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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古史資料Jl)와 「豪古源流」에 對해서2) · 2020. 6. 4. · 「義古史資料Jl)와 「豪古源流」에 對해서2) 崔 g끊 根* • 豪古史資뼈 1) 元朝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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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7 l j

    「義古史資料Jl)와 「豪古源流」에 對해서 2)

    崔 g끊 根*

    • 豪古史資뼈

    1) 元朝秘史

    本書21는 그 原名이 “mongro1-un ni ’uca tobci’an31 " (忙짧옮 때察 脫察

    安41 )으로 이블 騙譯하면 「쫓古의 秘密 史網(훨鋼 ; 總댐)J이 되고, R~

    「元朝秘史」는 이 의 漢譯이 흰다.

    그러나 中國의 明淸兩代에 결쳐서 中國A學者들에게 이 卷首標題下애

    記錄펀 「忙짧倫 組察 脫察安」의 八字는 『必是 所뽑-擺별人名f£f』으로 :살

    옷 誤解되었던 때도 있었던 모양이다.

    『郞如卷首標題下分注=行, 右忙짧삶짧쩔五字, 左脫察安三강 必앙所뽑所}뿔人

    名衛而 少쩔本無之當以此補正 其餘字句行段亦種짧較路可稱佳本옷, tXIi:b畢듬리其

    願末如此 若夫所以訂明修元史之流略…下 IHi} J (願千면廣채思適齊文짜 71:복 5 秘51:' ~!t)

    이의 原著는 띠뚫文으로 쓰여갔고, 元太宗十二年 맛子(1210) 七月에

    * 서 울大學校 人文大 敎혈(國文學) 1) 豪古史資料는 그 소體的인 것에 言及하게 되면 겼大한 것이 되겠지만 여기 에서는 筆者가 테藏하고 있는 資料에 I~!;[해서 紹介파고지- 한.

    2) 本鎬는 1980年 月 日 東亞文化liff究所에 서 發表한 內容。11 'i뚱하고 좀더 仔細한 것에 關하여는 現在豪古源流어] 對해서(滿文, 줬文) ff빨中에 있으므록

    좀더 後日에 미루기로 한.

    3) 이는 中期쫓퍼語的 람徵이 있는 꽃古語의 記錄얀례, 古代풋古E폼에 있어서 나 文學에 있 어 서 는 “ mongrol-un niruca tobciran"으로 된 다 •

    4) 이 11않察安」은 쫓文 “tobci’ an"의 행字t5-寫이 기 때 문에 , 마t낭펴 ,Jjt r-察핫」 으로 音寫해야 되겠지만 }京*에는 1- 1, J字가 없이 「뾰察安」으로 記錄되어 있었던 것이었는데, 後代에 와서 1 r J字블 홈入해시 1)않 i、察'.t

  • C 7 ~ J 束亞文化 18칩

    R껴f高헛9、으며 )핑휩‘者는 때;flER라는 것이 3버說5) :모 되 어 있다.

    『元秘史 「卷績二卷 不著}뿔人名J'Ç;, 志량左J'Ç;初fE , 至幹歌짖皇우곰5EF닌'4'-止, 펀

    兒者太宗二年辛째~G햄光泰}원 「元秘、史略J)

    이의 根據로서 흔히 ↑列로 드는 것은 「元째秘맺」績集卷二의 卷末의 記

    錄이다.

    (原文)

    大 聚會 聚촬 鼠兒 年 七 月 行 FIT i'í的 j낀名 也客 忽、鄭폐뺨 忽띈周 낌、歸合納 只動 낌、많] 微jjirj 챈 客;띄i꺼」듭머 關j간땐-

    的 七 孤I L!行 地 名 兩 間 宮 每 下좁 有阿刺倫 꽁羅安 李聊참合 失!FJJFÎ' tII:克 뽑§牙兒 ;fLJC刺 幹兒菜思 保JC周 不

    時 寫쏠 畢TC'tD()←→突兒 必j한!펠 찜JJC思罷 6)

    (漢文譯)

    JIt書大聚會휩. 鼠Ij~年七月 . 於客 엽鍾{可. 다회送隨}一Jírïf w1 J 'I"b Þ,g[l퍼處下時~~~畢了.

    以上의 原文을 쫓文으로 다시 再構하고 여 커 에 그 對譯을 하면 다음

    과 같이 된다.

    -

    -u“ 。ι

    았 뺑

    e ”u 탱

    k “

    씨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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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集r없 르근

    빼 總

    e 1않 大

    V“

    un dolo’an boldar-a silginceg qoyar Jarur-a ordos baroJU aral의 dolo’ an뻐方과 boldar-a silginceg 두地方의 中間地點에 떼삼윤 下5녕하고

    büküi-dür biciJu tarosba; 있을 패에 띈寫해 끝냈다

    太祖 Cingis qaran의 짧三子 ügedei7) 는 Cingis qaran의 둬 플 이 어 서

    펴位하고 太宗이 되 었는데 이 는 四紀 1229年 己표年이 고, 그기- Þ1P位後

    5) 元땐秘、핏에 川딴Jj{ ι] 리 가지 點에 對해서 댐說이 많으냐, 며키에 記rR 힌; 것은 빨者의 jt침두 1m니i된 것임을 란혀둔다.

    6) 여 거 서 引까j하 는 「 )TX」은 四部違刊本의 r 7Cj~쇠파받」에 依함. 7) 元때秘、따이1 는 「JJ이다\2'~Yj보 表記파고,반他 中國멋이1 는 「짧댐좁」로 表記」도1

    /λ 끄 •

  • 「훌古g힌寶料」와 「豪古源流」에 對해서 C 7 3 ::

    最初의 「쥐 해 J(鼠年 ; qulurana Jil) 는 太宗十二年의 康子年이 다.

    따라서 原著 “ mongro1 • un m ’uca tobCi’ an" 아 脫橋된 것은 면紀 1240

    年의 太宗十二年 폈子年이 라고 보는 것 이 쭉當하다.

    그러 나 前記한 萬光泰擺 「元秘史略」의 r ... 前略, 至幹歌갖皇帝밍兒年 1上, 太宗·二年추pp .,.下略」의 記錄。] 있고1 後行에 서 의 「펴兒年七月 …줬

    댈了-說에 若千의 疑心아 가게 하는 記錄아 있으나, 아난케 이 니 다, 年

    度的으로는 「兒兒年J(太宗二年 辛pp年) 이 옳終的인 記錄。1 기 는 하다.

    그러 나 그다음에 「쩍兒年幹歌g皇帝狂金國」의 記錄이 構續하고 있고,

    「뾰兒年J (1 231年 ; 太宗二年, 주띠年) 에 幹歌잦皇帝가 「金國에 의 Z正~J

    을 始f'F한 것으로 되 어 있다.

    그 當時에 豪古軍은 「金國狂않」애 四年問을 消費하고 r~fl午年j (1234)

    에 「金」國을 滅亡시 켰다-

    그런데 앞에 서 引用한 元朝秘史의 原文

    也客 忽鄭홈찌↓합 大 聚 會

    (yeke qurilda

    忽里周 .. & ••• 피i 聚옳 quriJu) ...

    에서부터 三十一行을 趙及하면 다음과 같은 句節이 있다,

    (原文)

    〔人)名 皇帝 說 ?C 딩 ËI':J行 大 f立 꽃 坐줍 皇f늠 幹歌反 合Z름 嗚話列誠 隨亦格 깅풋延 也客 幹f풍←핏兒 폐7;/!되 合으뮤

    父 的 後 做7 的 我的 金人的 百姓 行 까j펀著 쩔됩j부播 因 뽑용71Ì~納 委[1'1'列都克先 米음찍 tL忽‘鼓 亦댄堅-→突5감 阿牙刺周

    金A每 百姓 흉웅總了 tL忽↑易 亦兒堅 木忽傷合罷·‘·킬필.

    以上의 原文을 쫓文으로 再構하고 여기에 그 對譯을 하띤 다음과 갚

    이 된다.

