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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2 1. 2. 5, 175

공동처l 신앙 · 2017-11-07 · 일산 새도시 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 2, 1992 삶과문화-의례와신앙 공동처l 신앙 류 기 선 (단국대학교 한국민족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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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산 새도시 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 2, 1992 삶과문화 - 의례와신앙

    공동처l 신앙

    류 기 선

    (단국대학교 한국민족학연구소)

    1. 머리말

    2. 마을별 공동체 신앙/의례

    가. 일산9 , 10리의 산신제

    나 정발산도당굿

    다. 백석 1. 2리의 도당군

    라. 백석3 , 4리의 도당군

    마. 주엽2리의 공동체 신앙/의례

    바. 주엽3리의도당군

    사. 주엽4. 5, 6리의 공동체 신앙/의례

    아. 기타

    3. 맺음말

    175

  • 1. 머리맏

    민속에 대한 연구는 흔히 전통적인 삶의 양식에 대한

    연구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한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해

    체되어 가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전통적인 삶의 양식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그러나 이것은 과

    거의 전통적인 삶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부분

    적일 뿐이다)을 통해 온전한 형태의 전통적인 삶을 재

    구성하려는 의도가 민속에 대한 연구에 함축되어 있다

    이 때문에 민속의 대표적인 한 분야로서 인식되어 온 공

    동체 신앙과 의례에 대한 조사보고는 흔히 실제로 행해

    지는 과정의 가시적인 측면을 꿰뚫어 이면의 쉽게 드러

    나지 않는 측면을 밝히기보다는 원주민의 사고 속에 정

    형화된 공동체 신앙과 의 례에 관한 표상을 나열하는 데

    머무르기 십상이었다 즉 조사 때 발견되는 공동체 신앙

    /의 례의 형태가 고정적인 것으로서 먼 옛날부터 그 지

    연공동체 내에서 전달되어 내려 온 것으로 전제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공동체 신앙/의례가 지니는 사회적인 관

    계와 그러힌 관계에 대한 정당화 과정을 함축하고 있으

    며 따라서 정당화 괴정 속에서 기존 형태의 공동체 신앙

    /의례의 다른 형태로의 변화를 파익하는 데 장애를 가

    져올수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참여

    관찰이 아닌 단기간의 대담을 통한 땅법상의 제약과. 이

    미 마을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시직히-고 난

    다음이라는 나쁜 조사 조건으로, 공동체 신앙과 의례에

    대한 여기서의 접근도 불가피하게 종래의 한계를 되풀

    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적인 삶의 백락으로부터 분

    리되어 주민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공동체 신앙/의 례

    에 대한 잔영을 대담을 통해 확보하는 데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를 가능한 최대한도로 넘어서기 위한 방

    편으로 조사지역 내에서 행해진 모든 공동체 신앙/의례

    의 양태를 모두 기술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이 지역

    내에서 행해지는 공동체 신앙/의례의 지리적인 분포와

    그러한 지리적인 분포의 함의를 엿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일산새도시 지역의 마을들에서 행해져온

    176

    공동체 신앙/의례를 개괄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공동

    체 신앙/의레의 여러 가지 측면을 엿보고자 한다.

    1991년 8월 1 5일부터 8월 22일까지 사회민속의 전

    범위에 걸친 1차 조사를 수행한 뒤에 그 결과를 토대로

    1992년 3월까지 수시로 2차 조사를 수행했다

    2. 마을별 공동체 신앙/의례

    가. 일산9 , 10리의 산신제

    ( 1) 참여마을

    일산9리(빔?}시), 일산10리(뒷골)

    (2) 마을개관

    일산9라 (밤가시)와 일산10리 (뒷골)은 모두 오래된

    마을들이다. 일산9리는 율동(핏洞) 혹은 밤가시라고 불

    리며, 단양CPJI써)이씨의 집성촌이다 이 밤가시 미을에

    는 단산부윈군 익평공 이무(까ill府|파君 짧-平公 쭈l표)의

    손자인 호조참찬행한성부윤(戶땐參贊行황씨찌까1·)에 증

    직 (!l땀職)된 이영득(李榮得)(태종8년 1409년생)의 묘가

    있으며, 이무 때 (1390년경)부터 이 마을에 정착했다고

    한다 일산10리는 ‘뒷골 이라는 자연촌락명을 가지고

    있으며, 진주강씨가 5-600년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리

    고 살아왔다고 한다 단양이씨도 이 마을에 친주강씨와

    더불어 살이-왔디 일산9리는 교통이 다소 외지 인구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이 포박이나 일산10리는

    외지인의 유입이 많아 이주 직전 대부분의 주민들은 근

    래에 이주해 온사람들이었다

    (3) 제명 및 신격

    산신제‘ 산신령

    (4) 신당의 종류와 형태

    ‘당나무’ 는 소나무로서, 윗뒷골과 밤가시의 경계가

    되는 능성이의 서낭터에 있다.

    (5) 목적

  • 밤가시와 윗뒷골의 무고와 풍년을 기원한다 곧 짐승

    이 사람 해치고 가축을 해치지 않고 마을주민들이 한 해

    동안 무병하기를 기원하고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빈다

    (6) 시기

    3년에 1번‘ 음력 10월 상달 초순 좋은 날 택일

    (일진을 보아서 12千支 가운데 子E辰‘申西寅을

    뺀 표깨午未成X 중에서 선택을 하며 丁갖日과 찌午日

    을으뜸가는吉日로친다.)

