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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나사 2014 t1 나경나사 2014

나경나사 2014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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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나사 2014 t1나경나사 2014

소개글

나만의 경험을 나누는 사람들 협업북

목차

1 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4

2 삼청동, 내 연애의 방 _류민애 12

3 freestyle 나의 수영이야기 _최미혜 15

2014.12.22 23:40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 4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2014년 11월 20일 남미여행 함께 떠나는 김성종님과 함께 양평초록영농조합 임청우&신영숙 대표님네 둥굴레 농장에

일일체험을 하러 갔습니다.

이름하여 체험 농장현장! 이유는 남미 여행 경비도 마련을 위해 일하는 것 뿐만 아니라, 더불어 SNS를 활용하여 영농을 하시는 분들을 찾아가 그분들의 농장을 소개시켜 드리기 위함입니다.

지하철을 한참타서 용문역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도 추웠는데 여긴 더 춥더라구요. 가뜩이나 일할 옷이 마땅치않

아서 얇게 입고 왔는데 '어휴 이거 장난아니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부랴부랴 편의점에서 핫팩 두 개를 구입했습니다.

둥굴레를 채취하는 모습입니다. 포크레인으로 거칠게 일군 땅 속에 묻혀진 둥굴레들을 쟁기와 호미를 가지고 채취를

합니다. 둥굴레들은 한 곳에 덩어리 덩어리로 모여 있더라구요. 어머님들 엉덩이에 붙어있는 의자 보이시죠? 둥굴레

수확 작업을 위해 최적화된 의자랍니다.

• 5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오전새참으로 먹은 컵라면. 언제나 야외에서 먹는 컵라면은 진리인것 같습니다. 물이 덜 뜨거워도 젓가락이 하나 떨

어져서 하나로 먹어도 그저 꿀맛같은 컵라면입니다.

해맑고 유쾌하신 어머님 !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려고 이것저것을 찍는 와중에 이런것도 찍어야 되지 않겠냐며 먼저

포즈를 취해주셨어요. 해맑은 미소가 아름다우세요. 일하는 동안에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 현장 분위기를 밝게 해

주셔서 더욱 힘내서 일할수 있었습니다.

• 6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총각 이리로 와서 좀 파봐" 어머님들이 부르셔서 그곳을 파면 둥굴레들이 덩어리로 잔뜩 나옵니다. 제가 보기엔 다

른 땅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 말이죠. 저는 한참을 맨땅에 헛손질 하는 때도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금방 찾으시는

거예요. 알고보니 둥굴레 줄기가 나와 있는 곳이 보이면 저를 부르신 것이더라구요. 그런데 둥굴레줄기와 나무줄기가

구분이 잘 안된다는 것이 함정! 제 눈엔 그놈이 그놈처럼 보입니다. 오후에 가서야 이제 저도 '아 여기엔 좀 있겠다'

하는 느낌을 알게 되었습니다.

• 7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함께 일했던 중국인 아저씨! 어머님들이 "아저씨~아저씨~" 부르면 웃으면서 같이 따라하셔서 어머님들의 인기를 독

차지하셨던 매력넘치는 분이십니다. 이 분은 한국에 어떻게 그리고 양평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을까요?

소셜활동을 통해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점은 삶을 살아오기까지 각각 한분한분 다양한 굴곡과 사

연들이 많으시더라구요.

대학생 때에는 직업이 정해지면 하나의 길로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짧은 생각이라

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중국인 아저씨의 사연도 궁금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언어의 장벽이

아쉬웠어요.

• 8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어리둥절 정신없이 오전일과를 마치고 어느새 돌아온 점심시간. 원래 맛집은 기사식당인거 아시죠? 점심은 얼큰한

두부찌개였는데 한입씩 먹다보니 어느새 빈그릇이었습니다.

• 9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하루종일 함께 둥굴레를 캔 어머님들과의 한 컷입니다. 하루를 함께 지내다 보니 어머님들과도 정들고 둥굴레 캐는

일도 손발이 맞아서 척척해냈습니다. 농장 대표님 말로는 농촌에는 이제 호미질하는 일손이 모자라서 어머님분들이

이제 일을 못하게 되시면 어떻게 해야할 지 정말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농촌에 젊은 인력들이 모자라다는 이야

기죠. 사실 이분들도 홍천에서 이곳으로 원정오셨다고 하네요.

만나뵈어서 방갑고 좋은추억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10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이상 삶의 둥글레체험 현장에 다녀온 장성혁 이었습니다!

