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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 번역사와 우리의 근대성 * 105) 20세기 초엽부터 1953년까지를 중심으로 홍 영 두(한국철학사상연구회) <요약문> 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의 번역 수용사를 다룬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및 꼬뮤니즘 운동의 탄생지성장지가 근대 유럽 사회였던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식민지 근대 하의 조선인들에게 외래사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서양에서 발원 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민 피지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 근대 사회 의 공론영역에 수용되었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대한 독서가 공론 영역에 서 이루어지고 여론 또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점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수용사에 대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에 대한 번역 작업을 탐색하는 데서 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방적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대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이다. 번역은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접촉 행위이다. 그 접촉은 전 통을 변화시킨다. 이 점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를 우리가 또 다시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흔적이 우리글 번역어에 배어 있다. 하지만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여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대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역사적 실정성을 구성했다. 그 렇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이 우리글 번역어에도 고스란 히 이전된 식민 잔재의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면서 연구한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사 상 원전에 대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검토하며, 누가 어떤 동기로 원전을 번역했는 지, 번역 대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전의 내용과 우리의 시대 상황 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중심으로 원전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 기적 특징, 번역과 시대 상황의 관계, 그리고 번역이 미친 영향력 범위를 검토하고자 했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에 대한 * 이 논문은 2002년도 기초학문 육성 인문사회분야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2002-073-AM1024)에 의한 것임.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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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thoughts of Marx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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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 번역사와

우리의 근대성105)

20세기 초엽부터 1953년까지를 중심으로홍 영 두(한국철학사상연구회)

lt요약문gt

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의 번역 수용사를 다룬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및 꼬뮤니즘 운동의 탄생지성장지가 근 유럽 사회 던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식민지 근 하의 조선인들에게 외래사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서양에서 발원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민 피지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 근 사회의 공론 역에 수용되었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한 독서가 공론 역에서 이루어지고 여론 또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점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수용사에 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에 한 번역 작업을 탐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방적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이다 번역은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접촉 행위이다 그 접촉은 전통을 변화시킨다 이 점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를 우리가 또 다시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흔적이 우리글 번역어에 배어 있다 하지만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여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역사적 실정성을 구성했다 그렇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이 우리글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전된 식민 잔재의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면서 연구한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사상 원전에 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검토하며 누가 어떤 동기로 원전을 번역했는지 번역 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전의 내용과 우리의 시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중심으로 원전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기적 특징 번역과 시 상황의 관계 그리고 번역이 미친 향력 범위를 검토하고자 했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에 한

이 논문은 2002년도 기 학문 육성 인문사회분야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2002-073-AM1024)에 의한 것임

56 시 와 철학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적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적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및 사회역사철학의 형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지 또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점이었는지에 관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 제 서양철학 사회정치철학 역사철학 한국근대철학

검색어 근대성 근대철학 근대학문 철학사전 번역어 공론영역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7

1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과 그 번역 수용의 문제일본 제국주의 통치하 우리의 식민 피지배 경험은 우리가 원한 것도 아니며

거부하고 망각하고 싶은 과거이기 때문에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형성되

었던 우리의 근 성 안에서 오직 부정 요소만 들추어 내고자 하거나 아무런

정 요소도 발견하지 않으려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우리는 가지기 십상이

다 우리의 근 성은 동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침략에 항했던 항 이념조차 서구 외래사

상의 수용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우리의 통과 괴리되어 있는 이질 이

고 왜곡되고 굴 된 근 성으로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식민 피지배 상

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의 근 는 쉽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요한 역사의 lsquo흔 rsquo을 담고 있다 식민지에 거주했던 우리 근 인의 행 는

우리의 근 사 속에 정 이건 부정 이건 그 lsquo흔 rsquo을 남겨 놓았으며1) 그

흔 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구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에 한 답을 찾

기 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식민지에 거주했던 우리 근 인의 정체성 즉 근

성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일제의 지배를 받던 우리의 근 사회에서 지배 인 항

이념이었고 우리 근 인의 정체성 형성에 큰 향을 미친 외래사상이었다 우

리 근 인은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수용변용하면서 식민 피지

배 상황을 극복하려 노력했고 우리의 근 문화 근 학문을 기획했다 따

라서 우리의 통 속에서 발생하지 않은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

민 피지배 근 사회에 왜 수용되었는가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우리는 묻

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동기와 경로를 번역의 에서

물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수용사

를 번역의 에서 다루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건 닌주의건 할 것 없이 이들 철학과 꼬뮤니즘 운동의 탄생

지 성장지가 근 유럽 사회 던 에서 양 사상은 식민 피지배 상황의 조

선인들에게 외래사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변 하려는 꼬뮤니즘 운동을 주도한 실천 변

이념의 철학 토 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의 사상이 마르크스주의라

1) 논자는 강내희 교수의 ldquo흔 rdquo 개념에 공감한다 강내희 (2001) 206쪽 인용 논자는 서

구 근 성과의 을 번역의 에서 서술한 강내희 (2002)에서 많은 시사를 받았다

특히 81-97쪽

58 시 와 철학

고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창시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내 모순의 한복 에서 탄생하 으며 그 에 있어

서 태생상 근 서구 사회와 뗄 야 뗄 수 없는 연 을 가진 사상운동과 변

운동을 분출시켰다 그 분리될 수 없는 연 은 철학사상 측면에서도 분명하

게 드러난다 헤겔이 철학이란 사상으로 악된 그 시 라고 일컬었듯이 마르

크스주의는 실천 유물론과 유물 변증법을 통해 칸트에 의해 완성된 서구 근

세 인식론 정치 자유주의 철학을 복하려고 했던 철학이었다 헤겔이 자

신의 ꡔ역사철학강의ꡕ에서 칸트의 철학을 랑스 명의 철학이라고 특징지었

듯이 맑스와 엥겔스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집필과 더불어 칸트 철학을 환상으

로서의 이데올로기라고 비 했던 은 그들 두 사람이 헤겔의 철학사 이해

를 공유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랑스 자코뱅당이 루소의 이념을 명의 이

념으로서 실 속에 실 시키고자 시도했다면 칸트는 루소의 이념 랑스

명의 이념에 한 독일 철학화를 시도했고 독일의 국가철학을 형성시켰다

랑스 명은 정치 변 으로서 실 으로 일어났던 반면에 독일 명은

철학의 변 으로서 념 으로 일어났고 독일 국가철학으로 완성되었다 맑스

는 랑스 명을 미완성 명으로 간주했고 미완성 명의 반 으로서의 독

일 국가철학의 완성에 한 비 과 복을 시도했다 복의 이념은 바로 실천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칸트 철학에서 시작된 독일

념론 철학 통과 정면 결을 벌 던 맑스와 엥겔스의 철학은 근 유럽 철

학사상 통과 유럽 사회 배경 그리고 독일의 철학 실을 떠나서는 탄생

할 수 없었고 이해될 수도 없다 닌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닌 단계를

특징짓는 사회 변 이념으로서 러시아 볼셰비키의 이념이었고 닌 사후 스

탈린에 의해 제국주의 시 의 맑스주의로 재정의되었다 닌은 꼬뮤니즘이

제국주의지배로부터의 식민지 민족해방을 자극한다고 보았지만 세계 명의

심은 유럽이라고 굳게 믿었다2)

이처럼 서양에서 발원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민 피지배 상

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 근 사회의 공론 역에 1920년부터 표면에 드러나는

형태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공론 역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세력과 그

결탁 토착지배계 ( ) 식민지 조선의 민 과 지식인 간의 립 선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근 사회의 공론 역은 인쇄 매체를 매

개로 사상단체를 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우리의 식민 피지배 상황에도 동

2) 닌에 해서는 오세철 ꡔ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ꡕ 212쪽( 장에서 미래를

1996)을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9

일하게 용된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한 독서가 공론 역에서

이루어지고 여론 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수용사에 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작업을 탐

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좁은 의미의 번역 행 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는 것을 뜻하지만 넓

은 의미의 번역 행 는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모국어로 읽는 독서 행

까지 포함한다 번역은 해당 사회의 공론 역에서 외래사상을 수용하는 행

까지 뜻한다고 볼 때 독서도 번역 행 이다 그 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

방 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ldquo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rdquo3)이다 번역은 통 문화와 외래문화의 행 이다 그리고 그 은

통을 변화시킨다

이 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의 핵심 용어에 한 우리 번역어는 부분 일역어에서 유래하 다 이는

식민지 잔재의 흔 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용어 번역은 이 으

로 굴 되어 수용된 역사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

를 우리가 다시 일역어를 수입한 흔 이 우리 번역어에 배어 있는 것이

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철학 수용에서도 유

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번역은 ldquo의미의 풍부화rdquo여서 마르크스주의 철

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ldquo역사 실정성rdquo을 구성했다4) 그 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 이 우리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식민 잔재의 흔

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해서

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 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에서 논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의 우리 번역사에 근한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닌 스탈린의 철학사상 원 에 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검토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면서 가 어떤 동기에 의해 원

을 번역했는지 번역 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 의 내

용과 우리의 시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심으로 원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기 특징 번역과 시 상황의 계 그리고 번역

이 미친 향력 범 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

3)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2001) 「서문」 인용

4) 야나부 아키라 (2003) 180쪽 인용 강내희 (2002) 93쪽 인용

60 시 와 철학

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

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사회역사철학의 형

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

지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 이었는지에 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망한다5)

논자가 조사한 1920년 부터 53년까지 이루어진 번역물 개수와 원 종류

수는 략 다음과 같다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개수는 20편 이상이며

원 종류수는 30종 이상일 것으로 확인되었다 닌의 원 번역물은 9편 이

상이며 스탈린에 한 것이 총 4편 이상이며 양자의 원 종류수는 10종 이상

일 것으로 확인되었다6) 원 인용구 이 담긴 소논문이나 단편 인 은 무

수히 많다 원 번역물 이외에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번역물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단편 인 소논문은 정리하

기 힘들 정도로 다른 서양철학 분야 문헌보다 압도 으로 단히 많다7) 1953

년까지의 원 번역물을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Ⅰ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1 맑스 엥겔스 ꡔ유물사 요령기ꡕ 윤자 역 아성 1호 1921

2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모스크바 한인공산당 1921

3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상해 한인공산당 1921

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공산당( 립 ) 1921

5 맑스 엥겔스 「유물사 개요」 신백우 역 ꡔ공제ꡕ 7호 1921 4

6 맑스 엥겔스 「惟物史觀의 槪要」 一記 역 ꡔ今至ꡕ 제1권 제3호 1922 12

5) 지 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원 번역 작업이 제 로 조사검

토되지 않았고 연구되지도 않았다 이 작업은 정문길 교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정문길

(1998) 참고) 논자는 그의 작업을 좀더 세 하게 보충하고자 한다

6) 논자가 여기서 lsquo이상rsquo으로 표 한 것은 서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의 범 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7) 자세한 사항은 뒤에 실려 있는 특집호 부록의 ldquo서양철학 자료 총목록rdquo을 참고하기 바란

다 서양철학 문헌 목록표의 560여종의 번역물 에서 300여종의 이 마르크스주

의에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1

7 맑스 엥겔스 「유물사 요령기」 일당 역 조선일보 1924 1 9-11 3회

8 맑스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역 사상운동 6호 1925

9 맑스 ꡔ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ꡕ(ꡔ공산당선언ꡕ의 제3 번역-논자 주석)

사상운동 1호 1925

10 엥겔스 ꡔ과학 사회주의ꡕ 신춘 역 사상운동 6호(제2권 1호) 1925 8 1

11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ꡕ 송언필 역 조선지 75호

1928

12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2)ꡕ 송언필 역 조선지 76호

1928

13 맑스 ꡔ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ꡕ 소철인 역 신흥 제7호

1932

1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노동 선편집부 노동 선사 1945

15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좌익서 출 의회원 신인사 번역발행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 1945 12 1 발행1946 5 10

개정 발행

16 맑스 ꡔ임노동과 자본ꡕ 원배 역 성출 사 1946

17 맑스 엥겔스 공 ꡔ藝術論ꡕ 박찬모 역 건설출 사 1946

18 맑스 ꡔ자본론ꡕ 최 철 석담 허동 공역 서울출 사 1947

19 맑스 ꡔ經濟學 批判序說ꡕ 홍두표 역 정음사 1948

20 엥겔스 ꡔ反듀링그論 -哲學 篇-ꡕ 원배 역 성출 사 1948

Ⅱ 레닌과 스탈린의 원전 번역물1 닌 「노농 로서아의 교육」 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2 닌 ꡔ로서아청년에게ꡕ 사상운동 제2권 제5호 정14년 10월 1926

3 닌 ꡔ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ꡕ 이론투쟁 총3호 1927

4 스탈린 ꡔ동양해방운동에 하여ꡕ 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7

5 닌 ꡔ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여ꡕ 이론투쟁 3월호 1928

6 스탈린 ꡔ 하의 국제정세에 하여ꡕ 단계(1928년 8월호 창간호) 1928

7 닌 ꡔ맑스주의 사 발 의 특징에 한 약간의 고찰ꡕ 단계 창간호

1928

8 스탈린 ꡔ 닌주의의 기 ꡕ 김창진 역 비 7호 1931

9 스탈린 ꡔ中國革命의 展望ꡕ 朝鮮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

10 닌 ꡔ史的唯物論體系 後篇 上ꡕ 정일연 역 삼성사 1946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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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56 시 와 철학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적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적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및 사회역사철학의 형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지 또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점이었는지에 관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 제 서양철학 사회정치철학 역사철학 한국근대철학

검색어 근대성 근대철학 근대학문 철학사전 번역어 공론영역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7

1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과 그 번역 수용의 문제일본 제국주의 통치하 우리의 식민 피지배 경험은 우리가 원한 것도 아니며

거부하고 망각하고 싶은 과거이기 때문에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형성되

었던 우리의 근 성 안에서 오직 부정 요소만 들추어 내고자 하거나 아무런

정 요소도 발견하지 않으려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우리는 가지기 십상이

다 우리의 근 성은 동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침략에 항했던 항 이념조차 서구 외래사

상의 수용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우리의 통과 괴리되어 있는 이질 이

고 왜곡되고 굴 된 근 성으로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식민 피지배 상

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의 근 는 쉽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요한 역사의 lsquo흔 rsquo을 담고 있다 식민지에 거주했던 우리 근 인의 행 는

우리의 근 사 속에 정 이건 부정 이건 그 lsquo흔 rsquo을 남겨 놓았으며1) 그

흔 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구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에 한 답을 찾

기 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식민지에 거주했던 우리 근 인의 정체성 즉 근

성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일제의 지배를 받던 우리의 근 사회에서 지배 인 항

이념이었고 우리 근 인의 정체성 형성에 큰 향을 미친 외래사상이었다 우

리 근 인은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수용변용하면서 식민 피지

배 상황을 극복하려 노력했고 우리의 근 문화 근 학문을 기획했다 따

라서 우리의 통 속에서 발생하지 않은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

민 피지배 근 사회에 왜 수용되었는가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우리는 묻

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동기와 경로를 번역의 에서

물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수용사

를 번역의 에서 다루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건 닌주의건 할 것 없이 이들 철학과 꼬뮤니즘 운동의 탄생

지 성장지가 근 유럽 사회 던 에서 양 사상은 식민 피지배 상황의 조

선인들에게 외래사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변 하려는 꼬뮤니즘 운동을 주도한 실천 변

이념의 철학 토 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의 사상이 마르크스주의라

1) 논자는 강내희 교수의 ldquo흔 rdquo 개념에 공감한다 강내희 (2001) 206쪽 인용 논자는 서

구 근 성과의 을 번역의 에서 서술한 강내희 (2002)에서 많은 시사를 받았다

특히 81-97쪽

58 시 와 철학

고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창시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내 모순의 한복 에서 탄생하 으며 그 에 있어

서 태생상 근 서구 사회와 뗄 야 뗄 수 없는 연 을 가진 사상운동과 변

운동을 분출시켰다 그 분리될 수 없는 연 은 철학사상 측면에서도 분명하

게 드러난다 헤겔이 철학이란 사상으로 악된 그 시 라고 일컬었듯이 마르

크스주의는 실천 유물론과 유물 변증법을 통해 칸트에 의해 완성된 서구 근

세 인식론 정치 자유주의 철학을 복하려고 했던 철학이었다 헤겔이 자

신의 ꡔ역사철학강의ꡕ에서 칸트의 철학을 랑스 명의 철학이라고 특징지었

듯이 맑스와 엥겔스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집필과 더불어 칸트 철학을 환상으

로서의 이데올로기라고 비 했던 은 그들 두 사람이 헤겔의 철학사 이해

를 공유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랑스 자코뱅당이 루소의 이념을 명의 이

념으로서 실 속에 실 시키고자 시도했다면 칸트는 루소의 이념 랑스

명의 이념에 한 독일 철학화를 시도했고 독일의 국가철학을 형성시켰다

랑스 명은 정치 변 으로서 실 으로 일어났던 반면에 독일 명은

철학의 변 으로서 념 으로 일어났고 독일 국가철학으로 완성되었다 맑스

는 랑스 명을 미완성 명으로 간주했고 미완성 명의 반 으로서의 독

일 국가철학의 완성에 한 비 과 복을 시도했다 복의 이념은 바로 실천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칸트 철학에서 시작된 독일

념론 철학 통과 정면 결을 벌 던 맑스와 엥겔스의 철학은 근 유럽 철

학사상 통과 유럽 사회 배경 그리고 독일의 철학 실을 떠나서는 탄생

할 수 없었고 이해될 수도 없다 닌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닌 단계를

특징짓는 사회 변 이념으로서 러시아 볼셰비키의 이념이었고 닌 사후 스

탈린에 의해 제국주의 시 의 맑스주의로 재정의되었다 닌은 꼬뮤니즘이

제국주의지배로부터의 식민지 민족해방을 자극한다고 보았지만 세계 명의

심은 유럽이라고 굳게 믿었다2)

이처럼 서양에서 발원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민 피지배 상

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 근 사회의 공론 역에 1920년부터 표면에 드러나는

형태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공론 역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세력과 그

결탁 토착지배계 ( ) 식민지 조선의 민 과 지식인 간의 립 선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근 사회의 공론 역은 인쇄 매체를 매

개로 사상단체를 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우리의 식민 피지배 상황에도 동

2) 닌에 해서는 오세철 ꡔ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ꡕ 212쪽( 장에서 미래를

1996)을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9

일하게 용된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한 독서가 공론 역에서

이루어지고 여론 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수용사에 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작업을 탐

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좁은 의미의 번역 행 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는 것을 뜻하지만 넓

은 의미의 번역 행 는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모국어로 읽는 독서 행

까지 포함한다 번역은 해당 사회의 공론 역에서 외래사상을 수용하는 행

까지 뜻한다고 볼 때 독서도 번역 행 이다 그 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

방 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ldquo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rdquo3)이다 번역은 통 문화와 외래문화의 행 이다 그리고 그 은

통을 변화시킨다

이 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의 핵심 용어에 한 우리 번역어는 부분 일역어에서 유래하 다 이는

식민지 잔재의 흔 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용어 번역은 이 으

로 굴 되어 수용된 역사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

를 우리가 다시 일역어를 수입한 흔 이 우리 번역어에 배어 있는 것이

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철학 수용에서도 유

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번역은 ldquo의미의 풍부화rdquo여서 마르크스주의 철

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ldquo역사 실정성rdquo을 구성했다4) 그 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 이 우리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식민 잔재의 흔

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해서

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 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에서 논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의 우리 번역사에 근한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닌 스탈린의 철학사상 원 에 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검토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면서 가 어떤 동기에 의해 원

을 번역했는지 번역 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 의 내

용과 우리의 시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심으로 원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기 특징 번역과 시 상황의 계 그리고 번역

이 미친 향력 범 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

3)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2001) 「서문」 인용

4) 야나부 아키라 (2003) 180쪽 인용 강내희 (2002) 93쪽 인용

60 시 와 철학

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

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사회역사철학의 형

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

지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 이었는지에 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망한다5)

논자가 조사한 1920년 부터 53년까지 이루어진 번역물 개수와 원 종류

수는 략 다음과 같다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개수는 20편 이상이며

원 종류수는 30종 이상일 것으로 확인되었다 닌의 원 번역물은 9편 이

상이며 스탈린에 한 것이 총 4편 이상이며 양자의 원 종류수는 10종 이상

일 것으로 확인되었다6) 원 인용구 이 담긴 소논문이나 단편 인 은 무

수히 많다 원 번역물 이외에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번역물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단편 인 소논문은 정리하

기 힘들 정도로 다른 서양철학 분야 문헌보다 압도 으로 단히 많다7) 1953

년까지의 원 번역물을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Ⅰ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1 맑스 엥겔스 ꡔ유물사 요령기ꡕ 윤자 역 아성 1호 1921

2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모스크바 한인공산당 1921

3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상해 한인공산당 1921

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공산당( 립 ) 1921

5 맑스 엥겔스 「유물사 개요」 신백우 역 ꡔ공제ꡕ 7호 1921 4

6 맑스 엥겔스 「惟物史觀의 槪要」 一記 역 ꡔ今至ꡕ 제1권 제3호 1922 12

5) 지 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원 번역 작업이 제 로 조사검

토되지 않았고 연구되지도 않았다 이 작업은 정문길 교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정문길

(1998) 참고) 논자는 그의 작업을 좀더 세 하게 보충하고자 한다

6) 논자가 여기서 lsquo이상rsquo으로 표 한 것은 서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의 범 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7) 자세한 사항은 뒤에 실려 있는 특집호 부록의 ldquo서양철학 자료 총목록rdquo을 참고하기 바란

다 서양철학 문헌 목록표의 560여종의 번역물 에서 300여종의 이 마르크스주

의에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1

7 맑스 엥겔스 「유물사 요령기」 일당 역 조선일보 1924 1 9-11 3회

8 맑스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역 사상운동 6호 1925

9 맑스 ꡔ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ꡕ(ꡔ공산당선언ꡕ의 제3 번역-논자 주석)

