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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전지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Ⅰ. 머리말 병풍은 그림이나 글씨를 담은 여러 장황(粧) 방식 중 하나로 장식 기능 이외에도 실용적인 측면 에서 많이 사용되어 왔다. 01) 또한 병풍은 이동이 용이하여 공간을 구획하거나 특정 공간의 상징적 의 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현재 남아있는 대다수 병풍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의 것으로 시기마다 고유한 병풍 장황 양식이 존재한다. 병풍을 사용한 계층에 따라서도 장황 양식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궁중에서 사용 한 병풍, 신흥부유층인 중산층이 사용한 병풍, 민간에서 사용한 병풍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종 대에 는 자수 병풍 등 대형병풍이 유행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영향으로 인한 병풍 형태의 변형 이 나타난다. 1960년대에는 표구가 대중화되어 5대, 8대 작가의 작품 및 서예의 표구가 진행되었고, 1970~1980년대에는 조선에서 근대기까지에 제작된 글과 그림의 수리 및 재표구가 많이 행해졌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식 표구 기술을 습득한 기술자들에 의해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전통재료, 전통기술이 단절되는 현상이 야기되었다. 원래의 조선식 형태도 아니고 일본식 형태도 아닌 두 양식 이 혼합된 높은 병풍의 형태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1950년 이후 제작된 그림이나 글씨는 그 당시에 유행했던 새로운 형식으로 꾸며지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래의 형태가 존재했던 전근 대 시기의 병풍들은 문화재 보존의 기본 원칙에 의거하여 원형대로 재장황 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현대기로 넘어오면서 수리 및 재표구로 인해 본래의 장황 형태를 잃은 작례 를 분석함으로써 장황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자 한다. 다음으로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 禮義廉恥)’의 유교 이념을 문자도로 표현한 ‘효제문자도’ 병풍의 지역별 장황을 조사 및 연구하여 보 존처리 시 적용할 수 있는 장황 양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효제문자도’ 병풍을 보존처리하거나 복제본을 제작할 때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01) 장황:그림이나글씨를감상하거나보관할수있도록두루마리,족자,병풍,액자,첩,책등다양하게꾸며주는형식,형태, 기술을모두일컫는다.장황이란용어는의궤(儀軌),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등각종기록에서 ‘裝潢’,‘粧潢’,‘粧’의한자로사용되고있는데,이중가장많이쓰이고있는것이‘粧’이다.일제강점기이후‘표구(表具)’라는 일본용어로최근까지일반적으로사용되고있지만,현재학계에서는‘장황’이란용어를사용하고있다. 장황용어에관한내용은박지선,『조선시대어진(御眞)의장황(粧)과수보(修補)」,『꾸밈과갖춤의예술,장황(粧)』(국립고궁 박물관,2008),p.167. Ⅰ. 머리말 Ⅱ. 선행 연구 Ⅲ. 연구의 필요성 Ⅳ. 효제문자도 병풍의 지역별 장황 조사 1. 강원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2. 제주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3. 경상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4. 기타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Ⅴ. 맺음말

효제문자도 Ⅰ. 머리말 병풍의 장황...(도 16) , 액자, 종이에 수묵 채색, 84×172㎝, 국립민속박물관(민속62753). Ⅳ. 효제문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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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효제문자도 Ⅰ. 머리말 병풍의 장황...(도 16) , 액자, 종이에 수묵 채색, 84×172㎝, 국립민속박물관(민속62753). Ⅳ. 효제문자도

2928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전지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Ⅰ. 머리말

병풍은 그림이나 글씨를 담은 여러 장황(粧䌙) 방식 중 하나로 장식 기능 이외에도 실용적인 측면

에서 많이 사용되어 왔다.01) 또한 병풍은 이동이 용이하여 공간을 구획하거나 특정 공간의 상징적 의

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현재 남아있는 대다수 병풍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의 것으로 시기마다 고유한 병풍 장황

양식이 존재한다. 병풍을 사용한 계층에 따라서도 장황 양식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궁중에서 사용

한 병풍, 신흥부유층인 중산층이 사용한 병풍, 민간에서 사용한 병풍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종 대에

는 자수 병풍 등 대형병풍이 유행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영향으로 인한 병풍 형태의 변형

이 나타난다. 1960년대에는 표구가 대중화되어 5대, 8대 작가의 작품 및 서예의 표구가 진행되었고,

1970~1980년대에는 조선에서 근대기까지에 제작된 글과 그림의 수리 및 재표구가 많이 행해졌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식 표구 기술을 습득한 기술자들에 의해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전통재료,

전통기술이 단절되는 현상이 야기되었다. 원래의 조선식 형태도 아니고 일본식 형태도 아닌 두 양식

이 혼합된 높은 병풍의 형태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1950년 이후 제작된 그림이나 글씨는 그 당시에

유행했던 새로운 형식으로 꾸며지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래의 형태가 존재했던 전근

