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한국문학논총 제42(2006. 4) 111~136- 111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 식민지 풍경의 시적 현현 1) 김 영 주 * 차 례 Ⅰ. 서론 Ⅱ. 산수, 동양이라는 미명 - 정지용 Ⅲ. 향수, 이방인의 시선 - 김기림 Ⅳ. 낭만, 부끄러움의 발견 - 백석 Ⅴ. 결론 . 서론 오늘날 여행은 문화생활의 한 양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디어나 저널을 통 해 일반 대중에게까지 여행은 하나의 오락 방식이자 휴식 방편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도 여행이 이러한 입지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관유가사를 생산하게 했던 승경이나 유람과 같은 의미의 여행은 공적 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과 동반되기 일쑤여서 본격적인 의미, 즉 근대적 의미 의 여행과는 구별이 된다. 이후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탈과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조선에 교통 환경이나 인쇄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근대적 의미의 여행에 대한 개념이 발생하게 된다. 근대적 의미의 여행이 출현하는데, 왜 교통 * 부산대학교 강사

TGXXXGT - ::::: 한국문학회...I[Zi% F_i{v w¾ Y xª TGXXXGT _1`í\ vpÉsÝ[Y pÊiéw zZªuE pÉuî ñ ñ \- sî vé z f-Ù o fM Ú n p aÆs~uaei` iåhr vw t Û p uaj ueuEpÉo \-\

  • Upload
    others

  • View
    0

  • Download
    0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 한국문학논총 제42집(2006. 4) 111~136쪽

    - 111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 식민지 풍경의 시적 현현

    1)김 영 주*

    차 례

    Ⅰ. 서론

    Ⅱ. 산수, 동양이라는 미명 - 정지용

    Ⅲ. 향수, 이방인의 시선 - 김기림

    Ⅳ. 낭만, 부끄러움의 발견 - 백석

    Ⅴ. 결론

    Ⅰ. 서론

    오늘날 여행은 문화생활의 한 양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디어나 저널을 통

    해 일반 대중에게까지 여행은 하나의 오락 방식이자 휴식 방편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도 여행이 이러한 입지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관유가사를 생산하게 했던 ‘승경’이나 ‘유람’과 같은 의미의 여행은 공적

    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과 동반되기 일쑤여서 본격적인 의미, 즉 근대적 의미

    의 여행과는 구별이 된다. 이후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탈과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조선에 교통 환경이나 인쇄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근대적 의미의

    여행에 대한 개념이 발생하게 된다. 근대적 의미의 여행이 출현하는데, 왜 교통

    * 부산대학교 강사

  • 112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12 -

    환경이나 인쇄 매체의 발달이 전제되는가 하면, 이전까지의 보행 수준으로는

    문화나 자연 환경이 이색적인 곳으로까지의 여행이 어렵고, 신문이나 잡지의

    보급으로 비로소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에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개안이 가

    능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조선에 놀라움과 설렘을 안겨준 ‘철도’의 탄생은 근대

    적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 큰 몫을 차지하였다. 철도는 국토를 가로지르며

    지역을 해체하고 국가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정립된 국가는 일본에 의한 근대

    자본주의의 도래를 맞이해야 했고, 수탈과 침범의 대상이 되었다. 철도는 1900

    년을 전후하여 조선에 건설되었지만, 그간의 걸어 다니는 습관과 비싼 기찻삯

    으로 인해 승객을 제대로 모으지 못한다.1) 먼 곳에 볼 일이 있어도 며칠을 걸

    려서 걸어 다니는 것이 익숙하던 조선인에게 기차 여행은 하루아침에 익숙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행’조차가 아직은 낯선 풍습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알맞은 진술일 것이다.

    1909년 3월 30일 ≪대한매일신보≫에는 ‘여행운동’이라는 생소한 어휘가 등

    장하는데, 이것은 운동의 개념으로 전파되는 것이 ‘여행’이었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준다.2) 1920년대 초 각 신문에서는 서울 시민들의 꽃구경을 위해

    경성에서 개성까지 임시열차가 운행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3) 철도나 신문 등

    의 매체는 서서히 조선에 침투하여 조선인들에게 근대적 문화인 ‘여행’ 혹은

    ‘관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행’은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한 개념이 아니다. 제도의 변화 혹은

    생산과 함께 도래한 문화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근대적인 의미의 여

    행은 근대 문물을 학습한 효과로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이

    우선이 아니라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선제되어야 하며, 이것은 문학에

    서도 마찬가지이다. 여행 이후에 기행문학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기행문학이

    우선 존재하고 후차적으로 근대적 여행이 관념화되는 것이다.4) 근대 초기 기행

    1) 박천홍,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산처럼, 2003, 22쪽 참고.2) “근일보셩즁학교와 청년학교와 흥화학교가 련합야 려운동을 시기위야

    일간셩디방으로 발다더라”(≪대한매일신보≫, 1909, 3, 30)

    3) 박천홍, 같은 책, 367쪽.

    4) 고진은 루소의 알프스 여행 경험이 사람들에게 ‘등산’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했다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13

    - 113 -

    문학에 해당하는 이광수의 「오도답파여행」이나 금강산유기가 신문 연재를 목적으로 씌어졌다는 것은, 여행 그 자체보다 여행의 기록으로서 기행문학이

    먼저 전제된다는 것을 예증하고 있다.5)

    기행문학의 하위범주로는 여러 장르가 있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기행시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하고자 한다. 기행시를 쓴 시인들은 다수 존재하지만, 정지

    용, 김기림, 백석을 주요하게 다루고자 한다. 이들은 모두 일본 유학을 통해 대

    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국내에서 기자, 편집인 등으로 언론 활동을 했던

    경험의 유사성이 있다. 알려진 바대로 당시 일본 영문학과 특성상, 이들은 대학

    교과과정에서 영미계열 모더니즘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세 시인의 작품 성향

    이 각각 상이하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지만, 이들을 이미지스트로 묶어 평

    가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6)

    기행시는 여행시와는 의미가 다르게 규정된다. 여행시가 여행의 경험을 소재

    로 한 시인데 반하여, 기행시는 여행시보다 더 큰 범주의 의미를 띤다. 기행시

    는 형식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과 소재의 측면에서 그 개념에 접근할 수가 있

    는데, 여기에서는 근대적 여행을 소재로 한 여행시, 근대적 의미의 여행을 가능

    하게 하는 전제 조건으로 보아지는 제도를 소재로 하는 시, 그리고 실제 여행

    며, 결국 ‘등산’도 에서 시작되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등산이 있은 뒤 루