사상운동 1호 1925

10 엥겔스 ꡔ과학 사회주의ꡕ 신춘 역 사상운동 6호(제2권 1호) 1925 8 1

11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ꡕ 송언필 역 조선지 75호

1928

12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2)ꡕ 송언필 역 조선지 76호

1928

13 맑스 ꡔ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ꡕ 소철인 역 신흥 제7호

1932

1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노동 선편집부 노동 선사 1945

15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좌익서 출 의회원 신인사 번역발행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 1945 12 1 발행1946 5 10

개정 발행

16 맑스 ꡔ임노동과 자본ꡕ 원배 역 성출 사 1946

17 맑스 엥겔스 공 ꡔ藝術論ꡕ 박찬모 역 건설출 사 1946

18 맑스 ꡔ자본론ꡕ 최 철 석담 허동 공역 서울출 사 1947

19 맑스 ꡔ經濟學 批判序說ꡕ 홍두표 역 정음사 1948

20 엥겔스 ꡔ反듀링그論 -哲學 篇-ꡕ 원배 역 성출 사 1948

Ⅱ 레닌과 스탈린의 원전 번역물1 닌 「노농 로서아의 교육」 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2 닌 ꡔ로서아청년에게ꡕ 사상운동 제2권 제5호 정14년 10월 1926

3 닌 ꡔ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ꡕ 이론투쟁 총3호 1927

4 스탈린 ꡔ동양해방운동에 하여ꡕ 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7

5 닌 ꡔ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여ꡕ 이론투쟁 3월호 1928

6 스탈린 ꡔ 하의 국제정세에 하여ꡕ 단계(1928년 8월호 창간호) 1928

7 닌 ꡔ맑스주의 사 발 의 특징에 한 약간의 고찰ꡕ 단계 창간호

1928

8 스탈린 ꡔ 닌주의의 기 ꡕ 김창진 역 비 7호 1931

9 스탈린 ꡔ中國革命의 展望ꡕ 朝鮮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

10 닌 ꡔ史的唯物論體系 後篇 上ꡕ 정일연 역 삼성사 1946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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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7

1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과 그 번역 수용의 문제일본 제국주의 통치하 우리의 식민 피지배 경험은 우리가 원한 것도 아니며

거부하고 망각하고 싶은 과거이기 때문에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형성되

었던 우리의 근 성 안에서 오직 부정 요소만 들추어 내고자 하거나 아무런

정 요소도 발견하지 않으려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우리는 가지기 십상이

다 우리의 근 성은 동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침략에 항했던 항 이념조차 서구 외래사

상의 수용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우리의 통과 괴리되어 있는 이질 이

고 왜곡되고 굴 된 근 성으로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식민 피지배 상

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의 근 는 쉽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요한 역사의 lsquo흔 rsquo을 담고 있다 식민지에 거주했던 우리 근 인의 행 는

우리의 근 사 속에 정 이건 부정 이건 그 lsquo흔 rsquo을 남겨 놓았으며1) 그

흔 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구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에 한 답을 찾

기 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식민지에 거주했던 우리 근 인의 정체성 즉 근

성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일제의 지배를 받던 우리의 근 사회에서 지배 인 항

이념이었고 우리 근 인의 정체성 형성에 큰 향을 미친 외래사상이었다 우

리 근 인은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수용변용하면서 식민 피지

배 상황을 극복하려 노력했고 우리의 근 문화 근 학문을 기획했다 따

라서 우리의 통 속에서 발생하지 않은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

민 피지배 근 사회에 왜 수용되었는가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우리는 묻

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동기와 경로를 번역의 에서

물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수용사

를 번역의 에서 다루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건 닌주의건 할 것 없이 이들 철학과 꼬뮤니즘 운동의 탄생

지 성장지가 근 유럽 사회 던 에서 양 사상은 식민 피지배 상황의 조

선인들에게 외래사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변 하려는 꼬뮤니즘 운동을 주도한 실천 변

이념의 철학 토 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의 사상이 마르크스주의라

1) 논자는 강내희 교수의 ldquo흔 rdquo 개념에 공감한다 강내희 (2001) 206쪽 인용 논자는 서

구 근 성과의 을 번역의 에서 서술한 강내희 (2002)에서 많은 시사를 받았다

특히 81-97쪽

58 시 와 철학

고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창시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내 모순의 한복 에서 탄생하 으며 그 에 있어

서 태생상 근 서구 사회와 뗄 야 뗄 수 없는 연 을 가진 사상운동과 변

운동을 분출시켰다 그 분리될 수 없는 연 은 철학사상 측면에서도 분명하

게 드러난다 헤겔이 철학이란 사상으로 악된 그 시 라고 일컬었듯이 마르

크스주의는 실천 유물론과 유물 변증법을 통해 칸트에 의해 완성된 서구 근

세 인식론 정치 자유주의 철학을 복하려고 했던 철학이었다 헤겔이 자

신의 ꡔ역사철학강의ꡕ에서 칸트의 철학을 랑스 명의 철학이라고 특징지었

듯이 맑스와 엥겔스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집필과 더불어 칸트 철학을 환상으

로서의 이데올로기라고 비 했던 은 그들 두 사람이 헤겔의 철학사 이해

를 공유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랑스 자코뱅당이 루소의 이념을 명의 이

념으로서 실 속에 실 시키고자 시도했다면 칸트는 루소의 이념 랑스

명의 이념에 한 독일 철학화를 시도했고 독일의 국가철학을 형성시켰다

랑스 명은 정치 변 으로서 실 으로 일어났던 반면에 독일 명은

철학의 변 으로서 념 으로 일어났고 독일 국가철학으로 완성되었다 맑스

는 랑스 명을 미완성 명으로 간주했고 미완성 명의 반 으로서의 독

일 국가철학의 완성에 한 비 과 복을 시도했다 복의 이념은 바로 실천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칸트 철학에서 시작된 독일

념론 철학 통과 정면 결을 벌 던 맑스와 엥겔스의 철학은 근 유럽 철

학사상 통과 유럽 사회 배경 그리고 독일의 철학 실을 떠나서는 탄생

할 수 없었고 이해될 수도 없다 닌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닌 단계를

특징짓는 사회 변 이념으로서 러시아 볼셰비키의 이념이었고 닌 사후 스

탈린에 의해 제국주의 시 의 맑스주의로 재정의되었다 닌은 꼬뮤니즘이

제국주의지배로부터의 식민지 민족해방을 자극한다고 보았지만 세계 명의

심은 유럽이라고 굳게 믿었다2)

이처럼 서양에서 발원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민 피지배 상

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 근 사회의 공론 역에 1920년부터 표면에 드러나는

형태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공론 역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세력과 그

결탁 토착지배계 ( ) 식민지 조선의 민 과 지식인 간의 립 선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근 사회의 공론 역은 인쇄 매체를 매

개로 사상단체를 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우리의 식민 피지배 상황에도 동

2) 닌에 해서는 오세철 ꡔ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ꡕ 212쪽( 장에서 미래를

1996)을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9

일하게 용된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한 독서가 공론 역에서

이루어지고 여론 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수용사에 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작업을 탐

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좁은 의미의 번역 행 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는 것을 뜻하지만 넓

은 의미의 번역 행 는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모국어로 읽는 독서 행

까지 포함한다 번역은 해당 사회의 공론 역에서 외래사상을 수용하는 행

까지 뜻한다고 볼 때 독서도 번역 행 이다 그 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

방 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ldquo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rdquo3)이다 번역은 통 문화와 외래문화의 행 이다 그리고 그 은

통을 변화시킨다

이 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의 핵심 용어에 한 우리 번역어는 부분 일역어에서 유래하 다 이는

식민지 잔재의 흔 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용어 번역은 이 으

로 굴 되어 수용된 역사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

를 우리가 다시 일역어를 수입한 흔 이 우리 번역어에 배어 있는 것이

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철학 수용에서도 유

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번역은 ldquo의미의 풍부화rdquo여서 마르크스주의 철

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ldquo역사 실정성rdquo을 구성했다4) 그 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 이 우리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식민 잔재의 흔

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해서

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 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에서 논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의 우리 번역사에 근한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닌 스탈린의 철학사상 원 에 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검토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면서 가 어떤 동기에 의해 원

을 번역했는지 번역 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 의 내

용과 우리의 시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심으로 원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기 특징 번역과 시 상황의 계 그리고 번역

이 미친 향력 범 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

3)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2001) 「서문」 인용

4) 야나부 아키라 (2003) 180쪽 인용 강내희 (2002) 93쪽 인용

60 시 와 철학

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

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사회역사철학의 형

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

지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 이었는지에 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망한다5)

논자가 조사한 1920년 부터 53년까지 이루어진 번역물 개수와 원 종류

수는 략 다음과 같다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개수는 20편 이상이며

원 종류수는 30종 이상일 것으로 확인되었다 닌의 원 번역물은 9편 이

상이며 스탈린에 한 것이 총 4편 이상이며 양자의 원 종류수는 10종 이상

일 것으로 확인되었다6) 원 인용구 이 담긴 소논문이나 단편 인 은 무

수히 많다 원 번역물 이외에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번역물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단편 인 소논문은 정리하

기 힘들 정도로 다른 서양철학 분야 문헌보다 압도 으로 단히 많다7) 1953

년까지의 원 번역물을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Ⅰ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1 맑스 엥겔스 ꡔ유물사 요령기ꡕ 윤자 역 아성 1호 1921

2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모스크바 한인공산당 1921

3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상해 한인공산당 1921

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공산당( 립 ) 1921

5 맑스 엥겔스 「유물사 개요」 신백우 역 ꡔ공제ꡕ 7호 1921 4

6 맑스 엥겔스 「惟物史觀의 槪要」 一記 역 ꡔ今至ꡕ 제1권 제3호 1922 12

5) 지 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원 번역 작업이 제 로 조사검

토되지 않았고 연구되지도 않았다 이 작업은 정문길 교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정문길

(1998) 참고) 논자는 그의 작업을 좀더 세 하게 보충하고자 한다

6) 논자가 여기서 lsquo이상rsquo으로 표 한 것은 서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의 범 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7) 자세한 사항은 뒤에 실려 있는 특집호 부록의 ldquo서양철학 자료 총목록rdquo을 참고하기 바란

다 서양철학 문헌 목록표의 560여종의 번역물 에서 300여종의 이 마르크스주

의에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1

7 맑스 엥겔스 「유물사 요령기」 일당 역 조선일보 1924 1 9-11 3회

8 맑스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역 사상운동 6호 1925

9 맑스 ꡔ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ꡕ(ꡔ공산당선언ꡕ의 제3 번역-논자 주석)

사상운동 1호 1925

10 엥겔스 ꡔ과학 사회주의ꡕ 신춘 역 사상운동 6호(제2권 1호) 1925 8 1

11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ꡕ 송언필 역 조선지 75호

1928

12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2)ꡕ 송언필 역 조선지 76호

1928

13 맑스 ꡔ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ꡕ 소철인 역 신흥 제7호

1932

1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노동 선편집부 노동 선사 1945

15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좌익서 출 의회원 신인사 번역발행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 1945 12 1 발행1946 5 10

개정 발행

16 맑스 ꡔ임노동과 자본ꡕ 원배 역 성출 사 1946

17 맑스 엥겔스 공 ꡔ藝術論ꡕ 박찬모 역 건설출 사 1946

18 맑스 ꡔ자본론ꡕ 최 철 석담 허동 공역 서울출 사 1947

19 맑스 ꡔ經濟學 批判序說ꡕ 홍두표 역 정음사 1948

20 엥겔스 ꡔ反듀링그論 -哲學 篇-ꡕ 원배 역 성출 사 1948

Ⅱ 레닌과 스탈린의 원전 번역물1 닌 「노농 로서아의 교육」 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2 닌 ꡔ로서아청년에게ꡕ 사상운동 제2권 제5호 정14년 10월 1926

3 닌 ꡔ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ꡕ 이론투쟁 총3호 1927

4 스탈린 ꡔ동양해방운동에 하여ꡕ 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7

5 닌 ꡔ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여ꡕ 이론투쟁 3월호 1928

6 스탈린 ꡔ 하의 국제정세에 하여ꡕ 단계(1928년 8월호 창간호) 1928

7 닌 ꡔ맑스주의 사 발 의 특징에 한 약간의 고찰ꡕ 단계 창간호

1928

8 스탈린 ꡔ 닌주의의 기 ꡕ 김창진 역 비 7호 1931

9 스탈린 ꡔ中國革命의 展望ꡕ 朝鮮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

10 닌 ꡔ史的唯物論體系 後篇 上ꡕ 정일연 역 삼성사 1946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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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1997

조세 ꡔ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ꡕ 책세상 2001

최갑수 「ꡔ공산당선언ꡕ의 재 의미ꡕ ꡔ진보평론ꡕ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창간호 1999년 가을

최경 편역 「마르크스 닌주의 고 입문 Ⅱ」 거름 1988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편

조선문제자료총서 제5권 수록

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58 시 와 철학

고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창시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내 모순의 한복 에서 탄생하 으며 그 에 있어

서 태생상 근 서구 사회와 뗄 야 뗄 수 없는 연 을 가진 사상운동과 변

운동을 분출시켰다 그 분리될 수 없는 연 은 철학사상 측면에서도 분명하

게 드러난다 헤겔이 철학이란 사상으로 악된 그 시 라고 일컬었듯이 마르

크스주의는 실천 유물론과 유물 변증법을 통해 칸트에 의해 완성된 서구 근

세 인식론 정치 자유주의 철학을 복하려고 했던 철학이었다 헤겔이 자

신의 ꡔ역사철학강의ꡕ에서 칸트의 철학을 랑스 명의 철학이라고 특징지었

듯이 맑스와 엥겔스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집필과 더불어 칸트 철학을 환상으

로서의 이데올로기라고 비 했던 은 그들 두 사람이 헤겔의 철학사 이해

를 공유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랑스 자코뱅당이 루소의 이념을 명의 이

념으로서 실 속에 실 시키고자 시도했다면 칸트는 루소의 이념 랑스

명의 이념에 한 독일 철학화를 시도했고 독일의 국가철학을 형성시켰다

랑스 명은 정치 변 으로서 실 으로 일어났던 반면에 독일 명은

철학의 변 으로서 념 으로 일어났고 독일 국가철학으로 완성되었다 맑스

는 랑스 명을 미완성 명으로 간주했고 미완성 명의 반 으로서의 독

일 국가철학의 완성에 한 비 과 복을 시도했다 복의 이념은 바로 실천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칸트 철학에서 시작된 독일

념론 철학 통과 정면 결을 벌 던 맑스와 엥겔스의 철학은 근 유럽 철

학사상 통과 유럽 사회 배경 그리고 독일의 철학 실을 떠나서는 탄생

할 수 없었고 이해될 수도 없다 닌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닌 단계를

특징짓는 사회 변 이념으로서 러시아 볼셰비키의 이념이었고 닌 사후 스

탈린에 의해 제국주의 시 의 맑스주의로 재정의되었다 닌은 꼬뮤니즘이

제국주의지배로부터의 식민지 민족해방을 자극한다고 보았지만 세계 명의

심은 유럽이라고 굳게 믿었다2)

이처럼 서양에서 발원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민 피지배 상

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 근 사회의 공론 역에 1920년부터 표면에 드러나는

형태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공론 역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세력과 그

결탁 토착지배계 ( ) 식민지 조선의 민 과 지식인 간의 립 선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근 사회의 공론 역은 인쇄 매체를 매

개로 사상단체를 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우리의 식민 피지배 상황에도 동

2) 닌에 해서는 오세철 ꡔ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ꡕ 212쪽( 장에서 미래를

1996)을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9

일하게 용된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한 독서가 공론 역에서

이루어지고 여론 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수용사에 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작업을 탐

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좁은 의미의 번역 행 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는 것을 뜻하지만 넓

은 의미의 번역 행 는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모국어로 읽는 독서 행

까지 포함한다 번역은 해당 사회의 공론 역에서 외래사상을 수용하는 행

까지 뜻한다고 볼 때 독서도 번역 행 이다 그 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

방 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ldquo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rdquo3)이다 번역은 통 문화와 외래문화의 행 이다 그리고 그 은

통을 변화시킨다

이 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의 핵심 용어에 한 우리 번역어는 부분 일역어에서 유래하 다 이는

식민지 잔재의 흔 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용어 번역은 이 으

로 굴 되어 수용된 역사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

를 우리가 다시 일역어를 수입한 흔 이 우리 번역어에 배어 있는 것이

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철학 수용에서도 유

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번역은 ldquo의미의 풍부화rdquo여서 마르크스주의 철

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ldquo역사 실정성rdquo을 구성했다4) 그 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 이 우리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식민 잔재의 흔

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해서

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 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에서 논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의 우리 번역사에 근한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닌 스탈린의 철학사상 원 에 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검토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면서 가 어떤 동기에 의해 원

을 번역했는지 번역 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 의 내

용과 우리의 시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심으로 원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기 특징 번역과 시 상황의 계 그리고 번역

이 미친 향력 범 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

3)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2001) 「서문」 인용

4) 야나부 아키라 (2003) 180쪽 인용 강내희 (2002) 93쪽 인용

60 시 와 철학

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

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사회역사철학의 형

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

지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 이었는지에 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망한다5)

논자가 조사한 1920년 부터 53년까지 이루어진 번역물 개수와 원 종류

수는 략 다음과 같다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개수는 20편 이상이며

원 종류수는 30종 이상일 것으로 확인되었다 닌의 원 번역물은 9편 이

상이며 스탈린에 한 것이 총 4편 이상이며 양자의 원 종류수는 10종 이상

일 것으로 확인되었다6) 원 인용구 이 담긴 소논문이나 단편 인 은 무

수히 많다 원 번역물 이외에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번역물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단편 인 소논문은 정리하

기 힘들 정도로 다른 서양철학 분야 문헌보다 압도 으로 단히 많다7) 1953

년까지의 원 번역물을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Ⅰ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1 맑스 엥겔스 ꡔ유물사 요령기ꡕ 윤자 역 아성 1호 1921

2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모스크바 한인공산당 1921

3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상해 한인공산당 1921

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공산당( 립 ) 1921

5 맑스 엥겔스 「유물사 개요」 신백우 역 ꡔ공제ꡕ 7호 1921 4

6 맑스 엥겔스 「惟物史觀의 槪要」 一記 역 ꡔ今至ꡕ 제1권 제3호 1922 12

5) 지 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원 번역 작업이 제 로 조사검

토되지 않았고 연구되지도 않았다 이 작업은 정문길 교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정문길

(1998) 참고) 논자는 그의 작업을 좀더 세 하게 보충하고자 한다

6) 논자가 여기서 lsquo이상rsquo으로 표 한 것은 서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의 범 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7) 자세한 사항은 뒤에 실려 있는 특집호 부록의 ldquo서양철학 자료 총목록rdquo을 참고하기 바란

다 서양철학 문헌 목록표의 560여종의 번역물 에서 300여종의 이 마르크스주

의에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1

7 맑스 엥겔스 「유물사 요령기」 일당 역 조선일보 1924 1 9-11 3회

8 맑스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역 사상운동 6호 1925

9 맑스 ꡔ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ꡕ(ꡔ공산당선언ꡕ의 제3 번역-논자 주석)

사상운동 1호 1925

10 엥겔스 ꡔ과학 사회주의ꡕ 신춘 역 사상운동 6호(제2권 1호) 1925 8 1

11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ꡕ 송언필 역 조선지 75호

1928

12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2)ꡕ 송언필 역 조선지 76호

1928

13 맑스 ꡔ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ꡕ 소철인 역 신흥 제7호

1932

1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노동 선편집부 노동 선사 1945

15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좌익서 출 의회원 신인사 번역발행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 1945 12 1 발행1946 5 10

개정 발행

16 맑스 ꡔ임노동과 자본ꡕ 원배 역 성출 사 1946

17 맑스 엥겔스 공 ꡔ藝術論ꡕ 박찬모 역 건설출 사 1946

18 맑스 ꡔ자본론ꡕ 최 철 석담 허동 공역 서울출 사 1947

19 맑스 ꡔ經濟學 批判序說ꡕ 홍두표 역 정음사 1948

20 엥겔스 ꡔ反듀링그論 -哲學 篇-ꡕ 원배 역 성출 사 1948

Ⅱ 레닌과 스탈린의 원전 번역물1 닌 「노농 로서아의 교육」 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2 닌 ꡔ로서아청년에게ꡕ 사상운동 제2권 제5호 정14년 10월 1926

3 닌 ꡔ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ꡕ 이론투쟁 총3호 1927

4 스탈린 ꡔ동양해방운동에 하여ꡕ 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7

5 닌 ꡔ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여ꡕ 이론투쟁 3월호 1928

6 스탈린 ꡔ 하의 국제정세에 하여ꡕ 단계(1928년 8월호 창간호) 1928

7 닌 ꡔ맑스주의 사 발 의 특징에 한 약간의 고찰ꡕ 단계 창간호

1928

8 스탈린 ꡔ 닌주의의 기 ꡕ 김창진 역 비 7호 1931

9 스탈린 ꡔ中國革命의 展望ꡕ 朝鮮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

10 닌 ꡔ史的唯物論體系 後篇 上ꡕ 정일연 역 삼성사 1946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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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5: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59

일하게 용된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한 독서가 공론 역에서

이루어지고 여론 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수용사에 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작업을 탐

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좁은 의미의 번역 행 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는 것을 뜻하지만 넓

은 의미의 번역 행 는 다른 언어로 쓰여진 외래사상을 모국어로 읽는 독서 행

까지 포함한다 번역은 해당 사회의 공론 역에서 외래사상을 수용하는 행

까지 뜻한다고 볼 때 독서도 번역 행 이다 그 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

방 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ldquo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rdquo3)이다 번역은 통 문화와 외래문화의 행 이다 그리고 그 은

통을 변화시킨다

이 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의 핵심 용어에 한 우리 번역어는 부분 일역어에서 유래하 다 이는

식민지 잔재의 흔 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용어 번역은 이 으

로 굴 되어 수용된 역사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

를 우리가 다시 일역어를 수입한 흔 이 우리 번역어에 배어 있는 것이

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철학 수용에서도 유

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번역은 ldquo의미의 풍부화rdquo여서 마르크스주의 철

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ldquo역사 실정성rdquo을 구성했다4) 그 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 이 우리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식민 잔재의 흔

