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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醫史學 18권 제1(통권 제34) 20096Korean J Med Hist 18ː114 Jun. 2009 大韓醫史學會 ISSN 1225505X 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 대한 書誌的 考察 하 정 용* 1. 머리말 2. 食物本草의 개요 3. 현존하는 食物本草의 판본 4. 갑진자체와 내의원 5. 내의원자본의 교정 6. 맺음말 그림 1. 내의원자본 서 1 1. 머리말 <1>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동의보감비롯하여 허준이 주로 관여한 내의원봉교간서의 고찰은 17세기의 내의원의 활동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으로 보 인다. 뿐만 아니라 동의보감 등의 각종 의서를 비롯하여 생명에 관여된 의서의 인행과정을 밝 히는 한편으로 의서 내용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고에서 필자는 내의원자본에 대해서는 몇몇 중요한 연구가 선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의원자본에 대한 명칭 규명, 한글자 본의 정체, 활자를 목각한 주체, 상한시기의 문 , 갑진자체목활자본의 규정문제와 함께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개별 서책에 대한 정밀한 서지 조사가 결여되어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전고의 연장선상에서 1) 본고에서는 甲辰 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硏究를 진행 하고자 한다. *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교수 1) 하정용. 內醫院字本硏究諸問題-東醫寶鑑 硏究를 위한 先行課題-. 醫史學 2008;17(1).

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 대한 書誌的 考察medhist.or.kr/upload/pdf/kjmh-18-1-1.pdf · 그 유명한 丹溪 朱震亨의 제자이며 丹溪纂要 를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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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醫史學 제18권 제1호(통권 제34호) 2009년 6월 Korean J Med Hist 18ː114 Jun. 2009

    Ⓒ大韓醫史學會 ISSN 1225505X

    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대한 書誌的 考察

    하 정 용*

    1. 머리말2. 食物本草의 개요3. 현존하는 食物本草의 판본

    4. 갑진자체와 내의원5. 내의원자본의 교정6. 맺음말

    그림 1. 내의원자본 서 1

    1. 머리말

    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허준이 주로 관여한 내의원봉교간서의

    고찰은 17세기의 내의원의 활동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으로 보

    인다. 뿐만 아니라 동의보감 등의 각종 의서를 비롯하여 생명에 관여된 의서의 인행과정을 밝

    히는 한편으로 의서 내용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고에서 필자는 내의원자본에

    대해서는 몇몇 중요한 연구가 선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의원자본에 대한 명칭 규명, 한글자본의 정체, 활자를 목각한 주체, 상한시기의 문제, 갑진자체목활자본의 규정문제와 함께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개별 서책에 대한 정밀한 서지

    조사가 결여되어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전고의 연장선상에서1) 본고에서는 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硏究를 진행 하고자 한다.

    *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교수1) 하정용. 內醫院字本硏究의 諸問題-東醫寶鑑 硏究를 위한 先行課題-. 醫史學 2008;17(1).

  • 醫史學 제18권 제1호(통권 제34호) 1-14, 2009년 6월

    - 2 -

    그림 2. 내의원자본 서 2

    그림 3. 내의원자본 각서1

    \ 서 명 저자 소장처/비고저술/간행

    시기분류

    분량

    권책 면수

    1纂圖方

    論脈訣

    集成

    한독의약박, 규장각,고려대, 국회

    1581년(선조14)/1612년(광해4)

    진단

    /맥법4권4책

    460

    2諺解痘

    瘡集要

    가천박, 고려대, 성암고서, 계명대, 규장각, 장서각

    1601년(선조34)/1608년(선조41)

    방역

    /구급2권1책

    280

    3內醫先

    生案

    규장각(의과선생안), 허준박

    1605년(선조38)

    /후대 추록

    의사

    필기

    1권1책

    64

    4諺解救

    急方

    浚한독의약박, 일산문고

    1607년(선조40)

    /간행시기미상

    방역

    /구급2권1책

    174

    5 食物本草

    아사미문고, 고려대, 가천박

    1607년(선조40)

    2권2책

    168

    6諺解胎

    産集要

    국립중앙도서관, 한독의약박, 영남대,

    규장각(필사본), 조선대

    1608년(선조41)

    부인

    /소아1권1책

    162

    7 醫林撮要續集  

    국립중앙도서관1608년

    (선조41) 1책 150

    8東醫寶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규장각,

    경기대, 한독의약박, 허준박

    1610년(광해2)/1613

    (광해5)

    종합

    의서

    25권25책

    3102

    9 簡易辟瘟方

    규장각, 가천박, 장서각, 계명대

    1613(광해5) 1책 44

    10新纂辟

    溫方

    浚규장각, 허준박 1613년(광해5)

    방역

    /구급1권1책

    40

    11辟疫神

    浚규장각, 한독의약박 1613년(광해5)

    방역

    /구급1권1책

    16

    12

    新刊補

    註釋文

    黃帝內

    經素問

    성암고서(권5, 10), 경기대(권1),

    국립중앙도서관, 동국대, 산기문고

    목판(계명대, 장서각, 성암문고 등)

    1615(광해7)

    12권14책

    1736?

