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 - 크리스찬모니터christianmonitor.net/jusuk/jacob.pdf · 2016. 1. 9.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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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보서�제1장

    =====1:1� � 하나님과�주� 예수� 그리스도의�종� 야보� -� 이와� 같은표현�방식은�다른� 서신에서도쉽게�발견�

    할� 수� 있다.� 이는� 초대� 교회� 당시� 여러�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형태이다� (롬� 1:1;� 빌� 1:1;� 딛�

    1:1;� 벧후� 1:1;� 유� 1:1;� 계� 1:1).본절에서�야고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 결합하여� 하나님

    과� 예수를� 동격의� 위치에� 놓은� 것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던� 당시의� 에비온파(Ebionites)에� 대해서� �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종'은� 직분보다는� 신분을� 나타내는� 말로서� 야고보�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가� 주께� 예속되었음을� 강조한다기보다

    는� 그의� 신분이� 자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 좇아서� 사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이� 서신의� 기록자� '야고보'(*� � � � � � � � � � � � � ,야코보스)는� 예수그리스도의� �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에게서� � 태어난�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다(행� 15:13;� 21:18,� 본서� 서론� '저

    자론'참조).� � � � 흩어져�있는� 열� 두� 지파에게�문안하노라� -� 흩어져�있는�열�두�시파에�대한�해석은두�가

    지이다.(1)� 혹자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 팔레스틴� 이외의� 흩어진�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Mayer,� Hort,� Chaine).(2)� 혹자는� 스데반의� 순고� 이후에� 흩어진� 종말론� 구원의� 참이스라엘인� 그리스

    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중에서도�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o,�

    Burdick,� Tasker,� Martin).� 이� 두�가지� 견해� 중후자가 타당하다(본서� 서론� '수신자'� 참조).� 한� 편� '문안�

    하노라'의� 헬라어� � '카이레인'(*� � � � � � � � � � � � � )은� '즐거워하다',� 기뻐하다'라는� 의미이다.� 야고보는� 스

    데반의�순교�이후� 박해를�피해�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유대인�그리스도인에게�시련�가운데�있을지라도�

    더욱�감사하며�기뻐할�것을�종용한다.

    =====1:2� � 내� 형제들� 아� -� 야고보는� 본서를� 2인칭으로� 시작함으로써� 수신자들로� 하여금� 친근한� 느

    낌을� 갖도륵� 한다.� '형제들'� 은� 야고보가� 자주� 사용하는� 어투로서� 본서에서� � 5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

    형제'라는� 호칭의� 헬라어� '아델포이'� (*� � � � � � � � � � � � � � )는� 본래유대인들이� 같은동족에게� 사용하였으나

    (출� 2:11;� 신� 15:2)� 초대� 교회에서�교인들이�서로를�부를� 때� 사용하였던�것으로(Deissmann),본절에서

    는� 야고보와� 수신자� 사이의�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시사한다(2:1,14;� 3:1,10,12;� 5:12,19).� � � � 너희가�

    여러� 기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야고보는� 신자들이� 박해를� 파해� 흩어진�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시험에� 대해� 권면한다.그리스도인들은� 시험에� 들지않도록� 기도해야�

    하며(마� 6:13)� 일단� 시험을� 맞게� 되면� 잠시� 근심하게� 될지라도� 그것이� 뜻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기쁘

    게� 여겨야� 한다(벧전1:6).'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이스'(*� � � � � � � � � � � � � � � � � � � � )는� 외부

    로부터� 야기되는� 것으로� 내부로부터� 오는사람의� 생각� 즉� 죄의�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시련

    '(trial)을� 가리킨다(Kuhn).� 한편� '만나거든'의�헬라어� '페리페세테'� (* � )는� 문자적으로� '한� 가운데�

    떨어지다'의� 의미인데� 본문에서는� 사건에� 직면한현실을� 나타낸다(눅� 10:30).� � 사람들의� 내부로부터� 오

    는� '유혹'은� 육체를� 파괴하고� 죽이려는� 것이지만� 외부로부터� � 오는� '시련'은� 낙심하지� � 않고� 이겨� 내면�

    자신의�믿음이연단을�받아�더욱� 굳건한�믿음으로� � 성장할�수� 있기� 때문에� 야고보는�수신자들에게�충만

    한�기쁨으로�기뻐하라고�권면한다(롬� 5:3-5).

    =====1:3� � � 이는�너희� 믿음의�시련이�인내을�만들어�내는� 줄� 너희가�앎이라� -� � 시험이�기쁨의원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시련'의� 헬라어� � '도키미온'(*� � � � � � � � � � � � � � � � � �

    )은� 결과적인�의미로� '시험하여서�인정된�것'을� 의미한다.� 이것은�잘� 정제된�금과� 같은� '믿음의�표준'이

    라� 할� 수� 있다(Mayor).� 그런데�시련에� 대한야고보의�표현은� 바울의�표현과� � 차이가�있다.� � 바울은� '인

    내는�연단을� 연단은� 소망을이루는�줄� 앎이라'(롬� 5:4)고� 하여� '인내'(*� � � � � � � � � � ,� 휘포모넨)를� 원인적

    인� 위치에둔다.� 그러나� 야고보는� '인내'가� 시련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보고� 있다.� � 이런� 상이한표현은�

    강조점의� 차이� 때문이다.� 바울은� 시련의� 과정올� 중요시� 한� 반면� 야고보는� 고난자체를� 중요시하기� 때문

    이다(Manton).

    =====1:4� � 인내를�온전히�이루라� -� '온진히'에� 해당하는�혤라어� '텔레이온'(* � � � )은� '끝'올� 의미하

  • 는� '텔로스'(*� � � � � � � � � � )에서� 유래된� 말� 로서� � '온전히이루라'는� 말은�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

    지� 참고� 견디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온전하여� 져야� 함을� 시사한

    다(마� 5:48).� � � �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여기서의� '온전하고'

    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인내를� 갖춤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 Ropes,Manton).�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타밈'(*� � � � � � � � � � ,� '흠이� 없는')으로� 인간� 생활이나�재물에� '흠이� 없는'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창� 6:9).� 한편� '구비하여'의� 헬라어� '홀로클레로이(*� � � � � � � � � � � � � � � � � � � )는� '전체'를�

    의미하는� '홀로스'(*� � � � � � � � )와'할당'을� 의미하는� '클레로스'(*� � � � � � � � � � � � � )의� 합성어이다.� 이는� 신

    체의� 각� 부분이모두� 건전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행� 3:16)�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부분에서� 갖춰야� 할

    것들을�시사한다.� � 야고보는�본절에서�그리스도인이�지상의�생활에서�완전한�하나님의형상을 닮

    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

    다.

    =====1:5� 너희� 중에� 누구든� 지혜가� 부족하거든� -� 인간이� � 가지고� 있는� 지혜는� 항상� � 불완전하여� 온

    전한� 인내를� 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나� � 이성은� 잘못된� � 길로빠지기� 쉬우며� 환난� 가

    운데서� 기뻐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때문에� 야고보는� 시련을� 온전히� 이기기� 위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함을� 진술한다.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과학적인� 지식이� 아

    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며�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와� 동일한� 것이다(왕상� 3:9-12;대하� 1:7-12).� 이런� 지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이� 올� 때�

    이를� 적절� 하게� 대처할�수� 있게� 된다.� � �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

    라� -�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결코� 인색하지� 않고� 풍성히� 주시는� 분이다.� 본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

    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본문에만�나오는� '후히'(*� � � � � � � � � � � ,� 하플로스)는� '풍

    성하게'라는�의미와(RV,� KJV,Ropes),� '즉� 각성'이란� 의미를�내포한다(Cal-vin).� � 또한� '꾸짖지�아니하시

    는� 하나님'은� 너무� 빈번히� 기도하여� 번거롭게� 한다고� 해도� 결코� 책망하지� 않는� 분이어서� 그리스도인들

    의� 간절한� 기도에� 항상� 관대하게� 응답하심을� 뜻한다.한편� '모든� 사람'은� 비그리스도인까지� 포함하는� 것

    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게� 주

    시기�위해서�준비하고�계시는�분이심을�시사한다.

