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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어린이담당사서 계속교육 그림책 깊이 읽기

그림책 깊이 읽기 - EDUNETreading.edunet.net/resources/uploadFiles/resources/uploadFiles/... · 분임토의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 정병규, 파주출판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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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어린이담당사서 계속교육

그 림 책 깊 이 읽 기

교 육 일 정 표

▣ 기 간 : 2010. 10. 12(화) ~ 10. 15( )

▣ 장 소 :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 세미나실(4층)

시간 월일

09:30~10:20

10:30~11:20

11:30~12:20

13:30~14:20

14:30~15:20

15:30~16:20

16:30~17:20

10. 12(화)

과정

안내

입교식

그림책과 어린이

< 이상희,

패랭이꽃그림책버스

운 자 >

분임토의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 정병규, 주출 단지

어린이책 술센터 책임연구원 >

10. 13(수)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 서정숙,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

분임토의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내 작가

< 엄혜숙, 아동문학평론가 >

10. 14(목)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 서남희, 어린이책 평론가 >

그림책을 활용한 독서지도 사례

< 조 애, 부산 학교 외래교수 >

10. 15(금)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 정유정, 그림책작가 >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김미혜, 아동문학가 >

종합평가

※ 교육일정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 심시간 12:30 ~ 13:20

차 례

1 그림책과 어린이 ······························································· ·············· 1

이 상 희 (패랭이꽃그림책버스 운영자)

2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 11

정 병 규 (파주출판단지 어린이책예술센터 책임연구원)

3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 25

서 정 숙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4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내 작가 ············································ 39

엄 혜 숙 (아동문학평론가)

5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 49

서 남 희 (어린이책 평론가)

6 그림책을 활용한 독서지도 사례 ·············································· 65

조 현 애 (부산 학교 외래교수)

7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 91

정 유 정 (그림책 작가)

8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103

김 미 혜 (아동문학가)

그림책과 어린이

이 상 희

패랭이꽃그림책버스 운영자

그림책과 어린이 3

그림책과 어린이

1.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그림책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읽어주는 어른과 보고 듣는 어린이를 포함한 세상 모든 어린이․교

사․부모가 포함된 0세부터 100까지 전 세 가 독자라는 점, 바로 그 전

세 의 다양한 독자를 만족시키는 완성도 높은 예술품을 지향한다는 점,

어린이의 첫 책이자 노인의 마지막 책으로서 진정성과 기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 자칫 유아용품이나 교육 학습 도구 또는 서점 판매 에서 순

식간에 읽어치워도 되는 오락물로 오해되는 위기를 벗어나 한 번 훑어보

아도 흥미롭지만 읽고 읽고 또 읽는 장서요 예술품으로 인정되어 구매될

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점, 물성적 양에 비해 제작기간과 비용이 엄청

나게 든다는 점……. 그림책 독자는 이런 특성 덕분에 행복하지만, 그림

책 작가는 고뇌에 빠진다. 그림책의 가 모리스 센닥마저도 그림책 만들

기가 ‘환장하게 어려운’일이라고 한숨을 쉬곤 했다. 그림책이란 어린이만

을 적당히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2. 그림책의 내용적 특성

- 그림책은 어린이의 생활 속에 깊이 느끼고 생각하는 자리와 기회를

만들어준다.

4 그림책 깊이 읽기

- 그림책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어린이의 마음에 이

야기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있는 것이다.

- 그림책은 질 좋은 그림과 글이 일체가 되어 하나의 예술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체이다.

그림책은 어린이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지는 책이다. 그러나 어린이

책 childrenbooks 장르를 훌쩍 뛰어넘는다.

목 지 끄트머리

나무 꼭 기에서 들리던

부엉이 소리가 가까워졌습니다.

목 지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부엉이 그림자 하나가

커다란 나무 그림자에서 떨어져 나와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우리 머리 로 날아갔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입 안에 열기가 가득히 담겨서

할 말이 가득히 열기가 되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부엉이 그림자가 다시 부엉부엉 울었습니다.

<부엉이와 보름달>(제인 욜런 글, 존 쇤헤르 그림, 박향주 옮김)의 한

장면인 이 글의 ‘우리’는 여섯 살쯤 되는 여자 아이와 그 아빠이다.

추위와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밤중 겨울 숲속으로 부엉이 구경을 나간

아이가 마침내 부엉이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면에서 아빠와 자신을 중

한 체험을 공유한 ‘우리’로 인식하듯, 그림책의 감동 또한 보고 듣고 읽

그림책과 어린이 5

는 아이와 선택하고 읽어주고 보여주는 어른이 공감․공유하는 것을 최

선의 목표로 삼는다.

그렇다고 해서, 보고 듣는 아이와 읽어주는 어른만이 독자일 리는 없

다. 어느 가정의 어머니가 세 살 바기 늦둥이와 초등생 아이, 학생

이모와 아이들 할머니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 그림책을 읽는다고 하

자. 세 살 바기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 그림 장면 속에 숨어있

는 동물 찾기를 즐기면서 그림책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은 행복감을 자

기도 모르게 기억 속에 담아둘 것이다. 초등생 아이는 자기 또래 주인

공 아이와 동일시 체험을 누리며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고, 학생 이모

는 자기가 알고 있는 부엉이에 한 여러 가지 지식 정보와 함께 어린

시절 또는 어떤 성장기에 겨울 숲과 관련된 체험을 기억해내면서 시적

인 글과 수채 그림의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다. 그림책을 읽는 어머니는

아이와 함께 경험했던 유사 체험을 떠올리거나 다가오는 겨울에 부엉이

구경을 계획할지도 모른다. 아이들 할머니는 오래 전 부엉이를 마주쳤

던 경험을 떠올리거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부엉이와 관련

된 이야기를 떠올리며 뜻밖의 세련된 그림에 놀라워 할 것이다.

그림책의 독자는 0세부터 100세까지, 전 세 이다. 그림책 명작을, 선

입견 없이 진지하게 감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이 아이들 취향만

의 그림과 글을 담은 책이 아니라는 데 놀란다. 유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 가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시와 그림으로 이

루어진 예술 도서’라는 데 저절로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또 청소년이나 중․장년 세 에게, 집안 어르신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일이 있는가?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 그림책

이 유아에게는 유아의 시야에 알맞은 기쁨과 흥미를 주고, 어린이와 청

소년과 청장년과 노인 각각의 세 는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치 만큼 층

위 다른 감동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가 읽었던 그

6 그림책 깊이 읽기

림책!’ 아마존닷컴의 그림책 광고는 흔히 이런 문구를 곁들인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의 신간 출간 기념 사인회에 줄 선 노인들은 손주에게 그

림책을 선물하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즐겨온 노인 독자들이다. 따라서 그림책의 특성을 가장 뚜렷이 경험하

려면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자.

이런 저런 자리에서 <뛰어라 메뚜기>(다시마 세이조 글․그림)를 적

어도 백 번은 넘게 읽었을 즈음, 우리 그림책버스에 온 어린이집 아이

들에게 또 한 번 그것을 읽어주었을 때의 일이다. 맨 마지막 판권 페이

지를 막 넘기려는데 “아하, 여자 메뚜기랑 결혼했네!” 라고 한 아이가

소리쳤다. 무슨 말인가 싶어 넘기려던 페이지를 새삼스레 들여다봤더니,

주인공 메뚜기가 분홍빛 메뚜기와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컷 그림이 눈

에 띄었다. 세상에, 지금껏 그저 판권 페이지를 장식하기 위한 조각 그

림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간 주인공 메뚜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후일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안 것이다.

그렇다. 그림책은 보고 듣는 아이와 보면서 읽어주는 어른이 제각기 자

기 경험치 로 즐기면서, 또한 서로의 반응에 의해 추가된 즐거움과 정

보를 교감함으로써 더욱 풍요로운 감상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 그림책의 물성적 특성

- 그림책의 표지는 그림책 세계를 감싸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앞

표지는 그림책의 얼굴이 되고, 뒤표지는 감상 여운을 넓히기 위한

여백이나 상징 그림으로 디자인되어 그림책의 뒷 자태가 된다.

(마쯔모토 다케시)

- 그림책의 표지는 아주 의미심장한 부분으로서, 그 내용을 그리 많

그림책과 어린이 7

이 드러내지 않고도 스토리 이해를 위한 결정적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스토리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자 강조점을 암시하는 부

분이다. 현 그림책은 책 속의 한 페이지를 표지로 삼았던 전통

을 버렸다. 그 신 앞표지는 책의 출입구,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

력적 입구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뒤표지 또한 작가에 한 정보,

줄거리 요약, 서평을 담던 전통을 버리고 시각적 내러티브의 공간

으로 삼고 있다. (마리아 니콜라예바)

- 그림책의 면지는 확고한 정경을 만들거나 도입부 또는 서두의 플

롯을 시작하기 위해 이용된다.

- 그림책은 그저 글과 그림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모양, 재료, 무게, 제본

등 책의 형태가 그 책의 전체적인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에릭 로만)

그림책은 물성적으로도 단히 정교하고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림책 전체를 감싸는 강력한 보호판인 동시에 얼굴이자 이야기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앞표지, 앞표지와 속지를 연결해 잇는 구조물인 동

시에 이야기의 입구를 향해 밟아가는 디딤물로서의 앞 면지, 흥미와 기

감을 안고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작은 문이자 현관으

로서의 속표지, 이야기의 세계를 펼치고 이어가는 속지, 속지와 뒤표지

를 연결해 잇는 구조물인 동시에 이야기의 출구를 향해 밟아 나오는 디

딤물로서의 뒤 면지, 이야기의 세계를 나오며 여운을 즐기는 손길이 닫

는 문으로서의 뒤표지로 이루어진다.

독자는 이렇게 건설된 그림책의 물리적 공간에서 이야기가 만들어내

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누린다. 스스로 책장을 넘기는 힘과 속도에 의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조절해 읽음으로써, 화면 안의 시공간과 화면과

화면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의 이동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무지개 물고기>(마르쿠스 피스터 글․그림, 시공주니어)의 무지개

8 그림책 깊이 읽기

물고기는 총 12장면의 10번째 장면에 이르러서야 그토록 친구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자신의 반짝이 비늘을 뽑아 나눠주기 시작한다. 화려한 주인

공 무지개 물고기에 집중되었던 이전 장면들과 달리, 11번째 장면과 12

번째 장면은 반짝이는 무지개 비늘을 하나씩 얻어 꽂은 물고기들로 인

해 바닷속 전체가 드넓게 펼쳐짐으로써, 화해와 평화 국면의 만족스러

움을 더하고 있다.

온몸에 무지개 빛 비늘이 가득했던 외톨이 무지개 물고기가 단 한 개

의 비늘만 남은 채 물고기들과 어울려 헤엄치는 장면에 이른 독자들은,

얼른 앞 페이지를 되넘기면서 예전의 무지개 물고기 못지않게 친구 물

고기들과 함께 더욱 아름답고 행복해진 주인공 물고기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기도 한다.

무지개 물고기는 갑자기 꼬리지느러미 쪽에서 물결이

살랑이는 것을 느 습니다. 란 꼬마 물고기가

뒤따라왔군요!

“무지개 물고기야, 제발 화내지 마. 난 그냥 작은 비늘

한 개만 갖고 싶었을 뿐이야.”

