    성을 찾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민수기 본문 자체에는 지리

    적 배경과 두 차례의 인구조사들에 관한 보도들이 민수기의 다양한 문학적

    신학적 특징들 가운데 두드러진다.7) 민수기는 여러 사건들과 관련된 장소

    들로 시내산(민 1:1-10:10)과 가데스(민 10:11-22:1) 그리고 모압 평

    지(민 22:2-36:13)들을 나타낸다. 이들 체류 장소들의 연속은 애굽에서

    6) 민 22-24장의 소위 말하는 발람의 이야기는 비록 이스라엘을 위한 저주 혹은

    축복과 관련지어져 있지만 모세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 사실에

    있어서 발람의 이야기는 민수기 내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또한 민수

    기의 최종 형태 내의 위치와 함께 주목된다.

    7) Gordon Wenham, 「모세오경」 (서울: 성서유니온, 2007), 164.

  • 38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가나안 땅으로의 이스라엘의 여정이 여호와의 언약의 성취라는 신학적 주

    장(창 15: 13-16; 17:8)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약속과 성취의 신학적

    주제는 민수기 전체의 다양한 문학적 본문들을 주목할 때 지극히 직선적인

    구조 이해에 속한다.

    한편 출애굽 세대들과 광야 세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수기 1장과 26장

    의 인구조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에 관한 보도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이스라엘의 보도로 그 초점이 이동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구조

    이해는 민수기가 가나안 땅 입성 이전의 광야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신앙적

    삶을 전하는 것이 그 구조적 초점으로 주시하게 한다. 그러나 지리적 배경

    을 통한 민수기 구조 이해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질문을 야기한다. 광야 세

    대는 여호와에게 믿음으로 순종했는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될 광야

    세대의 신앙적 삶은 후대에 충분히 모범적인가? 특히 인구 조사를 통한 민

    수기 구조 분석은 시내산을 떠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는 민수기 10:

    29-32에 명확한 문맥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민수기 구조 설명에 대한 다른 제안은 고든 웬함(Gordon Wenham)

    이 설명한 율법 수여(출 19:1-민 10:10; 민 13:1-19:22; 민 22:2-

    36:13)와 광야 여정(민 10:11-12:16; 민 20:1-22:1)의 반복적 패턴

    과 관련된다.8) 그러나 고든 웬함이 율법 수여의 주제 속에 배치시킨 이스

    라엘의 인구조사에 대한 여호와의 지시와 준행들은 엄격히 표현하자면 율

    법 수여에 해당되지 않는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함은 인구 조사

    사건들을 율법 수여의 주제 아래에 배치시켰다. 나아가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의 모세에 대한 반역이 서술된 내러티브 본문들(민 16) 또한 율법

    수여의 주제 속에 놓였는데 이와 같은 배치는 웬함이 본문들을 지나치게 일

    반화하고자 한 시도로 여겨진다.

    사실 민수기는 시내산과 광야란 두 개의 뚜렷한 지리적 배경을 가리킨

    다. 그 각각은 민수기 1-10장과 11-36장으로 구분된다. 아드리앤 레빈

    8) Ibid.

  • 김정봉, 모세의 리더십: 민수기 10:29-32의 신학적 해석 39

    (Adriane B. Leveen)은 민수기의 첫 부분인 1-10장은 매우 반복적이

    며 공식적 언어들로 가득한 제사장적 정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신학적으론

    예견할 수 있는 이상적이며 안정적 세계를 묘사하는 특징을 지니는 반면에

    민수기의 후반부인 11-36장 지극히 현실적인 실제 상황들 가운데 교훈을

    위한 기억들로 배열되었다고 제안한다.9) 한편 아리 레더(Arie Leder)는

    민수기 구조에 대한 레빈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두 부분을 지리와 불평이란

    주제를 통해 설명한다. 아리는 이스라엘은 시내산을 배경으로 하는 지역

    (민 1:1-10:36)에서는 모세의 지시를 준수하였지만 가데스를 중심으로

    한 광야 배경(민 12-36)에서는 이스라엘이 불이행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설명한다.10)

    민수기 자체는 분명 1-10장과 11-36장의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그러

    나 이와 같은 구조 분석은 민수기 10:29-32에 대한 신학적 설명을 요구

    한다. 민수기 1:1-10:28까지는 여호와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는 회중으로

    묘사된 출애굽 세대들이 모세의 리더십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민수기 11

    장 이후에는 출애굽 세대와 광야 세대의 구분 없이 여호와에 대한 이스라엘

    전체의 실패와 그들의 불순종이 모세의 리더십에 대립하여 부각된다. 두 부

    분은 분명 성공과 순종에서 실패와 불순종으로 주제가 이동하는 특징을 보

    인다. 나아가 주목되는 사실은 두 번째 부분에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세

    의 리더십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그에게도 가나안 땅의 입성

    이 금지되는 선언이 주어진다(민 20:12). 반면에 민수기 10:29-32은 모

    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

    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수기의 구조가 성공과 순종에서 실패와

    9) Adriane B. Leveen, “Variations on a Theme: Differing Conceptions

    of Memory in the Book of Number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vol. 27, no. 2 (2002): 207-12.