    소의 자연 체험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루소의 글을 통해 등산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민음사, 1997, 41쪽 참고.)5) 김현주의 논의를 참고하자면, 근대 초기 기행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최남선의 「평양행」(소년, 1909, 10.)과 이광수의 「오도답파여행」(매일신보, 1917,6,26〜8,18) 등이 있다. 또한 1920년대에 씌어진 이광수의 금강산유기는 기행문의 대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주로 애국심 고취를 목적으로 창

    작되었으며, 그 결과 기행의 목적은 국토나 국민의 발견에 있음을 정리하고 있

    다. 본고가 다루려고 하는 기행시는 이들 작품군들과는 시기적으로도 변별되고

    장르의 특질도 무시할 수 없는 차별성이 있다. 그렇지만 이광수의 금강산유기에 삽입되어 있는 110수 가량이나 되는 시조는 근대 기행시의 한 부분으로 인정

    되며, 본고가 다루고 있는 세 시인의 기행시와 비교 연구해 볼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한다.(김현주, 한국 근대 산문의 계보학, 소명출판, 2004, 제5장 참고)6) 김기림의 비평문에서 정지용과 백석에 대한 상찬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의

    영향관계 연구에 도움이 된다. (김기림, , ≪조선일보≫,

    1933. 12, 7-13. / , ≪조선일보≫, 1936, 1, 29. - 전집2, 심설당, 1988)

  • 114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14 -

    경험이 전경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근대적 여행의 의미가 발견될 소지를 내

    포한 시들을 모두 총칭한다. 마지막에 언급한 근대적 여행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근대 기행시는 봉건제도하에서 상류층에 의해 쓰여진 ‘승경’

    이나 ‘유람’ 이후 창작된 심진낙토(審眞樂土)의 ‘관유가사’와는 다른 의미를 지

    닌다. 심진낙토 의식이란 참세계를 찾거나 이상세계를 구하는 의식을 뜻하는

    데, 관유가사에는 이러한 의식만이 존재할 뿐 여행하는 지방의 인문지리에 대

    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행기가 ‘국토’라는 관념에 바탕을 둔 동시

    에 그것을 생산하고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

    서이다.7)

    관념적 의미로 상투화된 표현 일색인 근대 이전의 기행문학과 근대 기행시

    의 가장 큰 변별점은, 관념이 아닌 이미지의 표현이라는 데에서 발견된다. 이러

    한 의미에서 상기한 세 시인은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니지만, 여전히 근대적

    소양을 쌓은 이미지스트라는 공통점을 띠고 있기에 근대 기행시의 논의에 도

    움이 된다고 본다.

    Ⅱ. 산수, 동양이라는 미명 - 정지용

    정지용은 유학 생활과 국토 순례 등을 통해 여행의 경험을 쌓은 시인이다.

    일본 유학 시절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니며 겪은 심회를 작품으로 남긴 것

    이 다수이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청탁으로 국토를 순례하고 남긴 기행문도

    상당하다. 그러하기에 정지용의 작품 세계에서 기행을 소재로 한 시가 차지하

    고 있는 비중은 크다. 정지용의 시 세계는 시기 구분에 의해 주로 세 단계로 나

    누어 설명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1926-1932년, 중기 1933-

    1935년, 후기 1936-1941년으로 나누어 작품의 변화 양상을 추적한다. 초기를

    모더니즘적인 시의 실험으로, 중기를 카톨리시즘에 따른 종교시의 수용으로,

    후기를 동양 고전의 세계에 대한 추구로 바라보는 것이다.8) 이러한 정지용의

    7) 김현주, 같은 책, 128쪽 참고.

    8) 정지용의 작품 세계를 이러한 시기 구분에 따라 설명하는 논문은 다수 존재한다.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15

    - 115 -

    시 세계에서 여행을 소재로 한 시들은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그리고 어

    떠한 의미로 시인의 작품 세계를 구성해 나아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정지용

    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될 것이다.

    정지용의 시편에는 기차를 소재로 한 작품이 다수 존재한다. 기차는 당시 조

    선인들에게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유학 시절 이미

    생활 속에서 기차를 익숙하게 접해왔던 정지용에게는 더 이상 그러한 소재가

    아니었을 터인데도, 정지용은 굳이 신선한 감각으로 기차를 시화한다. 그러한

    시들 중, 대표적인 것이 1926년 ≪學潮≫에 이라는 제목으로 발

    표한 작품이다.

    식거먼 연기와 불을 배트며

    소리지르며 달어나는

    괴상하고 거-창 한 爬蟲類動物.//

    그 녀ㄴ 에게

    내 童貞의結婚반지를 차지려갓더니만

    그 큰 궁둥이 로 밀어//

    …덜 크 덕…덜 크 덕…//

    나는 나는 슬퍼서 슬퍼서

    心臟이 되구요

    (하략)

    이 시에서는 신문물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이 과장되어 드러나고 있다. 여기

    에는 낯선 것에 대한 동경은 찾을 길 없고, 오히려 불안만이 전경화 되어 있다.

    과도한 불안은 피로를 낳고 피로는 쉽게 애조와 결합된다.9) 그래서 시적 화자

    는 기차에 놀란 나머지 슬퍼서 심장이 되었다고 한다. ‘슬퍼서 슬퍼서 심장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심정이 슬픔으로 가득하다는 표현의 과장일 것이다. 이

    대표적인 저서로 양왕용의 정지용시연구(삼지원, 1988)가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 김용직의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

    7호, 2002.)가 있다.

    9) 정지용의 낯선 체험에 관한 불안에 대한 설명은 김신정의 정지용 문학의 현대성, 1부 2장 2절 참고.

    정지용의 불안은 감각의 피로를 낳는다는 지적은 오성호 논문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7호, 2002, 173쪽) 참고.

  • 116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16 -

    러한 애조, 서러움의 정서는 정지용의 여행을 소재로 한 시에서 여러 번 확인

    할 수 있다.