대 시기의 병풍들은 문화재 보존의 기본 원칙에 의거하여 원형대로 재장황 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현대기로 넘어오면서 수리 및 재표구로 인해 본래의 장황 형태를 잃은 작례

를 분석함으로써 장황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자 한다. 다음으로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

禮義廉恥)’의 유교 이념을 문자도로 표현한 ‘효제문자도’ 병풍의 지역별 장황을 조사 및 연구하여 보

존처리 시 적용할 수 있는 장황 양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효제문자도’ 병풍을 보존처리하거나

복제본을 제작할 때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01) ��장황:�그림이나�글씨를�감상하거나�보관할�수�있도록�두루마리,�족자,�병풍,�액자,�첩,�책�등�다양하게�꾸며주는�형식,�형태,�기술을�모두�일컫는다.�장황이란�용어는�의궤(儀軌),�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등�각종�기록에서�‘裝潢’,�‘粧潢’,�‘粧䌙’의�한자로�사용되고�있는데,�이�중�가장�많이�쓰이고�있는�것이�‘粧䌙’이다.�일제�강점기�이후�‘표구(表具)’라는�일본�용어로�최근까지�일반적으로�사용되고�있지만,�현재�학계에서는�‘장황’이란�용어를�사용하고�있다.��

��������장황�용어에�관한�내용은�박지선,�『조선시대�어진(御眞)의�장황(粧䌙)과�수보(修補)」,�『꾸밈과�갖춤의�예술,�장황(粧䌙)』�(국립고궁��������박물관,�2008),�p.�167.

Ⅰ. 머리말

Ⅱ. 선행 연구

Ⅲ. 연구의 필요성

Ⅳ. 효제문자도 병풍의 지역별 장황 조사

1. 강원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2. 제주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3. 경상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4. 기타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Ⅴ. 맺음말

Page 2: 효제문자도 Ⅰ. 머리말 병풍의 장황...(도 16) , 액자, 종이에 수묵 채색, 84×172㎝, 국립민속박물관(민속62753). Ⅳ. 효제문자도

3130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Ⅱ. 선행연구

병풍의 장황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는 2004년에 이진희가 발표한 『조선후기 서화 장황 연구- 병풍,

족자를 중심으로』가 있다. 여기서 이진희는 병풍 장황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2017년 김

수진은 『조선 후기 병풍 연구』라는 논문에서 병풍의 역사적, 이론적인 부분을 보다 중점적으로 논의

하였다. 2018년 장윤정은 『조선후기 왕실 가례용 병풍의 제작과 장황』을 통하여 가례용 병풍의 장황

에 대해 다루었다.02)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진희(2004)는 조선후기 서화 장황 연구란 주제로 병풍과 족자를 논의하면

서 병풍의 장식 방법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그림 주변에만 병풍띠를 둘러 장식하는 유

형과 그림 하단부에 하회장(下回粧)을 붙이고 병풍띠를 둘러주는 유형, 마지막으로 상·하단에 상·하

회장을 붙이고 병풍띠를 둘러주는 3가지 유형이다. 여러 점의 유물로 장황 형식과 구조, 사용된 재

료 등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었다. 김수진(2017)은 조선 후기 유독 병풍이 증가하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 배경과 전개 양상을 연구하였다. 고종 대에는 자수 병풍 등 병풍의 대형화, 고급화, 고가화가 이루

어졌으며, 외교용으로도 병풍을 사용했다고 논의한다. 19세기에는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병풍

이 확산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병풍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민간 병풍에서 주목할 부분

은 주제의 혼용과 도상의 결합, 이색기법의 활용과 양면병풍의 유행, 판화병풍 및 인쇄병풍의 확산

을 특징으로 들었다. 20세에 와서 나타난 특징으로 일본 병풍의 유입과 전통의 변형, 병풍의 독자적

상품 기능 강화, 전통적인 병풍 기능의 계승과 변용 등을 다루었다.

장윤정(2018)은 조선후기 왕실 가례용 병풍의 제작과 장황이라는 주제로 하여 의궤 분석을 통하

여 가례용 병풍의 장황 비례와 재질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 연구는 병풍 각 부분의 장황 재

료 및 치수를 다루었기 때문에, 왕실 가례용 병풍을 보존처리, 장황하는 데에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실용적인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논문들은 이론적인 면을 기초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병풍 장황을 발굴하여 연구를 진행한

의미 있는 연구였다.