무지개 물고기는 망설 습니다.

‘아주 아주 쪼끄만 비늘 딱 한 개뿐인데 뭐. 좋아,

한 개쯤은 없어도 괜찮을 거야.’

이제 무지개 물고기에게는 반짝이는 비늘이 딱 하나

남았습니다. 가장 아끼는 보물을 나눠 주어 버렸지만

무지개 물고기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이리 와, 무지개 물고기야. 이리 와서 우리랑 같이 놀자!”

물고기들은 무지개 물고기를 불러냈습니다.

“그래, 곧 갈게.”

무지개 물고기는 기분이 좋아서 지느러미를 흔들며

친구들을 만나러 헤엄쳐 갔습니다.

그림책과 어린이 9

이처럼 그림책은 그림과 글의 상호 의존성, 마주보는 두 면의 동시

배열, 그리고 독자가 직접 페이지를 넘김으로써 발생되는 요소들이 드

라마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철저히 독자의 손길이 주도하

는 속도로 펼쳐진다. 독자는 마치 비디오테입을 천천히 또는 빨리 되감

듯이 페이지를 넘기거나 되넘김으로써 ‘빨리 보기’, ‘천천히 보기’, ‘앞

장면과 비교하기’, ‘확인하고 싶거나 다시 감상하고 싶은 장면 다시 보

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맨 처음 표지의 앞뒤를 한꺼번에 펼쳐 보여준 다음 제목과 작가

이름을 읽고, 앞 면지를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들이 이 책을 바친

헌사 ‘**에게’를 읽고, 속표지를 보여준 다음 비로소 본문을 읽기 시작한

다. 이렇게 읽는 방식은 성미 급한 독자를 안달나게 만들곤 한다. 그러

나 음악을 들을 때 서주를 생략할 수 없듯, 그림책 또한 이런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충실한 감상이 될 수 없다.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정 병 규

(파주출판단지 어린이책예술센터 책임연구원)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13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1. 우리에게 그림책은 무엇인가?

지난 9월 한 지상파 텔레비젼 방송 9시 뉴스에서는 한 권의 그림책

을 소개하는 꼭지가 방영된 바 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뒷날

다른 방송사에서도 같은 내용의 앵커 멘트가 나왔다. “구름으로 빵을

만들어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 전 세계 40만부가 팔린 국내 창작

그림책, ‘구름빵’ 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뒤이어 화면이 바뀌면서 기자는 이 그림책의 몇 장면을 이야기와 함께

보여준다.

2004년 신진작가로 이 그림책을 선보인 뒤 2005년 볼로냐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뽑히기도 했다는 수상 이력도 덧붙여 전한다. 그런데

이 뉴스가 전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이 그림책의 변신에 있었다. 원작을

콘텐츠로 한 다양한 분야의 진출, 그중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큰 시장

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된 것이다. 인쇄

매체와 다르지만 비슷한 복제예술 장르인 영화는 심심찮게 관객 수 백

만을 동원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수많은 개봉영화 중에 간혹 한 두 편

이 그러함에도 흥행에 성공한 일부만이 관심을 받는다. 그렇더라도 영

화는 많은 중을 확보하고 있다. 이례적이라는 말은, 그림책에 있어서

아직까지 구름빵 처럼 뮤지컬과 TV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확장이 이

뤄진 경우 외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영화와 다른 점은 폭이 넓지 않은 독자 상에 있다. 우리가

14 그림책 깊이 읽기

받아들여야하는 어쩔 수 없는 굴레, 그림책은 어린이 책이라는 것.

부분이 그렇게 본다. 그래서 몇 십 만부를 판매한 종수는 아주 적을 수

밖에 없다. 한 해 150여 종 안팎의 국내 창작그림책이 나오는 환경에서

그림책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교육의 도구

인가 모든 연령층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시각예술인가, 그

리고 아직 성장의 가능성은 더 있는가에 해.

2. 우리나라의 그림책, 60년

지난 1982년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 박람회’에서 먼 나라 이웃나

라 (초판1987, 개정판1998, 김영사)로 잘 알려진 이원복의 일러스트레

이션 작품이 픽션 부문 도록에 처음 소개된 이래 우리나라 작가들의 활

동이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림책의 공식 발표 무 인 노마

콩쿠르를 비롯 BIB, 볼로냐 도서전 등에서 이제 낯설지 않게 한국 일러

스트레이터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은 이런 분위기가 정점

에 오른 시기였다. 제 46회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

되어 세계 70여 나라의 출판인, 일러스트레이터, 아동 교육 관련 단

체 관계자 500여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그림책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

를 두루 소개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한국관에 31명의 원화 64점, 그

림책 200여종이 함께 전시되었다. 한편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CJ그림

책상(CJ Picture Book Awards)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현상이었다.

‘21세기 문화 아이콘 그림책, 페스티벌로 만나다.’라는 슬로건으로 한국의

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있는 이 그림책 축제는 국제 규모의 그림책 축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 재단이 밝히고 있는 행사의 취지를 살펴보면 최

근 변화하고 있는 그림책 동향을 파악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15

“특정 지역 는 문화 언어권의 한계가 있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에 들어서는 세계에서 수 높은 그림책들이 속속 선보이면서, 그

림책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사람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미술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CJ문화재단은 21세

기 문화 아이콘인 그림책을 지원하여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 모두가 함께 풍요로워질 수 있는 문화의 토 를 만들고자 합니

다. 특히 그림책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세계 으로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문화라는 에 착안하여 세 를 아울러 나아가 범세계 으

로 함께 할 수 있는 ‘CJ그림책 축제’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년간 국내 형 미술관에서 열었던 세계 유명 그림책 작가 원

화 전시회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면서 어린이 책으로만 여겼던 분야에

기업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우키요에(浮世繪: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에도시 에 성행한

풍속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림책의 원류(일본 국회도서관 별관, 어린

이도서관 자료실)로 삼았지만 우리나라의 그림책 초기 자료도 가장 확

실하게는 1946년과 1947년에 우리들 노래 (1947. 조선아동문학협회)에

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무렵에는 현재와 같은 픽쳐북(Picture Book)

형태는 아니었다. 조선아동문화협회가 공모한 동요 당선작에 7명의 화가

(김용환, 정현웅, 김규택, 김의환, 조병덕, 김기창, 김용준)가 그림을 그린

작품집 형태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삽화의 수준을 넘어선 당시 한국 미술의 특징으로

나타난 자연주의와 토속성 짙은 색감, 구도가 서양의 조형 세계와 확연

히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차이는 조선 시 에 널리 퍼졌던 회화(민화)

에서 보듯 그 내면의 정서가 맞닿아 있다. 예를 들면 호랑이가 등장하는

지금의 그림책들에서도 그렇듯 기법이나 재료와 무관하게 전통을 잇는

정서는 계속된다. 이종미의 그림 해님달님 (2004.국민서관), 권문희의

16 그림책 깊이 읽기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 (1998.웅진주니어)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1997.

보림)를 그린 최숙희에 이르기까지 현 적이면서 독창적인 우리의 조형

세계를 서양의 그림책과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굳이 자료를 들어 열거하면 65년 안팎의 햇수로 한정되겠지만 최근의

그림책에 한 관심은 인쇄매체 발생 이전부터 들춰보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도서관은 전시와 활동을 어렵지 않게 할 수도 있

다. 옛 그림 일부를 따라 그려볼 수도 있고 민화의 한 장면에 자신의

글을 올려 간단한 그림책이나 이미지 포스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어

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던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예술 세계를

접할 수 있는 방법, 자주 개발하고 사용하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자

신이 스스로 또 다른 창작 예술가가 될 수 있다.

3. 1990년대, 그림책이라는 장르

흔히 낱권으로 구입해보는 그림책(단행본)이 우리들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들어서였다. 어린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

반적으로 1990년 는 문화 격동기로 경계를 긋는 시기이다.

중문화가 마치 어떤 억압에서 풀려난 듯 젊은 세 가 문화 소비의

주역으로 등장해 소위 신세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 시 를 표하는

아이콘은 단연 ‘서태지와 아이들’, 평소 가요를 폄하하고 멀리 하면서

외국 팝송을 즐겨 듣던 사람들까지 모두 끌어들일 정도로 한 시 를 지

배했던 ‘현상’ 그 자체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가 청소년들의 귀를 사로

잡았고 ‘슬램덩크’ 만화도 빠지지 않는 오락물의 필수품이었다. ‘워크맨’

‘삐삐’의 필수품목에 이어 90년 후반 등장한 ‘스타크래프트’의 열기가

게임시 를 열었다. PC방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게임 하나가 세상을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17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책, 특히 그림책에서도 도약의 시기였다. 그 이전

에는 ‘명작 그림책’이라는 국적불명의 소위 ‘디즈니 만화’와 동화를 혼합

한 ‘애니메이션 그림책’(전집류)이 마치 어린이책의 명사처럼 여겨지

던 때였다. 그러나 90년 중반 외국의 초기 고전 그림책에서부터 흥미

있는 유명 작가의 그림책들이 낱권 판매로 속속 출간되면서 마치 새로

운 매체의 출현처럼 그림책이 확산되었다. 소위 7080세 라 불리는 30,

40 의 부모들도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환

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갔다.

한편으로는 창작 그림책이 미처 자리 잡기도 전에 외국 그림책의 낯

선 이미지가 봇물처럼 흘러 들어왔지만 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면 창작

그림책을 빠른 시간에 많이 나올 수 있게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90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 의 등장, 다른 장르의 문화 현상처럼

그림책에서도 이들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자유분방하면서 사회의식

이 뚜렷한 소재로 작업을 했다.

우리 생활 문화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아내 그들만의 독특한 기법

으로 서서히 독자 중 앞에 나서기 시작한다.

솔거나라(1995~ , 보림)

우리 문화 발견 (1995, 길벗어린이)

바보 이야기(1995, 계몽사)

도토리 자연 그림책(1998, 보림)

등의 시리즈 형태와 자장자장 엄마 품에 (류재수 그림, 1993. 한림)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억배 그림, 1997. 재미마주) 만희네 집

(권윤덕 그림, 1995. 길벗어린이) 아씨방 일곱 동무 (이영경 그림, 1998.

비룡소)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그림, 1994. 초방기획) 등은

18 그림책 깊이 읽기

이들 작가들이 펼친 주요한 작품들이면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였다.

이때부터 작가들의 호칭도 변화한다.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으

면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일상적인 용어가 사용되고 그림책과 어린이책에

그림 작업을 하는 전업 작가층이 생긴다.

4. 2000년 이후 현재, 이미지의 축제

2000년부터 6년간 출간된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은 320여 종, 이어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은 600여 종, 10년 기간을 둘로 나누면

수치상으로 언제쯤부터 증가의 폭이 많은지 알 수 있다. 2006년 이후 4년

기간이 이전보다 평균 3배 이상 늘었고 작가층도 훨씬 두터워져 2005년

까지의 50여 명에 비해 그 이후는 140여 명 이상으로 갑자기 증가한다.