    =====1:6� � � 오직� 믿음으로�구하고�조금도�의심하지�말라� -� 응답받는�기도는�믿음으로� � 하는것이어야

    한다.� 그� '믿음'은� '지혜'를�구하는�그리스도인�들에게�하나님께서�반드시�응답해�주신다는�약속을�확신

    하고� 신뢰하는� 것이다(마� 21:21;막� 11:23).� � 따라서� 성도들은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약속에� 대

    한� 신뢰�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 행위가� 있어야한다(Ropes).� 한편� '의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디아크

    리노메스'(* � � )는� '디아'(*� � � � � � � ,'사이에')와� '크리노'(*� � � � � � � � � � � ,� '분리시키다')의합성어로

    서� 어떤� 문제에� 대해� 양쪽에서� 저울질하는� 것을� 나타낸다(Calvin).� 따라서� 이말은� 심리적으로� 두� 마음

    을�품은�분리된�상태�즉�마음� 속에서� � 의심하는�것에�대한� 생생한�묘사이다(행� 10:20).

    =====1:7� � � 이런�사람은�무엇이든지�주께�얻기를�생각하지�말라� - '이런� 사람'� 은� 기도할� 때의심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없으므로� 결국� 하나

    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다.이것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대한� 부정성보다는� � 사람이� 기도할�

    때� 자기� 판단에� 맡겨� 버리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에게� 의심이� 전혀� 생기

    지� 않는� 것은� 아니다.다만� 그� 의심을� 극복하고� 이겨낼� 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 여

    기에서� '주'(* � � ,� 퀴리우)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때� 그�

    기도를� 듣고� 계셔서,� 의심치� 않고�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시련을� 당할� 때� 인

    내할�수�있도록� � 힘을� 주실�것이다.

    =====1:8� � � 두� 마음을�품어� 모든�일에� 정함이�없는� 자로다� -� '두� 마음'(*� � � � � � � � � � � � � � � � � � ,디프쉬

    코스)은� 본서에만� 나오는� 말이다(4:8).'디프쉬코스'는� 신약성경� 이전에� 전혀� 사용된� 문헌이� 없고� 신약

  • 성경� 이후의� 교부시대에� 자주�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Clement� ofRome,� Hermas)� 아마� 야고보가� 만들

    어� 낸� 단어일� 것으로� 추측된다(Gibson).이� 말은� '정함이� 없는'(*� � � � � � � � � � � � � � � � � � � � � � ,� 아카타스타

    토스)과� 평행을� 이루는� 말로서� 두� 가지의� 방법이나� 생각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런� 자들은�마음이�항상� 불안정하여�변하기�쉬우므로�하나님을�떠나기�쉬운� 자들이다.

    =====1:9� � � 개역성경에는� '데'(*� � � � ,'그러나')가� 생략� 되어있다.� 이� '데'는� 9-11절의� 내용이2-5절의�

    시험과� 연결된� 것임을� 나타낸다(Burdick,Martin).왜냐하면� 12절에서� 다시� '시험'에� 대해� 언급되기� 때

    문이다.� � � 낮은� 형제는�자기의�높음을�자랑하고� -� '낮은'에� 해당하는� '호�타페이노스'(*

    )가� 신분적인� 것인지� 아니면� 물질적� 또는� 육체적인� 것인지는명백하지� 않으나� � 70인역에서는�

    이� 단어가�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가리켰으며(시� 72:4;잠� 30:14,� Robertson)� 10절의� '

    부한�형제'(* � ,� 호� 플루시오스)� 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본절의� � '호� 타페이노스'는물질적

    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이렇게�

    비천에�처한� 자들이�자랑해야할것은� '높음'이라� 했다.여기서� '높음'이란� 그리스도인이� � 그리스도로�말미

    암아� 새롭게� 된� 피조물의� 가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적� 승귀를� 나타낸

    다(요15:15;� 계� 3:21).� � 그리스도인들은�비록�육체적으로나� � 물질적으로�어려움을�당하고�비천한�자리

    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인내함으로� 보다� 더� 영예로운� 지위를� 얻게� 될� 것

    이다.

    =====1: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 지니� -� � '낮은� 형제'와� 마찬가지로� 부자들도취해야�

    할� 마음이� 있다.그것은� 자신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뽐내지� 말고� 겸손해야� 한

    다는�것이다.� '부한� 자'에� 대해서�혹자는� 그리스도를�믿지� 않는자신들을�가리킨다고� 주장한다(Dibelius,�

    Blackman).그� 이유는� 본문상� 9절에는� '형제'라는� 말이� 있지만� 본절에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서� '형제'를� 생략한� 것은�

    9절에서� 사용한� 것이므로� 본절에서는� 반복을� 피하여� 생략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Burdick,� Martin).� � 따라서� 본문의� '부한� 자'는� 그리스도인이면서�물질적으로� 부요하거나� 어려움을� 당

    해보지 않은� 자를� 가리킨다(Marton,� Adamson,� Cantinat,� Mayor,� Ro-pes,� Mussner).� 일반적으로�

    부자인� 형제들은� 자신들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영적인� 교만함까지� 가지게� 된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부한�형제들은�지상에서�소유한�부가� 자신이�죄인이란� 사실을�변화시킬�수� 없으며�일시적인�것임을� 깨

    달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것처럼(빌� 2:8)� 낮은� 자와� 동일시하며� 부를� 자랑하기� 보다는� �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한다(Moo,� Tasker).� � � �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 � 본절은� 부한� 형제들이� 낮아짐을�

    자랑해야� � 할이유이다.� 아무리� 부요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 부요함을� 영원히� 누리지는� 못한다.� 마치꽃

    이� 시드는� 것처럼� 부(富)뿐만� � 아니라� 생명도� 곧� 시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시�102:11;� 사� 40:6,7;� 고전� 7:31;� 벧전� 1:24).

    =====1:11� � �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 아름다움이없어

    지나니� -� 야고보는� 사� 40:7을� 인용하여� 부한자의� 부를� 덧없는� 풀의� 꽃에� 비유하여부한� 형제들이� 낮아

    져야� 함을� 권면한다.� � '해가� 돋고� 뜨거은� 바람이� 불어'는�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뜨거운�바람'에� 해당하는�헬라어� '카우소니'(* � � � � � )� 란� 말은�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 오는� '시

    로코'� 라는� 뜨거운� 남동풍으로이� 바람이� 불어� 오면� 곧장� 채소� 따위의� 식물이� 말라죽곤� 하였다(욥�

    1:19;눅� 12:55).이처럼�부자의�입는� 옷과� 물질적인�풍요로움으로�오는�안락은�쉽게� 시들어�버린다.� 그

    러기에� 부한자는� 일시적인� 부나�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자랑하지�말고� 하나님�앞에서� 겸손하게�낮아져

    야� 한다.� � � �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 '쇠잔하다'의� 헬라어� � '마란데세타이

    '(*� � � � � � � � � � � � � � � � � � � � � � � � )는� '불을�끄다'라는� 의미를�지닌� '마라이노'(* � � � � )에서� 유래하였

    다.� 이것은� 지상에서의� 부와� 영화가� 영원하지� 않으며� 사라지는� 것임을� 나타내는� � 것으로(Ropes)� 그리

    스도께서� � 오시는� 종말의� 때에� 부로� 인하여마음이� 교만해� � 있던�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 있는� 부와� 행

    한� 일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역시� 그것들과� 함께� 사라질� 것을� 시사한다(Martin).� 따라서� 본문을� 해석할

  • 때� '부와� 함께'를� 포함하여�해석하는�것이�적절하다(Erasmus,� Calvin).

