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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 2009. 3.31 심사완료일 : 2009. 6. 9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활용 방안 1. 머리말 2. 문화재 유출 현황과 경위 3. 문화재의 반환 근거와 법적 과제 4. 문화재의 반환 유형과 사례 분석 5. 문화재의 환수와 활용 방안 6. 맺는말 김종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행정사무관 Kim, Jong Soo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Cultural Heritage Division assistant director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활용 방안 · 일본 유출 문화재 의 ...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품과 고려 및 조선시대의 미술공예품이 이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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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투고일 : 2009. 3.31

    심사완료일 : 2009. 6. 9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1. 머리말

    2. 문화재 유출 현황과 경위

    3. 문화재의 반환 근거와 법적 과제

    4. 문화재의 반환 유형과 사례 분석

    5. 문화재의 환수와 활용 방안

    6. 맺는말

    김 종 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행정사무관Kim, Jong Soo|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Cultural Heritage Division assistan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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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김 종 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행정사무관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1. 머리말

    국외로 불법 반출된 문화재를 기원국(state of origin)으로 반환하는 문제가 최근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

    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의 북관대첩비, 도쿄대 소장 조선왕조실록의 환수와 현재 민간 차원에서 추진

    중인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조의궤 및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은제라마탑형 사리구 환수운동 등은

    이 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고조된 관심을 잘 반영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관련 국가들의 환수 노력과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의 지속적인 문화

    재 반환 촉진 운동 등은 국제사회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는 문명과 민족문화의 기본요소 중 하나를 이루며 기원, 역사 및 전통 등과 관련하여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따라서 자국의 영역 내에 존재하는 문화재를 도난, 도굴 및 불법적 유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에 부여된 책임으로 인식된다.1) 이런 맥락에서 세계 각국은 일찍부터 법적 장치

    를 통하여 보호해 왔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문화재의 규제적 규범을 지속적으로 발전

    시켜 왔다. 불법 또는 약탈된 문화재의 반환은 국제적 문제로서 특히 식민지 시대에 불법으로 반출되거나

    약탈된 문화재의 반환 문제는 문화재 보유국과 문화재 반환 청구국간의 첨예한 쟁점사항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한말 이후 광복 직후까지 국가사회의 혼란기에 많은 양의 문화재들이 해외로 유출

    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하의 문화재 약탈은 개인적인 물질적 욕망과 동기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와 민족

    문화의 말살이라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문화재 약탈 규모의 방대함이나 그 질의

    뛰어남으로 볼 때 매우 체계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국가적 약탈 행위에 해당된다.2)

    1) 1970년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전문.

    2) 정순훈․김형만․김민서, 1995,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그 해결방안-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을 중심으로」, ꡔ청산하지 못한 일제시기의 문제ꡕ,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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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문화재 반환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문제로서 국가 사이의 이견을 좁히기가 어려운 사안

    이다. 더구나 국제적으로도 문화재에 대해 인류 공동 유산설과 민족문화 유산설이 대립되는 현실이다.3)

    최근 다양하고 활발한 문화 활동으로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언론을 통해 문화

    재 보호와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실제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일부 문화재가

    반환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국회 및 정부에서도 해외 유출 문화재 조사 및 환수를

    위한 관련 법률의 제․개정과 중장기 계획 수립 등4)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 종합적인 문화재

    반환 대책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학계에서의 문화재 반환에 대한 연구도 조금씩 진척되고 있다.5) 다만 한․일 문화재 반환에

    관한 최근까지의 연구는 한․일 문화재 협정의 문제점 분석을 중심으로 문화재 약탈의 역사, 문화재 반환

    의 당위성, 그리고 국제법적 관점에서의 문화재 반환과 원상회복에 관한 연구에 치중된 감이 있다. 물론

    한․일 간의 특수한 역사관계를 규명하면서 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제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재 반환에 관한 한․일간의 문제는 좀 더 다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일본으로 불법 유출된 한국문화재의 경우 기본적으로 지배-피지배의 ‘식민지 관계’였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식민지 문화재 반환 모델과 유사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 간의 오랜 역사적 관계에서 오는

    ‘특수성’이 문화재 반환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간 문화재 반환문제는 단순히 국제법적 규범이나 한․일간 체결된 문화재 관련 협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더 나아가 점차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가 공동으로 제기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제는

    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본고에

    서는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반출을 중심으로 일본에 유출된 한국문화재의 반환 근거와 법적 과제를 검토하

    고 그동안의 문화재 반환(환수) 사례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다양한 문화재 반환 방안을

    모색하여 향후 문화재 반환정책 및 추진전략이 수립되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

    울:정신대연구소/대한국제법학회, 151쪽.

    3) 문화재의 ‘인류 공동 유산설’과 ‘민족문화 유산설’의 대립된 견해로서 전자는 ‘문화재를 인류공동의 재산으로 보아 문화재가 어디에 있든 그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으면 된다’는 주장이고, 후자는 ‘문화재는 민족의 유산이므로 그 문화를 창조한 원산국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J.H. Merryman, 1986,

    “Two Ways of Thinking about Cultural Property”, The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80. pp.831~853).

    4) 양승조 의원 등이 발의한 ‘해외소재 우리 문화재 환수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과 문화재청에서 추진 중인 ‘문화재보호법 전부 개정 법률안’ 및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 및 활용 중장기 계획’ 수립(‘09. 2) 등은 국회와 정부가 문화재 반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사례이다.

    5) 관련 연구는 다음과 같다. 배재식․백충현․이상면, 1994, 「한․일간의 법적 제문제-1965년 제조약의 시행상의 문제」, ꡔ서울대학교 법학ꡕ 제35권 2호 ; 백

    충현, 1989, 「해외 유출․불법 반출 문화재 반환의 국제법적 규제」, ꡔ서울대학교 법학ꡕ 제30권 3․4호 ; 이강숙, 1998, 「불법 유출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

    법적 고찰」,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 정순훈, 1995,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그 해결 방안」, ꡔ배재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ꡕ 제12집 ; 김형만, 1997,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 조부근, 2007, 「1965년 한․일 문화재 협정의 한계와 과제」, ꡔ한․일 불법문화재 반환 촉진 정책포

    럼ꡕ ; 홍성필, 1999, 「문화재 불법 유통에 관한 국제적 규제」, ꡔ대한국제법학회 제5차 학술세미나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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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문화재 유출 현황과 경위

    한국과 일본은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적, 문화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오늘날 일본에 남아

    있는 수많은 한국 기원 문화재들은 과거 한․일간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증거들이다.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문화재 중에는 우호적인 교류를 통해 일본에 전해진 불경, 불상, 불화 등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도덕

    적․비합법적 방법으로 불법 유출된 것들이다. 현재 일본에 소재한 한국 기원 문화재가 총 34,369점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전체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45%에 해당하는 수치이다.6) 그러나 이것이 전수조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박물관 등 공개 장소를 중심으로 극히 부분적으로 조사된 집계임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는 수 십 만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문화재가 본격적으로 유출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일제는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

    하고 개항 이후 문화재의 약탈과 수집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1910년 이후에는 조선인의 ‘사회교화’라

    는 이름으로 도쿄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의 동양사관련 학자들과 건축학자들을 파견하여 조선사와 만주

    사의 연구와 고적의 조사 발굴을 유도하였다. 비록 유물과 유적지의 보호가 표면적인 명분이었지만 그

    목적은 문화재의 역사성과 본래 문화와의 분리, 식민통치 차원의 문화재 해석과 전시 등 문화 식민지의

    실현에 있었다.7) 그와 관련하여 이하에서 일종의 문화재 반출 사업에 해당되는 조선 고적조사사업, 그리

    고 일본에 소재한 주요 한국 기원 문화재 컬렉션의 현황과 경위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 조선 고적조사사업과 문화재 반출

