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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서 울 행 정 법 원 12 판 결 2005구합21859 난민인정불허결정취소 0000 6법무부장관 변 론 종 결 2005. 12. 22. 판 결 선 고 2006. 1. 26. 주 문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청 구 취 지 피고가 2003. 5. 12. 원고들에 대하여 한 각 난민인정불허가결정을 취소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아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의 1 내지 갑 제2호증의 6의 각

2005구합21859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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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 행 정 법 원

제 12 부

사 건 2005구합21859 난민인정불허결정취소

원 고 0000 외 6인

피 고 법무부장

변 론 종 결 2005. 12. 22.

결 선 고 2006. 1. 26.

주 문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청 구 취 지

피고가 2003. 5. 12. 원고들에 하여 한 각 난민인정불허가결정을 취소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

아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의 1 내지 갑 제2호증의 6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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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에 변론 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⑴ 원고들은 콩고민주공화국(D. R. Congo, 이하 ‘콩고’라 한다) 국민으로서 원고 4, 6,

7은 본인의 여권으로, 나머지 원고들은 별지 1 목록 기재와 같이 성명이 조되거나

생년월일이 조된 콩고 여권을 소지하고 우리나라에 별지 1 목록 ‘입국일’ 기재일과

같이 1999. 10. 9.부터 2000. 9. 13.까지 사이에 각 입국하 는데, 입국 후 여자인 원고

5, 6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은 안산시 등지에서 공장노동자 등으로 생활하다가 2000.

11. 27. 피고에게 출입국 리법 제76조의2에 의한 난민인정을 신청(이하, ‘이 사건 신청’

이라 한다)하 다.

⑵ 피고는 원고들이 1951년 난민의지 에 한 약(이하, ‘난민 약’이라 한다) 1967

년 난민의지 에 한의정서(이하, ‘난민의정서’라 한다)에서 난민의 요건으로 정한 ‘박

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가진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

로, 2003. 5. 12. 원고들의 난민인정을 불허하는 결정(이하, ‘이 사건 각 처분’이라 한다)

을 하 다.

2. 이 사건 각 처분의 법 여부

가. 원고들의 주장

⑴ 차 인 하자

피고가 원고들에게 행한 이 사건 각 처분은 원고들이 난민 약에서 정한 박해에 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만 하고 있을 뿐이고 어떠한 법 근거 혹

은 사실상의 사유도 제시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이유 부기의 하자를 포함한 이러한

차상 하자는 독자 인 취소사유가 된다.

⑵ 실체 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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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의 일반 인 인권상황

콩고의 인권문제는 1965년부터 1996년까지 사이에 이루어진 모부투 독재정권의 탄압과

그 이후 투치족과의 갈등에 의하여 발생한 장기간에 걸친 내부 무장 세력간의 충돌과

이를 이용한 주변 국가들의 침략으로 국내외 무장 세력들이 통제 없이 민간인을 학살,

학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법률상 병역의 의무가 없는 콩고 내의 정부에

항하는 무장단체(이하, ‘반군’이라 한다)뿐만 아니라 정부군 내에서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소년병까지 무차별 으로 징집이 이루어지고, 강제징집을 거부할 때에는 본인

과 함께 그 가족들에 하여서까지 박해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여자의 경우 정부

군과 반군에 의하여 강제로 납치된 후 심지어 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한 콩고 내에서 표 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어

정부와 정책에 하여 비 인 입장을 밝힌 언론인들이 체포, 감 되어 고문이나

박, 폭행 등을 당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 이 사건 각 처분의 법성

와 같은 콩고의 상황하에서 원고들은 아래의 각 사유로 이 사건 신청을 하게 된

것으로, 이를 거부한 이 사건 각 처분은 난민인정의 요건인 ‘박해에 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에 한 법해석을 그르친 법한 결정이다.

① 원고 1의 경우

원고 1은 민간 방송국인 KTM(Kinshash Television Malibu)에서 카메라맨으로 근무하

면서 8년이 넘게 자행되어 온 소년병 강제징집에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TV에

방 되었다. 그 후 민간 비디오 촬 회사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던 다큐멘터리의

제작자들을 찾는 정부군에 의하여 체포되어 다큐멘터리에 하여 심문을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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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당하기도 하 는데, 한 백인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그리

고 원고 1의 아버지는 카빌라 정권 이 모부투 정부에서 감사직을 지냈는데,

정권이 들어선 후 살해되었고, 모부투 정부에서 사로 일하던 그의 삼 한 최근에

살해되었으며, 한편 원고 1의 여동생인 지나 비웨사(Gina Biwesa)는 2003년 국 런던

으로 탈출하여 그곳에서 난민 지 를 인정받았다. 따라서, 원고 1이 본국으로 송환된다

면 자신의 반정부 인 표 행 와 함께 아버지와 삼 의 경력으로 인하여 가혹한 처벌

을 받게 될 것이다.

② 원고 2의 경우

원고 2는 고마지역에 거주하면서 1999년 드로이츠 트 롬므 인 고마(Droits te L'homme

in GOMA)라는 인권단체를 해 콩고 지역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 자료를 제공하고 그

단체를 돕던 인권단체 구성원들 5~6명과 함께 납치되어 고문을 당하다가 탈출

하여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한국에 오게 된 것으로, 함께 탈출한 인권단체 구성원

여러 사람이 노르웨이나 벨기에에서 난민의 지 를 얻은 바도 있다. 원고 2의 형은

1998년 정부군에 의해 총살당했고, 남동생은 징집을 피해 탄자니아로 피난간 상태로,

원고 2의 인권단체를 한 활동과 정치 표 행 본국을 탈출한 사실에 의해 본

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존재한다.