QR코드를 찍으시면 둥굴레체험 현장을 스냅무비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11둥굴레체험 현장 _장성혁

2014.12.23 04:09삼청동, 내 연애의 방 _류민애

꿈같은 우연이 일어난 적이 있어요. 그날 겪었던 것은 꿈 그 자체였죠. 역시 우연이라 불러야 할까요? 글쎄요, 뭐라

고 해도 좋아요.

전 퇴근을 하고 인사동으로 향했답니다. 회사가 있는 광화문에서 걸어가고 싶었어요. 막연하게 경복궁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삼청동과 인사동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미국에 사는 이모가 바라던 것을 구하기 위해

인사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게 그 날이었던 거죠.

저는 선물을 사러 간 거예요. 하지만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저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같은 기분이 되었어요. 사

실, 경복궁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내가 두번째 연애가 끝나고 걸었던 길이거든요. 조금은 감상적이 되었습니

다. 그 순간 해질녘 노을이 생각났지만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들었던 음악은 ‘밤 하늘의 저편’이라는 제이팝

이었어요. 듣는 것은 관뒀습니다.

경복궁의 높은 돌담을 따라서 걷는데, 사람이 참 없더라고요. 아, 입추가 지나서인지 바람이 시원했어요. 좋았죠. 가

• 12삼청동, 내 연애의 방 _류민애

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그때였어요. 길 건너에 이상한 조형물이 나타난 건. 기시감이 있었죠. 아까 봤던 표지판이 생각났어요. 국립미술관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해보니, 저는 국립미술관을 지난 적이 있었어요. 지난 남자친구와의 첫 만남에서 지났던 적이 있

었죠. 그때는 막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새 건물 티가 났어요. 저는 조금 더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아, 진짜 그럴 줄은 몰랐는데. 지난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밥을 먹었던 공간이 나오더군요. 그때는 낮에 방문했던 터

라, 2층의 창가에서 밥을 먹었을 때 창 밖으로 기와지붕이 펼쳐졌어요. 따뜻한 겨울 초입의 햇살과 달콤한 빵 냄새를

잊은 적이 없어요. 최근엔 친구들에게 자주 말했었어요. ‘나, 거기 또 가보고 싶어. 요리가 정말 맛있었거든’ 그렇

게 말했지만, 길치인지라 찾아갈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타나다뇨.

신기루라도 본 듯, 멍하니 서있었어요. 웃음이 나왔어요. 간판을 바라봤습니다. 아, 이 가게의 이름이 저거였구나. 비

로소 알게 되었어요. 망설였습니다. 빵이라도 한조각 살까, 말까. 결국 입구로 들어갔어요. 다른 가게보다 조금 큰 마

카롱 5개를 사서 포장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가게에서 나왔을 때, 눈물이 핑 돌았어요.

오늘은 이상한 날이구나- 하고 말이죠.

길을 타고 내려오는데 정독도서관이 나오더군요. 비로소 부분 부분 알고 있던 삼청동의 지리가 통합됐어요. 아, 정독

도서관은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를 바람맞힌 곳이었어요. 그 날은 어린이 날이었고 바람이 많이 불던

맑은 날이었습니다. 약속장소인 정독도서관까지 갔는데, 맑은 하늘을 보니 혼자 있고 싶더라고요. 저는 폰을 껐습니

다. 그리고는 공원의 구석으로 숨어서 정말 큰 소리로 웃었답니다. 통쾌했어요. 전 그 남자에게 끌리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만나자고 하는 탓에 어쩔 수 없이 했던 약속이었어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약속 당일 잠수를 타다니, 내가! 웃음은 한동안 계속 나왔습

니다. 찬바람 불던 날씨에 한시간 넘게 기다리시기에 못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젠틀했던 그

분. 부디 어딘가에서 저를 실컷 욕하셨길 바랍니다.

삼청동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길을 타고 내려오는데, 연애하는 제 자신이 도깨비처럼 불쑥 불쑥 튀어나왔어요.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과는 다 손을 잡고 이 거리를 걸었어요. 생초컬릿도 먹었고, 레모네이드도 마신 적 있어요. 파스타도

먹고, 피자도 먹었어요. fly me to the moon이 흘러나오던 어떤 한옥 카페 앞에서 데이트 상대와 손을 잡고 들어갈

까 말까 주저하던 적도 있어요. 좁은 골목에 들어가 ‘우리 둘 밖에 없다’며 킬킬 웃었던 적도 있었어요.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그냥 여기에 온 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기로 가게 만들어서 온 거라는 것을.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저를 연애의 방으로 보냈다는 것을. 삼청동은 그런 곳이더군요. 맘에 들지 않는 남자는 들이

지 않았고 맘에 쏙 드는 남자만 들였던 곳이었어요. 저는 제 연애의 방에서 불쑥 불쑥 나타나는 도깨비와 높은 돌담

위에 떠있던 기울어진 달을 보면서 한참이나 어지러웠어요.