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해서

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 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에서 논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의 우리 번역사에 근한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닌 스탈린의 철학사상 원 에 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검토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면서 가 어떤 동기에 의해 원

을 번역했는지 번역 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 의 내

용과 우리의 시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심으로 원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기 특징 번역과 시 상황의 계 그리고 번역

이 미친 향력 범 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

3)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2001) 「서문」 인용

4) 야나부 아키라 (2003) 180쪽 인용 강내희 (2002) 93쪽 인용

60 시 와 철학

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

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사회역사철학의 형

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

지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 이었는지에 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망한다5)

논자가 조사한 1920년 부터 53년까지 이루어진 번역물 개수와 원 종류

수는 략 다음과 같다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개수는 20편 이상이며

원 종류수는 30종 이상일 것으로 확인되었다 닌의 원 번역물은 9편 이

상이며 스탈린에 한 것이 총 4편 이상이며 양자의 원 종류수는 10종 이상

일 것으로 확인되었다6) 원 인용구 이 담긴 소논문이나 단편 인 은 무

수히 많다 원 번역물 이외에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번역물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단편 인 소논문은 정리하

기 힘들 정도로 다른 서양철학 분야 문헌보다 압도 으로 단히 많다7) 1953

년까지의 원 번역물을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Ⅰ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1 맑스 엥겔스 ꡔ유물사 요령기ꡕ 윤자 역 아성 1호 1921

2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모스크바 한인공산당 1921

3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상해 한인공산당 1921

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공산당( 립 ) 1921

5 맑스 엥겔스 「유물사 개요」 신백우 역 ꡔ공제ꡕ 7호 1921 4

6 맑스 엥겔스 「惟物史觀의 槪要」 一記 역 ꡔ今至ꡕ 제1권 제3호 1922 12

5) 지 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원 번역 작업이 제 로 조사검

토되지 않았고 연구되지도 않았다 이 작업은 정문길 교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정문길

(1998) 참고) 논자는 그의 작업을 좀더 세 하게 보충하고자 한다

6) 논자가 여기서 lsquo이상rsquo으로 표 한 것은 서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의 범 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7) 자세한 사항은 뒤에 실려 있는 특집호 부록의 ldquo서양철학 자료 총목록rdquo을 참고하기 바란

다 서양철학 문헌 목록표의 560여종의 번역물 에서 300여종의 이 마르크스주

의에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1

7 맑스 엥겔스 「유물사 요령기」 일당 역 조선일보 1924 1 9-11 3회

8 맑스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역 사상운동 6호 1925

9 맑스 ꡔ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ꡕ(ꡔ공산당선언ꡕ의 제3 번역-논자 주석)

사상운동 1호 1925

10 엥겔스 ꡔ과학 사회주의ꡕ 신춘 역 사상운동 6호(제2권 1호) 1925 8 1

11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ꡕ 송언필 역 조선지 75호

1928

12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2)ꡕ 송언필 역 조선지 76호

1928

13 맑스 ꡔ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ꡕ 소철인 역 신흥 제7호

1932

1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노동 선편집부 노동 선사 1945

15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좌익서 출 의회원 신인사 번역발행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 1945 12 1 발행1946 5 10

개정 발행

16 맑스 ꡔ임노동과 자본ꡕ 원배 역 성출 사 1946

17 맑스 엥겔스 공 ꡔ藝術論ꡕ 박찬모 역 건설출 사 1946

18 맑스 ꡔ자본론ꡕ 최 철 석담 허동 공역 서울출 사 1947

19 맑스 ꡔ經濟學 批判序說ꡕ 홍두표 역 정음사 1948

20 엥겔스 ꡔ反듀링그論 -哲學 篇-ꡕ 원배 역 성출 사 1948

Ⅱ 레닌과 스탈린의 원전 번역물1 닌 「노농 로서아의 교육」 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2 닌 ꡔ로서아청년에게ꡕ 사상운동 제2권 제5호 정14년 10월 1926

3 닌 ꡔ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ꡕ 이론투쟁 총3호 1927

4 스탈린 ꡔ동양해방운동에 하여ꡕ 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7

5 닌 ꡔ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여ꡕ 이론투쟁 3월호 1928

6 스탈린 ꡔ 하의 국제정세에 하여ꡕ 단계(1928년 8월호 창간호) 1928

7 닌 ꡔ맑스주의 사 발 의 특징에 한 약간의 고찰ꡕ 단계 창간호

1928

8 스탈린 ꡔ 닌주의의 기 ꡕ 김창진 역 비 7호 1931

9 스탈린 ꡔ中國革命의 展望ꡕ 朝鮮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

10 닌 ꡔ史的唯物論體系 後篇 上ꡕ 정일연 역 삼성사 1946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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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6: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60 시 와 철학

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에 한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 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 에

어떤 문화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 를 어떻게 재구성하 는지 마르

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 사회과학 사회역사철학의 형

성에 어떤 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 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

지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 이었는지에 한 물음의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망한다5)

논자가 조사한 1920년 부터 53년까지 이루어진 번역물 개수와 원 종류

수는 략 다음과 같다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개수는 20편 이상이며

원 종류수는 30종 이상일 것으로 확인되었다 닌의 원 번역물은 9편 이

상이며 스탈린에 한 것이 총 4편 이상이며 양자의 원 종류수는 10종 이상

일 것으로 확인되었다6) 원 인용구 이 담긴 소논문이나 단편 인 은 무

수히 많다 원 번역물 이외에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번역물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단편 인 소논문은 정리하

기 힘들 정도로 다른 서양철학 분야 문헌보다 압도 으로 단히 많다7) 1953

년까지의 원 번역물을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Ⅰ 맑스와 엥겔스의 원 번역물

1 맑스 엥겔스 ꡔ유물사 요령기ꡕ 윤자 역 아성 1호 1921

2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모스크바 한인공산당 1921

3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상해 한인공산당 1921

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공산당( 립 ) 1921

5 맑스 엥겔스 「유물사 개요」 신백우 역 ꡔ공제ꡕ 7호 1921 4

6 맑스 엥겔스 「惟物史觀의 槪要」 一記 역 ꡔ今至ꡕ 제1권 제3호 1922 12

5) 지 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원 번역 작업이 제 로 조사검

토되지 않았고 연구되지도 않았다 이 작업은 정문길 교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정문길

(1998) 참고) 논자는 그의 작업을 좀더 세 하게 보충하고자 한다

6) 논자가 여기서 lsquo이상rsquo으로 표 한 것은 서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의 범 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자료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7) 자세한 사항은 뒤에 실려 있는 특집호 부록의 ldquo서양철학 자료 총목록rdquo을 참고하기 바란

다 서양철학 문헌 목록표의 560여종의 번역물 에서 300여종의 이 마르크스주

의에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1

7 맑스 엥겔스 「유물사 요령기」 일당 역 조선일보 1924 1 9-11 3회

8 맑스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역 사상운동 6호 1925

9 맑스 ꡔ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ꡕ(ꡔ공산당선언ꡕ의 제3 번역-논자 주석)

사상운동 1호 1925

10 엥겔스 ꡔ과학 사회주의ꡕ 신춘 역 사상운동 6호(제2권 1호) 1925 8 1

11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ꡕ 송언필 역 조선지 75호

1928

12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2)ꡕ 송언필 역 조선지 76호

1928

13 맑스 ꡔ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ꡕ 소철인 역 신흥 제7호

1932

1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노동 선편집부 노동 선사 1945

15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좌익서 출 의회원 신인사 번역발행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 1945 12 1 발행1946 5 10

개정 발행

16 맑스 ꡔ임노동과 자본ꡕ 원배 역 성출 사 1946

17 맑스 엥겔스 공 ꡔ藝術論ꡕ 박찬모 역 건설출 사 1946

18 맑스 ꡔ자본론ꡕ 최 철 석담 허동 공역 서울출 사 1947

19 맑스 ꡔ經濟學 批判序說ꡕ 홍두표 역 정음사 1948

20 엥겔스 ꡔ反듀링그論 -哲學 篇-ꡕ 원배 역 성출 사 1948

Ⅱ 레닌과 스탈린의 원전 번역물1 닌 「노농 로서아의 교육」 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2 닌 ꡔ로서아청년에게ꡕ 사상운동 제2권 제5호 정14년 10월 1926

3 닌 ꡔ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ꡕ 이론투쟁 총3호 1927

4 스탈린 ꡔ동양해방운동에 하여ꡕ 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7

5 닌 ꡔ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여ꡕ 이론투쟁 3월호 1928

6 스탈린 ꡔ 하의 국제정세에 하여ꡕ 단계(1928년 8월호 창간호) 1928

7 닌 ꡔ맑스주의 사 발 의 특징에 한 약간의 고찰ꡕ 단계 창간호

1928

8 스탈린 ꡔ 닌주의의 기 ꡕ 김창진 역 비 7호 1931

9 스탈린 ꡔ中國革命의 展望ꡕ 朝鮮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

10 닌 ꡔ史的唯物論體系 後篇 上ꡕ 정일연 역 삼성사 1946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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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7: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1

7 맑스 엥겔스 「유물사 요령기」 일당 역 조선일보 1924 1 9-11 3회

8 맑스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역 사상운동 6호 1925

9 맑스 ꡔ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ꡕ(ꡔ공산당선언ꡕ의 제3 번역-논자 주석)

사상운동 1호 1925

10 엥겔스 ꡔ과학 사회주의ꡕ 신춘 역 사상운동 6호(제2권 1호) 1925 8 1

11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ꡕ 송언필 역 조선지 75호

1928

12 맑스 ꡔ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2)ꡕ 송언필 역 조선지 76호

1928

13 맑스 ꡔ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ꡕ 소철인 역 신흥 제7호

1932

14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노동 선편집부 노동 선사 1945

15 맑스 엥겔스 ꡔ공산당선언ꡕ 조선좌익서 출 의회원 신인사 번역발행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 1945 12 1 발행1946 5 10

개정 발행

16 맑스 ꡔ임노동과 자본ꡕ 원배 역 성출 사 1946

17 맑스 엥겔스 공 ꡔ藝術論ꡕ 박찬모 역 건설출 사 1946

18 맑스 ꡔ자본론ꡕ 최 철 석담 허동 공역 서울출 사 1947

19 맑스 ꡔ經濟學 批判序說ꡕ 홍두표 역 정음사 1948

20 엥겔스 ꡔ反듀링그論 -哲學 篇-ꡕ 원배 역 성출 사 1948

Ⅱ 레닌과 스탈린의 원전 번역물1 닌 「노농 로서아의 교육」 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2 닌 ꡔ로서아청년에게ꡕ 사상운동 제2권 제5호 정14년 10월 1926

3 닌 ꡔ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ꡕ 이론투쟁 총3호 1927

4 스탈린 ꡔ동양해방운동에 하여ꡕ 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7

5 닌 ꡔ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여ꡕ 이론투쟁 3월호 1928

6 스탈린 ꡔ 하의 국제정세에 하여ꡕ 단계(1928년 8월호 창간호) 1928

7 닌 ꡔ맑스주의 사 발 의 특징에 한 약간의 고찰ꡕ 단계 창간호

1928

8 스탈린 ꡔ 닌주의의 기 ꡕ 김창진 역 비 7호 1931

9 스탈린 ꡔ中國革命의 展望ꡕ 朝鮮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

10 닌 ꡔ史的唯物論體系 後篇 上ꡕ 정일연 역 삼성사 1946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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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8: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62 시 와 철학

11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

12 닌 ꡔ唯物論과 經驗批判論 上ꡕ 원배 역 성출 사 1947

2 1945년 이전 시기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21 ꡔ공산당선언ꡕ의 번역과 마르크스주의 수용 그리고 꼬뮤니즘의 등장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31 운동 이 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황성신문」 등의

외신란을 통해 1905년 러시아 lsquo과격 rsquo의 동향 등이 소개되었으며 ꡔ만국공보ꡕ

같은 국 잡지나 량치차오 고토쿠 슈스이(行德秋水)의 술 등이 들어오면서

테러리즘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들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회 사상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계 내지

계층의 립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8) 그러다가 31 운동 이후 식

민지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언론과 잡지를 통해 폭발 으로 소개

되기 시작하 다9)

31 운동 이후 등장한 일제의 문화 통치는 기만 인 식민 통치 지만 우리

말로 된 잡지와 일간지의 발행발간을 제한 으로 허용했다 조선일보(1920

3 5 창간)와 동아일보(1920 4 1)가 발행되고 1920년에서 1929년 말에 이르기

까지 우리 손으로 발행된 잡지는 무려 200종을 손꼽게 되었다10) 31 운동이

발발한 해 1919년 12월 15일에 맨처음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서울」의 4호

(1920 615 간행)를 보면 「근 사회주의자 칼맑스」(유형기) 「lsquo크로포트긴rsquo

의 략 」(춘성)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것들은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

상이 최 로 소개된 잡지 기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무정부주의와 마르

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으로서 후속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계속 함께 소개되

었다 1920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한국 최 의 노동조합)의 기 지 ꡔ

공제(共濟)ꡕ 1922년 3월 창간된 한국 최 의 사회주의 잡지 ꡔ신생활ꡕ을 보면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기사가 지 않다11) 신문지상으로 최 로 사회주의가

8) 유시 (1997) 40쪽 참고 조세 (2001) 106쪽 참고 1905년 러시아 명의 경험은 러시아

로 이주했거나 국경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소설화되어 그 이 1921년 ꡔ신생활ꡕ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9) 명 (1999) 334쪽 참고 1919년 31 운동조차도 러시아 명의 향 닌의 민족자

결권 테제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도 있다 그 지만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 련 문헌 번역 소개는 31 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1년 이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10)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175쪽 참고

11) 무정부주의 소개와 련한 표 인 로는 「사회생활의 진화」(이성태 ꡔ신생활ꡕ 2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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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9: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3

소개된 것은 동아일보 1920년 8월 2일자 기사로서 ldquo일본사회주의자 동맹rdquo에

서 일본 사회주의의 형성과 개에 해 서술한 것이다 곧 이어 8월 15 16

18일자에서는 金佑枰이 ldquo사회주의의 의의rdquo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에 해 설

명하 다 ldquo사회주의는 19세기에 비로소 用한 語인 原語 Socialism의 역이외

다 아마 근일 이 주의의 語가 유행하는 동시에 따라서 어느 局部의 인사는

험시하는 모양이외다hellip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아마 1세기 이 부터

존재하고 일에 至하여 유행하는 사상인 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인성에 합

리의 사실이 있는 것이외다hellip 그럼으로서 아메리카의 스콘신 학교수 엘리

선생의 서 사회주의론에서 得한 바를 소개하려 합니다helliphelliprdquo12) ꡔ서울ꡕ 이외

에도 일제의 신문지법과 출 법에 의하여 발간된 잡지들에도 사회주의와 계

된 이 실리기 시작하 다 ꡔ개벽ꡕ지에는 「근 노동문제의 진의」(1호 1920

6 25) 「막쓰와 唯物史觀의 一督」(3호 1920 8 25) 「사회주의의 약의」(3호

1920 8 25) 등이 실렸다 ꡔ공제ꡕ(1920 4 창간)지에는 「 후 세계 세와 조선

노동문제」(김두희 2호 1920 10 10) 「노동은 생명」(김호성 2호) 「조선노동

계에 고하노라」(농부 2호) 「분할과 립에서 일과 통합으로」(무아생 2호)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고찰」(유진희 2호) 등이 실렸다 1922년에 이르면 사

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한 사회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13)

20년과 21년 사이 유행어는 ꡔ개벽ꡕ 1호에 실린 단편의 제목 「變하야 가는

新 思想의 衡突」에서 보듯이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이었다 21년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에 실린 단편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lsquo신인물rsquo lsquo신계 rsquo lsquo신도덕rsquo

lsquo신사회rsquo lsquo신문화rsquo를 목표로 한 lsquo신시 rsquo의 개척은 바로 그 시기의 유행어이자

신조어 다14) 신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며 신사회란 사회주의 사회를 가리킨

19223) 「 자의 생존」(이성태 ꡔ신생활ꡕ 3호 19224) 「청년에게 소함」(이성태 ꡔ신

생활 6호 1922 6) 「크로포트킨 학설연구」(이성태 ꡔ신생활ꡕ 7호 1922 7) 등을 들 수 있

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이 국내 잡지와 신문에 번역된 곳과 번역자는 다음과 같다 김명

식 「청년에 告함」 ꡔ동아일보ꡕ 1920 5 22 유진희 「청년에게 訴함」 1921 공제 7호

(1921 4 10) 8호 이성태 「청년에게 訴함」 ꡔ신생활ꡕ 6호 1922 4 이상의 세편의 은

본래의 에 비해 약 13정도 분량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진희의 번역 은 ꡔ공제ꡕ

9호에도 실릴 정이라는 고가 실린 것으로 보아 체를 번역하고자 했다고 보여지며

이성태는 본인이 직 일본어 번역문을 역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학연구소 편 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42쪽 각주 22 참고 그

외에도 ꡔ아성ꡕ 3 4호(1921 7 15 1921 10 1)에는 윤자 이 크로포트킨을 연구하면서

부분 발췌 번역한 「상호부조론」도 있다

12) 신주백 제1권 161-2쪽

13) 그 당시의 사회주의 문헌 시 상황은 유시 (1997) 문 섭(1999)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자의 논문은 부득이하게 원 번역물에 논의를 집 해야 하므로 자에 한 자

세한 소개는 삼간다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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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0: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64 시 와 철학

다 혹자는 ldquo해방rdquo과 ldquo개조rdquo를 21년 당시의 ldquo유행어rdquo라고 했다15) 해방과 개조

는 반제반 건의 슬로건이었다16) 물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 수용 모습은 마

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 음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터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 같은 사상

혼재는 고토쿠 슈스이가 무정부주의로 향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

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난 일본 사회주의 조류의 향을 받았던 것임을 암시한

다 창기 일본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지만 1906년

이후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향을 받았고 그들 일부분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로 향했다17)

그런데 lsquo신사회rsquo는 ꡔ공산당선언ꡕ에 나오는 용어이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용어가 일

본으로부터 건 온 것인지 ꡔ공산당선언ꡕ의 우리말 번역본으로부터 유행한 것

인지는 단하기 힘들다 lsquo신사회rsquo라는 신조어는 이미 일본에서 사카이 도시히

코 등이 공동경 한 잡지 ꡔ신사회ꡕ(1915 9)의 이름이었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언어 다18) 하지만 1921년 ꡔ공산당선언ꡕ의 최 의 우리말 번역본 세

개가 국내외에서 거의 동시에 출 했음도 주목되어야 한다 서울 국사학과

김인걸 교수에 따르면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해 어본에서

역한 것(3000부 발행) 서울의 조선공산당( 립 )이 일어본에서 역한 것

(85부 발행)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회(19215)에 참가한 모

스크바 한인공산당의 당원들이 노어본에서 역한 것(1000부 발행)이 있었다

고 한다19)

14)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3쪽 참고 ꡔ개벽ꡕ지와 ꡔ아성ꡕ지

에 실린 1920년부터 21년 사이의 들에서는 이 같은 용어들이 여러 필자들에 의해 다수

등장하고 있다

15)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23쪽 참고 오상근은 기독교 사회주의자 던

것 같다

16) ldquo개조rdquo라는 용어는 러셀의 향을 받은 것이라고 직도 하다

17) 조세 (2001) 30-34쪽 참고

18) 사카이 도시히코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

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ꡔ일본마르크스주의이론의 형성과 발 ꡕ 13-4쪽

참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1926년에 ꡔ신사회ꡕ라는 제목을 단 잡지가 간행되었다

19) 이상의 세 번역서 출 사실은 최갑수 (1999) 24쪽 각주 2에 나온 내용을 토 로 언 한

것임을 밝 둔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 으로 확인되나 실물

은 지 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경석도 러시아공산당 동아국 한인부 선 부 일

지에 1921년 1월 17일 ldquo상해 우리공산당에서 ꡔ공산당선언ꡕ 6冊 ꡔ우리무산계 의 진로ꡕ

7冊을 來rdquo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함(동아국 한인부 선 부「일지(1921117~32)」1쪽)

임경석 (1993) 197쪽 각주 568 참고 일본 헌자료에도 이와 련된 기록이 있다고 함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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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1: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5

일본과 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ꡔ공산당선언ꡕ(이하 ꡔ선언ꡕ으로 임)을

번역하 다 ꡔ선언ꡕ의 일어 역을 1904년 고토쿠 슈스이와 사카이 토시히코

(堺利彦)가 週刊平民新聞 53호(1904 明37)에 게재했다 번역 본은 엥겔스가

감수하고 모어가 번역했던 어 (1888년)이었다 번역 직후 발매 지되고 역

자가 구속되었으나 당시 재 소는 ldquo단지 역사상의 사실rdquo 는 ldquo학술연구 자료rdquo

로서 이를 번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결하여 사카이 도시히코 등이 완

역을 ꡔ사회주의연구ꡕ(1906년) 제1호 권두에 게재하 다20) 역의 본문 에

Comunist가 부 공산당으로 번역되었고 ꡔ사회주의연구ꡕ 제1호에서 부르주

아를 lsquo신사rsquo 부르주아지를 lsquo신사벌rsquo(紳士閥) 롤 타리아를 lsquo평민rsquo으로 번역하

다 그러나 1921년 사카이가 독일어 원문 을 이용하여 일본어 구어로 번역

했을 때 각각 lsquo부르주아지rsquo lsquo 롤 타리아rsquo라는 가타가나 표기로 번역하 고

lsquo근 신사의 사회rsquo는 lsquo근세의 부르주아사회rsquo로 바꾸어 번역하 다21) 20년

반에 들어 일역어의 변화 실상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들이 이론 연구

소개에 주력했던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의 제3권 제2호(27쪽 박경직

(1983) 166쪽)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구라 어 르조아지-(Bourgeosie)란 시

민계 혹은 정인(町人)계 의 의미이며 원래 건귀족 농민계 의 간에

있는 계 이라 등계 이라고 부른 일도 있으며 혹은 상공계 신사벌(紳士

閥) 상공자본가계 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당시에는 자본가계

이라는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롤

타-리아트(Proletariat)는 평민계 혹은 상공노동자계 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계 이란 역어와 무산계 이란 역어가 리 통용되