    일제의 한국문화재 약탈과 반출은 1905년 전후와 1910년 이후의 식민지 치하에서 크게 성행하였는데

    일제 총독부의 관리 하에 실시된 고적조사사업에 의한 발굴 문화재 및 당시 한국에 있었던 일본인들에

    의한 도굴과 파괴, 반출이 그것이다. 1902년 8월 당시 도쿄제국대학 조교수였던 고건축 전문가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경주일대를 찾아와 고적을 조사하였고 그 이후에도 몇 차례나 한국의 건축과 고적을

    조사 답사하여 「조선건축조사보고」, 「조선의 석탑파」 같은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활동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기본적인 문화자료로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한국의 유적유물을

    세상에 드러내어 도굴꾼들의 좋은 정보가 되고 말았다.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나 불국사 사리탑 등 많은

    문화재의 약탈과 불법 반출의 배경에는 이러한 세키노의 조사활동이 있었다.8)

    1910년 전후에 조사 출토 채집된 유물들은 조사 참가 연구자와 관계가 있는 대학이나 박물관에 소장되

    었고 ‘고적급유물보존규칙’이 시행된 1916년 이후의 발굴 유물들은 원칙적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소장

    6) 문화재청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08.12.31 현재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는 총20개국에 76,143점이다.

    7) 이보아, 2003, ꡔ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ꡕ, 민연, 127쪽.

    8) 이구열, 1996, ꡔ한국문화재 수난사ꡕ, 돌베개, 제2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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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되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 소장자료는 이후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어졌으나 발굴유물 연구조사

    등의 이유로 이후에도 일본으로 출토유물이 지속적으로 유출되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까지 일본에

    남아있다. 주로 고분 및 출토유물은 일본의 도쿄대학 문학부 고고학연구실과 총합연구박물관, 도쿄예술대

    학 미술관, 교토대학 고고학연구실과 총합박물관, 큐슈대학,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분산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9)

    이 시기의 고적조사는 사실상 일제 총독부의 지시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위한 기초자료 수집 또는

    식민지 통치를 보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으며, 조사 및 출토유물 상당수가 총독 또는 총독부 관리

    들의 묵인 내지 허가에 따라 조사 연구자 등이 임의로 일본으로 반출한 것으로서 이는 마땅히 반환하여야

    할 우리의 문화재이다.

    나. 일본 소재 주요 한국 기원 문화재 컬렉션

    (1)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란 일제강점기 시기에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5)가 한반

    도에서 수집한 고고유물을 비롯하여 회화․조각․공예․전적․복식 등 1,000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한국

    유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대구에서 대흥전기, 남선합동전기라는 당시 조선 최대의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경제적인 부를 바탕으로 1921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수집하여 그것을

    일본과 대구의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한국이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에 있던 유물

    을 중심으로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라는 재단을 설립하였으며 그의 사후 재단은 아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3층 동양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구라 컬렉션의 총수는

    1,110건이며, 그 중 한국의 문화재는 1,030건으로 이에는 고고유물 557점, 조각 49점, 금속공예 128점,

    도자기 130점, 칠공예 44점, 서적 26점, 회화 69점, 염직 25점, 민속 2점 등이다.10)

    고고유물은 신석시 시대,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다양하며 다시 삼국,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품과 고려 및 조선시대의 미술공예품이 이를 잇고 있다. 이 중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8점이고 중요 미술품으로 인정된 것이 31점 포함되어 있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소재 한국문화재

    중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일제강점기 시절에 불법 유출된 문화재로서 1965년

    한․일 문화재 협정 시 우리 측의 반환 요구가 있었으나 오구라 개인의 사유 컬렉션이란 이유로 반환되지

    못했다. 오구라 컬렉션이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국유재산이 된 후에 우리 측은 한․일 문화교류

    실무자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반환을 요청하였으나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학술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해 1999~2002년까지 총4차에 걸친

    9) 문화재청, 2007, ꡔ불법문화재 반환 국제사례 및 추진전략 연구ꡕ, 38~41쪽.

    10)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도록」, ꡔ해외소재 문화재 조사서ꡕ 제12집,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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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를 실시하고 2005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협력을 얻어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도록을 발간하

    였다.11)

    (2) 아타카(安宅) 컬렉션 한국문화재12)

    아타카 컬렉션은 한때 일본의 10대 무역상사였던 아타카 산업의 회장 아타카 에이이치(1901~1994)가

    모은 1천여 점의 도자기를 말하는 것으로 컬렉션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793점의 한국 도자기들이다.

    아타카 산업은 1976년 2차 오일쇼크 때 파산했는데 당시 컬렉션이 흩어지거나 해외로 유출되어서는 안된

    다는 여론이 일자 1980년 아타카 상사의 파산 관리를 책임진 스미토모은행(住友銀行)이 아타카 컬렉션을

    오사카시에 기증하기로 결정하여 1982년 오사카동양도자전문미술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문화재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통해 기증문화를 활성화하고 있는데 1999

    년 한국과 중국 도자기 350여 점을 이 미술관에 기증한 이병창씨를 기리는 이병창 컬렉션실이 그 대표적

    인 예13)이다. 아타카 컬렉션의 한국도자기들은 고려청자의 최전성기인 11~12세기에 제작된 청자가 상당

    수를 차지하며 그 외 분청사기, 청화백자, 진사․철사백자 등이 있고 형태별로도 매병, 호, 발, 완, 수주,

    향연, 합, 수적 등 다양했다.14) 오구라 컬렉션 중 한국 도자기는 130점인데 비해 아타카 컬렉션은 793점

    이나 되고 그 중 상당수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일본 소재 한국 도자기의 양과 질에서

    단연 최고를 자랑한다.15) 아타카 컬렉션 한국도자기의 수집경로가 반드시 한국에서의 불법유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해외로 유출된 한국의 문화재임에는 틀림없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아타카

    컬렉션은 일본에 소재한 한국 기원 문화재가 공개전시를 통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선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3) 기타 한국문화재 컬렉션

    도쿄국립박물관의 한국문화재는 약 4,800건으로 집계된다. 그 가운데 고고유물이 2,000여 건으로 가장

    많고 그 밖에 회화․조각․서예․금속공예․도자기․칠공예 등 매우 다양한 종류가 소장되어 있다.16)

    그 중에는 1932년 도쿄황실박물관에 매각된 가루베 컬렉션 일부도 포함되어 있다.17) 가루베 지온(輕部慈

    恩)(1897~1970) 컬렉션이란 일제강점기 시기 공주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송산리 6호분 도굴 및

    11)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도록」, 13쪽.

    12) 필자는 ‘07. 6. 6~6.10까지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을 방문, ‘美의 구도자-安宅英一의 안목’ 특별전에 출품된 한국 도자기 명품을 관람하였고 미술

    관 관계자와 면담을 가졌다.

    13) 이병창씨는 1949년 주일대표부 초대 오사카사무소장으로 일본에 부임한 후 평생을 일본에서 지낸 외교관이자 사업가, 도자기 연구가이다. 이 때문에 미술관

    측은 ‘이병창 컬렉션실’을 설치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미술관측에서는 기증자의 이름을 명패에 새기고 매년 4차례 이상 기증 문화

    재전을 개최하고 있다(片山まび,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학예원).

    14) 일본 讀賣新聞大阪本社, 2007, 「美의 구도자-安宅英一의 안목 전시도록」 참조.

    15) 아타카컬렉션 한국 도자기 중 고려청자는 11~12세기 극성기에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07. 6. 7, 윤용이 문화재위원의 아타카

    컬렉션 전시 설명).

    16)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앞의 책, 12쪽.