③ 원고 3의 경우

원고 3은 킨샤사에 있는 교회에서 평일에 청소년들에게 설교와 도를 하면서 군 에

징집되면 형제와 자매를 죽이는 것으로 옳지 않고 기독교 정신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

문에 거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 는데, 1999년경 군인들에 의하여 납치되어 폭행을

당하다가 풀려난 후 교인들의 도움으로 1999. 10. 9. 킨샤사를 떠나 한국에 입국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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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것이다. 따라서 원고 3이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그의 정치 인 의사 표 으로 인해

생명에 한 혹은 비인간 인 행 강요 등의 박해에 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

포가 존재한다.

④ 원고 4의 경우

원고 4는 고마의 한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거 반 설교를 한 바 있고, 1999년 경 반

군이 원고 4에게 군 입 를 요구하 으나 이를 거 하 다. 그 후 원고 4는 생명의

을 느껴 약 1년간 도망다니다가 교회 신부님 등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입국하게 된

것으로, 그의 정치 의사 표 군에 강제징집될 경우 온갖 비인간 인 행 를 강

요받을 것이 확실하여 박해에 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존재한다.

⑤ 원고 5의 경우

원고 5는 우간다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령, 쇄된 동부 북 키부(Kibu) 지역

베니(Bene)시에서 살던 1999년 4명의 반군으로부터 징집에 응할 것을 강요받았

으나 이를 거부하 고, 그 후 원고 5의 집으로 찾아온 반군은 그들의 무례함에 호통을

치는 원고 5의 아버지를 총으로 사살하 으며, 이에 원고 5는 도망한 후 친구에게 미

화 3,000달러 상당의 돈을 주어 구한 여권과 비행기 표로 한국에 입국하게 된 것으로,

원고 5는 강제징집 거부로 인하여 그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등 생명에 한 명백한

이 있고, 박해에 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존재한다.

⑥ 원고 6의 경우

원고 6은 1996년경 고마에서 원고 4와 결혼하 는데, 1997년 그 남편이 반군으로부터

군 에 들어올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한 후 보복이 두려워 도주하 고, 원고 6 역시

고마에 있는 친구의 집을 도주하 는데, 1998년경 반군이 원고 6의 친구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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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6의 소재를 알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녀원으로 도망한 후 아시아인 수녀의

도움으로 한국에 와서 남편을 만나 함께 이 사건 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원고 6이 콩

고로 돌아간다면 언제라도 반군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박해에 한 충분한 공

포가 존재한다.

⑦ 원고 7의 경우

원고 7은 친구와 함께 킨샤사 심가에서 신원미상의 군인들에 의하여 남자 35명과 원

고 7을 포함한 여자 15명과 함께 납치된 후 징집에 응할 것을 요구하 으나 불응하

고, 이에 군인들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원고 7을 포함하여 잡 온 여성들을 강간

하 으며, 그곳에서 탈출한 후 아시아인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입국하게 된 것인데, 만

약 콩고로 돌아간다면 강간당한 여성으로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

하고 버림을 받을 것이고, 다시 무장단체에 잡 성노 로 자유를 유린당하거나 죽

임을 당하게 될 것이며, 이는 여성이라는 지 에서 받는 정치 , 사회 차별이자 명백

한 박해에 해당한다.

나. 련 법령

별지 2 련 법령 기재와 같다.

다. 인정사실

아래 사실은 에서 든 각 증거와 갑 제3호증 내지 갑 제8호증, 갑 제14호증 내지 갑

제18호증, 갑 제20호증, 을 제1호증, 을 제4호증의 1 내지 을 제11호증의 2, 을 제15호

증의 1 내지 을 제22호증의 2의 각 기재 증인 맘바호우 아멜 에이메 5세

(MAMBAHOU ARMEL AIME Ⅴ)의 증언에 변론 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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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콩고의 일반 인 상황

㈎ 콩고는 아 리카 부에 치한 나라로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하 고, 1965년경

모부투(MOBUTU)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그에 의한 1인 독재가 계속되어 왔다. 그런

데 1994년 이후 콩고의 이웃에 치한 르완다에서 일어난 후치족과 투치족간의 종족

분쟁으로 인해 많은 난민들이 콩고의 국경을 넘어오자, 모부투 정권은 투치족을 량

학살하 고, 이에 반발한 투치족에 속하는 바냐물량게족이 심이 된 범반정부조직인

콩고해방민주세력연합(ADFL)이 1996. 10.경 결성되어 모부투의 콩고 정부군과 투를

벌이게 되었다. 그 후 로랭 카빌라(LAURENT KABILA)가 이끄는 ADFL 반군이 1997.

5. 17. 콩고의 수도 킨샤사(Kinshasha)를 령함으로써 내 이 일단락되었으나, 1998. 7.

경 로랭 카빌라 통령이 자신의 집권을 도운 르완다 투치족을 비롯한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다시 악화되기 시작한 내 은 로랭 카빌라 통령이 암살당하고 그

아들인 조셉 카빌라(JOSEPH KABILA)가 집권한 이후인 2002년경까지 계속되면서 수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이러한 내 이던 1998년에서 2000년경까지 사이에 콩고에서

는 정부에 의하여 지속 으로 어른들 아이들에 한 강제징집이 이루어졌고, 언론

의 자유가 제한되었으며, 반 당 의원들에 한 가혹행 인권운동가들의 탄압이

이루어졌고, 다른 한편 르완다군과 RCD―고마군 등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국경 근처

의 지역의 주민들에 하여는 반군에 의한 인권유린 강제징집 등이 이루어졌다는

보고가 있었다.