어 있다고 말하면서 ꡔ공산당선언ꡕ에 한 엥겔스의 주해에 따라 르조아지-

는 근 자본가계 사회 생산기 의 소유자계 임 노동의 용주계 을

의미하며 롤 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생산기 을 가지지 못하고 생활을

하여 그 노동력을 팔게 되는 근 의 임 노동자계 을 의미한다고 설명했

임경석 (1993) 112쪽 324쪽 참고 ꡔ공산당선언의 러시아어 은 일 이 바쿠닌의 번역

으로 1860년 lt종 Kolokolgt 인쇄소에서 나왔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1882년

에 다시 나왔다

20) 河上肇 (1921) 97쪽 참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서목록에는 이 번역물이 포함되어

있다

21) 石塚正英 柴田隆行 (2002) 64쪽 137쪽 참고 조세 은 일어 역본에서 자산계 무산

계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세 (2001) 30쪽

참고 일본에 머물던 국인 아나키스트들도 고토쿠 슈스이의 향을 받아 자신들의 아

나키즘 잡지에 ꡔ선언ꡕ 일부를 번역 소개했으며 1920년 천왕타오가 국 공산당 창당을

비하던 상하이에서 ꡔ선언ꡕ을 완역 출간했다(조세 (2001) 30쪽 참고)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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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2: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66 시 와 철학

ꡔ선언ꡕ의 두번째 우리말 번역은 일월회 기 지 ꡔ사상운동ꡕ(제1권 제1호

1925 2 3)에서 ML계 조선공산당원 언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及) 공산주의 문서」라는 제목으로 ꡔ선언ꡕ의 제3 이

번역되었다 번역 동기는 역자 소언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ldquo 재에 있어

서 반동 인 것 자본가 인 것 공상 인 것이 아주 발호하여 그 보무의 혼돈

함이 서력 1848년 당시의 마륵스 엥겔스가 추상 된 그 로가 편만(遍滿)되

여 잇다 이것은 다만 역사 문헌 즉 당시의 사회사상연구자료로 공(供)코

함이 본문을 택한 본의다rdquo 맑스는 ꡔ선언ꡕ의 제3 에서 자기 이 과 동시 의

사회주의 사상에 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맑스 당시의 노동운동에서의

결 양상이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1888년 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그것은 맑스가 ꡔ사회주의선언ꡕ이라고 하지 않고 ꡔ공산당선언ꡕ이라고 했던

이유이다22) 맑스는 건 사회주의와 소부르조아 사회주의(독일 사회주의

혹은 lsquo진정한rsquo 사회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부르조아 사회주의 그리고 롤

타리아트의 최 의 요구의 표 인 비 공상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분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각의 이론이 지닌 본질 그 상형태

정치 귀결을 분석하면서 내린 평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lsquo사회주의

모델rsquo과의 결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결정 인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 언필이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ꡔ사상운동ꡕ의 그 다음 호에는 종교

에 한 비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에 한 비 을 행한 단편이 계속 실렸던

을 감안한다면 번역의 동기가 기독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의 사상 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24) 그밖에 두번째 번역물에서는 부르주

22) 자세한 내용은 ꡔ 작 선집ꡕ1권(1991) 379-380쪽 참고

23) 최경 편역 (1988) 40-41쪽 참고

24) 이와 비슷한 심을 박 희도 보인 이 있다 박 희는 ꡔ개벽ꡕ의 부록으로 2회(52호

1924 8 1 59호 1925 5 1)에 걸쳐 철학과 사상에 한 ldquo 요술어사 rdquo(박 희 편)을

달았다 ldquo 요술어사 rdquo에서 취 했던 술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

의(Commun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강

단사회주의(Socialism of Chair 獨 Katheder Sozialismus) 과격 (Bolshevism) 무정부

주의(Anarchism) 유물사론(Die Materialische Geschtesauffassung) 과학 사회주의

(Scientific Socialism) 잉여가치설(Mehrwelttheorie)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집 설

(Akkumulation theorie) 수정 사회주의(Revisionism) 싼듸카리즘(Syndicalisme) 세계

주의(Cosmopolitanism) 민주주의(Democracy) 제국주의(Imperialism) 임 철칙(Iron

Law Brazen law) 스미드학 (Smithian School) 합리 사회주의(Der Rationale

Sozialismus) 집산주의(Collectivism) 자유방임주의(ldquoLaissez Fairerdquo Prinsple)

(Geschichteauffassung의 탈자 Principle의 탈자가 있다 논자 주석) 박 희는 사 의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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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3: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7

아지와 롤 타리아트가 lsquo자본가계 rsquo lsquo무산자rsquo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 외에도 ꡔ선언ꡕ의 제2 에 나오는 요한 구 이 상자 안에 발췌 번

역되어 있다25) (1) ldquo일개인이 타개인을 착취하지 안 되면 그와 갓흔 비례

로 일국민이 타국민을 착취하는 일도 업서질 것이다 한나라의 내부에 있는

계 립이 업서지면 이 나라와 나라 사이와의 도 한 업서질 것

이다(마륵스)rdquo(ꡔ사상운동ꡕ 15쪽) (1)은 제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한 기본

입장으로서 계 주의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2) ldquo부르죠아지-는 말하기

를 희 공산주의자들은 부인의 공유를 행하려 하는 자가 아니냐고 한다 부

르죠아지-는 자기의 처를 다만 생산기구로 간주하 다 그래서 생산기구가

다 공동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들은 고(故)로 그 공동이용의 운명이 부인에게

지 치리라고 생각하엿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목 하는

바가 그와 갓치 다만 생산기구로서의 부인의 지 를 폐 식히려함인 것지

는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hellip 부르죠아제군은 공창이야 물론 푸로

타리아의 처와 딸까지도 마음 로 하고 오히려 부족하야 자기들의 처를 서

로 유혹식힘으로써 무상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는가rdquo(ꡔ사상운동ꡕ 27쪽) (2)

는 아들을 낳기 해 첩을 두는 건 구습 즉 아들 낳는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노리개로 간주되는 여성의 비인간화 등 여성에 한 건 구속을 타

하고 남성 지배계 의 비도덕성을 비 하기 한 것이다 (2)는 원 에 여

있는 ldquo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 인 부인 공유제에 한 우리 부르

주아들의 고결한 도덕 공포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

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rdquo

를 오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했다 그 잖아도 ꡔ사상운동ꡕ 제3권 4호의 질문란

에 여성 공유와 계된 일반인의 질문과 이에 한 답이 있었다 ldquo문 노농러

시아에서는 부인을 국유로 한다는 말이 참말임니가 -경성 OO 문학교법과

생(PKM)rdquo ldquo답 참 놀낼만한 말심이외다 나는 그 허설을 부증식히기 하여

좀 장황하나마 노농러시아의 결혼제도의 멧가지를 소개하여 들임니다 helliphelliprdquo

머리에서 철학과 사상에 한 용어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상도 부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작정된 페이지를 다 채웠으며 사회주의의 역사

나 요한 학설을 자세하게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독자는 강령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면

한다고 후기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박 희는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조들을 자세히 구분

했고 맑스의 사회주의가 과학 사회주의라는 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유물사

계 투쟁설 잉여가치 등을 설명한 것이 그것을 보여 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와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를 구별하려고 노력하 으며 맑스의 과학 사회주의가 서구에

서 가장 큰 세력이라고 소개했다

25) 이하 인용문은 박경직 편 (1983) 45쪽 51쪽 52쪽 인용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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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4: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68 시 와 철학

(3) ldquo어느 사상이 사회를 OO(지배 - 논자)하엿다는 말이 잇다 그 말은 다만

구사회의 내부에 신사회의 요소가 발육하엿다는 사실 구생활 계의 해체와

함께 구사상의 해체가 동일보조를 취하엿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불과하다(마

륵쓰)rdquo (3)은 사회 발 에 한 유물론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

인용문은 20년 여러 들 속에서 볼 수 있는 lsquo신사상rsquo lsquo신구사상의 충돌rsquo

lsquo신사회rsquo 등의 신조어가 ꡔ선언ꡕ에서 유래함을 단 으로 입증하는 증거이다

(4)ldquo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거기서 노동자는 자본과 투쟁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주의자가 난다(마륵스)rdquo 이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간의 계를 설명하기 한 것이다

ꡔ사상운동ꡕ 6호(1925 81)에는 맑스의 ꡔ꼬오타 강령에 한 맑스의 비 (1)ꡕ

(김개골 사상운동 6호 1925)과 엥겔스의 ꡔ과학 사회주의(완)ꡕ(춘성 역)도

번역되었다26) 송언필은 ꡔ조선지 」(75호 76호 1928년 1월호 2월호)에서 2회

로 나눠 「맑스로부터 쿠겔만에게 보낸 서신(1)」과 「(2)」로 총 16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역자는 쿠겔만을 맑스의 ldquo독일에 있어서의 가장 경애하는 벗 한

사람rdquo으로서 소개하면서 ꡔ자본론ꡕ이 공간되었을 때 독일의 학자들이 일제히

침묵하 는데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 해 무한한 애를 썼던 것은 맑스에

게 단한 큰 공헌이었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맑스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이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닌의 말을 하고 있다27)

22 ꡔ정치경제학 비 ꡕ 「서문」의 번역과 유물론 역사

ꡔ자본ꡕ으로 나아가는 요한 첫 단계인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1859

년 베를린 란쯔 둥커 출 사 발행)의 서문에는 맑스가 유물론 역사 의

근본 명제와 주요 사상을 간략하면서도 매우 집약 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 서술은 지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못하고 불과 1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5개의 문장을 최 로 우리말로 번역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청년회에

참여했던 윤자 이다 조선청년연합회 기 지 ꡔ아성ꡕ 1호(1921 3 15)에 「唯物

史觀要領記」라는 제목으로 3쪽(71-3쪽)에 걸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ldquo맑쓰 ꡔ경제학비평ꡕ의 자식서문 에서rdquo라고 출 을 밝히고 있으나 번역

26) 「과학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ꡔ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 ꡕ을 번역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 번역 문헌은 목차만 확인할 수 있었다

27) 닌은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에서 쿠겔만과 맑스가 주고 받은 편지 내용에 해 많이

언 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Kum Hwan Kim ldquoSprachkontakt zwischen dem Koreanischen und dem

Deutschen in Geschichte(bis zum 15 8 1945)rdquo 건국 ꡔ인문과학논총ꡕ

제24집 1992

Orsquomaley 「칼 맑스 헤겔법철학비 해설」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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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5: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69

본을 밝히지 않았다 두 번째 우리말 번역물은 노동공제회 기 지 ꡔ공제ꡕ 7호

에 신백우가 번역한 「유물사 개요」(1921 4)이다 세번째 번역물은 잡지 ꡔ今

至ꡕ의 제1권 제2호(1922년 11월)의 속편인 제3호(1922년 12월)에 「惟物史觀의

槪要」28)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자가 一記 로 되어 있는 이 번역물은 제

2호 체 제3호의 말미에 유물론 변증법 유물사 에 한 해설을 첨부했

다 여기서도 해설 에 유물사 의 정식화를 ldquo요령기rdquo라고 일컬었다 네번째

번역물은 「유물사 요령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일보 24년 1월 9일에서 11일까

지 3회에 걸쳐 일당(日塘)이 번역한 것이다 그는 ldquo계리언(堺利彦)씨의 演義한

그 로rdquo 번역한 것이라고 출 을 밝히고 여섯 로 나눠 번역하 다 만약 조

선일보에 실린 번역물이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은 것

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물로 확인하지 못한 ꡔ공제ꡕ 7호의 신백우의 번역물을

제외한29) 나머지 셋 우리말 번역물의 번역 본은 사카이의 일역문임에 틀림

없다30) 윤자 과 일기자는 다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여

섯 개의 소 로 나눠 번역했으며 각 마다 해설을 붙 다 그런 차이 을 제

외하고는 번역어와 어 의 순서가 동일하다 차이 이라고는 윤자 과 일

당이 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듯이 번역한 반면에 일당은 종결형 어미 lsquo-다rsquo를

사용하 을 뿐이고 단락 구분을 표시하기 한 속어 몇 개가 다르기 때문이

다 상이한 번역자가 내용 연 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있

지만 동일한 번역자의 이해 심화를 나타낸다고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

윤자 의 「유물사 요령기」가 소개되기 이 에 우 생의 「맑스와 유물

사 의 일폐」(ꡔ개벽ꡕ 3호 우 생 1920825)에서 lsquo유물사 rsquo이라는 용어를 처

음 사용했다 이 같이 유물사 을 소개하는 유심사 과 유물사 의 립

을 다룬 이 계속 쏟아졌다 「유심사 과 유물사 」(이순탁 연희 4 1925) 「

로문사와 유물사 」(유서 신민 20호 1926) 「 술의 유물사 이론」(한설야

조선지 74호 1927) 「메시아 사상의 사회경제 기 -유물사 찰 에

서」(박 희 조선지 82호 1929) 「唯物史觀 斷章 lt眞理의 二重性gt을 中心으

로 하야」(진오 신흥 1 1929) 「사 유물론」(박철 비 8 1931) 「유물사 과 

28) 惟는 탈자가 아닌 것 같다 唯가 갖는 오해 때문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29) 신백우의 번역물을 직 실물로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 둔다 윤자 과 신백우가 서울청

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으로 미루어 보아 유물사 정식화 부분에 한 윤독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0) 논자는 사카이 도시히코의 일역본을 직 입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 부분에서 번역

어를 비교할 때 편의상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와 하 다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Kum Hwan Kim ldquoSprachkontakt zwischen dem Koreanischen und dem

Deutschen in Geschichte(bis zum 15 8 1945)rdquo 건국 ꡔ인문과학논총ꡕ

제24집 1992

Orsquomaley 「칼 맑스 헤겔법철학비 해설」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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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6: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70 시 와 철학

기독교」(천연인신생 28 29 30호 1931)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에는 일본 마

르크스주의자들이 직 술한 단행본이나 논문들을 번역한 것도 있다 河上

肇의 ꡔ유물사 연구ꡕ를 부분 번역한 「lsquo말크쓰rsquo의 유물사 」31)(1922 4 18-6

23 37회) 산천균(山川均)의 「무산계 의 역사 사명」(ꡔ신생활ꡕ 9호 1922

9) 좌야학(佐野學)의 ꡔ자본주의사회ꡕ를 번역한 「자본주의사회의 학술 고찰

」(양자강 역 조선일보 1923 9 16-20) 북택신차랑(北澤新次郞)의 서를 번

역한 「신사회의 건설」(강 원 역 1923 1018-) 계리언의 ꡔ사회주의학설 요ꡕ

를 번역한 「유물사 의 해설과 계 투쟁사론」(1924 1 15) 河上肇의 「맑쓰의

이상」(ꡔ사상운동ꡕ 6호 1925) 박세 이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한 고터 히만의

ꡔ유물사 해설ꡕ(조선일보 1927 9 15 신간소개)이 그것이다32)

1918년에서 20년경까지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지표를 나타내는

유물사 련 주요 번역 문헌들이 우리보다 일 쏟아져 나왔다 카우츠키의

ꡔ자본론해설ꡕ(다카하타 모토유키 역) 고터(Gorter)의 ꡔ유물사 해설ꡕ(사카이

토시히코 역)이 ꡔ신사회ꡕ에 번역 연재되었고33) 이어서 마르크스의 ꡔ임노동과

자본ꡕ 엥겔스의 ꡔ공상 과학 사회주의ꡕ 하노 의 ꡔ마르크스학 근

본 제문제ꡕ 카우츠끼의 ꡔ사회주의윤리학ꡕ 등이 번역되었다 사카이 토시히

코의 ꡔ유물사 의 입장에서ꡕ(三田書房 1919)도 발간되었다

윤자 은 학생 표 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을 비하고 참여했던 세

에 속하며34)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을 기울 던 것으로 보인

다 윤자 외에도 다른 세람의 유물사 번역자들은 31운동을 경험한 세 에

속했던 것으로 단된다 윤자 의 번역은 번역 본에서부터 일본의 향을

받았다 윤자 이 「유물사 요령기」를 번역한 직후 ꡔ아성ꡕ 3호4호에서 무정

부주의 사회주의자 크로포트킨의 ꡔ상호부조론ꡕ을 번역했다는 도 이를 뒷

31) 이 번역물에서 lsquo유물사 rsquo을 ꡔ공산당선언ꡕ과 ꡔ자본론ꡕ과 련하여 논하고 있음은 특징

이다

32) 베벨의 ꡔ부인론ꡕ의 서론을 번역한 「베펠부인론의 서론」(조선일보 1924 1 5-)도 일역

본을 번역 본으로 삼아 번역되었다

33) 守屋典郞 (1967) 17쪽 참고 사카이 도시히코(계리언)가 1910년에 펴냈던 잡지 ꡔ수세미외

의 꽃ꡕ은 1915년 9월에 ꡔ신사회ꡕ로 제목을 변경하 다 17년부터 사카이를 포함해 7인이

이 잡지를 공동 경 하 고 사회주의 이론잡지의 성격을 갖도록 힘썼다 같은 책 13-4

쪽 참고

34) 31운동은 처음에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서 각각 독자 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 경

성 수학교(京城 修學校)에 다녔던 윤자 (尹滋英)도 학생 표로서 수동 원(大

觀園)에서 참여하여 31 운동을 비하 다 서울특별시(시사편찬 원회) ꡔ서울六百年史

ꡕ http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3-2html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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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7: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1

받침하는 근거 의 하나이다35) 1921년경까지는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아나르코 생디칼리즘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사상 결을 벌일 정도까지 분화

되어 있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윤자 은 번역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유물사 요령기」가 실린 ꡔ아성ꡕ 2호

의 악 의 「 사상개 」을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

다 ldquo「말크스」의 소설(所說)이 독일정통사회주의의 교리가 되니 「말크스」의 유

물사 학설은 그 과학 입론의 (點)이 역사 근거에 의하야 잉여가치의

이론을 설명함에 유물 역사 으로써 하나니 이에 하얀 다소에 결 과 비

평이 불무(不無)하나 데모크라시 신사조의 창시자 건설자가 됨은 무의(無

疑)하도다rdquo(17쪽) 악 는 ldquo최선결문제rdquo로서 ldquo사상개 rdquo을 성 규한다 악

는 조선 사상계가 ldquo先聖賢의 學問 行을 繼述할 뿐이오 自由硏究의 思想을 獎

勵치 아니함으로써 精神과 物質에 한 新硏究新發明을 遂치 못하야 드디어

사상의 固滯 狹隘 文弱 冥을 成하야 進就와 時變에 暗昧함으로 세계문명의

낙오자열에 자처rdquo36)했다고 비 했다 독일과 러시아 명은 국과 랑

스의 정치 명에다가 경제 계 쟁투의 운동을 실 하는 사회 명을 겸하고

있다고 악했으며 이 실용 보편 사조가 국경을 월하고 인종을 뛰어넘

어 세계 인류의 생활문제를 근본 으로 개조하고자 함에 있기 때문에

를 인류 명운동 시기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개조나 세계개조도

개인개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의 순서라고 하 다37)

일기자는 유물사 정식화에 한 번역물을 연재한 앞뒤에 해설을 각각 붙

여 놓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서 ldquo추상 철학을 구체 철학으로rdquo ldquo구체 과학rdquo으로 제시하여 ldquo일체의

철학의 후계자rdquo가 되었다고 일기자는 평가하면서 맑스 학설의 특징을 헤겔 철

학으로부터 취한 진화 사색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연 시킨 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사회의 진화 그 제도의 진화가 ldquo사람의 사상이 변화

한 결과rdquo가 아니라 ldquo그 사회에서 물질 조건이 발달한 결과rdquo라고 설명하고

ldquo경제 조건이 역사 진화의 근본동력이 될 것을 발견한rdquo 것이 ldquo맑스의 유물

사 의 과학 가치rdquo라고 평가했다 ldquo사회변화의 원리는 철학에 在한 것이 아

35) 크로포트킨의 ꡔ청년에게 訴함ꡕ이 20부터 22년 사이에 네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에 해서

는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아

세아문화사1997) 41-2쪽을 참고하라 본 논문의 각주 11도 보라

36)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17쪽 8-9쪽 인용 참고

37)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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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8: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72 시 와 철학

니오 경제의 中에 存한 것이다rdquo38) 이 마지막 인용문의 의미는 제3호에서 번역

을 한 후에 붙인 마지막 해설에서 밝 진다 그는 사상의 요성을 격하하지는

않았다 ldquo사회에 유행하는 사상은 그의 사회에 하야 강 한 세력을 有하게

된다rdquo ldquo유행사상은 경제 계의 결과rdquo이다 ldquo상호모순하는 유행사상이 생기하

는 경우도 히 있다rdquo ldquo그것은 들의 계 의 이익을 표명하는 것이다rdquo 일

기자는 바로 계 사상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네번째

번역자 일당은 조선일보에서 ldquo혹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耳語에서 耳語로 비

에서 비 로 동경하고 기망하던rdquo 것을 ldquo나도 스스로 찬성자 의 하나가 되

는 동시에 그 운동을 하야 참고에 드리고자rdquo 번역하 다고 밝히고 있다

네 개의 번역물에서 확인되듯이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용어는 일역본

에서 유래했다 유물사 의 수용은 근 사회과학 형성의 출발 을 이룬다 따

라서 우리의 학술용어 철학용어는 일역어의 향권을 쉽게 넘어설 수 없게 고

착화되었다 lsquo유물사 rsquo은 표 인 일역어이다 유물사 은 독일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에서 유래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명칭은 엥겔스가 그들 두 사람의 사 에 그 명칭을

붙인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범 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 을 일본의 마르크

스주의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39)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을 유물사 으로 최 로 일역한 사람은 河上肇에 따르면 福田 박사이다40)

그러나 외래사상에 한 축 된 지식이 없이 일역어를 우리가 수용한 것은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일본은 일 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작물들을 번

역 소화하면서 외국어를 일본식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일 이 개발했다41)

일역어에는 일본의 학술 문화 특히 일본의 번역 문화가 향을 미치게 마련이

다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이기 때문이다 번역을 통한 신조어의 형성은 그 사