02) ��이진희,� 『朝鮮後期�書畵�粧潢�硏究」(홍익대학교�대학원�미술사학과�석사학위논문,�2004);�김수진,� 『조선�후기�병풍�연구』(서울대학교�대학원�고고미술사학과�박사학위논문,�2017);�장윤정,� 『조선후기�왕실�가례용�병풍의�제작과�장황:�가례도감의궤를�중심으로』(용인대학교�대학원�문화재보존학과�석사학위논문,�2018).�

Ⅲ. 연구의 필요성

그림 양식이 시대별, 계층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병풍 장황 양식도 마찬가지로 다르게

나타난다. 김윤정은 ‘그림의 표구로서 기능하는 병풍은 ‘서화’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언술한 바 있는

데 이처럼 장황 자체도 심미적인 기능이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존중될 필요가 있으며 마땅히 학술

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03)

(표 1)에서 보이는 그림 속의 병풍들은 당시 병풍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16~17세기에는 그

림 주변에만 병풍띠를 둘러 장식하는 장황 형태로 제작되다가(도 1~도 2), 이후 18세기에는 병풍 하

단이나 상·하단에 상·하회장을 붙이고 병풍띠를 둘러 장식하기 시작하고(도 3~도 4), 19~20세기 이

후에는 민간에서도 병풍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되지만, 이전의 장황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도 5~도

12). 책거리도, 감모여재도, 초상화 등 그림 속 병풍에서도 당시 병풍 양식을 엿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의 전형적인 병풍은 그림 상·하에 청색 짧은 회장(回

粧)을 대고, 붉은색이나 청색으로 병풍띠를 둘러 병풍을 마감하며, 붉은색의 병풍 다리를 갖추고 있

는 것이 특징이다.

(표1)그림과유물로보는병풍장황의시대변천사

(도 1) <선조조기영회도>(부분), 1585년, 첩, 비단에 채색, 40.4x59.5㎝, 서울대학교 박물관.

(도 2) <소상팔경도>(부분), 16세기, 8폭 병풍, 종이에 수묵, 98.3x49.9㎝, 일본 대원사(大願寺).

03) ��김윤정의�논의는�김윤정,�「병풍(屛風)의�기능에�대한�고찰」,�『생활문물연구』�14(국립민속박물관,�2004.9.),�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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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2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도 3) 겸재 정선, <북원수회도첩>(부분), 1716년, 첩, 비단에 채색, 39.3×54.4cm, 국립중앙박물관.

(도 4) <회혼례도>(부분), 18세기, 첩, 비단에 채색, 33.5×44.5㎝, 국립중앙박물관.

(도 5) <조희복 초상>, 조선후기, 액자, 비단에 채색, 120.5×77.2㎝, 국립민속박물관(민속45478).

(도 6) <산수민화8폭병풍>(부분), 조선후기, 8폭 병풍, 종이에 수묵담채, 75.9×37.6㎝, 서울역사박물관.

(도 7) 엘리자베스 키스, <한국 시골의 혼례 잔치>, 1921년, 종이에 채색 목판화, 미국 오리건대학교 조던슈니처박물관.

(도 8) <자수화조8폭병풍>, 조선, 병풍, 비단에 자수, 59.9×31.5㎝(그림), 국립중앙박물관.

(도 9) 석지 채용신, <서병완 남원 양씨 부부초상>(부분), 1925년, 액자,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도 10) 윤오진, <산수도>(부분), 조선후기, 8폭 병풍, 비단에 수묵, 174.5×50.0㎝(그림), 국립중앙박물관.

(도 11) 다나베 이타루, <자수병풍>, 1934년, 액자, 국립중앙박물관.

(도 12) <화조도병풍>, 1925년, 병풍, 비단에 채색, 148×38㎝, 국립민속박물관(민속78398). * 1925년 혼례 예단으로 사용된 병풍.

개항 이후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적인 변화와 함께 병풍의 장황 양식

에도 큰 변화가 나타난다. 고종의 왕권 강화 정책과 대한제국 선포와 맞물리면서 제작비용이 월등

히 높은 자수병풍과 12폭으로 증가한 대형병풍이 유행했으며, 이때부터 키가 높은 병풍이 성행하였

다.04)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에는 병풍이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가격대의 병풍이 공급되어 민간에

서도 어렵지 않게 병풍을 보유하게 되었다. 1970~1980년대에는 조선에서 근대기까지에 제작된 글과

그림들의 수리 및 재표구가 많이 행해졌다. 일본식 표구기술을 습득한 기술자들에 의해 작업이 이루

어지면서 전통 재료와 기술은 단절된 상태가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작품이 원래의 조선식 병풍 형

04) ��김수진,�앞의�논문,�p.�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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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4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태도 아니고 일본식 병풍 전통도 아닌 두 양식이 혼합된 ‘높은’ 형태로 표구가 이루어진다. 아마도 대

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높은 병풍이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있었을 것이며, 또한 가옥 구

조의 변화로 점점 사람들이 입식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병풍도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이

유로 수리 및 재표구되는 병풍 그림들이 당시 유행에 따라 바뀌면서 그 원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추정컨대 현재 제작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병풍은 약 30% 미만이라고 생각된다. 병풍 틀