    (7) 제주

    마을 사람들 가운데서 깨끗한 사람(부정한 일이 없고

    나이 지긋하거나 善한 사람으로서 초상집에 간 사람은

    안 됨) 가운데서 당주 1인과 제관 3인을 뽑는다 일단

    뽑힌 사람은 싫더라도 따라야 한다. 당주집은 제물을 준

    비하는 일을 맡으며, 제관 3인은 초헌, 아헌, 종헌 등이

    나, 초헌은 지관이 죽 해 왔다 제주로 선정된 사람은 선

    정된 날로부터 제사를 드리는 날까지 부부생활이 금지

    되며 거친 언행을 삼가야 하며 술을 먹지 말아야 한다

    매일 아침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 제일이 결정된 뒤에는

    마을사람들과의 내왕마저 금한다, 제주의 차림새는 도

    포를 입고관을쓰고띠를 맨다

    (8) 제물과 비용

    제사에 필요한 경비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함께 참여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집에서 추렴을 한다. 젊은이나 반

    장 등이 곡식 (쌀, 딸 등)을 한 가구에 얼마찍 걷고‘ 돼지

    동은 돈으로 걷어서 산다 돼지는 반드시 검정 돼지이어

    야 했다‘ 비용을 안 내는 집은 없었다 제사음식은 떡을

    제외한 모든 것은 날 것이며, 떡은 햄쌀로 빚는다. 거두

    어들인 비용이 굿을 하고 남았을 경우에는, 마을 공동

    기금으로 사용하거나 당주집에 주기도 했으며(일산9

    리), 음식 등을 해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일산10리)고

    한다 거두어들인 비용이 모자라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

    다-(9) 굿의 절차

    먼저 당주집에서 제수를 준비하여 상을 차린다 제사

    가 시작되면‘ 땅에 술을 부은 뒤 다시 초헌이 술(조닷

    술)을 따르고 절을 3배한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꿇

    어 엎드려 있는 동안 아헌이 축문을 읽는다 축문 읽기

    가 끝난 뒤에 종헌이 술을 따르고 절을 1배한다. 축문은

    제주가 소지(짧&)한다 음복을 한다.

    축문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가 있다

    〈형태 1)

    維歲次ζJJP年ιX月丁E日 껴學o 。 。 敢昭告千土地之靈.

    代|옳尊靈 鎭-方土 댐星所依 A民尊居 三뽑豊登 六좁 審

    盛 i쫓Jj;降ITT흡 避12

  • 만든 마을이며‘ 마두2리는 진주강씨 통계공파가 300년

    전에 정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인

    근 산에 강씨의 묘소가 128구 있었다고 한다 마두3리

    (설촌)는 개성설씨가 1593년 경부터 살아온 것으로 알

    려진 동족마을인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5대 동인

    살았다고 한다 마두4리(냉촌)는 해주최씨의 동족마을

    이며 해주최씨가 300여년 전에 정착했다고주민들은 말

    한다 이렇게 여섯 마을들은 아무런 혈연적인 공통점을

    지니지 않고 장항1 ‘2리로부터 마두4리까지는 멀리 떨어

    져 있는 마을들이나‘ 정말산을 기대어 위치한 입지상의

    특성(정말산을 鎭山으로 한다는 전)을 공유함에 따라

    제의륜 같이하게 된 것이다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장

    항1리, 장항2리, 마두1리 등은 대체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다른 마을들은 맥마역에샤 가까와 1970년

    대 이래로 인구가 급증했다

    (3) 신당의 종류와 형태

    도당목은 정발산 꼭대기의 소니무

    (4) 제명 및 신격

    도당굿(도당제), ‘도딩할아버지’ (산신링)

    (5) 목적

    무명과 각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벼 짐승이 사람

    해치고 가축을 해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6) 시기

    3년마다 음력 3월 초하루 혹은 초순

    날짜의 선택은 6개 마을 대표들이 한다

    (7) 제주와 당주

    집안식구의 생년월일을 따져 육갑을 보아서 마땅한

    사람이 당주로 선출된다 굿 하기 10일 전에 육갑을 따

    져 ‘정 (i팎)’ 한 사람을 제주로 선출히-게 되는데‘ 6개 마

    을에서 6명이 선출된다(마두2리) 6개 따을 대표들이

    제주를 정하는데, 전에 제주가 나오지 않은 마을이 우선

    권을 가진다(마두4리) 제주는 제사를 준비하고 주관히

    는데‘ 마을에서 걷은 돈으로 제물을 산다-

    178

    (8) 제물과 비용

    마을 대표뜰이 예산을 결정하여 분배하면, 각 마을은

    이장이 호구별로 일정한 양의 돈이나 쌀을 걷었다. 6개

    마을 250호 정도였을 때, 한가구딩 쌀을 2되씩 걷어 20

    가마 정도가 되기도 하였다, 제사음식은 떡을 제외한 모

    든 것은 날 것으로 하였으며, 떡은 햄쌀로 빚었다 정말

    산에 경씨네가 살았는데. 도당굿에 쓸 술은 언제나 그

    경씨 네가 담갔다고 한다(장항2리) 제주가 쌀을 주면

    이 댁에서 덤그었는데. 이렇게 경씨네가 도딩굿에 쓸 술

    을 담그는 관습은 도당굿이 시직된 옛날부터라고 한다

    예산이 넘-있을 경우에 디-유 지l사의 비용으로 사용했으

    며‘ 모자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9) 마을회의

    도당굿의 준비를 위한 회의플 음력 2월 그픔날 열어

    서, 날짜와 예산을 잡고 그 추램 빙-법을 논의한다

    ( 10) 금기

    제주는 ul] 인 목욕을 해야 하고‘ 상가집에도 가지 않이

    야 하며‘ 부경 티-는 것은 절대 보아서는 안 된다 음력 3

    월 초히-루부터는 마을굿이 같날 때까지 마을 안밖으로

    출입이 금지된다 일단 들어 온 이는 굿이 끝난 후에 나

    가야한다 부정한사람은제사를지내는장소인정발산

    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올라간 후에 장구를 치고 나서

    올라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정발산에 올라서는 안 되었다

    ( 11 ) 굿의 절차

    떡‘ 소머리와 다른 제물들을 상에 차린다. 제주가 먼

    저 절을 한다 제주가 서낭대를 잡고서 신을 내린 뒤에

    동네 사람들이 절을 한다. 그 뒤에 무당이 1 2거리 굿을

    하는 데 24시간이 소용된다.

