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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고려 199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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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ormed Goryo 1994. 03 Vo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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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개혁고려 1994.03

/ 봄이 오면 · 석원태

표준새번역 성경 무엇이 문제언가?

/ 제네바 아카데미 • 석기신

저148호| 고려신학교 졸업 • 사진전

1빼빼포1 를캐 개혁주의적 교회 건설과 기독교적 문화를

사회에 꽃피우며 세계 선교의 비전울 제시하고 문서선교의 일익을 담영현다.

Page 2: 개혁고려 1994.03

.‘ 씬셔와컵유터의조화----뚫蟲훌침킹i스

모험기업의새로운도전 모험기업으로출발한 (주)카스는수많은도전과시련을 극복하고창사 10주년을 맞이 하면서 새로운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아시아대륙탐험"순수아마추어 탐험대원들로구성된

5명의 “키스 탐험대”는 다기올。씨아 대륙시대를 대비, 민족의 정기가서린 백두산에서 아시아의 끝 이스탄불까지

15 , 000km를 60일간의 대장정을무사히 마쳤습니다. 고비사막과천산산맥을 념고 오지를 통과효}여 용갖 역경을

이겨낸카스인/ 이러한의지로 “전자저울로세계 제 1위"“센서와

컴퓨티의 조화”를 목표로 하고있는우리의 꿈을 한발

앞당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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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및공장 : 경기도 앙주군굉적연 기납리 19번지 ·서율사무소 . 서울시강동구 성내동 440- 1 (카스빌딩).무료톨화서111스 : 080-022-0022 ·소빠뾰샌터 : 473-4000 ·서율사무소 : 475-4661 17 • 인전 : 51 1-4277 . 부산 : 465-3626 .대구 : 756-2737 . 광주 : 223- 1538 . 대전 : 672-1016 .전추 : 84-6980 .빠 : 99-0213

Page 3: 개혁고려 1994.03

월만 「개혁고려J 3월호

동록번호 : 라-6246 동록일: 1993. 9. 16 통 권.제 10 호 발행 일: 1994. 3. 10 발행인.석원태 편집인:정성섭 고 문 김 태 윤 편집위원 : 박민정 김종석 홍록두 김경렬 김학수 이영근 이종래 서상일 최기만 강구원 김장진 이현상

주 간 : 김 길 곤 편 집 장.노상원 기 자;윤세옥 업 무: 이 경 수 재 정:최연숙

려| 차

-단 -

-칸깅

--려 -

-고 - ·봄이오면 · 석원태

-한국성경공회 제공 표준새번역성경 무엇이 문제인가?

150개 교단이 발표한 우리의 주장

[4J

댄김

!고|려|논|단 I ·제네바아카데미 · 석기신 칼빈의 교육개혁의 산실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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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려|세론 I ·기독패전통문화 · 편집부 전통문화라 이름하여 행해지는 반기독교적 행태

”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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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깨 서 우 교~식 • 고려신학교소식 • :편집부

교단계E딩과 설명회 · 고려신학교 졸업식

본 잡지는 한국간행툴 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올 준수합니다 -펀집부 l 고 l 려|신|학 | 교|졸|업|식|사|진|화!보 [2a

g껄 • 몽골 H선교사 사역 2년 보고

톨곁i갚톨흔암a 종교개혁가를 찾아서 • 촌 칼빈 믿 -전재기 g갱

샤랑의십밀

영제를과 너픽't

작유톨위마。1

뿌르십슐일었으냐

그러나그자유로

혹체의 '1획톨 실지 말고

요직 사항으로서로

총노릇아라

· 갈라디아서 5 : 13

• 영남의 어머니 교회 부산진교회 -황명길

• 전국 여전도회연합 수련회 참가기/최수경 ·회 상/안미애

효댁의초기교회들

|고|려 1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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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 •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전에 무엇을 히졌습니까?

• 세계 회교 인구 10억/편집부 회교세력이 몰려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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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헌신므로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그를 섬기는 일이 당신의 기쁨이 되게 히라보수!

3

월간 개혁고려 후원회원 현황

고려신학교 · 총회선교 헌금 납부 현황

~

g갱

Page 4: 개혁고려 1994.03

닭은울고시내는흐르고

새 무리 지저귀고 호수는 빛나고

푸른 별은 햇빛 속에 잠이 들었다

늙은이와 어린이는 젊은이와 일하고

가축들은풀을먹고있다

고개숙인모양이

미흔 마리가 한 마리 같구나‘

물러니는군대와도 같이

눈은산마루에서 힘없어 가고

밭가는 아이들이

소모는 이랴 ! 이랴!

산에는 기쁨이요 생에는 생명이요

비 개고밝은날은

윷 달고 푸른 하늘을 달리는

작은구름한조각씩씩도하다

〈워즈 으| ‘3월의 노래’ 에서〉

여기 우리 앞에 아름답고 위대한사랑의

정원이 있습니다. 이 정원에는 바야흐로 움

돋고 꽃 피는 봄이 왔습니다. 이 봄동산의

정원에 신비로운 사랑의 광장이 벌어졌습

니다.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고 놀라운

사랑 대화의 정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 봉 동산의 주인은 솔로몬과 그의 짝인

술람미 여인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신랑이

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봄된 교회(신자)

와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 함께 3월을 맞이하면서 ‘봄이 오

면’ 이란 제목으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머 봄이 오면 주님의 방문을 받습니다.

(2 : 8-9)

그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 사랑하는 주님이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사랑하는 자는 아가서 5

장 10절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r나의 사

를딴뜰틴뀔.

봄이오면 아가 2 : 8-17

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

난다」고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성 (희다)과

속죄애(붉다)와 승리(만 사람 잎에 뛰어

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은사랑하는자

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는 사랑의 음성이요 구원의 음

성이요 자비의 음성이요 소망의 음성입니

다.

그의 사랑하는 자는 즐거움으로 방문하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노루와 사슴과도 같

이 산에서 달리고작은산을빨리 넘어 온

다고 하였습니다. 달려와서 술랑미 여인의

벽 뒤에 서서 숨을죽이고가만히 창살틈

으로 엿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랑은 사지(四被)가 움직이고

시력과 감정이 동원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자신의 전인(숲A,

Whole man) 이 동원된 방문입니다 인격적

인 주님의 방문입니다. 전 생명의 동원입니

다 희생적이요 불가항력적인 동원입니다.

이유는 사랑은 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

다. 사랑은 만나고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아니 , 주님 자신이 봄입니 다. 주님 자신

의 방문이 바로봄입니다

낌 붐이 오면 동산으로 초청받습니다.

(2 : 10- 13)

그 동산에 겨울이 지나가 버 렸습니다.

영계 (靈界)의 겨울은 불법입니다. 이 불

법은 죄입니다(요일 3: 4) 이 불법이 성

하여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였

습니 다(마 24 : 12)

그 동산은 비가 그쳤습니다 r비도 그쳤

고J(2: 11) 라고 하였습니다.

팔레스틴의 겨울은 항상 진눈깨비가 계

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러한 운무의

기운이 지나 버린 화창한 날씨가 왔습니다. 노아에게 비가 ‘그친 것은 바로 구원의

시대가 도래함을 뜻했습니다. 이 비는 환난

과 시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동산에는 이제 꽃이 피었습니다(2 :

11). 꽃은 봄의 소식입니다 소생의 싸인

(sign) 입니다. 아름다움의 계절을 나타내어

줍니다. 쓸쓸한 겨울 동산의 모습을 말끔히

씻어 버린 새 단장의 표정입니다.

그 동산에는 새가 노래하고 있습니다(2

: 12) 그러나 이 말의 본래 뜻은 포도나무

가지를 자르는 때, 사람들이 봄 동산 일터

에서 즐거이 홍겨워하는 상태를 뜻하고 있

습니다. 말하자연 이 동산은 신선한 노동의

즐거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동산에는 비둘기(반구)의 소리가 뜰

려오고 있습니다(2: 12). 이 비둘기는 평

화와 겸손과 성령의 상정입니다.

그동산에는푸른무화과가익어 단맛을

내고 있습니다(2 : 12) . 이것은 이른 무화

과인데 겨울이 지나자마자 맺는 열매입니

다 r익었다」는 말은 달다는 뜻입니다. 그

렇다면 이 동산에는 달콤한 열매의 맛이

뿜겨나오고 있습니다.

그 동산에 있는 포도나무에 꽃이 피어

「겨울도 지나고J(2 : 11) 라고 하였습니다. 향기를 토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2: 13).

여기 「겨울」 ‘마타르’ 는 가리웅 이라는 꽃이 피어 있는 포도나무는 매우 예민하고 뜻입니다 팔레스탄의 겨울은 우기(雨期) 매혹적인 향기를 뿜겨 줍니다.

로ι하늘이 구름에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업 말하자면 이 동산에는 봄이 왔다는 소식 니다. 그렇다면 봄은 가리움이 지나간 계절 입니다. 봄이 오면 산과 들의 모든 동식물 이란 말입니다 은 동면을 끝냄니다. 만물은 소생합니다.

4

Page 5: 개혁고려 1994.03

말하자면 겨율에서 봄으로 옮겼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슴니다.

저주에서 혹복으로 옮겼습니다.

육에서 영으로 옮겼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옮겼습니다.

정말 봄은 향기요 생기요 생영입니다. 정말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요 노래하는 계절이

요 즐거운 계절이요 소망의 계절입니다. 말

하자면 봄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이러한 동산의 봄은 바로 신약 시대에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을 예

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

세는 인간 영계에 봄을 가져왔습니다. 사람

들은 율법 앞에 죄인이라고 하는 가리웅으

로 캄캄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

이 되어 죄를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인 사

망올 지불하고 부활하심으로 이제 우리는

율볍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로 옮겼습

니다.

말하자연 겨울에서 봄으로 옮겼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겼습니다.

육에서 영으로 옮겼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옮겼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벙어리는 혀가 풀려 주

를찬양했습니다. 소경은주의 영광을보게

되었습니다. 귀머거리는 복음의 소식을 들

었습니다. 반신불수는 건강해지고 앉은뱅

이는 일어났습니다. 문둥이는 깨끗하게 되

고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가 왔습니다 죽은

자는 무텀에서 살아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모든 세계는 이 신령한 은혜와

사랑의 계절흥을 맞아 구원의 찬가콜 화답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새

봄의 싸인(sign) 입니다. 무덤을 꽃 피우는

부활의 동산입니다.

이러한 봄의 동산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바울은 구원의 날이라

고, 은혜 받을 날이라고, 이사야는 메마른

땅에 화초가 피는 날이라고, 선지자들은 시

온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G킹 붐이 오면 주와 함께 즐거워합니다.

(2 : 1-17)

어찌 하면 봉 동산을 주와 함께 즐거워

하는 것입니까?

1‘ 술람미 여인은 몸 동산에서 그의 얼굴을

솔로몬에게 보여야 합니다(2 : 14)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나로 네 얼

굴을 보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여기 「얼

굴」을 직역하면 술람미 여인의 일반적 체

용(體容) , 즉 전 모습(자태)을 말합니다.

이유는 동산에 봄이 와서 모든 동식물이

하나님이 지으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동산에 술람미 여인의 모습이

드러나야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로 지음 받은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고후

5: 17).

2 술람미 여인은 그의 목소리를 솔로몬에게

들려 주어야 힘니다(2: 14).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그녀의 목소

리를 듣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기도의 음성입니다 독경하는 음성, 회개하

는 음성, 찬송 감사하는 음성입니다.

3. 포도 동산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

니다(2: 15).

당시 팔레스틴 들에는 여우가 수없이 많

았습니다. 이 짐승들은 포도원에 꽃이 펼

무렵에 밤을 이용하여 농장에 내려와 물이

오르는 포도원 가지나 뿌리를 뽑아 씹어

먹는 바람에 포도원 농사가 절단이나 나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들은 밤에 등불을 달고 이들의 야습을

막아야만했습니다.

이 러한 진리는 바로 포도원인 교회 안에

들어오는 불순한 세력들을 말합니다. 말하

자연 성경을 인간 이성으로 합리화효}는 자

유주의 신학, 감각을 왕으로 삼는 저급의

5

석원태목사 ·경향교호| 당회장 .고려신학교교장

신비주의, 육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세속

주의, 경험만을 최종의 진리로 삼는 거짓

과학주의 동의 정체를 용납하지 말아야 된

다는 것입니다

위의 것들이 여우의 정체입니다. 여우는

교활합니다. 의심이 많습니다. 외식적입니

다.

이 여우의 활동이 교회 안에 침투할 때

봉 통산의 즐거움이 파괴되고 맙니다 그렇

게 될 때 주와함께즐길수는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를 위하여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한 것입니다.

4. 주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2: 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

님의 뼈 중의 뼈요살중의 살입니다 이제

내가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

니다.

5. 주는 나의 목자요 나는 그의 양이 되어야

할니다(2 : 16).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벅이는구

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주

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습니다. 우

리는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며 그를

먹고살아야합니다

6. 밤을 지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2: 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

자가 갈 때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

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고 하였습니다.

노루와 어린 사슴은 해가 질 때 밤의 푸려

움 때문에 재빨리 자기 집을 찾아 쫓아가는

통물입니다. 환난의 밤이 오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황급히 주님의 품으

로달려갑니다.

주와 함께 하나가 되어 목양의 즐거움을

나누면서 환난의 밤을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봄 동산의 즐거움을 주께 드

립시다. t 아멘

Page 6: 개혁고려 1994.03

며 표준새번역 성경의 배경에 대한 문제

성경의 번역은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언어만이 가지는사상과감정을 전

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자의 사

상과 감정이 반영되게 마련이며 번역자의

신학적 사상과 감정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

한 이치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누가」

「어떻게」 번역했느냐는 성경번역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

이다.

금번 발간된 표준새번역 성경은 대한성

서공회가 16명의 번역자를 위촉하여 10년

( 1983- 1993) 에 걸친 노력을 통해 오늘의

결실을 본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새번역 성경이

대다수의 한국교회로 부터 인정을 받지 못

하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대한성서공회는 왜정

시대에 성경의 절대무오를 믿는 모든 보수

교단의 목사들이 투옥되고 이산되어버려

친일적인 목사들만이 남아 대한성서공회를

주도했다 일본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강조한 구약성경과 일본 천황도 심판받는

다는 내용의 요한계시록등을 제하여 버리

려고 했다. 이러한 일본의 종교정책에 협력

한 사람틀이 바로 성서공회를 주도하며 자

유주의적인 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었

한국성경공회가 주장하는

표준새번역 성경 무엇이 문저|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 무오한 말씀이기

때문에 일정일획도 함부로 가갑할 수 없는

원칙에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해야 함에

도 불구하고 표준새번역은 하나님의 말씀

의 많은 부분을 첨가 혹은 삭제, 오역, 번역

함으로 성경의 「절대무오」를 「유오」로 변

질시키고있다 더구나번역에 참고한 외국

성경들은 대부분이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

에 의하여 번역된 성경을 많이 참고했다.

표준새번역 성경의 특징을 간추려 보면

@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아래 @ 다원주의

영향아래 @ 언어를 한국 상황에 맞도록

토착화 시킴으로써 @ 자연발생적인 진화

론의 영향이 분명히 도입된 것으로사료되

므로 공적 성경으로 받아들이 기에는 부적

격하다하겠다.

믿 표준새번역 성경에 대한 반대 주장

한국성경공회에 가입한 일백 오십개 교

단이 표준새번역 성경에 대해 비판하고 있

는내용을살펴보면,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로서 이 계시는 여

러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

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 1 : 1-2)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는 성령께서 그의 사도들

에게 영감을 통하여 계시를 기록으로 문자

화하여 나타나셨다(덤후 3: 16, 계 22: 10,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완전 영감설

을 믿으며 축자영감을 믿는다.

이러한 성경에 대하여 기독교 이천년 역

사속에서 사탄은 부절히 성경을 말살 내지

변질 시킬려고 해왔다. 이러한사탄의 역사

가 한국교회에 활동한 것을 살펴보면 기독

교 선교 100년 이래 무당교(미신), 유교,

불교의 핍박의 가시에 찔렸고, 1910년 한일

합방으로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에 모세오

경과 계시록은 군국주의의 무력에 찢겨졌

으며, 1945년 해방 이후로는 유물론적 공산

주의에, 1960년대 이후로 자유주의, 세속주

의, 물량주의에 혼탁되는 등 수 없는 고난

의 길을 걸어왔다 하겠다.

이러한 핍박앞에 신앙의 순결을 지키려

는 참된 종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

성서공회는 친일 신신학자로 개편되고 그

들은 구약과 계시록의 금독에 앞장섰으

며 서울이 공산화 되었을 때 앞장서 인민

위원회를 환영하였고, 1977년에는 적그리

스도인 카톨릭과 공동성경번역판을 출간하

였고 그것도 부족하여 이번에 표준새번역

성경을 출간하여 세계적 배교적인 추세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입장에서 번역

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무서운 사탄

에게 제물로 바친 것이다.

밍 표준새번역 성경의 제반 문제점들

1. 신론에서

다 18, 19). 그러므로 계시가 문자화 된 것은 @ 창조설이 아니 유출설 및 진화론, 자 이러한 역사를 지닌 대한성서공회가 위 문자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기록된 연발생설을 주장함 창 1 : 1의 난외 참고 1

촉한 16명의 번역신학자 중에 보수교단은

소수에 불과하며 교단적으로 파송의 절차

를 밟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에 의해

위촉된 것으로생각된다

말씀(Litem Word)은 곧 살아있는 말씀

(Living Word) 인 것이다. 그리고 기록할

때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번역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

6

: 3.

@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을 주라고 바

꾼 것-창 2: 4, 22 : 14, 출 3:15, 6:2를

비롯해서 7천변 이상

Page 7: 개혁고려 1994.03

l 최근의 사이비 종교연구가의 피살 사건은 성경해석에 관한 중요성률 더육 강조하고 있다 성경해석의 차이에서 이단이 생겨나는 무리 현실을 살펴볼 때 잘못펀 성경번역은 이단종파들을 정당화 내지는 합리확톨 시켜주며 나아가 이단종파들의 양산올 초래힐지도 모른다는 우려톨 자아내게 한다.

2 기독론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것-요 1 : 1, 1 :

3, 1 : 4, 빌 2: 6, 단 10: 16, 특히 주를 천

사로 : 사 53: 3에 질고를 아는 자를 항상

병을앓고 있는자로

3. 공산주의 시상으| 영항

@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

행 2: 44, 45에 서로 통용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을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진 고로 개인 소유권을 박

탈함.