에서 분리하여 낱장으로 존재하는 병풍 그림들(도 13)도 다수 존재한다. 또한 앞, 뒤로 그림이 있는

병풍을 2개의 병풍으로 나눈 경우, 낮은 병풍을 높은 병풍으로 개장(改粧)한 경우, 나무프레임 및 금

속장석을 사용해 일본식이 가미된 형태로 바꾼 경우, 바깥 2면을 튀어나오게 한 경우, 한 면에 그림

여러 점씩 넣어 형태를 변형시킨 경우, 병풍 다리를 붙여 만든 경우 등 다른 형태의 병풍으로 개장

된 사례도 다양하다. 그리고 첩(도 14), 족자(도 15), 액자(도 16) 등으로 개장되어 원래의 장황 형태

를 잃어버린 사례도 보인다. 이 유물들을 개장한 당시는 그림만을 유물로 취급하고, 주변을 꾸며주

는 장황 요소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때였다. 우리나라에 보존처리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자리 잡

힌 것도 불과 몇 십 년 되지 않아, 당시 장황의 원형 보존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이 잘못된 개장을

했던 큰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깨끗한 병풍이 상품 가치가 더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사

람들이 많고, 장황 부분까지 그림처럼 처리하기 위해서는 공력과 비용이 더욱 많이 소요되기 때문

에, 원래의 장황 부분을 새로운 비단이나 종이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이런 무분별한 개

장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유물 보존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과 보존 윤리가 제대로 자리 잡아가야

할 것이다.

(표2)장황원형을잃어버린효제문자도병풍그림들

(도 13) <문자도>, 8폭 낱장, 종이에 수묵 채색, 80.5×43.0㎝, 국립민속박물관(민속24196).

(도 14) <문자도8폭병풍>, 첩, 종이에 수묵 채색, 59×36㎝, 국립민속박물관(민속38617).

(도 15) <문자도>, 족자, 종이에 수묵 채색, 130.0×42.5㎝, 국립민속박물관(민속40225).

(도 16) <문자도 액자>, 액자, 종이에 수묵 채색, 84×172㎝, 국립민속박물관(민속62753).

Ⅳ. 효제문자도 병풍의 지역별 장황 조사

여러 가지 이유로 원래의 병풍 장황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장황 복원을 위한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아직 한 번도 수리나 재장황이 되지 않은 병풍을 발굴하여 분류하고 분석한다면 유의미

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림의 제작 시기나 도상이 유사한 경우에는 보존처리 및 복원

에 직접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림을 주제별로 구분하고, 또 시대별, 계층별로

구분하여 장황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본 논문에서는 ‘효제문자도’의 지역별 병풍

장황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18세기에 들어서 「주자가례」를 조선화하는 과정에서 정조대에 병풍 사용이 민간에까지 확산되었

다.05) 이러한 변화 안에서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유교문자도가 크게 유행하게 된다. 효제문자도의 제

작 초기에는 굵은 획으로 된 해서체의 문자 안에 각 문자와 관련된 고사인물화를 삽입하는 것이 일

반적이었으며 목판을 통해 대량 생산되기도 하였다. 19세기에는 문자의 일부 획이 관련된 고사인물

05) ��김수진,�앞의�논문,�pp.�ⅳ-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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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6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화를 상징하는 동식물이나 물건으로 기호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유교 이념

에서 벗어나 장식적인 경향으로 나아가 점점 표현이 단순화, 상징화, 기호화되었다. 아울러 꽃장식

이 많아지며 화려해지기 시작했다.06)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도안적 요소와 일본식 색채가 가미되

고 지방 양식이 위축되면서 효제문자도가 점점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60년대를 전후로 해서

인쇄물의 보급으로 인한 병풍 출연으로 효제문자도의 제작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07)

효제문자도는 미술사 분야의 선행 연구에서 작가의 계보 연구 및 도상학적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그림을 지역별로 나누어 분석한 성과가 있다.08) 조선 후기 및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는 어느 정

도 효제문자도의 지역적 구분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는 일제강점기 후반부

터는 민화 작가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쉬워지면서 ‘효제문자도’의 지역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본 논문

에서는 강원도, 제주도, 경상도 등 확실하게 지역 구분이 되는 효자문자도를 우선 논의한 후 나머지

지역은 기타 지역으로 분류하여 장황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강원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강원 지역은 서울 지역에서 유행한 고전적인 효제문자도를 비교적 충실하게 받아들였으며 단청

류의 강렬한 색상을 특징적으로 사용하였다. 아울러 문자도만 그리기보다는 문자도에 화조, 책거리,

산수 등을 조합하는 형식을 선보였다. 이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강릉 및 삼척을 중심으로 활약

한 이규황(1868~1926), 황승규(1886~1962) 등의 민화 작가의 활약상이 돋보인다. 강원 지역의 효제

문자도 장황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규황, 황승규 시기에 높이 140~150㎝ 정도의 중형 병풍으로 제

작되었다가, 이종하(1895~1968) 시기에 다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초기의 강원 지역 <효제문자도(도 17)>에서는 조선의 전형적인 양식인 쪽색 상·하회장에 붉은

색 병풍띠를 갖춘 장황을 하였다.09) 그러나 화조, 책거리, 산수 등을 조합하는 형식이 나타난 이후에

는 강원 지역 특유의 뚜렷한 병풍 양식이 나타나게 된다.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병풍 높이가 다른 지

06) 정병모,「여덟�문자에�담긴�희망의�찬가:�문자도�병풍」,�『조선,��병풍의�나라:�BEYOND�FOLDING�SCREENS』(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2018),�pp.�334-335.