    =====1:12� � 시험을�참는� 자는�복이� 있도다� -� '시험'에� 해당하는�혤라어� '페이라스몬(* � � �

    )은� 2절에서� 사용된� � '페이라스모이스'(*� � � � � � � � � � � � � � � � � � � � � ,'시험')와� 동일한� 것으로� 믿음의� 연단

    을�위하여�하나님이�허락하시는�것이다.� � 이것은본절이2-11절과�연결된�것이며 13절� 이하의� '시험

    '(temptation)과는� 차이가� 있음을나타낸다(Ropes).� 한편�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은�

    유대의� � 지혜서와묵시� 문학적인� 표현� 방법으로�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시� 1:1;32:1;잠� 8:32,34;

    사56:2)� 예수께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축복을� 말하였다(마� 5:3-11).따라서�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법에�

    익숙하였음을� 밝혀� 주고� 있다(Burdick).� � � � 이것에� 옳다� �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

    하는�자들에게 약속하신생명의�면류관을�얻을�것임이니라� -� 본절은� '호티'(*� � � � � � � )로� 시작하며�시

    험을�참는자에�대한�결과를�설명하는�목적절이다.� '인정하심을�받은'의� 헬라어� '도키모스'(*� � )는� 3절

    에서� 사용된� 것처럼�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 귀금속이나� 동전으로서자격을� 얻는� 것'과� 같은� 인정함을�

    의미한다(롬� 5:� 4).� � 이것은� 시험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자에게� 순수함이�인정되면� '생명의면류관'을� 얻게� 됨을� 시사한다.� 여기서� '면류관'(*� � � � � � � � � � � � � � � � ,

    스테파논)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면류관으로� (고전� 9:25;딤후� 4:8)� 시험과� 박해� 속에서

    도끊임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 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

    았다는�증거로�보아야�한다(Ropes,� tasker).

    =====1:13� � 사람이�시험을� 받고�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 본절의� '시험'� 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조메노스'(*� � � � � � � � � � � � � � � � � � � � � � � � � ,)는� 앞서� 언급한� '시험'(2,12절)이� 의

    미하는� '시련'(trial,test)� 아니라� '유혹'(temptation)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페이라조메노스'를� '하나님

    께'(*� � � � � � � � � � � � � � � � ,� 아포� 데우,� '하나님께로부터')받는� 것이� 아님을�강조하면서�매개(媒介)의� 성격이� 강한� '휘포'(*� � � � � � ,'...의하여')를� 사용하지� 않고� '근원'을� � 의미하는� '아포'(*� � � � � � ,'...로부터')를�

    사용하여� '페이라조메노스'가� 발생하게� 되는� 진원지가� 하나님이� 아님을� 강하게� 강조하고있다

    (Robertson).� 그� '유혹'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죄악의� 기질

    과� 욕심에� 미혹되어�발생하는�것으로(14절)� 죄의� 책임은�인간에게있다.� � � � 하나님은� 악에게�시험을� 받

    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이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시험을� 창조하시거나� 사람을� 시험하

    지� 아니하실� 뿐더러� 아무에게도� 시험을받지� 아니하신다.�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에� 해당� 하는� 헬라어�

    '아페이라스토스'(* � � � � )는� 부정� 접두어� '아'(*� � � )와� '시험하다'의� '페이라조'(* � )

    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악에서부터� 거리가� 먼'� 상태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Hort,� Diodorus,�

    Josephus),유혹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시사한다(Bu-rdick).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

    님은�악으로부터�영향을�받지� 않으실�뿐만아니라� '친히'� 아무도�시험하지�않으신다.

    =====1:14�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 끌려� 미혹됨이니� -� 본절은� 사람이유혹

    을� 받는� 근원을� 설명하고� 있다.� '시험'(temptation)이� 사람을� 연단시키기� � 위해서주신� 하나님� 섭리라

    고�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는� 것이다.� '미혹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메노스'(*� � � � � � � )는� 원래� 사냥이나� 고기잡이에서� 유래한� 말로서� 문자적으로� '미끼로�

    고기를� 꿰어� 내다',� '올가미로� 사냥하다'를� 의미한다(Mayor).� � 사람들이� 유혹을� 받는� 것은� 마치물고기

    가�자기앞에�놓인�낚시� 바늘에�물려� 이리� 저리로�이끌려�다니는�모습과�같은� 것이다.� 한편� '욕심'의�헬

    라어� '에피뒤미아스'(*� � � � � � � � � � � � � � � � � � � � )는� 악한뜻에� 대한열망이다(롬� 7:17-23;� 갈� 5:16-21;� 엡�

    2:3;� 살전� 4:5).

    =====1:15� � � 욕심이�잉태한즉�죄를�낳고� 죄가�장성한즉�사망을�낳느니라� � - '욕심이� 행동으로유

    발되지� 않은� 상태� 즉� 내적� 상태로� 머물러� 있을때는� 죄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야고보는� 인간이�

    욕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죄가� 싹이트고� 결국에는�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강조하고� 있다.� '잉태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쉴라부사'(*� )는� 문자적으로� '함께� 붙잡다'라는� 의미이나� 여자의� 임신을� 말할� 때� 주

  • 로� 사용되었다(눅� 1:24).� 여기서는� 죄의� 단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욕심'� 그� 자체가� 바로� 죄이다.�

    혹자는� 욕심을� 자연적이고� 오염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Mayor).� 그러나� 인간의죄란� 욕심에게� 굴복

    당하는� 시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욕심이� 순수하다고� 주장하는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Calvin).욕

    심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죄를� 유발하고� 그� 마음의� 상태가� 습관으로� 굳어� 져서� 사망

    에� 이르게�된다(창� 3:19;� 롬� 5:12).'낳다'에� 해당하는�두� 단어� � '틱테이'(*� � � � � � � � � � � � � )와� '아포퀴에

    이'(*� � � � )는� '여자가�아이를� 낳는것'을� 의미하나� 전자는� 문학적인�표현이고�후자는� 의학적인� 표현이라

    고� 할� 수� 있다(Ropes).� 또한� 정상적으로나� 비정상적으로나� 출산하는� 것� 모두를� 뜻하나� 본문에서는� 비

    정상적인� 출산� 즉� 유산을�나타내는�말이다(Robertson).이것은�처음부터�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의미

    하는�영적� � 사망을�잉태하고�있었음을�시사한다(롬� 6:23).

    =====1:16� � 내� 사랑하는� 행제들아� 속지� 말라� -� 본절은� 애정이� 깃들어있는� 부드러운� 권면이다.'속지�

    말라'(*� � � � � � � � � � � � � � � � � � � � � � � � ,메� 플라나스데)는� 심각한� 말로� � 권면할� 때� 사용된� 어법으로� (고전�

    15:33;� 갈� 6:7;� 요일� 3:7)� '메'는� 금지를� 암시하는� 완곡어법이다(Robertson).�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받을� 때에� 그�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 온�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착각은� 스스로� 미혹

    을�받아�사망에�이르게�되는� 것이므로�속지�말아야�한다.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 내려오나니� � -� 지혜

    가� 부족한� 자에게� 풍족하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5절에서� 언급하였던� � 것처럼� 본절에서도� 좋

    은� 은사와� 선물들의�공급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 있다.� '은사'(*� � � � � � � � � � ,도시스)와� '

    선물'(*� � � � � � � � � � � � ,도레마)은� 동일하게� � '주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도미'(*� � � � � � � � � � � � )라는� 동

    사에서� 비롯된� � 것으로� � 문체론적� 변화이다(Moo).� '좋은� 은사'는� 일반� 은총이� 아닌� 그의� 사랑하는� 백

    성들에게� 내리는� 특별� 은총을� 의미하며(Manton)� '온전한� 선물'은� 성도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영화

    로운� 상태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이다.� 이러한�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

    께로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으로� �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혹에서� 범죄치�

    않도록� 도와준다(Burdick).� 한편� '빛들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빛의� 왕으로� 모든� 빛들을� 창조하시고�

    주관하고� 계심을� 시사한다(Manton,� � Martin).� '빛들의'는� 하늘의�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모든� 하나님

    의� � 선물을� � 찬양하는� � 표현이다(Philo).� 한편� 본절은� 특별히� 6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

    야고보가� � 다른� 자료에서� 인용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나(Mayor,� Moo,� Dibelius,Davids,� Ropes).� � 본

    서의� 문체나� 운율적인� 리듬의� 형태를� 볼� 때� 야고보의� 독창적인� 저술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Lenski,� Martin,� Mussner,� Reicke,� Schrage).� �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

    라� -� 야고보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할�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된� 빛으로� 보여지는� 하늘의� 별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하나님의� 불변하심을�강조한다(Ropes).� 그러나�하나님은� 자기�백성들에게�좋은� � 은

    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변함없이� 내리시는� 분이다.� '변함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 '파랄라게'(*� � � � � � � � � �

    � � � � � � � � � )는� 천문학� 용어로서� 별들이� 시차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Manton).� 한편� '회전하는�그림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

    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변화를� 의미하는지,달의� 그림자� 즉� 일식,� 월식� 등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구의� 회전으로� � 인한� 태양빛의� 변화로� 생기는� 사물의� 그림자를� 가리킨다(Ropes,� RSV).� 이것

    은�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베푸시는� 은사와� 선물은� � 변함이� � 없음을�

    시사한다.

    =====1:18� �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 본절은� 하나님이� 시험을주지�

    않으신다는�사실을�증명하는�마지막�이유이다(Burdick).� '한� 첫�열매'(* ,� 아파르켄� 티나)는�

    구약성경에서� 수확된� 첫� 곡물을� 하나님께� 드리는것을� 나타낸다(출� 34:22;레� 23:10).� 모든� 곡식의� 첫�

    소산물이� 하나님께� 바쳐지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회개한� �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선택되어서�

    모든�피조물을� 대표하는�첫� 열매가�된다.� 혹자는�야고보가� '우리'를� 사용한�것이� 보편적인�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고�하나(Hort), 중생한� 자들이나� 당시� 초대� 교회의� 성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 Moo).� 왜냐하면� 야고보는� 비교의� 뜻이� 담겨있는� '티나'(*� � � � � � � � � � )를사용하여� 피조물과�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Calvin).� � � �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 낳으셨느니라� -� '뜻'에� 해당하

    는� 헬라어� '불레데이스'(*� � � � � � � � � � � � � � � � � � � )는�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선한� 의

    지를� 나타내는� 말로(엡� 1:11;벧전� 1:3)�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엡� 1:4,5).따라서� 야고보가'불레데이스'를� 사용한� 의도는� 택한� 자

    녀들이� 구원을� 얻게� � 되는� 것이� 자기� 공로나� 외부적� 환경의� 영향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

    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anton,� Calvin).한편� '진리의� 말씀'이란�

    진리를� 통하여� 확증된� 복음의� 말씀이며(엡� 1:13;� 골� 1:5;� 딤후� 2:15).� '낳다'에� 해당하는� '아페퀴에센

    '(* � � � � � � )은� 자연적인�출생의�의미로� '창조하다'를�나타낼�때도�사용되었다(행� 17:28).�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라는� 말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 즉� 첫�

    열매된�자들이�옛�성품을�버리고�새로운� � 피조물이�되었음을�암시한다.

    =====1:19� � 너희가�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스테'(*� � � � � � � � � )는� 명령법이라기보다는�

    직설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obertson).� 만약� 야고보가� 명령법의� 의도로� � 사용했다면� 4:4� 처럼� '

    오이다'(� *� � � � � � � � � ,� '알다')의� 명령형� '오이다테'(*� � )를� 사용하였을�것이다.그러므로� '이스테'는� 수신

    자들이� 과거에� 알고있는� 거듭난� 사실에� 대한� 인정이나� 권고� 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야고보는� 본

    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를� 권면한다.� � � � 듣기는� 속히� 하고� -� 거듭나는� 것은� 순간적

    인� � 현상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꾸준히� 지속되는� 여러� 과정을� 통하여� � 변화되어야� 한다.� 그

    래서�그리스도인들은�하나님의�말씀을�속히�들을� 준비가�되어있어야�한다(Ropes).� � � � 말하기는�더디하

    며� -� 이것은� 말을� 천천히� 하라는� 뜻이� 아니라� 성급하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하거나� 자기의� 고집만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계속하여� 말하거나� 자기의� �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논쟁에� � 빠지기� 쉽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온전히깨닫지� 못하게� 된다.그리스도인들은� 말을� 하기전에� 먼저� 겸손히� 진리

    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Burdick,Tasker).� � � � 성내기도� 더디� 하라� -� � 본문은� 일반적으로�

    분노,� 증오�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격분이� 마음속에� 자리잡

    고�있을�때�하나님의�의(義)나� 말씀을�받아들일�수�없다.

    =====1:20� � � 개역성경에는� '가르'(*� � � � � � �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 '가르'는� � 본절이앞절에

    서� 행한� 권면에� 대한� 근거임을� 나타낸다.� � � �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

    성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삶에� 위배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원하시고�인정하시는�그리스도인의�올바른�행위이다(Burdick,Tasker,Moo).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 � 야고보는� 본문에서� � 다시그리스

    도인이� 말씀을� 받기에� 합당한� 조건을� 언급�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가� � 마땅히� 해야� 할일은�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는� 것이며,이미�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항

    상� 새롭게�되어야�하는� 것이다.� � '내어� 버리고'의� '아포데메노이'(*� � � � � � � � � � � � � � � � � � � � � )는� '옷을� 벗

    어� 버리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세심하게� 자신을� 살펴� 마음속에�

    있는� 모든� 탐욕과� 정욕� 등을� 내어� 버려야� 함을� 시사한다.� � 그렇지않고� 부주의할� 경우� 쉽게� 악에� 빠지

    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뤼파리안'(*� � � � � � � � � � � � � � � � � )은� 본래� '옷에� 붙어� 있는�

    더러운� 때'를� 의미하였으나� 종종� '몸에� 불결하게� 생긴� 상처'� 등을말할� 때도� 사용되었다.� � 이것은� 모든�

    도덕적인� 악을� 가리키는� 것으로(Manton,� Martin)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뤼파리안'을� 떨쳐

    버려야�함을�권면한다.'넘치는�악'(* � � � � ,페릿세이안� 카키아스)에� '페릿세

    이안'은� '충분한','남은� 것'을� 뜻하는� 단어로� 흘러� 넘치는� 것을� 가리키며� '카키아스'는� '악한'의� 뜻보다

    는� '위선',� '더러운� 욕망'을� 의미한다(Calvin,� Lenski,� Lightfoot).� 이것은� � 앞서언급된� '뤼파리안'과� 동

    의어로� � 중복된� 표현을�통해서� �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모든도덕적인�악을�버려야�함을� 강력하게� 권

    면하고� 있다(Martin).� � � �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 심긴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 본문은� 구원

    의� 수단으로� '마음에� 심긴� 도'를� 말한다.� 이것은� 수신자들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 받아들인� 자임을�

  • 암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 것이다.또한� � 본절은� 하나님의� � 말

    씀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책임감있게� 말씀에� 응답해야하며� 그것을� 실제로� 행함으로� 열매를� 맺을�

    것을�권고하는�것이다(Burdick,� Martin).