@ 민중신학유입

암 2:6 궁핍한 자를 빈민으로 가난한

자를 힘없는자로,용 1: 7 먹는자들을먹

던 동맹국으로, 잠 11 : 30에 지혜로운 자

사람을 얻는다를 폭력을 쓰는 자로.

4. 다원종교신학사상

@ 잠 16 : 4에 살육의 사자를 죽음의 사

자로

아 8 :6에 음부를 저승으로

@ 잠 17: 8에 보석을 요술방망이로

호 4: 12에 막대기를 요술막대기로

5 세속적음란적 표현들

@ 레 15 : 2에 유출병을 남자의 성기에

서 고름이 흐르며로.

레 18: 2, 타인의 아내와 간통을 이

웃의 아내와 동침하며 정액을 쏟는다

로.

@ 아 1 : 2, 1 : 13, 1 : 16 등 참조-

6 번역자의 주관개입

@ 전 11 : 1-2에 네 식물을 물위에 던

지라를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라

로.

@ 엠 4: 11에 목사를 목회자로.

그 외에도 더하고 제해 벼린것 등 2

만회 이상이나된다.

回 결 론

건전한 성경의 해석에서 나온 신학의 체

계는 그것이 출발한 성경에 대해 또한 그

것을 건전하게 해석해 줄 수 있는 전제가

된다 이러한 원칙은 종교 개혁자들의 「성

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칙과 일치하

는 것으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신학적 체계

와 공존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최근의 사이비 종교연구가의 피살 사건

은 성경해석에 관한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

고 있다. 성경해석의 차이에서 이단이 생겨

나는 우리 현실을 살펴볼 때 잘못된 성경

번역은 이단종파들을 정당화 내지는 합리

화를 시켜주며 나아가 이단종파들의 %얀f

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1960-70년대 찬송가의 분열로 그 어려

움을 경험한 일반 교인들은 성경이 분열된

다는데 대해 알레르기적인 거부 반응을 보

이고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과 찬송

가는 그 본질이 틀린다 긍번 성경 번역의

문제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의 존립여부

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름지기 성경원문에 충실한 새번역 성

경이 다시 발간되기를 우리 l천만 기독교

인틀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성경공회에 가입한 1507B 개신교 교

단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살펴본다.

〈흔댁성경공회 제공 · 편집 정리〉

7

| 우리의주장 l

선교 2세기를 맞는 한국교회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바른 성경을 보존하며 성경의 바른 출간을 위하여 한국성경공 회를 설립하고 우리의 힘을 하나로 집 결한것이다

이것은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요하나

님의 명령임을 믿으며 바른 성경의 보

존과 성 경의 바흔 출간은 우리의 시대

적 사명임을 믿고 우리의 주징L을 다시 한번 대외에 천명한다

1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바른 성경 이 없이는 바른 신학도 바른 신앙도

바른 교회도 바른 생활도 없음을 선

언한다.

II. 우리는 바른 성경을 보존하며 성경 의 바른 출간만을 우리의 사명으로 한다.

111 . 우리는 이권투쟁이나 대한 성서공 회의 폐쇄적 운영이나 재정운영의

불투명성에 대한 투쟁이 아님을 밝

혀둔다.

N . 우리 성경공회는 미국 U, B, S에 가 입하지 않을 것이며 관계하지도 않

을것이다

v . 우리는 앞으로 반드시 구약은 마소 라 사본을 신약은 희랍어 표준원문

(T.R)에서 번역할 것을 천명한다. VI . 대한 성서공회가 우리의 건의를 제 시한 기간에 받아 들이지 않은 이상 이제 어떠한 타협이나 협의도 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바른 성경의 보

존과올바른출간만이 우리의 갈길 임을밝혀 두는바이다.

VII 우리는 근본적으로 번역된 성경을 출간할 때 까지 1952년도판 성경을 수정보완하여 신속히 출간하여 사 용함으로서 표준 새번역 성경이 여

러가지 형태로 저작 보급되고 있음

을방지할것이다.

끝으후 우리 한국성 경공회의 설립이

대한 성서공회의 연합기관으로서 9개 교단에서 파송된 이사만으후 운영되고

행정적 책임자들에 의해 좌지우지하는

폐쇄적 운영이나 재정 운영의 불투명성, 그리고 재산의 축적이나 이권 다툼에서

비롯된 것처럼 오도함에 대하여 유감스 럽게 생각하며, 우리는 오직 바흔 성경

의 보존과 성경의 을바른 출간만이 우 리의 사명임을 다시 한번 한국 교회 앞 에천명한다

주후 1994년 2월

한국성경공회 가입 일백오십개 교단장 일동

Page 8: 개혁고려 1994.03

- -고려신학과 아카데미를 위한 l덤듬1J톨.

제네바아카데미 소고

。 I 반적으로 칼빈은 종교개혁가로 널리

를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칼빈의 사역을 보면 그의 교육 개혁이 자신의 계획과 목

적에 얼마나 중심적이었음을 쉽게 발견할

수있다.

효과적인 교회 갱신을 위한 기본적 요건

으로 칼빈은 당시 교육 체계의 개조를 직

감하였다 적절한 교육만 일반인과 그 지도

자들에게 줄 수 있다면 종교개혁은 엄청난

힘으로 천주교의 오류와 정치적 압제 세력

들을 능가하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칼빈의 교육관, 특히 1559 년 제 네 바 아카데 미 CThe Aαdεmy of Gene­

πa)의 설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진행을 살피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

가아닐 수 없다.

16세기의 교육

16세기까지 미친 중세 교육 철학의 지배

적 사조는 토마스 아퀴나스CThom잉 여Ul.

nas, 1225~ 1274) 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

학에 기초하여 자신의 기독교 개념들을 통

합하려 하였던 그는 모든 실체를 해설하려

는 꽤 완벽한 사고 체계를 발전시켰다

아퀴나스의 근본적 사고의 배후에는 자

연Cnarure)과 은총Cgrace) 이라는 분명한 구

분이 있었다 철학이나자연과학과 같은자

연의 영역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독립하여

행위하고 생각하여 이성만으로 진리도 획

득할 수 있으며 개체적 사실들의 본질을

결정하는 보편적 양식 Cuniver잃1 pawεrn)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인간은 사변적

사색으로 몇가지 신성한 진리들에도 도달

할 수 있었으나 이 것만으로는 초자연의 영

역에까지 미칠 수는 없었다

초자연적 지식의 범위는 계시 Crεvelarion)

또는 은총Cgrace)에 속한 까닭이었다 신앙

을 통해 인간은 존재의 보다 높은 차원, 즉

석 기 신 선교사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박사과정)

죠캔비 ~ ~~

하나님이나 천사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신학은, 다시

말해 그것이 신성한 영역을 다룬다는 이유

로, 만학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반면, 다른

세상적인 하찮은 것을 다루는 일반학문(과

학)과 반립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조는

당시 학자들로 하여금 아퀴나스의 철학 체

계를 뒷받침하는 목적에 벗어난 그 어떤

자연과학이나 과거 사조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자극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런 철학에 기초한 교육관은 그

대상이나 관심 영역에 있어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학교나 대학의 주된 기능은 교회나 법

집행을 위한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이었

다 설교 사역의 중요성에 관심없이 성직자

의 주된 기능을 성례 집행이라고 보았던

당시 교회는 오늘날에 있어서 중요시되는

실제적 훈련을 등한시하였다

교육의 주된 골자는 rriviumC라틴어 문볍,

수사학, 논리)과 quadriviumC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었다 이것들을 다 연마한

8

후 학생이 원한다면 신학, 법률, 혹은 의학

으로 계속해 갈수 있었다

일반적 교수 방법은 어떤 저자를 놓고

논평하는 식이었고 학생들은 토의된 부분

이나 교사의 논평을 기록하였다 대부분 학

생들은 어떤 감독 없이 자신의 원대로 교

사에 참석하였으며 수개월 혹은 수년후 어

떤 논문Crh야is)을 모든 사람 앞에서 발표,

변호하였고 이것이 성공적으로 통과되면

그들에게 적절한 학위가 수여되었다 여기

에는 어떤 시험 혹은 승진 제도가 없었을뿐

아니라 명확한 방향 제시도 없었다 최소한

오늘 우리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아무렇게

나 비조직적이었다

14세기와 15세기에 접어들어 유럽의 교

육관에 변화가일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이

유로 사람들은 아퀴나스적인 저세상적

Corher-worldly ; 천상지향적) 태도에서 멀

어지면서 이세상Crhis-worldly ; 현세지향

적)의 것들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현세의

개인적 실체의 위치가 중요하게 부상하는

반면 그들의 보편적( universal) 본질이나 의

미는 무시되었는데 이는 고대 헬라 로마

시대의 문헌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한층 더

강화되었다.

삶이나 세계에 대한 고대인들의 태도는

이들로 하여금 중세 아퀴나스적 통합(Tho ­

mistic synrhesis)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배척

케 하였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어떤 이들

은 보다 성경적인 기독교로 전향하였는데

그로부터 종교 개혁이 싹트게 된 반면, 어

떤 이들은 이세상성( rhis-worldliness)과 개

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고전문학의 인문

주의적 예찬에 빠지게 되었다

독럽적 사고에로의 점차적 지향은 아리

스토텔레스의 권위를 전복시키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인간상을 자아내었다.

16세기말 “두 과학의 강연(The Discouse

of Two Scienoεs)" 011서 갈릴레오는 이런 현

Page 9: 개혁고려 1994.03

감빈의 인문주의는 단지 관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으로서 그리고

선생으로서의 칼빈 자신의 경혐의 일부였다. 파리에서 구체제 밑에서 공부하는 동안 킬빈은

새로운 교수법의 구체적인 혜택을 체험하였고, 이후 부데(8ude) , 볼마(W이mar) , 레때브러

(냐febvre) 문하에서 새로운 교수 이론의 당위성을 확인하였다.

상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원하던 바였

을 것이라고 지적하였으나, 15세기 말엽의

교육 권위가들은 이를 간파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이태리에서 비토리노(Virrorino)와 과리

노(Guarino)는 고전문학의 자율적 연구를

강조하였고 남부 유럽에서 공동생활의 형

제단(rhe Brεthren of Common Life)은 학생

들에게 자세하고도 체계적으로 관찰하며

훈련시켰다 이런 새로운 성격의 교육이 비

록 파리대학교에서는 아직 유행되지 않았

지만 부데 (Gulliaurne Bude)나 코르디(Ma­

thurin Cordiεr)의 영향력을 통해 점차적으

로 여러 대학에 침투하였고 이는 비텐버거

(Wirrenbεrg) 로부터 입수된 루터파의 생각

들과 병행되었다. 그 결과, 교회 당국의 노

력에도불구하고, 1525년 즈음에 보다체계

적이고 인문주의적인 교육 형태가 파리를

위시한 모든 지역에 자리잡게 되었다. 쉽게

기대할수 있는 것처럼 칼빈은당시 자신의

주위 교육계에서 일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변화와 갈등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칼빈은 파리대학교에서 수년을 지낸 일이

있는데, 자신의 말에 의하면 거기에서 그는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차이를 직접 접할

수가 있었으며, 또한 올리옹대학교에서 법

률 공부를 하고 있을 당시에도 다른 각도

에서 양자 사이의 갈동을 목격하였다.

이런 훈련으로 칼빈은 고전과 초기 기독

교와 당시의 여러 문헌에 광대한 지식뿐

아니라 철저히 신봉된 인문주의자로 등장

하게 되었고, 이 인문주의를 칼빈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물론 회심 이후 칼빈이 이

모든 것을 복음 전파에 예속시킨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으나, 그는 당대의 프랑스

문예부홍의 기수들로부터 전수받은 훈련을

결단코 도외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웰델(F. Wendel) 이 지적하는 것처럼

“칼빈은 1532년(cf. 그의 완벽한 인문주의

작품인 세네카의 De Clementia에 대한 주

석이 출판된 해)의 인문주의 사상을 그대

로 간직하였다" 즉, 이 인문주의 사상은

그의 전체적 교육론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칼빈의 인문주의는 단지 관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으로

서 그리고 선생으로서의 칼빈 자신의 경혐

의 일부였다. 파리에서 구체제 밑에서 공부

하는 동안 칼빈은 새로운 교수법의 구체적

인 혜택을 체험하였고, 이후 부데 (Budε) ,

볼마(Wo[mar) , 레패브러 (Lefebvre) 문하에

서 새로운 교수 이론의 당위성을 확인하였

다. 게다가 칼빈과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 두 가지 교육관을 놓고 건전한 논쟁을

벌렀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 가운데 이후 새로운 교육방법

과 기술을 권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몇

교육자들이 배출되는데 그중 하나가 한때

파리 의 성 바베 ( Sr. Barbe) 에 서 교장으로

지내다가 콜디어의 도웅으로 볼텍스(8or­

deaux)의 구웬대학(La Collegε de Guyenne)

을 책임 맡게 되는 안드레이(Andre de Go

vreau) 였고, 또 다른 인물은 1536년 쉬트라

-스벽 (Srrasbourg)으로 가 시립학교를 책임

졌던 칼빈의 조언자 쉬퉁(]ohn Srurm) 이었

제네바로 부터 망명 시절(1538-1541)

을 바로 이곳 쉬트라스벽에서 보내면서 칼

빈은쉬툼밑에서 가르치며 새 교육방법의

실제적 경험을 쌓게 되었다

쉬트라스벅에 조직된 대학 혹은 아카데

미는 당시 지도적 복음주의 목사였던 부서

(Martin Bucer) 의 수년 간 노력의 결실이었

제네바 회의에 참석한 캘빈

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정한 경건성

이란 결단코 무지에서 성장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젊은이들을 훈련하기 위한 아카

데미와 궁나지웅(gymnasiurn) 설립을 위해

시 당국자들을 자극시키는 일에 자신의 힘

자라는데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비록 처음에는 별 성과가 없었으나 결국

에는 쉬트라스벅 시당국자들의 확증뿐 아

니라 다수의 독일 시들에서도 장학금을 지

불하여 유능한 학생들을 쉬트라스벅으로

보내게 되었다. 이 목적이 달성된 후 부서

(Bucer)는 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유능

한 교사를 찾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중에 한사람이 쉬툼이었으며, 후일 1538년

제네바에서 축출당한 칼빈은 이곳 쉬트라

스벅 시와 그 교육기관으로 부터 정중한

환영을 받게 되었다.

1537년 6월 쉬툼은 “sap'εns arque elo­

quens p.er싫(지혜와 웅변적 경건)"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교육체계 조직을 시작하였

고 이듬해 3월 다신이 믿기에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을 천명하는 그의 저서 “ De lire

rarurn ludis reae aperiendis"를 출판하였다.

철두철미한 인문 주의자였던 그는 만사의

지식인 지혜는 자고로 고대의 문헌들로부

터 기인한다고 믿었으며 또한 기독인들이

그들의 거룩한 지혜를 자신있게 그리고 효

과적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였

다.

Page 10: 개혁고려 1994.03

기독인으로 말하고 사고할 수 있는 적절

한 교육을 위해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과

목을 배열, 학제를 둘 것을 주장하여 쉬툼

은 학교 체제를 삼분하였는데 이는 6세 미

만의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6- 15세를 위

한 굳나지움(Gymnasium) , 그리고 16셰 이

상을 위한 고등학교CH。이sch띠ε) 였다. 뭄나

지웅에서는 언어학 특별히 라틴어 정복에

몰두하고, 부서의 신학교(똥때n입re) 혹은

신학훈련원을 대치한 고둥학교는 헬라어,

히브리어, 철학, 수학, 물리, 역사, 법학, 신

학과 같은 실제적인 과목에 치중하는 것이

었다 이는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었던 훌

륭한 계획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완전히 시

행되지는 못했다‘ 시 지도자들의 무관심이

있었고 후일 루터파 세력이 쉬트라스북을

장악하게 되었을 때 학교의 위치는 다소

제약된 범위로 남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쉬

툼의 계획이 쉬트라스북에서 완전한 시효

를 보지 못했지만 후일 제네바에 미친 영

향이란 그 누구도 의심치 못하는 것이다

제네바 교육 개혁의 첫번째 시도

칼빈이 오기전 제네바의 교육부란 미약

한 것이었다.1365년 황제 찰스 4세가 제네

바대학교 설럽을 위한 칙령을 공포하였으

나 이는 곧 기각되었었고, 1429년 한 상인

이었던 프란시스CF rancois de Versonnex) 라

는사람이 시청 감독하에 학교를짓기 위해

기부금을 희사한 일이 있었는데 이 또한

결실을 보지 못하였는데 이는 1494년 이전

에는 고등학교Cgrandc cco!c)가 설립되지 않

았고, 1502년이 되기까지는 체계적 교육이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일과 성절기에 학생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야 동F는 법칙은 있었지만 순수한

학문적 교육이란 무재하다시피 하였다. 한

가지 그래도 꼽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라

틴어 교육이었고, 이후 교육을 위해선 외국

으로 가야만 했다 이런 학교가 지역 교육

을 독점하였으나 비합법적인 사학도 성행

해 정식 교사들의 생활고가 말이 아니었다.

물질적이며 분해된 제네바 시에서 교육이

란 높이 평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저

임금의 노동이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활동을 개시하였을

때 그는 목회적 내조의 철저한 결여뿐 아

니라 시민들의 처참한 무지와 직면해야 했

다 기독교 교리적 지식이 생동적이고 효과

적인 신앙과 생활에 근본임을 전제한 칼빈

은 교육이 제네바에 가장 필요한 요소임을 는 편안히 정착한 칼빈이 거절하였고, 코르

확신하였다. 디의 자리에는 후일 칼빈의 교회 행정을

이를 위해 한편으로는 건전한 교육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카스텔리오CCastζ버0)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먹일 수 있는 잘 교 들어서 있었다 그리하여 리베대학은 이후

육받은 목회A}들이 있어야만 했고, 또 한편 18년동안 계속 융성하게 된다.

으로 효과적인 목회를 위해서는 그것을 잘 칼빈의 건설적 제안에도 불구, 제네바의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교육받은 사람 정치적 상황은 너무 어려워서 그의 교육

들이 있어야만 했다. 계획을 속히 추진원 일에 지장이 있었다.