< 국내 창작 그림책 발행 10년 변화 >

연도 종수 작가 출판사

2000 34 25 17

2001 55 44 24

2002 37 36 14

2003 59 59 14

2004 76 76 32

2005 58 58 27

2006 159 125 45

2007 103 155 49

2008 167 157 61

2009 163 163 61

통계자료: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예술센터 2010년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19

출판사 역시 6년간 20여 출판사가 그림책을 1종 이상 출간했던 데

비해 그 이후 현재까지 매해마다 갑절이 넘는 50곳 이상이 창작 그림

책을 내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 이 같은 현상을 수치로만 지켜본다면 아마 특정한 요

인에 의한 과열로 볼 수 있다. 이미 1990년 부터 새로운 세 가 등장

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한다면 그렇다. 이들 중 일부는 데뷔 초기에

소위 ‘전집’, ‘시리즈’ 기획에 참여해 그림책의 작업과정과 감각을 터득

하면서 잠재력을 축적해 왔다. 여기에 때마침 신규출판사들의 그림책

분야 진출이 새로운 작가 군을 필요로 했다.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더 매력적인 흡인 요소로 작용한 것 중 또 하나

는 외국 그림책의 국내 번역 출간이었다. 한 곳의 출판사가 1993년 미

국작가 버지니아 리 버튼의 1942년 작품 작은 집 이야기 (시공주니어)

를 필두로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60여 종, 5년 동안 100여 종을

출간해 냈다. 뒤를 이어 다른 한 곳도 1995년부터 비디오 그림책 곰

(레이먼 브릭스. 비룡소)의 발행을 시작으로 2003년까지 100여 종을 발

행했다. 2005년까지 10여 곳의 출판사들은 400여 종 남짓 외국그림책

을 발행해 왔다. 이 가운데 영미 권을 포함 유럽의 19C 고전부터 인기

있는 유명작가 그림책이 거의 망라되어 명실 공히 세계그림책의 전시장

을 옮겨놓은 듯 했다. 젊은 아티스트들은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 홍수를

경험하면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특정한 시기를 가르며 많은 차이를

보이는 출간 러시는 이런 이유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2006년쯤엔 세계

의 그림책 시장이 점차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거의 모

든 20C 유명 걸작이 나온 뒤 이제는 언어권 구분 없이 인기 있는 작가

의 새로운 타이틀을 우리나라에서 동시 출간하는 마케팅이 늘어가고 있

다. 여기에 한 몫을 더해주는 이슈들이 있다.

20 그림책 깊이 읽기

국가 간, 언어권별 장애를 어렵지 않게 넘나드는 국제박람회에서의

교류이다. 1998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

박람회 참관행렬은 매년 우리나라 출판관계자를 포함 일러스트레이터,

어린이 책 애호가까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43회째를 맞는 2009년, 이

박람회가 한국을 주빈국으로 결정함으로써 정점에 다다랐다. 한편으로

이 박람회가 공모한 세계 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원화 수상작품들이 일

본에 이어 2009년과 올해 연이어 전시된 바 있다.

61개국에서 2,714명이 응모한 작품 중 20개국 81명의 작가 작품들이

전시장에 걸린 규모 있는 이벤트가 그림책 장르를 중화 하는데 일정

한 기여를 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적인 전시 이벤트 못지않게 국내 아

티스트들의 적극적인 활동도 잇따른다. 이미 중견작가로 활약하면서 인

지도가 높은 일부 작가는 갤러리에서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거나 그룹전

을 통해 현장에서 독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림책작가로 입문하기 위

해 준비 중인 신인 일러스트레이터들도 비공식 아카데미 활동과 작업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채워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기까지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5. 세계 그림책 시장의 통합, 한국의 그림책 아티스트

그림책을 수량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이제 진부하다. 은밀하게 작업하고

논의하던 수준이 이미 지났고 그림책은 이미 읽기 능력을 위한 보조수

단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영국 최초로 앵글리아 학교 학원에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 전공을 개설한 마틴 솔즈베리(Martin Salisbury)

는 최근 이런 경향을 반영한 아티스트 36을 소개한 작품집을 선보였다.

전 세계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들의 특징적인 작품세계를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21

소개한 글에서 그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언

급한다.

“ 세계에서 출 되는 그림책들은 각 나라별로 스타일, 근법,

시각 ․문화 배경 매체 사용법 등에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

었다. 그러나 인터넷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상당히 비슷한 모양새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외부와의 교류 없이 자국의 통 그래픽을 고

수하던 국가들이 어린이용으로 서구 이고 ‘디즈니화’된 디자인을 무

분별하게 수입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경

향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한 나라들이 자국의 문화 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노력 이어서 다행스럽다. 세계 곳

곳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한국․이란․스칸디

나비아반도 국가들의 뛰어난 시각 통 계승 움직임이 돋보인다.”

그의 이런 견해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개성과

스타일을 중시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작가의 정체성 있는 시각 표현이 반드시 독자에 한 배려를 외면한다

고 보기는 어렵다. 1990년 전후로 백두산 이야기 (류재수 그림, 보림),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수탉 (이억배 그림, 재미마주), 솔이의 추석이야기

(이억배 그림, 길벗어린이),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그림, 초방)

등을 일부에서는 어린이 독자의 배려 없이 지나치게 전통 문화에 집착

하는 것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조지프 슈워츠의 견

해를 인용해 짚어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모든 훌륭한 예술이 그렇듯이 보편적 가치를 가징 두드러지게 구현

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의 다수는 지역의 배경과 특성을 강하게 담

은 것”이라는 그의 말을 재해석해 본다면 출판사와 작가들이 해외 여러

나라들과의 동시 출간과 교류를 의식하면서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이

한층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특히 요즘에는 글과

22 그림책 깊이 읽기

이미지의 상호 보완하는 전통적인 관계에서 점점 시각적 텍스트화 하는

경향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에게 흥미로움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열거한 세 작가의

작품은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 전통적인 그림책 해석 방법이나 글

과 이미지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형식의 문제는 보다 자유로워야 한다.

심지어는 독자 상 연령에서도 의도적으로 회피할 수 있어야 작가의

작업이 보다 더 창조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작가의 특

징적 조형성과는 별개로 우리나라는 매년 백 수 십 명의 아티스트가 그

와 비슷하거나 훨씬 많은 그림책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그리고 앞서 서

술한 것처럼 우리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제 이 창의적 열정가 들

이 벌이는 축제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어떤 창조적 아이디어로 일러

스트레이션 세계를 펼쳐갈지 기 해볼 일이다.

6. 독립된 표현 장르, 옛이야기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요인 못지않게 표현 장르도 중요하게 다룰 수

있는 목이다. 번역 소개된 그림책과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을 백 여

종 이상을 눈여겨 살펴보면 차이점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서양의 그

림책들이 판타지, 즉 상상력에 기반을 둔 특징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책들은 가장 아름답고 세련된 일러스트레이션이 ‘옛이야기’를 다룬 장르

라는 점이다.

2009년의 그림책 180여 종만을 상으로 해도 옛이야기를 텍스트의

소재로 삼은 것이 50여 종을 넘는다. 좀 더 지식정보 쪽으로 접근하면

이보다 훨씬 수량이 나온다. 그런데 이 책들의 표현기법이나 스타일은

단순하지 않다. 여러 재료를 섞어 작업한 혼합재료에서부터 수묵, 목판

그림책의 역사 및 장르 23

화에 컬러 채색, 아크릴, 연필 드로잉, 디지털 매체 사용까지 다양하다.

또한 글을 따라가는 보조수단의 이미지보다 오히려 문자와 이미지의 통

합에 가까운 담한 구성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줄줄이 꿴 호랑이 (권문희 글․그림, 사계절)에서 보이는 화면의 구

성은 도구와 재료를 작가의 의도 로 사용하고 구사한 감정표현의 자신

있는 묘사로 볼 수 있다. 참기름에 푹 절은 강아지가 깊은 산 큰 나무

에 꼬리를 묶인 채 누워있는 장면, 미끈미끈한 강아지가 호랑이 목구멍

을 통해 똥구멍으로 쏙 빠져 나오는 장면까지 길게 펼쳐진 화면을 시각

적으로 일관성 있게 포착하기위한 수단으로 긴 가로형태의 판면을 사용

한다. 여기에 텍스트는 오히려 그림에 방해받지 않는 최적의 공간으로

앉혀지면서 보는 사람은 마치 영화의 프레임에서 소리 없는 한 장면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끄럽지 않은 까칠한 붓질로 꼭 채워야 하는

곳에 채색하고 부분은 여백으로 두어 공간의 효율도 높인다. 그림과

글의 관계에서 모리스 샌닥이 ‘리듬감 넘치는 단어와 그림의 당김음’이

라고 말 한 것을 줄줄이 꿴 호랑이 가 작가의 독창적인 표현기법으로

실현해 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인 옛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시각화 하

는 데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영민함과 전통화법의

효과적인 활용에 있었다. 이 같은 독창적 묘사는 권문희 뿐만 아니라

박재철의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 (천둥거인), 김준철의 메기의 꿈

(웅진주니어)에서도 고전적인 전통을 현 적 감각으로 무리 없이 녹여

내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적 배경에서 가장 잘 어울리고

완성도 높은 그림책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이 분야가 아닐까?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 중에 또 다른 사례를 하나 본다면 이 문제에 더

확실하게 접근할 수 있다.

작은 당나귀 (김예인 글. 그림, 느림보, 2010)는 텍스트가 옛이야기

24 그림책 깊이 읽기

가 아닌 시를 택하고 있지만 글과 이미지가 하나로 결합된 인상적인 시

화로 나온 작품이다.

오랫동안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 작가의 스타일은 분명 미니멀한

미국 현 미술의 전통을 품고 있는 것 같지만 기법에서 보이는 붓의 사

용과 공간의 활용은 그의 문화적 뿌리가 어디에 연유해 있는지 드러난

다. 수채화이면서 수묵화로 여길 수밖에 없는 극도로 절제된 색채사용

에서 정체성이 강하게 배어난다. 단 한 획의 서툰 터치도 허락 할 것

같지 않은 정갈함, 그리고 물의 적절한 배합으로 농담의 변화를 주는

것에서도 한국의 수묵담채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작품의 출현으로 기

성과 신인의 경계는 물론 어른과 어린이의 독자 구분도 힘들게 되었다.

한편으로 어린이 책 분야에서 수준 높은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을 경

험하는 일은 무척 바람직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책임이

따른다. 좋은 작품을 즐기고 감상할 기회를 독자들은 외면해서도 안되

는 일이며 출판사는 독자와 작가를 매개하는 일 외에도 좋은 작품들을

상업적 마케팅에 어떻게 활용하고, 그 공간은 온 오프라인 북샵 외에 또

어떤 곳들이 있는지 눈여겨보면 가능성이 보일 수도 있다. 더 많은 활

로에 해 작가, 출판사, 독자, 도서관, 갤러리 운영자들과 함께 할 일

이 남아있다.

1990년 에 그림책을 보고 자란 세 가 지금 성년이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워크맨’, ‘삐삐’처럼 한 시 를 풍미하다가 사라질 것인가? 그림

책이라는 전통 있는 매체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미 영국에

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200여 년의 뿌리가 있다. 이제 정점에 오르기 시작

한 우리나라의 그림책은 세계로 바짝 다가가고 있다. 이들이 구매력 있는

수요층이 될 무렵 다시 10여 년 뒤에는 새로운 차원의 더 높은 수준의

조형 환경이 될지 그 과제는 현재 그림책을 만들고 보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서 정 숙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27

• 그림책은 글과 그림 두 개의 언어가유기적으로 구성된 복합 언어 예술이다.