    13臘藥症

    治方

    국립중앙도서관

    諺解(규장각, 장서각)미상

    경험

    방서

    1권1책

    74

    14歷代醫

    學姓氏

    원광대학교(사본)金海秀의『萬病萬藥』

    1600년대 초

    의사

    필기

    별권

    1책62

    표 1. 내의원봉교서 및 허준의 저작 일람

  • 하정용ː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書誌的 考察

    - 3 -

    먼저, 食物本草의 개요에 대해서 조사한 다음에 현존하는 食物本草의 판본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조사 분석을 통해서 갑진자체인 동활자본과 목활자본이 내의원에서 편

    찬되고 인행된 사실이 가진 의학사적인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다음 서적들과 달리 생명을 다루는 의서들이 대부분인 내의원

    자본의 교정에 대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2. 食物本草의 개요내의원자본으로 불린 바 있는 食物本草에는

    明나라 狄冲(조선 중종 20년 : 1525)과 姚文淸(1526) 각각이 쓴 서문이 실려 있다.2) 결국 1526년 이후에 중국에서 간행된 책이다. 이와

    그림 4. 내의원자본 각서2

    그림 5. 갑진자본의 권수

    같이 서문은 있으나, 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정작 저자에 대한 기술은 없다. 그러나 本草綱目의 인용서목에 나타난 食物本草에 대한 항목을 찾아보면, 명나라 盧和가 편찬한 원고를 정덕년간에 汪穎이 2권으로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라 한다. 여기서 저자로 알려진 노화는 그 유명한 丹溪 朱震亨의 제자이며 丹溪纂要를 지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은 대체로 1520년부터 1550년에 걸쳐서 완성된 薛己의 本草約言의 권3, 권4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3) 그래서 두 책 모두 설기의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노화의 署名이 있는 四巻本은 経注穎釐 七巻과 함께 1620년에 간행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는 八旬

    2) 序 : 嘉靖乙酉(1525)秋七月之吉淸江令溧陽狄沖書, 刻序 : 嘉靖丙戌(1526)十二月旣望太原姚文淸序3) 이 책은 약성본초 2권과 식물본초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명각본이 현존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王有朋 編. 中國中醫古籍總目. 중국 상해: 上海世紀出版穀份有限公司; 2007. p.201.).

  • 醫史學 제18권 제1호(통권 제34호) 1-14, 2009년 6월

    - 4 -

    翁・銭充治가 校訂한 東垣食物本草가 등장하는데 原典은 李杲의 것이라고 가탁하고 있는 것

    이다. 이에 대해서 龍伯堅은 現存本草書録에서

    盧和, 汪穎, 銭充治의 세 책은 내용이 거의 같고 順序랑 문자가 조금 다를 뿐이라고 考証했

    다.4) 결국 누구의 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한의학에서의 내용적인 비교 및 분석

    고찰이 요구된다. 다행이 본고에서 살펴볼 갑진자체내의원자본 食物本草에는 노화라는 저자명이 활자화되어 있어 확인되고 있다(그림 6). 결국 갑진자본 인행할 당시에는 저자가 미상이었

    지만, 이후 목활자본인 갑진자체내의원자본을 인행함에 이르러서는 노화찬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5) 따라서 食物本草를 인행을 한 후에도 끊임없이 검토하고 연구하여 결국 찬자를 밝혀

    낸 것이며 이러한 작업은 분명 내의원에서 주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개략적으로 내용을 검토해 보면, 食物本草는

    음식물로 병을 예방하는 내용을 담은 음식요법에

    관한 중국의 전문의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水․穀․菜․果․禽․獸․魚․味 등 8류로 나누어 상권과 하권에 수록하였다. 상권에는 수․곡․채․과 등 4류 212조가, 하권에는 금․수․어․미 등 4류 175조가 수록되었다. 各類에서는 조목마다 해당식물의 맛, 본성, 이익, 해독 등을 적어 설명하고 말미에는 각류의 식물에 대한

    그림 6. 내의원자본의 권수

    총론을 적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본초학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서책이고, 지금까지 여타 도서목록에 잘 보이지 않던 것으로 희귀한

    의학서적으로 이후 본초학의 교과서에도 수없이

    인용되어 본초학의 회복이라는 의학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6) 따라서 서지학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7) 이러한 중요성에 의해선지

    4)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食物本草歳時記[食物本草の世界]라는 일본의 웹사이트를 인용하였다.http://www.eonet.ne.jp/~ringo-do/syokumotu_top.htm (이하 별도 날짜표시가 없는 웹사이트에 대해서는 2008년 10월 20일에 최종 확인한 것이다.)

    5) 사고전서 총목에는 식물본초는 여전히 汪穎의 저작물로 기재되어 있다. 이는 명청대에도 식물본초가 汪穎의 것으로 이해되어 유통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왕영의 것이 아닌 노화찬이라는 것을 우리나라 내의원에서 알아낸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여겨진다. 교정의 정확성을 기하고 또 기한 당시의 내의원의 교정과정 등을 고려해 볼 때, 아무런 근거 없이 내의원에서 찬자명을 넣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그 근거는 명확히 궁구해 볼 수는 없지만 내의원의 의원들이 노화찬임을 연구해서 알아냈을 것임을 신뢰해도 될 것이다.

    6) 본초학의 회복이라는 식물본초의 의학사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대한의사학회 2008년 가을철 학술대회(11.14)에서 카이스트 신동원 교수의 교시를 받았다.