후자를 위해 칼빈은 먼저 요리문답을 작 특히 1541년부터 1556년까지 지유파들CLi-

성하였고 다음으로 학문적 교육의 문제, 즉 bcrtincs) , 천주교, 정치가들로부터 개학교회

제네바를 오는 수많은 세대를 위한 개혁 를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투쟁 때문에 학교

사조의 위대한 고장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 개선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며, 1550

하게 된다. 년 잠정적인 재조직이 있어 여러 사럽 초

이런 목적을 위해 1536년 5월 21일 제네 등학교의 수를 4개로 줄여 목사들의 감독

바 시민들에게 새로운 시 헌법을 제안하였 하에 둔일 외 다른 괄목할 만한 결과는 없

을 때, 칼빈은 모든 아이들이 다니며, 빈한 었다 더 많은 것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평

아이틀은 공짜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위한 화로운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계획도 첨부하였다. 리베대학CCollegε dc la 행동 개시를 위한 마지막 촉진제의 역할

Rive)은 이 제안의 결과였고 교회적 정치적 을 한 것은 1557년 칼빈이 쉬트라스북을

소용돌이에서 몰락했던 공립학교의 자리를 방문함으로 일어난 것 같다 그때 즈음 쉬

차지하게 되었다 초대 교장은 안토니옐 소 트라스북은 루터파의 영향아래 있었기 때

니에 CAntonier Saunier) 이었고 이듬해 1537 문에 시 행정적인 면에서 칼빈을 반기진

년에는 칼빈의 옛 스승인 코르디 CMathurin 않았다. 하지만 쉬툼(]ohn Sturm)과 시교육

Cordier)가 2대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가들의 태도는 달랐으며 이로 인해 비록

1538년 일반 교육 체계를 위한 마지막 공개석상의 발언은 금지되었지만 칼빈은

계획이 상정되었는데 이는 처음에 독서, 작 대학교의 환대를 받으며 장시간 이전 동료

문, 산수, 문법, 종교에 집중하고, 마지막 매 들과 함께 교육 문제의 토의로 소일했음이

일 칼빈의 신약과 파렐CG띠llaume Farel) 의 틀림 없었다

구약 강의로 끝맺는 것이었다 비록 이것이 많은 학자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쉬트라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을찌라도 확실히 올 스북의 교육 기관 체제의 확장과 발전이

바른 방향에로의 첫걸음인 것은 분명했다 칼빈으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제네바대학교

1538년 칼빈, 파렐, 코르디가 제네바에서 설립이라는 결심을 하게 하였다고 보고 있

추방 당함으로 교육 체제가 입은 심한 충 다.

격으로 대학이 거의 사장될뻔 하였으나 15

41년 쉬트라스북으로부터 칼빈의 귀환으로 아카데미의 설립

재생되며 보다 구체적인 교육 명제들과 함

께 새로운 교회법이 반포되었다. 이 구체적 제네바로 돌아온 칼빈은 곧 성곽 밖 호

교육 명제는 쉬트라스북에 머물 동안 부서 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새로운 대학 건

CBucer)와 쉬툼(Sturm)의 영향에 기인한 물을 위한 토지를 매입한 후 건축과 교수

것임은 자명한 것이다 이 교회법에 의하면 들을 위한 재정 확보에 착수했으나 시당국

목회자 다음가는 중요한 인물로 신학을 가 자들이 빈곤한 상황을 지적하자 개인적 보

르치는 책임을 맡은 “교수CDoctors)"를 들 조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시민을 향한

고 있었다 촬빈은 초등 및 고등 교육을 위 칼빈의 호소는 성공적이어서 어느 정도 건

한 적절한 교사의 임명과 건물 건축을 제 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재정이 확보되

창했고 목사들이 뽑고 감독하는 교사 외에 었다. 마지막 남은 문제는 항상 골치거리인

그 누구도 제네바 시에서 가르치는 것을 교수들을 선정하는 일이었는데 고급 교육

금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시 지도자 을 위한 자격을 갖춘 교수 확보가 어려워

들의 완전한 지지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베른(Berne)의 쪼왕

그들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칼빈 생각과 글리파들은 그들과 루잔CLausanne)의 아카

일치했으며 심지어 코르디를 다시 불러오 데미 교수들 사이에 대립으로 인한 충돌

는 일까지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였으나 이 유발로 칼빈을 돕게 되는데, 이 때문에 베

10

Page 11: 개혁고려 1994.03

자의 영도하에 대부분의 교수들은 사임하

게 되고 제네바로 임용되었다 마침내 1559

년 3월 16일 제네바 아카데미는 교장으로

베자(Theodore Beza) , 히브리어 교수로 케

발리어 CAntoine Chεvalier) , 헬라어 교수로

베로드CFrancois Beraud) , 그리고 인문학 교

수로 타고트(]ean Tagaut)를 중심으로 그

구체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해 6월 5일 시 평의회원들, 목사, 아카

데미 교수, 그리고 약 600명의 학생들이 운

집한 가운데 성베드로교회에서 역사적인

예식과 함께 제네바 아카데미는 문을 열게

된다. 단상에 오른 칼빈은 그의 주도하에

아카데미를 공포한 후 기도로 인도하였고

이어 시의회 서기는 “제네바 아카데미 학

칙 (Thε Laws of the Genevan Academy)" 과

불구하고 칼빈의 갈망과 계획과 경험을 고

려할때 “저명한 요한 칼빈(speaable lehan

Calvin) "에 의해 작성되었음은 의심할 여지

가없는것이다

학교 조직의 기본적 원리는 그것을 양분

함에 있었다 첫째는 “사립학교Cschola pri ­

vata) "로 16세까지의 아이들을 가르쳤고 둘

째로 “공립학교Cschola publica) " 인데 대학

과정의 교육을 맡았다 이 두번째 고등 과

정에서 초기에는 신학과 인문학만 개설했

지만 머지않아 법학과 의학이 첨가될 것이

었다 어쨌던 제네바의 계획은 쉬트라스북

보다 낳았는데 이유는 “사립학교”에서의

분반 개념이 한 반에서 다른 반으로 올라

가는 단계를 조직적으로 조정함으로 논리

적 규모를 갖게 된 때문이었다

얻흔흥풍훌훌늘흑:::: ;,y '_,'-:"'-_;:. .:...:;_ ,~ ~한’=二 1909년 캘빈 탄생 4∞주년 때 증교개혁 국림 기념관의 초석이 세워졌다 99미터 높이의 기념관 중심부에는 1559년 제네바에 함께 있었던 4명의 증괴개혁자 파텔, 캘빈, 베자, 녹스의 조상이 세워져 있다

“교수들이 서명해야 할 신앙고백(Thc Co­

nfession of Faith that the Scholars will have ro

make and subscribeY을 낭독했으며, 이어

아카데미의 초대 학장( recror)으로 부임한

칼빈익 동지이자 후계자인 베자가 주요 연

설을 발표하게 된다 베자는 그의 식사에서

근본적인 교육관을 피 력하였다

그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이며 그들의 의무는 사명 감당을 위한 철

저한 군사가 되는데 있다고 역설한다 이는

베자가 인도하는 동안 아카데미의 정신이

되었다

아마도 이 개회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카데미의 학칙과 규칙의 낭송에 있었는

데, 이는 몇몇 학자듬의 회의적 노력에도

- 칼빈이 주장한 또다른 한가지는 아카데

미를 교회의 통치아래 둔다는 것이었다 즉,

모든 교사들은 교회의 엄격한 관할 아래

두며, 목사에 의해 임명되고, 제네바의 신

앙고백서에 서영하며, 항시 교회 지도자들

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행정당국은 이 모두를 다 받아들이지 않

았고 그 결과로 교사 후보는 목사들에 의해

피택되고 시의회 의원들의 임명으로 채용

하게되었다

학생들의 신앙과 생활은 자세히 살펴졌

는데 물론 현대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런

규제는 섬하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그

것이 16세기 생활 OJ:상의 한 부분이라는

점과 중세 학생들의 퇴폐와 폭통적 일례들

11

을 고려하건데 이런 규제가 너무 거친 것

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통치의 문제와 더불어 또 한가지 중요한

과제는 행정이었다. 교회와 시 지도자틀의

관할 아래 아카데미는 꽤 정돈된 “명령 체

계”를 갖고 있었다. 전체 조직을 대표해 임

영된 2년 임기의 하강Cthe Rector) 이 있었

는데 아카데미를 마찰없이 잘 운영하고,

“사립학교” 학생들을 입학시키며, 학위를

수여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대학CCollege) " 혹은 “사립학교(schola

privata) "를 맡으며 동시에 학장을 위한 보

조의 역할로 교수들 중 한 사람이 “교장

(the princip꾀)"이 되었는데 그는 그 부서를

잘 이끌어 나갈 의무를 가졌다. 교장의 지

도 아래 대학의 각 학년대로 “교사(teachers,

regents)"가 있어 이들은 자신들이 맡은 교

과를 달성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학장(the

Rεaor) 의 직속하에 대학교(universiry ) 수준

에 도달한 학생을 지도할 히브리어, 헬라어,

인문학, 신학 교수Cprofessors)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확한 규칙적 구분으로 칼빈은 쉽

게 운영되고 이해될 수 있는 교육 체제를

확립한 초기 교육가들 중의 한 사람이 된

사립학교(scholar privata)는 5월 l일 개강

해서 포도수확기 3주 동안의 방학을 제외

한 나머지 127R월간 계속되엇다. 특별히 여

름에는 아침 6시 그리고 겨울엔 아침 7시에

수업을 시작하여 아침 식사 시간 30분과

점심 30분에서 2시간을 제외한 오후 4시까

지의 교과 과정 진행은 오늘 우리가 보기

에는 놀랄만한 강행군이 아닐 수 없다. 매

학과목의 종료 시간 마다 기도가 드려졌으

며 십계명을 낭송하였고 학생들이 지켜야

할 의무가훈계되었다.

이 사립 학교(schola privata) 혹은 대 학

(collεgε)은 7학년 까지 나누어 졌고 7학년

이 가장 저학년이었다. 매년 4월말 학생들

의 수준에 따라 각 학년대로 제목을 주어

불어로 작문하게 했고 그것을 다시 라틴어

로 번역하게 했는데, 인간의 원죄를 확실히

믿었던 칼빈은 담당 교사 아닌 선생들로

하여금 그 시험을 감독하게 하였다. 이 논

술틀이 학장과 교수들에 의해 교정된 후

학생들은 숭반하게 되었고, 그 중 각 학년

마다 가장 탁월한 학생 둘씩을 뽑아 상장을

수여했다. 이런 것은 공동생활의 형제단

( the Brεthren of thε Comrnon Life) 이 나 쉬

툼(Srurm) 의 학교에서 시행하던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간 형태였다

Page 12: 개혁고려 1994.03

아카데미 (the Academy) 혹은 대학교

(University )를 운영하던 방법은 대학(col­

lege)과는 달랐다 예를 들어 정해진 교실에

서 진행되는 정해진 시간의 교과목 체제가

없었고, 대신 교수들이 강의하며 누구나 참

석할 수 있는 매주 27시간(신학 3시간, 히

브리어과 구약 8시간, 윤리학 3시간, 헬라

어 시간 및 강연 5시간, 물리학과 수학 3시

간, 수사학과 논볍 5시간)의 공개 강좌가 。1 <>l rl λAλA '-T

각 강의는 l시간 동안 아침과 오후 정해

진 시간에 진행되었다. 이것 또한 당시 대

부분의 다른 학교에 비해 더 자세히 규정된

면이라하겠다.

물론 이 양분된 체 계 (college와 uruvεrsity )

가 서로 연결되어 있긴 했으나 학사 행정적

변에서 칼빈은 상당히 달리 운영되기를 바

랬다 그래서 대학교(univεrsiry) 의 학생들

에겐 거의 규제가 없었고 등록하는 일, 신

앙 고백에 사인하는 일, 그리고 강의만 참

석하면 되었다 그 이후의 일들은 학생 개

인의 지유에 맡겨 스스로 혹은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였다 하지만 사립학교(scholar

privata) 에서의 취급은 사뭇 달랐다 자세한

지도가 있었으며 교사들의 능력과 학생들

의 연령에 따라 교사 방법이나 과목을 조

절하는 일에 상당한 중점을 두었다

선택된 교과서를 자세히 연구, 설명송}는

일이 그당시 학습의 주종이었고 이와아울

러 학생들은 연속적인 암기와 작문들을 지

어내어야 했다 이들은 가능한한 많은 량의

지식과 최대의 준비를 갖추어 졸업하여 대

학교( uni versi ty ) 에 진학할 수 있도록 인도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이렇게 잘 규범된 훈련은

대학교에서의 자유스러운 생활을 더 소중

히 누리도록 하는 근거였다

이제 학과목을 살펴보겠다 초등학교인

사럽학교(scholar privata 또는 collεge)에서

는 이해력과 표현력에 강조점을 두었다 당

시 다른 학교와는 달리 제네바 아카데미에

서는 고전어 못지 않게 라틴어와 불어의

완벽한 지식을 추구했다 학생들이 처음 3

년 동안 이 라틴어와 불어를 어느 정도 통

달하면 11세-12세 즈음에 문법, 화볍, 그

리고 작법에 치중하여 헬라어를 가르쳤다.

동시에 앵무새처럼 반복만하는 것을지양

하기 위해 교사들은 세 언어(라틴어, 붙어,

헬라어)의 문법과 활용법을 계속 비교하면

서 가르쳤는데 이러므로 학생들은 배우는

내용을스르로사고하게 되었다. 나아가학

그러나 진정한 신지식은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성렁에 의해 열려진 눈으로 보아야 했다.

생들의 논리적 사고를 자극시키기 위해 마

지막 2년통안 기본 논볍을 가르쳤고 작문

과 월 2회의 공식연설로 실습시켰다.

이런 훈련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한 교과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

겠다. 가장 저학년인 7학년에서는 발음, 철

자볍, 그리고 읽기를 위해 라틴어와 불어로

된 요리문답( catechism)을 주로 사용했고 2

년 후에는 버질(Virgil) , 시세로(Cicer) , 혹

은 이소크라테스(Isocrate) 의 연설물 같은

고전을 사용했다 역사 공부는 리비 (Livy)

를 라틴어로 읽었고 시세로의 연설문틀을

통해 논법의 기초를 닦았다

정상적인 과정이라면 2년 후에 헬라 강

독을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세네카(Se

neca) , 크세노폰(Xenophoh) , 폴리비우스

(Polybius) , 헤로디안(Hζrodian) , 데모스테

네스(Demosthenes) , 호머 (Homεr)를 읽었

고 이와함께 누가복음과 서신서의 부분들

도 사용했다 비록 과학적, 수학적 훈련이

다소 결여된 인상을 줄지 모르겠지만 이런

교육을 성공적으로 받은 학생이라면 오늘

현대 교육의 취약점인 스스로 읽고 사고하

고, 표현하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게 될 것

입은자명한 것이다

어떤 의미로 공립학교(schola publica) 혹

대학교(university )는 초등학교였던 사립학

교(scholar privata) 의 연장이었다 여전히 고

전문학은 중시되었고 여기에 덧붙혀 교양

학과목(arts)과 신학을 배웠다-

문학과 신학은 각기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의 양태로 하나님을 아는 도구로 취급

되어 학생들로 하여금 이생에서 진정한 경

건으로 하나님을 성길 수 있도록 인도하였

다 이렇게 대학교는보다더 실제적인 동시

에 넓은 시야를 갖도록 인도하여 교회와

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을 양성시킨

것이다

교양과목 교수(professor of Ans) 는 주당

3시간씩 자연과학과수학을책임맡아가르

쳤는데, 비록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볼때 지

극히 적은 양이라고 느껴지겠지만, 칼빈 당

대에는충분한시간의 할애였다 당시 전문

적인 과학자나 기술자는 거의 알려지지 않

았고 따라서 자연과학은 사람들의 생각에

12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인데,

대다수의 중세 교육가들이 자연과학을 거

의 필요없는 것으로 취급한 것을 기억한다

면 그래도 많이 향상된 모습이라 하겠다.