07) ��이명구,�『東洋의�타이포그래피,�文字圖』(Leedia,�2005),�p.�231.

08) ��대표적인�연구로�이명구,�앞의�책;�윤열수,�『文字圖를�통해�본�民畵의�地域的�特性과�作家�硏究』(동국대학교�대학원�미술사학과�박사학위논문,�2006);�정병모,�『제주도민화연구:�문자도병풍을�중심으로」,�『강좌미술사』�24(한국불교미술사학회,�2005);�이상국,�『경상도�유교문자도�연구」,�『民畵연구』��2(계명대학교�한국민화연구소,�2013)를�들�수�있다.�

09) ��(도17)의�앞면은�10폭�호렵도,�뒷면은�8폭�효제문자도로�구성되어�있다.�본�효제문자도는�이규황�작품으로�추정된다.�

역에 비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문자도 상·하단에 화조도, 책거리도, 산수도 등 다른 주제와의 조합

이 유행하면서 그림 자체의 길이가 길어졌기 때문에 병풍 높이도 자연스레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아진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 다른 하나는 작가별로 특징적인 병풍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황승규는

본인이 직접 문자도를 그리고 병풍 제작까지 진행하였기 때문에 자기만의 병풍 장황 양식이 나타난

다.10) (표3)에서 보이는 4점의 병풍은 모두 석강(石岡) 황승규의 ‘효제문자도’ 병풍이다. 각각의 병풍

장황 부분 사진을 보면, 모두 동일한 장황 비례, 재질, 색상으로 황승규만의 독특한 장황 양식이 존재

함을 알 수 있다. 그림 상·하단에 반복적인 사각형 인쇄지를 사용하고, 병풍을 마무리하는 보라색 병

풍띠에는 한쪽에만 좁은 흰색 띠지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병풍 뒷면 천으로는 삼베가 아닌 검

은색으로 물들인 광목을 사용하였고, 뒷면에는 행서, 초서체의 글씨가 있다. 뒷면은 제례용으로, 앞

면의 문자도는 화려한 잔치용으로 사용하여 용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양면 병풍을 만든 것이다.11)

석강 황승규만이 아니라, 취소(翠巢) 김창익의 ‘효제문자도’ 병풍에도 작가의 취향이 엿보이는 특유

한 병풍 양식이 존재한다(표4). 그림 상·하·좌·우에 반복적인 사각형 인쇄지로 변아(邊兒)를 두르고,

상·하회장과 변아 사이에 1단의 다른 회장이 존재하는 형식이 특징이다.

(도 17) <Hunting in the Hills and Pictorial> 뒷면(부분), 10폭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59.7×33.0㎝, 미국 LACMA.

10) ��황승규가�직접�자기가�그린�그림을�병풍으로�꾸몄다는�데에�대해서는�윤열수,�앞의�논문,�p.�114.�

11) ��윤열수,「강원도�지역�민화에�대한�고찰」,�『東岳美術史學』�9(2008.6.),�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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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8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표3)강원지역석강황승규효제문자도의장황

(도 18) 석강 황승규, <화조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28.0×35.5㎝(그림), 삼척시립박물관.

* 병풍 장황 부분

(도 19) 석강 황승규, <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45×38㎝, 국립민속박물관(민속51262).

* 병풍 장황 부분

(도 20) 석강 황승규, <화도문자도병풍>(부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21×35㎝(그림), 삼척시립박물관.

* 병풍 장황 부분

(도 21) 석강 황승규, <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41.0×37.5㎝, 국립민속박물관(민속75463).

* 병풍 장황 부분

병풍 장황 부분

(표4)강원지역취소김창익효제문자도의장황

(도 22) 취소 김창익, <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76.4×26.7㎝(그림), 개인 소장.(이명구, 「東洋의 타이포그래피, 文字圖」(Leedia, 2005), p.188-189. 도판 참고.)

* 병풍 장황 부분

(도 23) 취소 김창익, <문자도8폭병풍>,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65×31㎝(그림), 삼척시립박물관.