    “ ügedei qaran ügüler-ün; ecige • iyen yeke oron-dur saroJu qaran ecigre-yin 幹歌反 皇띔가 말하되 , 나의 父親의 大 位에 þ!~位하여 올땀 父親의

  • C 7 4J 束亞文化 18집

    qoyina üiledügsen minu Jarud-un irgen-dür ayalaJu Jarud irgen muqudraba 以後에 나의 行事한바는 金人들의 百姓에 게 로 í;F進하여 金人 百姓을廳組시 갔다.

    (버가) (것은) (시킨일이다)

    검n 함歌反(다gedeij 는 이마 「金」國을 平定해 끔냈다는 것을 말하고 있

    £니 앞에 記錄힌- 그 「펀兒年I쌀歌강皇帝fE金陸lJ의 「면兒年J (1 231年 ; 太

    뤘二年, 뿜꾀年) 에서부티, 매륙 途中에 年次의 記錄은 없마고 하더라

    도 四年의 歲月이 이미 쯤過했다는 것음 ;란味한다.

    그러 내 함歌강의 「金댈l표tJt完了」는 이 보다二 헬씬 n11-른 時때얘 이 미

    成逢되었었다는 것융 돼示하는 記錄이, 그 「띤兒年‘:꽉歌7;/뭘帝↑正金園」의

    記錄의 不過 四十三行 뉘 에 記錄되 어 었마. 따

    (漢文意譯)(便宜블 f,"ì헤서 EFfζ省머깝함)

    fl딱歌7j많將죄;:1랭짧i딘T , 名其王생小睡 ì&!:‘j숙숲 1두i및[흙)、디띠ïæ한. 於ì't쌓lt2f'等→

    월초 立探J펠$以젤、단:之. ~@좀핏北下 了, J

    따라서 「元웹찌史-의 原著者는 不過 四 ['三行의 릅U錄으로 ILi年間ζ%

    兒年← [1231年 ; 太宗二年 辛9P年〕에서부꾀 I1뛰투年~ 0234年 ; 太宗六年〕

    까지의 벚實을 펼略한 것으포 되고, 아는 그 urF딸T:i원외 그 폐댐윷쫓 15‘式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萬光泰擺의 15-G~씨、史 R성」의 「…至웹歌잦皇I쁨%3단年 L::. 太宗二年

    든FPP ... 下略」을 皮相!찌인 意昆일 것 이 고 그 內容은 多年間에 걷 처 서 成

    迷펀 어 느 5ë實의 結폈륜 集대r맺 IJ~해 사 닫라錄했기 때 문에 年度的인 表示

    기 없다고 하더라도, 그 自體l치어1 서의 歲月의 經過플 認定하지 아니혀

    면 안되게 되어있대.

    따라서 !랐著內에 있어서의 「펌댐年J (1231年 : 大宗二年, 든F9P年〕에서

    「鼠돼年J ~1240年 : 太宗 t二年, 헬子年)까지의 飛많짧은 本 “mongrol~un

    m ’uca tabCi’ an"의 內容으토나,)).R著者의 編塞方式에 있어서 極헤 원然

    的인 것아다.

    그리고 이 原著者에 對해서도 i(失名많J 3'. 되어 있기 때문에 가지가지

  • 「豪古史資料」와 「豪古源流」에 對해 셔 C 7 5 :1

    事tt한 -어

    그 中에서 며設人이 었었다고 推測하는 것이 11법當하마

    大宗에 결처저 의 睡測。l 있을 수 있겠으나, 尤先은 太祖,

    「느 文닮」이었고,

    그런데 哀뽑s한 일은 아 回뚫文 原著는 途中에 湮澈하고 오늘에 傳하

    치 않는마는 事實이다.

    2) 오늘 傳해오고 있는 所謂 「元朝秘史」는, 前記한 바와 같이, 太祖

    • 太宗돼朝에 결쳐서 事H:한 文폼인 E고찮人 (uyirur) 의 原著인 “Mongro1

    • un nl ’ uca tobCi’ an"을 漢文으로 즙義譯한 「元횡B秘史J~最初에는 I :rc秘

    史」가 그 原著의 모습과 內容을 問接的으로나라 오늘날까지 F흥해 주고 있

    을 따름이다.

    이 漢즙義譯 「元朝秘史」 亦是 어 느때 누구에케 依해서 fF成되있는지

    그 記錄을 찾을 걸 없고 오늘날까지 {無名9ÇJ로 되어 있다.

    그러 내 이 에 關한 意見을 大體的으로 結合하면, 明洪武年間에 쫓文이l

    能熟한 漢A史ê , 또는 漢文에 能運한 豪古人史많의 業fJi으로 後世이l

    남키 키 위 한 豪古史 또는 豪古語의 E웰習用으로 完逢한 勞fF언 것으로

    f옮뼈1)되는데 그 칩大한 量에 lt해셔 참주의 誤記誤譯等괴감=j=-의 混옳L을

    l쌓外하고는, 全體的으로 整然하고 〕펀된 原則原理에 依해 서 듬디錄하고

    있거 때푼에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쫓文으로 再構81해서

    하는데 大端한 便宜를 提供하는 成果플 보이 고 있다.

    (二) 名 皇帝的 i'Kιl

    (一) 成吉멍、合뚱꽤 忽;fL7C ;f~ 9’ (三) cinggis quran-u huíaror

    〔四) 칭 기 스 皇폼-의 행}값

    그 빈f?~을탤解

    8) 이 「元戰秘멋」에는 大體的으로 「中期쫓古語的] 特性을 지녀고 았는 記됐01 카 때 문에 젊古文語와 相뿔한 點이 많 을 뿐만이 아니 라,"7:듬홈에 서 全然 찾

    을 수 없는 語棄가 發見되고, 또 그 文法에서도 相異한 곳이 있어, 이 「元

    朝秘史」에 使用환 豪古語는 或은 OJ 느 地方의 「方言]이 아니였던가 하는

    疑心을 자아내게 하는 境遇도 있다.

    9) 學者에 짜라서는 이 「成吉思合뚱調 忽~LJC兒J (Cinggis qaran-u hUJaror) 〔정겨스ff(皇;힘)의 根源(源流)J 가 이 책의 친짜 「冊名」이라고 보는 분도 있 다. 그리 고 “ Mongrol-un ni’ uca tobci’an"(豪古의 秘密 史網)은 副많라 고 主張한다.

  • C 7 6 J 束컨표文{~ 18칩

    (二) J:: 天 j흉 命첨的

    (一) 풍짧列爛格理一삶:fll: :j:L牙阿秀 脫列5t元(눔) (굵) 눔-

    (三) degere tenggeri-ece Jayaratu törögsen

    -'=-。그L':二「 하늘에 서 天命을 받아 出生한

    有 쫓 他的(二) 蒼色 3영 1[

    〔一) 宇兒뼈 fκ 폐; 눔

    (=) börte Cino

    I河:!J[ 格兒該 亦즙띄 꿈

    ]

    aJuru gergei inu

    (四) 짧點있는 이~가 있었다 그의 안해는 ]

    人名

    慘è的 !Æ 有來 水名 i꽂j닫

    종中상 *슛 馬꼽R혀펜j |폐只뚫 關끊思客킹5젠iJJ)tiJ

    r(orvaVi•)a maral aJirai tenggis ketülJü

    ‘ (四) 01-릉다운 암샤습 이 었다 팅기(江 A 플) 건너서

    人名

    〈二), 펴名 111 名

    (一)1 亦列罷 휩離영;뱀땐 l뼈里J[뀔 不~Ur며쭉 굵

    〈三) irebe; Onon müten-ü terigün-e burqan

    (四) 왔다. 오논 江의 지;原에서 부르칸

    (二) 行 營盤做휩 生子的

    (一) 合WJ 敎一納 願갱EE원刺周 l뾰列J만:'ÏC 검도

    (三) qaldun-a nuturla)u törögsen

    (四) 찰든山에 서 ;훤![;z하며 낳은

    (二) 有來A名 ,

    (一) 巴搭킥f;!'f- I~主7c中

    (三) bataciran aJuru

    (四) 바다치간 이다

  • [윌~밍탔料」와 「짧古써퍼」에 對해서

    i까上은 「元꽤秘史」 第一:파, 第←·段의 記錄이 다. 그 中에

    (:j) (→)은 끓*의 「파字1]- 1:5 J이고,

    맹 (:二) 는 아c11 양字에 對한 「字듭떻」이 매 ,

    ii 以J: (-), (二)의 合해서 7G후~~~'3핀의 「本갓」을 이룬다.

