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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여러분께 드리는 원순씨의 프러포즈 20 서울시 여기저기에 ‘희망’이라는 말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희망제 작소 상임이사를 지냈기 때문에 ‘희망서울’이 메인 슬로건이 된 것은 좋은데, 모든 것이 ‘희망’자를 달아야 안심인 듯, 모든 것에 ‘희망’이라는 문구를 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다양한 말들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시 장이 하는 말과 별개로 시민들이 좋아하고, 시민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용어라면 쓰셔도 좋습니다. 시장의 철학과 비전, 신념을 시청 직원들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 시정원칙과 방향이 통일되고 시민들의 혼란이 줄어들 것입니다. 시장 은 선거를 통해 당선되고 그 선거과정에서 공약을 통해 시민들과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장의 모든 말과 지침에 100%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획일성은 창조적이고 다양한 생각과 실험을 05 신념 ❶ 시장이 왼쪽이라고 해도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 신념과 고집도 때로는 필요하다 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권위주의가 겉으로 보면 효율적인 것 같지만 결국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약동하는 사회에서는 겉으로는 혼 란스러워 보이지만 그것이 결국 개성적이고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사 회를 진보시키기 마련입니다. 저는 시장취임 첫날, 시장에게 NO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명했습니다. 시장이 모든 일에 옳고 선(善)일 수 없습니다. 언론이나 외부 시민단체가 시장을 비판 하듯이 내부에서도 시장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진언할 수 있어야 합 니다. 관료제 하에서 쉽지 않은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 하에서 는 가능합니다. 제 앞에서 싫은 소리했다고 불이익 받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 고 분명히 공언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시장 말 안 들으면 어떡하지?

Seoul Way 05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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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여러분께 드리는 원순씨의 프러포즈 20

서울시 여기저기에 ‘희망’이라는 말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희망제

작소 상임이사를 지냈기 때문에 ‘희망서울’이 메인 슬로건이 된 것은 좋은데,

모든 것이 ‘희망’자를 달아야 안심인 듯, 모든 것에 ‘희망’이라는 문구를 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다양한 말들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시

장이 하는 말과 별개로 시민들이 좋아하고, 시민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용어라면 쓰셔도 좋습니다.

시장의 철학과 비전, 신념을 시청 직원들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 시정원칙과 방향이 통일되고 시민들의 혼란이 줄어들 것입니다. 시장

은 선거를 통해 당선되고 그 선거과정에서 공약을 통해 시민들과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장의 모든 말과 지침에 100%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획일성은 창조적이고 다양한 생각과 실험을

05 신념

❶ 시장이 왼쪽이라고 해도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

신념과 고집도 때로는 필요하다

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권위주의가 겉으로 보면 효율적인 것 같지만 결국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약동하는 사회에서는 겉으로는 혼

란스러워 보이지만 그것이 결국 개성적이고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사

회를 진보시키기 마련입니다.

저는 시장취임 첫날, 시장에게 NO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명했습니다. 시장이

모든 일에 옳고 선(善)일 수 없습니다. 언론이나 외부 시민단체가 시장을 비판

하듯이 내부에서도 시장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진언할 수 있어야 합

니다. 관료제 하에서 쉽지 않은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 하에서

는 가능합니다. 제 앞에서 싫은 소리했다고 불이익 받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

고 분명히 공언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시장 말 안 들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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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여러분께 드리는 원순씨의 프러포즈 21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공직자에게 드리는 프러포즈32

치가 있습니다. 그 언젠가 모든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 결과는 돌이키

기 어려운 것입니다.

공직자의 길은 결코 부자가 되는 길도 아니고 권력의 길도 아닙니다. 부자가

되려거든, 권력자가 되려거든 당장 그만두세요. 공직자는 결코 돈을 벌 수 없

습니다. 공직자는 결코 권력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헌신과 봉사의 길

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바쳐진 삶입니다.

청렴 - 그것은 공직자의 삶의 알파이고 오메가입니다.

참 진부한 말입니다.

청렴 -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입니다. 공무원 시작하면

서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들어온 말입니다. 이제 아마도 한쪽 귀로 듣고 또

한쪽 귀로 흘려보내기 마련일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결의도 이끌

어내기 힘든 주제일 것입니다.

그래도 말해야겠습니다.

청렴 - 귀 기울여 듣고 늘 감동해야 하는 말입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매일 밤 잠들면서 결의해야 하는 말이라고 말입니다. 결코 어느 때 단 한번이

라도 소홀해서는 안 되는 공직자의 금과옥조라고 말입니다.

단 한번의 실수로 공직자의 행로가, 삶의 궤도가 결정적 파국을 맞습니다.

아무리 단 두사람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도 그 누군가 알게 됩니다. 해가 보고

달이 보고 새가 듣고 쥐가 듣습니다. 가까이 일하는 직원들이 그것을 모르겠

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성품, 어떤 태도를 갖고 일하는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

는지, 민원인이나 주변 사람들의 관계마저 다 알고 있습니다. 눈치가 있고 코

❷ 청렴, 공직생활의 알파이고 오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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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여러분께 드리는 원순씨의 프러포즈 22

하면서 시간을 지체하며 스스로 포기하게 하기도 합니다. 일리 있어 보이는

경우에는 현장 부서에 내려보내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만 아예 말이 안되는 경

우에는 제 책상 안에 그냥 넣어두었다가 잊혀질만 하면 버립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실무부서에 “이것이 시장 지시이니까 무조건 하세요.”

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실무부서에서 검토해온 것을 대부분 존중하

려 애씁니다. 실무적 의견을 무시했다가는 사고가 납니다. 우리 공무원들이

오랫동안 그 업무에 종사했거나 아니면 그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것이

기 때문에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시장실에서 특정한 민원이나 청탁을 반드시 해결해 주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 의사가 아니니 시장에게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누가 와서 청탁한다고 하더라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서울시민의 삶에 이익이 되고 공공의 이익과 미래 서울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한 단호히 배척할 각오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따라 주십시오.

아마도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민원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시장인 저에게도 온갖 종류의 민원이 쏟아집니다. 민원이 물론 나쁜 것이 아

닙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렇게 간절하게 요청해 올까요? 민원을 잘 활용하

는 법도 필요합니다. 그 억울하고 잘못된 일을 처리하는 것은 그 개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일 뿐더러 더 나아가 거기에 관련된 제도를 바꾸고 시

스템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원의 본질을 잘 살

펴 그 같은 민원이 반복되거나 유사 민원이 생겨나지 않도록 본질적인 해결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악성 민원과 청탁성 민원입니다. 이미 답은 나와 있고 해결이 절대적

으로 불가능한 민원을 지속적으로 가져오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해서 스스로 포기하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청탁성 민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잘라야 하지만 잘 아는 경우에는 평생 원수가 될 수도 있

으니 점잖게 거절해야겠지요. 사실 거절을 잘해야 합니다. 안 된다고 거절하

는 사람일수록 웃으면서 너무 죄송하다고 하면서, 그러나 속으로는 단호한 마

음으로 거절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일단 사람에 따라서 설득 가능한 사람에게는 안 되는 사정

을 충분히 설명해서 돌려보내고 막무가내인 경우에는 일단 검토해보겠다고

❸ 청탁 퇴치, 아름답게 거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