    ( 12) 기타

    정발산이 영험하다고 여겨 무당이 정발산에 술(지성

    술)을 묻은 뒤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 굿을 한 다음 먹는

    다. 일제 때에는 일제가 마을굿을 한 때 금해서 밤에 몰

    래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한편 1987년에 간행된 『고양군지』(고양군지편찬위원

  • 회)에 따르면, 정발산 도당굿을 관장하는 무당은 모두 5

    명이고 악사도 3명이 동원되었다, 현재 이들 무당 중에

    서 대표자격인 사람은 원당읍 식사리 (번달)에 살던 무

    당의 양딸로서 화전읍에 거주하는 양동순씨 (『고양군지』

    에 나이가 62세)이며, 사용되는 악기는 피리,대금, 해금

    인데 특히 피리를 부는 박영봉씨(『고양군지』에 62세로

    기재되어 있음)는 3년마다 치루어지는 도당굿에 빠짐

    없이 참석한다고 한다 또한, 『고양군지』(고양군지편찬

    위원회)는 이 정발신- 도당굿의 제의 절차에 관해서 인

    근 마을의 주민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옛날에는 동네에 당주(제사를 주관하는 사람)가 있어 격년

    마다 열리는 제사를 주관했으나 요즈음에는 제사 때마다 바뀐

    다 굿이 행해지는 해에는 음력 3월 1일에 중요한 분들이 모

    여 날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런 하자가 없는 사람을 제주

    로 정하고 제사 때 사용할 술을 담그는데 그 술을 ‘조라’ 술이

    라 부른다 산 밑에는 항상 술을 담그는 자리가 있어 굿날이

    아무리 촉박하게 다가왔어도 술을 담근지 하루만 지나면 좋은

    맛을 내며 익었다 한다 주민들이 농사를 지은 쌀을 정미소에

    서 빨고 그것을 먹기 전에 우선 굿의 경비로 각출했는데 한 집

    당 3되씩 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돈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도당굿은 6.25전쟁중에도 계속되었고 대개 약 500여명

    의 주민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굿을 하는 날이 정해

    지면 주민들은 무당들이 모여 산다는 덕물산에 가서 최영장군

    께 굿할 것을 고하고 돌이온다 굿날에는 마을마다 모두 일손

    을 놓고 구경하는데 굿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한다 굿이 끝나면 산에서 내려와 당주 집에서 다시 굿을 했

    다 예전에는 12거리 굿을 하면서 1거리마다 무당에게 돈을

    주었으나 지금은 하루 굿하는 비용을 한꺼번에 다 준다 무당

    들은 단골만신들로서 말머리에도 만신이 있었으나 대개는 식

    사리 방아고개에 거주하는 만신들을 데려다 했다

    『고양군지』 (1987)는 이어서 정발산 도당굿의 차례

    〔察次〕 16거 리 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 초당 ; 첫 장구소리를 내는 것

    2) 부정 : 참석한 마을의 성씨(大同 각인각성)를 들어 축원

    3) 부정거리 : 부정사에 부딪쳐도 무사를 빌며 축원함

    4) 부정말명 : 처녀귀신 달래어 쫓아냄

    가망청배 : 각자의 조상을 청함

    5) 성황거리 : 성황신께 벌명 애원함

    6) 대감놀이 : 각종의 대감신께 도와 달라고 빌며 애원함

    7) 불사거리 : 부처 三神할미에게 기원함

    8) 칠성거리 : 칠성님께 자손들의 휠福을 기원함

    제석거리 : 제석(三神할미)께 기원함

    호구거리 ; 인물,사물을 몰아냄

    9) 대받이 (도당대) : 깨끗한 자로 대잡이를 삼아 대 내리도

    록기원함

    10) 산신거리 : 구능놀이 - 산신과 어울려 놈 산양놀이 - 산신할아버지가 사냥나갈 때 응

    원함

    막퉁놀이 산신할아버지 심부름꾼 놀이

    11) 장군님 놀이 ; 최영장군을 모시고 하는 놀이

    도당거리 ;산신전체와하는놀이

    12) 별산거리 : 제일 나쁜 귀신을 몰아냄

    (이 때 무당은 칼을 들고 작두를 탐)

    13) 신장거리 : 옛날 말을 타고 벼슬한 귀신할아버지께 도 직1-.Q.. j쳐효L l:J 2. 。 0

    14) 성주거리 : 대동 대주잘되라는놀이

    15) 창부거리 : 3년의 평안을 추원함

    16) 건립 : 터주 건립놀이

    지신: 터놀이

    맹인 : 장님도 복받으라는 놀이

    텃대감 ; 동서남북 빠짐 없이 각 기정을 축원함

    영산풀기 ; 달리고 뛰면서 무고를 축원함

    『고양군지』 (1987)의 정발산 도당굿에 관한 내용은 조

    사시기와 제보자가 불분명하나 보다 이른 시기의 조사

    라는 점에서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발산 도당굿은 일산새도시개발로 주민들이 이주하