    17) 林容子, 2007, 「일본내 한국문화재 반환상의 문제점 및 제도 개선방안」, ꡔ한․일 불법문화재 반환 촉진 정책포럼ꡕ, 문화재청/유네스코 한국위원회,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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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부장품을 약탈하여 광복 후 일본으로 유물을 불법 반출해 간 인물의 컬렉션으로 당시 한국문화재 약탈

    및 반출로 오구라와 쌍벽을 이루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18) 2006년 11월 가루베의 유족들은 일본 나라

    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이던 백제기와 4점을 공주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다.19)

    3. 문화재의 반환 근거와 법적 과제

    앞에서 살펴본 대로 현재 일본에 유출된 한국문화재의 양은 방대하다. 그 가운데 일부 문화재는 한국에

    반환된 상황이다. 1965년 한․일간에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어 문화재의 반환 근거

    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협정이 체결된 맥락과 협정의 내용을 감안하면 앞으로 진행될

    법적 과제를 상정하여 해결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하에서는 문화재의 반환 근거가 되고 있는 1965년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의 내용과 문제점, 그리고 문화재 반환과 관련된 법적 과제를 살펴보고

    자 한다.

    가. 1965년 한․일간의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20)

    과거의 식민지배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식민지배 시에 유출된 문화재의 반환 문제는 국제사

    회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과 우리나라의 과거 식민 관계 청산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1965년 과거의

    식민지배에 따른 법적 문제를 5가지 항목에 걸쳐 조약 및 협정에 의해 해결하고자 한 한․일 협정은

    한․일간의 구 식민 관계를 법적으로 청산하고 앞으로의 협력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함이 그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협정 체결 이후 44년 동안 크게 변화된 국제환경과 양국의 국내사정은 ‘1965년의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비롯한 한․일간 제 협정에 대하여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21)

    (1) 협정의 내용

    ‘1965년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1965년 12월 18일 조약 제181호)은 모두 4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에 딸린 부속서가 포함되어 있으며 본 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1965년 12월 18일 조약

    제182호)이 추가되었다. 본 협정은 ‘양국문화의 역사적인 관계’에 비추어 과거 불법 유출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주요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제2조는 본 협정의 핵심내용으로서 일본정부는

    18) 이구열, 앞의 책, 197~199쪽.

    19) ꡔ조선일보ꡕ․ꡔ한국일보ꡕ 기사(2006.11.28) 참조.

    20)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서명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협정.

    21) 예컨대, 1970년 유네스코 협약, 유엔에서의 문화재반환 논의, 유네스코 정부간 위원회 발족, 일본의 1970년 유네스코 협약 가입, 일본과 북한 간 수교 추진,

    한류 및 일본문화 개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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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부속서에 열거된 반환대상의 문화재를 합의된 절차에 따라 한국정부에 인도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즉 본 협정에는 ‘식민시대에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의 원상회복 또는 반환’의 표현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한국문화재에 대한 일본의 법적 인도 의무의 규정은 ‘1965년 문화재협정’의

    기본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22)

    협정 제2조에 의하여 문화재 반환이 이루어졌으므로 동 부속서에 열거되지 않은 문화재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협정의 본문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바가 없다. 따라서 부속서에 열거되지 않은

    문화재에는 제2조가 적용되지 않으며 별도의 합의를 요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본 협정과 불가분

    의 관계를 이루는 ‘합의의사록’에는 양국대표의 뜻을 표명하는 형식을 통하여 부속서에 포함되지 않은

    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향후 기본방침을 합의하였다. 즉 일본국민이 사유하고 있는 한국에 연유하는 문화

    재가 기증의 형식으로 반환되어야 한다는 한국 측의 희망과 이러한 문화재가 자발적으로 기증되도록

    일본정부가 권장한다는 내용이다.

    문화재 반환에 관한 양국 협력의 기본방향은 협정 제1조가 천명한 ‘문화관계 증진을 위한 가능한 협력’

    에 합치되어야 하고 1965년 한․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의 전문과 제4조에서 유엔헌장의 원칙을 지침으

    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한 점에 비추어 유엔 혹은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법 질서의 발달에 부응하도록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23)

    (2) 협정의 문제점과 평가

    1965년 문화재 협정의 문제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협정의 제목에 일본 소재 한국문화재

    의 ‘반환’ 내지 ‘원상회복’의 표현이 없다. ‘1965년 문화재 협정’은 “양국문화의 역사적인 관계에 비추어”

    라는 피상적인 표현으로 일본의 문화재 반출 및 약탈에 대한 불법성 천명을 회피하고 있고 단순한 문화협

    정으로 완화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24) 식민지 지배 자체가 위법한 침략행위에 근거한 것이고 그러한

    불법적 지배 상황 하에서 일제의 문화재 반출행위는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던 것임을 고려할 때 이것은

    당연히 불법이다.25)

    본 협정은 불법적이고 무효인 일본의 식민 지배를 법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것이므로 마땅히 과거 식민

    지 기간 동안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발생한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되며, 양국간

    신뢰와 우호 증진을 위해서는 문화재 반환이 필수적임을 선언했어야 했다.26) 문화재 반출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상대방이 반환에 일단 동의하더라도 어떤 대가

    를 요구할 수도 있으며 문화재 반환 의무 인정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22) 김형만, 1997,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19쪽.

    23) 백충현, 1989, 「해외 유출․불법반출문화재 반환의 국제법적 규제」, ꡔ서울대학교 법학ꡕ 제30권 3-4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44쪽.

    24) 김형만, 앞의 글, 221쪽.

    25) 배재식․백충현․이상면, 1994, 「한․일간의 법적 제문제-1965년 제조약의 시행상의 문제점」, ꡔ서울대학교 법학ꡕ 제35권 2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37쪽.

    26) 1970년 유네스코 협약 제11조 참조(http://www.unesc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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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둘째, 소극적인 문언 규정이다. 협정 제1조는 ‘문화재 반환’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으며 “가능한 한

    협력한다”는 표현으로 되어 있어 본 협정의 주목적인 문화재 반환의 정당성이 모호해졌고 이와 관련된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의무이행도 미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극적 표현은 합의의사록에서도 드러나고

    있는데 일본은 일본 국민의 사유문화재를 자발적으로 한국에 기증하는 것이 양국의 문화협력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하여 이를 권장하겠다는 뜻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1965년 협정 이후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일본 정부의 ‘권장’ 표명은 일본정부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증되어도 좋다는 것을 언급한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에 우리는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하는 쪽으로 해석해 왔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일본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반환의 이행방법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와 같은 일본의

    부작위 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실질적 근거를 갖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권장 노력을 표명한 합의의사록은 동 협정과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협정 제1조에서 양국정부는

    문화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협력한다는 공동협력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당해 권장노력도 이러한

    협력의무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사유문화재의 원상회복 또는 반환이 안고 있는 다양한 법률적,

    사실적 장애를 극복 내지 우회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를 취할 적극적 의무가 일본정부에 있다는 견해도

    있다.27)

    셋째, 본 협정 제2조의 부속서에 열거된 반환대상 품목 이외의 국․공유 문화재에 대해서, 그리고 일본

    정부가 자발적 기증을 권장한다는 사유 문화재에 대해서 본 협정은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부속서 이외의 여타 국․공유 문화재의 반환을 포기하거나 동 협정으로 반환문제가 종결된 듯한

    해석을 가능하게 할 우려가 있다.28) 실제로 일본정부는 1965년 문화재 협정으로 일본의 국․공유 문화재

    는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자발적 기증에의 권장 노력도 그것은 다만 자발적

    기증을 하는 것을 일본정부가 허락한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29)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유엔, 유네스코, ICOM 등의 국제기구와 NGO 등의 활동으로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법적 배경은 보다 구체적 실질적 접근방법을 통하여 해결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일본정부의

    이와 같은 무성의 내지 소극적 자세가 계속되는 한, 한․일간의 문화재 반환 문제 해결은 새로운 차원에서

    의 국가 간 양자협정을 체결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1965년의 문화재 협정은

    부속서에 열거되지 않은 일본 유출 한국문화재에 대해서도 계속 유효하며 양국이 협력하여 문화재 반환

    교섭을 계속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한․일간에 1965년 조약 및 협정을 재론하거나 개정하는 것에 현실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음을 상기할 때 1991년부터 시작된 북한과 일본 간의 수교협상에서 문화재 반환문제가 좀

    27) 배재식․백충현․이상면, 앞의 글, 38쪽.