자연은 어디에서나 만인에게 항상 자신

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옷자락이기 때문에

칼빈은 자연과학을 가르쳐하한다고 믿었고

또한 그는 창조론을 역설하면서 인간은 그

만드신 창조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을

연구, 관찰해야 할 것이라 하였다. 이런 칼

빈의 철학은 자연계를 단지 “존재의 사슬

(chain of being) "의 밑바닥에서 위로 “부동

의 동인(unmoved mover) ,’ , 즉 신(god)을

향한 연장으로 본 중세의 철학이나 아니면

일반적으로 범신론적이었던 르네상스의 자

연관과는 큰 차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칼빈에게 자연의 연구는 하나님의 말씀

에 비추어 수행되어야 할 하나님이 주신

책임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자연과학을 강의한 교양과목의

교수들은 오후에는 고급 수사학(advancεd

rheroric)을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교과서로, 시세로를

규범으로 교수들은 설교법과 법정 변호법

을 해설했는데 이점도 교육의 실제적 국면

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목사로서 필수 사항

인 설교와 변호사나 공무원으로서의 필수

요건인 변호(plead) 능력을 준비시킨 것이

고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유용성이 없을 것

같은 고급 수사학 과목이 칼빈과 그의 제

자들이 보기에는 가장 실천성이 있는 과목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히브라어 교수(Professor of Hεbrεw)는

오전에 유대 주석들을 참고하면서 선택한

구약을 강해했고 오후에는 히브라어 문법

을 가르쳤다 칼빈은 제네바가 히브리어 연

구의 요지가 되기를 바랬고, 그가 유대인

주석을 명확히 언급한 것은 당시 최근의

구약 연구를 모두 섭렵하려는 뚜렷한 의지

를보여주는것이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헬라어 교수(Pro­

fesser of Greek)는 신약을 취급하지 않았다

이미 헬라어를 습득한 학생들인 까닭에 신

약 강해는 신학 교수(Prof<εssor fo Theology)

가 맡았고 헬라어 교수들은 윤리에 관한

Page 13: 개혁고려 1994.03

i

캘빈이 쓴 「기독교 강요」 초판의 속표지

여러 책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플르타

크, 아니연 “몇 기독교 철학자(some Chris­

〔때 philosophεrs)”틀로 강독했다 오후는 헬

라 시인, 웅변가, 역사가 등 항상 “가장 순

수한 것을 골라(choosing thε purεSt)" 읽 었

다 이 또한 비기독교적 지식과 습득에 대

한 칼빈의 태도와 칼빈 속에 자리잡은 인

문주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립학교Cscholar publica)에서 월, 화, 수

요일 수업의 정점은 칼빈과 베자에 의해 일

주씩 거행된 신학강의로뽑히운다 이러므

로 칼빈과 베자는 월급과 직함없는 신학교

수로서의 의무를 강당했더 것이다, 그들의

책임은 성경 강해에 있었는데 바로 이것이

칼빈 성경 주석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적하

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런 강의에서도 칼

빈과 베자는 당시 최근의 주석 방법을 따

랐다는 점 이 다 즉, 로렌조 발라(rρrenzo

Valla)나 레페브러 (Lef<εbre) 같은 이의 문법

적 - 역사적 방법 (grammatico-hisrorical me­

thod)을 채용하여 성경 본문의 실제적 가

르침에 춧점을 마추었고 중세의 환상적인

소위 “영적 Cspiriru꾀)" 해석을 거부함으로

그들은 후세 진정한 개혁주의 해석학의 토

대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배운 것을잘간직하게 하기 위해 신

학에 둥록한 학생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

목사들의 지도 아래 한시간 성경을 해석해

야 했고, 매월 이 학생틀은 “호기심적이거

나, 궤변적이거나, 틀린 교리가 없는(neither

curious, nor sophistical nor con때ning false

doarine)" 신학 논문을 준비, 작성해 신학

교수에게 제출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토의

했고 최종적으로 교수가 토의 중 상정된

내용들을 정리, 답변하였다

지금까지의 제네바 교육 체제의 내용을

살펴보건데 기독교적인 학습은 대학교

(universi cy )에서만 강조된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신학적 문제와

토론이 사립 학교(scholar privata; college)

에서는 없었지만 종교적 수엽은 계속적으

로 있었다. 모든 초퉁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자기들이 사는 지역 교회에서 모이는 수요

예배와 두번의 주일 예배를 드려야 했다

학칙이 명하는바, “주일은 설교를 듣고

(hearing) , 묵상하며 (meditatin) , 새기는(re­

cording) 일로 지켜져야” 했다 또한 매 수

엽은 요리문답에 있는 기도문으로 시작했

고 주기도문, 신앙고백, 십계영을 암송함으

로 학교를 마쳤고 수요일 설교 후에는 한

시간동안시편을노래했다. 이렇게 학동들

은 가능한한 지속적인 기독신앙으로 OJ육

된것이다

바로 이 런 프로그램으로 칼빈은 하나님

의 진리로 훈련받기 위해 제네바로 온 이

들과 제네바 시민들을 교육시킬 계획이었

아카데미의원리들

대학(colleg)과 아카데미( universith) 의 교

육은 여러가지 변에서 전형적인 인문주의

의 것이었다 몇몇 후기 칼빈주의자 중에

칼빈이 인문주의와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

하기도 했지만 제네바 교육 프로그램을 볼

때 이들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양상을 발견

하게 된다. 고상한 표현력과 수사학에 치중

한 모습들이 그 일변인 것이고, 일례로 “고

학년 학칙 (The Laws of the First Class) 에

“모든 사고 활용은 가장 인위적인 시세로

의 웅변법에 따라 자세하고도 지속적으로

논증되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 나타난 칼빈의 주석과도 일치

하는데, 거기서 칼빈은 웅변술에 관해 말하

기를 “바울이 여기서 이런 웅변력을 완전

히 경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

한데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훌륭한 선

물로써 일종의 주요 목적 달성을 위해 인

간을 도울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또 한가지 학사과정의 인문주의적 성

격이라고 들 수 있는 것은 고전 문학에의

13

엄청난 치중이라 하겠고, 교과서로 사용된

유일한 당대의 작품이라연 라틴어와 불어

로 기록된 요리문답(catechism) 이었다. 칼빈

은 교부들의 글들에서 중단치 않고 표현력

과 언어에 관한한 비 기독적 대가들의 힘을

빌리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칼빈의 인문주의가 그의 프로그

램에 명백히 깔려 있다고 해서 칼빈이 인간

능력의 기원이나 근원을 해석하는 일에 까

지 인문주의자였다고 보는 것은 엄청난 오

산이다, 조금전 인용된 칼빈의 말에서 나타

나는 것 처럼 칼빈은 인간이 소유한 모든

예술(인문학)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았다

칼빈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이 런 모든 예

술(인문학)은 미신과 관계 없는 것으로 확

고한 배움의 길이며 정확한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인간 삶을 공통적으로 연결하기에

적합한 이유로 성령께서 주신 것이다 이로

부터 산출되고 경험되는 모든 일은 오로지

하나님께로 기인한 것이다”고 했다 그러

므로 이런 인문학과 과학과 같은 학문이

가치있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리스

도 안에서 조명되지 않을 땐 연기처럼 덧

없이 곡해되고 오용될 것 뿐이었는데 이유

는 만물이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

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칼빈은 “당나귀가 화음된 음악을 이해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온갖

명철로도 하나님의 오묘한 지식을 스스로

소유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다”고 토로하

였다 인간이 가진 온갖 재능은 인문주의적

자질이나 천재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

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기인한 것이라고 칼

빈은 거룹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발견된 과학과 예술

은인간본연의 창조성에 대한찬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다수의 인문주의자들은 천재적 인물이나

소수의 엘리트인들이 인간사회를 주도하는

선봉장이라는 태도를 가졌다 반대로 칼빈

은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분야를 통해 하

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하고 특별히 복음

사역에서 설득력(e!oquence) 있는 전파를 강

조했다 따라서 비기독인들로 부터 전수된

인문학과 과학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오

히려 적절하게 수용함으로 주권적 하나님

을 아는 참 지식으로 이끄는 본연의 목적

달성에 이바지할 것이었다

학습과 지식이 단지 자신을 만족시키거

나 선택된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것이 아

니라는 것은 칼빈의 총체적 교육관에 엄청

Page 14: 개혁고려 1994.03

난 영향을 미쳤다 가르치기 위해 배웠고 은 유일의 소망이 중생을 통해 하나님의 를 장악하였고, 이는 화란, 영국, 스코틀랜

가르치는 자는 허위나 기교없이 가장 무식 성경 계시를 붙잡는데 있다고 역설하였 드 프랑스를 통해 세계로 확장되었는데 오

한 사람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다. 늘까지도 서구문화의 근저부를 차지하고 사고가 분명하고 정확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웅직이지 않는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설교와 저서는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실수 한 가장 고상한 성경 지식도 유용지물이었 이와같은 제네바 아카데미의 칼빈으로 가 없어야 했다 그래서 16세기 저서들 가 고, 하나님이 움직여 신앙이 생길 때 모든 부터 현대 칼빈주의자들이 배울 수 있는 운데 오늘날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것 중 교훈 중 한가지로 오늘 칼빈주의의 부홍의 칼빈의 책들이 뽑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칼빈은 학생들로 하여금 계

속해서 직접적이고 명료한 해석과 강해 연

습을 주장했던 것이고 같은 이유로 라틴어

를배워 말할수있는능력뿐아니라모국

어인 불어를 아름답고 웅장하게 구사할 수

있는 학생들 배양에 총력하였던 것이다

칼빈은 스스로 본을 보여 원래 라틴어로

쓰여진 자신의 글들을 불어로 번역했고 아

카데미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이것을 잘 습

득,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방볍으로

칼빈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이

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원했던 것이

다.

그러나 진정한 신지식은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성령에 의해

열려진 눈으로 보아야 했다. 고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 목적은 성경 이해에 있었고1

과학어나, 철학, 또는 다른 모든 분야의 탐

구의 궁극적 목적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말씀의 차원 높은 이해에 있었다.

이 때문에 아카데미의 법칙과 영예는 다

른 것이 아닌 신구약 성경으로 받아드려졌

다. 고대 헬라나 로마 철학이나 고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 관한 인간의

지식을 확대하였을찌라도 결코 그것틀이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진정 구원 얻는 길로 인도하지는 못

함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서만 전 우주의 타당한 이해로 이르는

참 지혜와 지식을 갖는다고 확신했다.

나아가 수사학이나 웅변술의 좋은 이해

도성경이 준다고믿었는데 이를통해 성령

자신의 웅장하심이 지식인충 뿐 아니라 보

통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 삼위일

체 하나님의 영광의 일연을 보여준다고 믿

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입장은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

설립의 목적과 계획에 깔려있는 근원적 전

제를; 보여 준다. 죄 때문에 인간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참 신지식뿐 아냐라 그가 살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도 바로 알 수 없

다는 확고한 기초아래 칼빈은 인간에게 남

킬빈의 좌우영은 ‘주여, 당신을 향해 저의 심장을 바치나이다 .. 였다,

것이 “영원의 관점아래 Csub specie aerernira­

ris)"' 지배될 것이었다 칼빈은 이런 이유로

대학교의 학생들로 하여금 신앙고백서에

서명하도록 한 것 같다 절대로 참 지식을

소유하지 못할 불신앙자를 가르칠 분명한

동기가 없었던 것인데, 이유는 거듭 강조된

것 처럼 칼번에게 있어서 참지식이란 하나

님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제네바대 학칙 COrdre du Col­

lege de Geneve) ff 에 나타난 칼빈의 교육관

을 요약해 보건데, 그가 마음에 둔 근원적

목표는 기독교적 섬김을 위한 하나님과 그

행하신 일을 아는데 있었다 인간은 두가지

매체로 이 지식을 습득하는데 그 하나는

자연과학적 고전으로 대표되는 자연과 역

사였고 이는 그 다른 하나인 신구약 성경

없이는 진정하게 습득될 수 없는 것이었다

성령의 조명으로 비추어진 성경 이해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확실한 관점을 갖게 했다

이런 지식으로 하나님을 계속 성김으로 삶

에 있어 인간의 최고 목적인 창조자, 섭리

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

었다

제네바에 매혹한 많은 학생들을 상기할

때 칼빈의 작업은 지극히 성공적이었다 칼

빈과 그의 후계자들 밑에서 개혁주의 원리

를 배우기 위해 전 서구 유럽에서 사람들이

제네바로 몰려 들었다 여기서 졸업한 이들

은 확실한 정신으로 또 다른 이들을 가르

쳤고 그 결과 칼빈주의는 북서유럽의 사조

14

재현은 현대 사조와 싸울 수 있는 확고한

교육 원리에 우리 입장을 기초함으로만 가

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 철학, 과학, 그

리고 역사의 이슈들에서 뒷걸음치는 것은

칼빈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칼빈

주의자는 칼빈이 행한 것처럼 비기독 세계

의 사조와 발견을 검토1 확인함으로 “영원

의 관점 아래 Csub spcie aererniraris)" 재해석

하여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사용해야할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이슈들에서 뒷걸음치는

것은 칼빈주의자의 태도가 야니다 오히려

칼빈주의자는 칼빈이 행한 것처럼 비기독

세계의 사조와 발견을 검토, 확인함으로

.. 영원의 관점 아래 Csub specie aererniraris)"

재해석하여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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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5: 개혁고려 1994.03

률활표궐l

기독교문화와 전통문화 샤 마니즘적인 미신행위가 전통예술이

I 란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 사회에는 수입 개방

과 함께 무분별하게 무수히 들어오는 외국

문화의 물결속에서 우리것에 대한 위기의

식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것은

좋은 것이야, 우리것을 지키자”는 캠페인

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 우리것을 지키À}는 운동은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로 농산물의 시장개방과 함

께 신토불이 (身土不二) 정신으로 “농촌을

살리자”는 우리 농산물보호 캠페인과 겹쳐

가히 우리것의 전성시대( ? )가 도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우리것은 무엇이든 좋은 것인가?

한국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전통문화, 전통예술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이러한 전통문화와 예술이 오늘의 우리

에게 주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과연 이러한 한국적인 전통문화와 예술

과 우리 기독교문화와의 관계는 어떠한

가?

기독교문화란 무엇인가 ? 전통문화, 전통예술에 대한 젊은 사람들

은 호기심이 대단한 만큼 그 행위의 본질에

대한탐구는 없다

한가지 예를 들면 우리의 전통예술, 민속

예술이라 하는 무당굿을 틀 수 있겠다. 무

당굿이 과학문명시대에 있어서 샤마니즘적

인 미신 행위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

리민족의 고유한 문화 유산으로 강조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전통예술이라

는 미영하에 무속신앙인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는가 하면 그들의 신앙 행위를 공공

연하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는 실정

이다.

한국적인 것이라해서, 전통예술, 민속이

라 해서 모두가 계승되고 발전되어서는 아

니된다. 인간생활에 해악을 가져다 주는 전

통(민속)은 전통이 아니며 예술은 더욱 아

니다.

오늘날 우리의 πr나 신문들은 경쟁적으

로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샤마니즘적인 「무

속신앙」의 행위를 「한국의 미」니 「전통예

술」이니 하는 이름으로 미신행위를 조장하

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요즘 TV의 중요한 시간대에 펼

쳐지는 프로들을 살펴보면, 역술인(점장

이)들을 모아 놓고 그틀의 행위를 미화시

키는가 하면 일간신문의 「오늘의 운세, 컴

퓨터점궤, 전화운세」 동 비성경적이고 비

신앙적인 미신행위를 매스컴이 조장하고

있는것이다

입시시즌, 입사시험, 결혼시즌, 선거철이

되면 지식과 교양에 관계없이 정치는 사람

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크리스찬들도 상당수가 이

행렬에 끼어 있을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에 있어서 「고

사」라 이름하여 행하는 미신행위 역시 무

시할수가없다.

이러한 미신적 행위가 21세기를 바라보

는 오늘의 우리사회에 팽배한 원인은 어디

에 있느가?

우리 한국교회는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

해서 책임은 없는가?

한국교회 선교 100년 이래 교회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로서, 교육문화적

인 차원에서 우리 사회를 일깨우는데 일조

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서구문화의 수용에

있어서는 일방적이었지만 그것을 우리의

정서와 접목시키는 역할에는 관심을 두지

아니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의 기독교문화를 창

조해 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기

독교문화는 좋은 의미에서 바로 서양문화

라해야 겠다.

20세기 말의 서구의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쇄퇴일로에 들어서

자 서양문화는 퇴폐문화를 양산하기 시작

하여 「뉴에이지J , 히피, 마약범죄, 모더니

즘이니 하면서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전세

계로 퍼뜨려 이제는 서양문화는 퇴폐문화

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문화란 무엇인가 ? 초기의 서양 문화는 어떠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코람

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의 생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이다. 바꾸어 말하변 청교

도정신이 바로 기독교문화이자 서양문화의

원천인 것이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성경을 중심하고 교

15

회를 중심하여 일구어가는 생활, 그것이 초

기의 경건한 청교도들의 문화였다. 그러한

문화가 오늘의 미국, 오늘의 유럽을 성장시

키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오늘의 미국, 오늘의 유럽에서 우리는 이

청교도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가 ?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 청교도 문화를 양산시키며

전 세계를 퇴폐문화로 오염시켜 나가고 있

다면 잘못 생각한 것일까 ? 한국 교회에 대한 세계 기독교가 기대하

는 바가 크다. 양적인 면만 아니라 질적인

면, 정신적인 변에서도 그러하다. 바꾸어

말하연 한국교회가 이젠 세계교회를 선도

해갈 문화 즉, 새로운 기독교문화를 창조

해서 보급시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엄청난 사명을 감당해야 할 한국

교회가 한국사회의 샤마니즘적인 무속신앙

의 확산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바른 기독교문화의 확산만이 미신

적인 사회 풍토를 예방할 수 있다.

바른 기독교문화란 무엇인가? 엄밀히

말해서 우리 한국교회에는 교회문화는 있

었지만 기독교문화는 존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교회안에서

교인들과의 관계에만 머물렀지 사회에 까

지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다.

만약에 우리의 신앙생활 영역이 일반사

회까지 미친다면 1천만이 넘는 우리 기독

교인수를 감안하면 우리 사회는 벌써 변화

가 되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교회문화의

범주안에서 만족해 하는 한국교회였던 것

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한국교회에 기회

를 주신다 바른 기독교문화를 창조해서 이

땅위의 샤마니즘적인 사회 풍조를 몰아내

고 하나님의 나라와그 의를 이 땅위에 세

우는 사회를 건설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우리의 교회문화가 기독교문화로 승화

되어지고교인들이 기독교문화에 정착되어

져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터에

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이 땅위에 샤마니

즘적인 미신행위는’ 발을 붙일 수 없게 된

다.

한국적인 기독교문화란 기독교적인 한

국사회 기독교적인 국가, 기독교적인 전통

문화, 기독교적인 전통예술, 기독교적인 전

통음악 동에서 연구되어지고 개발되어져야

할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전생활이 바로

기독교문화이다.

Page 16: 개혁고려 1994.03

교 단 소 식

개강예배 대 흐

94’ 입학 계단공과 사용설명회 개최 교단총회 교육부 주관으로

고려 신학교 94학년도 입학 및 개강예

배가 3월 8일(화) 오전 11시에 거행되었다

고려 신학교 신 · 대학부, 여자 신학원

공동으로 입학 및 개강에배를 드리는데, 약

3개월간 맡겨진 교회에서 사역을 하던 신

학생들은 다시금 배우는자로서 학문의 터

로 돌아오는 것이다. 특히 올해의 신입생

가운데 장로가 두명, 안수 집사가 한명 있

어서 경건의 훈련이 더욱 잘 이루어지리라

고 예상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호에 게재〉

교단 교육이념 및 목적에 따른 공과내용은

이현상 목사가 각각 맡아 강사로 수고하였

다 〈계단공과의 편성내용은 아래 참조〉

교단 주일학교용 어린이 계단공과의 발

간이 완료됨에 따라 교단 총회 교육부에서

는각교회 주일학교부장및 교사들을대

상으로 계단공과 사용 설명회를 개최하였

80여명의 각 교회 주일학교 부장 및 담

당교역자,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

월 15일 저녁 7시30분에 여의도 경향교회

서 개최된 설명회는 1부 예배와 2부 설명회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1부예배 설교는 총회

교육부장인 강구원 목사, 기도에 박무일 목

사성경봉독에 이혁도목사가맡아수고하

였으며 2부 설명회는 계단공과의 편성에

대한 설명과 주요 내용을 김길곤 목사가,

| 교단 계단공과의 편성과 내용 |

(2) 학습목표 지 · 정·의

(3) 학습준비-본문 배경 및 이해,

교사연구

(4) 학습내용-이끄는 말, 성경말씀,

적용,평가

5) 학습내용의 특정

(1)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

는가

(2) 구속사적 전개 방법 : 죄인-하

나님의 사랑-그리스도-구원

-성도의 삶

(3) 자기 삶에의 적용-임마누엘 신

앙의삶

4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1) 교육 목표를 필히 주지할 것

2) 학기 전체 목표(방향)을 유념할 것

3) 단원 전체 목표(방향)을 유념할 것

4) 그 단원 목표에 따라 본과를 가르칠

켜 <

5) 반드시 성경을 몇 번 읽을 것

6) 학습한 후 반드시 「믿음」 이 일어나게

할것

신 6: 2 ; 1) 여호와 하나님 신앙(경

외)의 삶

2) 하나님 말씀(계명) 중

심의삶

3)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

하는 삶(딩후 3: 17)

3. 교단 계E당과의 편성 및 내용 1) 학제에 따른 교채-단계별 교재

@ 유치부 1.2 @ 유년부 1. 2. 3 @

초등부 1. 2. 3

2) 교재의 사상(기준)-

개혁주의 신학내용인 7영리와성도의

A~ i!Il

3) 교재의 편성-

(1) 8단계 - 계시, 하나님, 인간, 그리

스도성령, 교회, 종말,

생활

(2) 4학기 12단원

1. 성경과 하나님

2. 죄인과 그리스도

3. 성령과 교회

4. 종말의 성도의 삶

4) 내용의 구성-

( 1) 읽을 말씀과 외울 말씀

1 . 교육사상의 중요성

1)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 2) 인간사상 및 상황본위냐, 성경본위

냐?