38) 일기자 「유물사 의 개요」 ꡔ今至ꡕ 제2호 1922 11 10-12쪽 인용참고

39) 河上肇는 엥겔스가 1877년 ꡔ 진ꡕ(Vorwaumlrts)지에 연재하고 다음 해 출 했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ꡔ반뒤링론ꡕ으로 흔히 불림)에서 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河上肇 자신의 ꡔ유물사 연구ꡕ 제1 서문의 각주 1 참고) 우리는 이 을 MEW

Bd 19 26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는 ꡔ인민ꡕ지 (런던) 제14호와 제16호에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의 비 을 하여ꡕ」(1859 8 6 8 20)에서 그 용어를 벌써 사용했

다(MEW Bd 13 468-477쪽 참고) ꡔ반뒤링론ꡕ의 제3부라고 불리는 ꡔ공상에서 과학으

로 사회주의의 발 ꡕ(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의 독일어 서문(1882 9 21)에서는 엥겔스가 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nschauung으로 표 했다(MEW Bd 19 187-8쪽 참고)

40) 河上肇 (1921)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제1 서문 참고

41) 야나부 아키라 (2003) 참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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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19: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3

용자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다 그러나 번역은 의미의 왜곡도 낳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외래사상 수용에 있어서 번역어에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면 일역어를 수용하는 우리는

일본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도 고스란히 넘겨 받는 불운을 겪게 된다 유물사

이라는 용어의 수용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

명치 기 이래 물질학 는 실질학으로서 번역 소개되었던 materialism은

이 세계 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유물론(唯物論)이라고

불리었다 이 번역어는 lsquo세계는 심(心) 없이 물(物)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rsquo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 이나 거 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唯)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근원이나 기 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유물론

이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유물론을 보 할 때 불운을 래했다42) 일역어 유

물론은 인간들의 물질 생활로서의 물질 개념을 제기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

는 인간과 물질 간의 상 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용어

로서는 부 했다 그 결과 유물론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완

히 부정하는 듯한 냄새를 품겼고 유물론으로서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설명할

수 없는 듯이 간주되었다 이 에 해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河上肇도

ldquo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명칭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특히 이것을 번역하여 유물사 이라고 할 때 한층 오해를 래

하기 쉽다rdquo43)고 생각했다 ꡔ今至ꡕ(제2호)에서 「유물사 의 개요」를 게재했던

일기자도 유물론을 ldquo我利我慾의 人 低級의 快樂主義의 人 는 不人情無理想

의 人rdquo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많지만 철학상의 유심론과 유물론은 실제생활상

과 하등의 계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증법의 번역어도 궤변의 의미

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그 지만 이 같은 일역어의 문제 은

우리의 번역과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 되어 유물론에 한 오해 혹은 일면

이해에 기반한 소모 인 철학 논쟁을 계속 낳았다44)

더욱이 윤자 이 ldquo요령기rdquo라고 붙 던 제목도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42)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274쪽 論創社 2002

43) 河上肇 (1921) 제1 서문 1-2쪽 참고 엥겔스는 이미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

의 종말ꡕ에서 유물론과 도덕이론과는 련이 없으며 유물론은 물질숭배주의가 아

니라고 밝혔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그 태동 때부터 그 진의에 한 왜곡이 조장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4) 비단 일역어의 문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기도 하다 역사 유물론

과 자연 변증법을 둘러싼 맑스의 유물론과 엥겔스의 유물론 차이에 한 논쟁 맑스의

역사 유물론과 스탈린이 정식화한 변증법 유물론 간의 차이에 한 논쟁 등이 그것

이다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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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0: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74 시 와 철학

향을 받았던 흔 이다 河上肇가 ꡔ유물사 연구ꡕ 제5장 제1 의 제목에 ldquo유물

사 의 요령(唯物史觀の 要領)rdquo을 붙 듯이 ldquo요령rdquo이라는 용어는 그 당시 일본

인들의 용어법이었다 ꡔ유물사 연구ꡕ에서 河上肇는 유물사 의 정식화에 해

당되는 독일어 원문까지 일역문 끝에 첨부해 놓았을 정도로 河上肇는 독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자 의 번역문과 그 다음에 나온

모든 우리말 번역본은 한결같이 계리언의 번역물을 본으로 삼았을 뿐 독일

어 원 을 본으로 삼지 못했다 윤자 의 번역문이 河上肇의 ꡔ유물사 연구ꡕ

보다 일 나왔기 때문에 윤자 이 河上肇의 것을 번역 본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용어를 비교해 보면 ldquo물질 생산력rdquo ldquo생산 계rdquo ldquo생산 계

의 총화rdquo ldquo법률 정치 rdquo ldquo생산방법rdquo ldquo사회의 물질 생산력rdquo ldquo경제 기

rdquo ldquo시 의 의식rdquo ldquo의식rdquo ldquo물질 생활의 모순rdquo ldquo물질 조건rdquo 등이 양자의

번역에서 완 히 일치한다 윤자 은 河上肇의 일역본의 ldquo 실의 토 rdquo 신에

ldquo진실한 기 rdquo45) ldquo생산 계rdquo 신에 ldquo생활 계rdquo ldquo상층건축rdquo 신에 ldquo상부구

조rdquo ldquo발 단계rdquo 신에 ldquo발달정도rdquo ldquo발 형식rdquo 신에 ldquo발달형식rdquo ldquo물질 생

활rdquo 신에 ldquo물질 생활자료rdquo ldquo소유 계rdquo 신에 ldquo재산 계rdquo ldquo경제 생산조

건rdquo 신에 ldquo경제 생활조건rdquo ldquo물질 변 rdquo 신에 ldquo물질 명rdquo ldquo충돌rdquo

신에 ldquo모순rdquo ldquo물질 존재조건rdquo 신에 ldquo물질 조건rdquo ldquo人類社 의 前史rdquo 신

에 ldquo人類歷史前記rdquo로 번역하 다 물론 이들 번역어의 차이는 河上肇와 계리언

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Ideologie에 한 합한 번역어가 없었던 것 같다 河

上肇는 lsquo觀念上rsquo이라고 번역했다 윤자 일기자 일당은 아마도 계리언에 따

라 lsquo精神的rsquo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가 26년에 「아등」

지에 번역된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펴냈던 ꡔ이론투쟁ꡕ(1927 2 발행)이나 ꡔ신흥과학ꡕ

(1927 4 발행)을 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46)

23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ꡕ과 유물론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 개념

출 되지 않은 유고인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1845년과 46년 사이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맑스는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에서

45) 河上肇도 ꡔ유물사 연구ꡕ의 다른 곳에서 ldquo眞實の土臺rdquo라고 번역한 도 있다

46)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1928 7 20)만을 보더라도 lsquo이데오로기rsquo lsquo이데올노기rsquo lsquo이데올로

기rsquo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경직 편 (1983) 209쪽 218쪽 219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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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1: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5

ꡔ독일이데올로기ꡕ에 해 다음과 같이 자기암시를 하 다 ldquo 리드리히 엥겔

스는 다른 경로로 나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 으며 1845년 에 그 역시

뤼셀에 정착하 을 때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 인 견해에 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만들어 낼 것을 사실상 우리의 그 이 의 철학 의

식과 결별할 것을 결의하 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에 한 비 이

라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8 으로 된 원고가 베스트 팔 의

출 지에 도착한 지 한참 되었을 때 우리는 사정이 변해서 출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요 목 에 도달해 있었던 만큼 기꺼이 그 원

고를 쥐들이 갉아먹는 비 에 맡겨 두었다rdquo47) 책의 원고는 맑스와 엥겔스의

서고에 보 되어 있다가 맑스 사후 엥겔스 맑스의 두 딸이 분리해서 보

하고 있던 장서들과 함께 엥겔스의 제안에 따라 독일 사민당 아키 에 1895년

맡겨졌다48) 1896년 이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스트루베와 베른슈타인에 의해

최 로 부분 으로 공개되기 시작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의 원고는 1922년까

지 묻 있다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유고를 정리하고 있던 리야자노 에 의

해 베를린의 독일사회민주당 문서보 실에서 발견되었다49) 소련공산당 앙

원회 산하 맑스- 닌주의 연구소는 리야자노 의 편집 하에서 ꡔ독일 이데올

로기ꡕ 「제1부 포이에르바하」를 1924년 최 로 러시아어로 번역공개하고 곧

이어 1926년 ꡔ마르크스-엥겔스 아키 ꡕ 제1권에 원어인 독일어로 처음 공개하

다50) 1932년에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문을 담은

아도라츠키 편집 (구 MEGA Ⅰ5)이 나왔다

1932년 이 에 이미 일본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다 ꡔ我等ꡕ

제8권( 정 15년1926년) 5 6월호에 櫛田民藏森戶辰男이 「독일 념 형태

의 제1편-포이에르바하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물을 연재하 다51) 뒤이어

由利保一(1930) 三木淸(1930) 河上肇 외 2인(1930) 桑田梧郞 (1931) 轟三郞

(1931)가 각각 번역했다52) 이들 일역본은 리야자노 (David Rjazanov) 을

47) 칼 맑스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479쪽 인용 ꡔ 작선집ꡕ 박종철출 사

1992

48) 정문길 (2003) 149쪽 참고

49) Orsquomaley (1988) 210쪽 참고

50)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252-4쪽 참고

51) 이것은 바로 뒤 각주에서 언 할 사 부록에서 밝 놓지도 않은 사실이다 논자는 놀

랍게도 이 사실을 정문길 교수의 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에 해서는 삼목청

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일본의 번역 상황에 한 자세한 설명은 정문길 교수의 ꡔ마르크스

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253-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52) 이들 순서는 번역 연 순에 따른 것이다 이등우신(伊藤友信) 외 편 ꡔ근 일본 철학사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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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2: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76 시 와 철학

번역 본으로 삼았다 일본의 번역작업은 아주 신속한 것이었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몇 문장이 「사회과학과 학생층」(일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1928 7 20)에 짤막하게 번역되어 있다 논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

받침하기 해 번역 인용했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은 각개의 시 에 잇서서 지배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 인 물질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각 계 이 동시에

지배 인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하는 계 은

그와동시에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지배한다 그럼으로 그 결과로서

로 쉬웁게 말하면 정신 생산에 요하는 제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상

이 이 계 에-즉 이러한 제수단을 가진 계 에- 노 된다 지배사상이라는 것

은 단순히 지배 인 물질 제 계의 념 표상이며 사상으로서 악된 지

배 인 물질 제 계이며 hellip 운운rdquo53) 일 는 맑스의 이 이 부르조

아 사회에 있어서도 조 도 틀림없이 용되며 부르조아에 의해 공인된 모든

기 그 교육기 도 계 지배의 한 기구이며 그 교육사상도 지배사상임에 불

과하다고 주장했다(앞 잡지 15쪽 박경직 편(1983) 218쪽) 다른 논문 속에

번역되어 있는 한 문장 ldquo사상에 하야 사상으로써 하는 투쟁은 센스다rdquo(남

궁허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에로의 향」 앞의 같은 잡지 32쪽)도 ꡔ독일 이데

올로기ꡕ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다음 해에 국내 철학사회과학 문잡지 ꡔ신흥ꡕ54)의 논문 「민족 문

화와 사회 문화」(진오 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에서 일 가 행한 것과 동

일한 구 의 번역이 발견된다 ldquo지배계 의 사상이 어느에든지 지배 사상

이다rdquo ldquo즉 사회의 지배 물질 세력인 계 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 정신

세력이다 물질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계 은 동시에 정신 생산수단도 자

유로 하기 문에 정신 생산수단을 갓지 아니한 사람들의 사상은 평균하야

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일보를 진하야 지배 사상은 지배 물질 계

의 념 표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 사상으로서 악된 지배 물질

계 이외의 아모것도 아니다helliphellip rdquo 각주에 독일어 원 쪽수를 매긴 것을 볼 때

진오는 독일어 원 을 직 참조하 음이 틀림없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이

구 에 입각하여 민족문화의 계 성 부르조아 문화와 롤 타리아 문화의

차이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 문화의 립 민족주의와 롤 타리아 국제주

상상가 사 ꡕ 「부록ꡕ 727쪽 참고 동경서 주식회사 1982

53) 이 인용문은 ꡔ我等ꡕ지에 일역된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4) 1929년 경성 학 제1회 한국인 졸업생들이 lsquo신흥rsquo이라는 학보를 발간함으로써 근 의

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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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3: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7

의의 양립 가능성 등에 해 자신의 주장을 개했다 진오는 ldquo자본주의 시

의 지배 문화는 유산자 문화요 따라서 민족 문화rdquo이며 이는 민족 문화의

제창자가 국수 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 객 논리의 변

증법 발 은 제민족 내부의 피지배계 즉 무산계 의 국제 단결의 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오늘날 민족의 특질과 립의 차 소멸의 길을 밟는

자본주의 하에서 무산계 의 문화의 문제가 일정에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

런데 롤 타리아 문화와 부르조아 문화를 립시키는 것은 논리 으로 정당

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문화와 공산주의 문화(혹은 사회 문화)의 립만이

논리 이라고 주장했던 이 주목을 끈다 롤 타리아 문화는 공산주의 문

화의 요소 모터 맹아기의 문화이므로 공산주의 문화가 아니며 그런 에서

자본주의 하의 민족문화 속에 사회 문화의 요소가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사회 문화는 역사 으로 보다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요한 과정의 의

미를 지닌다고 진오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 타리아 문화는 부르조

아 문화의 폐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해방 속에서 얻은 문화를 부르조아의

과학 기술 술과 결합시키는 곳에서 건설된다고 강조했다 롤 타리아

국제주의 문화의 국제성이 반민족주의 문화의 반민족성이 아니라고 강조했

다 민족 문화는 국제 문화의 입장으로부터 비로소 객 으로 평가 존 된

다고도 덧붙 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잔물(殘物)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만이 역

사 으로 장구한 고 문학 술 풍속 습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소철인도 신흥 제7호(1932년)에 「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이

라는 제목 아래 ꡔ독일이데올로기ꡕ의 「제1부 포이에르바하」의 발췌 번역문을

실었다 소철인이 제목으로 붙인 ldquo유물론 견해와 념론 견해의 립rdquo은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제1부의 제목 ldquo포이에르바하rdquo의 부제목이다 소철인은 삼

목청이 번역했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체 서문 제1부의 서론에 해서

번역하지 않았고 ldquoA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rdquo에 해당되는 부

분 에서 차례로 번역하다가 건 뛰어 결론 부분을 번역하 다55) 소철인이

번역 본을 밝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철인도 진오처럼 독일어 원

55) 해당 번역 부분은 우리말 ꡔ 작 선집ꡕ 1권의 196쪽 하단(우리의 출발 ~)에서 197쪽 끝

201쪽 간(따라서 사실은~)에서 203쪽 끝(~설명할 것이다) 219쪽 처음(마침내 우리는

~)에서 221쪽 단락 끝(~무 한 것이다)에 해당되는 곳이다 lsquo맑스 엥겔스가 삭제한 부

분rsquo을 소철인은 삼목청의 일역본에 따라 번역하여 두었는데 김 웅이 번역한 ꡔ독일이데

올로기Ⅰ」(두 출 사 1989)에 따라 를 들면 다음과 같다 53쪽 하단 ldquo우리는 단지 하

나의 hellip 하나일 뿐이다rdquo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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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4: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78 시 와 철학

을 참조했겠지만 일역본도 참조해서 번역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추측의

근거는 소철인이 번역한 부분과 삼목청의 번역본을 비교해 볼 때 몇몇 번역어

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번역 흐름이 거의 일치한 데에 있다 번역어와 계해서

삼목청이 lsquo공상rsquo으로 번역한 것을 소철인은 lsquo사유rsquo라고 번역했던 것 등이 차이

이다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맑스

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원고에 해서 수정을 가하고 과 을 그어 두

었다 삼목청은 리야자노 을 번역 본으로 삼았으면서도 완역을 하지 않

고 자기 이 의 두 번역물과는 달리 리야자노 가 맑스와 엥겔스의 삭제한 문

자들을 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들까지 실었던 것을 자신은 생략했다

고 밝혔다 이는 삭제된 문자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부분 한층 한

문자로 치환되어 있기 때문에 치환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완결된 문장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의미가 불명료하여서 일반 독자에게는 필

요가 없다고 삼목청이 단했기 때문이다 그 지만 치환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는 약간의 장소는 번역을 하여 6호

활자 lt gt 호로 표시를 하여 두었다고 삼목청은 밝혔다56) 소철인은 이 같은

번역 원칙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삼목청의 번역 방식과 일치하는 기호를 사용

했다

(우리는 다만 유일한과학 즉역사의과학을알이다 역사는 두가지방

면으로서 찰할수잇스며(역사로써)자연역사와 인간역사로구분된다 그

러나 두방면은 (시간상으로) 분리할수업다 helliphellip 웨그러냐하면 「이데올

로기-」는 개는 그 부가 이역사를곡해하며 혹은이역사를 연추상화

하기문이다 「이데올로기-」자체는 다만이역사의 한방면에불고것이

다)

( )은 삼목청의 일역본에서는 lt gt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논자가 이

탤릭체로 표시한 (역사로써) (시간상으로)는 소철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해 설명을 달아 놓은 곳이다 소철인은 후자와 같은 보충주를 별도로 첨가하면

서 번역했다 간혹 앞에서 뒤로 일 되게 번역하려다 보니 생긴 번역방식일지

도 모르겠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dquo그러나 XX주의 XX은 재래

의 활동형식에 항하며 노동(갑의 지배하에 있어서는 갑의 활동형식으로 지

56)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岩波文庫 소화 51930)에 붙인 譯 例 3-4쪽 참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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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5: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79

양한다helliphellip)을 배제하며 모든 계 의 지배를 지양한다rdquo 오늘날의 번역은 ldquo공

산주의 명은 지 까지의 활동 방식에 반 하며 노동을 제거하고 모든 계

들의 지배를 계 들 자체와 함께 지양하는데rdquo57)이다 원문 그 로 번역하면

출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역을 심하게 행한 곳도 있다 ldquo이XX주의 의식

을 량 으로 생산함은 사건 자체를 철함에 잇서와 갓치 인간의 변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 은 실천 운동에 잇서서 즉 XX에 잇서서야만

가능한 것이다rdquo58) 오늘날의 번역은 ldquo 복하는 계 이 오직 명 속에서만 스

스로 모든 낡은 꺼기를 목구멍으로부터 씻어 버리고rdquo도 ldquo과거의 모든 인습

을 타 하며rdquo59)이다 오역이라고 단할 수 있을 정도로 단히 심한 의역은

번역자가 그 당시의 언론검열과 련하여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었음을 느끼

게 해 다 그러면서도 ldquo인습rdquo으로 번역한 것은 한 체 번역어라는 평가

도 우리는 내릴 수 있다 번역문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의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ldquo 이와 같은 체 timestimes(변 - 논자 삽입)의 물질 요소 즉 한편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생산력 다른 편에 있어서는 다만 종래의 (교통) 사회에 있

어서의 각개의 조건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할 뿐 아니라 재래의 lsquo생의

생산rsquo 그 자체에 하야 즉 그것을 기 로 한 체 활동에 하야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 timestimes(활동 - 논자 삽입)하는 timestimes( 명- 논자 삽입) 의 교

양이 없으면 비록 timestimes( 명 - 논자 삽입)의 념은 수백번하거나말거나 timestimes(공

산- 논자 삽입)주의의 역사가 증명함과 같이 그것은 실천 발 에 하여서

는 아모 가치도 없는 것이다rdquo

소철인은 번역의 동기를 직 밝히지 않았다 번역된 원 의 내용과 번역

방식을 통해 우리는 소철인의 번역 동기를 짐작할 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는 「제1부 포이에르바하」에서 당시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한 비 (A 부분)

에서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일반의 실 토 의 규명(B 부분)으로 나아가 여

기서 다시 꼬뮤니즘 그 자체에 한 이론 개(C 부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서 포이에르바하의 학설에 한 비 은 그 내용의 일부일 뿐이고 이것 한

유물사 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데 종속되어 있다60) ldquo주로 논쟁 인 다른 장

들과는 달리 제1부는 유물사 을 개진하는 일반 인 입문으로 생각된다rdquo61)

57)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219쪽 ꡔ 작선집 Ⅰ』1권(1991)

58) 원 에 충실한 오늘날의 번역문과 비시키면 그것은 ldquo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의 규모

인 산출 그 자체의 철을 해서도 오로지 하나의 실천 인 운동 즉 명 속에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범 한 인간 변 이 필요하다는 것rdquo이다 앞의 책 220쪽 인용

59) 소철인의 번역문은 ꡔ신흥ꡕ 제7호 69-70쪽 인용

60)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에 한 비 이 그때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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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6: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80 시 와 철학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의 번역과 함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번역은 유물론 역사 에 한 당 지식인들의 심을 반 하고 있다 신남

철 역시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9호 1937)에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의

한 구 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ldquo일체의 인간역사의 최 의 제는 물론

산 인간의 개인 생존이다 그러므로 확증되어야 할 최 의 사태는 이러한 개

인의 육체 조직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진 그것 이외의 자연에 한 계이

다rdquo62)

ꡔ독일 이데올로기ꡕ는 물론이고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도 특히 철학

연구자들에게 큰 향을 미쳤다 1933년에 철학연구회가 발족되고 학술지 ꡔ철

학ꡕ을 발간했다 ꡔ철학ꡕ 제2호(1934 3)에 실린 다수의 논문이 「포이에르바하

에 한 테제」와 각기 씨름했다 박종홍은 「lsquo철학하는 것rsquo의 실천 지반」에서

ldquo실천에 직 연 을 가지지 않는 여하한 사상도 우리에게 하야는 실 일

수 없는 것이다rdquo라고 주장하면서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이라는 철학 용어를 이

용하고 있다 박종홍은 ldquo감성 사회 실천rdquo을 ldquo직 으로 구체 노작으로부

터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실천rdquo으로 해석하고 있다63) 이재훈의 「존재인식」

에서도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인용한 곳이 발견

된다 ldquo인간은 그네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 으로써 이 생산에 상응하는 교통