    7) 안상우. 고의서산책(64)-식물본초-. 민족의학신문 2001년 3월 19일(310호). 이외에도 가천박물관(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567-22번지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의 보물문화재에 대한 소개 부분을 참고하였다.

  • 하정용ː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書誌的 考察

    - 5 -

    그림 7.

    내의원본의 판심

    이 책은 당시의 조선과 명의 외교관계에 따라 바

    로 수입이 되어 조선 중종∼명종년간(1526∼1556)에 궁중에서 금속활자인 갑진자로 간행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되어 왔다.8) 실제로 東醫寶鑑에는 21종의 약재에 대해서 25회에 걸쳐 인용되는 등 조선시대 의학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보기 드문 임진왜란 전의 동활자본 즉 금속활자본으로 된 의서인 까닭에 문화재

    로 지정되었다.

    3. 현존하는 食物本草의 판본현재 明淸時代의 중국과 江戶時代의 일본에서

    간행된 서책이 많이 남아 있지만9),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食物本草는 단지 2종류만 현존하고 있다. 하나가 금속활자본인 갑진자본이고10) 또 하나가 목활자로 식물본초자 또는 갑진자체 훈련

    도감자 또는 내의원자본으로 불린 그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 대해서는 몇몇 문집류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攷事撮要를 지은 魯叔權은 稗官雜記에서

    1546년 燕京[지금의 북경]에서 이 책 1부를 구했는데, 그 내용이 넓고도 간결하며 적절하다고 했으며, 이에 앞서 중종대에 成世昌이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食物纂要를 엮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11) 食物本草 이 책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柳希春의 眉巖日記草에도 선조2년 己巳(1569) 2월 의원 朴漢懋가 유희춘에게 이 책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마지막으로 서유구의 林園經濟志의 「引用書目」에도 이 책이 기록되어 있어서 조선후기까

    지 두루 알려졌으며 여러 차례 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2) 하지만 현재는 다음에 살펴볼 두 가지만이 전하고 있다.13)

    ➀ 갑진자본우리 나라의 서(序)·발(跋)·간기 등이 없어

    간행한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나 갑진자의 사

    용연대(1485-16c말?) 가운데 중종 21년(1526)부터 명종 21년(1566) 사이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14)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본

    (http://www.gcmuseum.org/trea_d2.html?num=12&page=1) 8) 필자는 이러한 통설적인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적인 검토는 다음 장에서 이뤄진다. 9) 이에 대해서는 일본 경도대학 인문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全國漢籍データベース 日本所藏中文古籍數據庫

    (http://kanji.zinbun.kyoto-u.ac.jp/kanseki?query=%E9%A3%9F%E7%89%A9%E6%9C%AC%E8%8D%89)를 주로 이용하였다.

    10) 갑진자는 1484년 鑄字所에서 만든 동활자이다. 당시 주로 사용하던 갑인자와 을해자는 활자가 너무 커서 종이가 많이 들고 인출한 책의 권질이 繁重하여 불편하였고, 또한 주조한 지 오래되어 마멸되거나 부족한 글자가 생겨 補鑄하여 써야 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처음과 같이 깨끗하지 못하였다. 글자의 크기는 큰 것은 1.0×1.1㎝이고, 작은 것은 1.0×0.5㎝가 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인본으로는 王荊公詩集·東國通鑑등이 있다. 사진은 개인소장으로 이 활자를 본떠서 만든 목활자인 갑진자체 훈련도감자인 蘇齋先生文集이다. 이 책은 盧守愼(1515-1590)의 詩文集이다.

    11) “전 우의정 성공이 일찍이 식물찬요를 편찬했다. 가정 병오년에 내가 연경에 가서 食物本草 1부를 얻었는데, 명나라 노화가 지은 것이다. 그 내용이 매우 넓고도 간결하고 적절하여 식물찬요 같은 것은 거의 폐기할 정도다.”(“前右相成公嘗撰食物纂要, 嘉靖丙午余朝京, 得食物本草一部, 大明盧和之所著也, 甚辨博且簡切, 若纂要者, 殆可以廢矣.” 稗官雜記 卷第二.)

    12)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지식정보자원 웹서비스의 식물본초에 대한 항목을 참조하였다(http://jisik.kiom.re.kr/search/searchResult.jsp).

    13) 현재 한국고전적종합목록시스템(http://www.nl.go.kr/korcis/) 등을 조사해 본 결과 국내에서 간행된 食物本草는 현재 두 가지 판종만이 존재하고 있다.

  • 醫史學 제18권 제1호(통권 제34호) 1-14,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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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박물관소장본 고려대학교소장본 버클리아사미문고본 옥산서원소장본

    책크기(cm) 28.5×18.3 29.6×19.5 31.1×20.3

    반엽 21.8×15.1 21.6×15.3 21.3×15.3 20.5×14.8

    행자수 12행 20자 12행 20자 12행 20자 12행 20자

    어미 내향삼엽화문흑어미 내향화문어미 내향삼엽화문흑어미 상하삼엽화문어미

    표 2. 현존하는 食物本草의 판본들

    고에서 재론할 예정이다. 현재 2권2책의 선장본의 단 1부만이 남아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1227호로 1995년 7월 19일에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자인 이길녀가 운영하는 가천문화재단 가천박