    ( 7 7 J

    (돈1 (一)의 펴추즙점에 表示는 豪字로 ←-{퍼語葉라는 表示。l 고, 이 表示

    가 따는 한j믿에는 |펀l침名詞의 흉줍遇。1 다.

    ('J) (三)은 펴추흡침이1 싸한 챙字펴構이고 이를 Roma字로 表示한 것인.

    이r) (--)의 펴字아니1 에 4 、"1ζ혹 「띈」字가 았는 것은 그 윗字가 JJ ~rJ中에 CrJ

    흡이라는 表示이디.

    그리 고 이 第-段의 듬다錄에 對한 漢意譯은 아래 와 같다.

    「當初j(;ljjJj的人, Ji3JE一Q힘합色 !'ì'J값, 與←→짧慘白色 IÌ'JJïß相配7, 同않過驗솜思

    名字的기(, 來펀jjj석찌.Wlt名추:(!~파源 i,If( 不!;~gp名字的山前住著, 逢T-홉人名字煥('r

    巴£양z후?유」

    이 漢意譯은 當時(明꽤時)의 p{:fr諸로 記錄된 것이 략고 傳하는데 近

    來에 와서는 解釋되 지 못하는 것-도 許多하며 , 어 느 곳은 相當히 長文의

    }횡文을 不過 벚行으로 省略해서 說明한 곳도 었마.

    以上은 「저훼秘짝」의 擺略的인 說明에 지 나지 않지 만 좀더 後 日 에 가

    서 그 解讀파 휩誌的인 解說을 좀더 體系的으로 試圖해 블 時期도 있겠

    기에 여커서는 尤先 이딴 줄이기로 한다.

    2) a Itan tobci nova([阿爾빨 脫必*題J=i黃金史쫓網J)

    ?힘 康~;!~W lF¥ 철古高{뺨 Lobsang-danJin 擺 (西藏名 bLo-bzan bsTan’Jm

    漢名 gf5 f청 F] 첩1:).

    原 /%i펀名조i

    “ erlen-ü qad-un ündüsülegsen dörö yosun •• u Jokiyal • i tobcilan qoriyarsan [古代 댐모싸;의 創始한 國 基의 組織플 평略해 서 編養한

    altan tobci kemekü orosibai" 「黃金벚훨網」이 라 하는 책 이 여 가 어l 듬어 있다』

    이 長文믹 짧名혼 평ffi&해서 “altan tobCi"라고만 稱名하고, 이릅 輪譯

  • = 7 8 J 칭E묘갓:jr 18집

    해 서 「黃金벚핏땐J10 ) 이 라고 한다.

    。1 “ altan toèi‘’는 며러種의 랫本이 있으니, 여키서 接해본 것은 Harv-

    ard-yenching Institute 돼파의 Scripta Mongolica 1; AL T AN TOBCI

    “A brief history of the mongols" 에 依힌 다. 이 는 F , W , Cleaves敎授이1

    依해 서 1952年 複띄刊行되 영냐,

    :r Cleaves표의 /1펠)co1' lt

  • r bW"t, æ ~;lé') J 와 「잖퍼‘째‘ ìfu에 對해서 [ 7 0 j 휩‘로 알펴져 있을 따픔이다.

    폐] “Uta • yin tabun arulan-u orosil, süsügten • ü jikin ]imeg".~五筆lli

    序깅c, 짤敬받는 r ikin ]imeg; 五筆LL志) 이 라 題하고 1667年에 刊行되 았 다고 알려 져 있으니 Labsang Danfin의 生存年짜와 그 Altan tobCi의 칩

    뿔年代도 어 느 앉많 :JfdJ\U할 수 있 다,

    이 제 Antoine Mostaert民의 소뿔 “lntroduction" 에 記錄한 “Altan

    tobCi nova" 의 內容핏略을 紹介한다11)

    O著者의 續言과 r:p度와 西藏즘홉王의 源流에 關한 記錄 ( 1 , 1 N6 : 712))

    0한 西藏移民얀 Bδrte-cino와 그의 姜인 roo-a-maral의 後옮에 서 부터 Alan-

    roo-a의 아들 Bodancar의 出生까지 의 豪吉諸王의 源流 (6 : 8~12 : 9)

    。Bodancar에 서 부티 Cinggis?午의 出生까지 (12 : 9'""26 : 3)

    OCinggis퓨의 Lß ~는J:J後부터 그의 짧去에 이르기까지 ; ( 1 , 26: 4~ n, 10õ: 3)

    。Cinggis균의 繼jf" ; 펴王, 름엽it系과 諸公-=t, 그의 九勇士, Joci와 Caradai 의

    分領‘ Ogedei와 Tolui의 펠子, Cinggis균의 六萬戶와 그의 四 ordo(휩兒*

    =2낌앓); ( n, 105: 3~107 : 7) OCinggisìfi판記의 結末→{假훤(107 : 7~1끄 : 8)

    COgedei(太宗), Güyüg(定宗), Möngke(憲宗)과 qubilai (世祖) ;

    (1l 1 : 9'"'-' 1l6 : ,!)

    Oqubilai(켄祖) 時代에서부터 Toron-temür(順帝) 時代에 이르는 期間;

    OToron-temür의 後흙로서 의 비}의 諸皇체:

    ODayan→qan에 01 르기 까지 의 뚫 j김 의 즙¢小퓨들 ; (그Dayan-qan에 서 부터 Legden-qan의 *%末에 이 르 71 까지 ;

    O때追, 이제까지의 全卷의 짧은 횟Ifl{f ;

    (116 : 5~124 ; 10)

    (124 : 1l~127 : 4)

    (127 : ,1~164 : 2)

    (lGil : 2~ 185 : 1

  • C 8 0 J 끼m7~lt 18집

    沒짧고} 그 末 j체위 後1힘 틀 )린히] 서 e ft핍펀 i해패|댐와 의 l터J Ji::l. 1쭈찌

    OColophon13'

    A. Mostaert딪는 다시 Zamcarano의

    (1 91 : 5~192 : 6)

    (192 : 6N 193 : :;)

    論흰HMongol’ skie Letopisi XVII

    veka: Trudy Instituta Vostokovedeniya XVI, Akad.Nauk , Moscüu •

    Leningrad, 1936) p.S6을 i]1J김하면서, "6] Altan tobèi가 우리 에 게 꿇몇

    한 핍1띤륜 까지고 。!그二 /λ人 」 갖은 ;lf(GL Altan tobci익 太部分0] 「元폐秘史」

    의 原文을- l'딘씀하고 있 다는 것 뿐만아 이니라, 。j 흙경옆가 I딩tE 우려는 해

    底히 求짝할 수 없는 大量의 j최"f\; 文歡윤 우리 에 게 抽댐히}

    事實 01 냐”략고 말하고 있마.

    3) Cinggis qaran-u Cadir (칭 기 스규의 家讀)

    業古휩社出|댔,

    126닮i까지 가 "Al tan tobci"의 記錄이 다.

    :f t京,ζf!:年 (1924年) 春1I月 「五 티 재댔.

    第-→E됨에서부터

    그 第-~末行에

    주고 있다는

    總 196面마:,

    “Mongro1-un qad-un yabudal-i bariJu ‘ qac\-un tobci neredür sntur tcgüsbe

    i.indüsLin qoriyangqui altan

    (줬]F[5원n의 뿔: ~!1;윤 더 듬어 서

    를 完7했다)

    E휩n의 fij첼떠 1=1 얀 “Altan tobci"라하는 史겹픔

    라고쓰여

    •"-'"--= .. t_~l ~Ij닙디℃

    있다

    “ Altan tobèi nova ‘’ 가 「元꾀

    “ Cinggi qaran-u Cadir ‘’ EU1iRi헤;익 ‘jAltan tobCi”는 總카:의 “Altan tobèi ‘’

    로 3퍼m뇌 는 16304-덴의 Il#의 系統응 이아받은 것으로 보이머 ,IJlt來

    1924年에 。1 “ Cinggis qaran • u Cadir‘’ -은 “ Temgctti" 이파名 :ì'f참튼1) 기

    qaraCin (햄짜~iìL‘)地方에 서 쫓見하l λ1 l925쇠,=["탱l 北京에 서 發行한 것 이 냐

    13) 띈總의 f;fJ初녀→ 或은 末J료에 印폐띈 비)i닷 ~d 의 f~ì쉬믿.

