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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북한산)의 수문봉, 보현봉, 형제봉에서 발원한 물 줄기가 잔잔하고 소담하게 흐르는 서울 서대문구의 자랑 홍 제천, 지역 주민들에겐 언제나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쉼터 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이웃에 있는 개천이자 한강의 동생 지 천이지만 굳이 찾아 가지 않는 개천이었다. 우리 동네의 불광 천처럼 도심형 개천으로 개발을 하여 비슷비슷한 풍경이 별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어디나 비슷비슷한 신도시처럼 말 이다. 그런 홍제천에 원래 이름인 ‘모래내’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 과 역사의 유적들, 시원한 물이 흘러내리는 비밀의 계곡까지 이어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내리던 눈이 잠시 소강상태인 날을 틈타 길을 나섰다. 길의 들머리는 개천과 이름도 비슷한 홍제역(수도권 전철 3호선). ’홍제천(弘濟川)’이라는 지명은 근처에 있던 ‘홍제원(弘濟 院)’에서 유래하였다. 홍제원은 조선시대 빈민 구제기구이자 중국 사신들이 묵어가던 곳이었다. 홍제천은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으로도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홍제원에 이르면 모래가 많이 퇴적되어 있어서 물이 늘 모래 밑으로 스며서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이 일대는 경치가 빼어났는데, 연산군 은 이곳에 탕춘대(蕩春臺)를 세워 유흥의 공간으로 활용할 정도였다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 들이 맑은 물이 흐르는 홍제천에서 몸을 씻어 허물을 벗도록 했다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풍류가 함께 흐르는 냇가, 홍제천 꽁꽁 얼은 홍제천 위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겁게 놀고 있다. 언제 가도 동네 주민들로 북적이는 인왕시장 김 종 성 | 여행작가 ([email protected])

조상들의 풍류가 함께 흐르는 냇가, 홍제천Ž˜이지_ Vol9... · 2019-01-01 · 하천과 문화 Vol. 9 48 49 No.1 겨울 직한 느낌이 드는 바위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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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북한산)의 수문봉, 보현봉, 형제봉에서 발원한 물

줄기가 잔잔하고 소담하게 흐르는 서울 서대문구의 자랑 홍

제천, 지역 주민들에겐 언제나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쉼터

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이웃에 있는 개천이자 한강의 동생 지

천이지만 굳이 찾아 가지 않는 개천이었다. 우리 동네의 불광

천처럼 도심형 개천으로 개발을 하여 비슷비슷한 풍경이 별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어디나 비슷비슷한 신도시처럼 말

이다.

그런 홍제천에 원래 이름인 ‘모래내’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

과 역사의 유적들, 시원한 물이 흘러내리는 비밀의 계곡까지

이어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내리던 눈이 잠시 소강상태인

날을 틈타 길을 나섰다. 길의 들머리는 개천과 이름도 비슷한

홍제역(수도권 전철 3호선).

’홍제천(弘濟川)’이라는 지명은 근처에 있던 ‘홍제원(弘濟

院)’에서 유래하였다. 홍제원은 조선시대 빈민 구제기구이자

중국 사신들이 묵어가던 곳이었다. 홍제천은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으로도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홍제원에 이르면

모래가 많이 퇴적되어 있어서 물이 늘 모래 밑으로 스며서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이 일대는 경치가 빼어났는데, 연산군

은 이곳에 탕춘대(蕩春臺)를 세워 유흥의 공간으로 활용할

정도였다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

들이 맑은 물이 흐르는 홍제천에서 몸을 씻어 허물을 벗도록

했다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풍류가 함께 흐르는 냇가, 홍제천

꽁꽁 얼은 홍제천 위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겁게 놀고 있다. 언제 가도 동네 주민들로 북적이는 인왕시장

김 종 성 | 여행작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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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길에서 만난 소박한 삶, 풋풋한 풍경

홍제역은 전철역이지만 기차역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다.