    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 백석 1 . 2리의 도당뭇

    ( 1) 참여마을

    백석 1리(방터골), 백석2리(샘푸리 〔천청〕)

    (2) 지역개관

    백석 1리가 ‘방터골’ 이라고 불린 까닭은 방씨들이 이

    곳에 터잡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사람들에 따

    르면 이 마을에 심씨가 제일 먼저 살았고 그 뒤를 방씨

    가 이었고 마지막으로 조씨가 들어왔다 실제로 방씨들

    은 6.25전쟁 이후로는 이 마을에 살지 않았고 창녕조씨

    들이 많이 살았다 백석2리(샘푸리)는 다시 ‘편촌(말)’

    과 ‘강촌(말)’ 두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백석 1리와 백

    석2리 모두 가까이에 백마역이 있어 편리한 교통으로

    인해 1970년대 이 래로 높은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179

  • (3) 신당의 종류와 형태

    도당나무는 백석 1리의 도당대산에 있는소나무

    (4 ) 제명과 신격

    도딩-굿, 도당할아버지

    * l꾀석3 4리의 ‘도당할아버지’ 와 한 쌍을 이룬다

    (5) 목적

    용년이 들어 마을이 잘 되기를 기윈한다‘

    (6 ) 시기

    (맥석]라) 매년 음력 3월 초하루

    (백석2리) 매년 음력 3월초 어느 닐이 좋은지 당골무

    당힌데 물어 보아서 결정한다

    (7 ) 제주

    제주는 ‘당주’ 라고 불리며. 마을회의에서 부정타지

    않은 깨끗한( ‘정갈한’ ) 부부(마을굿 기간 동안에 부인

    은 월경이 없어야 한다)를 말라 땀긴디 . 당주가 히-는 일

    으 제사 미용을 추렴히-여 굿에 필요한 떡 등의 제물을

    만들여‘ 남자주인은 굿에서 대를 붙잡고 신을 내리게 한

    다‘ 당주는 흰옷을 입는다

    (8) 비용

    생푸리마을의 대동소임이 망터마을의 대동소임괴- 두

    마을이 각각 얼마씩 내기로 타협을 본 뒤에 ( ‘이 때 너희

    네 마을은 부자가 많으니까 얼마를 더 내라’ 혹은 ‘너희

    네 마을이 올해에 농사가 더 잘 되었으니 얼마를 더 내

    라’ 는 식의 흥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두 ‘대동소임’

    은 각자의 마을에서 집집마다 돌이-다니면서 쌀을 거두

    는데, 각 집은 형편에 따라 쌀을 내어 놓는다(백석2리)

    대체로 맥석2리에서 7 8가마‘ 백석 1리에서 6가마가

    걷히는데‘ 제사 비용으로는 107}마 정도가 들어간다, 따

    라서 남-는 것이 상례이지만‘ 만일에 부족할 것으로 예상

    되면 더 걷게 되며, 남았을 경우에는 마을 기금으로 적

    립한다 석립하는 방법은 남은 쌀을 빌려 주거나 아니면

    돈으로 바꾸어서 그것을 이자를 받고 빌려 주기도 한다.

    180

    (9) 마을회의

    각 마을의 대동소임이 마을굿의 전체 과정(회의의 소

    집과 택일 의뢰, 비용 추렴‘ 만신 초빙 등을 담당하며 아

    울러 도딩굿을 같이 하는 다른 마을을 대표한 그 마을의

    대동소임괴- 도당굿의 진행에 관해서 협의하고 타협한

    다)을총괄한다.

    (백석 1리) 마을굿 준비모임은 정월 대보름이 지난 뒤

    의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지며‘ 이 때 당주를 선출하며.

    도당굿 날짜를 결정한다. 이 마을회의에서 모내기 날짜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마을굿의 결산모임은 도당

    굿을 한 다유달 열리는 것이 싱폐이다

    (백석2리) 마을굿 준비노인은 정월 대보름이 지난 뒤

    에 이루어지며. 이 때 당주를 선출하고 제사비용에 따

    른 각 가정의 분담금 기준액을 정하고 도당굿 날짜의 택

    일을 의뢰할 것을 결정한다 마을굿 결산모임에서는 제

    사비용의 결산과적립 방법이 논의된다.

    ( 1 이금기

    도딩굿을 앞에 둔 때에는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며

    마을을 나서서는 안 되고 나쁜 깃을 보지도 말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제주는 아침 저녁으로 목욕을 깨끗이 해야

    한다 도딩-굿을 벌일 때 부정 타는 부인은 도당굿 현장

    에가까이 와서는안된다

    ( 11) 굿의 절차

    도당니부에 검줄두르기(왼새끼를사용하고 창호지나

    하얀수건으로꾸빔)

    대 마련 ; 도당굿 하루 전에 당주는 만신과 더불어 산

    에 올라가 만신이 지적하는 참나무 큰 가지를 하나 베어

    와서 자기 침에다가 모셔 룹

    도당할아버지 모시기 ; 도당굿을 하는 날 아침에 ‘(도

    당)할머니’ 가‘(도당)할아내지’ 를 모시러 감. (날짜를

    잡아서 도당할머니가 도당할아버지한테 갔다 온다 ?)