    =====1:22� �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

    의� 말씀을�단지� 받기만�해서는� 안� 된다.� 단지� 듣기만을� 좋아하는� 자는� 나태한� � 자이며�자신� 속이는�자

    이다.� � 그래서� 야고보는� 본절에서� 그�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을권면한다.� '행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

    라어� '포이에타이'(*� � � � � � � � � � � � � )는� '아사'(*� � � � � ,� '행하다')에서�유래한�것으로�윤리적�측면의�행위

    를� 가리킨다.� 따라서� '포이에타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생활로써� 증거하는� 자를� 의미한

    다(롬� � 2:13,Calvin,� Adamson).�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도를� 듣는� 상태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행하

    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 � �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말씀을� 들은� 자는� 그것을

    행하여야할� 책임이� 있다.그러나� 그� 책임을� 수행하지� 않고�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영

    광스런� � 보좌에�참여할�것으로� � 생각한다면�그것은� � 자기� 자신을� � 기만하는�행위이다(마7:21).

    =====1:23� � �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 사람과�

    같으니� -� 야고보는� 본절에서� 도를� 듣고� 행치� 않는자를� 거울을� 보는� 사람에� � 비유하고� 있다.� '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노운티'(*� � � � � � � � � � � � � � � � � � � � � � )는� 경솔하게� 힐끔�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

    의를� 기울여서�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나타낸다(Burd-ick,� Martin).� 당시의� 거울은� 유리가� 아닌� 구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나� 희미한� 모습으로� 비춰질� 뿐� 확신이�

    없음을� 나타낸다(Ad-amson).� 이는� 단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열심히� 주의하여� �

    말씀을�들었다�할지라도�행하지�않으면�희미한�거울을�보는�것과� 같음을�시사한다(Mayor).

    =====1:24� � � 제� 자신을� 보고� 가서...곧� 잊어버리거니와� -� 본절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 것이마치�

    회미한� 거울을� 주의� 깊게� 살펴서�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였지만� 거울을� 떠나면� � 자신의� 모양을� 곧� 잊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듣기만� 하는� 것이� 전부가아니고� 행함이� 있어야� 함을� 시사한

    다.이론적인� 지식으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할수� 없다.� 말씀은� 오직� 듣고� 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여기서�야고보는� '보고'(* ,� 카타노에센),'가서'(*� � � � � � � � � � � � � � � � � � � � ,아펠렐뤼

    덴),'잊어버리거니와'(*� � � � � � � � � � � � � � � � � � � � � ,� 에펠라데토)의� 단순� 과거형을� 사용하여서� 진리의� 말씀

    을�희미하게�듣고�나서� 실행치�않는� 자가� 곧� 말씀을�잊어� 버리고 다시� 죄의� 상태로되돌아� 가는�

    모습을�언급하고�있다.

    =====1:25� �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있는� 자� -� 본절은� 말씀을� 듣고� � � 실행하는� 자

    에� 대한� 설명이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율법'은� 야고보와�수신자가� � 유대지향적인� 배경을�갖고� 있음

    을� 암시하는� 것으로(Burdick),� 구약� 시대의� 율법과� 대조를�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진리의� 복음'

    을� 의미한다(렘� 31:33,� Moo,Tasker).구약� 시대의� 율법이� 사람을� 얽매이게� 하는� 강제적인� � 것이라면�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 율법은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자유로운� 것이다(요� 8:32;� 고후� 3:16).� 이

    것은� 제도를� 통하여� 법적� 구속력을� 지닌� 모세의� 율법이� 신약� 시대에� 이르러� 확실하게� 드러난� 실체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 이러한� 율법의� 특징은� 첫째로� 택하신� 자들을� 진리와� 자유로� 인도하는� 것에� 모순

    과� 결합이� 전혀� 없는� 것을� � 의미한다.� 두번째� 특징은� 자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구속력을� 지녀서� 억지

    로� 지키게� 하는� 것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Burdick).� 한편� � '들여다보고'에� � 해당하는� � 헬라어� '파라큅사스'(*� � � � � � � � � � � � � � � � � � � � )는� 몸을� 구

    부려서� 보는� 것을� 나타낸다.� � 혹자는� 이것이� '대충� 힐끔� 보다'라는� � 의미라고� 주장하나(Hort)� 본문에서

    는� 문맥상� � '주의깊게� 관찰하다'라는� 의미로� 해석�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Tasker,� Burdick,� Martin).� � �

    � 듣고� 잊어버리는�자가�아니요�실행하는�자니�이� 사람이�그�행하는�일에�복을� 받으리라� - '듣고� 잊어

    버리는�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아크로아테스�에필레스모네스)는� 히브리식�표

    현으로� 글자대로는� '망각을� 듣는� 자'란� 뜻이다.� � 야고보는�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알라'(*� � � � � � �

  • � ,� '그러나')를� 사용하여� '실행하는� 자'를� 강조하고� 있다.여기서� '실행하는자'란�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못해도� 그� 행할것을� 위해�심사숙고하는� 자도� 이� 범주에�포함될� 수� 있다(Manton).� 한편� '그� 행하는� 일

    에� 복을� 받으리라'는� 말을� '율법을� 행함으로� 인해� 복을� 받는다'는� � 의미로� 해석해서는안된다.� 만약� 그

    렇게� 해석할� 경우� 율법을� 지키는� 그� 일로� 인하여� 만사가� 복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따

    라서� 이는� 실행하는� 자체에� 의미를� 두어서� 행위� 자체가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복이

    라는�것이다.

    =====1:26� �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속이

    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 신약성경에서� 본문에만� 나오는� '경건하다'에� � 해당하는� 헬라어� '드레

    스코스'(*� � � � � � � � � � � � � � � � )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다'에� 해당하는'드레오마이'(*� � � � � � � � � � � � � � � )에서�

    유래된� 듯하다(Robertson).� � 이는� 예배의� 외적인모습� 즉� 기도,� 구제,� 금식� 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외

    식적인�바리새인들의�모습을� � 암시한다.� � 이렇게�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는� 사람이� 말에� 대해서�

    자제하지�못할�때�자기자신을�속이는�사람이�된다.� '재갈�먹이지'에� 해당하는�헬라어� '칼리나고곤'(*

    )은� '재갈'을� 의미하는� '칼리노스'(*� � � � � � � � � � � � � � � � )와� '이끌다'의뜻인� '아고'(*� � � � � � � )의�

    합성어이다.� � 이는� 재갈� 먹이지� 않는� 말을�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

    로(Lenski)� 남을 비방하거나� 악담하는� 것을제어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혀를� 절제하지� 않으면서� 스스

    로� 경건하다고�생각하며�확신하는�것은�자신을�속이는� 결과를�초래하게�되며�이렇게�말과� 행위가�틀린�

    경건은�위선자들에게서�오는�헛된�것이다(마� 6:2,16).

    =====1:27�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이것이니라� -� 본절은� � 경건의� �

    정의라고는� 할수� 없지만� 경건한� �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경건한� 삶은� 내적인� 모습으로부터� 다른�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외적인�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

    하나님�앞에서'의� 헬라어� '파라토�데오'(* � � � )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라는� 의

    미로� 하나님의� � 평가방법으로� 사람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Lightfoot).�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이라함은� 경건의� � 구체적인� 한�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라� 하겠다.� '더러움이�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

    아미안토스'(*� � � � � � � � � � � � � � � � � )는� � '더럽히다'의� '미아이노'(*� � � � )와� 부정� 접두어� '아'(*� � )가� 합성

    된�형용사로서�후에�의미가�변천되어� '정결한(* ,� 카다라)이란� 의미로� 사용� 되었다

    (Robertson).� 이로� 보아� '정결하고더러움이� 없는'이란� 표현은� 의미상� 동의어� 중복으로� 강조를� 나타내

    는�것이다.� 특히�고대에는 종교� 예식에� 있어서� 기독교든� 이교도든� 정결하고� 흠� 없는� 제사가� � 요구되

    었기때문이다.� � 이러한� 모습은� 초대� � 기독교� 사회에서� 바리새인에� 의해� 지속되어졌었다(마23:25;� 막�

    7:3,� Ropes).� 야고보는� 본절에서� 내적인� 경건� 생활에서� 비롯되는� 외적인� 경건� 생활의� 모습에� 대해서�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 � �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 � 본문에서는� 특별히� 두� 부류의