    물관에15) 소장·전시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세로 28.5×18.8cm이며, 四周雙邊의 界線이 있다. 반엽은 가로 세로 21.8cm×15.1cm이며 행자수는 12行20字이며, 어미는 上黑魚尾이다.16)

    ➁ 내의원자본 현존하는 내의원자본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

    관 한적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 동아도서관 아사미 문고, 마지막으로 옥산서원이다. 그러나 옥산서원본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17) 현재 확인 가능한 판본은 고려대학교소장본이라고 할 수 있다. 明宗年間에 간행된 것으로 파악된 바 있는 고려대학교소장본은 2卷1冊으로 四周雙邊로 크기는 29.6×19.5cm이다. 반

    곽은 가로 세로 21.6×15.3cm이며, 계선이 있는

    有界이다. 행자수는 12行20字로 內向花紋魚尾이다.

    4. 갑진자체와 내의원

    본고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食物本草는 내

    의원에서 奉敎撰 또는 奉敎刊行한 갑진자체 목

    활자본이다. 이에 대해 이전에는 식물본초자라고 불린 적도 있을 정도로 흔히 알려져 있는 내의원

    자본과 字體가 달랐다. 즉 내의원자 또는 을해자체 훈련도감자가 아닌 갑진자체라는 것이 밝혀

    지면서 내의원자본을 다룰 때는 食物本草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게 된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내의원에서 간행된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활자체가 다르므로

    즉 을해자체가 아니므로 내의원자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지금까지 서지학계 등에서 불러온 내의원자란 을해자체라는 활자의 서체의

    개념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인 듯하

    14) 文化財管理局. 動産文化財指定報告書-'94∼'95指定篇-. 1996.15) 가천박물관에 대해서는 다음의 사이트를 인용하였다(http://www.gcmuseum.org/).16) 이에 대한 자세한 서지정보는 국가기록유산 사이트를 인용하였다(http://www.memorykorea.go.kr/).17) 食物本草는 명대에 盧和가 撰한 의서로 책의 크기는 20.5×14.8cm(김중권 교수는 이를 책의 크기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반곽의 크기의 오자인 듯하다. 이 책의 소재를 찾아본 결과 소재 파악이 안 되어 김중권 교수에게 보고한 바 있다. 1993년까지 보존되었던 이 의서가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어 안타깝다.)이며, 글자의 크기는 1 × 1.2cm 이다. 광곽은 四周雙邊이며, 12行 20 字로 어미는 上下三葉花紋魚尾이다(金重權. 內醫院의 醫書刊行. 문헌정보학보5. 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1993; 金重權. 朝鮮朝 內醫院의 醫書編刊 및 醫學資料室에 관한 硏究. 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 316쪽).

  • 하정용ː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書誌的 考察

    - 7 -

    다. 따라서 을해자체의 목활자를 쓰면 내의원자이며 아니면 갑진자체의 목활자를 쓰면 내의원

    자가 아니라고 구분한 듯하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구분이 적절한가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오히려 食物本草의 존재를 통해서 이것이 내의원에서 봉교찬하고 나아가 인행까지 했다면 이

    는 확실한 내의원자본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앞

    으로는 을해자체내의원자와 갑진자체내의원자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한편 갑진자체 훈련도감자의 경우, 그 자본으

    로는 인조2년(1624) 인출의 소재선생문집과 상촌고, 동왕 14년(1636) 인출의 오봉선생집 등이 전한다. 이외에도 좌전유초가 있으나 여하튼 현존상태로 보아 갑진자체 훈련도감자본과

    서체가 같은 목활자본으로는 식물본초가 가장 먼저 인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1607년에 나온 食物本草와 다음에 등장하는 소재선생문집이 나온 1624년까지의 14년동안에 갑진자체 목활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즉 14년 동안은 훈련도감이 아닌 내의원에서 이 활자를 사용했다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갑진자체 훈련도감자 역시 내의원 훈련도감자로 그 명칭을 바꿔

    야 할 것이다. 보물본 식물본초나 기타 갑진자본을 살펴보

    면 알겠지만, 중종·명종대에 이르면 보주자로서 목활자를 많이 혼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보물본 식물본초의 인행년이 중종 21년(1526)부터 명종 21년(1566) 사이라면 하한은 1566년이 되는데 이는 내의원자본의 간행시기와 그리 멀지 않다. 고려대학교 소장본의 경우 인기나 발문이 없어

    서 그 간행연대를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내의원자본들이 간행된 시기와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갑진자체목활자본

    인 식물본초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 아사미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성균관대학교 천혜봉 명예교수가 제

    그림 8. 大阪府立圖書館所藏 『新編醫學正傳』

    공해주신 사진을 통해서 아사미문고본이 고려대

    학교 화산문고 소장본과 동일한 갑진자체의 목

    활자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의 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아사미문고본은 책의 크기나