그래요, 저는 연애하고 싶은 거였어요.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준비가 된거예요. 그래서 당신에게 묻고 싶은게 있는데

요, 혹시 저랑 삼청동 가시지 않을래요?

• 13삼청동, 내 연애의 방 _류민애

<공감코치 서동훈>

민애님에게 삼청동은 연애와 관련있는 추억의 방이군요. 왜 삼청동을 걸으면서 눈물이 핑 돌게 되었을까요?

전 남자친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현재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요? 둘다 아닌 것 같아요. 그 눈물의 의미가 궁금해지네요~

그래도 추억을 정말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쿨한 여자라는 것 한 가지만은 확실하네요^ ^!

연애하고 싶다는 감정은 사람을 순식간에 잡아먹는 야수와 같아서 늘 잘 조련해야해요.

쿨한 여자 민애님은 그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며 잘 조련하리라 생각되네요. 다음 삼청동을 걷게 될 주인공은 언제 나타날까요?

글을 쓰다보니 '더 연애하고 싶게 만들어 줄'노래가 두 곡 떠올랐어요

MC THE MAX - 너만 있으면

프리스타일 - 연애♬

• 14삼청동, 내 연애의 방 _류민애

2014.12.05 12:54freestyle 나의 수영이야기 _최미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가 심했었다. 매일 가려움 때문에 긁다 보니 몸에서 진물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가족끼리 해수욕장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물속에서 실컷 놀다가 나오니

피부가 진정되는 게 아닌가!?

마치 성경에서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들어갔다 나오니 문둥병이 치유된 것처럼 ㅋㅋㅋ

나는 아토피 + 아토피 때문에 생긴 열 많은 체질이었는데 시원한 바닷가에 들어가면 체온도 내려가고

더불어 소금물 때문에 소독이 되어 진정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다음부터 우리 부모님은 40일 동안이나 매일같이 나를 해수욕장에 데려다 주셨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쯤엔 아토피가 기적적으로 다 나았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 15 freestyle 나의 수영이야기 _최미혜

그런데 하필 그 시기가 나의 인생의 첫 번째 갈림길에 서 있을 때였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여자는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나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유도를 시키셨는데 검정 띠까지 따다 보니 선수로 전향하라는 유도 관장님의 제안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해서 유도보다는 육상 선수를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웃긴 건 우리 아빠는 본인이 축구를 좋아하셔서 언제든지 나를 축구선수 시킬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 사실 나는 축구관람만 좋아하지 공을 무서워하는데..... 이건 순전히 아빠의 마음 ㅋㅋㅋㅋ )

어쨌든 선수하라는 제의도 들어왔고 얘가 운동에는 끼가 있는 것 같고

근데 얘가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이 있을까 이리저리 수소문하시던 중

아는 분의 자제 분이 수영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거다!" 하셨단다.

아토피는 완치되었지만 여전히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었기 때문에 수영장에 다니면 체온이 내려가서

도움이 될 테고 수영은 비교적 다른 운동보다 부상이 적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여름에 바닷가에 가서 나오라고 할 때까지 물속에서 신 나게 놀던 나의 모습을 생각하시고는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으셨다고 한다.

몇 개월 해보고 재능이 없으면 다른 운동을 시켜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10월 20일에 아빠 손을 잡고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다.

가서 몇 개월 동안 발차기 연습을 빡세게 했더니 금방 실력이 올라와 세 달 만에 선수반에 올라갔다.

5학년이 되면서 수영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 갔고

( 포항 영흥 초등학교 http://www.phyh.es.kr )

본격적으로 훈련을 제대로 시작한 건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는 동계훈련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죽자 살자 해서인지 6학년 5월에 열린 소년체전에서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은메달 하나 동메달 하나를 땄다.

수영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소체에서 메달을 땄기 때문에 모든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상비군인 꿈나무에도 뽑혔고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둥 뭐라는 둥과 함께

" 신동 "이라는 타이틀도 얻으며 선생님들도 나도,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가졌다.

그때는 국가대표가 금방 될 줄 알았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ㅋㅋㅋ

• 16 freestyle 나의 수영이야기 _최미혜

중학교도 수영부가 있는 학교로 입학을 했고 ( 포항 대흥중학교 www.daeheung.ms.kr )

1,2,3학년 동안 열심히는 했으나 메달을 따도 여전히 은메달 아니면 동메달 이였다.

1등. 금메달은 한 번도 따질 못 했다.