㈏ 그러나 콩고는 2002. 7. 30.경 르완다와의 사이에 콩고가 르완다 반군을 무장해제한

뒤 본국으로 송환시키고 르완다는 콩고에서 병력을 철수하기로 하는 평화 정이 체결

됨으로써 4년 넘게 지속된 내 이 일단락되었다. 2003. 6.경 콩고의 정부군과 반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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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해방운동(MLC) 콩고민주연합(RCD)은 권력을 공유하는 과도정부 구성과 통합

군 구성에 합의하 고, 2004. 6. 25. 콩고와 르완다 통령은 2002년에 맺은 평화 정

을 재확인하고 정의 이행을 한 합동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하 으며, 콩고의

통령은 2005. 5. 16. 에는 2006년에 통령선거를 실시하는 내용을 포함한 새 헌법 채

택을 공식선언하 다. 그러나 2004년에는 콩고 정부군이 통제하는 지역에서는 소년병

징집이 해제되기는 하 으나 여러 인권침해 사례가 보도되고 있고, 내 동안 여러 반

란 단체에 통제되었던 지역들에서는 여 히 인권상황이 나쁜 상황이며 이러한 지역 일

부에서 반군이 계속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고, 2005년에도 콩고 정부에 의

한 여러 인권 침해 사례가 보도되기도 하 다. 한편, 2005년에 콩고에서는 UN 평화유

지군이 그 때까지도 분쟁이 계속되어 온 동부지역에 주로 견되어 반군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있고, 2004. 6.경 국제형사사법재 소는 2002. 1. 이후 콩고의 이투리(Ituri) 지역

에서 행하여진 쟁범죄에 한 조사에 착수하 으며, 2005. 10.경 최 로 반인도 범

죄로 기소된 12명의 병사에 한 범재 소의 심리가 시작되기도 하 고, 서부 탄자

니아의 캠 에 살고 있던 콩고 난민들의 실험 인 귀환이 시작되었다.

⑵ 원고들의 인 배경

㈎ 원고 1의 경우

① 원고 1은 1972. 3. 15. 출생(여권기재상 생년월일 : 1976. 3. 15.)한 자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사이에 개인 으로 비디오카메라 1 를 가지고 결혼식, 장례식, 종교행사

등에 출장 나가 비디오를 어 주고 돈을 받거나 사건 장을 어 방송국에 는 일

을 하 고, 그 간인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사이에는 신생방송국인 KTM 방송국과

속계약이 이루어져 카메라맨으로 1년 정도 일하기도 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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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원고 1은 여동생 MUWILA MATSHINGI(1976년생)를 포함하여 7남 3녀의 형제자매

넷째로 태어나, 아직 미혼이고, 아버지는 1991년 사망하 다.

③ 원고 1은 2001. 7. 2. 서울사무소 난민면담실에서 이루어진 난민면담시 KTM 방송국

은 1999. 10.경 콩고의 카빌라 정권이 7~8세의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약을 먹여서 반군

과의 쟁에 나가도록 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이 있는데, 원고 1은 다큐멘

터리를 본 조차 없어 그 내용을 알지 못하 음에도 불구하고, 원고 1이 다큐멘

터리를 촬 하 다고 오해 한 콩고 정부군에 의하여 1999. 10. 23. 18:00경 콩고의 수

도 킨샤사에 있던 원고의 집 근처에서 체포․구 된 후 고문을 받기도 한 이 있

다고 진술하 다.

④ 원고 1은 면담조사시 이 사건 신청의 사유에 하여 콩고는 내 상태이므로 돌

아가게 되면 생명이 태롭다고 생각되어서라고 진술하 다.

㈏ 원고 2의 경우

① 원고 2는 1968. 10. 16. 킨샤사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킨샤사 의과 학

을 다녔으나 이를 마치지는 못하 고, 그의 형이 콩고 정부의 첩보원(Guard Civil) 임

무 수행을 하여 온 가족이 고마(GOMA)로 이사한 이래 1998년까지 감자와 콩을 구

입하여 킨샤사에서 이를 매하는 농산물 련 유통업사업을 했으며, 밤에는 수학과

화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 고, 고마 지역의 축구선수로서 활약하기도 하 다.

② 원고 2는 콩고(KONGO) 족으로, 종교는 기독교이며, 그의 가족은 양사인 그의 처

와 죽은 형의 아들 2명 원고 2의 동생 2명이다.

③ 원고 2는 2000. 10.경 난민조사 결과 작성된 진술서에서는, 정부군은 원고 2가 1998

년경 정부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 형과 간음 당한 후 정신이상으로 죽은 형수의 죽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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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하여 인권기구와 하 다는 사유로 1999. 9.말 체포되어 사유와 정부군에 가

입하여 싸울 것을 강요당하면서 1개월 정도 고문을 당하다가 반군인 ‘마이마이’에 의하

여 구출된 이 있다면서, 콩고 내에서 반정부활동을 한 은 없다고 진술하 다.

④ 그런데 원고 2는 2001. 12. 17. 면담조사시에는, 1999. 8.경 인권사무실에 가던 반

군에 의하여 납치되어 인권단체 직원 여부를 신문당한 후 반군 가입을 종용당하면서

맞거나 을 당하 으며, 정부군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외국인 반군을 아주 싫어하는

‘마이마이(Mai-Mai) 용사’들에 의하여 구출된 이 있다고 진술하 다.