    반각이 고려대 소장본 보다 조금 크다. 이는 활자 조판의 문제와 어떤 종이를 사용했는가의 문

    제일 뿐 활자의 크기가 다르거나 서체가 달라서

    기인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아사미문고본에는 고려대학교 소장본에는 없는 印

    記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萬曆三十五年七月日內醫院奉敎開刊

    이와 같이, 내의원자본 또는 갑진자체훈련도감자본으로 불린 적 있는 이 식물본초의 간행연대의 상한은 1607년(宣祖 40)이 된다. 따라서 기존에 알려진 보물본 갑진자본 식물본초의 인행의 하한선인 1566년과 이 1607년 사이에는 약 41년 정도의 시간차가 난다. 그러나 실제로 보물본 식물본초를 살펴보면 그 간행시기의 간격은 생각 보다 좀 더 줄어든다. 즉 가까워진다. 보물본을 보면, 내향어미 외에도 삼엽화문어미 및 보주한 흑어미 등이 확인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갑진자의 보입자가 상당수 확인되고 있어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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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대(1567~1608 재위) 초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여진다.18) 따라서 길어야 40년도 안된 사이에 보물본과 내의원자본이 순차적으로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갑진자체 목활자본 식물본초를 살펴보

    면 동활자인 갑진자가 더러 확인되고 있다. 이는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갑진자본에 갑진자체 목활자가 많이 혼입된 것과 관련지어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동활자인 갑진자가 점점 닳아 사용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추가로 제작한 갑진자체 목활자가 오히려 많아

    지고 점차 동활자인 갑진자의 비율이 매우 적어

    진 것으로 이해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

    다.19)

    예를 들어, 갑진자본 의서로 알려진 新編醫學正傳의 경우는 현재 고려대학교와20) 일본의 대판부립도서관21) 등에 소장되어 있다. 갑진자본으로 목활자가 다수 혼입되어 있는데, 이의 간행연대는 印出記를 보아 嘉靖癸丑夏月日重秋改誤, 명종 8년인 1533년 이후로 보여지며, 초쇄본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지질 등을 고려해 볼 때, 宣祖 10(1577)경 사이에 인행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1577년에도 동활자가 목활자보다 좀 더 많은 갑진자본이 간행된 것이며 이는 갑진자체

    목활자본 식물본초가 간행된 1607년과 30년도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갑진자체 훈련도

    감자는 1624년에 간행된 소재선생문집이 처음 간행되었는데 이는 식물본초가 간행된 1607년으로부터 17년 후의 일이 된다. 그런데 그 동안에 갑진자체 목활자가 거의 한 번도 간

    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22) 당시의 활자의 부족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갑진자체 목활자는 내의원에서 간행한

    의서에 계속해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인본들을 내의원자본 구체적으로는 갑진자체 내의원자본이라고 할 수 있

    는 것이다.최근 연구성과에 의하면23), 임진왜란 전에는

    내의원이 주축으로 의서를 편찬하기는 했으나

    간행처는 아니었다고 한다. 중앙에서는 주자소나 교서관 등에서 간행하거나 각 지방에서 분담하

    여 간행하였다. 그러나 임란으로 인해 내의원에 소장된 의서가 상당수 소실되자 의생이나 의원

    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 의서편찬이나 그 간행이

    된 것이다. 결국 內醫院은 독자적으로 醫書撰集廳을 설치하여 의서편찬에 열중하였으며, 간행을 직접 관리․감독하여 여러 의서를 轉寫하

    거나 목활자로 간행하기에 이른 것이다.24) 이렇게 되었을 때, 다시 문제는 1607년부터

    18) 천혜봉. 한국서지학. 민음사; 1991. 444쪽.19) 훈련도감자본의 경우, 선조 36년(1603)에 갑인자체 훈련도감자본 神器秘訣에 처음 사용된 목활자이다. 이 역

    시 동활자인 갑인자들이 소실 등으로 인해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자 그 대용으로 만들어진 목활자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20) 4卷4冊(全8卷8冊) : 四周雙邊 半郭 22.2 × 15.1 cm, 有界, 12行20字 小字雙行, 上下白口, 上下內向細花文魚尾 ;

    30.4 × 19.8 cm, 이에 대해서는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참고하였다.21) 医学正伝 巻1,2,4,5,7 5冊 明. 虞搏撰 刊【石崎691-5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사이트를 참고하였다.

    http://www.library.pref.osaka.jp/nakato/shotenji/70-16.html (2008년 11월 1일 확인)22) 최근 연구(송정숙. 훈련도감의 인쇄·출판 활동. 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 277쪽의 표)를 통

    해서 갑진자체 훈련도감자로 알려진 송조명신언행록(1609-1649)의 존재가 확인된다. 필자가 조사해 본 결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청구기호 : 화산B12-A470)에 소장된 別集卷8-13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1609-1649년이라는 시기비정은 단순히 光海-仁祖間로 본 것이지 이것이 곧 1624년 이전에 간행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23) 金重權. 앞의 글. 2008. 315쪽.

  • 하정용ː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書誌的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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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4년 사이에 다른 갑진자체 내의원자본이 간행되었는가에 모아진다. 이 시기는 갑인자체 훈련도감자가 본격적으로 인행된 시점으로 이시기

    에 내의원에서 인행이 되었다면 1624년까지는 갑진자체훈련도감자가 아닌 갑진자체 내의원자

    본이라는 확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게 될 수 있는 전제조건은 임란이후

    의 서적출판의 필요성과 활자의 부족 등으로 인

    하여 갑진자체 목활자를 14년간 아무 이유 없이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앞서 살펴본 목활자본 식물

    본초는 아사미문고본 보다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대본과 옥산서원본이 존재하고

    있다. 당시의 출판 상황을 살펴보면 같은 책을 연달아서 매년 출간되었을 리는 없으므로 몇 년

    을 사이에 두고 출간되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

    을 것이다. 그렇다면 갑진자체 목활자본이 사용이 확인이 잘 안 되는 14년 사이에 비정해 볼 수 있다. 또한 현재 발견되지는 않고 있지만, 1607년부터 1624년 사이에 다른 갑진자체의 존재는 충분히 상정될 수 있는 것이다.