  • 「寒古9:資料」와 「豪古淑流」에 對해 서 C 8 1 )

    또 이 의 再]없이 라고 믿 어 지 는 “ borda141 cinggis qaran • u Cidig" (뿔강

    기 스문의 家諸) 이 그 二年後에 發구u되 었는데 , 그 卷末에 는,

    “ kükegcin üker jil-un qaburun terigün sara arban tabun tu angqa utar-a

    daromallabai" (Z표年 [1925) 휩初月十五日 初}없印때)

    ularcin taolai jilun qaburun segül sara arban tabun-u edür dahin daromal

    labai" (T gp年[1927) 츄카月 「五日 퍼版印剛)

    로 記錄되 어 있 어 , 그 때때이 “Ciggis qaran-u cadir" 이 고, 그 再}없。1

    “ borda cinggis qaran -u cidig" 이 分明하게 되 었는데 , 이 再版은 總、 96葉

    으로 第 1 葉에 서 부터 第62葉前面까지 가 "Altan tobCi"의 記錄이 다.

    亦是의 그 末行에 初版과 同一한 文句(前記)가 記錄되 어 있는데 , 差

    異 았는 點은 同文句中에 初)없에는 “qoriyangqui, neredür"로 되 어 있는

    곳을 再版에 서 는 “qoriyangrui, neredü" 로 訂正했 다는 點이 다 151

    이 初版과 再-싸이 모두 “Temgetü"에 依해서 出版되었다는 事實은 그

    再版本언 “borda Cinggis qaran -u Cidig"의 卷首 三面에 결치 는 序文

    ( orosil) 의 記錄에 서 알 수 있는데 , 朋 그 末尾의 記錄에

    “dumtatu arad ulus-un ularcin ta"olai jil-un rurban saratu qaracin-u temgetü

    neyislel qaton-a bicibei" (中華民國T때年르月에 n客뺏m" 의 Temgetü가 京都에서

    썼다)

    의 記錄이 었는데셔 알 수 있고, 그 Temgetü(漢名 注容昌)는 原來 n좀

    ~llìíG、期λ、이 었던것 같다.

    參考삼아 여기에 그의 卷首}협文 (orosil)을 紹介한다.

    “이 地球의 巨大한 四大洲에 國家民族이 數多하게 있다. (그中에 ) 東方 大海

    의 中原을 支짧한 아지 아民族처 램 f후大한 民振은 ffÌi少하다.

    f띤來해 오는 請뿔i'f플.T_ 척 지 않을 뿐만이 아니 라, 그中에 서 도 豪古族의 大元

    14) 再版에 서 부터 “ borda" (뿔) 字가 Cinggis qaran 위 에 冠하게 되 었 는데 , 이 는 “ Temgetü , 의 所行인 것 으로 보인 다.

    15) 이 행遇에 는 꺼論, 파版의 訂正이 옳다.

  • C 82) 束J쿄갖;化 18점

    國의 t입꿨순짙뺨한 청 71 스 많 더두진 i下 찬은 분은 한번도 없었다.

    南쪽으로는 鋼셈 (Burmu)과 짜龍(7)윤 服屆시키고, 束쪽으로는 太平깐으로

    進出해서 E 本을 WZIJ'I하고, ~r方;랐을 尊取하고, 西方으로는 유롭 (iurob) 파 이

    푸녁까 (afurir-a; 의 =*훤族을 降服시킨 것은 누구를 여기에 건줍 수 있컸는

    가. 헐寶로 古今에 물도 없는 大國을~ 興핍시 킨 바를 지 금에 이 르도록 束西닮E회

    의 大人찌賢 오두가 驚l맺했었다.

    그얘 그時 í~의 事業을 數多하게 쓰여진 記錄이 았고 또 國뽀에 分8Jj하게 있

    디고 하더 략도, 大部分이 斷切되어 忘꾀되어가고 있으며, 또 모우가 없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完全하케 求得해서 알고자 하고 짧集하는 것을 希뿔하고 었었다.

    多幸히도 Ef3子年 (1924年) 겨웅(25) 어l 이 밍휩플 求得허저 읽어본즉, 全的으

    로 헬古人 g 體가 記憶한 緊훨한 行없t이고, 現연E의 漢害籍에는 팬失환 것이기

    때문에 正式으로 印떼해서 어갇1 분에까 {專播게 한 것。?다.

    그런비, 그 內容이 쏘ft'J으로 經렘의 言語일 뿐만이 아니라 佛敎를 騙擇한 것

    이 ←→떠해서 經밥처럼 되어서 다만 띨흔!이1 週當하지 않기 해문에 解得파는네

    월리 |페혜{바다.

    펴간 이늘을 슴致시켜서 듭껴 U지한다면, 시람들이 읽고 理解하기에 容易하게 되

    리 라하고 생 각하프, 愚£정 temgetü 내 기 原쳤에 "11 워 서 닫고 있 었 던 나의 때딱

    에 있、을 때에 內容어l 있는 깊고 細짧한 짧致플 깨닫고 알고 있었기에 甚펴 근

    섬했‘었다中때 .. ,>

    뿔高한 ~i午의 잔l能고] 功f현융 後tl:t에 힘감케 하고, 이 와 같은 豪낱1‘人들에 게

    그 淑流플 解得케 하는 짧〔커윤)이 되게 하고, I단템 忘돼]없이 學問고1 敎化블

    隨從래서 遊딴하는 規範파 準則이 되게 해주고 最大의 뿔歸외 - 彈램으로 向 七

    시켜서 德化를 폐次로 않大하거l 하는 웹압을 시l 우는 것을 깊히 y:참-하면서 감;

    늠「으로 썼다.

    며華릿園T:lf[J年 (192l) 三셔 에 빼!띠양ì{,꾀 Temgetü가 京都에처 썼다”

    以上이 Temgetü의 I훤文의 大剛이 다. 따라서 우리 는 “Cinggis qaran-u

    Cadir"의 MH!'i과 함l :tz이 Temgetü 自身꾀 짧握과 努力에 依한 것이 라는

    것을 알 수 있치만 그 찌)따과 再j없사이에는 “ borda" (聖)가 冠하게 된

    것으로 보아, 再f없에는 적치 않는 加筆이 있는 것을 推뼈、.iJ할 수 있다.

    어떻든 이것 또한 쫓터史의 重要한 資料가 되는 것은 두말한 餘地가

    없다.

    4) dai yuwan gurun-i Suldri (大元國史) 숲十따l卷의 巨뺨。1 마.

  • 「찮古史賢料」와 「뚫古源流」에 對해 서 C 8 3 J

    아 는 淸太宗。1 I古史플 鍵」하고자 하여 , 1專規院大學土 hife와 同f훌郞

    jamba, Cabuhai , Wang Wen Kui等에 命해서 「평, 金, 大π」의 三國史

    를 編暴하라고 한데서 始1'P된 것이다.퍼

    왜 이 編驚~人들은 主로 滿써IÁ들이 그 主훨한 構成員이고, 間或은 漢

    人도 껴口떠했었던 것으로 보이며, 滿文으로만 記錄되어 았다.

    I땅y.ß;文에 依하먼, I三國의 史書플 觸譯해 셔 쓰다」고 한 곳아 있으

    니 分明하l 觸譯한 것이 플림없고, 또한 「待郞 Wang Wen Kui 等이 解

    譯해서 講하다」와 「倚郞 Cabuhai等이 滿싸H語로 解釋해서 썼마」릉의 句

    節이 보염으로, 또한 分明헤 漢文史書의 離譯인 갚으나, 두슨 m을 參

    考로 하고 또 무슨':fJIJ을 碼댐했다는 記錄。1 없으니 i월 껏;本 l렀本名윤 얄

    킬이 없다.