    할머니한데 절하기 : 대릅 구부린다

    ‘당’ (상설적인 것이 아니라 천막을 치고 병풍을 둘러

    서 만든 것)에서 굿을 벌임 12거리에서 20거리까지 벌

    인다

  • ( 12) 무당의 조직

    여 자

    만신

    아쟁

    제금

    장구

    f크-만신에 딸린무당

    남자

    피리 1 : 이 조직의 우두머리

    아쟁

    * 무당 조직에는 호적이 없다 호적은 농악대에서만

    분다,

    * 지금은 죽었지만‘ ‘딩골’ 무당은 현달산 아래에 있

    는 식사리에 살았다고 한다.

    ( 13) 기타

    도당굿을 10년 전에 그만 두었다 그만 두게 된 까닭

    은 도당대산에 집들이 많이 들어서는 퉁 이곳이 도시화

    된 때문이었다 원래 도당대산은 대부분이 적산이었고‘

    일부는 개인(김포 박서방네) 땅이었다

    라. 백석3.4리의 도듬뱃

    ( 1) 참여마을

    백석 3리 (난산〔얄미 ] ) , 백석4리 (백석 〔흰돌〕)

    (2) 마을개관

    백석3리 (난산 혹은 알미)는 1637년 경에 그 선조가

    이 지역에 정착한 전주이씨 동족마을이었다 백석4리의

    자연지명인 ‘백석’ 또는 ‘흰돌’은 도당굿의 대상인 도

    당산에 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흰돌로 말미암은 것인데 ,

    백석4리에는 밀양박씨 , 인동장씨, 통린최씨 등이 많이

    살았으나, 새도시개발에 따른 이주 직전에는 그 동안의

    외부 인구의 유입으로 원주민이 전체 주민수에서 차지

    하는 비중이 낮아졌다, 백석3리와 백석4리는 백석 1리와

    백석2리보다는 백마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뒤 두 마

    을들보다는 인구증가율이 낮다. 백석4리에는 일제강점

    기 초기까지 장이 섰던 곳이다.

    (3) 신당의 종류와 형태

    지표에 드러난 흰 석영 맥의 일부인 흰 바위

    (4) 제명과 신격

    ‘도당제’ , 도당할아버지

    백석 1,2리가 함께 모시는 백석 1리의 도당대산에

    있는 ‘도당할머니’ 와 한 쌍을 이룬다

    (5) 시기

    음력 3월초 (2년에 1번)

    (3년에 1번 큰 굿을 하였는데‘ 20년전에 없어지고 단

    출하게 제사)

    (7) 제주

    제주는 ‘당주’ 라고 부르며, 마을회의에서 지정되는

    데 , 대체로 마을의 유지가 맡는다, 당주가 하는 일은 굿

    을 주관하는 것인데 , 제사에 쓸 술을 담그고 항상 폼과

    마음을깨끗이해야한다

    (8) 비용

    마을 전체가 참여하여 성의껏 내는데 , 한 집당 쌀 한

    두 말 정도를 내는 것이 보통이다 걷히는 양은 한 마을

    에 5-10가마 정도에 이른다(백석3리 5가마, 백석4리 10

    가마) 필요 경비를 예상해서 걷지만‘ 부족할 때에는 마

    을의유지가보탠다

    (9) 회의

    (백석3리) 도당굿 전에 두 번 준비모임을 갖고 도당

    굿이 끝난 뒤에 한 번 결산모임을 갖는다‘

    (백석4리) 도당굿 전에 준비모임을 갖는다.

    도당굿 준비모임에서 논의되는 사항은 도당굿을 언제

    가질 것인가, 그리고 비용은 어떻게 얼마나 거둘 것인가

    하는것둥을논의한다

    ( 10) 금기

    당주의 집에 줄을 매서 함부로 마을 사람들이 들어가

    181

  • 지 못하게 하고 당주의 식구들도 항상 몸단장을 해야 한

    다 당주는 날을 잡은 때로부터 몽을 깨끗이 하고‘ 나쁜

    것을보지 말아야한다

    ( 11) 기타

    20여년 전에 없어짐

    아래는 백석 3. 4리의 도당굿에 관해 『고양군지』

    (1987)에 실린 내용이다

    백석리에서는 3년에 한 번씩 도당굿을 하였는데, 다른 곳에

    서와는 달리 벡석4리에 있는 산을 할아버지산, 백석2리에 있

    는 산을 할머니산으로 정하여 굿을 한다는 침이다 굿을 할 때

    는 우선 날을 받고 堂主와 食主를 정한다 당주는 굿이 있기

    보름 전부터 집에 금줄을 치고 내외의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

    으며, 매일 목욕제계를 하여 몸을 깨끗이 한다 식주는 무당과

    노인들 그러고 그 밖에 제를 지낼 때 수고한 사림들에게 밥을

    지어 주는 동 잔치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제수는 각 집마디

    추렴하여 준비를 하는데 쌀로 떡을 하며 그 밖에도 돼지, 닭,

    북어 1 초, 베 등을 마련한다 이것들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정

    한문서도있다

    굿을 하는 날찌는 춘삼월초하루에 정하는데 할이버지산의

    굿을 먼저 하고 할머니산의 굿은 그 다음에 한다 이 때 할이

    버지산에서 굿을 할 때는 할머니산에서 신장대를 가져 오고‘

    할머니산에서 굿을 할 때에는 할아버지산에서 가져 온다 신

    장대는 참나무로 만든 것으로서, 굿하는 쪽의 마을에서 젊고

    깨끗한 사람 중 신이 오른다고 생각되는 이가 그것을 잡는다

    그러나 아무리 신장대를 잡고 있어도 신이 안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연 금방 신(神)이 오르는 사람도 있다