    5. 내의원자본의 교정

    마지막으로 한 가지 보족해야 할 점이 있다. 내의원봉교서인 갑진자체 목활자본인 식물본초의 내용상의 정확성 즉 신뢰성에 관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살펴보면, 의서 편찬시에 내

    의원에서 행한 교정작업을 들 수 있다. 생명을 다루는 서책인 의서의 간행에 있어서 오탈자 등

    은 매우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교정작업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

    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오탈자가 많아 그 신뢰성이 많이 의심되고 있는 갑진자체훈련도감자와

    의 차별성이 있는 것이다.전고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편찬, 교정, 간행

    을 비롯한 일체의 과정을 내의원이 직접 주도하

    였고 관장했다면, 명실 공히 내의원자본이라는 명칭은 공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25) 특히 내의원의 의원들이 책임을 맡아 직접 교정에 참여하

    고 나아가 각자공이나 인쇄공들과 긴밀한 관계

    를 이루며 교정을 정확히 했다면 이러한 출판환

    경 속에서 인행된 의서의 신빙성은 보다 제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근대 특히 조선시대의 관찬은 매우 정확했을 것이라고 추정됨에

    도 불구하고, 훈련도감자본을 비롯한 실제적으로 수많은 오탈자 등의 문헌적 변용을 내포하고 있

    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의서인 만큼 수차례에 걸친 정밀하고도 신중한 교정과정을 거쳐야 했

    다. 실제로 인쇄장인의 상벌에 대한 규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선조실록과 眉巖日記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중종이후 명종․선조를

    거치면서 인쇄장인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무

    거운 것에 대하여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실제로

    는 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의서의 경우는 그렇지도 않다고 봐야 할 것이

    다. 당시는 醫書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醫書

    24) “內醫院에서 啓하기를, 전쟁 이후로 內醫院 의서가 없어져서 약을 의논할 때에 참고할 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 배우는 학생들도 알 길이 없습니다. 이제 없어진 모든 책을 수습하여 겨우 1, 2책을 얻었습니다. 活字로써 약간의 醫書를 印出하려고 종이는 本院에서 구비하였으나 인출하는데 醫役의 품삯을 감당할 길이 없

    습니다. 혹 校書館 장인 10名과 粮料를 얻는다면 의서를 印出할 수 있겠습니다. 해당 관서로써 모든 都監에게 의뢰하여 醫人들의 朔料를 주어 즉시印出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宣祖實錄: 宣祖 39年(1606) 5月 14日條}

    25) 六典條例(1867)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조선전기부터 인쇄기능을 주로 담당했던 교서관 외에도 관상감에 균자장 1명, 인출장 6명, 각자장 2명의 공장이 규정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 관상감에서 간행했던 冊曆의 인출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견해가 최근 제시된 바 있다(옥영정. 인쇄관청의 활자인쇄 匠人에 대하여. 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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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監役官과 監印官을 두었으며, 이들에게는 교정이 잘 되었을 경우 賞을 주고 착오가 많을 경우는

    심한 벌을 가하기도 하였다.26) 이러한 사실은 내의원에서의 활자 인출과 교정 과정을 가장 극명

    하게 알려주고 있다.

    “內醫院에서 啓하기를 東醫寶鑑을 下 三道에 나누어 보내어 간행하도록 各 道에 통보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러나 卷帙이 매우 많아

    서 功役이 적지 않으므로 各處의 보고가 한결

    같지 않았습니다. 各道에다가 材料를 준비하여서

    해가 바뀌면 나누어 간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冊은 다른 책과 좀 달라 두 줄로 소주를 써놓아

    서 字數가 細密하고 刊刻이 매우 어려우며 藥名,

    病의 처방이 조금이라도 착오가 있다면 생명에

    관계되는 데, 다만 本冊이 없어서 필사본 一件

    을 간행했을 뿐이니 의거할 길이 없습니다. 이제 

    萬一 外方에서 印出하게 하면 完成하기에 時

    日이 걸릴 뿐만 아니라 舛錯이 있을 때는 매우

    어렵다. 臣等이 다시 本院 (內醫院) 에서 별도

    로 局을 設置하고 活字로 印出하여 醫官에게 校

    監하게 하되 앞날 醫書 印出時의 例와 같이하면

    일이 반드시 成就되고 訛誤의 염려도 없을 것이

    다. 다만 該司가 物力이 어려우니, 생각하건대 

    一朔所用의 料布는 米太 모두 18石, 무명 20 餘

    疋에 不過하니 1年의 공역을 통 털어 계산하여

    도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지금에 담당 관

    서에서 단독으로 마련하려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니 下 三道에 이미 준비된 재료를 각각 수

    송케 하여 京局의 刊行을 돕는다면 彼此 公私

    가 모두 便宜할 것이므로 臣等이 다시 印稟합니

    다하니 傳曰, 啓에 따르게 하다.”27)