    그러 냐 大體的으로 二十四냈中의 「끊史, 金史, 元史」블 參考 乃至 基

    짧로 해 서 짧빽닙웰한 것 이 블림 없는 것 갚고, 또한 上記 二十四史中의 「違

    史, 金史, 元史」 等과 年代끓錄에 若子의 差異7~ 있고, 上記 漢文本等

    에 記錄되 지 않는 記錄도 있으므로 其까의 參考本도 許多히 있을 것으

    로 推測이 되나 記錄이 없어 알 격은 없다.

    그리고 本滿文 元史等의 史實에 對한 그 取뺨選擇。1 二十四史中의 ;암

    史書等과 相當한 差異블 보여서 얼른 보아서 그 取擇한 史實의 句節을

    찾아 보기 困難한 程度이 r녁, 二十四史의 諸史가 紀年體얀 正史體인데

    比해 서 , 多分히 遺事體외 體載블 取擇한 듯해 서 , 滿洲人들의 歷옛]블 즘라

    錄하는 趣向올 多分히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냐 全體的으로는 二十띠벚의 漢文史書의 記錄方式을 그대로 倚聲

    했다는 印象이 甚히 §뭘하다.

    다음은 그 記錄의 例로써 그 第一卷 第一面의 記錄의 一部分을 例로

    보인다.

    16) r淸人」들이 엄 己페 들의 先祖와 關聯이 있 다고 믿 어 치 는 三國, .êP r選, 金,大5êJ의 三國을 選擇한 것이다.

  • C 8 4) 束파~3Z: 1l: 18경

    Odai yuwan gurun i da gebu monggo; monggo gurun i unggu mafa 大 元 탱 의 BR zi은 쫓古요, 늦설古 國 의 j쉰 '111는 bodancar; hala ci u wen; bodancar i eme i gebu alün g:lWa; bodancar이 다 姓은 Cl U wen 이 고, bodancar의 母 名은 alün güwa이 머

    alün g디wa, dobon mergen be gaifi banjihangge Juwe haha jUl: al디n g디wa는 dobon mergen을 밍댐으로 얻역서 出띤한것은 두 아들이 었디

    amba Jui gebu bugu hatagi; jacin jui gebu buhüci salci 큰약플의 이 룹은 bugu ha tagi 01 고 품찌] 이-들의 이 름은 buhüci salci이 L예

    dobon mergen akü oho manggi; alün g디wa anggasi on . emu dobori dobon mergen이 줌은 後에 olün güwa는 흥j펌할때 에 하푸저 녁 에 는

    tolgin de sanggiyan elden monggo boo de dosin; aisin boconggo enduri 꿈 에 편 릿이 댄긴 t묘에 들고, 金 色의 패Jòl

    uba !igafi deduhe: besergcn baru jiderede alün güwa 엎드러져서 누어있었다 퓨늦 i바을 1m해서 오기매푼에 alün guwa는

    getefì; tereci beye de ofì bodancar be bajiha: 익으면사 장플쨌다 cl 애푸디 갱JJf1하고 bodancar블 出生했다

    gelehei 션、을

    以上이 滿文本 “ dai yuwan gurun i Suduri" (大元國史) 에 서 始祖 bod-

    ancar의 出生의 記錄이 다. 이 렁 거1 해 사 그 第「→卷」은 그 五葉까지 둡 太

    祖 temujin의 ili生까지의 띈셈괄 적고 七十三葉에서 太祖 六 r~/\歲時,

    대子年(1228年) 그의 꾀去표-사 끌났다(花位‘ 二 「二年) .

    第二卷 o 太宗(ügedei ; 짧調좋〉紀 (-棄애 에 서 EE 「=葉까지 )

    ζ묘年八月 R~位 (1229年) rFIf年 (1 211年) 56歲f뽑꿨 ~23年間 tE位)1

    o 定宗(gui iu ; 띔由)紀 (르十四葉에 서 三十五葉까지 )

    因午年(1246年) V,il{호, 찌태年三月웠0248年)

    。 愚宗 (meng gú ; 쫓哥) 紀

    (三十六葉에 사 五十三葉까지 )

    辛1J

  • 「菜브15민資料」와 「쫓古源流」에 對해 서 C 8 5

    第四卷 至7E←~i年(王f:Z:tp ; 1266年)부터

    至元十→年〈「RE£年 ; 1274年)까지

    (第-葉에 서 卷未 ←一十五葉)까지

    第五卷 至쿄十二年(ζ玄年 ; 1275年)에서

    족;rc十五年([ki댄年 ; 1278年)까지

    (第一葉애 사 卷未 띠十1L葉) 까지

    第六卷 至:n;十六fFC已며年 ; 1279年)에서

    至찌二十一年:(~얻깎年 ; 1294年)까지

    (第一葉에 서 卷末 五十三葉)까지

    第七卷 O nX:宗 (temür 誠木파) 紀

    (第一葉애서 卷未第 :안一九葉까치)

    7U최:ι年(ζ未껴". ; 1295年)에서

    大德 i‘一年〔T末/年 ; 1307年)까지

    第八卷 () 武宗(haisan 海 rlJ)

    (第←一葉에서 융末 第十七葉까치)

    至大7E年(CU~年 ; 1308年)에서

    至大l꾀年(手갖年 ; 1311年)까지

    第九卷 o 仁宗紀 (ai iur balibada ; 愛育쫓技力故達) 皇慶元年〔드E子年 1312年) 에 서

    延!佑七年(康申年 ; 1320年)까지

    (第--葉에 서 卷末 第--十--葉까지 )

    第十卷 o 英宗 (Si da ba la ; 隨德八刺)紀至治〕디年(辛西年 ; 1321年)에서

    至治三年(쫓갖年 ; 1323年)까지

    (第-葉에서 第二十츠葉까지)

    。 泰定帝 (yei son temür; 也孫鐵木兒)紀

    캄i定rj디年 (1\1 子:q::. ; 1324年)에 셔

  • ( 86) 핑亞文化 18죄

    致和元年Cl:t辰年 ; 1328年)까지

    (第二十三葉에 서 第띠十葉까지 )

    or꺼宗 (ho si ji ; 和반찌)紀

    致和元年Wt辰年 ; 1328年)에서

    天歷二年(己티年 ; 1329年)까지

    (在位半年 ; 亨年三十歲)

    (第四十--葉에 서 第六十葉까지 )

    第十一卷 O 文宗 (tu temür ; 圖11I꺼陸爾)紀

    至I1팩7t年(1따午年 ; 1330年)에서

    至順三年( F!'I士年1332年 8月)까지

    (第一葉에 서 第二十七葉까지 )

    (在位五年 ; 판年二十九歲)

    o ing dzung .(i lin ]i ban 魔鍵質班)紀至順三年(태王年十月 ; 1932年)에서

    " (태王年十一月)까지

    (第二十八葉에 서 第三 i→프葉까지 )

    (tE位二個月 ; 亨年七歲)

    第十二卷 01맨帝 (to hliwan temür ; 찾댐맨陸爾)

    7C統元年(9a닥年 ; 1333年) 에 서

    第十三卷

    至正十年()벚’퍼年 ; 1350年)

    至lE-r一年(꽃PD年 : 1351年) 에 서

    至正 「七年(丁탬年 1357年)까지

    第十四卷止

    至正十八年(Jt찌年 ; 1358年) 에 서

    至lE二十八年O:x:甲年 ; 13G8年까지)

    (第一葉에 서 第四十八葉까지 )

  • 「몇古EEl쯤料 1와 「종;견源않 j에 對해 서 ( 8 7J

    至正二十八年八月 順좀는 明맞에 쫓껴 서 ~l:方 yeng cang fu로 逃走해

    가고 「元」윤 亡했다)긴j、;祖에서 Ji렀帝至正二十八年至까지 一펀六 「三年

    間 漢北地方을 :&ï[l:하고 明에 敗하냐, 그해 l:X: I~ 年(1368年) 八月부터 l껴

    太祖 洪武元年이다.