전철역 1번 출구 밖으로 나오면 갑자기 서울 도심 풍경이 어

디 작은 소도시의 읍내 시장터 같은 풍경으로 바뀌기 때문이

다. 가게, 노점, 리어카, 지나가는 주민들로 좁은 보행로가 꽉

찼다. 이런 북적북적한 분위기의 모체는 바로 ‘인왕시장’으

로 가까이에 인왕산이 있음을 짐작케 하는 시장이다.

오래된 헌책방 ‘대양서점’과 자전거포도 아닌 ‘자전차점’이

있는가 하면 맥도널드와 고급 커피숍, 편의점들도 시장 주변

에 같이 있어 도시의 다채로운 모습을 품고 있다. 인왕시장

입구를 지나 효제약국 앞에 서면 횡단보도 건너에 홍제교가

보이고 그 밑으로 작은 산책로와 함께 천변길이 나타난다.

홍제천은 종로구 구기동, 평창동을 지나 세 개의 동네 홍

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하천이

다. 정겨운 우리말 이름 ‘모래내’는 세검정의 맑은 냇물이 흐

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홍제천은 두 곳으로 나뉜다. 하나는 한강에서 마포구 성

산동을 지나 서대문구청까지의 도심형 개발 하천으로 양 편

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는 물론 큰 인공폭포까지 갖춰져 있

다. 홍제교부터 걷는 이 천변길은 말하자면 구(舊)홍제천이

자 개천의 상류지역이다. 한쪽 편에 산책로만 있을 뿐 흔한

자전거도로도 없고 개천가 양편에 작고 낮은 집들이 올망졸

망 들어서 있는 옛날 개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천변길

을 걷다가 트럭을 타고 온 생선장수 아저씨의 마이크 소리가

다 들려올 정도니.

하지만 그러기에 구(舊)홍제천의 천변길엔 사람들의 삶이

가까이 보이고, 원래 우리말 이름인 ‘모래내’에 가까운 정겨

운 풍경들이 나타난다. 눈이 내린 후 찾아간 게 잘한 것이 눈

이 녹으면서 흐르는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흐르는 사천

(砂川)의 모습을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도 된다. 모래내로

돌아간 개천이 누구보다 반가운건 역시 텃새가 된 청둥오리

들. 이 추운 겨울날 발이 시렵지도 않은지 모래톱에 발을 담

그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난다.

곧이어 청둥오리들보다 재미나게 노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가 들려온다. 얼음이 꽁꽁 얼어 썰매장이 된 개천 위에서 즐

겁게 노는 어른과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져 한겨울

추위도 모르고 걷게 된다. 이어 작은 포방교 다리가 보이고

이름도 특이한 ‘포방터 시장’이 나타나 여행자의 발길을 붙

잡는다. 입구에 필자도 어릴 적 올라타 놀았던 동물인형기계

가 참 오랜만이라 반갑고 노점들과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작은 시장에 들어선 것은 순전히 그 이름 때문. 과일

가게 아주머니도 문방구 아저씨도 잘 모르겠다는 ‘포방터 시

장’의 이름 유래를 찾아 시장통 골목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마침내 칠기 그릇을 파는 가게 아저씨를 만나 알게 된 것은

가까이에 군의 포부대가 있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

다. 웬 군부대인가 했더니 홍제천의 상류지역은 옛부터 수도

방위의 중요한 지역으로 그런 사실은 얼마 후 만나는 홍지문

과 탕춘대성에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런 겨울에 홍제천에 사는 오리들은 춥지도 않은가 보다.

이채로운 이름의 포방터 시장, 홍제천가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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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에서 만나는 역사의 유적들

소복이 쌓인 눈을 기분 좋게 밟으며 걷다가 천변가 절벽 밑

으로 작은 절과 웬 누각이 눈길을 끈다. 옥천암이라는 아담

한 절인데 누각 안에 앉아 있는 건 놀랍게도 하얀 옷을 입은

부처상이다. 정식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백불(白佛)로 서울

유형문화재란다. 개천에 걸려 있는 보도교 다리를 건너 절

안으로 들어갔다가 암자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보살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왜군과 힘든 전투

를 벌이고 있었다. 왜군이 서대문을 넘어 한양 도성으로 쳐

들어갈 기세여서 권율 장군은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옥

천암을 요새로 삼아 배수진을 치고 홍제천을 사이에 두고 야

간 매복을 하였다.