    28) 위의 글 참조.

    29) 문화재관리국, “한․일 문화교류 실무자 회의 문화재 반환에 관한 제의 및 답변내용”(문화재청 내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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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더 심층적으로 다루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30)

    나. 문화재 반환에 관한 법적 과제

    일본 유출 문화재를 포함한 문화재 반환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하나의 원인은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

    법이 정비되지 않은 점과 사실관계의 불명확성에 있다. 근년에 와서 유럽과 미국에서 나치에 의해 약탈된

    미술품에 대해 원래 소유자의 유족이 반환을 요구하는 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문화재 반환 운동의

    기폭제가 된 엘긴 마블스를 비롯한 식민지 시대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반환요구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동향에 유의하면서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와 관련한 몇 가지 장애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일본 유출 한국문화재 반환에 대한 1차적 규범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를 통해 굴절되고 왜곡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고 진정한 양국

    간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상징적인 성격의 조약이 한․일 문화재 협정인데 동 협정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양국 간의 과거사에 대한 현격한 시각 차이와 청구권 타결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앞세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체결됨으로 인해 불법 반출 문화재 반환을 매개로 한 진정한 한․일 간의 우호와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일 협상과정에서 일본 측은 문화재 반환의 3원칙으로 ① 국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돌려준다. 다만

    반환이 아니라 기증이다. ② 사유재산은 인도할 수 없다. ③ 문화재를 인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문화적 고려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법률적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내세웠다.31) 이 원칙에

    입각한 한․일 문화재 협정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바뀌어지지 않고 있다.

    한․일 문화재 협정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이 문화재 반환을 어렵게 하는 1차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일본 유출 한국문화재 반환과 관련해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은 국제법적 규제와 이에 대한 일본의

    견해이다. 유네스코는 1970년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 및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여 1972년 4월 24일 발효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현재 이 협약에는 114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문화재의 불법적인 유통에 대한 중심적인 다자조약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32) 일본은 30년 이상 가입하지 않고 있다가 2002년 9월 9일에서야 동 협약에 대한

    비준서를 기탁하였다. 이는 스위스, 영국 및 일본과 같이 주요 예술품 거래국의 문화재 관련 국제조약의

    가입 거부로 인하여 문화재의 도난 및 불법거래가 조장된다는 국제적 비난을 고려한 것이다.33)

    30) 문화재청, 2007, ꡔ불법문화재 반환 국제사례 및 추진전략 연구ꡕ, 26쪽.

    31) 외무부 정무국편, 1961, 「제5차 한․일 예비회담 회의록」, 서울:외무부, 451~460쪽.

    32) 문화재청, 2007, 앞의 책, 15쪽.

    33) 문화재청, 위의 책, 17쪽. 참고로 영국도 2002. 8. 1 ‘1970년 유네스코 협약’에 대한 비준서를 기탁하였다.

  • 80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일본은 이 협약의 국내적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2개의 법률을 제정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문화재의

    불법적인 수출입 등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文化財の不法な輸出入等の規制等に關する法律)이다. 동 법률

    에 의해 협약 7조에 규정된 시설에 소장된 문화재가 도난당했다는 통지를 외국정부로부터 받는 경우

    이 문화재는 “특정외국문화재”로 지정되어 사실상 수입이 불가능하게 된다.

    1970년 유네스코 협약에 가입한 일본은 이전과는 달리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도난 미술품이라는 증거

    가 있으면 그 미술품을 법적인 소유자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 아울러 협약의 소급효가 없다고는 하지만

    동 협약 제11조는 식민지 지배에 의하여 직접,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 반출과 소유권

    이전에 대하여 불법임을 선언하고 있고 가입국은 협약의 제정취지와 목적을 존중해야 한다고 볼 때 과거

    식민지 지배시기에 강제적으로 반출된 한국문화재에 대해서도 이를 반환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셋째, 일본 유출 문화재 반환문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어디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실태 조사이다. 그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제교류재단, 도서관협회 등 관련기관에서 도서관․박물관

    등 공개된 장소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재 조사 작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문화재의 약 90%가

    개인 수집가의 수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인 특유의 ‘秘佛公開’34) 전통으로 인해 많은 문화재

    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1998년 우수한 미술품을 미술관에서 공개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미술품의 미술관에서의

    공개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지만 과세 문제 등으로 인해 별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35) 일본에서는 미술품, 문화재는 토지, 가옥처럼 사업용 유형자산으로 간주되어 고정자산세가

    부과되며 중요문화재, 중요 유형민속문화재,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중요 미술품에 대해서만

    고정자산세, 특별 토지보유세, 도시계획세가 면제된다.

    그러나 인정을 신청해도 희망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면 전시,

    공개, 이동에 관해 문화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장품의 공개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36) 그리

    고 소장자가 자신의 소장 문화재를 공개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경비상의 문제도 있다. 컬렉션의

    존재가 알려지면 도난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경비체제가 잘된 갤러리 보다는

    전통적으로 자택에 컬렉션을 소장하는 경우가 많아 경비가 허술하다는 점도 컬렉션의 존재를 비밀로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37)

    34) 미술품 등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통하고 접하게 되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풍습으로, 귀중하고 희귀한 것일수록 공개를 하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습성

    을 말한다.

    35) 林容子, 2007, 앞의 책, 98쪽.

    36) 위의 책, 98쪽.

    37) 위의 책,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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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4. 문화재의 반환 유형과 사례 분석

    현재까지 파악된 일본 유출 한국문화재는 34,369점인데 그 가운데 반환된 것은 5,100점으로 전체의

    14.8%에 불과하다. 더구나 34,369점이 공개 장소의 문화재 수치임을 감안할 때 비공개 문화재까지 포함

    한다면 일본에 소재한 한국문화재의 양은 더욱 방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환수실

    적은 극히 미미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일본에 소재한 한국 기원 문화재에 대한 실태조사와 반환문제

    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환수된 문화재를 환수 성격을 기준으로 유형별로 구분해 보면 총 5,100점 중 정부 간 협상에

    의한 환수가 1,660점38)(32.5%), 기증 3,435점(67.3%), 구입 4건, 반환 1건39)으로 세 차례의 정부 간

    협상에 의한 반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화재가 일본인의 기증으로 환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일본이 문화재를 돌려주면서도 ‘반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일간의 문화협력 증진

    또는 학술교류 차원에서 기증한다는 입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하에서는 일본에 유출된 문화재의 환수와

    활용 방안(5장)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문화재의 반환 사례를 환수 형식에 따라 분류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가. 정부 간 협상에 의한 문화재 반환 사례

    (1)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의한 문화재 반환

    일제강점기에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공식적인 반환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해 1965년 체결된 「한․

    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에 도자기, 고고자료, 석조미술품 등 438점, 전적

    852점, 체신관계자료 36점과 한․일 회담 중인 1958년 4월 16일 인도받은 창녕 고분 출토품 106점 등

    총 1,432점의 문화재가 돌아왔다. 그 중 창녕고분 출토품 106점은 제4차 한․일 회담 개시 다음날인

    4월 16일에 전격 인도되었는데 회담에서의 생색내기를 통해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려는 일본 측의 정치적

    의도가 개재된 것이었다.