    沈鬱하게 울려 오는 / 築港의 汽笛소리……汽笛소리…… / 異國情調로 퍼

    덕이는 / 稅關의 旗ㅅ발. 旗ㅅ발. // 세멘트 깐 人道側으로 사폿 사폭 옴기

    는 / 하이한 洋裝의 點景! // 그는 흘러가는 失心한 風景이여니…… / 부즐

    없이 오량쥬 껍질 씹는 시름…… - 중에서

    울음 우는 이는 燈臺도 아니고 갈메기도 아니고 / 어덴지 홀로 떠러진

    이름 모를 스러움이 하나. - 중에서

    정지용은 기차를 타거나 기차를 바라보며 이국적 정조에 빠져들고, 그것은

    곧 서러운 시름과 연결이 된다. 그런데 앞서도 밝힌 것처럼, 정지용이 계속해서

    기차를 통해 두려움이나 서러움을 이야기하는 것에 의문이 생긴다. 유학 생활

    을 했던 정지용에게 기차는 낯익은 사물이요 풍경인데도, 그는 계속 기차를 낯

    설게 표현한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기차는 프로이트 식으로 말해서, 낯선 두려

    움을 주는 존재이다. 낯선 두려움을 주는 사물이나 풍경은 양가적인 감정을 낳

    게 한다. 충분히 익숙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물이 낯설

    게 느껴지고 기괴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정지용의 작품에 등장하

    는 기차는 시인의 그러한 양가적인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본인

    이 아무리 익숙하다 하더라도 적응되지 못하는 감정, 그것은 기차라는 문명의

    이기 앞에서 선망과 불안을 동시에 느껴야했던 조선인의 마음을 대변한 것과

    같다. 작품에서 정지용은 정지용 한 개인이 아니라, 기차를 바라보는 조선 사람

    의 심정을 대변하는 존재인 것이다.

    할머니 / 무엇이 그리 슬어 우십나? /(중략)/ 내도 이가 아퍼서 / 故鄕

    찾어 가오. // 배추꽃 노란 四月바람을 汽車는 간다고 / 악 물며 악물며 달

    린다. - 중에서

    울면서 기차를 타고 가는 할머니의 모습에 자신의 울적한 감정을 덧붙이고

    있는 위의 시는, 근대 문물에서 결코 마음 편안할 수만은 없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와 함께 ≪東方評論≫ 같은 호에 발표된 에서는 슬픔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17

    - 117 -

    과 고통을 참고 달려간 고향이 ‘그리던 고향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서

    글픔을 그리고 있어서, 식민지 근대를 체험하게 하는 도구인 기차에서 시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정지용은 초기의 감각적 모더니스트의 면모를 뒤로 한 채, 30년대 초중반 무

    렵 카톨리시즘에 심취한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시로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

    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여행과 관련된 시를 통해 시인의 정신세계를 추적할

    수 있다.

    白樺수풀 앙당한 속에 / 季節이 쪼그리고 있다. //

    이곳은 肉體없는 寥寂한 饗宴場 / 이마에 시며드는 香料로운 滋養! //

    海拔五天이트 卷雲層우에 / 그싯는 성냥불! //

    東海는 푸른 揷畵처럼 옴직 않고 /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옴겨 간다//

    戀情은 그림자 마자 벗쟈 / 산드랗게 얼어라! 귀뜨람이 처럼.

    -

    초기시에서 보여주던 감상적인 표현이 중기시로 오면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습을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감각적인 비유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것에

    서는 여전히 초기시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정서적 측면에서 성숙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연정을 얼리고 싶다는 표현은 현실에서

    연정과 같은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도 되고, 또한 현실은 그럴지라도 연

    정을 얼게 함으로써 감정에 치닫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생각된다.

    감정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러한 의지적 표현은 종교적 사유에 의한 초월적 발

    상에서 출현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이 시기에 해당되는 기

    행시가 모두 의지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은 아니다.

    마스트 끝에 붉은旗가 하늘 보다 곱다. / 甘藍 포기 포기 솟아 오르듯 茂

    盛한 물이랑이어! //

    班馬같이 海狗 같이 어여쁜 섬들이 달려오건만 / 一一히 만저주지 않고

    지나가다. //(중략)

    수물 한살 적 첫 航路에 / 戀愛보담 담배를 먼저 배웠다.

    -

  • 118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18 -

    위의 시는 쓸쓸해하고 좌절하는 시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스물

    한 살적을 회고하며, 한참 연애하고 즐거울 나이에 담배나 피며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서글프게 회상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멈추어서 경치를 구경할 수 없으며 그저 배가 흘러가는 대

    로 떠가야 하는 것처럼, 근대 지식인 청년이던 시인도 연애나 하고 인생을 즐

    기는 것보다는 시대를 고민하고 낯선 앞날을 불안해하며 담배나 빼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교에 대한 생각의 변화에서이든, 신앙시로만은 시 세계를 이끌어나갈 수

    없는 필연의 결과에서이든, 정지용은 3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시 세계에 또 한

    번 변화를 준다. 동양적이고 고답적인 시 세계로의 초월적 행보가 그것이다. 어

    떤 학자는 정지용이 초월적 공간에서 모든 고민을 놓아 버렸다고 평하기도 한

    다.10)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읽히지만은 않는다. 낯설고 두려운 그

    러나 한편으로 동경을 품게 하던 현실이 상대하기 만만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

    대를 거슬러 과거로 퇴행하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골에 하늘이 / 따로 트이고, //

    瀑布 소리 하잔히 / 봄우뢰를 울다. //

    날가지 겹겹이 / 모란꽃닢 포기이는듯. //

    자위 돌아 사폿 질ㅅ듯 / 위태로히 솟은 봉우리들. //

    - 중에서

    흰들이 / 우놋다. //

    白樺 훌훌 / 허올 벗고, //

    꽃 옆에 자고 / 이는 구름, //

    바람에 / 아시우다.

    - 중에서

    골작에는 흔히 / 流星이 묻힌다. //

    黃昏에 /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

    꽃도 / 귀향 사는곳, //

    10) 김종태,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7호,

    2002.), 136쪽 참고.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19

    - 119 -

    절터ㅅ드랬는데 / 바람도 모히지 않고 //

    山그림자 설핏하면 /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전문

    위의 시들은 한 폭의 산수화를 생각나게 한다. 근대 문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옛 모습 그대로의 동양화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금강산을 묘사하고 있다.