    10) Arie C. Leder, “From the Mountain of YHWH to Israel’s מ נ ו ח ה: The Desert Itinerary of Numbers 10:11-36,” Old Testament

    Essays vol. 29, no. 3 (2016): 521.

  • 40 복음과 실천(제60집, 2017년 가을)

    불순종으로 제시된다고 주목한다면 그 중간 지점에 위치된 민수기 10:

    29-32은 특히 주목된다.

    Ⅲ. 근접 문맥(민 10:33-36)

    민수기 10:29-32의 근접 문맥에 자리한 민수기 10:33-36의 구절들

    에서 이스라엘의 행진 가운데 여호와의 언약궤와 여호와의 구름 그리고 여

    호와가 강조된다. 이들 행진의 묘사는 문맥상 가데스 바네아를 향하는 광야

    여정을 선행하는 사건들로 묘사된다(민 11-20).11)

    33-34절에서 모세는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에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

    는 언약궤와 구름의 실재가 제시된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백성들의 쉴 곳을

    찾았다고 전하는데 그 구절은 선행하는 31절에서 백성들이 광야에서 쉴 진

    영을 칠 방법을 아는 호밥의 리더십을 상기시킨다.

    한편 33절의 첫 단어는 같은 장 12절의 첫 단어와 동일한 어근을 지닌

    동일한 형태의 동사이다. 두 단어 모두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의 출발을

    가리키는데 그 각각은 시내 광야와 여호와의 산을 이스라엘이 출발한 장소

    로 나타내는 것과 연관된다(참고. 출 19:2). 출애굽 여정에서 시내 광야

    는 시내산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만나 언약 체결을 한

    11) 언약궤의 노래로 불리는 34-36절의 맛소라 본문의 위치와 칠십인역의 본문

    의 위치는 서로 다르다. 로날드 헨델(Ronald Hendel)은 그런 본문 전승의

    차이는 한 본문이 다른 본문에 대해 이차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편집적

    첨가로 그 노래의 위치가 주어졌는지에 대해 알기 어렵다고 밝힌다. 사실 헨

    델의 설명처럼 두 본문이 왜 그렇게 다른 순서를 보이는지에 대한 명확한 본

    문상의 증거는 없다. 오히려 맛소라 본문의 민 10:29-36은 민수기

    1:1-10:28과 민수기 11-36장 사이에서 민수기의 전체 신학적 주제를 인식

    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는 위치에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Ronald

    Hendel, Steps to a New Edition of the Hebrew Bible (Atlanta:

    SBL Press, 2016), 205.

  • 김정봉, 모세의 리더십: 민수기 10:29-32의 신학적 해석 41

    곳으로 간주된다(출 19:1-6). 나아가 여호와의 임재의 장소로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해 율법과 계명을 주신 산은 하나님의 산이라 불리기도 하였

    다(출 24:13). 시내산 단락(출 19:1-민 10:10)에서 시내산과 하나님의

    산은 사실상 동일한 장소를 가리킨다. 그런 까닭에 민수기 10장에서 언급

    된 시내 광야와 여호와의 산은 이스라엘의 출발지들로 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주목될 수 있다.12) 그러나 그 장소들의 문맥은 확연히 달라 보인

    다. 시내 광야를 배경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출발은 질서 정연한 조직적 모

    습의 이스라엘 진영의 출발을 나타낸다. 반면에 여호와의 산을 그 출발지로

    제시한 구절들에는 여호와의 신적 인도 그 자체가 부각되어 있다. 인간적

    요소가 강조된 사람들의 행진과 신적 요소가 부각된 여호와의 인도는 최종

    형태의 민수기 본문 내에서 그 각각이 다른 문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의도되

    어 있음을 대조적으로 보게 이끈다.13) 특히 두 본문은 언약궤를 언급하는

    33-4절과 성막을 표현한 12-32절에서처럼 그 초점이 서로 다르다. 민수

    기 10:12-28의 성막에 대한 묘사는 이미 민수기 2장에서 언급되었는데

    두 본문은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전한다. 이와 같은 민수기 10:12-28에

    대한 이해는 주제적으로 그 구절들이 선행하는 민수기 본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음을 주시하게 이끈다. 반면에 민수기 10:33에 제시된 언약궤

    의 이동은 사건의 배경 속에서 직접적 문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행

    하는 구절들에 언급된 사건과 광야 여정이란 문맥 속에서 안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