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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혁명은 무한에 대한 명명의 과정이다. 우리 모두에게 신의 권능을 부여하여 이름 없는 것들의 이름을 규정한다. 또한 모호하고

추상적인 대상을 알레고리의 영역으로 가져온다. ‘낭만주의가 그 완성된 형상을 비판적으로 능가하고자 할 때, 알레고리적 깊은

응시는 사물과 작품을 일순간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문자로 변모시킨다.’라는 벤야민의 말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 무한의 지점에 의식의 통로를 열어준다. 유기적 총체성과 내재적 완결성이라는 말로 표상되는 ‘유한’의 총체적 의미작용에 대

한 알레고리의 비판적 전복의 기능,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잠재된 벡터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의 작품은 이 세계를 쇠락하는 폐허의 잔해라고 보는 묵시록적 세계관과 만난다. 크레인의 계절이 가진 특유의

낯설음은 바로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발현된다. 또한 인간 실존과 평행을 이루려는 시인의 미학적 태도 역시 그 묵시록적 세계관

내부에서 탄생하게 된다. 단편적인 조각에 불과한 현대적 인간 실존을 적나라하고 입체적으로 드러내려는 방법론적 의도와 정치

성을 가지고 그 실재의 잔인한 리얼리즘을 형상화하려는 시도에서 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크레인의 계절은 하나의 언어가 분열되고 모든 혼돈의 시작이자 끝의 유예 자체가 된, 비존재에 가까운 존재로서 다가

온다. 이 크레인은 특이하게도, 정확한 이미지를 가진 구조물이 아니다. 현실세계와 맞닿은 실재와 상징 그 사이에 수직적으로 존

재하고 있지만, 혁명이거나 혁명이 아닌 방향으로 무한히 기울고 있는 역학구조를 기반으로 재정립된 수직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평선을 기준으로 상반되는 밤과 낮이자 사랑이 가진 망명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무한은 사실 하나의 실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야기한다. 이 무한은 자명한 불확실성에 지배받는 카오스적 공간이다. 무한이 가진 영속성은 이해되지 못함에 기반을 둔다. 또한

무한은 신의 공간이라는 모호한 확신이 작품 전체를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어법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이 공간은 혁명적인 낙

관에 닿아있는 것이다.

이제 조금 더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사유구조를 무한과 유한으로 이분화 시키기로 한다. 허나 이 모든 구별은 유한 내에서 진행

된다는 것을 먼저 밝혀두어야겠다. 무한은 유한의 내부에 있다. 유한의 내부에서 유한과 함께 공존하는, 하지만 유한의 목적성을

띄고 이 공간에 출입한 사람의 눈에는 포착되지 않는 일종의 구석이다. 총체적인 혁명은 바로 이 유한 내부의 무한에 있다. 유한이

라는 말 자체와 공간은 인간의 닿을 수 없음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곳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우연성을 통해, 그 하나의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여기서의 유한은 이성적인 공간이며, 반대로 무한은 나머지 속성들을 모두 배제하고 불

안과 균열, 진실을 대면할 수 있는 하나의 구멍으로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유한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현실이자 실체이고 일

반화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세계를 다스리는 공간이다. 진리를 탐닉하지 않는 존재자들이 가진 의미와 가치관이 팽배한

공간이다. 이곳의 사물들에겐 가능성이 없다. 두려운 낯설음은 물론 수줍은 실재 역시 없다. 이름을 가진 것들의 차이를 삭제하고

일반화시킨다. 따라서 우리는 낯선 것을, 결국 그것이 잘못된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고 다스리고 익숙한 것들

과 동질화시키며 유한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준다. 모든 사고구조는, 무한적 세계의 질서정연함처럼 그들이 정립한 일종의 이데올로

기를 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