⑤ 원고 2는 2001. 12. 26. 면담조사시 이 사건 신청의 사유에 하여 콩고가 내

이라서 안 을 찾아서 본국을 떠나 왔고, 아직도 내 이어서 귀국할 경우 군 에

가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콩고에 귀국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술하 다.

㈐ 원고 3의 경우

① 원고 3은 1969. 12. 2.(여권기재상 생년월일 : 1967. 6. 7.) 킨샤사에서 출생하여 그곳

에서 거주한 자로 19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부터 1993년까지 킨샤사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원료를 매하 으며, 그 후 교회에 다니며 생활하 다.

② 원고 3는 MONGALA 족으로 기독교 신자이고, 그의 가족은 부모와 1998년 결혼한

아내 형제자매 4명이다.

③ 원고 3은 2001. 3. 9.과 2001. 8. 13. 2001. 9. 10. 3차례에 걸쳐 실시된 난민면담에

서 1999. 9. 1.경 거리에서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어 구 된 후 징집을 요구당하 으나

거부하 고, 군 징집 거부로 인하여 박해를 받았으며, 콩고 정부에 하여 의

견을 표명한 사실도 없고, 2001. 8.경 콩고로부터 온 편지에 따르면 원고 3을 특별히

찾고 있지는 않으며, 1999. 11. 22.부터 1999. 12. 6.까지 사이에 제천 소재 양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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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잡는 일을 하다가 발된 후 청주출입국에 출입국 리법 반으로 보호조치되어 출

국명령을 받았으나 국내에 계속 체류하면서 취업하기를 희망하여 출국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진술하 다.

④ 원고 3은 난민면담시 이 사건 신청의 사유에 하여 은 사람은 군 에 징집되

어 종족간에 싸움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군 에서 싸우거나 죽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진술하 다.

㈑ 원고 4의 경우

① 원고 4는 1967. 3. 30. 출생하 고,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사이에 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고마에서 거주하 다.

② 원고 4는 LUBA 족으로 기독교와 카톨릭을 믿으며, 원고 6과는 콩고에 있을 때 약

혼식을 하 고, 2000. 10. 27. 결혼식을 하 으나 콩고 사 에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은

상태이며, 콩고에 부모님과 남동생 1명, 여동생 1명이 있다.

③ 원고 4는 2001. 5. 31. 실시된 난민면담시 정부군을 지지하는데, 체포나 구 된 은

없으나 르완다 반군으로부터 반군 가담을 종용받고 거 하자 죽이겠다고 박하여 도

망다녔다고 진술하 다.

④ 원고 4는 난민면담시 콩고를 떠난 주된 이유는 르완다 반군으로부터 동물 같은

죽음을 당하기 싫어서이고, 이 사건 신청의 동기에 하여는 신변안 과 보호를 받기

해서라고 진술하 다.

㈒ 원고 5의 경우

① 원고 5는 1970. 7. 3. 출생(여권기재 생년월일 : 1974. 5. 11.)하여, 1990년 킨샤샤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 고,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아마 어 축구선수로 활동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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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BENI)에서 거주하여 왔다.

② 원고 5는 MONGO 족으로, 가족으로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부모와 여동생 3명, 남

동생 1명이 있으나, 부모는 2000년경 모두 살해당하 다.

③ 원고 5는 2001. 7. 1. 난민면담시 원고의 거주지역은 우간다 반군의 지배 지역인

데 2000년경 정부군에 항하는 우간다 반군으로부터 강제로 반군에 가입할 것을 종용

받았고 이를 거 하자 체포되었다가 탈출하 으나, 반군은 다시 원고를 찾으러 왔

다가 부모를 살해하 으며, 친구에게 2000불을 주고 여권 등을 마련하여 국내에 입국

한 것이라고 진술하 다.

④ 원고 5는 난민면담시 이 사건 신청의 경 에 하여 생명을 보호하기 하여 콩

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라고 밝히면서, 콩고의 상황이 경제 으로도 어렵고 살

기 힘들어 본국을 떠나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진술하 다.

㈓ 원고 6의 경우

① 원고 6은 1974. 12. 21. 출생하여, 1995년 킨샤사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6

년부터 고마에서 거주하고 있다.

② 원고 6은 BWISHA 족으로 종교는 카톨릭이었으나 원고 4와 사귀면서 기독교도 함

께 믿게 되었고, 가족으로는 부모와 2명의 남동생 2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원고 4와

는 고마의 교회에서 알게 되어 가족들 앞에서 약혼식을 올린 후 2000. 10. 27. 한국에

서 결혼식을 하 다.

③ 원고 6은 2001. 5. 31. 난민면담시 체포나 구 된 은 없으나, 약혼자인 원고 4가

르완다 반군에 가담하지 않고 행방을 감추었다는 사유로 폭행당한 이 있다고 진술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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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원고 6은 난민면담시 이 사건 신청의 사유에 하여 남편의 의견을 따라 신청하

게 된 것이고, 콩고를 떠난 이유도 약혼자를 만나기 해서라고 진술하 다.

㈔ 원고 7의 경우

① 원고 7은 1974. 9. 27. 출생하여 킨샤사에 거주하면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슈퍼

마켓 원으로 근무하 다.