깊은 밤 드디어 왜군이 밀려왔고 그때 왜군들 앞에 하얀

옷을 입은 장수(옥천암의 백불)가 나타났다. 조선의 장수로

생각한 왜군은 일제히 총을 쏘았는데 총알을 다 쓰도록 총콸콸 힘차게 흐르는 홍제천 옆 백불이 있는 오래된 암자 ‘옥천암’

전해오는 전설로 더욱 신묘하게 보이는 옥천암의 흰옷 입은 부처 ‘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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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쏘았는데도 장수는 쓰러질 줄을 몰랐다. 다음날 아침 총

알이 다 떨어진 왜군들은 당황하여 허겁지겁 퇴각하기 시작

했고 이때 권율 장군의 군대가 일제히 반격하여 왜군들을 모

두 전멸시켰다.

누각과 관음보살상이 홍제천과 잘 어우러져 있는 이곳부

턴 지금까지 걸으며 보았던 동네속의 물줄기가 아닌 자연계

곡의 힘차고 멋들어진 모습으로 바뀐다. ‘콸콸콸’ 소리를 내

며 흘러내리는 경쾌한 물소리에 기분도 상쾌해지고 어떤 풍

경이 펼쳐질까 기대가 된다. 곧이어 나타나는 큰 성문 밑에

들어가 잠시 쉬어갔다. 성문 옆 다섯 칸의 구멍이 있는 오간

대수문(五間大水門)으로 홍제천 물이 콸콸~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이 문의 이름은 홍지문(弘智門)으로 숙종 45년(1719년)에

만든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홍지문 옆으로 이어진 성곽이

뱀처럼 산을 타고 넘어가고 있다. 탕춘대성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하여 세운 성곽으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인

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부터 북쪽의 능선을 따라 북한

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된 산성으로 길이가 약 5㎞

에 이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군사훈련과 수도방위

를 위하여 북한산성을 축성하였으나 북한산성이 높아서 군

량 운반이 어렵자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 일대

에 군사를 배치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하여 이 성을 축성하

기로 했다. 원래 홍지문,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산주

(漢山州)로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하니, 포방터 시

장 이름의 유래가 수긍이 간다.

홍지문 옆으로 이어진 탕춘대 성곽은 산자락을 타고 북한산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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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홍제천 상류는 보기 드물고 인상적인 개천 풍경을 보

여준다. 북한산과 인왕산, 북악의 산세가 겹칠 듯 맞대고 있

다. 거친 바위들과 나무 많은 언덕, 옛사람들의 정자, 성벽, 수

문, 물이 흐르는 계곡 같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다.

날아갈 듯 너른 바위 위에 올라앉은 세검정 정자는 그 정점

이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 도성의 서북쪽 밖 삼각산과 백악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자연을 즐기려는 많은 발걸음들이

오고갔던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옛날의 풍광을

그대로 감상할 수는 없지만, 홀로 우뚝 서있는 정자가 있어

옛날의 절승지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정자가 바로 ’

세검정(洗劍亭)’인 것이다. 인조반정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

는 세검정은 1941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하였단다.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인조반정이 있기 오래전부터

정자를 세워 풍류를 즐기던 명소답게 위치가 참 좋다. 정자

앞의 너럭바위들을 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유려하다. 겸재 정

선이 멋진 그림으로 남길만하다. 하지만 도시 개발로 인해

차에 치여 버릴 듯 쫓겨나 듯 도로변에 바짝 붙여진 세검정

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인문학이 대접받는 시대지

만 이런 역사적 유물을 대할 때마다 미학적 보존도 매우 중

요함을 절감한다.

홍제천은 나라가 힘이 없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슬픈 역

사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병자호란 때 남자는 물론 여성들도 청나라로 끌려가 갖은

고생을 했는데 나중에 살아 돌아온 조선 여성들을 일컬어 ‘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고 한다.