    한․일 회담 과정에서 문화재 반환 협상 시 한국 측은 조선총독부 반출 고분 출토품 689점(일본 도쿄박

    물관 소장), 조선 통감 및 총독이 반출한 것 1,371점, 일본 국유의 분묘 출토품 및 체신문화재 758점,

    일본 지정 문화재 중 오구라 기하치로 개인 소유 80점, 기타 개인 소장품(오구라 다케노스케 외 3인)

    1,581점 등 모두 4,479점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사유 문화재는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인도품목에서 제외시켰다.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반환받은 문화재는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문화재 중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그나마 중요 문화재와 개인 소장 문화재는 제외되

    었고 어디까지나 한․일간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치적 의도로 이루어진 명목상의 문화재 ‘인도’에 불과했

    38) 북관대첩비는 실제 민관 합동으로 반환되었으나 여기서는 정부 간 협상에 포함 계산하였다.

    39)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성격으로 볼 때 반환으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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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을 뿐 불법 반출에 대한 진정한 문화재 반환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40)

    (2) 「영친왕비에 유래하는 복식 등의 양도에 관한 협정」에 의한 반환

    한․일 문화재 협정 제2조에 따라 1,432점의 문화재가 반환되었지만 이는 식민지 시대에 불법 유출된

    한국문화재 중 협정 체결 당시에 파악하고 합의할 수 있었던 극히 일부만을 해결한 것이며 국․공유․사

    유 문화재 전부에 대해서 당시에 합의에 이르지 못한 대상에 대해서는 국․공유 문화재의 경우는 계속적

    인 반환 협상이, 사유 문화재의 경우는 합의 의사록상의 자발적 기증 권장 행위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 협정과 부속서 및 이에 따른 일련의 문화재 반환 사실이 나머지 다른 문화재의 반환을 포기하거

    나 종결짓는 논거로 사용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41)

    우리 정부는 한․일 문화교류 실무자 회의를 열어 지속적으로 일본 측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한․일간 문화재 반환 문제는 1965년 협정으로 종결되었다는 입장이어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42) 그런데 유일하게 일본 정부가 한국 측이 요구하는 문화재를 기증한 사례가 있다. 1990년 한․

    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1991년 4월 체결한 ‘영친왕비에서 유래한 복식 등의 양도에 관한 협정’에

    따라 모두 227점의 궁중복식이 반환된 것이다. 이 유물은 영친왕과 왕비가 혼례식 때 입은 예복 등 의류

    와 장신구로서 홍룡포, 익선관, 옥대, 목화 등 왕복과 마고자, 두루마기, 조끼 등이며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양국 정부가 합의하여 1991년 4월 양국간 협정이 체결되었고 10월 15일

    반환되었다. 이 유물은 전후 일본에 거주하던 황태자비가 1956년에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고 그동

    안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마침 궁중유물전시관 설립을 위해 궁중유물을 찾던 한국 측이 정상회담을

    통해 제의하자 일본정부가 이에 응한 것이다.43)

    (3) 북관대첩비 반환44)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들이 함경도 경성 등 북관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북관대첩을 기념하여 1708년 북평사 최창대가 세운 승전비로서 우리 민족의 저항의식과 외세 극복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기념비이다.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함경도에 주둔한 일본군이 강탈하여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 방치되어 오다가 남과 북, 민간과 정부가 협력하여 반출된 지

    100년 만에 반환받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일친선협회, 한일의원연맹, 한일문화교류 실무자 회의

    등을 통하여 비의 반환을 일본에 요청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신사에 비 반환을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

    고, 야스쿠니 신사측은 북관대첩비의 원소재지인 북한과 합의하고 외교통로를 통하여 일본정부에 정식

    40) 배재식․백충현․이상면, 앞의 글, 36쪽.

    41) 백충현, 앞의 글, 63~64쪽.

    42) 문화재관리국, ‘한․일 문화교류 실무자회의 문화재 반환에 관한 제의 및 답변내용’ 참조(문화재청 내부자료).

    43) 林容子, 2007, 앞의 책, 93쪽(현재 이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44) 문화재청 엮음, 2005, ꡔ북관대첩비ꡕ, 가우엑사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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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의뢰하면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 후 한국의 한․일 불교복지협회와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 간에 비 반환에 관한 남북합의서가 체결

    되고 2005년 4월 23일 한국의 국무총리가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에게 비 반환을 위한 협의를

    제안해 같은 해 6월 20일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한 남북 공동노력에 합의하였

    다. 2005년 10월 3일 일본 야스쿠니 신사 이사회에서 비 반환을 공식 결정하고, 10월 12일 일본 도쿄에서

    양국 정부와 신사측은 북관대첩비 반환 합의서에 서명하게 되었다.45)

    북관대첩비는 약탈된 증거가 명백하고 비가 비록 민간이긴 하지만 개인이 아닌 신사 측에 소유권이

    있었다는 점과 한국과 북한, 일본의 종교계가 지속적인 협력채널을 유지하였으며 비의 소재지국인 북한과

    합의하여 반환을 요청할 경우 이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비의 성격이 왜군 격파를 기념으로

    하고 있는 내용이어서 일본으로서는 계속 가지고 있을 실익이 없었다는 점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북관대첩비 반환은 민간과 정부, 남과 북이 합심하여 문화재 반환을 이끌어 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본 측에서는 비록 ‘인도(引渡)’ 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민간 소유 문화재

    의 첫 반환이라는 점에서 일본 유출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 큰 의미와 함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46)

    나. 민간차원의 교섭과 기증에 의한 반환 사례47)

    (1)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史庫本의 반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임진왜란 후 유일한 현존본인 전주사고본을 모본으로 하여 새로 인출할

    때 교정본(태조부터 명종까지)으로 쓰고자 만들어졌으며 그 이후는 간행되는 대로 철종실록까지 인쇄하

    여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어 오다가 1913년 도쿄제국대학 동양사 관련 교수인 시라도리(白鳥庫吉)의 건의

    로 조선총독부가 불법 반출하여 일본 도쿄대로 이전하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잔본 73책만 있던 것을 1932년 5월 그 중 27책을 당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으며, 나머지 46책48)은

    도쿄대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2006년 3월 3일 오대산 사고본 환수를 위한 ‘조선왕조실록환수추진위

    원회’가 출범하였으며, 공동의장에 월정사 주지 정념과 봉선사 주지 철안, 자문위원 및 추진위원 등에

    국회의원, 불교계 인사, 관련 학자 등이 참여하였다.49)

    환수위원회는 조선왕조실록 반환요구서를 일본총리 및 도쿄대학에 제출하였고 2006년 3월 15일 일본

    도쿄대 관계자를 공식 면담하였다. 이 자리에서 환수위원들은 실록의 유출경위와 환수추진의 당위성을

    45) 문화재청 편, 2008, ꡔ수난의 문화재ꡕ, 눌와, 150~167쪽.

    46) 북관대첩비 반환은 민관이 협력해서 반환받은 것이나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 간 협상’ 유형에 포함시켰다.

    47) 한․일 민간단체 등의 교섭에 의한 반환 사례이다. 개인 기증은 후술한다.

    48) 실제는 47책으로 밝혀져 환수되었다.

    49) 환수추진위원회 자문위원에 김원웅․강혜숙․김영춘 의원, 역사학자 이이화, 추진위원에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임헌영 민족문

    제연구소 소장,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 등이 참여하였다.