② 원고 7은 MUTETELA 족으로, 가족으로 부모가 있으나, 아버지는 1990년 사망하

으며, 등록외국인기록표(을 제15호증의 1, 7)상 원고 1의 배우자이자 2003. 3. 17. 출생

한 DANIEL ELI KASHAMA BIWESA의 부모로 기재되어 있다.

③ 원고 7은 2001. 9. 14.과 같은 달 18. 난민면담을 받으면서 약혼자인 맘바호우 아멜

에이메 5세와 함께 2000. 4. 19. 길에서 정부군에 의하여 체포되어 여자들도 군 에 합

류할 것을 강요하고 약혼자를 군 에 합류하도록 하기 하여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

데 강간을 당하 다고 진술하 다.

④ 원고 7은 면담시 콩고에 돌아갈 경우 다시 성폭행을 당하게 될 것이 두려워 귀

국하고 싶지 않다고 진술하 다.

⑶ 원고들의 국내 입국 경로 난민신청 경

㈎ 원고들은 스와힐리어와 불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난민면담시 어로 의사소통을 하

을 정도로 어와 랑스어 모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자로서, 외국인 선교사나 목

사, 는 신부의 도움을 받거나(원고 1 내지 4, 원고 6, 7의 경우), 친구에게 미화를 주

고 구한 비행기표와 여권으로(원고 5의 경우) 콩고에서 출국한 것으로, 그 이후 국내에

입국하게 된 경로에 하여 모두 일치하여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 원고들은 국내 입국 직후 한국까지 동행한 인솔자들이 여권을 가지고 가 버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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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분실하여(원고 1의 경우) 원고들의 국 과 성명을 포함한 인 사항과 도

경유국 는 체재국이나 그 나라에서의 체재기간 등 입국 경로를 알 수 있는 여권을

소지하고 있지 아니하다.

㈐ 원고들 모두는 국내에 입국한 이후 여러 곳을 하며 생활하여 오다가 안산에 있

는 동산교회 목사의 도움을 받아 2000. 11. 27. 단체로 피고에게 난민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⑷ 외교통상부장 이 2003. 3. 4. 콩고 거주 우리 교민들을 통해 악한 내용에 기하여

피고에게 보낸 ‘콩고 민주공화국인 난민인정신청 련 사실 계 조사’에 의하면, 반군

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기지를 이탈한 경우 신변 의 가능성은 고, 콩고 정부에서

원고들의 난민신청 여부를 알 수는 없으며, 국민성에 비추어 보면 과거를 들추어 내어

철 히 처벌할 가능성은 고, 일반 국민의 해외여행은 여권발 규제를 통하여 규제

받고 있으며, 조셉 카빌라 통령의 통치 이후 민주화가 진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라. 단

⑴ 차 인 하자에 하여

행정청이 처분을 하는 때에는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에게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여야 한다(행정 차법 제23조). 인정사실에 의하여 보건 , 원고들이 출입국

리법 제76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난민인정을 신청한 이 사건 신청에 하여, 피고는

원고들이 제출한 자료와 진술 그 진술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은 각 출입국

리법 제2조 제2의2호가 그 로 원용하고 있는 난민 약 제1조가 정하는 ‘박해를 받

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유로 그 난민신청을 불

허하는 이 사건 각 처분을 한 사실을 알 수 있는바, 사정이 이와 같다면 피고가 그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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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시 법 근거인 출입국 리법의 제반 규정을 설시하지 아니하 다 하더라도,

출입국 리법의 제 규정에 의하여 난민인정을 신청한 원고들로서는 피고의 와 같은

이 사건 각 처분만에 의하더라도 자신들의 난민신청이 거부된 근거와 사유를 알 수 있

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는 이 사건 각 처분시 행정 차법 제23조의 규정을 법하

게 이행하 다 할 것이다. 이에 반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⑵ 실체 인 하자에 하여

㈎ 난민 약의 난민 요건과 출입국 리법상 난민인정행 의 성격

㈀ 난민 약과 난민의정서는 그 용 상이 되는 난민을 ‘①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

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는 정치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

포로 인하여, ②자신의 국 국 밖에 있는 자로서, ③국 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 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규정

하고 있는바, 이러한 난민의 요건은 우리나라 출입국 리법 제2조 제2의2호에서 그

로 수용되고 있다.

㈁ 한편, 난민 약상 난민의 요건은 선언 인 규정이지 창설 인 규정은 아니므로

요건을 충족하면 당연히 난민 약에서 정한 난민에 해당한다 할 것이나{난민의 지 에

한 1951년 약과 1967년 의정서에 의한 난민지 인정기 차편람(이하 ‘편람’

이라 한다) 28조, 갑제15호증}, 난민 약은 체약국으로 하여 약에서 정한 난민에

하여 항상 이를 받아들여 비호(庇護, Asylum)를 부여하도록 의무지우고 있지는 아니하

며(난민 약 제12조 제1호 참조), 난민에게 비호를 부여할 것인지, 부여한다면 그 법률

상 지 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여부는 일반 으로 각 체약국의 주권 결정사항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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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출입국 리법 제76조의2 제1항은 외국인으로부터 난민의 인정에 한 신청이

있는 때에 그 외국인이 난민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그에 따라 인정되는 난

민에게 어떠한 국내법 지 가 부여되는지에 하여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으

나, 이는 난민인정행 에 의하여 해당 외국인에게 일정한 범 내에서 법한 국내

체재자격을 부여하는 비호의 취지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할 것이고, 따라서 규정에 의한 피고의 난민인정행 를 단순히 신청자가 난민 약

등에서 정한 난민의 요건을 갖추었는지 확인하는 의미에 그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