• 그림책은 텍스트와 주변텍스트(paratext)의 요소 하나하나가 마치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그림책에서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다양한 방식으로 역할을 하는 오케스트라적 조합물이다.

그림책의 정의

28 그림책 깊이 읽기

• 그림책의 장면도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그림책은 넘기는 드라마다.

• 그림책은 앞표지부터 뒷표지에 이르기까지 제목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통합된 책이다.

• 그림책의 글 언어와 그림 언어를 읽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이두 가지의 언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그림책에 대한 경험과적절한 학습이 필요하다.

• 표지• 면지• 속표지• 본화면• 뒤표지

그림책의 구성 I텍스트와주변텍스트의유기적관계

• 책의 크기와 형태: 백두산 이야기, 마고할미, 곰, 피터래빗 이야기

• 글자 배열: 백만마리 고양이, 작은집이야기

• 서체, 글씨 크기: 곰 사냥을 떠나자• 그림틀, 글씨틀: 할아버지의 긴 여행,

책속의 책속의 책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29

- 그림 없고, 앞뒤 동일: 지하철을 타고서, 으뜸 헤엄이, 수호의 하얀 말, 시리동동 거미동동, 줄무늬가 생겼어요, 빨간 늑대

- 그림 없고, 앞뒤 다름: 아빠랑 함께 피자놀이를, 비바람 치는 날,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크리스마스 선물, 꼬마 돼지

- 그림 있고, 앞뒤 동일: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 아씨방 일곱동무, 거미 아난시, 강아지 똥, 아기 늑대 삼형제와 못된 돼지

- 그림 있고, 앞뒤 다름: 구름빵, 터널, 훨훨 간다, 곰 사냥을 떠나자, 동물원(이수지), 리디아의 정원

그림책의 구성 II글과 그림의 유기적 관계

동행

비동행

결합적 동행

보완적 동행

서술적 표현

집약적 표현

구체화

부연

확장 다음 장면으로의 진행을위한 표현글 없는 교대진행

영감

아이러니

대위법

인물 대위법

사건 대위법

장르 대위법

교대진행글 있는 교대진행

글에 대한 확장 표현

30 그림책 깊이 읽기

1. 서술적 표현

동행 1: 결합적 동행

2. 집약적 표현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31

1. 구체화

동행 2: 보완적 동행

2. 부연

Click!

32 그림책 깊이 읽기

3. 확장(내용 확장)Click!

3. 확장(장면 전환)Click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33

Click!

4. 교대 진행(글 없는 교대 진행)

Click!

34 그림책 깊이 읽기

4. 교대 진행(글 있는 교대 진행) Click!

비동행 A: 영감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35

비동행 B: 아이러니

36 그림책 깊이 읽기

• 아씨방 일곱 동무 (Click!)

•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Click!)

• 셜리야, 물가에 가지마 (Click!)

비동행 C: 대위법

• 안 돼, 데이빗!(Click!)

• 수수께끼 대저책(Click!)

• 동물원(Click!)

1. 색: 흑백, 단색, 제한된 색, 채색- 인물 창조, 분위기, 정서 표현, 따뜻함, 차가움, 냉담,

어두움, 밝음, 맑음, 탁함

코를 킁킁 (Click!)

이상한 화요일 (Click!)

• 등장인물의 개성 표현

• 시간적 배경 표현

• 흑백 그림 속의 강조

• 등장인물의 정서 표현

• 이야기 구성에의 기여

일곱마리… (Click!)

아씨방 일곱동무 (Click!!)

쏘피가 화나면 (Click!)

그림책의 구성 III내용과 그림요소의유기적관계

그림책의 정의 및 구성 37

2. 선

• 직선(냉정한 선) / 곡선(따뜻한 선)

• 단정한 선과 산만한 선

• 굵고 힘찬 선과 가늘고 약한 선

• 자유분방한 선, 빠른 선(달려)

관련 그림책 (Click!)

3. 배치: 글과 그림의 위치

• 현실세계와 환상세계 간의 이동

• 시간적 거리감

• 리듬감

괴물들이 사는 나라 (Click!)

할아버지의 긴 여행 (Click!)

곰사냥을 떠나자 (Click!)

38 그림책 깊이 읽기

• 평면적 / 입체적

• 기하학적/ 추상적 / 사실적, 재현적 (Galda &

Cullinan, 2002)

: 추상적이면서 무정형 모양(파랑이와 노랑이),

추상적이면서 기하학적(태양으로…)

4. 모양과 형태

관련 그림책 (Click!)

1. 서정숙 (1999), “부모의 그림책 읽어주기”, 창지사

2. 서정숙, 남규 (2010)(개정), “유아문학교육,” 창지사

3. 서정숙, 김정원 (2008), “유아문학교육프로그램,” 창지사

* 주요참고서적

http://cafe.daum.net/picturebookedu

* ‘그림책과 어린이교육 연구소’ 카페 소개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내 작가

엄 혜 숙

아동문학평론가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서 남 희

어린이책 평론가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51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1. 제리 핑크니 (Jerry Pinkney)

- 1939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 6남매 가정에서 자라며 어릴 때 엄마에게 안데

르센 동화와 남부 흑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들음

- 어린 제리는 그 둘의 차이를 느낌. 유럽인들의

목소리와 흑인들의 목소리

동화들은 ‘옛날 옛날에...’라고 시작되지만, 구전

이야기는 흑인들의 힘겨운 삶에 해 말해 줌

- 어린 시절의 흑인 영웅: 레무스 아저씨(Uncle Remus)와 존 헨리

(John Henry). 그러나 흑인 영웅은 구전 이야기에만 존재, 책에는

그런 소수인종이 나오지 않음

소수인종(을 변하는) 웅 없이 자라는 소수인종 어린이인 나는

주변인이라고 느 다. 왜냐하면 나를 타지나 역사 속에 자리매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의 희망과 꿈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

하는 온갖 은근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문학, 화 등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늘 제외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변

두리에 있다고 “그들 하나가 아니다”라고 느낀 것을 기억한다.

(http://www.tolerance.org/magazine/number-10-fall-1996/true-pictures)

- 중학교 때 백화점 앞길 건너 가판 에서 신문을 팔며 스케치. 유

52 그림책 깊이 읽기

명한 만화가 존 리니(John Liney)가 제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

그를 보며 제리는 그림으로도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됨

- 더빈스 직업고교에서 상업 미술을 공부. 장학금 사건으로 인해,

흑인들에게 은근히, 또는 터놓고 드러내는 “너는 더 나아갈 필요

가 없다.”라는 메시지에 옹골차게 반기를 든다.

- 필라델피아 미술관 미술 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 보스

턴으로 이사, 러스트크래프트 카드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함. 6년

만에 자기만의 아트 스튜디오인 컬레이도스코프를 세우고 첫 그림

책을 냄. 당시의 보스턴은 민권 운동 참여자들의 온상인 동시에

출판업의 본거지

1960년 보스턴의 은이들은 민권운동에 지 한 심을 가졌고

한 흑인들의 주류 참여가 정말 부족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

이었다. 동시에 출 계는 작가이자 그림 작가인 사람들이 매우 부

족했다... ( 략) 내겐 아이들이 넷 있었는데, (흑인으로서의) 자신

들을 반 해 책을 찾고 있었지만 어려웠다... ( 략) 그래서 (보

스턴에는) 모든 요소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나는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http://hubpages.com/hub/An-Interview-with-Jerry-Pinkney-Part-I)

그림책은 처음에는 민담 위주. 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보다는 아프리카인들의 문화를 묘사

첫 그림책은 서아프리카의 거미 아난시에 한 여

러 이야기들을 다룬 조이스 쿠퍼 아크허스트의 <거미의

모험>. 살짝 각지고 강한 검은 선과 즉흥적인 라인

들이 유쾌한 인물들을 창조해냈다는 평을 받음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53

가. 개성과 품 를 지닌 흑인 묘사

발레리 플라워노이의 <패치워크 퀼트> 그림에서

전환점을 맞음. 즉, 구체적인 인물들을 그리고, 역사

적 정확성을 요구하는 배경이나 의상에 주목

패트리샤 C. 매키색의 <미랜디와 바람 오빠>

1988년 칼데콧 영예상

미국 남부의 농촌 풍경과 에젤이 젖 짜는 모습,

닭들이 낳은 알을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 호롱불을

밝힌 부엌과 엄마의 모습 등을 시 에 맞게 정확하

고 아름답게 묘사

바람 또한 높다란 신사 모자를 쓰고, 은빛 망토를 두른 투명한 바람

오빠로 형상화. 수채화는 상큼하고, 신통치 못한 점쟁이 아줌마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이야기가 따로 있음직한 개성 있는 얼굴

크레올의 설화를 그린 로버트 수치 글, <말하는

달걀들(The Talking Eggs)> 1989년 칼데콧

영예상

예전엔 인종별 ‘살색’을 칠해주었다가, 그 후 그

는 자신의 인물들에 해 스타일을 바꾸고, 언제

나 자기가 그린 인물들에 인격과 품위를 불어넣

으려 애씀

54 그림책 깊이 읽기

줄리우스 레스터 글, <존 헨리 (John Henry)> 2000년

칼데콧 영예상

존 헨리는 어린 시절의 그의 흑인 영웅이자, 버지

니아 산 속에 길과 철도를 닦는데 크게 이바지한

모든 노동자들의 상징

2002년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인

<나이팅게일(The Nightingale)>을 그림책으로 내 놓으

면서 원작의 배경인 중국을 모로코로 바꾸어 검은

아프리카인들과 화려한 의상 및 이국적인 건물과

정원 등의 아름다움을 선사

나. 동물 그림에 심

이솝 우화의 동물들 이야기를 통해 유머감각과 상

상력을 가지면서, 동물을 그리는데 창의적인 눈을

뜨게 됨. <이솝 우화>에서 흑인, 아시아인, 백인 등

여러 인종들을 담아내는 한편, 동물들도 재미나고

독특하게 묘사

- ‘사자와 생쥐’: 힘센 사자가 그물에 걸려 있고,

연약한 생쥐가 매듭을 끊어내는 장면에서 둘을

같은 눈높이로 처리함으로써 등한 관계임을 보여줌

- ‘개미와 베짱이’: 눈이 또록또록한 개미들은 여름에 결사적으로 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듯한 표정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55

<꼬꼬닭 빨강이를 누가 도와줄래?>

노동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암탉을 시원시원한

그림으로 묘사

- 동물들의 특성 이용하는 사.

‘Who will help me?(누가 도와줄래?)’

’Not I. (난 싫어)’ 신, 개에게는 구멍을 잘

판다며 밀씨를 심을 때 도와달라고 하고, 쥐에게는 꼬리로 탁탁 때리면

낟알을 털기 쉽다고 도와 달라고 하고, 방앗간에 낟알더미를 가져갈 때

는 염소에게 힘도 세고 착실하다며 도와 달라고 하고, 빵을 구울 때는

돼지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느냐며 도와 달라고 함

- 풀숲의 자잘한 곤충들과 농장의 이곳저곳 및 옛 농가의 살림살이를

꼼꼼하게 묘사

- 크기에 한 정확성과 시선과 동작의 변화 주목

- 노동윤리에 한 동감: 아마존의 한 독자 “모두들 이 책을 어린이 책

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십 용 책이라고 생각한다. 십 들이란 모

든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http://www.amazon.com/Little-Red-Phyllis-Fogelman-

Books/dp/0803729359)

- 작가 자신이 방앗간 아저씨로 등장. 잔재미를 더해 줌

<사자와 생쥐>: 2010 칼데콧 메달

이솝 우화 삽화를 그리면서 마음에 쏙 든 이야기.