의 한 발 으로써 제약되여 잇는 실 행동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

의 존재이다(Die Deutsche Ideologie)rdquo64) ldquo 상 진리가 인간 사유에 도래

하는가 않하는가의 문제는 아무 이론의 문제가 않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

에 잇어서 사람은 진리를 즉 사유의 실성과 힘 피안성을 설명하지 않으면

않이 된다 사유 실천으로붙어 유리된 사유의 실성 비 실에 한 논쟁은

순 이 「스코라」 철학 문제이다rdquo65) 이재훈은 맑스의 실천 유물론의 향

을 받고 있지만 유물론의 철학이 반 론이라고 보면서 유물론의 철학의 한계

를 비 하고 실천 변증법을 주장했다 그는 념 변증법에서도 유물변증

법에서도 힘있는 실천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ldquo 실 사회 존재에 동하고 잇

61) T I 오이 만 (1988) 228쪽 각주 21 참고

62) 신남철 (1948) 1쪽 인용

63) 그의 논문 8-34쪽 특히 28쪽 인용 24쪽 각주 5 참고

64) 이재훈은 각주에서 암 문고 三木譯 四八 四九負을 밝혔다 이재훈의 「존재인식」(ꡔ

철학ꡕ 제2호 1934 3)을 보면 칸트의 원 은 독일어 원 을 닌의 원 은 개조사

을 엥겔스의 것은 암 문고 (장곡 역)으로 각주를 달았다 이재훈 「존재인식」 39

쪽 47쪽 참고

65) 이재훈은 ldquo「호이엘밧하론」 암 문고 佐野氏譯rdquo을 출 으로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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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7: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1

는 당 그 자를 실천하는 것rdquo(59쪽)이 요하다고 주장했다66) 박치우도 「

기의 철학」에서 기의 극복을 해서는 기에 한 주체 악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 주체 악의 3단계로서 교섭 악 모순 악 행동 실

천 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실천을 ldquo이론과 행동의 변증법 통일rdquo로서

악한다 그는 맑스의 실천 유물론을 닌의 볼쉐비키즘과 립시키지 않

았다67) 신남철도 「 철학의 Existenz에의 향과 그것에서 생하는 당면의

과제」에서 ldquo온갖 이데올로기의 배후자로서의 물질 사회 조건에 한 실

-실천 이론rdquo(71쪽)을 옹호하고 있다68) 「認識 身體 及 歷史」(ꡔ신흥ꡕ 제

9호 1937)에서 신남철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여러번 번역 인용하고

있다 ldquo인식의 주체-객체 계는 상 실 감성계를 주체 으로 악하는

동시에 그 주체 인 악의 기체로서의 인간 활동 바로 그것을 상 활동

으로서 악하는 것을 의미한다rdquo 이는 번역은 아니지만 신남철이 「포이에르

바하에 한 테제」 1의 핵심이라고 요약했던 부분이다 「포이에바하에

한 테제」 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ldquo포이에르바하는 종교 본질을 인

간 본질로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 본질은 하등의 개개의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체는 아니다 그 실에 있어서는 인간 본질은 사회 제 계의 총체인

것이다rdquo69)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 6에 나오는 구 ldquo감성을 실천 인

인간 감성 활동으로서 악rdquo70)이 번역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추 에 따르면 ꡔ철학ꡕ에 수록된 논문을 통해 짐작하건 34년

경 칸트의 ꡔ순수이성비 ꡕ 등은 독일어 원 을 직 보았던 반면에 닌의 「

유물론과 경험비 론」 엥겔스의 ꡔ반뒤링론ꡕ은 일역 을 보았던 것으로 확

66) 그의 다른 논문 「哲學의 問題及立場」에서도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를 상기시키는 내

용이 표 되어 있다 ldquo맑스는 호오이엘바하가 자기의 인간학을 구체 이라고 함에 하

여 그것은 실사회로부터 추상된 류개념이라고 배척하며 구체 실재 인간은 사회화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말하 다rdquo(ꡔ철학ꡕ 제3호 47쪽)

67) ldquo 에 있어서 이 박한 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별한다면 그것은 볼쉐뷔키즘과

씨즘일 것이다 양자 공히 의 기는 실천에 의하여서만 극복된다는 을 강조하

는 데 있어서는 공통일 것이다 다못 우리들의 주의하야만 할 은 이 두 가지의 실천

어느 편이 참(眞)이며 어느 편이 거짓(僞)인가를 알어내야 한다는 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할은 조 히 찬부를 결하기 에 먼 이 두 가지 실천이 가진 로고스 인 요

소에 한 근본 인 검토일 것이다rdquo 박치우 ꡔ철학ꡕ 2호 17쪽

68) 신남철 유진오 박치우 소철인은 변증법 유물론 철학의 당 성을 다른 철학 연구

자보다 확실하게 옹호했다

69) 신남철은 ldquoMarxistische Bibliothek Bd 3 S 75rdquo(ꡔ신흥ꡕ(1937년))라고 각주를 붙 다

ꡔ역사철학ꡕ 32쪽에서 인용

70) 신남철 (1948) 22쪽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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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8: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82 시 와 철학

인된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와 「포이에르바하에 한 테제」는 독일어 원 과

일역 을 동시에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오의 논문 「민족 문화와 사회

문화」(ꡔ신흥ꡕ 제2호 1929 12 7)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오는 맑스의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ꡔ자본론ꡕ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ꡔ신성가족ꡕ 등에 해

독일어 원 쪽수를 각주에 표시해 놓았다 논문에 나타나는 문헌 증거를 볼

때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자들은 이미 20년 후반부터 독일어를 배울 기회

독일어 원 을 직 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다71)

1936년부터 일본은 제2차 세계 을 비했기 때문에 부분의 조선인들

은 시동원체제에 이용되어서 이때 이후로 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

었다 37년 이후 해방 이 까지는 문헌이 거의 없다

24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20년에 맑스 사상에 한 소개와 함께 「과격 수령 닌」(ꡔ서울ꡕ 7호

1920 10 16) 등과 같이 닌에 한 소개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 20년 말까

지 번역된 닌의 원 은 다음과 같다 「노농 로서아의 교육」(ꡔ동명ꡕ 총39호

1923 5 27) 「로서아 청년에게」(ꡔ사상운동ꡕ 제2권 제3호 1926년 정 14년 10

월 15일) 닌의 「타 은 로 배척할 것인가」(ꡔ이론투쟁ꡕ 총3호 1927)

닌의 ꡔ러시아 사회민주주주의자의 임무ꡕ 의 한부분을 번역한 「 동 선

과 노동계 에 하야」(ꡔ이론투쟁ꡕ 1928년 3월호) 닌이 1910년 12월 23일

에 썼던 「맑스주의 사 발 의 특성에 한 약간의 고찰」(ꡔ 단계ꡕ 1928년 8

월 창간호) 등이 그것이다72) 이런 번역물 이외에도 소논문에 닌의 ꡔ유물론

과 경험비 론ꡕ이 자주 인용 번역되었다

그런데 닌에 한 번역물은 당시의 실천 운동과 계해서 읽어야 할 문헌

으로 제공되었다 「로서아 청년에게」만 보더라도 그것은 닌이 1920년 10월

4일에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회에서 연설한 안(1921년 단행본 발행)이다

역자의 번역 동기는 이 을 확인해 다 ldquo우리 조선운동의 시인 무산청년운

동이 우후죽순같이 발흥하는 실에 비추어 매우 한rdquo 번역이며 ldquo무산청년

운동에 하여 한가지 힌트라도rdquo 주기 한 목 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닌은 이 연설에서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윤리에 해

언 했다 「 동 선과 노동계 에 하야」는 장일성 등의 기회주의주의 신

71) 독일어 교육 학습과 계해서는 이 논문의 4 에서 논의할 것이다

72) 그 당시 부하린의 「근 자본주의의 모순」(유방 역 개척 4호 1927)도 번역되어 있다 ꡔ개

척ꡕ지를 입수할 수 없어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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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29: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3

형민족주의자들에게 반성을 구하기 해서 번역된 것이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스탈린의 문헌도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련하여 종종 번역되었다 ꡔ사상

운동ꡕ 제3권 제1호(1925)에는 스탈린의 「동양해방운동에 하야」가 번역되어

있다 ldquo莫斯73)과에 견되여 있는 lsquo동경일일신문rsquo 통신원과 동지 lsquo스타린-rsquo과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참고

될 듯하기에 그 의를 이하에 소개한다rdquo고 되어 있다74) 그 내용 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와 동양의 제식

민지에 한 볼세비키의 OOOO술과의 사이에 어떤 공통 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한 스탈린의 답은 다음과 같다 lsquo아세아인을 하는 아세아rsquo

라 하는 표어가 구라 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명 의 도화선이 되면 양자

간에 공통 이 있겠지만 그러나 lsquo아세아를 하는 아세아rsquo라 하는 표어가 이

런 문제와는 아무런 계가 없다 그 표어는 볼세비키의 명 술과는

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표어는 동양의 제국주

의는 구라 의 제국주의보다 좋은 것이니 동양의 제국주의에 항하는 쟁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고 가정한다 이 표어는 구라 의 노동계 에 한 불

신의 감정을 아세아의 노동계 에 고취하고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노동

계 과의 사이를 상호 소원하게 만들고 그들의 국제 계와 그 해방운동의

기 를 음해한다 볼세비키의 목 은 아세아의 노동계 과 구라 의 노동계

과의 국제 계를 미약하게 함에 있지 않고 이런 국제 계를 숭고하게 하

며 신장되게 함에 있다 ꡔ 단계ꡕ(1928년 8월호 창간호)에서는 「 하의 국제

정세에 하야」라는 제목으로 스탈린의 당 회 보고연설이 번역되어 있다 번

역자는 번역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ldquo이 은 스탈린의 제15회 로서아

당 회에의 보고연설 일 을 역한 것이다 쟁의 기가 박한 하에 있

어서 독자제군은 이 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표제로는 lsquo세계자

본주의의 기의 증 와 쏘비에트 연방의 국제정세rsquordquo가 합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ꡔ비 ꡕ 7호(1931)에는 스탈린의 「 닌주의의 기 」(김창진 역)도 번

역되었다75) ꡔ비 ꡕ 7호의 편집자 후기에는 ldquo김창진씨 역 「 닌주의 기 」를

73) 이것은 맑스의 한자 표기이다

74) 박경직 편(1983) 144-5쪽

75) 논자가 인본을 확인해 보니 이 부분만 삭제된 채 인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마

「비 」지를 인한 출 사가 국가보안법에 될까 두려워 삭제한 것 같다 일제 식민

지를 벗어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규율 하에서 학문 연구 자료마

통제당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이다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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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0: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84 시 와 철학

빼지 말고 연재하야 달나는 독자가 만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논문은 늘

연재하겟슴니다rdquo라는 것이 에 띤다

3 1945년 이후 시기 맑스주의 원전 번역사와 번역 실상 31 맑스 엥겔스의 원 번역

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맨먼

나온 번역물은 바로 ꡔ공산당선언ꡕ이다 ꡔ선언ꡕ은 45년 8월과 12월에 거의 동시

에 재번역되었다 서울의 노동 선사 노동 선편집부 (45년 8월)의 역자는

ldquoꡔ공산당선언ꡕ 이것이 출 된다는 것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패반(霸絆)을

벗게 된 혜택의 소산rdquo이라고 하면서 번역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ldquoꡔ선

언ꡕ은 맑스와 엥겔스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lsquo이미 한 개의 역사 문헌rsquo이라

- 「선언」이 나온 지 이미 근일세기나 된다 - lsquo세목에 있어서는 진부스럽게 된

rsquo도 있으나 lsquo근본 인 은 지 도 정확한 것rsquo이므로 lsquo선언rsquo이 일 환기에

당면한 조선민 에게 크다란 공헌은 출 의 혜택에 보답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이다rdquo 번역 텍스트는 사뮤 무어의 역 을 사용했다 번역자가 번역

본을 소개할 때 암울했던 일제 시 를 떠오르게 만든다 ldquo비 장서라 표지를

뜯어버려 몇 년 인가는 미상하나 엥겔스의 주가 붙어 있는 것rdquo이라고 호 안

에 소개한 것이 그것이다 1931년 일본 동경 로 타리아 書房이 출 한 大浦

淸光의 일역 ( 보청 이 소련국립출 소 1926년 을 텍스트로 하여 번역했

는데 흑연구소 역본과 노농서방 역본을 참고하 다고 함)을 참고하

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독문 번역이 아님에 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ldquo이 역본도 아마는 조선어로서의 최 의 것이 될 명 를 지니기는 하나 독문으

로부터의 직 역이 못되는 것인 만큼 이보다 훌륭한 직 역이 나올 때까지의

존재이유를 감수할밖에 없다 helliphellip(독일어 원본은 각가지로 입수코 하 으나

수포에 돌아갔다)rdquo

다른 하나는 1945년 12월 1일 이 발행되고 1946년 5월 10일 개정 이

발행된 ꡔ공산당선언ꡕ 번역본이 있다 역자와 발행인은 조선좌익서 출 의

회원 신인사 매소는 조선좌익서 의회 총 매소 우리서원으로 되어 있다

ldquo번역 원 은 삼유엘 무-어의 어본(1888년 차-리스 H -르사 엔겔스 서

문 편집 권 있는 역본)을 역출한 것이다 독일어 원본(표지가 이탈하여

출 년도 등은 불명)은 참고로 사용하 다rdquo고 밝히고 있다

원배는 ꡔ임노동과 자본ꡕ( 성출 사 1946 8 15)을 번역했다 그는 1849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Kum Hwan Kim ldquoSprachkontakt zwischen dem Koreanischen und dem

Deutschen in Geschichte(bis zum 15 8 1945)rdquo 건국 ꡔ인문과학논총ꡕ

제24집 1992

Orsquomaley 「칼 맑스 헤겔법철학비 해설」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T I 오이 만 ꡔ맑스주의 철학성립사ꡕ 윤지 옮김 아침출 사 1988

강내희 「한국의 식민지 근 성과 충격의 번역」 ꡔ문화과학ꡕ 31호 2002 가을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한 유령학」 ꡔ흔 ꡕ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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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1: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5

년에 에룬스투 드란에 의해 편찬된 크람 을 번역 본으로 사용했다 ꡔ임

노동과 자본ꡕ의 번역은 맑스가 1847년 뤼셀에서 노동자를 상 로 강의한 원

문 그 로 수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독일어 원 에 한 최 의 번역물이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번역의 의의에 해서 ldquo맑스 경제학설의 발 상

은 물론 근 사회과학 일반의 발 상에 획기 인 의의가 있는 것rdquo이라고 밝

혔다 ꡔ자본론ꡕ 제1권(서울출 사 1947)이 崔英澈 全錫淡 許東 3인에 의해

국내 최 로 4분책으로 번역되었다 이때 번역 본은 일역 이었다 일본의

국가사회주의자 고소부지가 1920년에 ꡔ자본론ꡕ 제1권을 번역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엄청나게 늦은 우리의 번역이다 곧이어 홍두표는 ꡔ경제학비 서

설ꡕ(1948 1 20)이라는 제목으로 ꡔ강요ꡕ의 서론만을 번역했다 번역문 간

간에 독일어가 에 띤다 독일어 원 과 일역본을 비교 조하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원배는 엥겔스의 ꡔ오이겐 뒤링씨의 과학의 변 ꡕ을 ꡔ반듀-링그론ꡕ(1948

2 28)이라는 제목으로 철학 편만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번역 텍스트

로 192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 된 jhw 되-츠 (디이츠 - 논자)을

사용하 으며 번역서의 제목을 와 같이 사용한 이유는 원 자도 이 약칭을

자주 사용한 데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가치에 해서 원배는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라고 하면서도 두세 가지 언 을 하고 있다 세계

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마다 을 거듭하여 가고 있는 사실 마르크스주의

를 찬성하거나 반 하거나 간에 이것을 취 한 모든 술에 있어서 이 서가

인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실 등은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나

요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즉 변증법 유물

론이 체계 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많은 술 가운데서 직 혹은 간 으로 술에 해

언 한 부분만을 발췌 번역한 편역서인 ꡔ藝術論ꡕ(건설출 사 1946)이 박찬모

에 의해 출간되었다 外村史郞의 편역본과 上典進이 번역한 암 문고본을 번

역 본으로 삼았으며 제1부 lsquo 술의 지 rsquo에 10개의 소주제 제2부 lsquo문학 유

산rsquo에 12개의 소주제로 분류했다 각 주제에 응하는 발췌 번역된 원 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술의 지 1 상부구조로서의 술(ꡔ정치경제학

비 서문ꡕ) 2 술의 발생과 노동의 역할(ꡔ자연변증법ꡕ) 3 노 제도와 고

문화(ꡔ반뒤링론ꡕ) 4 이론 사유의 역사 제약성(ꡔ자연변증법ꡕ) 5 문화형태

의 불균등한 발 (ꡔ정치경제학비 을 하여 서문ꡕ) 6 고 희랍 술과 사회

제도(ꡔ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ꡕ) 7 가족형태의 술 반 (ꡔ가족 사유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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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2: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86 시 와 철학

재산 국가의 기원ꡕ) 8 뿌르죠아지-와 문화(ꡔ공산당선언ꡕ) 9 공상 사회주

의의 로맨티시즘(ꡔ공산당선언ꡕ) 10 르네 스와 그 술(ꡔ자연변증법ꡕ) 제2부

문학 유산 1 리얼리즘론(「랏사르에게 보낸 맑스의 편지」 런던 1849년 4월

19일자 「랏사르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날짜 미기록)76) 2 리얼리즘과

경향성(카우츠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85년 11월 26일) 3 발작크

론(비 리오틱 쟈-날 「문학 유산」) 4 하이네론(ꡔ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 철학의 종말ꡕ) 5 잎쎈론(「 울에룬스트에게 보낸 편지」) 6 꿰-테론

(마르크스 「꿰테에 하야」) 7 소뿌르죠아작가론(마르크스 「 뤼메르 18일

」) 8 소뿌르죠아 사회주의의 로맨티시즘() 9 꿰-테와 실례르 시 의 독일(엥

겔스 「독일의 상태」) 10 「청년독일」에 하야(「독일에 있어서의 명과 반

명」) 11 국의 리얼리스트(마르크스 「뉴욕 트리뷴」지의 기사) 12 스타일론

(마르크스 「 러시아 최신검열조령에 한 각서」)

편역자 박찬모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ldquo잉여가치 기타의 경제원리를 발견

했다는 그것보다도rdquo ldquo인류 사회가 가장 발달한 그리고 극도로 복잡화한 구라

19세기를 이해하고 제단하고 지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명확한 기본 인 지

침을 세워주었다rdquo고 양인의 공 을 기렸다 ldquo마찬가지로 술에 하여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rdquo ldquo허다한 술가 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정말로 술을 본질 으로 이해하고 창조 실천을 하는 데 필요한 하

나의 명확한 지침을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워rdquo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직 술을 말한 구 은 ldquo우리 삼국유사에서 향가를 골라내는 느낌

으로 그 로 모두가 주옥이다rdquo고 했다 번역 소감으로서 편역자는 엥겔스가

1885년에 말한 ldquo어째서 마르크스를 번역하지 말 것인가rdquo라는 한 문장을 한

이 있다고 언 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즉 마르크스

의 원 에 한 번역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를 실감하 다고 했다 이것은 마

르크스 원 을 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ꡔ 술론ꡕ에서 김남천의 서언은77) 마르크스 엥겔스의 술론의 의의에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dquo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주지하는 바 술에 한 문제나

미학에 한 문제에 있어 계통 으로 연구한 것과 같은 문 인 술을 남기

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이 거 한 두 분이 그들의 서의 처처에서 단편

으로 남겨 놓은 술상 미학상 견해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76) 아드라츠키 편찬 ꡔ맑스 엥겔스 문고ꡕ 「엥겔스의 서간」 선집의 「맑스 엥겔스 문학론」에

서 일역된 것을 번역한 것으로 밝 놓았음

77) 김남천과 편역자 박찬모는 함께 문 활동에 종사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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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3: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7

되었다 hellip 1932년 4월 23일의 당 앙 원회의 결의에 의한 소연방문학운동의

일 방향 환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슬로간으로 나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직 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모든 술 견해를 한 양식으로 한 이후

1933년 마르크스 50년제를 심하여 hellip 「단편 이오 설사 그 수가 다고는

하여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겨 몇 개의 지시는 일의 부르조아 술 이

론가들의 몇백권의 서 보다도 훨씬 깊은 통찰과 거 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고 말함에 이른 것이다 hellip 이제 해방된 오늘 새로운

민주주의의 민족 문학 건설에 있어서나 는 새로운 술학 문 학의 수립에

있어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술상 견해가 지시하는 높은 사상은 다시 없

는 명이 될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재훈은 자신의 서 「철학개론」(195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작의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 다 엥겔스가 ꡔ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

철학ꡕ에서 철학의 근본 물음에 해 언 했던 구 역사에 한 유물론 이

해의 를 드러내는 마르크스의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의 「서문」이 번

역되어 있다

32 닌 스탈린의 원 번역

1946년에 닌의 ꡔ사 유물론체계 후편 上ꡕ(정일연 역 삼성사 1946) 스탈

린의 「 국 명의 망」(조선 맑스엥겔스 닌硏究所 동무사 1946)이 번

역되었다78) 한 철학과 계해서는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 上中ꡕ

(인정식 역 문우인서 1947)도 번역되었다 인정식이 번역한 닌의 ꡔ유물

론과 경험비 론ꡕ의 텍스트는 역 이다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기 해서 그

는 불역 山川均과 大森義太郞 공역의 일어 을 참고했다고 하며 일역 이

오역된 개소가 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 텍스트에 데보린의 장문의 서

론이 실려 있었으나 데보린의 철학 오류가 이미 주지된 사실이어서 생략해

버렸다고 한다 원배도 닌의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 성출 사 1947 5

19)을 번역하 다 번역 본은 1927년 맑스과 닌연구소에서 편찬한 닌

집 독일어 제18권이다 그는 ldquo 닌 자신이 본서에 lsquo반동철학에 한 비

논평rsquo이라는 부제목을 부여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바와 가티 당시

철학상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부르조아 반동철학의 정체를 변증법 유물론

의 입장에서 비 폭로하면서 푸로 타리아 철학을 조직 으로 개시킨

78) 이 두 책은 입수할 수 없었음을 밝 둔다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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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4: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88 시 와 철학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문헌이다rdquo고 소개했다 원배는 이어서 맑스주의 철학