며(이 부분에서는 피고의 재량이 인정될 여지가 없다), 오히려 난민의 요건을 갖춘 외

국인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는 설권행 (設權行爲)로서 이에 하여 피고에게 일정

한 재량이 부여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따라서 피고는 외국인에 의한 난민인정신청이 있을 경우 먼 난민 약 등에서 정

한 난민으로서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확정한 후, 그 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기 로 그를 출입국 리법 제76조의2 제1항의 난민으로 인정하여 법

한 국내체재자격 부여 등 일정한 비호를 부여할 것인지, 아니면 난민으로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제3국으로 강제 퇴거시키거나 보호상태를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한 정한

재량을 행사하여야 하고(난민을 그 생명 는 자유가 받을 우려가 있는 국 국 등

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는 것은 난민 약 제33조 제1호에 의하여 지되어 있

다), 만일 재량권의 행사에 앞서 난민 약 등에서 정한 난민의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한 사실인정을 그르쳐 필요한 재량권 행사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 처

분은 사유만으로 법하여 취소를 면하지 못한다 할 것이다.

㈏ 난민 약상 난민 요건의 충족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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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의 기 과 방법

① 난민 약은 난민의 인정 요건으로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는 정치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들고

있는데, 이 때의 박해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하여는 확립된 견해는 없지만 일응 생명

는 신체의 자유와 같은 한 인권에 한 침해행 가 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

고(편람 51조 참조), 그밖에도 일반 으로 문명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

는 부당한 차별, 고통, 불이익의 강요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이러한 난민으로 인정되기 해서는 신청인이 와 같은 박해에 한 공포를 느끼

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공포에 한 충분한 근거를 요구한다. 이는 신청인의 주

인 심리상태가 객 상황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함을 의미하는데(편람 38조), 합

리 인 통상인이 신청인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총체 경험과 상황 속에 놓이는 경우

박해에 한 공포를 느낄 것으로 단된다면 그 공포는 충분한 근거를 갖춘 것으로

이 상당하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신청인에게 주어진 총체 경험과 상황을 단함

에는 신청인의 국 국 내에 존재하는 일반 인 인권상황을 고려하여야 함은 물론이지

만, 나아가 그와 같은 신청인의 국 국에 한 일반 인 상황이 어떠한 구체 사정

속에서 신청인에 한 박해 가능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하여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며, 이 에 한 사실 계는 일차 으로 신청인 자신에 의하여 제공되어야 한다

(편람 195조). 다만 난민은 그 성격상 박해의 내용이나 가능성, 원인에 한 충분한 객

증거자료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 이라 할 것이므로, 그 입증의 정도

에 있어서 난민에게 객 증거자료에 의하여 주장사실 체를 입증하도록 요구할 수

는 없고 단지 그 진술의 체 인 신빙성만 수 할 수 있으면 된다 할 것이지만,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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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어도 신청인의 주장사실 자체로서 일 성과 설득력을 갖추어야 하고 일반

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과 상반되어서 안 된다(편람 204조).

③ 한 난민 약은 다시 그 박해의 원인이 일정한 사회 , 정치 지 와 련될 것

을 요구하고 있고, 박해의 원인이 되는 사회 , 정치 지 로서 ‘인종(종족), 종교, 국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는 정치 견해’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이

는 난민이 치한 사회 , 정치 지 로 인하여 사실상 국 국과 그 사회의 주류

치에 있는 구성원으로부터 타자로 간주되어 국 국의 보호가 미치지 않게 된 사람을

국제사회의 보충 보호의 상으로 삼고 있음을 나타낸다. 난민인정의 요건으로 문제

되는 박해와의 련성은 신청인이 염려하는 박해가 신청인의 사회 ․정치 지

에 따른 ‘차별성’을 띠고 있는지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와 련하여 국제 는 국내

무력충돌의 결과로 출신국을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는 자는 약상 원인에서 비롯

된 분쟁이라 하더라도 신청인이 처한 험이 쟁이라는 상황 자체에서 비롯된 험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신청인이 약상 열거된 사회 , 정치 지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없어, 난민 약이나 난민의정서에 의한 난민으로 볼 수 없다. 그러

한 자는 1949년 제네바 약 국제 무력충돌 희생자의 보호에 한 1949년 제네바

약에 추가된 1977년 의정서에 규정된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차편람 제164

조).

㈁ 원고들의 난민 요건 충족 여부

① 원고 1에 하여

원고 1은 이 사건 소송에서 KTM 방송국의 카메라맨으로 소년병 강제징집에 한 다

큐멘터리를 만든 정치 견해의 표 으로 인하여 심문을 당하기도 하 고,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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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부투 정권에서 감사직을 지내 정권이 들어선 후 살해되었으며, 같은 상황에 있는

동생 지나 비웨사가 국에서 난민 지 를 인정받은 등을 들어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 1은 주장과는 달리 이 사건 신청을 한 이후 이루어진 난민면담시 본인 스스로

1996년경부터 1997년경까지 1년 동안만 KTM 방송국과 속계약을 맺어 카메라맨으로

일하 을 뿐이고 1998년까지 나머지 기간 동안은 개인 으로 결혼식 등에서 비디오를

어주는 일을 하 다고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 아니하 고, 그 내용조차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고 있어 그 주장 자체로 일 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고 1이 와