3) 인간(자신)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

간의 교육이냐,

4) 오직 성 경 , 오직 은혜,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 !

2. 개혁주의교육사상

1) 교육의 근거-

하나님의 명령(신 6: 1-3) , 그리스

도의 명령(마 28: 20) , 성령의 사역

(요 14 : 26, 16 : 13-15)

2) 교육사상-하나님 주권 사상(롬 11

: 36)

3) 교육전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성

경 전체의 사건), 믿음으로 구원

4) 교육원리 ..

하나님의 말씀(신 6: 1)- 명령과 규

례와법도

5) 교육목표-

하나님께 영광 : 바른 신앙, 바른생

10

Page 17: 개혁고려 1994.03

고려 신학교 제48회 졸업식이 지난 2월

24일(목) 오후 2시에 문산 아카데미 캠퍼

스에서 교수, 졸업생, 동문, 그리고 많은 성

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은혜롭게 거행되엇

다.

이날 졸업식은 교장 석원태 박사의 사회

로진행되었는데, 이사조석연목사의 기도,

교단총무 정성섭 목사의 성경봉독, 경향교

회 성가대의 찬양이 있었고 설교는 합동

신학교 교장, 윤영탁 박사가 “요셉의 하나

님"(창 39: 1-6) 이라는 제목으로 요셉과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꿈과 지혜를 갖고

사명을 잘 감당할 것을 설교하였다. 또한

교무과장 김장진 교수의 학사보고, 졸업증

서 및 각종 수상과 민한기 집사의 축가와

교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므로 졸업식을

마쳤다.

이날 석원태 목사는 졸업생들에게 훈사

를말씀하셨는데,

교단소식 I

제48회 고려 신학교

1. 그리스도인 의식, 예수쟁이 의식, 근원

의식을가져라.

2. 종의 의식, 예수노예 의식을 갖고 오직

주인의 영광만이 종이 종된 가치요, 목적임

을깨달아라.

3. 증인 의식을 갖고 바로, 멀리, 확실히,

세밀하게, 주인의 의향대로만 보고, 듣고,

보고 들은 사실만 말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죠:.O~ 人| 틀르 노::I ï

이는 졸업을 하는 모든 고려 신학교 신 올해의 졸업생은 총 62명으로,

학생으로서의 자격과 사명을 다시금 일깨 • 신학원(M.Div 과정)34명- 신학과 25

워 주신 말씀으로 혼탁한 이 사회에서 세 명, 선교학과 6명, 목회학과 3명

상과 타협하지 않고, 가르침을 받은대로 오 • 여자 신학원 11명 성서 신학과 11명

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의 • 대학부(전공과정) 17명- 기독교 교육

개혁주의 사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학과 8명, 기독교 철학과 6명, 영어영문

사역자가 될 것을 당부한 것이다. 학과 3명 등이 졸업하였다

저148회 고려신학교 졸업생명단

• 신 학 원 (M. Div 과정) • 여자신학원 흐t 고} No. -ð! 염 생년월일 소속교회 노 효l 흐i 고} N。 성 'i!"i 생년월일 소속교호l 비 고 신학과 l 깅일환 64. 10. 27 경 ",.。ε 서울남 성서신학과 1 구자숙 69‘ 12. 1 본 향

2 김영철 61. 8. 7 과 천 .,. 2 김미회 60. 6.25 포도원 3 김관수 56. 12. 3 산 ~ 경 인 3 깅혜숙 64. 11. 23 여l 일 4 강광열 57. 6.22 연f 석 서울북 4 이영숙 7 1. 5. 29 선 일 5 류순호 63. 11. 6 가화동광 끼〉 5 안정회 55. 5. 9 대전통광 6 박광서 65. 6. 14 석남제일 경 인 1 6 조현숙 68. 4. 9 경 향 7 이명수 65. 9. 27 과천문원 서울납 7 정귀례 57. 5. 17 갈보리 8 염규갑 65. 7. 20 선 일 정 인 8 강부자 45. 7. 6 은 파 9 이태웅 53. 6 . 20 석남제일 끼〉 9 이정숙 69. 8. 17 서머나 10 최형철 57. 8. 25 의 성 4ν 10 심은숙 56‘ 8. 30 충 소1 11 김동진 63. 2.20 부천성문 .,.

11 김영숙 49. 5. 30 석납제일 12 김회중 54. 6.25 경 Õ"J: 서울냥 l

13 박 수 길 42. 1. 1 온누리 * 14 임방통 49. 3. 1 갈보리 서울냥 }

15 임 경 ;<} 56. 12. 19 경 ~ .,.

16 정다은 45. 6. 8 온누리 * • 대 학부(전공과정) 17 정양오 54. 12. 16 생 ? 경 인 학r 고} N。 λð! 'i!"i 생년월일 소속교회 비 고

18 천정자 52.10‘ 27 부천성문 ι, 기독교 1 김진갑 66. 2. 19 창원시민

19 배 문 회 62. 2.28 성 천 서울냥 교육학과 2 박신영 71. 11. 15 동 서

20 신장현 64. 3. 1 은 혜 .,. 3 。1 경 숙 71. 11. 5 석냥제일

21 문삼렬 52.10‘ 18 부산성광 4‘ 4 。1 정 화 70. 10. 20 계수제일

22 이증채 49. 5. 2 경 향 ι〉 5 김수옥 70. 9.26 경 향

23 현회경 58. 4. 8 경 향 .,. 6 김볍렬 62. 8.23 석남제일

24 김일영 66. 10.23 납 -:-!- 서울북 7 。1 영 은 64. 4. 6 부천성문

25 배 숭구 62. 11. 18 석남제일 경 인 8 김진영 71. 11. 16 연r λ6ì

선교학과 1 문승주 64. 1. 14 동 서 서울북 기독교 1 노충션 65. 3 . 7 수 향

2 안숭복 6 1. 7. 22 경향(.!:!라질) 서올냥 철학과 2 신동훈 71. 12. 15 청천제일

3 임재성 64. 8. 12 부천성문 경 인 3 。1 광우 71. 8 . 13 연f 석

4 이창재 67. 2. 4 서신제일 호 남 4 김우섭 62. 12. 7 의 성

5 윤 상갑 67. 2. 5 갈보리 서울남 5 김종민 65. 7. 4 석냥제일

6 강은미 63. 4. 12 λ。} 냥 * 6 김종오 64. 1. 5 연f 석

목회학과 l 박성옥 54. 2.20 엄마누엘 * 영어영문 1 윤효용 63. 1. 22 부 닫1

2 변영환 64. 10. 17 전주창대 호 남 학 과← 2 김아영 71. 1. 29 가좌동광

3 슨명회 55. 5. 23 흰 돌 * 3 이홍수 70.10‘ 4 회 현

17

Page 18: 개혁고려 1994.03

;교끼단끼소 식 l

고려 신학교 졸업생들의 사은회가 지난

2월 22일 라마다 올림피아 호텔에서 가졌

다.

94학년도 신 · 대학부, 성서 신학과의 고

제48호| 고려신학교 졸업 사은회

하였다.

이날, 교장이신 석원태 목사님의 졸업생

을 향한 마지막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를

생각할 때, 늘 생각나는 사람, 감사가 일어

려신학교 졸업생들은 개혁주의 학문과 경 삐톨l톨.,흥r.홉훌l'~"흩훌i삐랬힐빼i 나는 사랑 보고싶은 사람으로 기억되듯이

건훈련을 쌓도록 지도해 주시고 격려하며 F44UP헬를툴헬훌훌짧훌뺑멀!II!홉톨웰I빼 모든 졸업생들이 사제간에 이와같이 기억

뜨겁게 기도해 주신 모든 은사님들께 감사 I ." _----', κ J 되기를 당부하였다.

했다 • .. 활?1건센I기‘}'-輕鋼j 눈물의 사자, 불의 사자, 말씀의 사자이 I 부 순서로 예배를 드렸는데 사회는 신 석원태 교장 목사님을 기억하며 모든

김명철 전도사, 기도는 전재기 교수, 설교는 과 신학생들을 위하여 기도와 수고를 아끼 졸업생들은 사역지에서 열심히 개혁주의

석원태 교장, 축도는 김태융 교수가 담당 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도리는 사헌사가 복음을 전파하는 주님의 종이 될 것을 다

하였다 있었고 “스승의 은혜” 합창과졸업생이 교 짐했다.

II 부 순서로 감사의 시간을 가졌는데, 수님께 재학생이 졸업생에게 주는 선물증

졸업생 대표로 현희경 전도사의 교수님들 정의 시간을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갖기도

저13회 경인노회 제직 세미나

지난 2월 4일, 경인노회(노회장 : 홍록두

목사) 교육부 주최로 석남제일 교회당에서

제3회 경인노회 제직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사회 ; 유경희 목사(반석교

회), 기도 ; 천환 목사(예일교회) , 성경용

독 ; 최식 목사(동현교회)가 담당하였고,

설교는 “시온의 대로가 있는 청지기"(시

84: 1-7)라는 주제로 조석연 목사(석남

제일교회)가 증거야였다. 또한 봉헌기도에

김영제 목사(선일교회) , 축도에 이종래 목

사(성문교회)가 담당함으로 I 부 순서를

은혜롭게 마쳤다

II부 순서로는, 특강 1- “제직과 예배”

(홍록두 목사 ; 서머나 교회) , 특강 2-

“제직과 성도"(김준환 목사 ; 신동산 교

회) . 특강 3 -“제직과 재정관리"(신재철

목사 ; 초원교회)의 순서로 제직들의 사영

과 책임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러한 특강으

로 인하여 참석한 모든 제직자들은 다시금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

는가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또한 III부 순서로서 이문주 목사(인천

시민교회)의 사회로 전체 기도회를 가졌다.

경인노회 산하 지교회의 전 제직들 가운

데 이날 참석한 700 여명의 제직자들은-각

자의 직분 강당을 위하여, 개 교회를 위하

여, 경인노회와 교단을 위하여, 그리고 선

교사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늦은

밤까지 뜨겁게 기도하였다.

18

하「

시」

하「 발

시」 끼

L

41

형 쐐

년-저] 산

「L하「 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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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닙 원 94학년도 목사 및 선교사 양성과정인 고

려 신학교 신학원 입학전형이 지난 2월 1

일-2일에 있었다.

순교자의 교장이요, 경건자의 훈련소요,

세계 선교의 센타인 고려 신학교는 교역에

소명을 받은자로 수세후 3년이상 경과된

석사 및 학사학위 소지자를 신학과, 선교학

과로 나누어 선발하였으며, 전문대학 이상

의 학력 소지자로 사회적 경륜과 교회 봉사

경력이 있는자를 목회학과에서 선발하였

수험생들은 성경, 논문, 영어 세 과목의

시험을 치룬 후 아카데미 캠퍼스에서 1박

을 하며 개인적으로 묵상과 친교의 시간을

갖는등, 고려 신학교 아차데미 캠퍼스의 생

활을체험하였다.

시험을 치른 결과 33명의 신입생이 선발

되었는데 신학과 24명, 선교학과 5명 , 목회

학과 4명 등이다

Page 19: 개혁고려 1994.03

다二二二二二二二포표푼二二二二二二그l

94’ 고려 신학교 여자신학원 입학전형

94학년도 고려 신학교 여자 신학원은 지

난 3월 3일(목) 오전 9: 30에 입학 전형을

실시하였다.

여자 신학원은 교역에 소명올 받은 전문

대학 및 고졸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여자

세례교인ε로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교회에서 봉사하기를 원핸 여자만이 지

원자격을갖고 있다.

이날, 소명을 받은 성서신학과 지망생들

은 서울 캠퍼스에서 서류전형과 논술고사

그리고 엄격한 면접을 통하여 선발되었다.

올해부터 성서신학과는 새롭게 단장한

여교역자 양성과정으로써 주간으로 바뀌어

3년 과정을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으로 양

육받는다. 기독교 7영리의 교리 체계에 따

라 교육하며 경건과 학문의 조화로운 교육

과정을 통하여 전인적인 여교역자를 배출

하여 각 교회에서 봉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 신학원 성서학과를 졸업

하면, 졸업과 동시에 전도사의 자격이 주어

지게 된다.

그동안 여교역자가 부족하여 사역하기

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교회들에게 칼빈주

의 신앙과 신학으로 잘 훈련된 주의 군사

들을 배출하게 될 반가운 소식이라고 하겠

다.

저12회 유럽 목회자세미나 개최

스위스제네바에서

지난해 제1회 유럽목회자 세미나를 개최

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바 있는데 금년

에는 제2회로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4일

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80여명의 유럽 선

교사들이 참여하여 유럽선교에 관한 제반

문제점들을 토의하는 퉁 말씀과 기도와 토

의 퉁, 알찬 세미나로 진행되었다.

• 석원태목사(경향교회 당회장 총회선교부장l는 미주선교지역 순방 및 집회

인도차 지난 1월 20일 출국하여 안디옥 장로교회, 본향교회, 실로암교회동

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LA 크리스찬 비션대학에서 특강을, LA 복음방송

에서 재해를 당한 교민을 위한 방송대담프로에 출연하여 대담을 하는퉁

미주 선교지역 순방 사역을 마치고 지난 2월 17일 귀국했다 .

• 총회선교부 사무실 단장/여의도 우정빌딩에 소재한 총회선교부 사무실이

새롭게 단장하여 면모를 일신하였다. 금번 단장으로 총회 선교사들의 활

동자료 및 세계 각 지역의 선교자료들올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보급하게

되었다. 금번 사무실 단장에는 경향교회서 3백여 만원을 부담하였다 .

• 이 다니옐선교사(베트남 선교사) 인도차이나 지역에 파송되어 선교사역을

준비중인 이 선교사는 선교업무 협의와 가족을 동반하기 위해 지난 2월 18

일 귀국하여 3월 하순에 출국할 예정

• 고려신학교 33기 동기회는 동기회 단체로 성지순례 여행올 지난 2월 28일

출발 이스라엘, 로마퉁 주요 성지를 돌아볼 예정이다.

94년도 전국 여전도회연합회 임원진 94년도 전국 청년면려회 임원진

회 장 정경애(남 • 경향) 회 장 송기봉(남 노 회, 경향) 부 회 장 임현축(북· 서광) 부 호| 장 최한규(경인노회, 성문)

'l 김정례( 경인 • 부천성문) 'l 창원호(북 노 회‘ 경서) // 이 ocf순(호남 · 서신제일)

총 무 검석찬(남 노 회, 경향) // 성희축(경북 · 화목) 협동총무 서성훈(남 노 회, 경향) // 이영자(경남 · 창원시민) 김주씩 (북 노 회、 경서)

총 무 이계채(경인 · 석남제일) 'l 김도인( 경인노회, 의성) 협동총무 유금희(경인 • 성도) 서 기 김랑회(경인노회, 석남제일)

홍욱순(경인 • 부천성문) 부 서 기 이근행(남 노 회, 경향) 신순임(경북) 회록서기 장유경(경인노회, 성문) 장윤선(북 • 회현교회) 부획록서기 오혜란(북노회, 회현) 조순남(북) 회 계 윤종권(남 노 회, 경향) 주경님(남 · 경향) 부 회 계 박종필(남 노 회, 갈보리) 엄정자(남 • 언약)

임현숙B(호남 · 금산중앙)

조해종(경남 · 새중앙)

서 기 박경임(경인 · 석남제일)

부 서 기 김순조(북 · 일심)

회 계 박현순(남 · 경향)

부 회 계 박창애(북 · 가좌동광)

19

Page 20: 개혁고려 1994.03

20

Page 21: 개혁고려 1994.03

21

Page 22: 개혁고려 1994.03

l~흩톨뜰페.

교단선교사로 공산국가인 몽골에 파송된 H선교사가 2년간의 선교사역 보고롤 해와 본지에 게재합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몽골 H 선교사편지

총회 산하 목사님들, 성도님들께

주님의 복음사역을 위해 수고하시는 총

회산하 모든 목사님들과 교회와 성도님들

께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강이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공산권이란 이유 때문에 긴장· 불안속

에서 지냈던 지난 2년의 나날들 ...... 그러

나 항상 위로해 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던 하나님의 은혜들은 글로써 모

두 옮길 수 없는 선교사들만이 맛보는 외

국인전도와 양육의 열매들 ...... 언어와 풍

습과 문화가 다른 현지인들이 입을 별려

찬송하며,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하는 사람 = 늘f ...•.

중성자가 변하여 남자로 돌아오고, 술주

정뱅이가 교회의 일꾼이 되고, 아이들의 손

에 이팔려 교회로 따라 나오는 부모들 ....

수년간 믿어오던 불경과 구슬꾸러미들을

태워달라고 가져오던 학생들 ... .. .. 200-

300여명이 산속에서 수양회를 하며 부르던

찬송 ...

이 모든 일들은 3년전만 해도 몽골에 없

던 새로운 일들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져 가고 있는 몽골의 새

로운 사건들이므로 이 순간 성령을 반대하

는 악의 세력들이 주님의 일을 반대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악의 세력들

을 언제까지 용납하실런지요 ...

새로운 종교법을 만들어 전도, 설교를

(선교사들의) 금지 시키는데 대통령과 국

회가 동의했으나 헌법재판소가 위현을 결

정하여 국회로 돌려 보냈습니다. 불교계는

이에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몽골입니다.