    5) 義古源;뾰

    이는 現花 三種類로 傳해오고 있는데, 豪文本 ; 이는 그 原文이라고

    믿 어 지 고 原r햄者는 Secen Sanag qung tayiJi (漢譯 ; 徵辰 鐘靈 싹台吉〔太

    子〕로 되 어 있 다. 61 原名은 “qad-un ündüsün-ü erdeni yin tobèi" (豪古

    諸tr의 파流1 이고, 그 卷末에 『했國의 꿨民에개 推尊된 rr‘17) 에서부터

    以來, 現今의 鏡"f'ß품 f-t에 이 르기 까지 꿨生을 寫해 서 聖武諸깐이 出生하

    여 꿋下를 zp:定하고 有福한 홉握들이 出現해 서 樂生을 引혈하고, ↑뺏행〔

    列믿끝들의 出生으로 盡生을 退樂시 킨 모든 것을 다 能히 말할 수는 없지

    만, 대 강 맺f쇄해 셔 옳쥔j하신 “ qutur tai seèen tayi]i" (漢뽑 ; 庫圖克台 微

    辰台吉)의 싼1rf系 J;b學 “Sanang seèen qung tayifi" (鐘靈微辰 洪台吉)라

    이픔하는 내가 ...... 中略 이들 七史를 經合校訂‘하고, 야와 같이 編

    暴한 것을 =E:펀年五 「九歲R폼에 完了했다.J].

    (enedkeg 너n “ olan-a erg다gtègsen qaran"17) aca inarsi da edüged-ün teme'

    ceküi car-tur kürtel-e amitan• u tula borda kücüten qad tδr야ü delegei gi

    tαbsidgen: buyan tan bodhisatuwa nar tδrδJÜ amitan-u odoriturad: burqan • u

    sasin bordas-un tδrö ber qudala gi Jirrarorsan bürin -e ügülen ese cidabasu;

    edüi tedüi tobcilan ülemji tegetü qutur tai seè':en tayiJi yin a,ol aci ücügen oyotu sanang secen qung tay iJi kemegtekü neretü bi: ...... 中略 edegerdoloran sudur-i neyilegül-ün, ene metü orroma1 törδgsen -i sim bars Jil-a tabin yisuu nasun dur iyan tegüsbei;)

    上記 딘|用文에 있어서의 r王寅年」은 康맥元年, 때‘紀 1662年얘 該웹하

    17) “ Olan• a ergügategsen qaran" (í꿨民에 제 推尊된 F입주」융 췄i딘史가 記錄한 그 fHu의 玉인 同랴홀에 最後의 3'i (1924年따)의 쉴:1파이 기 도 하다.

  • C 8 8 J 束亞갓it 18죄

    고, 이 는 “Sanang secen악 五十九歲H품이 다.

    j밍햄者 Sanang secen에 對해 서 는 많은 것 이 알려 져 있지 않으나, 폐

    짧힌 「균IWl찌밥」의 系統을 j띤흉훌한 “Altan tobCi nova" 나, 또는 從來에

    通用되었던 1630年댁의 H!î本의 “Al tan to bCi" , 또는 이의 系統을 이어받

    은 ‘'Cinggi qapn-u cadig" 괴 는 全然 다른 새 로운 豪古史 (JlP 豪古에 있 어서의 佛敎f專챔퍼튼 치야한 렷피벚)블 보여주고 있는 “Mongro1-un qad •

    un ündüsün-ü i]aror sudur" (쫓古파流)블 참述힘 으로싸 그는 豪古~史팡F究

    에 새로운 而을 행께디히} 주는 功勞플 새운 셈야 되었다.

    그러니 무엇포다도 꿇몇한 것은 그 卷末의 末葉에서 그가 이 船者플

    월,해서 쫓考껴、다는 ]김‘떳의 터錄이 다. 따,

    1) qad • un '.indüsün-ü erdeni-yin tobciy-a; (핸譯 ; 뽑퓨의 U띈流要網)

    2) tegüncilen Lt)εgseger odr-a tu ciqola kemekü sudur: (漢譯 i 文章請멜)

    3) teyin kü rayiqamsir-a üJ cgteküi ceècg• ün cumor1ir sastir neretü: (漢詳 ; 珍

    f얀핏~'~ 7E찮史)

    4) tegsi te cinar sildaran orto)'san uqarolorci ularan debter: (漢譯 ; 精妙意급

    紅冊)

    5) sarba quturtu yin Jokiyarsan ertemten• ü sedkìH keyigülküi secelglig ke-

    mekü kitacl saster: (펴譯 ; 沙爾맘 퍼Ij士克圖의 網싫한 賢哲心意之 逢花 漢벗)

    6) erkim tegetü takrawar-un qaran-u bayirolorsart caran teküke: (행譯 : 짜喝

    拉판~~第n쉰千으g *댐짜한 經卷im쫓)

    7) erten-ü mongro1-un qad-un ündüsün-ü yeke sar-a toroci;(漢짧 홉 훨古뽑

    n의 源流;tr한U}」,

    以上의 七冊응 合띄l‘하고 參考해셔 編쫓뚫댔다:2 記錄하고 있다 19)

    그려 니 , 또한 이 卷頭部分에 는 이 外이1 도 쫓考한 홉籍四種。1 記錄뇌

    어 있는데,

    1) enduringge sagiya bandida bancen sakya siri erin i kurdun i songkoi ban.

    18) 이와 갇은 佛敎l핀來의 「創 i끌紀」의 記球은 으직 木듬탐에서만 發見흰다. 19) 132던上 이 짧遇는 滿文木을 쭈Ij며했는마], 그 卷→ ; 十九葉, 7行에서 同

    十꽃, 7行까치 의 사이 .

  • 「젤 1니 핏~131J와 「링남j 源流」에 'tíi래 서 C 8 9 )

    jibume araha “ sajin i ton i suduri: (鴻擇 ; 聖 펴훌;폐 EIf~먼 jft 따!]ξ 沙、J「ιJL i% R멍가 “R풍輪”어、 i!서따해 서 %編힘꼈짧:한 ‘“‘法맺數)(5史틴”

    2밍) endt며ur바mgg양e glπlflμ‘d이li du바n、wa펴dza ft야ucih바t,’ lC미ihi akli so.따rg맹ιa따an jusc de terαmg양etul버eme

    tuwabuha “ yarh디 dara su.duri" be dahame banjibume araha “ fe suduri"; ~셋

    (詩 , 튿끝 칸l 맨i!섭 多n딘까에1 無J,김女子이1 거11 If1表라석 보이 711 한 “덩|젠史”플 씬

    據해서 編!뚱한 “힘史”

    3) mergen gebu garha aksa bada i banjibume araha “ fcrguwecuke tuwabun i

    ilhai suku sere suduri": (팩譯 賢人 |여克沙맙違의 編짜한 “沙奇핏뤘인 7효;3';

    æ")

    4) amba mergen sengge sin bado. i banjibume araha “ fulgiyan debtεlin"~ (파

    譯 ; 大賢 f챔# 錫핑! 딘達의 쩌품쫓한 “紅冊")

    以上 四種의 팝籍r:l~ 卷未에 記錄판 前者의 3) 과 卷頭에 記錄단 後者

    이 3) 이 同--冊이 고, 또한 前者의 4) 와 後者의 4) 가 同--冊암 윤 一見해

    서 알 수 있다.

    以上의 모든 판新。1 초로 佛敎發達史 乃至 佛敎傳播史에 關힌→ 書籍들

    이 고 보면 , 이 들 띈籍을 主로 參考해 저 著述한 本 “ gad-un ündüsün-ü

    erdeni-yintobèi" (豪숨 諸문의 源流豪古源流)는 佛敎發達史 乃至 佛

    敎f램播넷를 寫t‘보 하는 「쫓古史」임이 틀림없으며, 全卷을 通해서 「史

    합’」보마는 佛敎的언 「奇廣」 乃至 그 發達셋릎 寫主로 하고

    꼴 수 있다.