의 특징을 당 성의 철학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ldquo오늘날도 사정은 조 도 본

질 변화가 없이 물질 생활이나 정신 문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 당

분열 다시 말하면 계 투쟁이 세계 규모에서 더욱더 심각화 확 화하

여 가고 있다rdquo고 보면서 묵은 형형색색의 념론 변종이 새로운 주의

혹은 체계 등등의 새로운 술어로 분장하여 계 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해서 ldquo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rdquo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해서

우리는 무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므로 바로 ꡔ유물론과 경험비 론ꡕ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번역의 동기를 밝혔다

4 번역을 통해서 본 민족어 민족문화 기획 그리고 근대 학문 체계의 성립김동춘은 ldquo한국의 사회주의는 식민지종주국인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는

에서 단히 불행한 출생과정을 거쳤다rdquo79)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원

번역에도 용될 수 있다 번역은 신조어를 탄생시킨다 신조어는 의미의 풍부

화일 수도 있고 의미의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번역 용어의 결정에는 당사

자의 가치 이 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시 상황도 크게 향

을 미치게 된다 일역어에는 일본의 문화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일역어를 우

리가 수용한 것은 lsquo유물사 rsquo이라고 하는 용어에서 보았듯이 일역어의 선입견

과 편견까지도 우리 번역어에 고스란히 이 시켜 유물론에 한 오해를 낳았

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에 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었

던 것은 아니지만 불식되지 못한 문제 은 지 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기 때문에 번역사에 한 검을 통해 문제 있는 요소를 청산해야 할 과

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수용하고 일

역어를 차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탓

도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의 유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1921년 ꡔ공산당선

언ꡕ의 번역이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에서 알 수 있듯이 수용 경로가 일본

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결정론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

아로 된 문서들이나 시베리아와 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행된 ꡔ 기ꡕ나 ꡔ선

ꡕ 등과 같이 우리 문서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그 지만 해외 출 물에

한 일제의 검열과 제재는 러시아나 국을 통한 해외 간행물의 한반도내 반입

79)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259쪽 당 2000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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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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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5: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89

을 쇄했다 더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무용론에 따른 교육학술정책 외

국어 교육 정책 때문에 외국어에 한 장애가 심했다80)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

의 조류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는 억압되었고 수용 경로는 제한 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문헌 번역이 일역본을 본으로 삼을 수밖

에 없었던 필연 이유가 있다

1910년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식민 통치자들은 신학문의 괜찮은 성과이면

일수록 서 목록에 집어 넣었다 근 학문의 싹은 짓밟혔고 왜곡되었다 과

학이건 부강술이건 자존심을 생기게 하는 학문은 식민지인에게 필요하지 않으

며 식자층이나 유생이나 양반도 조선을 지 의 쇠락한 지경에 빠뜨린 책임자

이므로 교육시켜서 안 되며 다수의 사람에게 수족을 움직이는 정도만큼의

교육으로 동화하는 우민화정책 강행론이 일제의 정책이었다 식민지교육무용

론으로 불릴 수 있는 이 정책은 개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 열강

의 식민지에서처럼 컨 국의 인도나 미국의 필리핀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민족운동 명 운동을 쇄하기 한 조치 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

인 에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심지어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조차도 반 하는

자가 있을 정도 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어로 쓰여 있는 랑스

명 아일랜드 독립론 폴란드 독립찬양론 등을 읽어 명 사상의 고취에 힘

쓸 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교육무용론은 등 교육이

나 외국어 교육이 조선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시 하 다 조선인에

게 일본어를 강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지시키는 일제의 언어정책은 일제 식

민 통치 36년간에 걸쳐 수행된 불변의 정책이었으며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의

유력지가 제창하 던 논조 그 로 실시하 다81) 문화 통치기의 교육 정책에

서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 종래의 우민화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도가 지나친 우

민화 정책은 치안 유지 면에서 좋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일본인이 일어 교육조차 우려하 듯이 20년 반까지 식민지 조

선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원 의 일역본을 번역 본으로 삼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수입했다 그 이후에도 부분

의 심있는 사람들은 우리말 번역본보다는 일역본을 직 읽었다 일제의 식

민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이론 무기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

는 역설에 빠진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상황이었다 이것은 번역어 논쟁에

80) 유재천 (1990) 290-1쪽 참고

81) 강동진 (1984) 106쪽 21-22쪽 61-62쪽 참고 일본어 강제의 필요성은 통역정치의 불편

재 이나 행정의 편의 사상감정의 소통을 해서도 역설되었다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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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6: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90 시 와 철학

서도 나타난다 박문병은 복본상부(후쿠모도)가 독일어 Aufheben의 역어 lsquo지

양(止揚)rsquo을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라고 개역한

것을 비 했다 그 당시 일본과 조선의 맑시스트 일부가 lsquo양기(楊棄)rsquo를 사용한

다고 하면서 박문병은 후쿠모도가 「사회구성비변 의 과정」 3항에서 揚(놉힌

다)을 棄(친다)보다 1차 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변증법 이라고 생각하

여서 개역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박문병은 다음과 같이 비 했다 양기

는 止와 棄의 의미를 혼동한 결과에서 나온 오역이다 양기는 후쿠모도의 방기

(放棄)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 양(揚)과 지(止)는 1차 2차 의 요성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 발 계열에 따라 선후를 안배한 것이다

지양의 의미는 ldquo양 지 보존의 세가지 뜻을 가진 구체 종합 인 것 내에서

모순은 그 립을 지(止)하고 그 내부에 요한 요소로서 보존되고 한 립

이상으로 고양된다는 뜻(紀平正美 認識論 181항)rdquo이다고 밝혔다82) 여기서 역

설은 비 의 상 가 일본인이 만든 역어이고 비 의 근거도 일본인 학자에게

서 빌려왔다는 것이다83)

일제의 식민 지배와 억압으로 우리의 학술은 수용 창기에 맑스의 원 과

직 하지 못하고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독일어와 한자어로 쓰여진 조선

과 독일 간의 최 의 우호조약은 1984년 11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독일어가 조

선에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조선의 요구에 따라 독일어 학교가 1898년에 설

립되었고 1910년까지 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독일어는 군사 기술과 군 법

을 습득하기 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일본어를 제외한

모든 외국어 교육을 지시켰다 미국 선교사들이 사립학교에서 어를 간신

히 가르쳤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외국어 교육 방침이 바 면서 어 독어

불어를 배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학생들의 선호도는 어와 불어 다 일본 정

부의 민간인 포로 던 Andre Eckardt가 오늘날 서울 국립 학의 신인 이

조 학에서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언어와 술사를 가르쳤으며 1931년 세

란스 의 에서는 라틴어와 독일어 강좌가 있었다84)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82) 기평정미가 쓴 인식론은 岩波書店 大正 41915년에 나온 것이다 박문병 「속학 유물

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호 1927 10 30쪽 인용 참

고 신남철은 Aufheben을 양기라고 번역했다 유진오는 양기 혹은 지양으로 혼용했다

안호상이 Aufheben을 ldquo없애 가짐rdquo이라고 우리말을 살려 표 한 것은 단한 열의로서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ldquo높인다rdquo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문제 도 안고 있음은 지 되어

야 할 일이다

83)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에서 조동일 교수는 이를 ldquo시비

학 제2방향rdquo이라고 칭했다 조동일 (1997) 참고

84) 1938년 경성제국 학의 커리큐럼을 보면 법학과에서는 독일어가 제1외국어 철학과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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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7: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1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과 직 하는 철학 연구자 사회과

학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29년말과 33년부터 나온 ꡔ신흥ꡕ과 ꡔ철학ꡕ의 사회과

학과 철학 문잡지는 이 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 다고 해서 독일 유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부터 독일 유

학생들이 있었으나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

상 원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도 몇몇 사람들

은 유물론 철학 혹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해서 단히 비 이었다

롯체에 한 박사학 논문을 썼으며 루노 바우흐의 「이론철학은 무엇인

가」(ꡔ철학ꡕ 제2호)까지 번역했던 안호상은 그의 논문 「物心에 한 認識論的

察」(보 학회논집 2호 1935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 하고 있다 ldquo맑스는 자

기의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기를 ꡔ정치와 법률 아니 종교와 철학과 술 간단

히 말하면 그 모든 이데올로기 형태의 상층구조가 건설해진 실재 기 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 없이 본연 으로 출생한 그 사회의 경제 조직이다 사람

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도리 사람의 사회 존재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ꡕ(Die oekonomische Strucktur der Gesellschaft

helliphellip)rdquo(안호상의 앞 논문 7쪽 인용) 맑스는 ꡔ자본ꡕ 서문이 아니라 ꡔ정치경제

학 비 을 하여ꡕ에서 이것을 말했다 안호상은 두 서를 혼동했다 독일

어까지 동원한 인용구 은 안호상의 독일어 작문이지 독일어 원 인용이 아

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어학 능력만으로 마르크

스주의 원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은 시 요구

사회 요구와 맞물려 일어나며 번역자 자신의 심과 책임 의식이 동반되어

야 한다

이미 1920년 마르크스주의 수용 기단계부터 식민지 지식인들은 lsquo번역rsquo 문

제에 주목했다 ldquo조선사상계의 탁류 rdquo에서 ldquo미약하게나마 민 정신이 간

간이 나타나는 것을 외래 사상의 향 는 번역으로만rdquo 버리는 ldquo경향rdquo은

ldquo고루한 인습 미신을 벗지 못한 소견rdquo이다85) 식민지 사회의 내 요구에 의

해 분출된 「유물사 요령기」에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은 사회

주의 사상에 심을 가졌던 청년 학도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

다 그것은 식민지 공론 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의 통

치 방식이 문화정치로 바 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간행되고 잡지수가

200개가 넘었다 사상운동의 보 형태 던 노동공제회로부터 시작된 사상

서는 어가 제1외국어로 정해져 있었다 Kum Hwan Kim (1992) 참고

85)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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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8: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92 시 와 철학

단체는 26년말 국 으로 약 350여 개 존재했다 이들 사상단체들이 바로 식

민지 공론 역을 탄생시켰다 사상단체에 속한 지식인들의 활동은 1922-3년에

걸쳐 조선 사상계에서 벌어졌던 고 민족주의를 표하는 ꡔ동명ꡕ과 사회주

의를 표하는 ꡔ신생활ꡕ 간의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86) ldquolsquo맑스주의의 이론이

90년 러시아 청년 유식자간에 염병 으로 고취되었던 것rsquo( 닌)과 같이 당

시 조선운동의 국면에 있어서도 벌써 그러하 다 hellip 지 에 있어서 ꡔ신생활ꡕ

을 들추어보면 그들 지식군( 부분이 동경유학자)은 구주신흥세력의 동 을

배경하고 일본무산계 이론을 수입하여 맑스주의 사상을 능히 고취 선 하

다 그들은 당시 민족주의자를 향해 격렬한 사상 을 시행하 다 일례를 들면

ꡔ신생활ꡕ 은 동시 발행된 『동명』-최남선을 심한 민족주의자 일단의 잡지-

을 불과 수월에 그 막 한 권 를 타락시키고 국학생청년독자를 으로

탈취하 던 것이다rdquo87) 유물사 과 사회주의를 한편으로 하고 유심사 과 고

민족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는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88) ꡔ신생활ꡕ 의 필화

사건이 무산계 의식을 자극하 고 이때부터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의 거탑

인 조선청년연합회가 분해되기 시작했으며 농민운동이 일어나고 각 지역의

청년단체도 차 색채를 변화하 다 식민지 공론 역은 신간회의 창립에서

보듯이 꼬뮤니스트와 좌 민족주의자 간의 동 선까지 형성하 다

사상단체들간에 나타났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립 논쟁은 역사 인식에

한 철학 세계 의 립으로서 유물사 과 유심사 간의 사상투쟁을 기반

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학 원 번역과 계해서 살펴보면 식민지 사회

실에 한 인식의 변화가 유물사 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그에 해당하는 원

을 번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 지식인들은 닌주의가 무산자 계

에 있어서 보편 인 의미 깊은 요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보편 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것이 러시아의 특수성에 근거를 둔 것인지를 물었다 ldquo이

양자를 비 으로 구별할 오인의 사명도 한 이 곳에서 출발한다 이 필요를

구보다도 역설한 자는 즉 -닌이었다 즉 -닌을 러시아로부터 서구로 번

역한다 함은 다만 언어상의 사명만으로는 아니된다 hellip 요컨 문제는 닌으

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서구에 있서서의 무산의 제조건과 투쟁의 경

험과에 빗최여 일층 발 식힌 것 보담 구체 으로 한정함에 있는 것이다rdquo89)

86) 강동진 (1984) 288쪽

87)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 편(1983)

수록

88) 배성룡 「조선사회운동소사(4)」 조선일보 29 1 6 신주백 제7권 135쪽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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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39: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3

사상단체 못지않게 학생단체도 우리의 근 학문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1 운동 직후 창립되었던 학생단체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오다가 사회주

의 사상 운동이 상당히 발달된 25년부터 순수한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학생

단체들이 생겼는데 「공학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경성학생연맹」 「서울

학생구락부」 「간도용정 과학연구회」 북경 조선유학생 심의 「북경사회과

학연구회」 일본 동경 조선유학생 심의 「신흥과학연구회」 이것들이 조선 학

생운동 제2기에 창립된 학생단체이다 이들 학생 단체들은 1) 사회과학연구 2)

민 본 의 교육실 을 목 으로 한 사회과학연구단체 다 그 당시 학생

은 lsquo조선역사를 교수하라 조선어를 교육용어로 하라 학생에게 자치권을 주

라 조선인 교원을 다수 사용하라 학교 제에 반 한다rsquo 등의 슬로건을

외쳤다90)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오는 요구는 우리 학술과 교육의 방향

그리고 민족 문화 형성의 방향에 있어서 시 요구를 지시했다 이 시

요구는 식민 피지배 상황에서 해방되었을 때야 비로소 실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로 된 번역 문헌은 20년 당시 그리 많지 않았다 당 의 식민지 지

식인과 학생층은 마크르스주의 원 부분을 일역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

다 28년 1월 1일 조선일보에서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청년에게 추천한

서 목록의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원 이었으나 개조사 백

양사 의 맑스-엥겔스 집 닌 집에 일역된 문헌이었다91)

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원 번역물이 단행본 형태로 쏟아져 나왔고 사회과

학철학 사 이 간행되었다 사회과학과 철학 사 의 작업의 주체는 마르크

스주의자 다 그리하여 근 인 학문 체계가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기

해서는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의 사상운동 실천운동의 역이 보다 구체화

되어야 했고 역이 넓어져야 했다 신간회와 같은 정치 운동과 함께 우리 내

부에서 민족 문화 기획과 근 학술 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 운동의 쇄와

함께 본격 으로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학문의 주체 역량은 성숙하

기 시작했다 27-8년경의 ꡔ조선지 ꡕ을 보면 한치진 김태수 박문병 한연옥

송재홍 안 천 등의 유물사 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다 박문병은 유물

사 에 한 河上肇의 견해를 비 하기도 했고 신남철은 인간학 하이데거

변증법 해석에 의해 맑스주의를 새롭게 정 하고자 시도했던 삼목청을 비

89) ꡔ사상운동ꡕ 제3권 제4호 박경직 편 (1983) 182쪽

9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1-12쪽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91) 조선일보 28 1 1일 「 운동을 여하히 할가 신청년에 추천할 만한 서 은 무엇」 신

주백 제7권 62-8쪽 문 섭의 논문도 참고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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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0: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94 시 와 철학

하기도 했다92) 그것들은 그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 마르크스주의자에 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백남운도 유물사 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ꡔ조선사회경제사ꡕ(1933년)를 발간했다 그는 유물

사 의 보편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신남철은 1934년 벽두에 ꡔ동아일보ꡕ에 실은 「최근 조선 연구의 업 과

그 출발」이란 논문에서 조선학의 개념을 정립한 다음 조선 연구를 재출발할

것을 천명했다 신남철은 동양과 서구의 통 차이와 문화 성격의 특수성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세계문화 속에 융화될 것이

지 결코 고유성에 화석화되고 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도 동양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양 임과 동시에 조선의 사회와 역사에 제약된 조선 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문화와 학술은 지성 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ldquo실학 의 두이후rdquo ldquo서구 인 것과 공통된 것rdquo을 ldquo우리의 학술rdquo 부

문에서 가졌다고 주장했다 ldquo문화의 통은 지성 인 것에 의하여 수되며

지성 인 것에 의해 확충발 되는 것이라고 보았던rdquo 신남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조선학 연구자의 연구 태도의 모범을 제시하고자 했

던 표 인 인물이다93) 그는 서구 근 철학사상의 진보 성격과 그 역사

의의가 반 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의 시 실 속에 아직도 생생하

게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94)

한 조선어 운동의 개와 함께 우리의 학술어도 우리말식 어법을 갖춰

갔다 신남철은 「조선어철자법문제의 기에 하야」(ꡔ신계단ꡕ 조선지 사

1932 12)에서 조선어철자법 문제를 일부 문법연구가의 임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정세와 역사 필연을 고려하면서 비 의 면 에 제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 문화교육 운동을 구했다95) 이 같은 주장

은 앞에서 살펴본 유진오의 주장과 함께 근 인 민족 문화 기획이었다 최

배는 외국인이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배우려고 하니 조선어 사 이 없어 불편

을 느껴 한불자 한미자 한 자 조화자 을 만들었으나 조선 사람 자신

은 조선어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사정을 개탄했다(조선일보 35 2 26)

그뿐만 아니라 역사사 지명사 인명사 등 특수사 백과사 까지 필

92) 박문병의 앞의 참고 신남철 (1948) 142쪽 참고

93)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35쪽

94) 신남철 (1948) 142쪽 102쪽

95) 그는 「언어의 성립」이라는 독역된 소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ꡔ正音ꡕ 2호 朝鮮語學

硏究 1934 4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Kum Hwan Kim ldquoSprachkontakt zwischen dem Koreanischen und dem

Deutschen in Geschichte(bis zum 15 8 1945)rdquo 건국 ꡔ인문과학논총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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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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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제자료총서 제5권 수록

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1: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5

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양 사람은 자국의 언어를 정리한 여력으로써 남의 언어

까지 정리하여 가일층의 창조 활동의 정로를 마련하는데 조선 사람은 반만

년 문화민족으로서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체

노력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사 을 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선지 사가 ꡔ사회어사 ꡕ(최진원 )의 출 을 고까지 하 으나 일제의

제재 때문에 좌 되었다 20년 부터 간행된 잡지에는 신조어 사 도 달려 있

었다 ꡔ개벽ꡕ의 부록이었던 「 요술어사 」(박 희 편 2회 연재 52호 1924 8

1 59호 1925 5 1) ꡔ사상운동ꡕ의 「신술어해석」란 ꡔ조선지 ꡕ의 「신어해

석사 」란(64호 65호 69호 1927) ꡔ농민ꡕ의 「농민사 」(제1권 제4호 1930

8)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조어를 보편화하려는 노력이었다 ldquo우리 운동의

이론 술 각 방면에 통용되는 각종 술어를 정해(正解)하는 동시에 하루바삐

보편화할 필요rdquo가 있다 ldquo무슨 물건이라도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물건이

라도 보편화 못되면 민 의 물건이 아니다rdquo(『사상운동』 제3권 제1호 1925

12)

20년 부터 번역 수용되었던 유물론 역사 은 원배가 언 했듯이

근 사회과학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우리 역사를 사회경제 측

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근 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을 형성하게

해주는 계기 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 번역사는 곧 마르크스주

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수용사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한 기획과 함

께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과 학문의 체계화는 해방후 사회과학 사

편찬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당시 백효원의 ꡔ철학사 ꡕ(개척사 1948 1)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책임편집 1948 3) 이재훈의 ꡔ철학사 ꡕ(동국문화

사 1949)이 나왔다 백효원은 이시첸코의 1931년 발행 개정증보제2 을 본

으로 삼아 유물변증법 사 을 번역했다 ldquo진정한 민주 문화의 수립을 하여

과학 이론과 세계 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날 조선의 진격한 학도들에

게rdquo 도움을 주기 해 번역했던 백효원은 ldquo문제의 진정한 소재와 그것이 제기

된 소이연(所以然)이 명확하게 밝 짐이 없이는 철학 술어의 어떠한 이해도

포착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rdquo에 변증법 유물론의 입장을 표명한 사 이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ꡔ사회과학 사 ꡕ(이석태 편집 文友印書館 1949)은 일본

의 경제학 사 사회과학 사 (이상 개조사 수정유보 )과 유물론사 (쏘동

맹의 철학자 미- 이시첸코 양씨의 공 인 1939년 백양사 ) 쏘베트백과사

(로시아문제연구소편) 등을 참고한 것이며 경제 철학 사회운동을 주제로

반번역반창작한 것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제거하고 조선의 통용어만을 사용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Kum Hwan Kim ldquoSprachkontakt zwischen dem Koreanischen und dem

Deutschen in Geschichte(bis zum 15 8 1945)rdquo 건국 ꡔ인문과학논총ꡕ

제24집 1992

Orsquomaley 「칼 맑스 헤겔법철학비 해설」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T I 오이 만 ꡔ맑스주의 철학성립사ꡕ 윤지 옮김 아침출 사 1988

강내희 「한국의 식민지 근 성과 충격의 번역」 ꡔ문화과학ꡕ 31호 2002 가을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한 유령학」 ꡔ흔 ꡕ 1호

2001

강동진 ꡔ日本 論界と朝鮮ꡕ 法政大學出版局 1984

강 안 ꡔ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ꡕ 궁리 2002

고야마 히로다 (1991) 한상구 조경란 공역 ꡔ일본 마르크스주의사 개설ꡕ 이론

과 실천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ꡔ한국잡지개 호별목차집ꡕ

신아카데미 한국학연구소 1973

98 시 와 철학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궁리 200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김 민 ꡔ지식인과 심층근 화- 선의 존재론ꡕ 철학과 실사 1999

김재 (2002) ꡔ한국 사회철학의 수용과 개ꡕ 동녘 2002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서문」 2001