    시행의 배열도 동양의 미학인 여백의 미를 생각나게 한다. 여백의 미는 에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구름이 바람에 의해 사라진다는 표현을 통해 한

    층 강조되고 있다. 시 에 ‘들새도 날러들지 않고 / 神秘가 한끗 저자

    선 한낮’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위의 시편들은 모두 동양의 ‘神秘’라는 상투화된

    표현을 연상하게 한다. 이미 근대라는 이름으로 현실은 변화하고 있고, 시인은

    근대 문물의 수혜자로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으로 근대 교육에 종사했

    고 근대 언론 매체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지용의 시 세계가 갑작

    스레 동양의 神秘로 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성호는 정지용의 시에 드러나는 고향, 향토와 관련된 논문에서, ‘실제와는

    다르게 이상화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으로서의 향수, 그리고 동일한 기억을

    공유한 집단의 존재를 상상케 하는 것으로서의 향수는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발명된 것’이라며 이러한 고향은 근대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 고향을 생각하

    는 것은 고향과의 분리 및 거리두기를 통해서만이 가능한데, 이것은 식민지 근

    대라는 특수한 경험을 통해서 강제된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경험은 조선적인

    것에 대한 분열된 상상을 초래하게 되는데, 조선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환멸과

    과도한 미화가 그것이다.11)

    정지용의 시 세계가 보여주는 동양, 혹은 과거로의 회귀는 바로 이러한 과도

    한 미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조선적인 것에의 심정적인 유대를 통해 근대의

    폭력적 관철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이겨내려 한 것이 그의 입장이겠지만, 여기

    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조선적인 것 혹은 동양의 神秘가 과연 누구의 눈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것은 타자에 의해 주어진 근대의 눈으로 규정

    된 것이기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11) 오성호,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

    구≫, 제7호, 2002 참고.

  • 120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20 -

    정지용이 조선, 동양, 국토 등을 미화하려 하면 할수록, 시인은 더욱 근대의

    물살에 휩쓸려 가게 된다. 근대라는 공간에서 국토나 전통을 이상향으로 미화

    하는 것은 마치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는 패권주의적 태도와 흡사하다. 신비롭

    고 이상적인 세계로 조선을 말하는 것은 조선에 대한 야욕을 불태우고 있던 서

    양 열강이나 일제의 태도에 부합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정지용의 후

    기시 세계를 두고, ‘폐쇄되었으므로 완결된 세계를 형상화하지 않을 수 없었

    다’12)라든지, ‘모더니즘 풍의 언어미학적인 시의 한계를 극복하여 우주적 정신

    의 깊이를 탐색하기 위하여 쓰여졌다’13)라든지, ‘1930년 말에 이르러 동양 지향

    적이고 정신주의적인 세계관이 조선 문단에 있어서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버

    린 현상’을 ‘포악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던 근대의 제 양상’에 대해 ‘부정과 저항

    의 의미를 띤다’14)라고 하는 평가는 당대의 현실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추정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윤의섭은 정지용의 시 세계를 은유와 환유로 설명하며, 후기시를 일컬어 ‘시

    간의 無化’라고 하는데15), 이러한 시간의 無化야말로 시대의식의 無化이며, 시

    대성에 대한 망각 혹은 상실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고 생각한다. 정지용의 시

    대의식 망각은 결국 아직도 그 친일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1942년 작품 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16) 근대를 향한 열망이 의고적 태도로 돌변할 때,

    12) 최동호, , ≪민족문화연구≫, 제19집, 고려대

    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6.

    13) 오세영, , ≪한국현대문학연구≫, 제12집, 한국

    현대문학회, 2002.

    14) 송기한, ,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19집, 2003, 6)

    15) 윤의섭, , (한국시학회, ≪한국시

    학연구≫, 제9호, 2003.

    16) 친일 행각과는 다른 의미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 연구로, 정지용의 일어로 쓰인

    작품에 대한 연구가 있다. 박경수는 정지용의 “나는 아무래도 피리부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연애도 철학도 민중도 국제문제도 피리로 불면 좋다고 생각합

    니다. 당파와 군집, 선언과 결사의 시단은 무섭습니다”라는 고백을 통해 시인의

    시작 태도를 추리하고 있다. 정지용의 일어시에는 일제하 현실에 대한 주체적

    인식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정지용은 일제 강점기의 역사

    현실에 둔감했다고 조심스럽게 결론짓고 있다.(박경수, - 한국문학회, ≪한국문학논총≫, 제30집, 2002, 6, 111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21

    - 121 -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그것을 외면할 때, 정지용은 이미 근대의

    물결에 자신을 맥없이 맡겨버린 것이다.17)

    Ⅲ. 향수, 이방인의 시선 - 김기림

    김기림은 1930년대 가장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이다. 그가 펼친 이론상, 평론

    상의 논의는 항상 모더니즘의 옹호를 향해 있었다. 전대에 유행하였던 감상벽

    이나 계급성에 경도된 문학이 아닌, 새로운 문학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가 김

    기림에게는 내재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김기림은 임화와의 논쟁을 통해, 자신

    은 문학의 내용과 형식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을 피력한 바 있다. 문학의 형

    식적 측면으로는 모더니즘을 추구하기에 그는 스스로 이미지스트이기를 자처

    하지만 그러한 기법적 시론에서만 그치지 않고, 내용적 측면으로 세계주의를

    표방하며 우리 민족이 보편적인 세계시민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

    김기림이 세계주의를 표방하고자 하는 의지를 쌓게 된 데에는, 개인적 이력

    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기림은 18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영문학을 공부

    했으며, 1925년부터 1939년까지 사이에 그가 조선에 머물렀던 시기는 불과 5-6

    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그의 근대 인식이 식민지라는 조선의 특수성보다는

    쪽 참고.)

    17) 정지용의 ‘동양주의’로 귀결을 이러한 방식으로 정리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정지용의 동양에 대한 탐색으로 생산된 ‘동양주의’와 식민지배

    논리인 ‘동양주의’가 과연 동일한 것인가에 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

    이다. 본고에서는 그 둘이 동일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지만, 정지용의 논리와

    식민지배 논리로서의 동양주의가 다르다고 보는 논의도 있다.(김용직, 같은 글)

    그러나 이러한 배치적 입장에는 적절한 해명이 없으므로 그것을 따를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이러한 두 가지 논의에 해당하지 않는 제 3의 입장도 가능한

    데, 그것은 정지용의 동양주의가 식민지배 논리와 부분적으로 겹치지만, 피해서

    나아간다고 보는 논리이다.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는 시인의 역작

    인 이나 등이 보여주는 높은 정신적 경지이다. 동양의 전

    통에서는 상고주의가 도달해야 할 이상향을 추구하므로 그것이 미래지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지용의 의고주의가 현대의 맥락에서처럼 퇴행적인

    것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 122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22 -

    당시 일본에 의해 수입된 서구적 보편으로서의 근대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농