    할아버지산에서 할머니산으로 가는 도중에 아무 집이나 들

    러 놀아주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집에서는 소대주 한 사발의

    쌀이나 돈‘ 술 등을 신장대에 바친다

    굿을 하는 빙식은 12거리(제석거리, 안대감, 바깥대감--‘)로

    서 무당이 여랫이 나오고‘ 그 밖에 전악(典월§ 갱껑이,피리‘젓

    대)‘ 북, 장구 등이 등장하여 근 십여명이 굿을 진행하게 된

    다 이 때 굿을 맡던 무당들은 원당에 사는 할머니 무당과 장

    항리의 으뜸씨 등이 있었고 식사리에도 단골무당이 있었다

    12거리 이외에도 젊은 무당은 창부타령으로 흥을 돋구기도 한

    다 굿은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하며, 굿이 끝난후

    에도당주집으로가서 한두거리 잘논다 굿판에는술장수나

    엿장수 퉁이 진을 치고 있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몰려 와서

    구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몇 해 전부터 굿을 하

    지 않고 제사만 지내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흐지부지한 형편

    이다(구술자 백석3리 조근실 81세)

    마. 주엽2리의 공동체 신앙/의례

    182

    ( 1) 참여마을

    주엽2리(장구메) 한마을

    (2) 마을개관

    주엽2리(오마리(五馬里))는 해주오씨의 집성촌이다

    해주오씨가 1684년 이래로 이곳에 살아 왔다고 한다

    (3) 신당의 종류와 형태

    동네 한 가운데 있는 도당니무 혹은 대감나무

    신목(神木)인 도당나무에 동네사람들이 접근하기를

    피한다.

    (4) 제명과 신격

    도딩-굿

    (5) 목적

    한 해 동안 마을 사람들의 무고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

    (6) 시기

    음력 10월

    (7) 제주

    제주를 ‘당주’ 라고 부르는데, 당주가 되는 사람은 종

    중의 윗대손(종손)이나 배운 사람이 맡는다

    (8) 비용

    형편에 따라 차등을 두어서 추렴을 한다 만신에게 주

    는 사례비는 쌀 서 말 정도였다.

    (9) 회의

    마을회의에서 제를 지낼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고

    지내기로 결정되면 날짜를 잡는다 흉사가 있을 때에는

    안 지내고 건너 뛰기도 한다

    ( 10) 금기

    손님이 들어 오면 나가지 못하게 하며, 나간마을 사

    람들은 들어 오지 못하게 한다 도둑질 등의 나쁜 일을

    못하게한다

  • ( 11) 마을제사의 전체과정

    @ 하루 전에 ‘조라’ 술을 담근다 @ 모사가 첫잔을

    올리고 나서 버린다 @ 축문을 읽는다. @ 절을 한다

    @ 술을 따른다(술 받기)- @ 절 @ 술을 따른다(술 받

    기) @절을 한다(두 번 반)

    바 주엽3리의도등탓

    ( 1) 참여마을

    주엽3리

    (2) 마을개관

    주엽3리 (문촌「文村」 또는 민마루)에는 해주오씨와 밀

    양박씨들이 많이 거주하여 왔다.

    (3) 신당의 종류와 형태

    골동산에 있는 도당나무(고목;참나무)

    (4) 제명과 신격

    도당굿,산신령

    (5) 목적

    산신에게 마을을 위해 무고와 풍년을 기원

    (6 ) 시기

    3년마다추수후

    (7) 제주

    ‘당주’ 라고 부르며, 마을 회의에서 선출한다 당주는

    술과 떡을 담그고 밥을 짓는다

    (8) 비용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등을 두고 추렴을 한다

    만신에게 주는 사례비는 12거리를 행하므로 12번 줄 양

    을 분배해서 나누어 준다.

    (9) 회의

    마을굿 이전의 준비모임에서는 딩-주를 선출하고 필요

    한 경비를 계산하여 그에 따라 각호당 추렴량을 정하며,

    마을굿 뒤의 모임에서는 비용을 결산한다.

    ( 10) 금기

    타도 사람이 들어오면 잠자지 못하게 하고 그냥 돌려

    보낸다 상을 당했을 때에는 초상집 송장을 보지 않는다

    ( 11) 기타

    골동산 꼭대기 참나무 밑에서 마을의 평안을 빌었던

    도당굿은 약 60여년 전까지 행해졌다고 한다 참나무는

    신령스럽마고 하여 만지지도 않고 나무가 귀해도 그 누

    구도 다치게 한 사람이 없었다 참나무 주변에는 묘자리

    를 쓰지 않는데 묘를 쓸 경우에는 산이 울어 마을에 탈

    이 생긴다고 한다 현재 참나무는 어멈 참나무가 쓰러지

    고 나서 자란 나무라고 한다

    다른 제보자에 따르면 도당굿이 없어진 때는 6 . 25전

    쟁이후라고한다

    사. 주엽4. 5. 6리 공동체 신앙/으|례

    ( 1) 참여마을

    주엽4리(강선), 주엽5리(상주), 주엽6리(하주) 3개

    마을

    (2) 마을개관

    주엽4리(강선)는 논농사를 위주로 하나 밭농사도 조

    금 짓고 있다- 주엽4리는 달성서씨의 집성촌이었다, 주

    엽5리(상주「上注」)는 달성서씨와 전주이씨들이 이루어

    놓은 집성촌이었다 주엽6리(하주「下注」)는 주엽5리와

    마찬가지로 달성서씨와 전주이씨들이 모여 산 마을이었

    다 세 마을은 모두 1800년경에 이 지역에 정착한 달성

    서씨가 지배적인 성씨로 되어 있었다 이 세 마을은 다

    른 마을들에 비해 외진 곳에 있으므로 인구는 이 지역에

    서는 드물게 감소추세에 있어 왔다.