* 병풍 장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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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0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2. 제주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제주도에는 많은 양의 다양한 문자도 병풍이 곳곳에 존재했다. 육지에서는 종갓집에나 볼 수 있

는 제례용 병풍이 제주도에서는 풍랑사고를 대비해서 집마다 보유하며 모든 형제가 조상을 모셨기

때문이다. 제주 지역에서는 제주도의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제주도식의 문자도의 도상에 적

용하였다. 화면을 수평선으로 2단 혹은 3단으로 나누어 중단에 문자를 배치하였고, 상단과 하단에는

제주도의 자연을 중심으로 건물과 기물이 그려져 있다. 병풍 중간 상단에는 2~3층 누각 다면도가 보

이는데, 사당도의 축소판으로 제례용 병풍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는 각 집의 방 안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바람이 많이 부는 자연 환경으로 인해 방의 천고가

낮은 편이다. 이로 인해 제주도 병풍 대부분이 높이 100~110㎝ 정도의 소형 병풍이다. 대부분이 상·

하회장, 병풍띠 등을 따로 붙이지 않고, 그림 자체만을 틀에 붙여서 간단하게 제작하였고, 병풍 다리

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섬이라는 제주 특성상 자원이 많지 않은 이유로 육지에 비해 병풍 제작 수

준은 떨어지는데, 특이하게 제주 지역의 조릿대로 만든 병풍틀도 발견된다(도 24). 도상이 글자 위

주의 사실적인 표현에서 장식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가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단순화되고, 강렬하고

표현주의적인 형상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장황 형태는 거의 처음의 형태인 그림면 자체가 1면을 구성

하는 간단한 방법을 유지하고 있다(표 5).

(표5)제주지역효제문자도의장황

(도 24) <효제문자도>(부분), 병풍, 종이에 수묵, 제주대학교 박물관.* 조릿대 속틀 병풍(1995년 촬영), 윤열수 제공.

(도 25) <효제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06.3×39.0㎝, 가회민화박물관.

(도 26) 잔치 때 사용하고 있는 제주도 효제문자도 병풍(남제주군 화보집)(전은자, 「제주도 효제문자도 연구」, 「耽羅文化」36(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10.2.), p.242. 도판 참고.)

(도 27) <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08.5×37.0㎝, 국립민속박물관(민속24203).

3. 경상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경상 지역은 유교적 특색이 강한 지역으로 안동, 밀양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문자도가 발달했

다.12) 경상 지역의 정확한 사용처 및 사용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유물로는 현재 프랑스 기메 동양박

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 31)의 <효제문자도>가 있다. 그것은 프랑스인 샤를 바라(Charles Varat,

1842~1893)가 조선 종단 여행 시 1888년 밀양 지역에서 구입했던 병풍으로 경상 지역의 문자도 도상

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문자도 속 그림의 특징을 보면, ‘忠’ 자에 용 대신 새우와 부러진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으며, ‘恥’ 자에는 위패 형식의 비석이나 비각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행서체의

문자로 유학의 상징인 책거리를 글자의 획에 내포하여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하였고, 채색이 절제

된 강한 수묵 담채로 처리하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샤를 바라가 수집한 밀양 지역 <효제문자도>와 유사한 도상을 지닌 문자도를

경상 지역의 것으로 추정하여 분류하였다(표 6). 이 병풍들은 상, 하단 쪽색에 청색의 병풍띠를 갖추

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높이 100~120㎝의 낮은 병풍으로 조선의 민간 병풍 양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유교문화가 발달된 지역적 특징으로 보인다.

안동 지역에서는 고급 감상용 문인화풍 그림 뒷면에 문자도를 그려 넣어 일반 잔치용과 제례용

12) ��정병모,�앞의�책,�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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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2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으로 앞뒤 양면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병풍이 많다고 한다.13) ‘恥’ 자에 나타난 위패를 통해 병

풍의 용도를 명확히 알 수 있는데, 아마도 경상 지역의 민가에서는 제례용으로 효제문자도 병풍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14) 실제 유물로도 효제문자도가 뒷면으로 배치된 경우가 발견된다(도 33, 도

34).

경상 지역에서는 효제문자도가 추상적으로 암호화된 부적처럼 가는 초서로 글자를 길게 늘어뜨

린 위패형 문자도로도 나타나는데, 수묵담채로 표현하였다. 학식이 높은 계층에서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초서체를 인용한 것은 전통 문화의 보수성이 강한 지역적 유형으로 볼 수 있다.15) (도 34)를

보면 초서체 위패형 ‘효제문자도’의 병풍 장황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초서체 위패형 문자도는 관서

지역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16)

(표6)경상지역의효제문자도의장황

(도 28) <문자도>, 조선, 8폭 낱장, 종이에 수묵 채색, 100×43㎝, 국립민속박물관(민속29897).

(도 29) 시골잔치(「민족의 사진첩3」(서문당, 1994), p.122. 도판 참고.)

13) ��윤열수,�『文字圖를�통해�본�民畵의�地域的�特性과�作家�硏究』(동국대학교�대학원�미술사학과�박사학위논문,�2006),�p.�146.

14) ��효제문자도가�서민가에서�제례시�사용되었다는�데에�대해서는�이상국,�앞의�논문,�p.�113,�128.�

15) ��초서체�위패형�‘효제문자도’를�경상�지역으로�보는�견해는�윤열수,�앞의�박사학위논문,�P.�146.;�이상국,�앞의�논문,�pp.�128-129.���

16) ��초서체�위패형�‘효제문자도’를�관서�지역으로�보는�견해는�이명구,�앞의�책,�pp.�192-193.����

(도 30) <문자도>, 조선,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18.5×40.0㎝, 국립민속박물관(민속93207).