    후하다는 것을 말해준다.18) 김기림은 국내에서는 신문사 기자 생활을 했다. 당

    시 신문 기자라는 직업은 새로운 소식을 전달하는 보고자의 입장이면서 동시

    에, 계몽적 입장에서 언론 및 문화를 이끌어가는 소임까지 맡게 되는 것이 일

    반적이었다. 김기림에게는 우리 민족을 식민지 백성에서 보편적 세계 시민으로

    일거에 도약하게 하려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다.19) 그러나 이러한 기획은 당

    시 식민지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발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론에 있어서 모더니즘과 세계주의를 표방하던 김기림은 실제 작품에 있어

    서는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 김기림이 조선주의와 모더니즘의 갈등 속에

    서 식민자의 권력과 헤게모니 문제를 날카롭게 인식하고 이를 여러 작품을 통

    해 재현하고자 한 작가였다20)고 하는 긍정적 평이 있는가 하면, 엘리어트나 리

    차즈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그의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수준 이하라고 평

    가21)하는 연구도 있다. 정명호는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 중 한 명으로

    김기림을 거론하며, 그들의 공통점으로 미적 가공기술의 혁신22)을 거론하고,

    장도준은 ‘모더니즘적 계몽가로서 식민지 체험을 드러내지 못한 여행객’23)이라

    고 평가한다.

    「레일」을 쫓아가는 汽車는 風景에 대하야도 파랑빛의 「로맨티시즘」에 대

    하야도 지극히 冷淡하도록 가르쳤나 보다. 그의 끝없는 旅愁를 감추기 위하

    야 그는 그 붉은 情熱의 가마 우에 검은 鋼鐵의 조끼를 입는다.

    내가 식당의 「메뉴」 뒷등에

    18) 고봉준,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13

    호, 2005, 131쪽.

    19) 박순원,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9호, 2003, 126쪽 참

    고.

    20) 서준섭,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

    구≫, 제13호, 2005, 11쪽.

    21) 김시태, 「형이상시의 이념」, (정순진 편, 김기림, 새미작가론총서10, 새미, 1999) 참고.

    22) 정명호, , ≪새국어교육≫, 제64호, 2002,

    9, 319쪽 참고.

    23) 장도준, , ≪배달말≫,

    2002, 12, 240쪽.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23

    - 123 -

    (나로 하여곰 저 바다까에서 죽음과 納稅와 招待狀과 그 수없는 結婚式

    請牒과 訃告들을 잊어버리고 저 섬들과 바위 틈에 섞여서 물결의 사랑을 받

    게하여 주옵소서)

    하고 詩를 쓰면 機關車란 놈은 그 둔탁한 검은 갑옷 밑에서 커-다란 웃

    음소리로써 그것을 지여버린다.

    나는 그만 화가 나서 나도 그놈처럼 검은 조끼를 입을가 보다하고 생각

    해본다.

    - 전문

    김기림이 모더니스트로 칭송받는 것은 이론에 국한된다. 작품에 와서는 의도

    만이 앞선 생경한 단어의 나열과 체화되지 못한 정서만이 등장한다. 또한 내용

    에 있어서도 식민지 현실을 망각한 채 혹은 세계 시민이라는 비약적 희망에 빠

    져서 ‘세계주의’를 보편으로 내세운 것도 위험하게 여겨진다. 혹자는 근대와 세

    계주의를 동일시한 김기림의 시선은 타자 곧 일본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40년 무렵 친일 지식인과 일본 이론가들이 내세운 ‘동

    양주의’나 ‘근대의 초극’이라는 논리에 의해 자신의 서구 지향적 세계주의에 위

    기가 온 것을 깨달으면서도 더 이상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40년 이후로는

    침묵했다고 한다.24) 그는 그동안 스스로 비판해온 ‘동양’으로 숨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본의 야욕에 일조할 수도 없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기림의 여행을 소재로 한 시들은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가.

    라는 연작시는 ‘濟物浦風景’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서, 시인이 제물

    포를 여행한 경험을 담고 있는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낯익은 강아지처럼 / 발등을 핥는 바다 바람의 혀빠닥이 / 말할 수 없이

    사롭건만

    나는 이 港口에 한 벗도 한 親戚도 불룩한 지갑도 戶籍도 없는

    거북이와 같이 징글한 한 異邦人이다.

    - 전문

    연작 중의 하나인 이 시는 여행자로서의 외로움을 표현한 작품인

    24) 고봉준,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13

    호, 2005. 참고.

  • 124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24 -

    데, 특별한 형식적 실험이나, 생경한 비유는 눈에 띄지 않는다. 김기림의 시 세

    계가 일반적으로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이러한 시는 너무 짧

    아서 시라기 보다는 단상 정도로 보여 시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될 수도 있

    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견되는 의미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행 체

    험을 통해 느끼는 ‘이방인’ 의식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1936년, ≪朝鮮日報≫에 연재된 이라는 연작시 중 몇 편

    이다.

    ①두 茂山이 여기서 十里란다 / 붓두막엔 이글이글 드덕불도 타리라 / 나

    려서 아즈머님네와 감자를 버끼며 이야기하며 / 이야기하며 버끼며 이 밤을

    새고 가고 싶다.

    - 전문

    ②물레방아가 멈춰 선날 밤 / 아버지는 번연히 도라오지 못할 아들이 /

    도라오는 꿈을 꾸면서 눈을 감엇단다 // 마을에서는 / 구두소리가 뜰악에

    요란하던 그날 밤 일도 / 불빛이 휘황하던 會館의 일도 모르는 아이들이 /

    어머니의 잔소리만 드르면서 자라난다

    - 전문

    ③「풋뽈」대신에 소 膀胱을 굴리다가도 / 끝내 저녁을 먹으라는 어머니

    의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 아이들은 지처서 도라와서 새우처럼 꼬부라저

    잠이든다.

    - 전문

    위의 작품들은 여행에서 느낀 소박한 감정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①에

    는 여행자가 느끼는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따뜻한 부뚜막이 있는 부엌에서

    감자나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간결하게 표현되어있

    다.