같이 1997년경까지 1년 동안만 KTM 방송국에서 일한 것 뿐인데도 그로부터 무려 2년

이 지난 1999. 10.경에도 본인의 신분증 신에 KTM 보도증을 소지하고 다니다가 그

를 사용하여 여권을 만들게 하 다는 진술을 하고 있어(을 제5호증 참조), 뒤에서 살펴

보는 바와 같이 객 으로 확인이 가능한 원고 1의 주장부분이 허 라는 까지 고려

하면, 원고 1이 다큐멘터리와 련한 오해로 인하여 체포되어 고문받았다는 진술

부분도 믿기 어려운 , 원고 1의 아버지는 모부투 정권이 통치할 때인 1991년경 이미

사망하 고( 난민면담시 와 같이 말하 고, 원고 1의 아버지에 한 박해가 있었다

는 주장조차 없었다), 갑 제9호증에 의하면, GYNA MATSHINGI MUWILA가 국으

로부터 난민지 를 인정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동인의 여권 난민인정서의 기재에

의하면 생년월일이 1998. 12. 29.로 원고 1의 동생인 MUWILA MATSHINGI은 1976년

생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원고 1의 ‘성(姓, Family Name)’은 '비웨사(BIWESA)'로 보이

는데 난민지 를 인정받은 자의 이름과 원고 1의 성은 다른 것으로 보여 양자를

동일인으로 볼 수 없는 등 원고 1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을 종합하여 보면,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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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상 난민요건에 한 원고 1의 주장은 이를 믿기 어렵다.

② 원고 2의 경우

㉮ 원고 2의 각 난민면담시의 주장과 이 사건 소송에서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 주장의

가장 요한 부분인 원고 2에 한 박해의 주체가 반군인지 정부군인지, 그러한 박

해의 원인에 하여 진술에 일 성이 없고, 더구나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 2는

2001. 12. 17. 2001. 12. 26. 난민면담시 1999. 8. 말경 고마의 인권단체 사무실 부근

에서 반군에 의하여 납치된 이 있는데, 그 때 인권단체에 있는 친구도 만나고 인권

단체가 반군들에 의하여 청년들이 무작 로 체포되어 가는 상황을 국제 으로 알려

것을 요청하러 가는 길이었고, 반군은 원고 2에게 인권단체 직원인지에 한 심문을

한 후 반군 가입을 종용하 다는 것인바, 와 같이 반군이 원고 2에게 새삼스 인권

단체 직원인지에 한 심문을 한 것을 보면 원고 2의 이 의 행 등에 하여

알지 못하던 상태에서 무작 로 원고 2를 납치한 사정을 알 수 있고, 원고 2 스스로가

난민면담시 이 사건 신청의 사유에 하여 귀국하면 군 에 가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

에 귀국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까지 더하여 보면, 원고 2의 주장한 바 로

그가 인권단체에 력하 다거나, 그 력을 사유로 원고 2가 박해를 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어, 원고 2의 이에 한 주장을 믿을 수 없다. 오히려 각 사정을 종합하여 보

면 원고 2는 콩고에서 발생한 내 이라는 상황 자체에서 비롯된 강제징집의 험을 사

유로 콩고를 탈출하여 국내에 입국한 자에 불과하여, 난민 약상 열거된 정치 ․사회

지 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 한 콩고 탈출 난민인정신청에 따른 박해의 가능성에 하여 보더라도, 원고 2

는 조여권을 사용하여 콩고를 출국하 고,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 난민인정 신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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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은 사실이나, 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 2가 인권단체에 력하 다고 볼 수 없

고, 콩고 정부도 원고 2에게 이러한 의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이상, 콩

고 정부가 원고 2의 콩고 출국이나 난민인정 신청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여 통상 인

심문이나 조사과정, 제재를 넘어서 차별 인 가혹한 처벌을 가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콩고 출국 후 사정을 이유로 원고 2에 한 박해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

렵다.

③ 원고 3에 하여

원고 3은 이 사건 소송에서 교회에서 설교 등을 통하여 징집거부를 내용으로 한 정치

표 행 를 하 다고 주장하나, 와 같은 주장과는 달리 2001년경 수차례 있었던

난민면담시에는 다만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이 징집에 응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교회에

서 돌아가던 다른 1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정부군에 의하여 납치되었다고만 진술하고

있고, 박해사유는 군 징집거부이며, 콩고정부에 한 행동이나 는 의견

을 표명한 사실 유무도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이 사건 신청의 사유에 하여 원

고 3이 군 에서 싸우거나 죽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밝히고 있는 을 종합하여 보면,

정치 표 행 로 인한 박해에 하여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존재한다는 원고 3의

이 사건 소송에서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오히려 원고 3은 콩고의 내 이라는 상

황자체에서 비롯된 험을 사유로 콩고를 탈출하여 국내에 입국한 자로, 난민 약상

열거된 정치 ․사회 지 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④ 원고 4에 하여

원고 4는 이 사건 소송에서 교회에서 설교 등을 통하여 징집거부를 내용으로 한 정치

표 행 를 하 을 뿐만 아니라 반군에 의하여 군 입 를 요구하 으나 이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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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박해의 험이 존한다고 주장하나, 와 같은 주장과는 달리 원고 4는 등학

교 교사로 근무하 을 뿐이고, 2001. 5. 31. 난민면담시에 르완다 반군으로부터 반군 가

담을 종용받고 거 하자 박을 받은 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는 을 고려하여 보면,

원고 4에게 징집거부라는 정치 표 행 로 인한 박해의 험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고, 다만, 원고 4가 그 주장처럼 콩고에서 발생한 내 반군에 한 징집거

부로 인하여 생명의 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 험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차별화

된 가 된 험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난민 약상 열거된 정치 ․사회 지 로 인

한 박해의 험성을 가진다는 난민인정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볼 수 없다

⑤ 원고 5에 하여 .