(도 31) <효제문자도>, 1888년 이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81.0×39.5㎝(그림),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샤를 바라가 1888년 밀양지역에서 구입한 오래된 병풍.

(도 32) <문자도8폭병풍>,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53×34㎝(그림), 삼척시립박물관.

(도 33) <산수도8폭병풍·효제문자도6폭병풍>,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122.2×40.6㎝, 국립민속박물관(민속45854).

(도 34) <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91×34㎝(그림), 개인 소장.(<김세종민화컬렉션- 판자지아 조선> 기획전(예술의 전당, 2018) 전시 출품작.)

4. 기타 지역의 효제문자도 장황

지역이 분류되기 어려운 효제문자도 병풍들도 시기별로 전형적인 조선 병풍 장황(도 35)부터 인

쇄된 도배지를 사용한 장황(도 39)까지 다양한 양식이 존재한다(표 7). (도 36)의 병풍과 (도 37)의

사진 속의 병풍을 비교하면, ‘제(悌)’ 상단의 특이한 도상이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도 37)의 사진

은 1965년 경북 봉화에서 촬영한 혼례기념 사진이지만, (도 36)의 병풍이 경북 봉화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 분명하다고 확단하기는 어렵다. 1965년 당시는 교통의 발달로 민화 작가나 작품의 이동이 상대

적으로 쉬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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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4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Ⅴ. 맺음말

지금까지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에 대해 논하였다. 먼저 병풍이 현대기로 넘어 오면서 잘못된

수리로 인해 원래의 장황 형태를 잃고, 낱장 상태로, 다른 형태의 병풍으로, 첩, 족자, 액자로 개장된

문제점들에 대해 알아보고, 장황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효제문자도’를 중심으로 지역별 병풍 장황 양식을 제시하였다. 일제 후기부터는 교통

의 발달로 지역 구분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앞서 연구된 효제문자도의 지역 작가 계보를 바탕으

로 도상과 장황을 연계하여 분류함으로써 지역별 병풍 장황 특성을 알아보았다. 강원 지역의 효제문

자도 병풍에서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직접 장황까지 마무리한 ‘석강 황승규’라는 작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황승규의 ‘효제문자도’ 병풍을 보면, 병풍에 사용된 장황 재료, 색상, 비례 등에서 작가

만의 특유한 장황 양식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강원 지역의 효제문자도는 문자도에 화조, 책거리, 산

수 등을 조합하는 형식으로, 다른 지역 효제문자도 병풍에 비해 병풍이 높은 특징을 보이며, 높이는

약 140~150㎝의 중형 병풍이다. 제주 지역의 효자문자도 병풍은 높이 약 100~110㎝로 낮다. 대부분

이 그림 자체만을 틀에 붙여 만든 것으로, 육지의 문자도 병풍에 비해 제작 방법이 간단하며, 병풍 다

리가 높은 특징이 있다. 그리고 샤를 바라가 밀양에서 구입한 병풍 그림과 도상학적으로 유사한 문

자도는 이번 연구에서 경상 지역 병풍으로 분류하였다. 이 병풍들은 높이 약 100~120㎝의 비교적

낮은 병풍으로, 조선 민간 병풍 양식을 이어가고 있으며, 효제문자도가 뒷면에 배치된 경우도 발견

된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효제문자도’의 보존처리 시 장황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

여 복원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동안에는 병풍 장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수리 시 처리자의 주관

적 판단에 따라 병풍의 수리가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보존 처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물의

원형과 다른 모습으로 수리되어 다시 원형을 찾아줘야 하는 어려움을 낳는 경우도 있었다. 본 연구

에서는 ‘효제문자도’ 장황의 특징을 더욱 상세히 파악함으로써 향후 ‘효제문자도’ 병풍의 보존처리 시

병풍의 비례, 회장의 재료·색상 등에서 원형에 근접한 보존처리가 가능할 수 있게 하였다. 둘째, ‘효

제문자도’ 장황 연구를 통해 미술사적 관점에서 개화기 이후 유물의 연대를 추정함에 있어 보다 상세

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는 그림의 화풍이나 내용을 통해 시대를 추정하여 왔으나,

역으로 장황의 원형이 유지된 경우 장황의 양식을 통해 해당 유물이 어느 시기의 유물인지를 파악할

(도 38)의 <효제문자도> 병풍의 그림과 상·하회장 중간에 들어가는 붉은색 회장은 일제 강점기

에 나타난 일본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병풍 장황 양식이다. 이런 양식은 일제 강점기 다른 민화 병풍

에서도 많이 관찰된다.

(표7)기타지역효제문자도의장황

(도 35) <문자도>, 6폭 낱장, 종이에 수묵, 83×41㎝, 국립민속박물관(민속38799).

(도 36) <문자도>, 병풍, 종이에 수묵, 91×33㎝(그림), 개인 소장.(이명구, 『東洋의 타이포그래피, 文字圖』(Leedia, 2005), p.170-171. 도판 참고.)