주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과 말씀운동

과 천사들의 도웅이 계속되도록 영적인 출

。H굽운동이 일고 있는 몽골을 위해 기도를 방 전도여행을 지주 갔었고, 교회개척에 중

부탁드립니다. 점을 두었었는데, 선교 두번째해(’93년)는 1994.2월에 선교사 및 외국인들이 지방으로 가는 것을

몽골 H 선교사 올림 몽골정부가 허용치 않는 방해를 해 왔으므

몽골 H 선교사 선교사역 2년 (1991. 12. 9-1993. 12.31 )

1. 몽골의 정치, 종교상황

몽골이 지난 3년전부터 정치적으로문을

열면서, 종교도 함께 인정하여 왔으나 93년

11월말 “새 종교법”이 발표되어 선교에 제

동을 걸었었습니다. 외국인 설교, 전도동

종교활동 금지퉁이 중심내용이었고, 선교

사들은 특별기도회를 거의 날마다 갖는등

긴장된 나날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번주 몽골 헌법재판소에서는 “새 종교

법”이 세계 인권선언과 몽골헌볍에 위배됨

(3항)이 결정되어 국회로 되돌려 졌습니

다. 그러나 불교계는 강력 반대운동을 벌이

겠다고 라디오방송이 오늘 발표했습니다.

유럽지역에서 온 선교사들은 설교를 당

분간 중지하고 있고, 한국인 선교사들은 계

속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 선교지입니다.

법은 전도와 설교를 중지시키고 있는

데 . ..... 선교사인 제 마음은 하늘나라의 법

을 우선시하는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

2. 본인 부부의 선교활동

선교 첫해(’92년)에는 수도권지역과 지

22

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갈 수

없으므로 전도자들을 보내어 현지인들에

의해 세워진 전도모임을 돕고, 새로운 전도

지역으로 보내 모임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를 주셔서 지난해에

도 풍성한 열매들을 주셨습니다.

1) 수도 우우르딩게게 괴회

현재 주일 평균 장년부 300명, 주일학교

200여 어린이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

난해 처음으로 대학부와 장년부 성경모임

이 조직되었으며 교회는 이제 주일학교

(200) , 중고퉁부(80) , 대학부(40) 퉁 교회

학교 기관이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몽골인 스스로 이 기관을 운영하는

자립, 자치기관으로 성장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94년에는 처음으로 현지인 전

도자 또는 집사를 세울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 11개 아이막(지방 道)에 전도여행하

여 여러 지역에서 새신자를 얻었으며 모임

을만들었습니다

2) 지농뻐| 세웠거나 세움중에 있는 작은

모임들과교회들

@ 날라히市 교호1- 성인 30-40여명, 주

일학교 50여명이 주일낮 예배와 수요일 구

역예배로 모이고 있음.(세례교인 12인) 지

난해 잘 돕지 못해 성장이 둔화된 상태입

니다

9 쇼보링읍 모임-성인 30여명, 주일학 교 30여명이 매주 토요일과 수요일에 모임

을갖고있습니다.

@ 바이헝걸 아이막(道) 교호1- 지난 여

름에 60여명이 모여 수련회때 10여명이 처

음으로 세례를 받았음. 현재 평균 30여명,

Page 23: 개혁고려 1994.03

이번주 몽골 헌법재판소에서는 “셰 종교법”이 세계 인권선언과 몽골헌법에 위배됨(3항)이 결정되어

국회로 되돌려 졌습니다. 그러나 불교계는 강력 반대운동을 벌이겠다고 라디오방송이

발표했습니다.

주일학교도 시작했습니다. 지난 여름과 늦

봄 2회에 걸쳐 620km 떨어진 이곳에 군용

차와 짚차로 다녀왔습니다.

@ 바이찬드망 읍 모임-학생들이 학비

문제로 전문학교와 10년제 학교에 못나가

므로 현지 모임이 중지상태임. 그러나 현지

인들을 보내 신자들을 돕고, 위로하며 계속

양육하고 있습니다.

@ 고비지역 (남부道)-여름 전도로 새

로 생겨난 모임. 현재 20-30명이 매주 모

임을 갖고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뺑 바그노르市 모임 -30-40여명의 신

자가 있으며, 2달마다 전도지를 보내 1주일

씩 양육하고 돌아옵니다.

81 ~브르항가O I C중힘훌) -불교의 중심

지를 전도하여 20여명의 신자를 확보하고

양육중입니다.

@ 동부 초이발산(道)- 새로 전도하여

20여명의 신자가 있음

@ 동부 수르바타르(道) 새로 전도하

여 10-20명 의 신자가 있음.

저희 수도에 있는 우우르딩게게 교회는

2개월마다 비행기 또는 버스, 트럭으로 지

방에 전도자들을 보내 세워진 모임들을 양

육합니다 저희는 이 일들을 위하여 찬송가

를 번역하며, 번역된 창송가를 다시 몽골인

교회에서 사용해 보고, 은혜를 맛본 찬송가

를 다시 복사하여 시골과 수도권의 여러

교회에 보내 줍니다.

또한 지방전도를 위해 키타, 전도지, 응

급치료 약품, 구제물품이나 신앙영화 또는

신앙 카세트 테잎, 성경책, 쪽복음등을 준

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전도사역과교회

양육에 좋은 역활을 합니다.

3. 기타사항

@ 한국어 학과는 저의 선교일이 너무

범위가 넓고, 모두 감당할 수 없으므로 윤

순제 선교사님께 넘겼으며, 비자해결을 위

해 시간강사로만 관계하고 있습니다.

@ 현재 진행중인 중요한 사역은,

가) 세워진 지방의 모임들이나 교회에

장 · 단기 현지인 전도자들을 양육,

파향}는일

나) 매주 1-2장씩 찬송가를 번역하는

일(수요일 밤마다)

다) 성경대학 강의와 교회 구역장 훈련

(토요일마다 구역장 17+부구역장

17=34명) 지난해 10구역, 금년에

20구역 목표 내년에 40구역 목표

임.

라) 계속적인 신 · 구약 강의

마) 장래(3-5년후) 선교사를 세계 다

른 지역에 재 파송하도록 준비중에

있습니다

바) 지방에 있는 교인들을 양육하고 견

고한 믿음을 심어주려고 10여개 지

역에 1-2달마다 전도자들을 보내

는일

사) 몽골교회를 자립시킬 목적으로, 직

업훈련을 예정으로 기도중에 있습니

다.

@ 동역자가 부족합니다.

• 함께 성경대학에서 강의할 목사님, 성경공부를 인도한 전도사님 또는 선교사

역을 통핵 동역할 평신도 사역자가 필요합

니다. 신실한 사역자를 하나님께서 추수의

현장인 몽골땅으로 속히 보내 주시길 기도

하고 있습니다.

@ 몽골기독교현황 현재 몽골 기독교는 선교 3년만에 전국

민의 0.1 %가량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저희 교회와 지

교회에 있습니다. 현재 저는 몇 영의 외국

23

인, 한국인 선교사님들을 통역자로 봉사하

고있습니다

@ 잠시 성렁역사의 장면들을 소개합니

며칠전 교회는 3박 4일간 산 속에서 겨울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170'명이 참석한 가

운데 성령에 대한 사도행전 설교를 한 후

통성기도하며 회개, 간구하였습니다 기도

가 끝난후 간증을 통해 어린이는 방언의

은사를, 어떤 이는 병고칩을 어떤이는 천국

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과거의 죄를 고백,

회개하며 어떤이는 술마시며 음란하던 죄

를 고백하며 회개했고, 어떤 부인은 참된

신앙생활을 다짐하는 새출발의 시간이 있

었습니다.

이 겨울 수련회동안 많은 청년들이 장래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준비기도

에 들어갔고, 일부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

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설교를 듣고 큰

꿈을갖게 되었습니다.

지난여름수련회는잃0명이 참석했었는

데, 주님의 말씀, 기도, 찬송을 통한 너무 큰

은혜들을 받고 11개 道, 13개 도시를 순회

하며 대규모 전도대회를 가진 것을 들으셨

을 것입니다, 이 전도시 중성처 럼 생활하던

시골의 한 청년은 그가 입던 스커트(치마)

와 입술에 칠하던 립스틱을 던져 버리고

지금은 자신 스스로 6OO)<m를 달려와서 성

경대학과 교회에서 성경을 열심히 비!우고

있습니다

한 청년은 술 고래였는데, 지금은 술, 담

배, 옛 친구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교회에

나와 성경을 열심히 배우다가 최근 한국어

학과에 입학하여 한국말을 배우고 있고, 며

칠 전부터 교회사역자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Page 24: 개혁고려 1994.03

틀혹훌됨괄필펄료훌꾀.

개혁신학의 최고봉 촌 칼빈 (11 ) 존 칼빈 (John Calvin, 1509~1564)

2. 개혁자 칼빈(제네바의 개혁 )

1536년 7월 칼빈의 제네바 도착은 그 이

후의 종교개혁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사

의 전환점이 되었다. 칼빈이 이곳 제네바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그가 이 도시의 개혁

자로 생애를 바치며 제네바가 개혁운동의

중심지가 될것을 예견하지 못했었다. 그러

나 역사세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연한 사건이나 의미없는 걸음으

로 간주하지 아니했던 것이다

1536년 당시의 제네바는 13,어)()명의 인

구를 가진 교역중심지로서 1520년대 이후

정치적, 종교적 변혁의 와중에 있었다 거

기다가 윤리적 수준의 저하와 향락적 분위

기로 도덕적인 의식이 상실된 타락한 도시

였다. 그래서 성공적인 개혁운동을 위해서

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도시였다. 바로

이 때 칼빈이 제네바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화렐은 불타는 열정으로 외치기를

“그대는 쉬는 것 밖에는 생각지 않는군요,

요나의 이야기를 모르나요? 그대가 만약

에 하나님의 일보다 고요한 생활로 독서나

즐기는 일을 한다연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

를 저주할 것이다”고 선언했다. 순간 칼빈

은 이 무시무시한 저주를 그에게 내뱉는

화렐의 입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단순한 화

렐의 권고가아니라하나님의 음성으로들

렸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지존자의 임재

를 느꼈던 것이다. 마치 하나님의 강한 손

이 나를 붙들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나에게

내려와 계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렇게 되어 하룻밤 유숙하고 떠나려했

던 칼빈은 제네바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의

개혁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화렐의 간곡한

요청때문에 제네바에 머물게 된 칼빈은 성

베드로의 대성당에서 바울서신을 강해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과였다. 당시 제네바시는

칼빈을 가리켜 “저 프랑스인”이라고 불렀

고, 그의 이름조차 기명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이름없는 개혁가로서 칼빈은 제네바

개혁운동의 첫발을 내디댔다. 그러나 점차

칼빈은 제네바 개혁운동의 이념과 정신, 그

리고 조직과 활동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정정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마침 그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

1536년 10월 1일 로잔에서 열린 로마 카톨

릭과의 신학토론에서 그의 실력이 입증되

었다. 이 때 토론의 주된 내용은 성찬문제

였다 칼빈은 교부들의 주장과 저술들을 해

박하게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육체 임재

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주장하여 로마 카톨릭측의 주

장을 가볍게 물리쳤다.

이제 칼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제네바에서 명실상부한 개

혁교회를 설립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1537

년 1월 16일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조례」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시의회에

제출하였다 이는 당시 개혁자들의 개혁이

념과 개혁교회 조직에 관한 기본이념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서이다. 그 주요 내용

은매주일 예배 때 마다성찬식을시행해야

한다는 것과 엄격한 치리의 시행이었다. 이

외에도 청소년틀을 위한 신앙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대한 교육과 예배시에 시편 찬송

을 부를 것과 결혼법의 개혁이었다

또 칼빈은 재세례파에 대항하여 21개 조

문으로 된 「신앙의 교훈과 고백」을 발표하

고 모든 시민들에게 이 고백서를 따르도록

서명, 날인케 하고 준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24

전 재 기 고려신학교 조교수(실천신학)

이러한 개혁자들의 개학에 대해 창성하

는 이도 있었으나 일부는 그들을 못마땅하

게 생각하여 큰 불만이 야기되었다. 사실

당시 개혁자들의 엄격한 치리는 많은 사람

들에게 불만의 요인이 되었고, 이와 더불어

개혁자와 시의회는 권정권의 문제로 대립

하고 있었다. 칼빈은 권징권은 교회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으나 시의회는 츄리히의

경우를 따라 시의회가 권정권을 행사해야

한다고주장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538년 1월 시의회는 교회의

출교권을 박탈하고, 2월의 선거에서 칼빈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자,

4월 23일 칼빈과 화렐의 제네바 추방을 결

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칼빈이 제네바

에 온 지 꼭 23개월만이었다.

제네바를 떠난 칼빈과 화렐은 베른으로

갔고 다시 바젤로 갔다. 칼빈은 바젤에 체

류하며 학문연구에 진력하기를 원했으나

스트라스부르크의 부서 (Bucer)로 부터 두

차례의 초청을 받았다. 부서와 스트라스부

르크의 사람들은 전에 화렐이 칼빈에게 했

던 방식대로 “하나님의 진노”란 이름으로

칼빈을 위협했고, 선지자 요나의 경우를 들

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 뿐만 아

니라 칼빈이 느끼고 있던 절실한 경제적

고난이 이들의 간청을 강화시켜 주었다. 십

주 동안 그는 스트라스부르크의 제안에 저

항했지만, 1538년 9월 초, 오른 손에 지팡

이를 쥐고 마침내 바젤의 성 요한의 문을

넘어 스트라스부르크로 향하였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의 그의 활동은 첫

째 프랑스 피난민들을 위한 목회사역이다.

그는 약 4-500명이 모이는 “성 니콜라스

교회를 담임하면서 설교와 성경강해를 중

Page 25: 개혁고려 1994.03

이제 칼빈에게 있어서 가정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제네바에서 명실상부한 개혁교회툴 혈립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1537년 1 월 16일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조려I J라는 문서롤 작성하여 시의회에제훌하였다.

심으로 목회사역을 감당하였고, 그 외에도

예배의식을 확립하고 교회음악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월 1회 성찬식을 거행하

였는데 성찬식을미리 예고할뿐만아니라

성찬식에 참예할 자들도 미리 신청하도록

하였다.

둘째로 중요한 사역은 저술활동이었다.

칼빈의 가장 중요한 저술은 “기독교강요”

를 증보하여 제2판을 출판한 일이다

또 칼빈은 성경주석 집필을 시작하여 처

음으로 로마서주석을 출판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칼빈의 주석집필은 그의 생애 동안

계속되었는데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성경의 주석서를 집필하였다. 그는 단

순히 후대 사람을 위해 주석집필을 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성경연구와 성경강해외 결

과로 주석이 이루어져 갔다고 하겠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저서는 “사돌레토에

대 한 답변"CReply ro 5arolero) 이 다. 이 것은

사돌레토 추기경이 제네바 시민들에게 로

마 카톨릭으로 복귀하라는 서신에 대하여

칼빈이 답변한 형식의 글이다 이 책은 칼

빈의 논쟁적 저술로서 교회개혁의 의의와

목적,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셋째로 중요한 활동은 다른 개혁자들과

의 교제였다 특히 부서 CBucer)와의 교제를

통해 예배와 교회론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종교회의에

서 벨랑히톤(Melanchron)을 만난 일이다,

칼빈과 엘랑히톤의 교제는 서로에게 유익

을 끼쳤고 개혁정신을 고취시키는데 상호

격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화

웰의 주례로 결흔한 일이다. 그의 아내는

“이들레뜨 드 뷔레" (rdelerrε dε Bure) 라는

미망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혼한

지 9년 뒤에 칼빈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칼빈은 그의 아내 뷔레와 사별한 후 다시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한편 칼빈을 추방한 제네바시는 날로 부

패하여 갔으므로 뜻있는 사람들은 칼빈의

귀환을 요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칼빈이

응하지 않으려 했으나 화렐의 간곡한 권유

에 의해서 제네바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3년

간을 제네바에서 철저한 개혁운동자로 일

관된생활을하였다.

제네바로 다시 돌아온 그는 시의 전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의 개혁이상을 실현하기

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중요하게

λ}용한 개혁방법은 주로 설교였다. 주일 외

에 격주로 매일 평이한 설교를 하고 매 금

요일에는 질문회를 열어서 각종 질문에 응

했다 또한 제네바 교회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규례」를 발표하였고, 이를 시행

하고 감독하는 위원회를 설치하여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I교회규례」의 규정에 의하

면 @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할 책임을 지며 @ 교사는 기

독교 교육을 담당하고 @ 장로는 목사를

도와 신자들의 영적문제를 관활하며, 장로

들과 목사들로 구성된 치리회를 조직하였

는데, 후에 당회로 불리우게 되었다. @ 집

사는 일반 구제문제와 병원을 운영하는 일

이 위임되었다. 특히 12명의 목사와 12명의

장로들로 구성된 감독회는 매주 화요일에

회집되어 질서위반, 위법, 탈법자에 대한

심사와 치리를 담당했는데 그 적용은 매우

엄격하였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제네바시

는 처음 4년간 58건의 사형선고와 76건의

추방이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제네바시에

서는 도박이 사라졌고, 무도회는 금지되었

으며, 많은 술집이 폐쇄되었고, 음행은 현

저하게 줄어들었으며, 교회 결석이나 예배

도중에 나가는 행위와 신성모독적인 언행

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

물이 세르베투스(Seπen펴이다. 그는 삼위

일체 교리를 반대하다가 제네바에서 처형

되었는데 칼빈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난거

리를 제공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되었든 칼빈의 개혁활동은 거듭된 반대에

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제

네바는 개혁의 본거지가 되었다.

특히 칼빈의 개혁운동 가운데서도 빠뜨

릴 수 없는 것은 제네바 아카데미 (The Aca­

demy ofGenε、 a) 의 설 립 니 다.1559년 6월 5

일에 제네바 아차데미는 개교되고 학장과

25

교수 취임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칼빈이

작성한 대학규칙이 낭독되었다. 칼빈은 그

대학규칙에서 학장자격을 제시하고 교수들

은 학장 밑에서 봉사하고 통제를 받아야 할

것을 규제했다. 학장은 경건과 학식 외에

우아한 인격을 소유하고 조급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으며 교수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직책의 난관을 인내로 해야하는 것을 보여

야했다.그리고교수들에게 청렴과신속과

잘 훈련된 행동을 요구했다 학생들에 대한

정벌은 과중해서도 안되고 가혹해서도 안

되고 균형이 잘 잡혀야 한다고 했다. 개교

당시 이 학교의 학생수는 162명이 등록하

였으나 5년 후에는 약 300명 이 등록하였고

아카데미의 부속기관이었던 신학예비과정

에는 1천명 이상의 학생이 적을 두고 있었

다.