    ②와 ③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②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외압에 의해 깨어져버린 마을의 평화와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

    습이다. ‘구두소리’가 요란했다는 말과 ‘불빛이 휘황하던 會館의 일’이라는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마을의 가장들이 징용이나 징병에 강제 동원되어

    가거나 어떠한 문제로 순사에게 연행되어간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늙으신 아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25

    - 125 -

    버지는 그렇게 붙들려간 아들이 못 돌아올 줄 알면서도 임종을 당하매, 자식이

    돌아오는 꿈을 꾸며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의 잔소리 즉 어머니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고 있다. 시인은 어떠한

    외부적 사건 때문에 한 마을의 평화와 공동체적 삶이 깨지고 만 사례를 담담하

    게 묘사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례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작품화 했다는 것

    만으로도 깊은 동정과 연민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③은 ②에

    이어지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편모의 가정에서 살림이 넉넉지 않다보니 축구공

    은 고사하고 아이들 저녁도 챙길 수가 없다. 저녁도 거른 아이들은 시장기에

    지쳐 일찍 잠이 든다. ‘새우처럼 꼬부라져’ 잠든 아이들의 모습에 애잔함이 묻

    어난다.

    여기에서 이러한 연민은 어떠한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고찰해 볼 필

    요가 있다. 위에서 살핀 대로 여행은 시인을 ‘이방인’으로 인식하게 한다. 어떻

    게 보면 오랜 일본 유학 생활을 경험한 김기림에게는 조선 자체가 낯선 이국적

    풍경으로 비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비참한 현실은 시인에게 거리를 발

    생시켰을 것이고, 거기에서 나오는 감정인 연민은 부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자신은 그러한 비참한 현실에 처해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자각, 그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연민을 품게 할 수 있었다.25)

    ④大陸은 이 간사한 혀끝이 보기시려서 / 스무나문발 江물로 갈라 노았

    다. / 그럴바엔 아주 바다에나 집어던지지 / 그랫드면 오늘 와서 딴 소리는

    없었을 것을-

    - 전문

    김기림의 모더니즘, 즉 주지주의적 문학론이 지닌 한계를 우리 민족이 처한

    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부족했다는 데에서 찾는 연구에 따르

    면, 김기림의 문명비판은 식민지 근대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근대 보편이 내포하

    고 있는 모순들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26) 그리하여 민족의 특수성을 인식하지

    25) 조해옥은 김기림의 시에서 ‘빈민의 시’를 찾아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존재하는

    비참한 지점을 드러낸다고 설명한 바 있다. (조해옥, ,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23집, 2004, 6. 참고)

    26) 장인수, , (반교어문학회, ≪반교어문학≫,

  • 126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26 -

    못한 일종의 제스처만 취하는 민족주의자라는 것이다.

    ④에서는 한반도를 ‘간사한 혀끝’이라고 표현하며 ‘아예 바다에나 집어던’져

    야 했다고 하는 과격한 발언을 하고 있다. 아무리 식민지 현실에 비감했다 하

    더라도 조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조선에서 한 발 빼놓은 이방인의 입

    장이 아니고서는 불가하다. 김기림에게 있어서 조선 혹은 고향은 죽음과 이별

    로 점철된 고통의 장소였다. 그는 이 침울을 벗고 명랑과 쾌활을 얻기 위해 필

    사적으로 노력하는 ‘탈향’ 의지를 품게 된다. 더불어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

    을 표방하는 지향성은 그의 오랜 유학 생활로 확인할 수 있다.27) 그러한 그에

    게 있어서 이제 조선은 이국적 풍경이 된 것이다. ④에서는 이렇게 애써 획득

    한 타자의 시선으로 식민지 조국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28)

    15권, 2003), 182쪽 참고.

    27) 엄성원, ,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

    문학이론과 비평≫, 제23집, 2004, 6, 57-58쪽 참고.

    28) 그런데 김기림의 기행시들이 취하고 있는 형식은 왜 이렇게 짧기만 한 것일까

    에 관한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하나의 근거를 추리해 보자면, 그 이유

    는 앞서 거론했던 김기림의 약력과 상관이 있어 보인다. 김기림은 신문 기자로

    서 실제 취재 여행을 많이 다녔다. 조영복은 김기림의 언론 활동과 초기 글들

    을 살피는 장에서, 이라는 시와 이라는 기사문과

    의 연관성을 밝힌 바 있다.(조영복,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11호, 2004, 378쪽 참고.) 신문 기자로서 취재

    차 여행을 다니면서 떠오른 단상을 시로 옮기다 보니 짧은 형식의 시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신문 기사는 짧고 간결하게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

    는 글인데, 그러한 글을 쓰는데 익숙한 시인이다 보니 여행 과정의 기록인 기

    행시가 간결하고 집약적인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시집 태양의 풍속 서문에서, 김기림은 자신의 시를 ‘숙박부’에 비유한 바 있다. 숙박부는 여행자의 기록이며, 지나고 나면 잊혀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기자가 기사를 쓰는 심정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신문 기

    사는 뉴스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른 전달과 보고를 위한 기사문 쓰기는 김기림의 짧은

    시 형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27

    - 127 -

    Ⅳ. 낭만, 부끄러움의 발견 - 백석

    백석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사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1930년대

    뿐만이 아니라 근대 시사 전반을 통틀어 표준어나 인공적인 시어를 구사하지

    않고 방언을 자연스럽게 살려 쓴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29) 평북지역의

    방언이 작위적이라 할 만큼 사용되고 있는 점, 평북의 토속적 풍습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감각적 이미지를 구사하여 모더니즘 기법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 등

    이 백석 시 세계에 대해 잘 알려진 인상이다.30)

    이러한 백석의 시 세계에서 기행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백석의 기행시

    범주에는 국내를 여행하고서 그 감상을 시로 남긴 것과 1939년부터 광복 시기

    까지의 만주 유랑 생활에서 남긴 작품들을 넣을 수 있다. 우선 순수한 의미에

    서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국내 여행 후에 쓴 시를 살펴본다.

    ①녯날엔 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港口의 처녀들에겐 녜날이 가지 않은

    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客主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 전문

    ②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山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馬山 客主집의 어린 딸은 蘭이라는 이 같고

    29)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최정례, ,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제13호, 2005.’를 참고할 것.

    30) 송기한, ,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

    국문학이론과 비평≫, 제21집, 2003, 12) 284-285쪽 참고.