    이와 같이, 의서의 교정과정에 허준을 비롯한 내의원의 의원들이 직접 참여했음을 미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의학적인 가치와 신빙성은 충분히 제고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시기 의서편찬에 있어서 내의원이 교

    서관의 기능을 대행한 명실상부한 의서간행기관

    이 된다.28)

    특히 와 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인출과정 뿐만 아니라 인출된 후에도 교정

    을 하여 오탈자를 부분을 도려내고 새롭게 해당

    26) 金重權. 앞의 글. 2008. 317쪽.27) 朝鮮王朝實錄(鼎足山四庫本). 光海君 3年 11月 21日(丙辰). 卷47. 冊11. 10. “內醫院啓曰,以東醫寶鑑, 分送下三道, 使之刊刻事, 曾已啓下, 移文各道,日月已久, 而卷秩甚多, 功役不貲, 故各處頉報及狀啓, 前後非一, 然猶申飭各道,整備材料, 歲後卽爲分刊矣, 回念此書與他冊有異小註分行, 字數細密, 刊刻甚難,藥名病方, 小有差誤, 卽關係性命, 旣無本冊, 只以寫出一件飜刻, 更無憑准之路, 今若付之外方, 則非但玩揭稽遲, 完畢無期, 抑恐舛錯訛謬, 終爲無用一本, 臣等爲是之慮, 更爲商量, 則自本院, 別爲設局, 以活字印出,醫官監校, 如頃日醫書印出時例, 則事必易就, 而又無訛誤之慮矣, 第以該司物力爲難, 竊計一朔該用料布, 則米太幷十八石, 木二十餘疋,不過一年之役,統 計不至大段,而 只今該司獨辨, 則亦恐不易, 下三道業已措備材料量出應入木布, 各自輸送, 以助京局, 則彼此公私, 俱爲便宜,臣 等百爾思之, 此計最優,敢此仰稟傳曰, 依啓.”  

    28) 임시기관이었던 실록청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참조해 보면, 실록청은 임시기관으로 실록이 완성되면 해체되는 기구였다. 따라서 인쇄용구는 물론 인쇄물품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국가적인 대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국력을 경주하였으며 필요한 물품은 모두 해당관청에 요청하여 협조를 받았다. 그러므로 인쇄용구도 교서관에서 빌려다 쓰고 완료 후는 반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사용한 목활자도 교서관에서 빌려오고, 때로는 훈련도감과 공신도감에서 빌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부족한 활자는 동원된 匠人이 刻字해서 사용한 후 교서관에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배현숙. 출판기관으로서의 실록청에 관한 硏究. 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 251쪽.). 이러한 실록청의 인쇄에 대한 모습을 보면 내의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상감에서는 역서를 인출했듯이 훈련도감에서는 군사서를 인출하였고 내의원에서는 의서를 인출하였을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조 및 광해군대에 내의원에서 의서의 간행은 인출과정도 함께 이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내의원의 경우는 예전부터 醫書撰集廳을 마련하여 의서를 편찬, 간행을 주도하기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하정용ː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書誌的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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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9. 내의원자본 본문 교정부분 앞면

    부분만 인쇄해서 붙이는 과정도 엿보이고 있어

    내의원자본 의서들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더욱

    높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6. 맺음말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食物本草는 본초학연구의 중요자료로서

    한중일 3국에서 여러 차례 출판되었다. 특히 동의보감에도 여러 차례 인용되는 등 한국전통의학연구 특히 본초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서지자

    료이다.2. 食物本草는 조선시대 중종조 이후에 간행

    되었으며, 현존하는 食物本草는 16세기 후반인 선조 초년에 인행된 것으로 보이는 동활자판 갑

    진자본(가천박물관 소장본)과 1607년 이후에 인행된 것으로 보이는 목활자판 갑진자체 내의원

    자본(고려대학교 소장본, 아사미문고소장본, 옥

    그림 10. 내의원자본 본문 교정부분 뒷면

    산서원본)의 2종 4건이 존재한다.3. 동의보감을 포함한 내의원자본은 을해자

    체임에 반해, 食物本草는 갑진자체인 관계로 식물본초자본 또는 갑진자체훈련도감자본으로

    불려 왔으나, 내의원에서 간행한 것이 확실한 관계로 갑진자체내의원자본으로 불릴 수 있다.

    4. 갑진자본과 갑진자체내의원자본을 비교한 결과 40년도 안 되는 기간 가운데 차례로 인행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갑진자본에는 동활자가 중심이지만 목활자가 많이 혼입되어 있으며, 갑진자체내의원자본은 목활자가 중심으로 더러 동활

    자가 혼입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40년 사이에 동활자가 점점 마모 등으로 사라지고

    이를 대신하여 사용된 목활자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선조 초년에도 의서로서 갑진자본이 많이 내의원봉교서로 인행되었다. 이는 17세기 초반 동의보감을 비롯한 을해자체 내의원자본 출간의 토대와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 醫史學 제18권 제1호(통권 제34호) 1-14,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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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 있다. 따라서 17세기초반에 이르러 갑자기 내의원에서 내의원자본을 비롯한 각종 의서를

    출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갑진

    자본 의서를 출간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5. 식물본초가 간행된 1607년부터 갑진자체