이 제네바 아카데미는 수많은 설교자와

교수, 교사들의 양성소가 되었고 구라파 전

역에 개혁신앙을 보급하는 근원지가 되었

다. 이 학교에서 수학한 학생들이 각기 본

국으로 돌아가 개혁신앙을 유지, 계승, 발

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므로 제네바

아카데미가 끼친 영항은 실로 지대하다고

하겠다.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낙스”도 그

런 인물중의 하나였다.

제네바의 개혁을 위해 흔신의 노력을 다

한 칼빈은 1558년 부터 극도로 쇠약한 상

태에 이르렀다. 병약한 그를 가라켜 “이동

하는 종합병원”이라고 부를 정도였지만 그

는 설교자로서 목회자로서 저술가로서 선

학교수로서의 자기 사명을 감당하다가 15

64년 5월 27일 5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

름을받았다.

종교개혁자들 중 가장 탁월한 학자요 사

상가요 이론가요 설교자인 칼빈은 개혁신

학의 전통을 확립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

의 가르침은 더 이상 제네바에서 찾기 힘

들지 몰라도 여전히 기독교회의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금도 주의 이름을 가장

높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t “ 50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Page 26: 개혁고려 1994.03

볕흘뱉훨할뿔훤l

부산진(蓋山술휠)교호| 영남의 어머니 교회

노j 산진교회는 1891년 1월에 설립된 부

T 산 경남지역의 첫 교회이다 부산진교 회의 설립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

으나 당시 호주장로교회의 소속 선교사 데

이비스가 파송됨으로 부산 지역에 복음이

태동하게 된다. 호주장로교회가 한국선교

를 시작하게된 동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

록이 없으나 호주교회에 한국선교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성공회 부주교 울프(Wolf)

의 기사를 읽은 데이비스가 한국선교에 자

원함으로써 호주장로교회의 한국선교가 이

루어졌다고 한다. 당시 호주장로교회는 호

주의 원주민 및 중국인에 대하여 선교에

힘쓰고 있었기에 데이비스의 한국선교는

성령에 이끌린 개인적인 하나님의 부르심

이었다. 데이비스는 호주 멜버른(Melbou­

rne) 에서 출생하여 멤버는 대학을 졸업하

고 같은 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후 스코틀랜드 에딘버런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89년 데이비스는 여동생(Mary Davis)

과 함께 서울에 도착 약 5달 동안 선교활

동을하다가부산지역에 가게 된다.그러나

그는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그뒤

호주선교부는 데이비스의 정신을 계승하여

본격적인 선교사업을 하였고, 멕케이 (]. H

Mackey) 목사부부와 맨지스(B. Menzies) ,

포세트(M. Fawcett) , 페리(]. perry) 등 선교

사를 파송하여 부산지역의 복음화가 가속

화된다

부산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과

생활하면서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고, 특히

선교사들이 갖고 있었던 의술이 큰 역활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은 보건에 관

한 강습회를 열면서 예배를 드렸고, 신앙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아울러 주일

~ 최 며 부산진교회의 초대 장로와 효댁인으로 i η - 첫당회장을 역임하였다,

학교도 개설하였다.3명의 한국 고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이들을 돌보며 가르쳤

는데 이후에 많은 소녀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하여 선교사들은 1895년 10월

5일 좌천동의 한 초가에서 소녀들을 모아

주간학교를 시작했으니 이 학교가 점점 발

전하여 그 이름도 “날마다 새롭게”라는 뜻

의 일신(日新 : Daily-New)이라 지었다. 이

학교의 설럽 목적과 교육은 한국인 목사와

교사양성에 있었고 점차 규모가 커짐에 따

라 서구식 교과목이 추가되었다. 이 학교는

교회의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기에

교과 과정은 성경, 예배 중심의 교과가 되 었고, 교인 자녀들의 교육을 원칙으로 하였

으나 교실 사정이 허락하는 한도안에서 비

교인 자녀도 2할까지 허용하였다

26

황 명 걸 강도사 ·고려신학교도서관

사서I듭당

1894년 4월 22일 부산진교회의 첫 세례

자 아니 영남일대의 첫 세례자가 생겼다.

그런데 그 세례를 베푼 사람은 호주장로교

회 소속 선교사가 아닌 잠시 부산에 머물

렀던 미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였다. 당시

부산의 호주 선교사는 여선교사 뿐이었고,

멕게이 목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호주로 돌

아갔기 때문이다. 이때 세례를 받는 한국인

은 심상현과 이도념과 귀주라는 부인이었

다. 기록을 보면 이날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세 사람이지만 그중에서도 심상현이 제일

먼저 세례를 받음으로써 부산에서의 첫 세

례자의 영광을 차지한 것을 알 수 있다. 첫

수세자 성상현은 나중에 가족에게 까지 복

음을 전하여 그의 동생 심취명을 전도하였

는데 심취명은 나중에 부산지역 최초의 장

로가 된다. 이도념은 일찌기 여선교사 페리

를 도와 고이를 돌보는 보모의 일을 맡고

있었고 성이 분명치 않은 귀주라는 부인

역시 여선교사들을 돕던 여인중의 한 사람

이었다.

1896년 6월 10일에 부산진교회에 경사가

있었으니 바로 최초의 신식결혼식이었다,

신랑은 바로 심상현의 동생인 심취명이었

고 신부는 호주 여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여

성 성 경 반(Young Womens Bible) 에 출석 하

던 김봉숙이었다. 주례는 아당슨 선교사가

맡았다. 심취명의 부모들은 이미 교인이 되

었으나 부유한 부잣집 딸을 며느리로 맞아

들이려고 하였으나 심취명은 완강히 이를

거부하고 교회에 다니는 여성이 있을때 까

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결국 심취명

은 김봉숙이라는 처녀와 결혼을 하는 축복

을 얻게 된다. 이 결흔식은 단순히 의식적

인 면에서 기독교적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기독교 가정이라는 새로운 기초 공동체의

Page 27: 개혁고려 1994.03

부산진교회는 1891 년 1월에 설립된 부산 경남지역의 첫 교회이다. 부산진교회의 설립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시 호주장로교회의 소속 선교사 데이비스가 파송됨으로 부산 지역에 복음이

태동하게된다.

형성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1901년대에 이르러 부산진교회는 믿음

의 반석위에 세워지는 교회로 성장한다. 먼

저 호주장로교회에서는 남선교사 왕길지

(Gelson E ngel : 王吉志)를 한국으로 파송

한다. 그가 부산진교회에 부임하게 되자 교

회는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왕길지가 부임하자 먼저 신경을 쓴 것은

새로운 예배공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

일에 이 교회의 김서방이 열정적으로 나서

서 도와 주었다. 완성된 건물은 그리 훌륭

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우리 주님 세

상에 계실때의 처소를 생각하면은 이것도

족하다고 저들은 고백하였다고 한다 왕길

지 목사는 성탄절 행사를 처음 실시하였고,

세례식과 성찬식을 하므로 교회가 바른신

학 위에 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1904년 5월 27일 이날은 심취명이 장로

로 장렵받던 날이다. 부산에서 최초로 세례

를 받은 심상현의 동생이기도한 그는 이

지역에서 최초의 장로가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이날은 심취명 개인에게는 물론이

고 부산진교회 나아가서 부산, 경남지역에

비로소 첫당회가 조직되었으니 경사가 아

닐 수 없었다 심취명은 당회서기가 되었고,

당회록과 교인명부라 할 수 있는 성찬열명

록(聖옳列名錄)을 만들기도 하였다.

부산진교회의 초기역사를 더듬어 보면

서 특히 중요한 사항은 신중한 세례절차와

엄격한 치리는 오늘날 현대교회에 많은 도

전을 던져주고 있다. 먼저 신중한 세례절차

에 대하여 알아보자 당시 세례를 받기 위

해서는 믿음과 아울러 성경지식이 어느정

도 수준에 이르러야 했다. 무턱대고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알맹이 신자를 염선했던 것이다. 당회

가 조직된후 처음 세례를 받은 교인은 박

지용 모친 박경배, 박임순 모친 박지화둥 4

인이었다 이들은 모두 “아는 것과 믿음의

중거”를 잘함으로 1904년 5월 29일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손화순 조모도 세

1900년 초 부산진 교우들. 두 번째 교획당 'ìi뼈1서

례받기를 원했으나 아는 것이 없는고로 세

례를 받지 못했고, 3개월뒤 다시 세례 받기

원했으나 “요긴한 것”을 모르는 고로 세례

를 받지 못했다. 어찌보연 노인에게 다소

야박한 것같은 느낌도 있지만 이무리 세례

교인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성스러운 세례 만큼은 함부로 주지 않았던

좋은 전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어릴때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성찬에 참

예할 나이가 되면 다시 당회로 불러 그 믿

음과 아는 것을 물어보고 그 대답이 부족

하면 성찬에 참예할 수 없었고, 세례문답은

잘해도 성찬의 참뜻을 모르면 세례를 주지

않았다 또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는 세례명

도 함께 붙여 주었는데 개신교에서는 매우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심취명 장로의

경우 이름은 상호였고, 취명은 세려1명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이룬다”는 뜻으로 이해

된다. 다음으로 치리의 경우는 더 엄격했음

을알 수 있다. 치리의 대상자는 아래와 같

다.

@ 술취하거나 술집에 다님 @ 교회에

오랫동안 나오지 않음 @ 주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음 @ 예배를 경건하게 드리지

27

않음 @ 믿지 않는사람과결혼함 @ 이흔

한사람과결혼함@ 흔인전에 몸을조심치

않음 @ 빚을갚지 않음@ 아내를때립 @

첩을둠퉁이었다.

이러한 치리는 알맹이와 쭉정이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참된 교회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그후 부산진교회는 초읍교회,

대연교회,부전교회퉁여러 곳에 교회를개

척하여 지금까지 이르렀다 초대 당회장에

서 부터 지금 이기은 목사에 이르기까지

바른 신앙 위에 교회는 계속 성장해왔다.

이제까지 부산진교회의 역사를 개괄함에

있어서 그 초기의 모습만 언급하였다

결론적으로 부잔진교회는 데이비스의

순교위에 다져진 순교자적인 씨앗의 교회

요, 어두웠던 부산, 경남지역에 복음의 포

문을 연 개척자적인 교회이며 최초의 세례

자, 장로를 임직하였던 축복의 어머니 교회

이다. 뿐만 아니라 100년 역사를 가지고 오

늘도 그 신앙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성경

절대신앙의 교회이며 엄격한 치리와 신중

한 세례절차를 통하여 신앙과 행위의 일치

성을 보여주는 교회이자 만민에게 복음의

첫 줄기를 제공하는 어머니 교회가 아닌가,

f

Page 28: 개혁고려 1994.03

톨훌F훨률 쩨4회 전국여전도회 연합수련회 참가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에

주시는 축복이 어찌나 크온지

흔| 나님의 은혜에 온 마음과 온 몸으로

- 1 감사를올립니다

벌레만도 못하고 사마리아여인과는 비

교조차 할 수 없는 부족한 인간을 사랑하

사 특별히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

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심

을 생각할때,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인생이 생각조차 하기 싫은

부끄러운 생활이었음을 고백하융니다.

여의도로 보내 주시고 또한 경향으로

인도하셔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의 순서였음을

깨닫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94년을 시작하면서 문산 고려신학교에

서 열리는 하늘의 큰 잔치가 나를 흥분시

켜 주었습니다. 일찍부터 마음으로 준비

하면서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마음은

여고시절의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때의 그

설레임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수련회 개회예배는 이러한 홍분된 나

의 마음을 간절함으로 변화시켜 석목사

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끝까지

행진을 계속해야 하는 ‘최수경’ 을 깨닫

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나는 믿고

기도하며, 순종만 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

이 해결해 주시리라 믿고 예수님을 따라

만 가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순간들이었

습니다.

둘째날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아

드님이신 주광조 장로님의 ‘일사각오’ 라

는 간증은 나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충

분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 먼저 천국간 나의 남편에게

나는무엇을가지고갈수 있는가? 세상

에 남아있는 나와 수현, 동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주는 복된 간증이었다.

둘째날 저녁의 말씀은 또 다른 자기 희

생과 겸손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육이 죽어야 영이 삽니다

교만이 죽어야 겸손이 삽니다

불순종이 죽어야 순종이 삽니다.

탐욕이 죽어야 감사가 나융니다.

이기주의가 죽어야 이타주의가 됩니

내 중심이 죽어야 주님 중심이 됩니다.

내 생각이 죽어야 주의 생각이 됩니다.

내 고집이 죽어야 하나님만이 생각납

니다.

어느것 하나 땅에 떨어 뜨릴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 나의 삶을 복되고 풍요롭

게 하는 것을 확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매일의 새벽마다 올리는 새벽기도는

잠든 우리의 영적새벽을 일깨워 주는 생

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어미로서, 남편의 아내로서, 믿

음의 어미와 아내, 지혜와 사랑의 어미와

아내되기를 구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또 한 분의 위대한 순교자 손양원 목사

28

최수경집사 경향교회

님의 따님인 손동희 권사님의 .. 네가 죽도

록 충성하라”는 간증의 말씀을 통해 손목

사님의 순교의 순간 순간을 생생하게 전

하는 말씀을 통해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셔서 당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으신 그 사

랑이 우리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말씀을 전해 주시는 손권사님을 대할

때 더더욱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립

니다 모름지기 오늘의 편안한 신앙생활

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아름

다운 자극이 되어서 이 시대에 있어 순교

의 신앙은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날 저녁 집회에는 “더 큰 일”이

라는 제목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제보

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에 주시는 우리의

사명 이 더욱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 믿고

유대와 예루살렘,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도하고 선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다짐하면서 정말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 드릴 수 있도록 매일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2박 3일의 짧은 수련회였지만 시간, 시

간이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시간, 은혜의

시간, 감사의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소서」란 주

제의 말씀대로 우리의 하루 하루가 배가

되어 천배를 이룰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힘쓰고 애쓰는 삶을 살도록

하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Page 29: 개혁고려 1994.03

찌르릉 ...

언제나 그러듯이 탁상시계의 괴성이 나

의 단장을 깨우며 6시가 되었음을 알려준

다.습관처럽 창문을여니 기다렸다는듯이

몰려드는 차가운 공기와 창가에 튀는 빗방

울이 제일 먼저 나를 반겨준다.

아 ·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오는구나.

부지런히 아침을 짓고 출근길을 배웅하

고 비가오면 습관처럼 그러듯이 커피 한

잔을 준비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때마침 여고시절 노래가 흘러나온다.

빗방울 소리와 노래소리의 벨로디가 차

츰차츰 하나가되어 들려오는 것 같다.

황당했던 시간.

여고 3년시절, 친구를 통하여 들었던 미

현의죽음.

너무나도 큰 충격에 나는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떨었다. 미현과의 만남은 그리 특

별한 것은 아니었다. 2학년 때 방학이 되어

시골에 내려갔었는데 이모 집에 놀러온 미

현과 만나게 되었다. 핸지 가날프게 보이는

미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동정과 애정이

갔던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미현의 이모를

통해서 미현이가 혈우병 환자라는 것을 알

았다. 어린 마음에 너무나도 가없고 불쌍해

서 최대한 잘 해주려고 노력했었다. 미현과

점점 가까와지면서 미현에게는 엄마와 남

동생과 세 식구뿐이며 어려서는 절실한 기

독교인이었는데 어떤 계기를 통하여 불교

로 개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안타까움 뿐이었다.

회 상

나의 언어표현이 미현을 설득할만한 능

력도 없었을뿐더러 신앙적인 지식도 너무

나도 어리고 보잘것 없어서 미현에게 설명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방학을 끝내

고 나는 다시 전주로 올라오게 되었다. 다

행히 우리는 서로 주소를 교환하게 되었다.

난 언니의 도웅을 받아 미현에게 펀지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개종하게 된 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과 열심히 예수님에 대해

서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식의 편지가 계속되는 가운데 미현

이가 교회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는 답장

을 받을 수가 있었다, 아직 엄마와 동생은

변함이 없지만 미현은 엄마와 동생을 위해

서도 기도해 달라는 부탁까지 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던지 ...

우린 어느새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있

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현이 지나

치게 나를 의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나를

자꾸 귀찮다는 생각으로 바해게 했다.

미현의 편지에 답장이 한번 두번 늦어지

게 되고 그리고 소식이 점점 뜸하게 되었

다. 그리고 내가 3학년이 되었다. 공부 때

문이라기 보다는 3학년이라는 강박관념이

더욱 미현과 멀어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

사실 미현은 몸이 아파서 고등학교도 다

니지 못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던중,

어느 여름날 토요일 오후 시골에 다녀왔다

는 친구가 미현의 이모를 통해 들은 미현의

고려마당 원고를 모집합니다.

고려마당은 펼신도 여러분의 신알의 광장일니다.

안 미 애 로댐교회

죽음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난 어이없는 현실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

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둘이서 미현의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미현의 어머니께서는 초

라한 모습으로 우릴 반기시더니 미현이가

얼마나 편지를 기다리며 편지를 받고서는

그렇게 좋아했었다며 고맙다고 하시는 것

이었다.

아 ... 이 고통.

난 머리를 치며 통곡을 하고 싶었다. 동

생을 따라 미 현의 묘를 찾아갔다. 시골길이

라 험하고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난 힘이

든다는 생각보다는 죄인이된 기분으로 따

라가고 있었다 난 묘에 엎드려 울기 시작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동생과 친구가 말리

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곳에서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미현은 세상에서의 삶보다

하늘나라에서의 삶이 더 행복할거라고 확

신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또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대학교 2

학년이 되던 해에 미현 이모를 통하여 미

현의 엄마와 동생이 다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난 그제서야 미현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빗방울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어느

새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 난 다시 커피 한

잔을 준비하며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기도

를드렀다.

신앙샘활중에 일어나는 체험수기, 수필, 간증, 시나 수련회, 부흥호|

침가기등 일반 성도 여러분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원고 마감일은 매달 10일입니다.

29

Page 30: 개혁고려 1994.03

톨파뿔많콸륙권l

가끔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째서는 창세기에서 우주E뭘올 창조하셨는데 그 전에는 하나님째서는 무 엇몰 하고 계셨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

이 뜻 가운데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조전에 우주의 역사와 그 거주자들에 대한 계획율 세우셨음율 듣게 됩니다.