    (3) 신당의 종류와 형태

    도당나무(개죽나무)

    * 주엽5리의 서천석씨는 도당나무가 ‘해나무(회나 무)’ 라고 대답하였다.

    183

  • (4) 제명과 신격

    원래 이 마을의 마을굿은 도당굿이었으나. 1960년대

    새마을운동의 와중에서 학교교육을 받은 젊은층들의 주

    장으로 산제사로 바뀌었다 이렇게 마을굿의 형태를 바

    꾼 까닭에 대하여 , 연로한 사람들은 첫째로 동수세를 받

    을 때에는 수입이 풍부하여 그것으로 도당굿의 비용으

    로 쓸 수가 있었으나, 수리조합이 생겨 수리시설이 갖추

    어진 뒤로는수입이 적어진 어려운 재정 형편과, 둘째로

    젊은 사람들의 미신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거세어진 점

    동을 들고 있으나‘ 당시에 젊은 사람 편에 섰으며 아울

    러 도당굿의 산제사로의 전환 운동의 중심에 섰다고 자

    처하는 배병조씨는 미신에 대한 반대만을 그 이유로 들

    고있다

    도당굿을 했을 때에는 ‘익-상’ 이 나지 않은 데 비해 제

    사를 지낸 뒤로는 악상이 났음에도 불구히-고‘ 자금사정

    으로 도당굿을 다시 채택하지 못하고 계속 제사를 지내

    왔다고말한다

    (5) 신당의 종류와 형태

    도당나무(개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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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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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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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마

    (7) 시기

    도당굿을 3년에 1번 2월말 3월초

    (8) 제주

    제주를 ‘당주’ 라고 불렀는데‘ 세 명을 두어 ‘상당주’ ,

    ‘중당주’ ‘ ‘하당주’ 라 이름하고 각각 흰떡. 시루떡‘ 밥

    등을 맡게 했다 당주는 3개 마을에서 가장 운세가 좋은

    사람을 마을 회의를 통해 선출하였다.

    (9) 비용

    통수세로 충당하고 모자랄 때에는 이장이 각 가구에

    서 추렴을 하였다 제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100만원 이

    내였다‘ 추렴한 돈과 물자는 부족한 경우가 없었으며.

    만약 남을 경우에는 수고한 사람들에게 조그만 물건을

    184

    사 주었다

    ( 10) 마을회의

    ‘대동회’ 라고 부르며, 마을 제사를 지내는 달 초순에

    준비모임을 갖고 제시-를 끝낸 뒤에 결산모임을 갖는다

    준비모임에서는 예산이 책정되고 당주가 선출된다

    ( 11 ) 금기

    제사 기간 동안에 손님이 들어 오면 나가지 못하게 하

    고‘ 짐승 잡는 것과 초상집 출입을 금한다

    ( 12) 굿의 절차

    CD 향피우기 @숨가락 꽂기 @모사의 절 ©3잔@

    3배@퇴주@침작@숭냉@밥뚜껑 덮고@끝

    o~. 기타

    ( 1) 대화3리

    (조사가 안 됨) 대화3리는 ‘장촌’ 이라고 불리우며‘ 조

    선시대 후기에 장이 섰던 마을이다

    (2) 대화4리

    (조사 부족) ‘산제사’ 를 드렸으나 그만둔지 오래였

    다 대화4리는 ‘성저리’ 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듯

    이 , 조선시대 후기에는 대화리와는 독립된 하나의 행정

    단위였고 그 하위 자연촌락인 신촌은 가장 큰 마을로 성

    주이씨 동족마을이며 몇 백년 동안 이곳에 세거해 왔다

    고한다.

    (3) 일산11 리

    공동체신앙의례가없다 일산11리는 ‘문화촌’이라하

    는데, 6.25전쟁 뒤에 피난월남민들이 거주하던 수용소

    가 발전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4) 일산12리

    공동체신앙의례가 없다 일산12리는 다른 말로 ‘수용

    소’ 혹은 ‘신동(新洞)’이라고 불리운다 1966년 장항4

    리 사람들이 홍수로 지대가 낮은 벌쪽을 피해 이주해 와

    서 이룬 마을이다

  • (5) 주엽 1리

    공동체신앙의 례가 없다 주엽 l리는 6.25전쟁 뒤에 장

    단군의 난민들이 정착함으로써 형성된 마을이다

    (6) 마두5리

    공동체신앙의 례가 없다 다른 이름으로 ‘산동네’ 라고

    하는데, 10여년 전에 구파발 철거민들과 연희동 산28번

    지 철거민들이 원거주지에서 무상으로 쫓겨나 원래 묘

    지였던 이곳에 정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7) 백석6리

    마을공동체신앙의례가 없다- 백석6리는 백마역이 생

    김에 따라 새로이 형성된 마을로서‘ 술집, 다방, 식당 등

    이 자리잡고 있어 한 때 ‘백마 로 통하면서 서울시내 대

    학생들의 MT 장소로 각광을 받았던 곳이다

    3. 맺음말

    공동체 신앙/의례는 일정한 인간집단을 둘러싼 자연

    과 그러한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인간집단 간의 관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낮은 생산력 수준으

    로 말미암은 인간의 생계활동과 일상생활에 있어서 인

    간에게 실질기술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연력을 주술

    적 · 종교적인 방법으로 다스리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

    한편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곧 공동체 성원들의 생계

    와 삶을 하나로 묶는 자연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 성원들 간의 공동체적인 유대가 표상되고