    훈련도감자본인 소재선생문집이 인행된 1624년 이전까지의 근 17년간에 간행된 의서는 갑진자체내의원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갑진자체내의원자본은 1624년 이후의 갑진자체 훈련도감자본과 의서라는 특성과 함께 정밀한 교정

    을 그 차별성으로 들 수 있다.이와 같이 1607년에 인행된 목활자본 식물본

    초가 갑진자체 내의원자본임을 증명해 보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 등에서 호성공신으로서 왕을 끝까지 봉행했던 허준과 허임이 활

    약했던 선조 대는 내의원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내의원이 출판까지 직접 관장한 것이며 그 증거가 바로 내의원자본

    이다. 나아가 이 내의원자본은 을해자체 뿐만 아니라 갑진자체도 존재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

    면서 결론에 갈음하고자 한다. 전고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본고는 성격상 서지학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융합과 통섭의 측면에서 의사학 및 한국전통의학 관련 연구자를 위해서 서지

    학적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작성한 논문이

    다. 왜냐하면, 동의보감을 비롯한 내의원자본의 성격을 보다 정밀하게 규정하기 위해서는 의

    사학적인 측면에서 내의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

    한 검토 및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색인어 : 내의원자(內醫院字), 동의보감(東醫寶鑑), 허준(許浚), 훈련도감(訓練都監), 목활자(木活字), 을해자체(乙亥字體), 갑진자체(甲辰字體), 식물본초(食物本草), 동활자(銅活字)

    투고일 2009. 5. 15. 심사일 2009. 5. 26. 게재확정일 2008. 6. 16.

    謝辭

    본고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자료제공 및 사진촬영 등 여러 모로 도움을 주신 고려대학교 한적실 한민섭 사서,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의 심효섭 학예실장과 최운종 학예사, 광주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김중권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영정교수, 성균관대학교 천혜봉명예교수과 한국한의학연구원 학술정보부 안상우 부장, 그리고 2008년 가을 대한의사학회 발표회장에서 천금과 같은 조언을 주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신동원 교수와 국립암센타 암예방검진센터 서홍관 책임의사를 비롯하여 심사를 통해서 많은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않으신 학회 관계자 분들께 지면

    을 통해서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 하정용ː甲辰字體內醫院字本 食物本草에 대한 書誌的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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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宣祖實錄光海君日記

    食物本草: 가천박물관본 등

    옥영정. 인쇄관청의 활자인쇄 匠人에 대하여. 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王有朋 編. 中國中醫古籍總目. 중국 상해: 上海世紀出版穀份有限公司; 2007

    金重權. 朝鮮朝 內醫院의 醫書編刊 및 醫學資料室에 관한 硏究. 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

    송정숙. 훈련도감의 인쇄·출판 활동. 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안상우. 고의서산책(64)-식물본초-. 민족의학신문 2001년 3월 19일(310호)하정용. 內醫院字本硏究의 諸問題-東醫寶鑑 硏究를 위한 先行課題-. 醫史學 2008;17(1)河廷龍. 韓国書誌学に関していくつか考えることーウェブを通じた韓本(朝鮮本)研究ー. 関西大学視聴覚教育 2007;30

    Myeong Soo Lee, PhD, Jong-In Kim, OMD, PhD, Jeong Yong Ha, PhD, Kate Boddy, MA, and Edzard Ernst, MD, PhD, FRCP, FRCPEd. Yoga for menopausal symptoms: a systematic review. Menopause: The Journal of The North American Menopause Society 2009;16(3). The North American Menopause Society, DOI: 10.1097/gme.0b013e31818ffe3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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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

    A bibliographical study on the Gapjinjache Naeuiwonjabon(甲辰字體內醫院字本) of Sikmulboncho(食物本草)

    HA Jeong-Yong*

    Sikmulboncho that is quoted several times to Donguibogam(Medical Thesaurus of Korea) published several times in 3 countries(Korea, China & Japan) as important data of botany study. Gapjinjache(甲辰字體) Sikmulboncho, one of the bronze metal type, that exist our country was publicated in early Seonjo(1552-1608) era. Actually there are 3 items(Korea university collection, Asami library collection, Oksan seowon collection) of Gapjinjache Naeuiwonjabon(甲辰字體內醫院字本) one of the wooden type seen become publication after 1607 year. Bronze metal type composes the major part for Gapjinjabon(甲辰字本), but wood type was also mixed much. Wooden type composes the major part for Naeuiwonjabon(內醫院字本), while bronze type was little mixed. Bronze metal type disappears by wear class gradually to during 40 years and instead of this, used wood type was used. Foundation and base of this publication have formed in itself Eulhaejache Naeeuiwonjabon(乙亥字體內醫院字本) that start Donguibogam in process that do this way. Therefore, Naeeuiwon(內醫院) do not publish various medical books like a Naeeuiwonjabon(內醫院字本) suddenly in early 17th century. I can speak that is caused in experience and potential power that already publish this Gapjinjabon(甲辰字本) medical book ago by medical history.

    Key word : Naeeuiwonja(內醫院字), Dongeuibogam(東醫寶鑑), Heojun(許浚), Hunryeondogam(訓練都監), movable wooden types(木活字), Eulhaejache(乙亥字體), Gapjinjache(甲辰字體), eatable botany(食物本草)

    * Institute of Songchol Seo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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