  • 128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28 -

    - 중에서(咸州詩抄에 수록된 작품)

    위의 두 작품은 모두 경남 통영을 여행하면서 겪은 체험을 창작으로 연결한

    시들이다. ①은 백석의 언어미학이 보여주는 미감을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

    한 바닷가에서 느낄 수 있는 갯내음과 ‘김냄새 나는 비’를 연결하여 감각적 비

    유가 뛰어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②는 ①에 비해서는 소란한 생동감이 느껴

    지는 시이다. 새벽에 배가 들어오는 어촌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

    본말 잘하는 영감이나 어장주에게 시집가려는 처녀들을 통해서, 일본의 근대

    자본주의가 도래해있는 개항의 면모를 눈치 챌 수 있긴 하지만, 식민지 조국의

    암울함보다는 흥성거리는 마을의 느낌이 먼저 전달된다. 그 속에서 시인이 여

    인들의 이름을 떠올림으로써 시적 분위기는 더욱 부드러워진다. ①과 ②를 통

    해서 백석은 여행의 낭만을 그리고 있다. 먼 곳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여행자의

    자유로운 심정은 쉽게 로맨스를 꿈꾸기도 하고, 여행지의 분위기에 동화되기도

    한다. 시인은 통영에 대한 감상을 뛰어난 비유와 구체적 표현을 통해서 낭만적

    으로 표현하고 있다.

    ③솔포기에 숨었다 / 토끼나 꿩을 놀래주고 싶은 山허리의 길은 // 엎데

    서 따스하니 손 녹히고 싶은 길이다 // 개 더리고 호이호이 회파람 불며 /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 중에서

    ④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

    로운 거리다 / (중략) /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

    난하니

    - 중에서

    시인은 ③과 ④의 작품에서도 여전히 따스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일관해

    간다. 산길을 걷다가도 ‘엎데서 따스하니 손 녹히고 싶’어질 정도이며,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느낌을 받고 있다. 비록 가난한 마을이지만

    ‘따사로히 가난’하다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여행자로서의 시인은

    실제의 생활에 깊숙이 개입하기 보다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적막하고 평화로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29

    - 129 -

    운 마을의 모습에 낭만적으로 접근할 뿐이다.

    그러나 풍경에 대한 이러한 낭만적 묘사는 일본이 가르쳐준 근대에 익숙해

    져버린 시인의 태도를 반영한다. 그저 있는 대로일 뿐인 풍경이, 시인의 눈에는

    시적 풍경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백석에게 조선의 현실은 발견의 대상으로 여

    겨지고 있기에, 거기에서 낭만을 꿈꿀 수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던 모국어인 방

    언이 의식적으로 시에서 ‘선택’되는 순간, 친숙한 것이 오히려 낯설게 되는 ‘의

    식의 전도’가 발생하게 하는 것은 백석의 시적 전략이다.31) 물론 이러한 작업

    역시, 시인 자신은 이미 다른 조선인들과는 변별되는 존재라는 자각, 즉 타자의

    입장에 서있다는 자각 이후에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 태도는, 시인이 국외를 유랑하게 되면서부터는 찾을

    수 없게 된다.32)

    나는 支那나라 사람들과 같이 목욕을 한다/ 무슨 殷이며 商이며 越이며

    하는 나라 사람들의 후손들과 같이 / 한물통 안에 들어 목욕을 한다 / 서로

    나라가 다른 사람인데 / 다들 쪽 발가벗고 같이 물에 몸을 녹히고 있는 것

    은 / 대대로 조상도 서로 모르고 말도 제가끔 틀리고 먹고 입는 것도 모도

    다른데 / 이렇게 발가들 벗고 한물에 몸을 씻는 것은 / 생각하면 쓸쓸한 일

    이다

    - 중에서

    이것은 일제에 의해 支那라고 불리게 된 중국 사람들과 만주의 어느 목욕탕

    에서 같이 목욕을 하게 된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쓴 시이다. 민족이 다른 사람

    들이 섞여서 목욕을 하다 보니 조국의 현실이 떠올랐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쓸쓸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을 것이다. 백석은 국내에서의 여행과 같은 기분

    을 국외에서는 느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만주 체험은 백석에게 여행이라기

    31) 이기성, , (민족문학사학회, ≪민족문학

    사연구≫, 제22집, 2003, 279쪽 참고.

    32) 오양호는 일제 강점 말기, 1930년대 후기에 마도강(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시인

    들을 ‘북방파’로 명명한다. 거기에는 오장환, 유치환, 이용악, 이찬, 박팔양, 이설

    주, 이서해, 백석, 김달진 등이 해당한다.(오양호, - 한국문학회, ≪한국문학논총≫, 제35집, 2003, 12,

    163-164쪽 참고)

  • 130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30 -

    보다는 유랑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백석이 39년 이후에 만주에

    정착한 이유가 해명되지는 못 했지만,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는 그 선택

    의 배후에는 자조와 수치심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만주에서 여행이 아

    닌 유랑 및 임시 거주를 하게 되었기에, 여행자의 낭만보다는 생활인의 노고를

    시 세계에서 표출하게 된다.

    老王은 집에 말과 나귀며 오리에 닭도 우을거리고 / 고방엔 그득히 감자

    에 콩곡석도 들여 쌓이고 / 老王은 채매도 힘이 들고 하루종일 百鈴鳥 소리

    나 들으려고 / 밭을 오늘 나한테 주는 것이고 / 나는 이젠 귀치 않은 測量

    도 文書도 싫증이 나고 / 낮에는 마음놓고 낮잠도 한잠 자고 싶어서 /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老王한테 얻는 것이다

    - 중에서

    실제로 백석은 1941년 만주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측량서기 및 보조원을 하

    다가 소작농이 되었던 기록이 있다.33) 백석은 영문학을 전공한 당대 지식인이

    지만,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절망적이

    고 자학적인 감정에 빠졌을 것이다. 시 구절대로 아전노릇밖에 되지 않는 측량

    보조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겠다는 심정은 시 전편에서 홀가분한 심정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자조적 심사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또한 이 시는 조선에

    서와 마찬가지로 만주에서도 측량 사업을 핑계로 일제의 토지 침탈이 실행되

    고 있었던 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백석의 만주 체험을 담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인 라는

    시에서, 시인은 유랑 생활에서의 ‘부끄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때 /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 다만 게을리 먼 앞

    대로 떠나 나왔다 /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 아

    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시인이 알아야 할 부끄러움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의 현실적

    33) 이동순 편, 백석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7, 연보 참고.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31

    - 131 -

    입장인 것이다. 수치심이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사르

    트르는 타자의 시선이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예화를 들어 그 개념을 설명한 바

    있다. 누군가가 문구멍을 통해 방 안을 엿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어

    떠한 소리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자의 시

    선을 의식하는 순간, 바라보는 주체라고 여겼던 그는 갑자기 보여지는 대상으

    로 전락하게 되고, 여기에서 수치심은 발동한다. 그런데 백석의 수치심에는 그

    러한 의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아

    야 하는 데에서 오는 수치심 외에, 식민지 조선에서 떠나온 유랑민이라는 정체

    성의 혼란이 초래한 수치심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Ⅴ. 결론

    정지용, 김기림, 백석, 이들 세 시인은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를 체험하였

    다. 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근대 문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익숙해져

    갔을 것이고, 근대의 눈으로 보았을 때 낙후된 조선의 현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고국에 돌아와서 느끼는 감정은 이방인의 그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의 기행시는, 식민지 풍경의 재구성인 것이다. 정지용

    은 타자의 담론인 동양주의로 회귀했고, 김기림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조선의

    풍경을 작품화 하였다. 백석은 부끄러움에 대한 자기 위안적 태도로 국내외 풍

    경을 묘사하고 발견으로서의 방언을 작품에서 사용한다.