마르크스 K 엥겔스 K 김 웅 역 ꡔ독일이데올로기Ⅰ」 두 출 사 1989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맑스 K 엥겔스 F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ꡔ 작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1991

맑스 K 엥겔스 F ꡔ 작 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김세균 감수 1991

문 섭 (1999) 「일간지를 통해본 1920년 의 한국민주정치사상」 慶星大學校 社

科學硏究所 ꡔ社 科學硏究ꡕ 15권 1호 1999

박경직 편 ꡔ在日朝鮮人運動關係機關誌 (解放前)ꡕ 朝鮮問題資料叢書 第5卷 アシ

ア문제연구소 1983

박문병 「속학 유물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

호 1927 10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 岩波文庫 소화 51930

서 숙 (1965) ꡔ한국공산주의 운동사 연구ꡕ 화다 1985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論創社 2002

守屋典郞 ꡔ日本マルクス主義理論の形成と發展ꡕ 靑木書店 1967

신남철 「지성은 문화의 무기고」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신남철 ꡔ역사철학ꡕ 서울출 사 1948 1 30

신주백 편 일제하신문사설연제자료집 ( 12권) 진문화사 1991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야나부 아키라 서혜 옮김 ꡔ번역어 성립사정ꡕ 일빛 2003

역사학연구소 편 (1997) ꡔ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오세철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 장에서 미래를 1996

유시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 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 공산주의 운

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유재천 ꡔ한국언론과 이데올로기ꡕ 문학과 지성사 1990

윤자 의 약력에 해서 http 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

txt 6-1-3-2html

伊藤友信 외 지음 ꡔ근 일본 철학사상상가 사 ꡕ 「부록ꡕ 동경서 주식회사

1982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9

이재훈 「존재인식」ꡔ철학ꡕ 제2호 1934 3

이재훈 「哲學의 問題及立場」 ꡔ철학ꡕ 제3호

임경석 ꡔ고려공산당연구ꡕ 성균 박사학 논문 1993

명 「사회주의 사상의 도입과 조선공산당 창건」 ꡔ진보평론ꡕ 제2호 1999년 겨

울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정문길 「맑스-엥겔스의 장서에 쓰인 난외방주의 의의와 출 문제」 한국인문사회

과학회 ꡔ 상과 인식ꡕ 2003 여름호

정문길 「한국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 ꡔ문학과 사회ꡕ 제 44호 1998년 겨울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조동일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서울 학교 출

부 1997

조세 ꡔ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ꡕ 책세상 2001

최갑수 「ꡔ공산당선언ꡕ의 재 의미ꡕ ꡔ진보평론ꡕ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창간호 1999년 가을

최경 편역 「마르크스 닌주의 고 입문 Ⅱ」 거름 1988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편

조선문제자료총서 제5권 수록

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2: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96 시 와 철학

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집필자 37명 보조집필자 18명 감수원 13명이 참여

했던 ꡔ사회과학 사 ꡕ은 그 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의 방 함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편집 책임자 이석태는 사회과학 사 을 펴낸 목 을 다음과

같이 말하 다 ldquo조선의 민주주의 건국운동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장 실히 느

끼는 것은 근 과학 인 이론무장이다 더욱히 조선과 같이 과학 이론이 빈

곤한 곳에 있어서는 열열한 민주주의 건국운동자일수록 오묘한 과학 지식과

투철한 분석 이론과 그리고 종합 인 세계 일반에 한 상식이 간 히 는

긴 히 요청될 것이다 hellip 따라서 이러한 요구에 응하기 하여 미력이나마 최

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어 계획하고 편집한 것이 본 사회과학 사 이다rdquo

빌헬름 리 크네히트가 ldquo맑스의 스타일은 맑스 자신이다rdquo96)고 말했듯이 맑

스의 은 맑스 자신의 개성이 반 된 이다 ꡔ자본ꡕ을 ldquo번역하기 해서는

웬만한 문어 독일어 지식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는 일상 생활 표

과 방언의 용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고 모든 분

야의 과학으로부터 실례를 취하며 12개 언어의 문학으로부터 암시를 취한다

그를 이해하기 해서는 실제로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 독일어의 능통자이어야

만 하며 독일 생활에 한 것도 알아야만 한다rdquo고 엥겔스는 말한 이 있다

엥겔스는 ꡔ공산당선언ꡕ의 역과 련해서 ldquo양국 언어에 한 문학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일간 신문에 한 술의 경험만을 가져서는 안되네rdquo라고 역

자에게 충고한 도 있다97) 엥겔스의 말 로라면 맑스의 원 을 제 로 번역

하려면 독일어에 정통해야 하며 우리말에도 정통해야 한다 아마 ꡔ 술론ꡕ의

편역자 박찬모도 이 을 리게 느 을 것이다 우리말과 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며 독일어 교육도 제 로 받지 못했던 식민 피지배 상황 하에서 일역본

을 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수많은 오역을 낳았을 것이며 엥겔스의 번역 원

칙에 미달된 행 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들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번역을 통해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했던 서구 근 인들 러시아의 짜르 체

제를 변 시키려고 했던 러시아 근 인들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자본주의 근 화의 변자 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96)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p 39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209쪽 재

인용

97)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121쪽

120쪽 122쪽 인용 원 표시 MEW Bd 36 S 97 S 45 Frederich Engels ldquoHow

Not to Translate Marxrdquo The Commonweal No 10 November 1885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Kum Hwan Kim ldquoSprachkontakt zwischen dem Koreanischen und dem

Deutschen in Geschichte(bis zum 15 8 1945)rdquo 건국 ꡔ인문과학논총ꡕ

제24집 1992

Orsquomaley 「칼 맑스 헤겔법철학비 해설」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T I 오이 만 ꡔ맑스주의 철학성립사ꡕ 윤지 옮김 아침출 사 1988

강내희 「한국의 식민지 근 성과 충격의 번역」 ꡔ문화과학ꡕ 31호 2002 가을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한 유령학」 ꡔ흔 ꡕ 1호

2001

강동진 ꡔ日本 論界と朝鮮ꡕ 法政大學出版局 1984

강 안 ꡔ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ꡕ 궁리 2002

고야마 히로다 (1991) 한상구 조경란 공역 ꡔ일본 마르크스주의사 개설ꡕ 이론

과 실천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ꡔ한국잡지개 호별목차집ꡕ

신아카데미 한국학연구소 1973

98 시 와 철학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궁리 200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김 민 ꡔ지식인과 심층근 화- 선의 존재론ꡕ 철학과 실사 1999

김재 (2002) ꡔ한국 사회철학의 수용과 개ꡕ 동녘 2002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서문」 2001

마르크스 K 엥겔스 K 김 웅 역 ꡔ독일이데올로기Ⅰ」 두 출 사 1989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맑스 K 엥겔스 F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ꡔ 작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1991

맑스 K 엥겔스 F ꡔ 작 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김세균 감수 1991

문 섭 (1999) 「일간지를 통해본 1920년 의 한국민주정치사상」 慶星大學校 社

科學硏究所 ꡔ社 科學硏究ꡕ 15권 1호 1999

박경직 편 ꡔ在日朝鮮人運動關係機關誌 (解放前)ꡕ 朝鮮問題資料叢書 第5卷 アシ

ア문제연구소 1983

박문병 「속학 유물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

호 1927 10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 岩波文庫 소화 51930

서 숙 (1965) ꡔ한국공산주의 운동사 연구ꡕ 화다 1985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論創社 2002

守屋典郞 ꡔ日本マルクス主義理論の形成と發展ꡕ 靑木書店 1967

신남철 「지성은 문화의 무기고」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신남철 ꡔ역사철학ꡕ 서울출 사 1948 1 30

신주백 편 일제하신문사설연제자료집 ( 12권) 진문화사 1991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야나부 아키라 서혜 옮김 ꡔ번역어 성립사정ꡕ 일빛 2003

역사학연구소 편 (1997) ꡔ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오세철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 장에서 미래를 1996

유시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 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 공산주의 운

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유재천 ꡔ한국언론과 이데올로기ꡕ 문학과 지성사 1990

윤자 의 약력에 해서 http 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

txt 6-1-3-2html

伊藤友信 외 지음 ꡔ근 일본 철학사상상가 사 ꡕ 「부록ꡕ 동경서 주식회사

1982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9

이재훈 「존재인식」ꡔ철학ꡕ 제2호 1934 3

이재훈 「哲學의 問題及立場」 ꡔ철학ꡕ 제3호

임경석 ꡔ고려공산당연구ꡕ 성균 박사학 논문 1993

명 「사회주의 사상의 도입과 조선공산당 창건」 ꡔ진보평론ꡕ 제2호 1999년 겨

울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정문길 「맑스-엥겔스의 장서에 쓰인 난외방주의 의의와 출 문제」 한국인문사회

과학회 ꡔ 상과 인식ꡕ 2003 여름호

정문길 「한국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 ꡔ문학과 사회ꡕ 제 44호 1998년 겨울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조동일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서울 학교 출

부 1997

조세 ꡔ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ꡕ 책세상 2001

최갑수 「ꡔ공산당선언ꡕ의 재 의미ꡕ ꡔ진보평론ꡕ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창간호 1999년 가을

최경 편역 「마르크스 닌주의 고 입문 Ⅱ」 거름 1988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편

조선문제자료총서 제5권 수록

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3: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7

을 분쇄하고 식민지 근 사회를 개조하기 한 이론 실천 무기 다 우

리는 그 무기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움을 통해 얻었다 마르크스주의

원 에 한 우리의 번역물은 서구 근 자본주의 사회를 비 한 서구의 마르

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가 서로 만났던 흔 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번역물에는 근 서구의 명 이고 비 인 지식인

의 경험 일본 지식인의 경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경험이 함께 혼합되어 있

다 식민 피지배 상황 속에서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은 우리 통을

변형시켰고 해방과 개조의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근 인 학문 체계를 형

성하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원 번역물 그 사상들은 식민지 근 성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세력 그 결탁 지배계 과 결을 벌 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투쟁과 정치투쟁을 구성했던 식민지 공론 역의 요한

구성요인이었다 그 지만 일제 침략기의 원 번역물은 식민 지배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식민 지배의 잔재는 우리가 극

복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Kum Hwan Kim ldquoSprachkontakt zwischen dem Koreanischen und dem

Deutschen in Geschichte(bis zum 15 8 1945)rdquo 건국 ꡔ인문과학논총ꡕ

제24집 1992

Orsquomaley 「칼 맑스 헤겔법철학비 해설」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Karl Marx His life and Work

Reminiscences by Paul Lafarge and Wihelm Liebknecht (New York

1943) 홍 두 역 ꡔ헤겔법철학비 ꡕ 아침 1988

T I 오이 만 ꡔ맑스주의 철학성립사ꡕ 윤지 옮김 아침출 사 1988

강내희 「한국의 식민지 근 성과 충격의 번역」 ꡔ문화과학ꡕ 31호 2002 가을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한 유령학」 ꡔ흔 ꡕ 1호

2001

강동진 ꡔ日本 論界と朝鮮ꡕ 法政大學出版局 1984

강 안 ꡔ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ꡕ 궁리 2002

고야마 히로다 (1991) 한상구 조경란 공역 ꡔ일본 마르크스주의사 개설ꡕ 이론

과 실천

김근수 「문화정치」 표방시 ( 기)의 잡지개 ꡔ한국잡지개 호별목차집ꡕ

신아카데미 한국학연구소 1973

98 시 와 철학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궁리 200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김 민 ꡔ지식인과 심층근 화- 선의 존재론ꡕ 철학과 실사 1999

김재 (2002) ꡔ한국 사회철학의 수용과 개ꡕ 동녘 2002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서문」 2001

마르크스 K 엥겔스 K 김 웅 역 ꡔ독일이데올로기Ⅰ」 두 출 사 1989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맑스 K 엥겔스 F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ꡔ 작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1991

맑스 K 엥겔스 F ꡔ 작 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김세균 감수 1991

문 섭 (1999) 「일간지를 통해본 1920년 의 한국민주정치사상」 慶星大學校 社

科學硏究所 ꡔ社 科學硏究ꡕ 15권 1호 1999

박경직 편 ꡔ在日朝鮮人運動關係機關誌 (解放前)ꡕ 朝鮮問題資料叢書 第5卷 アシ

ア문제연구소 1983

박문병 「속학 유물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

호 1927 10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 岩波文庫 소화 51930

서 숙 (1965) ꡔ한국공산주의 운동사 연구ꡕ 화다 1985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論創社 2002

守屋典郞 ꡔ日本マルクス主義理論の形成と發展ꡕ 靑木書店 1967

신남철 「지성은 문화의 무기고」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신남철 ꡔ역사철학ꡕ 서울출 사 1948 1 30

신주백 편 일제하신문사설연제자료집 ( 12권) 진문화사 1991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야나부 아키라 서혜 옮김 ꡔ번역어 성립사정ꡕ 일빛 2003

역사학연구소 편 (1997) ꡔ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오세철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 장에서 미래를 1996

유시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 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 공산주의 운

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유재천 ꡔ한국언론과 이데올로기ꡕ 문학과 지성사 1990

윤자 의 약력에 해서 http 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

txt 6-1-3-2html

伊藤友信 외 지음 ꡔ근 일본 철학사상상가 사 ꡕ 「부록ꡕ 동경서 주식회사

1982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9

이재훈 「존재인식」ꡔ철학ꡕ 제2호 1934 3

이재훈 「哲學의 問題及立場」 ꡔ철학ꡕ 제3호

임경석 ꡔ고려공산당연구ꡕ 성균 박사학 논문 1993

명 「사회주의 사상의 도입과 조선공산당 창건」 ꡔ진보평론ꡕ 제2호 1999년 겨

울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정문길 「맑스-엥겔스의 장서에 쓰인 난외방주의 의의와 출 문제」 한국인문사회

과학회 ꡔ 상과 인식ꡕ 2003 여름호

정문길 「한국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 ꡔ문학과 사회ꡕ 제 44호 1998년 겨울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조동일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서울 학교 출

부 1997

조세 ꡔ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ꡕ 책세상 2001

최갑수 「ꡔ공산당선언ꡕ의 재 의미ꡕ ꡔ진보평론ꡕ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창간호 1999년 가을

최경 편역 「마르크스 닌주의 고 입문 Ⅱ」 거름 1988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편

조선문제자료총서 제5권 수록

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4: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98 시 와 철학

김동춘 ꡔ근 성의 그늘ꡕ 궁리 2000

김명 「조선학생운동의 사 고찰」 ꡔ신흥과학ꡕ 제2권 제1호

김명식 「각성한 청년에게」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김 민 ꡔ지식인과 심층근 화- 선의 존재론ꡕ 철학과 실사 1999

김재 (2002) ꡔ한국 사회철학의 수용과 개ꡕ 동녘 2002

나오키 사카이 ꡔ흔 ꡕ 1호 「서문」 2001

마르크스 K 엥겔스 K 김 웅 역 ꡔ독일이데올로기Ⅰ」 두 출 사 1989

마르크스 엥겔스 김 기 역 ꡔ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 술론ꡕ 논장 1989

맑스 K 엥겔스 F ꡔ정치경제학 비 을 하여ꡕ 「서문」 ꡔ 작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1991

맑스 K 엥겔스 F ꡔ 작 선집ꡕ 1권 박종철 출 사 김세균 감수 1991

문 섭 (1999) 「일간지를 통해본 1920년 의 한국민주정치사상」 慶星大學校 社

科學硏究所 ꡔ社 科學硏究ꡕ 15권 1호 1999

박경직 편 ꡔ在日朝鮮人運動關係機關誌 (解放前)ꡕ 朝鮮問題資料叢書 第5卷 アシ

ア문제연구소 1983

박문병 「속학 유물사 의 극복 - 종래의 오류사 을 일소함」 ꡔ조선지 ꡕ 제72

호 1927 10

삼목청 ꡔトイッチェイデオロギ- ꡕ 岩波文庫 소화 51930

서 숙 (1965) ꡔ한국공산주의 운동사 연구ꡕ 화다 1985

石塚正英 柴田隆行 감수 ꡔ哲學思想飜譯語事典ꡕ 論創社 2002

守屋典郞 ꡔ日本マルクス主義理論の形成と發展ꡕ 靑木書店 1967

신남철 「지성은 문화의 무기고」 ꡔ비 ꡕ 제67호(1938 11 26)

신남철 ꡔ역사철학ꡕ 서울출 사 1948 1 30

신주백 편 일제하신문사설연제자료집 ( 12권) 진문화사 1991

악 「문화운동과 사상문제」 ꡔ아성ꡕ 제3호 1921 7 15

악 「 사조개 」 ꡔ아성ꡕ 제2호 18-9쪽 참고

야나부 아키라 서혜 옮김 ꡔ번역어 성립사정ꡕ 일빛 2003

역사학연구소 편 (1997) ꡔ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오상근 「교인과 교회」 ꡔ아성ꡕ 제2호 1921

오세철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 』 장에서 미래를 1996

유시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운동」 역사학연구소 편 ꡔ한국 공산주의 운

동사 연구- 황과 망ꡕ 아세아문화사 1997

유재천 ꡔ한국언론과 이데올로기ꡕ 문학과 지성사 1990

윤자 의 약력에 해서 http seoul600 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

txt 6-1-3-2html

伊藤友信 외 지음 ꡔ근 일본 철학사상상가 사 ꡕ 「부록ꡕ 동경서 주식회사

1982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9

이재훈 「존재인식」ꡔ철학ꡕ 제2호 1934 3

이재훈 「哲學의 問題及立場」 ꡔ철학ꡕ 제3호

임경석 ꡔ고려공산당연구ꡕ 성균 박사학 논문 1993

명 「사회주의 사상의 도입과 조선공산당 창건」 ꡔ진보평론ꡕ 제2호 1999년 겨

울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정문길 「맑스-엥겔스의 장서에 쓰인 난외방주의 의의와 출 문제」 한국인문사회

과학회 ꡔ 상과 인식ꡕ 2003 여름호

정문길 「한국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 ꡔ문학과 사회ꡕ 제 44호 1998년 겨울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조동일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서울 학교 출

부 1997

조세 ꡔ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ꡕ 책세상 2001

최갑수 「ꡔ공산당선언ꡕ의 재 의미ꡕ ꡔ진보평론ꡕ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창간호 1999년 가을

최경 편역 「마르크스 닌주의 고 입문 Ⅱ」 거름 1988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편

조선문제자료총서 제5권 수록

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5: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99

이재훈 「존재인식」ꡔ철학ꡕ 제2호 1934 3

이재훈 「哲學의 問題及立場」 ꡔ철학ꡕ 제3호

임경석 ꡔ고려공산당연구ꡕ 성균 박사학 논문 1993

명 「사회주의 사상의 도입과 조선공산당 창건」 ꡔ진보평론ꡕ 제2호 1999년 겨

울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정문길 「맑스-엥겔스의 장서에 쓰인 난외방주의 의의와 출 문제」 한국인문사회

과학회 ꡔ 상과 인식ꡕ 2003 여름호

정문길 「한국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 ꡔ문학과 사회ꡕ 제 44호 1998년 겨울

정문길 ꡔ마르크스의 사상형성과 기 작ꡕ 문학과 지성사 1994

정백 「민 정신의 일고찰」 29쪽 ꡔ신생활ꡕ 제1호 1922 3 11

조동일 「수입학에서 창조학까지의 환과정」 ꡔ인문학문의 사명ꡕ 서울 학교 출

부 1997

조세 ꡔ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ꡕ 책세상 2001

최갑수 「ꡔ공산당선언ꡕ의 재 의미ꡕ ꡔ진보평론ꡕ 도서출 장에서 미래로

창간호 1999년 가을

최경 편역 「마르크스 닌주의 고 입문 Ⅱ」 거름 1988

최익한 「사상단체해체론」 22쪽 ꡔ이론투쟁ꡕ 제1권 제2호 1927 4 25 박경직편

조선문제자료총서 제5권 수록

河上肇 ꡔ唯物史觀硏究ꡕ 弘文 書房 1921 8 25 발행

칼 맑스와 엥겔스의 원 은 MEW(Dietz Verlag Berlin)에서 인용했음

서양철학 문헌 총목록표에 있는 자료는 참고문헌으로 별도 표시하지 않았음을

밝 둔다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6: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100 시 와 철학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Hong Young-Du

This essay treats history about reception-activities of our modern intellectuals

who translate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It is Marxism

as western foreign thought that had been received by way of translations in the

public sphere of our modern society under the colonial oppressed situation In

such cases how foreign thoughts was receiving by people Reading translated

texts was performed in the public sphere and the public opinion was formed

there Therefore a study about reception-history of marxian philosophical

thoughts should start the translation-activities the texts of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rxism

However translation is not the one-sided reception of foreign thoughts

Translation is the work which opens the possibility that presents reexamine

problems between people and performs it about the same text Translation is

contact-activities between the traditional culture and the foreign culture This

contact varies the tradition This was true of forming translation-language applied

to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in our modern times Our modern intellectuals

borrowed the philosophical terms of Marxism from Japanese Marxists or

Socialists Because our modern intellectuals used Japanese texts that had

translated english or german written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Owing to

it our translation-language of marxian philosophical terms has been contained

the preoccupation and prejudice pervaded in the Japanese translation-language

that was invented using Japanism Chinese Characters This trouble is one of

marks of our experience that suffered the colonial domin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It is todayrsquos our task that had to overcome colonial remainder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new meanings which has been formed by our modern

experience and has been embedded in our translation-Language We could

construct modern Social Science and modern Korean Philosophy by way of the

reception of Marxism

From a point of this view this essay reexamines the characters and conditions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

Page 47: The Translation-History of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ism and Our Modernity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 번역사와 우리의 근 성 101

of our activities that translated the philosophical texts of Marx Engels Lenin

Stalin who translated texts of Marxism from what motives who used what sort

of texts how the content of translated texts was closely connected with our

modern situation This research contains the motives of translation-activity the

course of translation-reception periodical distinctions of translation-content

interrelations between our modernsrsquo contemporary situation under colonial

domination and our translation-activities effect-scope of translations troubles of

translated publications and so forth Finally this paper tries to confirm that

Marxian philosophy was one of our important elements that has been composed

of our modernity and our modern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