언뜻 보기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속으로는 똑

같이 위 한 두 인물에 끌림. 사자는 무척 힘이

세고, 생쥐는 연약해 보이지만, 한 쪽은 용서를,

한쪽은 보은이라는 덕목을 갖고 있음

56 그림책 깊이 읽기

사자와 생쥐를 완벽하게 일 일 관계로 두고, 표지도 정확히 같은

크기의 패널 그림을 나란히 배치. 이들은 각 그림 안에서 엄청난 힘을

뿜어냄

- 아프리카의 세렌게티 초원으로 배경을 정한 이유

나는 자연보호구역 바로 에 살면서, 주변의 숲에서 들려오는 온

갖 새소리와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다람쥐들의 합창 소리에

매료되었다. 특히 다람쥐들의 합창 소리는 이 이야기를 매끄럽게 만

들려면 동물들의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

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과 함께 서사를 끌어가는 그

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해를 거듭할수록 동물들에 한 심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에 한 호기심과 존경심도 커졌다. 그러고 있던 차에, 나는 이

우화의 무 로 드넓은 지평선과 풍부한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아

리카의 탄자니아와 냐의 세 게티 국립공원을 선택하 다. 그리하

여 두고두고 훌륭한 이야기로 해지고 있는 이 우화 속,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양면성과도 같은 아주 멋진, 그 지만 아직 상처

받기 쉬운 자연 그 로의 야생을 이 이야기의 무 로 그릴 수 있었다.

(<사자와 생쥐> 작가의 말)

- 복선의 활용: 한가하고 평화롭고 드넓은 초원에서 연못가로 배경은

점차 좁혀짐. 생쥐는 사자 발자국 안에 들어 와 있음. 생쥐의 꼬

리가 발바닥을 둥글게 말고 있음. 사자에게 잡힘과 동시에 앞으로

사자가 생쥐의 보호 아래 들어올 것이라는 복선. 그런데 생쥐가

발자국 일부(왼쪽)를 파헤쳐 놓았음. 사자의 낮잠을 방해하게 될

거라는 또 하나의 복선

- 배경 그림의 변화: 연못이니 나무니 풀숲, 나비, 벌레 등 배경 그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57

림이 있지만, 사자가 생쥐를 막 잡아먹으려는 절 절명의 순간에는

아무 것도 없음. 어마어마하게 사나운 눈, 날카로운 이빨, 연약한

생쥐의 공포에 휩싸인 눈-온 우주 공간에 오로지 그 둘 뿐

- 사자의 자비 덕분에 생쥐가 놓여나 보금자리 굴로 가는 장면에도

복선. 꼬리=무지개

- 각도: 인간들이 덫을 치고 간 뒤, 사자가 아무 것도 모르고 어슬

렁거리며 걸어가는 장면. 카메라 각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 잡듯

이 그려서, 이미 알 것 다 아는 원숭이들과 새들은 나무 위에서

긴장하며 내려다보고 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자만 어슬렁거리

며 걸어감

- 사자의 고함 소리 시 생쥐가 하던 일: 부지런히 나무를 갉고 있었다.

- 동아줄을 갉는 힘겨운 과정 전달. 그림을 보면 동아줄의 굵기가

엄청나고, 매듭은 수도 없으니, 생쥐가 시간과 노력을 엄청나게

들여야 했다는 게 충분히 강조

- 가족의 강조: 생쥐가 매듭을 물고 가 새끼 쥐들에게 훈련시킴. 세

렌게티 장면을 보면 사자에게도 가족이 있음

이를 통해 제리 핑크니는 초원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임을 보

여주고 싶어 했음

- 로저 서튼(Roger Sutton) (혼북 인터뷰)

‘사자와 생쥐 중 누가 영웅인가?’ 제리 핑크니의 답 :

나는 생쥐가 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자가 엄 있는 존재이며 정

의 왕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크고 작은 다른 동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로 강하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사자는 작은 생쥐를 귀찮고 하잘것없

는 존재로 여길 것이다. 우리가 리를 쫓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늘 험을

경계하는 작은 회갈색 생쥐는 버림받은 자의 울부짖음을 정 에서 듣고, 본

능을 무릅쓰고, 가정과 가족을 뒤로 하고 사자를 구하러 간다. (후략)

http://www.hbook.com/newsletter/archive/2009/notes_dec09.html#links

58 그림책 깊이 읽기

- 책 뒤표지는 에드워드 힉스의 그림인 ‘평화로운 왕국’에 한 오마

주. ‘늑 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

리라’로 시작하는 이사야서 11:6~9에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

http://en.wikipedia.org/wiki/File:Edward_Hicks_-_Peaceable_Kingdom.jpg

<참고 사이트>

http://www.hbook.com/newsletter/archive/2009/notes_dec09.html#links

http://www.post-gazette.com/pg/10033/1032682-369.stm?cmpid=books.xml

http://hubpages.com/hub/An-Interview-with-Jerry-Pinkney-Part-I

http://www.tolerance.org/magazine/number-10-fall-1996/true-pictures

h t t p : / /www.amazon. com/L i t t l e-Red-Phy l l i s-Foge l man-

Books/dp/0803729359

http://en.wikipedia.org/wiki/File:Edward_Hicks_-_Peaceable_Kingdom.jpg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59

2. 기 빌루/기 비유 (Guy Billout)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

- 뒷다리로 스물여덟 번 발길질하면 빤히 다 닿는,

구석구석 익숙하고 평화로운 작은 연못에서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다가 연잎 한 장 돌돌 말아 쥐

고 바다로 떠났던 개구리 앨리스 이야기

- 기쁨과 두려움에 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 연상

- 조용하고 서정적이고, 세밀하면서도 일정한 색상

을 드러내는 그림. 어린 시절 <땡땡>의 작가인 에르제의 평면적

인 색상 표현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

- 일본 목판화의 부드러움에도 영향. 개구리가 연잎을 타고 파도타

기 하는 장면은 큰 파도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카스시카 호쿠사

이의 목판화인 ‘카나가와의 파도’와 매우 비슷함

- 1941년 7월에 프랑스 드 시즈 출신. 부르군디에 있는 미술학교를

나온 뒤, 파리의 TV 방송국 애니메이션 부서에서 일을 시작, 알제

리에서 군 복무, 파리 광고회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 뉴욕 행

- 뉴욕 갈 때의 경험을 시작으로, 삶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기쁨’은

장차 그의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에 선연히 드러나는 주제가 됨

- <뉴욕>지의 아트 디렉터인 밀튼 글레이저에게 발탁되어, 계속 뉴

욕에 살면서 작품 활동

나는 뉴욕을 사랑했다. 뉴욕은 내가 꿈꾸던 수직성을 확인시켜주

었다. 이 도시의 고층빌딩들과 골들을 난 정말로 사랑한다. 특히 거

리들이 옛 유럽 도시처럼 뻗어 있는 월 스트리트를 사랑한다...(

60 그림책 깊이 읽기

략) 술가로서 보기에, 뉴욕은 리가 주지 못한 것을 다. 물론

나는 리를 사랑한다. 그러나 뉴욕의 빛은 굉장하다. 햇빛과 그늘이

굉장한 조를 만들어낸다.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내가 말하고 싶

은 것은, 두렵다고 가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http://www.drawger.com/zinasaunders/?article_id=4949

- 그림 스타일: 부드럽고 평면적인 색상 표현과 고요한 수직성, 그

러면서도 작은 변형으로 일상적 풍경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림

- 첫 그림책은 <24번 버스>: 하인리히 호프만의 <게으름뱅이 피터>에

실린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음.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가 온갖 무

시무시하고 불길한 상상을 하는 내용을 떠올리고 그림책으로 엮음

- 어렸을 때 마녀나 뱀, 용, 어린이들, 굶주린 식인귀 따위로 가득

찬 괴기스런 동화책을 좋아했다. 지금도 세상이 무섭고, 항상 어

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두렵다고 고백. 그러나 그림에

서는 감정을 절제하는 편. 유머를 통해 공포를 누그러뜨려야 한다

고 생각함

‘Mimesis (모방)’ : 비행기 활주로에서 이륙

하기 시작하는 무거운 비행기와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비둘기들을 보여줌. 비행기는 새를

모방해서 쌩~하고 날아가는데, 막상 새는 제

것이었던 비상을 잊고, 이제야 비행기를 모

방해 바퀴를 달고 있으니 그 역설적 풍경이

단한 작품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61

‘Writer’s Block (작가의 장애)’ : 꼼짝없이

막혀 버린 글쓰기 혹은 그림 그리기가 댕강

끊어진 폭포 줄기로 표현됨

- 이런 식으로 살짝 변화를 주는 것을 좋

아함. 물줄기란 늘 이어지는 거라는 고

정관념을 살짝 비틀어 끊어버리거나, 건

물 벽을 비추는 서치라이트는 그 벽에서

끝나야 하는데 건물을 통과해서 맞은 편

벽까지 꿰뚫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바꿔

서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냄

Journey(꿈꾸는 소년의 짧고도 긴 여행)

그런 이미지들을 모아, 글이 거의

없는 그림책으로 꾸민 책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소년의 상상

여행. 기찻길은 상상이 뻗어나가는 장치

- 표지 : 보면, 바닷가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기차가 서양을 향해 철

길도 없는 공중을 따라 달리는 모습

지켜 봄

- 1984년에 쉴러 와프터 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일러스트레이션 전시

회 포스터를 위한 스케치를 보면

그의 의도 파악됨

62 그림책 깊이 읽기

- 구름 너머 하늘에서 스스로 줄을 그어가며 외줄 타기를 하는 청년

은 Journey에서 벼랑 너머 기차 길 없는 곳을 달리는 기차와 똑

같음. 외줄을 타며 느끼는 살 떨리는 긴장감과 두려움, 그러나 오

로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

<참고 책 및 사이트>

스티븐 헬러, <일러스트레이터는 무엇으로 사는가>. 디자인 하우스

(2002): 216-224.

http://www.nytimes.com/2007/11/11/books/review/Handy-t.html?_

r=2&ref=authors&oref=slogin&oref=slogin

Zina Saunders의 사이트:

http://www.drawger.com/zinasaunders/?article_id=4949

기 빌루 홈페이지 http://guybillout.com/

3. 에릭 칼 (Eric Carle)

- 독일계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받고 다시 미국으로 와서 일러스

트레이터로 활동

작가별 그림책 분석 - 국외 작가 63

- 빌 마틴 주니어의 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에 삽화를 그려

유명해짐

-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환상적인 색감으로

The Very Hungry Caterpillar, The Very

Busy Spider 등 수많은 그림책을 냄

<참고 책 및 사이트>

Eric Cale, The Art of Eric Carle. Pilomel, 1996.

http://www.eric-carle.com

http://stellacake.blogspot.com/2009/08/kindergarten-art.html

http://kindergartencce.wikispaces.com/Author-Eric+Carle

http://mmmcrafts.blogspot.com/2010/06/being-eric-carle.html

http://butterfliesandfaeries.blogspot.com/2009/11/very-hungry-

caterpillar-day.html

그림책을 활용한 독서지도 사례

조 현 애

부산대학교 외래교수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정 유 정

그림책 작가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93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1. 고사리 손 요리책

<고사리 손 요리책>은 내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 나는 음식을 만들고 치우

고 하는 일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정도

로 생각했지, 마음을 담아 정성을 쏟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일이

즐거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

나 이 책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요리책을 들여다보고, 읽고, 요리를 따

라 해보고, 그 음식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음식을 먹는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생명을 이어가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꼭 필

요한 것이지요. 꼭 필요한 일이라면 더 재미있고 신나게 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면 좋겠지요.