    세 시인은 기행시를 쓰면서 조선에는 여전히 낯선 의미였던 여행을 일상화

    하는데 일조하였다. 여행이 시 창작에 선행하기 보다는 기행시를 통해 여행이

    나 여행과 관련되는 근대적 풍경을 호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행’이라

    는 의미가 여전히 근대적 문물로 발견되는 자리에서 세 시인이 조선에 동화되

    기 보다는 근대화된 타자의 시선을 답습하는 데 머물렀다는 점은 비판거리가

    된다고 본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각 시인들이 남긴 기행문이나 기사문, 평문 등과의

    비교 연구를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시인들의 전체 작품

  • 132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32 -

    세계에서 그들의 기행시만이 갖는 의의를 찾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주제어 : 근대 기행시, 여행, 산수, 동양주의, 향수, 이방인, 정체성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33

    - 133 -

    참고문헌

    1. 일차 문헌

    정지용전집 1,2권, 민음사, 1988.김기림전집 1.2.3.4.5.6권, 심설당, 1988백석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7.≪대한매일신보≫

    2. 이차 문헌

    양왕용, 정지용시연구, 삼지원, 1988.김현주, 한국 근대 산문의 계보학, 소명출판, 2004.박천홍,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산처럼, 2003.김신정, 정지용 문학의 현대성, 소명출판, 2000.정순진 편, 김기림, 새미, 1999.가라타니 고진, 박유하 옮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민음사, 1997.고봉준,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13호,

    2005, 129-156쪽)

    김수이, (현대문학이론학회, ≪현

    대문학이론연구≫ 23집, 2004, 12, 27-53쪽)

    김용직,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7호,

    2002, 7-18쪽)

    김은철,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한국문예비평연구≫, 2005,

    1, 85-102쪽)

    김종태,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7호, 2002,

    109-140쪽)

    박경수, (한국문학회, ≪한국문

    학논총≫ 30집, 2002, 6, 87-124쪽)

    박순원,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9호, 2003, 109-137쪽)

  • 134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34 -

    서준섭,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

    구≫ 13호, 2005, 7-49쪽)

    손진은,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

    문학이론과 비평≫, 2004, 9, 323-349쪽)

    송기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003, 6, 36-55쪽)

    송기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

    문학이론과 비평≫, 2003, 12, 283-305쪽)

    엄성원,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

    문학이론과 비평≫, 2004, 6, 51-77쪽)

    오성호,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7호, 2002, 163-194쪽)

    오세영, (한국현대문학회, ≪한국현대문학연

    구≫ 12집, 2002, 245-290쪽)

    오양호, (한국문학회, ≪한

    국문학논총≫ 35집, 2003, 12, 163-186쪽)

    오양호, (한민족어

    문학회, ≪한민족어문학≫ 45집, 2005, 1, 537-578쪽)

    윤의섭, (한국시학회, ≪한국시

    학연구≫ 9호, 2003, 207-242쪽)

    이기성, (민족문학사학회, ≪민족문학

    사연구≫ 22집, 2003, 277-302쪽)

    이민호,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

    국문학이론과 비평≫, 2004, 6, 78-97쪽)

    이숭원,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9호, 2003, 243-275쪽)

    장도준, (배달말학회, ≪배

    달말≫, 2002, 12, 239-267쪽)

    장인수, (반교어문학회, ≪반교어문학≫ 15

  •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 135

    - 135 -

    권, 2003, 179-204쪽)

    정명호, (한국국어교육학회, ≪새국어교

    육≫ 64호, 2002, 9, 319-334쪽)

    조영복,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

    구≫ 11호, 2004, 357-385쪽)

    조해옥,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004, 6, 98-118쪽)

    진순애, (한국비교문학회, ≪비교문학≫, 2003, 2,

    205-227쪽)

    최정례,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

    구≫ 13호, 2005, 51-89쪽)

    최동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민

    족문화연구≫ 19집, 1986)

    한상규, (한국학보, ≪한국학보≫, 1994, 1,

    149-174쪽)

  • 136 한국문학논총 제42집

    - 136 -

    The Study on the Korean Travel-Poetry

    (1920-1930)

    Kim, Young-Ju

    In the early part of the 20th century, the traffic nets and the typographic

    work had been developed in Korea. So, what is called 'modern travel'

    appeared. The idea of 'travel' is not natural. First of all, we need enough

    social system, in the next place we can have the consciousness of modern

    travel. It has the same meaning in literature. Travel does not lead to

    travelogue(travel-literature), but travelogue lead to travel.

    In this thesis, I studied on the Korean travel-poetry. Among the lots of

    Korean modern poets, I selected the three of famous poets(1920-1930) -

    Jeong Jiyong(정지용), Kim Kirim(김기림), Baek Suk(백석).

    They had experienced the modern life style during studying in Japan. The

    three poets had been familiar with modern life style, so they forgot the

    Korean traditional mood, memory, and life style, step by step. And so on

    they changed to strangers in Korea.

    I find the feeling of stranger in their travel-poetry. Jeong Jiyong got to

    Orientalism finally. Kim Kirim wrote poetry of stranger feeling about

    Korean landscape and life. Baek Suk showed his confusion of identity in his

    poetry of travel and vagrancy. In other words, their travel-poetry is exposed

    the reconstruction of colonization scenery.

    Key Words : modern travel-poetry, travel, landscape, Orientalism, nostalgia,

    stranger, identity

    1920-1930년대 기행시 연구Ⅰ. 서론Ⅱ. 산수, 동양이라는 미명 - 정지용Ⅲ. 향수, 이방인의 시선 - 김기림Ⅳ. 낭만, 부끄러움의 발견 - 백석Ⅴ. 결론참고문헌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