    대상만을언급하고�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부류인� 나그네나� 병든� 자,� 갇힌� 자� � 등을� 제외시키지

    는않는다.� 이들은�한� 공동체�안에서�그리스도의� � 사랑을�보여주어야�하는� (마� 25:40)� 구제� 대상들이다

    (Ropes).� 한편� '돌아보다'에� 해당하는�헬라어� '에피스케프테스다이'(* � )는� 문자적

    으로� '보러� 가다',� � '조사하러� 가다'를� 의미하는것으로� 단순히� 교제를� 나누기� 위한� 돌아봄보다는� 극히�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돌아보는것을� 시사한다(갈� 5:6,� Burdick).� � �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

    하는� -� 야고보는� '세속'(*� � � � � � � � � � � � � ,� 코스무)이라는� 단어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통한� 죄악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Le-nski,� Burdick).� 이는� 사도� 요한이� 잘� 쓰는� 표현� 방법으로(요일� 2:16)�

    이웃�사랑은�물론�자신� 스스로가�죄악에�빠지지�아니하고�성화를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을권면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건한� 자의� 삶에� 있어서� 이웃� 사랑과� 자기의� 거룩한� 생활과의� 관계는�

    불가분의�관계이다.� � � � � 야고보서�제� 2장

    =====2:1� � � 내� 형제들아� -� '내� 형제들아'의� 헬라어� '아델포이�무'(* � )는� 수신자들에� 대한� 야고보

    의� 사랑의� 감정을� 잘� 나타내며,또한� 이는� 새로운주제로� 전환시킬� 때� 사용하는� 표현방식이기도� 하다(5

    절;� 1:19;� 3:1;� 5:7).� 이제� � 야고보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경건한� 삶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

  • 인가에�대해� � 권면한다.� � � �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믿는�믿음을� 너희가�받았으니� -� 본

    문에�해당하는�헬라어는� '에케테�텐�피스틴�투� 퀴리우�헤몬� 예수�크리스투�테스�독세스'(*

    � � � � � )이다.� '테스독세스'(영광의� 주)와� �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관계에� 대한� 해석은�다섯� 가지이다.� (1)혹자는� '영광'을�

    '믿음'과� 연결시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있는� 믿음'이라고� 해석한다(Schlatter,�

    Zahn,� Grotius).(2)혹자는� '영광'이� '주'를� � 수식하는� 것으로� 보아� � '우리�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

    에있는� 믿음'으로� 해석한다(KJV,� RV,� Moo,� Burchard).(3)혹자는� '영광'을� '사회적� 지위'로� 해석하여서� �

    본문이�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의미한다고� � 해석한다(Erasmus,� Calvin).(4)� 혹자는� � '영광의� 주'에� 해당

    하는� 헬라어� '테스� 독세스'를� 형용사적으로� 보아� � '우리의� 영광스러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

    음'이라고� 해석� 한다(Cantinat,� Chai-ne,� Ropes,� Hooker,� Luther,� Mayor).� (5)� 혹자는� 동격으로� 보

    아� '영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Bengel,� Lenski,� Tasker,� NEB).� 이� 다섯� 가지� � 견

    해� 중� 마지막�견해가�가장� 타당한�듯하다.왜냐하면�본문에서� '테스�독세스'가�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

    어� 있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지니신� '영광'이시다(눅� 2:32;요� 1:14;�

    17:5;� 히� 1:3).� 한편� '받았니'의� 헬라어� '에케테'(*� � )는� 시상이� 현재로서� 수신자들이� � 예수� 그리스도

    를�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 �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 '외모로'의� 헬라어� '엔� 프

    로소폴렘프시아이스'(* � � � � � )는� 70인역에서� '사람의� � 얼굴을�

    보고경탄하다'라는�의미로� 사용되었으나�본래�이것은� '한� 사람에게�얼굴을�들다� '라는� � 의미로서� 한� 사

    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 즉� 같은� 상황에서� 서로� 차별을� 두고� 대하는것을� 의미한다(Manton).� 하

    나님은� 절대로� 사람을� 외모로� 보지� � 않으시며� 그� 중심을� 보신다� (삼상� 16:7;� 행� 10:34;� 롬� 2:11;� 엡�

    6:9;� 골� 3:25).� �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닮아가며�그리스도�예수� 안에서�살아가는�그리스도인들이�자

    기의� 유익을� 취하기� � 위하여외부적인� 조건에� 얽매이는� 것은� 잘못이며� 영광의� 주� � 예수� 그리스도를� 믿

    는�믿음에�걸맞지�않는다.

    =====2:2� � � 개역성경에는� '가르'(*� � � � � � �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 '가르'는� 2-4절까지가� 1

    절의�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권면의� 논중임을� 나타낸다.� 본절과� � 3절은� 사람을'외모'로� 취하는� 행위에�

    대한� 예이다.� � � � 만일� 너희� 회당에...들어올�때에� -� '회당'(*� � � � � � � � � � � � � � � � � � � � � � ,� 쉬나고겐)은유대

    인들이� � 예배를�드리기�위해 모이는� 일(눅� 12:11)이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 (눅4:15,20,28)

    를� 의미한다.� 야고보가� 본절에서� '쉬나고겐'을� 사용한� 것은� 이� 서신을� �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모임,� 장소를� 자연스럽게� '쉬나고겐'이라고� 부른� 듯하

    다(Burdick).� 한편� 야고보는� 회당에� 들어오는� 사람� 중� 두� 부류의� 사람을� 예로� 들고� 있다.� � � � 금가락지

    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 -� '금가락지를� 낀� 사람'� 본절에서만� 등장한다.� 이것은� 본래� '금손가

    락의� 남자',� '금가락지� 낀'이라는� 의미로� '명예와� 존귀를소유한� 사람'을� 의미한다(창� 41:42).� 한편� '아

    름다운� 옷'에� 해당하는� '에스데티� � 람프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밝고� 찬란한�

    옷'이란� 의미로서� 부유한사람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옷을� 가리킨다.� 당시� 유대� 지방에는� 자

    신의�부와지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 반지나� 아름다운� 장신구를� 달고� 과시하는� 풍습이� 있었다(눅

    15:22).� � � � 더러운�옷을�입은� 가난한�사람� -� '더러운'에�해당하는�헬라어� '뤼파라'(*� � � � � � )는� '불결한'

    을� 의미� 하며� 또한� '가난한� 사람'(*� � � � � � � � � � � � ,� 프토코스)은� '구걸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마� 19:21,�

    Mayor).� � 야고보는�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과�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을� 대조시켜서� 당시� 수신자들이�

    외모로사람을�취하는�죄를� 지적한다(Hort,� Burdick).

    =====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 '돌아� 보아'�

    헬라어� '에피블렙세테'(*� � � � � � � � � � � � � � � � � � � � � � )는� '올려다� 보다'라는� � � 뜻의� '에피블레포'(*� � � � � � � �

    � � � � � � � � � � )에서� � 유래한� 단어로� '좋은� 동기를� 가지고� 쳐다보다'라는� 의미이다(눅� 9:38,� Burdick).� 한

    편� '좋은� 자리'는� � 특별히� 마련된� 좌석보다는� 앉을� 자리를� 권유하는� 의미이다(Adamson).따라서� 본절

    은� 사람들이�일반적으로�아름다운�옷을�입은� 자들을�존경하여�그� 표시로�자리를� 정중하게�권유함을� 시

    사한다(Rope-s).� � � � 가난한자에게� 이르되�너는� 거기� 섰든지�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 먼저와는� 대조적

  • 으로� 가난한� 자에게�대하는� 태도에� 관해� 언급된다.� '섰든지'의� 헬라어� '스테디'(*� � � � � � � )는� '배치하다'

    의� 의미를� 지닌� '히스테미'(*� � � � � � � � � � � � � � )의� � 명령법이다.이것은� 아무렇게나� � 자리를� 차지하라는�

    것으로서� 아마� 회당의� 맨� 끝이나� 구석진� 한� 곳을가리키는� 말로� 볼� 수있다.� 한편� '네� 발등상� 아래� 앉으

    라'는� '내� 발� 아래� 앉으라'는� 표현이다.�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발을� 피정

    복자들의�목위에두었는데(눅� 20:43)� 본문에서는�그러한�의미보다는�발� 아래의�마루바닥에�앉으라는�의

    미로�사람을�차별하는�모욕적인�행위를�암시한다.