원고 5가 그 주장 로 우간다 반군으로부터 강제징집의 요구를 받고도 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살해되는 등 생명의 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험이 원고의 정치 ․사회 지 에 기한 것이 아닌 콩고의 내 상황에서 야기된

일반 인 험에 해당할 뿐이라 할 것이고, 콩고의 재 상황이 원고 5가 콩고를 출국

할 당시와는 달리 내 이 일단락되어 외국군들의 철수가 체로 이루어진 상태로 다만

주변국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가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콩고에서 내 이 한참 진행 이던 시기와 같이 콩고의 일부 국경지역을 령한 채

앙정부의 군사력 등이 미치지 아니하는 것으로까지는 보이지 아니하는 상황의 변

화까지 고려한다면, 원고 5가 느끼는 험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차별화된 가 된

험으로서 약상 원인을 이유로 한 박해라고 볼 만한 차별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

로, 난민인정의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없다.

⑥ 원고 6에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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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6은 콩고에 있을 당시 이미 결혼을 한 남편인 원고 4의 징집거부로 생명의

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나, 인정사실에 의하면, 콩고에 있을 당시 원고 4와는 약혼만

한 상태로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2001. 5. 31. 난민

면담시 다만 르완다 반군에 가담할 것을 거부한 약혼자로 인하여 폭행당한 이 있고,

콩고를 떠난 이유는 약혼자를 만나기 하여서이며, 이 사건 신청의 사유도 남편의 의

견을 따라 신청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에 비추어보면, 원고 6은 난민인정

의 요건인 난민 약상 열거된 정치 ․사회 지 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

다고 보기 어렵다.

⑦ 원고 7에 하여

원고 7이 그 주장 로 길에 서 있다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부군에 의하

여 체포되어 강간당하면서 징집에 응할 것을 강요당하 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박해의

경 를 살펴보더라도 콩고의 내 상황에서 야기된 일반 인 험에 해당할 뿐이고,

이 사건 신청 이후 콩고 내에서 여 히 인권침해행 등이 근 되고 있지 않고 정치

상황도 불안한 것이 사실이지만 주변국들과의 정 체결 등에 기하여 내 이 일단락됨

에 따라 정부군에 의한 소년병의 징집이 해제되는 등 최소한 정부군에 의한 무차별

강제징집의 사례는 보고되지 있지 아니하며, 정부군의 범죄행 일부에 한 조사와

재 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정까지 감안하면, 원고 7이 느끼는 와 같은 험은 사회

일반으로부터 차별화된 가 된 험으로서 약상 원인을 이유로 한 박해라고 볼 만한

차별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난민인정의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없다.

㈂ 소결

따라서 원고들은 모두 난민 약에서 말하는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 24 -

신분 는 정치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지고 있

다고 볼 수 없어 출입국 리법 제2조 제2의2호에서 정한 난민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3. 결론

그 다면, 피고가 원고들의 출입국 리법 제76조의2에 의하여 난민인정을 신청한 이

사건 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이 사건 처분은 법하다 할 것이므로, 그 취소를

구하는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한다.

재 장 사 조해 _________________________

사 박순 _________________________

사 신상렬 _________________________

- 25 -

[별지 1]

목 록

생략

- 26 -

[별지 2]

련 법 령

[출입국관리법]

제2조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2의2. "난민"이라 함은 난민의지위에관한협약(이하 "난민협약"이라 한다) 제1조 또는 난민의지위에

관한의정서 제1조의 규정에 의하여 난민협약의 적용을 받는 자를 말한다.

제76조의2 (난민의 인정) ①법무부장관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부터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의 인정에 관한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외국인이 난민임을 인정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신청은 그 외국인이 대한민국에 상륙 또는 입국한 날(대한민국에 있는 동안에

난민의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하여야 한다. 다만, 질병 기타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법무부장관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난민의 인정을 한 때에는 그 외국인에게 난민인정증명서를 교부

하고, 난민의 인정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서면으로 그 사유를 통지하여야 한다.

④제1항의 규정에 의한 난민의 인정에 관한 심사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출입국관리법(2001. 12. 29. 법률 제654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6조의2 (난민의 인정)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신청은 그 외국인이 대한민국에 상륙 또는 입국한 날(대한민국에 있는 동안에

난민의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60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 다만, 질병 기타 부득이

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부칙 <제6540호,2001.12.29>

이 법은 공포후 3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난민의지위에관한협약 (1951. 7. 28.)]

제1장 일반규정

제1조 “난민‘의 용어 정의

A. 이 협약의 목적상 “난민”의 용어는 다음과 같은 자에게 적용된다.

(2) 1951. 1. 1.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서, 또한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

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

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또는 그러한 사건의 결과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상주국에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상주국에 돌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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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난민의지위에관한의정서(1967. 1. 31.)]

제1조 일반규정

1. 이 의정서의 당사국은 다음에 정의된 난민에 대하여 협약 제2조에서 제34조까지의 규정을 적용할

것을 약속한다.

2. 이 의정서의 목적상 난민의 용어는, 이 조 제3항의 적용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 협약 제1조 제A항

제2호에 규정된 ‘1951. 1. 1.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서 또한......’ 및 ‘그러한 사건의 결과로

서......’라는 문언이 삭제되었다면 협약 제1조의 정의에 해당하는 모든 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1992. 12. 3.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모두 가입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