우리 학교는 일반 학교였는데 학교를 일 년에 한 네 달 다녔나...? 나머지는 경북 체고로 합숙을 갔기

때문에 교복을 입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렇게 운동에 찌들어 있었지만 내 목표는 이루지 못 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수영을 그만 둘까 한번 생각했었다.그 이유인즉, 포항에는 수영부 있는

학교가 없었고 수영을 하려면 경산에 있는 경북체육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그리고 중학교 3년 내내 거기로 합숙을 갔는데 고등학교를 거기로 가야 한다니

가뜩이나 집과 1시간 반 거리에 있어서 집에도 잘 못 올뿐더러 운동도 빡세고 선 후배 규율도 심한 걸

알았기 때문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지만 결론은 거기 갔다.ㅋㅋㅋ

( 경북 체육 고등학교 www.kbche.or.kr )

정말 눈 뜨면 운동을 시작해서 잠자리에 눕기 전까지 운동했다.

이때도 시합 나가면 여전히 2등 아니면 3등 ....여전히 1등은 못해본 채 국가대표 꿈은 멀어져 갔다...

아참 고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상비군 했었다. 2학년 후반 때 안 들어가서 3학년 때 안 뽑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경북도청 수영 프로 팀에 입단하였다.

20살부터 23살까지 4년 동안

경북도청 소속으로 시합을 뛰면서 위덕대학교를 졸업했다. ( www.uu.ac.kr )

• 17 freestyle 나의 수영이야기 _최미혜

경북에 있으면서 한가지 에피소드를 써보려 한다.

때는 20살 전국체전, 팀 인원이 나를 포함해 4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자기 종목에서 1등 하는 잘 나가던 언니들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계영 400m 단체전에 금메달 and 한국신기록을 기대하고 계셨다.

나는 개인전 메달은 딸 수없는 실력이었기에 단체전에 더 주력했다. 단체전용 선수였지.

시합 날 일번을 뛰어 2등으로 들어왔고 2번 언니, 3번 언니 그리고 마지막 주자 언니까지

모두 1등으로 들어와 터치패드를 찍을 때는 한국신기록이 전광판에 떴다.

그 언니가 터치하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기록인데 그 기록을 우리가 깨다니!

그 멤버 속에 내가 있다니 정말 영광이었다.

언니들도 서로 격려하며 축하했다.

그러나 1분 후...

전광판 우리 기록 옆에 DQ ( disqualify의 약자) 가 떴다. 실격이라는 뜻이었다.

단체전은 그전 주자가 터치 패드를 찍기 전에 뛰면 실격인데 우리가 그 실수를 범했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전신수영복을 마지막으로 입는 해라 수영복의 효과를 사용하는 것도 그 해가 마지막이었고

우리의 멤버는 최강이었고. 단일 팀으로는 절대 깰 수 없는 기록이며, 대표 팀이 깨기도 정말 힘든 기록인데

그 기록이 날아갔다. 훨훨~~

• 18 freestyle 나의 수영이야기 _최미혜

그 기록이 날아갔다. 훨훨~~

그리고 펑펑 울었다 나는 막내라 울었지만 언니들도 속으로 많이 울었을 것이다.

시합 나가면 주는 수영 프로그램 책자 뒷면에 한국신기록 세운 사람들 이름이 나열되는데

그 찬스가 날아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 기록은 깨기 힘들 것이다. 아시안게임은 가능하려나? ㅋㅋㅋㅋㅋ

그리고 22살 자유형 50M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과 23살 자유형 100M 은메달

24살에는 경남체육회 입단. 그리고 PYD수영클럽팀에서 운동하기 시작!

그리고 올해 25살에는 안양시청에 입단하게 되었다.

수영을 시작한 게 12살인데 벌써 25살이나 되어버렸네.

어릴 때 가지던 국가대표라는 꿈은 아직도 이루지 못 했다. 어쩌면 점점 더 뒤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웃긴 건 지금 실업팀 ( 프로 팀 )에 살아남아있는 언니들은 한때 다 대표 팀 했었던 언니들이다.

내가 어울려 노는 언니들도 전부.... 나 빼고 다.

그리고 나는 전국체전 같은 큰 시합 개인전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따보지 못 했다.

그래서 항상 갈망하고 매일 연구하고 매일 적었다.

사실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안되는 걸 계속 붙잡고 있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나으니까.

그래도 마지막인 만큼 끝까지 해보려고 한다.

이미 바닥은 칠 때로 쳐서 내려갈 바닥도 없고 무서울 게 없는 여자다 ㅋㅋㅋㅋㅋ

내가 수영을 그만 두던 계속하든 난 수영을 사랑한다.

너무 좋다. 수영이...ㅠㅠ♥

P.S 아부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 19 freestyle 나의 수영이야기 _최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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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나사 2014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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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3 07: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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