<고사리 손 요리책>은 어린이들이 일상 속에서 늘 만나고 먹는 음식

을 계절 별로 골라서, 그림만 보고도 따라 할 수 있고 또 그림으로만

즐길 수도 있게 구상하였습니다. 표지에 앞치마를 두르며 준비를 시작

해서, 함께 나누어 먹은 뒤 뒷정리를 하는 것까지. 나비가 날아다니는

봄 날 장다리꽃밭에서부터 눈이 소복이 쌓인 김치항아리까지.

94 그림책 깊이 읽기

굳이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그림으로 된 요리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갖고 있을 음식이야기가 즐겁게 따라 나오고, 음식을 입 안에

넣은 듯 맛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음식을 언제 먹는지, 같

은 음식이라도 우리 집에서는 어떻게 요리하는지 알게 되기도 합니다.

같은 재료라도 음식을 만드는 순서가 다르거나 재료의 비중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되는 걸 알아차리는 것은 자연히 얻게 되는 덤이라고

할까요?

2. 바위나리와 아기별

마해송 선생님이 쓰신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

기는 1923년 <샛별>지에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동화입니다.

내가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만난 것은 열 살

무렵인 것 같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누구와도 마

음을 나누지 못하고 외로움을 타던 어린 시절의

나는 바위나리의 외로움을 내 것인 것처럼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안타까움이 가슴 속에 남아 그림책을 그리게 되었

겠지요.

이 책을 어린이에게 읽어 주면 모두 숙연해지면서 빠져들어 책을 덮

고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림에 다시 관심을 보

입니다. 책 속에 그려진 바위나리나 아기별의 모습에 다시 감정이입이

되는 것입니다.

바위나리와 아기별의 사랑은 어린이다운 사랑입니다. 곁에 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다 헤어지면 그저 기다리고 그리워할 뿐 스스로 어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95

떻게 할 수 없는 어린이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쉽게

바위나리나 아기별에게 공감하고 함께 안타까워 해 주는 것 아닐까요?

3.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마무리 할 즈음 우리

가족은 안성의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갔습니다.

작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마을아낙들과 어울

려보려고 애쓰던 때, 마침 만나게 된 오리농군을

보고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를 구상했습니다.

유기농으로 벼를 기를 때 모내기를 한 후 오리

들을 논에 넣어 잡초와 해충을 제거합니다. 벼가 자라 꽃을 피울 때쯤

그 오리들을 논에서 뺍니다. 이런 농사법을 오리농법이라고 하고 그 오

리들을 ‘오리농군’이라 합니다. 요즘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곳에서

는 어린이들과 함께 오리넣기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는 오리농장에서 사육되던 오리 한 마리

가 어느날 문득 호수를 찾아 길을 떠나는 내용입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삶의 터전을 떠나, 친구나 가족과 헤어져 새로운 삶

을 찾아 나서는 일은 꿈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처음, 오리는 다른 오리와 다름없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오리였

습니다. 그러나 다른 오리들이 갖지 않은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갖는 순

간 특별한 오리가 됩니다. 주인공 오리가 집을 떠나는 일은 어쩔 수 없

는 운명이나 떠밀림이 아니고 분명한 자기의지로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리가 자라난 농장은 꽤 쾌적하고 아름답기도 한 곳으로 설정

했습니다. 그리고 오리의 선택은 그냥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는

96 그림책 깊이 읽기

것처럼 쉬운 방식으로 이루어 집니다. 선택의 결과 역시 대수롭지 않습

니다. 그저 저와 비슷한 여러 오리들 사이에 살게 되는 것 뿐입니다.

그렇지만 분명 전과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4. 딸기 한 포기

우리집에는 딸기밭이 있습니다. 이웃에서 딸기

세포기를 얻어다 채소밭 귀퉁이에 심었는데 이년

만에 채소밭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만큼 많이

퍼졌습니다. 딸기가 어떻게 자라는지 아무것도 모

르던 나는 해마다 놀라서 탄성을 지르며 소쿠리를

들고 딸기를 따러 다닙니다. 얼마나 많이 열리는지, 샅샅이 뒤져 빨갛

게 익은 딸기를 다 따도 다음날이면 또 그만큼 많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습니다. 매일 매일 실컷 먹고, 주스도 해먹고, 얼려서 샤베트로 먹고,

쉐이크도 해 먹고, 끓여서 양갱도 해먹고, 잼도 만들고... 이렇게 저렇

게 해도 냉동실에 얼려놓은 딸기가 한동안 남아있었지요.

이 멋진 딸기 밭이 <딸기 한 포기>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딸기를 한 포기 캐내어 멀찌감치 옮겨 심고 관찰을 하기 시작했

습니다. 동시에 딸기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식물의 놀

라운 비밀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딸기는 기는 줄기로 번식하는데

한포기의 딸기가 일 년에 300포기 까지 불어난다니 그 생명력에 경외

감이 들렀습니다. 또 딸기의 놀라운 면 한 가지….

처음 심은 딸기 포기를 어미라 하고, 그 어미에서 나온 기는 줄기 끝

에 아기포기를 아들, 또는 자식이라 하고, 자식에게서 나온 싹을 손자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자손이 커가는 동안 기는 줄기를 통해 열심히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97

양분을 전해 주던 어미는 자손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되면 연결된 줄기를 말리고 스스로도 죽어 버린답니다. 이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니 딸기라고

예외 일수 없겠지요. 만물에 적용되는 자연의 이치에 다시 한 번 숙연

해졌습니다.

<딸기 한 포기>는 어린이가 딸기 한포기를 얻어다 심고 그것이 자라

는 것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기뻐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조그맣고,

연약한 딸기 한 포기가 열심히 자라나 추운 겨울도 이겨내고 많은 열매

를 맺기까지. 아이는 딸기를 보살피고 딸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오래

기다려 얻은 귀한 열매를 다른 생명체와 나누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처음 아이에게 딸기는 ‘내(소유의) 딸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맺힐 즈음의 ‘내 딸기’ 는 분명 ‘나와 친하고 귀중한 존재인 딸기’ 로

변해 있습니다. 그건 함께 나눈 시간의 마술이지요.

딸기는 이제 겨울에 먹는 과일이 된 것 같습니다. 제철인 5~6월에는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써서 공장에서 만들 듯 키

워낸 딸기를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먹고 있지요. 모두들 딸기가

98 그림책 깊이 읽기

5월이 지나야 열린다는 것도 모두 잊어버리겠지요. 겨울에 먹는 딸기도

너무나 맛있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아직 쏟아지는 햇빛으로, 빗물로, 곤충의 도움으로 키워

낸 딸기가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게 진짜이고,

그게 우리 모두 원하고 딸기도 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사실을 꼭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5. 썰매를 타고

이 책은 우리 작은 아이를 떠올려 만들었습니다. 작은 애는 우리가

시골로 이사를 할 때 다섯 살이었습니다. 부모 욕심은 시골 작은 학교

에서 자연을 벗 삼아 기르고 싶었던 것인데, 현실은 아이가 너무 외로

웠습니다. 마을엔 아이들이 없어서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오지 않으

려하고, 멀리서라도 아이들 소리가 들리면 맨발로 달려 나갔다가 축 처

진 어깨로 돌아오고, 집에 손님이 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자랐습니

다. 친구 없이 혼자 지내야 하는 아이가 너무 가엾고, 미안했습니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지금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 대부분이 똑같이 겪

는 문제일 것입니다.

<썰매를 타고>는 부모가 바빠 놀아주지 못하는 시골아이의 어느 겨

울날 하루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의 일은 끝나지 않고, 겨우 허

락을 얻어 호수 옆 얼음 논으로 썰매를 타러 간 아이는 함께 놀 친구

들을 불러냅니다. 친구들이 아이를 찾아 온 걸까요?

늘 가까이 보면서 함께 놀고 싶었던 청설모부터, 순하고 예쁜 사슴,

듬직한 곰까지, 다 같이 신나게 썰매를 타고 놀다가 호수에서 겨울을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99

나고 있던 오리들을 만나서 하늘을 날아오르기 까지 합니다. 추운 겨울

날이지만 이렇게 땀이 쪽 빠지도록 뒹굴고 나면 아이는 어느새 쑤욱 자

라겠지요.

<썰매를 타고>는 크레용으로 그렸습니다. 이제까지 모든 작업을 한지

에 먹과 한국화 물감을 사용해 그려왔는데 <썰매를 타고>를 그리기 시

작하면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얼음 위, 겨울풍경이 많이 그려지는데

먹으로 작업을 하니 너무 외롭고 춥게 느껴졌습니다. 추운 겨울날이지

만 아이는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씩씩하게 놀아야하기 때문에 포근

하고 활력있게 표현하고 싶어 재료를 바꿔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의 모델이 되었던 아이는 이제 다 자라서 겨울이 되어도 썰매를

타러 가자고 조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얼음이 언 호수 곁을 지날

때 마다 멈춰서 서 썰매를 타고 싶은 마음입니다. 재미있게 썰매를 타

다보면 나도 책속 아이처럼 친구들을 만날 것 같습니다. 가는 길목에

서 마주친 얼룩송아지나 꿀꿀 소리만으로 만난 아기돼지나, 전봇대 위

에 위엄있는 모습으로 앉아있던 말똥가리나, 누구나 다 썰매가 타고 싶

어 얼음판 위로 달려오지 않을까요? 조그만 썰매 위에 모두 꼭 끌어안

고 앉아서 나더러 빨리 끌어달라고 조르는 것 같습니다.

100 그림책 깊이 읽기

6. 내가 만난 나뭇잎 하나

시골에 살면서 나무와 풀들과 가까워졌습니다.

처음엔 욕심껏 만나는 나무와 꽃들을 모두 심었습니다. 곡식도 어찌

나 여러 종류를 심었는지 그 가짓수를 세어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가 먹는 식물이 이렇게 많을 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욕심만 부려서는 식물들과 친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친구가 되려면 우선 이름을 불러야 하는 데 그 이름을 익히는 것만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잔뜩 심어놓은 그 친구들을 어떻게

돌보고 가꾸어야하는지 점점 난감해져서, 마음먹고 식물에 대한 공부

를 시작했습니다.