  • 8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설명하였으며 도쿄대 측은 과거 경위 등 조사와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위해 검토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후 도쿄대는 환수위원회와 5월 31일 3차 회담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오대산 사고본 실록을

    ‘서울대학교 창립 60주년과 규장각 창립 230주년을 축하하고 도쿄대학과 서울대학교의 학술교류를 추진

    하기 위해 도쿄대학이 소장한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50)

    도쿄대가 오대산 사고 실록의 반환을 원소유지였던 월정사 등이 중심이 된 환수위원회로 하지 않고

    규장각이 있는 서울대에 기증하기로 한 것은 환수위원회에 반환할 경우 실록의 불법반출을 스스로 인정하

    는 것이 되고 추후 다른 문화재 반환에도 영향을 미칠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울대

    에 기증할 경우 1965년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의 취지에 입각한 양국의 학술교류 증진이

    라는 기증 목적과 서울대가 이미 1932년에 27책을 이관 받은 전례가 있다는 사실 등 반환에 대한 대외적

    명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2) 기타 민간단체에 의한 문화재 반환

    1996년 1월 경복궁 자선당 유구 1점이 반환되었다. 자선당(資善堂)은 1430년에 지은 경복궁의 여러

    전각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왕세자가 거처하던 동궁이었다. 이 목조건물은 1915년 일본이 통째로

    뜯어 일본으로 무단 반출했다.51) 일제는 1915년 점령 5주년 기념 만국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 장소로

    경복궁을 이용하면서 궁궐 안에 진열관을 세우기 위해 자선당을 비롯한 전각을 파괴한 것이다. 오구라는

    해체된 자선당 건물 조각을 모두 사들여 1916년 총독 데라우치의 허락을 받은 후 배에 실어 도쿄의

    자신의 저택으로 가져가 집 안에 다시 조립해 세워 놓고 ‘조선관’이라는 현판을 달고 사설 미술관으로

    사용하였다.52) 그 후 자선당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지상의 목조건물이 모두 불타 버리고 유구만 남게

    되었다가 1993년 목원대 김정동 교수에 의해 발견되었다. 자선당 유구는 오구라 호텔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기증형식으로 반환받았다.53)

    데라우치 문고는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통감과 총독으로 재임하면서 모은 1,000여 종 1,500

    점의 희귀 고전적을 1916년 일본으로 반출해가 자신의 집에 ‘조선관’을 짓고 설립한 문고이다. 데라우치

    문고는 데라우치의 아들이 사망하여 관리가 어렵게 되자 유족들은 이를 야마구치 현청에 기증했고 현청은

    문고를 다시 야마구치여대에 넘겨 1957년 3월 데라우치 문고는 야마구치여대의 소유가 되었다. 그 후

    데라우치 문고는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알려져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야마구치 대학 측과 접촉하였고

    야마구치 대학 측은 정부 차원이 아닌 대학 차원의 기증 형식의 반환을 약속하여 마침내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경남도에 소재한 경남대학교에 문고를 인도하기로 결정, 1995년 11월 11일 기증 조인식을

    50) 혜문, 2007, 「조선왕조실록 환수과정을 통해서 본 민간차원의 불법문화재 반환협상의 과제 및 대응방안」, ꡔ한일 불법문화재 반환 촉진 정책포럼ꡕ, 문화재청/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128~129쪽.

    51) 이보아, 앞의 글, 182쪽.

    52) 위의 글, 182~186쪽.

    53) 문화재청 편, 2008, 앞의 책, 133~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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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갖고 전문가의 감정을 거친 후 최종 선정된 98종 135책의 데라우치 문고 전적이 1996년 1월 한국으로

    반환되었다.54)

    자선당 유구와 데라우치 문고의 반환은 민간 차원의 첫 반환 사례로서 한․일간 문화재 반환을 위해서

    는 다양하고 지속적인 접촉과 설득 그리고 학술 교류나 우호 증진 등 반환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5. 문화재의 환수와 활용 방안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 유출 문화재 반환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다양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정부 간 협상에 의한 문화재 반환은 시대적 상황과 여건에 따라 신속한 해결의 실마리

    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양국의 정치적 입장이 개재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더욱이 1965년 문화재 협정에 대해서 한․일 양국이 해석을 달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간 협상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의 오랜 역사적 관계에 비추어 민간차원

    의 종교 및 문화․학술교류는 꾸준히 지속되어 왔고, 최근의 문화재 반환에서도 종교단체와 민간단체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때 양국의 문화교류 수준이 문화재 반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문화 및 학술 교류를 통해 공동의

    문화권을 형성해 왔다. 특히 한․일 양국은 이러한 교류를 통해 공통의 문화와 문화유산을 공유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나라 지역을 비롯한 일본에 남아있는 많은 유산들이 이러한 교류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증거들이다. 동아시아의 공동 문화권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에,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거나 강제로 약탈, 불법으로 유출된 것이 명백한 문화재는 환수대상으로

    하고, 공동 문화권의 문화 교류 또는 문화 협력 증진 차원에서 현지에 남겨진 문화재를 활용하는 문제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문화재 환수와 활용 문제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

    가. 환수 방안

    (1) 일본 소재 한국 기원 문화재의 공개 촉진과 실태 조사

    일본 소재 한국 기원 문화재는 공식적인 통계만으로 34,369점에 이른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54) 문화재청 ‘08년 국정감사 자료 중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관련 자료 참조(문화재청 내부자료).

  • 86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를 포함하면 30만점이 넘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인들은

    문화재 공개에 따른 세제상 부담과 도난 위험, 재래의 비공개 풍습 등으로 인해 문화재 공개를 꺼리고

    있다. 유럽, 미국 등의 나라와 같이 개인 컬렉션 공개를 촉진하는 법률을 정비하고 소장가에게 면세 등의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도서관협회 등에서 해외 소재 한국 기원

    문화재 실태 조사를 연차적으로 실시해 왔다.55) 그러나 이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공개된 장소에

    한정해서 조사한 것으로 정확한 한국문화재 실태 파악을 위해서는 민간 소장 문화재도 조사할 수 있도록

    한․일 양국 정부 차원의 조사기구 설립이나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5차에 걸친 한․일 문화교류

    실무자 회의를 통해 조사기구 설치와 협력을 제안했으나 일본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진척을 보지 못했

    다.56) 조사 기구는 양국 정부 또는 민간 위원회나 재단으로 설립하여 양국의 문화재 전문가의 참여 하에

    민간 사유 컬렉션을 합동으로 조사하여 목록집을 발간하는 것이다.

    일본 내 한국 기원 문화재 실태 조사는 반드시 한국으로의 반환을 전제로 한 기초 조사라기보다는

    양국의 문화 협력 증진과 학술 교류 차원의 조사라는 점을 사전에 소장가에게 충분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소장가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태 조사에는 문화재 현황과

    가치뿐만 아니라 수집 및 소장 경위까지 조사하여 유출 문화재인 경우에는 그 연원과 경로를 파악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만약 불법 유출 문화재로 판명이 되면 환수대상 목록에 등재한다.

    (2) 문화재 유출 경위와 출처 조사

    국외에 소재한 한국 기원 문화재에 대한 실태 파악도 중요하지만 국내 문화재가 언제, 어떻게 유출되었

    고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 출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문화재 반환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기초적

    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는 주로 고분 출토품과 일본 학자들의 고적 발굴 및 조사로 인한 유출이었다. 당시의 유출문화재

    현황과 출처는 통감부와 총독부 관련 문서, 고적 발굴 및 조사보고서, 관보, 구한말 및 일본 외교문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실태를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조의궤의 경우처럼 총독부 또는 총독의 지시에 의해 계획적, 조직적으로 반출

    된 문화재는 식민지 관계 청산 차원에서라도 우선적으로 환수하여야 할 것이다. 유출 문화재에 대한

    국내외 실태 조사는 문화재 환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것으로서 우선순위를 분류하고

    목록을 작성하여 환수 추진에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55)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1984년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목록’을 필두로 2005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소장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도록’에 이르기까지 모

    두 11회에 걸쳐 목록집을 발간하였으며,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는 ‘해외소장 한국문화재 도록’ 총8권을 발행하였고, 한국도서관협회에서는 1991년 ‘일본 유출

    전적 문화재’ 조사 도록을 발간한 바 있다.