    =====2:4� �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것이� 아니냐� -� 야고보는�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 수신자들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구별� 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크리데테'(*� � � � � � � � � � � � �

    � � � � � � � � )는� 수동태로�서로� 구별하는�잘못을�범하고� � 있음을시사한다(RV).� 한편� '아니냐'의� 헬라어� '우

    '(*� � � � )는� 부정� 불변화사로� 수신자들이�야고보� 자신의� 지적에�대해� 충분히�긍정할� 수� 있는� 것임을� 암

    시한다.� 2,3� 절에서� 야고보가� 예를� 들어� 지적했듯이� � 수신자들은�아름다운옷을� 입은�부한� 자들과� 더러

    운� 옷을� 입은� 가난한� 자를� 차별� 대우했다.� 이렇게� 사람을� 구별하여서� 판단하는� 것은� 항상� 공정하지� 못

    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범죄가� 된다.� � � �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느� 자� -�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

    별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에서나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지음을� 받은� 인간을� 무시하는� 것

    은 하나님을무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며� 상대방을� � 위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

    심을� 채우기� 위한� 판단이다.� 이러한� 구별� �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을� 서로� 분리시키며� 피차�

    시험에� 들게� 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요� 8:15),� 확고한� 믿음이� 결여된� 것임을� 시사

    한다(Ropes).

    =====2:5�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 야고보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라고� � 언급함으로써�

    새로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앞절까지는� 사람� 외모로� 판단했을때� 죄가� � 되는것을� 언급하였지만� 본절

    에서� 11절까지는� 사람을� 구별하여� 판단하지� 말아야� � 될� 이유를열거하고� 있다.� � � � 하나님이� 세상에� 대

    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 � 실제로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당시� 사회에

    서�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부류였다(마11:5;� 고전� 1:26-29).� 그러나� 그들이� 돈이� 없고� 가난해

    서�사회에서�천대�받는 자들이었다고� 할지라도� 믿음에� 대해서는� 결코�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다.� � 왜

    냐하면�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이기� 때문이다.야고보는� 여기서� 미래적인� 영적� 안

    목을가지고� 세상에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시각임을� 지적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가

    난한자들에게� 그들이�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는� 소망을� 품게� � 하셨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모두� 다�

    믿음이� 부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야고보는� '가난한� 자'의� 헬라어� '투스� 프토쿠스'� (*� � � � � � � � � � � � � �

    � � � � � � � � � )에서� 관사� '투스'(*� � � � � � � � � )를� 사용하여� � 하나님의� 나라를� � 유업으로� 받은� 자들이� '가난

    한� 자들'� 중에서도� 한정된자들임을� 나타내고� 있다(고전1:26-28).한편� '택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

    셀렉사토'(* � � � � � )는� 부정� 과거� 중간태� 용법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친히선택

    하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전� 1:27).� � � �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 � 하신� 나라를� 유업으

    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 택하신�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보상으로� 인한� 약속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혀� 유업

    으로� 받을� 수�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부르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마련하셨다.� 이러한� 것을� 믿고� 바라는� 자는� 심령이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으며,그� 결

    과�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된다(마� 5:3;눅� 6:20,Tasker).� 한편� '아니하셨느냐'는� 본절� 상반� 절에서�

    언급된� '택하사'와�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냐'라는� 의미이다.� � 이는� 4절에서의� 용법처

    럼�긍정적인�대답을�기대하고�사용한�야고보의�표현�방식이다.

    =====2:6,7� � � 너희는�도리어�가난한�지를� 괄시하였도다� -� 하나님께서�택하신� 가난한�자들은� � 하나님

    의� 주권에� 의해� 선택을� 받은� 자들이다.그러한� 이들을� 무시하는� 행위는� 가증스러운일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수신자들은�가난한�자들을�외모로�취하여�멸시하였다.야고보는�수신자들이�존귀하게�대했던� '부

    유한� 자들'의� 행위를� 세� 가지의� 수사학적� 질문을통해�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외모로� 취해� 차별�

  • 대우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 � � (1)�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 당시에� 부자인� 사두개인들은�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악독하게� 박해하였다.� 로마� 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자기의� � 민족인� 디아스포라를�

    다스릴� 수� 있는� 상당한� 지배권을� 부여하고� 있었다(Lenski).그래서� 사두개인들은� 특히� 유대� 그리스도인

    을� 핍박하였다(행� 4:1-3;� 9:2;� 16:19).� 그들의�압제는� 종교적인� 것은�물론� 경제적인� 이익과�관계된� 것

    들이었다(행� 19:23-41).� '압제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뒤나스튜우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은� '카타'(*� � � � � � � � � ,'아래로')와� '뒤나스테스'(*� � � � � � � � � � � � � � � � � ,� '유력자',� '군주')의� 합

    성어로� � '권력을� 잡은� 자들이� 무자비하게� 수탈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압제하고� 착취� 하였다.� � � � (2)�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 당시� 유대� 사

    회에서� � 채권자는� 채무자를�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끌고� 가지'의� 헬라어� '헬쿠신'(*� � � � � � � � � � � � � � � � � �

    � � )은� 단순하게� '이끌다'(요� 6:44;12:32)라는� 의미도� 있으나� 여기서는� 어떤�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행위를� 나타낸다(행� 16:19;� 21:30).야고보는� 개역성경에는�번역되지�않은� 3인칭� 대명사� � '아우토이'(*� �

    � � � � � � � � � ,� '그들')를� 사용하여� 가난한자들을� 끌고� 가는� 자가� 부자들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 � �

    (3)� 저희는� 너희에게� 대해서�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 훼방하지� � 아니하느냐-�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그� 아름다운�이름을'의�헬라어� '토� 칼론� 오노마�토�에피클레덴�에프�휘마스'(* � � )에서� '너

    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에� � 해당하는� 헬라어� � '토� 에피클레덴� 에프� 휘마스'는� 문자적로� '너희� 위에� 일

    컬어진'이란� 의미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고전� 1:2;딤후� 2:19)를� 가리키며,� '아름다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나타낸다.이러한� 표현은� 히브리� 관습으로,관습에� 의하면� 어린아이에게� 자기� 조상의�

    이름을� 따서붙이곤� 하였다(창� 48:16).� 이것은� 개개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짐을� 나타내었고그� �

    개개인은�하나님이�택한자로서�하나님께�바쳐진�사람으로�구별되었음을�시사한다.따라서 본문은� 그

    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게� 됨을�

    시사한다(Tasker,� Burdick).� 한편� '훼방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무신'(*� � � � � � � � � � � � � � � � � � � �

    � � � � � � )은� '악을� 말하는'의� 의미인� '블라스페모스'(*� � � � � � � � � � � � � � � � � � � )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문에

    서는� '신성� 모독'즉�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일컫는다(Ropes).부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은� 그

    리스도인들을� 농락하고� 압제함으로�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신자들이� 외모로

    만�사람을�취하여�부자들을�옹호하고�존경하는�것은�그들의�범죄에�동조하는�죄악이다.