    尤5는 그 特色의 벚個플 들이 보먼,

    。L'→τ 7 -l ~그λλ -,::-시 E

    •) 佛敎에 서 影響을 받은 까iJllt紀기- 캄펴야} 듭다jkJ껴 이 있、 lC 1- •

    î) 根源ill:iW에 存;표者룹 동-블어 論하7] 체 811 서 一다J힘{]< (ei ten i nik-

    ebun) , 外짧!1!- (tulergi tetungge jalan) 플 定하고,

    L) “띠의 因錄:(eiten i nikenjere karulan~ 內어l 生짧 (ergengge) 을 얻

    게 댔마.

    ζ) 外象에 三1펼(ilan mandal)을 定핫、는데, 따「風딸J (etun i mandal) ,

    「水멜J (muke i mandal) , I士增J (boigon i mandal) 이 다.

    。l 風f덤, kjf3 , 士l훨야 基健가 51 여 四져‘으토 IJ꽁帳해 서 되 tE (toosen-

  • ~ 9 0 ) j4[f11rjLfh l6집

    gge) 하는 字피릎 이 푼 있 는각11 , I니川씨LJ매jJ=띠=

    5金앓山山l’ 七大}fj , 띠太값써f와 U디서、{Hs ì/j쌓이 휩해 겼다.

    L) 應추jj고Th~줘:-:karulan muteburengge) 의 k슴f'F은, 한 I!湖패jlJ (samadi

    i emu enduri) 이 下캄하여 變:'~J511 시 子係을 컵후植하고L “E,界" (dursun

    jaian) 의 「七굿, “젠띤:W" (dursun aku jalan) 의 U디天, “欲찜" (buyan

    jalan) 의 二 l→끗 生成퍼피, 또 “j필노" “未來" “現在”界의 六種의 生파

    이 次例로 發生뤘는다1, 이플은 치5壽7~ 無限하고, 虛EE윤 날이 다니매,

    輝浩敎食을 먹고, 평1;(의 區別이 없았으t거, 해 (日)와 달〔月)이 없았기

    r꺼둔에 스스로 빚윷 내셔. 샤르블 알아 관대.

    c) 그rcft의 현 生認이 띤위에서 살기 始(깜하고, f별짧이 이-난, 地上에

    서 딩 生하는 줬食윌 먹 었 71 때 문이11 I欲念」이 생 키 고 I때}펀罪業~ (men-

    tuhun Sui) 융 뒀始한 다섯기치 융f業이 次f쩨로 지직하게 되었다.

    E ] 이 中에 한 I때明하고 낯짧있는 生靈아 니→와서 다른 生靈틀을 갈

    다스다끼 때문에 모든 무리가 뜸;主로 jft헤랬는태. 01 칩主블챈語(ined-

    keg i gisun) 보는 “makha samadi raJa201 ‘’ . 때‘페핏릅흠f (tibet gisun) 로는 “man-

    gbui gurwai giyallbo" , 풍 古訊로는 “Olan--a ergiigtegsen qaran" (웠民에 게

    推궤띈 뿔帝) , 滿싸H訊로는 “gereni tukiyehe han 21 : (평711댐와 소意) 라고

    듭닌뒀하고 았 다( 61 댐3分의 5닌ift-은,싼 줬넌T9’3껄rr의 그 샘펴평意圖에 c대

    라서 記錄이 있는 줬料와 。1 部상을 셉UI徐한 資料록 區떼렌다. )1

    .R[J 이 部分윤 記댔하고 있는 줬科로는 本 “qad-un ijmbsLin--니 erdeni

    yin tobCi" C렇퍼迎流) 外에 1630:!f.刊의 핍돼 “Altan tobèi" 와 이 띄 系統윤

    이 은 “Einggls qaran U fadir”괴 그 뭔!반2[얀인 채orda èinggis qaran-u

    Cedig" 이 고, 또 “Altan tobci nova ’ 는 댄↓J、 캡띈의 “ma좌a samadi rala‘’

    라고만 記셨히 r근 0' 의 펀퍼-f; 인 “olan • a ergügtegsen qarun" 은 記錄이

    20) 펴文木은 “ maha san;adi randza‘’보, 피것太은 “댐11감 障댐뼈 §휩미自”로 즙G찮 하고 있코, 댐웬프 jf5흠(「j])펴밟)보는 「大n낀王]이 라고 따擇된다.

    :2 1) 이 꽤}115끔名 4마올 꽤rZ7k~기 펙갖;갱~ c.11 만 등:.Ç}f파 이 았고, 다른 豪文밍콤즘에 는 j쉰째 01 없다,

  • 「짧古史資科」와 「쫓古源流」이1 對해시 C 9 1 J

    없다.

    또 이 部分을 빼댔한 資料르는 「元평n秘史」얀데, 여기에는 때熾地方에

    서 慶古地方으로의 最찌의 移R者인 börte èino와 그의 꿇인 row-a

    màral에 서 부터 始作한다. 이 는 그 댄本인 回뚫文本이 여 기 삭 부터 始作

    된 것인가, 또는 漢文숍義譯者가 그 以上은 任意로 배除했는가는 不明

    이 나, 그려 나 大擺는 체j者의 便이 옳을 것이 다.

    그려고 漢文빚극料 系統인 “dai yuwan gurun i suduri" (大元國史)는

    börte cino보다 렐씬 後代얀 成吉思댄의 十一代祖인 Bodancar에서분터

    始作하고 있다) .

    u) 이 예an -a ergügtegsen qaran" (꿨民에거l 推했환 皇帝)는 豪古最찌

    의 皇帝로 記錄되 고 있는 同時에 또한 人類最初의 皇帝。1 키 도 한다.

    이 皇帝가 다스렸던 地方「이 地球上의 어 느 곳인가는 듭갑錄、은 없으나,

    쯤語로 尊稱되 었 고, 또 後代에 와서 釋迎땐尼佛22} (5igermlni fuc1hi) 도

    。l 익 子孫이었떤 것으로 꾀어 있으니 지금의 r:P度 (enedkeg)地方이었먼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님 ) 그後 無數한 世代를 거 치 고, 雅爾隆AC tubet i yirlung harangga:

    「土伯特의 原名은 rubadi[O첨巴造J) 에 이르러서 西藏地方 (tubet 또는

    nimanggi alin C雪山J) 에 로 移住하고, 또 그 當時에 亦是 batsala國의

    udiyana덴의 아들이 雪山으로 逃走해 와서 四方의 오든 部族을 克勝하고

    八十八萬 tubet (士伯特)國의 myac’y dzambo han (尼雅* 첼낸암)이 펴

    있다.

    이 는 “Olan • a ergügtegsen q,qan" 以來 ]千八며二十-年이 지 낸날의 일이었다.

    人) tubet地方의 myac ’ y dzambo han (尼雅亦 됐탬균)의 七 f止孫때 에

    22) 이 「豪古源流」는 釋迎후尾의 不갖E說을 主張히고 있는더1 떼 「빡常을 꿨生어l 게 詢示하71 탱해서 거짓 形體로 하여금 펌짧道결→ 보。1 게 한 것 뿐이고,

    寶은 現在에도 生存해서 宇寅릎 管廳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었는데, 야는

    倒縣佛敎의 主張인가?

  • [ 9 2 J :lR펴i:~Ut 18침

    한 ê下에 거11 rff立블 댔깎?j펴하고, 5B다三人。1 ‘품어 져 逃Æ하고, 그 끌의

    막내 아우인 börte cino(布l짧特n평뭔〕는 gunbo地方으후 避身했냐기 그 地

    方에 서 rowa maral(郭幹펠찌훼}) 이 라는 女子와 結婚하고 tenggis江을 건

    너서 bita地方에 이흐려서, 그 地力λ}람들의 휩領。1 되 었다.

    이 것 이 豪古‘人들이 豪퍼人아 된 始찌로 되 어 있고 I元폐秘、댔」도 야

    기서 부터 始作한 것도 理따기 았、는 것이 마.

    6) 쫓古人들이 그들의 先祖블 %地(enedkeg) 에서부터 始fF해서 西禮

    을 거쳐서 豪;먼로 들아 온 것처렴 記錄하고 있는 것은 佛敎의 傳來經路

    를 그대 로 옮긴 것으로 보이 며 , 歷史的으로는 根據는 縣행하다고 합 수

    있다.