    제한적이나마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공동체 신앙/의례의 일반적인 성격 이외에

    도 일산새도시 지역에서 행해져 온 공동체 신앙/의례에

    대한 개괄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주목할수있다‘

    첫째로. 공동체 신앙과 의례는 일정한 사회적인 질서

    를 부정하거나 옹호한다 이러한 일정한 사회질서에 대

    한 부정과 옹호는 신앙/의례의 직접적인 언표에 의해서

    도 드러날 수 있지만, 다른 양태의 신앙/의례와의 대비

    속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날 수 있다. 이 지역에서의 공

    동체 신앙/의례는 도당굿/산신제의 대립쌍을 특정으로

    한다 도당굿은 무속적이나 산신제(산제사)는 유교적이

    다 각 공동체는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공동체 신앙

    /의례의 형태로 갖추어 왔다. 조사가 불명확하게 된 한

    마을(주엽2리)을 제외하고는 이 양자를 모두 수행하는

    마을은 없다 따라서 어느 한 형태의 공동체 신앙/의례

    를 채택한다는 것은 곧 다른 형태의 공동체 신앙/의례

    를 거부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현실 속에서 어떤

    질서를 옹호하느냐 옹호하지 않느냐를 뜻할 수 있다. 제

    3공화국 정권에 의해 추진된 새마을운동은 ‘미신타파’

    라는 슬로건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 때 무속은 미신적

    인 것으로 매도되었는 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60

    년대에 공동체 신앙/의례를 함께 하는 주엽4,5,6리에서

    는 무속적인 도당굿을 유교적인 산신제로 바꾸었다 학

    교교육을 받았으며 새마을 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젊은

    층들(당시 30-40대)은 전통에 친숙한 노인층들의 반발

    을 물리치고 조상대대로 행해져 오던 도당굿을 ‘미신’

    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대신에 유교적인 산신제를 채

    택하는 데 앞장섰다(물론 이러한 변화에는 다른 요인이

    개입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공동체 신앙/의례 형태

    의 전환은, 아마 옛날(조선시대 후기)에도 이와 비슷한

    사회적인 상황(유교적인 사족 지배질서)과 관련하여 일

    어났을 것이며, 오늘날 일산 9‘ 10리의 산신제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런지도 모른다

    둘째로 주목할 것은 이 지역에 1950년 이후로 생긴

    마을들 곧 일산11리 , 일산12리 , 주엽 1리 , 마두5리 , 백석

    6리 동 의 경우에 공동체 신앙/의례가 본래부터 없었다

    는 사실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비율이 높은 마을의

    경우에도 그렇다. 이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마을들에

    서의 공동체 신앙/의례의 형해화과정과 관련된 것이며,

    농촌을 포함하여 오늘날 진행되는 사회적인 변화로 말

    미암은 것이다 화학농법과 기계화로 특징지울 수 있는

    새로운 농경방식, 자연에 대한 보다 확대된 통제에 기초

    한사회적인 관계의 비중의 증대,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

    산에 의한 사회적인 이동성의 증대 둥으로 말미암아, 자

    연에 대한 인간의 낮은 통제력과 농민들 간의 긴밀한 협

    동관계 등을 특정으로 하는 전통적인 농경방식 위에 세

    185

  • 워져 있던 신앙 · 의례적 전통이, 그 토대와 더불어 와해

    되어 가고있는것이다

    셋째로, 이렇게 공동체 신앙/의례의 존속을 어렵게

    하는 기술 · 경제 ·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옛부터 있던

    일부의 마을들에서는 이주 직전까지 공동체 성원의 대

    다수가 외지이주민이 되어왔음에도, 연로한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공동체 신앙/의례를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도 지켜 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노력은 곧 새로

    운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스러져 가는 공동체의 사회

    적 정체성GE體|生)과 통합성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으로

    해석될수있다

    * 제보자 명단

    마 을 이름 성 나Oj 61 。d 경 력 ~누그l -?「〈 -ι‘」、

    일산 9리 이옥진 남 61세 농업 。1-''-。L 여 「이

    일산10리 7。L깐;1'마」 남 79세 농업 반장(구이장) 10년,

    경로당회장

    일산12리 김석근 ';:l- 75세 농업

    주엽 1리 오준한 님- 56세 상업 과거 공무원생활,

    친목회장

    주엽2리 오수길 남 교사 문화원편집국장,

    주간고양주펼

    주엽3리 빅기옥 L口4 77세 농엽 구장및 경로회

    회장역임

    주엽4리 서순석 남 60세 농업 청년회장‘ 이장. 흥농계장등역임

    주엽5리 서천석 L口↓ 68세 사업 방아간경영

    주엽6리 배병조 L口4 61세 농업

    정-항2리 최명남 」1그l 70세 농업

    백석 1리 조규현 」d」 ?서l 농업

    백석2리 유덕천 」J 78세 농업‘ 백마노인회장역임.

    벡석3리 이정하 남 72세 농업 노인회장

    백석4리 장기연 남 81세 농업

    마두1리 정인수 L口↓ 79세 농업 일제히-이장역임‘

    마두2리 강신원 」디L 74세 농업

    마두3리 λ~-。「;도rζ \:!- 57세 농업 이장역임 설일만 남 59세 농업 서울에 농업학교졸

    마두4리 최승대 남 ?서l 농업 일제하이장,

    대화1리 김현규 남 58세 사업 경기민요학원장

    대화4리 조달손 L口4 73세 농업

    장경인 남 47세 농업

    대화5리 김태경 L口↓ 78세 농업 월남실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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