“세상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모든 일은 하나닙께 알려졌느니라."(행 15 : 18)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율 따라 우리가 예정율 입어"(웹 1 : 11 ) 무리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률 받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창조될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됨니다. (앨 1 : 4)

홍미로운 점은 세상의 모든 종교 가운데

서 오직 성경의 계시만이 태초에 만물이 무

(無)에서 특별히 창조된 사실에 관하여 말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경전들 가운데서 유독 성경

만이 영원하시며, 전능하시며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합니다. 그분은 만물

을 창조하시되 태초의 혼돈 혹은 영원한

물질로부터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한 창조는 오직 성경

에만 있는 유일무이한 개념으로서 얘굽 및

가나안 사람들의 우주 진화론적 사고에 익

숙해 있던 옛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서

는 근본적인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그렇

기 때문에 창세기의 저자는 그들이 그 개

념을 진화론적 선입관으로 곡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창조에 관한 기사를 매우 분

명하게 강조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창세기 1장은 “천지와

만물”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존재

하게 되었고 완전케 되었다고 매우 분명히

말합니다. 이 일을 성취함에 있어서 그분은

현존하는 물질이나 자연 과정에 전혀 의존

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문에 창조 전에는 오

직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

니다.

우리의 마음은 유한하며 이것이 활동하

는 공간-물질-시간의 우주라는 틀에 묶

여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한과 영원

또는 시간과 공간의 밖과 이전의 존재를 잘

이해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라도 우리

는 그것을 믿을 수는 있습니다. 모든 세대

의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영원하신 창

조주를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신적

이고 영적인 안식을 찾았습니다

공간, 물질, 시간인 우주의 창조는 하나

님의 말씀으로 선언되어 있습니다.

“태초c= 시간)에 하나님이 천c=공간)

지 c=물질)를 창조하시니라” 이처럼 말씀

으로 존재하게 된 쉰윌호준늪 그 창조주인

삼위일체의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 -은

제1의 원인이자 모든 의미와 실재의 근원

이십니다.

비판주의자들은 성경의 연대를 비판하

면서 “창조가 겨우 6천년 전에 있었다연

하나님은 그 전에 무얼하고 계셨는지요?

우리가 창조 이전에 관하여 배울 수 있는

길은오직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즉우리

는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계시해 놓은 것

만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는통찰

력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

터 나를 사랑하시므로"c요 17 : 24) 신성

(神性)의 삼위께서는 그분들의 영원하신

뜻 가운데서 영원전부터 서로 사랑과 교제

를 함께 나누셨음이 분명합니다.

이 뜻 가운데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께서 창조전에 우주의 역사와 그 거주자들

에 대한 계획을 세우셨음을 듣게 됩니다.

“세상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 알려졌느니라"c행 15 : 18) “모

30

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c엠 1 : 11)

우리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을 받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창조될 것이

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엠 1 : 4) 게다가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 이 예비되

어 있으며 반대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도 있습니다(계 17: 8)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자들을 위

하여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데 독

생자 외아들을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되

기 위해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

이십니다(계 13: 8, 벤전 1 : 20).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희생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영생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딛 1 : 2) . 이처럼 계

획된 놀라운 구속은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

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고전 2: 7) .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예비하신 다음에

창조하셨으며 구속사역을, 마지막으로 복

음 전파를 통하여 그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모든 자들을 실제로 부르시고 구원

하실수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

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

이 아니요오직 자기 뜻과영원한때 전부

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c딩후 1 : 9)

Page 31: 개혁고려 1994.03

회교세력이 몰려온다

-현재 전세계에 회교인구는 10억-

지난 2월초 이란에서는 회교근본주의자

들에 의해 이란의 개신교인 「하나님의 성

회」 총회장인 하이크 홉세피안 목사가 고

문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회교권에서

의 기독교에 대한 핍박사례를 살펴보며 최

근에 들어와 급격히 팽창되는 회교권의 실

상과 회교권 선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21세기초 십자군전쟁 이후 이슬람과 기

독교간의 갈둥은 더욱 심해져 특히 중동지

역에서의 기독교박해는 심했다. 최근에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회교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근본주의 세력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어 기독교 선교의 어려움을 더해

주고있다.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독립된 우즈

베크, 카자흐 공화국등이 회교국가임을 천

영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회교세력이 급팽창

하고 있다. 어느 선교 정보지에 의하면 지

난 50년간 각 종교의 성장세를 살펴보연

기독교 47% , 불교 63% , 힌두교 117% 성

장률을 보인 반면 회교는 무려 500% 였다. 회교의 성장 추세가 계속된다면 2천년대에

들어서는 세계인구의 26.9% 가 회교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전세계 회교 인구

는 10억 정도로 세계인구 52억의 19%을

차지하고 있다

회교의 팽창은 걸프전이후 중동과 북아

프리카 지역에서 회교 근본주의가 정치세

력화 하였으며, 소련의 몰락으로 전통적 회

교권이었던 중앙아시아를 회교세력화 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북미주에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유럽과 북미주의 회교인구가 1

억3천만이라는 놀라운 숫자가 존재하고 있

다 한다. 프랑스의 경우 가톨릭에 이어 회

교가 제2의 종교가 된지 오래이며 영국의

경우는 국교인 성공회와 가톨릭에 이어 제

3위의 종교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마르세이유는 인구의 4분의 1이

회교도이며 영국의 런던에는 5백여개의 회

교사원이 건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지

난 10년간회교도가 5배나증가해 현재 약5

백만명에 이르며 2천년경에는 유대교를 제

치고 기독교에 이어 종교인구 2위를 기록

할전망이다.

우리 한국에도 약 5만명 정도의 회교도

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회교세력의 급팽창에 있어서 그 배경에

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회교단체들과

중동의 석유부국들이다.

1962년 사우디의 메카에서 회교의 관심

사와 선교적 활동을 논의하기 위해 창립된

「회교세계동맹」은 중동의 석유부족들의 경

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광범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회교혁명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이란

은 최근 중앙아시아 각국에 10만명의 회교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

로 알려졌으며 이들은 이제 회교가 허 이상

중동만의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회교가 급성장하게된 것은 이들이 어느

나라에서나 자유롭게 전도활동을 할 수 있

다는 것이다. 반면 회교권에서는 기독교의

전도활동은 불가능 할뿐 아니라 기독교 신

앙을 지키는 것조차 극히 어려워 순교를

각오하고 전도와 신앙생활을 해야 할 정도

로 핍박이 심하다. 실제 회교권에서 선교활

동을 하다가 투옥되고 추방되기도 하였으

며 순교한 사람들도 상당 수에 달하고 있

다.

회교권에 대한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깊

다. 1793년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암케리

가 회교권인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접경지

대 뺑골만에서 선교를 시작한지 200년이

지났다.

그러나 회교권에 대한 선교의 효과는 극

히 미미한 것이다. 선교사들에 의해 공개적

인 선교활동은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주로

전문 직업인이나 학생들에 의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전도하고

있는상황이다.

회교국가에서 개종을 하게되면 기존의

모든 생활 근거를 잃게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한 선교의 돌파

31

구를 찾기가어렵게 된다

회교권에 대한 선교활동이 아무리 제한

되어 있다 해도 결코 포기할 수도, 해서도

아니된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미전도족

속중 가장 규모가 큰 민족이 아랍민족임을

감안할때 회교권은 주요 선교대상일 수 밖

에 없다.

회교권에 대한 선교활동의 효과를 높이

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회교

와 그들의 민족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한다. 그들의 생각과 주장, 그들의 사고방

식, 생활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있어

야 하며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성경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자

세가필요하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고 우선 선교현장

에 들어가고 보자는 식의 무모할 정도의

열심만 가지고는 회교선교는 어렵다

한 교회, 한 교단, 한 선교단체만의 힘으

로는 어렵다. 연합하여 함께 해야 한다. 국

가적인 연대도 필요하다.

「회교와의 전쟁이다」라는 신념으로 대

처해야 한다. 그 옛날 아랍민족과 벌린 십

자군전쟁의 교훈을 생각하며 오늘의 회교

권을 향하여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

아가야 한다. 그들과의 전쟁에서는 총 • 칼

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회교」는 이제 단순한 하나의 종교가 아

니다 그것은개신교에 있어 골리앗과같은

적그리스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그들

의 포교를 위하여 즐겁게 죽기까지 하고

있다.

그들의 세력확장을 위하여 세계의 질서

와 평화를 깨뜨리는 것을 예사로 하고 있

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아시아대륙과

아프리카, 유럽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미주

의 여러 나라들이 회교세력의 활동무대이

다. 머지않아 회교는 세계 제1의 종교가 될 전망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마냥

안타까운 가슴만 안고 있을 수 없다.

회교권의 선교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여겨 지대한 관심과 지원에 힘쓰고

얘씀이 있어야 할 것이다.

Page 32: 개혁고려 1994.03

월만「깨쩍 고려」는 전국 교회, 성도, 그리고 각 기관 연합회의 홍보지입니다.

월만 「깨쩍 고려」를 활용하십시요.

디 월간 「개혁고려」는 교단지입니다. 교단지는 전국 교회 성도들의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口 각 연합회(노희, 시찰호1, 여전도호1 , CE, SFC, 주일학교)는 연합회 활동의 안내와 홍보지로 활용하십시오. 口 각 교회는 각종 교회 행사(건축, 부흥회, 수련회, 경조사 등)를 교단지를 통해 전국교회에 알리시기 바랍니다. 口 기사로 작성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사항만 적어보내 주십시오.

口 우편으로 어려우시면 FAX나 전화로 연락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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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Page 33: 개혁고려 1994.03

월간 í7~혁고려」 후원회원으로 참여해 주심을 진섬으로 감사드렵니다

후원회원 명단

회원증류

평 생 회 외 」

특 별 회 원

( 단체 • 기업 )

2월가입회원

명 단

석원태(경향), 김태윤(신광), 조석연(석남제일), 정성섭(회현), 길단1원(갈보리), 권경록(경향), 황철호(경항), 김석구(남산), 이종필(경향),

김종진(광현), 김원구(산성), 조용선(가조홉광), 주용로(경향), 신선철(경향), 김응도(정평중앙), 이영문(계수제일), 임재훈(산곡),

김현숙(경향), 김재환(경향), 김영제(선일), 박창환(대구화목)

(주)카스 (주)인코, 경향교획, 서울북교회, 회현교회, 총회전도부, 갈보리 교회, 전국여전도회, 총회교육부, 총회선교부, 기독교복지상조회,

성의사, 육영제, 포토스, 전국주교연합, 전국 SFC, 전국 Cξ 김스 안경원, 브리태니커, 태멘 기획, 화평인테리어, 산성상사, 경흥온천, 쑥효k금,

장조주틱,여의도 부페

김회증, 김태숙, 정필연, 정계옥, 임상채(경항 6명)

서상일목사(50,000) , 이회곤, 이경회, 김길자, 김영엽, 김대우, 박현철 (성일 7명)

앙갑숙(예일) , 장창욱(동문)

임정옥, 최영순, 노순영, 김정섭, 이경남, 이미옥, 이순임

엄은미, 강용순(가조홉광 9명)

• 평생회원은 10만원 이상 룩멸획원과 단체후원은 광고 및 10만원 이상후원, 일반회원은 1'('-'댄 이상 헌금입니다.

F 월간 1 .개혁고려. i 후원회원으로 l i 참여합시다i

보내는사람

Ai C그

口jo

개혁주의적 교회 건설과 기독교적 문화를사회에 꽃피우며

세계 선교의 비전을제시하고 문서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이일에

전국 교회 성도님들의 참여를바랍니다 .

•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절취선을 절단 하셔서 보내주시거나 전화 (02) 783-5084로 연락 주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뜯μ힐l닫.u댐l

lF를휩-온라인 : 제일은행 351-20-103226 예금주 : 대한예수교

지 로 : 3015597 (아무 은행이나 지로 창구에 가시면 됩니다.)

---- ------- 절취선 ------• -- -- -------- --_ ---- ---- -- -- ------------ ------ ----- -_ --------- ------ --- ---- -- -- ----- ---

월간 「개혁고려」 후원회 가입원

.1 년 후원회비 10 , 000원 ( l 평생후원회비 100 , 000원 (

^ T “­.J... 우편번호

받는사람 . 。

150-010 서울 · 영등포구 여의도동 53 T

월간 「개혁고려」사귀중 , 표 :

33

Page 34: 개혁고려 1994.03

고려신학과 총호|선교헌금납부현황 l 주의 선지학교를 강건하게 세우시고 가든지 보내든지 하게 하소서 (94. 2. 28 현재)

서 울 남 노 회 서 울 남 노 회 서 울 북 노 회 경 인 노 회

교회영 작징액및능엠월

교회영 작정액및능엠월

교회명 직정액및는엠월

교회명 작정액및능엘월

신학교 월 선교부 월 신학교 'f! 선교부 월 신학교 월 선교부 월 신학교 월 선교부 월 가 나 830,뼈 94. 2 신싱중잉 105,αx) 94.2 100,αx) 94. 1 성 은 50αn 93.12 새 소잉 30,αm 94.1 갈보리 225,αm 94.2 200,αm 94.2 성 진 100αm 94.3 100,αx) 94.3 성광제일 30αn 94.2 20,αx) 94. 3 헤 브론 켜。 항 4,250αm 94.2 1 ‘500;αm 94.3 경 동 80,αm 94. 2 50,αm 94. 2 굉단제일 30αn 93.10 20,αm 93.11 은 ~ 50:αm 94.1 30,뼈 94. 2 동 ; 。r 128,αxl 94.2 350;αxl 94. 2 동 tI 150,αm 94.1 50,αm 94. 1 시 온성 50,αm 93.2 호 남 노 회 예 굉 30,αx) 94. 1 30,αx) 94.1 수서제일 50,αx) 93.7 - 접 ~ 서신세일 1 ,500αm 93.9 500,αx) 93.11 븐 항 75;αx) 94.2 과전문원 230,αxl 93.12 100,αx) 93.5 원당칩대 120,αxl 94. 2 350,뼈 94. 1 전주성도 400,αx) 93.12 200,αx) 94.2 제주성운 50‘αx) 서울영생 110αm 94. 2 50,αm 94. 1 열 ~ 섭김 이

z。: 혀l 425,αxl 94.1 200,αx) 93.12 선 민 80;αx) 93. 7 150αm - 예 。al 30,αx) 94.2 50,뼈 94.2 구입영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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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싱경향 90,뼈 94.2 동부제일 40,αm 94.1 40αx) 94.2 서 문 50,αm 94. 1 50αp 94. 1 그。A。l ;xs 。。‘ 114,αx) 93.7 세 전 176,αxl 93.12 입마누엘 250,αm 94. 2 1 00,αm 94.2 계수제일 150,αm 93.10 100αx) 94.3 굉주영굉 80,αm 94. 1 50,αm 9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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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보「 30,αxl 93.6 40;αxl 93.6 남 신 600,αxl 94. 2 300,αxl 94. 2 석닝제일 2,875,αm 94.1 600,αx) 94.2 창원시민 50,αm 93.12 독산온동 60,뼈 94.2 30;αm 93.11 일 ~ 200,αx) 93.10 150αx) 93. 7 주 인 60,αm 94.1 70,αx) 94.1 염 굉 90αxl 92.12 서울시민 30,αxl 93. 2 60;αx) 94. 1 산 ~ 150,αx) 93. 9 240;αx) 93.11 예 일 300,αx) 93. 4 300,αm 93. 7 펑 화 90,αp 93.12

180,뼈 94. 2 200,000 94. 2 대 동 150,αm 94.1 250,αm 94.1 신 그~ 600,αm 94. 1 150,뼈 94. 1 부 으」 100αx) 94.2 100αx) 94. 2

싱 굉 100αm 94.1 70;αx) 94. 2 승 고。’ 130αm 94.1 70,αx) 94. 2 반 석 125,αm 93.12 100αx) 94. 1 만 민 100,αxl 94. 2 50,αm 94. 2 충 혼 200,αx) 94.2 100,αx) 94.1 반 석 305,αm 94.2 500;αm 94. 2 인천시민 50,αm 93.6 20,000 93. 7 옹 림 50,αm 94.1 50,뼈 94.2 한 앙 150,αm 94.1 30,αm 93. 6 동두전시민 신동산 300,αxl 94.1 300;αx) 94. 1 정 랑

전곡제일 20;αm 93. 5 30,αm 93. 5 선 진 」디} 일 70,αx) 92. 3 30뼈 - 옥 산 20αx) 93.1 2 로 덤 120;αm 94. 2 300,αm 94. 2 전곡대잉 30,αxl 93.12 25;αxl 94.2 생 'Î' 250,αm 94. 2 100;αm 94. 2 새 중잉

선 앙 50;αm 93.11 60,αm 94.2 평 회 인천성운 50;αm 93.3 진주앙문

싱남만민 125;αxl 93.11 50,αm 93.10 천 ~ 50,αm 94.1 40,αxl 93.12 한 빛 92,αx) 92.12 100,αm 94. 2 한시랑 50,뼈 94.1 서。나。~마。 30,αm 94. 2 50,αx) 94. 2 동 전 50αm 93.3 50,αm 93.3 운 서 150,αx) 93.9 50,αx) 93. 9 고현시민 10αm 94. 3 왕 남 90;αm 94. 1 50,αm 94. 2 동두천예일 30;αm 94.1 - ‘ i 원 130,αn 94.2 100;αm 94. 2 시 민 200;α)() 94. 3 100,αm 94.3 전곡소밍 25,α)() 94.1 25,αxl 94.1 선 일 250,αm 94. 2 100;αm 94. 2

정 평 50:αm 94.2 50,αm 94.1 가좌동굉 1 , 100,αxl 93.12 500,αm 93.11 동두전예일 20;αm 94. 1 구 ~ 40;αx) 93.4 30,뼈 93. 4 경 서 220,αxl 94. 1 100,αx) 94. 2 굉 ~ 30;αxl

τ~ ~ 80,αx) 93.10 50,뼈 93.12 잉 굉 150,αx) 93.11 50,αm 94.2 뱉 엘 20;αxl 94. 2

천안소잉 20,αm 94. 1 20‘αm 94.1 g,o볍선고 때,αm 94. 2 전 산 50,αm 94.2 50;αm 94. 2 a산싱굉 120,αm 94.2 - 동 서 200,αm 94.1 70,αxl 94. 2 경 ~ 。.,. ~ 50,αm 93.8 50αx) 93.6 대 。gJ 140,αx) 94. 2 - I ~ 안 35,αm 94. 2 35;αxl 9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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