    56) 문화재관리국, ‘한․일 문화교류 실무자회의 시 문화재 반환에 관한 제의 및 답변 내용’ 참조(문화재청 내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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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3) 문화재 소장단체 및 개인 소장가의 기증 활성화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총 5,100점의 문화재 중 정부 간 협상에 의해 환수한 1,660점을 제외하면 민간단

    체나 개인 기증이 3,435점으로 전체의 67.3%를 차지한다. 기증 문화재 3,435점을 다시 분류해 보면 데라

    우치 문고와 경복궁 자선당 유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인 개인 소장가의 기증이다. 일례로 국립중앙박

    물관에 기증한 사례를 분석해 보면, 1955년부터 2008년 12월 현재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문화재를 기증

    한 일본인은 모두 23명이며, 기증 문화재는 총 2,726점57)으로 그 중 가네코 가즈시게(金子量重)는 4차에

    걸쳐 총 1,035점을, 이나가키 데레즈(稻垣テレズ)가 2차에 165점을 기증하였다.

    총 27건의 기증 중 18건이 1987년 이후에 기증되었으며 특히 그전에는 한 해에 1건 정도의 문화재를

    기증했던 것이 1987년 이후에는 같은 해에 여러 건의 문화재를 기증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는데 1987년

    4건, 2000년 2건, 2002년 5건, 2003년 2건 2005년 3건, 2006년 2건 등으로 나타났다.58) 문화 교류가

    활발할수록 기증이 증가하는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박물관 측에서는 기증자의 이름을 딴 특별 갤러리

    (기증관) 설치,59) 기증유물 특별전, 정부의 문화훈장 수여, 언론 공개회 개최, 박물관 도록 증정 등으로

    기증자에 대한 경의와 감사를 표하고 있다.

    개인 소장가의 경우는 주로 개인적인 동기에서 문화재를 기증하게 되지만 민간단체에 소장된 문화재는

    그 단체와 한국의 단체가 인연이 있거나 교류가 활발할 때 기증을 결심하게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야스쿠니 신사에 있던 북관대첩비 반환은 한국의 종교단체와 종교를 통한 지속적 설득이 반환 결정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고, 오구라 호텔의 자선당 유구는 호텔 측과 교류가 있던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기증이

    되었다. 야마구치여대 소장 데라우치 문고는 야마구치 현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경상남도와의 인연으로

    경남대학으로 기증이 되었다.

    이와 같이 민간차원에서의 문화재 기증은 법규나 제도적인 차원이 아닌 개인적 동기나 지속적 설득

    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민간의 기증이 확대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일간

    학술 및 문화 교류가 보다 활발해져야 하며 기증자에 대한 성의 표시와 배려가 필요하리라 본다.

    (4) 다양하고 다층적인 문화재 환수전략

    문화재 반환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소유권의 이전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의 반환이 아닌 영구임대나 장기대여, 교환, 상호 교류전시

    등을 통한 문화재 반환이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강제로 약탈 또는 불법적으로 유출된 문화재는 마땅히

    원산국인 한국으로 반환되어야 하겠으나, 현실적으로 일본 내 관련 법령과 절차로 인해 반환이 어렵거나

    해당 문화재의 유출경위가 명확하지 않고 불법 반출에 대한 증명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에는 영구임대나

    57) 김용두, 이병창, 김대현 등 재일교포가 기증한 실적은 제외하였다.

    58) 국립중앙박물관의 2008, ‘일본기증유물 목록’ 참조(국립중앙박물관 내부자료).

    59)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우치(井內功)실과 가네코(金子量重)실, 하치우마(八馬理)실 등 3인의 일본인 기증자 기념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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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장기대여 형식에 의한 실질적 반환, 상호 교환전시의 의무화 등을 통한 문화재 반환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007년 10월 18일 미국 해군사관하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신미양요(1871년) 당시 미군이 전리품

    으로 약탈해간 어재연 장군 ‘수자기’(帥字旗)가 136년 만에 장기대여 방식에 의해 돌아왔다. 문화재청에

    서는 당초 영구반환을 추진하였으나 미국 해군박물관측에서 관련 법령과 절차상의 사유60)를 들어 불가하

    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최초 2년 최장 10년까지 대여하는 조건으로 우선 장기대여 키로 한 것이다.61)

    2005년 10월 22일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이 국외로 유출된 지 80여 년 만에 영구임대 방식에 의해 돌아왔다. 이는 경북 왜관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과의 인연으로 성사62)된 것으로 영구임대 방식은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선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문화재의 영구반환은 아니지만 반환이 어려운 문화재 중 상호 교류전시를 통해 일시적으로

    국내에 반입되어 전시를 통해 우리 문화재를 감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1993년 12월부터 1994년

    2월까지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된 ‘고려 영원한 미-고려불화특별전’에 수월관음도63) 등 일본에 있는 국보

    급 고려불화 30점이 전시되었는데 지정문화재는 일본 문화청의 반출허가를 받은 후 전시가 가능했다.

    1996년 ‘조선전기국보전’에서는 일본 천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견의 명품 ‘몽유도원도’가 국내

    에 처음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한․일간의 역사적 문화 교류 관계를 감안할 때 문화재의 상호 교환방식에 의한 반환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다. 이 교환 방식은 약탈해간 문화재가 분명한 경우 국민정서상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만

    유출 경위가 불분명하고 그 문화재가 원산국에 있음으로 해서 국민통합이나 민족정체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 문화재라면 다른 문화재와의 교환을 통한 반환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은 다른 나라 박물관과의 등가교환을 원칙으로 상호 기증이라는 교환방식에 의해 유물

    취득과 교류를 활성화 하고 있다.

    나. 활용 방안

    해외 유출 문화재를 전부 환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바야흐로 세계는 문화 교류를 통해 자국의 독창적이고 우수한 문화를 홍보하고 있고 민족 정체성의 상징

    인 문화재를 통해 국가 홍보 및 국익 증진을 도모하고 있다.64) 따라서 우리나라도 문화재 환수 전략과

    60) 미국 측에서는 반환을 위해서는 미국내 관련법령의 개정, 의회 및 대통령의 승인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문화재청 ’08년 국정감사 자료 중 ‘해

    외 유출 문화재 환수 실적’ 참조).

    61) 국립고궁박물관, 2008, ꡔ帥字旗-136년만의 귀환ꡕ(도록) ‘수자기 장기대여 경과보고’ 참조.

    62) 문화재청 엮음, 2008, 앞의 책, 137~145쪽.

    63) 일본 가가미 신사 소장 수월관음도는 다시 2009년 4월 통도사 성보박물관 특별전(4.30~6. 8)에 공개 전시되고 있다.

    64) 유네스코에서 추진하고 있는 세계유산, 세계기록유산,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제도가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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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함께 해외 소재 문화재를 활용한 문화홍보 전략을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오랜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일제강점기 등 혼란기에 강탈되거나 불법으로 유출된 문화재는 면밀하고 다양한

    전략을 세워 지속적으로 환수를 추진하여야 하나 그 외 유출경로가 불분명하거나 문화교류 등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 한국 기원 문화재에 대해서는 현지 활용을 위한 홍보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재의 현지 활용을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1) 일본 내 한국문화재 소장 박물관 지원 등을 통한 한국문화 홍보

    문화재는 그 문화재를 생산한 민족과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표징이라는 점에서

    문화재만큼 훌륭한 홍보 매체는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확대 추진하고 있는 해외 박물관의 상설

    한국실 설치와 한국 전시 코너 설치는 한국문화 홍보에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 반환문제 해결에도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해외 박물관내 한국실 설치 지원 사업은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이 1992년부터 추진하

    고 있는 사업으로 2008년 12월 현재 총 18개국 57개소65)에 한국실 또는 한국 전시코너가 설치되어 있다.