제법 나무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자신감이 생겼을 무렵 <내가 만난

나뭇잎 하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난 나뭇잎 하나>는 바람결에 날아 온 낯선 나뭇잎 하나를

만난 어린이가 그 나뭇잎이 어떤 나무에서 떨어진 것인지 궁금해 찾아

보는 과정에서 나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나무에 대한 것들을 많

이 알게 되면서 나무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무는 우리 곁에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101

언제나 있었지만 나무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는 우리 모두 잘 모르고

지내지요. 이 책은 나무와 자연의 순환에 관한 꽤 깊이 있는 지식을 담

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의 핀오크 잎처럼 이 책 <내가 만난 나뭇잎 하

나>가 어린이들을 나무의 친구, 자연의 친구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

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내가 만난 나뭇잎 하나>를 만드는 데는 여러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책의 큰 틀은 글 작가가 이미 잡아놓았지만 나도 자신이 있는 분야라

서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와 의견을 자주 나누면서 재미있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취재나 관찰과정은 일산지역의 늘빛 초등과학교사모임에

서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선생님들이 교육현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나 지식에 대해 조언도 해주시고, 계절마다 온갖 나무들

의 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찍어서 보내셨습니다.

이제까지 늘 혼자 공부하고 취재하고 작업해 오던 나에게 <내가 만

난 나뭇잎 하나>는 함께 하는 고마움을 경험하게 해 준 책입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정성껏 책을 만들다보면 그 과정에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얻게 됩니

다. 무심코 보아오던 사물에서 대단한 보물을 발견하기도하고, 전혀 알

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기도 하고, 새 친구도 만나지요. 새로

알게 된 일이나 새 친구를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아주 신나는 일

입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한편으로는 매우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

것을 읽는 독자가 어린이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낸 편지를 어린이가 읽고 반가워

해 줄지, 허튼 편지는 아니었는지 늘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책이 한

권 나올 때마다 ‘다음에는 더 좋은 편지를 보내야지!’ 하는 마음과 ‘이

102 그림책 깊이 읽기

정도의 편지는 보내지 않는 편이 나았어.’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번갈

아 찾아옵니다. 그래도 조금 지나면 또 주변을 구석구석 뒤지며 편지에

적어 보낼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찾게 됩니다. 점점 더 재미있

고 더 좋은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정유정의 그림책들>

고사리 손 요리책 / 정유정 그림 배영희 글 / 길벗어린이

바위나리와 아기별 / 정유정 그림 마해송 글 / 길벗어린이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 정유정 / 보림

딸기 한 포기 / 정유정 / 천둥거인

풀 꽃 안녕 / 정유정 그림 신혜은 글 / 사계절

썰매를 타고 / 정유정 / 사계절

내가 만난 나뭇잎 하나 / 정유정 그림 윤여림 글 / 웅진주니어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김 미 혜

아동문학가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05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그림책의 기획에서 제작, 출판까지

1. 글 작가와 화가

그림 그리는 새(한태희 그림, 보림)

신비로운 가릉빈가 이야기를 만났다. 전북 부안

의 내소사 답사를 갔을 때였다. 해설사가 아주 흥

미로운 대웅전 창건설화를 들려주었다. 가릉빈가

는 극락정토에 둥지를 트는 반인반조로 노래 소리

가 고와 묘음조, 관음조라고도 한다.

내소사 법당을 세운 뒤 어느 날 노인이 나타나

서 자신이 벽화를 그릴 터이니 벽화를 그리는 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

보지 말라고 당부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 달이 다 되어도 화

공이 나오지 않고 기척이 없자, 호기심 많은 이 절의 선우스님이 살짝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 화공은 없고 오색영롱한 관음조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가 들어오는 스님

을 보더니만 단청 한 곳을 마무리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지금도 단청이 완성되지 않은 채 바탕색만 채색되어 있

다고 한다.

‘두루미 아내’에서 본 낯익은 이야기 구조였지만 반짝! 불이 들어왔다.

천상의 새 가릉빈가가 완성하지 못한 안타깝고 아름다운 이야기. ‘단청’

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주기 위한 그림책으로 완벽한 소재라는 생각이

106 그림책 깊이 읽기

들었다. 금기와 파기. 금기설화는 그 자체로 매력 넘친다. 거기에 정보

를 적절하게 섞어야 한다. 정보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단청이라

는 우리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가릉빈가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단 걸 독

자가 알아챈다면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반감되고 만다. 그런데 이게 쉽지

가 않았다. 치밀함이라곤 모르는 초보가 ‘기획’ 없이 무작정 덤빈 일은

발 디디는 곳마다 가시밭길이었다. 스케치를 진행하던 중 담당 편집자가

퇴사하는 바람에 작업이 중단되어 ‘엎기’ 직전까지 간 일도 있었다.

원고 수정이 끝나고 글이 화가에게 넘어가면 이 지점에서 글 작가의 일

은 대부분 종료된다. 아쉽게도 완성된 그림에 글을 얹은 교정지가 와서

마지막으로 원고 수정을 할 때에야 그림을 보는 일이 많은 것이다. 물론

모든 경우 교정지가 나온 뒤에야 그림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

을 생각하고 쓴 글인지 각 장면마다 그림에 대한 글까지 쓰라는 요구를

받고 그림에 적극 참여할 때도 있다. 돌로 지은 절 석굴암 은 세 종류의

스케치 더미북을 보면서 어떤 그림을 넣는 게 좋을지를 의논했다.

좋은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조화가 완벽하다. 화가들은 글의 이미지

를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면서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낸다.

글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화가, 글 이상의 것을

보여 주는 화가는 틀림없이 멋진 그림책을 완성한다. 마감 일정에 엄격

하여 출판사와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함까지 갖추었다면 금상첨화다.

그렇기에 모험적이고 참신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선정되길 바랄 수밖에.

그림 그리는 새 를 그린 한태희 화가가 겪은 어려움은 곰곰이 신문

의 ‘작가노트’를 보고 알았다. 원고가 화가에게 넘어간 뒤 이야기는 한

태희 화가가 쓴 글을 통해 들어 보자.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07

단청이 완성되는 실재 과정과 음조라는 신비한 새가 얽 있었고

그런 다른 부분을 그림으로 잘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숙제 다. 결국

그것 때문에 어디에 그림의 심을 둘지 몰라서 기 스 치 때에 애

를 먹었었다. 뿐만 아니라 스 치를 진행하는 도 에서 을 수정하

면서 일 년 동안 작업이 지 었고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상황이 힘

들었다가 <사직동이야기>를 그린 한성옥 작가가 보림출 사의 아트디

터를 맡으면서(지 은 그만두셨지만)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비로소 본격 인 스 치가 진행되었다.

늘 그 듯이 여러 번의 미 을 통해서 그림이 이루어졌다. 그리

고 완성된 스 치를 모니터링해서 최종스 치, 그 후 칼라링이 들어

간 지 일 년 정도가 되서 체 원화가 완성이 되었다. 이 다보니 그

럭 럭 <그림 그리는 새>의 그림은 결과 으로 총기간이 삼년 반에

걸친 긴 작업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삼년이 넘는 동안 이것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

만, 어떤 일이 마감되지 않고 계속 진행 상태로 있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보다도 아마 을 주고서 오랜 기간을 기다린

작가 김미혜씨는 심정 으로 더 힘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 편집의 묘를 살리다

승사자에게 잡 간 호랑이

(최미란 그림, 사계 )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승에 대한 생각을 그림책

에 담았다.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는 우리

가 익히 알고 있는 두 가지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와 나무꾼에게 형님 소리 들은 호랑이 를 엮어 윤회하는 호

랑이의 저승 여행 이야기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번쩍! 또 한 번 불

108 그림책 깊이 읽기

이 켜진 곳은 2003년 10월, 전시회 마지막 날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불교회화특별전시회에서였다.

무시무시하게 완벽한 저승의 시스템, 이승에서의 삶을 비춰 보는 거

울과 육신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아니라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만났

다. 업경과 업칭이었다. 시왕도 속 염라대왕은 할아버지처럼 인자해 보

이고 말을 탄 저승사자는 멋져 보였다. 화탕지옥, 한빙지옥, 칼산지옥,

독사지옥…. 우리의 삶이 끝난 뒤 영혼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끔찍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지옥들이 왜 무섭지 않고

재미있는 건지. 집게로 혀를 뽑아 소가 쟁기질한다는 발설지옥 그림 앞

에선 으악, 옛사람들의 발칙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우리가 죽으면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되풀이해서 살게 된다고

한다. 악업을 쌓은 사람도 죄를 뉘우치고 값을 치르면 다른 삶이 열린

다는 것은 얼마나 큰 매력인지. 윤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업경 앞

에서 나는 그림책 하나를 쓰고 있었다.

나쁜 호랑이가 죽는다. → 저승에 끌려가 심판을 받는다. → 벌을 받

는다. → 다시 태어난다. → 착하게 살다 죽는다. → 저승에 끌려가 심

판을 받는다. → 다시 태어난다.

육도 윤회를 보여 줄 수 있는 구조였다. ‘나쁜 짓하면서 살다 지옥에

가서 벌 받았다’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살아야 한다’에

생각이 미쳤다. 글의 씨앗 하나가 잡히면 도착점도 모르는 채 쭉 달려

보는 때도 많은데 이번엔 머릿속에서 전체의 윤곽이 비교적 또렷하게

그려졌다. 이제 호랑이 다 모여라! 옛이야기 속의 호랑이를 총 집합하여

가장 괘씸한 호랑이와 가장 선량한 호랑이를 찾았다. 여기에서 발탁된

호랑이가 해님 달님의 호랑이와 나무꾼에게 형님 소리 들은 호랑이다.

이 이야기를 액자에 넣기로 했다. “할머니, 할머니. 옛날이야기 하나

해줘.” 이야기의 시작을 이렇게 잡아 놓고 저승에 대한 정보를 푼 뒤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09

“저승사자에게 두 번이나 잡혀간 호랑이가 난데. 어흥!”하면서 능청 버

전으로 글을 맺어 놓고 보니 재미가 배가되었다. 글을 써 놓곤 만나는

사람들한테 얘기 하나 들어 봐요, 하면서 호랑이가 저승에 끌려간 이야

기를 하곤 했다. 모두들 재미있다고 했다. 자뻑공주는 쾌재를 불렀다.

확실했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다. 쉽고

재미나게 풀 수 있다면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재미있고 울림을 주는 이

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면지에 있는 이야기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두 번이나 섰었

다. 편집부에서 ‘액자 형식을 버리는 게 더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면서

의견이 어떤지 물어왔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저승 이야기와 그냥 저승

이야기. 견줄 것도 없이 나레이터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에 액자를 부수

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교정지가 나온 뒤에 보니 글이 좀 복잡하단 생

각이 들었다. 액자 형식을 버리기 너무 아까웠지만 단순하게 가는 게

어떻겠냐고 메일을 보냈다. 편집부에서 면지로 처리하겠다고 답을 보내

왔다. 이야, 멋지다! 훌륭한 편집진 덕에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형

식은 단두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꼼꼼한 독자들

이여, 앞뒤 면지까지 놓치지 말고 살뜰하게 읽어 주시길!