    二) 聚古人틀야 記錄힌 헬남1벚賢料는 !股密힌- 意妹에사 「歷뤘」가 야니

    고, 一種의 「傳說」의 記錄이라고 판 수 있는데, 우리릎 램了하는 것은,

    야 傳說의 記錄 속에 담겨져 있는 無數히 번쩍。l 는 「收敎的」인 詩情이다

    rtatar姓의 ike ciletii라는 사란이 oJronod 빼方에서 그의 奏얀 iigelen (烏格램)

    을 더l 리고 와 있는 것을 본 tem펴in 〈特않빨 cinggis q arran의 Ý;!J γí)의 아버지

    ike cilesü batur는, 이 女子는 반드서 좋은 아틀을 낳음 것 아 라고 믿 고, 튿을

    마서 養取허서 꿇를 상고, 後허l 캡올 향해서 판이 올 째에 iigelen이 울음윤

    끝이자 않고 걸어오거 때문에 이것을 보고, ike isükei약 두 이우 中의 한 사람

    인 dardai i.i jigin이 말하뇌 ;

    “세(三)江을 건너고, 세 IJI을 년었다. 두1 쫓는다 하더라도 흔적없고, 바라본

    다” 하더라드 모수얹고, 풍녁 본다 파더파도 뭇듭는다”고 말하나 그애부더

    ügelen은 겨 우 소려 없이 /캅있다 .J

    tJJ::의 dardai ii Jigin익 칼딱한 받은 {??1펀감1-니 π1 픔마]이 고 鎭律的이 라

    고 느껴지는 것은 땅者뿐일까?

    (ilan bira duleke , ilan alin dabaha , faid"ha seme songko akü, karaha semé

    baran akü , hülaha seme donjirakü;) (쐐 깅〔本‘ 〔프 ; 6~8?)1

    다 음은 Cinggis qaran이 六十六歲매 丁갖年의 七月 十二 日 에 türmegei

  • 「쫓古史資料」와 「豪古펴流」에 對해 서 C 9 3 J

    ba1rasun(圖爾默格依城)에서 遊去하고, 그 譯事行列이 떠나갈때에 뒤따

    르던 Sunid의 gilugen batur (吉홈根 E圖爾) 라는 ê下가 生前의 Cinggis

    quran의 햄?業을 기 리 면 셔 옳은 노래 (?) 이 다.

    『소리개 • 애 처램 昇天하소서 나의 主上이역 ! 131 들꺼려는 수례의 나무가 되어서 휩天하~서, 나의 主上이여 !

    딴다조과 아들을 헐正으록 버리시나이까 나의 王上이여 ! 텅 신의 從{美과 면E응을플 헐正으로 떠 나시 나이 까, 나의 主上이 여 ! 노래하는 매처램 견어서 떠나시나이까 나의 主上이여 !

    증겹게 탈리는 망아지처럼 바람에 난려서 떠나시나이까, 나의 ct上이여 !

    예순여섯 나이에 아흉빚낄- 백성을에게 즐거움을 보이기 위해서 行次하시내

    이까 나의 主上이여 ! (garcarai sibarun metü galin odbao ci eJen minu; qanggirasqu tergen-ü

    moo bol-un odbao ci ejen minu: qaton köbegün iyen üneger gegebeCJ ci eJc t1

    minu qaralmaì albatu ulus iyen üneger tabèibao ci eJen minu; Jirgekü naèin

    metii yabaran odbao ci ejen minu: jarkiraqu onoran metü keyisün odbao èi

    ejen minu; Jiran jirroron nasun deger-e ben yisun üngke uìus taran

    jicrralang-i üjegülün ügede bolbao ci eJen minu; C쫓大原文 p.10G 2行""'G行J)

    그런데 積헤쳐의 íl&t뤘地에 이르러셔는 車1폐。1 진흙 속에 빠지서 유직이

    지 땐랬다. 國民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데, 다시 Sunid의 gilugen batur가

    옳어서 가로피,

    『참久한 天神에게서 天命으로 出生하신 사람中의 ðl1m子이신 니의 깨뭔 主上。1

    여!

    쟁B薰 大國 全部른 다 버리시고, 떠나셨나이다. 탕신의 大統음 까해 힘께 극E

    f한했던 때èlZ므된 당산의 n삼면꾀, 大~p.하게 {빨立하신 당신의 大院, 平빡파매 꼈II

    하신 팅→신의 i攻事, 萬벤이나 ff간시킨 당신의 몸民플이 자카에 있나에다.

    愛戀하며 따맨B된 탕신의 l안따‘ 탕신의 金宮大關, 正義에 서 뿌리 내 반 탕신의

    大떠, 制號하며 거두신 당신의 國E린이 저기에 있나이다‘

    살아계셨딘 딩신의 땅, 國土-, ~'木펴히셨먼 탕신의 불(水) , 녕신의 젤古農民 여

    러 칩’펌의 당신의 官員플, OnonìI.의 dc1ígün(德里윷), bultar(개삐깐}'l), 텅신

    의 敎앵B遊救한 땅이 저기에 있나이다.

    大옳色 種馬의 꼬리로 만은 당신의 神{îz:, 당신의 북과 致, 때Ù Dr1, 피려, 지

  • (9 ,1 J 東검E文化 18침

    (tE) 等, 모든 것을 넣어둔 덩신의 金宮歐댐, kerülen(克얘{ÍiIÌ )의 둡5관, arulad

    꾀方의 則位하신 땅이 저 커 에 있나이 다. (豪>~I쥔文 p.1069行부터 16行까지 ; 1펑

    y:.쉽 rìl0

    짧J다하기 以헤어1 만나게 펀 당신의 börte jü,in secen (布隨德福품(夫人) 폐「듬〕 11삽따과 burratti qan (끼뼈喝웹균)地方의 有福한 당신의 大國 遊軟處와 딩신의

    極없한 部下 b07orjí(펙、합짧濟), moholai(摩私젠〕 두 사랍고j. 完포하케 짧立λ1

    킨 당신의 政統。l 저개에 있나。l 다.

    ft겼해서 만난 단신의 솟人 P乎蘭n合q[과 iiJ;채, j/1건뜯필i의 조←산의 樂器와 팅-신

    의 아픔다푼 Jisü(濟짜), jisükei(濟蘇짧1)의 두 팎rt파 묘은 것을 가추고 았는

    단신의 金힘품햄屋。1 저 기 。Iì 있 니→이 다.

    qarruna(哈爾 1휠I納) {대뽀←룹 따뜻하게 하시고, 거두서 二린 tangjud(단낀셈)달

    댔多하게 하시고 I1깐다1 kúrbelJ ín(古爾伯勳淳)을 이른딩←커| 하시고1 앗날의 방산

    의 침리國팅을 떠JI으르 1셔려시나이까? 나의 主上이터 !

    당신의 그 뜨거운 퍼쇼의 生命에 "1 콕 그 뜨까윤이 덩、거〕 되더 라드 寶玉파 닫

    은 당신의 뿔像을 겨:::1강。” 이르라서 당신의 ;1슴 T(I börte갓人녁1 개 보에 주소서

    바라건네 당신의 므든 먼맘틀을 띔常 滿/Eι 키도콕 하소서 !dJ 〔똥강;E5강: p.lOG, 2行~p.108, 7行까지 ; 댄r칩 ’、

    하고 움으으 냐니, 수러l 버퀴가 비섣거리마 융직이고짧下 쨌民들은 좋

    아하고 젠은 永R댐한 밍에 。1 르게 되었다고 듭다산하고 있다.

    以上의 諸記錄은 맞[寶l취의 人物들이 젤I聚로 옳은 것 인기 ? 아니 떤 擺

    者의 침Jff'인가?? 아니띤 f렇說인가?

    어떻든 豪古人들이 記錄힌→ 豪낱[史, 또는 이.92.해歐았는 記錄늘어}는

    높은 文學뾰을 지니고 있는 웰力이 있다.

    몽고사자료'와 '몽고원류'에 대해서1.몽고사자료1)원조비사2)altan tobci nova3)Cinggis qaran-u cadir4)dai yuwan gurun-I Suduri5)몽고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