    해외 박물관내 한국실 또는 한국 전시코너 설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음을 인식하여 해당국가에서도 동양문화의 소개를 통해 박물관의 전시 기능

    을 확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고 있는 추세이며, 현재는 현지에서 수집된 유물보다 한국에서 대여받

    은 유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국 문화의 종합적 소개 홍보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지만, 앞으로

    해외에 소재한 한국문화재를 기증 또는 기탁의 형식으로 받아 전시에 활용한다면 한국실 운영이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박물관내 한국 전시실에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전시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장가로 하여금 자신

    이 보유한 문화재를 박물관에 기증 또는 기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하며 이는 해당국가

    정부와 박물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국가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문화의 종합적 체계적 홍보라는 차원에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나 ‘문화재보호법’등 관련법령

    의 정비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해외 소재 문화재 환수 관련 기금을 설치해 그 자금으로 지원하

    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 활용방안과 관련해 한 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한국인이 해외 박물관에 우리의 문화재를 기증․기탁하거나 한국인(교포)이 직접 박물관 등을 설립하여

    우리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사례이다.66)

    한국의 문화재는 단지 한국 국민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한국과 일본이 공동의

    문화권에서 문화를 교류해 왔다는 점에서 또 일본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기원

    65)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지원한 한국실은 7개국 18개소이며. 기타는 삼성문화재단,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지원하였다(문화재청 ’08년 국정

    감사 자료 중 ‘해외 박물관 한국실 설치 현황’ 참조).

    66) 고 이병창 박사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한국 도자기 301점을 기증한 것과 고 정조문 씨가 교토에서 고려미술관을 설치 운영하고 있는 예가 그 대표

    적 사례이다.

  • 90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문화재가 일본에서 전시되고 연구된다는 것은 학술 및 문화 교류와 협력을 통한 한․일 공동의 번영과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2) 일본 내 한국문화재 소장기관 및 프로그램 지원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가 온전하게 보존되고 연구되도록 지원하는 일은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인 문화재

    의 가치를 한층 높이는 동시에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선양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많은 양의 한국 기원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으나 연구 및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따라서 일본 소재 한국문화재에 대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라 보존처리를 위한 기술지원이나

    운영 프로그램 개발 및 홍보매체 제작 등 지원은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6. 맺는말

    오늘날 국제사회는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문화재의 도난, 불법 유통 등에 대한 국제법적 규제와 원산국

    으로의 반환 촉진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67) 이는 역사적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국민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문화재의 반출이 극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식민 지배 시기에 극심했던 문화재 반출로

    인해 양 국가 간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부각되기도 한다. 한․일간 역사적, 문화적인 특수 관계68)로

    문화재 반환 문제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고, 21세기 새로운 양국 간 우호 및 협력관계 수립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현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시민단체 등에 의한 문화재 환수 운동에서 보듯이 문화재 반환에는 국민적 정서가 깊이 개입되어

    있고, 국제법 적용과 국제기구의 반환 촉진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 국가 간의 신뢰

    성 회복이다. 신뢰성 회복의 중요성은 일본 유출 문화재의 반환 실적에서 개인의 자발적인 기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전략을 수립할 때가 왔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향후 일본 유출 문화재 반환 문제는 환수와 활용의 양 측면을 병행하여 추진

    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와 민간단체가 긴밀히 협력․지원하고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하는 종합적

    전략을 수립, 추진하여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일본 유출 문화재에 대한 목록 작성과 디지털기록화를 통한 온라인 서비스69)가 필요하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인내를 가지고 철저한 조사와 다양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으

    67) 2008.11.25~28까지 유네스코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ICPRCP)’ 창립 30주년 특별회의가 한국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열렸으며, 문화재의 원산국 반환

    과 불법 전유 문화재의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권고문을 채택하였다.

    68)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의 오랜 역사문화교류와 근세의 식민지 지배관계 등.

    69) 현재 외규장각 도서는 디지털기록화 작업이 완료(‘08. 3월)되어 국가기록유산포털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http://www.memorykorea.go.kr).

  • 91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로 추진하여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은 최근 이탈리아 정부의 일련의 실행을 통해서 알 수 있다.70) 한국과

    일본 간의 문화재 반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 간 활발한 문화 및 학술 교류를 장려하여 상호 신뢰를

    쌓는 동시에, 문화재 연구 및 반환이 동아시아 공동 문화권의 일원으로서 양국의 우호 및 협력 증진에

    긴요하다는 담론의 확산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70) 이탈리아 정부는 2006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문화재 21점을 돌려받은 이래 2007년까지 총 82점의 문화재를 반환 받았는데, 이는 이탈리아 정부

    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에 기인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체계적인 문화재 반환을 위해 문화성 내에 ‘문화재 반환문제 위원회’를 설치하였고, 미국 박물관

    소장 이탈리아 문화재를 돌려받는 대가로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문화재를 “장기 대여”하고 공동 전시, 연구, 보존 및 수복 등에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Mounir Bouchenaki, 2008, 「반환과 복구:이탈리아의 사례」, ꡔ문화재 반환 과거, 현재와 미래ꡕ, 문화재청,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 30주년 기념 특별

    회의 기록, 75~79쪽 참조.

  • 92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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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

    민속학연구 제24호|71~94쪽|2009. 6

    Abstract

    An approach of redeeming and utilizing cultural properties plundered by Japan

    Kim, Jong So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Division assistant director

    In light of the fact that there are several stolen cultural properties now still in Japan, there

    is a need for realistic and various strategies to achieve repatriation of those national treasures.

    Repatriation through government negoti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may help if times and

    situations are right. However, the Korean and Japanese governments do not agree in many ways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treaty for cultural properties signed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1965 and, therefore, it is quite unrealistic to expect such negotiations to bring any immediate

    outcomes. On the other hand, repatriation through private religious and cultural exchange had

    recently yielded better results such as the recent return of a few cultural properties, but this

    could also be jeopardized if national sentiment were to be involved. Therefore, it is important

    that any attempt for repatriation be made actively and continuously through international laws

    and organizations, and, at the same time, it is necessary to adopt an approach of rebuilding

    trust with Japan, considering the longstanding cultural and historic relations between these two

    countries, which are in fact neighboring countries belonging to the same East Asian cultural

    area.

    This essay attempts to present two practical strategies: one, properties should be repatriated,

    and the other, properties should remain as they are and be utilized in Japan with the

    aforementioned considerations.

    For the properties to be repatriated, the following are the proposed considerations. The first

    step is to urge the Japanese government to disclose a listing of all Korean cultural properties

    in their country, and, at the same time, promote academic and cultural exchanges that are aimed

    at examining the actual conditions and facts. Once the stolen cultural properties are confirmed

    and identified, the Korean government should then repatriate those national treasures. The

    second step is to collect and gather data on the particulars and circumstances behind the

    transfer of property and its origin. Third, promote actual repatriation through donations from

    private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that may actually own some of the stolen cultural

  • 94

    일본 유출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 방안

    properties. Lastly, this essay suggests that there should be a shifting and expanding repatriation

    method from the transfer of ownership to other forms of repatriation such as permanent lease,

    long-term lease, exchanges, and exchange exhibitions. In doing so, repatriation strategies

    become more practical and diversified.

    On the other hand, for the properties that should be utilized locally in Japan, there is a need

    to find ways to utilize such properties locally with the premise that cultural properties are the

    symbols of national identity and culture, and those transferred properties could be utilized to

    promote Korean culture when the transfer is inconclusive or if the transfer was done through

    proper cultural exchanges. In this case, the first step is to promote Korean culture by supporting

    Japanese museums and art museums that showcase Korean cultural properties in an exhibition

    room or corner specifically designated for Korean properties as part of their collection. The

    second step is to create opportunities to promote the greatness of Korean culture by supporting

    research and education programs of organizations that possess Korean properties.

    Lastly, it is necessary to observe these two strategies-repatriation and utilization-in seeking

    the repatriation of stolen cultural properties. Only through comprehensive strategies for

    repatriation such as combined efforts from the two governments and private organizations and

    continuous and active involvement of international laws and organizations could there be a

    meaningful result in recovering cultural treasures.

    Keywords : Stolen cultural properties in Japan, repatriation of cultural properties, repatriation,

    utilization, cultural properties of Korean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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