3. 그림책의 탄생 과정

깜장 콩벌 (박해남 그림, 비룡소)

‘5년 넘게 잠자던 콩벌레, 제가 사랑하는 콩벌레가

이리도 귀여운 콩벌레가 되어 세상에 나올 준비를

거의 마치고 드디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게 온 콩

벌레를 보는 순간, 오랫동안 절 기다리게 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아무 콩벌레라도 괜찮아, 그럴 수가 없

110 그림책 깊이 읽기

3초 안에 아이 눈길 잡아라

그림책 탄생과정… “예쁘게 흥미롭게” 경쟁

그림책 한 권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년이 넘는다. 전문 인

력이 달라붙어서 작업하는 게 그렇다. 그보다 더 걸리는 경우도 수두룩하

다. 대부분 30여 쪽에 불과하지만 3초 안에 눈길을 끌지 못하면 아이들은

단번에 책을 놓아 버리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 온갖 것들이 이야깃거리

동화작가 김미혜씨는 5년 전 출판사로부터 ‘4~6세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딱히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었던 김씨는 2년 동

안 주인공을 찾아 헤맨 끝에 ‘머리 위에 이슬 한 방울만 통 떨어져도 깜짝

놀라 몸을 돌돌 마는 콩벌레’를 발견했다.

김씨가 보기에 콩벌레는 “독특한 생명체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는 것

었던 것이지요. 오케이를 쉽게 하지 않는 편집자, 깐깐한 정신은 틀림

없이 빛나는 법입니다. 작가의 속이 문드러지든 말든 제대로 된 책을

건지긴 위해선 오우!를 아껴야 할 것입니다. 콩벌레야, 뭐 먹고 싶니?

너에게 한 턱 쏘고 싶어.’

2008년 7월, 출판사에서 온 교정지를 받고 블로그에 쓴 글이다. 애정

이 특별하지 않은 책은 없지만 깜장 콩벌레 출간은 조금 더 특별했다.

내 생애 첫 그림책 원고이자 처음으로 출판사 전화를 받게 해 준 원고

이기 때문이다.

2008년 조선일보에 실렸던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그림책의 탄생 과

정을 다루었던 내용이다.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11

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 딱 좋은 캐릭터”였다. 그림책에는 곰이나 토끼,

생쥐처럼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외양이 둥글고 성격이 유순해서

아이들이 자기와 비슷하다 여기고 쉽게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1년 동안 직접 콩벌레를 키우며 습성을 관찰, 개성 있는 콩벌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A4용지 단 한 장으로 정리되는 분량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3년이 걸린 셈이다.

◆ 한 번 더 상상하면 예쁜 그림이 된다

일러스트레이터 박해남씨가 원고를 전달 받은 건 2년 전인 2006년 여름이

었다. 원고를 읽자마자 전체적인 윤곽을 떠올리고, 책 크기는 400×250mm로

정했다. 콩벌레와 그 친구들의 외양을 정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

원화 1장을 그리는 데에는 2~3일이 소요된다. 바탕만 물감으로 칠하고

주요 캐릭터는 천으로 인형을 직접 만들어 붙였다. 천을 사용하면 질감을

눈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똥을 맞아 기분 나쁜 표정, 위기가 사라지자

몸을 원래대로 펼칠 때의 표정 등 7가지 주요 표정을 일일이 따로 만들고

붙여야 했다. 그 과정만 1년 넘게 걸렸다.

아이디어는 피카소나 반 고흐의 드로잉에서 얻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스

케치들을 보며 영감을 떠올렸다. 그림책 한 권에 실릴 그림 16장을 그리

는 데 100권이 넘는 화집을 들췄다. 길에서 보는 간판이나 벽에 엉켜 있

는 담쟁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에게 저걸 보며 떠오르는 걸 써

보라거나 연필로 따라 그리게 하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감성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인쇄소에서 서점으로

작업을 끝낸 원화는 출판사로 보내진다. 출판사는 건네받은 원화를 컴퓨

터상에 데이터화한 다음 필름 형태로 바꿔 인쇄소에 보낸다. 보통 3000부

를 찍는데 하루면 끝난다. 완성된 그림책은 전국 서점으로 배달된다.

112 그림책 깊이 읽기

이 기사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먼저, 청탁을 받고 쓴 원고가

아니라는 점. 그림책 한 권도 내지 않은 작가에게 청탁이라니! 출판사

에서 먼저 글을 달라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던 때다. 그리고

콩벌레를 키우며 관찰하면서 글을 쓴 게 아니라는 것. 몸을 동그랗게

말고 콩인 척하는 콩벌레를 보는 순간 콩벌레가 ‘내게 들어 와’ 동시를

먼저 쓰고 동시를 씨앗으로 쓴 이야기이다. 오류가 있는 기사임에도 분

명한 건 글이든 그림이든 지난한 작업 끝에 그림책 한 권을 건진다는

것. 나의 경우 그림책이 나오기까지 5년은 기본으로 흘러간다. 심지어

2005년 6월에 계약한 그림책 원고가 내년 가을에 나올 예정이다. 나는

그림책을 하면서 인내하는 힘이 부쩍 자랐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라면 얼마인들 못 기다리랴.

4. 출판사의 기획에서 출판까지

돌로 지은 석굴암

(최미란 그림, 웅진주니어)

‘빛나는 유네스코 우리 유산’ 시리즈 돌로 지은

절 석굴암 은 나라를 지키러 먼 길을 떠난 아버지

의 무사 귀환을 빌며 석굴암을 찾는 신라시대 아

이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석굴암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단행본으로 출간된 그림책 중 유일하게 출판사 측의 집필 제

의를 받고 쓴 책이다. 출판사 지원의 2박 3일 취재답사, 원고가 통과되

지 않은 글의 계약. 기쁘면서도 두려운 출발이었다.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시작하는 일은 출판사의 기획 의도를 잘 읽어야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13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편집자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함께 씨

앗을 심고 물을 주고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거듭되는 ‘피

드백’은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물론 작가가 글을 보내 출간 검토를

하고 출간 결정을 내린 원고라도 피드백은 철저하고 처절하게 거치지만

말이다.

가장 맥이 빠질 때는 좋은 원고를 완성했다 싶은데도 방향 전환을 요

구할 때다. 편집자는 그림책에 대해 해박한 이론과 뜨거운 사랑으로 합

리적,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작가의 역량을 끌어내 주는 사람이

다. 나는 그림책에 관해 변변하게 공부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나에

게 최고의 스승은 좋은 그림책이다. 그리고 깐깐한 편집자이다. 그래서

나는 편집자의 요구를 거의 수용한다.

석굴암 이야기의 주인공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화랑이 되

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가 1900년대 초 편지를 배달하러 토함산을 넘다

석굴암을 발견한 일본의 집배원이 되기도 했다. 주인공을 아예 빼고

설명글로 가보기도 했다.

버린 글 중 아쉬운 것은 석굴암 복원 작업 일지를 중심으로 석굴암을

복원하려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석굴암의 구조와 문화적인 의미, 아름다

움을 보여주려 했던 글이다.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나 깜장 콩

벌레 처럼 초고 거의 그대로 가거나 초고를 수정하는 선에서 글 작업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산의 정상까지 올라갔다 ‘이 산이 아닌게벼’하고

산을 내려와 다시 다른 산을 향해 등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시행착오

끝에 원하던 산에 오르면 그 동안의 헛걸음은 헛걸음이 아닌 게다.

돌로 지은 절 석굴암 은 2010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

픽션 부문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라가치상은 해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

에 출품된 그림책 중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것에 주어지는 권위 있는

상이다. 한국 작품으로 올해 유일한 수상작인 이 책에 대해 라가치상

114 그림책 깊이 읽기

심사위원회는 ‘뛰어난 명암법과 은은한 색조의 그림이 독자를 사로잡는

다.’면서 ‘과거의 그림자들과 대화하는 현재의 주인공들이 역사를 되돌

아보게 만든다.’고 평했다. 나는 이 책 덕분에 우리나라 바깥으로 나가

는 비행기를 처음 타 보았다.

5. 작가의 기획에서 출판까지

누렁이의

정월 대보름

(김홍모 그림, 비룡소)

견우 직녀의

칠월 칠석 이야기

(백은희 그림, 비룡소)

귀신 단단이의

동지 팥죽

(최현묵 그림, 비룡소)

비룡소에서 나오고 있는 알콩달콩 우리 명절 시리즈는 2000년, 동시

로 등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동시라는 장르를 변주하여 우리

명절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 주자는 생각으로 썼던 연작 동시였다. 짬

짬이 놀기, 짬짬이 먹기, 짬짬이 기도하기……. 칠석, 대보름, 설 등 주

요 명절에 관한 정보와 재미를 줄 수 있는 동시를 써서 출판사에 보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칠석 원고를 하나 계약하면서 동시를 풀어 그림책

원고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림책 글을 쓰는 기쁨이 에너지가 되어 그림

책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15

나는 말랑말랑한 걸 좋아한다. 정보를 전하는 책이라도 부드러운 게

좋다. 그래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명절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 이야기

를 끌고 나가는 데도 무리가 없는 캐릭터를 만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짓날에 귀신, 칠석날에 까막까치, 정월 대보름에 개. 그들은

이미 명절 속에서 살아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을 이야기로 모시고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명절 이야기를 풀기에 그들은 딱! 좋았다.

두 번째 원고를 계약한 뒤 출판사에서 명절 이야기를 시리즈로 내자

고 했다. 혼자 끌고 가는 시리즈. 다양한 향과 결을 가진 각각의 명절

이야기를 참신하게 그려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명절 이야기는 앞으로

세 권 더 나올 예정이다. 청개구리 큰눈이, 추석 달나라의 분홍 토끼,

신발귀신 앙괭이가 등장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민속 명절을 아기자기하

게 보여 줄 것이다.

이 시리즈의 편집자는 퇴사를 하였지만 이 일을 계속 맡아 진행하고

있다. 천만다행이다. 새 편집자에게 일이 넘어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하게 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6. 작가의 기획과 출판사의 기획 사이에서

만 먹냐

나뭇가지 흔들어

손에 닿지 않는 오디를 털려는데

숲에서 들려오는

검은등뻐꾸기 소리.

“그 만 따 지

그 만 따 지.”

116 그림책 깊이 읽기

작 기 들어

까만 오디를 털려는데

더 크게 들려오는

검은등뻐꾸기 소리.

“ 만 먹 냐

만 먹 냐.”

아, 알았어.

“그 만 딸 게

그 만 딸 게.”

지난 봄, 하동 평사리문학관 집필실에서 머물 때 검은등뻐꾸기라는

새를 만났다. 이 녀석은 독특하게도 4음절로 딱딱 끊어 노래하는 새다.

일명 홀딱벗고새.

그림책이 몇 권 나온 뒤 출판사가 기획한 책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

아쉬움이 생긴다. 꼭 쓰고 싶은 이야기에 마음 둘 틈이 없다는 것이다.

즐기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그

림책 글 작가의 일이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 그림책에 즐겁게 집중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작가의 기획원고와 출판사의 기획 원고 사이에

서 검은등뻐꾸기 소리를 듣는다.

메 모

메 모

메 모

메 모

사서교육훈련교재 2010-전문 33

그림책 깊이 읽기

2010년 10월 11일 인쇄

2010년 10월 11일 발행

발행인 : 이 숙 현

발행처 :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주 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북4길 21

(http://www.nlcy.go.kr)

전 화 : (02)3413-4776

팩 스 : (20)3413-4759

인쇄처 : (주)계문사 (02-725-5216)

ISBN 978-89-7383-508-9 93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