    =====2:8� � 개역성경에는� '멘토이'(*� � � � � � � � � � � � � � ,� '참으로')가� 생략되어� 있다.� '멘토이'는의심스러

    운�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확신을� 뜻하는� 말로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미를� 수

    반한다(Ropes).� � � � 너희가� 만일...지키면�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텔레이테'(*� � � � )는� 조건문

    으로� '너희가� 완전하게� 지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이것은� 하나님의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는� 완

    전성보다는� 지키기를� 노력하는� 성실성의� 관계를� 시사한다(Manton).� � � � 경에� �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 -�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행위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그것이� 왜� 불합리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

    '최고한� 법'의� 헬라어'노몬� 바실리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에서� '바실리콘'은� '왕'을� 의

    미하는� '바실류스'(*� � � � � � � � � � � � � � � � � � )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실리콘'을� '노모스'에� 적용한� 것은� 로

    마� 시대에� 있어� 왔던� 일반적인� 표현� 방식으로(4:11,Robertson)� 당시에� 로마� 황제에� 의해� 제정된� 법은�

    어느�누구도�바꿀�수�없는� 절대적인�법이었다. 야고보가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 하나님의�

    법은� 그� 자체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더욱� 이� 하나님의� 법

    은� 다른� 율법보다� 포괄성을� 가지고� 인간� 관계를� 주장하는� 법이기� 때문에� '최고의� 법'이라고� 할� 수� 있

    다(Mayor,Tasker,Ropes).� 그러므로� 외모로�판단하지�않는� 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최고

    의법을� 실천하는� 것이다(레� 19:18;� 마� 22:39).� � 곧� 상대방을� 외모로� 구별하지� 않는� 것은자기에게� 유

    익이�되는� 사람만을�사랑하는�것이�아니라�조건에�얽매이지�않고�사랑하는것이다.

    =====2:9� 본절은� 외모로� 사람을� 취한자들을� 향한� 징계를� 나타낸다.� � � �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최고의� 법과� 완전히� 대치될� 뿐만� 아니라� 죄를�

    들어� 오게하는� 요인이� 되어� 하나님의율법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요일� 3:� 4).� � � � 율법이� 너희를� 범죄

  • 자로� 정하리라� -� 여기서의� '율법'은� 성경의� 일반적인� 법보다는야고보가� 8절에서� 언급한� 최고의� 법을�

    가리킨다(Burdick).� 한편� '정하리라'의� � 헬라어'엘렁코메노이(*� � � � � � � � � � � � � � � � � � � � � � )는� '증명되다'

    라는� 의미로� 범죄를� 통하여� '증명� 됨'을� 시사한다.사람을� 외모로� 취한자는� 최고의� 법을� 어긴� 자이며,�

    율법은�그를� 범죄자로�정하여�범죄하였음을�드러낸다.

    =====2:10� � 개역성경에는� '가르'(*� � � � � � �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 '가르'는� � 본절이앞절에서� �

    언급한� 내용� 즉� 사람을�외모로� 취하면�범죄자가� 된다는�사실의� 근거임을� 시사한다.� � � � 누구든지�온� 율

    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 � 야고보는� 온�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한� 가지

    를� 제외시키는� 것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율법은� 모두� 다�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율법� 한� 가지

    만� 범한다� 할지라도� 범죄한� 자가� 된다.� 야고보는� 본절에서� 사람들이� 율법� 중� 자기의� 필요한� 부분만을�

    취하여�지키는�것을지적하고�있다. 실제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부자

    들에게는� 지나치게� 마음을� � 쓰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율법을� 취사� 선

    택하여� 지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이러한� 행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역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 취사� 선택의� 방법이� 아닌� 불리한� 율법도� 동일하게� 지켜야� 한다.� '거치다'에� 해당

    하는�헬라어� '프타이세'(*� � � � � � � � � � � � � � � )는� '걸려� 넘어지다'의� 의미인� '프타이오'(*� � � � � � � � � � � � � )에

    서� 파생된� 단어로� '처음으로� 걸려� 넘어지다'를� 의미하며(Hort)� '범한'의� 헬라어� '에노코스'(*� � � � � � � � � �

    � � � � )는'지속된'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 사람이�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처음으로� 단� 한번범죄하였

    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범죄한� 것과� 동일한� 결과가� 된다.이는� 야고보가� 죄의형벌을� 말하려고� 했다기

    보다는�모든�율법에�대한� 중요성을�지적하고�있음을�시사한다.

    =====2:11� �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 아니하여

    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 본절은� � 앞절의� � 원론적인� 언급에� 대한예이다.� 논문에서� 언

    급된� 십계명은� 그� 순서가� 서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 본문에서� 어느� 가정된� 상황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지� 순서가� 뒤바뀐� 것에� 대하여� �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것은� 아닌� 듯하다(Tasker).

    하나님의� 율법은� 본질적로�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그러

    기에� 한� 가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다� 할지라도� 다른� 율법을� 범한다면� 그것은� 모든� 율법을� 범한� 것과�

    동일하며,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자가� 된다.그러므로� '네�

    이웃을�네� 몸과� 같이�사랑하라'고� 하신�포괄적인�최고의�법� 가운데�사는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외

    모로�보는� 한� 가지만을어겼다�할지라도�그것은�모든� 율법을범하는�것과�동일하다(Calvin).

    =====2:12� �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 야고보는� 본절에

    서�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모든� 율법에� 차별없이,� 간과하지� 말고� 행하라는� 것이다.� '자유의� 율법'은�

    앞서� 언급한� 최고의� 율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8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새� 계명� 즉� 복음

    을� 의미한다.이것은� 사람들� 속박하고�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안에서� 은혜와� 긍휼로� 인도하기� 때문

    에� 자유로운� 것이다(마� 5:44;� 요13:34;� 골� 3:12;� 요일� 3:11).�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

    에서� 심판� 받을� 자처럼(고후� 5:10)� 말을� 하고� 행해야한다.� '...처럼'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 � � � �

    � )는� 현재� 시상의� � 동사인� � '말하고',� '행하는'을� 동일하게� 수식하고� 있다.� 현재시상은� '말도� 하고� 행하

    기도� 하라'가�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행위여야� 함을� 시사한다.또한� 본문은� 행하는� 것뿐� 아니라� � 말도� 하

    나님의�심판의�대상이�됨을�나타낸다(Manton).

    =====2:13� � 긍휼을�행하지�아니하는�자에게는�긍휼�없는� 심판이�있으리라� -� 본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마� 18:23-35).'긍휼'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는� 자비심으로� 본절에서는� 특별히� 가

    난한� 자들에� 대한� 자비심을� 나타낸다.� 이러한� � 긍휼을� 행하는� 자는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며(마� 5:7)�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게� 된다(마� 6:2).� 그러기에� 사람을� � 외모로� 판단하

    며� 가난한자에게� 긍휼을� 베풀기보다는� 멸시하고,� 도리어� 부유한� 자에게� 관대한� 자는� 결코� 긍휼히� 여김

    을� 받을� 수� 없다.� � � �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 �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표

  • 시이다(Johnson). 예수� 그리스도께서� �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듯이� 그리스도인들도삶� 속에서� 나타

    난� 긍휼을� 통하여�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요일� 4:17),�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수� 있게� � 된

    다.가난한�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심판대� 앞에서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심판

    도�그� 긍휼을�이기지�못하게�될� 것이다.

    =====2:14� � 내� 형제들아�만일�사람이�믿음이�있노라�하고� 행함이�없으면�무슨�이익이� � 있으리요� -� '

    만일� 사람이...하고'는� 가정법을� 수반하는� 조건문으로서� 가식적인� 믿음을� � 지적하는� 말이다.� 이는� '만약�

    믿음이� 있노라� 하고� 계속적으로� 말만� 한다면'으로� 해석할� 수있다.� � 그들의� 말은� 전혀� 가치가� 없는� 거

    짓이며� 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렇게믿음이� 있노라� 신앙� 고백을� 하면� 서도� 마음� 내키는대로�

    살아서� 행함이� 전혀� 없다면� 구원에� 있어서� 유익된� �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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