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국사람입니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 사람이 학살되었다. 조선인도 있었고 중국인 도 있었다. 군대가 죽였다.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서 며칠간 냄새 가 났다.” <<개벽신문 57호 인터뷰 중>>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 Upload
    -

  • View
    43

  • Download
    3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Page 1: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한국사람입니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 사람이 학살되었다. 조선인도 있었고 중국인도 있었다. 군대가 죽였다.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서 며칠간 냄새가 났다.”

<<개벽신문 57호 인터뷰 중>>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Page 2: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그래서 거길 가 보자고 했어요. 학교에서 졸업작품으로 정식 승인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장비를 빌려서 5~6명이 달려갔죠. 그 중 저 혼자만 재일교포였고, 나머지 학생들은 일본인이었어요. 거길 가 보니 길이 낯이 익더군요. 내가 소학교, 중학교를 조선인학교를 다녔는데, 초등학교 때 일본인학교를 다니다가 조선인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민족차별이 심했거든요. 먼 거리를 전차를 타고 다녔죠. 그 조선인학교 근처였어요. 그곳에서 발굴 작업을 3일간 하더군요. 카메라가 많이 왔죠.

우연히 신문에서 관동대진재 학살지를 발굴한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죠.

Page 3: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그 장면을 찍으려고요.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이 발굴 작업하는 것을 보러 왔어요. TV 방송을 보고요. 노인 분들이 많이 오셨죠. ‘내가 이런 걸 봤다’ 하는 증언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몹시 흥분해서요. 근데 발굴 작업에서 유골이 안 나왔어요. 유골이 안 나오니 영화도 중단되었죠. 하지만 그때 오신 분들 녹취도 하고 취재한 파일이 있었어요. 어른들을 찾아가서 취재를 했어요. 한 동네에 살던 주민들이었겠죠.

Page 4: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관동대지진의 직접적 원인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방화를 했다’, ‘도둑질을 한다’는 유언비어를 가지고 군대와 경찰이 하나가 돼서 일주일만에 학살을 감행한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유언비어 때문에 6,600명을 죽일 수 있을까요?

Page 5: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유가족들이, 그 분들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명백한 증거니까?

그런다고 없었던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만드는 세 번째 작품에서는 살아남은 유가족들의 시선에서부터 출발하시는 거군요?

Page 6: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가해자의 얼굴, 피해자의 얼굴. 두 얼굴이 나와야 할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민족의 비극입니다. 유대인이 학살당한 것과 비슷한 사건입니다. 간단한 사건이 아니고 재일동포만의 비극도 아닙니다. 한민족의 비극입니다. 이름도 없고 시신도 없고 유골도 없습니다.”

Page 7: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유가족의 시선에 힘을 싣는 이유는 희생자가 이렇게 희생되었다는 것, 그들에게 이름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고향이 있었다는 것, 희생자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자라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보여주는 가족의 역사를 그려야만 희생자들의 존재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오충공 감독은 오늘도 영화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Page 8: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오충공 감독은 195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민족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26살 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교장으로 있던 현재의 일본영화학교, 요코하마 영화학교에 들어갔습니다. 1983년 <감춰진 손톱 자국 – 관동대진재와 조선인 학살>기록영화’로 일본에서 충격과 함께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어 1986년 두 번째 영화 <마을 사람들에게 불하된 조선인 - 관동대진재와 나라시노 수용소>를 제작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특별기획프로그램으로 초청되어 상영되기도 하였습니다.

Page 9: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오충공 감독은 일본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30년을 넘게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현재 새로운 작품(1923 제노사이드, 93년의 침묵)을 위하여 또한 역사의 흐름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조선인 학살자들의 유족을 찾고 있습니다. 2016년 8월 19일~20일, 서울시민청에서 영화상영회와 사진전, 감독과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Page 10: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기록영화 전국 순회 상영: 오충공 감독 소개

학살 피해 유족을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당신은 진실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