‘환향녀(還鄕女)’의 한자풀이를 하자면, ‘고향으로 되돌아

온 여자’라는 정도.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환향녀’는 병자호

란 때 청나라로 끌려가 갖은 고생과 함께 정조를 유린당하고

돌아온 조선 여성을 일컫는다. 이 말이 예사로울 수만은 없

는 것은 나중에 정조관념이 희박한 여성을 비칭하는, 이른바

‘화냥년’의 어원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환향녀’들은 자의로 오랑캐들을 따라간 것이 아니

라 나라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청나라 오랑캐들의 노리개 감

으로 강제로 끌려간 것이다. 그 책임은 당연히 당시 최고 국

정책임자인 임금과 지도자들이 져야할 몫이었던 것. 그런데

‘환향녀’들은 강제로 끌려가 노예처럼 산 것도 억울한데 고

향으로 돌아온 후 정조 문제로 또 한 번의 고통을 겪어야 했

던 것이다.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자 당시 인조 임금은 이들

을 서울 입구인 홍제천에서 집단 목욕을 시키도록 한 후 이

들의 정조문제를 거론할 경우 엄벌에 처하겠다고 명을 내렸

다. 나라가 힘이 없어 여성들이 겪어야했던 슬픈 수난사가

아닐 수 없다.

홍제천의 최상류, 백사실 계곡

세검정 정자를 끼고 난 앙증맞게 좁은 산책로를 걸어가면

눕고 싶은 평상이 놓여있는 자하슈퍼가 나온다. 가게 이름에

서 창의문의 다른 이름인 자하문이 연상된다. 개성의 경치

좋다는 곳 자하동을 본따 자하문이라 지었다는데 자하슈퍼

도 동네 경치가 좋아 그런 이름을 붙였나보다. 동네의 유일

한 편의점을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홍제천의 발원

지이자 비밀의 정원을 품고 있는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白沙

室) 계곡이 펼쳐진다.

언제와도 아늑하고 조용하여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 드

는 백사실 계곡은 하얀 눈이 쌓여있어 더욱 운치가 있고 여

기가 서울이 맞나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이고 믿겨지지 않은

곳이다. 하얀 융단을 깔아놓은 숲길을 걷다가 둔중하고 묵

자연친화적이었던 조상들의 풍류를 짐작할 수 있는 세검정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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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과 문화 Vol. 9 No.1 ● 겨울48 49

직한 느낌이 드는 바위와 마주쳤다. 그 위에 새겨져 있는 굵

직한 한자 ‘백석동천(白石洞天)’, 백악(북악산) 아래에 있는

경치 좋은 동네라는 뜻으로 백사실 계곡은 국가지정 명승

지에도 이름을 올렸다. 유서 깊은 글귀도 반갑고 안내 팻말

에 이 계곡에 맹꽁이, 도롱뇽, 무당개구리가 산다니 봄에 꼭

와봐야겠다.

이런 깊은 산중에 그 옛날 별장과 사랑채를 지었던 돌기둥

과 정자 터가 남아있어 이채롭다. 현재 남아있는 주춧돌로 보

아 1830년대에 600여 평의 별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연과 최고의 조화를 이루려 했던 조선시대 조상들의

풍류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었다.

폭포수처럼 위풍당당하게 흘렀을 계곡엔 물줄기 대신 하

얀 솜 같은 눈으로 가득 차있다. 차갑지만 신성한 공기로 가

득한 하얀 숲속 한가운데 서있자니 속이 다 후련하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서울 속 최고의 ‘힐링 스팟’이 아닐까 싶다. 은밀

한 비밀정원 같은 연못에 이르면 이처럼 우렁차게 흐르는 계

곡물보다 부끄럽다는 듯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백사실 계

곡과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침내 홍제천

의 최상류까지 왔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지만 참 다양한 풍

경과 이야기가 있는 천변길이었다.

백사실 계곡에 묵직하게 서있는 바위에 인상적인 글자 ‘백석동천’이 새겨져 있다.

계곡을 넘칠 듯 흐르는 물줄기는 하얀 솜 같은 눈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