(도 37) 혼례기념촬영(1965년, 경북봉화)(『민화와 장식병풍』(국립민속박물관, 2005), p.326. 도판 참고.)

(도 38) <문자병풍>(부분), 6폭 병풍, 종이에 수묵 채색, 93.0×34.8㎝(그림), 국립민속박물관(민속15131).

(도 39) <문자도>, 4폭 낱장, 종이에 수묵 채색, 124.0×41.8㎝, 국립민속박물관(민속3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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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6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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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효제문자도’를 중심으로만 장황 유형을 크게 살펴보았는데, 추후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각 유물의 장황 재질, 크기 등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면서 다각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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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8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ABSTRACT>

Mounting of folding screens with Hyoje Munjado

CHUN Ji-youn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Conservator

This study started at the need of finding the right form of mounting to restore folding screen paintings

produced since the late Chosun dynasty. I intend to present the right direction to conservators in the

field how they should restore art works in these years.

First, I gave an overview on mounting changes in Korean folding screens by era and also indicated

some important problems made by wrong methods of mounting in modern times.

Next, I discovered several regional features of folding screen mountings from Hyoje Munjado(painting

of characters for filial duty and brotherly love). My research is based on prior studies on the

genealogy of regional folding screen artists. I studied regional features of folding screen mountings,

interconnecting iconography, mounting and artist genealogy.

We need to keep an eye on 'Seokang Hwang Seung-kyu' in Kangwon folding screen Hyoje Munjado.

He painted folding screen pictures and completed mounting work himself. We can find peculiar

features on his folding screens such as materials, colors and proportions. Folding screens in Kangwon

region have mixed forms of character paintings, flower-bird paintings, bookshelves paintings, and

landscape paintings. They are higher than those in other regions with height of 140~150cm. Folding

screens in Cheju region are low with the height of 100~110cm. They are mostly made by just pasting

pictures on the folding screen frame and legs are higher compared with other regions.

Folding screens in Kyungsang region are relatively low with the height of 100~120cm. They are

keeping the traditional form of popular folding screen in Chosun times. In some cases Hyoje Munjado

are placed on the back of the folding screen. This study focused only on the mounting forms of

folding screen with Hyoje Munjado. Expanding the object of study to other popular art works since

Chosun dynasty, there will be a bulk of new findings waiting to be discovered for a long time.

key-word: folding screens, mounting, Munjado, Hyoje Munjado, Kangwon Munjado, Jeju Munjado, Lee Kyu-

hwang, Hwang Seung-kyu, Kim Chang-ik

<국문초록>

효제문자도 병풍의 장황

전지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필자는 조선후기부터 근·현대기의 병풍 그림을 어떤 형태의 장황(粧䌙)으로 보존처리해야 할 것인가

에 관한 질문을 필두로 연구를 시작하였고, 보존처리를 직접 수행하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

우선 그림에 나타난 병풍과 실제 유물을 통해 조선 병풍의 시대별 장황 변천을 소개하였고, 현대기에

들어 잘못된 수리 및 재표구로 인한 개장(改粧)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다음으로 ‘효제문자도’를 중심으로 지역별 병풍 장황 양식을 제시하였다. 일제 후기부터는 교통의 발

달로 지역 구분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선연구된 효제문자도의 지역 작가 계보를 바탕으로 도상과

장황을 연계, 분류하여 지역별 병풍 장황 특성을 알아보았다.

강원 지역의 효제문자도 병풍에서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직접 장황까지 마무리한 ‘석강 황승규’라는

작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황승규의 효제문자도 병풍을 보면, 병풍에 사용된 장황 재료, 색상, 비

례 등에서 작가만의 특유한 장황 양식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강원 지역의 효제문자도는 문자도에 화

조, 책거리, 산수 등을 조합하는 형식으로, 다른 지역 효제문자도 병풍에 비해 병풍이 높은 특징을 보

이며, 높이는 약 140~150㎝의 중형 병풍이다. 제주 지역의 효자문자도 병풍은 높이 약 100~110㎝로 낮

다. 대부분이 그림 자체만을 틀에 붙여 만든 것으로, 육지의 문자도 병풍에 비해 제작방법이 간단하며,

병풍 다리가 높은 특징이 있다.

샤를 바라가 밀양에서 구입한 병풍 그림과 도상학적으로 유사한 문자도는 이번 연구에서 경상 지역 병

풍으로 분류하였다. 이 병풍들은 높이 약 100~120㎝의 비교적 낮은 병풍으로, 조선 민간 병풍 양식을

이어가고 있으며, 효제문자도가 뒷면에 배치된 경우도 발견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효제문자도’ 병풍을 중심으로만 장황 양식을 살펴보았는데, 추후 다른 주제에 대해서

도 마찬가지로 다룰 계획이다.

키워드- 병풍, 장황, 문자도, 효제문자도, 강원문자도, 제주문자도, 이규황, 황승규, 김창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